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나의 어머니를 말한다.
이재환의 이야기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릴적, 밤이면 문틈 새로 흘러들어오던
술냄새와, 욕설, 그리고 파열음은 생생히 기억난다.
어머니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지켰다.
아버지가 사라지고 난 후, 멍투성이의 지친 몸으로 날 향해 웃는 어머니를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은
어머니를 지켜야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했다.
힘이라던지, 돈이라던지 하는 것들.
나에게는, 없는 것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업을 가지면
어머니를 지킬 수 있겠지.
고등학교를 다니며 단 한번도 전교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으려 동아리활동이라던지 봉사활동 같은 것도 나름 열심해 했다.
그러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공부를 잘 하긴 했지만 전교1등을 할만한 정도는 아니었던 차학연이
전교1등의 자리를 차지했다.
차학연은 항상 국어가 조금 모자랐었다.
돈 많은 집안 애라더니, 과외라도 받았나 보다 하며 불쾌한 마음을 달랬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우연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야자를 하고 있을 시간, 나는 교무실에서 상담을 했다.
상담을 마치고 복도를 걸어가던 중, 학부모 상담실의 문이 살짝 열린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새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학연의 어머니가, 그 반 담임이자 국어교사인 정택운에게 돈을 줬고,
정택운은 그 댓가로 시험문제와 답지를 제공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 애가 나에게는 없는 것을 가졌다는게 짜증이 났다.
그걸 이용해 내가 어머니를 지키는 일을 방해한다는건 더 짜증이 났다.
그게 조금씩 조금씩 쌓이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그날, 동아리때 하던 실험을 마무리지으려 화학실에 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학연이 왔다.
둘만 있는 틈을 탄 거였는지, 차학연이 말을 걸어 왔다.
-야, 넌 전교 2등하고도 짜증 안나냐? 학원같은거 안다녀?
괜한 시비였다. 싸움이라도 하면 어머니가 걱정을 할 것 같아 짜증을 삭혔다.
-아, 하긴. 너네 집 돈 별로 없지? 너네 엄마 혼자 돈번다며? 뭐 폐지라도 줍냐? 거지처럼?
하지만 차학연의 말은 도를 넘었다.
어머니를 욕보인 새,ㄲ를 내가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실험실을 나오면서 한상혁 몰래 에테르를 챙겼다.
차학연과는 2년 이상 열람실 가까운 자리를 쓰느라
차학연의 행동패턴을 대강 알고 있었다.
차학연은 밥을 먹으러 나가기 직전 열람실 화장실을 간다.
그 때를 노려 차학연이 들어간 화장실 문을 대걸레로 막은 후,
에테르를 잔뜩 묻힌 휴지뭉치 여러개를 그 칸 안에 던져넣었다.
십분쯤 지났을까,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가려고 애를 썼는지 다행히도 잠금장치는 열려 있었다.
정신을 잃고 무릎을 꿇은 채 축 늘어진 차학연을 끌고 차학연의 자리에 데려가 앉혔다.
마침 차학연이 입고 있던 김원식의 체육복을 내 교복 위에 입고,
차학연의 필통 속 커터칼을 꺼내 명치에 찔러넣어 비틀었다.
피가 튀긴 체육복을 다시 차학연에게 걸쳐 두고는
차학연의 핸드폰으로 교실에 두고 온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이걸 알람소리라고 하면 알리바이까지 완벽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어머니를 욕보인
차학연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