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사랑방 에 게시된 글입니다 l 설정하기2016년 대학교 1학년 때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뭐, 같은 학과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번은 내 친구를 통해 그녀와 그녀의 친구 이렇게 네 명이 모여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 모두가 그랬듯이 나 또한 별 의미 없이 자리를 나섰다. 술을 한잔, 두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자리를 주선했던 내 친구가 급한 일이 생겨 먼저 자리를 뜨게 됐고 그 자리에 남은 우리들 또한 급하게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집에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사실 어떤 얘기를 했는 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내가 그 모임에서 가장 집이 멀어 급하게 자리가 마무리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 조심히 가라는 그런 늬앙스의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예뻐 보였다. 그렇게 자연스레 꾸준히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엔 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연락을 계속 하다보니 두세달이 훌쩍 지나 내 머릿속에서 그녀가 떠나가지를 않았다. 나와는 다르게 말을 할 때에 욕설을 절대 섞지 않았고 감정 기복도 크게 없어보였다. 여기서봐도 저기서봐도 마음이 모난 곳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녀였다고 생각한다. 외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던 내가 사람의 내재적인 부분으로 인해 이성에게 호감을 느낀게 처음이었다. 그렇게 연락을 꾸준히 해오던 그 해 9월6일에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곧바로 소방공무원 시험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고 관련된 일을 하고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가정형편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빨리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의 공시생 기간 동안의 그녀는 부족한 용돈을 대신해 항상 맛있는 밥도 사주고 일주일에 한 번 씩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보러가주며, 힘든 일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항상 정성스런 편지를 전달해 나에게 용기가 되어주는 그런 존재였다. 한 번의 불합격을 겪고 2018년 10월 선선했던 가을, 시험에 합격을 했다. 결과가 나온 날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엔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우리 아들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며 축하해주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는 무슨 일이 있나? 하며 순간 불안해 했는데, 순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흐느끼면서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뭐라고 해야할까? 나도 눈물이 핑 돌면서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가슴과 코 끝이 찡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연애 초창기 소꿉장난같은 연애만 해왔던 나와, 마찬가지로 첫 연애를 하고 있는 그녀가 서로 잘 안맞는 것들을 삐걱대며 진심어린 편지지와 진심어린 대화로 풀어나가던 순간들, 내가 공부하며 힘들어했던 당시 큰 도움이 되었던 순간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019년 10월10일 입대를 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지라 큰 걱정은 없었다. 현역으로 간 것이아닌 의무소방이라는 대체복무를 한 탓에 연락도 서로 잘 되었고 외출을 종종 나와 데이트도 했다. 20개월이라는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훅 지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별 탈 없이 2021년 6월25일 전역을 하게 되었다. 강렬한 햇볕이 땅을 쬐는 8월의 어느날 우리에게 권태기가 찾아왔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예전만큼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자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다 그녀의 보수적인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녀와 나와의 마찰도 잦았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복합적인 문제와 감정들이 얽히고 섥혀 10월달 즈음에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다. 11월 후반 즈음 마음정리를 굳게 하고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려 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하고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있으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이난다 헤어지자는 말도 못할 거면서 앞으로 안볼 것처럼 얘기해놓고 마지막에와서 헤어지자는 말도 못하면 왜 그런 얘기를 했느냐고, 결국엔 자기가 말하게 하려하는게 아니냐고, 정말 너 이기적이라고. 그녀의 말이 맞다 그 말을 듣고 한마디의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021년 11월 말 우리의 길던 연애가 끝이났다. 처음에는 뭐 후련하기도 하고 크게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니 점점 뭔가 모를 우울감이 자꾸 내앞에 찾아왔다. 그렇게 5개월이 훌쩍넘어 우리가 처음만났던 봄이 찾아왔다. 그 때에 나의 죄책감과 후회감이 절정에 치달았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술만 마시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5년이라는 긴 시간속에서 익숙함에 속아 권태기였었는지 소중함을 못 알아보고 순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려 매몰차게 그녀에게 못 할 말들을 한 것 같았다. 이런 내 감정들을 정성스레 편지에 담아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편지좀 전해주러 왔다고 하니 그냥 가든지 편지를 정 주고 싶으면 우체통에 넣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 뒤 답장이 왔다. 장문의 카톡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앞으로 우리가 다시 만나도 관계가 발전할 거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이별을 원했던 것에 대해서는 그때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그때 그 시간과 감정들은 혼자가 아닌 둘이서 만든 시간이고 감정이니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중 누구하나가 좀 더 경험이 많았다면 진작에 헤어졌을 것이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난 20대 초반의 추억을 너랑 함께해서 좋았고 좋은 추억들이 더 생각나니 계속 이렇게 추억하고 싶다고... 답장을 받고나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슬프기도 했지만 후련하기도 했던 것 같다. 잘 지내고 있지? 용기내서 편지 보냈는데, 이제 안 볼 사람일텐데 무시해도 됐는데 정성스럽게 답장해줘서 고마워. 솔직히 저번 달 까지 너무 힘들었어 근데 이제 괜찮아. 어쩌다가 집에서 술 한 잔 하면서 ‘좋아했나봐-마인드유‘ 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너생각이 나서 끄적여봤어. 나도 너처럼 20대 초반을 너랑 함께해서 정말 좋았고 좋았던 추억들이 더 생각나. 공부는 잘 돼가? 너라면 분명 좋은 결과 있을거야. 그리고 앞으로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야. 긴 세월 동안 정말 고마웠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