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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하 

2 

 

 


 


 


 

손에 달랑달랑 검정봉다리를 들고 경사진 계단을 올랐다. 달동네 중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한 집, 동네에서 유일하게 앞마당에 나무가 있는 집이 보였다. 내가 사는 곳이었다. 오래 되어 녹쓸고 뻑뻑한 대문을 힘주어 열었다. 닫는 건 대충 발로 차서 닫았다. 뒤에서 땅이 긁히는 소리인지, 쇠붙이가 서로 긁히는 소리인지 듣기에 그다지 좋지 않은 소리가 귀를 가득히 메워 온다. 지붕 밑에 붙어 있는 좁은 평상에 봉다리를 던지듯 놓곤 그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다지만 어쨌든 보금자리는, 보금자리이다. 밖에 있는 내내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가시처럼 예민하게 곤두세워져 있던 기분이 서서히 가라앉음이 느껴졌다.  


 

등줄기에 땀 한 방울이 선을 그리며 흐른다. 지붕과 나무로 인해 어느정도 햇빛은 가려졌다지만, 더웠다. 차라리 장마라도 왔으면 좋겠다. 막상 장마가 닥치면 축축함에 욕을 뱉을 걸 알지만서도. 그리고 쟤도 물은 좀 먹어야지. 지붕을 반이나 덮고서도 모자라 작은 담벼락 너머까지 뻗은 푸르고 커다란 나무에 멍하니 시선을 던졌다. 커다란 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는 아주 작은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집도, 나도 한 품에 안아 버리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나는 아주 작다. 이 밑에 숨은 동안은 아무도 날 찾지 못 할 것이다. 난 아주 작은 사람이므로. 아무도 날 발견하지 못 할 것이다. 그래야 했다. 


 

몇 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고모'라는 단어가 둥실 떠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오려는 것을 참고선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고모. "
'달력 보고 알았다. 느이 아빠 기일인 거. '
"안 그래도 지금 다녀오는 길이에요. "
'어휴, 이 어린 걸 두고 그놈은, '
"고모, 그때는 어렸어도 지금은 저 컸잖아요. 걱정 않으셔도 돼요. "
'그래. 올해가 스물셋이니?'
"스물넷이요. "
'대학은 계속 다니고?'
"올해 3월에 졸업했어요. "
'그럼 이제 뭐하고 살 거니?' 


 

장장 한 시간이나 전화는 더 이어졌다. 나의 미래와 현재에 대한 걱정. 가끔은 과거의 이야기까지 수화기 너머로부터 넘실넘실 흘러들어 나와 나의 집을 잠식했다.  


 

'느이 아빠가 깡패짓이나 하다가 그렇게 된 거 알지? 넌 바르게 살아야 한다. 고모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알아요. "
'몸 조심하고, 아빠 찾거든 모른다고 딱 잡아떼야 한다. 그래야 살지, 응?'
"네. 그럴게요. "
'그래, 고모 끊는다. '
"들어가세요. " 


 

흘러들던 것들이 뚝, 끊긴다. 그러나 이미 침수되고 난 뒤다. 집도, 나도. 그래도 괜찮다. 곧 여름의 더운 열기와 커다란 나무가 모든 수분을 앗아가 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려 줄 것이다. 눈을 감았다 떴다. 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 같긴 했는데, 그게 땀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난 알 수 없어, 그저 마르길 기다린다. 

작은 바람이 달동네를 훑었다. 달동네의 유일한 나무가 파스스 몸을 흔들다 이내 나뭇잎 몇 가닥을 떨쳤고, 그 밑 작은 집 평상에 놓인 검정봉다리는 부스럭 몸을 가누지 못 하다 자신이 품고 있던 동그란 과일을 내보였다. 복숭아가 먹고 싶다. 달겠지. 달았으면 좋겠어. 덜 여문 것이라 할지라도. 문득 누군가가 머리를 훑고선 곧, 흩어졌다. 


 


 


 


 

서울의 밤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적어도 버스 창가 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그랬다. 양옆으로 높게 늘어선 건물의 불빛과, 퇴근시간 길게 늘어선 차의 전조등은 눈을 아프게 할 정도다. 버스 안으로 눈을 돌렸다. 너무 밝은 빛은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눈앞에 빛의 잔상이 아른거려 잠시 눈을 감았다. 소용없었다. 눈을 감아도 잔상은 계속해서 맴돈다. 그래도 잔상은 잔상일 뿐이다. 잔상은 어느새 어둠에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다른 잔상이 내 어둠을 채웠다. 예를 들면, 햇빛 아래서 빛나던 하얀 얼굴 같은. 거칠게 버스 부저를 눌렀다. 빛은 늘 잔상을 남긴다. 


 

밤은 낮의 열기를 아직까지 품고 있다. 오르막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절로 땀이 난다. 찝찝하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다. 열 오른 몸에 시원한 물이 끼얹어지는 상상을 하며 막 계단으로 한 걸음 내딛었을 때였다. 


 

"어어, 잠만, 잠시만! " 


 

익숙하진 않아도 들어본 목소리였다. 다리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가 사람이 잡는다고. 어제 그 복숭아다.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도심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불빛이 그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비춘다. 


 

"계속 기다렸는데 놓칠 뻔했다. "
"너 또 뭐야. "
"우와, 되게 정없어. 내가 어제 이름까지 알려 줬는데 이름은 안 불러 줘? "
"이번엔 왜 찾아온 거야. "
"음, 어제 복숭아 먹었어?" 


 

안 먹었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렇다. 먹었다. 순간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자 복숭아를 닮은 이 녀석은 슬금슬금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아, 이러면 경계하던 내 모습들이 우스워지고 마는데. 혀를 살짝 깨물었다. 정신차려. 


 

"맛있지. 맛있었지? "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내가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말 못 했는데 왜 계속 반말해? "
"정신이 없어서 기억 안 나나 본데, 어제 네가 먼저 했어. 난 그게 허락인 줄 알았는데? " 


 

얘는 사람 입을 막는 제주가 있다. 아니, 근데. 기분 나쁘게 내 말투는 왜 따라해. 


 

"오늘은 또 왜 찾아온 거야. " 

"어제랑 똑같아. 복숭아 갖고 왔어. " 


 

그러더니, 정말 어제랑 똑같은 모양새로 뒤에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려 검정봉다리를 꺼내든다. 당황스럽다. 상대에게 말려들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건 아빠한테 배웠다. 자, 침착하고 물어봐야 할 것들을 물어보자. 


 

"그래. 그 복숭아. 대체 왜 주는 거야?"
"먹으라고?"
"여기까지 나 복숭아 주러 왔다고?"
"응. 너 복숭아 좋아하잖아. "
"너 내가 복숭아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아? "
"..." 


 

노래하는 참새마냥 조잘거리던 입술이 닫혔다. 반대로 내 입술은 그의 모든 말을 가져온 양, 크게 열리기 시작한다.  


 

"내 이름도 모르면서. "
"..."
"내가 사는 곳은 어떻게 알고. " 


 

침착은 개나 주라지. 한 번 발화된 의심은 점점 크기를 키우더니 기어코 나를 집어삼킨다. 나를 불태운다. 


 

"어떻게, 왜. "
"..."
"어떻게! 왜!"
"..."
"왜, 알고 있는 거야. 너 혹시, 우리 아빠 알아?" 


 

계속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의심만 커진다는 걸 알면서.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 아빠 찾으러 온 거야?" 

"그래서 아빠 딸인 나 죽이려고? 어? 대답해." 

"왜 대답을 안 해. 응?" 


 

가슴께에 물이 가득히 들어차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대답 좀 해 보라니까! 왜 입을 다무는데!" 

"어? 대답해 봐. 대답 좀, " 

"대답 좀 해 보라고... " 


 

여름은 이래서 싫다. 땀이 흐른다. 이마에도 흐르고, 볼에도 흐르고. 더워. 더워 죽겠어. 무서워. 무서워 죽겠다고. 내 가슴 속 깊이 숨어 살던 두려움이란 녀석이 모습을 보였다. 실은 난 늘 무서웠고 불안했다. 이 세상에서 날 지킬 사람은 오직 나 한사람 뿐이기에. 나는 나를 숨겨야 했다. 아빠를 찾아온 사람들로부터, 아빠의 딸인 나를 찾아 공격해 올 사람들로부터. 내게는 누군가를 공격할 힘이 없으므로 숨는 것이 내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숨어든 나를 찾아낸, 여름의 햇살과 함께 찾아온 이 남자가, 나는 두려웠다. 억울했다. 난 그냥, 그냥. 살아내고 싶었다. 


 

천천히 하얀 손이 내 볼에 얹어진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하얀 손을 피할 수가 없어 그저 받아들였다. 왜인지 모르겠다. 왜 이 손의 주인은, 이 하얗고 말랑하게 생긴 남자는. 왜 저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건지. 왜 피할 수도 없게 저런 간절한 손짓으로 다가왔는지. 그는 엄지로 내 볼을 조심스레 쓸더니 곧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거두어 간다. 멀어지는 온기에선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복숭아의 달짝지근한 향기. 와중에 내 볼에도 그 향이 남았으려나, 궁금해 하고 있으니 가장 궁금했던 그의 담홍색 입술이 달싹거리며 열렸다. 


 

"그런 거아니야. " 

"삼촌이랑 아는 사이는 맞지만 널 해치려고, 아프게 하려고 온 게 아니야." 

"그냥 네가 좋아하는 걸 주고 싶었어. 정말, 그게 다야. " 


 

나는 바보 같게도 저 손에 들린 검정봉다리를 받아들고 싶었다. 힘없는 손끝에서 간신히 달랑거리는 저 검정봉다리를 잡아 주고 싶었다. 타이밍 좋게 어제 고모의 말이 생각났다. '아빠 찾거든 모른다고 딱 잡아떼야 한다. ' 하며 신신당부하셨는데. 고모 미안해요. 저 말랑하게 생긴 남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스스로 우리 아빠 딸인 거 그냥 막 밝혔어요. 위험한 행동인 거 아는데. 의심할 거리가 천지인 남자란 것도 아는데. 알았는데, 버스에서 해맑게 웃어 주던 모습이. 더운 여름 햇빛 아래서 복숭아를 건내던 손이. 너무 빛나서. 빛이 나는 것들은 늘 그랬듯. 내 눈을 멀게 하나 봐요. 


 


 


 


 


 


 

 "정말 그게 다야. " 


 

[방탄소년단/박지민] 염하 2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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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63.172
작가님 글 덕분에 여기가 겨울인지 여름인지 모르겠어요
여름햇빛이 글을 타고 넘어오는 것 같아서요ㅜㅠ글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ㅠㅜㅜㅜㅜ

5년 전
청매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여름색이 전달되었다니 넘 기분 좋네요ㅜㅜ 부족한데도 읽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하트하트🥰
5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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