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엔 조회가 가능하다가 어떤 때엔 회원만 이용할 수 있다고 그러길 여러 차례 반복.
초대번호를 팔길래 샀습니다. 음, 생각보다 양질의 자료가 많이 없어서 조금 실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뭐, 아직 끝 페이지는 보이지 않으니 희망을 가져야겠지요.
월드컵 개막전을 보면서 맥주를 두 캔 마셨고 세 캔 째 마시며 등급업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평범했습니다. 아, 저는 이 평범함이 좋습니다. 늦잠을 잤고, 냉동실에 얼려둔 즉석밥을 해동해 먹었고, 목욕을 한 뒤에 카페에 가서 일을 하다가 운동을 했습니다.
헬스를 합니다. 한 삼 개월 쯤 됐네요. 아내와 함께 헬스를 합니다. 나이를 먹으니 재미 있던 것들이 재미 없어지고, 재미 없던 것들이 재미 있어 집니다. 아, 지금 강아지가 가려워해요. 닿지 않는 혀를 어떻게든 닿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안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음. 개라면 성기 쪽을 자유자재로 핥아서 가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게 정상일 텐데, 이 뚠뚠하고 다리 짧은 웰시코기는 그 정상이 참 어려운 종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일 물로 씻겨주고 있습니다. 간식도 거의 주지 않고 사료만 조절해서 먹이건만 비만이 됐습니다. 수의사 소견으로는 다이어트 사료를 평생 먹어야 한다네요. 하지만 아직까지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평생하는 것, 그 괴로움을 상상해보면 선뜻 결정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중성화 수술-너의 출산을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 너의 동의 없이 너의 자궁을 제거할게, 그 편이 너의 장수에도 이로울 거야-을 결정하는 데도 참 오래 걸렸었습니다. 거의 강아지가 세 살이 됐을 때에 수술을 했지요. 지금도 미안합니다. 호르몬이 중성화 되어서 다른 수컷 개들에게 인기가 없어요. 수컷들이 처음엔 호기심으로 킁킁 냄새를 맡지만 이내 우리 강아지의 곁을 떠납니다. 우리 개는 친구가 없어요. 엄마 아빠 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다이어트 사료를 평생 먹여야 된다네요. 그럼 이 개는 왜 살까요? 이 개의 실존은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우리 부부의 인간 자녀를 대체하기 위함일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개라는 맹목적으로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동물을 필요에 의해 계발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개발이 아닙니다. 계발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신이 없다고 믿으면서 스스로의 이성을 신의 자리로 옮겨놓고 있지요. 물론 전 신을 믿지 않습니다. 칼 세이건이 그러했듯 오만한 무신론자는 아니고 겸손한 불가지론자입니다.(칼 세이건이 그러했듯 속마음은 무신론)
어쩌다가 개 얘기로 넘어갔네요. 다시 저의 일상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물론 우리 겨울이도 제 일상이지만 아, 습관적으로 문단을 나눠버렸네요. 인터넷에선 그러는 거 아니라던데. 굳이 다시 합치진 않겠습니다. 백스페이스를 한 번도 누르지 않는 것이 이 글의 목표입니다. 삭제가, 교정이 없는 글의 내용은 경솔할까요, 진중할까요. 어디 지켜 봅시다. 일단 맞춤법은 많이 틀리겠다.
아이를 갖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 남편, 이 갖고 있는 어떤 트라우마(이 단어를 참 싫어합니다. 너무 나약하게 들려서요. 비슷하게 싫어하는 단어로는 힐링이 있습니다. 마법사도 아니고...) 때문이겠습니다. 물론 구구절절 제 과거를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예, 맞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개인에겐 끔찍하지만 대중에겐 너무나도 보편적인 상투. 클리셰. 주말 연속극에 심심찮게 나오는 뭐 그런 거죠.
뭐 그런 거죠, 하니까 커트 보니것의 제5 도살장이 생각나네요. and so it goes였나요? 원문이 뭔진 모르겠네요. 번역본만 봐서. 그 책엔 '뭐 그런 거지'가 한 70번 나올 거예요 아마. 나도 그런 식으로 가야겠다. 하여간 아빠가 된다는 그 신분의 변화는 참 무섭습니다. 아니지, 아니지. 이렇게 뭐 있는 듯이 설명할 게 아니지. 그냥, 어차피 부모는 아이에게 끔찍한 사람이 될 거라고, 아, 아니에요. 다시. 어차피 부모는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 몇 개 쯤은 안겨 줄 거고, 부모는 그거에 대해 남은 평생 미안해해야 하는 어떤 운명론적 역할론으로 맺어진 관계이지 않습니까.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쨌든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 싫어서 낳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울컥울컥 올라와요. "나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던지 "아무렴 어때, 난 그냥 그 꼬물대는 작은 생명체를 책임지고 싶어!"라던지 하는 충동이 말이예요.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죠. 흔들리는 거. 하여간
맥주를 네 캔째 땄습니다.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을 기념하며 타이거 맥주를 샀어요. 네 캔에 만원은 정말 좋습니다. 처음 이 기획을 만든 사람에게 무슨 상이라도 줘야하지 않을까요. 맥주 시장을 바꾼 선구자입니다. 수제 맥주집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도 다 그 분의 기획으로 시작된 대국민 입맛상승프로젝트 덕분 아니겠습니까. 누군지 모를 그 유통업계의 문익점에게 박수 한 번 줍니다. 짝짝짝 호우호우.
저는 처음 마신 외국 맥주가 코로나였어요. 레몬이 입구에 끼워진 코로나 맥주를 한 입 마신 뒤로 그 다음부턴 카스나 하이트를 잘 안 마시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또 몇 년 지나니 그것도 일종의 이미지 마켓팅이 아닌가, 일종의 사대주의가 아닌가 싶어서 다시 국산 맥주를 마셔보니 괜찮더라고요. 적어도 고기랑 함께 먹을 땐 그만한 게 없다고 느꼈습니다.
알콜중독이 조금 있었어요. 우울증과 함께 치료받으면서 거의 나았죠. 한창 우울할 때는 이틀에 젝 다니엘 700ml 한 병씩 마신 것 같습니다. 소주는 잘 안 넘어가서 또 꼴에 분수에 안 맞는 술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몇 달 살다가 어느 순간 심장에 칼을 갖다대고 있더군요. 그 다음 날부터 병원에 다녔습니다.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났고 지금은 운동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조금 힘들게 잠이 드는 평화로운 일상을 지내고 있습니다.
먹는 게 싫어요. 물론 맛있는 걸 먹을 땐 좋고 달콤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음식을 먹는 걸 귀찮아 해요. 욕심 같아서는 하루에 딱 한 끼만 먹고 싶은데 그렇게 살다간 살이 너무 빠지니까, 운동을 시작하고 부터는 근육을 키우려고 억지로 입에 쑤셔넣고 있습니다. 뭐 그런 거죠. 인생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전은 일방적인 경기였습니다. 5:0. 러시아가 5. 저는 그 경기를 끝까지 보면서 사우디가 유효슛팅이라도 한 번 기록해주길 바랐습니다. 뭐랄까, 상투적이지만 저 자신을 사우디에 대입했 거든요. 전의를 상실하고 주눅들어서 계속 실수만 남발하고, 실수하는 게 두려워서 뒤로 패스만 돌리는 그들을 보는 게 마음 편치 않았습니다. 만드려고 하지 말고 뻥뻥 가자. 계속 그렇게 외쳤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개막전이었는데 말이죠.
우리 인생은 모두 개막전이잖아요. 2회차를 살지 않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주눅들어 살지요. 이것도 걱정하고 저것도 걱정하고. 틀린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사는 게 그런 거죠. 하여간 사우디는 졌습니다. 대패. 개패. 선수들은 창피하고 낯이 없고 무안하고 슬프겠지만, 하지만 그들에겐 리그에서 거의 무한에 가깝게 솟아나는 오일머니가 있죠. 나의 패배와 그들의 패배는 몇 키로나 차이 날까요.
뭐 그런 거죠.
아, 데자뷰. 내가 이 글을 쓰는 걸 몇 달 전에 꿈을 꾼 것 같아요. 진짜로.
우주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과 닐 타이슨을 거쳐 지금은 스티븐 호킹을 읽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읽었으면 이제 쉬워질 만도 한데 문과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멕스웰 방정식은 도대체 뭔가요. 친구한테 물어봤다가 하품만 하고 끊었습니다. 문과 병xxxxxx 소리를 한참 들었네요.
올레티비 108번에 jtv가 있어요. 거기서 가끔 참치잡이 다큐멘터리를 해주는데 그 프로가 아주 좋습니다. 3년 동안 허탕만 친 노인이 포기하지 않고 참치잡이에 도전하는 그런 내용, 또 그 사람의 아들이 다른 참치 잡이 배에 타서 고군분투 하는 내용 등등, 고달픈 마도로스들의 삶을 다루는데, 저는 앞서 말한 친구와 그걸 보다가 참치는 참치 이상의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너무 생각이 난다, 고 떠들어 댔다가 또 문과 병xxxxx 소리를 한참 들었습니다. 문과 놈들은 이런 게 문제라네요. 현상을 현상으로 보지 않고 현상 너머로 본다고요. 저는 그 말에서 또 메타피직스를 떠올렸고, 친구에게 형이상학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눈치가 있으니까요. 후후.
저는 내일도 아마 느즈막이 일어나서 사과를 한 쪽 먹고 목욕을 하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일을 하다가 운동을 갈 거예요. 김비서는 왜 그럴까, 를 아내와 보다가 용인 보정동 카페거리가 나와서 "난 저기 자주 갔는데"하고 자랑을 했다가 내일 아내가 퇴근하면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운동이 끝나고 저녁을 먹고 밤 늦게 그곳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서로가 겪는 일상을 나누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어제는 선거날이라 투표를 하고 근처 씨지비에 가서 심야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유전이라는 공포영화였는데 안 무섭고 팝콘이 맛있었습니다. 더블치즈팝콘은 진리.
그렇습니다. 평범한 일상입니다. 이걸 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도 주로 불만족스러워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고자 종종거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 일상은 소중합니다. 내 가슴에 칼을 꽂지 않고 싶습니다. 뚠뚠한 우리 겨울이의 성기를 언제까지고 씻겨주고 싶습니다. 유효슈팅 한 번 날리지 못할 지라도 여기 등이 하나 나간 침침한 거실에 앉아서 내일은 좀 열심히 살아야지, 참치는 못잡아도 오징어는 잡아야지, 나머지 하나가 나갈 때까지 거실 등은 갈지 말아야지. 이제 노트북을 닫고 양치를 하고 이 갈고 자고 있는 아내의 옆에 누워야지. 누워서 오싹공포를 봐야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나죠. 아, 사랑해야지.
사랑해야지. 내일도 오늘처럼 평범하게.
뭐 그런 거지.
가입했습니다. 등업 좀.이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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