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제야 꺼낼 수 있는 얘기를 해볼까함(딥한 얘기 주의)
참고:본인 나이 29세(97년생)
어릴 때 개인적인 인생 목표가 취업〈이었음
취업을 하면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때까지는 같이 사는 어머니가 밉다 뭐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지도 않았는데
늘 자유를 갈망하고 혼자 살고 싶었어
어느정도로 집에 붙어있기 싫었냐면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밤 열시~열두시까지 아르바이트하고 집 들어가서
대충 잠만 자고 새벽 다섯시~여섯시되면 학교갔어
어릴 때 최소한의 의식주를 보장 받지 못하고 살았음
의-집에 세탁기가 없었다...
한벌 사서 대충 몇번 입고 버리고 새로 사입거나(지구야미안해) 교복만 입었음
당연히 괜찮은 옷을 입어본적은 없고 시장 가서 티셔츠 3000원~5000원 하는거 사입었다
초등학생 때 처음 샀던 속옷을 고등학생때까지 입었던거같음(심지어 체중은 20kg이상 쪘는데도)
가지고 있는 옷 중 좋은 옷은 사촌언니에게 물려받은 것 하나 둘 정도.
식-아침은 보통 굶고 점심은 급식 먹고 저녁은 굶거나 엄마 남자친구가 사줬음
방학때는 급식이 없으니까 점심은 굶고 저녁 한끼 먹거나 엄마남친이 사줬지만
그마저도 엄마랑 싸우거나 엄마 남친 바쁘면 못먹었어(길면 나흘 정도 굶기도 함)
알바를 해서 돈이 있기야 했지만... 당시 최저시급 4000원대였고
빅맥세트가 5~6000원 했으니까 보통 굶었던 거 같음
어차피 배고프고 몸이 늘 피곤한게 익숙하니까 딱히 이상하다고 못 느낌
주-아직도 기억에 남는게 부산인데도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입김이 나왔었다
중학생 때 처음 에어컨이 생겼는데 혼자 있을때 틀어본 적은 없는듯
초등학생 때 같은반 학우들이 너네집 가난하지?라면서 놀렸음
당시 집 내부에 화장실이 없어서ㅋㅋ
공중화장실 이용했는데 이마저도 너무 오래 돼서 겨울에 물이 얼면 물이 안 나오고
변기물 내리는게 고장나서 직접 물을 퍼서 내려야만 됐어
기초생활수급자든 정부 지원을 받든 했으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 같은데
나는 어리고 덜떨어져서 그런걸 몰랐고 양육자인 어머니는 그런거에 관심 없었음
그런것들도 고등학생 때 그나마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좀 나아진 수준이고
초중학교 다닐 때는 좀 더 괴로워서 랜선친구들과 광적으로 '일기'에 집착했어
일기말고는 속마음같은걸 딱히 얘기할 곳이 없었거든
어머니가 전적으로 나를 방임만 했으면 오히려 괜찮았을지도 몰라
자랑하고 싶은 자식을 원했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게 올바른길인지 알려주신 적은 없음
자신과 닮은 나를 사랑하고도 너무 증오해서 잡도리를 심하게함
늘 내 가방을 뒤져보고, 일기를 훔쳐보고...
나에 대해 모든걸 아셔야만 하셨어
구타당하는건 일상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가 어이없었을뿐.
말괄량이라는 글자가 어려워서 말량광이라고 했다고 혼내고
말을 안 듣는다고 머리채잡고 가위로 마구 자르고
늦게 잠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옷을 모두 벗겨서 알몸으로 내쫓고
군대 가혹행위가 재밌어보인다고 원산폭격, 청기백기 시키기
살충제 먹인거랑 대들보에 대롱대롱 목매달게 한건 왜 그랬는지 기억도 안 남
근데 그렇게 학대 당하고도 내가 어머니를 미워하지 못하고 사랑 받고 싶었음
모든게 끝난 이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사랑하니까ㅋㅋ
그래서 중학생때부터 본격적으로 어머니랑 집에서 안 마주치려고 온갖 노력을함
딱히 어머니가 미워서 그런건 아닌데 그냥 피했음 어머니랑 같이 있기 싫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되나 10평도 안 되는 외할아버지 집에 얹혀 살다가
할아버지 작고하신 뒤로도 그 집에 계속 살아서 월세 걱정은 안 했어
그 집은 6.25전쟁 전후에 지어졌던집으로 추정
내가 거주한 2000년대에도 이미 지어진지 50년된 집이라 보온보냉의 기능도 없었고
곰팡이가 너무 많이 피어서 호흡기가 되게 안 좋았어
금이 간 벽을 보며 언젠가 자다가 무너진 지붕에 깔려 죽는 상상도 수없이 했던 거 같음
물론 개인프라이버시? 그런거 없었어
내공간은 커녕 달동네라 침입하려는 사람과 어머니와 어린 딸이 단둘만 사는걸 알고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 많았음
화장실을 갈 때 마다 무서웠고 집 안에 있어도 안전하단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음
그런 곳에 살아서 겪은 불행한 사고? 없었다고하면 거짓이겠지
지금보다 아동인권이 낮았고 하물며 가난한집에 사는 어린 여자애는 공공재와 비슷했음
가난한 동네에는 cctv도 없고 부모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신고조차 없었으니까
머 암튼 이리저리 뒤틀린 내 정신은...
360도 회전해서 제자리를 찾은 후 1도 정도 미묘하게 좀 더 틀어져 있었음
그래서 초중고 모두 개근or정근을 했음(갠적으로 이게 진짜 광기인듯)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는 아닌데 비행청소년 탈선루트를 제대로 탄 것도 아니고
인생을 열심히 살고자하는 마지막 의지는 있었어서 고등학생 때는 근로장학생이 돼서
나름 두툼한 생활기록부 꾸미기(줄여서 생.꾸)를 하기는 했지만 큰 성과를 이룬 것도 아닌
탈선도, 우수한 학생도 아닌 기묘한 줄타기를 했어
어찌됐든 저찌됐든 2014년도경 17세에 조기 취업해서 첫직장을 다니고 있었음
취업 전에도 여러알바를 했으나 4대 보험+안정적 직장은 그때가 처음
근데 직장이 내 적성에 안 맞았(정확히 말하면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편)지만 걍 다녔어
당시기준 평생 객관적으로 불행했어서 인생이 괴롭고 힘든게 원래 그런건줄 알았음
근데 어느날 가을 정도에 몸에 이상이 있다는걸 자각하게 됐어
내가 생리 날짜를 기록하고 그러진 않았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한달째 생리중이더라고ㅋㅋ 자기관리가 너무 안 됐던거야
일단 회사 점심시간에 병원을 갔는데 진료 보고난 후(결과보다는 부인과의 검진방식을 처음 앎) 살짝 멘탈이 흔들려서
일단 편의점에서 500ml 병음료를 사서 즉석에서 뚜껑따고 원샷 때리고 업무봄
시간이 흘러흘러 난 대학병원까지 가게 됐어
보통 수술 전에 조직검사를 해야되는데
교수가 그냥 암이든 아니든 이건 일단 수술해야된다,
15cm가 넘는 기형종양이 두개이상이라고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말 함
(나도 오래 돼서 두개였는지 세개였는지 기억이 안 남)
엥ㅋㅋ 드라마 넘 많이 보신거 아녜요?
나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겟는데
로또 4등 당첨 확률보다는 낮고 로또 3등 당첨 확률보다는 높은 발병확률로
돌려돌려 내가 걸렸고 그게 17세라는 나이에 발견됨 (대형사이즈로 자라는 시간 때문에 보통 30대 내외에 발견함)
좀 더 빨리 찾을 수는 없었는가? 물으면
솔직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빨리 찾았을지도 몰라
늘 피곤하고 자도자도 졸렸는데
살면서 밥을 제때 세끼 먹고 질 좋은 수면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원래 인간의 디폴트값이 그건줄알았어
이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음
이유가 너무 '현실감 없어서'
남들 눈에는 어떨지 몰라도 난 진짜 죽지 못해서 살았거든
하지만 이 기점으로 원래도 나락이었던 멘탈이 끝을 모르고 추락함
머랄까... 몸이 아프고 그러니까 딱히 회사도 안 가고 싶고 집에 있기는 원래 싫었고 어디에도 존재하고 싶지 않았음
내가 치료받지 않고 이 삶을 포기하는게 이 모든결 해결하는 것보다 빠를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음
처음에는 병이 있다고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않았음
대학병원에 가는 순간까지도 혼자 갔음
어머니가 알면 혼낼거 같았거든
근데 회사 옆자리 직장동료 언니가 어머니한테 알려줬어
어머니한테 나는 치료 받기 싫다고 했더니
그러면 집에 있지말고 공장을 가서 일하든
당장 결혼을 해서 돈을 들고 오라고
노발대발 화를 냄
그래서 수술을 받았어
죽는것보다 어머니가 무서웠음
당시 내가 앓은 질환은 정확히 말하면
암도 아니고 암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음
엥? 그런게 있다고?ㅋㅋ
응 그런게 있는걸 나도 그 때 처음 앎
다행인지 불행인지 항암치료는 안 받았어.
(어차피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았겠지만.)
그 때 초등학생 때부터 저축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을 다 씀
오랜시간 저축했지만 애초에 용돈이란걸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어서
글케 많은 돈도 아니었지만 암튼 다 없어짐
보험가입하신거 없었나요? 물으면 ㅇㅇ없었음
지금도 가입 거절 돼서 없음
시간이 조금 흐르고 열여덟살이 돼서 고등학교도 졸업했는데(빠른년생이라 조기 입학-조기졸업)
집을 나갈 돈도 없고 수술후유증인지 극심한 우울증인지 몸이 계속 아팠음
수술직후에는 걷기도 좀 힘들었고 7월달까지도 추워서 전기장판 5단으로 틀고 잤어
이제 급식도 없고 돈도 별로 없으니까 거의 굶었던거같아.
남은 시간을 쓰는 방법을 모르겠어서 PC방가서 15시간~20시간씩 처박혀 있었어.
(새벽 요금제가 10시간에 4천원 이었던 거 같음,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새벽 PC방 가능했음)
근데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놀고'있는게 고까우니까 매일 싸우게 됐음 그게 한 2년 반 정도
추가 검진같은건 한 적 없지만 젊어서인지 수술이 잘된건지 그새 육체적 회복은 좀 됐음
갈등이 너무 고조 되니까
언젠가 내가 어머니를 찌르거나 어머니가 나를 찌르거나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이 모든게 끝날 거 같다는 생각과
여전히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생이 괴로웠음
그 때 마침 서울에 살고 있던 중학교 동창이 같이 살아보겠냐고 해서
수중에 있던 돈만 들고 빈 손으로 서울에 가게 됨(어차피 가진게 없어서 딱히 갖고 갈게 없었다)
그게 2017년 11월이니까 벌써 8년 7개월 전
그때부터 어머니랑 연락은 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음
가끔 나보고 어머니를 용서하라고 무료 인생 컨설팅을 해주는 인간들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무료 인생 멘토 중에 성공한 분을 못만나봐서 그럴 마음도 없고
애초에 어머니가 나한테 사과한 적도 없는데 내가 용서를 어케함?!
딱 한 번 꿈 속에서 어머니를 용서한 적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그게 내가 원하는거니까)
6억 짜리 전세집 준다고 해서 용서한거고
꿈에서 깨서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6억 정도면
한달에 한 번 정도 안부전화 드리고 생신때마다 식사 같이할 수 있을거같음
하지만 어쩌냐... 울엄마 6만원도 없을 거 같아
제가 어머니를 용서하길 원하시면 도네이션 부탁드릴게요
어머니는 철저한 가해자고
나는 원치 않게 낳음 당해서 20년 넘게
학대 당한 피해자인데
왜... 내게만 용서를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를 일
위에서 한 번도 아버지 얘기가 나온 적이 없는데
놀랍게도 살아 계시고 일년에 네다섯번 정도 가끔 전화함
살면서 뵌 적이 몇번 없어서(마지막으로 만난게 20년 전쯤이니까)
집 앞 편의점 사장님이랑 더 친한 거 같음
아빠랑 사장님 물에 빠지면 사장님 먼저 구해줄지도 몰라ㅋㅋ
누구에게든 도움 청하는 방법은 없었냐? 싶겠지만
놀랍게도 난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생각을 못해봄
결핍된 가능성이라는게 그런거임
자신이 본 적 없고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음
살면서 '어머니의 그림자 밖'이라는 존재 자체를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암튼 글케 됐음
너무 딥한 얘기만 해서 현재 삶을 얘기하자면
이제는 매일이 행복행복해 수준은 아니어도
불행해서 매일매일 울진 않아도 됨
몸은 여전히 안 좋지만(가족력이라 벗어날 수 없음)
더 이상 굶주리지는 않아도 되고 더우면 에어컨 쐬고
세탁기도 있고 깨끗한 화장실도 있는 집에서
사랑하는 남편이랑 나무에 물 주고 꽃 심고
소소한 취미 생활 즐길 정도는 됐음
PTSD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하지만
영원히 그러고 싶진 않다는 생각은 생겼으니까
느리지만 어릴 때 배우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함
남편과 아이는 갖지 않기로 오래 전 합의했고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21살 때 영구 피임술 했음
(수술을 여러번 더 했는데 21살때 난관 제거 했어.)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심리적으로도 잘 키울 자신이 없고
유전적인 만성질환의 고통을 내 대에서 끝내는게
역설적으로 내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었음
밤에 자다가 위산역류 돼서 소화할려고 앉아있다보니
갑자기 밤에 어딘가에 소리치고 싶어져서 쓰게 됐어
마무리를 어케할지 몰겠네
암튼 다들 월요일인데 출근 잘 해
전 이제 자러가보겠습니다 안뇽~

인스티즈앱
"양홍원이 학폭" 작업실 침입해 거울 깬 동창…소속사 "강경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