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도가 희미한 세상은
언제나 현실감이 없었다.
그저 시간에 떠밀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어제 본 것과 비슷한것들을 보고
비슷하게만 흘러가는 일상.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세상은 온통 화려한 색색들로 넘쳐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곱고 고운 색들로 칠해진
너를 봤다.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너를 , 봤다.
< 뮤즈 >

물빛으로 본 세상은
경계가 흐릿해 어디 뾰족한 곳 하나 없어.
그 날카로움에 행여 누가 아프기라도 할까
작은 모서리 하나 없이
다정하기만 한데도
그곳은. 섧도록 슬퍼서
수심 깊은 어느 곳 홀로
살기위한 허우적거림이 숨이 차는,
차마 질러내지 못한 소리가
공깃방울로 변해
뽀그르륵 올라가는 그곳은.
네가 날 가두어 둔 곳이야.
< 눈물방울 안>

스무살 - , 그 벚꽃잎 같은 나이는 충분히 화려할 나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스무살은 언제나 누군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언제나 애달아 있던 나는
화려하기보다 처량했고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이 때문에 비 맞은 생쥐마냥 안쓰러웠다.
스무살. 환상에 빠진 나는
내 스무살은 전부 너라고 말할만한 사랑을 하고 싶었고,
열정적인 사랑에 휘둘려 자신을 내던져 봐도 좋을거라 여겼다.
그리 격렬히 사랑하고 싶었다.
<스무살>

스물 둘,
내가 생각한 그 나이는
좀 더 성숙하고 능숙한 나이였다
어느정도 배웠고, 어느정도의 소신이 있는.
가고 싶고 하고싶은 길이 확실한,
싱그런 여름날 아침의 햇볕처럼 힘이 넘치는 그런 나이.
허나 나는, 무언가에 발목을 덮석 잡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정처없이 길을 걷는 불안함과
무엇인지 모를 무엇을 준비해야만 한다는 막연함.
서글프리만치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간관계와
힘을 빼면 고꾸러 질 것만 같던 현실.
내 스물둘은
여전히 방황하고 여전히 비틀렸고
여전히 외로웠다.
< 스물 둘 >

나이를 먹어간다는건
그저 늙어 간다는게 서럽다는 말은 아니야.
그보다는 넘쳐나는 추억에 대한 애틋함.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한 애도.
어쩌면 생각만으로도 웃을 수 있는 사진의 한 장면.
기쁘지 않니, 그렇게 그렇게 한장한장 서서히 늙어가는거야.
내 어머니의 마음을 깨달아 보며, 혹은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아 가며 그렇게.
세월을 따라 늙어 갔으면 좋겠어.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고 , 흰머리가 늘어가겠지만
그에따라 우리 특유의 분위기 또한 나이를 먹어가겠지.
그건 분명 그저 서러운 이야기만은 아니야.
어쩌면 그렇게나 바라는 미래.
또는 그렇게 빛나야 할 내 나날들에 대한 다짐.
아름다운 네 얼굴이 나이가 들어가는 걸
너는 무척이나 싫다고 말했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도 분명 아름다울 너를 네 곁에서 지켜보고 싶어, 무척.
< 훗날 >

가시지 않는 흥분에 들떠
세상이 온통 제 것 같을 적도 있었다.
곱게 햇살이 걸쳐진 자리
가만히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환호소리가
환청마냥 귀를 맴돌기도 했다.
몰락한 영광.
흘러가버린 젊음.
세상은 유행지난 옷처럼 너무나 쉽게
전성기를 지나친 히어로를 잊었다.
가만히
새롭게 떠오르는 히어로를 들여다 본다.
늙은 히어로의 젊은 날이 저러했을까.
제 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 지나갔음을 실감하며
늙은 히어로는 자신에게 남은
내일은 생각한다.
< 늙은 히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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