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택시운전사'가 열풍이라서 5.18민주항쟁의 상황이 다시 부각되는데, 그때 당시 우리나라는 503과는 다르게 대놓고 신군부를 앞세워서 독재 및 공포통치를 자행하였고, 언론을 철저히 검열해서 국내언론은 5.18의 참상을 보도하지 못하고, 5공 시기 동안 이것은 계엄 하에서 불순분자에 의한 소요사태(폭동)으로 간주되어져서 광주사태로 불리다가 6공(노태우정권)에 이르러 민주화합추진위원회를 통해 민주화운동으로 정정되고, 이는 문민정부에 이르러 공식화되게 됨.
언론탄압으로 고통받던 국내언론과는 다르게 당시 외신들은 보안사 및 안기부의 서슬퍼런 감시를 피해서 은폐된 5.18 당시 광주의 실상을 취재하는데 성공해서, 국제사회에 5공의 민낯을 까발리고 나아가 외신이 취재했던 영상들은 5공을 끌어내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함.
글이 너무 길었고 이제는 영상과 사진으로 대체~
해당영상은 당시 5.18을 보도한 CBS(미국), ABC(미국), ARD(독일)뉴스 영상이고, 이외에도 많은 외신들이 당시 상황을 보도하였다.

이는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당시 광주의 상황(5월 24일)을 보도한 신문인데, 크게 추려내자면 계엄군의 광주시내 진입, 강경파의 제압, 특수부대의 24명 즉살설, 김재규 前중앙정보부장의 처형 등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쯤되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는데, 과연 국내의 언론보도는 어땠는지 의문이 일만하다. 우선 국내보도는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일단 보도라도 할려고 시도라도 한 경우, 자의 반/타의반으로 보도자체를 하지 않음, 대놓고 친정부보도를 함...이렇게 나뉨


전남매일신문에서 광주의 상황을 알리려 하였으나(上), 신문사 간부측에서 개입하여 그대로 나가면 언론사의 폐지, 직원일동들의 신변불안 등을 구실로 좌절되고 계엄사의 검열을 거쳐서 발간(下)되게 된다.

이는 5월 24일자 조선일보인데, 폭도가 시민과 군경을 다치게 한다는 허위사실을 만들어서 왜곡보도를 하고 있음.
신문도 이 정도인데 과연 TV보도는 어떻는가 하니...
역시나 왜곡보도(00:57 참조)를 하고 있고, 이러한 왜곡보도는 5.18에서 그치지 않고
대놓고 찬양하고 미화하기 그지 없는 뉴스(일명 '땡전뉴스')를 보도하며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게 된다.(혐오유발 영상이므로 안 봐도 됨...어떻게 전두환 이미지가 포장되고 미화되었는지 궁금하면 보기를 추천!! / 부모세대들이 옛날 우리나라 언론태도는 지금 북한하고 별반 다를게 없다는 말이 확 공감되게 만드는 영상; 아나운서가 북한처럼 명령하는 말투가 아닌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에휴)
하지만 이런 왜곡보도와 서슬퍼런 독재도 오래가지 못하는게, 훗날 前대통령(故노무현/16대 대통령) 및 現대통령(문재인/19대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5.18 녹화영상을 당시 공안정국의 눈을 피해 몰래 유포함으로서 5.18의 참상을 전국적으로 알게 하고, 이는 5공을 끌어내는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내게 됨.
결론은 지금은 전두환이 시대를 잘 활용해서 사면받고(지금이라면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당시 국민여론이 사면쪽으로 기울긴 했음...마치 지금하고 10년전하고 503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보면 알 거라고 생각 됨) 생각보다 너무 잘살고 있어서 울화통이 터지지만, 결국 '닭의 모가지가 비틀어져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런 사실을 목숨걸고 취재해주신 국내외 기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음.
P.S. : 덧붙여서 5.18 민주항쟁 당시 당시 신군부 수뇌부(하나회일당)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피해자라고 생각됨. 그 당시 신군부에서 전군 및 타 조직 장악이 덜 끝나서 그런지 몰라도, 군 내부에서도 지휘권 충돌문제로 마찰이 있었고
{ex)당시 육군참모차장 황영시(★★★/親전두환 부역자 훗날 대장으로 진급)가 육군기계화학교장(★★)에게 탱크로 광주를 밀어라고 지시했으나, 지휘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절해서 마찰 발생, 또한 정당한 지휘체계를 벗어난(신군부의 꼭두각시 노릇) 공수부대측의 독단행동으로 아군끼리 소규모 교전발생(향토방위군 vs 11공수)}
진압하는 입장으로 공수부대와 같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방어진압을 우선하고, 죄 없는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고', '잡혀온 시민들에게도 식사를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가혹행위하지 마라.'는 지시를 한 당시 전남 경찰국장(故안병하 경무관)의 지휘아래 시민과의 충돌은 별도로 없었음. 물론 당시 신군부의 지침과 정면충돌하였기에 사건 도중에는 경찰간부들이 공수부대들을 말리다가 구타당하는 사건도 있었고, 5.18이 종결되고 안병하 경무관은 계엄사로 끌려가서 고문받고, 강압에 못이겨 사직한 후 얼마못가서 고문휴우증으로 사망...물론 지금은 명예회복함
또한 당시 군인들의 일반적인 인식 - (박정희)대통령이 죽고 나라가 혼란하니 전쟁의 위험이 있고, 그러니 빨리 이런 소요를 진압해야 한다는 단순한 안보 논리만을 믿고 있는 형편 - 을 신군부가 악용하여 '대학생들은 모두 좌경 분자들이고 시위 조기 진압과 정국의 안정이 시급하며 좌경 분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정신교육을 되풀이하여 적개심을 주입하고 세뇌를 하는 한편, 봉급 및 수당인상이라는 당근을 주면서 알게모르게 신군부의 친위대로 길들여짐. 이는 당시 공수부대 소속 사병들이 왜 그토록 가혹하게 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음.
(1980년 5월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진압군으로 광주민주화 현장에 참여한 이경남 목사의 증언)
아이유브(직접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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