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들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봄비 맞고
새순 트고
여름비 맞고
몸집 크고
가을비 맞고
생각에 잠긴다
나무는
나처럼
* 이창건 '나무'

깊고 깊은 산 속에
옹달샘 하나
맑고 맑은 물 속에
파아란 하늘
조롱박 하나 가득
물 마시면
입 속으로 들어오는
파아란 하늘
* 손광세 '옹달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밖에
* 정지용 '호수'

나 하늘로 돌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천상병 '귀천'

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기에
* 류시화 '잔 없이 건네지는 술'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 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 도종환 '어떤 마을'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