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를 우주의 주인공이라 믿고 싶어 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 배우, 그것이 우리가 본능적으로 설정한 인류의 좌표입니다. 하지만 ‘특별함’이라는 이름의 마취제를 걷어내고, 차갑고 건조한 우주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면 무대는 순식간에 해체됩니다. 그곳에 남는 것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그저 무심한 물리 법칙의 나열뿐입니다.
우리는 정밀한 기계에 핀 푸른 곰팡이입니다.
우주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 물질과 거대한 항성들의 침묵 속에서, 행성은 그저 미미한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그 찌꺼기 중 하나인 지구 표면에 우연히 습기가 차고, 유기물이 엉겨 붙어 기이한 자가 복제를 시작했습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정밀 기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생명은 시스템의 매끄러운 작동과는 무관하게 발생한 ‘화학적 오염’이거나, 드물게 튀어 오른 ‘데이터 오류’일 뿐입니다. 우리는 필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확률의 틈새에서 발생한 얼룩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주가 빚어낸 가장 효율적인 땔감입니다.
생명을 고귀하다 말하지만, 물리학의 장부에서 우리는 그저 ‘엔트로피 가속기’로 분류될 뿐입니다. 우주는 모든 에너지가 균일하게 퍼져 차갑게 식어가는 ‘열적 평형’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 돌덩이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더 맹렬하게 에너지를 먹어 치우고 무질서를 배설합니다. 문명이 밤을 밝히고 로켓을 쏘아 올릴 때마다, 우주의 종말을 향한 시계바늘은 아주 미세하게 빨라집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숭배하는 가치는 ‘언어적 환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탄생을 두고 ‘경이롭다’거나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뇌가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신경학적 착시입니다. 우주에는 ‘좋음’과 ‘나쁨’, ‘숭고함’과 ‘하찮음’이라는 물리량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원자가 모여 차가운 바위가 되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 되어 시를 쓰든, 우주의 계산식에서는 그저 똑같은 원자의 이동일 뿐입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이 번호는 우주의 섭리야!”라고 외치듯, 우리 역시 우연히 생존했다는 결과에 도취되어 ‘의미’라는 허구를 덧씌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번호 자체에는 아무런 의지가 없었듯, 우리의 탄생에도 우주의 의도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통계적 확률이 빚어낸 잡음이며, 관측되지 않는 순간 사라질 찰나의 깜빡임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기묘한 해방이 시작됩니다.
이토록 철저하게 무가치하다는 사실, 우주가 우리의 시작과 끝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그 냉정한 사실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락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주의 원대한 계획 속에 있는 주인공이었다면, 우리는 매 순간 우주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을 것입니다. 삶은 숙제가 되고, 실패는 우주적 죄악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우주는 우리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고, 우리에게 아무런 대본도 주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완벽한 엑스트라이기에, 비로소 마음대로 춤출 수 있습니다.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존재하는 감각’이 들어찹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류는 먼지보다 못하지만, 추운 겨울 창가에서 내 등으로 쏟아지는 이 햇살의 따스함은 거짓이 아닙니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사랑’이나 ‘의미’가 환각일지라도, 그 환각이 내게 주는 기쁨만큼은 진실입니다.
어차피 우주는 기억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이 찰나의 소풍을 오롯이 즐기면 그만입니다. 광활한 우주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오늘 들이키는 이 숨 한 모금과 햇살 한 줌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허무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한, 가장 가볍고도 눈부신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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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논란에 cj입장문봐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