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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3271
이 글은 3년 전 (2022/11/30)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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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카테고리 만화/애니


 

 

 

 안예은, 야화



아기씨께서 으레 그렇듯 곱디 고운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뽀얀 피부에 움푹 보조개가 들어가고, 붉은 입술이 어여쁘게 말려 올라가자 주인님께서 데려오신 일본인 손님들이 저마다 감탄하며 아기씨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아기씨가 이리도 고우시니 아기씨의 시선 한 번, 웃음 한 자락에 모든 사내들이 위치를 잊고 헤벌레한 것은 당연하지요. 절로 우쭐해져서 흘긋 흘긋 손님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덜컹.

그 사내들의 시커먼 눈에 담긴 것이 그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탄만이 아닌 것을, 이 무지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종년은 알아버렸습니다.

떨리는 눈으로 아기씨를 올려다보니 우리 아기씨는 여전히 아름답게 웃고 계셨습니다. 주인님이 데려온 손님이란 사내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아기씨는 웃으셨습니다. 그때 주인님의 옆에서 아기씨의 얼굴에 넋을 놓고 있던 한 손님이 물으셨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대감댁 딸 아닌가.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그 일본말에 아기씨가 입을 여셨습니다.

"왜놈이 하는 말을 내가 어찌 아오?"

아기씨께서는 분명히 알아 들으셨습니다. 그야 아기씨는 무려 5년 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를 배우셨으니까요. 간혹 아기씨의 일어 선생이 아기씨의 배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며 칭찬하는 일 또한 있었을 정도로요. 아기씨의 그 봄과 같은 미소와, 마냥 보드라운 입술 틈에서 새어나오는 달콤한 목소리가 어딘가 단호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주인님께서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저를 보며 아기씨를 데리고 들어가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셨습니다.

"조선인이 일본의 성씨를 단 것도 수치스러운데 그것을 내 입으로 말하라 하다니."

입만 떡 벌린 채로 멍하니 아기씨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보다 못한 주인님이 나서셨습니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일본인 손님들에게,

"딸 아이가 모자라 아직 국어를 익히고 있는 중이오."

하며. 

아기씨의 손이 주인님의 억센 손에 탁 하고 잡히곤,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와중에 아기씨가 하신 말씀을 저는 들었습니다. 작은 한숨과 함께 힘없이 흘러나온 말.

"대체 어느 것이 국어란 말이오."

이때 저는 마냥 얌전하고 순종적이었던 우리 꽃같은 아기씨의 속을 처음으로 엿보았습니다.



아기씨께서 저잣거리에 오셨습니다. 
누렇게 때가 탄 한복들 사이, 눈에 튀는 백색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으신 아기씨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습니다. 저잣거리의 상인들이 아기씨를 보곤 살갑게 인사하자 아기씨 또한 말갛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색색의 비녀, 하얀 가루가 묻은 알사탕, 특이한 모양의 모자. 보기만 해도 들뜨는 것들을 전부 다 지나치고 아기씨께서 향한 곳은 바로 엿장수의 앞이었습니다. 아기씨께서 기다란 엿 하나를 사서 입에 물고는 달다며 웃으셨습니다.

"아기씨, 다른 예쁜 것들도 많은데 왜 굳이 엿을 사세요?"

그러자 아기씨가 제 손에 작게 잘라진 엿 조각을 쥐여주셨습니다.

"먹어봐라. 엿 만한 게 이 저잣거리에 어디 있는지."

그 조각을 입에 넣으니 확 하고 퍼지는 달달한 맛에 혀가 아려왔습니다. 아기씨께서는 제 감상을 듣지도 않고는 혼자 홱하니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엿을 받아 먹고 작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신 걸까요, 기분 좋게 무엇인지 모를 곡조를 흥얼거리며 걷는 아기씨의 눈에는 고운 비단, 땀 흘리는 상인들, 푸른 눈의 미국인, 칼을 찬 왜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멈칫.

이상하게 사람이 둘러쌓인 곳에서 걸음을 멈추신 아기씨께서 어딘가를 빤히 내려다보셨습니다. 저 또한 까치발을 들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사람이 너무 많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매질하는 소리, 천박한 욕설들이 난무하는 고함 뿐이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저기 왜경이 오는 것 같은데 그냥 가요 아기씨."

"백정이 제 자식을 때리고 있구나."

"이 근방에 백정이라고 하면 누가 있겠어요. 일본인 아가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가 죽도록 매 맞고 쫓겨난 종놈 아닌가요. 그놈 자식이겠지요."

내 말에 아기씨가 말합니다.

"우리 종놈 하나 필요하지 않니?"

"...예?"

"집안에 손이 부족하더구나,"

"남는 게 종놈들인데요 무슨,"

아기씨께서는 내 말을 못 들은체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래, 손이 필요하다고. 하시며요. 아기씨의 치맛자락이 부드럽게 움직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기씨의 발걸음이 멈추는 일 하나 없습니다. 분홍색의 꽃신이 더러운 바닥을 즈려밟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핏방울이 떨어져 붉은색이 된 흙을 밟고 우뚝 설 때까지.

아기씨께서 바닥을 내려다보셨습니다. 자식을 때리던 백정 놈은 한눈에 봐도 귀해 보이는 우리 아기씨의 등장에 손찌검을 멈춘 지 오래입니다. 아기씨께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소년을 내려다보셨습니다.

"내가 사내 종이 하나 필요해 그러는데."

아기씨께서 품 안에 손을 넣고는 꽃이 수놓아진 두루주머니를 꺼내 백정 놈의 앞에 던지십니다.

"마침 적당한 것이 눈 앞에 보이길래 차마 지나갈 수가 없었네."

소년이 퉤, 하고 침을 뱉자 끈적이는 피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나한테 팔 생각 있는가?"



아기씨께서는 그날 자기 또래의 종놈 하나를 들이셨습니다.
반은 조선인, 반은 일본인이오.
새로 들어온 종놈의 이름은 스나 린타로라 하였습니다.



-

천천히 써요
스나 린타로 원루트
서브남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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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
호출센세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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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
wow 오랜만에 정독했다.... 센세 혹시 프로 작가 아니십니까.... 필력 머선일....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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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3
와 미쳤다… 보면서 입벌리고 봄…ㅠㅠㅠ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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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1.

스나 린타로라는 종놈은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길래 아기씨의 눈에 든 것일까요. 이 모자란 종년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아기씨의 생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 비쩍 마르고, 상처투성이에, 기분 나쁘게 굴러가는 눈동자는 이미 죽어있는데.

"그나저나 아기씨. 저걸 데리고 돌아가면 주인님께서 화를 내실 텐데요."

아기씨께서 느릿하게 걸어오는 종놈의 안면을 훑으며 말하십니다.

"맷집이 좋아 보이더구나."

부드러운 목소리에 종놈의 그 기분 나쁜 눈동자가 아기씨에게 닿습니다.

"가서 몇 대 더 맞는다고 죽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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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2.

몇 대 라고 하기에 주인님의 화는 그리 얄팍하지 않았습니다. 신체가 건장한 종놈들을 불러 붙잡게 하고, 직접 매질하셨는데 짝! 짝! 하고 울리는 소리가 이 커다란 집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얀 몸에 길다란 선이 여러 개가 생기고, 얼굴이 부어 올라도 그 독한 종놈은 신음 한 번 없었습니다.

그저 매질을 하는 주인님의 옆에 서 있는 아기씨를 올려다볼 뿐입니다.

그 시선이 저잣거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부터 매를 맞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아기씨는 모르겠지요. 똑같이 천한 것들인데 왜 저는 저 종놈의 생각을 알 수가 없을까요.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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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4
하앙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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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5
하 대박...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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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3.

결국 주인님의 팔이 부들거릴 지경에 이르러서야 스나 린타로라는 종놈은 작게 아, 하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왜인지 그것이 아파서 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내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그 소리를 듣고 매를 내려놓으시고 아기씨에게 말하셨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천한 종자를 사 왔구나. 저것을 어디에 쓰려 하느냐?"

아기씨께서 싱긋 웃으셨습니다.

"반은 조선인이오, 또 반은 왜놈이오. 백정 놈의 자식은 백정이니 저것도 백정이나 다름 없으나, 그 핏줄에 더러운 왜놈의 피까지 섞였으니 처음 보는 것이라 데려왔습니다."

주인님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습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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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6
하악 맛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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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6
쌀밥 열그릇 주자🍚🍚🍚🍚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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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4.

"이것 또한 진귀한 경험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기씨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바닥을 보셨습니다. 종놈의 죽어버린 눈동자가 드디어 아기씨의 눈동자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피떡이 되어버린 몸과 안면이 우리 곱디 고운 아기씨에게 충격을 줄까 걱정했지만 아기씨께서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종놈과 눈을 맞추며 슬쩍 웃기까지 하셨습니다.

"저는 이만 방에 들어가 있겠습니다. 아, 향단아 네가 저것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거라."

아기씨의 입에서 나오는 향단이라는 말에 치솟았던 기분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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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5.

대충 옷을 던져 두고 씻고 나오라며 욕탕에 밀어 넣었더니, 에구머니나 이게 뭐람! 저 천한 종놈의 얼굴이 보통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아기씨께서는 저것의 얼굴이 마음에 드셔서 데려오신 걸까요? 다른 종년들을 불러 함께 상처를 치료하곤 아기씨가 있던 곳으로 가려는데 훤칠해진 종놈이 말합니다.

"아기씨께 가나?"

그 말이 종놈이 처음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저잣거리에서부터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아기씨께 가느냐고 묻는 것을 보니 이 종놈도 사내이긴 한가 봅니다. 암, 그렇지. 우리 아기씨께 반한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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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6.

똑똑,

"아기씨, 저 향단이어요. 그 종놈도 같이 왔답니다."

"들어와라."

드르륵, 문이 열리고 댕기 머리를 푸르고 창가에 걸터 앉으신 아기씨의 모습은 여자인 제 가슴도 술렁이게 했습니다. 그야말로 화용월태(花容月態). 꽃다운 얼굴과 달 같은 자태에 귓가가 화끈해졌습니다. 그것이 티가 났는지 아기씨께서 웃으셨습니다.

"그나저나 저건 왜 데리고 왔니?"

그 말에 제가 입을 열려 하는데 옆에 있던 종놈이 순서를 가로챘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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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7.

향단이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할 말이 무어냐는 듯이 고개를 들어 사내 종, 그러니까 스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애의 무표정한 얼굴에 조금 균열이 일고 이내 입이 벌어진다.

"저를 처음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스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말씀하셨다시피 전 백정 놈의 자식이니 저 또한 백정이나 다름없습니다. 곱게 자라고, 고운 것만 보셔서."

스나가 뒷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더 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자,

"...그래서 곱고 귀한 것과 천하고 더러운 것 분간을 못 하십니까?"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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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8.

내가 데려온 저 종놈은 돌려 말하는 것에는 퍽 재주가 없는 듯 싶다.

"웬만하면 돌려 말하지 말아라.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알겠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표정 변화가 적은 축에 속하나, 밝은 달빛이 들어오는 창 아래 있으니 그 빛에 비추어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조금 찌풀어진 눈가를 보다 웃었다.

"난 조선을 사랑하고 일본을 증오한다."

창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볼을 간지럽혔다.

"허나 넌 조선인과 일본인의 피가 섞였다 하더구나. 내가 사랑하는 것과 증오하는 것이 섞였다 하니 그저 궁금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빛의 스나가 눈을 깜빡였다.

"사랑하는 것과 증오하는 것이 섞이면 아무것도 아니지. 내게 있어 너는 아무런 감상도 주지 못하니, 곁에 두고 한 번 보려 한다."

조선과 같이 내가 사랑하게 될지, 일본과 같이 증오하게 될지.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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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7
와 하앙 너무 재밌다... 최고야 셍세.... 너무 맛있어서 반찬 필요없다.. 센세 글 보면 밥이 꿀떡꿀떡 넘어가거든..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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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8
하앙!!!!!!!!!!! 이게 글이야 엿이야 호로록쨥 달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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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9.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이 종년은 알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어제만 해도 냉기가 뚝 뚝 떨어지는 얼굴이었던 저 종놈이, 하룻밤 새에 우리 아기씨만 보면 실실 웃는 꼴이 이상했습니다. 아기씨가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다시금 세상 만사 다 귀찮다는 듯이 무표정해지고, 또 우리 아기씨가 잠시 시선을 주면 금세 가는 입매를 비실 비실 올리고는 눈을 접어가며 웃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나가던 종년들이 그 모습에 헉 하며 숨을 들이쉬고는 볼을 붉히는 것을 압니다. 허나 우리 아기씨는 그 웃음을 보고도 감흥 없이 고개를 돌리십니다. 그러면 저 종놈도 표정을 굳히고는 고개를 돌리고요.

도대체 저 기생오라비 같은 종놈은 무슨 생각일까요?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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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9
반찬이 왜 필요하냐 센세 글 보면서 밥 두공기 뚝딱인데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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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10.

"아기씨, 어딜 가세요?"

저잣거리에서 종놈을 들여온지도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아기씨께서는 간혹 야심한 밤에 산보를 나설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 날인가 봅니다. 이 날은 제가 아기씨께 어딜 가느냐고 물어도 답해주지 않으십니다. 다만, 산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제 손에 쥐여주는 들꽃을 보곤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아기씨께서 정말 산보를 다녀왔다 짐작하는 것입니다.

"산보 나갔다 오마."

"네, 다녀오셔요. 너무 멀리 나가진 마시구요."

정말 아기씨께서 산보를 다녀오든 아니든 이 종년이 무얼 하겠습니까.
그저 아기씨께서 너무 멀리 가지 마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향단이가 아기씨를 모셔올 수 있게요.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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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11.

아기씨께서 나가시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자초시에서 축초시로 넘어갈 때 즈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산보를 하신 적이 없어 불안한 마음에 대문쪽을 흘긋 흘긋 쳐다보고 있자니 물이라도 마시러 나온 것인지, 종놈이 어슬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아기씨는?"

"...어어, 안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조금 어색한 듯한 제 대답에 종놈이 가늘어진 눈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곤히 주무시고 계시니 시끄럽게 굴지 말고 돌아가라."

"밖에 나가셨나?"

"어?"

종놈의 기다란 손가락이 무언가 가늠하듯, 느릿하게 움직입니다. 하얀 것이 톡, 톡, 움직일 때마다 왜인지 모를 압박감에 마냥 꼴깍 침을 삼킵니다. 이제보니 여우가 아니라 구렁이로구나.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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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12.

음울한 녹안이 제게로 향할 때마다 식은땀이 나는 듯 합니다. 아기씨께서 밤중에 몰래 나가시는 걸 보면, 저 말고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 일텐데요. 이 모자란 종년이 아기씨의 바램을 이뤄드리지 못했습니다. 저 구렁이 같은 종놈이 전부 다 알아버렸으니 말입니다.

"아기씨가 그렇게 끼고 다니는 종년이라는 것도 별 것 아닌가 봐."

아기씨가 자주 다니던 길을 걸으며 아기씨를 찾아다닙니다. 저잣거리 엿장수 가게 앞, 고운 비단 가게 앞, 화려한 객줏집. 그러나 아기씨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의 종놈이 보기 드물게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쉽니다.

"우리 아기씨는 생각보다 얌전하지를 못해."

우리 아기씨라니! 우리 아기씨를 저 종놈이 대체 언제부터 봤다고 저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입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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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13.

아기씨께서 집으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기에, 집으로 가는 골목길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걸음을 옮깁니다. 우리 아기씨는 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요. 종놈의 말대로 아기씨께서 총애하는 종년이 제 주인이 있는 곳도 모르고 쩔쩔대는 꼴이 참 같잖아 보입니다. 아기씨, 아기씨. 작게 부르며 걷는데 저 멀리서 종놈이 웬 사람 하나를 들고 옵니다.

검은 옷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게 하는 모자. 그리고,

"...아기씨?"

저것은 필시 우리 아기씨입니다. 이 향단이가 아기씨를 보필한지 어언 17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찌 모를 수 있을까요. 저 종놈의 품에 힘없이 늘어져 있는 분은 내 아기씨였습니다. 풀린 눈으로 제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옅은 숨을 색색 내쉬는 분은 내 아기씨였습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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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14.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서 있는 채로 발이 묶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종놈이 아기씨를 안은 채로 저를 스쳐지나가는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냥 보드라워 보이는 뺨이 창백하게 질리고, 종놈이 뛰어간 자리에는 핏방울이 뚝 뚝 떨어져 있고. 처음 보는 아기씨의 모습에 손발이 달달 떨려왔습니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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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닝겐
15.

세상물정 모르는 고운 아기씨, 밤마실 나가서 숨겨둔 정인이라도 만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흔히들 있는 일 아닌가. 있는 집 아가씨가 밤마다 몰래 나가 숨겨 둔 정인을 만나고 오는 일들. 심지어 우리 아기씨에게는 정혼자도 있다 들었다. 그러니 얼마나 더 애틋할까 생각했다.

끼리끼리 만나서 잘 놀고 있는데 굳이 찾으러 가서 초 쳐야 될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감상도 주지 않으니, 곁에 두고 보려 한다고. 나를 사랑하게 될지 증오하게 될지 두어 본다고.

그리 말해서 기왕이면 사랑하게 만들어 날 버리지 못하게 하자 싶어 한평생 해본 적 없는 내숭까지 떨어댔더니 정작 당신은 남몰래 숨겨 둔 애인이나 만나러 간다니.

그것이 조금 거슬려 아기씨가 아끼는 종과 함께 찾으러 나갔다.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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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8
헐 머선일이야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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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0
센세 기다리고 잇서여...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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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1
센세 기다리고있어요…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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