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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하면 인현왕후, 희빈 장씨, 숙빈 최씨가 유명하지.하지만 세 여자 모두 숙종에게는 패자야.숙종은 왕비와 후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걸로 유명한 왕이야.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숙종도 남자인데 모두 이용만 했을까?그래서 이번에는 숙종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마음을 준 여자를 찾아봤어.
우선 숙종의 왕비와 후궁들을 찾아봤어.
숙종 (1661 ~ 1720) 정비: 인경왕후 김씨 (1661 ~ 1680)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 (1667 ~ 1701)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 (1687 ~ 1757) 후궁: 옥산부대빈 장씨(=희빈 장씨) (1659 ~ 1701)화경숙빈 최씨 (1670 ~ 1718)명빈 박씨 (? ~ 1703)영빈 김씨 (1669 ~ 1735)귀인 김씨 (1690 ~ 1735)소의 유씨 (? ~ 1707)
숙종은 1720년에 사망했어.숙종의 여자 9명 중에서 숙종 사후에도 살아 있는 여자는인원왕후, 영빈 김씨, 귀인 김씨야.
인원왕후는 인현왕후 사후 간택된 왕비야.하지만 숙종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고, 이런 저런 얘기도 없어.영빈 김씨는 숙종이 아주 미워했던 후궁이야.귀인 김씨는 궁녀 출신인데 승진, 사망 기록 외에는 그 어떤 기록도 없어.
*참고로 숙종의 후궁들은 승진이 많았는데 인현왕후 복위, 단종 복위, 인원왕후 간택 등의 이유였어.
이제 남은 사람은 명빈 박씨와 소의 유씨야.
명빈 박씨는 궁녀 신분으로 승은을 입고 10여 년이 지난 1698년에 회임을 해서 종4품 숙원이 됐어.1699년에 연령군을 낳았고, 1702년에 정1품 명빈이 됐어.그러나 1703년 음력 7월 15일에 세상을 떠났어.명빈의 장례를 치를 때, 친척 박동지가 "관으로 쓸 목재가 구차하다"고 호소를 했어.그러자 숙종이 관련자들을 모두 체포 하라는 명령을 내렸어.그리고 "시간 내에 제대로 된 목재 못 구하면 사대부에서 찾아내라"고 했어.또 명빈의 제사를 받들 아들이 아직 아명 밖에 없고 군(君)의 봉작을 못 받아서 문제가 생겼어.그러자 숙종은 6~7세에 군을 봉작하는 관례를 깨고 5살인 아들을 연령군으로 임명하고 이름도 지어줬어.
소의 유씨는 궁녀 신분으로 숙종의 승은을 입고 1698년 종4품 숙원으로 책봉 됐어.숙종은 유씨를 위한 땅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쏟아 부었어.근데 당시 국고가 거덜나고 백성들의 생활이 힘들 때였어.하지만 숙종은 유씨를 위한 일이라고 괘념치 않았어.유씨는 1702년에 정2품 소의로 승진 했어.하지만 5년 뒤, 1707년 음력 4월 8일에 사망해.유씨는 숙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어.숙종은 유씨의 장례를 국장 다음 격인 예장으로 하겠다고 했어. 근데
예장은 왕세자(16세기 이후부터), 세자빈, 왕자, 왕녀, 종친, 종2품 이상 왕의 사위,종1품 이상 내명부&외명부&문무관, 공신에게만 허락 되는 장례야.물론 예장도 왕세자 내외, 왕자, 왕녀 등 신분의 높낮이가 있어서 1등, 2등, 3등 이런식으로나뉘어서 치러지고는 했었어.
유씨는 정2품이라서 예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데 숙종이 강력하게 추진해서의빈부 3등 격 예장으로 장례를 치렀어.
명빈 박씨와 소의 유씨의 장례가 숙빈 최씨와는 완전히 상반 돼. 숙빈은 정1품 신분으로 죽어서 예장으로 치러졌지만, 묘지에 있어서 숙종이 굉장히 반대 했었어.숙종은 숙빈이 묻힌 자리 a는 이래서 싫고, b는 왕족이 묻혀 있는 자리라서 싫고c는 후궁이 여기 묻혀도 되는 신분이냐 해서 싫어 했거든.
숙종이 인경왕후, 인현왕후 등 9명의 여자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명빈 박씨와 소의 유씨는 그래도 변함없이 마음을 줬다고 봐.특히 소의 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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