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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야화
아기씨께서 으레 그렇듯 곱디 고운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뽀얀 피부에 움푹 보조개가 들어가고, 붉은 입술이 어여쁘게 말려 올라가자 주인님께서 데려오신 일본인 손님들이 저마다 감탄하며 아기씨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아기씨가 이리도 고우시니 아기씨의 시선 한 번, 웃음 한 자락에 모든 사내들이 위치를 잊고 헤벌레한 것은 당연하지요. 절로 우쭐해져서 흘긋 흘긋 손님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덜컹.
그 사내들의 시커먼 눈에 담긴 것이 그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탄만이 아닌 것을, 이 무지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종년은 알아버렸습니다.
떨리는 눈으로 아기씨를 올려다보니 우리 아기씨는 여전히 아름답게 웃고 계셨습니다. 주인님이 데려온 손님이란 사내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아기씨는 웃으셨습니다. 그때 주인님의 옆에서 아기씨의 얼굴에 넋을 놓고 있던 한 손님이 물으셨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대감댁 딸 아닌가.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그 일본말에 아기씨가 입을 여셨습니다.
"왜놈이 하는 말을 내가 어찌 아오?"
아기씨께서는 분명히 알아 들으셨습니다. 그야 아기씨는 무려 5년 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를 배우셨으니까요. 간혹 아기씨의 일어 선생이 아기씨의 배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며 칭찬하는 일 또한 있었을 정도로요. 아기씨의 그 봄과 같은 미소와, 마냥 보드라운 입술 틈에서 새어나오는 달콤한 목소리가 어딘가 단호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주인님께서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저를 보며 아기씨를 데리고 들어가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셨습니다.
"조선인이 일본의 성씨를 단 것도 수치스러운데 그것을 내 입으로 말하라 하다니."
입만 떡 벌린 채로 멍하니 아기씨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보다 못한 주인님이 나서셨습니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일본인 손님들에게,
"딸 아이가 모자라 아직 국어를 익히고 있는 중이오."
하며.
아기씨의 손이 주인님의 억센 손에 탁 하고 잡히곤,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와중에 아기씨가 하신 말씀을 저는 들었습니다. 작은 한숨과 함께 힘없이 흘러나온 말.
"대체 어느 것이 국어란 말이오."
이때 저는 마냥 얌전하고 순종적이었던 우리 꽃같은 아기씨의 속을 처음으로 엿보았습니다.
아기씨께서 저잣거리에 오셨습니다.
누렇게 때가 탄 한복들 사이, 눈에 튀는 백색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으신 아기씨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습니다. 저잣거리의 상인들이 아기씨를 보곤 살갑게 인사하자 아기씨 또한 말갛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색색의 비녀, 하얀 가루가 묻은 알사탕, 특이한 모양의 모자. 보기만 해도 들뜨는 것들을 전부 다 지나치고 아기씨께서 향한 곳은 바로 엿장수의 앞이었습니다. 아기씨께서 기다란 엿 하나를 사서 입에 물고는 달다며 웃으셨습니다.
"아기씨, 다른 예쁜 것들도 많은데 왜 굳이 엿을 사세요?"
그러자 아기씨가 제 손에 작게 잘라진 엿 조각을 쥐여주셨습니다.
"먹어봐라. 엿 만한 게 이 저잣거리에 어디 있는지."
그 조각을 입에 넣으니 확 하고 퍼지는 달달한 맛에 혀가 아려왔습니다. 아기씨께서는 제 감상을 듣지도 않고는 혼자 홱하니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엿을 받아 먹고 작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신 걸까요, 기분 좋게 무엇인지 모를 곡조를 흥얼거리며 걷는 아기씨의 눈에는 고운 비단, 땀 흘리는 상인들, 푸른 눈의 미국인, 칼을 찬 왜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멈칫.
이상하게 사람이 둘러쌓인 곳에서 걸음을 멈추신 아기씨께서 어딘가를 빤히 내려다보셨습니다. 저 또한 까치발을 들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사람이 너무 많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매질하는 소리, 천박한 욕설들이 난무하는 고함 뿐이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저기 왜경이 오는 것 같은데 그냥 가요 아기씨."
"백정이 제 자식을 때리고 있구나."
"이 근방에 백정이라고 하면 누가 있겠어요. 일본인 아가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가 죽도록 매 맞고 쫓겨난 종놈 아닌가요. 그놈 자식이겠지요."
내 말에 아기씨가 말합니다.
"우리 종놈 하나 필요하지 않니?"
"...예?"
"집안에 손이 부족하더구나,"
"남는 게 종놈들인데요 무슨,"
아기씨께서는 내 말을 못 들은체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래, 손이 필요하다고. 하시며요. 아기씨의 치맛자락이 부드럽게 움직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기씨의 발걸음이 멈추는 일 하나 없습니다. 분홍색의 꽃신이 더러운 바닥을 즈려밟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핏방울이 떨어져 붉은색이 된 흙을 밟고 우뚝 설 때까지.
아기씨께서 바닥을 내려다보셨습니다. 자식을 때리던 백정 놈은 한눈에 봐도 귀해 보이는 우리 아기씨의 등장에 손찌검을 멈춘 지 오래입니다. 아기씨께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소년을 내려다보셨습니다.
"내가 사내 종이 하나 필요해 그러는데."
아기씨께서 품 안에 손을 넣고는 꽃이 수놓아진 두루주머니를 꺼내 백정 놈의 앞에 던지십니다.
"마침 적당한 것이 눈 앞에 보이길래 차마 지나갈 수가 없었네."
소년이 퉤, 하고 침을 뱉자 끈적이는 피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나한테 팔 생각 있는가?"
아기씨께서는 그날 자기 또래의 종놈 하나를 들이셨습니다.
반은 조선인, 반은 일본인이오.
새로 들어온 종놈의 이름은 스나 린타로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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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써요
스나 린타로 원루트
서브남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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