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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175683l 1983
옛날 글 알림 l 이 글은 7년 전에 쓰여졌습니다
감성 에 게시된 글입니다 l 설정하기

 

 엄마는 아빠다리를 겨우 가리는 상에 놓인 라면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이미 라면은 퉁퉁 불어버린 지 오래였다. 한껏 구불구불하던 면발이 이젠 거의 직선 모양이 다 됐다. 조그만 종지에 담긴 쉬어 빠진 김치에서 특유의 시큼한 산 냄새가 올라왔다. 엄마는 신 김치 못 먹는데. 엄마 대신에 종지를 저 옆으로 밀어버리고 싶었으나 나는 그러질 못해 그냥 가만히 놔두었다. 한참 동안 맹하게 있던 엄마가 초점 없는 눈을 끔뻑댔다. 라면을 먹으려는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님 아직까지도 습관을 고치지 못한 건지 라면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나는 부디 그 이유가 후자가 아니길 바랐다. 옛날엔 입이 두 개라 코딱지만한 라면사리 하나도 퉁퉁 불려 먹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니.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부터 입버릇처럼 분 라면이 좋다 했으나 그게 아니라는 건 멍청한 바보도 잘 알 거다. 몇 젓가락 딸한테 더 먹이겠다고 제 위를 줄이고 라면을 불리던 엄마가 생각나서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냄비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면발 사이사이로 언뜻 보이는 주황색 국물엔 기름만 떠다녔다. 라면 하면 떠오르는 건미역이며 토막 난 버섯, 바싹 말린 당근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 말 때문일 거다. 언젠가 후레이크가 싫다며 기를 쓰고 바락바락 소리친 적이 있었기에. 가지런한 쇠젓가락 한 쌍을 만지작대기만 하던 엄마가 별안간 라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걱정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라면을 먹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사실 그것도 걱정할 만한 내용이었다만.- 냄비 양옆에 부착된 손잡이를 강하게 붙잡고 있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곧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나는 먹는 게 부실하니 그럴 수밖에 하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측은해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가 무릎을 세워 앉아 있다가 천천히 자리서 일어났다. 온 몸에 힘이 잔뜩 빠진 듯 발걸음이 땅에 질질 끌렸다. 집이 원체 좁아 엄마는 다리를 얼마 움직이지 않고서 부엌에 도착할 수 있었다.-부엌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저 거실 한 편에 딸려 있던 공간에 가까웠으나 일단 명색은 부엌이었다.- 엄마가 퀭한 눈두덩을 문지르며 구닥다리 밥솥을 내려다봤다. 눈가에 촘촘히 배겨 있는 속눈썹들은 금세 아래를 향했다. 현기증이 이는 것 마냥 엄마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밥솥을 열었다. 실로 힘겨워 보이는 몸짓이었다. 밥솥은 보온도 되고 있지 않았는지 속에서 밥알들이 한 덩이로 뭉쳐져 냉기를 풀풀 날리고 있었다. 그런 건 먹으면 안 되는데. 내 우려가 무색하게 엄마는 어느새 숟가락을 가져와 그 한 덩이를 접시에 퍼내고 있었다.

 엄마가 누런 밥을 꾹꾹 눌러보다가 생수를 들이부었다. 예전에 자주 먹던 물밥을 해 먹으려는 것 같았다. 저러니까 어지럽지. 나는 속으로 밭은 숨을 내쉬며 엄마가 하는 행태를 쭉 지켜보았다. 조금 있다 엄마가 채 다 풀어지지도 않은 밥알들을 마구잡이로 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그건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식사라기보다는 속이 허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는 식사에 가까웠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손이 점차 굼떠졌다. 간간이 끅끅대는 소리도 들렸다. 엄마는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낼 생각도 못하고 계속 수저질만 했다. 울음을 꾹 참으려는 듯 엄마의 입술이 거푸 실룩거렸다.

 엄마는 그렇게 싫어하던 신 김치를 삼키며 결국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를 두고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됐다. 어떻게든 살았어야 했다.

추천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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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때마다 정독한다,,
1년 전
엄마아빠 동생 사랑해 우리강아지도 사랑해 힘든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1년 전
또 보러옴
1년 전
6년전에도 울었고 오늘도 울었다....
1년 전
이 글은 볼 때마다 운다.. 잘 지내 쓰나? 좋은 글 고마워
1년 전
생각나서 또 보러왔다..
1년 전
엄마 때문에 죽고 싶은거라 공감은 안 된다
그런데 살고싶다
그런데 죽고싶다

1년 전
낭자829
나도.
1년 전
낭자837
뭐가 너를 힘들게 한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엔 착한사람들이 많고 내가 누릴 아름다운 것들도 많아 우리 조금만 힘내자
1년 전
아 왜 또 울어 나는.....
1년 전
낭자830
이 글에 댓을.. 안 달았구나. 안녕 오늘도 울고 가 이런 글 써줘서 고마워
1년 전
쓰니 필력 진짜 감탄만 나온다,, 쓰니같은 인재는 꼭 작가같은거 해야해
1년 전
생각나서 또 보러 왔어
11개월 전
언제 봐도 눈물나 진짜... 쓴아 이런 글 써줘서 정말 고마워
1년 전
볼때마다 울게 되네 또 하루를 버텨볼게 고마워
1년 전
글 진짜 잘쓴다 볼 때마다 정독하는 글이야 지금쯤이면 쓰니는 꽤나 성공한 작가가 됐으려나?
1년 전
내가 죽고싶을때마다 와서 보는 글이야 고마워
1년 전
살아야할까 내가
1년 전
낭자837
살아주면 안될까...? 뭐가 너를 힘들게 한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날씨가 좋다 나도 힘들지만 나갈 예정이야!! 우리 살아보자
1년 전
나는 할 수 있다. 충분히 살아야할 이유가 있다. 분명 합격할거다.

스크랩 목록 뒤지다 여기까지 와버렸네. 6년 전에도 지금도 위로되는 글 고마워.

11개월 전
엄마 보고싶다
9개월 전
이렇게 울고가네..
9개월 전
언니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살아서 행복할게요 꼭

9개월 전
눈물난다
9개월 전
죽고싶지 않을 때 다시 보러올게
9개월 전
또보러옴
6개월 전
어떻게든 살아야만한다 내가 책임져야한다 그렇게 놔두고 갈수는없다 제발 살아보자
6개월 전
찾고 있었어
6개월 전
엄마 사랑해
6개월 전
진짜 천재인가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지..?
5개월 전
나 울어
5개월 전
낭자849
또 울어
5개월 전
ㅜㅜㅜ 마지막 반전 ㅜㅇㅜ 눈물이 갑자기
5개월 전
이거 브금 알려줘ㅠ 오래돼서그런지 안뜨네 브금이랑 읽어야한단말야...
4개월 전
낭자852
브금 이거야!!
sacred play secret place!

4개월 전
브금 sacred play secret place
4개월 전
낭자852
사실 나도 한때 다 놓아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사실 가장 괴로운건 남은 사람이라는걸 모르고....
내 괴로움을 남에 넘겨주고 떠나려했다니

4개월 전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정말..
4개월 전
어떻게든 살자 살아서 합격하자 할수있다 할수있다 할수있어
4개월 전
살아주라.. 딱 한 번만, 반 틈 만큼만 부모님 얼굴 떠 올려주라. 너가 죽고 난 삶은 절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아가! 내 소중한 아이야 힘들면 쉬어도 된다. 그건 포기가 아니란다. 너보다 소중한 건 이 세상엔 없다.
3개월 전
슬프다.... 내가 벌써 댓글 두개나 달았었구나 ㅠㅠㅠ 보일 때 마다 무조건 정주행...
3개월 전
다들 행복하자
3개월 전
또 봐도 슬프다
3개월 전
ㅠㅠ
3개월 전
갑자𓅿𓂭 마지막 줄에서 눈물줄줄...
3개월 전
이 글은 진짜 ….. 볼때마다 느낌이 달라 몇년 전에 읽었을 때랑 다시 읽을 때랑…
3개월 전
엄마 사랑해
3개월 전
언니 이기적인 거 알지만 나는 언니가 꼭 살아줬으면 좋겠어
3개월 전
나 오래 살게 엄마도 오래 살아
3개월 전
나 진짜 요즘 진지하게 자살하고 싶었는데... 다시 열심히 버텨볼게.. 글 너무 고마워...
3개월 전
아 마지막에 온 몸에 소름돋네요..너무 슬프다
3개월 전
이거 소설책 발췌 아냐? 누가 제목 좀 알려줘 더 읽고 싶어
3개월 전
낭자867
쓰니가 쓴거래..!
3개월 전
와 책 내 줘.......세상에 발췌한 줄 알았어
3개월 전
죽고 싶었는데 그러면 저리 되겠지 살아야겠지
3개월 전
낭자869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눈물이 그냥 나오더라...
3개월 전
고마워 너무 힘든데 열심히 살아볼게
3개월 전
타싸에서 뜨길래 읽었는데 인티 5년 하면서도 첨 보는 글이야…. 브금 없이 봤음에도 막줄에 눈물 왕 하고 터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 미쳤다
3개월 전
오랜만에 읽어보는 거고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좋은 글 같아... 오늘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해줘서 고맙고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1개월 전
오랜만이다 잘 지내길
22일 전
진짜 볼 때마다 울어......
2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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