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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생 때 대학 병원에서 사이코패스라고 진단 받았다. 정확한 진단명은 실감정증과 반사회적 인격 장애였던 걸로 기억한다. 실감정증이란 보통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말 그대로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의미다. 두 진단을 합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사이코패스가 된다. 딱히 놀라지도 않았다. 나 자신도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늘 이방인이었으니까. 뭔가 보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이 내게 힘을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공인 된 포식자였다.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께 나를 맹수로 비유했다. 나는 재미있는 농담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의사 선생님꼐서 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실수로 부모님을 물어죽이지 않도록 조심해라."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내가 부모님 손에 이끌려 대학병원 신경정신과를 방문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개구리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시골 증조할아버지 댁 주변에는 개구리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나는 개구리 잡는 걸 좋아했다. 내가 별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개구리들은 행동이 뻔한데다 물고기들만큼 재빠르지도 못했다. 그 결과 다들 내 손에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딱히 개구리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개구리에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개구리라는 생물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단지 개구리의 안이 궁금했었다. 붙잡은 개구리를 가위로 오렸다. 쉽게 오려지진 않았다. 손에 힘을 많이 줬던 걸로 기억한다. 개구리를 세로로 절반 오리고, 낡은 치약 튜브에서 치약을 짜내듯 가죽을 손으로 눌러 내장을 뺐다. 그리고 후회했다. 반으로 자르면 개구리 형상이 안남으니까. 어째선지 나는 개구리 가죽을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6마리의 개구리를 오린 다음 결국 포기했다. 수의학적인 지식도 없고 해부학 능력도 없는 내가, 개구리 형상을 그대로 남긴 체 내장을 빼낸다는건 불가능했다. 뒷 정리를 하기 전, 문득 주변을 둘러보다 이 광경을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치 강력한 힘을 가진 기분이었다. 나의 무자비함을 뽐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보다 2살 어린 사촌 동생을 불러 보여줬다. 결국 나는 부모님 손에 끌려 대학 병원에 가게 됐다.
이유 없이 동물을 헤치면 안 된다. 만약 동물을 헤쳐야 한다면 정해진 규정대로 도살해야 한다. 아프게 배운 교훈이다. 개구리들을 잔인하게 죽인 댓가로 나는 고통스러운 처벌을 받았다. 이틀을 굶었다. 아빠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 전까진 내게 쌀 한톨, 10원 한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이틀을 굶는다는건 내겐 엄청난 고통이었다. 물 이외엔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었다. 아빠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결국 난 직관적으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러한 규정이 있다고 받아들였다. 두번 다시 이유없이 동물을 헤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만약 동물을 헤쳐야 한다면 법에 정해진 규정대로 도살하겠다고도 맹세했다. 그렇게 맹세하자 비로소 식사할 수 있었다. 이 맹세는 아직도 지키고 있다. 나는 바퀴벌레조차 죽이지 않는다. 죽이지 못하는게 아니다. 죽이고자 한다면 죽일 수 있다. 가능한 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동물을 헤지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래서 안 죽인다.
내가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가장 고생한 사람은 오빠였다. 오빠는 사이코패스와 보통 사람들 사이의 외교관이었다. 엄마는 나를 무서워 했고 아빠는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몰랐다. 오직 오빠만이 노력했다. 오빠는 어떤 상황에서 보통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차분하게 알려줬다. 화내지도 않았고 나를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했다. 내가 타고난 본성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상황을 중재해줬다. 오빠는 죽었지만,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내가 이만큼이라도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건 순전히 오빠 덕이다. 아 물론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았단 이야기는 아니다. 두분은 두분 나름대로 나를 사랑하셨다. 하지만 그건 금전적인 면이고, 정서적인 면에선 크게 도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오빠만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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