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는 모든 고민을 어린애의 혼란스러움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 어린 걸 어떡하나 하는 표정으로 내가 헤메는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것이 그때는 아주 열이 뻗쳤으나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간다. 모든게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와서 느낀 것은 관성적으로 해오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행동 양식을 다시 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으레 해오던 것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몇 초만에 간단하게 선택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분야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일전에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보며 방향을 이탈하지 않는 선에서 선택을 하려 해봐도, 순식간에 디딘 땅이 달라지니 이전에 고수하던 방향으로 가는 것이 과연 삐끗하지 않고 무사히 걸을 수 있는 방법인지 그것조차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럽게 아무런 발자국도 없는 맨 땅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 내가 찍어온 발자국은 내가 어쩌다 이리로 걷기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린 후에도 계속 이어졌을 만큼 아주 오래되었다. 걷기 시작한 이유를 잊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어제의 내가 갔던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각을 가진 땅에 다다르고, 기존이 방식이 맞는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걸음은 욕망의 실현이 아닌 단순한 습관이었고, 나는 현재 가고자 하는 목적지 역시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나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배움은 무엇이고, 직업은 무엇이며 또 성공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채로 문제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습관대로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나의 행동에 실질적인 나의 바람이나 의지는 사실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스물 다섯에 처음으로 이전의 선택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새로운 선택들을 만들어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먼저 어떠한 길을 떠난 사람을 쫓을 수 없는 이유는 나는 그들이 바라는 목적지에 닿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그것을 몰라 걸음을 뗄 수가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이끌리는대로 나아가 어딘가에 닿아볼까 싶어도 내가 지금 딛고자 하는 걸음의 방향은 과연 나의 진실된 욕망을 따르는지 혹은 단순히 좋아보이는 무엇인가를 향하는지를 알 수 없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하는가. 나는 도대체 어디에 닿고싶은가.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