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살 때 유도를 시작한 재일교포 4세 추성훈.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일본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가 없었다.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던 그가 그 때 선택한 것은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이었다. 그의 여동생 정화도 같이 부산에 와 유도를 하기 시작했다. 1998년 스물넷 나이에 생전 처음 찾은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는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면서 일취월장 유도 81kg급의 최고수로 성장했다.
문제는 국제경기에선 연이은 한판승으로 우승하는데 유독 국내대회, 특히 가장 중요한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한게임 선발전에서 항상 판정시비 끝에 고배를 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추성훈에게는 '좋은 대회' 출전권은 줄 수 없다는 '그 분들'의 심보 때문이었다.
추성훈의 쓰디쓴 '일본 귀화'…"일본보다 한국의 차별이 더 가슴 아파"
2001년 결국 그는 '(국적을) 바꿔야지. 말을 해도 안 됩니다. 여기는'이라는 쓰디쓴 독백과 함께 일본으로 가 귀화한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조인철 선수가 은퇴하면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제 체급에 용인대 선수가 몇 명 있어서 힘들다"고 대답한다. 당시 같이 부산 어느 대학에서 유도를 하던 여동생도 역시 한국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돌아가 오빠와 함께 귀화한다. 가족도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다음 해 일본대표로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그는 한국의 안동진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건다. 그 때 할 말은 한다는 어느 신문사는 '조국을 메쳤다'는 기가 찬 제목을 뽑아 다시 한번 씁쓸하게 만들었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id=002&aid=0000022265
요약
1 재일교포 4세에 유도 엘리트였던 추성훈, 한국국적 안버리고 한국에 와서 한국어 배우면서 유도
2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판정 닥치고 용인대 손들어주는 상황(용인대파벌은 아주 유명)
3 결국 질려버리고 일본으로 귀화 후 바로 국가대표발탁,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인 꺾고 우승
4 조국을 메쳤다고 난리치는 한국 * 참고로 아시안게임 유도는 올림픽 유도 위상과 맞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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