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때 외삼촌집에서 잤다가 일어났더니 부모님은 산책가셨던 시간에 외삼촌은 날 성추행 하고 있었고 엄마아빠한테 말하지마 라고 했다. 성교육을 받았었지만 하지마 싫어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 했고 싫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칼을 꺼내들어서 날 죽이진 않을까 내 동생을 죽이지 않을까 엄마아빠를 죽이지 않을까 무서워서 당하고만 있었다. 이게 내 첫번째 더러운 기억 고민을 하다 부모님께 말했다. 아빠는 화가 나서 당장 전화를 걸었고 욕을 하며 분노를 했다. 외삼촌은 전화를 끊었고 아빠는 다시 전화를 걸어 그딴식으로 살지마라고 어딨냐고 당장 찾아가서 죽여버린다고 했다. 엄마는 뒷목을 잡고 있었지만 왜인지 날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아빠는 내게 잊어버리고 용서하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내가 당하던 날의 집 안 벽지무늬까지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5학년 자다가 눈이 갑자기 떠졌는데 동생이 내 가슴을 만지려던 것처럼 손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손을 바로 쳐내고 자는 척을 했다. 손을 쳐내자마자 동생은 재빨리 자는 척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꿈일거라 생각했는데 달라진 건 없었다. 이게 내 더러운 두번째 기억 중학교 1학년 아빠가 잊어버리고 살라해서 어느정도 외삼촌이 용서 된 것 같다. 외삼촌을 신고하면 엄마가 날 원망할까봐 무서워서 그랬던걸까. 외삼촌에게 용돈을 받았고 자랑하다 언젠가 엄마한테 그런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돈이면 /*÷>~*# 너무 충격먹어서 기억도 안 나는데 그 말을 듣고 느낀 감정은 생각난다. 내가 창녀인건가 생각이 들었던 그 비참한 감정은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 살이 찌면서 가슴이 커졌다. 하지만 집안에서만큼은 편하게 살고 싶어서 티가 아닌 나시브라로 된 옷을 입었다. 아빠랑 말다툼을 하다가 젖 큰 년들이 무식하다더니 나는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 잠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문자로 자꾸 키스할때 가슴을 만져도 되냐느니 그런걸 좋아하냐라던지 물어왔다. 난 얘랑 손도 안 잡았는데 왜 이러지 하면서 다른 남자애한테 고민을 털었고 걔 원래 미으로 유명하다며 헤어지라고 했다. 헤어지고나서 다시 사귀자 했지만 싫다고 했고 그 후 부터 지나갈때마다 다리를 걸고 넘어뜨리려 했고 어깨빵을 쳐대고 뜬금없이 내 물건을 빌려가놓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 애 표정은 그걸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려고 서 있었다. 술을 계산하던 아저씨가 내 겉옷 안으로 내 엉덩이를 만졌고 나는 뭔가 따끔한데 뭐지 하다가 계산이 다 끝나고서야 알았다. 저 사람이 지금 성추행을 했구나. 마트에는 사람이 많았고 반대쪽에서 그 장면을 다 보던 직원을 봤지만 날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을 뿐 날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계산이 끝나고 따지려 가려 했지만 아저씨는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고등학교 3학년 사촌집에서 잠을 잤다. 사촌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다. 핸드폰 후레쉬로 날 비추고 내 몸을 비추고 만지고 있었다. 이건 부모님한테 말 못했다. 진짜 걸레가 다 된 기분이라 아마 영원히 이건 아무한테도 말을 못 할 것 같다. 어쩌면 누군가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 니가 섹기있게 생겨서 혹은 운이 안 좋아서 그런 일을 당한거야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때부터 뚱뚱했고 눈도 너무 작아서 친구한테 놀림을 받을만큼 못생겼다. 엄마가 남동생에게 밥을 챙겨주라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내내 니가 누나니까 남동생 밥은 챙겨줘야지. 나는 초등학교3학년부터 처음 밥짓기를 했지만 동생은 고등학생때 처음 했던 것 같다. 계속 내가 밥하고 집안일 하던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시켰다. 난 처음에 내가 첫째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안다. 내가 여동생이었어도 다를 게 없었단 걸 고등학생때 알바하던 곳에서 매니저님이 내게 말했다. ㅇㅇ아 너는 왜 이렇게 안 꾸미고 다녀 교복치마도 입고 블라우스도 입고 화장도 예쁘게 해야지. 나는 그런거 귀찮다고 했지만 그 후로도 수차례 몇번을 반복해 들었다. 같은 알바를 하던 내 친구와 나를 비교해가면서. 나는 체육복을 입는게 편했고 누가 내 다리를 쳐다보는게 역겨웠고 파티장도 아닌 일터에서까지 꾸역꾸역 꾸미고 싶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도 매니저는 나한테 그렇게 다니면 남자들이 안 좋아한다며 강요했지만 꿋꿋하게 내 하고 싶은대로 다녔다. 원피스나 치마등 러블리한 옷들도 좋아하지만 스트릿 댄스를 출 것 같은 옷을 더 좋아했다. 츄리닝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옷을 입을 때 친구들은 자꾸 여성스러운 옷을 입으라며 강요해왔다. 옷 가게를 가면 엄마는 여자답게 옷을 입으라며 골라줬다. 그리고 안 맞는 옷이 있으면 내가 살이 찐게 죄인거 마냥 떠들어댔다. 남자 옷을 파는 매장을 가면 모든 옷이 넉넉하게 맞았다. 당연하다는 듯 내 옷 사이즈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엄마는 넌 여자잖아라며 그 옷들을 못 사게 했다. 남자얘기가 나오면 부모님은 내게 남자 잘 만나서 애 잘 키우고 집안일하면서 살아야지 ㅇㅇ아 나는 내가 돈을 벌고 남편이 집안일 하는게 좋다고 했지만 날 비웃었다. 그 비웃음의 의미가 지금은 뭘 뜻하는지 안다. 성교육을 받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 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교복치마를 입든 체육복을 입든 동네에 있던 할아버지는 항상 지나갈때마다 내 다리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혀를 낼름거렸고 책에서는 성폭행 성추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옷 차림이 단정해야 한다고 적혀있으며 만화에는 니가 옷을 그렇게 입으니까 그렇지 너 그거 남자꼬신거야 꽃뱀아 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분노는 잘못 된 것인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난 여자니까 이런 거 감수하고 살아야지 여자잖아 라고 날 위로해왔다. 친구가 페미니스트였다. 이상한 말들을 했다. 그런 친구가 창피하게 느껴졌고 남녀가 같이 화합하며 살면 될 것을 왜 분노하고 억울해하는지 몰랐다. 오히려 친구가 그런 말을 하다 누구한테 맞지나 않을지 불안했다. 1년 가까이 지나면서 페미니즘이 내게 말해왔다. 니가 여태 그런일들을 당한게 니 잘못이 아니라고 알려줬고 이 썩어빠진 사회를 바꾸려면 움직여야 한다고. 계속 외면했다. 어디가서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였고 sns테러를 받기도 하며 주변 친구들도 별로 내켜하지 않는걸 잘 알고 있었기에 외면했다. 외면하면서 남은 그런일을 안당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어떤 소리도 치지 않으면서. 생각보다 나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은 많았고 더 한 일을 당한 사람도 많았으며 강남역 살인사건때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더 이상 외면 할 수는 없겠다. 더 이상 이런일은 없어야만해.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부모님께도 설명을 드리고 정말 많이 싸웠다. 제발 내 얘기를 생각해보면 안되겠냐고 호소하고 책을 사서 보여주며 부모님도 조금씩 바뀌었다. 지난 일들에 사과 받을 수 있었고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다. 친구에게 김치.녀 된정.녀 꽃뱀같은 소리 싫지 않냐 물어보면 난 그런 말 안들어봐서 모르겠다라고 답하지만 (나도 그런 말 들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친구야) 내 과거에 모습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물러서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걸 알기 때문에 그 피해자가 나일지 내 친구일지 가족일지 상상도 하기 싫기에 나는 페미니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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