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엠 꼭 같이 들어주세요
1.

"또 만났네"
단정하게 앞머리를 내린 흑발의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안녕"
며칠째 꿈속에서 같은 남자애가 나온다.
맨처음에는 꿈을 꾼지 몇분도 안되서 깼지만
이젠 제법 오랫동안 그 남자애와 대화도 하고 놀러도 다녔다.
우리는 항상 걸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난 현실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년에게 말해주었고 소년은 그걸 묵묵히 들어줬다.
짜증났던일,슬펐던일,기뻤던일 나의 일상생활 모두를 그 소년과 공유했다.
그 아이와 얘기를 나누면 모든걸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만"
한참 재잘거리며 언덕을 걷고 있었는데 소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허리를 숙여 하늘색 꽃을 여러송이 꺾었다.
"자"
"물망초 아냐?"
"응.이쁘지"
"이쁘다"
"...물망초 꽃말이 뭔지 알아?"
"뭔데?"
소년의 눈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것 같은 눈이였다.왜그럴까.
소년은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운을 떼었다.

"나를 잊지마세요.
안녕,내 이름은 도경수야"
그리곤 잠에서 깼다.
2.
이제 수면제 없이 잠드는건 나에게 힘든일이 되었다.
잠에서 깨면 다시 또 자고,또 자고....
그렇게라도 그 남자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1년전 사고로 갑자기 가족을 잃은 충격은 쉽사리 내곁을 안떠났다.
새벽에 잠에서 깬 나는 서랍을 열어
수면제 두알을 입안에 털어낸뒤 다시 눈을 감았다.

"자꾸 이렇게 찾아오는거 안좋아"
"혼자있으면 미칠것 같아요"
남자는 담요를 내 몸에 둘러 쇼파에 앉히고 커피를 건냈다
먹을 생각이 없는 나는 고개를 저은뒤 그저 안아달라고만 했다.
남자는 커피를 선반 위에 놓은뒤 그대로 쇼파에 앉아 나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저씨가 꿈속에서 안나타나면 어떡하죠"
"어쩔수없는거지 넌 현실 사람이고 난 네 꿈 속 사람이니까"
"무서워요"
"..."
"진짜 견딜수 없을것 같아요"
"..."
"어떡해요 저"
남자는 대답 대신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편하다,고요하다.
평생 이 잠에서 깨고 싶지가 않다.
"아저씨"
"응"
"한번만 키스해도 돼요?"

남자는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나의 입술과 남자의 입술이 포개졌다
알고있었다.
이 꿈에서 깨면 더이상 이 남자를 볼수 없다는걸
내 입안에 짭짜름한 기운이 퍼졌다.
그의 눈물일까 내 눈물일까.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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