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가 앉아 있는 거실에 못 보던 책이 있네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그래요, 우리가 돌아와야 할 날이 금요일이었지요.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동안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거에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에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거에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며 있을게요.
엄마가 제 가슴에 새겨준 문자처럼 사랑해요 많이많이 사랑해요.
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말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요.
-그리운 목소리로 건계가 말하고, 시인 도종환이 받아적다.
엄마,
너무 많은 부탁들이 엄마에게 가서 미안.
나는 엄마 딸이니까
엄마는 나의 엄마니까
내 마음 가장 잘 알지.
5층까지 올라가면서 내가 느꼈을 공포감, 고통,
이런 거 생각하지 마.
그 순간 외로움도 잠깐,
친구들이 같이 있었고,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의지했고,
그래서 많이 무섭지 않았어.
-그리운 목소리로 채원이가 말하고, 시인 이영주가 받아 적다.
아빠
이제 내 이름 부르는 거 편해졌어?
갑자기 나 사라져서 많이 화났지?
많이 슬펐지?
곁에 없다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너무 슬프다고 너무 속상하다고 아빠를 힘들게 하지 마
아빠
그림 잘 그리는 딸 좋은 학교 못 보내줘서 속상했지?
내가 그린 멋진 그림들 태웠다면서?
혹시 지금 후회하는 중?
말 안해도 다 알아
나 주아잖아
사실은 그 그림 내가 다 가지고 있으니까 걱정 마
-그리운 목소리로 주아가 말하고, 시인 유현아가 받아 적다.
바람.
구름.
빛.
여긴 그래요.
바람은 엄마처럼 부드럽고
구름은 아빠처럼 두둥실 떠 있고
빛은 형처럼 환해요.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날아와 나의 글러브 안에 착 감긴 야구공에는
짧은 편지가 적혀 있어요.
<내 아들 호연아,
16년 5개월, 짧지만 아들 땜에 참 많이 행복했다.
고마워. 미안하고 사랑해.>
저도 고마워요.
나의 엄마, 나의 아빠, 나의 형, 나의 친구들이 되어주어서.
나의 16년 5개월이 되어주어서.
-그리운 목소리로 호연이가 말하고, 시인 신해욱이 받아 적다.
참, 제가 너무 늦게 올라가서 많이 속상하셨죠?
제가 우리 반에서 제일 늦은 이유, 말씀드려야겠네요.
흐음, 저, 중근이잖아요! 듬직한 중근이.
기다리래서 기다리던 우리 반 친구들
캄캄한 바닷속에 갇혀버린 착한 친구들
우리 반 아이들 다 찾아서 먼저 물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빠 엄마 목소리 들릴 때마다 더 힘을 냈어요.
난 중근이니까, 듬직한 중근이니까.
외롭게 남게 되는 우리 반 친구들이 없을 때까지
함께 있어주고 싶었어요.
-그리운 목소리로 중근이가 말하고, 시인 김선우가 받아 적다.
알아요
가끔 엄마가, 또 아빠가
어쩔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거
옹아, 살 수 있었는데
갑판 위까지 올라와놓고서는
왜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갔니,
탄식하는 소리
그러나 어떡해요
내가 살고 싶은 것처럼
내가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처럼
똑같이.
친구들도 그 마음으로 배 속에서 울고 있었는걸요
모르는 척이 더 힘들었어
그게 더 힘들었어요
혼자 살 순 없었어요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아빠
그곳에 남아 있는 어른들도
서로 살려주려고
살게 해주려고 애썼으면 좋겠어요
-그리운 목소리로 온유가 말하고, 시인 박연준이 받아 적다.
아빠 미안
2 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갈 때 휴대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다.
세월이 지나도 그 세월만은 잊지 않도록.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집
'엄마. 나야.'
라는 시집에서 발췌했습니다.
생각에서 놓으면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기엔 너무 예쁜 아이들이잖아요.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