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홍 잠수사의 장례식장에서 목 놓아 우는 박주민 의원) 일벌레처럼 업무에 몰두하는 때문인지 그가 발의하거나 발의에 참여한 법안은 11월에만 50개가 넘는다. 업무 와중에도 틈틈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 위로한다. 경찰이 농민 백남기씨 부검을 강행하려 할 땐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가 시신을 지켰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전염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의 모습을 본 네티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다들 신수가 훤해지시던데 이분(박 의원)은 오히려 얼굴이 더 못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의원의 어깨는 무겁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박주민을 국회에 보내고 싶다”고 했던 세월호 유족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감히 한눈을 팔 엄두를 낼 수 없다. 하지만 은평구에선 선거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위 우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명함에 명함, 플래카드,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전부 세월호 이력을 넣은 걸 보면 그의 ‘고집’이 뭔가를 일을 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박 의원이 변호사 때 한 일을 생각하면 조심스레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하다. 박 의원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때 야간 옥외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이끌어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엔 경찰이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에워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끌어냈다. 경찰의 2차 민중총궐기(2015년) 불허가 부당하다는 법원 결정, 물대포 직사는 기본권 침해라는 판결을 받아낸 것도 박주민 의원이다.
박 의원은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출신으로 세월호 참사 피해 유족들의 법률 대리인을 맡아 활동한 때문이다. 어찌나 유족들을 위해 뛰었는지 유족들이 그의 당선을 위해 발 벗고 뛰기도 했다. 선거 기간 그의 당선을 위해 인형 탈을 써가며 선거운동을 한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아버었다. 그의 선거사무소에서 청소 일을 한 이는 참사로 딸을 잃은 어머니 권미화씨였다. 권씨는 매일 시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 마음의 변호사 박주민을 도와주세요’라고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김관홍 잠수사는 박 의원 차를 몰았다.
아직 이런 분이 민주당에서 계셔서,,,,,,난 진짜 5년간 악개짓이 뭔지 보여줄거임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