신춘, 도화 ①
ㅣ 새 봄, 복숭아 꽃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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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BGM. 애지애가








" 18살이 되면, 짐은 그대를 귀인으로 삼겠습니다. 도망가려는 생각은 마세요. 도망가다 잡히면 제 손으로 그댈 죽일테니까요. "






















* 시들어버린 꽃 上









도화국의 남쪽 지방, 그곳에는 국의 이름처럼 복숭아 꽃이 지천으로 만개한 산이 하나 있었다. 은은한 연붉은 색이 들판을 채우고 산을 뒤덮은 것이 꼭 꽃동산의 자태를 뽐내 모두가 그곳을 꽃동산이라 불렀다지.





그리고 그 산 아래,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에는 신비한 힘을 가진 소녀가 살았다.











" 어찌 길을 못 보고 다니는 것이냐. 이것은 내 너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주는 것이다. "













가엾은 아기 고라니의 발에 걸린 올무를 보고 잔가지를 헤치며 다가온 여주는 짐짓 엄하게 고라니를 혼내준 뒤 다정한 손길로 고라니의 발을 올무에서 빼주었다.

이어 고사리 같은 두손으로 고라니의 상처를 감싸자 너울너울 기분좋은 향기가 소녀의 주위로 뿜어져 나왔다.








" 되었다. 이제는 안아플테야. 다음엔 잡히지 말고 다녀야 한다. "










해사하게 웃으며 고라니의 머리를 살짝 매만져주자 그 작은 짐승은 고마움을 표시하듯 소녀의 손길에 머릴 맡겼다가 이내 신이나는 걸음으로 숲속으로 사라졌다.


고라니를 치료해준 뒤에도 여주는 한참을 꽃동산에서 놀다가 해가 어둑해질때서야 집으로 내려왔다.










" 도하야 늦게 다니지 말래두. "
*도하: 여주의 이름대신 불리우는 애칭.











어미의 말에 여주의 얼굴이 불퉁해진다. 어디까지나 여주의 능력은 그 부모만 알고 있었고, 그 능력이 발각된다면 아이의 신세가 들짐승만도 못할 게 불보듯 뻔했다. 편안한 기운과 함께 상처를 치유해주는 능력은 국을 통틀어 아무도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신통한 능력이였으니 말이다.


어미의 이런 걱정도 모르고 여주는 잔소리처럼 넘기며 집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잔 정이 많아 누구든 아픈 꼴을 못 보고 지나친다.


그리하여 건너마을 대추 할아버지의 요상한 병도 치료해주고 시도때도 없이 꽃동산의 산짐승들도 치료해준다. 가끔은 매정함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의 심성이 저리 고운 건 부부를 쏙 빼다박은터라 그녀도 뭐라할 처지는 못되었다.




부디 금지옥엽으로 키운 저 아이가 무사히 여인으로 자라나 연모하는 이를 만나 행복하기를 빌뿐.




















***







기계적으로 산 지도 어느새 몇년이 흘렀다. 잔 정이라곤 없는 아비의 밑에서, 아비의 뜻대로 교육을 받고 자라온 황자는 늘 한가지의 표정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몇번 웃기도 했다. 자신이 날 때부터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어미가 가끔은 저를 불러 같이 놀아주기도 하였으니.


하지만 그 웃음을 한순간 앗아버린 건 바로 그 어미의 죽음이였다. 한번만 살려달라는 저의 울부짖음에도 저를 동궁 안에 가둬둔 황제는 황후에게 가장 잔인하고 무거운 벌을 내렸다.



몇날 며칠을 울다 지친 황자는 겨우겨우 끼니를 들고 온 궁인을 밀치고 동궁을 벗어나 어미가 갇혀있는 옥으로 달렸고,


때마침 어미의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담았다.














" 폐하를 만나기 전에 제게는 연모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마음이란 것이 어디 뜻대로 거둬지고 덜어낼 수 있는 것인가요? 폐하도 그리 못하여서 저를 잡아두지 않으셨습니까?"

" 저의 가족들을 볼모로 잡았고 그의 날개를 꺾으면서 까지도요. 태자도 그리 자랄 것입니다. 폐하를 닮아 이기적이고 잔인한 사람으로 자랄 것 입니다! "






.
.

" 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폐하와 폐하의 아들을 죽어서도 저주할것이란 말입니다!! "













자신의 배가 아파 낳은 자식에게 저주를 퍼부은 그녀는 다른 누가 말릴틈도 없이 칼을 빼들고선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황제의 길고 날카로운 칼이 그녀를 궤뚫고 피가 울컥울컥 나오는 입으로 그녀는 기어코 한마디를 남겼다.












" ....단...한..번도..이 사..람은..폐.하를..본 적이 ...없습니ㄷ... "











한평생, 사랑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자신을 봐 온 남자에게.











단 한번도 나는 그 시선을 받아준 적이 없다고.











어미의 저주, 제 아비의 추악함과 이기심, 그리고 잔해가 되어버린 사랑은 그 작은 아이를 영영 차디 찬 어딘가로 떨어트려놓았다.






















***





매년 황제의 즉위를 기념하여 열리는 사냥대회를 앞 둔 현은 이번에는 어떤 사냥감을 잡을 지 두리번 거리다가 사냥터를 벗어나 꽃동산까지 넘어왔다.
*현: 백현의 어릴 적 별칭.





이 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만개한 꽃에서 올라오는 꽃 내음에 현은 들고 있던 무거운 활과 화살을 두고 꽃 앞에 앉았다.





한 손에 다 담기는 꽃들을 몇개 꺾어다가 저의 양 어미에게 갖다주려는 생각을 하는 현에게로 슬며시 웃음이 스며들었다.



어린날의 아이가 다시 한번 웃음을 참은 건, 황제가 새로 들여온 귀인 덕이였다. 정귀인은 인자한 웃음으로 자신의 아들인 훈과 현을 똑같이 대했다. 공평하고 따뜻한 사랑, 진심으로 다가오는 어미의 품은 아이에게 위로이자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언제부터 떨어진 건지 몰라도 곧 훈이 오겠지 하며 꺾었던 꽃을 품안에 가득 넣은 현이 돌아섰을 때였다.










빛나는 털을 가진 아름다운 백호랑이가 현의 눈 앞에 있었다. 눈으로 압도할 것 같은 청록색의 눈동자를 마주한 현은 크게 숨을 쉬었다.



산속의 신령처럼 불리는 백호랑이가 나다니는 산이라, 참으로 신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 생각하던 현은 호랑이가 얌전히 돌아선 순간 내려 놓은 활과 화살을 들어 두터운 목을 겨누었다.







빠르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활이 목을 궤뚫자 호랑이의 위엄있던 걸음이 흐트러졌다. 끝까지 우아하게 도망치는 호랑이를 따라 정신없이 산으로, 산으로 향했다.
























***


입에서 나오는대로 흥얼거리던 여주는 꽃들 사이에 앉아 뒹굴거리다가 탈탈 털고 일어났다. 걸음을 돌려 어미의 심부름을 가려했는 데, 순식간에 휙 지나가는 것에 그 자리에 한번 굳었고, 지나간 것이 떨구고 간 비릿한 피에 또 한번 굳었다.




또 다시 산짐승을 사냥하려는 누군가에 의해 다친 듯, 피는 지나간 자리마다 선명히 떨어져 있었다. 여주는 망설임없이 발을 돌려 핏자국을 따라 뛰었다.








여주는 걸리적 거리는 치마자락을 움켜쥐고 달걸음질 해 마침내 핏자국의 주인공을 찾아내었다.은빛색을 가진듯한 크고 늘씬한 백호랑이가 풀 숲에 드러눕듯 누워 고개만 든채 여주를 쳐다보았다.


머리 아래로 매끈하게 뻗어지는 목덜미 쪽에서는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여주는 그 상처를 발견하곤 마치 저의 상처인 마냥 눈쌀을 찌푸렸다.









" 으아...아프겠다. "












여주는 겁도 없이 그 말을 끝으로 저의 세배나 되는 짐승에게 성큼 다가섰다.


































***





이쯤이였는 데,

현은 잔가시를 쳐내면서 핏자국이 끊긴 곳에서 희미해진 피 냄새에 의아해 했다. 피가 멎을 리 없는 데 어찌 냄새가 갈수록 연해지는 지. 갸웃하며 더 다가서느라 덤불을 밟고 한걸음 더 나갈 때 였다.










" 나는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닌데...이거 치료해줄게. 조금만 가만히 있어, 응? "













가녀린 계집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이빨을 드러내 덥썩 물것처럼 입을 벌리는 호랑이 가까이에 선 계집은 조심스레 조막만한 손을 뻗어 현이 낸 상처 위에 손을 올렸다.




저게 뭐하는 건가 싶어 활을 쥔 손에 힘을 실으며 한걸음 더 다가서려는 순간이였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고 이내 계집의 손끝에서부터 퍼지는 연한 빛들에 현의 걸음이 굳고 눈동자가 커졌다.







선대 황제 이후로 왕족에게만 내려오던 능력이 사라지면서, 그 곁을 지키던 신의들도 차츰 사라졌다고 들었다. 서적으로만 접했던 신의의 능력을 실제로 보자 현의 눈동자에 흥미로움이 스며들었다.







백호랑이보다, 더 값진 사냥감을 찾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현의 얼굴로 알 수 없는 웃음이 스며들었다.













" 그 짐승은 내 것이다. "

" ........! "












저의 능력으로 말끔히 치료 된 백호랑이에게 배시시 웃으며 피가 묻은 털을 쓸어주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주는 그만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순식간에 몸을 일으킨 백호랑이가 여주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앞으로 나와 여주를 감쌌다. 저를 살려 준 것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다시 사냥꾼 앞에 서다니.

현은 호랑이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활을 다시 한번 호랑이에게 겨누었다.













" 아니되옵니다! "












호랑이에게 묻혀 있던 계집이 후다닥 달려나와 온 몸으로 호랑이 앞을 막아섰다. 현은 헛웃음을 들이키며 어깨선 위로 올렸던 활을 내렸다.
















" ......아니된다? "

" ........ "
" 어째서냐. "












거만한 현의 물음에 여주의 곧은 이마가 살풋 구겨진다.











" 호랑이는 신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어느 댁 도련님이신 지는 모르겠으나, 세상 물정 모르고 신령을 해하려하다니요! 벌 받으실 것 입니다. "










똑 부러지게 제 의견을 피력한 계집애를 보던 현이 와락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벌을 받는다라.







종 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현을 주의하던 여주는 이때다 싶어 호랑이를 돌아보았다.











" 이제는 가도 된다. 잡히지말고, 꽁꽁 숨어다녀야 해. 여긴 발길이 많아 위험한 곳이란다. 오늘은 나를 만났지만 다음엔 내가 이리 또 도움을 줄꺼라 장담할 수 없으니. "











다정히 짐승을 타이르며 청록색의 눈동자로 저를 응시하는 호랑이에게 여주는 괜찮다는 듯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자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호랑이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듯 여주의 손 에 제 머리를 갖다댔다가 한걸음 더 걸어가 다시 한번 여주에게 인사하듯 고갤 숙였다.






제 앞에서, 저가 누군줄도 모르고 호랑이를 놓아주는 여주를 잠자코 지켜보던 현은 호랑이가 가고 나서야 다시 고갤 돌려 저를 보는 계집을 삐딱하게 응시했다.












" 세상 물정 모른다 하였느냐? "













아까 여주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천천히 말을 꺼내는 현의 모습에 여주의 눈이 현에게로 고정되었다.












" ....... "

" 아바마마가 다스리는 세상을 내가 다스려야 하는 데 그런 내게 세상 물정을 모른다라? "














백현의 차게 식은 말에 그제서야 여주의 몸이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제서야 눈에 자세히 들어오는 머리에 두른 띠하며 허리를 두른 끈이 단순한 고급 비단이 아니라 왕족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기고 있음을 보고야 말았다.

















" 평범한 자제의 도령들에겐 모르나,왕족에게도 사냥감 제한이 있는 줄은 내 꿈에도 몰랐군. "


" ......... "

" 니 말대로 호랑이를 놓아준 짐이 얻는 것은 무엇이냐? "

" 호랑이를 놓아준 것은 너니, "
" 너라도 나를 따라갈테냐? "


















비틀린 웃음이 입매가 굳어지면서 사라졌다. 현은 활을 쥐고 사냥을 하는 사람같지 않게 곱다란 제 손을 뻗으며 명령하듯 하문했다.

호랑이 대신 니가 나를 따라 오겠느냐고.















여주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에 입을 꾹 깨물었다.


현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 황족의 사냥을 방해한 한낱 계집애의 목숨은 이제 저 고약한 성질에 달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