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글쓰기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자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워낙에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 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강연한 걸 캡쳐해봤음

처음 해보는 거라 발캡쳐주의

우리는 왜 아직도 글을 쓰고 있을까요

이제 그만 써도 되잖아요, 그죠?

수천 년간 인간은 글을 써왔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쯤이면 글을 안 쓰고 살아도 될 것 같잖아요?

21세기가 된 지가 벌써 십 년이 지났고요

우리의 주위를 끄는 수많은 게임 등 얼마나 재밌는 게 많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글을 씁니다

저를 비롯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어요

글을 쓴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일단 책상에 앉아야 돼요

책상에 앉아서 허리를 펴고

한동안 불편한 자세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입니다

어느 정도 보상이 있으면 좋겠지만 보상도 별로 없어요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어쨌든 글을 쓰고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더 보상이 없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고행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힘든 일이죠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마감에 시달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광대 김종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직업적인 작가들의 수명은 대단히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오래 사는 직업은 무엇일까요?

제일 오래 사는 직업은 종교인으로 나타났습니다

2위는 마음껏 하고 싶은 말도 하고 거짓말도 잘 할 수 있는 정치인입니다

연예인도 꽤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막 발산하며 살잖아요?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꼴지에 작가와 저술가가 61세로 제일 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고요

제 바로 위에 언론인, 기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자한테 얘기했더니 그 기자가

‘종군기자가 포함되어 있을 거야’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작가는 굉장히 빨리 죽는 직업이라는 것이

연구 결과로 나타났는데요

일본의 연구 결과도 이와 같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만 특수한 현상인 줄 알았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위험하다

즉, 글쓰기는 건강의 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한의 한계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글을 썼습니다

1998년 11월 8일, 세계적인 패션 잡지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3주만에 깨어나긴 했지만 전신마비가 왔어요

그리고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어요

발가락도 까딱할 수 없었고요

왼쪽 눈꺼풀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은 자기가 평생동안 해온 일을 합니다

글을 씁니다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규칙을 정해 글을 받아적습니다

이 사람이 20만 번 이상, 15개월 동안 글을 써서 책을 냅니다

그는 이 책이 출간된 지 18일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잠수종과 나비란 이런 겁니다

이 사람은 육체라는 것에 갇혀 있죠

영혼은 멀쩡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죠

잠수종이란 건 옛날에 잠수할 때 쓰던 종 모양의 기구를 말하는데요

잠수종 안에 갇혀 있던 영혼이 죽음과 동시에 나비가 되어 날아간 것이죠

이 사람 뿐만이 아니라 혹한의 시베리아 수용소를 견뎠던 솔제니친도 아우슈비츠에 들어갔던 심리학자 빅토르 프랭클도 글을 썼습니다

그 밖에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곳을 겪은 사람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는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확보해주는 것이죠

전쟁터에서도 무수한 글이 쓰여졌습니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 등의 작가들은 스페인 내전 등에 참전했던 경험을 가지고 『카탈로니아 찬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을 써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여러 글이 탄생했습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같은 작품 역시 감옥에서 쓰여졌습니다

마르코와 루카, 마태와 요한 등 예수의 죽음 이후에 구심점을 잃은 제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도피하는 중에도 글을 썼습니다

직업은 모두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글을 썼습니다

그들이 쓴 복음서가 나중에 세계 종교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형벌을 당하고도 평생동안 사기를 썼습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 끔찍한 형벌을 당하고도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엄혹한 환경에서도, 그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도 절망의 순간에 글을 씁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마지막 자유, 최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을 쓸 수는 있어요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글을 쓰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는 파괴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살아 있어요

죽지 않은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신체적, 정신적, 육체적, 물리적 등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는 것이죠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을 늘 경계했습니다

작가는 무서운 인간들이에요

글을 쓴다는 것은 만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좋은 상태에 있죠

그러니까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은 어딘가에 갇혀 있다면 글을 쓰기 시작할 겁니다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 우리가 변화하기 때문이에요

에베레스트에 오른 힐러리 경은 어떻게 에베레스트에 올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한 발짝 한 발짝씩 올랐죠.” 이것이 진실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 우리 자신은 변화합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요

학생들이 스무 명 정도 모여서 둥그렇게 앉아서 글을 씁니다

제가 그날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쓰라고 했던 것이 뭐냐하면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는 글이었어요

다 똑같은 학생들이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는 글을 써야 하는데 그 다음 내용에는 뭐가 나오겠어요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나오겠죠

예를 들면 중학교 때 나를 왕따 시켰던 너를 이제는 용서한다는 류의 글을 써야 하는 거예요

학생들이 두 번째 문장을 쓰고 세 번째 문장을 쓸 때쯤 되면 모두가 정말 몰입한다는 것을 제가 느낄 수 있었어요

몇 분 안 되는 사이에 학생들은 자기가 겪었던 가장 끔찍한 순간으로 그냥 뛰어들어가는 거예요

단 몇 줄 썼을 뿐인데 말이죠

어떤 학생들은 쓰다가 울면서 뛰쳐나가요

쓰다보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어떤 학생은 끝났을 때 저에게 와서 못하겠다고 말해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애를 아직 용서할 수 없어요.’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는 글을 썼지만 끝은 용서 못한다가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괜찮다.’

저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에요

학생들에게 용서를 가르치기 위해서 글을 쓰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르친 것은 글이 가진 놀라운 힘이에요

단 몇 문장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이 겪은 과거의 경험을 대면할 수 있어요

다른 걸로는 어렵습니다

글을 몇 줄 쓴다는 것은 과거라는 어두운 지하실의 문을 확 열어젖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게 합니다

그런데 왜 지하실 문을 열어야 할까요?

열지 않으면 안 될까요?

이런 행위가 꼭 필요할까요?

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써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변화가 생기고요

이것이 축적됩니다

그리고 제 아무리 복잡한 감정이라도 언어에는 논리가 있습니다

말이 되게 써야 해요

주어가 먼저 나오고 순서에 따라서, 문법에 맞게 써야 합니다

이런 논리적인 과정이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잇던 트라우마라든가 어두운 감정들은 숨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죠

이것을 언어화해서 쓰는 동안 우리가 그 감정 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논리를 가지고 내려다보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좀 더 강해지고

마음 속의 어두움과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가진 자기 해방의 힘입니다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편견, 나약함과 비겁함이 글을 써 나가는 동안 사라지게 됩니다

이 강연을 시작하면서 작가들의 수명이 짧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작가들은 비록 수명은 짧지만 은퇴라는 것을 모습릅니다

전직 작가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그런 말은 없습니다

작가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대부분 인터뷰를 해보면 글을 쓰고 있다고 하거나 다음에 쓸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는 작가들이 대단히 많아요

정말 놀라울 정도예요

거의 많은 작가들이 예외 없이 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왜 그럴까 생각해봤어요

적어도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거나 실제로 쓰고 있을 때 작가들은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여유 있게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방법밖에 몰라요

글을 쓰는 동안 살아 있다는 것

아까 엘르의 편집장 얘기 해드렸죠?

눈을 깜빡여서 글을 쓰고 있으면 그 사람은 스스로 알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 자신이 죽음 앞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죠

제가 어떻게 죽을 지는 모르지만 죽을 때 뭘 하고 있을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아마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쓰고 있을겁니다

그런데 작가들만 그럴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입니다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죠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힘을 기를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게 되죠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자신이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저는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또는 가정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은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니에요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글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한 사람들은 여러분 혼자가 아닙니다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겁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일단 첫 문장을 적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 문장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아직도 글쓰기라는 것을 던져버리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정말 의미 있는 강연 같아서 가져왔어

김영하 작가는 워낙에 말을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목소리도 좋으니까 영상도 보는 걸 추천!

중간중간 농담도 있고 재밌는 포인트도 많은데 내가 그냥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적었어. 꼭 영상으로 다시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