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사진 있습니다. 동물실험 아닙니다.
*화질이 안좋거나 색이 바래서 기분이 나쁠수도 있습니다.
*영상에 약간 설명을 따로 넣어둬서 놀람을 방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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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아, 나라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
그렇지만 당신은 몰라요. 그것이 그것만이 진실입니다. 당신도 모릅니다.
It's easy for you to say, "oh, I wouldn't have acted that way."
But you don't know. That's-that's the truth. You don't know.
감옥실험 참가자 중 교도관 역의 인터뷰

필립 조지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로 "감옥실험"을 통해 개인의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스탠퍼드대 감옥 실험
준비
필립 짐바드로교수는 ' 감옥' 라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실제 감옥에서 실험을 계획했지만,
자금 문제로 인해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 건물의 지하에 모의 감옥을 만들고, 2주 동안의 사회심리학 실험에 참여할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게시했습니다.

2주 동안 총 4050달러(당시 차 한대를 살 수 있는 금액)라는 파격적인 금액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짐바드로 교수는 면접 진단, 심리검사 등을 통해 그 중 24명의 남자 지원자를 추려냅니다.
24명 모두 심리학적으로 결격사유가 없고, 대학 이상의 높은 학력을 가졌으며, 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괜찮은 일반적인 사람들' 이였습니다.
이 괜찮고 일반적인 24명의 지원자들을 동전 던지기로 '교도관'과 '수감자'를 나눈 후 실험 준비를 마쳤습니다.

"위 실험에 참가한 24명의 지원자들은 실험 도중 집에 가고싶거나, 실험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 하면 언제든지 그만 둘 자유가 있다."

실험 오프닝 이벤트
8월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마을의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사이렌을 울리며 나타난 경찰차.
무장 강도 혐의의 대학생들을 대량 검거 후 미란다 원칙 고지와 지문 채취 후 눈을 가리고 경찰서 내 감옥에서 대기한다.
이들은 사전에 짐바르도 교수의 부탁을 들어 실험에 현실감을 부여하기위해 벌여진 일종의 쇼, 예고편이였다.

수감자들이 구금되있는 동안, 짐바도르와 교도관들 그리고 연구진들은 모의 감옥 시설에 대해 설명 및 검사하고 있었다.
나쁜 죄수를 벌주는 작은 옷장 크기의 서있는 감옥, 강의실 문 대신 설치된 쇠창살 문, 죄수들의 말을 염탐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작은 감옥 내 전화기 등등

1일차 - 수감
경찰들의 체포에 의해 약간의 충격과 상황을 직시한 수감자들에게 "스탠퍼드 주 내 교도소(모의감옥)"으로 눈이 가려진채 이송 절차가 진행 됐다.
감옥으로 도착한 눈이 가려진 수감자들은 교도관들에 의해 실제 감옥에서 이루어지는 소지품 검사, 알몸 검사 및 혹시 모를 세균을 없에기 위한 분진 검사를 받고 오른쪽 발목에는 쇠사슬을 달았다.
이러한 절차는 텍사스 교도소의 절차와 유사했다.

(글 밑에 수감자와 교도관 사진 있습니다.)
수감자들에게는 내복과 각 죄수번호가 앞뒤로 박힌 여성의 긴 잠옷 원피스 같은 유니폼, 고무샌들이 지급됐고, 머리에는 살색 나일론 스타킹을 씌웠다.
이것들은 수감자들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설정되었고, 오른쪽 발목의 쇠사슬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상기시키는데 사용됐다.
머리에 스타킹을 씌운 것은 실제 교도소에서 머리를 깎는 것에 대신한 것이다.

실험이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의로 분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수감자 역할과 교도관 역할 사이에서는 말투나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도관은 폭력적으로 변하였으며, 수감자는 수동적으로 변화하였다.
1. 교도관들은 실험 첫날 자기들이 권위를 세우지 않으면 교도소가 무질서해질 것이라 걱정하고 수감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2. 수감자들이 순종이 아닌 격렬한 반항 그로인해 수감자 한 명이 독방에 갇힘
3. 1번방 수감자들이 교도관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침대로 문을 막자, 교도관들은 2번방 수감자들의 옷과 침대를 빼앗고, 발가벗고 지내기 싫으면, 1번방 죄수들을 설득하라고 요구.
4. 저항이 3번방과 4번방까지 번질 기미가 보이자, 교도관들은 소화기를 뿌려 이를 진압하고 상대적으로 협조적인 3번방 수감자들에게 침대를 제공하고 특혜를 베풀고, 다른 감방에선 침대를 모두 빼앗음.
5. 죄수들이 3번방 수감자들을 배신자라 비난했고, 3번방 수감자들은 결백하다며, 식사를 거부.
6. 그날 밤 수감자 한 명이 탈옥 시도, 교도관이 이것을 발견해 수감자들은 더욱 압박하고, 협조자에겐 보상을 내림

2일차 - 루머
새벽에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에게 갑작스러운 점호를 취하여, 심각한 갈등관계에 처했다. 이에 따라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교도관들은 아무런 사전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소화기로 그들을 진압하고, 모두 뒤돌아선 가운데 한 명에게만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이는 아우슈비츠이서 카포들이 벌였던 일과 동일했다.

교도관들은 3경비 각 8시간의 3교대 야간 당직조를 만들었으며, 수감자들의 결속력을 와해시켰고, 교도관들의 인격적 모독과 대우로 인해 두 집단간의 갈등은 점점 심화됐다.

결국 2일만에 교도소에서는 폭동이 발생한다.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스타킹 모자를 벗고, 자신들이 수감자 ID가 아닌 지원자로 불려야한다고 주장했으며, 가족과의 연락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에 교도관들은 감옥 문을 잠근 후 쇠창살을 통해 소화기를 뿜어대는 등의 방식으로 폭동을 잠재우려 했다.

(영상캡쳐 - 앞 장면 : 수감자가 창살 사이로 를 내보입니다.)
1. 폭동이 일어나서 짐바르도 교수가 직접 참여, 간수 대표 3명, 수감자 대표 3명을 뽑아 실험을 잘 끝내보자고 다독임."지금 그만두면 3일치 밖에 일당을 못받으니 잘해보자"라는 말로 설득.
2. 문제는 수감자 한 명이 “이제는 수감자들이 원해도 실험을 그만둘 수 없다”는 헛소문을 퍼트렸고, 밤새 소동이 일어남.
소문을 퍼트린 8612번 수감자에대해 교도관들은 작은 옷장크기의 하루종일 서있어야하는 감옥에서 벌을 받게함.
3. 헛소문을 퍼트린 8612번 참가자를 연구진이 제외시킴.
4. 이 문제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는데, 수감자들은 실험에 제외된 8612번이 탈출했고, 동료를 이끌고 이 교도소를 파괴하고, 자신들을 구출할 것이라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 (추후 이 소문으로 인해 단체 탈옥 폭동이 일어남)
5. 짐바르도 교수도 이 헛소문을 사실로 믿어버리고 교도관들에게 감독을 강화하고, 실험실을 진짜 교도소로 옮길 계획까지 추진함

짐바드로 교수는 이후 그의 저서에서 당초 실험 목적을 망각하고 자신이 연구진이 아닌 진짜 교도소장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동료 교수가 찾아와서 짐바르도 교수에게 이 실험의 독립 변인이 뭐냐고 질문하자,
짐바르도 교수는 “지금 나는 교도소 내부 질서를 유지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습격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렇게 한가한 학술적인 질문을 받아야 하냐?”며 투덜됌.

폭동 이후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에게 물리적인 압력과 더불어 심리적 압박을 사용하기로 협의했다.
ID 번호 세기를 수감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이용했으며 틀린 자에게는 평소보다 더욱 오래 기합을 주는 등의 신체적 고통을 주기도 했다.
악화되는 위생상태를 이유로 수감자들의 생리현상을 제한했으며, 그들의 변기통을 비울 수 없게하는 벌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엄격한 감옥에서는 보물이었으며 교도관들은 매트리스를 뺏어서 콘크리트 위에서 재우는 등의 벌을 주기도 했다.
몇몇 수감자들은 벌거벗은 채로 다니도록 강요받기도 했으며 남색(男色)을 흉내내는 등의 성적 모욕을 받기도 했다.


3일차 - 가족면회 그리고 나가는 자
교도관과 수감자들은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시간을 가졌다.
짐바도르 교수와 연구진들은 방문자들이 우리의 교도소의 상태를 보고 이 실험을 저지할 것 같아 매우 걱정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교도소 환경을 즐거운일 처럼 보이도록 조작했다. 수감자들을 씻기고, 면도를 시키고, 특별한 저녁 식사를 제공했으며, 구내 전화로 음악을 선 보이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하는 실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게 했다.

1. 방문자 면회가 있는 날.
2. 짐바르도 교수와 교도관들은 교도소의 치부를 외부인들에게 숨기려는 교도소 직원 심리 상태가 되어 있었다.
3. 교수와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에게 두 차례의 폭동으로 엉망이 된 실내를 청소시키고, 식사를 많이 주면서, 가족들에게 실험에 대해 좋은 말만 하도록 암묵적인 요구를 함
4. 수감자들은 이미 적극적인 저항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수감자로 여기고 있었다.
5. 수감자들의 부모가 문안을 왔고, 한 부모는 자기 아들을 꺼내려고 하였으나, 짐바르도 박사는 이를 저지했다.

4일차 - 가톨릭 신부의 방문 & 현실과 혼동
몇몇 수감자들이 탈옥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공무원들은 짐바르도의 실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1. 수감자들의 가톨릭 신부와의 면담이 있었는데,
2명을 제외한 9명이 자신의 이름아닌 수감자 번호로 자신을 소개했으며, 교도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간청했다.
2.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실험을 그만두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단 3일만에 완전히 수감자의 심리 상태가 되어 있었다.
3. 수감자들은 거의 모두 초췌하고, 우울한 순종상태, 심각한 정신 건강상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819번 수감자는 유일하게 신부와의 면담을 거절했다.
그는 그동안 식사를 거부했고, 아파보였으며 카톨릭 신부가 아닌 의사와의 면담을 원했다
결국 그는 그의 수감실에서 나와 신부 그리고 연구원과 면담을 했고 짐바르도 교수와 연구진들은 면담을 토대로 그를 어느 병원으로 데려가야할지 토의를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면담실에 서있던 819번은 자리에 주저 앉으면서 흐느끼듯이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다른 교도관과 수감자가 먼저 봤고, 곧바로 모든 수감자와 교도관들이 알게됐다.
짐바드로교수는 816번의 쇠사슬을 풀어주면서, 함께 교도소 건물 밖 정원에서 쉬다가 병원에 갈 것을 제안했다.
그 순간 교도관을 시작으로 수감자들은 외쳤다.
"prisoner # 819 is a bad prisoner."
prisoner # 819 is a bad prisoner 라고 외치고 있는 피실험자들 영상
짐바드로 교수는 걷잡을수 없이 흐느끼는 819번을 데리고 외침을 들을 수 없도록 방으로 데려갔고, 이곳을 떠나자고 말 했다.
하지만 819번 수감자는 나쁜 죄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여기를 나갈 순 없다고 흐느끼며 거절했다.

짐바드로 교수는 819번에게
"너는 819번이 아니라 (실제이름) 이다. 그리고 나는 심리학 교수 짐바드로다. 나는 교도관이 아니고 여긴 진짜 감옥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실험일뿐이고, 저들은 다 너와 같은 학생일뿐이다. 여길 나가자"
819번 수감자는 울음을 그쳤고, 악몽에서 깨어난 소년과 같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Okay,let's go ."

4. 이 상황이 실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수감자는 단 2명.
가석방 신청이 시작되었다. 돈 안내고 실험을 종료할 수 있었으나, 수감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보석금을 내고라도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교도관 역활을 맡은 사람들은 아무도 가석방 신청을 하지 않았다. 가석방은 무시되었고, 교도소의 분위기는 악화되어 갔다.
짐바르도는 모든 금전적 보상을 잃은 후에 그들이 실험에 참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뿌리 깊숙이 감옥에 흡수가 되었으며 그들 스스로를 수감자라고 생각했으며 그들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5일차 - 실험 종료
교도관 역의 피험자들이 수감자 역의 피험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성적학대 를 포함한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수감자들의 결속력을 깨기위해 교도감들이 하는 교란 작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점점 역활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로 들어온 수감자인 #416이 다른 수감자들에 대한 행태를 보고 걱정을 표했다. 교도관들은 이러한 반항에 응했다. 그가 단식 투쟁을 한다면서 소세지를 먹기를 거부 했을 때 교도관들은 그를 방에 가두었고 이것을 독방 감금 이라고 말했다.
교도관들은 #416이 독방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감자들의 담요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물론 모두 거절했다.

피험자의 부모들과 동료 교수가 실험을 그만 둘 것을 요구하였다.
짐바르도의 여자친구 크리스티나 마슬락이 이 실험에 초대 받았을 때 감옥의 엄청난 실상을 본 후에 당장 이 실험을 그만두라고 짐바르도에게 얘기했으며 짐바르도는 실험을 끝냈다.
실험 종료 이후
짐바드로 교수는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을 모아 꾸준한 대화의 장을 마련했으며, 피험자들의 회복을 도왔다.

결론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14일로 예정되었던 실험을 1971년 8월 20일에 6일 만에 끝났습니다.
“개인의 자질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적절한 아니 부적절한 상황적 조건만 형성된다면 말이다.
썩은 사과가 썩은 상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썩은 상자가 썩은 사과를 만드는 것이다”

썩은 상자, 즉 억압과 피억압의 요소를 지닌 ‘교도소’라고 하는 구조적 문제(상황)가 평범한 이들을 폭력에 매몰된 ‘썩은 사과’로 만들었다는 게 실험에 대한 짐바르도의 분석 결과인 셈이다.
이는 폭력을 단순히 개인적 자질의 문제에 국한시키거나 기껏해야 자라온 환경 정도만을 고려했던 기존 시각에 매우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교도소)실험이 끝난 후 우리는
핵심적인 질문이 제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누가 무엇이 그 일이 그런 식으로 발생하도록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이다.
행동의 배경이 되는 상황을 설계하고
유지하는 힘을 가졌던 자는 누구였나?
그렇다면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가지고 있을까?
-필립 짐바르도-
자료 및 영상
감옥실험에 관한 공식사이트
http://www.prisonexp.org
TED 짐바르도 교수 - 인간은 어떻게 괴물 혹은 인간이 되는가?
https://www.ted.com/talks/philip_zimbardo_on_the_psychology_of_evil?language=ko

양이 상당히 많지만 그 전 주제보단 자료도 많고 이후 번져나간 이론도 굉장히 많은 실험입니다.
추후 짐바르도는 감옥실험 자료를 토대로 2004년 미군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의 재판에서 전문가 증인으로 출석 및 참고 자료를 제출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루시퍼 효과" 를 출간합니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사건
- 이라크 최대의 정치범 수용소로, 후세인 시절부터 악명이 높았다.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 이후, 처참한 인권 유린의 현장으로 이슈가 되었다. 2014년 4월 15일 폐쇄되었다.
-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례로 인간피라미드, 나체로 인권 유린 등이 있다.
* 루시퍼 효과
- 루시퍼는 타락한 천사로 모든 악의 근본, 즉 악마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루시퍼이펙트에 의하면 상황과 시스템이 인간의 양심과 이성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개인과 사회적 책임마저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언제든 실험을 중단하고 나갈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심화된 순간에도 나가지 않는 점이 크게 기억에 남습니다.!
영상이 하나만 업로드 되는지 몰라서 여러개를 올리려 했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하나만 올립니다ㅠㅠ.
더많은 영상과 실험 과정을 짐바도르 교수 입장(방관자입장)에서 보고싶은 분들은 공식 사이트로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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