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구치 모모에 山口百惠 1959년 1월 17일생 (현 58살)
7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아이돌.
일명 '전설의 아이돌', '불세출의 가희'. 은퇴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가요계의 3대 가희로 회자되고 있다
그녀의 이름으로 기록한 매출은 500억엔이 넘는다는 일명 엔박스.
마루코는아홉살에서 마루코가 좋아하는 바로 그 모모에언니.
1973년 중학생의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
1980년. 단 7년간의 연예계생활로 최정상 인기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함께 과감하게 은퇴를 하여
다시는 미디어노출이 없었기 때문에 말그대로 전설이 됐음.

모모에는 한국계로 알려진 가정에 불성실한 아버지와
병드신 어머니와 동생(왼쪽사진)과 살며 어릴적부터 실질적 가장노릇을 함

중학생이던 1972년 오디션 프로그램인 <스타탄생>를 통해 준우승을 차지. 연예계에 데뷔함

<스타탄생> 출신인 공통점이 있는 모리 마사코, 사쿠라다 준코와
"꽃의 중3 트리오"로 활약
이때당시만해도 셋중에 가장 인기가 저조했음

그녀의 빵 뜨게 된 곡은 어느 여름의 경험"(ひと夏の經驗)
"당신에게 여자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게요" 같은
야시꾸리한 가사 때문에 학부모 단체가 반발하여 한 번 금지당했다고함
이후, 청순한 아이돌이 성적 이미지가 담긴 노래를 부르는 것을 "푸른 성노선"이라 말하기 시작
무뚝뚝한 표정으로 야한가사를 부르는 컨셉때문에 대담한 이미지가 생겨났지만
정작 이 노래가 히트했을 무렵, 잡지에서 작정하고
"여자아이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하고 물어댔음에도
모모에는 그때마다 항상 "진심"이라고 대답
후에 자신의 자서전에서 사무소에서 푸른성노선을 시켜서 했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싫었다고 말함.
어쨌든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대히트를 하고 여러 신인상과 첫 홍백가요제 출전을 얻게 됨.

이후에 인기가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노래도 진지하고 깊어졌는데
선정적인 가사보다 남녀간의 심리, 어머니에 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노래하며 점점 일본의 전설로 자리매김함
+ 모모에의 곡중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곡
플레이백! プレイバックPart2 홍백가요제 피날레 무대영상
무려 19살 시절 포스 ㄷㄷ
그렇게 인기의 절정을 누리던 모모에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같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됨

7살 연상. 큰 키를 가진 꽃미남 영화배우였던 미우라 토모카즈

둘이 처음 만난 것은 도쿄 세타가야에 있는 공원이었다고함 (모모에의 자서전 '푸른시간')
모모에가 15살, 첫 주연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원작의 "이즈의 무희"
영화사에서는 남자주인공에 신인을 기용하기로 했고
이 신인남자배우는 누나가 가수였고,
덕분에 방송국에 견학 비슷하게 왔다가 캐스팅됨
그 남자랑 광고 때문에 키누타 공원에서 로케하게 됐는데
모모에의 그 남자에 대한 첫인상은
"파란 운동복을 입고 있고 건강해보여서, 공원에서 연습하고 있는 선수인 줄 알았다" ㅋㅋㅋ
진짜 우연히도 그 해 9월에 "이즈의 무희" 오디션을 본 15000명의 배우 중에 1사람이 발탁되었고
그 파란 운동복의 남자가 그 사람이었음. 그 사람이 바로 미우라 토모카즈.

당시 일본은 남자 아이돌 혹은 연기자와 짝을 지어 여러편 함께 출연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우결 같은 느낌)
모모토모커플은 영화 , 드라마, 많은 광고에도 출연함.
모모에 주연 영화 13편 中 무려 12편에 미우라 토모카즈와 연인으로 나옴ㅋ
이 둘은 "골든콤비"로 불리면서 시청률을 책임지게 됨

+ 참고로 미우라토모카즈는 아내와 다르게 지금도 배우로활동함.
일드 <유성의 인연>에 나오는 형사 아저씨...

이건 모모에 자서전에 등장하는 둘의 일화중 하나인데
요즘 아이돌들처럼 앨범내고, 음악 방송 서고, 각종 로케 뛴 뒤, 영화까지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
모모에가 지쳐서 차에서 자고 있는데 누가 작은 소리로 말하는 걸 들음.
"자게두세요.. 불쌍하게도... 지쳐있으니까요.."
알게된지 얼마 안 된 미우라 토모카즈가 신경써주는 목소리였다고 함.
그러고는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그 말이 가슴 깊이 남았다고...

후에 17살이 된 모모에에게, 미우라오빠는 자기 사진이랑 전화번호를 쓴 편지를 줌
모모에는 이전에 연애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데다가
너무 빅스타가 되버려서 조심스러웠다고 함
시간이 좀 더 지나서는 손잡고 영화도 보러감ㅋㅋㅋ
근데 불행히도, 영화사에서는 슬슬
남자 주인공을 바꿔야 겠다고 생각해서 새로운 배우를 짝으로 하려고 함.
그런데 2천명 가량의 팬이 편지에 전화로 둘은 "이상의 커플"이니까 찢어놓지마라!!! 하고 쇄도해서 영화사가 포ㅋ기ㅋ
어느 감독말에 의하면 미우라를 남자주인공으로 시켜주지 않자
모모에가 의상이 맘에 안든다, 뭐가 맘에 안든다 트집을 잡으며 심술을 부렸다는 귀여운 에피소드도있음
그 이유를 감독은 나중에야 알았다고...
이것부터도 굉장히 잘어울리는커플ㅋㅋㅋ
그러던 어느날,
제국극장에서 리허설을 하던 모모에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선언을 했고,
상대를 밝히지 않았는데, 연단 밑에 있던 팬들이
"미우라 토모카즈!"하고 외쳤다고 함ㅋㅋㅋ
망붕의 승리였던걸까..

10월 20일, 리사이틀에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우라 토모카즈 씨입니다."하고 발표를 똭!
미우라 토모카즈도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습니다"하고 발표함.
1980년 3월 7일에는 도쿄 프린스 호텔에서 둘이 결혼발표. 그리고 모모에의 은퇴발표.
"저는 어리광부리는 제 멋대로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일을 전면적으로 은퇴하게 해주세요." 하고 은퇴선언.
소속사에서는 빠르게 은퇴 날짜까지의 레코딩, 콘서트 일정을 발표함.
각 방송국에서는 거대한 은퇴 기념 방송 준비 시작.
전국의 모모에 팬들이 쇼크...
마루코에 나온거 처럼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모에의 팬이었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뉴스에서 보도함!
모모에는
"일을 그만두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21년의 인생 중, 처음으로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되어서"라고..

무도관 파이널 콘서트에서
さよならの向う側 (안녕의 저 편에)를 흰 드레스 차림으로 울면서 마지막으로 부른 후,
"나의 제멋대로임을 용서해줘서 고마워. 행복하겠습니다." 하며
마이크를 무대에 놓고서 떠나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유명한 장면
마이크를 무대에 내려놓으며 가수로서의 마지막을 알리기도했음)
정식 은퇴는 10월 15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당신은 은퇴에 미련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상냥한 미소로
"네.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함.
이리하여 21세의 나이로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
7년간 싱글이 31 작품, 1622만장 판매. LP판이 45장에 판매량이 434만장.


1980년 11월 19일 드디어 결혼에 골인

결혼하고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많은 파파라치와 수상한 자의 자택 침입,
자동차 면허를 따러간 모모에의 사진을 찍기 위한 기자들의 추격전으로
너무나 힘들어하니까 미우라 토모카즈가 인권옹호국에 가서 호소할 정도였다고함
그 후에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첫 애 운동회에 갔다가 너무 많은 기자들이 몰려 아이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모모에가 펑펑 울었다고...
왜 아예 미디어 노출을 안하는지 이해가 된다 ㅠㅠ

미우라는 자기 마음 안에 "어기면 벌을 받을 일" 세 가지가 있는데
1. 51세에 시작한 금연을 지키기
2. 비겁하게 살지 않기
3. 바람피지 않기
누구보다 부인이 최고라고 했다고함.
거기에 50대때 (현재는 60대) 작품발표회에서도 부인을 만난건 기적이다 하고 염장지름...
여기에 모모에는 자기가 질투가 정말 많고, 만약 남편이 죽으면 따라갈지도 모른다고 자서전에 씀.
측근들이나 방송에서 종종 나오는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서 애들이 다 큰 지금까지도 싸워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고
자주 온천여행이랑 노래방에 가족끼리 가기도 하고,
노래방에 못가면, 집에서 노래부른다고 함.

2005년 찍힌 근황사진
애들이 다 큰 지금 (현재 장남은 싱어송라이터, 배우, 가수인 미우라 유타로, 둘째아들 역시 배우인 미우라 타카히로)
둘이 유럽여행도 다녀왔다고! 완전 잉꼬부부
이상의 부부 투표에서도 2015년 기준 10년째 1위를 차지


장국영
" 인기 절정에 있을 때 은퇴를 결심한 것은 멋진 결단이었으며
나도 그녀와 같이 은퇴하는 것을 동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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