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신세 한탄이나 좀 하다 가련다.
여우처럼 웃을 때 가늘어지는 눈매에
시원하게 길쭉길쭉 큰 키에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심지어 왼쪽 눈 밑 눈물점까지.
상투적으로 흔히들 하는 말인 이상형이 아니라
중학생때부터 20년 가까이 꿈에 그리던 완벽한 이상형을
그냥 누가 그대로 복붙해서 내 눈앞에 갖다 놓은 것마냥 길에서 마주치니까
대학생 때부터 고아원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고
찔끔찔끔이지만 매달 월급 쪼개서 기부도 하고 그랬던 나를
나름 괜찮은 놈으로 생각해준 신이 나에게 내려준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직감이 들었다.
정신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번호 물어보고 있고
정신차려보니 집에 들어와서 통화 버튼 누르고 있고
정신차려보니 너도 내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랑 축구팀의 팬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실실 쪼개고 있고
정신차려보니 고백하고 있고
정신차려보니 그렇게 4년을 사겼는데
또 정신차려보니 나는 이제 30대 중반 아저씨가 돼버렸네.
너는 이제 기껏해야 20대 중반인데…
왜 이렇게 늦게 태어났냐고
한 3,4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미 너한테 청혼 박고
이미 네 왼손 약지에 결혼 반지 끼우고 있을 거라고
지금이라도 빨리 좀 늙어주면 안되냐고
되도 않는 개드립에 꺄르르 웃어주는 너를 보면 너무나도 행복하다가도
집에 들어와서 혼자 누워있으면 또 마음이 너무나도 무겁다.
오늘도 한숨도 못 잤네.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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