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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가고 계절은 또 오고
바람은 가고 바람은 또 불어어고
비는 멈추고 비는 또 내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는 나는
아픔인 것과 아픔이 아닌 것의 차이는
소녀와 비 / 원태연

간밤에 비가 내렸나 봅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
그대여, 멀리서 으르렁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
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
밤새 내린 비 / 이정하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에는
마음이 젖는군요
벗을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고
비 / 윤보영

결국 그런 것이다
구름처럼 한번 밀려온 인연
아득하고 아득하여서
비라도 뿌리는 일
그래서 비가 오면
한사코
하늘 아래
누군가 아득한 것이다
인연 / 윤성택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습니다
봄비1 中 / 김용택

참 어이가 없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뚝 떼시면 나는 어찌합니까.
그토록 강렬하게 흩뿌려 놓고 지금 와서 슬쩍 다른 데 가 계시면 나는 뭡니까.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랍니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폭싹 다 젖었는데.
소나기가 끝나고 난 뒤 / 이정하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점점 장대비로 변해가고 그 빗속을 뚫고 달리는
버스 차창에 앉아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을 너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마음이 짓무르는 듯 했다
사람에게는,
때로 어떠한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려다본다거나
졸린 듯 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 한 부분처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너를
보내는 길목이다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 여림

천둥소리 내 안에서
머뭇거리는 것을 보니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다 보면
그대
이마를 적시는
비가 되어
내릴 수도 있으리라
그리움 / 김초혜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 황인숙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 비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사랑의 우화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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