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랑 그냥 친구였던 시절에 서로 전 연애 얘기를 꽤 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학생이라 본가에 살고 돈도 별로 없으니까 데이트코스가 거의 항상 밥 먹고 카페 가는 걸로 고정이었거든
예쁜 카페 가서 전애인 사진 몇백 장 찍어주고 전애인 인스타 올릴 사진 보정하는 거 기다리고 거기서 몇 시간씩 죽치고 대화만 하다 나오는 그런 데이트를 맨날 했는데 할 말 다 떨어지면 서로 심심해서 폰 보다 나오고 이러는 게 너무 의미 없이 느껴졌다 이런 얘기를 한 번 했었어
그리고 나는 집돌이 성향도 꽤 있는데 현애인은 완전 인싸 밖순이라 애인이 연애 초에 서울 핫플 이런 데도 많이 데려가주고 재밌는 데이트를 많이 했어
애인은 서울 인싸 동네 이런 데를 친구들이랑도 엄청 자주 가는데 보통 그냥 유명한 맛집에서 줄 서서 밥 먹고 분좋카 가서 몇 시간씩 수다 떨다 오는 게 다더라고
거기에 가끔씩 예쁜 소품샵 같은 데 들르거나 쇼핑 잠깐 하거나 코노 이런 데 가는 일정이 추가되는 정도?
초반에는 서울 갈 때 서로 데이트코스 열심히 짜서 이것저것 많이 했었는데 애인이 점점 그냥 맛집이랑 예쁜 카페 가기 정도만 하고 돌아오고 싶어 했어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가 서울까지 차로 편도로만 1시간 이상 걸리는 경기도에 사는데 맛집이랑 예쁜 카페 갔다가 돌아오려고 왕복 2-3시간을 가는 게 잘 이해가 안 됐어..
우리 지역도 엄청 도시라 동네 10분 거리 이내에도 안 가본 데 곳들 널렸을 정도로 맛집이랑 카페 많거든 물론 서울에 있는 그곳들이 여기 다 있는 건 아니지만..
암튼 그래도 애인이 좋아하니까 그런 데이트도 막 나쁘진 않았고 뭐라고 해본 적 없었는데
어느 날 애인이 또 어떤 맛집 가보고 싶다고 연남이었나 어디 가자면서 링크를 보내길래 내가 좋아 주말에 가자~ 몇 주만에 서울 가는 건데 밥 먹고 뭐할까? 이렇게 답장했더니 안 그래도 연남에 가보고 싶은 카페랑 소품샵도 있대
그래서 내가 그럼 밥 먹고 카페 갔다가 뭐하지? 컨텐츠 좀 찾아볼까? 했더니 애인이 텐션 떨어진 말투로 자기는 데이트할 때 무조건 뭔가 액티비티나 생산성이 있거나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컨텐츠가 있어야만 하는 거냐고 하더라고
난 그냥 솔직하게 평소 생각했던 말을 했어 두세 시간 거리까지 가는데 동네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만 하고 돌아오는 게 좀 아쉽게 느껴져서 뭐라도 이것저것 하는 게 좋을 뿐이라고
그랬더니 애인이 난 그냥 예쁜 동네 가서 예쁜 카페에서 수다 떨고 쇼핑 조금 하고 거리 구경하다가 집 오는 그런 게 좋고 자기가 좋아하는 그런 컨텐츠는 가끔 한 번씩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느껴지는데
꼭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거기까지 간 게 아깝다는 이유로 억지로 컨텐츠 찾아서 비싼 돈 내고 뭐라도 해야 하는 내 성향 때문에 데이트 코스 짜기 너무 힘들다는 거야(나도 데이트코스 짜는 거 좋아하는데 서울은 애인이 훨씬 잘 알고 대부분 애인이 가고 싶다는 동네를 가기 때문에 서울 데이트코스는 거의 애인이 짜)
그래서 내가 부담으로 느껴졌으면 미안하다고 난 자기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뭐 안 해도 늘 재밌긴 했다고 나도 그런 데이트도 좋다고 얘기했었어
근데 그 뒤로 애인이 갑자기 서울 가자는 얘기를 아예 안 하고 친구들이랑 약속 더 자주 잡아서 친구들이랑만 서울에 가더라고..
어느 날은 내일은 혼자 서울 가서 소품샵 투어를 하고 올 거라고 하길래 왜 나랑 같이 안 가고 혼자 가냐고 자기 원래 혼자 노는 거 안 좋아하지 않냐고 하니까
그렇긴 한데 내일은 진짜 소품샵만 잔뜩 돌고 어디 유명한 카페 가서 디저트 포장해오고 그렇게 자기가 별로 안 좋아하는 의미없는 코스만 딱 하고 올 거라서 혼자 갈 거래
일부러 좀 삐쭉하게 말하는 게 티가 나길래 설득해서 같이 가야겠다 싶어서 나도 가고 싶다고 같이 가면 안 되냐고 애교부리면서 얘기했는데
아무리 좋게 얘기해봐도 싫다 하더니 앞으로 자기가 안 좋아하는 그런 데이트 강요 안 할 거라고 그냥 자기랑은 아예 뭐 할 거 많은 곳으로 멀리 가든지 동네에서만 데이트할 거래 화내거나 비꼬는 말투도 아니었고 그냥 덤덤하게 저렇게 말했어..
내가 전 연애 관련해서 했던 얘기랑 연애 초반에 신경 쓰이게 한 거 때문에 애인 마음이 많이 불편했을 거 같긴 한데 난 애인이랑 자주 만나고 싶고 애인이 좋아하는 데이트에 맞출 마음 있고 조금의 불평도 안 할 자신 있는데
사과하고 달래고 해봐도 애인은 그냥 됐어 동네에서 놀자 나도 동네 데이트 좋아 이 얘기 그만하자~ 이러고 넘겨버리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그냥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는 건가?
애인이 과거에 사주봤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