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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1년 전 (2015/2/01)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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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카테고리 만화/애니



제 2회, 익명만애 글합작 | 인스티즈


편식 없이 골고루 읽고 피드백 남겨주세요. 소외없이 행복한 익만!
- 총대가 글을 전부 읽을 시간이 없어 수위 표기는 따로 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Rain Drop


[긴히지] Rain Drop





녹이 슨 허름한 대문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시린 감각이 이젠 너무나 익숙해 그냥 작게 웃었다. 대문 앞에 어지럽게 쏟아져있는 우편물을 익숙하게 하나씩 집어 들었다. 비에 젖어 너덜해진 종이들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대문만큼이나 녹이 슬어버린 우편함에 비에 젖어 늘어진 우편물을 넣으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작은 우편함은 더 이상 무언가를 넣을 수 없을 만큼 가득 찬 지 오래였다. 손에 들려진 종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우편함 위에 조심히 얹어놓았다.

히지카타 토시로. 종이 위로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보이는 건 네 이름이었다. 비에 젖어 잉크가 잔뜩 번져있었지만. 그건 분명 네 이름이었다. 보기만 해도 시린 그 이름을 작게 불러보려고 입을 달싹였지만, 역시나 목에 무언가 막힌 듯 내뱉어지지 않았다. 녹이 슨 차가운 대문을 손끝으로 쓰다듬는 것도. 어지럽게 쏟아져있는 우편물을 하나하나 조심히 정리하는 것도 내겐 모두 다 익숙했다. 이렇게 네 이름을 되뇌이는 것만 빼고.

 

 

 

창가 쪽 끝자리에 앉은 너는 언제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 햇볕이 따가워 눈이 부셔도. 거세게 내리는 비에 앞이 잘 안보여도. 넌 언제나 무언가에 빠져있듯이 그렇게 창밖만 내다봤다. 그리고 난 늘 그랬듯이 널 바라봤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건만 너는 내 존재도 모른다는 듯이 나를 단 한 번도 바라봐주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세상에 너만 존재하는 것처럼. 넌 너만의 공간에 너를 가둬버렸다. 적어도 내가 본 너는 그랬다.




히지카타.




용기를 내어 너에게 다가갔다. 딱 한번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사카타. 긴토키. 둘 중에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다정하게 불러주는 긴토키도. 무심하게 불러주는 사카타도. 네가 그 입술로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 어느 것이라도 나는 좋았다.




어.

그거 말고.

…….

내 이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왔다. 까만 눈동자가 온전히 내게로 향해있었다. 그리고 내 눈도 온전히 너를 향해있었다. 난 너에게 무엇을 갈구하는 듯 너를 바라봤고. 넌 나에게 무엇을 원하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긴토키.

…….

내 이름. 긴토키.




너의 세상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만 존재하는 그 세상 속에서 나도 함께 존재했으면 했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난 너의 세상 속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었다. 어리석게도.




…….




그리고 넌 끝까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저 입술만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꾹 쥐어지는 손을 바라보다가, 나도 널 따라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더 이상 너에게 내 이름을 불러줄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

 



차가운 철문에 등을 기대고 주르륵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바닥에 맞닿은 엉덩이가 빗물에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럼에도 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바닥을 가득 적시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무릎을 가슴팍으로 끌어 모아 안았다. 천천히 손을 뻗자 차가운 빗물이 손바닥을 가득 적셔왔다. 너를 닮은 비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봄의 끝자락이었다. 예쁘게 피었던 벚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색이 바랜 채 시들어있었고, 선선히 불던 봄바람은 언제 불었냐는 듯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나는 늘 그렇듯 너를 쫓았다.



밥 맛있게 먹어, 히지카타.



태생이 질이 나쁜 아이였다. 매번 어떤 식으로든 남을 괴롭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고, 그게 어떤 방식이던 개의치 않았다. 남을 짓밟으며 자신이 가장 높은 위치에 서려고 하는 잔인함. 하필이면 짓밟히는 대상이 너라는 사실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 아이가 들고 있던 식판이 앞으로 기울어질 때 난 자리에 앉으려던 행동을 우뚝 멈췄고, 기울어지는 식판 아래로 보이는 너의 모습에 난 들고 있던 식판을 꽉 움켜잡았다. 이미 식욕은 저 바닥 끝으로 떨어진지 오래였다. 




…….




교복 위로 쏟아지는 음식물에도 넌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조금씩 눈치를 보며 급식실을 빠져나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넌 음식물을 뒤집어쓴 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같잖은 자존심을 세우는건가? 아니. 그럼 지금 이 상황이 싫어 그냥 달아나려는 걸까? 아니. 죽은거야. 그래. 그때의 넌 꼭 죽은사람 같았다. 그런 널 재미있다는 듯 툭툭 치는 아이의 손길에도 넌 그저 바닥에 떨어진 급식판만 바라볼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교복을 더럽힌 음식물을 털어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히지카타. 몸 팔아 낳아진 기분은 어떤 거야?

…….

더러운 몸으로 낳아져 추하게 사는 인생은 어떤 기분이지?




당사자가 아님에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더럽게 얼룩진 그 목소리를 가만히 듣던 너의 주먹이 작게 떨렸다. 발악. 그래, 그건 너에게 있어서 작은 발악이었다. 난 식판을 꾹 쥔 채 너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연신 히죽대는 얼굴을 한 아이가 너의 머리를 툭툭 치는 걸 쳐내고 내 손이 떨리는 너의 손목을 붙잡았을 때.




너나 맛있게 먹어.




내가 그 아이에게 식판을 뒤집었을 때. 넌 그제서야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하지 말라고 했어야 돼.

…….

왜 그러냐고 화를 냈어야 돼.




내 가르침에도 너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참을성 있게 네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렸지만 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애꿎은 바닥만 신발 끝으로 툭툭 두드리는 널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면대 거울로 비치는 너의 모습은 한없이 작고, 또 작았다.




…더럽지 않아?

뭐가.

…내가.




작게 떨리는 목소리가 아프게 귓가에 내려앉았다. 분명히 들었음에도 난 너의 말을 못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알아듣기에는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고 생각하며 난 손에 물을 묻혀 너의 교복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넌 작게 떨리는 손길로 내 손목을 붙잡았다.




…하지마.

…….

더러워….

…….

…나 더러워.




너는 연신 더럽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너에게 스스로 하는 쪽에 가까웠다. 내게서 한걸음 물러나는 너를 따라 내가 너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응. 더러워.

…….

니가 아니라 교복이.




내가 너의 교복을 다 닦아낼 때 까지 넌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니. 내가 더러워.




난 끝까지 너의 작은 목소리를 못들은 척 외면했다.

 




***




 

소나기가 쏟아지던 어느 날은 너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네가 작게 웅덩이진 곳을 조심히 피해서 걸어가면 나도 널 따라서 그 웅덩이를 조심히 피했다. 골목길임에도 세게 달리는 차에 네가 놀라 담벼락에 가까이 다가가면 난 혹여나 네가 다치진 않을까 걱정하며 널 주시했다. 작은 검정색 우산을 손에 꼭 붙잡은 너는 그리 빠르지도 그리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빗 사이를 걸었다. 그리고 그 걸음이 점점 느려져 이내 내 곁에 머물렀을 때. 나는 작게 웃었다. 쓰고 있던 우산을 접고 너의 우산 아래로 들어와 네 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내가 대신 쥐었을 때. 넌 모르는 척 옆자리를 내어줬다. 난 또다시 작게 웃었다. 왜 따라오는데? 너의 작은 목소리에 난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한번만 불러주면 안 돼?




낡은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난 너에게 우산을 넘겨주며 물었다. 긴토키. 이 세 글자를 그 입술로 한번만 불러줄 순 없느냐고. 한번만 나를 불러줄 순 없느냐고. 너의 세상에 나도 끼워주면 안되겠냐고.




…….




내게 우산을 넘겨받은 너는 그 까만 눈동자를 내게 맞춰왔다. 난 너의 손을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내 너의 입술이 조금씩 달싹거릴 때, 난 묘하게 들뜨는 기분에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잘가.




너의 대답은 내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난 끌어당겨 웃고 있던 입꼬리를 서서히 내렸고. 넌 내 손에 붙잡혀있던 너의 손을 천천히 빼내었다. 내리는 비에 어깨가 젖어 들어가는데도 난 그저 그자리에 멍청하게 서있었다.

다른 건 바라지 않았다. 너의 세상에 나도 함께 존재하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단 한가지였다. 그러나 넌 그 작은 것 조차 내게 허락하지 않았고, 그저 필사적으로 날 밀어내기 바빴다. 어깨에 와 닿는 비가 차가웠다. 꼭 너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비는 너를 닮았고. 너는 비를 닮았다. 

녹이 슨 대문 안으로 네가 사라지고 소나기가 옅게 그칠 때까지도 난 사라진 너의 흔적만 다시 상기시키며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너의 세상엔 여전히 너만 존재했다.

 



 

물기가 가득한 손을 작게 쥐었다. 다시 펴본 손 안엔 여전히 빗물이 고여 있었다. 너를 닮은 비는 이렇게 내게 닿아있는데, 비를 닮은 너는 내 곁에 없었다. 툭 하고 우편함 위에 아슬하게 걸쳐져있던 우편물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빗물에 젖어 들어가는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끌어 모아 안은 무릎에 고개를 깊게 묻어버렸다.

 



 

그날은 지독한 여름의 시작이었다. 끈적한 공기가 교실 안을 뒤덮었고 천장에서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머리카락이 옅게 휘날렸다. 손에 쥔 연필만 빙글빙글 돌리다가 그것마저 금세 지루해져 나무냄새가 가득한 책상에 볼을 갖다 댄 채 엎드렸다. 고개를 돌려 너의 자리를 바라봤을 땐, 정갈하게 놓인 책상만 눈에 가득 들어왔다. 창밖을 내다보던 너의 모습을 그리며 나도 널 따라 창밖 너머를 바라봤다. 유난히 밝은 햇볕이 교실 안에 스며들어왔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둑해질 무렵 교문을 나섰을 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미처 챙겨오지 못한 우산에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있던 나는 이내 빗속을 내달렸다. 내가 가야 할 방향과는 확실히 다른 방향이었다. 그럼에도 난 멈추지 않았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멈춰선 낡은 대문 앞엔 갑자기 내린 비처럼 거짓말 같게도 네가 있었다. 나와 닮은 젖은 모습으로.




…히지카타.




작게 웅크리고 앉아있던 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을 땐 난 네 앞에 쭈그려 앉아 너의 차갑게 젖어든 어깨를 끌어안았다. 얼핏 본 너의 얼굴이 잔뜩 젖어있었다. 내리는 비에 확실히 알 순 없었지만 아마도 넌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감싸 안은 너의 어깨가 조금씩 떨려왔고, 난 떨리는 너의 어깨를 더욱 세게 안았다. 아마도 그때의 넌 내리는 비에 너를 감추려고 그렇게 비를 맞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러고 있으면 누군가는 와주지 않을까 했는데….

…….

역시나 너네.




그때의 넌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때의 넌 뭐가 그렇게 애달팠을까. 그때의 너는 뭐가 그리도 비참했을까. 그때의 너는.




같잖은 아양떨면서 착한척 동정하지마.

…….

사실은 너도 다를 거 없잖아. 




뭐가 그리도 힘들고 지쳐있었을까.




히지카타, 미안한데 오늘만 하게 해줘.

…….

착한척 동정하는거.




너는 내리는 비에 섞여 울부짖고, 발악하고, 토해내며, 소리쳤다. 제발 나 좀 봐줄 순 없느냐고. 혹여 그 돌아봄이 진실됨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한번만 나를 가엾게 여겨줄 순 없느냐고. 제발 한번만이라도…저를 구원해줄 수는 없는거냐고. 너는 무언가에 쫓기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그렇게. 그렇게 발악하고 있었다. 

그런 너를 감싸 안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고 그 다음엔 숨이 막혀왔다. 난 감히 너에게 괜찮다고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고, 다르지 않다고. 너도 그들과,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그러니 널 너무 불쌍하게 여기지 말라고 다독여주지도 못했으며, 가까이 하고 싶다고. 내가 네 옆에 함께 있고 싶다고. 옆이 안 된다면 뒤에서라도 너와 함께 걷고 싶다고 얘기하지도 못했다. 그저 너를 더욱 내 품에 가두며 너의 등을 토닥이는 걸로 내 마음을 대신했다. 그시절 너는. 우리는 그렇게. 그렇게 울었다.

 



 

 

무릎에 묻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훅 끼쳐오는 차가운 바람에 몸을 더욱 웅크렸다. 이제는 조금씩 흐릿해지려는 너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내리는 빗소리에 따라 흐릿했던 너의 얼굴이 제법 또렷하게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두려웠다. 혹여나 널 잊어버리게 될까 두려웠다. 변하는 계절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내게 알려주었고, 그 시간 속에서 너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게 될까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까봐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난 내 시간을 멈춰버렸다. 내 세상을 만들어 그곳으로 끝없이 들어가 잠식했다. 그 언젠가 네가 그랬던 것처럼. 다만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난 내 세상 속에 너를 담았다. 너만 존재했던 너의 세상과는 달리 내 세상엔 너와 내가 함께였다.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아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




지독한 여름도 끝나가고 있었다. 넌 여전히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난 항상 그랬듯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그리고 멈춰선 낡은 대문 앞에 역시나 너는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넌 바닥에 있던 작은 돌멩이를 만지작거리기도 했고, 다리를 쭉 뻗어 발장난을 치기도 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듯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네가 기다리는 그 무언가를 알기에, 조금 씁쓸해진 마음을 숨긴 채 난 덤덤한 척 너의 앞에 마주앉았다. 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고, 난 작게 웃으며 너를 마주봤다. 조금 쌀쌀해진 날씨에 혹여나 네가 추울까 입고 있던 얇은 겉옷을 벗어 너를 감쌌다. 그리고 넌 웃었다.




…고마워.




처음 보는 너의 웃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상상만 해왔던 너의 웃음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예뻐서 숨이 멈춰들었다. 아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너의 모습이 될 것 같아 난 한동안 너의 웃음만 눈에 담았다.




학교엔 안 올 거야?

응.




작은 목소리에 난 그저 입술을 깨문 채 너의 손을 붙잡았다.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잔뜩 차가워진 손을 입가로 가져와 따뜻한 숨을 내뱉었다.




그럼 나 지금처럼 매일 너 보러 여기 와도 돼?

…….

…….

…아니.




아니. 이제 오지마.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겨우 내뱉은 너의 대답에, 난 멍청하게 너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냥 하는 말이라기엔 너의 얼굴이 너무나 단호해서 난 그냥 고개를 숙였다. 난 붙잡은 너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고. 넌 내게 붙잡힌 손을 제법 완강하게 뿌리쳤다. 




비가 많이 오는 날….

…….

그때도 지금처럼 내 앞에 네가 있으면.

…….

그땐 불러줄게. 네 이름.




넌 창가쪽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걸 좋아했다. 언제나 혼자있는걸 좋아했고, 너만의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채 그곳에 머물러있는걸 좋아했다. 확실하게 알 순 없었지만, 아마도 너는 비가 오는걸 좋아했고. 비가 내리는 세상을 가만히 보고있는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리고 그날 그 비가 멈췄을때.

…….

그때부터 내가 너 좋아할게. 




좋아했을까. 그때의 너는 날 좋아했을까.


 




비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밖을 내다보는 거였다. 오늘은 올까. 오늘은 비가 올까. 오늘은 네 곁으로 달려갈 수 있을까. 야속하게도 하늘은 맑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 난 오로지 널 그리며 빗속을 내달렸다. 네가 있을 그곳으로. 네가 있어야만 하는 그곳으로. 손에 꽉 쥔 우산이 번거로워 그냥 달릴까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비에 젖은 채로 널 끌어안으면 네가 추울까봐.




…….




그리고 멈춰 선 낡은 대문 앞에 넌 없었다. 네가 있어야만 하는 그곳에 넌 없었다. 손에 쥔 우산이 바닥에 떨어지고, 숨이 차올라 급하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다 눈에 가득 들어오는 너의 작은 흔적에, 이내 숨이 멈춰들었다.




미안해.

미안해, 긴토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않았다. 하얀 담벼락엔 언제 적어놓았을지 모를 너의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듣고 싶던 내 이름에. 직접 불러주지 않은 네가 야속해 울었다. 미안해. 이 세글자에 담긴 의미를 알 것 같아 끝없이 울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마냥 기다리기만 했던 내가 어리석어 울었다. 이제는 너를 붙잡을수도, 매달릴수도 없기에 또다시 울었다. 이럴 나를 알고 너는 그렇게도 비가 오는걸 고집했던 걸까.

어쩌면, 어쩌면 나는 어렴풋이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잔혹한 진실을 마주보기엔 그때의 난 너무 어렸고, 한없이 작았으며, 나약했다. 그래서 두려운 진실을 외면한채 난 끝내 너를 붙잡고 놓아주지 못했다. 울부짖고, 꽉 막힌 가슴을 쳐내고, 또다시 울음을 토해내며 비참하게. 그렇게 난 너에게 매달렸다. 

비는 오는데, 내 비는 오지 않았다.

 



***

 




얼굴을 감싼 손을 천천히 내렸다. 울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웅크린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색이 바랜 채 조금씩 흐릿해져가는 너의 흔적을 나는 덤덤한 척 매만졌다.




미안해, 긴토키.




긴토키. 다른 곳보다 유난히 흐릿해진 세 글자를 눈에 가득 담았다.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냥 고개를 돌렸다. 난 끝까지 덤덤한 척 했다. 언제나 네가 앉아있던 그곳을 손으로 쓸어보다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히지카타. 그때의 넌. 그시절 너는 뭐가 그리도 바빠서 그렇게도 쉼없이 내달렸던걸까. 이미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더는 달릴 수도 없었을텐데. 조금 쉬어도 괜찮다는 걸 알았을텐데. 대체 무엇때문에 너는 쉴새없이 달려야만 했던 걸까. 너는 뭐때문에 달리는 걸 멈출 수 없었던 걸까. 그 끝엔 끝없이 떨어지는 나락이 있다는 것을 너도 알았을텐데. 벗어날 수도 없이 너를 옭아맬것을 알았을텐데. 나약하고 무력한 나는, 쉼없이 내달리는 너를 붙잡지 못했다. 앞만 보고있는 너를 잠시나마 뒤돌아보게 만들지도 못했다. 그때의 나는 네가 바라보는 곳이 나락인지도 모른채 그저 숨이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리석게 그 자리에 멈춰 멀어지는 너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오르는 숨이 진정이 되고, 다시 너의 흔적을 쫓으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달릴 준비를 하던 나는. 그런 내 앞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네가. 그리고 내가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좋았을텐데. 턱끝까지 차오른 숨이 괜찮아질 때까지. 나를 억누르고 옭아매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조금 진정이 될 때까지. 네가 달리는 속도에 내가 맞출 수 있을 때까지. 아니. 너의 근처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때까지만이라도. 그때까지만이라도 네가 그 자리에 멈춰서 숨을 고르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너는 뭐가 그리도 바빠서 나를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먼저 나락으로 내달린걸까. 뭐가 그리도 바빠서 더는 내가 너를 붙잡을 수도 없이 먼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걸까. 

그리고 나는. 나는 왜 알지 못했을까. 엉망이 되어 끝없는 어둠속으로 떨어져 버린 네가. 작게 웃고있던 네가 어둠속에 영원히 잠식되어갈때. 그때의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왜 알지 못했을까. 잔인한 어둠속에서 네가 진정으로 원하던게 뭐였는지. 네가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몸부림쳤던 그 작은 몸짓을. 그 마지막 몸부림을. 발악을. 나는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히지카타. 너는 끝까지 네 세상속에 나를 두려 하지 않았다. 

너는 끝까지 나와 함께 존재하기를 망설였고. 비겁하게 너의 존재마저도 외면한 채 내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나는 끝까지 너를 구원하려 노력했고. 끝까지 너에게 매달려 너를 붙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아직도 너를 붙잡은 채 너를 놓아주지 못했다.



내리던 비가 옅게 그치고 있었다. 



너를 지켜줄게

 (i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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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사쿠] 너를 지켜줄게 (+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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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이 눈에 보였다. 아..아.. 오늘도 지겨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이었다.

자리를 정리하던 중 오늘은 유난히 밖이 요란스러워 유모인 모니와상을 찾았다.

'오늘 급히 노예시장이 열린데요!'

노예시장? 노예시장은 매년 6월에 열리는 대 행사로 최저의 몸값을 지닌 노예부터 최고의 몸값을 지닌 노예가 팔린다.

그러나 급하게 노예시장이 열렸던 적은 손에 꼽을정도였다.

"유모 노예시장이 왜 열린거죠?" 

"옆 왕국 코가네가와 귀족이 외세침입으로 몰락했다나봐요 그래서 그 귀족의 아들이 노예로 나왔더래요 도련님..."

코가네가와 귀족은 다테지역중에서 가장 빠른게 힘이 축소 되가고 있던 귀족집안이었다. 그귀족의 외세침입은 시간문제라고 할수있었다.

하지만 다테지역총연합군 세력이 외세를 진압했을텐데 몰락이라니 어딘가 이상했다.

더군다나 귀족이 노예로 나온다니..

칸지가 노예로 나온다니.....

코가네가와 귀족과 우리집안인 사쿠나미 귀족 은 지역특성상 왕래가 잦았고 그덕분에 서로 친분관계를 유지할수있었다.

그덕에 칸지와 나는 서로 소중한 친구가 될수있었고 서로 없어서는 안될 사이가 될수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가지 않으면 안됐다.

"유모 어서 갑시다 어서요" "네 도련님"



여기저기에서들리는 함성소리와 여기저기에서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모든소리가 윙윙 도는 것만 같았다

'와 귀족이다!! 귀족이 노예로 나왔어!!' '우와 신기하다!! 이상해!!!!'

그때였다. 단상위로 칸지가 걸어나왔고 사람들은 환호성과 비하를 하기시작했다.



[제 137회 노예낙찰을 시작하겠습니다. 급히 열린점 송구하옵니다. 

노예 이름: 코가네가와 칸지 지역: 다테 제 7 구역 키 191.5cm  1억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낙찰시작]



여기저기서 몸값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신없이 칸지를 쳐다봤고 어디 다친데는 없어보였다.

칸지는 넋이 나간 표정이였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러다 78억까지 몸값이 치솟았고 더이상은 지체할수가 없었다.


"100억" 


[와 100억 100억 나왔습니다. 더 부르시는분 없으십니까? 없으시면 100억에 낙찰되겠습니다. 

100억을 부르신 사쿠나미 코우스케님께서 낙찰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때서야 칸지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놀란기색이였다.


"자 가자 칸지" "코우........." "손잡아"


집에 막 도착했을때였다.

"도련님 주인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습니다. 유모 칸지 목욕좀할수있게 도와주시고 옷좀 급히 구해다주세요"

"네 맡겨주세요 이쪽입니다."


아버지께서 찾으시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우리집은 노예시장으로 나온 노예는 단한번도 데려온적이 없기때문이다.

선조께서 지니셨던 노예들이 대를이어 우리집안에서 일해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몰락한 귀족의 자제를 들인다니 아무리 친분있는 집안의 자제라지만 노발대발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 저 코우스케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아버지께서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계셨고 올려다본 얼굴에는 근심이 드리워져있었다.


"오늘 네가 무슨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네.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상황에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아버지또한 저의 행동을 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몰락한 귀족이 아니더냐 그것도 귀족이 노예라니 어찌하여 그것..을 우리집안에 들이는것이냐"

"몰락한 귀족, 노예를 떠나 제 친구이옵니다 아버지, 하나뿐인 친구말입니다. 저는 당연한 선택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 

".... 아버지는 어찌하여..어찌하여 코가네가와 집안이 몰락할때 까지 무엇을 하셨습니까.. 코가네가와님과는 친한친구사이셨지 않으셨습니까?

왜 어찌하여 다테총연합군은 도와주지 않았던것입니까? 네? 어찌하여...."

"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닌것같구나 코우스케"

"아버지!"

"코우스케 목소리를 낮추거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절때 칸지를 내칠수는 없으실껍니다."

"코우스케!"



다테총연합군 세력이 칸지네집안을 도와주지 않은것은 생각해보면 답이 나왔다.

코가네가와 집안은 중계무역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던 귀족집안이였지만 최근 다테지역 전구역에 해금정책이 시행되어 

중계무역을 하던 귀족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그중의 하나가 칸지집안이였다.

큰 타격을 입었던 귀족집안들은 다테총연합군의 연합비를 낼수가 없었고 외세의 침입으로 하나둘씩 타격을 입은 귀족집안들이 무너져 갈때

다테총연합군은 도와줄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가네가와가 열세에 몰리게되면 아버지께서 도와줄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몰락이라니...노예라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려왔다.


"도련님 칸지도련님께서 목욕하고 계십니다. 옷은 급히 마련할곳이 없어서 수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모 칸지가 지낼 방 알아봐주시고 칸지 목욕이 끝나면 방으로 올수있게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칸지가 방에 오면 무슨말부터 건네야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찮았어? 라고해야할까 힘들었겠다. 라고 해야할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한 표정을 해야할지 생각할수도 생각나지도 않았다.


"코우.."

그때였다. 문밖에서 들려왔다. 그에게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너무나도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그는 힘들게 미소 짖고있었다. 아니 울음을 감추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건넬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보고싶었어"


어렸을때 눈물을 자주흘리던 울보칸지는 커서는 내앞에서 눈물을 흘리지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있었다,울고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미안..해"

미안하단 소리밖에 안나왔다 미안하다고 밖에 할수없었다.


"너가 왜 미안해"

울지 않으려했다 내가 울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나의세상도 무너져내렸다.


"칸지 울지마..울지마"

"응 안울어...."

울고있었다. 너무나도 슬프게 울고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나의 방에서 칸지는 유모가 마련해준 방에서 쉬고있었다.

아마도 칸지는 그동안 못잤던 잠을 자는듯이 눕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다.


'툭..툭...쏴아아아..."


밖으로 나와보니 비가 오고있었다. 하늘도 눈물을 흘리는듯이 쏟아져 내리고있었다.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이마를 스쳐지나갔다.


그때 칸지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칸지는 비를 무서워한다 아니 정확히 비가오는 그 분위기를 무서워한다

어릴때 비만오면 자지러지게 울었던 것이 기억났다.


칸지가 있는 방문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끙끙앓는소리가 크게들려왔다.. 우는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문을 여니 칸지는 몸을 둥글게 말면서 울고있었다.

"칸지..칸지 정신차려"

내목소리도 안들리는지 정신없이 울고있었다.

물이라도 가져다 줘야겠다 라고 생각할때 손목을 잡아왔다.

"가지마...제발 가지마..."

"칸지 정신차려 칸지.."

간신히 눈을 뜨더니 칸지는 다시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나..있지 코우..나있지..."

"응.."

"나 몰랐어...아버지 어머니께서 처참히 당하고 계셨을때도 몰랐어.. 아니 들을려고하지 않았어 보려고 하지않았어"

"칸지.."

"내가 거기서 아버지 어머니를 구했다면 보려고했다면 들을려고 했다면.. 이상황 달라졌을까? 내가 잘못한거야.나때문이야.. 나때문이야 "

"칸지때문이 아니야. 분명 아버님께서도 어머님께서도 칸지 너가 무사하고 다친데 없고 그걸로 괜찮으셨을 꺼야"

"코우."

"제발..너때문이라하지마..제발"

"도망쳐 나오다가 노예시장에서 잡히고나서 너무 무서웠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네가생각났어....."

이 대화를 끝으로 칸지는 눈을 감았고 다시 잠에 빠져든것 같았다.

'지켜줄께 내가 꼭 지켜줄께'




다음날 아침


오늘도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이 눈에 보였다. 눈을 뜨자마자 제일먼저 생각나는게 칸지는 괜찮을까였다.

밖을 나오니 간밤의 내리던 비때문에 땅이 질척해져있었다.

칸지는 아직 나오지 않은 듯 칸지가 있는 방안은 굳게 닫혀있었다.

똑똑 "칸지 들어갈께"

문을 여니 방안에 어지럽혀져있어던 이불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있어지만 그곳에 칸지는 없었다.

급히 유모인 모니와상을 찾았다

"유모 칸지 어디있습니까?" "칸지도련님은 주인님께서 찾으셔서 주인님 방에 있으십니다"


아버지가 칸지를 찾으셨다니 무슨말을 하려고 찾으신건지 눈에 뻔히 보였다.


"아버지 코우스케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아버지방을 들어가니 그곳에는 칸지가 앉아있었다. 

"코우스케 칸지를 제 2구역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아버지! 그게 무슨..!"

"결정 되었다. 바꿀수는 없을꺼야"


나는 아무말도 할수없었다 아버지를 쳐다보았고 그러다 칸지를 쳐다보았다

칸지는 슬픔을 숨긴채 미소짓고있었고 동의하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코우..나 2구역으로 가기로했어 아버님이 보내시는게 아니라 내가 가기로 한거야"

"안돼.내가 지켜줄게 내옆에 있어줘. 제발.. 내앞에서 사라지지말아줘.."

"아니 내가 네옆에 있으면 너까지 다치게될꺼야"


그때였다. 

[문을 열으시오!! 13구역 귀족연합의 전갈이오! 문을 열으시오!]



"결국..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칸지를 집에 들이면 안됬었다."


아버지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셨고 나랑 칸지도 급히 따라 나섰다.

"누구시오!"


[다테 제13 구역 귀족연합 간수이오 사쿠나미상 문을 여시오]


아버지는 수심을 가득히 머금은 얼굴을 한채 모니와상보고 문을 열으라고 시키셨다.

문을 열자마자 수십명의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왔고 간수로 보있는 사람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사쿠나미 상 저 아이가 제 7구역에서 몰락한 코가네가와 귀족의 자제 코가네가와 칸지가 맞소?"


간수를 보이는 사람은 아버지께 물어보았고 아버지는 칸지를 쳐다본후에 말하였다.

"맞습니다. 간수께서는 이아이를 왜 찾으시는겁니까?"

"코가네가와 칸지를 음모혐의로 급히 귀족연합으로 데려가겠소"

"음모혐의라니요!!! 말이 안됩니다."

"오늘 급히 내려온 귀족연합의 명이오  명을 무시할꺼오?"

아버지와 간수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그때 칸지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아버님 신세 많이 지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간수님 제가 코가네가와 입니다."

"코가네가와 칸지.. 제 713조항 음모혐의 또는 음모미수로 인해 귀족연합으로 데려가겠소"

"알겠습니다.....코우 기다려 꼭 돌아올께."


순식간이였다. 순식간에 칸지는 내앞에서 사라졌다. 슬픔을 숨긴채 내앞에서 사라졌다

어찌된건지는 영문을 알수가없었다 


"아버지 이게 어찌된 것 입니까? 음모혐의는 무엇입니까.."

"어느구역이든 마찬가지 일테지만 특히 13구역 귀족들은 다른구역에서 넘어온자들을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칸지는 몰락한 귀족의 자제이다. 귀족연합이 칸지가 우리집으로 온것을모르꺼라고 생각하였느냐?"

"아닙니다. 모르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음모라니요?"

"그건 칸지를 잡아두기 위한 구실일뿐이다. 언제가는 칸지를 잡아 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너무빨라"

"아버지..그래서 칸지보고 제 2구역에 가라고 하신겁니까?"

"나는 하나뿐인 친구를 잃었다. 내자식까지 소중한 친구를 잃게 할수는 없었구나."

"아버지..."

"나는 칸지를 구해볼 방법을 찾아볼꺼다 너는 무엇을 할테냐?"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하나요?"

"힘을 키워라 소중한 사람을 지켜줄수있는 힘을 키우거라 언젠가 이 집안을 물려줘야 할때가 있을거라 생각했었단다"

"......."

"나는 귀족연합으로 갈테니 너는 후계자수업을 준비하고 있거라"


아버지는 급하게 밖으로 나가셨다.



3일후


칸지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집안으로 돌아왔다. 두사람의 모습은 3일동안 잠도 먹지도 못한듯 하였다.

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안좋아 보였고 시종들이 아버지를 부축하였다.



"아버지 어디가 많이 안좋으신거야?.,"

"3일동안 무리하셨으니깐.. 한숨 푹 주무시면 괜찮으실꺼야"

"응...칸지 잘돌아왔어.."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셨고 나와 칸지도 방으로 들어왔다.

"코우 많이 걱정했지?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어떻게 풀려왔어? 진짜걱정했어..."

칸지는 귀족연합에 도착하자마자 철저한 수사를 받았고 수사를 받는 도중에 대리인자격으로 아버지가 들어왔다고한다.

귀족연합은 아버지와 칸지 모두에게 각서를 쓰도록했고 그 수사를 끝으로 풀려나왔다.

"칸지..힘들진 않았어? 다치지는 않았고?"

"응. 힘들기는 했지만 아버님이랑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대해 많이 들었고. 코우 너 아버님을 원망하고 있었지?

아버님도 우리가 외세 침입을 받을 거라는 걸 알으셨나봐.  그래서 다테 총 연합 군에 말씀을 해보셨고 다른 구역 귀족 연합한테도 말씀을 해보셨는데 상황은 달라지지가 않았어.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우리 집안이 몰락한 거는 나 때문에도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도 아니라고 운명에 의해 그러신 거라고 하셨어.. 근데 아버님의 말씀에

힘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무섭기도 했어 내 운명은 이런 건가 하면서 네 옆에 있으면 내 운명 때문에 네가 다치는 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봤어."


"칸지 나 힘을 기를게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를 게 이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게될꺼야 칸지 너는 어떻게 할꺼야? 나는 칸지가 이집에 나와 같이 있

었으면 좋겠어"

"아버님과도 이야기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2구역으로 가야 될 것 같아 숙부님이 계시거든"

"숙부님?"

"응. 숙부님은 2구역 후타쿠치 귀족집안의 보자관이셔 나 거기서 보자관에대해 공부해보려고 해."

"켄지.."

"코우 기다려줄 수 있지? 꼭 보좌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때 돌아올게 너의 보좌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응.. 난 너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을 키울 게 꼭 사쿠나미 집안의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너의 옆에 있을수 있도록 노력할게' 


'너를 지켜줄수 있도록 노력할게'


初戀


[홍적] 初戀 [ 초련 ] 니지무라 슈조 X 아카시 세이쥬로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 어때 아카시?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최악’ 이었다. 절로 입이 꾹 다물어 질만큼 적막한 교실은 먹먹한 가슴을 더욱 더 조여오는 듯 했다. 아까 괜히 체육관 쪽으로 지나갔어. 오늘은 하필 왜 그쪽으로 걸어간걸까 후회한들 지금와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과거의 나를 자책해서, 그래서 더 괴로웠다. 미국, 아버지, 유학, 주장. 단어들만 나열해봤을 뿐인데도 자꾸만 가슴이 일렁였다.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은 내 심정이 어떠한지 충분히 설명이 될 정도였으니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못해 이내 짓뭉게버렸다. 알싸하게 퍼지는 기분나쁜 비린 맛 또한 잘 느껴지지 않았다. 또, 가슴한켠이 아리다면 아렸다. 나에게, 아카시 세이쥬로 에게 그 사람은 마치 도화지에 스며드는 물감이었다. 아니 화선지의 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까. 그정도로 빠르게 내 안으로 스며들었고 더 이상 지워낼 수도 없을 정도로 깊게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너와 나의 행복한 시간들을 그려냈다고 생각한 그림은 이미 찢어져 산산조각이 뒤 였다. 너무나 달콤한 착각에 빠져버린 벌은 너무나 가혹하게 되돌아왔다. 가슴한켠이 아리다 못해 찢어져 너덜너덜 해지는 듯 했다. 니지무라 슈조, 그 사람을 만나고 난 후에는 잠시동안 아카시 세이쥬로 라는 딱딱하고 무료한 틀을 내려놓는 것이 허락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마저도 내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제발 나를 떠나지마…. 그 커다란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어른스러웠지만 아직은 어렸던 소년의 하얀 마이를 적셨다.



“아카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장 보고싶지만 보여지고싶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용한 교실 때문인지 어느때보다 그 울림이 컸다. 황급히 손등을 눈가로 가져가보려한들 소용없었다. 빠른건 니지무라가 조금 더 빨랐다. 아카시 왜울어? 어디아파? 누가 괴롭혔어? 처음 본 모습에 몹시 당황한 듯한 표정과 목소리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이젠 이런 모습도 볼 수 없어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저 다 들었습니다.”

“…뭘 다 들어, 말 좀 해봐.”

“…미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너는 아무말이 없었다. 잔뜩 당황한 모습이 나에게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망설이는 듯 보였다. 결국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체념의 의미, 머리로는 받아들여지지만 내 가슴속은 자꾸만 그것을 밀어내려 하였다. 차라리 당신이 나를 영원히 집어삼키는게 더 좋을 것 같아. 그 정도로 나는 당신이 좋았다. 그 정도로 동경했고 죽을만큼 사랑했다. 항상 사랑한다 속삭이며 얼굴을 붉혔던 것도, 당신에 대한 것은 무엇 하나도 거짓됨이 없었다. 너는 이내 내 어깨를 꽉 잡아 눈을 맞췄다. 항상 바라보던 너의 눈이었지만 오늘따라 이것저것 복잡한 듯 보였다. 당신도 나 처럼 슬픈건가요? 너는 씩 웃어주었다. 그리고 꽉 안았다. 개구지게 웃는 네 웃음이 좋았다. 오늘따라 조금 슬퍼보이던 웃음은 내 착각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저 네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손을 놓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까 더욱 꽉 안았다. 아버지가 아프셔, 네 말을 경청했다. 꼭 나으실 꺼에요. 네게 대답했다. 아니,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나아주세요. 조금은 못된 이기적인 생각마저 들기도했다. 내 어깨에 파묻고있는 네 얼굴이, 그 체온이 더 이상은 과거의 회상, 그리움 정도로만 남아버릴까 덜컥 겁이났다. 어깨가 젖어왔다. 네가 울고있다. 선배가, 니지무라 선배가. 나를 달래며 웃고있었지만 정작 자신 또한 마음속으로 울었던 그 모습에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꼴사납네. 그러게요. 서로가 부서질세라 끌어안았다. 어쩌면 서로를 잊어버리게 될까봐, 잊고싶지 않아 발악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꼭 돌아올게.”

“알고있습니다.”

“아카시 너 지금 얼굴 엄청 웃겨.”

“니지무라 선배도요.”



뭐 임마? 너는 또 웃었다. 그 모습이 눈이부실 정도로 예뻐서, 또 좋아서, 벅차올라서, 그 얼굴을 계속 보고싶었다. 눈물에 젖어 엉망이 된 너와 나의 얼굴에 마냥 웃을수만은 없었다. 간신히 서로를 마주보고 웃었다. 우는건지 웃는건지 헷갈릴 정도 였지만. 겉은 아름다웠지만 속은 고통과 아픔에 썩어 문드러졌다. 잠시나마 슬픔을 잊기위해 악을 쓰 듯 그렇게 웃었다. 기다릴게요 선배, 1년이든 10년이든. 그때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다시 눈물이 제 뺨을 타고 떨어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탓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꾸만 미워졌다. 그러나 고개를 저어대도 소용이 없었다. 눈을 뜨면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네요. 말도안되는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짧게나마 기도했다, 애같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은 어렸다. 마냥 어른스러웠지만 나는 아직 어렸다. 미미한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잊어버리기 전에 너의 모든 것을 모두 눈에 담고싶었다. 아스라질 듯 마지막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꽃이 저물 듯 그들도 저물었다. 마지막 둘만의 학창시절도, 그리고 첫사랑도.






“잘 부탁한다 아카시 주장.”



그리고 너는 그렇게 사라졌다. 봄날의 벚꽃이 지듯, 가버렸다. 영영.


첫 연애 그리고,

[리에야쿠] 첫 연애 그리고,




 어쩐지 묘하게 분위기가 들떠있더라니. 선물 꾸러미와 케이크 따위를 세팅 하느라 여념이 없는 부원들을 둘러본 야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날 연습이 마치자마자 재빠르게 체육관을 벗어나는 부원들을 보며 의문을 품긴 했으나, 평소에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 녀석들이 대부분인지라 가볍게 넘겼던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녀석들이 저를 쏙 빼놓고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 줄이야. 멀찍이 떨어져 그를 지켜보던 야쿠가 인상을 파삭 구겼다. 작고 오밀조밀한 얼굴 위로 만감이 교차했다. 예쁜짓을 하는 부원들이 기특하기도 했고, 저만 쏙 배제해버린 부원들이 얄밉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하나뿐인 애인의 생일을 저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



 10월 30일, 오늘은 하이바 리에프의 생일이었다.



 쿠로오는 케이크를 준비했고, 야마모토는 그라비아 화보집을, 시바야마는 리에프가 좋아하는 유부초밥을 손수 만들었다. 나머지 부원들은 물론이요,'그' 켄마까지 선물을 준비했는데 야쿠의 품만이 텅 비어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애초에 리에프가 본인의 생일을 밝힌 적이 있었던가? 대체 어떻게 알아낸거람. 입술을 삐죽이는 야쿠를 보며 애써 웃음을 삼켜낸 쿠로오가 목을 다듬었다. 크흠, 큼.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어 야쿠에게 다가가는 쿠로오의 뒤로 켄마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쿠로오의 속을 가득 채운 장난끼가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야쿠~. 저를 부르는 적당히 낮은 목소리와 함께 위로 드리워진 그늘에 고개를 들자, 쿠로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을 했다. 





 "선물은? 설마 준비못한건 아니지?"

 "오늘 리에프 생일인지 몰랐단 말이야…."





 제대로 풀이 죽은듯 답지 않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는 야쿠에 광대로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억누르는 쿠로오였다. 야쿠와 리에프는 언제나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야쿠는 새치름한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즐거웠고, 리에프는 사색이 되어 멘탈이 무너지는 꼴이 재미났다. 아무래도 야쿠는 리에프에 비해 세심한 타입이다 보니 놀림의 빈도는 리에프 쪽이 극도로 높았는데. 지금 야쿠의 앞에 놓인 상황은 매번 희생양이 되어준 리에프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고, 네코마 부원들이 똘똘 뭉친 야쿠를 겨냥한 장난이기도 했다. 오늘의 이벤트가 야쿠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던 부원들의 수고를 야쿠가 알아 차릴리 없었다.

 부러 한숨을 크게 내쉬는 쿠로오에 흠칫 어깨를 떤 야쿠의 얼굴 위로 수심이 가득하다. 죄책감과 억울함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준비못했다면 어쩔수 없지 뭐. 리에프도 이해해줄거야~."

 "왜 아무도 말 안해준거야?"

 "설마 애인 생일도 모르고있을 줄은 몰랐지."

 




 한마디 한마디가 죄책감을 푹푹 찔러댄다. 태평한 얼굴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재미를 보는 쿠로오에 켄마를 제외한 부원들 모두가 멋쩍은 웃음을 지어냈다. 무슨일이 있어도 부장한테만은 밉보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신경쓰이면 평범한 선물말고 다른건 어때? 리에프는 그걸 더 좋아할걸?"

 "다른거?"





 고개를 숙여 야쿠의 귓가로 다가간 쿠로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뭐긴 뭐야, 당연히 너지. 





 * * *





 찌르르, 찌르르.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을 반기기라도 하는듯 풀벌레의 청명한 울음소리가 늦은 거리의 정적을 몰아냈다. 한층 낮아진 기온이 가디건을 넘어 촉촉히 젖은 살결을 어루만진다. 아, 샤워하지말걸. 추운건 딱 질색이었다. 불퉁하게 툭 튀어나온 입술이 야쿠의 기분을 대변했다. 애써 가라앉은 기분을 삭히며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애처로운 입꼬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력의 법칙을 따를 뿐이었다. 그런 야쿠의 기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듯 싱글 벙글 만면에 웃음을 띄운 리에프가 제 앞의 작은 몸을 와락 껴안아 볼을 부벼댔다. 연습 후 언제나처럼 샤워를 마친 야쿠에게선 달콤한 향이 진동을 했다. 샴푸를 바꾼 모양이다. 전의 스포티한 향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 사랑스러워라. 리에프의 애교섞인 스킨쉽에 야쿠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 오늘 진짜 감동이었다구요~!"

 "재밌었어?"

 "당연하죠! 이렇게 축하받은 적은 처음입니다."





 쿠로오를 주도로한 깜짝 생일파티는 가히 대성공이라 말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에프가 체육관의 문을 여는 순간 신명나게 폭죽이 터졌고, 말릴 새도 없이 주인공의 얼굴로 돌진한 케이크는 산산조각이 났다. 제 얼굴에 범벅이된 케이크의 잔해에 그제야 자신의 생일임을 자각한듯 리에프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우와! 하는 감탄사를 지르기도 했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라 방방대기도 했다. 어디서나 제 기분에 솔직한 녀석이라는 것을 다시금 자각시킨다. 그 후 리에프는 부원들이 선물을 건낼때마다 경쾌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는데. 그는 야쿠의 단순한 축하인사에도 마찬가지였다. 생일 축하해. 감사합니다! 감동이에여! 차라리 서운한 티라도 냈으면 사과라도 했을텐데. 방싯 방싯 해맑게 웃는 얼굴이 야쿠의 죄책감에 무게를 더했다. 웃는 얼굴 한번 더럽게 치명적이다. 우물 쭈물. 목끝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기 위해 몇번이나 입을 달싹였다. 





 "그게, 저기, 야."

 "야가 뭡니까, 리에프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리에프. …미안하다."

 "에,뭐가요?"





 정말로 모르겠다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리에프에 당혹스러운 것은 당연 야쿠였다. ㅅ,생일선물 못 챙겨줬잖…. 떠듬 떠듬 뱉어내는 말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리에프가 작게 웃음을 터트려냈다. 그 웃음 속에는 일말의 비난도 희롱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작은 연인에 대한 사랑스러움뿐. 노골적인 애정어린 시선에 야쿠의 얼굴이 금새 달아올랐다. 리에프의 솔직한 애정은 늘 야쿠의 가슴팍을 간지럽히곤 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담백한 목소리와 함께 한순간 리에프의 체취가 짙어졌다. 쪽. 부드럽게 포개어진 입술의 온기가 생생하다.




 "…너!"

 "저는 야쿠상만 있으면 된다구요."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열이 몰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뜨거웠다. '뭐긴 뭐야, 당연히 너지.' 쿠로오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지난다. 그래, 생일 선물. 리에프와 사귀기 시작한 후 처음 맞이한 생일을 가볍게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야무지게 주먹을 말아쥔 야쿠가 결심한듯 고개를 들어 리에프와 시선을 마주했다. 리에프!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가 세 음절을 단호하게 담아낸다. 





 "네?"

 "ㅇ,오늘 우리집 갈래?" 



 


 달빛을 머금은 갈색 눈동자에는 더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 * *






 "야쿠상, 저 또 반한것 같아요."

 "낯간지러운 소리 하지마."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얼굴로 말은 잘도 한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리에프의 브리프를 내리자, 반쯤 서 있는 그것이 남다른 위용을 자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얘 러시아 혼혈이었지? 혼혈. ㅎ,혼,혈. ㅇ,아무리 혼혈이라고 해도 이건. 제대로 서기도 전인데 이건 조금.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표정을 한 야쿠가 제 손에 얼굴을 묻고는 좌절했다. 야쿠 또한 혈기왕성한 남고생인데다 번듯한 남자친구까지 있으니, 성관계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남남 커플의 성관계 여부와 방법 등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래, 그때 답변이 뭐였더라? 저 거대한걸 어디에 넣어야 된다고? 고개를 들어올린 야쿠가 빼액 우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역시 무리! 절대 무리!"

 "에에-?! 왜여?!"

 "ㄴ,너랑 하면 나 복상사로 죽을거야. 너도 생일날 애인 제사 치르긴 싫을거 아냐!!"

 "섹스하다 죽는 사람은 없다구요!"

 "있거든?!"

 "야쿠상이 먼저 하쟀으면서! 너무합니다!"

 "그냥 내일 생일 선물 사줄…으악!"





 저도 더이상 한계라구요. 한층 낮아진 목소리에 야쿠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목덜미를 핥아내리는 뜨거운 살덩이에 소름이 돋아난다. 찌릿 찌릿. 팝핑 캔디를 먹은것 처럼. 리에프과 마주한 살결에 전기가 통했다. 집요하게 목덜미를 핥아 키스 마크를 남기는 입술이 맹랑하기 그지 없다. 첫 연애, 그리고 첫 관계. 낯선 스킨쉽이 야쿠의 머릿속에 불을 질렀다. 가슴 위로 솟은 유두를 핥는 질척한 온기에 신음을 삼켰고, 은근하게 아래를 자극하는 단단한 손에 발가락을 움츠렸다. 익숙치 않은 자극이 몸을 데웠다. 흣, 윽. 제 의사와는 관계없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신음을 억누르려 성대를 힘껏 조였다. ㄹ,리에프. 애처롭게 떨리는 목소리에 화답하듯 싱긋 웃어보인 리에프가 조심스레 야쿠의 것을 입에 담았다. 뜨거운 점막이 최대의 성감대를 여과없이 자극한다. 질끈 감아 캄캄한 눈 앞에 섬광이 터졌다. 아, 하아-. 하-. ㄹ,리에프. 그만. 그만! 새초롬한 눈매에 물기가 어렸다. 짜릿한 자극이 머릿속을 백지로 만들고야 만다. 신음 소리를 삼키는 것도 잊은 채 허리를 떠는 몸이 색스러웠다. 츄릅. 야살스러운 소리를 내며 깊게 빨아들이자, 동시에 교성을 내지르며 파정한다. 비릿한 밤꽃 냄새가 리에프의 미각을 자극했다.





 "흐으,그러게 그만하랬잖아. 괜찮아?"

 "괜찮긴 한데. 설마 야쿠상 울어요?"

 "안울어 멍청아!"





 못된 말을 뱉어내는 입과는 달리 쾌감에 얻어맞은 얼굴은 어느새 축축히 젖어들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눈매의 조화가 가히 위협적이다. 쓰읍. 더 이상은 위험한데.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올린 리에프가 아릴 정도로 단단히 선 자신의 것에 시선을 옮겼다. 30cm의 파격적인 체구 차이와 첫섹스. 야쿠가 그리 겁을 내는 것도 이상할 것 없었다. 이를 어찌 해야된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야쿠를 안아 다시 한번 제 아래에서 울리고 싶었지만 미움 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게다가 의외로 여린 사람이라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리에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먼저 섹스를 제안한 것을 보면 성관계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팩트는 통증. 통증만 없애면 된다. 생각에 잠겨있던 녹색 눈이 반짝 빛을 냈다.

 사정의 여운으로 축 늘어진 다리를 들어올려 바짝 모으자, 젖은 얼굴이 의문을 띄웠다.





 "힘주고 모아주세요."

 "뭐하는 건데?"





 예고없이 자신의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단단한 것에 야쿠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두 허벅지 사이에 놓인 성기의 촉감이 생경했다.





 "한번만 봉사해주세요."





 해맑게 웃는 얼굴에 거절조차 하지 못한 야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리에 힘을 실었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리에프의 생일이 머릿속을 스친 탓도 있었지만, 묘하게 흥분에 젖은 얼굴이 섹시해 절로 입이 다물렸다. 슥슥.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하자 부드러운 허벅지의 살결이 리에프의 성기에 진득하게 감겨온다. 조금 전 절정에 다다르는 화끈한 야함과는 달리, 부끄러움을 억누르는 모습에 또 다시 성욕이 치솟았다. 아, 이거 한번으로는 안되겠는데. 그런 표정은 위험하다구요 야쿠상. 피식 웃음을 터트린 리에프의 혀가 야쿠의 입술을 진득하게 파고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공기가 빠르게 데워져 열기를 더했다. 



 교제 후 맞이한 리에프의 첫 생일이. 뜨겁기 그지없는 첫 경험이. 무르익어만 갔다. 



갑돌이의 연애방식


[조로루] 갑돌이의 연애방식



-인스티즈 익명만애 글합작 닝겐 씀.

-길지 않은 글이니 여유있게 읽어주세요.

-이 글을 읽어주는 모든 닝들 감사합니다!












일어나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어쩐지 약간 쌀쌀하더라. 늦여름의 비는 어째 가을보다 차갑게 느껴질까. 팔뚝 위로 오소소 돋아나는 닭살에 기분이 묘해졌다. 뭐야, 나 변태인가. 생각지도 못한 취향을 발견했네 그래.



…. 무슨 그냥 바보 같은 생각인 거지. 나는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고 쓰러지듯 소파에 쭈그려 앉아 TV를 틀었다.



원래 오늘은 우솝과 함께 어디든지 놀러 갈 예정이었다. 일주일째니까. 그 녀석과 헤어진지가. 그럴 의도도,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제가 보기에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이었는지 우솝은 자신이 그 녀석 몫까지 해피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뭐든지 원하는 건 말만 하라며 허풍을 떨었다. 여간 난리법석을 떨었던 게 아니건만, 하필 이런 날에 비가 오다니…. 나이스. 하늘이 날 돕는 것이 분명하다. 가긴 어딜 가, 그냥 집에 있는 게 최고로 행복하다는 걸 우솝 자식은 왜 모르는 거야 대체. 지금은 들썩들썩한 분위기보단 혼자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었다. 마치 그 녀석처럼. 롤로노아 조로.







' …루피. '

' 뜸들이지 마, 그런 거 보기 싫어. '

' 우리 그만하자. '

' ……. '

' 루피. '

' 그러던지. '

' 미안해. 잘 지내. '







으으, 생각하기 싫어. 이놈의 머리는 왜 보라는 TV는 안 보고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짜증 나게! 나는 애꿎은 리모컨의 건전지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기분이 나빴다. 아니지,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행동이었다. 많이 지쳤을 테지. 



조로와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연애를 했다. 서로의 상대도, 그걸 이어주는 관계에서도 우리는 남들과 달랐다. 나와 그는 암묵적인 수직 관계였다. 당연히 그 위에서 그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애초에 내게 고백했던 것은 조로였고, 원래 연애라는 것에 있어서는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편이라고 그러지 않던가. 나는 그 말에 심히 공감한다. 그 까닭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와 함께했던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역으로 말하면, 항상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흘러갔다. 술을 먹으러 가더라도 내가 고기가 먹고 싶다면 그는 말없이 가게를 나와 고깃집으로 향했고, 그의 친구와 내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다면 그 친구를 타일러서 내게 반드시 사과하게 하였다. 타인이 보면 내가 그의 커다란 약점을 잡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언제나 날 위했다. 헌신적으로, 필사적으로. 우리에게 그 이상은 없었다. 

우리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사람들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질척한 것도 없이 한순간에 먼지처럼 사라진 사이. 아니면 그냥 잠시 아이들의 소꿉놀이 흉내를 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미련없이 나를 떠났다. 헤어진 직후엔 혹여 엉엉 울면서 붙잡는 전화가 올까 봐 핸드폰을 꺼놓은 채로 아예 없는 물건 취급까지 했건만, 그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우리 집에 찾아오지도 않았다. 매일 곁에 있던 이가 없으니 그 허전함은 없지 않게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컸던 것은 '오늘부터 난 자유!'라는 희열이었다. 당시 묘하게 나를 감시하는 조로에 아주 진절머리가 나 있던 참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그는 내게 필사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만큼 내가 조금이라도 연락이 안되는 경우엔 불안해하고 초조해 했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어쩌면 그냥 그 자체를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나는 그와의 관계에 사랑을 베푼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싫증이 난 것이다. 이제서야 이 관계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다. 바보같이. 난 그런 니가 마음이 안 들었단 말이야.



내가 그토록 이 이별에 덤덤했던 것은,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언젠가 끝날 사이라고 혼자 못 박아놓고서 그와 연애했던 나 자신을 말이다.







' 아 ―. 오늘의 맛집은 바로 이곳입니다! 사장님, 가게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할게요. '







재미없어.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거란 말입니다. 노력! 노력만으론 되는 게 없다 이거죠. '







이것도 재미없다.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우솝이랑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시간에 이렇게 볼 만한 프로그램이 안 나올 줄이야.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볼륨을 줄였다 높였다 하다 실수로 현 채널의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나오는 시커먼 화면에 잠시 당황했지만, 방송사 로고를 보고 지금 보고 있는 채널이 영화채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 싫어하는데. 차라리 하루종일 잠만 자는게 더 낫겠다. 

TV의 전원을 끄려는 찰나,  화면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중충한 분위기에다가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더니만, 약간 빛바랜 듯한 느낌과 함께 낡은 기타 소리가 고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알 것 같다. 딱 여기까지만. 나는 손에서 놓으려고 했던 리모컨을 다시 붙잡고 방송정보를 확인했다. 역시 그 작품이었다. 롤로노아 조로 그 자식이 보고 싶어 했던 영화. 내가 지루하다고 해서 30분만 보고 나왔던 영화. 밖으로 나온 후 그의 표정이 여간 아쉬워 보였던 게 아니었던 터라 그 모습이 생소하여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 영화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소파에 앉아 영화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밌길래 내 앞에서 싫은 티를 냈던 건지. 궁금한 것도 한몫 했다.










-









지금까지 본 내용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잘난 것 하나 없으면서 운만 더럽게 좋은 여자와 그녀에게 빠진 남자의 사랑 이야기. 딱 거기까지였다. 특출나게 재밌는 부분도 없고 킬링타임용으로 적절하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조로가 멜로영화를 좋아했던가? 몰랐네. 그 녀석의 평소 모습과 화면이 겹쳐 보이자 확 이질감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던 조로는 과묵한, 멜로와는 영 동떨어진 남자였는데, 뜻밖에 감수성이 풍부했었나 보다.



알게 뭐람. 이제 와서 알아서 뭐하냐고. 애초에 안 말해준 지 잘못이지.

나는 대충 TV를 틀어놓은 채로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 망할 놈 때문에 내가 밥도 안 먹었다니,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약간 모자라게 느껴지는 배를 두드리며 거실로 나왔을 때 영화는 중후반 이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내가 밥을 빨리 먹었군. 무언가 더 먹고 싶었지만 이미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 속을 보았던 나였기 때문에 아쉬운 입맛만 다시고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털썩. 소파에 앉아 편안한 자세를 이리저리 뒤척이다 이내 정착하고 TV 화면에 열중했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왔던 여자의 낡은 기타를 찾기 위해 남자가 홀로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저여자 진짜 인생 쉽게 사네, 누구는 자기 물건도 남이 찾아주고 말이야. 나는 그런 사람도 없…. 있었군. 

또, 또 생각났다. 진짜 짜증 난다고! 생각날 거면 조용히 있었구나, 할 정도로 지나가면 될 것을 왜 이리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조로를 생각해서 조로처럼 되는 건가? 미련조차 없는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싫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결국, 나는 TV를 끄고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눈앞에 있는 건 하얀 천장. 그 위에 보이는 초록색 머리통. 젠장할, 오늘따라 너무 그 녀석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이제 와서 갑자기 지난 시간을 추억하기에 난 일주일을 너무 잘 보냈다. 우솝이랑 등산도 갔고, 키드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신나게 놀았다. 단 한 번도, 눈물은 보일 새도 없이 정말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단 말이다. 원래라면 조로 녀석과 마음에 들지도 않는 곳에 갔다가 목적지를 바꾸는 통에 온종일 시간만 다 버리고 피곤하기만 한 하루를 보냈어야 할 시간에. 나는 엄청나게 즐거웠단 말이다.







' 영화, 보고 싶었는데…. '







순간적으로 그 날 아쉬워했던 조로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 미안해 루피. 어디 가고 싶어? '







멋쩍게 웃으며 사과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넌 항상 내게 미안하구나. 근데 어떡하지? 난 너한테 아직 하나도 안 미안해. 하나도 안 보고 싶어, 정말로.



나는 뚫어지게 천장을 쳐다보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어째서 난 다 지나서 이러고 있는 걸까. 그와의 관계에서 난 항상 우위에 있다고, 모르는 것은 없다고 자부했건만 그게 아니었던가.







"…그냥 한 번만, 그날 한 번만 같이 봐줄걸."







그러면 아주 조금은 더 늦게 끝났을 텐데.

내가 보다. 아주 를 고 있어. 나는 실소를 터뜨리다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뭔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금 내 마음이 진심이 아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연애는 거짓이었으니,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 조로, 그럼 이게 맞는 거지? 너라면 이렇게 생각해야 해. 그렇지?







' …루피. '







조로.







' 뜸들이지 마, 그런 거 보기 싫어. '







미안해.







' 우리 그만하자. '







보고싶어.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한참 동안.

아무도 없는 집 안에도, 거세게 비가 내렸다. 











(+)

 연애에서 갑질하다가 현타 온 루피가 보고 싶었습니다. 만약 다음에 또 글합작을 한다면 짧게 나마 조로편을 써보고 싶네요^.^ 물론 다른 작품이랑 원플러스원으로 말이죠. 아무튼 똥글망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마지막으로 원피스 만세 오다 만세 조로루 만세 외치고 떠나겠습니다!


연극


[적흑] 연극


 


 

깊게 들이킨다. 머리를 울리던 비트가 느려진다. 서서히 눈을 감는다. 시끄럽던 비트가 정갈한 박자를 맞춰간다. 몸이 가벼워진다.


 


아아 그래 이 느낌이지. 눈을 뜨면 이곳은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있을 거야. 오로지 내 눈에만 나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색색의 조명이 닿는 대로 색이 변하는 백색 가루들이 몽환적이다.


지독한 향을 풍기고 다가오던 여자들의 몸에서 향기가 난다. 잡아먹을 듯한 새빨간 입술들이 날 유혹한다.


 


굳게 다문 입에서 피식피식 실소를 내뱉던 아카시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테츠야 보고 싶네.


.


.


.


 


새벽 2시. 그에게로 부터 문자가 왔다. 


탁-


문자를 확인하고 신경질적으로 폰을 닫는다.


또 아카시의 연극이 시작됐다.


 


전화가 울린다. 또 그였다.


 


“테츠야…”


 


“…”


 


어딘가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그는 연극을 하고 있다.


 


“테츠야… 테츠야…”


 


또다. 그는 날 이렇게 불러낸다. 곧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처절하게.


그리고 그 앞에 선 날 보며 미친 듯이 웃는다.


 


알면서도 속아준다. 이 빌어먹을 연극에 조연이 되어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진짜 죽어버릴 남자다.


 


“아카시군 무슨 일 있어요?”


 


늘 여기서 전화가 끊어진다.


  


그는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다. 


그는 이 사랑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친구란 선을 넘어온 적이 없었다.


그렇게 외사랑을 11년, 그가 재벌가 여자와 약혼을 했다. 


나 역시 안정적인 사랑을 찾고 싶었다.


다른 사랑이 찾아왔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게 이 연극의 첫 막이었다. 


 


뚝 -


역시나 전화가 끊어졌다. 



 


2:14 AM


평온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암흑 같던 시기 내게 찾아온 한줄기의 빛이었다.


분에 넘치는 사랑, 내게는 너무나 과분한 사람이다. 


쌕쌕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준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아카시군…


 


이 연극을 끝내야만 한다.


  


그는 내가 와주길 기다리며 흔들거리는 의자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만을 바라보겠지.


떨어질 듯 위태로운 와인잔을 들고 그 붉은 눈으로 날 집어삼키듯 바라보겠지.


그리고 이내 그 예쁜 눈을 접으며 미친 듯이 비웃겠지.


  


띠리릭-


익숙하게 도어록을 연다.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습관처럼 그의 방으로 향한다.


 


“아카시군. 아카시군.”


 


문이 반쯤 열려있다.


여기서 문을 열면 그가 보인다.


흔들거리는 붉은 머리카락, 지독하게 붉은 눈으로 날 응시한다.


 


천천히 문을 연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아카시군!”


 


난장판이 된 방안 


열려있는 창문. 흔들리는 커튼, 금방이라도 누군가 있었던 듯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의자.


바닥에 흩날려있는 백색 가루 


 


“…”



그를 찾는다.


 


“아카시군… 아카시군!”


그가 원하는 게 이런 거겠지




그는 약을 했을 때만 날 찾는다.


 



주인을 따르는 개처럼 그의 말에 복종했다. 


그를 사랑하니까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친구 그래서 모든 해주는 친구


그에게 난 이런 존재다.


하찮은, 단순한 유희일뿐, 복잡한 감정 따윈 없다. 


 


“아카시군… 이제 그만 나와주세요…”


이젠 지친다. 이 연극을 지속 시키고 싶지 않다.


 


“테츠야…”


 


등 뒤에서 축축한 팔이 어깨를 감아 온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향수 냄새가 코끝을 타고 머리를 울린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들이 내 어깨를 적신다.


 


“비가 오면 좋을 텐데…”


그는 또 알 수 없는 대사를 읊는다


 


솨아아-


그가 있었던 듯 한 욕실에서 물 소리가 들린다


그는 또 약에 취해서 저 비를 맞고 있었겠지


누군가 멈춰주기 전까지 끝도 없이 쏟아지는 저 비를


 


이 연극 속 그는 비련의 남자 주인공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있는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쯤 되겠지.


 


뒤를 돌아 그와 마주한다.


 


붉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물에 젖은 새하얀 셔츠가 속살을 비춘다.


지독하게 붉은 눈이 날 응시한다.


붉은 입술로 와인을 마시는 그의 모습이 색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그 연인이 맞는다면, 극을 끝내기 위해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러나



“저.. 아카시군..”


그의 적색은



“날 버리지마”


너무 황홀해서 


 


“테츠야”


사슬처럼 



   “난 네가 필요해…”


내 목을 죄어온다


 


 


차가운 손이 셔츠 속으로 들어와 살결을 어루만진다.


그의 숨결이 귓가에 닿는다


 


“테츠야…”


 


“아카시군, 흣… 그만…”


 


아카시의 손이 더욱더 깊은 곳으로 들어 온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로 몸이 점점 달아오른다.


 


“흐읏…흣…”


 


이제 정말로 끝을 내야 한다. 


날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날 위해서 그를 뿌리친다.


  


“아카시군,”


“이제… 이런 짓은 그만둬 주세요.”


 


그는 놀란듯 잠시 멈칫 했지만 이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 붉은 눈이 날 바라 본다.



그의 적색은 위험하다.



“테츠야…”


곧 죽을것처럼


 


“네가 없으면”


처절한 눈빛을 하고


  


“난 죽어버릴지도 몰라”


또다시 내 목을 죄어온다.


 

아이처럼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그는 날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의 곁에 남아 있는지, 자신을 떠날 수 없는지.


 


그를 밀어내야만 한다



“이제 그만해요, 아카시군”



잔혹하게도


당신은 진짜로 내가 필요한게 아니야



“아카시군, 약 했을때만 날 찾잖아요”


 


피식-  온순한 양처럼 얼굴을 묻고 있던 그가 실소를 터뜨렸다.


그의 웃음은 점점 더 커져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응? 약? 아. 그거 말이지.



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한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야…”


 


흩어진 백색의 가루들을 한 움큼 쥔다.


흐읍-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가루를 마신다.


백색의 가루들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고개를 들고 천천히 눈을 뜬다.


그 붉은 눈은 더욱더 선명해져 날 잡아먹을 것처럼 바라본다.


 


“네가 더 아름다워지니까”


 


비틀거리며 다가온 그가 강하게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강하게 타오른다.


 


“윽 아카시…군!”


 


그가 손에 쥔 약을 내 얼굴에 털어놓는다.


금방이라도 숨통을 끊어 버릴 것처럼 코를 막는다.


 


“흐.. 읍! 읍!”


 


백색의 가루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숨을 들이쉬려할수록 그것들은 점점 더 강하게 내 몸을 지배한다.


 


“테츠야”


 


아아 그의 목소리가 울린다.


온 통 잿빛이다


오로지 그의 적색만이 선명하게 빛난다.


 


“아카시.. 군..”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래 테츠야”



그가 손을 잡아준다.


붉은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타고 있다.


오로지 나만을 응시한 채 나를 삼키려 하고 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황홀하다.


 


“테츠야”


 


그가 다시 내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날 떠날거야?”


 


그의 손이 내 몸을 만진다. 


그가 만지는 곳은 열꽃이 피고


 


“하아… 하 …”


 


나는 달뜬 숨을 내뱉는다.


그가 더 안으로 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그녀에게 갈 거야?”


 


강렬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


날 죄어오는 붉은 눈도, 말을 하는 그 입술도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그를



“하아… 아카시군…”


더 원하고



 


“흣! 아, 카시, 군..!”


원하게 된다


  


“있지…테츠야,”


 


“테츠야는”



젠장


 


“날 좋아하지?”


아아 그래



그렇지



이 비련의 남자 주인공이 연인을 버리기 전 까지



이 극에



종막은 없다.


 


비일상


[츠키카네] 비일상 非日常





" 뭡니까, 츠키야마씨. 슬슬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평소 같으면 이미 바보 같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덤벼들었을 터인데 답지 않게 오늘따라 말을 돌려대는 츠키야마의 행동은 카네키의 신경을 바짝 서게 했다. 사실 요 며칠 전부터 츠키야마가 자신의 팬티나 티셔츠를 훔치는 일도 멈추었고 말을 거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행동하면 귀찮은 일들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니 츠키야마가 떠나려는 거라 판단한 카네키는 홀가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카네키는 아까부터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먼저 말을 꺼냈다. 






" 알겠습니다. 이제 원래 자리로 돌아 …,"




" 카네키군!"




그의 큰 목소리 탓에 카네키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 너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았어. 많이 당황스럽겠지만 내가 너에게 품어왔던 식욕의 일부가 색욕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게 제일 정확할 것 같군! 아, 물론 식욕이 없어졌다거나 한건 절대 아니야. 널 먹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고! 허락만 해주면 지금이라도…,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음, 너랑 내가 연애를 하자. 라는걸 어떨까나?."






순간 카네키는 머릿속이 관통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








카네키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마음을 연 자신에게 자기연민을 느꼈다.  얼마나 기댈 곳이 없으면 이렇게나 가벼워지는 걸까, 싶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기댈 곳이 생겼다는 점에선 츠키야마에게 감사했다. 그때부터 츠키야마는 더 심하게 카네키에게 들이댔는데 나중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것에 질려 처음엔 츠키야마를 때리거나 말싸움을 했는데 그에게 그런 게 통할 리가 없다는 걸 느낀 카네키는 포기해버렸고 그때부터 어느정도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진짜 매우 약간의 감정이 되어버렸다.






히나미는 낮잠을 자고 반죠씨 일행은 일 때문에 나가있었다. 거실에 있는 건 츠키야마와 카네키 둘 뿐이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책을 읽던 츠키야마는 카네키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캐치했고, 곧바로 능청스럽게 카네키를 쳐다보았다.






 "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거지, 카네키군? 내 잘생긴 얼굴이라며 마음껏 쳐다봐도 되는데 말이야-." 




"  …받아들일게요."




"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무슨 소린지 모른다고, 카 네 키 군?"






츠키야마의 히죽대는 얼굴에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던 카네키는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츠키야마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꾹꾹 참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 …또 말하게 하지 마세요."




" Bon!, 난 이런 네가 너무 좋다고, 정말."








*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걸까, 카네키는 오늘 낮에 한 행동을 후회했다. 좋아하는 소설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슬슬 잠이 몰려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딱 잠들기 직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문이 벌컥 열리더니 츠키야마가 배게를 들고 서있었다. 






" 지금 저랑 베개 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요, 나가주세요."



" 너무 쌀쌀맞게 굴지 말아줘, 나라도 상처받는다고. 그리고 연인이란 함께 잠도 잘 수 있는 사이잖아."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츠키야마의 태도에 카네키는 할 말이 없어졌다. 결국 이런저런 말싸움을 하다가 시끄럽게 해봤자 모두에게 들키게 될 거라 생각한 카네키는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이미 츠키야마는 침대에 누운 채 웃으며 쳐다볼 뿐,







 " …하, 그럼 저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 마시고 잠만 자세요. 제발"







아까는 그렇게 뻔뻔히 쳐들어오더니 츠키야마의 눈이 혁안으로 변해있었다. 분명 본인의 체취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한 카네키는 약간 떨어져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 츠키야마씨, 흥분한거 뻔히 다 알겠으니까 어떻게 좀 하실래요."



" 이제 연인이니까 이름으로 부르는 건 어때, 그럼 나도 켄이라고…윽,"







웬일로 대답이 늦기에 진짜 덤벼드나 싶어 약간 긴장했지만 실없는 소리를 하는 그가 얄밉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여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 무드가 없다며 궁시렁대던 슈가 뒤에서 살짝 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실 오늘 네 방에 온건 타인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야. 좋잖아, 이런거. 이상한 짓 안할테니깐.


 




" …네."







캄캄한 밤, 넓게만 느껴지는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때면 밀물처럼 외로움이 몰려오곤 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기에게 다가와준 츠키야마는 힘이 됐다. 카네키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누군가와 함께 자는 건 처음이었고 다른 이의 체온으로 인해 느껴지는 따뜻함이 살아있다는 걸 실감시켰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온기를 공유하며 잠들었다.







" 카네키, 오늘은 그를 만나러 가기로…, 아?"







반죠는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는 카네키를 깨우려 방문을 열었을 뿐인데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카네키가 츠키야마에게 안긴 채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소리를 듣고 부스스 일어난 츠키야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반죠이, 좋은 아침-."










*










 " 오늘은 별이 잘 보이네."







서늘한 밤공기 사이로 뿌연 김이 올라왔다. 저만치 서서 지켜보던 츠키야마는 식사를 할 때 피를 뒤집어 쓴 카네키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뒤쪽에서 다가온 카네키가 하늘을 보고 있던 츠키야마를 껴안았다. 어리광…,일까나. 그의 행동이 귀여워 무심코 웃을 뻔 했지만 바라는 대로 가만히 침묵을 지켜주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켄이 나지막히 말을 걸어왔다.







" 이상하네요. 너무 평범하게 행복해서.. 하지만 이것도 절대 영원히…,"







뒤로 돌아서서 카네키의 얼굴을 응시했다.  츠키야마가 정말 싫어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지만 웃고 있는 그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그런 말 하지마, 카네키군. 작게 속삭이는 입술이 와 닿았고, 점차 깊은 입맞춤으로 변했다. 츠키야마의 혀가 카네키의 입술, 입천장, 치아 구석구석을 훑었다. 츠키야마는 입 안에서 느껴지는 피맛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호흡이 부족해 볼이 빨개진 카네키를 보고선 아쉽다는 듯 한 표정으로 그를 놓아주었다.






" 난 그냥. 네가 무리하지 않았으면 해. 부탁이니 너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아줘, 카네키."






 츠키야마는 금방이라도 그가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그를 꽉 안아주었다. 작게 대답이 들려왔다.





" …힘낼게요, 고마워요."
















**
















" 못 보낸다."




" 카네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




" 저 정도의 전력은…!"








카네키는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보내온 일상들이 잠깐의 행복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우습게도 자신은 행복보단 고통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츠키야마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아니 잡으면 안 된다. 자신으로 인해 이미 주변 사람들의 세계가 뒤틀려버렸고 그때문에 눈앞에서도 싸움이 일어나고 있기에 더더욱 할 수 없다. 







" 츠키야마씨…."







츠키야마는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보내온 일상들이 잠깐의 행복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카네키 켄이라는 존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처음엔 이해가 안됐지만 사람이 한순간에 구울로 변하고 동족[사람]을 잡아먹어야 한다는 건 꽤 가혹한 것이라는걸 나중에야 알게되었다. 사실 그에게 고백했던 것도 그가 좋아서라기보단  '제대로된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결국 나중엔 진짜 감정이 돼버렸지만.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그에게 단 하나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카네키를 놓아버리면 다신 못 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더 절박했다.








카네키는 무어라 외쳐대는 츠키야마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계에서 자기만 붕 떠있는 듯 했다. 그리곤 깨달았다. 

자신들에게 평범한 비일상非日常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을.







" …죄송합니다, 츠키야마씨. 말리러 와줘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건 더 이상 싫어요."








우린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키다리 아저씨


[쿠로켄] 키다리 아저씨





노을이 구름마저 새빨갛게 물들인 어느 날, 3층짜리 고아원의 뒷마당.

노란머리에 뿌리만 검은 머리,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격의 켄마라는 소년이 눈을 감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바람은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지나갔고, 그런 바람을 느끼며 그는 살풋 웃었다. 켄마 그는 오래전부터 바람을 좋아했다. 어느 날은 거칠게 불어오면서도 어느 날은 부드러운. 그 이면을, 좋아했다.

"켄마! 너 또 거기 있니? 빨리 들어와, 그거 왔어!"

"네, 아주머니."

켄마는 아주머니 라는 여자가 부르자 눈을 뜨고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거.' 그것은 켄마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무엇' 이었다.

'그것'은 그에게로 도착 할 때마다 다른 물건이 담겨져 왔었다. 의문의 누군가가 보내오는 선물. 그것은 한달에 한번 또는 한달에 두번 켄마를 찾아와 그의 얼굴에 웃음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냈다. 아주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간 그는 신발장 위의 박스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제 방으로 들어가 그것을 열어보았다.


'선물이야. 요즘 잘 지내니?'


작은 카드와 갖고팠던 게임팩.

켄마는 작은 미소를 띄웠다. 다 크던 아직 어리던 자신이 원하던 것이 손으로 들어오면 기분이 좋을 터이니 아무리 켄마라 한들 어쩌겠는가. 허나 그것도 잠시, 그에게 선물이 오는 것은 이 고아원에선 다 알려져버린 일이었다. 또 켄마, 그는 불행히도 고아원의 최약체였다.

"코즈메, 너 또 선물 왔다며?"

아니나 다를까 켄마의 방문을 연 사람은 개중에 제일 심성이 못된 아이였다. 그는 켄마보다 나이는 한살 어렸지만 다부진 체격으로 모두를 내리 누른 사람, 암묵적으로 정해진 '고아원의 왕' 이었다.

"우와, 새로 나온 거잖아! 이것 좀 빌리자."

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그와, 같이 쳐들어온 아이들이 만들어낸 압박감에 켄마는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들은 켄마를 보며 키득대고 있었고, 그런 소리를 들으며 그는 한없이 쪼그라들 뿐이었다.

"이것 좀 빌리자? 응?"

게임팩을 한손에 들고 가까이 다가온 그는 역겨웠고, 징그러웠다. 그의 눈은 게임팩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괴롭히고 싶을 뿐.

"..그러던지."

"..너 표정이 아니꼽다는 표정이다?"

그는 게임팩을 내던지고 켄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뒤로 잡아당겼다. 일방적 폭력의 신호탄. 별 힘도 없던 켄마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잡힌 손을 따라 뒤로 나자빠졌고 발로 차이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에게 맞아야 했다. 켄마, 그는 그냥 가만히 맞고 있었다.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고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익숙해진 것이다.


-


'코즈메 켄마, 19세'

어느새 해는 저물어 달이 떴다. 날은 어두워 졌고, 스텐드만을 켜놓은 방엔 어느 한 남자가 한 소년의 사진과 함께 무언가가 쓰인 종이를 읽고 있었다. 종이를 보며 웃던 그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그 종이와 사진을 재빨리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쿠로, 들어가도 돼?"

"그래, 들어와."

쿠로의 방 문을 두드린 사람은 사진 속의 사람, 즉 켄마였다.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쿠로는 켄마가 침대에 앉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오늘은 괜찮아?"

"여전해."

얼굴에 가득 띄운 미소는 점차 싸늘히 식어갔다. 이 아이는 괜찮은 아이임이 분명하건데, 이리도 어여쁜 아이인데, 아이들은 어째서 그를 괴롭히는 걸까. 눈에 들어온 입가의 상처하나, 눈 옆의 푸른 멍. 모든게 켄마를 불쌍히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켄마에 쿠로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손을 힘들게 억눌러야 했다. 지금 머리를 쓰다듬기엔, 자신의 감정이 너무나 담겨져있기 때문에.

"쿠로는 직장 다닐만해?"

지금 자신을 더 걱정해야 하는데 다른 이를 걱정해주는 여유는 보는 사람마저 놀랍게 만든다. 잠시 잃은 미소를 되찾은 쿠로는 한걸음에 켄마에게로 다가가 그를 꽉 안았다. 꼭 쓰러질 것만 같은 그를. 꽉.

"켄마가 없어서 재미 없어"

됐다 이정도면. 간단한 농담인 줄 알거야.

쓰다듬는건 간신히 참았다 할지언정 감정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훅 올라와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켄마의 숨, 향기, 감촉. 모든것이 쿠로의 몸을 자극했다.

더는 자신을 완벽히 억누를 용기가 없어진 그는 황급히 켄마에게서 자신을 떼어내고 크게, 하지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심호흡을 했다. 정말 위험했다. 켄마라는 아이는, 위험했다.

"그거 왔다며? '키다리 아저씨'. "

"아, 응."

"이번건 맘에 들어?"

"응. 갖고 싶었던거야."

"그래?"

켄마가 조금 웃었다.

"좋아?"

쿠로가 물었다.

"응. 애들이 가져갔는데, 그래도 좋아."

켄마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만지작 거렸다. 선물과 함께 들어있던 카드. 거의 모두가 궁금해 하지 않는 켄마의 안부를 물어온 카드. 켄마는 그게 제 마음에 들었다. 선물을 빼앗겨도 좋은 이유였다. 왠지 자신에게 따뜻한 바람을 불어 넣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나쁜 애들이야, 걔네."

"응."

켄마는 계속해서 미소를 유지했다. 쿠로도 그를 따라 웃고 있었다. 서로는 서로의 미소를 보았다. 밤은 깊어만 갔다.


-


'아저씨는 저를 아세요?'


다음날 낮. 켄마는 여전히 뒷마당에 있었다. 어제 그 아이들이 그저 괴롭힘에 집중한 나머지 멍청하게도 게임팩을 두고 간 덕에 선물로 받은 게임을 하며 뒷마당 벤치에 앉아있었다.

"켄마, 너 또 거기있니?"

"네."

"잠깐 이리로 와볼래?"

아주머니는 뭔가 들떠보였다. 생긋 웃는것이 여간 기분좋은게 아닌 표정이었다. 켄마는 그 이유를 몰라 그저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갔고, 아주머니는 그를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게 해 바닥에 켄마를 앉히고 맞은 편에 앉아 그와 마주보았다.

"너, 대학말이야."

"네."

언젠가, 아주머니가 켄마를 따로 불러내어 같은 자리서 같은 주제를 꺼내셨다. 그때엔 돈이 없어 대학등록금을 내주지 못한다 하셨다. 물론 그도 언제까지고 아주머니께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였지만 직장도 없고 당장에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돈이라 아직은 벌려야 했다.

하기야, 요즘 아주머니도 힘드신데 대학등록금은 민폐인게 분명하다.

"대학, 갈 수 있게 됬어."

"네?"

의외의 말이 그의 귀로 들려왔다. 분명 거절의 의사를 표하기 위해 자신을 부르신거라는 것이라 생각됬는데, 갈 수 있게 됬다니. 자신의 귀는 잘못 되지 않았다. 꿈도 아니다. 근데, 어떻게?

"오늘 아침에 등록금으로 쓰고도 남을 돈이 후원금으로 왔지뭐니? 아, 그리고 너한테 편지 왔더라. 자."

켄마는 편지를 받고는 그 자리서 뜯어 펼쳐보았다. 낮익은 글씨체. 아저씨였다.


'난 너를 알아. 난 너를-"


편지지엔 짤막한 말이 쓰여져 있었다. 허나 켄마는 뭔가를 알아내 표정을 지어보이며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 어딘가로 뛰어갔다. 뛰어간 곳은 2층 쿠로의 방 문.

켄마는 잠시 숨을 고르며 엉킨 생각들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카드에 쓰인 글씨체가 친근했다. 대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것, 또 편지의 내용.


'사랑하거든'


모든 것은 그를 가리켰다.


-


"이번에도 왔다며? 한달에 두번인가?"

"응."

"좋아?"

쿠로는 켄마에게로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왔는지가 아닌, 켄마의 기분을 물어왔다.

"응."

긍정의 대답을 답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일 터. 쿠로는 그런 켄마를 보며 의아해 하면서도 불안해 했다. 혹시,

"그 돈은.. 어떻게 얻은거야"

불안을 맞아들어갔다. 켄마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눈치도 좋았다. 쿠로의 생각보다.

"무슨 소리야?"

"내가 갖고 팠던것들, 내게 필요했던 것들."


나는 그것들을 아저씨께 말한 적은 없어.


"너무 티나잖아, 아저씨."

그 말을 끝으로 켄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쿠로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 볼 뿐. 그 눈빛을 다 받아내며 한숨을 쉬는 쿠로는 조금씩 켄마에게로 다가가 그를 안았다.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이야.

"쿠로, 놔줘."

"나라는건 언제부터 알았어?"

"네가 나한테 좋아한다 했을때. 쿠로가 나 좋아하는건 알고 있었으니까."

아, 하지 말껄 그랬나. 그보다 알고 있었다니.

켄마는 쿠로의 생각을 뛰어넘은 아이였다.

"돈, 다시 줄께."

"아니야. 너 쓰라고 준건데."

켄마는 자신을 부둥켜 안은 쿠로를 억지로 떼어내 다시금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그리고는 쿠로의 볼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짧게 붙었다 떨어진 입술. 시간은 짧았지만 그 여운은 길었다. 그 의미를 모르는 쿠로는 그저 어리둥절한 눈으로 얼굴을 붉혔고, 켄마 또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신세지고 싶지는 않아."


나도 좋아해, 아저씨. 아니, 쿠로.



우리집 인어의 사정


[와카사X타츠미] 우리집 인어의 사정 





"남자들은 가끔씩 빼주기도 해야하는데 안 그러면 큰일나죠 하하하하하"











여느때와 다름없이 타츠미네 욕실의 tv에선 왁자지껄한 토크쇼가 방송되고 있다.








"남자들은 안빼주면 거기가 썩기도 한다던데 진짜인가요?"









"하하하하. 썩는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 된다면은 문제가 생길수도 있겠죠!"










'헉...그러면 타츠미가 위험한게 아닐까?! ㄱ..그러면 타츠미의 그걸 위해서라도 내가...'









-드르륵









'어이~와카사~엣 표정이 왜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거야?'








'아 타가스! 있잖아 오늘 tv를 보는데 남자는 가끔씩 그걸 해줘야한다는데...타츠미는 안하니까...무슨 문제가 생길까 해서...'









'아 그러면 이건 어때? 로멘틱한 분위기로 꾸미고 와인에 최음제를 타서 그걸 타츠미가 꿀꺽!하면은~'









'오 그거 좋다! 그런데...꾸미는거랑 와인은 어떡하지?'









'걱정하지마! 그건 내가 다 해줄테니까! 나만 믿어! 그리고 이 은혜는 나중에 갚으라구~ 그럼 난 이만~'








등장할 때와 같이 창문으로 퇴장하는 타카스 (창문에 안 끼니?)









'자 그러면 타츠미를 위해 나도 준비를 해야지!'










그리고 한참 후










'다녀왔어.'








'타츠미 기다리고 있었어!'









'이건 또 뭐야?'










'음..밖에서 항상 고생하는 타츠미를 위한 선물!

자자 일단 저쪽에 앉으시고~ 와인으로 치얼스~'









'와인하고 장식은 다 어떻게 한거야?아..타카스가 도와줬어!

자자 일단 어서 마셔~쭈욱~'








'아..응'










'타츠미 곧..최음제의 효과가 나타나겠지...?!'









'음? 방금 뭐라고 그랬어?'










'아,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내 몸이 뜨거워지고 있어...이상해...`









'하..아응...타츠미...'








'왜 그래 와카사?!'








'아무래도 최음제를 탄 잔을 내가 마셔버린거 같애..흣...'







'뭐? 최음제?!'








'오늘 tv에서...남자들은 가끔씩 H한걸 해줘야한다는데...하앗... 타츠미는 안하는거 같애서...문제 생길까봐 그랬는데...내가 왜...몸이...흐...뜨겁고 이상해...'







'그것 처리라면 혼자서라도 할수 있는거잖아! 약 기운 떨어질때 까지 혼자서해. 난 나갈테니까.'









'ㄱ,그치만 나 혼자서 할 줄은 모르는걸..?'









'이런...바보인어녀석...'









'ㅌ..탓...흣...츠미히...어서...응...? 타츠미...여기...여기가 욱신욱신거려...만져줘...어서...응..?'









어느새 비늘 사이로 발기되어진 와카사 주니어.








'타츠미...응? 나 너무 단단해져서 아파오려고해...'








'...알았어.하면되잖아!'








'...아...! 타츠미...거기 더 문질러줘...!'






타츠미의 한 손은 어느새 와카사의 페니스를 붙잡고 피스톤질을 하고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와카사의 유두를 비틀기도하고 꼬집으면서 흥분을 유발시켰다.







'하..앗...아앗.....!!'






어느새 타츠미의 손에 흩뿌려진 흰색의 액체.

그러나 한번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와카사의 것은 다시 꼿꼿하게 일어섰다.







'타츠미...어떡해...또이래...'







'어떡하긴...또 해야지...이번엔 니 손으로 해봐.'







'내 손으로...? 타츠미가 다시 도와주면은 안 돼?'







'안되는건 아니지만...그래도 같은 남자의 성기를 만지는게 좋을리가 없잖아!'








'그러면 손만 주면 내가 할테니까...응?'








결국 타츠미는 한쪽손을 마지못해 건네주었고 와카사는 그 손을 볼에 비비다 입속에 넣고 빨기시작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씹어먹을듯이 이를 세워가면서 빠는 야릇한 감각에 어느새 타츠미의 바지위로 페니스가 꼿꼿이 서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와카사는 물에 젖어 벗기기 힘든 타츠미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자신의 페니스와 그의 것을 함께 붙잡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아...읏........! 크으읏!!'








그리고 마침내 둘은 함께 절정을 맞았다.









'와카사 이제 약효과는?'








'아직... 넣고 싸야지 효과가 떨어질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와카사의 손은 슬금슬금 타츠미의 엉덩이를 주물럭 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 하면서 내 엉덩이는 왜 만지는건데!'








'지금 내가 넣을수 있는 사람은 타츠미밖에 없는걸...?'







'그렇다고 해도 너도 남자고 나도 남잔데 어떻게 남자끼리 해!'









'내가 알아서 다할테니까 타츠미는 가만히 있으세요~자~'









그렇게 말하고선 언제 준비했는지도 모를 향유, 젤을 꺼내 손가락에 듬뿍 묻혔다.









'타츠미 다리좀 벌려봐. 응? 다 너 안아프라고 그러는건데 그러면 안되요~'










타츠미가 다리를 벌리자 다리 사이에 가려져있던 고환 그리고 그 밑의 핑크빛의 에널이 보였다.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와카사의 성기는 더욱 부풀어올랐다.










'타츠미 많이 아프면 얘기해. 알았지?'








'알았으니까 됐고 빨리 하기나해.'









와카사의 중지 손가락이 에널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지가 다 들어가자 와카사는 내부 여기저기를 문지르고 찔러보면서 타츠미의 전립선을 찾으려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물감에 끙끙대던 타츠미의 반응이 달라지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 곳을 자극하며 손가락의 숫자를 늘려나갔다.

어느새 삽입된 손가락은 4개가 되었고 에널은 적당히 풀렸는지 빠끔거리며 와카사의 손가락을 야무지게 물고있었다.









'타츠미, 이제 넣어도 돼??'









'으...흣...으응.'








와카사는 한번에 4개의 손가락을 빼내었다. 삽입하고있던 손가락이 사라져서 허전한지 에널은 자신을 채워줄것을 원하고있었다.

에널 근처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다 젤을 짜서 성기에 문질러 발랐다.







그리고 에널 주변을 귀두로 문지르면서 넣을듯 말듯 애태우다가 한순간 푹 하고 성기가 찔러들어갔다.








두꺼운 꼬챙이에 꿰뚫린듯한 감각에 타츠미는 허우적 대고 와카사는 충분히 풀어줬음에도 성기를 꼭꼭 물고있는 구멍에 고통스러웠다.









'읏...타츠미 힘좀 빼봐...잘릴것같아...후읏...'









'윽...그게 내 마음...흑...대로 안되는걸...ㅇ...'











익숙하지 못한 고통에 눈을 감고 있던 타츠미는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움직이지 않는 성기에 눈을 떠서 와카사를 바라보았다.










'후...와카사...이제 움...직여줘...!'











그의 눈에 비친것은 자신의 몸에 성기를 넣고 잠이 들어버린 와카사였다.












'기껏 넣게 해줬더니...넌 태평하게 잠이나 자?! 서커스단에 넣어버릴까 보다!

그래도 다행인건가...잘자 와카사.'
















おわり



깨지지 않을 약속


[원피스 ASL] 깨지지 않을 약속





#원피스를 안보신분들은 스포일러가 될수 있습니다.#





그때 날씨도 오늘처럼 참 맑고 따뜻했지. 사보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장갑을 고쳐 꼈다. 창문 밖을 내려다보며 따사롭고 부드러운 태양이 꼭 자신을 껴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 가볼까." 



형제들을 다시 볼 기회. 사보는 설레는 맘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그 둘이 지금 함께 있다는 장소로 속도를 빨리했다. 기록지침을 뚫어지라 쳐다보는데 조급해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었다. 



"누가 조급해 한다는 거야?" 



풋 하고 여유로운 척 해보지만, 자꾸만 장갑 끝을 매만지는 사보의 손짓에 코알라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긴장을 할 때마다 사보의 버릇이었다. 



"정말 보고 싶어, 그 둘이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다들 엄청나게 강해졌을까…?" 



흥분한 듯 힘이 잔뜩 들어간 사보의 얼굴에 코알라가 다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사보는 한참 동안 기록지침을 쳐다보다 주머니에서 구깃구깃 에이스와 루피의 현상 수 배서를 꺼냈다. 에이스의 것 석 장, 그리고 루피의 것 일곱 장…. 왠지 모르게 사보는 루피의 수배 서가 자꾸 애착이 갔다. 다시 만나면 그때처럼 웃어주려나…. 괜히 어렸을 때 자신을 보며 밝게 웃던 루피 얼굴이 떠올랐다. 빨리 보고 싶었다. 다시 그 웃는 얼굴을 



"어이 불 주먹 에이스! 밀짚모자 루피 너희 운명은 여기까지다! 너희 목을 가져다 바치면 우리의 승진은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아 네 관심도 없네요.루피는 콧구멍에 손가락을 쿡 찔러넣으며 노폐물 제거하는 일에 열중했다. 에이스가 루피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탕! 



루피의 목이 죽 늘어났다 납 총알이 다시 튕겨 나가며 총을 쐈던 녀석의 옆머리를 스쳤다. 



"괴…. 괴물인가?!"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망할!! 놀랐잖아. 이자식들이!!" 



피해는 없지만 깜짝깜짝 놀라는 게 싫었던 루피는 총은 영 달갑지 않아 했다. 금세 나비 눈이 되어 바락바락 화를 내는 루피를 에이스는 여유롭게 말렸다. 꼭 어린 시절의 우리를 보는 듯 괜히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됐어 저런 녀석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으니까" 


"우리를 얕보는 거냐…! 죽어라!!" 



붕-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루피에게 휘둘러져 오는 날붙이를 에이스가 가볍게 붙잡았다. 당황한 남자는 에이스의 차갑고 날 선 눈빛에 식은땀을 흘렸다. 


"조용히 길을 비켰으면 하는데" 


화르르- 


손에서 금세 불이 타올랐다. 뜨겁게 과열되어 남자는 잡고 있던 날붙이를 떨궜다. 



"고무고무- 바주카!!!"



루피의 마지막 일격으로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남자를 쫓아가는 남은 무리를 바라보며 루피가 니시시싯! 하고 웃었다. 에이스는 그런 루피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봤다. 



"아 맞아 동료들!!" 


"찾을 수 있겠어 루피?" 


"으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앞뒤 생각 안 하고 사는 건 여전하군…." 


에이스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루피를 보며 왠지 모를 그리움과 벅차오름, 그리고 뿌듯함을 느꼈다. 이렇게 루피를 보니 또 한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사보 그곳의 너는 건강하지? 난 잘 있어 보시다시피 루피도 이렇게 멋지게 성장했고 -넌 잘…. 있는거냐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씁쓸한 머릿속이 지끈거린다. 당장 내 앞에 얼굴을 보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아니다. 에이스는 생각하는 것을 관뒀다. 이런 바보 같은. 자신을 자책하며 이미 하늘에 있을 것인 사보를 머릿속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웠다. 남은 지우개 가루도 탁탁 털어냈다. 



"아아!! 있다!!" 항구 쪽으로 나오자 자신의 배를 발견한 루피가 다급하게 뛰어갔다. 


"어이 루피 넘어진다고!" 


"고무고무!!! " 


"듣지도 않는군" 



에이스는 혀를 짧게 찼다. 



"멋진 배인데…." 


"그러게 좋은 배를 가졌잖아 저 녀석" 



어…? 누구? 



"뭐냐 네 녀석은?"



분명 인기척은 없었다. 아까 싸웠던 무리의 녀석들인가? 아니다. 달라 이런 느낌의 녀석은 보이지 않았어.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모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포트 가스 D. 에이스" 


"……!" 



경계의 태세를 갖추고 조금이라도 위협의 행동을 할 시 바로 덮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유롭게 모자 끝을 매만지며 웃기만 했다. 어쩐지 그리운듯한 분위기가 나는 남자다. 그리웠던 모자, 그리웠던 머리카락 색, 그리웠던 분위기 에이스는 설마 진짜 설마 하며 자기 생각에 부정을 마구 집어넣었다. 그럴 리 없어. 그는 죽었잖아…. 



"보고 싶었어" 


"사…." 



사보는 모자를 조심스레 벗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눈물 따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정면으로 에이스와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욱신거리며 피가 빠르게 돌았다. 



"사…. 사…. 보……?" 



에이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며 다리에 힘이 쫙 풀려 휘청거렸다. 머리 모양도 바뀌고 빠진 한쪽 치아도 다시 자란 듯 반듯한 치아들이 고르게 나 있었다. 정말 사보야? 진짜? 되묻는 에이스의 말에 사보는 그때처럼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형제!" 


"이 자식이!!!" 



자신을 꼭 안아주길 바랬던 사보가 두 팔을 벌렸고 에이스는 사랑과 그리움을 듬뿍 담아 사보의 명치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 



사실 맞는다는 걸 예상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습은 좀 아프다…. 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흙 바닥에 뒹굴며 괴로워하는 사보가 이게 무슨 짓이냐며 따지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에…. 에이스…." 


"씩……. 씩……." 



에이스의 얼굴은 자신보다 두 배는 더 괴로워 보였다. 에이스는 경련이 온 듯 따닥따닥 위아래 치아를 부딪쳐댔다. 정말 제대로 화난 모양이었다. 사보는 식은땀을 흘리며 에이스의 주먹을 감싸 쥐었다. 진정해 에이스. 나도 할 말은 많으니…. 일단 어디 가서 이야기나 하지…? 사보의 말에 거칠게 쉬던 호흡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차! 생각났다는 듯 



"아. 루피!" 



에이스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항구 쪽을 쳐다봤다. 배가 아직 서 있다 자신을 기다리겠다는 뜻인가. 바보같이 



"다녀와" 



사보가 손짓하며 바다를 응시했다. 에이스는 너는? 하고 물었고 사보는 고개를 휘저었다. 나는 보기만 할게 



"여 에이스! 아까 말했던 내 동료들이야!" 


"이 녀석 민폐 끼치고 다루기 힘들어서 다들 고생이 많겠군요. 잘 부탁합니다." 




깍듯한 에이스의 인사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맞인사를 했다. 다시 출항준비를 하려는 듯한 분위기에 어서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였지만 고개를 저었다. 




"루피, 다음에 만날 땐 좀 더 위다. 더 높은 곳으로 와라." 


"응! 에이스 나 에이스보다 더욱더 강해질 거야!! 기다리라고 에이스!"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짥은 동생과의 만남이 끝났다. 잘 컸어 잘 성장했어 꼭 부모가 된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루피는 여전하네"


"아. 변한게 없어. 그점이 귀여운거지만" 


"너도 하나도 변한게없구만 브라콤말이야." 


사보가 에이스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자기는 브라콤이 아닌것처럼 이야기하는구만 에이스와 사보는 해변가로 장소를 옮겼다. 


"그 코흘리개 녀석이 이렇게 자라서 현상금까지 붙을줄은 몰랐는걸." 



사보는 루피의 수배지를 다시 펼쳐보며 얼굴을 긁적였다. 꽉 들어찬 루피의 웃는얼굴에 사보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즐겁다는듯이 웃고 행복해서 안심이다. 



"아 너도 그거 갖고있냐?" 


"당연하지. 넌 몇장이냐?"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많아 지금 가지고 있는것까지 다섯장이다!" 



사보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흥 겨우? 나는 7장이라고! 사보는 주머니에서 루피의 수배지를 꺼내들었다. 



"이자식 나를 이기다니 제법인데?" 


"웃기지마. 어릴때부터 내가 널 얼마나 많이 이겨먹었는데 그래?" 


"너 포탄맞고 기억이 모두 사라진거냐? 사보 니녀석 매일 내게 패했다고 백전백패!"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럼 어디 한 번 겨뤄볼까?! 누가 위인지 확실히 하자고 바보자식!!!" 


"오냐 와라 한번에 날려주지!!" 



그때 갑자기 부는 바람에 잠시 내려놓았던 루피의 수배지가 흩날렸다. 사보는 앗! 재빠르게 날아가지않게 낚아챘다. 



"휴 큰 일 날뻔했네" 


"어이." 


"뭐 다시 뜨자고?" 


"아니 너, 왜 루피를 만나지않았지? 분명 보면 엉엉 울면서 기뻐했을거라고" "......" 



사보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만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에이스가 루피를 만나러 작은 배를 띄웠을 때 사보도 같이 가자고 냉큼 올라타고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무서워졌다. 루피가 자신을 기억 못 하거나 미워하면 어쩌지. 어릴 적 항상 자신들을 따라다니던 꼬마가 저렇게 듬직하게 자라서 이젠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혹시나 자기를 외면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한 편으론 너무 한심하고 무서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겁쟁이 



"아직은…. 아직은 루피에게 난 아니야. 루피는…. 내가 나중에 좀 더 성장한 후 만나고 싶어 " 


"……." 


"옛날 생각 나 그렇지않아?" 


"아…. 물론 방금도 생각하고 있었지 완전 처음 얼굴을 봤을 때, 처음 봤던 그 녀석 얼굴에 침을 뱉었어. 괜히 시비가 걸고 싶었지." 


"뭐라고?! 왜 루피 얼굴에 침을 뱉는데!!" 


"시끄러워! 너도 초반에 그 녀석 죽이려고 했잖아!" 


"먼저 죽이자는 말을 꺼낸 건 너잖아!" 



금방 또 언성을 높이는 바보들 사보는 금세 욱하고 소리를 지르는 에이스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 다행이다. 라고 루피도 분명 같이 있었다면 더 재밌고 즐거웠겠지. 



"그래서, 너는 검은 수염이라는 녀석을 찾고 있다는 거야?" 


"어. 그 녀석만큼은 내가 용서 못 해" 


"너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너보다 오래 있던 녀석이잖아? 방심하지 마 에이스." 


"네 녀석 엄마 같은 말 하는 것도 여전하구나. 알겠다고 알아들었어." 


"정말이냐? 넌 항상 무모한 행동만 했다고! 루피도 똑같지만" 


"루피 까지마 내 동생이야!" 


"루피가 네 녀석만의 동생이냐?!" 


"하하하!!" 




에이스의 시원스러운 웃음에 금방 화를 내던 사보도 다시 즐겁게 웃었다. 




"사보!!" 




앙칼진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코알라가 손을 흔들며 자신의 손목에 걸린 유리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차! 에이스! 나 이만 가야겠어. 사실 허락도 안 받고 나온거라" 


"아.."  




금새 아쉬움이 묻어나온 얼굴을 하는 에이스가 천천히 일어났다. 바지에 묻은 모래먼지들을 탈탈 털고 옷을 단정히 정리하는 사보를 보며 씩 웃는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만나자 에이스" 


"응 즐거웠어. 사보 정말..."  



말을 잇지못하는 에이스의 어깨를 사보가 주먹으로 툭 쳤다.  



"형제여 나중에 또 다시 만나는 그 날엔 둘이 아닌 셋이서 잔을 다시 나누는거야." 


"그래 우리의 인연은 그 누구도 끊을수없어."



에이스는 사보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맞댔다. 살 끼리의 맞닿음이 서로의 가슴을 더 뜨겁게 만들어 주는거 같았다. 









"이글이글 열매는 너에게 넘겨줄수 없다. 밀짚모자 루피." 




단정한 목소리가 루피의 신경을 건드렸다. 




"넌 뭐야?! 니가 뭔데 이글이글 열매를 넘길수 없다는 소릴하는거야...! 날려버ㄹ...!!" 




모자를 벗고 고개를 들자 하던 말을 다 잇지못하고 멍청한 얼굴로 쳐다보는 루피를 사보는 다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루피." 


"어…. ㄸ…. 어…. ㄴ…. 넌…." 



사보는 정말 머릿속이 뜨거워 터질 것만 같았다. 내 앞에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아이가 있다. 벌써 이렇게 다 컸지만, 자신의 눈엔 아직도 7살의 어린아이 루피. 처음에 루피 녀석이 드레스로자에 있다는 말에 이 근방을 미.친듯이 달려 쑤셔댔었다. 


"어으…. ㄱ…. 사 훌쩍 사르오…! ㅆ…. 큽!!" 



루피의 눈에서 홍수가 났다. 제대로 발음도 안되지만 분명 다수의 욕이 섞여 있었다. 



"루피…. 진짜 정말 보고 싶었어." 


"사보 오오 으흑흑흐읅 정말~ 정말 사보인 거야?! 어흐으어엉엉!!" 



루피는 사보에 달려들었다. 옛 시절 에이스가 죽은 줄 알고 울고불고 달려들었던 것처럼. 분명 사보도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루피는 사보에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아냈다. 



"왜! 왜 이제 나타났어!! 으윽…. 흡…. 진짜 죽…. 죽은줄…. 알았단 마ㄹ…. 이야……!" 



너클로 두들겨 맞고 피 칠갑이 되어서 서럽게 울던 때보다 더 심하게 우는 루피를 사보는 어떻게 해줘야 되는지 몰라 그저 등을 쓰다듬었다. ? 



"루피. 울지마 착하지? 응? 제발 루피" 


보는 사람까지 괴롭게 할 정도로 루피는 그치지 않고 펑펑 울었다. 눈물에 콧물에 사보의 옷에 질척질척하게 묻어나는데도 사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루피를 꼭 껴안았다.  



"으흠…."  


이렇게 울정도로 나를 반겨줄 줄 몰랐는데…. 사보는 되게 기뻤다. 입꼬리가 씰룩쌜룩 움직였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루피. 진정해 루피 그만 울고." 


"흐윽…. 윽…. 그치마안…." 


"너 지금 엄청나게 바보 같은 얼굴 하고 있다고?" 


"흥! 사보도 마찬가지라고!" 


"하하하! 그런가" 


"뭐야 대체!! 살아있었으면 바로 나타났어야지! 연락했어야지!! 이 바보 자식아!!바보 노란 머리! 바보 귀족!!" 



사보는 울컥했지만, 딱히 변명할 거리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래 자신도 말 못할 사정이 아주 많은걸….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귀여운 동생의 어리광이라 생각하자. 사보는 여전히 전혀 달라지지 않은 동생을 보고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한가지 달라졌다면…. 



"이건…." 


"쿨쩍... 아 이 상처? ..별거 아냐" 



훌쩍거리며 루피가 콧등을 쓸었다. 사보가 가슴 쪽 커다란 흉터를 장갑을 벗어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괜히 왼쪽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 -만약…. 내가…. 입술을 깨물고 흉터만 응시하고 있는 사보가 부담스러워 루피는 인상을 썼다. 괜히 보이고 싶지 않았다. 루피는 양팔로 흉터를 최대한 가렸다. 사보가 무슨 자세냐며 키득키득 웃었다. 


"흠…. 사보…. 여긴 어쩐 일이야…?" 


"음 사정이 좀 있어서…." 



그렇지만 사보는 여전히 흉터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루피가 빨개진 눈 주위를 긁적이며 시싯 금새 바보같이 웃는다. 



"멋지게 자랐구나. 루피 현상금도 꽤 올랐고" 


"응! 해적왕이 될 거니까!" 


"그래. 너의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지." 



어릴 때 루피에게서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하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었다. 제 주제에 무슨 해적왕이야? 비웃었던 처음 만났던 날 그렇지만 지금의 루피는 자신의 꿈을 향해서 모험하며 꽤 이름을 날렸다. 진짜 엄마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귀여운 동생의 어리광이라 생각하자.


"루피 이 뒤는 나한테 맡겨." 


"아…. 그치만…." 


"넌 선장이잖아? 동료들이 위험하지 않아? 사정이 있는 거 같던데" 


"아…. 맞아…. 트랑이…!!" 



루피는 허겁지겁 투구와 망토를 벗었다. 그리고 사보의 머리에 투구를 폭 씌웠다. 



"난 지금 루시라는 이름으로 다니고 있으니까 얼굴을 보이면 안돼! 그니까 벗지 말라고!" 


이미 절반 정도의 사람은 네가 루시가 아닌걸 알고 있을 테지만 사보는 괜히 꺼낼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루피가 콜로세움의 출구로 바삐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 대 맞을 줄…알았어…." 



사보는 가짜 수염을 인중에 떨어지지 않게 잘 붙였다. 좋아 



"에이스…. 너의 의지는 우리가 이어나가는 거야 그러니 에이스! 너의 능력 내가 가지겠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시끄러운 환호성이 흥분을 고조시켰다. 에이스와의 만남…. 그리고 루피와의 만남…. 다음에 만날 땐 셋이서 다시 잔을 나누자 했던 약속….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것이 절대 아니다. 그 녀석의 불꽃은 지지 않았어.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에이스의 의지가, 루피의 다짐이…. 내 가슴속에 꺼지지 않고 계속- 사보는 주먹을 쥐어틀었다. 



"보고 있으라고!! 에이스!!" 



그 날따라 태양이 따뜻했다. 마치 자신에게 수고했다며 에이스와 루피가 뒤에서 자신을 꼭 안아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간질간질했다. 


주먹이 떨렸다. 


살아있길 잘했어. 



큐티섹시나시앙


[가오나시] 큐티섹시나시앙 (자공자수)





 부제-다리를 보기 위한 당신의 사투.

 *하나하키병 설정이 들어있습니다. 알려진 설정과 약간 틀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후반부 멘탈 붕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모쪼록 조심해서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어허, 가오나시에 대해 알고 싶다 말하는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구만,”

 흥미로운 표정의 교수가 당신을 향해 작은 책을 내민다. 책에는 흐릿한 검은색의 그림과 함께 ‘가오나시에 관한 고찰’ 이라는 제목이 인쇄되어 있다. 당신은 뭔가의 이끌림으로 인해 작은 책의 표지를 넘기게 된다. 그런 당신의 옆에 어느새 흐릿하게 가오나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챕터 1. 다리

 [독자는 밑도 끝도 없이 나온 ‘다리’라는 단어에 대해 매우 놀랐을 것 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독자가 모르는 것이 있다. 가오나시는 투명하게 변할 수 있는 막 속에 다리를 숨기고 있는데,]


[그 다리가 모에 포인트다.]


 “워매, 이게 뭐시여!”


 당신은 급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왼손으로 눈을 내린 당신은 이미 축축하게 젖은 손을 발견한다.


“와 나, 돌아버리것네. 이게 뭐여…, 교수 자식 가만 안 둔다 진짜. 이딴 걸 책이라고 내미냐.”


 평상시 책을 읽지 않는 당신은, 한 페이지를 읽었음에도 금세 피곤해지는 자신의 눈을 오른손으로 비비며, 글을 싫어하는 자신을 탓한다. 자연적인 바람이 불어 당신의 머리카락을 흩트리고, 당신은 손을 내리고 앞을 본다. 믿을 수 없는 표정. 찢어발길 듯 책자를 들여다본다.


*챕터 2. 가오나시의 서식지

 

[가오나시는 흔히 온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가오나시’ 존재 자체가 요괴 종으로 분리되며, 신들과 온천의 관리자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한다. 독자는 온천 주위를 떠돌다 보면 환영받지 못한 가오나시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칙쇼…그렇다고 온천으로 보내냐.”


 당신은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뒤로는 족히 몇 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강이 당신의 퇴로를 가로막고 있었고, 당신의 앞으로는 작은 가게가 밀집된 구역과, 거대한 붉은 벽의 온천이 서 있다.

 순간 당신은 눈을 의심한다. 내려다 본 당신의 피부가 흐릿하게 변한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앞에 나타난 가오나시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손짓을 한다. 따라오라는 듯하다.


“아…아아……아.”

「따라와…」


 아까부터 당신은 슬슬 자신이 제정신이 아님을 느낀다. 느리게 앞서가는 가오나시를 뒤따라간다. 당신은 책을 탈탈 털어 내렸다. 초록색의 경단이 손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애초에 가오나시는 손이 있었나…」


 당신은 한참 전에 보았던 영화를 떠올린다. 분명 경단은 자신을 사람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흥미를 느낀 당신은 경단을 먹지 않고 남겨두기로 한다. 앞서가던 가오나시는 자꾸 당신을 훔쳐본다. 하얀 가면에 어렴풋이 홍기가 도는 듯하다.


“아아아…아아…아…”

「빨리 와, 자기.」


 큰일 났다. 당신과 저 가오나시는 연인 혹은 부부인걸로 보인다. 당신의 회색 등판에서 축축하게 육수가 흐른다. 당신은 책을 들고 파르륵, 빠르게 장을 넘긴다.


*챕터 7. 가오나시의 번식

 [필자는 가오나시가 암, 수로 나뉘어 번식을 하는 번식 정통설을 주장하고 있다. 가오나시의 번식에 대한 추측은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이다. 유일하게 밝혀진 게 있다면 가오나시는 다른 가오나시에게 구애를 한다는 것이다. 꽤나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당신은 뒤로돌아 강물에 책을 던졌다. 더 이상 아는 걸 원하지 않아. 중얼거려도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건 아- 하는 신음뿐이다.

 당신의 앞에서 걸어가던 가오나시는 어느 새 당신의 옆으로 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게 은근히 기분 좋은 손이다. 어느새 손의 감촉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굉장한 적응력이다. 

 당신과 가오나시의 걸음이 느렸기 때문에, 어느새 해가 져가고 홍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림자 인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온천까지 가는 길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아무도 당신 둘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옆의 가오나시는 매우 편안해 보인다. 당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게 느껴진다. 당신은 이제 가오나시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기꺼운 느낌이다. 점차 내가 가오나시라도 어때, 하는 편안한 생각을 지닌다. 

 많은 신들이 당신을 앞섰다. 전부 같은 배를 타고 온 듯, 같은 향을 풍긴다. 당신과 가오나시만이 이질적이다. 점차 당신의 앞은 비어갔다. 개구리 종업원이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온천의 나무 재질의 미닫이문을 닫는다. 옆의 가오나시는 당황스러워 하는 태가 난다.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니, 여행을 계획한 것처럼 보여, 수컷이구나 하고 당신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당신과 가오나시는 한 인간 소녀 덕에 옆의 창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

「예약 했었는데…“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괜찮아, 하루정도는 살펴 보는 것도-」


“아…아아아…아…”

「하지만, 우리 신혼여행이-」


 아뿔싸, 신혼여행이었다. 당신은 남편 가오나시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었다. 안으로 들어온 당신은 매우 넓은 온천에 감탄한다. 그럴 수밖에, 칠성의 온천으로 불리는 온천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당신은 당신의 오른편에 있는 남편 가오나시의 저력에 놀란다.

 남편 가오나시는 매우 쑥스럽게 웃었다. 당신의 눈에 그는 귀엽게 비친다. 순간 움직이는 마음에, 당신의 등줄기에 두 번째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온천은 꽤나 정신없어 보였다. 깨끗한 물의 냄새와 몇몇의 약재냄새만 풍겼던 온천 안에 악취가 흩어졌다. 오물신이 들어왔다고 한다. 시끌벅적한 소음에 당신과 남편은 투명한 모습에서 회색빛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카운터에 예약해두었던 키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밖은 한참 오물신과의 사투중이여서인가, 아무도 저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방에 들어와 서로 마주보고 앉자, 곧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어놓은 방문으로 서늘한 바깥바람이 느껴진다. 

 당신과 남편은 온천욕을 하기로 결정한다. 일어나서 나가는 당신의 손에는 여전히 작은 책이 들려있다. 치우느라 분주한 고용인들 사이로 당신들은 작은 크기의 온천에 안내받았다. 드디어 남편의 다리를 볼 수 있는 걸까, 겉껍질을 걷으려는 듯 팔을 속에서 꺼낸 남편을 당신은 빛나는 눈으로 지켜보지만


“아…”

「아…」


 남편은 그대로 온천으로 들어가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다. 당신은 절망한 듯 두 팔로 바닥을 짚었다. 당신은 자신이 가오나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건지 자신의 겉을 걷어 다리를 확인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이 점차 식어갔다. 당신과 남편의 까만 피부에는 광택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탠으로 바삭하게 태운 피부인가, 당신은 어이없는 생각에 웃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잠수했다.


*챕터 3. 가오나시의 먹이


 [가오나시는 본래 요괴로서 음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을 섭취하는데, 그들의 투명한 속을 채우기 위해 멈추지 않고 먹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온천욕이 끝난 그와 당신은 온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슬슬 당신은 체력이 떨어지던 차였다. 기절할 듯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당신은 남편에게 방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한다. 순간, 남편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었고, 당신은 이를 잘못 본 것으로 생각하고 넘겼다. 


 당신과 남편은 피곤한 몸을 이불에 누였다. 당신은 어느샌가 손 안으로 돌아온 책자를 열어 빠르게 페이지를 훑었다. 어느 페이지에서도 가오나시의 구애에 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당신은 책을 문 쪽으로 던진 후 천장을 보고 깊게 한숨을 내쉰다.


“아…아아…아”

「 여보, 무슨 일이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별 일 아니다. 고마 내비둬.」


 당신의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한 남편 가오나시가 당신의 하얀 얼굴에 손을 대온다. 가볍게 두어 번 쓸어내리는 그의 모습에, 당신은 심박이 빨라짐을 느낀다. 그와 당신의 눈이 맞았다. 한 번,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번. 천천히 그를 향해 돌린 당신의 눈과 그의 눈이 맞았다. 그의 매끄러운 손이 당신의 검은색 표피를 훑어 내린다. 


“아…아아아아…아…아.”

「네 가면, 점점 더 붉어지는데.」


 당신은 무표정한 가오나시의 표정에서 능글거림을 느꼈다. 그는 당신의 검은색 표피를 걷어 내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당신은 당신의 매끄럽게 뻗은 다리를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가볍게 한탄조로 신음을 내뱉고 있는 당신의 얼굴을 한번 훑은 가오나시는 당신의 발끝에서부터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중지로 쓸어 올라가는 그의 손가락에, 당신은 기묘함을 느낀다. 소름,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당신의 검은 벨벳 같은 다리를 타고 올라가다 마침내 허벅지에 도달했다. 그는 그 위로 자신의 얼굴을 숙였다. 하얀 가면이 그곳에 닿아오는 느낌에, 당신은 가볍게 허리를 퉁긴다. 

 그의 손이 가볍게 당신의 그곳을 쥐었다. 


“아…아아!”

「그만, 그만!」


 당신은 급하게 그의 어깨를 잡는다. 허리가 움찔,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당신은 어깨를 젖히고 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투명한 액이 고이기 시작했다. 다시 손을 움직여 더듬어 내려간 그는 중지를 이용해 속을 더듬는다. 당신은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양 손으로 이불을 그러모아 쥐었다. 이불을 잡은 손의 떨림이 심해질 때 마다, 방을 채우는 기묘한 꽃향기가 더 짙어졌다. 

 그는 당신의 양 어깨 위의 이불에 손을 짚었다. 당신은 천천히 다리를 접었다. 그는 당신에게 하체를 맞대어온다. 당신은 두려움에 몸이 점점 심하게 떨려오는 것을 느낀다. 순간, 당신은 찌르는 고통을 느낀다.

 그는 꽤 격렬하게 움직였다. 얇은 나무문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당신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 이를 사리물었다. 당신과 눈을 맞춰오는 그. 그의 몸을 타고 떨어지는 육수. 방 안을 그득 매운 꽃향기에 당신은 기절할 듯, 정신을 붙잡기에 급급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당신은 끊임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꽃이 떨어지는 환각, 붉은 꽃이다. 아니 이것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생화. 그의 입에서 생화가 쏟아지고 있다. 당신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꽃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마침내 방 한 칸을 다 매웠다. 당신의 시야는 붉은 빛으로 변했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방문이 터지듯 열렸다. 쏟아지는 붉은 꽃 가운데 작은 책이 한권 떨어진다. 책은 바닥에서 두어 번 튕기다, 파르륵 소리와 함께 몇 장 넘어갔다.

 

 *챕터 8. 가오나시의 구애 행각.

 [가오나시에게는 독특한 구애 행각이 있다. 입에서 꽃을 쏟아내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학회에서는 이를 하나하키라고 정의했다. 언제 그들이 입에서 꽃을 쏟아내는지는 아직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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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ㅋㅋㅋㅋㅋㅋㅋ감사합니닼ㅋㅋㅋㅋ사실 저도 쓰면서 이게 뭔지 모르겠습니다만....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내용이 섹시큐티나시앙과 대비되는 이유는 제목답지않은 글을 쓰고싶어서...라는 느낌입니다만 어느샌가 떡신만 붙잡고 있는 자신이 보입니다.(눈물)

결국 마지막의 ‘당신’은 질식사로 죽게됩니다. 꽃에 의한 질식사라니 매우 로맨틱하네요. 전 취향이 독특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섹시큐티나시앙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화


[백카흑카] 동화 (자공자수)





이 이야기는 태초부터 저주를 품에 안고 태어난 두 아이의 비극적인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무런 죄 없이 단지 쌍둥이라는 이유만으로 저주를 받아야 했던 가엾은 이야기의 시작은 두 아이가 모두의 경멸 속에 생일을 맞이하기 하루 전부터 시작한다.






비극.






두 마리의 새가 짹짹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오후였어요. 두 소년은 서로가 서로에게 건넨 한 송이 꽃을 품에 안고 걷고 있었습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눈을 감으며 나즈막이 미리 생일 축하해, 하고 속삭였죠. 그 날은 신기하게도 좋은 일이 일어날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오늘 하루 무엇을 할까 머리를 맞대며 생각하던 도중 하얀 머리의 소년이 말을 꺼냈습니다.




놀이공원 가볼까?

……놀이공원?

응, 우리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까.




검은 머리의 소년은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비록 그림자 뒤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라도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꿈처럼 따스했으니까요. 두 소년은 놀이공원에 가는 길 내내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처음 가 보는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 떠 있었기 때문이죠. 손을 맞잡고 천천히 다가간 놀이공원의 입구는 뭔가 우중충 해보였습니다. 입구는 물론 매표소에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어요. 다만 놀이기구만이 음악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두 소년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지만 그래도 들어가보기로 하고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어요. 뜨겁게 달궈진 기름에 다 타버린 츄러스도 누군가 꺼내지 주지 않아 쾌쾌한 냄새를 뿜고 있었고, 돌아가는 솜사탕 기계에서는 심한 단내가 나고 있었습니다. 눈 앞에 마주한 커다란 회전목마를 본 두 소년은 돌아가고 있는 붉은 색 말 위를 빤히 바라보았어요.




뭔가…….

……응.

너도 그렇게 느껴져?

타보고, 싶지?




유독 어여쁜 색을 띠고 있는 붉은 색 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조종이라도 한 듯 두 소년의 앞에 멈춘 붉은 색 말을, 조심스럽게 탔죠. 신나는 음악과 함께 덩달아 즐거워져 서로를 붙잡고 와하하, 크게 웃던 두 소년은 점점 이상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왠지 회전목마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거든요. 빠르게 돌아가는 시야 때문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습니다. 참다 못 한 검은 머리의 소년이 내리자고 말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회전목마는 급정거 하며 운행을 멈추었습니다. 갑자기 멈춰버린 회전목마 탓에 붉은 색 말 위에 올라타있던 두 소년은 바닥으로 떨어졌죠.




괜찮아?

아파…….

다쳤어?

괜찮아, 너는?

나도 괜찮아.




두 소년은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며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하는 걸까요? 검은 머리의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얀 머리의 소년은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고, 이에 검은 머리의 소년은 다정히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겁 먹지 마, 내 뒤에 있어.

……응.




천천히 걸어가던 검은 머리의 소년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말을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던 작은 분홍색 말도 쓰다듬었고, 걸어가는 내내 보이는 말 하나하나를 쓰다듬었습니다. 화려한 장식의 높은 말, 연노랑 몸통에 꽃장식이 달린 작은 말, 눈에 튀는 붉은 색 말, 어딘가 차가워보이는 회색 말, 온 몸에 낙서가 되어있는 남색 말, 여러 마리의 말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작은 마차를 지나 여러명이 타도 될 만큼 아주 큰 마차가 나왔을때 검은 머리의 소년은 우뚝 멈춰섰습니다. 




왜 그래?

우리 나갈까?

……왜?

아무래도 돈을 내고 들어온게 아니니까, 다음에 다시 오자.




무슨 일인지 창백한 얼굴로 비틀대는 검은 머리의 소년은 하얀 머리의 소년의 손을 꼭 잡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무언가 숨기고 있는것이 틀림없었죠. 그리고 하얀 머리의 소년 역시 자신을 이끌고 있는 소년을 보며 입을 앙 다물었습니다. 사실은 큰 마차 뒤에 숨어있던 괴물들과 눈이 마주쳤거든요. 무서웠지만 오히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대로는 저주에 잡아먹힐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또다시 걷고 걸어서 쾌쾌한 탄내와 심한 단내를 지나 입구에 다다랐을때 하얀 머리의 소년은 검은 머리의 소년을 불렀습니다.




카네키.

응?

먼저 가 있어.

왜? 같이 가야지.

…….

카네키?

먼저 가.




하얀 머리의 소년은 잡았던 손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검은 머리의 소년을 놀이공원의 입구 밖으로 밀쳤죠. 얼떨결에 밖으로 나오게 된 검은 머리의 소년은 비틀거리며 넘어졌습니다. 이윽고 쾅, 큰 소리가 나며 입구의 문이 닫혀버렸고 하얀 머리의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기 의자에서 쉬고 있어.

……카네키.

힘들었잖아, 그렇지?

카네키.

오래 걸어서 발 아플테니까 쉬고 있어.




따뜻한 미소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구의 문을 열기 위해 애썼지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같이 가, 같이 가자. 애원했지만 하얀 머리의 소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검은 머리의 소년 뒤를 손가락으로 가르켰죠. 손가락의 끝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때는 검은 연기가 올라오던 그림자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품은 저주가, 풀린겁니다. 그런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요. 하얀 머리의 소년에게는 더욱 큰 연기들이 뿜어져나오고 있었거든요. 검은 머리의 소년이 말했습니다.




어째서? 어째서야?

카네키, 우리의 저주가 뭐였는지 알아?

…….

평생 행복하지 못 한다는 저주였어.

흐윽, 같, 같이… 있으면 행복, 하잖아…! 어째서!

그리고 그 저주를 풀 수 있는건,

………카네키?

나야.




마침내 연기 속으로 사라진 하얀 머리의 소년은 손에 쥔 꽃을 옷 안으로 숨기고 슬픈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울고 있을것을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두 소년이 받은 저주는 달랐습니다. 괴롭게 해야 하는 것과 괴로워야 하는 것. 괴롭게 해야 하는 것을 선택한건 하얀 머리의 소년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누구를 괴롭게 해야하는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쪽이 훨씬 힘든 길이라는 걸. 그 사실을 깨달은건 커다란 마차 뒤 괴물들의 눈을 마주쳤을때 비로소 알아챘지만요.


자리에 주저앉은 하얀 머리의 소년의 앞으로 세 가지 길이 생겼습니다. 세 가지 길 모두 지옥길인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무조건 선택해야했죠. 그러나 하얀 머리의 소년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세 가지 길 모두를 돌고 돌아 샛길로 빠졌죠. 힘겹게 빠져나온 좁은 길을 지나 또다시 펼쳐진 거대한 회전목마 앞에 선 하얀 머리의 소년은 점점 느려지는 회전목마를 보며 옷 안으로 숨겨두었던 꽃을 꺼내들었습니다. 천천히, 점차 속도를 줄이던 회전목마가 끝내 운행을 멈췄을때 소년은 말했습니다.




생일 축하해, 카네키.




12시를 알리는 시계소리가 울려퍼지고 놀이공원의 불이 모두 꺼져버렸습니다. 하얀 머리의 소년과 검은 머리의 소년은 오래오래 행복하지 못 했답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제목 그대로 내용은 비극 뿐이었고 놀이공원이라는 단어에 잠시나마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 어떻게 해야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찜찜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리며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놓았다. 다른 책을 꺼내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책의 마지막 장이 신경쓰였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그 문장에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잊혀져라, 잊혀져라, 잊혀져라. 그러다가도 한 번쯤 생각 나는건……, 소년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baby's breath


[잭엘사] baby's breath(안개꽃)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패러랠.


 작은 호수, 그 가운데 떠 있는 만월. 주위를 빽빽한 거미줄처럼 두른 나무 사이로 기이하게 안개꽃이 피었다. 호수의 표면에는 얇게 살얼음이 깔리었다. 만월의 금빛 달무리가 호수의 속에서 가라앉는 소녀의 머리칼을 비추었다. 소녀의 몸은 이미 파랗게 얼어 있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듯, 소녀는 느리게 눈꺼풀을 끔벅였다. 동면 하고 있던 물고기의 놀란 퍼덕임에, 물살이 일었다. 놀란 듯, 잠시 위축되어있던 소녀는 이내 팔을 뻗는다, 그러나 달에는 닿지 못한다. 엷은 입술 사이로 물이 차오른다. 깊게 숨을 들이켜듯 입을 크게 벌렸다, 몸을 뒤틀어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렇게 소녀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순간, 얼음이 빛으로 화했다. 적어도 소녀는 그렇다고 느꼈다. 그 틈에서 자신을 향해 뻗어지는 건- 투명하리만치 하얀 손.


[잡아]


 소녀는 손을 뻗었다. 자신에 차갑게 곱은 손이 닿은 건, 시리도록 투명하지만 따스한 손. 몸이 앞으로 쏠렸다. 소녀가 정신을 되찾았을 즘, 눈에 보이는 건 자신의 머리와도 같은 색의, 하지만 짧아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소녀는 그의 품 안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소년과 청년의 가운데에 서 있을법한 남자는, 작은 여자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구할 마음은 없었는데, 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믿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자신을 볼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급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에게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젖은 머리를 쓸어주었다. 이내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보고, 급히 땅을 박차고 날아가는 남자의 얼굴에는 옅게, 웃음이 걸려있다.



***


 모든 것이 굳게 잠긴 방 안, 잠들어 있던 소녀가 눈을 떴다.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가끔, 그 꿈을 꾼다. 밤의, 안개꽃이 만개해 있던 그 호수에서, 하얀 머리 남자의 꿈을.

 소녀는 자신이 깨어나고, 그 소년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호수로 갔다. 하지만 이미 만개해 있던 안개꽃은 낙화했고, 남자는 없었다. 그래, 소녀의 외로움이 더해갔을 뿐. 푸른 눈이 점점 비어감에 따라 능력은 강해졌고, 마침내 동생까지 해하게 된- 소녀의 방문과 성은 굳게 닫혀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남자를 찾지 않았다,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자신은 숨겨야 했으며, 느끼지 말아야 했고, 다른 이가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하지 못하게, 자신을 막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그렇게 점차 여자가 되어가는 소녀의 눈은, 커지는 자신과 상반된 모습으로 비어가기만 했다.

 그런 소녀의 모습을 창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그날 이후로 제 일도 잊은 채, 소녀의 창문에 성에로 하나씩 그림을 그려가기만 했다. 순간순간, 다른 가디언에 끌려가도, 빠르게 일을 끝낸 채 다시 돌아와서 남자는 그저 성에를 하나하나 그려 넣기에 바빴다. 언젠가 부활절 토끼가 저에게 지겹지도 않느냐 물어온 적이 있다. 그에 자신은 뭐라고 대답했었나.


“귀찮으냐니, 너는 저 눈동자를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나는 단지 저 아이가 이 성에를 보고, 그때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거야.”

“죽기 직전의, 어쩌면 죽어버린 눈동자를 내가 지나칠 수 없으니까.”


 그리고는 다시 손끝으로 유리창을 톡, 두드리고, 성에 그리기를 재개했다. 저 소녀의 눈이 다시 생기로 차오를 즈음, 이 일도 끝날까. 남자는 크게 원을 그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얼른, 저 아이가 저를 발견해주길 바라면서도, 일견 바라지 않았다. 만약 아이가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때는 온 종일 그 곁에 있어주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에. 이런 생각마저 해버리는 건가,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바라본 그때. 남자, 잭은 느꼈다. 이것이 사랑일지 모른다고.


 푹신한 침대에 앉은 엘사는 보던 동화를 덮어,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얼마 전 동생이 문틈으로 넣어준 책이었다. 잭 프로스트, 하얀 머리의 소년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녀는 동화책에서마저 남자를 찾는 자신의 모습에 쓰게 웃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창에는 성에가 새겨지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항상 자신의 큰 창에는 성에가, 왼쪽 아래부터 새겨졌다. 토끼, 바람개비, 구름과 같은, 자연적으로 생기기 어려운 무늬가, 그렇게 새겨졌다. 왼쪽 아래서부터 오른쪽 위. 자신의 눈도 항상 같은 방향으로 따라갔다. 갇혀있는 시간, 그중 유일하게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는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엘사는 항상 이 시간을 기다렸다.

 어느덧 창이 가득 찼다. 오늘은 더는 그림이 생겨나지 않는 건가, 가볍게 한숨을 쉰 소녀는 양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렇게 곰곰이 생각한다. 그때였다.

 하얀 인형. 왕궁 안에서, 어쩌면 자신의 나라 속에서도 한번 보지 못한 인형.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인형은 자신의 쪽으로 목을 기이하게 꺾으며 그 붉은 눈동자를 빛낸다.


“좋은 오후, 엘사.”


 인형이 아니었던가. 후계자 수업에서도 저런 물체는 본 적 없는데. 엘사는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곤 동물의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올린 머리의 털은, 부드러워서 마치 누가 기르던 동물로만 보였다.


“엘사, 외롭지 않아?”


 급히 뗀 손을 가슴께에 모아 쥐고 뒤로 물러섰다. 네까짓 동물이 어찌 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가, 엘사는 떨리는 눈으로 씹듯이 내뱉었다.


“나는 큐베. 내가 너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어. 네가 그런 소원을 빌면 되니까.”


 순간 착각일까, 저에게 최면을 걸듯 붉은 눈동자가 더 짙은 빛을 띠었다. 춤을 추듯 발걸음을 옮긴 큐베는, 어느새 자신의 책상에 두 발을 모으고 앉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둥글게 말린 꼬리가 살랑, 하고 흔들렸을 때,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자, 나와 계약을 해서 마법소녀가 되어줘!”

 

 정말, 자신과 계약을 한다면 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이, 붉은 눈동자는, 일절 움직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휘어지는 듯해, 관자놀이부터 땀이 흘렀다. 이것은, 위험하다. 이 계약은 위험하다고 자신의 신체의 모든 부분이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래.”


 무심코 대답을 내뱉었다. 이리 빨리 수락할 줄 몰랐던 것일까, 동물의 꼬리가 빨리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기쁜 듯- 그래, 기뻐한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분답게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조그마한 오른발을 뻗어 엘사를 가리켰다. 


“이리 빨리 승낙할 줄은 몰랐어. 역시 나라도 당황하게 되는걸. 너의 소원은-뭐야?”


“외롭지 않게 해줘.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아. 나는, 이 나라의 왕녀는, 본디 숨기고 감추어야 하나, 나는 지쳤다. 더 이상은, 나는 혼자이지 않을래.”


 순간, 소녀의 가슴께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빛. 기류는 소녀의 몸을 휘돌고, 큐베의 손끝에서 뭉쳐진다.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빛이 담긴 작은 보석을 감싸고 있는 금빛의 테가 순간 빛을 발했다. 큐베가 손바닥으로 톡, 하고 두드리자 이내 꿈틀거리며 움직이던 보석은 소녀의 왼손 중지로 가 작은 반지로 변했다.


“소울 젬이야. 그걸로 변신할 수 있어. 엘사, 너의 능력은 ‘생성’. 너의 소원은 이루어졌어.”


“더는-외롭지 않은 거야?”


“글쎄, 나는 ‘외롭다’를 몰라. 단지 너의 소원을 이루어졌을 뿐.”


 흰색의 인영은 기이한 말을 내뱉고는 창문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꽤 고층에 있는 자신의 방이라, 급히 창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다보았을 때,


“…안녕?”


 하얀 머리의 사내가 있었다. 

 소녀는 급히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영차,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날아올라 창틀 위에 쭈그려 앉았다. 여간 기쁜 게 아닌지, 휘어진 눈꼬리에 작게 눈물이 맺힌 듯도 하다. 엘사는, 창틀에 앉아 있던 사내를 저의 쪽으로 끌어내렸다. 훅, 하고 남자의 내음이 풍겼기 때문일까.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엘사는 눈을 까무룩 감았다.


***


 또 꿈을 꾸었다. 하얀 머리의 남자가 저를 구해주는 꿈이었다. 멍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을 때, 천장에 성에가 하나둘 새겨지기 시작해서 아, 그 남자를 만났던 것이 꿈은 아니었구나, 함을 느꼈을 뿐, 눈을 감기 전 만났던 남자를 진정으로 만났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 때었다. 자신의 침대, 이불 한 자락이 끌려 뭉쳐있다고 느꼈다. 엘사의 시선은 이불의 주름을 따라가, 마침내 그 끝이 안나에게 닿았다. 소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명 자신의 방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을 터였다. 보란 듯이 엎드려 자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모질게 깨우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동생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금발의 머리칼 속에서 빛나는 반지- 반지?


“꿈이, 아니었던가.”


 그럼, 내가 꿈이길 바랐던 거야? 남자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넓은 방을 울렸다. 천정의 왼쪽 모서리에서 뚝 떨어진 남자는 내팽개쳤던 지팡이를 들곤 소리 내어 웃었다. 네가 나를 발견할 줄, 몰랐는데. 남자는 꽤 멋쩍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잭. 잭 프로스트. 거기 네 동화책의 주인공이야.”


 소녀의 시선은 남자의 손끝을 따라갔다.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푸른 표지의 책. 하얀 머리의 소년이 지팡이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며칠 전 동생이 몰래 밖에 나가서 사 왔다며, 자신의 문틈에 밀어 넣은 책이다. 동화를 볼 나이가 지났음에도- 후계자 수업을 제외한다면 할 일거리가 없기에, 이미 수백 번은 읽었던 책이다.

 소녀는 과거를 기억했다. 이년 전, 그때는 분명히 남자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자신을 구했다. 동생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히 일어난 엘사는 나는 듯한 걸음으로 달려가 남자에게 안겼다. 


“보고 싶었어. 널 찾았어. 그때의 호수에 너는 없더라.”


 남자는 웃으며 자신은 늘 저를 따라다녔다고 이야기했다. 항상 창의 왼쪽 아래에서 성에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소녀가 호수에 빠졌던 그 날부터 쭉 저를 바라봐 왔노라고 이야기했다. 항상 엘사는 이맘때를 회상하며 이야기했었다. 이날만큼 기쁘고 좋았던 날이 없었노라, 자신은 이날을 위해 살았다고.


“…언니?”


 금발 머리의 작은 여자아이가 깨어나 자신을 불렀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마냥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도대체,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야?”


 아, 동생에게는 그가 보이지 않는구나. 급히 등을 돌려 동생에게 다가가 머리를 쓸어주었다. 고양이 마냥 가르랑거리는 동생이, 밉지만은 않은 듯 소녀는 소리 나게 웃었다. 그것도 잠시, 소녀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곤 손을 떼어냈다.


“안나,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난 가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반지, 반지로 들어왔어! 나 이제 강하니까 언니는 더 숨지 않아도 돼!”


 엘사는 급히 안나의 왼손을 들어 보였다. 중지에서 빛나는 그물 모양의 반지, 저의 능력은 텔레포트라고 신이 나 설명하는 동생을, 엘사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소녀의 작은 등을 잭이 감싸왔다.


“쉿,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저 아이도, 너도 위험하지 않게.”


“…응.”


 창가로 붉은 해가 비추어 들어왔다. 저녁 시간이다. 분답게 복도를 뛰어다니며 안나를 찾는 목소리가 커지자, 자신은 가보겠다고, 안나는 박수를 두 번 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에 지친 듯, 엘사의 찌푸린 미간을 잭이 눌러왔다.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는 차가운 바람에 소녀는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깍지를 껴 오는 서늘한 손. 분명 자신은 더는 외롭지 않으리라, 잠이 들기 시작한 엘사의 입꼬리는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


 그날부터 그 둘은 함께였다. 마녀 퇴치 때든, 정치 연습이든, 사교댄스든, 그가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매한가지로 그녀 또한 그의 곁에서 떨어진 시간은 없었다. 그런 그들을, 안나만 의아하게 생각할 뿐, 엘사의 행복한 때는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끝으로 가고 있었다.


 어느 추운 날이었다. 그 전날에 꽤 많은 사역마를 거느린 마녀 둘을 안나와 함께 해치웠던 차라, 며칠은 마녀가 나오지 않겠지- 하고 안심했던 날이었다. 계약 후 보지 못했던 큐베가 자신의 책상에, 다소곳이 발을 모은 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큐베는 여전히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곧, 큰 마녀가, 어쩌면 나라를 망가뜨릴 만치 영향력이 있는 마녀가 이곳에 도달할 것이라고 몸을 기묘하게 틀며 말했다. 한 달 내, 그게 큐베가 준 시간이다.

 곁의 안나는 자신만만하게 눈을 빛냈다. 이제까지 저들 콤비는 한 번도 위험했던 순간이 없었다고, 분명 이번 마녀도 괜찮을 것이라고 가슴을 펴며 말했다. 엘사는, 그 안나의 표정에서 그때의 계약 순간이 떠올랐다. 등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갔다. 그때 자신을 감싸오는 잭의 팔이 없었더라면, 저는 분명 동생에게 화를 내었을 것이다. 괜찮을 것이라 도닥이는 손길이 없었다면 저는 벌써 무너졌겠지. 엘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런 일도, 마녀도 나오지 않은 채 그리 시간이 지났다. 엘사는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유 없는 불안감. 매일 찾아오던 안나는 삼 일 전부터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오른손 중지의 반지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평상시보다 강한 떨림이었다. 자신은 안나를 찾으러 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나 혼자서 마녀를 처리하는 것.”


 아가씨, 나도 있잖아? 잭이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비록 마법 소년은 아니라도, 이 정도 능력이면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는 잭을 엘사는 가볍게 내리쳤다. 그저 옆에만 있으라고, 보고만 있으면 된다. 그가 다치는 게 싫다고 빠르게 말한 엘사는 빠르게 걸어가 창문을 넘고 뛰어내렸다.

 엘사의 주위를 은빛의 기류가 감싸 안았다. 곧게 뻗은 손끝으로 투명한 장갑이 쓰였다. 날개뼈까지 풀어헤친 머리. 은색과 파란색이 섞여 은은한 빛을 내는 드레스가 막 여인이 되려는 소녀의 몸을 감싸,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워-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그 옷.”


“싫은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따라오기나 해. 마녀의 반응이 점점 거세어지고 있어. 이러다간 죄 없는 백성까지 말려들지도 몰라.”


 알았어, 하고 말한 잭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여러 번 뛰어 잭을 앞서가는 엘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마녀의 결계가 생긴 장소가,


“…호수?”


 퍽, 소리 나듯 엘사가 지르밟고 선 안개꽃이 터져 나왔다. 엷게 얼은 살얼음 위로 검은색의 기체가 뭉글하게 피어났다. 저 자린 어렸을 적 자신이 빠졌던, 그리고 남자에게 구해졌던 자리. 잭이 급히 손목을 잡아온다. 한걸음, 또 한걸음. 그렇게 그들은 얼음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엘사가 왼발을 들여놓자 작았던 기류가 둘을 집어삼키고 자신의 몸을 불려 나가, 호수 전체를 삼켰다. 비디오를 뒤로 빠르게 감듯 해가 지고 달이 떴다. 금색의 만월이다. 

 엘사는 팔을 들어 가볍게 얼음 바람을 일으켰다. 소녀의 형상을 띄고 있는 사역마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둘은 큰 문-마치 성의 문을 보는 것 같았다-을 가볍게 밀어 다음 방으로 나아갔다. 침대, 룬 문자, 소녀의 형상을 띄고 있는 사역마. 하늘에서 기이한 각도로 동화책이 우수수 떨어졌다. 엘사는 잭을 보호하며 정신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안나가 없으니 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잭은 입술을 사려 물었다. 이 결계는, 마치 자신을 알고 있는 듯했다. 또한, 자신도- 이 결계의 주인을 알고 있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굵고 화려한 문. 금박으로 장식되어있는 문고리를 강하게 밀어 열었다. 순간, 바람에 휩싸여 엘사는 뒤로 날아갔다. 가슴께로 보이는 곳에 손을 교차한 채 일어나는 마녀. 그것을 감싸고 있던 리본이 풀어지며, 적혀있던 룬 문자. 아리안나 디 아란델. 더 이상은 볼 수도, 보여 줄 수도 없다는 듯, 잭이 왼손을 들어 바람을 일으켰다. 파랗게 얼은 리본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무너진 동화책, 그 사이에 파묻혀있던 엘사가 한 번의 도약으로 마녀의 앞에 섰다. 녹황색의 드레스를 차려입은 마녀의 눈에서는, 눈물 대신 얼음덩어리가 떨어졌다. 얼음덩어리는 까르륵, 거리는 웃는 소리와 함께 어린 여자아이 모습으로 변했고, 그런 사역마들을 보는 잭의 눈살은 깊게 찌푸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사역마들은 잭의 주위를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툭, 한 마리의 사역마가 쓰러졌다. 큐베가 머리를 짓밟으며 생긴 일이었다.

 동그랗게 말린 꼬리를 흔들며 큐베는 춤을 추듯 걸어왔다. 잭의 발을 한번 밟은 그것은, 크게 도약하여 쌓여있던 동화책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붉은 눈동자가 잭의 눈동자와 맞춰진다.


“‘고민’ 정도는 알고 있어. 너는 왜 고민을 하는 거지, 잭?”

“저건 단지 마녀일 뿐이야.”

“그녀는 그리프 시드가 필요해.”


 잭은, 왼손을 들어 바람을 일으켰다. 큐베가 서 있던 동화책이 아랫부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 잭은 머리를 쓸어 올린다.


“저 마녀가 내가 올 것이라 했던 마녀인지는, 우리도 모르겠어.”


 무너진 동화책 틈에서 또 다른 큐베가 뛰어나왔다. 큐베가 발을 올린 동화책의 표지에는 하얀 머리의 소년이 환하게 웃고 있다. 두 마리의 큐베가 잭의 앞으로 와 서로의 꽁무니를 쫓으며 원을 그렸다. 두 개의 같은 목소리가, 겹쳐 결계 안을 울렸다.


“네가 아는 ‘소녀’일지라도, 이제는 찌꺼기일 뿐. 너도 알 것으로 생각해.”

“너의 존재는, 우리도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 정도의 정보는, 너도 알고 있겠지.”


 말을 마친 두 마리의 큐베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잭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 마녀에게로 몸을 틀었다. 녹황의 마녀는, 그래. 그가 아는 자다.


 엘사는 가볍게 마녀와 부딪혔다. 익숙한 향기다. 그녀는 그 향을 부정했다. 


“마지막이야, 마녀. 아란델을 부수려고 하는 자는, 내가 용서치 않아.”


 뒤로 크게 물러났다. 팔뚝까지 올라온 투명한 장갑 두 짝을 벗어 공중에 뛰었다. 이내 장갑은 바람에 분해되었고, 바람은 얼어붙은 얼음 조각들을 포함한 채, 폭풍이 되었다. 그녀의 곁으로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는 급히 무언가 말을 꺼내었지만, 닿지 않는다. 엘사는 오른팔을 들었다.


[낙하]


 무수한 얼음조각이, 저들을 다시 조각조각 내며 떨어졌다. 큰 폭발음과 동시에 마녀가 색색의 종잇조각이 되어 흩날렸다. 엘사의 손으로 그리프시드가 떨어졌다. 은색의 그물 모양. 마녀의 결계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달은 다시 해로 변하고, 무수한 종잇조각은 안개꽃으로 변했다. 검은색의 기류가 둥글게 뭉치더니 금발의 소녀로 화했다.


“안나!”


 소녀의 가슴이 들썩거렸다. 숨이 아직 붙어있는 것이다. 급히 다가가 옆에 꿇어앉은 엘사가 손을 잡는다. 정신이 드느냐, 자신을 알아보겠느냐고 외친다. 엘사의 뒤에서 큐베가 나왔다. 안나의 머리맡에 앉은 그것이 소녀의 이마에 저의 손을 가져다 댄다. 파랗게 원을 그리며 빛이 일었다. 소녀의 혈색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의 시선의 끝은, 소녀의 왼손 중지다. 그물 모양의 반지의 색이, 하얗게 변했다. 살았으면 그걸로 괜찮겠지, 작게 중얼거렸다.

 풀숲 사이로 붉은 눈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것을 여자와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금발의 소녀만이 시선을 그리 가져갔을 뿐이다. 소녀의 눈이 연하게 빛을 냈다.


***


 그날 이후로 안나는 마녀 퇴치를 하지 않았다. 한번 마녀가 되어 퇴치를 당해,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안나의 반지의 색은 하얗게 변했다. 어느 날 다시 나타난 큐베가 재계약을 진행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소녀는 다시 마녀가 되긴 싫다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엘사는 저가 혼자라고 느꼈다. 안나와 자신 이외의 마법 소녀는 이 나라에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고 느꼈다. 자신은 홀로, 닥쳐오는 수많은 마녀를 대적해야 한다. 사랑하는 나라와 안나. 그리고 그를 위해. 엘사의 능력은 날로 강력해졌다. 비례해 그녀의 채워졌던 눈은, 다시 비어가기 시작했다.


 잭은 어렴풋이 느꼈다. 자신이 되돌려놓은 그녀의 눈이 다시 비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하고자 함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기에, 저가 그것을 부정한다면 결국 그녀를 부정함이 되어 버리기에,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안나가 마녀에서 돌아온 지 닷새 되는 날이었다. 어쩌면 안나 보다 더 강할 수 있는, 그런 깊은 파동을 지닌 마녀를 여자는 혼자 처리하러 갔다. 더는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창문을 뛰어넘어 그림자로 사라졌다. 남자는 그저 뒷모습을 바라만 봤다.


“왜 너는 계약을 하지 않아?”


 며칠 전부터 남자를 따라다니던 큐베가 물어왔다. 매번 앉던 그 책상에, 똑같이 꼬리를 말고 앉아서 기묘한 표정으로 남자와 눈을 맞췄다.


“인간의 생각은 이해 할 수 없어. 너라면 훌륭한 마법소년이 되어 그녀의 곁을 지켜줄게 분명해. 왜 너는 계약을 하지 않아?”


 남자는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계약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남자는 물었다.


“미묘한 느낌이야. 우리는 정의할 수 없는 일을 확신하지 않아.”


“언제나 넌 그런 식 이지, 정확하게 말을 하지 않아.”


 단지 저들은 물어보는 일에만 대답해 주는 것이라고, 언 듯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그것이 말을 이었다. 왼발로 털을 몇 번 고르더니 너는 오늘도 계약을 하지 않을 모양이야, 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큐베의 시선이 창틀에 닿았다. 눈을 맞추고 있던 잭도 고개를 돌렸다. 창틀 위에는 기쁜 표정의 엘사가 앉아있었다. 마법이 풀리며 실내 드레스로 바뀐 엘사가 뛰어와 잭에게 안긴다. 큐베는 갸웃, 하고 고개를 기울인 후 빠른 발걸음으로 그림자에 들어간다.


“잭, 너도 계약이 가능한 거야? 그럼, 계약해서 나와 콤비를……”


 하지 않아, 남자가 단호히 말했다. 엘사는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를 반복했다. 왜 계약을 하지 않아, 왜 나를 혼자로 만드는 거야, 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거야, 왜?

 남자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나에게는 소원이 없어. 네가 나의 전부야. 나는 너만 있으면-


“그렇다면 나를 위해 소원을 빌어줘.”


 그렇게 할 수 없어. 남자는 남을 위해 소원을 빈자의 최후를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결국 미쳐버렸다고, 소원이 강한 집착이 되어, 그녀를 감쌌다고.

 엘사의 손에 힘이 풀렸다. 주룩,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앞에 잭이 무릎을 꿇었다. 자신은 절대 그녀를 버리지 않았노라, 혼자로 만들지 않았노라,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는 잭과, 그를 보는 엘사의 눈동자는 결국 끝까지 메마르고야 말았다.


 안나가 돌아온 지 엿새 되는 날이다. 이웃 나라로 떠났던 부모님의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해일을 만난 배가 그만 뒤집혀 버린 것이다. 울음을 터뜨리는 안나를 도닥이며, 엘사는 그렇게 완연한 혼자가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마녀를 퇴치하려들지 않았다. 왼손 중지, 작은 실반지의 가운데 박힌 소용돌이 모양의 보석이 검은색으로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홀연히 나타난 큐베가 더 이상 그리프시드를 얻지 못한다면, 저도 마녀로 변해버릴 것이라고 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마녀 사냥은 없을 거야. 쓰게 웃으며 이야기한 여자는 어느샌가 커버린 자신을 인식한다. 소녀의 주위에는- 그가 없다.


***


 엘사는 이제 창에 새겨지는 성에를 보고 어렴풋이 그가 있다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자신의 머리는 믿고 있다 생각해도, 자신의 깊은 곳에서는 잭을, 가디언을 뿐만 아니고 자신마저 부정하기에 잭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말로 혼자구나,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 새 창문은 성에로 가득 채워졌고,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엘사는 양 손으로 창을 활짝 열었다. 어느 새 봄이 온 마당에서 안나가 웃으며 떠들고 있다.


“잭, 뭐하는 거야……”


 그렇구나, 지금 저 아이의 눈에는 그가 보이는구나. 나에게는 더 이상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데, 나의 소원이었던 그는 나를 버리고 동생에게로 간 건가. 그녀의 중지에서 검은 기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반지의 모양이 아닌,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온 소울잼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투명하기만 한 은색이, 점차 검은빛으로 휩싸여갔다. 


“이제 마지막이네.”


 그림자에서 나온 큐베가 기묘한 각도로 목을 꺾었다. 안나 같이 다시 사람이 되지 않느냐고? 전혀, 네가 마녀가 됨으로서 너는 우리에게 필요한 엔트로피를 생성하고, 그대로 죽는 거겠지. 큐베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어갔다.


“안나는 특이한 경우야. 네 소원이 그때 이루어졌었지.”


 이거 곤란하게 되었는걸, 지금 이 아란델에는 너를 퇴치할 마법소녀가 없는데. 큐베는 점점 금이 가는 엘사의 소울 잼을, 그리프 시드를 손으로 툭, 건드렸다. 


“내 소원은, 잭이 아니었던 것이고. 나는 마녀가 되어, 내 나라를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거야?”


“결론은 따지자면 맞아.”


 전부 네 탓이야 큐베, 여인은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녀의 앞에서 하얀 물체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네가 나에게 설명을 바라지 않았잖아. 질문을 했다면 나는 들어 주었을 거야.


“어째서, 어째서 마법소녀는 마녀가 되는 거야.”


“호칭의 문제지. 이 세계는- 성인이 되기 전의 여자아이를 ‘소녀’라고 하잖아, 그렇다면 ‘마녀’ 가되기 전 상태의 어린 여자아이는 ‘마법소녀’라고 부르는 게 당연해.”


“아란델을, 아름다운 내 나라를 내가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끝을 내는 거구나.”


 아, 이젠 놀랍지도 않아. 엘사의 얼굴에는 체념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의 감긴 눈꺼풀 사이로 마지막 눈물이 흘렀다. 몇 초라도 막으려는 듯, 엘사의 양손이 자신의 그리프시드를 감쌌다. 손 틈에서 검은 빛이 흘러나왔다. 마녀의 결계는, 성에처럼 바닥을 퍼져나가 그녀의 성의 전체를 매웠다.


“라멘타르시 파이스 지 오리젠. 통곡하는 마녀인가. 이해할 수 없어. 우주를 위해 이정도 국가쯤, 희생은 일도 아닌데.”


 검은 성에 사이로 붉게 눈을 빛내고 있던 큐베는,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가볍게 몸을 뒤틀며 떨어진 큐베는, 정원에서 뒹굴고 있던 안나와 잭의 앞으로 나타났다. 이미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잭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엘사가 마녀가 되었어, 그녀가 선택한 길이야.”


 잭이 급히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녀의 방, 창틀 위에 올라선 잭은 가만히 손을 유리창에 대었다. 이내 그의 몸은 사라졌다. 가만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무표정으로 큐베를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할 거야, 안나?”


 따라가야겠지, 단숨에 말을 내뱉고 안나는 성의 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결계는 마녀 자신이며, 그 마녀가 가장 행복했던 때를 회상하는 공간. 잭은 자신의 앞으로 수없이 펼쳐진 같은 모양의 공간, 그녀의 방을 뛰어넘었다. 잭을 알아본 것일까, 그녀와 그를 닮은 사역마들은 그에게 손도 하나 대지 않은 채, 물러나기 바빴다. 안나의 존재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잭은 필사적으로 날아 가장 크고 화려한 문으로 들어갔다.

 이미 사람의 몸이라고 할 수 없는 큰 형상의, 푸른빛의 마녀. 저의 몸에 딱 달라붙는 드레스를 차려 입고 왕좌로 보이는 큰 의자에 앉아있다. 

 한 번에 보내줄게, 잭은 이를 사리물었다. 왼손 가운데 손가락의 반지가 강한 빛을 내며 폭발했다. 빛 사이에서 나온 건, 흘러내리는 듯한 재질의 휜 옷을 입은 남자. 남자는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내리 찍었다. 강한 지진. 그 마녀에게는 얼굴이 없었으나, 마치 잭과 눈을 마주치는 듯, 형태만 남은 상체를 곧게 잭에게로 돌렸다.

 지진은 땅을 가르고 멈추지 않아, 마녀의 몸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마녀의 균열에서 싹이 돋기 시작해 꽃봉오리가 맺히고, 이내 안개꽃이 터져 나왔다. 


“사랑해.”


 낙화. 마녀의 몸은 안개꽃다발이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마지막 꽃 이파리가 엘사의 몸으로 돌아왔다. 긴 침묵, 그것을 깬 건 금발 소녀의 울음소리-

“언니는 다시 돌아올 거야, 나처럼, 내가 돌아온 것처럼.”


“안나.”


“그렇지, 엘사는 살아있어, 죽지 않았어.”


“그만해, 너는 알고 있잖아, 이제 그녀의 소원이 끝났어, 안나. 아니-”


잭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두어 번 쓸어넘겼다. 그대로 안나의 어깨를 잡고 자신과 마주보게 뒤틀었다. 소녀는 울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붉은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지 않았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 소녀는 들켰구나, 하고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인큐베이터.”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일반적인 모습으로 변한 큐베. 무뚝뚝한 목소리로 자신을 어떻게 알아채었냐고 물어왔다.


“안나가, 마녀로 변했는데 다시 인간이 되었을 때. 너는 꽤나 힌트를 많이 남겼어. 눈에 붉은 기가 생긴 것, 그녀의 반지가 하얀 색으로 변한 것. 이전에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마녀화 이우부터 나를 보기 시작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이제껏 마녀였다가 인간으로 돌아온 소녀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잭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몸 전체가 울음을 토하는 듯, 떨려왔다.


“안나는,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단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그녀는 순환의 섭리에 의해- 나에게, 우주에게 필요한 ‘양분’으로 화한거지. 이걸 너희 인간은 윈윈 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잭은 고개를 숙이곤 마녀의 결계가 떠나가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점차 떨림이 멎어가는 잭의 몸. 웃음을 멈추고 든 잭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라, 큐베는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큐베, 이제 너라면 나의 정체를 알았겠지.”


“네 존재, 우리도 의아하게 생각했어. 한번 계약했던 마법소년이-어째서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계약이 해지된 것도 아닌, 해지되지 않은 것도 아닌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지. 너는 모순적인 존재야. 그걸 우리 인큐베이터는 설명할 수 없어.”


 또 다른 인큐베이터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우린 가설을 세웠다. 과연, 네가 인간인가 하는 가설을. 우리는 착각했었어. 네가 하는 모든 일들과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 우리에게 빈 소원 때문이라고.”


 몸을 둥글게 만 큐베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점차 수를 불려가더니 마침내 잭의 주위를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큐베는 소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너는 인간이 아니야.”


 잭은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앉은 큐베를 집어 바닥으로 패대기치곤 자신의 지팡이로 관통시켰다. 이와 동시에, 그의 주위를 둘러싼 큐베들의 목이 기묘하게 꺾였다. 동시에 그들의 눈이 붉게 빛나며 하나의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


 남자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그것을 하나하나 없애기 시작한다. 얼려서, 뚫어서, 떨어뜨려서, 동강내서, 잘라내서, 으깨서, 구멍을 내서-단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나는 잭. 잭 프로스트”


 큐베의 목덜미를 집어 든 남자는 말을 이었다.


“달에 선택되어 한번 죽고, 그리고 다시 살아난-가디언이지.”


 남자는 그것을 허공으로 던졌다 받아내었다. 싸늘하게 웃는 표정. 푸른 눈이 더 차갑게 얼어만 갔다. 자신의 친구였고, 연인이었으며, 또한 이 나라의 여왕이었던 여자에게로 다가간 남자는 그녀의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두어 번 숨을 들이켰다 내뱉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듯, 그동안 간헐적으로 떨리던 그의 손이 떨림을 멎었다.


“자, 계약하자 인큐베이터. 한 번의 죽음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을 테니.”


“다시 태어난 너는 그만큼의 인과가 겹쳐, 많은 양의 엔트로피를 생성해내겠지.”


 엉망이 되어버린 털을 정리한 휜 물체는, 발간 눈을 잭에게 맞춰온다. 동그랗게 말린 꼬리가 살래살래 움직인다.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듯- 눈을 빛낸다.


“자, 잭. 너의 소원은 뭐야?”


“나의 소원은-”


 잭은 환하게 웃는다, 마치 얼어붙어있던 호수에서 아이를 꺼내, 품었던 그때처럼 환하게 웃는다.


“엘사를 내 손으로 없애는 것.”


 예상치 못했다는 듯, 순간 인큐베이터는 멈칫했다.


“그 소원은, 이곳을 ‘개편’할 수 있어. 그녀가 여왕이었던 만큼, 많은 인과가 묶여있는걸-”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감상적인 개체였던 거지, 큐베. 나는 단지, 그녀가 더 이상 힘들지 않고, 웃기만 했으면 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래. 그녀가 아끼던 이 나라또한 문제가 되지 않지. 이것이 나의 바람이며, 나의 소원. 그녀와 함께할 마지막. 자, 이루어줘, 인큐베이터!”


 남자의 하얗게 센 머리가 휘날렸다. 옷자락을 휘감는 바람. 감은 눈 사이로, 설핏 눈물이 비쳤다 사라졌다. 소년의 가슴께에서 기묘한 모양의 물체가 떠올랐다. 진하고 끈적한 보라색- 남자의 오른손 중지에 있는 반지에 박힌 푸른빛과 언 듯 같아 보이지만 본질부터 다른 색. 흐를 듯 끈적이던 보라색은 어느 샌가 기류로 변해 남자의 왼손을 감쌌다.


“이건, 본적이 없는 반응.”


인큐베이터는 주춤, 뒷걸음질 치다 방향을 돌려 뛰어간다.


“역시, 다시 태어나도, 아니 살아나도 계약 두 번은 무리. 좋은 정-”


보, 하고 말을 끝낸 건, 이미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하얀 덩어리였다.


***


작은 호수, 그 가운데 떠 있는 만월. 주위를 빽빽한 거미줄 마냥 두른 나무 사이로 기이하게 안개꽃이 피었다. 호수의 표면에는 얇게 살얼음이 깔리었다. 만월의 금빛 달무리가 호수의 속에서 가라앉는 소녀의 머리칼을 비추었다. 소녀의 몸은 이미 파랗게 얼어 있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듯, 소녀는 느리게 눈꺼풀을 끔벅였다. 동면을 하고 있던 물고기의 놀란 퍼덕임에, 물살이 일었다. 놀란 듯, 잠시 위축되어있던 소녀는 이내 팔을 뻗는다, 그러나 달에는 닿지 못한다. 엷은 입술 사이로 물이 차오른다. 깊게 숨을 들이키듯 입을 크게 벌렸다, 몸을 뒤틀어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렇게 소녀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소녀의 아래에는 그녀보다 먼저 빠진 그녀의 동생이 있었다. 금발의 머리가 물에 일렁이는 가운데, 아이의 눈은 자신의 언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정신에, 무엇인가가 말을 걸어왔다.


[살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아이는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감겨가는 눈에 눈물이 맺혀 호수의 물과 섞였다.


[소원을 들어줄게, 넌 지금부터 마법소녀야!]


 아이의 가슴께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갔다. 녹황빛에 감싸인 아이는 없어졌다. 겨울의 뼛속까지 얼릴 물속에는 은색 머리의 소녀만이 남아있다. 

 소녀는 점차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소녀의 앞에 산산조각 나는 건, 금색의 달무리를 뿌리는 만월 뿐. 소녀는 그 만월을 두 번째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에 닿지 못한 손을 주먹 쥐었다. 소녀의 눈이 감기며 시간이 멈추었다. 힘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빽빽하게 핀 안개꽃 사이로 남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자는 하염없이 호수의 한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흐른 눈물은 만개한 안개꽃잎 위로 떨어졌다. 눈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꽃이 낙화했다. 남자는 뒤로 돌아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

 처음부터 안나는 사실 엘사와 함께 빠져있었습니다. ‘엘사를 자신의 손으로 없애겠다’라는 소원을 빈 잭이 엘사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는 이미 마지막의 내용처럼, 큐베와 계약한 뒤 혼자 빠져나간 후였죠.


 엘사의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해줘’라는 소원으로 이루어 진 건 안나가 강행돌파를 하게 된 것입니다. 안나의 능력은 순간이동으로, 능력을 얻은 이후에도 엘사의 방으로 이동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나, 엘사의 소원으로 인해 불현 듯 생각이 들게 된 것이죠.


 엘사의 계약 이후 잭이 나타난 것은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이미 [잭 프로스트]를 주제로 한 동화를 수없이 읽은 엘사는 잭을 발견하고 자신의 소원이 잭으로 화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중간 중간에 큐베가 나오는 장면에서 그들은 목을 기묘하게 비틉니다. 예, 샤프트식 목꺾기입니다. 마마마의 세계관속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했으니, 틀렸습니다. 회생이 불가능한 내용입니다.(사망)


 안나의 마녀명은 안나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며, 잭이 그녀를 눈치채고 확신시키는 장면을 위해 잭만 보게 된 것입니다.


 안나가 죽고 인큐베이터가 엘사의 소원을 마저 이루어주기 위해 안나로 둔갑합니다. 이때 안나에게 또 다른 인큐베이터가 계약을 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만, 이는 완전히 엘사와 잭을 소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엘사는 속았지만 잭은 속지 않았습니다.  


 엘사의 라멘타르시 파이스 지 오리젠-(원래는 젱)은 포르투갈어로 라멘타르시는 통곡과 애도를, 파이스 지 오리젱은 여성어로 조국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적당히 붙여 보았습니다.


 한번 죽고 다시 살아난 잭은 새로운 목숨을 가졌기에, 다시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만, 본래 계약이 되어 있었기에 불완전한 계약이 되었습니다. 이때 잭의 대사는 큐베와 대화하던 호무라, 계약때의 대사는 마도카를 참고했습니다.


 와아 끝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가 마마마의 세계관과 겨울왕국, 가디언즈의 캐릭터성을 비틀었습니다만, 넓은 아량을 가지신 닝겐들은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안개꽃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코틴


[화흑] 니코틴





어쩌다가 중요한 프로젝트를 떠 맡아버렸다. 그로인해 출근했었을 때부터 한밤중인 지금까지 컴퓨터 앞에만 있었더니 눈이 건조해졌다. 의자에만 앉아있어서 엉덩이도 아팠고, 무엇보다도 담배가 생각났다. 올라버린 담뱃값에 끊어야지, 끊어야지 했었지만 역시나 작심삼일이었다. 작업하고 있던 문서를 저장해두고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비상구로 나왔다. 몇 계단 내려가 꽉 닫혀있던 창문을 여니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요즘 들어 여러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 연인인 타이가, 부모님이 마련한 선 자리, 회사의 일. 나이가 들면서 성격도, 취향도 변했지만 미련하게도 카가미 타이가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도, 같이 사는 집에 타인을 데려와서 관계를 가져도, 그 타인이 내게 해코지를 해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지 않았다는 그 사실에 만족했고 이런 관계라도 괜찮다고 말 한건 나였으니까. 그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깊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이 담배 냄새는 독해서 피기 싫지만 니코틴에 중독되어버린 것을 어떡하리. 니코틴이 들어있으니 펴야지. 나는 불이 켜저있는 담배를 들고만 있다가 결국 몇 번 피지도 않은 담배를 비벼 껐다. 더러운 창틀도 생각 안 한 채 한 손으로 턱을 괴어 바깥풍경을 보았다. 다들 각각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왜 내 길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을까. 한숨만 푹푹 쉬었다. 


-쿠로코씨? 맞나요? 아, 맞네요. 저는 위층인 영업부 사원 토모에 유코라고 해요. 

-아, 저는.

-디자인부 쿠로코 테츠야씨. 맞죠?


그녀는 옆머리를 넘기며 창가 옆자리에 자리 잡았다. 그녀의 손에는 연한 향이 나는 담뱃갑이 쥐어져있었지만 잊고 왔는지 라이터가 없었다. 내가 손을 내밀어 라이터를 건네자 눈웃음으로 보답했다. 여자는 담배 연기를 내 뱉고 내게 물었다.


-쿠로코씨. 초면에 실례지만. 연애 상담 해 주실 수 있나요? 

-충고는 못 해드리지만 듣는 거라도 괜찮으시다면 해 드릴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오랫동안 사귀어온 애인이 있대요. 그 사람이 애인때문에 이제 저랑 못 만나겠다고 했어요. 애인이 없어지면 저랑 사귈 거라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요. 그 애인은 저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를 차지하고 있는게 너무 미워요. 아, 죄송해요 쿠로코씨. 올라가셔야 하는데 저 때문에. 


횡설수설하게 말한 그녀는 담배를 대충 끄고 계단을 올랐다. 그녀의 부탁으로 그녀의 층까지 올라가 데려다주었다. 그녀는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쿠로코씨따윈, 없어져버려. 그녀의 표정은 악에 받친 듯 끔찍했다. 내 어깨를 세게 밀기 전 그녀는 너만 없으면, 카가미는 내꺼야. 라는 말을 하고 웃었다. 어이없게도 이 상황에도 생각나는 사람은 카가미 타이가뿐이라서 눈물이 났다. 


*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하얀 천장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있었고 소독약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병원 같았다. 내가 왜 이 곳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프로젝트 때문에 철야를 했었고, 중간에 담배를 피러 나갔고. 최근의 일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 키세가 들어왔다. 


-쿠로콧치! 괜찮슴까? 어디 아픈 곳은 없슴니까?

-키세군. 왜 그리 호들갑을 떱니까. 전 괜찮습니다.


정밀검사를 받고 오자 어느 샌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 중에 회사 사람은 내게 괜찮냐며 내일 회사는 나올 수 있냐고 걱정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 사람은 늦어도 되니까 푹 쉬고 오라고 내게 말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미도리마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분기억상실증 인 것이다. 머리와 팔에 외상이 있으니 당분간 입원해야 할 것이다.

-쿠로칭. 정말 기억 안나는거야? 

-중간에 끊겼지만 대학교랑 회사는 기억납니다.


집에서 거리가 있는 대학교를 나왔고, 지금의 회사의 취업했으며 지금은 정사원이 되어서 얼마 전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중학교를 함께한 기적의 세대 멤버들은 기억이 나지만. 그 때 아오미네와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내 어깨를 꽉 잡으며 다정하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뭐라 대답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저는 괜찮으니까 어깨에 손 좀 놔주실래요?

-아. 미안해.

-죄송해요. 저랑 친하신 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다정한 남자는 눈이 커지면서 고개를 숙였다. -카가미 타이가. 너랑 동갑이야. 중학교 체육선생이고.

너의 룸메이트야. 소개는 여기까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네 잘 부탁해. 테츠야. 카가미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큰손을 잡았다. 카가미는 환하게 웃었다. 가슴 한편이 저릴 정도로 환하게.


*


-쿠로코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다.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 돌아오는 것 같이 않던데 괜찮은 거지?

-괜찮다는 것이다. 지금 카가미처럼 하면 곧 돌아올 것이다. 


미도리마는 그렇게 말한 뒤 나를 지긋이 보았다. 평소의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가 내게 충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건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다고. 나는 자리에 일어나 등을 돌린 채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망설일 수는 없다. 나와 그는 지금 절벽 끝에 있는 것 같이 위태로웠다. 나의 옛 상대가 테츠야를 해한 거라는 걸 알고 테츠야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억상실이라는 말에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내겐 하늘이 주신 기회나 다름없었다. 나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테츠야를 다시 내 그물에 걸리게 하기 위해, 그동안의 악행들을 만회하기 위해서 나는 정성 들였다. 매일 일이 끝나면 그를 찾아가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했고, 어떤 사이였는지. 그를 누구보다도 다정하게 대했다. 처음부터 그에게만 사랑을 쏟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해 봤자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현재에 내 모든 걸 배팅했다. 도박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선택은 내가 아닌 그가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그 무엇보다 간절했다.


*


카가미는 노을이 져 갈 쯤 매일 나를 찾아왔다. 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이라던가 둘이서 찍은 사진을 가져와서 그때의 우리에 대해 설명해줬다. 1학년 겨울 윈터컵에서 우승한 것도, 대학교 입학 전에 내가 카가미에게 고백했다는 것과 지금 우리가 애인사이라는 것까지. 내가 잊고 있던 10년간의 기억을 모두 다 얘기해줬다. 난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카가미는 다정하고 친절하니까. 우린 행복했을 거라고.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꿈에서 눈 뜬 나는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꾸고 있는 꿈은 을씨년스러운 꿈인 것 같았다. 음침한 분위기가 풍겼고 희미한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쿠로코씨따윈 없어져버려. 꿈속의 여자는 내게 그렇게 외쳤다. -너만 없었으면. 내꺼야. 내 목을 조르는 여자의 모습은 끔찍했다. 누군가 살려줘. 나를 도와줘. 제발. 외쳐봤자 아무도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뜬 순간 화면이 전환되었다. 흩날리는 벚꽃. 뒷모습을 보인 채 서 있는 남자와 그 옆의 나. 두 사람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농구파트너인 저 사람을 동경했던가. 테이코 시절 빛나던 아오미네처럼 그 사람도 빛났겠지. 그 시절의 그가 그 시절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또 화면이 전환되었다. 그 때와 머리스타일이 달라진 그의 옆에는 항상 여자가 있었다. 같이 사는 집까지 여자를 끌어 들이기까지 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숨죽여 울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여자의 달뜬 소리를 들으면서. 어째서일까. 저런 사람 따위 헤어져 버리면 되잖아. 저런 사람 따위. 나는 여자의 옆에 있는 그가 웃는 것을 보았다. 헤어질 수 없는 이유가 고작 저 웃음 때문이었어. 내게 지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구나. 나는. 또 한 번 화면이 바뀌었다. 더 나이가 든 지금의 내가 늦은 밤 회사의 비상구에 한 여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여자에게 인사를 하자 여자는 나의 어깨를 밀었다. 카가미는, 내꺼야. 아까의 장면과 비슷했다. 나는 직감했다. 이건 꿈이 아니라고.


-쿠로코씨 괜찮으십니까?


간호사가 내게 물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미도리마의 위치를 물었다. 간호사는 다른 간호사에게 뭐라고 말하다니 나를 미도리마에게 데려다주었다. 미도리마는 안경을 치켜 올린 채 내게 물었다. 


-기억이라도 난 건가 쿠로코. 

-네. 역시나 답은 하나였네요. 이제 퇴원해도 되는 거죠?

-네 선택이 그렇다면.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퇴원수속을 밟고 별로 있지도 않은 짐을 챙긴 채 병원을 나왔다. 이제 그에게 정면으로 부딪히면 된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랑의 노예이니까. 오랜만에 들어 온 집은 차가웠다. 내가 입원한 몇 주간 타인이 드나든 것 같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나는 식탁위에 짐과 봉지를 내려놓고 아직 어색한 부엌에 들어섰다. 매일 그가 요리했었으니 말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재료를 손질했다. 나와 그가 자주 만들어 먹었던 오므라이스.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찼을 때 그가 들어왔다. 그는 왜 벌써 퇴원했냐고 내게 화를 냈다. 나는 오므라이스를 접시위에 예쁘게 올리고 그에게 내밀었다. 얘기는 조금 있다가해요. 타이가군. 나는 그가 내게 지어주는 웃음같이 그를 항해 해맑게 웃었다.


-이야기의 끝을 매듭 지으려고 왔습니다.

-역시나. 예상했어.

-저는 결심했습니다. 정식으로 타이가군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타이가군이 어떤 모습을 보여도, 저는 타이가군을 용서할거고, 사랑할겁니다. 

-테츠야?

-그러니 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주십시오.


타이가는 크게 웃었다. 몇 초간을 그렇게 웃었다가 나를 바라보고는 좋아.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건 내가 해야 하는데 한방 먹었네. 테츠야. 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니코틴 같은 그에게 중독된 것 같았다.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담배처럼, 카가미 타이가는 내 안 깊숙이 들어왔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달콤한 사람이었다. 벚꽃이 만개하고 새 학기가 시작된 4월. 10대였던 우리는 30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때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경치가 지금 우리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Sex Plan


[청립] Sex Plan





벤츠미네x어리광마츠


카사마츠 유키오 - 대3 (22)

아오미네 다이키 - 대1 (20)


일 둘은 현재 연인 사이입니다.

이 둘은 농구를 하지 않습니다. 인문 대학입니다.

삼 캐붕 굉장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오미네가 인문대학이라는 것부터가.. 어쨌든 죄송합니다.

사 아오미네랑 자고 싶은 선배가 계획 짜는 이야기입니다.

오 카사마츠는 술에 매우 약합니다.

육 제가 호칭 오락가락하는 걸 좋아해서 아오미네가 카사마츠를 너라고도 부르고 유키라고도 부르고 당신이라고도 부릅니다. 당신 짱좋

칠 브금같은 경우 가사 자체가 연인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너무 예쁘게 표현해서 넣어보았습니다. 근데 얘네는 안 예쁘게 놉니다.

팔 모자란 글 읽어주시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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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거기서 자야 되나




시간이 늦어 조용한 전산실 창문 틈으로 우울한 빗소리가 축축하게 들어온다.


겨울밤의 서린 한기에 비까지 내려 아무도 없는 전산실은 차가운 공기만이 카사마츠의 몸을 지나간다.


서늘한 느낌에 방석으로 쓰던 담요를 몸에 두른다.


비가 내려 우울한 건지 기분이 더러워 빗소리가 우울하게 들리는 건지 카사마츠의 기분은 아까 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


시선을 조금 돌려보면 책상 옆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책들에 한숨을 내쉰다.


무리하게라도 끝내야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우울한 밤 10시, 오늘같은 날 수면실은 밤에 북적일테니 잠은 아침에 자기로 한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과제도 많으니 시간문제는 걱정할 필요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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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조금 따끔거려 인중 진짜 따갑네 콧물 흘렀나 눈곱 좀 떼줘 지금 움직일 힘없어


아야야야 그렇게 문지르지 마 너 눈곱이 얼마나 날카로운 앤지 모르냐 아호미네 됐어 좀 닥쳐 목 따가워


[유키 또 여기서 잤어?]


아오미네는 수면실 침대에 걸터앉아 카사마츠의 눈곱을 떼주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닥치라는 대답에 따갑다고 하던 인중을 세게 문질러준다.


[죽고 싶어?]


[결혼은 30살 되기 전에 하고 싶어]


짜증 난다는 한 마디를 내뱉고 카사마츠는 남자들의 침과 땀으로 얼룩진 침대에서 일어났다.


신발을 신고 아오미네에게 부축 받듯이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수면실을 나선다.


문을 닫자마자 기지개로 뻣뻣해진 몸을 풀어준다.


텁텁하고 냄새나는 공기로만 숨을 쉬다가 나오니 온몸에 겨우 피가 도는 기분이다.


창문도 없고 시트도 더러워 도저히 사람이 잘 수 있는 환경도 아니면서 잘도 수면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래도 잘 수만 있다면 딱히 장소는 상관없다.


[저런 데에서 자니까 기침을 달고 사는 거잖아 우리 집으로 오라니까?]


[1년만 더 있어봐라 그땐 저기가 꽃밭으로 보일걸.]


깔끔 떨긴.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학식을 먹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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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응. 오늘 있지. 응. 어디서 잘 거야. 내 꽃밭.


[아 진짜!! 10분만 걸으면 있는 러브하우스를 두고 왜 그딴 더러운 꽃밭에서 자는 거야?!]


너 들이 나중에 수면실 애용할 텐데.


[10분만 걸으면 있는 러브하우스는 니 자취방이잖아. 그리고 영어 쓰지 마. 너 발음 웃겨.]


러브하우스 맞지 뭐 거기 침대에서 기분 좋게 울던 게 누군데. 닥쳐 좀 제발


[오늘도 과제야? 무슨 과제가 그렇게 많아? 당신 맨날 놀다가 몰아서 하는 거 아냐?]


[시끄러 조금만 더 하면 끝이야 드디어 밤에 잘 수 있으니까 제발 닥쳐줘 다이키]


이름을 불러주면 그건 그거대로 잘 먹혀와서 조용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밤? 밤이면 다른 남자들 많잖아. 지금 나 말고 다른 남자들이랑 엉켜 자겠다고 하는 거야?]


오 그거 참 따뜻하고 좋겠네. 당신은 내가 진짜 좋아? 정말 좋아해 다이키 그러니까 좀 닥쳐


[당신 내일 오전 강의 없잖아 집 가서 오랜만에 술이나 좀 마시는 게 어때 스트레스 모아둬서 어디다 기부하려고 그러는 거야?]


기부해도 받아줄 사람이 있나. 너가 뱉은 건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어. 반말 하지 마 맞다 너 모리야마한테 반말했다며? 왜 갑자기 조용해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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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바쁘게 발걸음을 놀린다. 안 씻은지 얼마나 됐더라 옆구리가 가려운 거 같기도 하고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대충 보이는 침대 옆에 가방과 외투를 던지고 바로 욕실로 들어간다.


원룸치곤 넓지만 건장한 남자 둘이서 자기엔 턱없이 좁다.


평소에는 아오미네가 바닥에서 자지만 날씨가 유난히 추운 날에는 같이 침대에서 자기도 한다.


따뜻한 물을 끼얹으니 피로가 날아가는 기분이다. 이번 주말엔 목욕탕이나 갈까 뜨신 물에 몸을 담갔을 때의 짜릿함을 생각하니 힘이 기분 좋게 빠진다.


묵은 때를 씻어내고 문을 조금 열어보면 바로 앞에 갈아입을 옷이 놓여있다.


크다면 크지 결코 작은 체격은 아니다 시꺼먼 놈이 쓸데없이 클뿐이고 이 티는 많이 늘어나있다.


응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헐렁한 것이다.


나가자마자 보이는 침대에 몸을 던진다. 목욕을 끝낸 후 침대에 몸을 늘어뜨렸을 때의 나른함은 따뜻한 날 수업시간에 자는 것만큼 기분이 좋다.


무언가 캔을 따는 소리가 들리고 난 후 얼굴에 차가운 것이 닿는다.


[고마워]


하루 일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진짜 이 맛에 살지


[너 아저씨 다 됐다?]


[경어 새꺄]


나의 주량은 맥주 한 캔 조금 넘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




맥주 두 캔을 마셨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마침 아오미네가 다 씻은 모양이다. 눈앞이 흐려져 검은 것밖에 안 보이지만


[한 캔 더 갖다 줄까? 두 캔도 버거워 보이지만.]


아오미네는 카사마츠의 주량을 비꼬며 실실 웃은 채로 카사마츠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




온몸이 아프다 어제 몇 시에 잤더라 지금은 몇 시지? 허리 아프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검은 쇄골과 목울대


얼른 권태기가 왔으면 좋겠다 이런 사소한 거에 설레지 않게


조금 고개를 들면 정신없이 자 고있는 귀여운 연인이 보인다.


취해 잠든 사이에 귀엽지 않은 일이 있었겠지


가만히 누워 지난 새벽의 일을 조금씩 기억해낸다.


나 어제 좀 적극적이었나


아오미네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손을 뻗었을 때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뉜다.


안 어울리게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히거나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기분 좋게 웃으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어제는 어땠으려나 좋아해 주었으려나


입 밖으로 꺼내면 간지러운 말들을, 본심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서 사실은 내가 창피한 걸 감추기 위해 하는 행동을 한다.


[아오미네!]


[아파 유키 때리지 마 진짜 아파]


관계를 맺는 것을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더군다나 상대는 사랑하는 연하의 연인이다. 오히려 너도 그것도 정말 좋아한다.


[어제하자고 한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얼른 일어나 망할 간구로 새끼]


[유키 잠깐 진짜 아파 아니 근데 진짜 아파 잠깐잠깐]


하지만 그런 본심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본심과 다르게 행동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본심대로 행동하면 네가 좋아해 줄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오미네를 타박하다 문득 몸 안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가는, 다리를 타고 흐르는 정액을 본다.


[너 콘돔도 안 꼈냐? 매너 없는 새끼 망할 새끼]


[아 하지마하지마 그만 진짜 아파]


사실 콘돔 없이 하는 걸 더 좋아한다. 무언가 생생한 감촉에 네 표정에 벅차오르는 내 기분에 그 얇은 막이라도 없었으면 한다.


너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까


[얼른 꺼져 침대 밑으로 꺼져 당장 꺼져 ]


[제발 내 발로 나갈 기회를 줘 아얏]


조금씩 조금씩 더 기억이 난다 어제 내가 먼저 하자고 한 건 아니구나


내가 먼저 키스했구나 다행이다 그걸로 됐으려나 아닌가 제정신으로는 적극적이지 못 해서 미안해


[목 아파]


[어제 소리 많이 냈으니까]


어느새 일어나 멍하니 있는 내 얼굴을 보다 다정하게 손에 물컵을 쥐여준다.


얼른 권태기가 왔으면 좋겠다 이런 사소한 거에 설레지 않게


새가 모이 쪼아 먹듯이 조금씩 마시면 가만히 지켜보던 아오미네는 커피를 타준다.


[각설탕 4개 맞지? 애도 아니고 그렇게 단 것만 먹으면 진짜 애새끼 된다?]


[진짜 미친 거지?]


오늘도 평소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너와 함께 깨어난 아침과


[아파아파 진짜 아파 형 아파 유키형]


지난밤 내가 취해 정신이 몽롱해지는 맥주 두 캔을 일부러 마신 것뿐


[허리 아파 허리 주물러 줘]


무엇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내가 취하지 않았을 때 할 수 있는 최대의 애정표현이다.


그런 나를, 본심을 말하지 못해 안달 난 나를, 늘 망설이는 나를, 너를 정말 아끼는 나를, 실은 너의 집에 오고 싶어 지난날 무리하게 밤을 새우던 나를,


말 한 마디만 하면 무엇이든 해줄 너에게 괜히 창피해 애써서 돌아가는 나를, 너는 알고 있을까


사실은 알아주었으면 하지만 필사적으로 감춘다.


그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내가 이렇게 노력한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된다면 나를 감싸주었으면 한다. 내가 창피하지 않도록





어쩐지 촉이 안 좋았다. 기분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아오미네는 괜히 심술이 나 평소보다 거칠게 카사마츠를 깨웠다.


잠을 별로 못 잔듯하지만 깨워달라고 했으니 깨울 수밖에


오늘 아침, 아오미네는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카사마츠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아침부터 문잔가. 괜히 들뜨는 마음에 급하게 문자를 확인했지만


내용은 수면실에서 잘테니 오후 수업 시작하기 전에 깨워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말을 덧붙여 보내주기엔 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는 연인이었다.


그래도 그 말을 붙일까 말까 고민하는 카사마츠의 모습을 떠올리니 꽤나 귀엽구나 했지만


그런 카사마츠가 잠들기에 수면실은 너무나도 더럽다.


정말 열악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자신의 연인은 신경도 안 쓰이는지 이 돼지우리 같은 데에서 잘도 잔다.


[유키 또 여기서 잤어?]


며칠 수면실에서 잔 걸로 카사마츠는 코가 막히고 목이 막히고 기침이 늘었다.


괜히 심술이 나 눈 주위를 벅벅 문질렀더니 자고 일어난 후라고 하기엔 강한 주먹이 뱃속으로 파고든다.


코는 어때? 인중 따갑다고? 콧물 말라서 그런 거 아냐? 잠깐 거기 눈곱 있어 그러길래 누가 무리하랬냐


눈곱 괜히 살아있는 애로 만들지 마 좀 괜찮아졌어? 잠깐 닥치라니 너무 하잖아


인중을 세게 문질렀더니 죽고 싶으냐는 말에 돌아온다.


[결혼은 30살 되기 전에 하고 싶어.]


당신은 눈에 띄는 거 싫어하니까 단둘이 외국 어디 나가서 할까. 그 적극적인 말은 침과 함께 삼켰다. 당신이 부담스럽지 않게


하지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돼지우리를 꽃밭으로 보는 안목은 공감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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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마와 대화를 해보니 과제 제출일은 한참 남은 것 같다.


쉬어가며 놀아가며 해도 될 만큼 기간은 길지만 그만큼 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런 과제를 단기간에 끝내려는 카사마츠의 심보를 모르겠는 건 아니다.


요즘 만난 횟수를 생각한다면 그가 그렇게 과제에 매달릴 만도 하지만


[너네 진짜 닭살 돋아]


[시끄러워 동정남]


[끼! 요시타카 상처받았어! 유키오한테 이를 거야!]


진짜 이 사람이랑은 대화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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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있는 당신에게 맥주캔을 따서 내민다. 이 맛에 산다니 정말 아저씨 다 됐어


[너 아저씨 다 됐다?]


[경어 새꺄]


기분이 좋은 듯 실실 웃으면서도 경어를 쓰라는 말은 잊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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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나오니 제 연인은 아까 준 맥주 캔 외에 하나를 더 마시고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


생긴 건 주당인데 보기와는 다르게 술에 약하다.


카사마츠는 천장에 두고 있던 시선을 천천히 아오미네에게 돌린다.


취할 것만 같은 시선을 마주 보며 그가 불편하지 않도록 침대 가에 조심히 앉았다.


[한 캔 더 갖다 줄까? 두 캔도 버거워 보이지만.]


당신은 보기와는 다르게 술이 약하고, 술을 마신 후에는


[으구 이쁜 내 새끼]


아저씨 같아진다.


샤워를 끝낸 후라 축축해진 머리를 마구 헤집다가 머리 위로 넘겨준다.


[잘생긴 새끼]


양손으로 얼굴을 잡고 그대로 입 위에 가볍게 키스해준다.


[머리가 거지 같아도 잘생겼냐]


목에 팔을 두르고 그대로 뒤로 누워 아오미네까지 침대 위로 엎어졌다.


[다이키]


졸린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고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춰 준다.


[나랑 결혼하고 싶으면]


이번에는 코


[마이쨩 사진집]


이번에는 볼


[전부 버려]


이번에는 입


유키는 보기와는 다르게 술이 약하고, 술을 마신 후에는 아저씨 같아지고, 솔직해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오늘 당신이 술을 마신 이유는


취한 당신에게 대답 대신 더 꼭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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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큰 충격에 눈을 떴다.


[아오미네!]


[아파 유키 때리지 마 진짜 아파]


어제는 꽤나 끈적했다. 잘 볼 수 없는 적극적인 당신의 모습에 반가워 평소보다 더 흥분했다.


[어제하자고 한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얼른 일어나 망할 간구로 새끼]


[유키 잠깐 진짜 아파 아니 근데 진짜 아파 잠깐잠깐]


분명하자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오히려 올라탄 건 당신이었다.


[너 콘돔도 안 꼈냐? 매너 없는 새끼 망할 새끼]


[아 하지마하지마 그만 진짜 아파]


콘돔 없이 하자고 한 건 당신이지만 그 말도 함께 삼킨다.


[얼른 꺼져 침대 밑으로 꺼져 당장 꺼져 ]


[제발 내 발로 나갈 기회를 줘 아얏]


움직일 틈도 없이 찌르는 당신의 다리를 피해 침대에서 겨우 내려온다.


당신을 힐끔 쳐다보자 목이 아픈지 어려 보이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목 아파]


[어제 소리 많이 냈으니까]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여 손에 물컵을 쥐여주었지만 마시는 모양새를 보니 물보다는 달달한 거라도 찾는 거 같다. 목 아픈 주제에


꿀물 없는데 커피라도 괜찮으려나


[각설탕 4개 맞지? 애도 아니고 그렇게 단 것만 먹으면 진짜 애새끼 된다?]


[진짜 미친 거지?]


오늘도 평소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깨어난 아침과


[너 는 일단 때리고 보랬어]


지난밤 당신을 도와 당신의 눈에 띄는 곳에 맥주 한 캔을 더 놓은 것뿐


[허리 아파 허리 주물러 줘]


짧은 입맞춤에도 얼굴을 붉히는 당신에게 있어서 그것은 최대의 애정표현일 것이다.


그런 당신을, 본심을 말하지 못해 안달 난 당신을, 늘 망설이는 당신을, 나를 정말 아껴주는 당신을, 함께 밤을 보내고 싶어 무리한 생활을 한 당신을,


벅찬 감정을 필사적으로 숨기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내가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감싸준다. 당신이 내게 다가올 수 있도록






(추가 설명)


먼저 글 재주가 없는 것에 사과드립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이너라서 뭔가 더 꽁기하네요 꽁치꽁치


내용 중 [얼른 권태기가 왔으면 좋겠다 이런 사소한 거에 설레지 않게]란 말은


사실상 카사마츠가 쪽팔림에서 도망치기 위해 하는 자기 주문 같은 겁니다.


아침에 아오미네 쇄골이랑 목젖 보면 저도 뭔가 창피해질 거 같아요 둘이 다 벗고 있기도 하고


어쨌든 그렇게 큰 의미 부여는 아닙니다 그냥 카사마츠가 지나가는 말로 하는 독백입니다.


아오미네는 카사마츠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왜 과제를 미리 끝내는지 목적이 뭔지 일부러 술에 취한 이유가 뭔지 등등등


다 압니다 밑 글은 완전 전지적 외노자 시점이에요


하지만 카사마츠는 모르고 혼자서 계획 열심히 짜고 실천합니다. 며칠 동안 안 씻으면서 더러운 수면실에서 자가면서 과제로 생노동합니다.


물론 계획은 굉장히 성공적으로 끝났지만요. 섹스섹스


나름 이 소설의 포인트는 아오미네>>>>>>>>>><<카사마츠 가 아닌 아오미네>>>>>>>><<<<<<<<<카사마츠를 은근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는데요


그딴 포인트 따위 포인트가드인 유키쨩에게 줬습니다. 죄송합니다.


유난히 황립글보다 사과를 많이 하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나로 처녀 뗀 주제에


[황립] 나로 쳐녀 뗀 주제에





후회키세x빗치마츠


카사마츠 유키오 - 휴학 중 (25)

키세 료타 - 배우 겸 모델 (23)


일 둘은 절대로 연인 사이가 아닙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연인 묘사는 캐릭터의 착각

이 황흑소재가 아주 약간 있습니다.

삼 작 중 카사마츠의 정신은 굉장히 정상적입니다. 우수한 성적과 준수한 외모에 대학교에서 인기까지 있습니다. 빗치는 이래야 스릴 넘치죠

사 황<<<립 에서 황>>>립으로 넘어간 상태입니다.

오 키세가 카사마츠에 대한 감정을 깨달음과 동시에 카사마츠는 빗치가 됩니다. 그 이후로 카사마츠는 키세의 집에 찾아가지 않습니다.

육 브금같은 경우 [현재]의 키세의 감정에 더 이입했습니다. 이 소설의 [현재]의 카사마츠는 정말 즐겁게 잘 살고 있거든요

칠 모자란 글 읽어주시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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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연인이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의 향기에 잠을 깨는 것이


느끼지 못할 향기와 잔상을 떠올리다 문득 구토가 밀려온다.


 - 새삼 또 혼자가 됐다는 걸 느끼네요


맥 빠진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온다.


현실을 부정하듯 다시 꿈속으로 떨어진다.


가장 좋은 도피처인 줄 알았던 그곳은 적의 피난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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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다.


꿈속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본다.


요즘 일은 어떤지 스케줄이 너무 많으니 조금은 줄이는 게 어떤지 식사는 거르지 말고 꼭 먹으라던지


날씨가 추우니 너무 얇게 입지 말라던지 사소한 말에 너무 상처받지 말라던지 그리고


[키세]



[우리는 사귀는 건가?]


선배 세후레란 말 암까?


과거의 내 말이 꿈속의 내 가슴을 꿰뚫는다 과거의 내 말은 마치 가시다 화살이다.


[..섹스프렌드?]


[물론 선배는 그런 거창한 게 아니지만요]


과거의 내가 꿈속의 나에게 웃는다.


사람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선배는 그냥]


당신은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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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악몽에서 깨기 위해 적을 찾아간다.


[유키옷치 저 왔습니다.]


몇 달 간 뺀질 나게 다니던 집 문을 두드린다. 곧 잠에서 막 깨었는지 부스스해 보이는 남자가 나온다.


[료타?]


그런 그조차 사랑스럽다.


그는 익숙한 듯 나를 들여보내주고 나는 익숙한 듯 그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는 익숙한 듯 옷을 벗고 익숙하게 침대에 앉아 내 바지에 손을 갖다 대고


[아아아아닙니다! 아니에요! 유키옷치 오늘은 그거 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왔어?]


그럼 왜 왔어?


송곳 같은 말이 가슴을 후벼판다.


상처받지 마라 나는 상처받을 자격조차 없다.


누구보다 올곧은 이를 이렇게 만든 건 나다.


[그냥 얘기라도 나누러 온 거예요 유키옷치가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도 사 왔어요 자주 그랬잖아요 사귈 때 그냥 시답잖은 일로 자주 만났잖아요]


변명하듯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물론 만난 곳은 나의 집이었고 그는 먼 거리를 군 말없이 자주 찾아와주었다.


언제부터였지 그를 그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만 찾기 시작했을 때는


[응 별로. 케이크는 어제도 먹고 엊그제도 먹고 그끄저께에도 먹었는데]


[그래요? 친구라도 만났어요?]


[응 소스케랑 만나서 섹스했어]


상처받지 마라 나는 상처받을 자격조차 없다.


[그날 허리 잘 돌렸다고 케이크 많이 사줘서]


누구보다 올곧은 이를 이렇게 만든 건 나다.


[며칠째 먹고 있는데도 다 못 먹었어. 료타도 좀 먹고 갈래?]


카사마츠는 애교 부리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가식적인 행동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 맞다 곧 촬영시간이네요 미안해요 가봐야겠어요]


도망치듯 카사마츠의 방을 빠져나오며 언뜻 본 그의 모습은 아쉬운 듯 입술을 핥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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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악몽인가


평소와 똑같다.


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다.


여긴 꿈 속이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아프다 괴롭다 슬프다.


과거의 나는 꿈속의 내 위에서 실컷 놀고 있다.


[소리 좀 그만 내주면 안됨까? 선배 때문에 집중 안되잖슴까 왜 꼭 쿠로콧치 생각이 날려 하면 그렇게 소리를 내서 상상을 망쳐주는검까]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는다.


언제부턴가 터득한 방법이었다 숨을 참으면 소리가 잘 새어나가지 않는다.


[쿠로콧치]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는다.


키세를 화나게 해선 안 돼


그는 나를 용서한 것이 아니었다.




****




일주일 만에 그의 집에 찾아갔다.


그를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급하게 뛰어왔다.


케이크는 질렸겠지 여러 종류의 비싼 초콜릿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유키옷치 저 왔습니다.]


반응이 없다. 어라 나간 건가


의문을 품고 문고리를 돌리니 문은 쉽게 열렸다.


거실에는 없다.


뛰어온 탓에 들썩이던 어깨가 진정될 즈음


닫혀있는 문 안 쪽에서 나오는 달뜬 소리가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상처받을 자격조차 없다.


누구보다 올곧은 이를 이렇게 만든 건 나다.


대충 눈에 보일 만한 곳에 초콜릿을 두고 그의 집을 나선다.




****




또 악몽이구나


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다.


무언가 다르다 평소와는 어딘가가 다르다.


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꿈속의 나는 과거의 내가 보는 앞에서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괴롭다 아프다 꿈인데 아픔이 느껴질 리가 그런데도 너무나 아프다.


과거의 나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울고 있는 꿈속의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선배 그 표정 카메라에 다 나옴다 소리는 왜 안냄까 자존심도 있었슴까?]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이 아픔은 괴로움은


과거의 내가 당신에게 급하게 쌓아올린 마음의 상처였다.


그는 나를 포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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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옷치? 이 분은?]


[유키유키 저 남자 혹시 키세료야? 진짜 키세료야?]


연예인을 앞에 두고 잔뜩 흥분한 남자가 카사마츠에게 치근덕대며 묻는다.


오늘은 일진이 안좋다. 


컨디션 난조로 촬영을 망치고 심지어 몸매 관리를 못해 매니저에게 깨지고


카사마츠의 또 다른 세후레를 만났다.


[저는 가볼게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눈물이 마른하늘을 대신해주듯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




오늘 도구나


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다.


오늘도 남자의 몸으로 남자와 관계를 가진다.


묘한 기시감이 든다 무엇이 달라진 거지 평소의 꿈처럼 괴롭고 아픈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애정 어린 관계도 아니다.


꿈속의 나는 지금 조금 기쁠지도


상대는 키세도 아닌데


오늘은 악몽이 아닌가 보다.




****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가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꿈은 굉장히 기분 좋았다.


당신과 함께 한 꿈 중 편안하고 괴롭지 않은 꿈은 처음이었다.


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기 때문일까




****




또다시 적의 피난처로 떨어진다.


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다.


다른 남자와 화끈한 원나잇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도중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잡아채 강제로 뒤를 돌아보게 한다.


[뭠까? 왜 다른 남자랑 사이좋게 모텔에서 나오는 검까?]


과거의 나다.


과거의 나 역시 평소와 달라 보인다 왜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인가


[요즘 안 쑤셔주니까 심심했던 검까? 미친 거예요? 그딴 더러운 몸으로 나와 하려고 한검까?]


너는 나는 과거의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다.





왜?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관계를 가진다.


꽤나 고통스러울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


과거의 내가 꿈속의 나를 때린다.


충격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쩡하다 자주 맞아서 그런가


과거의 나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마음껏 소리를 낸다.


학대와 같은 섹스에 흥분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른 감각에 발끝부터 머리끝 손끝까지 마비되는 것만 같다.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과거의 나는 관계하는 내내 화를 냈다.


과거의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가 나를 진정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관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끝났다. 아쉬웠다.


바로 옷을 추슬러 입고 나가는 과거의 나를 보고 꿈속의 나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과거의 나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료타 있지 료타 료타랑 유키는 취향이 비슷한 거 같아 료타는 어땠어? 나는 너무너무 좋았어 료타!]


무릎을 꿇고 여태껏 관계를 맺은 남자들이 보면 흥분하는 표정을 얼굴에 띄고 과거의 나의 허벅지 안쪽을 진득하게 쓸어올린다.


[유키 펠라치오도 잘하는데 허리도 잘 돌리는데 벌써 가는 거야?]


과거의 나는 울기 시작했다.




****




눈이 떠진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랑하는 당신에게 짧은 메일을 보내는 것


 - 유키옷치 오늘도 집에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허락의 대답이 떨어지면 벅차오르는 기분 때문일까. 얼굴 만면에 절로 웃음이 오른다.


날아오를 듯한 기분의 표정과는 달리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가만히 기뻐하기엔 꿈의 여파가 너무나 크다.


흐르는 눈물들을 닦고 욕실로 가 몸을 씻는다.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문질러도 물이 닦이지 않는다.







그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지만 몹시 무겁다.


초인종을 누르니 부스스한 그가 문을 열어준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당신과 담소를 나눈다.


언제쯤 휴학을 끝내고 학교에 나갈 건지 학비가 부족하진 않은지 어제저녁은 무엇을 먹었는지 오늘은 몇 시쯤에 일어났는지


혹시라도 몸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식사는 거르지 말아달라는 말과 함께 모처럼 왔으니 외식이나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오늘은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아]


[그럼 뭐 시켜 먹을까요? 아니면 제가 나가서 사올까요? 아니면 식재료를 사 올까요? 고기 감자조림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유키옷치,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밥 먹기 싫어]


[하지만 유키옷치 요즘 너무 말랐어요 정말 꼬박꼬박 식사하시는 거 맞죠?]


[하고 싶어]


당신은 늘 나를 유혹한다 그런 표정은 어디서 배워오는 건지


[하자 료타 그렇게 숨길 필요는 없어]


당신의 매혹적인 손길을 피하기엔 나는 너무나 어리다.




****




오늘도 꿈을 꾼다 이상한 일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자주 꾸지 않았는데


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다.


있지 유키


[응?]


아까 다녀간 남자 키세료 맞지?


[응 맞아]


키세료랑 무슨 관계야? 난 이렇게 가까이에 그런 대스타랑 친분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


[아아 키세료?]


[료타는 그냥]




 - 쿠로콧치 글쎄 오늘 카사마츠 선배가 저한테 선배랑 제가 연인이냐고 물었슴다


진짜 토 나올 뻔 했슴다! 날짜 확인까지 했다구요? 오늘이 만우절인지


지 주제를 알아야죠 그래서 그냥 면상에 대고 말해줬슴다


[료타/선배는 그냥 장난감이야]


웃기지도 않죠? 저로 처녀 뗀 주제에 정말 말이 많슴다




****




머리가 어지럽다 목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올라온다.


화장실까지 가기엔 지금의 상태로는 너무나 먼 거리다.


오늘도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한다.


그전에 사랑하는 당신에게 짧은 메일을 전송한다.


[하고 싶어요]


이렇게라도 당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




 - 하고 싶어요


오늘도 귀여운 후배에게서 짧은 메일이 도착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뭐라고 답장을 보내면 좋을까 꽤나 떨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답장을 보낸다.


 - 나도 하고 싶어 얼른 와 줘 료타


그와 하는 섹스는 다른 남자와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리만큼 기분이 좋다.


예전에 사랑했던 이였기 때문일까


그런 시답잖은 이유라면 자신에게 정말 질릴 것만 같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몸을 섞었던 남자를 서둘러 내보낸 후 욕실로 가 몸을 깨끗이 씻는다.


항문은 특히나 깨끗이 씻는다. 콘돔을 꼈더라도 다른 것이 들어왔었으니까 료타가 불쾌하지 않게 깨끗하게 씻는다.


콘돔 없이 하는 걸 허락해주는 건 료타뿐이니까


언제부턴가 생긴 사고방식이다. 아니 습관일지도




****




초인종을 누르자 금방 씻었는지 물기에 젖은 머리를 한 그가 문을 열어준다.


[어서 와]


그가 예쁘게 웃어주며 환영해준다 젖어서 그런가 묘하게 야한 거 같기도 하고


침대에 누운 그를 쳐다본다.


당신은 오늘도 나를 유혹한다.


[얼른]


그가 나에게 손을 뻗는다.


[바로 넣을 수 있게 뒤에 풀어뒀으니까]


당신의 매혹적인 손길을 피하기엔 나는 너무나 어리다.


유혹하는 그의 옆에 누운 후 그를 안아올려 내 위에 앉힌다.


아주 잠깐 안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


[해주세요 유키오]


능숙한 그의 행동에 슬프다.


[료타]


흥분한 그의 목소리에 설렌다.


[좋아]


고백 아닌 고백에 또다시 설레는 마음을 부정한다.


[너무 좋아]


그가 좋다고 하는 대상은 내가 아니다.




****




정사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료타는 급하게 돌아갔다.


그의 행동에 내 기분까지 식어 욕조에 물을 받으며 몸 안에 쌓인 정액을 빼낸다.


그와 섹스를 할 때는 다른 남자에게는 해주지 않는 서비스를 굉장히 많이 해준다.


스스로 옷을 벗는다던가 펠라치오를 해준다던가 이거 턱 무지 아픈데 


비린 정액을 마셔준다던가 먼저 키스를 해준다던가 콘돔 없이 한다던가 안에 사정하는 걸 허락해 준다던가


어쨌든 다른 남자와 할 때는 절대로 하지 않는 일들을 료타와는 한다.


[꽤나 마음에 들어서 그래주는 건데]


욕조로 들어가 녹진한 몸을 달래며 오늘 밤은 누구와 보낼지 생각해본다.




****




사랑하는 이와 애정 없는 섹스를 끝낸 후에 촬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매니저의 차를 타지 않게 된 지는 꽤나 오래됐다.


설마 내가 멀미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촬영 있는 날은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간다.


버스도 흔들림이 심해 꺼리게 된다. 그나마 미동이 거의 없는 지하철이 낫지


오랜만에 한 섹스다.


예전에 그와 한 폭력적인 섹스 후에 처음 하는 섹스였다.


그 후 다른 사람과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가진 관계는 분명히 상쾌해야 할 터인데 상쾌하지가 않다.


찝찝한 기분으로 스케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예전에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울 기세로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고양이 귀를 한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몇 년 전이었지 그가 막 졸업을 한 후였나


고양이 귀를 하고 사진을 찍은 당신은 볼이 붉어져있었다.


이 시기의 그라면 고양이 귀를 했다는 창피함이 아닌 나와 함께 있다는 것 때문에 볼을 붉힌 것이겠지


지난날을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잔뜩 흥분한 표정을 한 당신에게 미친 것처럼 달려들었다.


굉장히 황홀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떠올리니 아랫도리에 열이 몰린다.


내일도 찾아가도 될까 찾아가면 받아주겠지?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며 고양이 귀를 한 당신의 사진을 보며 자위를 한다.


오랜만에 보는, 다시는 볼 수 없을 쑥스러워하는 당신의 표정은 사진 속에만 갇혀있다.




****




오늘도 적의 피난처에 도착했다.


꿈속의 나는 과거의 당신이었다.


꿈속의 나는 낯선 남자의 몸 위에서 애타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


침을 삼킬 새도 없다. 숨이 가빠 움직임을 늦추니 밑에서 느끼는 곳만 골라 쳐올린다.


몸에 힘이 빠지고 자세가 무너진다.


그대로 자세가 뒤바뀌어 남자가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다음에 또 봐 유키]


아직도 숨을 고르는 꿈속의 나에게 남자는 많은 액수의 돈을 남기고 방을 나간다.


그제야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텔? 모텔인가 모텔보다 더 좋아 보이는데 설마 호텔인가


지친 몸을 이끌어 콘돔 봉지 사이에 있는 돈다발을 새어본다.


학비를 내고도 남을 액수다. 기분이 또 좋아진다.




****




아침에 일어나 오늘도 사랑하는 당신에게 짧은 메일을 보낸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대충 손에 집히는 옷을 입은 후 은행으로 발걸음을 놀린다.


지갑에 있는 돈은 7만 4천 원, 만들어놓은 통장은 총 6개


신용카드도 넉넉하고 통장에는 보통 사람들이 보면 억 소리가 날 만큼 쌓여있다.


이 정도면 사람 한 명 정도는 평생 손끝에 물도 안 묻히게 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




[료타?]


귀여운 후배가 생각보다 집에 일찍 왔다.


한 두 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나가있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나가는 료타의 뒷모습을 본다.


문 잠그는 걸 깜빡했구나


[있지 오늘은 그냥 돌아가 줘 아는 후배가 와서 조금 곤란해]


[요즘 자주 만나 주지도 않고 오늘은 오자마자 나가게 하고.. 나 말고 저 새끼 만나느라 그렇게 바쁜 거야?]


[질투해주는 거야? 기뻐 소스케! 하지만 애초에 섹스만 하기로 약속했잖아? 미안하지만 오늘은 돌아가 줘]


다음에 펠라치오라도 해줄 테니까


[..가볼 테니까]


나도 같은 남자지만 남자들은 참으로 편하다.


조금만 애교 섞어 말해주면 표정이 풀어져 귀찮은 것들도 금방 나가떨어진다.


[료타 기다렸지? 미안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옷 입을 테니까]


[아뇨 입지 말아주세요 지금 하고 싶어요]


몇 달 간 질릴 정도로 섹스를 피해오더니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무슨 일인지 먼저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살살하지 말아줘 오늘 아직 한 번도 못했으니까]


물론 너는 가장 편한 장난감이다.


[별로 살살할 생각은 없어요]


다른 이와 있는 나를 보면 노골적으로 화난 모습을 비춘다. 예전 같았으면 무서워했겠지만


[무섭잖아 료타]


지금은 전혀 무섭지 않다.


[얼른 해 줘 안 풀어줘도 돼 바로 넣어줘]


너는 가장 편한 장난감이니까




****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당신을 보아서 그런 걸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당신이 울며 혼절할 때까지 몰아붙였다.


정사 후 급히 도망쳤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나의 품 속에서 자는 그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린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자국을 쳐다보다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약간의 눈물을 흘려본다.




****




오늘도 꿈을 꿉니다.


밤 사이 눈이 온 것 같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품고 당신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쌓여있는 눈길을 따라 걸어가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밭에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와 느낌은 정말 좋지만


깨끗한 눈밭이 나로 인해 더러워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일부러 더 먼 길을 택해 돌아갔습니다.


다행히 당신과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습니다.


졸업 기념이라며 놀이공원 티켓을 들고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당신에


무척 기뻤지만 못 이기는 척하며 수락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당신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넓은 놀이공원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습니다.


[선배! 모처럼 왔으니 이거 한 번만 써주시면 안됨까?]


[오랜만에 미친 거지 키세?]


당신이 내게 내민 것은 귀여운 여자애들한테나 어울리는 고양이 귀였습니다.


그러한 것을 쓰기에 나는 너무나 흉측하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한 번만 써주세요! 놀이공원 하면 동물 귀라구요?]


당신의 떼에 못 이겨 나는 고양이 귀를 너는 강아지 귀를 본뜬 머리띠를 하고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꼭 찍어야 하는 거야?]


[이것도 전부 추억거리 만드는 거 아님까! 선배 졸업하셨잖아요 사소한 거라도 전부 담고싶슴다]


나는 당신의 그 말이 진심인 줄 알았습니다.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내 얼굴을 뚫어버릴 듯 쳐다보는 료타의 얼굴이었다.


[아직 안 갔구나 미안 잠들어버려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오늘 그와 나눈 관계를 떠올려본다.


굉장히 격했지 기절할 정도로 몸을 섞은 건 오랜만이었다.


[미안해요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어 난 정말 좋았는걸]


덕분에 과거의 내가 너에게 무슨 감정을 가졌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과거의 나에게 또 한 번 질린다.


[저기 유키옷치 혹시 돈 때문에 섹스하기도 합니까?]


너는 여전히 건방지다 그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니


[꽤 편해 나도 좋고 그 사람도 좋고 나는 돈 받아서 더 좋고]


[저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굉장히 반가운 말이다.


[질투해주는 거야? 기뻐 료타! 하지만 난 그 방법이 가장 편하고 좋기 때문에 하는 거야]


아마도 그는 지금 분노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고 그것을 표하면 독이 된다는 걸 무척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굉장히 큰 죄책감과 소유욕을 느끼고 있을 테니 아마 이 흐름대로라면


[저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자는 것이 저는 너무 싫어요 유키오


여기 말고 둘만 있는 곳에서 나만 봐주면 안 될까요? 유키옷치가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돈을 버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역시 료타 너는 너무나 좋은 장난감이야


[료타 난 별로 내 몸을 희생한다고 생각하진 않아 무엇보다 나는 섹스하는 걸 좋아해]


[나랑만 있어주시면 안 되는 거예요?]


예전부터 료타는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자주 짓는 표정이 있다.


[조금 곤란하네]


그 표정은 내가 너를 사랑하던 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표정이다.

 

마치 꼬리 내린 강아지 같아서 귀여운 마음에 사랑하던 표정이다.


[안 될 것도 없지만]


처음 나와 섹스하고 싶다고 말할 때에도 그 표정을 지었다.


[매일매일 넣어줄 거지?]


너는 내가 그 표정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그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기 힘들어지고 최근 2년간은 본 적이 없었다.


힘들게 연기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유키오가 원하는 거라면 나도 원해요]


그런 료타가 무의식중에 굉장히 우스운 표정을 지었다니


[그렇게 생각해줘서 기뻐 료타! 근데 지금 단 게 조금 먹고 싶은데]


묘한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늘 아침은 드셨어요? 아침은 드시고 간식거리를 찾아주세요 잠깐 식재료 좀 사 오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너는 이 감정에 사로잡혀있었나


[알았어 미안해 얼른 다녀와]


물론 하찮은 너라면 이러한 감정에도 쉽게 자신을 놓겠지


[금방 다녀올게요! 씻고 계세요 ..유키!]


우월감


[응 기다릴 테니까]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야 키세


알려줘서 고마워


하지만 너처럼 고작 작은 감정 따위에 휩쓸리진 않을 거야




****




(추가 설명)


글 재주가 부족해 기어이 추가 설명을 남기네요


[과거]의 카사마츠는 남자의 몸으로 남자인 키세를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는 것에 엄청난 자괴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것에 자신을 비교하고 여자와 자신의 몸을 비교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키세는 그걸 알게 되고 나서 카사마츠를 갖고 놀게 되는데요 그때 부터 헬게이트가 열립니다. 물론 [현재]의 키세의 헬게이트요


적=카사마츠 입니다. 


주된 내용이자 꿈의 내용인 [섹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는 카사마츠]를 키세는 [악몽]이라고 표현하고 카사마츠는 [피난처]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미 빗치가 된 카사마츠는 예전에 키세에게 당했던 수치스러운 일들도 나름대로 즐겁게 생각합니다.


장난으로 몸을 섞기도 하고 돈을 받고 몸을 섞기도 하지만 주로 돈을 받고 몸을 섞으니 즐거워도 몸에는 피로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카사마츠는 자신이 섹스가 좋아지게 된 계기를 떠올립니다. 카사마츠에겐 바쁜 일 도중의 피난처 같은 겁니다.


반면에 키세는 과거에 깨끗하고 올곧았던 카사마츠를 정말 가까이에서 보아왔으니 자신이 카사마츠를 망쳤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어마어마합니다.


그것을 깨닫게 된 계기(=카사마츠를 사랑한다고 인식하게 된 계기)는 다른 남자와 자고 다니는 카사마츠를 목격하게 된 후입니다.


그전에도 여러 남자를 불러 재미로 카사마츠를 범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키세는 그게 영 찝찝했습니다.


저만 쓸 줄 알았던 구멍을 다른 사람들이 쓰니 영~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죠.


하지만 카사마츠가 자의로 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다니는 걸 보게 되니 그때 감정이 폭발한 겁니다.


어쨌든 [현재]의 키세는 카사마츠를 열렬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지만


[현재]의 카사마츠는 그동안 [과거]의 키세와의 잠자리가 마음에 들었던 터라 


그런 수치플도구플 등등을 또 겪고 싶어서 키세를 꼬십니다. [과거]의 카사마츠는 [과거]의 키세와의 잠자리를 무서워했지만요.


물론 카사마츠가 키세를 꼬시는 이유는 그런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마음 외에도 재밌는 장난감 놀이를 하고 싶어서 꼬신 것도 있습니다.


그 결과 주인과 장난감의 포지션이 바뀌었습니다.


주절주절 말이 많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둘의 말투 변화입니다. [현재]의 키세가 저렇게 예를 갖춰 말하는 상대는 카사마츠뿐입니다.


카사마츠의 애교 넘치는 말투는 모든 남자를 위한 거지만요. 세후레가 아닌 친구나 대학에서는 저런 애교 섞인 말투 안 써요. 그들을 위한 영업서비스?


소설 속에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키세의 정신적 지주는 카사마츠입니다. 카이조의 정신적 지주/척추가 카사마츠인 것처럼요.


브금 제목도 savior(구원자) 입니다. 얘가 정신 놓으려 할 때마다 잡아주던 게 카사마츠 거든요.


여명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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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X레사] 여명의 신




제 2회, 익명만애 글합작 | 인스티즈


제 2회, 익명만애 글합작 | 인스티즈


*읽기 전 주의사항 (길어도 꼭! 끝까지 읽어주시떼)


여러분, 이것은 몹시 더러운 마음을 가진 덕후가 쓴 글입니다. 

우선 죄송합니다. 작가님 죄송합니다. 죽으라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잘못했스무니다. 

또한 이 글은 원작붕괴(작가님 미안)와 캐릭터붕괴(라 미안)가 심하니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크큭 끼힛! 

음 이 글에 보면 여명의 숲인지 뭔지가 나오는데 원작에는 그딴거 없음ㅋ 

근데 원작에서 의외로 많은 걸 따왔더라고요, 제가...암튼 몇가지 빼고 나머지는 라고 보시면 됩니다. 

초반에 창백한 피부가 디맨 특징이라고 나오는데 원래 절대 아님. 

원작보신 분들은 그 중간에 보면 이게 뭔 ? 하는 부분이 있으실 겁니다. 

디맨은 원래 모두 뿔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레사의 힘을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만 뿔이 나오는 걸로 하겠습니다. 끼힛

또 이 글에서 라는 평범한 닝겐이지만 원작에서는 무려 레사보다 위에 있는 신이십니다. 

'이 새기가 과연 원작에 비해 글을 얼마나 이 쓴걸까?' 싶은 분들은 원작을 보십시오! 레사는 대작입니다. 

잡소리가 너무 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 참참 제 딴에는 수위가 높지는 않은 것 같으나 혹시 민감하신 분은 수위가 있는 부분은 건너뛰어주세요! 

그리고...전개가 겁나 빠를겁니다. 예를 들어 만난지 두번째만에 겁나 뽀뽀를 한다던가... 

그것은 사실 제 마음이 더럽고 추악한 음란함으로 뒤덮여있기 때문이죠. 원작팬분들, 진심으로 사과말씀 드립니다. 

하, 진짜... 원래 수위 안쓰려고 했는데 자꾸 손이 마음대로 수위를 쓰고 있더라구여...? 전 진짜 안 그러려고 했는데 손이 막 지 맘대로... 

부족한 글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너희 중 죄를 짓지 않은 자만이 나에게 돌을 던져라. 


(브금1이 끝나면 바로 2를 틀어달라능!) 


(웹툰이다보니 익만 분들은 레사를 많이 모를 것 같아서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잘생긴 애가 라, 예쁜 애가 레사.

근데 라 이마에 원래 노란 버튼같은거 있는데 제가 지웠어여. 이 글에서는 닝겐답게 보이라고...) 

 






그 날의 밤하늘은 유난히도 짙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멈춘 듯 고요한 가운데, 저 멀리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흐느낌과 얕은 숨소리만이 잔뜩 예민해진 청각을 건드렸다. 

다리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저릿한 아픔에 저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긴 시간동안 자세를 바꾸지도 못한 채 멀지 않은 곳에 널브러진 가짜시체의 주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놈들’을 위한 덫이었다. 하지만 덫을 놓으면 뭐하는가, 정작 덫에 결려들 짐승이 나타나지를 않는데. 

슬슬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힌 듯 후우 하고 깊은 숨을 토해내는 순간, 다시 토해낸 숨을 급히 집어삼키었다. 

‘놈’의 모습이 보였다. 

살아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창백한 피부는 여지없는 놈들의 특징이었다. 

잔뜩 긴장한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손이 축축이 젖어들어 쥐고 있는 은탄총을 놓칠 것만 같아 더욱 힘을 주어 잡았다. 

놈은 별다른 행동을 않고 시체의 주위를 기웃거렸다. 

그 애매한 행동에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손의 흥건한 땀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다시 두 손으로 총을 고쳐 잡는 것과 거의 동시에 놈이 드디어 시체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순간 놈을 향해 총을 쐈다. 

하지만 탄알은 빗나갔고 놈은 많이 놀란 듯 몸을 벌떡 일으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젠장, 욕지기를 내뱉으며 놈을 쫓았다.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긴 추격전 끝에 놈은 숲 속으로 도망쳤다. 이미 숲이 놈을 집어삼킨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탈함을 느끼며 자리에 멈춰 서 숨을 몰아 쉬었다. 

가만히 놈을 삼킨 숲을 노려보던 눈동자가 순간 일렁였다. 

그리고 한동안 숲의 어느 곳을 응시하다 일순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저 사악하고 섬뜩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를 집어삼킨 숲은 금지된 땅이었다. 흔히 말하는 ’발을 들여놓았다가 살아나온 사람이 없는‘ 곳. 

그 곳은 놈들의, ’디맨‘의 땅, ’여명의 숲‘이었다. 


헉,헉 하는 가쁜 숨소리와 풀 밟는 소리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라는 숲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놈과 눈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이곳에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지금 놈을 찾는 것이 아닌,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극도의 두려움이 빠른 속도로 그를 잠식해갔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안다. 살아가면서 여명의 숲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던 그였다. 

특히 어둠이 깔린 밤에는 더더욱. 

그는 더 이상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멈추어 섰다. 

소름끼치는 적막 속에 자신이 내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것이 그를 두렵게 했다. 

당장이라도 놈들이 소리를 듣고 찾아올 것만 같았다. 

그는 빳빳한 고개를 움직여 좌우를 살피고 뒤를 살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놓는 순간 헉 하며 몸을 파득 떨었다. 

아까 놓쳤던 놈이 제 앞에 있었다. 

아무 기척도 느끼지를 못 했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놈은 등 돌린 채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라는 놈의 새하얀 은발을 보며 굳은 팔을 움직여 총을 겨눴다. 

“꼼짝 않는게 좋을 거야.” 떨리는 음성을 겨우 내뱉었다. 

그러자 놈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자 라는 그만 손에 힘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굉장한 아름다움이었다. 

놈의 새하얀 은발은 새벽의 달처럼 어둠을 밝혔고 눈동자는 광활한 우주의 은하를 담은 듯 했으며 그 위로 긴 속눈썹이 자리했다. 

무엇보다 라의 시선을 끈 것은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는 붉은 입술이었다. 

사고회로가 정지된 듯 멍하니 있던 라를 깨운 것은 손에 느껴지는 따뜻함이었다. 

그는 라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을 향한 은탄총을 상냥한 손길로 내렸다. 

“나를 죽일거요?” 부드럽게 깔리는 낮은 음성에 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너, 다른 놈들과 달라.” 라의 말에 그는 온화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그들의 아버지요.” 그러고는 라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라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의식은 점점 더 깊은 나락 속으로 떨어졌다.


다시 눈을 뜬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밝은 하늘과 그 하늘을 누비는 부지런한 새들이 보였다. 

라는 천천히 눈을 껌뻑거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숲 속의 한가운데에 누워있었다. 

밤중에 공격당하지 않은 것에 의문을 품으며 황급히 그 소름끼치는 숲을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어젯밤 만났던, 자신을 디맨의 아버지라 칭하던 사내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디맨의 아버지? 그 아름답고 조그마한 사내가? 

라는 그의 손길이 닿았던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라는 다시 한 번 숨이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다. 

곧 그는 무모한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오늘 태양이 모습을 감출 때, 여명의 숲을 가자. 

그의 결심이었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가슴을 두드려댔다. 


드디어 달이 태양의 자리를 빼앗고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어갈 때, 라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은탄총을 가지고 여명의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숲 속으로 들어갈지 이대로 돌아갈지, 한참을 생각했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과 ‘운이 좋으면 다른 놈들을 마주치지 않고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귀신에라도 홀린 듯 숲 속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숲 속의 잎사귀들은 서로 속삭이며 그런 그를 비웃는 듯 했다. 


지금 라는 숲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고 있다. 

아까부터 뒤통수에 음산한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나를 공격할 틈을 엿보고 있는 거야.‘ 땀에 의해 등 뒤가 축축이 젖어들었다. 

놈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먼저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은 무작정 도망치기로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뒤에서 저를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달리니 점점 지쳐갔다. 

저를 쫓는 놈은 지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는 악! 하는 소리를 내며 풀밭을 굴렀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은탄총은 저 멀리로 날아가 떨어져 있었다. 

바보같이, 결국 죽음을 자초했구나. 

놈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스스로 이곳에 발을 들이밀다니, 바보같은 놈.” 

뭐, 나야 좋지만. 

놈이 킬킬거리며 비웃었다. 

“네놈의 뼈와 살을 발라내어 내장부터 파먹어주지!” 

놈이 라에게 달려들었고 라는 눈을 꽉 감았다. 

결국 이렇게 죽는 걸까. 

라는 고통대신 후두둑 얼굴에 떨어지는 뜨뜻한 액체에 살며시 눈을 떴다. 

놈이 움찔거리며 목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 목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놈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리며 움찔거리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라는 헛구역질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놈을 저리 만든 자를 보았다. 

’그‘였다. 

목숨을 걸고 이 숲에 발을 들이밀 원인을 제공한. 

“괜찮소?” 

라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가 붉게 물든 검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의 아버지라더니, 그럼 자식을 죽인 것 아닌가. 

하지만 그 말을 왜인지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넌 대체...뭐지?” 

“나는 레사, 여명의 신이오.” 

신, 이번에는 자신을 신이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구심이 들지는 않았다. 

라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저를 빤히 쳐다보자 레사는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돌렸다. 

“이런, 얼굴에 피가 묻었군. 미안하오.” 

레사는 까치발을 들어 라의 얼굴을 감싸고 혀를 내밀어 묻어있는 피를 핥기 시작했다. 

라는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얼굴을 핥는 붉은 혀를 보자 어느새 이성이 날아가고 본능만이 남아있는 듯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조그맣고 붉은 입술 속에 자신의 혀를 집어넣고 있었다. 

레사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더니 그의 혀에 자신의 혀를 비벼댔다.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모습에 더욱 더 열기가 몰렸다. 

하아,하아 하는 가쁜 숨소리가 예민해진 청각을 자극했다. 

라는 뜨거워진 하체를 밀어붙이며 혀를 더욱 깊게 쑤셔 넣었다. 

레사는 숨이 막히는지 어깨를 꾸물대며 라를 살짝 밀어냈다. 

라는 저를 올려다보는 붉게 충혈된 눈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성이 돌아오자 당황스러움에 열기로 뜨겁던 몸이 차갑게 식었다.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사내에게 욕정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잔뜩 당황해 우물쭈물 대는 그의 손을 잡으며 레사가 말했다. 

“다음번에는 내가 그대를 찾다.” 

레사가 말을 마치고 라의 이마에 손을 얹자 시야가 흐려져 갔다. 

‘또, 이런 식으로...’ 

라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그를 눈에 담아두려 했지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갔다. 

정신을 잃어가는 중에 ‘창문은 항상 열어두시오.’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라는 눈을 팍 떴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은 숙소 침대에 누워있는 듯 했다. 

모든 일이 꿈이었던 것인지, 현실인 것인지 헷갈렸다. 

라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게 정말 꿈이라면 영원히 꿈속에 갇혀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달이 밝았다. 

세상에 어둠이 짙게 깔릴 때, 태양을 대신해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천공의 눈. 

그런 달을 보며 라는 레사를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가 꿈속의 인물인지 현실의 인물인지 조차도 이젠 모르겠지만, 

이미 그의 아름다움이라는 치명적인 독에 중독된 것만 같았다.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음번에는 먼저 나를 찾아온다더니. 


라는 꿈에 레사가 나오기를 바라며 침대에 누웠다. 

레사에 대한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그는 잠들어있었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라가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그리고 창문으로 시선을 던진 그는 숨을 삼켰다. 

그 곳에는 레사가 있었다. 

라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레사가 조그만 몸을 창문에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항상 열어놓으라 했거늘.” 

 라는 레사를 귀신 보듯이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오?” 

“..꿈인가?” 

레사는 그런 라를 이상하다는 듯 빤히 보다가 손을 올렸다. 

철썩 하는 마찰음과 함께 라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무 이유도 없이 뺨을 맞은 라는 꽤 놀란 듯 보였다. 

“아프오?” 

“...” 

“그럼 꿈이 아니오.” 

하, 라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소리를 뱉었다. 

그러던 그는 이내 큰 소리로 웃어댔다. 

“..? 미안하오. 내가 너무 세게 때렸나보군.” 

마구 웃어대던 라는 서서히 얼굴을 굳혀갔다. 

“하나만 물어보지.” 

“무엇을?” 

“왜 나를 오래 전부터 알았다는 듯 대하지?” 

사실은 저가 레사에게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듯한 기분에 설레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꼬인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자 레사는 멈칫하더니 인상을 썼다. 

“내 맘이오.” 

“뭐?” 

레사의 뾰루퉁한 말에 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그대가 나를 찾아왔을 때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소.” 

이렇게 말하며 침대에 걸터앉는 레사는 굉장히 진지해보였다. 

“하지만 친구끼리는,” 키스 따위 하지 않아. 뒷말은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라는 그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너를 찾아간 건 어떻게 안거야?” 

내가 숲에 그냥 들어간 걸 수도 있잖아. 

“나는 무엇이든지 알 수 있소.” 

아, 그래. 라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한번 대화가 끊기자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라는 견디기 힘든 어색함에 가만히 레사의 옆에 앉았다. 

“..이보시오.” 

레사가 라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저번에 했던 것, 한번만 더 해주면 안 되겠소?” 

저번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순간 라의 머릿속에 어느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저번에 우리가 뭘 했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레사가 자신의 생각대로 말할지도 모르는 마음에 심장이 쿵쾅댔다. 

“그, 입을 맞대고 혀를 섞는 것 말이오.” 

라는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얼굴이 상기되었다. 

“..키스?” 

“키스가 무엇이오?” 

뭐? 그의 지나친 순수함에 놀랐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해달라고 했단 말인가? 

손이 저릿저릿해왔다. 

“아무튼,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굉장히 좋았단 말이오.” 

이렇게 본인이 원하는데, 부끄러움 따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라는 오물거리는 붉은 입술을 바라보았다. 

“아,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레사는 갑자기 덮쳐지는 입술에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츱츱 서로의 입술과 혀를 빨아대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레사는 라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빨아대자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밀었다. 

“하아, 조금만 천천히 해주시오...” 

라는 레사의 붉어진 눈가를 응시했다. 

“우리..좀 더 기분 좋은 거 해볼까?” 

그 말에 레사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라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레사의 겉옷을 벗기며 천천히 눕혔다. 

“무얼 하려는 거요?” 

순진한 반응에 라는 웃음이 나왔다. 

쉿, 가만히 있어. 레사는 귓가에 속삭여지는 낮은 음성에 목을 움츠렸다. 

라는 저를 향한 말똥말똥한 눈을 바라보며 레사의 옷을 위로 말아 올렸다. 

그리고 드러나는 복숭아색의 유두에 두 엄지를 올려 비벼대었다. 

“아!” 

으, 으으... 아, 레사가 급박한 숨을 토해내며 몸을 마구 비틀었다. 

라는 그런 레사의 귀에 어때? 하고 속삭였다. 

“이,이상하오...” 

그게 좋은 거야. 하며 목에 혀를 댔다. 

그리고는 목줄기를 따라 혀를 내려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 사이를 지나, 명치를 지나, 배꼽으로. 

앙증맞은 배꼽에 혀를 쑥 집어넣자 조그마한 몸이 파드득 떨렸다. 

“잠깐!” 

레사가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라 또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지?” 

“오늘은 이 정도만 하는 것이 좋겠소...” 

레사의 말에 라는 벙찐 얼굴을 했다. 

레사는 그대로 주섬주섬 말아 올려진 옷을 내렸다. 

그런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목까지 빨간 것을 보니 이 행위가 부끄러웠나보다. 

라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싫다는 사람 붙잡아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침묵은 아까 전의 침묵보다 더한 어색함을 안겨주었다. 

레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입을 뗐다. 

“혹시, 화가 난거요?” 

“응? 아니?” 

의외의 말이 들려오자 그만 목소리가 새되어 나갔다. 

또 다시 침묵. 

“그런데 말이오...” 

“어?” 

“그대는 언제부터 나에게 반말을 사용했소?” 

라는 그렇게 말하는 레사의 깊은 눈동자를 응시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레사가 귀여웠기 때문이다. 괜히 아무 말이나 하며 침묵을 깨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처음부터.” 

“그렇군.” 

그리고 또 다시 침묵이 내렸다. 

이번의 침묵을 깬 것은 라였다. 

“그러고 보니 너, 내 이름도 모르지 않나?”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소.” 

대답은 어딘가 시큰둥했지만 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라‘다.” 

음, 사실 알고 있었는데. 하는 말에 라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 어떻게?” 

거짓말 아니야? 레사는 그렇게 말하는 라의 이마를 꽁 때렸다. 

“나는 신이라 하지 않았소?” 

라는 이마를 감싸 쥐고 레사의 옆모습을 보았다. 

네가 정말 신이라면, 

“왜 세상에 내려 온 거지?” 


라는 가만히 창밖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아름다웠다. 

붉은 물감이 서서히 종이에 물들어가 듯 번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죄를 지었소.’ 

조용히 읊조리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내일 밤, 다시 오겠소.’ 레사의 마지막 말이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 며칠을 기다려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레사를 만난 이후로 디맨사냥도 하지 않았다. 

왜인지 자신이 점점 망가져 가는 것 같았다. 

레사가 자신을 신이라 했던 것을 떠올리며 신화와 역사에 관한 서적을 찾으며 레사의 흔적을 좇았다. 

수많은 책들을 뒤지던 그는 드디어 한 권의 낡은 책에서 레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밤과 죽음을 관장하는 여명의 신, 레사.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일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점점 몸체를 불려가며 자신을 갉아 먹어치워 갔다. 

그래, 라는 레사가 다시는 저를 찾지 않을까봐, 그를 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여명의 숲. 그곳에 가볼까. 

하지만 그곳에서 죽는다면? 아마 정말로 레사를 보지 못 할 거야. 

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레사를 기다리느라 밤에 잠을 자지 않은 탓에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사실 그도 이제는 많이 지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레사가 오기도 전에 죽을 것만 같았다. 

레사가 왔을 때 자신의 차가운 시체를 보게 될까봐 무서웠다. 

그는 오늘 밤에는 오랫동안 묵혀둔 잠을 청하기로 하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조그마한 새를 위해 창문은 닫지 않은 채로. 


라는 사락 하고 머리를 넘겨주는 손길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슬며시 눈을 떴다. 

제 앞에 서있는 이의 그림자를 보자 순간 심장이 북처럼 둥둥 울리며 요동쳤다. 

하지만 차마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이가 아닐 때의 허탈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던 그는 ‘안 일어날 거요?’ 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머리를 넘겨주던 손목을 붙잡았다. 

“정말 미안하오. 혹시 날 기다렸소?” 

레사는 아무 말 없이 저를 쳐다보는 무표정한 얼굴에 어깨를 움츠렸다. 

“화가 난거요?” 

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레사의 옆에 섰다. 

“넌 꿈일까?” 

왜 내가 잠에 들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거지? 

레사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이내 알았다는 듯 그때처럼 뺨이라도 때릴 듯이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 손은 라에 의해 잡혀버렸다. 

라는 레사의 멱살을 잡고 침대로 밀어 넘어뜨렸다. 

레사는 닿아오는 따뜻한 입술에 눈을 감았다. 


“아!” 

아프잖소! 레사는 목을 깨물리자 얼굴을 찡그렸다. 

라는 미안하다는 듯 깨문 자리를 혀로 핥더니 다시 입을 맞췄다. 

서로의 혀를 빠는 야한 소리가 청각을 자극했다. 

라의 손이 아랫배를 쓰다듬자 레사의 몸이 움찔거렸다. 

라는 그대로 손을 내려 바지를 벗기려 했다. 

거침없는 행동에 깜짝 놀란 레사가 라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 남의 바지는 왜 벗기시오?!” 

“손에 힘 좀 빼보지 그래.” 

“싫소.” 

둘은 지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라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레사의 입속에 혀를 집어넣어 가장 예민한 부위를 살살 자극했다. 

레사의 손힘이 점점 약해졌고 라는 놓치지 않고 그의 바지와 속옷까지 끌어내렸다. 

그러자 레사가 라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얼굴을 붉혔다. 

으, 진짜... 하며 눈을 꼭 감는 레사는 굉장히 귀여웠다. 

라가 드러난 그의 페니스를 손으로 감싸며 문지르자 감겨있던 눈이 팍 떠졌다. 

레사의 눈이 당혹감으로 차오르며 숨을 헐떡였다. 

“기분 좋지 않아?” 

너 기분 좋은 거 좋아 하잖아. 

레사는 눈썹을 아래로 휘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사의 것을 놓아준 라는 상체를 일으키며 바지를 벗어 내렸다. 

그리고는 레사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도 기분 좋은 거 좋아해. 

그런 그의 말을 이해했는지 레사는 수줍게 손을 뻗었다. 

라는 자신의 것을 감싸오는 조그마한 손에 깊은 숨을 토했다. 

레사의 손짓은 서툴렀지만 그랬기에 더욱 흥분되었다. 

라는 레사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 하얀 목에 고개를 묻고 더운 숨을 토했다. 

그러던 그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탓에 레사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되겠다.” 참으려고 해봤는데 못 참겠어. 

레사의 한 쪽 무릎 뒤쪽에 손을 넣어 붙잡고 다리를 위로 들어올렸다. 

“뭐, 뭐 하는 거요?” 

레사는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라는 드러난 구멍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자신의 그곳에 손가락을 넣으려 하는 라를 보고 레사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하지 마시오!” 

“싫어. 이번에는 안 멈춰.”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읏!” 

버둥거리던 레사는 라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몸을 굳혔다. 

점점 깊숙이 파고드는 손가락에 반항하기를 포기하고 눈을 꼭 감았다.  

라는 손가락으로 안을 헤집으며 다른 손가락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그렇게 안을 꾹꾹 누르며 공간을 넓혀 가는데 손가락이 어느 부위에 닿자 레사가 아! 하며 몸을 떨었다. 

라는 그곳을 마구 문질렀다. 

그러자 레사의 몸이 튀어오르며 눈가에는 부끄러움에 의한 눈물이 차올랐다. 

“아, 아아... 싫소...” 

그런 레사를 보며 라는 힘없는 작은 동물을 괴롭히는 듯한 가학심에 흥분에 찬 숨을 뱉었다. 

이 정도면 되었을까. 그는 손가락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하얀 다리를 어깨에 얹더니 조금 넓혀진 구멍에 자신의 것을 가져다 대었다. 

안 된다고 소심하게 읊조리는 레사를 무시하고는 그 끝을 구멍에 집어넣은 그는 긴 숨을 뱉었다. 

악! 하고 소리를 지른 레사는 아프다며 몸을 바둥거렸다. 

라는 그런 레사를 그가 좋아하는 입맞춤으로 살살 달래주며 끝까지 집어넣는데에 성공했다. 

하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가쁜 숨을 토해냈다. 

라는 상기된 얼굴을 살피다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 하아... 아아! 

헉, 후우... 

두 사람의 달뜬 숨소리와 신음소리, 살의 마찰음이 야한 소음을 만들어내었다. 

점점 허리 짓이 속도를 더해감에 따라 레사의 몸이 밀려 올라가 침대머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러자 라는 한손을 들어 레사의 머리를 감싸 부딪히지 않게 했다. 

침대머리에 부딪히는 뼈마디가 아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옷자락을 꼭 쥔 조그맣고 하얀 손에 가슴이 설레었다. 

“으응, 으응...라...” 

나머지 손은 레사의 목 뒤로 집어넣어 고개를 젖히게 했다. 

그리고는 벌어진 입속에 혀를 집어넣고 입안을 마구 헤집었다. 

레사는 혀를 꾸물거리며 그의 혀에 맞비벼주었다. 

점점 절정이 다가오는지 둘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헉, 하아, 레사...” 

레사는 라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널찍한 어깨너머로 흔들리는 다리와 자기도 모르게 꽉꽉 오그라드는 발가락이 레사를 부끄럽게 했다. 

“아! 으응, 아... 나, 나아...” 기분이 이상해. 

격한 허리 짓을 하던 라가 큭, 이를 악물며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뱃속에 퍼지는 뜨뜻함에 레사가 몸을 떨었다. 

라는 아직 빳빳한 레사의 것을 붙잡고 아래위로 빠르게 문질러주었다. 

그러자 헐떡이던 레사는 앗! 하며 하얀 물을 토해냈다. 

가만히 레사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딱 붙이고 숨을 고르던 라가 입을 뗐다. 

씻자. 


“싫소!” 싫다니까! 

지금 라와 레사는 욕실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 빼야 된다니까!” 

라는 곤란했다. 레사의 안에서 자신의 정액을 빼내야 하는데, 싫다고 난리를 치니. 

“하, 진짜...” 

진심으로 짜증어린 낮은 음성에 레사가 눈치를 살피며 칭얼댔다. 

“그치만, 부끄럽단 말이오.” 

부끄럽다니, 우린 갈 데까지 간 사이가 아닌가. 

“다리 벌려.” 

라는 일부러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가만히 손가락만 꼼질대던 레사가 그의 눈치를 보며 다리에 힘을 풀었다. 

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사의 다리를 벌려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그리고는 안에 들어있는 것을 살살 긁어냈다. 

레사는 굉장히 부끄러워 보였다. 

“다 됐다.” 거봐, 금방 끝나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주며 손을 씻었다. 

“자, 이제 닦고 나가자.” 

라는 손수 레사의 몸을 닦아주고 옷을 입혀주었다. 

얌전한 레사의 모습이 순한 강아지를 연상케 했다. 

“나갈까?” 

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을 나온 레사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라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우리는 이제 친구인 것이오?” 

뜬금없는 말에 라는 당황했다. 

“뭐, 친구라면 친구인거지만...” 친구 사이에 몸을 섞다니. 

라는 왜인지 기분이 별로였다. 

하지만 레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말이야. 우린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왜 이리 친근하지?” 

라는 순수한 의미로 물었다. 

그러자 레사는 조금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레사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그 망설이는 얼굴을 보니 궁금해졌다. 

응? 하고 재촉하자 레사는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말하려 했는데..." 

라는 어서 말을 이어가라는 듯 레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그대는 아주 오래전, 내가 알고 지내던 어떤 아이의 환생이오.” 

그 말에 라는 뭐라고? 하며 되물었다. 

“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나의 친구였고 지금의 그대요.” 

라는 누군가에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그 여자의 환생이라서 친한 척을 했다는 소리군.” 

“아니.. 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오.” 

그렇게 말하는 레사는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라가 저를 보지도 않고 아무 말도 안하자 레사는 우물쭈물거렸다. 

“저기, 이보시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시오. 

라는 레사의 말을 무시하며 침대로 가 걸터앉았다. 

사실 화가 난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마치 그 여자의 대용품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레사가 자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기분이 나빴다. 

“라, 나의 말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하오.” 

라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소.” 

그 말에 아무 반응도 안 보이던 라가 벌떡 일어났다. 

“뭐? 또 도망가게?” 

“도망이라니..? 난 도망친 적 없소!” 

성큼성큼 다가온 라가 레사의 손목을 잡아챘다. 

“안 돼. 또 언제 올 줄 알고 너를 보내?” 

“그 말은 내가 여기 있어도 좋다는 뜻이오?” 

의외의 말에 당황한 것은 라였다. 

“내가 있으면 그대가 불편해 할까봐...” 

“됐어, 그냥 있어.” 

라는 뻘쭘함을 느끼며 레사의 손을 놓아주고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잠시 머물도록 하겠소.” 

레사가 라의 곁에 앉았다. 

“레사.” 

라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그러자 레사는 음? 하며 라를 보았다. 

아까는 화내서 미안하다. 들릴 듯 말 듯 한 조그만 목소리에 레사가 살풋 웃어보였다. 

“그대는 어린 아이 같군.” 

화를 냈다가도 금방 풀이 죽어 사과를 하고. 

그 말에 라는 레사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흥, 아무리 봐도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을걸? 하려던 그는 급히 말을 멈추었다. 

참, 레사는 신이라고 했지. 

“응? 하려던 말이 무엇이오?” 

“아무 것도 아니야.” 

레사는 그렇소? 하며 뒤로 발라당 누웠다. 

“이보시오, 라.” 

라는 고개를 틀어 누워있는 레사를 보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죄인이오.” 

내가 지은 죄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 

라는 가만히 레사를 바라보았다. 

대체 네가 지은 죄가 무엇이길래, 얼마나 큰 죄이기에. 

그 죄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은, 그 죄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혹시 네가 디맨의 아버지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라는 아무 말 않은 채 몸을 뒤로 뉘고는 눈을 감았다. 

“라, 나는...” 

“괜찮아. 네 죄가 무엇이든지간에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 그치? 

라의 말에 레사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누워있었다. 

“레사, 졸리지 않아?” 

라가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누르며 말했다. 

“난 잠을 자지 않소.”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난 좀 잘게. 하고 라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레사는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라의 등을 바라보았다. 

“라, 자는 거요?” 

“도망가면 맞는다.” 

그 살벌한 말에 레사는 조용히 웃었다. 

그대는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군.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레사는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레사는 몸을 일으켜 창문에 다가섰다. 

이지러진 초승달 아래, 온 세상을 집어삼킨 어둠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새하얀 달이 기이한 빛을 내뿜었다.  

차갑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며 레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뭐야. 누군가에 의해 볼이 꾹꾹 눌러지는 느낌에 라의 눈이 뜨였다. 

그가 눈을 뜨자 그의 볼을 눌러대던 누군가가 헉 하며 뒤로 물러섰다. 

“뭐하는 짓이지..?” 

라는 잠을 방해 당하자 몹시 짜증이 난 듯 했다. 

보, 볼이 너무 말랑말랑해서... 레사는 얼버무렸다. 

라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깨라고 그런 거잖아.” 

“그걸 어찌 알았, 아, 아니오!” 

절대 아니오! 레사가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말하자 레사가 풋 하고 웃었다. 

“머리 망가졌다.” 

라는 손을 뻗어 레사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많이 심심했나봐?” 

놀리는 듯한 말투에 레사가 정색을 했다. 

“아니라고 했잖소.” 

“허, 정색할 줄도 알고.” 

그래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니까 기분은 상쾌하네. 

여명의 하늘은, 밝은듯하면서도 은근한 어둠이 깔려있는 것이 묘한 느낌을 끌어냈다. 

라는 잠시 여명의 하늘과 레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일순 확 다가온 얼굴에 흠칫했다. 

그리고는 쪽 하고 입술에 닿았다 떨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몸을 굳혔다. 

“일찍 깨운 것이 미안하니, 내 특별히 해주는 거요.” 

큼큼거리던 레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오늘 하루는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와 레사는 그 날 이후로 항상 함께했고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갔다. 

라는 그동안 디맨사냥을 했던 사실도 말해주었다. 

그 말에 레사는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나도 잡으려고 했냐는 대답을 했고 라는 그래, 지금 이렇게 잡았잖아. 하며 레사의 팔을 확 움켜쥐기도 하며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다. 

레사는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라에게 알려주었다. 

그만큼 그를 믿었기 때문이다. 

저가 원래는 이마 양쪽에 뿔도 있었다는 것, 자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받으면 저의 원래모습처럼 뿔이 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웃기겠다며 놀리는 라를 퍽퍽 때렸다. 

“내가 힘을 불어넣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거요!” 

라는 발끈한 레사를 우쭈쭈하며 달래주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마음을 쌓아갔다. 


라는 지금 자는 척을 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요즘 레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은 그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름다움에 이끌렸던 것이라면 이제는 진심으로 그가 좋았다. 

긴 시간동안 함께하며 그가 좋아졌다. 

하지만 신을 사랑한다니? 

레사는 언젠가 내 곁을 떠나 본연의 자리로 돌아 갈 거야. 

그게 아니라면 그전에 내 생명의 불씨가 꺼지겠지. 

여러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문득 그는 레사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틀어 창밖의 달을 바라보고 있는 레사를 보았다. 

“레사.” 

“응? 자고 있던 것 아니었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라가 레사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레사. 넌 날 어떻게 생각하지?” 

친구라고 생각하오. 하는 대답에 라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는 예고도 없이 레사의 얼굴을 붙잡고는 입을 맞췄다. 

얌전히 받아들이는 레사의 행동이 더욱 화를 돋구었다. 

“친구끼리는 이런 거 안 해.”몸을 섞는 일 같은 건 더더욱 안하겠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뒷말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레사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당황했다. 

“레사, 나는 말이야. 나는...” 

라는 목이 메는지 침을 삼켰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는, 너를 사랑해.” 

그러자 레사는 그만의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도 그대를 사랑하오.” 

하지만 라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 자신의 ‘사랑’과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을. 

네가 말하는 사랑은 그런 뜻이겠지. 

종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신께서는 우리를 사랑 하신다’고 할 때의 그 사랑?

아니면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자’고 할 때의 사랑? 

라는 자꾸만 깊게 파이는 미간 주름을 꾹꾹 누르며 등을 돌렸다. 

“내가 또 무언가 잘못 한거요..?” 

“아니야, 그런 거.”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라는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술 한 병을 꺼낸 그는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정말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다. 

병의 뚜껑을 따자 라의 마음과 대조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레사가 쫄래쫄래 따라 들어왔다. 

“뭐 하시오?” 

“술.” 

몸에 안 좋은데...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사가 웅얼댔다. 

라는 그런 레사를 무시한 채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레사는 몹시 걱정되어 죽겠다는 얼굴로 라를 지켜보았다. 


라는 벌써 술을 세 병째 마시는 중이었다. 

레사는 물론 그런 그를 말렸지만 그럴 때마다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대답이 돌아오자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라의 옆을 묵묵히 지켰다. 

“레사.” 

레사는 술만 들이켜대던 그가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왜 부르시오?” 

“레사, 레사...” 내 레사... 중얼거리는 말에 레사는 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응, 나 여기 있소.” 

“내가 죽으면 넌 어쩔 거지..?” 

순간 라의 등을 토닥여주던 손이 크게 떨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

레사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응..? 내 질문에 대답해봐.” 

“나는...”

레사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말을 꺼내면 그 말이 사실이 되어버릴까 무서웠다. 

하지만 라의 재촉하는 눈빛에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대가 죽는다면, 묻어 줄 거요. 그리고 예쁜 꽃을 놔 줄 거요.” 

또한 영원히 내 마음속에 그대를 묻을 것이요. 

레사는 일부러 뒷말을 삼켰다. 

“그것뿐이야..?” 

라는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고개를 휘청휘청하더니 식탁에 푹 엎어졌다. 

레사는 쓰러진 라를 심란하게 바라보았다. 


그 다음 날, 라는 마치 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레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다시 디맨 사냥을 하러 다닐 거야.” 

“그럼 나도 따라 가겠소.” 

“그러던가.” 

레사는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 날의 밤하늘은 기묘한 분위기를 뿜어댔다. 

새하얗고 밝게 빛나야 할 달인데, 그 날의 달은 안개가 끼어 흐릿했고 칙칙한 분위기를 뿜었다. 

그 달 아래,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잖소!” 

“괜찮을 거라니까?” 

레사는 답답함에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전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지, 만약 떼로 몰려다니는 놈들을 만난다면...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라와 레사는 동시에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다섯쯤 되는 디맨 무리가 숲에서 나오고 있었다. 

“라, 저 놈들을 공격해서는 아니 되오.” 

“뭐? 어째서?” 

라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은탄총을 그들에게 겨누었다. 

“안 된다니까!” 

레사가 낮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탄알이 날아가 그들 중 한명의 이마에 박혀있었다. 

그 한명이 쓰러지자 나머지가 라와 레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대로 그 둘에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또 한명이 라가 쏜 탄알을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순간 놈들이 날아올랐다. 

레사는 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빼들어 한명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연속으로 또 한명의 목을 베어냈다.

“하... 라, 괜찮,” 소? 말이 끝을 맺지 못 했다. 

라가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 있었고 그 앞에는 무리 중 한 놈이 서있었다. 

놈들이 다섯이었다는 것을 잊었다. 

놈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듯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레사가 검을 들어 올리더니 놈을 향해 던졌다. 

레사의 검은 놈의 목을 관통했고 놈은 크르륵 소리를 내며 피거품을 물고는 쓰러졌다. 

라는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레사가 달려왔다. 

라의 몸을 돌려 눕히자 드러나는 끔찍한 상처에 레사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라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라, 정신 좀 차려보시오.” 

목소리가 마구 떨리고 있었다. 

“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죽는 건가...” 

미안해, 말 안 들어서. 

라의 미안하다는 말에 레사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불안해하지 마시오.” 

인간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순간 레사를 향하던 고개가 힘없이 떨궈졌다. 

놀란 레사가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대었다. 

금방이라도 생명의 불씨가 꺼질 듯 박동이 너무나도 희미했다. 

“라...”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려대던 레사가 라를 업어들었다. 

그는 저보다도 큰 몸을 등에 업고 정신 없이 달렸다. 


레사는 며칠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라를 돌보았다. 

라는 아직 깨어나지는 못했지만 레사의 정성덕분인지 그날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딱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라가 깨어났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에 다시 몸을 무너뜨렸다. 

죽지 않은 건가. 

라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끼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문을 연 이를 보았다. 

“레사.” 

레사는 놀란 듯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귀신이라도 봤나? 왜 그러고 있어.” 

“라!” 

레사가 그에게 성킁성큼 다가갔다. 

“괜찮소? 아프지는 않소?” 

“응, 덕분에.” 

“나는, 그대가 죽는 줄 알고...” 너무도 두려웠소. 

그리 말하는 레사의 머리를 큰 손이 다가와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하다.” 

레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라는 자신이 죽는 줄 알고 두려웠다는 레사의 말에 가슴이 일렁였다. 

그래, 넌 그렇게 나만을 생각하면 되는 거야. 

네 영원할 삶에 내가 없어서는 안 돼.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레사를 보며 라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무슨 냄새지?”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눈을 벅벅 비비며 일어난 라가 주방에 들어서며 물었다. 

“아, 일어났소?” 

레사는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에 무언가를 열심히 지지고 볶고 있었다. 

“뭐야, 이게?” 

프라이팬 안에서 이리저리 주걱에 휩쓸리는 것들은 도저히 사람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것은 볶음밥이오.” 

뭐? 이 개밥 같은 게? 하는 말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갈 뻔 했지만 참았다. 

“그래? 맛있겠네.” 

라는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는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변하려고 노력했다. 

레사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음, 다 된 것 같군.” 

레사는 그 개밥, 아니 밥을 그릇에 담아주었다. 

그래, 냄새랑 생긴 건 이래도 맛은 좋을지 누가 알아. 

하지만 그것을 입에 넣는 순간 라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레사가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맛없으시오..?” 

“어? 아니, 너무 맛있어서 그래.” 

“그렇소? 그런데 왜 인상을 쓰시오?” 

레사가 미심쩍은 얼굴로 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거 만드느라고 고생했을 너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그리고 라는 밥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레사는 그제야 얼굴을 활짝 피며 웃었다. 

그대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 기쁘오. 하는 말에 라가 얼굴을 붉혔다. 

웃는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혹시 세상의 빛은 레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들었다. 

“라, 오늘은 밖에 나가 밤하늘을 구경하는 건 어떻소?” 

라가 볼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자.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하늘엔 짙은 어둠이 깔렸다. 

라와 레사는 넓은 들판에 누워 하얀 점이 콕콕 박혀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라는 그런 밤하늘을 한번, 레사의 눈을 한번 번갈아보았다. 

레사를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그의 눈동자는 저 먼 우주공간의 은하를 닮아있었다. 

그 눈동자를 마주할 때면 깊고 어두운 심연에 빨려 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 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얼굴에 꽂힌 시선을 느꼈는지 레사가 고개를 틀어 라를 보았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서로 눈을 마주보았다. 

그러던 그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져 갔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았고 파고들어오는 혀의 감촉에 레사가 눈을 감았다. 

그런 둘의 모습을 밤하늘의 주인, 새하얀 달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달은 기이한 모습으로 불길한 떨림을 전해왔다.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신과 인간의 숭고한 사랑이 불러올 거대한 파멸의 끝을. 




레사는 손수 쌓아올린 흙무덤을 등지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고 눈이 시릴 정도의 찬란함을 담고 있었다. 

어찌나 찬란하던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괜찮다. 인간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고, 누구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 누구라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어. 그 누구라도...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레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내려갔다. 

레사는 주저앉아 목 놓아 울어댔다. 

그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레사는 혼자 남는 것이 무서웠고, 그를 보지 못할 것이 두려웠다. 

주저앉아 눈물만 흘려대던 레사가 일순 몸을 일으키더니 뒤를 돌아 흙무덤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는 밤을 새워 쌓아올린 무덤을 손으로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가지 마시오... 나를 두고, 가지 마시오. 

손은 물론이고 온몸이 흙으로 더럽혀질 때까지 흙을 파헤쳤다. 

그리고는 이내 드러나는 이미 숨이 멎은 이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눈물을 마구 쏟아냈다. 

평생을 함께 하자고 했잖소. 

“라...” 


눈 안으로까지 파고드는 강렬한 햇빛에 눈이 뜨여졌다. 

눈을 뜨자 창 너머로 태양이 지며 석양이 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그 날 분명 죽었는데. 

레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데 그를 디맨으로 알아 본 사냥꾼이 총을 겨눴었다. 

레사는 눈치 채지 못했고 그것을 본 라가 대신 총에 맞은 것이었다. 

나는 죽었으니 이곳은 어쩌면 천국일지도...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돌아다니던 라는 침대에 기댄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이를 보자 멈칫했다. 

“레사..?” 

그러자 레사가 고개를 확 쳐들며 라를 보았다. 

그런 레사는 어딘가 굉장히 피곤해보였다. 

“레사, 어찌 된 거지? 내가 죽은 게 아니었나?” 

레사는 아무 말 없이 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응, 그대는 살아 있소.” 

라는 혼란스러웠지만 곧 그런 레사를 보자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고마워, 레사.” 

예전에 내가 디맨에게 당했을 때 한 번 나를 살려주었고, 또 한 번 나를 살려주었구나. 

“그런데 넌 무슨 힐러라도 되나?” 네가 치료하는 족족 살아나네. 

라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레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라의 품에 안길 뿐이었다. 

“레사?” 

라는 레사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살아 있어 주어 고맙소.” 

품에 파고들며 말하는 레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랑하오.” 

낮게 깔리며 귓가를 파고드는 그 말에 레사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움찔했다. 

그대를 사랑하고 있소. 레사의 말에 라는 심장이 마구 쿵쾅대었다. 

“그대도 나를 사랑하오?” 

그 한마디가 굉장히 듣기 좋았다. 기쁜 마음에 라는 고개를 마구 위아래로 끄덕였다. 

“당연하지.” 난 오래 전부터 너를 사랑했어. 

고개를 흔들어서인지 머리칼이 눈을 찔러댔다. 

머리를 옆으로 넘기려 이마에 손을 가져다댄 그는 멈칫했다. 

이마 양옆에 뾰족한 혹 같은 것이 나있었다. 

이게 뭐지? 

그는 가만히 그 혹을 만져보았다.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왠지 레사에게 물어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뭐, 아무렴 어때. 레사가 내 곁에 있는데. 

라는 가만히 레사를 품에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드디어 태양이 아래로 완벽하게 모습을 숨겼고, 

새로운 하늘의 주인인 달이 사악한 어둠을 품은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 하늘의 주인은 기이하고 섬뜩한 빛을 담은 광인의 눈길처럼 서로를 품에 안은 이들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파멸의 시작이었다.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신 분, 내 사랑을 받아라...! 

끄으으으읔 내용을 다시 정독하니 손발이...내 손과 발이...! 오그라든다....!

원작 보신 분들은 결말이 조금 익숙하시겠네요. 

결말을 보고 이게 무슨 똥이지? 하며 이해가 안 되시는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정독해주시면 “아..! 유레카!” 라고 외치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결말은...해피인 것인가..배드인 것인가...열린 결말인 것인가...

그나저나 저 제목 작명센스 쩌네요. (반어법) 

그리고 사실 이 글 라송 들으면서 씀ㅋ 주인공이 라니까 라송을 들으면서 해야져. 

아무튼 저는 감히 신성한 라와 레사를 더럽힌 죄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군요. 고해성사를 해야겠습니다. 

이제 모두 네이버창에 ‘레사’를 검색하러 가주시면 됩니다. 



사화


[카게히나] 사화 (使話)





카게야마는 올해로 마지막인 승급시험에서 또 다시 낙제했다. 카게야마는 모두가 인정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사였다. 그런 카게야마가 승급시험에서 여러번 낙제하여 정식천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직 흑발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염색이라는 수단을 고려해 보았지만 인간계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고, 카게야마는 인간계와 천계를 왕래할 수 있는 정식천사가 아닐뿐더러 천재인 카게야마를 시기하는 다른 천사들도 선뜻 손을 건네지 않는게 한 몫 더했다. 허락없이 인간계에 내려갔다간 영영 소멸당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카게야마는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런 카게야마에게 스가와라가 미소지으며 다가왔다. 카게야마. 우리 배구할까?


카게야마의 선배이자 형제같은 존재인 스가와라는 시험에 통과한 정식천사였다. 친구 없이 홀로 고립되어 있던 카게야마에게 손을 내민 이후로 카게야마는 스가와라를 곧잘 따랐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가와라가 정식 천사가 된 이후로 카게야마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것. 주위에 비아냥 거리는 사람이 두 명 늘었다는 것만 빼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다.


힘이 잔뜩 빠진 카게야마의 큰 날개를 스가와라가 만지작 거렸다. 들어도 보고 파닥거려도 보았지만 카게야마의 날개는 힘이 축 쳐져 다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며칠 갈 것 같은데. 원래 말하면 안되는데...이제 슬슬 알려줘도 되려나.




카게야마. 시험에 통과하는 다른 방법이 있어.

인간계에 내려가서 인간을 도와준 다음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오는거야. 어때. 할 수 있겠니?




카게야마의 가슴이 쿵쾅쿵쾅 시끄럽게 요동쳤다. 자신에게도 방법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렘. 카게야마의 기쁨으로 가득찬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스가와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내가 알려줬다고 하면 혼난다?

    




'인간계와 천계가 통하는 오늘부터 딱 7일이야. 그 안에 꼭 해결하고 와야해.'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와 헤어지기 전에 나눈 마지막 대화를 곱씹었다. 7일이다. 7일 안에 누군가를 돕고 마음을 받아와야 한다. 카게야마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살면서 남을 도와줘 본 적도 없고 인간은 무얼 좋아하는지 알 방도도 없다. 게다가 붙임성도 없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히나타는 어려서부터 작고 허약하여 자주 병원에 오가곤 하였다. 학교보다는 병원이 더 친숙한 히나타에겐 당연 그렇듯이 친구 하나 없는 생활이었다. 그나마 다니던 중학교도 최근에는 병원 신세를 지느라 집 안이나 집 주변에만 거닐 뿐이었다. 히나타는 집의 답답한 공기에서 벗어나려 자주 밖으로 쏘다녔고 오늘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하늘에서 등에는 커다랗고 새하얀 날개를 단 소년이 내려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벽에다 머리를 박았다. 천사라기엔 인상이 너무 험악했고 아니라고 하기엔 날개가 마음에 걸렸다. 것보다 날개 이쁘다...아, 눈 마주쳤다. 소년은 히나타를 눈치 채고는 빠른 걸음으로 히나타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소년은 생각보다 훨씬 키가 커서 히나타는 소년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소년이 그런 히나타를 보고 드디어 찾았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꼬맹이, 오늘부터 내가 널 도와주고 싶어. 난 카게야마. 넌 이름이 뭐지?

...히나타 쇼요.




카게야마는 자신을 '히나타 쇼요' 라고 소개한 주황 머리 남자 아이를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자신의 인상을 쓴 얼굴에 놀랐는지 조그만 게 벌벌 떠는게 꽤나 귀여웠다. 언젠가는 저 뻗친 주황빛 머리카락도 쓰다듬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히나타가 살며시 손을 잡아 끌었다.




나 묻고 싶은게 많아! 저기 조용한데로 가자!




카게야마는 제 옆에 앉아 다짜고짜 날개가 보고싶다며 눈을 빛내는 히나타에 당황하고 날개를 보고 예쁘다 하며 부비대는 히나타에 다시 한 번 당황하여 기어코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카게야마는 여지껏 무섭게 생겼다는 말만 들어왔지 예쁘다 라는 소리는 난생 처음인지라 가슴이 간질거렸다.

카게야마는 어린아이 마냥 재잘 거리는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또래보다 덩치가 큰 카게야마와는 달리 히나타는 작고 왜소하여 품에 넣고도 남을 듯 했다. 나중에 안아보는 것도 추가해야지. 카게야마가 뚫어져라 쳐다 보는 시선이 쑥쓰러웠는지 히나타가 고개를 무릎에 묻었다.


그러니까 카게야마. 내 옆에 있어줘. 이게 내 부탁이야.




히나타가 제 얼굴만한 배구공을 카게야마에게 내밀었다. 히나타는 카게야마가 배구에 흥미가 있다는 것을 듣고 함께 배구를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카게야마가 배구공을 손 안에서 돌리고는 하늘 높이 던졌다. 히나타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토스 라는 것에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쿵쿵 뛰었다. 공을 받아 친 후의 얼얼한 손바닥의 감각을 느끼며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카게야마 역시 최고야! 카게야마는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웃는 히나타가 더할 나위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카게야마는 기뻐서 방방 뛰는 히나타의 삐죽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당연하지. 바보 히나타.




히나타는 난생 처음 친구라는 것이 생긴게 정말 기뻤다.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만날 때마다 찰싹 붙어다녔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카게야마가 그저 좋았고 가끔이지만 기분 좋을 때 보여주는 미소도 좋았다. 배구를 할 때나 요구르트를 손에 쥐어주면 카게야마는 고맙다며 살짝 웃음 짓기도 하였다. 이유야 어쨋건 히나타는 카게야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히 부끄러웠고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빠. 좋은 일 있어?


나츠. 있잖아 오빠가 말이야...




히나타와 같은 주황빛 복실거리는 머리를 가진 나츠가 히나타의 헤실거리는 얼굴을 보고 히나타의 이야기를 듣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 선생님이 그랬는데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고 무언가 해주고 싶고, 옆에만 있어도 좋으면 그거 사랑이래! 




히나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책이나 영화로만 보던 사랑이란 것이 나에게 사랑이라는 게 있었을 줄이야. 지금도 카게야마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진짜 사랑하긴 하나봐. 여지껏 카게야마를 보면 가슴이 콩닥 거리는건 배구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었구나.

히나타는 고맙다며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현관을 박차 지금쯤 공터에 있을 카게야마에게로 달려갔다. 히나타는 공터 벤치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는 카게야마를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에 와락 안겼다. 하늘을 보느라 히나타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카게야마가 자신에 품에 안긴 히나타를 보고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했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푹신한 머리에 손을 얹었다. 히나타. 무슨 일이야.




카게야마. 나 카게야마를 좋아하는 것 같아.




히나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던 카게야마의 손이 제자리에서 굳었다. 눈치 챈 히나타가 겹쳤던 몸을 때어내며 풀 죽은 강아지마냥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무 말 없는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히나타는 심장이 쿵 하고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나만 그런 마음이었구나. 잔뜩 울상을 지은 히나타가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동시에 목석같이 앉아있던 카게야마가 발을 움직여 손으로 히나타의 고개를 자신에게로 돌려놨다. 가만히 히나타를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부드러운 손길로 히나타를 안았다. 카게야마는 살포시 고개를 숙여 히나타에게 입을 맞추었다. 응. 나도 히나타를 좋아해. 카게야마의 목소리와 온기에, 결국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서로의 감정을 자각 하고 고백한 날 부터 눈이 마주칠 때면 자주 얼굴울 붉히곤 하였다. 마트에서 산 고기만두를 나누어 먹거나 헤어지기전 굿바이 키스도 잊지않았다.

여름인데도 밤은 쌀쌀 맞아 히나타가 감기라도 걸릴라 카게야마는 큰 날개를 펼쳐 히나타를 감싸주면 히나타는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카게야마의 허리를 꼬옥 안아왔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품안에서 잠든 히나타를 마주안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벤치에 누워 잠을 자던 카게야마는 자신의 앞에서 발소리가 멈춘 것을 느꼈다. 이 밤중에 도대체 누가. 카게야마는 히나타인가 싶어 눈에 힘을주고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 서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카게야마는 당황하여 엉거주춤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쳤던 사람은 다름아닌, 스가와라였다. 안녕하세요. 스가와라상.




응. 카게야마 안녕. 일이 있어서 잠시 들린거야. 내일이 마지막 날인 건 알고 있겠지?




카게야마의 머릿 속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눈 깜빡할 사이에 6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사이는 각별할 만큼 발전하고도 남았던 시간이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눈에 가득 담았다. 역시 위에서 보는 하늘과 여기서 보는 하늘은 천지차이구나. 




꼭 성공해서 돌아와야 한다. 위에서 기다릴게!




*

히나타가 평소처럼 가방과 공을 품에 안고 도착한 카게야마가 있을 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요구르트라도 사러 간걸까. 하며 히나타는 공놀이를 하며 하염없이 카게야마를 기다렸다. 8월의 끝은 바라보는 여름밤은 반팔 반바지로는 쌀쌀하여 히나타는 연거푸 재채기를 하였다. 히나타의 뒤에서 누군가가 안아왔다. 히나타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다정하게 안아오는 기다란 팔과 특유의 히나타가 좋아하는 냄새만으로도 카게야마임을 알 수 있었다. 있잖아, 카게야마! 오늘은 내가 빨랐다!

히나타가 기분 좋은듯이 말을 걸어왔다. 


히나타의 목소리, 눈빛, 체온. 모든 것이 카게야마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히나타는 자신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 카게야마와 마주했다. 카게야마의 눈물이 손으로 툭 떨어졌다. 히나타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이제 헤어지는 거구나. 가만히 카게야마를 바라보던 히나타는 부드러운 손길로 카게야마를 안았다. 




카게야마, 나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널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까 울지 않아도 괜찮아.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품에서 하염없이 히나타는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목이 쉬어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그랬다간 정말 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그저 가만히 토해낸 울분을 받아주던 히나타가 카게야마의 검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시 오거든 같이 계속 배구하자.






*

카게야마가 천계로 돌아온지 일주일. 카게야마를 환영하려고 기다리던 스가와라는 처음으로 눈물범벅이 된 카게야마와 마주하였다. 시험 감독관인 오이카와 앞에 갈때까지 카게야마의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질색하며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스가. 이거 기뻐서 그러는 거 맞지?




정식천사가 된 카게야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여섯 달을 보냈다. 인간계로 심부름을 보내주었으면 좋으련만 카게야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윗사람들의 명령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카게야마는 하루라도 빨리 인간계에 내려가 히나타를 안고 폭신한 머리를 잔뜩 쓰다듬고 싶었다. 어린시절 자신의 선배였던 오이카와가 몰래 인간계에 내려갔다 왔다는 말이 카게야마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밤에 잠깐만. 딱 10분만 갔다 오는 건 괜찮겠지.





카게야마가 큰 날개를 펄럭이며 베란다 창문을 열어재꼈다. 얘는 무슨 생각으로 문도 안잠그고...! 방 안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히나타의 냄새로 가득하여 카게야마는 가슴이 아려왔다. 히나타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방 안을 거닐기도 하였다. 오랜만이야. 히나타. 이제 가볼게. 카게야마는 곤히 잠든 히나타의 이마 위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

이른 아침 난데없이 오이카와와 스가와라가 카게야마를 찾아왔다. 




토비오쨩, 어제 인간계에 갔다왔어? 허락없이 인간계에 내려간 천사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는 간거야?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상부에서 내려왔다는 종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안들킬 것이라 안심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소멸한다면 히나타와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가야하는데. 카게야마가 두려움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사이 스가와라가 카게야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카게야마.

스가와라가 뒤를 돌아보며 카게야마에게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카게야마. 안심해. 너는 천사자격 박탈만 이야. 오이카와 덕에 넌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면 돼. 저래보여도 오이카와는 널 꽤나 신경써주고 있었거든. 이걸 마시면 인간계로 가는거야.




오이카와는 머쓱한지 뒷머리를 매만졌다. 




어서 가. 토비오쨩.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

벚꽃이 휘날리는 봄. 히나타는 산 넘어 있는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자전거로 30분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이곳엔 배구부가 있다. 중학 시절부터 보아온 작은 거인이 있던 곳이었다. 항상 제일 먼저 도착하여 체육관을 정리해놓고 선배들을 기다리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히나타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요구르트를 챙긴 후 배구공 소리가 나는 체육관 문을 힘차게 밀었다. 오늘은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나. 오래된 철문이 끼익-하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히나타의 눈에는 새까만 동그란 머리를 가진 소년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익숙한 뒷모습.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등에 날개가 달려있지 않다는 것. 히나타의 볼이 파르르 떨려왔다. 흑발의 소년이 고개를 돌려 히나타를 향해 미소지었다.




어서와. 히나타.





아카시의 중2병을 부탁해 


[적흑] 아카시의 중2병을 부탁해 





"나를 거역하는 녀석은 부모라ㄷ..."


탁-


"밥묵어라"



형은 오늘 또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이 하나도 없다나 뭐라나. 입은 툭 내밀고 아저씨한테 맞은 머리를 문지르더니 이윽고 나를 쳐다봤다. 어서 너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해! 나는 형의 눈에 들어간 노란색 렌즈의 시선을 무시하듯 밥에 집중했고 형은 부들부들 떨었다.



"아주머니, 잘 먹었습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집밖에 나섰다. 형은 뒤에서 테츠야~ 하고서는 달려왔지만 나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형이랑 같이 학교에 가기는 쪽팔렸다. 형은 무슨 자신감인지 자기 사이즈보다 2사이즈 큰 교복을 샀다. 자기가 더 클 거라나…, 형은 그 큰 교복을 어깨에 걸치고서는 팔짱을 끼고서는 걸었다. 매일 아침 형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



 


중학교 때의 형은 이러지 않았다. 다정하고 착한 형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따끔하게 혼을 낼 줄 아는 형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형은 변했다. 우연히 들어간 형의 방에서 형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노란 렌즈를 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한쪽만. 나는 질겁을 하고서는 방을 나와 곧바로 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선 퇴근한 엄마를 붙잡고 엄마. 아카시형이 미친 거 같아. 아카시 형 부모님께 연락 좀 해봐…. 하며 엄마를 보챘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피곤한가 보다며 나를 일찍 재우셨다.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서는 형의 모습을 계속 생각했다.



그 이후로부터 형은 360도, 아니 180도 바뀌었다. 내가 형과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형의 이상한 행동은 눈에 띄게 늘었다. 맞벌이하느라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아카시형네서 밥을 먹고 학교에 같이 가곤 했다. 그날도 형과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버스가 왔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버스를 타려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도 뒤지지 않기 위해서 몸에 힘을 주었지만 나보다 적어도 10센치는 큰 학생이 나를 세게 밀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고 그 학생은 핏 웃고서는 버스에 올라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버스에 올라타지 못했다. 나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카시형이 시선을 그 학생에게 돌리고서 무릎 뒤를 주먹으로 쳤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학생이 아카시형을 향해 달려들 듯이 일어났지만, 형은 주저앉은 학생의 머리를 잡고 이야기했다


.



"머리가 높군."



나는 기억한다. 버스정류장의 정적을.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형은 예외였다. 자신의 자칭 명대사가 먹힌 줄 안 형은 싱긋 웃으면서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버스에 태웠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주저앉은 그 학생은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 학생의 입 모양을 보았다. '저 볍신은 뭐야.' 나는 버스 안에서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와, 이형 진짜야.



"테츠야, 열나는 건가."



빨개진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형이 나에게 말을 걸고서는 내 손을 치우고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댔다. 소름이 돋은 나는 그대로 악! 소리를 지르고서는 형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고 버스에서 내렸다. 학교 가는 길이 많이 남았지만, 저 버스에 있는 것보다는 괜찮았다.



그날은 역시 지각을 했지만 행복했다. 형의 그런 모습을 안 봐도 되는 게 제일 큰 행복이었다. 지각생들을 주르륵 교문 앞에 앉혀두었다. 그사이에 나도 있었다. 학주는 내 팔뚝만 한 몽둥이를 들고 누구부터 찜질해줄까 라는 표정으로 지각생들을 훑었다. 왼쪽에 앉아있는 얘들부터 차례차례 맞기 시작하는데, 그 강도는 요즘 한창 잘나가는 농구선수 아호미네가 농구 골대에 덩크슛을 날리는 강도만큼 세게 느껴졌다. 아, 아카시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이제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자세를 잡았다. 엉덩이를 꼿꼿이 세우고 제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턱-



눈을 찡그리고 아픔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함에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니, 아카시형이 학주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와, 미친! 



"선생님, 테츠야는 저만 건들 수 있습니다."

"뭐?"

"제것이니까요."



그러고서는 썩소를 날려주는데, 저 얼굴에 내 주먹이 날아갈 뻔 했다. 정말 미친 게 분명했다.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위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카시 형은 날 일으키더니 내 손을 탈탈 털어주었다.



"테츠야, 널 아프게 할 수 있는 건"

"네..?"

"침대 위의 나뿐이야."



그러고서는 내 손목을 잡고 전력질주. 교문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악에 차있을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카시 형에게 끌려가면서 정신병원 전화번호를 생각해봤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병원이 미소정신병원이었지, 근데 거기는 작아서 입원이 안돼. 좀 멀리 있는 행복정신병원으로… 



병원을 생각하니 문득 학기 초가 생각난다. 형이 절정을 달리던 시기였다. 형과 함께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우리는 작은 키로 같은 부원들에게 무시를 당했었다. 그러자 형은 여기 있는 모든 놈에게, 신분의 차이를 가르쳐주지.' 라는 말과 함께 무시하는 농구부에 1대1 농구를 신청했다. 결과는 형의 승리. 농구부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말이 진짜였다. 



'보쿠는 최강이야.' 



나는 그런 형이 너무 무서워 형에게 '아카시형, 형 맞습니까?'라고 물었지만,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물론 아카시 세이쥬로야. 테츠야' 형 그 물론은 빼세요. 라고 강하게 외치고 싶었지만, 형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노란 렌즈가 무서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곧이어 형이 어딘가에 도착했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골똘히 병원을 생각하고 있는 나의 눈앞에 제 손을 흔들흔들하면서 내 시선은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나는 형을 계속 응시했다. 형은 평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조금은 빨개진, 부끄러운 표정. 그리고서는 몇 번 헛기침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저래?



"저기 테츠야."

"네"

"아, 저기. 그게 있잖아."



꼭 첫사랑한테 고백하는 남자처…, 아니지? 아카시형 아니지? 우리는 남자남자고 형의 이상형은 단정한 여자이고, 나는 존재감도 없고. 그렇잖아 형? 나는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진짜 이러고서 형이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나는 물론 그쪽으로 편견은 없지만 이건 아니었다. 



"형, 오늘 좀 추운 것 같습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아무렇지 않게, 티 나지 않게 반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 말을 남기고서는 나는 발을 돌려 내 교실로 달려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형은 그런 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이 팔을 움켜잡았다. 형 제발 놔주세요. 라고 내 떨리는 손은 말하고 있었다.



"잠깐만 할 말 있어."

"…뭡니까?"

"테츠야, 사실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귀자"



아, 하늘님. 제가 그동안 하늘님을 믿지 못한 게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왜 저한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나는 내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지에 대한 원망을 하늘님께 돌렸다. 형은 대답을 기다리는 듯 떨리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혹시, 내가 싫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우리는 둘 다 남자고…, 부모님도 걱정하시고."

"내가 싫지는 않은데 다른 여건 때문에 그래?"

"형. 우리나라는 아직 동성애에 오픈마인드도 아니고."

"만약 들킨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양눈을 도려낼게."



분명히 저거 진심이다. 내손을 부여잡고 저런 말을 하다니. 왜 형이 저렇게 변한걸까. 나는 형의 완고한 의지의 눈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눈을 살려야 한다는생각만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형. 그럼 알겠습니다."

"테츠야…."



형은 울먹이면서 나를 안았다. 꽤나 어깨가 들석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형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난 이제 어찌해야하는 것일까. 얼마나 들썩였을까 형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형의 얼굴에는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야?!



"테츠야"



형은 살짝 붉은 얼굴로 나를 보며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자 형의 분신이 나에게 닿는 것이었다. 잠깐만, 이거 왜 이렇게 딱딱해. 나는 금새 얼굴이 굳었다. 몸을 떼어내려고 해도 형이 강하게 내 몸을 안아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에게 강렬하게 부비부비하는 형을 보자니 아까 받아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적색경보를 울렸다.



"아, 형! 제발. 아 제발!"

"으윽."



형의 신음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 무릎이 형의 소중한 분신을 강하게 치고 있었다. 형, 미안. 나는 그대로 반으로 줄행랑을 쳤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이르잖아!




-중2대사는 쿠로코의 농구를 참고한 것입니다. 아그리고 아카시사마!!!! 소인 죽을 죄를 지었사옵나이다.... 너의 캐붕은 고멘...고멘...! 쿠로코도 고멘....! 그리고 똥손을 봐준 닝겐들도 고멘!!!!!!!다들 고멘!!!!!!!!!!!!!!!-



순간


[긴카구] 순간 




"카구라짱 창문좀 닫아라."


해결사사무소는 외풍이 심하다. 녹이슨 창문에서는 끼익소리가났다.


혹여 조금 더 따듯해질까 커튼도단단히쳤다.





벽에 등을 기대어 다리를 쭉 펴고 앉은 긴의 허벅지위에 카구라가 머리를 뉘었다.


긴은 조금 당황한 듯 카구라를 보고 다시 읽고 있던 점프로 눈을 돌렸다.


허벅다리위의 조금 묵직한 감각이 좋다고 느꼈다.




"긴짱 추우면 옷을 입어라해." 




카구라가 반팔에 트렁크하나를걸친 긴토키에게 일러줬다.


카구라의 목뒤로 긴의 허벅다리살이닿았다. 


긴도 맨살에 닿는 머리카락의감촉을느끼며 슬쩍 카구라의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몸을일으켜세운 카구라는 긴의 허벅지를 찰지게내리쳤다. 짝 소리가 났다.




"아가 취급하지 말라 해."




갑작스레 닿는 카구라의 손길에 무표정이던 긴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지어졌다 


읽고 있던 점프를 덮고 허벅지를 문질렀다. 한 번의 타격에도 허벅지에 금세 손자국이 생겼다.




"이야, 이거 아프잖냐. 카구라야 너는 손이 야무지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래 엉?"


"흥. 엄살 피우지 말라 해"





카구라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다시 점프에 집중하는 긴을 노려보았다. 




"긴토키, 점프 재밌냐 해."




긴토키의 대답이 없자 카구라가 자세를 고쳐 잡고 머리를 다시 뉘었다. 


이번엔 허벅지가 아닌 조금 위, 긴의 중심위에 머리를 뉘었다.


긴토키는 움찔 작은 반응을 보였다. 



"카구라, 좀 내려가서 누워. 너 이거 위험한 거다? 진짜진짜 위험하다? 이 아저씨 팬티 안갈아입은지 삼일이나 됐다고."




장난스럽게 카구라 에게 말해보지만 카구라는 흘끔 긴을 올려다보더니 피실 웃었다.




"긴짱, 긴짱한테 나는 마냥 어린애 아니냐 해. 이런 것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 다 안다 해."




카구라가 자세를 틀어 긴의 중심에 얼굴을 파묻었다. 카구라의 코끝으로 불룩한 긴의것이느껴졌다.

 

검고 부슬부슬한 체모가 트렁트에 무뎌졌다.




"자, 잠깐 카구라짱 이러면 이 긴 아저씨도 위험한데. 천하의 긴 아저씨도 이건 위험하단 말이다."




얇은 트렁크에서 긴의 살내음과 옅은 섬유유연제냄새가났다.




"긴짱, 팬티 아까 갈아입는 거 봤다. 좋은 냄새난다 해."




카구라가 긴의 가랑이사이로 고개를 좀 더 파묻었다.




"나는. 나는 긴토키가 좋다 해. 나 좀 여자로 봐 달라 해"




카구라의 코끝과 볼 짝으로 팽팽해져가는 긴토키의 트렁크가 느껴졌다.



귀화(鬼話)


[긴히지] 귀화(鬼話)





천인들과 정부가 손을 잡고난 후에, 그들 이외에 조직을 형성하는 자는 그 어떤 자라고해도 반란군으로 몰려 모조리 처형당했다.


그로 부터 몇년뒤, 천인들은 자신들을 배척해 반란을 일으키는 사무라이들을 일컬어 '양이지사'라 불렀고, 양이지사의 존재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동시에 두려워해 온갖 수단을 써서 처단했다. 양이지사의 반란과 정부의 탄압, 그렇게 '양이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 동료가 몇명이나 희생됬는지 모른다. 하지만, 끝날 기미는 커녕 점점 길어지기만 하는 이 전쟁으로 인해 앞으로도 많은 동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처참하게 죽어나간 수많은 동료들과 소요선생님을 위해…


몇번이고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더라도, 이 몸에, 이 백야차라는 이름에 증오와 아픔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새겨도, 몇번이고 셀 수 없이 많은 시체들을 짓밟고라서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속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은 동료들을 위해서도……나 하나쯤 희생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내가 귀신이라고 불리게 된다하더라도 나아갈 것이다.


내가 지키는건 변하지않으니까.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연기, 종종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 긴장감이 가득 웃도는 잿빛하늘아래 한명의 천인과 한명의 인간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피에 절었군,사카타 긴토키……백야차…과연, 별명다워"


"…"


"살아있는 귀신은 죽은 귀신을 부른다고 하지"


"…"


"너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네 동료들을 위한다고 생각하나?"



놈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의 칼이 동시에 서너번 맞닿았고, 몇분간의 대치속에 적이 방심한 순간, 틈을 파고든 긴토키는 놈의 배를 꿰뚫었다.  

천인은 배에 꽂힌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천인위로올라가 목에 칼을 겨누던 긴토키는 칼을 거두었다. 



"…왜 어서…숨통을 끊…지 않는…거…냐…동…정인가…?…"



"…동정? 그저 죽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야."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는…백…야차…너는……아…무것…도 지키…지 못…할…것이다…"


긴토키는 쓰러진 천인을 한번 쳐다본 후, 터덜터덜 앞으로 향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체밭을 헤쳐 몇분쯤 걸었을까, 풀숲이 보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긴토키는 갑자기 배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윽…"


긴토키는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한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칼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아아- 어쩐지 어지럽더니만.. 배뿐만이 아니라 몸 이곳저곳에 피가 꽤나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아릿아릿해지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에 지혈했던 상처가 아까 나타났던 놈을 상대하다 다시 터진 모양이였다.



"이야…이거 위험한걸… 몸이 말을 안듣기 시작했…"


채 말을 다 잇지못하며 긴토키는 쓰러졌고, 갑자기 내린 비를 타고 자신의 피가 흘러가는것을 따라 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까만색의 정체모를 무언가가 살랑거리며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끝으로 긴토키는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코를 찌르는 씁쓸한 풀향에 눈이 떠졌다. 주변이 어두웠다.


머릿속이 웅웅거려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앉았다.



"…정신이 들었나?"



눈앞에 검정색 유카타를 입고 긴 머리를 묶은 남자가 앉아서 날카로운 눈으로 긴토키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일단은…"



잠깐…여긴 방안…?  처음보는 녀석인데..설마 적인가? ...내 칼은? 허리춤을 더듬었지만 칼이 없었다. 제길…어쩔수 없지.


긴토키는 남자를 경계하기 위해서 몸을 앉은 몸을 일으켰지만, 제대로 서지도 못한채 다시 주저앉았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게 좋을걸. 과다출혈로 죽고싶지 않으면"



남자가 흘깃 긴토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남자쪽에서 탁탁탁 찧는 소리와 함께 진한 풀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달빛에 얼핏 보이는 모습은 풀을 찧고 있는듯 한데…




"너…뭐하는 녀석이냐"



"더군다나 비도 맞은채였고 내가 발견 못했으면 당신 지금쯤 저세상에 갔을지도 몰라."



"무시냐"



"됐으니까 눕기나 누워, 이거 발라줄테니까. "



"뭔데? 그거 …독?"



"죽고싶냐? 기껏 만들어주니까 독같은 소리하고 앉아있어. 독이 아니라 약초야."



"아얏!! 야 너… 그렇다고 상처부위를 누르냐? 그게 환자한테 할 태도야?"



"환자취급 받고싶으면 그 입 닥쳐"



"와 무서워라 혹시 양아치? 산적? 아니면 전직 조폭?"




남자는 더 이상 듣고싶지 않다는 듯 얼굴을 확 구기며 군데군데 긴토키의 상처부위에 찧은약초를 바르고 하얀 천을 꺼내와 지혈했다.



  

"으…따갑네 이거.."



"……"



"이거 효과있는건 맞지?"



"……"



"…저기 혹시 삐졌…아야야!! 아파!!! 누르지말라고!!"



"쉬고있어, 죽이라도 만들어올테니"



남자는 긴토키를 방안에 눕혀놓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남자가 없는 틈을 타 밖으로나가 살펴봐야겠다고 느꼈다.


몸이 아직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낫다. …정말 독은 아닌가보네.


긴토키는 몸을 일으켜 툇마루에서 내려와 천천히 집을 훑어보았다.


달 반쪽에 허름한 집 한채…흡사 폐가? 아니 폐가까진 좀 심했나..이렇게 보니 외관에 비해서 내부가 의외로 잘 관리되어 있는것 같다. 아까 그 남자 깐깐해보이던데.




"쉬고있으라니까 기어코 일어났네."



손에 죽을 들고 남자가 나타났다. 


그릇을 내려놓자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제법이잖아.


죽을 떠먹으며 남자에게 물었다.



"근데 너 이런곳에서 사는거야?…물론 전쟁통이라 어디든 위험한건 사실이지만, 숲이라 야생동물들도 많을거고… 여러모로 위험할텐데…용케 지내고 있네?"



"…뭐…어떻게든."

 

남자는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남자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듯 싶어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음…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이름 알려줄래? 일단은 이름을 알아야 서로 부를 수도 있고말야, 생명을 구해준 은인의 이름정도는 알고 싶거든"



"…히지카타 토시로"



"사카타 긴토키, 그냥 긴토키라고 불러."



"그러지, 죽도 다 먹은듯 하고… 나는 이만 내방으로 들어가야지"


히지카타는 죽 그릇을 들고 걸어갔다.  


"아! 히지카타 의외였어, 죽 맛있더라"


"……'의외였어'는 빼."



히지카타는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 뜸들인 후, 살짝 얼굴이 빨개진채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뭐야 그게. 쑥쓰러워하는 히지카타의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났다.


큭큭거리는 긴토키의 모습에 히지카타는 울컥했는지 빼액 소리를 질렀다. 



"…! …뭐…뭘 웃는거야? 빨리 너도 방에 들어가서 쉬어!"



히지카타가 씩씩거리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하여간 쑥쓰러워하는데 자기할말은 다 하네.



방에 들어가서 누워자려는데 자꾸만 계속 쑥쓰러워했던 히지카타가 생각나서 낄낄 웃은 덕분에 벽쪽에서 쾅쾅소리가 몇번 들렸지만 …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잠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날이 지날수록 긴토키의 몸은 빠른속도로 회복됬다.


이제 한 닷새 엿새쯤 됬을까


오늘은 근처에 산책이나 한번 돌까하고 히지카타의 집 뒤로 나갔더니


웬 까만물체가바닥에서 부들부들거리고 있었다. 뭐지 고양이? 토끼인가?


살금살금 다가가서보니 여우?…치곤 뭔가… 어라, 발목에 덫이 걸려있었다. 억지로 빼려고 했던건지 덫이 심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긴토키는 방으로 돌아가서 지난번 히지카타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줄때 썼던 약초를 가져왔고 덫을 뺀 후에 상처에 약초를 발라주었다.



"아…천을 안가져왔는데……조금만 기다려봐"



긴토키는 빠르게 방으로 돌아갔다가 깨끗한 천을 들고 나왔지만, 아까 그 자리에는 덫이나 여우는커녕 아무런 흔적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뭐지? 잠시 벙쪄있던 긴토키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긴토키, 안 잘거면 술상대나 해줘"


그날 늦은밤에 툇마루에 앉아있는 나에게 히지카타가 술을 보이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환자한테 술을 권하다니 이것 참 못되먹었구만…"



"은인에게 입놀리는 녀석을 환자라고 하나?"



"알았어,알았다고"


 

히지카타와 나란히 앉아서 마신 술이 석잔, 넉잔이 넘어가면서 술에 취해서인지 그냥 내 입에서 흘러 나오는대로 말을 뱉었다.



"곧 보름달이 뜨겠네…"



"……아아"



"근데말야…이 집 역시 위험한거 아냐?"



"또 무슨소릴 하는건지…"



"아니, 아까 처음보는 까만여우같은게 덫에 걸려있길래..치료해주려고 했는데, 방에서 천을 가지고나왔더니 그 여우이고 덫이고 싹 없어져 있더라고. 혹시 여우한테 홀린건 아닐까? 하고" 



"…묘한 일이군… 근처에서 그런동물은 본적이 없는데, 혹시 꿈얘기냐?"



꿈?… 히지카타의 말에 설마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꿈은 아니였다.



"…아니 꿈은 아닌것 같은데…"



"…그럼 진짜 홀리기라도 했나보지"




히지카타는 술잔을 비운뒤 천천히 그렇게 말했다.  달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히지카타의 표정은 어쩐지 조금 씁쓸해 보였다. 

나는 무슨 냐며 따지려했지만, 씁쓸해보이는 히지카타의 표정을 보고 그저 술만 홀짝거리며 말을 삼켰다.











그렇게 또 하루 이틀이 지났을까. 벌써 이곳에 온지도 일주일정도가 지났다.

이제 몸도 거의 회복했고, 더이상 눌러붙는 것도 폐가 될테니 슬슬 떠난다고 말해둬야겠네. 밤이 깊었는데…자려나

머무르는동안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막상 간다고 하려니 조금 아쉬운감이 든다.


미닫이 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가자 보름달이 구름 한 점없이 이곳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봤다. 예쁘네.


갑자기 저 멀리 풀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면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어째 익숙한듯 싶더니 점점 히지카타의 모습이 보였다. 



"히지카타? 이 시간에 어딜 갔다온거야? …너 얼굴이 빨간거같은데 열나는거 아니냐?"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히지카타는 낮게 그르렁거리는듯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마에 갖다대려는 긴토키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다가갔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순간 보면 다시 저 만큼 멀리 떨어져있다. 


……아,말해야하는데… 바로 히지카타를 뒤쫓아가려다가 멈칫했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할 상태는 아닌것 같아서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가자고 생각하고 다시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나서 나는 다시 방에서 나왔다. 저벅저벅 툇마루를 걸어가 히지카타의 방문앞에 섰다. 그런데 …뭐랄까 히지카타의 방에서 묘한 위화감이 든다. 


방문을 두어번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다. …뭐지?


"…"


"히지카타 들어갈게"


"들……지마!"


"어?"


방안에서 끙끙대는 소리와 함께 작게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저러다가 죽는게 아닌가 걱정되는 마음에 미안하지만 들어오지 말라는 히지카타의 말을 무시하고 방문을 열었다. 


긴토키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바닥에 엎드린채 끙끙 대고 있는 히지카타가 보였다.


그런데 어라…? 분명 모습은 히지카타인데 머리에 까만색 동물귀와 까만 꼬리가 여러개 달려있었다.



"히지카타…?"



내가 조심스럽게 부르자 끙끙거리던 힘겹게 히지카타가 고개를 들고 긴토키를 쳐다봤다.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고 홍조를 띄고 있었고 머리고 얼굴이고 땀이 흥건했다. 


히지카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잠…!!"



히지카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넘어트렸다. 그리고 내 위로 올라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나의 입안을 거칠게 탐했다.


내가 밀어낼 틈도 없이 히지카타는 내옷을 벗기고 몸을 핥았다. 


짙어지는 키스와 달아오르는 히지카타의 표정에 나는 점점 본능에 충실해졌고, …결국 히지카타를 범했다.






…그리고 몇번의 이어지는 관계끝에 히지카타는 진정이 되었다.


……어색했다. 무척…



"그……미안…"


"…아니 미안한건나고…나도 순간 이성을 잃어서……그…저기…어떻게 된건지나 말해줘…"



히지카타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


후에 말을 들어보니, 자신은 구미호이기 때문에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음기의 기운이 매우 강해져서 제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특히 이 시기가 되면 감각이 예민해 지는데 근처에 양기를 가지고 있는 내가 있으니 안그래도 제어가 힘든데 더 힘들었다고 결국 나 때문이라고 하며 나를 발로 찼다.


원래 자신도 인간이였지만, 자신이 죽기전 우연히 어떤 검은 구미호의 요력을 받아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이미 몸은 구미호의 모습이였다고 했다. 

요력을 받고 살아간다는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구미호로서의 삶이였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 요력으로 이 집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날이 갈 수록 요력이 쇄하고 있다고 했다. 

요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어야 한다고 그 검은 구미호가 말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아무래도 남자인 자신의 모습으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냐고 조금 투덜거렸다. 


…그게 문제라면 여자로 변신하면 되지 않아? 라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변신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자신은 순수 구미호가 아니기 때문에 요력이 약한것 같다고 했다.


그럼 여자라도 꼬시면… 하고 내가 말을 흐리자 히지카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사실 몇번 시도는 해봤지만 이를 드러냈을때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의 두려운 표정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머리에서 맴돌아 더이상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는거야?"



"…아마…이미 인간으로서의 히지카타 토시로는 죽었으니까 되돌릴순 없겠지"


"……"



여러차례 말을 주고받은 끝에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말하기 조금 뭐하기도 했지만…… 나는 내일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래 잘됬네. 굳이 내일이 아니고 짜증나 죽겠으니까 지금이라도 가버려도 좋은데."


히지카타도 조금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틱틱거리더니 말했지만 막상 표정은 내심 아쉬운듯 해보였다.







다음날, 짐을 싸서 방을 나오니 히지카타가 이미 밖에 나와있었다.



"히지카타…어쩜좋냐"


"…왜?"


"……너한테 홀린거 같아서"


"여우한테 홀렸으니 방도가 없는거 아냐?"


히지카타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니, 미안하지만 히지카타 토시로한테 홀렸거든"


"우웩… 멘트한번 구리네, 빨리 가기나 가라."


히지카타는 토하는 시늉을 하고는 빨리 가버리라고 손짓했다.



"… 언젠가 다시 보자… 어쨌든 고마웠어."



나는 손을 흔들고 뒤를 돌아 앞으로 걸어갔다. 무언가 놓고온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그런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살아있는 귀신은 죽은 귀신을 부르지."



잠깐…이 목소리는?


들릴리가 없는 익숙한 목소리에 이상함을 느껴 다시 뒤를 돌아보니 주변은 흐릿한 안개로 가득차 있었고, 전의 천인놈이 히지카타의 뒤에 서있었다.



"무슨…말도 안되는…?! "



분명 쓰러졌을터인 천인이…어째서……? 



히지카타는 재빨리 뒤를 돌았으나 천인이 한수 위로 빨랐다.


놈은 히지카타의 목을잡아 들어올렸고,목에 칼을 들이 밀었다. 



나는 놈을 패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때리려 움직이자 놈은 들고있던 칼로 히지카타의 목을 살짝 그었다. 히지카타의 목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자 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로 히지카타의 몸을 뚫었다.


히지카타는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고, 몸에 힘이 빠진듯 추욱 늘어졌다.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말했지 않은가…?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론 아무것도 지킬 수없다고말이야. …백야차. "



놈은 조소를 퍼부으며 말했다.


그리고 히지카타를 그자리에 떨어트리고는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서둘러 히지카타에게 다가가 일으켰지만 심장부근이 뚫려 피가 멈추질 않았다. 

히지카타는 피를 토하고는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으며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 한마디와 함께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급하게 손을 붙들고 죽지말라고 애원했지만 스르르 히지카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울부짖었다.



울부짖는일밖에 할 수없었다.


살아있는 귀신은 죽은 귀신을 부른다.


놈이 하고싶은 말을 이제야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우연을 가장한


[오이이와] 우연을 가장한





'엇'


'아,죄송합니다~'



히죽히죽.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줄줄 흘린다.

부딪힌 어깨를 살짝 문지르며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떨어진 버스카드를 손에 쥐어주며 그가 말했다.



'사람이 많아서 말이에요-'



버스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채로 그는 계속 내게 말을 걸어왔다.약간 귀찮다.



'이 시간에 타고 계신거 보면 회사원?'


'네.그쪽도?'


'아쉽지만 땡-이네요.아직은 아무 것도 안하고있어요.'



곧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뒷말을 작게 중얼거리며 그는 다시 웃었다.사교성이 좋은건가 어딘가 진 멍청이인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몇 정거장을 지나쳐가면서 버스 안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고,곧이어는 앉아서도 갈 수 있게 되었다.

편안히 앉아있는데도 뒷통수가 불편한 듯 안한 듯 신경쓰이는 이유는 바로 내 뒷자리에 앉은 그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가끔은 조용히 웃고있는 것 같기도 했다.내 뒷통수가 웃기게 생겼나? 괜히 뒷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어디서 내리세요?'



그가 말을 걸어왔다.갑작스러운 음성에 흠칫하고 놀랐다.심장이 쿵쿵 거린다.그가 웃었다.

창피스러움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두 정거장 더 가서 내려요.'


'그래요?전 한번만 더 가면 되는데,은근 가깝네요?아까워라~'



부스럭거리며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내리려는 건가?

살짝 고개를 돌려서 그를 보았다.눈이 마주쳤다. 



'나중에 또 봐요-'



손을 휙휙 흔들며 그가 또 히죽히죽.웃었다.

사교성이고 뭐고 정말 바보였다.

그래도 나름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끄덕-해주었다.



'아 참- 물건 안 잃어버리게 조심하세요.요전처럼 또 떨어트리면 안되잖아요?'



*



정거장에서 집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기에 조금은 여유롭게 다리를 움직였다.환한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좀전의 남자를 떠올렸다. 

집에 도착했으려나...어디에 갔다가 그 버스에 탄걸까.항상 가는 건가?



내일도 만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에 나조차도 당황스러워 헛기침을 했다. 

젠장맞게도 얼굴에 열이 올랐다.급해지는 발걸음으로 1층에 달려있는 문을 벌컥 열었다.


떡하니 있는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계단을 쿵쿵거리며 올라가면서도 그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내일도? 그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멍청이 같은건 나였던건가..싶었다.

애써 부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휙휙 돌렸다.그냥 너무 친절해서 그런것이라는 요상한 결정을 내려버린 내가 한심해서 웃음이 나왔다.피식-하고 흘려버린 웃음을 다시 주워담기도 전에 

자신의 앞에 펼쳐진 다음 상황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하지만 잡히는 것은 없었다.

텅 비어있음에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며 반대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후에 들고있던 가방에도,지갑에도 손을 뻗어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열쇠가 없었다. 설마 잃어버린,



'또 보네요? 우리.'



익숙한 음성에 몸이 굳었다.약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닿았다.



'열쇠가,없네요?'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굳어있는 내 몸을 이끌고 들어가면서 그가 나직이 말했다.

얼굴에는 땀이 맺혀있다.



'조심해야죠-.내가 말했잖아.'



현관문이 닫혔다. 



夢緣(몽연)


[오키카구] 夢緣 (몽연)




감춰둘 내용을 여기에 입력하세요.은혼 오키타 소고 X 카구라 (극장판 해결사여 영원하라 ver.)


※ 은혼 극장판 완결편 : '해결사여 영원하라' 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왠만하면 '해결사여 영원하라' 를 보고 나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ㅠ 





夢緣 (몽연)





written by. 익명만애의흔한곰손은덕







*


바람과 함께 들어오는 햇살이 포근하다.

고요함이 맴돌아야 하는 이른 아침이지만, 어디선가 가까이 그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긴토키 씨!! 일어나요! 카구라도 일어나!! 아침이야!"


"으.. 시끄러..."


카구라는 이른 아침부터 시끄럽게 구는 안경 덕분에 눈이 떠졌다. 하지만 살짝 차가움이 맴도는 벽장 밖으로 나가기 싫어 더욱 이불을 뒤집어썼다.

긴토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이른 아침의 차가움이 느껴지는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긴토키 역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안경은 오늘따라 늦장을 부리는 이 2명에게 더욱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일어나라고!!! 오늘 일 있잖아!!!!! 그보다 난 왜 안경으로 나오는 건데!!"


"으... 안경은 안경일 뿐이다 해. 조용히 해라 안경. 시끄럽다 해."

"파치야... 좀 여유롭게 살란 말이야. 난 마음만큼은 소년이니까 늦게 일어나고 싶다고.."


"그래도, 너무 늦잖아요!!! 긴토키 씨 요즘 늦게 들어온다면서요!! 술 좀 먹고 돌아다니지 마 망할 파마머리!!"

"그, 그건 어른들만의 사정이 있어서... 잠시만... 지금.. 몇.. 시냐..?"


"... 8시 34분입니다만?"


긴토키는 이불 속에서 나오다가 순간 멈추고 말았다. 8시 34분... 지붕을 고치기로 되어있는 니시무라 씨 집에 도착해야 할 시각은.. 8시.

망했다.

긴토키는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부츠를 신었다. 오늘따라 부츠가 계속 신겨지지 않아 짜증이 났다.


"지각이잖아!!!!!! 빨리 가야 되는데!!!!!"

"긴토키 씨! 목검 챙겨요!!!"

"하암... 가자 사다하루!"


긴토키와 신파치, 카구라는 서둘러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해결사 긴토키는 여전하다.







-







주홍빛의 노을이 카부키쵸를 감싸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어둑어둑 해질 것이 뻔하였다.

예상외로 지붕 고치기는 너무 늦게 끝나고 말았다. 니지무라 씨 집에 도착한 시각이 늦어서도 있지만, 손을 봐줘야 할 곳이 많아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긴토키와 카구라는 일을 끝내고 피곤함에 해결사 사무소에 도착하자 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사무소에 돌아오던 중 신파치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누나가 걱정한다며 집에 먼저 들어갔다.



긴토키의 눈은 평소에도 피곤함이 보였지만, 요즘 따라 더욱 피곤해 보였다.



"으으, 피곤하다 해. 빨리 자고 싶다 해."

"그래 그래, 어린이는 빨리 자라. 어휴.. 어른은 어른의 일을 하러 가야지. 카구라, 잠시만 나갔다 올게."


긴토키가 이상하다. 

사실 얼마 전부터 긴토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카구라는 알고 있었다. 어제도-



'카구라쨩~ 나 왔... 으억!!'

'썩을 파마머리!!!! 왜 이제야 왔냐 해!! 술 좀 먹어라 해!!!'

'쿨럭... 아.. 아프잖냐. 오늘은 많이 안 먹었...'

'... 긴쨩 요즘 이상하다 해. 요즘 너무 늦게 들어온다 해... 혹시 어른들의 놀이를 하러..으븝'

'그, 그런 거 아니라고!! 아무튼... 빨리 자.'





..이러면서 대답하기를 꺼려했다. 


카구라는 저런 썩어빠진 파마머리에게 여자는 없으며, 어른들의 놀이를 하러 간 것도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긴토키가 늦게 들어올수록 카구라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카구라는 그런 긴토키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궁금하였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그 눈이- 평소에도 썩어빠져 보이는 동태눈이 너무 피곤해 보이고 공허해 보였다.

그렇기에 더욱 물어볼 수 없었다.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그 눈은 더욱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긴쨩... 가지 마라 해. 불길한 느낌이 든다 해."



특히 오늘따라 더욱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카구라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길한 느낌이 들면 정말 카구라 주위에서 불길한 일이 벌어지곤 하였다. 


그렇기에 긴토키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긴토키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긴토키는-.


"카구라... 돌아올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금방 돌아올게."

"긴쨩... 늦으면 죽을 줄 알아라 해. 술 많이 먹지 말고 빨리 오라 해!!"



"알았어, 알았다고!!! 너야말로 일찍 자라!"




긴토키는 크게 소리치며 달려갔고, 카구라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래.. 긴쨩이니까 약속은 꼭 지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카구라는 후에 뼈저리게 후회했다.

불길한 예감은 변하지 않고 현실로 다가왔다.






-






짹짹- 거리는 참새 소리가 방안을 맴돌았다. 따듯한 햇살이 마루를 내리쬐고, 더욱 잠이 쏟아졌다.

... 망할 히지카타 때문에 금방 잠에서 깼지만.



"... 어이, 소고 너 뭐 하냐. 누가 업무시간에 낮잠 자랬어?"


못 들은 척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화병으로 죽으시지 망할 히지카타.



"못 들은 척하지 마!!! 인마!!!!! 순찰이라도 돌란 말이다!!!"

"... 쳇."


"뭐가 쳇이야!!!! 빨리 안 나가?!"


"에이- 히지카타 씨 왜 그러세요. 오늘은 일요일이라고요. 휴일인데 낮잠이라도 자면 안 됩니까?"

"오늘 월요일입니다만? 아무튼 할거 없으면 농땡이 피우지 말고 한 두 바퀴 순찰 좀 돌다가 와라. 네가 그러고도 경찰이냐?"


...마요라니코틴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휴... 예이 예이 알겠습니다-. 할거 많으신 부장님? 이왕 하는 김에 제가 일거리 더 드릴까요?"

"에... 뭐?"


오키타는 순식간에 자면서 들고 있던 바주카포를 쏴버렸다. 그리고 잽싸게 그 자리를 튀었다. 흥, 일이 그렇게 좋으면 일에 파묻혀서 죽어라 히지카타.

폭발음이 들리고 나서 이윽고, 히지카타의 "소고!!!!!!!!!!!!!!" 하는 소리가 넓게 퍼져나갔다.



오키타는 그 소리에 작게 웃고 천천히 카부키쵸를 향해 걸어갔다.


"... 오랜만에 차이나 보러 가볼까나..."


오키타는 늘 가는 케이크 가게에 들렀고, 낭랑하게 울리는 종소리에 점장이 오키타를 힘차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쇼! 오키타 씨, 오늘은 어떤 걸로?"

"늘 먹던 걸로 2개. 아, 하나는 타바스코 뿌려주시는 거 잊지 말고요."



그렇게 케이크를 사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곤 휘파람을 불며 해결사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상쾌하게 부는 바람이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이었다. 카부키쵸는. 


최근 들어서 양이지사 놈들의 활동이 활발해서 둔소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갔었다.


그나마 어제야 겨우 양이지사 놈들을 붙잡아서 오늘 쉬고 있던 건데, 망할 히지카타 때문에 잠도 못 잤다. 



이왕 잠에서 깬 김에 해결사 사무소나 가서 차이나 나 골려주고 와야지 하고 생각했기에- 오키타는 히지카타 때문에 짜증 났던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해결사 사무소를 향해 가면서 이리저리 잡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자, 카부키쵸에 도착하였다.

역시 여기는 언제나 바글바글하구나... 카부키쵸는 엄연히 유흥거리가 넘치는 향락가이지만, 밤이 아닌 낮에도 꽤나 시끌벅적 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도착한 해결사 사무소는 조용해 보였다. 원래 꽤 시끄러운 곳인데- 하고 오키타는 의아해하였다.



"형씨, 저 들어갑니다-."

하고 문을 드르륵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신발은 신파치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과 카구라의 것으로 보이는 부츠밖에 없었다.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형씨 일 나가셨나..."


평소에 긴토키가 없어도 시끌벅적할 텐데 오늘따라 조용했다. 오키타는 신발을 벗고 해결사 사무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형씨-..."

"왜 이제야 들어오냐 망할 파마머리!!!"

"긴토키 씨!! 너무 늦었잖아!!! 망할 놈아!!...는 오키..타..씨?"



오키타가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인 건 카구라의 발바닥이었다.

신파치는 카구라가 오키타를 향해 발을 힘껏 차는 것을 보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망했다.






-






"..."

"..."

"..."


3명 모두 서로 아무 말이 없어진지 벌써 2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해결사 사무실은 시계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정적을 깬 건 오키타였다. 가만히 있어봤자 결국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 어이 차이나,  아프잖아... 기껏 케이크까지 사 가면서 왔는데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말 좀 해보시지?"



오키타가 자신의 팔을 잡고 사악하게 웃자 안경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녹차를 대접했다.

카구라는 그런 오키타를 보곤 혀를 찼다.



".. 사디, 여기는 왜 왔냐 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온 거라면 사양하겠다 해."

"저기.. 카구라? 네가 먼저 오키타 씨 쳤거든?"

"안경은 가만히 있어라 해. 저 자식 분명히 또 케이크에 타바스코 뿌렸을 거다 해."

"타바스코 뿌렸는지 안 뿌렸는지는 먹어보면 될 거 아니냐.. 망할 차이나... 너 덕분에 내 팔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거 같다고. 이거 어떻게 보상해줄 건데? 내가 팔로 방어하지 않았으면 이미 저 제상 가서 염라대왕님 만났을껄?"


"그거 참 안됐다 해. 지금이라도 저세상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 그리고 시끄럽다 해. 봐줄 테니 얌전히 케이크나 주고 가버려라 해."



또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오키타와 카구라는 항상 만날 때마다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유치하게 싸우는 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안경은 짜증이 솟구쳤다.


"다들 유치하게 싸우지 말고 가만히 있어 좀!!!!!! 그리고 내가 왜 또 안경으로 바뀌는 건데!!!!"



"쳇."

"그보다 형씨는 어디 갔냐? 왜 너희들 밖에 없는 건데."

"너는 알 바 없..으븝"

"하하... 긴토키 씨는 어딘가에서 술 먹고 놀고 있을 거예요. 요즘 들어서 많이 늦거든요."


신파치는 황급히 카구라의 입을 막았다. 카구라가 더 말해봤자 이 둘은 더 싸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리라.

카구라는 불편한지 입을 막아버린 신파치의 손을 치워버리고 불같이 소리를 질렀다.



"푸하!! 그러니까... 이 썩을 파마머리는 도대체 언제 들어오는 거냐 해!!!! 배고파 죽을 것 같다 해!!!!!! 금방 온다면서!!!!"

"하하하..."

"사디, 그 케이크 내놔라 해!! 더 이상 배고파서 못 버티겠다!!"

"쯧, 옜다."



카구라는 오키타의 케이크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케이크 하나를 다 먹고 나서 오키타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의심이 되는지 카구라는 오키타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 뭐냐 차이나."


"이상하다 해. 네가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그냥 가져올 리가 없다 해. 타바스코... 안 뿌린 거냐 해?"

"네가 먹어봤잖아. 의심도 너무 많이 하면 못 쓰는 거다."

".. 알았다 해. 오늘은 넘어가 주겠다 해."



"하하하.. 그나저나 오키타 씨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지금 긴토키 씨가 없으셔서 의뢰는 못 받아줄 것 같은데..."

"망할 파마머리... 어제 분명히 금방 돌아온다고 해놓고선 이 시간이 지나도록 오질 않는다 해. 술도 먹으라고 했는데..."



오키타는 신파치와 카구라가 말하는 것을 듣곤 녹차를 한 입 마셨다. 진한 녹차향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이곳에 더 있고 싶지만, 계속 있다간 히지카타에게 어디 가 있었냐는 둥, 네가 순찰을 이렇게 늦게까지 할리가 없다는 둥 잔소리를 할게 뻔하였다.

손깍지를 껴서 기지개를 피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형씨라면 언젠가 오겠지. 난 이만 볼일 없어서 가본다."

"에... 가시게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 이 케이크는 뭐냐 해? 이것도 선물이냐 해?"



"아, 그 케이크.... 먹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난 간다-."



오키타는 손짓을 하며 유유히 해결사 사무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재빨리 뛰었다.

이윽고-  해결사 사무소에서 카구라의 비명이 들려왔고, 오키타는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으아아아아!!!!!! 물!!! 신파치 물!!!!! 사디!!!!!!!!! 죽여버릴 거야!!!!!!!!!! 또 믿어버린 내가 바보였다 해!!!!!!!"



오키타는 휘파람을 불며 기분좋게 신센구미로 향하였다.






-






오늘도 어김없이 따듯한 햇살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긴토키가 사라진지 어느새 2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긴토키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카부키쵸는 변하지 않았다.

해결사 사무소도 시계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긴쨩..."



카구라는 긴토키의 의자에 쭈구려앉아 의자를 흔들 뿐이였다.



"긴쨩.. 왜 안 오는 거냐 해... 금방 온다면서... 왜..."



카구라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고이는 눈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긴토키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긴토키는 반드시 돌아왔다.

마음속으로 돌아올 거야.. 돌아올 거야 긴쨩이잖아. 반드시 돌아올 거야. 라고 계속 생각해봐도 불안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때, 문이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 긴쨩?!.. 이 아니네.."



그렇게 다리던 긴토키인 줄 알았지만, 긴토키를 찾으러 나갔던 신파치가 돌아온 것이었다. 신파치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는지 온몸이 땀으로 얼룩져있었다. 

"하아... 카구라... 긴토키 씨 아직 안 왔지?..."

"... 긴쨩, 도대체 어디서 처박혀서 안 나오는 거냐 해.... 이 근방은 다 뒤져본 거 같은데 머리카락도 안 보인다 해..."

"으아아아아 미치겠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이 망할 곱슬머리!!!! 이번에도 기억 잃어버리고 어딘가에 처박혀서 강제노동하는 건 아니겠지?!!!"

"긴쨩....."



긴토키가 사라진지 3일이 지났을 때는 언젠가 오겠지 하면서 사무소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4일째가 되자 신파치와 카구라는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카부키쵸의 모든 곳을 전부 다 뒤져봐도, 긴토키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 신파치, 나 잠깐 다녀오겠다 해."

"어, 어디 짚이는 곳이라도 있어?"

"아니... 그냥 바람이라도 쐬게. 다녀오겠다 해."



카구라는 사무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걷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걸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선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긴쨩이 우릴 버리고 도망가 버린 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당뇨병으로 죽은 건가. 아니다, 긴쨩이 우리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죽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눈치채고,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강변가였다.


"저건..."



강변에, 바로 카구라의 대각선 위치에, 웬 익숙한 갈색 머리가 누워있었다. 오키타 소고였다.

오키타는 여전히 이상한 아이 마스크를 하고 팔짱을 끼곤 잠들어 있었다. 딱 보아하니 오늘도 땡땡이를 치는 것 같았다.

카구라는 오키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으면 달려가서 한 방 날려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 사디, 일어나봐라 해."


카구라는 오키타의 볼을 콕콕 찌르면서 깨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키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카구라는 오키타의 볼을 찌르면서 소리쳤다.



"... 사디, 일어나라 해!!!!!"


...소리를 쳐도 오키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오키타를 보곤 카구라는 기가 찼다. 이렇게나 했는데 왜 안 일어나는 건데?

설마 죽은 건가, 싶어 오키타의 아이 마스크를 슬쩍 올려보려고 하자,  카구라의 손이 붙잡혔다.



"... 야, 나 일어나있었거든?"

"뭐야, 안 죽어있었네. 쳇."

"... 너 나 시비 털려고 깨웠냐? 일 없으면 가라. 나 바쁘다." 

"..."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바쁜 놈이 여기서 낮잠이나 퍼자고 있는 거냐 해!!!!라면서 짜증을 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카구라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방금 전, 목소리도 이상하였다. 약간 눈물이 섞인 목소리였다. 이상함에 오키타는 아이 마스크를 벗었다. 


"뭐냐, 너. 평소 너 같지가 않은.... 너 우냐?"

"시.. 시끄럽다 해. 울긴 내가 왜 우냐 해?"

"야..."


오키타는 당황스러웠다. 여태까지 카구라가 자기 앞에서 우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은 없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우는 걸 보니 황당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 너 뭔 일이냐. 왜 우는 건데."

"...긴쨩... 긴쨩이 사라졌다 해."



카구라는 잠겨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긴쨩... 긴쨩이 사라진지 2주일이 넘었다 해. 분명히 금방 돌아온다고 했는데 돌아오질 않는다 해...."

"... 2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안 들어왔다고?"



카구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 거렸다. 2주일... 이거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가.



"그때 붙잡을 걸 그랬다 해.. 내가 그때 긴쨩을 잡았어야 했다 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붙잡았어야 했다니.


".. 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세히 좀 설명해봐."



"... 긴쨩이 저번부터 수상하긴 했다 해. 평소보다 너무 밤늦게 들어오고... 그 썩어빠진 동태눈도 유독 어두워 보였다 해..

긴쨩이 사라진 날, 그날만큼은 뭔가 불길한 느낌이 계속 들어서 가지 말라고 했는데, 긴쨩은 금방 돌아오겠다며 나가버렸다 해. 그게 내가 긴쨩을 마지막으로 본거 다 해..."



카구라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오키타는 그런 카구라에게 더욱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 어? 야 울지 마... 아오씨.. 내가 여자 달래주는 거 잘 못하거든?.. 울지 마. 우는 여자애는 안 좋아해."

"으.. 누가 너 같은 거 좋아한다고 했냐 해!! 우는 거 아니다 해..."



"하여간에 진짜... 야 닦아. 보기 흉하다."



오키타는 자신의 크라바트를 풀어 카구라에게 건네주었다. 카구라는 아무 말없이 크라바트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냈다.

그렇게 서로 정적이 지속되었고, 오키타는 카구라를 슬며시 바라봤다.


"... 다 울었냐?"

"... 이거."


카구라는 눈물과 콧물로 얼룩덜룩해진 크라바트를 오키타에게 내밀었고, 오키타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뭔 놈의 여자애가 이렇게 내숭이 없어?



"...야 그거 그냥 너 가져라. 버리든지 말든지는 너가 알아서 해."



카구라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 거리며 강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가가 많이 빨개져있었다.


"... 사람 실종 신고는 경찰한테 하는 거 모르냐? 꼬맹이들끼리 뭐 어떻게 하려고."

"... 시끄럽다 해."



아직도 목소리는 눈물이 잠겨있었다. 진정하긴 했지만,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눈은 계속 강가를 향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운 모습이 창피해서 보여주기 싫은 거겠지.

오키타는 기지개를 쭉 핀 후, 옷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옷에 내려앉아있던 풀떼기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하아... 야 일어나."

"... 어디 가는 거냐 해."

"같이 찾아보자고, 형씨. 이런 건 경찰한테 맡기는 거 아니냐? 귀찮지만..."

"... 세금 도둑 주제에... 알았다 해."



그렇게 오키타와 카구라는 함께 신센구미 둔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늘이 주홍빛으로 바뀌었고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_







하늘은 검은빛으로 물들었고, 별빛과 달빛이 은은하게 강가를 비춰주고 있다. 카구야 공주가 내려올 것 만 같은 둥그스름한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있다.


긴토키가 사라진지 벌써 세 달 째.


강물은 누군가의 마음이 불안한 것도 모르고 시원한 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긴쨩..."


카구라는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평생 울어야 할 눈물을 다 써 버린 것만 같았다.


"..."



카부키쵸 말고도, 신센구미 인력을 동원하여 에도 구석구석을 다 뒤져봐도 긴토키는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긴토키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카구라는 쓸쓸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가까이에서 잔디가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 !!"


무엇인가가 얼굴에 명중하였다. 돌을 맞은 듯이 얼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픔에 카구라는 고개를 팍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괜찮냐?"


오키타 소고였다.

카구라는 오키타의 목소리에 빠직 마크를 형성하고, 오키타를 향해 주위에 있는 돌을 집어던졌다.


"너 같으면.. 괜찮겠냐!!!!!! 이 사디스트!!!!"

"차... 차이나... 진..진정. 돌은 아니잖아 돌은!!!! 미안하다고!!!!"

"너야말로 돌 던진 거 아니냐 해!!!!!!!!! 돌!!... 어?"

"... 넌 저게 돌로 보이냐."


카구라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옆에 떨어져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돌이.. 저런 빨간색에.. 모양이 네모였을까.

돌이 아닌, 다시마 초절임.

카구라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최근엔 긴토키 일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사먹지 못했던 것.


"... 흥, 그래도 이걸 내 얼굴에 던지다니.. 네가 먼저 잘못 한 거니까 정당방위다 해. 이건 내가 잘 먹어주겠다 해."

"야... 의도는 아니었거든? 아무튼, 여기서 청승맞게 뭐 하냐." 


카구라는 오키타의 말을 듣자마자 침울해졌다. 그렇게 우울한 목소리로 카구라는 입을 열었다.



".... 긴쨩이 사라진지 벌써 세 달이나 지났다 해."

"..." 


오키타는 아무 말없이 카구라 옆쪽에 슬쩍 앉았다.


"에도의 거의 모든 곳을 뒤져본 거 같은데... 긴쨩은 어디 간 걸까 해.."

"... 형씨 진짜 나쁘지 않았냐? 세 달이 되도록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신센구미를 이렇게나 굴린 일반인은 형씨가 처음일 거다 아마."

"..."


오키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편의점에 그 노트만 맡기고 화장실에 갔다는 건데, 화장실에서 도대체 뭘 했길래 거기서 흔적이 사라지는 거냐고..."

"..."

"형씨는 자기 혼자서 엔미 인가 뭔가를 어떻게 저지해보려고 그런 거 같은데- 지금 상황은 이렇잖아?  ...당했잖아. 엔미한테."



오키타의 말이 맞았다. 현재 에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아니, 전 세계가 위기에 빠졌다.

감염된 경로도 모르고, 예방할 방법도, 막을 방법도 없는 전염병.

한 번 감염되면, 최대 한 달안에 그 환자가 죽어버리는 무서운 병.

감염될 시에 몸에 있는 멜라닌 색소가 다 빠져버려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백저.

백저로 인한 사망자는 벌써 최소 천 여 명으로 치솟았다. 덕분에 전 세계는 비상사태.

전 세계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 지구를 떠났다. 백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머지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떠나지 못한 가난한 자들 또는 지구를 떠나기 싫은 고집불통들이었다.



"백저 인가 뭔가 덕분에 신센구미도 완전히 비상이라고. 신센구미 내에서는 아직 감염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단기간 내에 사망자가 워낙 많으니..."


"..."


"형씨는 뭔가 알고 있었겠지. 백저가 나노머신 바이러스라는 것도.... 막으려고 했겠지, 형씨는. 하지만 어떠한 방법도 써보지도 못하고 행방불명..."

"..."


카구라를 고개를 푹 숙였다. 분위기는 점점 더 우울해져갔다. 모든 게 사실이었다.



"형씨... 엔미한테 먼저 당해버렸을 수도 있어.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현재로선..."

".. 아니다 해. 긴쨩은 안 죽었다 해."


카구라는 잠긴 목소리로 답하였다. 오키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후... 냉정하게 말한다면, 가능성이 높다고. 현재 신센구미도 형씨 찾기는 중단했어. 에도 전역을 는데도 불구하고 머리카락 하나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아니야!!! 긴쨩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다 해!!!!! 긴쨩은 이런 약속은 꼭 지켰단 말이야!!"

"..."


카구라는 오키타에게 화를 내버렸다. 가뜩이나 마음이 불안한데 이런 불길한 소리만 하는 오키타가 미웠다.

하지만 오키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꼭 돌아온다고 말한 지 세 달이나 지났지만 긴토키는 자취를 아예 감춰버리고 말았다.


"긴쨩은... 긴쨩은... 안 죽었다 해. 그런 불길한 소리만 할 거면 가버려라 해. 꼴도 보기도 싫다."

"야..."

"네가 안 가면 내가 간다 해. 해결사 사무실은 찾아오지도 말라 해."



그렇게 카구라는 오키타를 째려보곤 도망치듯이 뛰어갔다.

오키타는 고요함 속에서 가만히 카구라가 뛰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








실수했다.

오키타는 괜히 애꿎은 돌멩이들을 강으로 차례차례 날리고 있었다. 돌멩이를 멀리 날릴 때마다 물결은 더욱 멀리 퍼졌다.


"... 쯧."


풀썩- 하고 오키타는 강변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해결사 형씨가 미웠다. 아니, 질투가 났다.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신뢰를 얻고 있는 형씨에게 질투가 났다.



차이나 녀석이 형씨에게 썩을 파마머리, 망할 완전 폐품 아저씨라고 욕해도 사실 그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연애 감정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질투가 났다. 내가 없어져도 차이나는 날 이렇게나 걱정해줄까.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이 나왔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차이나였어도, 나에게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그 녀석은 형씨가 살아있다는 것을 계속 믿고 있는데, 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녀석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형씨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차이나는 많이 괴로웠을 것이다. 형씨가 살아있다는 것을 계속 믿고 있는데 주변에선 모두 하나같이 아니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난 정말로 형씨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그 문제에 대한 내 답은... 잘 모르겠다.


나로선 형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형씨의 평소 행적들을 보면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을 수도 있다. 그 양이 전쟁에서도 백야차로 불리며 살아남은 형씨였다. 그래서 아직까진 죽었다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그나저나 차이나 녀석에게 뭐라고 사과해야 할지가 문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내가 신센구미인 것도 있고... S인 것도 있고.... 불편한 사실이지만, 그건 별로 상관이 없다.

그래도 그 녀석에게 미움받는 것은 왠지 내가 싫다.


뭐라고 해야 차이나 녀석이 마음을 풀어줄까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도 늦었고... 우선 천천히 생각하며 둔소까지 걸어가 보자 마음먹었다.



는 개뿔... 둔소에 도착했지만 계속 사과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정신없는 머리를 이끌고 이불 속에 드러누웠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냐 소고.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건데? 너 지금 비상인 거 알긴 하냐? 그렇게 땡땡이 피워..."

"땡땡이 안쳤으니까 백저에 걸려서 히지카타. 지금 골 울리거든요? 저 먼저 자렵니다."


"참내... 알았다. 내일 땡땡이나 치지 마라."


싫은데요.

내가 땡땡이치는 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하여튼, 우선 자고 보자. 사과는 그때 가서 제대로 생각해보고...



그렇게 나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하였다.







_







아직 가을이지만, 나름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울긋불긋한 낙엽은 바람에 의해서 힘없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낙엽들을 빗자루로 쓸기에 바빴다. 



오키타는 오늘도 어김없이 땡땡이를 치고 있다.

신센구미 둔소에서 몰래 나가려고 했지만, 히지카타에게 딱 걸리는 바람에 바주카포를 쏘고 도망을 나왔다.

그렇게 가볍게 둔소를 빠져나온 다음 향한 곳은 역시나, 카부키쵸였다.

하지만, 발걸음이 가벼운 건 아니었다. 사실은 여태까지 계속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론이 나질 않았다.

우선 가서 생각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해결사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걸어왔는데도 오늘따라 거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해결사 사무실 앞이다.

... 어떻게든 되겠지 하곤 문을 벌컥 열었다.



"... 어이- 차이나."

"아... 오키타 씨."


차가운 해결사 사무실 안에는 차이나는 온데간데없고, 안경만 있을 뿐이었다.


"안경..."

"누가 안경이야!!!!! 아무튼, 카구라 찾는 거라면 뒷산에 그 공동묘지 쪽으로 가보세요... 그쪽에 있어요."


공동묘지라면...... 아, 생각났다.

해결사 형씨 비석 있는 곳....... 그 녀석이 가있을 장소는 그곳이 분명하였다.



그나저나 여긴... 아직도...


한 번 해결사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 변함이 없다. 차가움이 맴돌았지만 이곳은 여전하였다. 신파치가 다 청소해온 거겠지.

눈이 마주치자 신파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많이 쓸쓸해 보였다.



"... 너도 고생이다."

"에... 저랑 카구라가 아니면 여길 누가 지키겠어요. 긴토키 씨 올 때까지 기다려야죠."

"... 그럼 난 간다."

"...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안경에게 인사를 건넨 뒤, 해결사 사무소에서 나와 뒷산으로 향했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그 녀석이 그곳에 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해결사 형씨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죽은 것이 틀림없다며 형씨의 비석을 따로 만들어 놨다.

정말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만약 형씨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목덜미 잡고 쓰러져서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며 형씨의 비석이 있는 곳 가까이에 도착하자, 익숙해 보이는 우산을 쓰고 쪼그려앉아있는 한 여자아이가 있다.

차이나 녀석이었다.


차이나는 살짝 멀리있지만 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흠칫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될 대로 되라.



"... 야 차이나-."

"... 네가 여긴 왜 왔...!"


순간 퍽-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키타는 카구라를 향해 맞출 의도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카구라의 얼굴에 맞았다.

순간적으로 오한에 오키타는 소름이 돋았다.


"... 어라...."

"... 너 나랑 싸우자는 거냐 해!!!!!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나를 보자기로 아는 거냐 해!!!!!!!"


...쟤 뚜껑 열렸다. 진짜 제대로 열렸다....



"아.. 아니 싸우자는 건 아니고...!!!! 잠시만 내 말 좀 들어봐 차이나!!!! 그 돌 내려놔!!! 네 밑에 떨어진 거 보라고!!!"

"웃기지 말라 해!!!! 죽어라 해!!!!"

"헉... 야 미쳤어?!!! 나 진짜 죽는다고!!!!"

"그럼 이건 뭐냐 해!!!!!는.... 다시마 초절임..?"


카구라는 혹시나 해서 자신의 발 밑을 보았다. 저번과 똑같은 붉은색의 조그마한 네모 모양... 다시마 초절임이었다.


"... 혹시 사과 선물이냐 해? 흥, 천하의 도 S가 웬일이냐 해."


카구라는 의심쩍다는 눈빛으로 오키타를 응시했고, 오키타는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딴 곳을 쳐다보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오다 주웠다. 먹던지 버리던지 마음대로 해."



카구라는 오키타의 말을 듣곤 다시 다시마 초절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곤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푸흡.. 너 바보냐 해? 오다 주웠다니... 푸하하하!"


"..."


오키타는 카구라의 웃음소리에 딴 곳을 쳐다보는 것을 멈추고 카구라를 쳐다봤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진심이 담긴 웃음...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 아, 시끄러워-. 어디서 파리가 돌아다니나..."



오키타는 고개를 숙였다. 카구라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인 건 처음이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귓전까지 울려 퍼졌다.

온몸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손에 땀이 가득하다.

오키타는 얼굴이 빨개진 것을 감추기 위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해야만 했다.


"... 아.. 더워... 왜 이렇게 더워..."


"... 뭐라고 그렇게 구시렁거리는 거냐 해. 아무튼, 이건 내가 잘 먹어주겠다 해."


계속해서 손으로 바람을 불어가며 얼굴을 식혔다. 저 바보 차이나는 눈치채지 못한듯하였다. 다행이었다.

아, 사과해야 되는데. 하마터면 깜빡할뻔했다.

얼굴을 최대한 식히고 진정시켜야만 했다.


"... 야 차이나. 내가 이런 거 잘 못하는데... 후 진짜.."


".. 뭐냐 해?"


오키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카구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단번에 말했다.


"미안."


"...에?"

"... 아오... 그거 잘못 말한 거야.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 난 또 뭐라고... 그건 이미 풀렸다 해."


카구라는 몸을 일으켜 활짝 펴진 보라색 우산을 어깨에 기대 빙글빙글 돌렸다.


"긴쨩이 나쁜 건 맞다 해. 이 썩을 파마머리는 돌아온다고 한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안 오니까."

"..."


"솔직히 한 번쯤은 정말 긴쨩이 죽은 게 아닌가 생각해봤다 해. 사람들도 다 긴쨩은 죽었다고 하니까."

"..."

카구라는 오키타에게 계속해서 마음을 털어놓았다. 오키타는 이런 카구라에게 살짝 놀랐다. 카구라가 자신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만나기만 하면 맨날 싸우니까. 




"그런데 긴쨩이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든다 해. 내 느낌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해... 아무튼, 난 신파치하고 사다하루랑 같이 긴쨩을 기다릴 거다 해."


"... 그러냐."



오키타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됐고.... 난 간다."



뭐... 나 제대로 사과한 거 맞겠지.라며 천천히 걸었다.

아직도 그 함박웃음이 잊히지 않는다.

볼이 또 붉은빛으로 달아오르고 화끈화끈 거렸다. 


계속해서 그 웃음을 생각하니 나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 하여간에 웃기다니까 차이나."



바람과 함께 단풍잎들이 나풀나풀 거렸다. 

높디높은 맑은 하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단풍잎을 닮은 붉은색으로 물들어졌다.









-









차이나와 화해를 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 그래서 히지카타 씨. 곤도 씨가.."


".. 어. 그렇게 됐어. 그 망할 고릴라가.."


"... 이게 말이 됩니까? 빌어먹을 막부 놈들..."



곤도 씨가 체포당했다.

"..."

"... 그래서 소고. 넌 어떻게 할 거냐."

"..... 히지카타 씨. 뭘 당연한 걸 물으십니까? 당연히 쳐들어가야죠. 막부에."


애초에 막부 따윈 믿지 않았다.

나라도 팔아먹었던 막부였다. 언젠가 예상했던 결과.

나를 포함한 신센구미 대원들은 모두 하나둘씩 제복을 벗어던졌다.


"카츠라도... 체포되었다더라. 카츠라 일파가 우리에게 손잡을 것을 제안했어."



... 웃기네. 경찰의 적이었던 양이지사가 된다.. 라... 그것도 그렇게 쫓아다녔던 카츠라 일파와 손을 잡는다...


현재 에도에선 양이지사로 탈바꿈한 신센구미가 지명수배되었다.

이렇게 나도 범죄자 신세.


... 차이나... 이젠 만나는 것도 힘들지도...








-







곤도 씨가 체포된 지 벌써 3년째다.




아침부터 하늘에서 구멍이 난 듯, 비가 그칠 줄을 몰랐다. 계속해서 비가 쏟아졌다.

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동시에 천둥소리도 들렸다. 


'아... 돌아버리겠네. 비는 언제 그치는 건데. ...아파죽겠다.'


실수였다.

역시 나 혼자서 그렇게 많은 놈들을 다 처리하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그 녀석들을 결국 다 해치웠지만, 나도 만만치 않게 만신창이.

숨이 차오고 베인 상처가 빗물이 고여 아려왔다. 이대로 계속 기지까지 걸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웬 다홍빛의 긴 머리카락, 커다란 우산, ...해결사 형씨가 입고 다니던 유카타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나타났다.


"... 너.. 혹시... 차이나냐?"

"... 뒷골목 쪽에서 웬 소란이 있다고 해서 와봤더니... 너였구나."


... 솔직히 말해서 차이나를 못 알아볼뻔했다. 내가 아는 그... 식탐은 더럽게 많고 색기 따윈 하나도 없는... 여자애가 저런...


"... 으억!"

"너 마음속으로 내 욕했지?! 하여간에 진짜..."


...아무튼 차이나한테 한 대 얻어맞았다. 안 그래도 아파죽겠는데 더 죽을 맛이었다.

"... 야 때리지 마. 나 지금 환자 거든? 다친 거 안 보이냐?"

"... 내 손잡아. 여기서 죽으면 한동안 골치 아파지니까."



그렇게 차이나는 다친 나를 해결사 사무소로 데려왔다. 불은 켜지지도 않아서 밤만큼은 아니지만 어두컴컴하고 공기는 살짝 눅눅하고 퀴퀴했다. 비가 와서 그런 것 같았다.

차이나는 나를 바닥에 철퍼덕 던져놓고 테이블 밑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너, 아까 머리카락도 다 젖었던데... 우선 머리부터 말려."


그렇게 수건을 던져주며 가져온 건 구급상자.


차이나 녀석의 말대로 머리카락을 풀었다. 3년 동안 길러온 머리카락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구나 하고 새삼스레 실감했다.



"... 웃옷 좀 벗어봐. 그래야 치료할 거 아니야."

"..."


...이건 좀 위험한데.


"... 뭘 빤히 쳐다보고 있어?! 빨리 벗어!! 다쳤으면서!!"


내숭 없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이야...


"아 알았다고... 그리고 골 울려... 조용히 말해.."


웃옷을 벗었다. 등과 어깨 쪽에 한 두 군데, 크게 베인 상처가 있었다. 꽤 상처가 크긴 하지만 금방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 이거 꿰매야 될 정도인가.."

"아니. 나 꿰매는 건 못해. 너, 양이지사잖아. 병원도 못 가면서... 그냥 이대로 붕대부터 감아. 치료는 나중에 하고." 


차이나는 표정에서 바로바로 감정이 드러났다. 말은 저렇게 해도 걱정하고 있었다.


"... 아야야 야.. 아프다고. 살살 좀 해."

"시끄러워!!! 이래야 피가 멎지!!!! 다치질 말든가!!"

"아 골 울린다니까..."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머리가 아파왔다. 감기라도 들면 안 되는데....


아픔을 뒤로하고 해결사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오랜만이었다. 3년 만이니까..

역시...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이 사무실도 변하였다.

먼지는 쌓여있고... 해결사 긴토키라는 간판은 떼어져 방치 중이었다.



"... 해결사... 그만뒀냐?"


차이나는 붕대를 감아주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더니 다시 붕대를 감아주며 말했다.


"... 몰라 나도.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 나보곤 뭐랬더라? 안경이랑 같이 형씨 기다린다고 했던 게 누구더라?"

"... 그중2병 안경이 먼저 그런 거야. 난 잘못 없어."

"하여간에..."



창문 밖을 바라보니 비는 계속해서 그칠 줄 몰랐다. 오히려 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일찍 돌아가기는 글렀다.


"...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에 있어야 될 것 같은데. 너 그 몸으로 나가면 상처 더 벌어져."


차이나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세 네시까지 돌아가면 괜찮겠지..



그나저나...


"차이나, 너 말 끝마다 해는 왜 안 붙이고 다니냐. 봉인 했..."

"시.. 시끄러워!!! 그것도 어.. 어쩌다 보니까!!"


오랜만에 만났는데, 차이나 나 골려 줄까~.


"하아- 내가 맞춰볼까? 안경이랑 싸우다가 안경이 넌 언제까지 말끝마다 해, 해를 붙이고 다닐 거냐. 지겹지도 않냐. 너야말로 중2병이야!!라면서 태클 걸었겠지. 내 말 맞지?"

"으으... 그만..."


"이야- 내가 정곡을 찔렀나 보네. 불쌍해서 어떡하냐 차이나- 이런 거에 약해서 상처받고."

"시...시끄러워 사디스트!!!!! 넌 어쩜 변한 게 없냐 해!!!!!! ..에?"


"오, 성공이다."


더 골려주고 싶지만, 더 이상은 무리.

어느새 붕대는 다 감아져 있었고 차이나는 내 옆에 앉았다.


".... 어휴. 이런 거에 넘어간 내가 바보였지. 예전에도... 타바스코...."


...방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와 얘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아무튼 너야말로, 신센구미... 그만뒀잖아. 고릴라, 체포됐다며?"

"... 몰라. 그 망할 고릴라.... 어쩌다 보니까 체포당했어."

"고릴라 때문에 그렇게 다친 거지? 암만 봐도 뻔하네."

"... 그러게 말이다."


창문을 바라봤다. 비는 아까보다 약해졌다. 한 두 시간 후면 그칠 것 같았다.

차이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긴쨩... 사라진지 벌써 3년째야."


역시나... 차이나는 여전히 형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 알고 있어."

"... 아까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 긴쨩...잘 지내고 있을까..."

"..."


차이나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해결사 형씨는 정말 나쁘다. 저 녀석은 3년 동안이나 형씨를 기다리고 있는데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난 형씨가 죽었다고 단정 짓진 않았지만, 벌써 3년이다. 이젠 나도 형씨가 정말 죽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 형씨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차이나 녀석과 안경... 밖에 없을 것이다.


"으으... 언젠간 돌아오겠지. 꼭 돌아온다고 약속했으니까... 긴쨩이 돌아오면, 먼저 두들겨 패야겠어. 나하고 안경을 3년 동안 괴롭힌 벌이다!!라면서..."


"... 나도 포함시켜라. 땡땡이쳐야 할 시간을 없애버린 벌이라고. 형씨 덕분에 한동안 잠 잘 시간도 줄어들고.."


차이나는 내 말을 듣고 눈을 감고 피식 웃어버렸다.

...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안 어울리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예쁘다.

예전부터 차이나는 말도 험하게 안 하고 입 만 다물면 꽤 귀여운 인상이었다.

... 입 만 다물면.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얼굴도 바뀌고.... 꽤 키도 커지고... 몸매도........ 



잠시만... 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신 차려 오키타 소고하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러자 차이나가 내 얼굴을 응시했다.

"... 너 얼굴 빨개..." 


"아... 더워... 덥다 더워..."


"아까 비를 너무 많이 맞았나.... 감기일 수도..."


"..."


"딱히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비... 지금 당장은 안 그칠 거 같은데, 한숨 자고 일어나. 잠깐 난 안경이랑 얘기 좀 해야 돼서... 가볼게." 

"... 가 보던가."


차이나는 해결사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나 혼자만이 빗소리만 들리는 이곳에서 앉아있다.

그 시끄럽지 않은 고요함 속에서 가만히 천장을 쳐다보았다.


"... 자고 일어나라니 무슨... 잠도 못 자겠네."



왠지, 비가 그치고 나서 제 갈 길을 가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차이나랑 어쩌다가 우연히 제대로 만난 것이었다.

막부 놈들을 그렇게 많이 처리했으니... 막부의 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 뻔하였다. 이러다간 또 3년 동안 못 볼 것만 같았다.

이거 뭐 원피스도 아니고.... 내 현상금이 또 올라갈 것 같다.


...될 대로 되라지.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을 단번에 끝내버리고 눈을 감았다.

안자는 것보단 낫겠지라고 생각하여, 히지카타의 시체를 열심히 셌다. 


히지카타 시체가 하나, 히지카타 시체가 둘, 히지카타 시체가 셋....


나는 그렇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잠에 빠져들었다.





 


-


 


 




뭔가 아까보다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눈은 감겨있지만, 햇살이 얼굴에 비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맞다 나 여기서 잠들었지.



계속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힘겹게 떴다. 눈이 살짝 부셨다.

몸이 뻐근했다.

아까보다 덜 축축하긴 하지만, 상처도 좀 나아진 것 같아서 벗었던 웃옷을 다시 입었다.


...차이나는 아직 안 온 건가.



비는 그쳐서 햇빛이 쨍쨍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함부로 밖을 나갈 순 없었다.

얌전히 여기서 기다려야겠다 마음먹고 머리를 다시 묶고 있을 때, 누군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아... 일어났네."


역시나 차이나였다.

차이나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무엇인가를 던져줬다.


"이거, 먹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딱히 배고파 보이는 건 아니지만..."


...다시마 초절임.


"웬일이냐. 네가 먹을 걸 다 주고... 근데 이거 냄새 꽤 독하..."

"먹기 싫으면 말던가. 내가 먹..."

"아 내놔... 누가 먹기 싫댔냐."


이렇게 말하고 다시 뺏었긴 했는데... 이거 진짜 냄새 구리다고 언젠가 해결사 형씨가 말해줬던 거 같은데...

그래도 배가 살짝 출출하긴 했다. 시간을 알고 싶었지만, 이미 시계는 멈춰져있어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점심을 좀 지난 것 같았다.

점심 겸 해서 먹지 뭐.


상자 입구를 뜯고 다시마 초절임 하나를 물었다.

... 되게... 맛이 진하긴 한데.... 


"... 구려... 너 이거 어떻게 먹어온 거냐? 와...."

"시.. 싫으면 내놔!!!! 이거 원래 내 거...!!"

"아, 냄새 구리긴 한데 맛은 괜찮아. 먹을 만 하다고... 근데 나도 너한테 이거 많이 줬었거든?"

"그게 많이 준거야? 한 두 번 준거 가지고 치사하게... 두 번 다 내 머리에 날린 거는 기억 못하나 보지?"

"야... 그게 언제 적이냐. 하여간에 뒤끝은 세 가지고... 아..."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차이나랑 유치하게 투다가 대는 건.

마치 3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뭐야? 왜 그래?"


"아니... 그냥. 뭐 됐고,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냐?"


"한.... 3시... 40분쯤 됐나..."


...세 네시까진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이거....


"... 아, 망했네. 늦었다."

"늦었다고? 너 빨리 가야 되는 거 아니야?"

"한 시간 정도는 늦어도 괜찮겠지 뭐..."

"... 마요라가 왜 담배만 계속 피우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 그러고 보니까 이번에도 늦었다간, 히지카타가 또 잔소리를 1시간 동안 넘게 할 것 같았다.

아... 가기 싫은데...

나가긴 싫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검을 챙겼다.


"이제.. 슬슬 가봐야지... 지금 밖에 막부 놈들 안 돌아다니냐?"

"없어. 한 두 시간 전까진 어슬렁 거렸는데... 포기하고 간 것 같아."


차이나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 역시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 야 차이나."

"왜."













"... 나 여태까지 살면서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 어?..."






 






하나.









"좋..."




"....에?"













둘.













"좋은 구경 했다."



".... 뭐?"






[system] 차이나는(은) 얼음이 되었다.







"아니, 아까 붕대 감아줄 때 너 비에 젖어있어서 그... 보였거든?"


"..."



"뭐 뭐 뭐... 뭐라는 거야!!!!!!!!! 변태!!!!!! 지... 진작 말해줬어야지!!!!!! 당장 나가!!!!!!"



"안 그래도 지금 나갈 건데-. 그럼 잘 있어라 차이나-."


"저 사디스트!!!!!!!"



차이나의 외침에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순식간에 계단을 내려오곤 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망했다.



"아... 결국 못 말했다."


그래도, 좋은 구경은 했네.

방금 전 차이나의 표정은 정말 볼 만 했다.

아까의 그 상황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 나 여태까지 살면서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 어?...'



차이나는 이 말을 듣곤 갑자기 흠칫거렸다.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좋...'


'....에?'


이 한 마디 밖에 안 했는데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건 기본이고...








차이나의 눈이 마치 '나 당황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 톤도 바뀌고....

내가 본격적으로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저러니 내가 계속 말할 수 있나....








뭐, 차이나 표정은 볼만했으니 만족했다.

나중에 만날 기회가 된다면... 아예 붙잡고 말해보지 뭐.









-


 


 


 


 


곤도 씨의 처형 시간이 다가왔다.


처형장 맞은편 상가 쪽에 숨어서 놈들이 틈을 보일 때를 노리고 있는데...

.... 차이나랑 웬 수상한 남자가 소란을 피우고 있다.


".. 저 남자 누군데 차이나가 안고 있냐..."


설마 애인..? 일리는 없겠고.


차이나... 해결사 해산했다고 했는데.... 재결성한 건가?

그렇다면 해결사가 왜 여기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거야... 저 녀석들도 곤도 씨가 목적인가...

.. 저 정신 나간 과학자 할아범이 목적일 수도.




그건 뭐 상관없고... 이 정도면 놈들이 모두 당황한 거 같은데.... 천천히 나가볼까...


천천히, 놈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몸을 움직였다.


많이 깊지 않은 강물에 들어갔다. 옷이 곧 물에 젖었고,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빠르지 않은 물살에 역행하여 처형장까지 걸어나갔다.

거의 가까이 왔을 때, 녀석들이 처형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렇겐 안되지.


나무 꼬챙이를 던져 곤도 씨를 처형시키려는 그 손을 관통시켰다. 나머지 나무 꼬챙이 하나는 입에 물었다. 

그리고, 도착.



"... 고마워 해결사."





차이나가 흠칫거렸다.


"너희가 주의를 끌어준 덕분에 쉽게 숨어들 수 있었어."


차가운 강물 속에서 빠져나왔다.

거치적스러운 삿갓을 벗어던지고 검을 뽑아들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처형수들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는..!!! 원래 신센구미 1번대 대장... 지금은 막부에 맞서는 극악한 흉수..!!!"


"살인자 오키타!!! 오키타 소고!!!!"



검을 빼들고 바로 달려들었다.

대기 타고 있었던 히지카타 씨와 신센구미, 그리고 카츠라 일파가 나타났고 순식간에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제 곤도 씨도 카츠라도 구출됐겠다... 적당히 이 녀석들만 해치우면 되겠네.


그나저나... 



쟤네 왜 싸우는 건데?




"방해하지 마!!!!"


"시끄러워!!!!"


"이봐, 너희 이 와중에 무슨 싸움이야!!!!"



...재결합한 거 맞아?

그보다 지금 저 할아범 죽을 거 같은데? 막아야 되는 거 아닌가 이거...




"할아범!!!! 위험해!!!!!"



아까 그 수상한 남자가 순식간에 할아범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 할아범 머리가... 떨어졌.....





"..."

"..."

"..."



모두들 당황했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도망치는 차이나와 안경...


"... 패스!!!!"


수상한 남자는 할아범의 떨어진 머리를 가지고 안경에게 던져버렸다.



"너희 탓이야. 이건 아무리 봐도 너희 탓이야!!!!!"



"웃기지 마!!!! 난 네가 칼에 맞을까 봐 도와준 거 뿐이야!!! 악의가 있던 건 카구라 너다!!"


그리고 안경은 차이나에게 패스.....



"무슨 소리야!!!! 공을 가로채려고 끼어든 네 탓이야!!! 공은 얼마든지 넘기마, 가져가 도둑놈아!!!!"



또 차이나는 수상한 남자한테 패스.....




".... 쟤네 뭐 하냐.."


"...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도, 히지카타 씨도, 모두들 싸우는 걸 멈추고 해결사 세명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폭발음과 함께 그 세 명의 다투는 소리도 묻혔다.









*





벌써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쏟아지는 비 덕분에 약간 쌀쌀했으며 공기는 우중충했다. 

곤도 씨와 카츠라 구출하기 작전이 끝난 뒤, 모두들 기쁨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하긴... 모두들 5년을 기다린 결과였다. 기뻐하는 게 당연하겠지.

나야 뭐, 술이야 좋아하니까. 가끔 이런 것도 좋다.


"우리 대장님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들 건배를 외치고 너도나도 술을 마셨다. 

나 또한 거품이 잔뜩 올라가있는 맥주를 한 입 마셨다.

약간 씁쓸한 맛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곤도 씨와 카츠라는 우리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정말, 너희에게 뭐라고 고맙다고.. 아니, 사과해야 할지.."

"우리가 없는 동안 고생 많았지?"


... 고생이고 뭐고 5년이나 기다렸습니다. 이 양반들아...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카츠라 일파랑 손을 잡을지 꿈에도 몰랐다.

5년 전만 해도, 그렇게 쫓아다녔던 카츠라였다.

이젠 적도 아니고 동료가 되어버려서... 여태까지 쫓았던 내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다시 적이 되어서 쫓아다니는 건 귀찮고..



"지금 우리는 하얀 함대... 슈퍼 마요 브라더스. '토시와 엘리'요."


"그렇지, 토시."


"앞으로 잘 부탁해, 엘리."



... 무엇보다 저 개밥을 먹는 두 명이 문제다.


"... 카츠라.."

"즈라라고 해."


"곤도..."

"고릴라라고 불러."


"우리가 손을 잡았으니, 이 썩어빠진 세상도 바꿀 수 있어!"

"그래, 함께 가자. 새로운 시대를 일구는 여행으로-."


... 방금 생각했던 거 취소. 저 고릴라랑 바보가 제일 심각하다.



"국장님, 카츠라 씨. 중요한 사람들을 잊고 계세요."


야마자키가 모두들 주목을 하라며 이번 작전의 MVP를 소개한다고 말했다.

...암만 봐도 뻔했다.


"과격 양이당, 해결사 여러분입니다! 모두들, 박수!!!"


해결사....

형씨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그 수상한 남자와 중2병 안경, 커다란 개, 그리고... 차이나.

코스프레 남은 야마자키를 발로 걷어차고 화를 내며 따지기 시작했다.


"MVP 좋아하시네!!! 네놈들 덕분에 우리도 범죄자 신세야!"


...과격하게 말하는 것도 형씨를 닮았다.

평범한 코스프레는 아닌 것 같았다. 수상했다.


곤도 씨는 고맙다며 해결사들에게 다가갔다.


"뭐... 풍문으로 해산했다더니, 재결성한 모양이군. 잘 됐어!!"


"그래서, 이 남자가 새로운 멤버인가?... 어쩐지 그 녀석과 닮은 흐리멍텅한 얼굴이군."


"... 긴토키 후임을 이런 놈이 맡는다고? 용서 못 해. 결사반대합니다."



히지카타 씨와 카츠라도 저 남자가 수상한지 다가가서 이리저리 살펴본다.

저 수상한 남자가 형씨의 후임...


진짜 이상한데.



검을 빼들어 남자의 목에 겨눴다. 



"어이, 너희들. 이력서는 제대로 확인해 본 거야? 형씨 후임은 사람 서넛 베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네가 뭐라고 끼어들어. 이 사기꾼 칼잡이!!"


내 말을 듣자마자 차이나와 안경은 한숨을 쉬곤 입을 열었다.


".. 착각하지 마, 나도 이런 녀석 인정한 적 없으니까."

"나도 누구랑 같이 해결사 할 생각 없어." 



...역시나.

하긴, 저 녀석들은 형씨를 5년 동안 기다려왔는데. 갑자기 저런 녀석이 형씨의 후임을 맡는다고 하면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됐..."



어라...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 건들지 말라는 소리 못 들었나?"

"... 신.. 신파치."


신파치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딱 봐도 곤도 씨가 신파치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았다. 곤도 씨는... 감옥에 있어서 아예 모르고 있었겠지.

나도 최근에 알았지만.



"... 오늘은 나도 그만 갈게. 마음이 내키면, 또 봐."


차이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한 번 슬쩍 보더니, 그 커다란 개와 함께 신파치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아직도 상처가 남은 모양이군..."

"모두가 변해도, 녀석들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파치하고 차이나에겐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다.

그 상처만큼은 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 무리도 아니지."




2년 전, 이맘때쯤에 만났던 차이나도 상처는 여전했는데- 





"우리의 대장은 돌아왔지만.."





형씨가 사라진지 5년이 지났다고 해도 그 상처가 아물어질리는 없었다.






"녀석들의 대장은 돌아올 수 없으니까..."








*






다들 술에 취해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오키타는 천천히 눈에 띄지 않게 밖으로 나갔다.

혹시나 해서 내려가봤더니 웬 익숙한 보랏빛 우산과 함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숨어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카구라였다.


오키타는 조용히 카구라 옆으로 다가갔다.


"... 여기서 뭐 하냐. 청승맞게."


"... 그냥."


카구라는 우산을 돌려 오키타를 바라봤다.

오키타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안경.. 안 따라가 봐도 되냐."

"... 몰라 그 녀석은. 타에 언니한테 갔으니까..."


카구라는 한숨을 쉬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속으로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야 차이나. 그 남자 누구냐. 진짜 형씨 후임..?"

"아... 나도 잘 몰라. 그 사람."

"...에."


오키타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초리로 카구라를 쳐다봤다.

카구라는 그 눈을 보고 또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모른다고 나도.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 왜 백저가 판치는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지. 왜 해결사를 재결성시켜버렸는지.... 다 모르겠어."

"..."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남자... 긴쨩을 닮았어. 인정하긴 싫지만..."


카구라는 눈을 감고 피식 웃었다. 오키타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 얼굴 안 닮았던데."

"내가 그걸 말했어?!! 얼굴이 아니라..!!! 후... 아무튼 닮았어. 내 느낌이 그래."

"... 그러냐."


비는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날의 장마였기에 어쩔 수 없지만 오늘따라 유독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차이나. 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잠시 들어가 있어도 되냐?"

"... 이걸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막나간다고 해야 할지...."

"이러다가 우산 안 씌어주는 누구 덕분에 여름 감기 걸릴 거 같다-. 으 추워..."


오키타는 교과서를 읽는 목소리로 으슬으슬 춥다며 헛기침까지 하기 시작했고, 카구라는 쯧, 하고 혀를 찼다. 


"... 딱히 걱정되는 건 아니지만... 들어오던가."


오키타는 옷에 있는 물기를 털어내고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우산 안으로 들어가자, 옆에 있는 사다하루가 오키타의 손을 할짝댔다. 오키타는 그런 사다하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차이나."

"... 왜."

"... 그... 코스프레남한테 관심 있냐?"

"... 뭐?"


그렇게 카구라와 오키타 사이에서 3초 정도 정적이 흘렀고, 오키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러니까. 아까 처형장에서도 그렇고... 형씨랑 닮았다고 하고..."

"내.. 내가 미쳤다고 그런 사람을 좋아해?!!! 내가 그렇게 눈이 낮은 줄 알아?!!!!!"


카구라는 얼굴이 빨개져서 횡설수설하게 오키타의 말에 맞섰다. 예상치도 못 했던 말에 당황한 것이었다.

오키타는 그런 카구라에게 지지 않았다.


"그럼 아까 처형장에서 코스프레 남은 왜 안은 건데? 아주 사이좋아 보이던데."


...안아? 카구라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 설마... 처형수의 칼을 뺏어서 즈라 하고 고릴라한테 다가갔던걸 막은 걸 안았... 다고..?




"그, 그건!!!! 어쩔 수 없던 거잖아!!! 하마터면 위험할뻔한 상황이..!!!!"

"호오- 그럼 형씨 닮았다고 한 건 뭔데. 너, 형씨 꽤 좋아하지 않았었냐."

"... 무, 무슨 그게 말도 안 되는 억지야!!!! 닮은 걸 닮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말해!!! 그리고 뭐? 내가 긴쨩을 좋아했다고?!!! 그게 말이 되냐 해!!!!!!!!!!"

"내 말이 틀렸어? 너 맨날 긴쨩긴쨩 거렸잖아. 나랑 만나면 하는 얘기가 어떻게 된 게 형씨 얘기밖에 없냐? 그게 좋아하는 거지."

"아아!!!! 답답해죽겠다!!!!!!!! 말이 안 통한다 해!!!!!!!!!"

"..."

"... 아."



카구라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말 끝마다 '해'를 붙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오키타의 장난에 놀아났다고 생각하여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어질어질함에 이어지는 창피함에 카구라는 오키타를 향해 있던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 야... 차이나.."

"..."


카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키타는 그런 카구라에 난감해했다.


"... 삐졌냐?"

"..."



카구라는 단단히 삐친 것이 분명했다.

오키타는 머리를 긁적 거리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 차이나."

"..."

".... 미안. 어쩌다 보니까... 말이 그렇게 됐어."

"... 너는 맨날 잘못하면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말해? 나가. 꼴도 보기도 싫어."


오키타는 카구라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화나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자신의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화가 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

"..."


정적이 흘렀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빗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정적을 깬 건 오키타였다.


"..."

"..야 차이나, 나 좀 봐봐."


오키타는 카구라의 어깨를 잡았다. 카구라는 오키타의 말에 못 이기는 듯 고개를 돌려 오키타를 바라봤다.

오키타의 검붉은 눈이 카구라의 바다를 닮은 푸른 눈빛을 담고 있었다.





"하아... 나 이런 말 못하는 거. 차이나, 너도 이제 알고 있지않냐."

"... 뭐?"



오키타는 그렇게 말을 멈추고 카구라를 바라봤다.








하나.



 


 


오키타는 멈췄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 너 형씨한테 연애 감정 없는 거 알아. 형씨 그리워서 계속 형씨 얘기한 것도 알고 있고."

"..."

"그러니까... 아오씨, 질투였다고"

"....에?"

"내 말 똑바로 들어. 어느 만화 누구처럼 못 들은 척 하지 말고."

"뭐... 뭐라는 거야."










둘.



















"좋아해."












-













차이나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빨개졌다.

...어라 생각보다 반응이 폭발적인...




"... 농..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이.. 이, 이렇게 해서 나 놀리면 재밌냐 해!!!"


"나 S인 거 까먹었냐? 는 그렇다 치고... 원래부터 이런 거에 눈치 없던 건 알고 있었지만.... 아, 진짜야. 농담 아니라고."


"..... 하, 하지만 너 나 싫어하지 않았냐 해???? 아니, 싫어한 건 아니라고 쳐도!!!! 이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차이나, 그러면 내가 왜 여태까지 너한테 왔겠냐?"


"..."



"난 싫어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괴롭혀주는데..... 예를 들자면, 히지카타라든가 마요라라든가 니코틴이라든가 개 밥 마니아라든가..."

"너도... 나 놀려먹지 않았냐 해...."


"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아무튼 난 너 안 싫어해."

"..."

"지금 사귀어 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이것만 알고 있어."

"..."


"... 네가 나보고 가랬으니까 난 간다-. 그럼..."

"... 잠.. 잠깐만."


...어 이건 예상 외인데...

차이나가 우산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 목도리를... 붙잡았.... 다?




"왜 차이.. 읍"

"..."






...어라....



....잠시만...

...








입술에....


... 뭔가....








"..."

"..."








...내 입술에... 붙어있는 거... 

차이..나... 입술.....?










"... 푸흡..... 야... 자, 잠시만....."

"... 시, 시끄럽다 해!!!!! 나가라 해!!!!!!!"

"..어? 어... 어라?"










뭐야 이거.

차이나가... 키...키스 했.....?












차이나는 나를 우산 밖으로 밀어 내보낸 뒤 내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하도록 아예 우산으로 앞을 막아버렸다.

난 그대로 비를 맞으면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정신 없이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었다.





"..."






이럴 줄은 몰랐다.

차이나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으슬으슬 추웠던 한기가 없어지고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하..."


웃음이 나왔다.



"하핫..."




머릿속에선 계속 그 상황만 되풀이되었다.

차이나 입술 은근 부드럽던데.....



"... 아 머리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내가 머리가 아픈 건 이 망할 비 때문이다-.라고 생각해도 계속 그 상황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기지로 돌아왔다. 

물기를 털고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야마자키가 나를 보곤 말을 건넸다.


"어? 오키타 대장? 어디갔다오셨.... 근데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갛..."


"조용히 해 야마자키. 분량도 적으면서 끼어드는 거 아니야."


"그,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아... 술... 마저 마셔야겠다."


"무시하고 있어... 나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



내 자리에 앉아서 술을 잔에 따랐다.

그리고 그대로 원샷-.



"... 하아-."



원래 살짝 써야 할 술이 오늘따라 달게 느껴졌다.

또다시 술을 잔에 따랐다.


"아-... 미치겠네."


술에 집중을 해도, 아까 그 상황이 계속 떠올랐다.

다시 술을 마시려는 순간- 형씨를 닮은 사람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 형씨?"




어라... 형씨라니.

나 술 취한 건가... 는 겨우 한 잔 마시고?...

아니면 차이나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 건가...



"... 아, 코스프레남이었지."



"쯧... 소고 넌 어디 갔다 온 거냐.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빨개? ... 취했냐?"


뭐야... 내 얼굴이 그렇게 빨간가... 보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말해...



"... 별거 아닙니다만. 술이나 먹고 술병으로 히지카타."


"너나 술 먹고 , 오키타."


아, 기분도 좋은데 술이나 더 마셔볼까?  히지카타도 엿 먹여볼까-.


"... 히지카타 씨. 오랜만에 주량 배틀하실래요?"

"뭐? 야, 너 주량 많은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나보고 지라는 거지 지금."


"헤에- 자신 없으신가 봐요. 저러니까 나이가 서른이 되도록 여자가 없지."


".... 뭐 인마? 야 당장 시작해. 누가 이기는지 한 번 보자 이 자식아."


아싸, 걸려들었다.

잘 가세요 부장님-.









날이 밝았다.


창문 사이로 빛이 새어들기 시작했다. 비는 그친 모양이다.


"아... 속 쓰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 히지카타 씨에겐 역시 이겨버렸지만.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아직까진 어제 그 상황만 생각하면 얼굴이 또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후... 정신 차리자 오키타 소고.



지금 보니까... 방 꼬락서니가 난리도 아니다. 대 여섯 명끼리 엎어져서 자고 있고.... 술병들은 잔뜩 굴러다니고 있지...

그보다 히지카타 씨는... 마요네즈랑 같이 자고 있고...


방안의 공기가 답답해 환기를 좀 시키려고 문을 열었다. 햇살은 따듯한데, 어젯밤에 왔던 비로 인해서 약간 쌀쌀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고개를 숙여서 옆쪽을 보니까... 웬 익숙한 고리... 아니, 남자가 서있었다.



"... 어, 곤도 씨?"


"아, 소고. 일어났구나."


...최근에 감옥에 갇혀있어서 영 몰골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딱 봐도 오늘 밤을 설친 것 같은 다크서클이며...

곤도 씨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오타에 씨 일... 알고 있었어?"

"뭐... 저도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곤도 씨는 그동안 갇혀있으셔서 모르셨을 테고..."

"어젯밤에, 오타 에씨... 보고 왔어."




"..."

"그 해결사 후임... 그 남자도 같이 있었는데, 말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 그 녀석이랑 닮았더라."

"... 그런가요."


차이나도 나에게 그랬었다. 코스프레 남이 형씨랑 닮았다고.

어쩌면... 내가 어젯밤에 헛것을 본 게 아닐지도.



"아무튼... 난 그 남자를 도와줄까 해."

"..."

"그 엔미인가 뭔가 하는 걸 찾아내서 오타에 씨를... 구할 방법을 찾을 거야."



어느새 히지카타 씨가 일어나서 나와 곤도 씨 옆으로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뭐.. 그 남자는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곤도 씨가 그렇다면 난 찬성이야."



나야 뭐... 원래부터 찬성이었지만...



"... 저도 찬성."


"좋아, 고맙다 토시, 소고. 너희들이 그렇다면 저 녀석들도 찬성해주겠지."



히지카타 씨는 그 말을 듣곤 엎어져서 자는 놈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나!!!!!! 이 자식들아!!!!!! ...소고 넌 어디 가냐?"


"바람 좀 쐬렵니다. ...화병으로 쓰러져서 히지카타."


"너나 쓰러져서 , 소고!!!!!!"



히지카타 씨가 외치는 소리를 귀로 막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어젯밤에 비가 왔던 하늘은 모두 개어서, 맑고 화창하였다.

약간 쌀쌀한 아침 바람과 함께 여름 내음이 불어왔다.







...기분 좋다.











*











햇살이 따뜻한 오후.

어제 그렇게 비를 쏟아내던 먹구름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맑은 햇살과 조각구름들이 하늘에 떠있을 뿐이다.


오키타는 길가를 걸어 다니면서 엔미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었다.


"엔미... 양이 전쟁 때 있었던 행성 파괴자... 너무 위험해서 어느새 모습을 감춰버린 녀석..."



계속 생각해보아도 답이 나질 않았다.

그 녀석이 왜 지구에 백저를 퍼트렸는지. 어떻게 퍼트렸는지. 형씨는 어떻게 백조가 퍼질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두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오키타는 골치 아픈 머리를 긁적이며 나무에 의해 그늘진 의자에 누워버렸다.

그렇게 잠시 낮잠이나 자볼까- 하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 너, 여기서 뭐 하냐 해."



카구라가 오키타에게 다가왔다.


"... 엔미 찾는 중."


"... 넌 뭘 찾을 때 누워서 눈을 감고 찾냐 해? 일어나라 해!!!!"


"아 거참... 시끄럽네. 일어나면.... 으으.. 되잖아."


오키타는 기지개를 편 뒤, 누워있는 걸 포기하고 의자에 앉아버렸다.

카구라를 쳐다보자, 어제 일이 머릿속에서 다시 상기되었다.


오키타는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그건 그렇고... 차이나, 내가 어제오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 뭐, 뭐냐 해."


"차이나, 대담했어. 난 그냥 말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대로 붙잡아서 입술 박치.."


"으아아아아!!!! 그만!!! 그만 말해라 해!!!!"


"아니, 네가 해놓고 왜 이렇..."


"시, 시끄러워!!!!!!!!!!!"




카구라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오키타의 말을 끊어버렸다.

오키타는 그런 카구라의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 푸흡..."


"... 시끄럽다 해. 우산으로 날려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라 해."


"알았어, 알았다고."



오키타는 카구라를 응시했다.

긴 생머리였던 머리를 다시 경단 머리로 바꾸고,

긴토키의 옷을 개수하여 입었던 옷을 다시 원래 입었던 차이나 드레스로 바꿨다.

말투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치 5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차이나 나 안경, 그리고 모두가 형씨가 사라지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형씨가 돌아온다고 해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코스프레 남... 덕분인가.

만약 그 남자가 없었다면...



"..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냐 해. 내가 그렇게 예쁘냐 해?"

".. 아, 뭐래...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하고 싶냐?"



오키타는 자신도 5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나 다시 가봐야 된다 해. 어이- 사디, 땡땡이치지 말고 빨리 엔미나 계속 찾아보라 해. 난 이만.."


"어, 어... 야 잠만.."


"... 어?"



오키타는 카구라에게 무엇인가를 던져줬다.

카구라는 이번엔 얼굴에 맞지 않고 두 손으로 받아냈다.


"... 넌 지겹지도 않냐 해? 맨날 다시마 초절임만 주고 있다 해. 사실 케이크가 더 맛있..."

"... 됐고 가버려."


"아무튼 내가 잘 먹어주겠다 해."


카구라는 발걸음을 돌려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마 초절임을 입에 하나 물고, 맑게 웃어 보였다.


"... 고맙다 해."



카구라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오키타는 다시 의자에 누워 눈을 감았다.


계속해서 그 미소가 생각났다.



"... 하여간에 웃기다니까... 차이나."




바람과 함께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햇살은 따듯하고 공기는 상쾌했다.


그렇게 오키타는 단잠에 빠져버렸다.

















"... 어라."




나 잠들었었나....



그렇다면... 방금 그 여자애는 뭐고...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웬 여자애랑 같이 있던 것 같았는데...


"... 꿈인가."




뭔 꿈이 왜 이렇게 생생해.

방금까지 그 여자애랑 같이 얘기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주변을 둘러봐도 그 여자애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 꿈인 건가."


".. 꿈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웬 캠코더.. 같은 게 머리인 녀석이 다가왔다.

뭐야 저거... 



"... 너 뭐야."


"저는, 시간 도둑. 모두를 구한 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서 15년을 기다려왔습니다.

이제.. 모두가 구할 수 있습니다. 제게 남은 데이터로."


"뭐..? 어라..?"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그리고 눈앞에서 영화의 필름처럼 내 기억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히지카타... 곤도 씨... 미츠바 누님...


뭔가 잊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누군가가 더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장면들.


... 그 여자애가 있었다.


여자애와 처음 보는 안경과 커다란 개 한 마리... 그리고... 은발의 남자.



"... 해결사..."


"... 잊히지 않았어요. 모두들 추억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그 사람만큼은 잊히지 않았어요."



"이젠 우리가 그 사람을 구할 차례에요."




















*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감싸고 있다.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있다.


15년 전의... 양이 전쟁이다.



...그런 건가. 그 캠코더 녀석이 이곳으로 날려보낸 것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이나... 안경... 곤도 씨... 히지카타 씨...


그리고 형씨가 있었다.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안경도, 형씨도.... 차이나도.





"저런 저런, 시공을 넘어서까지 공무 수행이라니... 좋다, 모든 게 끝나 미래가 바뀌어도 이 인연을 잊지 않으면 오랏줄이든 뭐든 받아주지."







하지만, 이젠 잊지 않는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과거가 바뀌더라도 미래가 바뀌더라도.


잊지 않는다.







"잊지 않아. 잊고 싶어도 말이야."







"그래 지옥의 끝이든, 시공의 끝이든.."








"반드시 너희를 찾아 주마!!!!!"







모두와 함께 적들을 향해서 달려나갔다.


하나씩 하나씩,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위에서 누군가 내 머리를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어...?"



차이나였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놈을, 차이나는 내 머리를 누르면서 발로 차 대신 처리하였다.

차이나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마치 그 푸른 바다를 닮은 눈이 나를 이끄는 듯했고,



갑자기 또 눈앞이 새하얘졌다.













"..."



"... 어이, 소고. 일어나."



...어디서 히지카타 목소리가 들린다. ...기분 탓이겠지.




"..."


"... 누가 업무시간에 낮잠 자랬냐? 빨리 안 일어나냐?!!!!"


"...에...?"



시끄러운 소리에 아이 마스크를 벗었다.


... 뭐야 이거.

눈앞에 보이는 장소가 전쟁터가 아니었다.



"... 히지카타 씨. 여긴 어디..."

".. 하? 뭐라는 거야? 당연히 둔소..."

"... 뭐지. 방금... 꿈.. 이였나.."


...꿈 치곤... 너무 생생했는데? 그게 꿈..? 



"... 너 잠도 정도껏 자라. 꿈하고 현실을 구분을 못하니.."

"... 진짜 이거 꿈이랑 현실이랑 혼동 가는데... 만약 꿈이면, 히지카타 씨 담배 모두 불태워버려도 상관없겠네요?"

"뭐... 뭐라는 거야. 아무튼 계속 잠 오면, 순찰이라도 좀 나가라. 하여간에 빠져가지고..."


아... 뭐야 진짜... 머리 아파 죽겠네...

그보다, 차이나가 꿈에 나왔던 거 같은데... 저 망할 히지카타 때문에 꿈에서 깼잖아...



"... 히지카타 씨. 피곤하실 텐데 제가 영원히 잠 오게 해줄까요?"


"뭐?"



옆에 있던 바주카포로 히지카타를 향해서 쏘고, 현장에서 빠르게 도망쳤다.

폭발음과 함께 "소고!!!!!!!!!!!!!"하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니까 꿈속에서... 차이나가 나온 건 확실하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꿈에서 내가 차이나한테 고백... 한 거 같은데... 

내가... 왜 그런 짓을... 


뭐... 꿈이니까 상관없으려나...


꿈이었다면 어차피 깰 거, 해보고 싶은 거 이것저것 해볼 걸 그랬다.


하지만, 계속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다.

꿈속에서 차이나가... 웃어준 거 같은데... 왜 그게 생각이 안 나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머리도 복잡한데 잊어버릴까....



그렇게 그 기묘한 꿈에 대해서 생각하며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강변가였다.

그리고... 잔디밭에 앉아있는 저 여자애는...





"...에."


"... 어? 난 또 누군가 했더니... 사디스트였냐 해? 뭘 그렇게 쳐다보냐 해. 불만 있냐 해?"



차이나였다.



... 저렇게 입도 험하고 식탐 끝내주고 색기 따윈 하나도 없는 애가... 5년 후면 그렇게 된다고..?



"... 역시 꿈은 꿈인 거... 으억!!"



".. 너, 방금 마음속으로 내 욕했지?!!!!!! 표정에서 다 보인다 해!!!!!"

"... 아... 아파. 망할 차이나... 그렇다고 먼저 때리는 게 어디 있냐?"

"긴쨩이 당한 만큼 갚아주라고 했다 해. 난 잘못 없다 해."

".. 아오 이게 진짜..."


"내가 마음 씀씀이가 좋은 거니까, 이거나 먹어라 해!!!!!"


"... 아."


...차이나가 내 얼굴을 향해서 무엇인가를 던져 맞췄다.

그것도 정통으로...



".. 푸하하하!!! 쌤통이다 해!!!"


"아, 뭘 던졌길래 왜 이리 아파.... 어.. 이건?"


"다시마 초절임이다 해.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특별히 주는 거니까 감사히 여겨라 해. 그럼 난 가보겠다 해~."




차이나는 나에게 방긋- 미소를 짓곤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먼저 가버렸다.




"..." 



... 차이나... 내 앞에서 저렇게 웃는 거... 거의 처음인데....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 아 더워..."



순간 오늘 꿨던 꿈 중에서 잊어버렸던 꿈이 하나 생각났다.



'... 넌 지겹지도 않냐 해? 맨날 다시마 초절임만 주고 있다 해. 사실 케이크가 더 맛있...'

'... 됐고 가버려.'

'아무튼 내가 잘 먹어주겠다 해.'





'... 고맙다 해.'






어쩌면 그 꿈은... 사실 일지도 모른다.



그 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과거가 바뀌더라도 미래가 바뀌더라도.


잊지 않는다.






"... 너무 덥잖아."






차이나가 던져주고 간 다시마 초절임을 바라봤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세상은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날개


[마나오노] 날개





 - 울지마, 울지마, 울지 말라고!!!!!!!! 






가히 절규에 가까운 외침.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영역표시라도 해둔 것 마냥 망가지고 부서진 잔해들만이 숨을 죽이고 있다. 특히 눈은 떠 있지만, 이성은 잠들어 있는. 마치 지금 같은 상황. 




귀를 막고 머리를 쥐어 잡은 채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른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태로운 걸음으로 다시 온 방 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스스로 목을 졸라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어 숨이 가빠왔다.  





그의 곱디고운 목소리는 다 쉬어버렸지만 개의치 않고 재차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여태 자신이 울부짖었던 것을 전부 잊어버렸다는 듯이. 









" 어디 있어… 사카미치… 어디있냐고!!!!!!!!!!! "








마나미군. 나는 항상 곁에 있어.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볼을 타고 굳게 닫힌 입술 위에 닿은 눈물이 쉼 없이 흐른다. 발등 위에 떨어져 퍼지는 눈물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여기 있어… 나… 





" 마나미군…. "









마나미의 악에 받친 아우성이 귓가에 맴돌며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은 반응하고 있지만, 몸은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에 부쳐 고개를 무릎 사이에 처박았다.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찰나에 제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감싸 안았다.








" 사카미치군! 아직 자는 거야? "








맑고, 밝아. 내가 아는 마나미군. 




덜덜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감는다. 그 아득한 시선의 끝에는 새하얀 깃털이 내려앉아 있었다. 










여름, 그리고 봄


[ 미사와 ] 여름, 그리고 봄 





[ 미사와 ] 여름, 그리고 봄 




경쾌하게 울려 퍼지던 미트 소리, 공이 미트 안으로 들어오던 감각 흙과 운동화 바닥이 닿아 생기던 소음과 열심히 뛴 탓인지 불규칙하게 내쉬던 숨소리 그리고 항상 내 

앞에 서 밝게 웃으며 공을 던져주던 너. 모든 게 단 한 번의 시합으로 끝나버렸다. 그 한 시합으로 인해 너와 함께 배터리를 짜 야구를 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간들을 잃게 

되었고 나의 마지막 여름도 끝나버렸다.






" 어이, 사와무라 연습 잘하고 있냐 "


" 알면서 물어보는검까? 당연한 거지만 선배가 없으니까 더 잘되고 있슴다- " 


" 에이, 섭섭하게 이렇게 물어보면 거짓말이라도 외롭다고 해야지 " 


" 윽. 선배한테 그런 말 하게 될날은 죽어도 없슴다! " 






능글거리게 웃으며 너에게 다가가, 툭 치며 자연스럽게 '연습'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1학년 때 와는 다르게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너를 보며 새삼,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느껴졌고 다시 한번 이게 마지막 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제 와서 후회할 생각은 없었고 고등학교에 들어온 후 제일 야구를 열심히 했을때가 언제냐, 

라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3학년이 된 후의 1년간 이라고 대답할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후회는 없다. 다만 ….



이상한 소리를 내며 말하는 너를 보며 살짝 웃곤,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너의 등을 친후 천천히 입을 열어 대화를 이어간다.






" 나 간다고 울지나 말아라 "


" 안 울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졸업식, 얼마 남지 않았네요. " 


" 이제 나 가는거 실감나냐 "






이제야 실감 나냐는 나의 말에 사와무라는 조금 고개를 숙인 후 손으로 머리를 살짝 긁으며 얼버무리듯 소리 내어 웃었다, 그 후 조금 숙인 고개를 다시 들어 늘 나의 미트를 

보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공을 던졌던 그 눈으로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 답지 않은 단호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 졸업식 날 뵙겠슴다. '라고 내게 말한 다음 사와무라는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뒤돌아 뛰어갔다. 사와무라의 단호한 말에 놀라 벙 쪄있기도 잠시, 언제 날 발견한 것인지 몰려오는 야구부원들 덕분에 나를 당황하게 했던 

사와무라의 모습은 금세 잊혀졌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오늘까지 난 사와무라를 만난적이 없었다, 만난적이 없었다. 라고 해도 내가 만나러 가지 않았을 뿐이고 사와무라도 날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다. 의외로

졸업식까지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마침내 오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에도 오지 않는 사와무라를 떠올리며 섭섭하다, 라던지 울컥하는 감정도 

있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선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를 본다면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여러 생각을 마친후 등을 돌리고 첫걸음을  내디뎠다.  ' … 좋아했었어 ' ‥입 밖으론 절대 꺼낼 수 없는 말을 억지로 집어삼키면서.






" 미, 미유키 카즈야!!! "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설마, 그럴리가 없지 여태까지 안 나타나던 녀석인데 라고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떼 앞으로 걸어갔을 때 다시 한번 들리는 자신의 이름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을 본다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웃고 지나가겠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깜짝 놀랐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감출수 없었다. 

쿵쾅대며 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 사와무라를 봤을 때 사와무라는 울고 있었다.






" …선배라는 호칭은 어디다가 팔아먹고 안 운다고 했으면서 울고있냐 "


" 으으, 안울고있슴다! "


" 그럼 지금 네 눈에서 떨어지는 건 뭐야 " 


" 콧물임다! "






자신이 우는 걸 부정하며 콧물이라고 말하는 너를 보며 소리내어 한번 웃곤 너에게 다가가 눈물로 가득찬 너의 눈을 손가락으로 닦은 후 졸업식 때 안오고 왜 지금 왔냐고 

물어보니 우물쭈물 거리며 작게 웅얼거리는 너를 한번 쳐다보고 조금 재촉하자 '‥ㄷ, 둘만 있을때가 좋을 것 같아서!' 라는 말을 한 후 점점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여버린 너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며 손을 들어올려 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둘만 있을때가 좋을것 같았다는건 어지간히 중요한건가 보다? "






너를 향해 한번 웃어준뒤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네가 말하길 기다리자 얼마지나지 않아 너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 읏, 선배 … 좋아함다! 이건 꼭 말하고 싶었슴다. "


" 어‥? "


" 놀리시는검까? "


" 아니, 내가 말을 잘못들은건가 싶어서 나를, 좋아한다고? "


" 네, 딱히 대답을 원하고 말한ㄱ‥, 선배? "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고 나도 모르게 끌어안아버렸다. 고등학교에서의 야구를 이제 와서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지 못했던 게 계속 

아쉬울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린것이다, 귀여운 후배의 말 한마디로 인해서. 사와무라를 껴안은 손에 더욱더 힘을 줘 꽈악 끌어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와무라는 나의 등을 숨막히다는 듯이 툭툭쳤고 그제야 손에 줬던 힘을 풀어 사와무라에게서 물러났다.

 





" 하아, 선배 숨막히잖슴ㄲ! " 






쪽 - , 살짝 민망하기도 한 소리가 울려 퍼진 후 너와 살며시 겹쳐진 입술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곤 서서히 너에게서 멀어져 너의 표정을 보니, 얼굴이 상당히 붉어져 있었고

놀랐는지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크게 떠져있었다. 너의 그런 모습에 흘러가듯 웃어주곤 다시 너를 품에 끌어 안았다. 







" ?!, 선배? 뭐하는검까! " 


" 대답, 딱히 들으려고 한건 아니라고 했지? "


" 하아? 갑자기 무슨 소릴- "


" …나도 좋아해 "


" 에, 에?! 선배 진심임까? "






' 이런 상황에서까지 거짓말 하진 않아, 좋아해 ' ,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와무라는 부끄러운지 내 어깨에 고개를 뭍었고 나는 그런 사와무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

조금 밀어낸 후 사와무라와 눈을 맞췄다. 아직 부끄러운지 얼굴을 돌리며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너의 얼굴을 손으로 잡고 제대로 나와 마주보게 한 후 다시 한번 말했다. 

 







" 좋아해 "




후회


[미유사와] 후회





ㅡ 쉿, 조용히 해야지? 밖에서 다 들으면 어떡해.


사와무라는 자신의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말 잘 듣네. 예쁘다. 곧이곧대로 말을 들은 건지 남이 듣는 게 무서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때, 그렇지? 우는 소릴 못 듣는 건 좀 아쉽지만 그것도 아무렴, 이런 얼굴은 나만 볼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아니야?


사와무라, 함부로 몸 굴리는 거 아니지?

어라. 여기, 어쩐지 조금 헐렁해진 것 같아?



*



이곳은 작년도 올해도 사람이 많다. 아마 내년에도 많겠지. 그리고 똑같은 노력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마운드에 오르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달리고, 먹고, 잠을 잤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처음 내가 포수를 지망했을 때부터 흥미를 가지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재미있는 투수'. 남들이 어떤 식으로 나불대든 투수를 내 주문대로 던지게 만드는 것은 재미있었다. 존경하던 크리스 선배를 따라 이 학교에 진학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서, 수비의 중심으로서, 미트를 손에 쥐고 앉아 파트너의 공을 받는다. 그 외의 것들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도 편애하지 않았다. 나와 경쟁하는 포수든, 나를 즐겁게 하는 투수든 마운드 위에서나 불펜 안이 아니라면 따로 신경 쓰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과 깊은 관계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흥미를 가지는 것은 '야구' 뿐이었다. 

하지만 사와무라는 나에게 처음부터 조금 달리 다가왔다. 첫 학년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때쯤, 아이는 내게도 후배들이 생긴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그 전에도 레이와 학교를 구경하러 오는 선수들은 꽤 있었다. 훈련을 하느라 바빠서, 혹은 곧 은퇴할 선배들의 자리를 채울 사람이라는 사실이 어색해 부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사와무라가 견학을 왔을 때도 쭉 그랬던 것처럼 신경 쓰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녀석은 무섭지도 않은지 자신의 두 배는 돼 보이는 덩치를 가진 선배에게 빽빽 소리를 쳐댔다. 얼마나 잘 던지기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처음의 다짐과 달리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으며 내가 공을 잡겠노라 나섰다.



탕 ㅡ!


미트에 공이 빨려 들어가고,



구속도 별로, 컨트롤도 엉망.

큰 소리 친 것치곤 뽀록이 심하네.



그렇지만 재미있어질 거야.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 마지막 대회가 끝, 선배들은 은퇴, 후배들이 들어왔고 바로 1군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경쟁을 시작했다. 주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빼앗기 위한 싸움 역시 시작됐다. 여러 가지가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하나 뚜렷하게 바뀐 것이 있다면. 미트, 배트, 투수, 타자, 주자, 그리고 수비수들……. 야구로 가득 차있던 나의 눈에 한 가지가 더 차올랐다.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선수로서의 누군가가 아닌, 사람 그 자체에 마음이 끌렸다.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시끄러웠다. 희비가 교차하는 마운드, 그곳은 꿈을 이뤄주는 곳, 또한 모래먼지와 땀, 꿈을 놓친 이의 눈물로 가득차 불쾌하다 느껴질 수도 있는 곳이다. 그 위에서 사와무라는 상쾌하리만큼 밝은 목소리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소리쳤다. 나를 봐주세요, 온 몸으로 내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내 두 눈은 그런 사와무라를 좇았다. 곧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진 건지 깨닫는 건 쉬웠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걸까', '앞으로 녀석을 어떻게 대하지?' 내내 고민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쭉 녀석을 지켜보고 있자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존경했던.


사와무라가 처음부터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싫어했다. '죽은 눈을 했다'면서. 그가 야구를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난 녀석이 그에 대해 심한 말을 했을 때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녀석과 어색해졌고, 그 사이, 그와 사와무라는 가까워졌다.



*



처음부터 거칠게 안을 생각은 없었다.


처음은 1학년들이 들어오고 처음 있던 합숙, ‘1군은 이런 곳이구나’ 하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여름 합숙 때 그 녀석의 방에서.

강도가 높은 합숙에 나도 익숙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선배니까, 녀석은 이런 합숙이 처음일 테니, 가서 조금만 더 견디라고 말해주려고 했다. 주제 넘는 행동인가 싶었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방에 쳐들어온 통학파들과 아예 정모를 하려는 건지 여러 가지 과자들을 펼쳐놓고 게임을 하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대피라도 하자, 그런 핑계로 사와무라를 찾아갔었다. 갑자기 다정하시네요? 놀란 듯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었다. 그리곤 무슨 생각이었는지 대뜸 아이를 끌어안고,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녀석의 허리를 껴안은 채 이마를 목덜미에 처박고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지껄였다. 사와무라는 당황한 듯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난 그 행동에 화가 나서.


ㅡ 크리스 선배가 아니라서 싫은 거야?


강제로.



*



"으, 흑……. 그만……."

"조용히 하랬지."


바르작거리는 팔을 잡고 구멍 근처를 누비던 손가락을 찔러 넣으니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눈을 질끈 감는다. 동시에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이불을 적신다. 마주치던 사나운 눈이 사라지니 내 존재까지 거부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거북했다.


"눈 떠, 사와무라."

"흣, 아아. 아파……."

"눈 뜨고 날 봐."


ㅡ 널 안고 있는 게 누군지 정확히 봐. 난 그가 아니야. 날 보고, 내 이름을 불러.


여전히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들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왜 울어? 내가 그렇게 싫어? 크리스가 아니라서 그래? 너도 알잖아. 그는 이런 네 모습을 보면, 도망가 버리고 말 거야. 더럽다고. 이렇게 울다가도 깊숙이 넣어주면 곧 좋다고 신음을 뱉고, 내 목덜미를 핥고, 물고, 내 등에 자국을 내. 발정기의 고양이처럼 온 몸을 꼬아대면서 절정에 닿아……. 이름을 부르지.


ㅡ 크리스 선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끝없이 불쾌해져서.


안을 지분대는 손가락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신음이 커졌다. 기분 나쁘다는 듯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구멍 안쪽은 그와 반대로 손가락이 좋아죽겠다는 듯 더욱 더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와 달라며 달라붙었다. 손가락을 세워 익숙한 곳을 긁어내자니 허리를 비틀며 신음한다.


"응, 아! 진, 짜 그만……!"


울먹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손목을 움직였다. 흐읏, 응, 으…. 아, 파……. 사와무라는 허리에 힘을 들인 채로 자신의 안을 휘젓는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눈을 떠 나를 쳐다봤다.


그만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 팔을 잡은 팔을 반대 손으로 잡아 녀석을 뒤집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기에, 머리채를 잡아 침대에 처박았다. 서러운 듯이 흐느낀다. 네가 뭐가 그렇게 슬프고 아픈지.

몸 아래에 손을 넣어 배를 들어 올려 억지로 자세를 잡아주었다. 상체를 기울여 사와무라의 몸에 체중을 실었다. 무거운 듯 바르작거리는 몸을 못 본 체하며 좁은 구멍으로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 아래가 뻐근하다 못해 심장이 답답할 정도로 쾌감이 올랐다. 얼굴을 확인할 순 없지만 대충 어떤 표정인지 상상이 간다. 아파서 인상을 쓰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발갛게 들떠 올라있을 것이다. 아, 얼굴을 떠올리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흥분으로 열이 오른 몸에서 땀이 뚝뚝 흘렀다. 잘 빠진 등에 입술을 묻어 자국을 남기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뜨겁고 질척했다. 언제나 같아. 사와무라의 표정도, 울음도, 몸도 나를 달아오르게 하지만 똑같이 나를 받아들이는 이 느낌에 더욱 더 흥분해서, 녀석을 배려해 천천히 움직이겠다는 다짐은 항상 잊어버리고 만다.

넌 날 미워하겠지만, 네 몸은 나를 원해. 이런 생각이 들어서.


"흐, 으, 아파……."


미워하지 마.



*



아이를 잔뜩 괴롭힌 다음 날은 항상 사과를 하려했다. 하지만 사와무라는 나를 피했고, 그의 옆에 서서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경멸, 두려움, 역겨움……. 그리고, 동정일까.

녀석을 범한 다음 날엔, 항상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 있었다.


나는 녀석의 몸을 가졌지만 마음은 가지지 못했다. 여전히 사와무라는 그를 바라보고. 나는 여전히.


世界(세계)


[백카네키X흑카네키]世界(세계) (자공자수)





이것은 꿈인가, 환상인가

지금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새하얗디 새하얀 그런 공간 속에 홀로 서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이 공간만큼이나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그 하얀 머리카락 아래로는 새까만 가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한 남자가 서있다.

나는 어째서인지 점점 다리의 힘이 풀려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던 그는 서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눈앞까지 다다른 그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기다리고 있었어, 카네기 켄"


나는 그를 만난 기억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도대체 이건, 이건 뭘까?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래, 꿈이겠지. 꿈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는 나의 두 손목을 움켜잡아왔다. 그에게 움켜쥐어진 손목이 아팠다. 아픔. 아픔이 느껴졌다. 나는 그 고통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았다. 

내 눈앞에는 변함없이 하얀 머리카락의 가면을 쓰고 있는 그가 보였다.



"아직도 꿈인 것 같아?"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의 하얀 머리카락 아래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신은 도대체..."

 



당신은누구지?여긴어디지?어떻게내이름을알고있지?어떻게내생각을모두꿰뚫어보는거지?




수십 가지의 의문들이 나의 머릿속에 어지럽혀졌다. 또 그 의문들은 내 목구멍에까지 꾸역꾸역 차올랐다. 그러나 나는 말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같이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손이 떨려왔다. 멈추지 않는 나의 손떨림이 그에게도 전해진 듯 그는 움켜잡았던 나의 손목을 끌어 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놓은 뒤 나에게 다시 말했다.





"이제 그만 너를 마주할 시간이야"





그의 말 한마디에 새하얗던 이 공간은 나의 머리카락 색처럼 새까만,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새하얀 우유에 검은 잉크라도 탄 것처럼 서서히 퍼져 결국 완전한 칠흑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펼쳐진 것은 기다랗고 기다란 필름들

그 속에 비춰지고 있는 것은




"...이것들은...전부...나..?어째서..?"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습들

나에게 존재를 드러낸 내 인생의 필름들은 나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지? 내 스스로가 나에게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시곗바늘은 돌고 돈다.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이 세계도 그렇다. 이 세계는 돌고 돈다. 또한 쉴 틈 없이 움직인다. 누군가가 지쳐 쓰러져도, 뒹굴어도, 도. 이 세계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 낙오된 자는 영원히 아웃이다. 이 세상은 낙오자를 구원해주고 기다려줄 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

나는 그것을 철이 들기 전 무렵부터 알게 되었으며 그렇기에 나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에 발을 맞추며 살아왔다.

어릴 적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모두 돌아가시고 나는 혼자 남았다. 나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 빛이었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그 빛을 잃어버린 나는 아마 그때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지만 어떻게든 혼자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빛을 갈망했다.




문득, 내가 보아왔던 만화들 속 주인공들의 대사가 생각났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난 할 수 있어'

어릴 땐 무심코 그저 동경하면서 보았던 주인공들이 막상 절망을 맛보게 되자마자 만화는 그저 만화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지만 나는 내 인생을 주인공으로서 행복하게 이끌만한 힘도 그런 의지도 없었다.

또 주위엔, 친구라는 이름 아래 모두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에 의해 얽혀진 관계들뿐 이였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쓴 채 연기를 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철저히 감추고 사탕 발린 말들을 꺼내놓으며 서로를 속이고 속였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땠지?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고 속였다고 나는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고 싶은가?

정작 나는 어떻게 행동해왔지? 사실 나도 그 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넌 나를 속여왔잖아?"



그는 또 나의 모든 생각들을 읽은 듯 말해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처음부터 쓰고 있던 그 단단해 보이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아, 드디어 그 단단한 가면 아래 꽁꽁 숨겨져 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은 꼭, 나를 꼭 닮아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나는 그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그가 나의 이름을 알고 있고, 나의 생각을 무섭도록 완벽히 꿰뚫어볼 수 있었는지

그는 철저히 가리고 있던 그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두껍고 단단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그 가면을 쓰고 철저히 속여왔던 대상이

바로 나

그였다는 것을



나는 실소했다. 그리고 떨림은 멈추었고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




"이제야 나를 알겠어?"



"그래요,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어요. 그래서 너라는 존재와 만난 거겠지."



"그래, 난 너고, 넌 나야 우리는 다르지만 결국 같지


난 이 세계가 싫어

이 세상도 싫어,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워


너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떨궜다. 콧잔등이, 눈시울이 참을 수 없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나를 속이며 살아왔던 걸까?



난 외로워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워


사실 나는 겁쟁이야


나는 강하지 않아


아버지, 어머니 왜 저만 남겨두고 가셨나요?


나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




지금껏 참아왔던 나의 진정한 본심이 그의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그는 그런 나의 팔을 다시 끌어당겼다. 더 이상 서있을 수 없던 나는 쓰러졌고 그는 나의 옆에 주저앉는 듯했다.

그리고 나의 두 눈 위에 차갑지 차가운 손 하나가 올라와 나의 두 눈을 식혀주고 있음을 느꼈다.



"너는 지금까지 너무 쉴 틈 없이 달렸다고 생각해.

그리고 넌 지쳐버렸지"



난 그 말 그대로 정말로 지쳐버렸다. 더 이상 일어날 힘도 달릴 힘도 없었다.



".. 이제 그만 나는..."


"나는?"


"쉬고 싶어"



드디어 나는 나와 진정으로 마주했다.

감아버렸던 두 눈이 뜨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두 눈 위 차가운 손의 감각도 어느새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새하얀 머리의 그였던 나는 이제 내 안으로 사라진 걸까.넌 나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미안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몸이 점점 나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미 이 세계에서 낙오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난 그걸 깨닫지 못한 채 우스운 발버둥을 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난 이미 이 세계에서 아웃이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은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이미 아웃인 나는 그 세계의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쫓아다녔던 걸까

그것은 그저 미련이고 집착이었음이 분명했다. 나도 참 나에게 잔인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인 나는 지금 이 세계에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그런 나는 지금 그 어떤 순간보다도 행복하다.






시곗바늘은 돌고 돈다.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이 세계도 그렇다. 이 세계는 돌고 돈다. 또한 쉴 틈 없이 움직인다.

누군가가 지쳐 쓰러져도, 뒹굴어도, 


도. 


이 세계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흐를 것이다.





백일몽 (白日夢)


[아키히토X미라이] 백일몽 (白日夢)




* 글을 읽기 전에



- 이 글은 수위가 없으며 커플링의 종류는 NL입니다.

- 본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경계의 저편’의 ‘칸바라 아키히토’, ‘쿠리야마 미라이’이며 번외에는 ‘타마코 마켓’, ‘타마코 러브 스토리’의 ‘오지 모치조’, ‘키타시라카와 타마코’가 등장합니다.

- 글의 설정은 애니메이션 ‘경계의 저편’, ‘타마코 마켓’, 영화 ‘타마코 러브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다른 설정들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설정을 참고한 작품에 관한 스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 관련 등)

- 세 작품은 제작사만 같을 뿐, 실제로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 글에 사용된 sns는 T로 시작하는 sns를 참고하였으며, sns 부분은 밑에서 위로 읽으시면 됩니다. 또한, 실제로 계정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 백일몽 (白日夢)

- 한낮에 꾸는 꿈.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1.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 닝블리(@ani_love_instiz_love)님의 메시지

「@Mirai_K 졸려. 잘래. 너도 이만 자. AM 01:15:38」


- 닝블리(@ani_love_instiz_love)님의 메시지

「@Mirai_K 혹시 모르잖아. 그 소리 듣고 좋아서 널 안아줄 지도. AM 01:14:49」


- 닝블리(@ani_love_instiz_love)님의 메시지

「@Mirai_K 가끔은 네가 먼저 좋아한다고 해봐. AM 01:14:04」


- 칸바라 아키히토(@Akihito_K)님의 메시지

「@Mirai_K 쿠리야마, 자? AM 01:12:25」







「@ani_love_instiz_love 앗! 자지ㅁ」







새벽까지 대화를 하던 sns 친구가 진짜로 자러 갔는지 더 이상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얼굴도 잘 모르고, 뭘 하는 지도 모르는, 단순한 sns상의 친구일 뿐이지만 이 친구는 나에게 다양한 조언들을 해주는 편이었다. 어쩌다 보니 남자친구 얘기가 나왔길래, 조심스럽게 이 친구에게 선배에 대한 걸 털어놓았었다. 남자친구인 듯, 남자친구 아닌, 남자친구 같은 선배가 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선배는 내가 좋다고 가끔씩 말해주는데, 나는 아직 그 말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고. sns 친구의 답장은 의외로 간단했다. 선배보다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보는 것. 직설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게 가장 어렵다고.”







한숨을 쉬며 sns 친구에게 보내려 했던 메시지를 지우고 다른 메시 왔는지 확인하는데 선배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메시지 왔었구나.”







얼마 전, 같이 밥을 먹을 때 선배가 물었었다. 네가 하는 sns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선배. sns 하실 건가요?’

‘네가 가끔씩 한다고 해서. 궁금해 가지고.’

‘의외네요. 선배는 이런 거 안 하실 줄 알았는데.’

‘그냥.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의 쿠리야마는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불 불쾌해요!’







불쾌하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선배가 이렇게 얘기해줘서 정말 기뻤다. sns의 사용 방법을 알려주니, 선배는 생각보다 빠르게 방법을 습득해 내게 첫 메시지를 보냈었다.







- 칸바라 아키히토(@Akihito_K)님의 메시지

「@Akihito_K 좋아해. 쿠리야마를.」







저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얼굴이 붉어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며, 선배가 살짝 웃었었다.







“좋아해, 라는 건가.”







옥상에 있던 나에게 달려와 줬던 선배는 안경을 쓴 내가 정말 좋다는 말을 했었다. 그 뒤부터였다. 선배가 내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게. 자주 하는 편은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간질 거리고, 얼굴이나 귓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안경을 닦으며 불쾌하다는 말을 해도 선배는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오므라이스를 먹고 나서도, 요몽과 싸우고 나서도, 그냥 일상을 보낼 때에도, 좋아한다는 말은 빼 먹지 않았다.







‘선배. 이런 사람이었어요?’

‘뭐가?’

‘맨날 안경이랑 오므라이스만 찬양하시면서..’

‘안경을 쓴 쿠리야마 미라이가 좋다고. 옥상에서 얘기했었는데.’

‘그건!’

‘다시 말해, 안경을 쓴 쿠리야마가.’

‘저기 선배!’

‘정말 좋습니다.’







말을 한 선배의 귓가도, 듣고 있었던 나의 귓가도 붉어져 버렸다. 그 말을 끝으로 붉어진 귓가를 감춘 채, 선배는 먼저 가버렸고 혼자 남겨진 나는 안경을 닦으며 붉어진 볼을 감췄다. 고개를 들어 선배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혹시. 선배도 그 말을 하기 위해, 많은 용기를 냈던 건 아니었을까. 알림 소리가 짧게 울렸다. 선배에 대해 생각하던 걸 멈추고 알림을 확인했다.







- 칸바라 아키히토(@Akihito_K)님의 메시지

「@Mirai_K 말하고 나니까 창피하다 어쨌든 잘 자. AM 01:33:17」


- 칸바라 아키히토(@Akihito_K)님의 메시지

「@Mirai_K 그런 거니까. AM 01:32:45」


- 칸바라 아키히토(@Akihito_K)님의 메시지

「@Mirai_K 있는 그대로의 ‘쿠리야마 미라이’가 좋으니까. AM 01:32:01」


- 칸바라 아키히토(@Akihito_K)님의 메시지

「@Mirai_K 내가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단순히 네가 안경을 썼기 때문이 아니야. AM 01:31:27」


- 칸바라 아키히토(@Akihito_K)님의 메시지

「@Mirai_K 자고 있나 보네. 뭔가 창피하긴 한데,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 AM 01:30:10」







가슴속에서 울컥, 하고 감정이 북받쳤다. 선배가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해줄 줄은 몰랐다.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 동질감 때문도 아니었고,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잘해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 자체만으로도 좋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선배는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해줬던 것이었다. 선배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기뻤다. 눈물도 났고, 지금 당장 선배를 보고 싶었다. 선배의 번호를 누른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거는 것도, 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것도, 전부 처음이었다.







“앗 선배.”

- 쿠리야마, 안 잤어? 설마.







창피해. 핸드폰 너머로 선배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내가 메시지를 읽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깊어져 갈수록 입안이 바싹 말라 왔다. 안경을 벗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전화까지 걸었으니, 이제 도망칠 수 없는 걸. 용기를 내는 거야.







“선배. 저기. 메시지 얘기인데요.”

- 그 그거.







작게 심호흡을 했다. sns 친구의 메시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두근거림이, 내 마음이, 선배에게 전해지기를.







“불쾌해요.”

- 아니, 저기.

“그래도 좋 좋아해요.”

- 어?

“좋아해요 선배를.”

- 쿠리야마?

“그동안 쭉 말하고 싶었는데 창피했어요. 그래도 용기를 냈어요.”

- .

“선배도 저를 위해 용기를 냈으니까요.”







말했다. 말해버렸어. 눈을 꽉 감았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린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이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선배도 말이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 쿠리야마. 이따가 오후에 잠깐 볼래?

“네?”

- 기다릴게. 꼭 와줘.







선배를 부를 틈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전화가 끊겨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선배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그나저나.







“진짜 말해버렸어.”







선배 얼굴을 어떻게 보지? 얼굴 보자마자 붉어지는 건 아닐까. 창피해서 선배를 보자마자 공격해버리면 어떡하지? 심장이 쿵쾅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벌써 새벽 2시인데. 이따가 선배 만나려면 얼른 자야 하는데.








2. 아마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날을 새고 말았다. 선배랑 전화할 때 울어서 눈가가 살짝 부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선배한테는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좋아한다는 말을 해버린 덕분에 밤새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을 진정 시킬 수 없었다. 옷차림과 머리를 정리한 뒤, 품에 있는 로즈메리 화분을 내려다보았다. 나중에 선배를 만나게 된다면 이걸 꼭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원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꼭 와 달라고 선배한테 문자가 왔었다. 짧은 텍스트에서 선배의 진지한 표정과,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벤치에 앉아있는 선배의 뒷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선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선배.”

“아, 쿠리야마. 와줬구나.”







벤치에 앉아 화분을 옆에 두고, 선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선배도 나처럼 잠을 못 잤나 보다. 얼굴에서 피곤함이 묻어 나왔고, 나처럼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선배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눈 충혈되었어.”

“선배도 눈이.”

“잠을 못 자서. 아니, 잠이 안 오더라.”

“저도 그랬어요.”

“쿠리야마.”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선배가 나를 꽉 안아버렸다.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의 심장도, 나의 심장도 같은 속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불쾌하다고 말하며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선배가 너무 세게 안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가득, 흘러넘친다. 선배가 나를 안은 순간부터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고마워. 좋 좋아한다고 얘기해줘서. 새벽에 그 말 듣고 정말 기뻤어. 당장 너를 만나러 가고 싶었는데, 계속 참았어.”

“선배.”

“용기 내줘서 고마워, 쿠리야마.”

“저도 고마워요, 선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두근거리는 떨림을 공유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선배의 품에 안겨있는 것도 좋았고, 심장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눈물이 나왔다.







“쿠리야마? 울어?”

“슬퍼서 그런 건 아니에요. 좋아서.”







좋아서 그런 거니까. 안절부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선배는 정말 귀여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꽉, 안아주었다.







“제 인생에서 선배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요. 아마 두 번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거예요.”

“쿠리야마.”

“선배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들은 잊지 않을게요.”

“.”

“그러니 선배. 머리 쓰다듬어 주실래요?”







선배가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내 심장까지 전해지는 게 좋아서, 선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다. 혹여, 우리가 조금이라도 평범한 관계로 만났더라면,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만났더라면, 그랬더라면. 이 이야기의 끝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평범하게 만나서, 다른 커플들처럼 사랑을 나눴으면 했다. 큰 걸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다른 커플들이 하는 사랑을 겪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의 존재는 결코 평범하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사랑은 평범한 사랑이 될 수 없었다.







“깨어날 시간이네요. 이번에는 꽤 길었어요.”

“응.”

“괜찮아요, 선배?”

“나는 너랑 오므라이스도 먹고 싶었고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어.”

“.”

“우리가 나중에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평범하게 만나서, 다른 커플들이 하는 만큼의 사랑을 하자.”

“그래요. 좋아요 선배.”

“고마워. 와 줘서.”

“아니에요. 저야말로 불러줘서 고마워요, 선배.”







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사랑하는 것. 선배와 내가 바라는, 가장 이루어지기 어려운 소망. 의자에서 일어난 선배가 내게 손을 내밀길래, 선배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불쾌해요. 선배.”

“거짓말이지?”

“글쎄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조심스럽게 닦았다. 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면 좋았을 텐데, 선배와 같이 있을 때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느껴진다.







“다 끝났네요.”

“응.”

“자요. 아, 이것도 선물로 드릴게요.”







선배에게 안경과 로즈메리 화분을 내밀었다. 안경과 화분을 받아 든 선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분을 바라보았다. 







“로즈메리 화분이에요. 왜 주는 지 알아요?”

“글쎄.”

“로즈메리의 꽃말이 ‘당신의 존재로 나를 소생 시킨다’, ‘나를 생각해요’ 이런 의미라고 해요. 그래서 선배에게 주고 싶었어요.”

“나를 생각해요.”

“제가 주는 선물이니, 소중하게 키워주세요. 나중에 확인할 거예요!”

“응. 잘 키울게.”

“그럼 가볼게요.”







안경과 화분을 받아 든 선배의 얼굴에 아쉬움과 슬픔이 가득했다. 선배를 보며 애써 웃어 보였다. 몸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사라지고 있는 걸 보고 있는 선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쿠리 야마.”







선배의 뒤쪽에서 새하얀 빛이 조금씩 나타났다. 이윽고 빛은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3. 해가 졌고, 달은 뜨지 않았다.








“또 꾼 거야?”

“응.”

“괜찮아, 앗키?”

“뭐, 그럭저럭.”







진짜 쿠리야마가 있는 것 같은, 생생한 꿈이었다. 생생한 꿈을 꾸고 나면 깊은 허탈감이 찾아오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증오하고 싶어진다. 어째서 우리는 평범하지 못 했던 걸까. 아니 애초에, 우리에게 ‘평범’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







“놀이공원 오고 싶어 했잖아.”

“너랑 오고 싶었던 게 아니야. 쿠리야마랑 오고 싶었던 거지!”







히로오미가 크로켓을 먹으며 중얼거렸다. 내 손에도 히로오미가 먹는 것과 같은 크로켓이 들려있었다. 크로켓은 매우 따뜻했고, 바삭거렸으며 맛도 있었다. 크로켓을 놔두고 옆에 있는 로즈메리 화분을 들어 올렸다.







“그거 샀어?”

“계속 신경 쓰여서.”







소중하게 키워 달라고 했었다. 나중에 확인도 한다고 했었다. 왠지 이 화분이 나와 쿠리야마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처럼 느껴져서 결국 살 수밖에 없었다. 로즈메리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쿠리야마를 닮은 향이었다.







“나를 생각해요.”

“그녀와 어울리는 꽃말이네.”







그럴 지도. 손가락으로 로즈메리를 톡톡, 건드렸다. 손끝에 향기가 묻어 나는 것 같았다. 로즈메리를 보며 생각에 잠기려고 할 때쯤, 겨드랑이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히로오미.”

“엄연히 내가 선배라고.”

“부탁 드리는데, 선배. 겨드랑이에서 손 좀 빼주시겠어요?”

“좀 정신을 차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신 차릴 게 있나. 어차피 꿈인데.”







그래, 꿈이다. 쿠리야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오로지 내 꿈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것도 어쩌다 한 번 씩 말이다. 평소보다 더 생생했던 꿈 때문인지 온몸이 피곤했다. 다음에 쿠리야마를 만나게 된다면 놀이공원에 가자고 말하자. 쿠리야마라면 분명, 불쾌하다고 얘기하면서도 가기 싫다는 얘기는 안 할 것이다. sns에 놀이공원을 가게 되어서 기쁘다는 글도 올리겠지. 지극히 쿠리야마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모치조! 저거 타자!”

“저기 타마코.”

“모치조, 무서워?”

“아, 아냐! 타자! 가자 타마코!”





“귀여운 커플이네.”

“나랑 쿠리야마도 저런 사랑을 했었더라면.”

“.”

“좋았을 텐데.”







서로가 서로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걸 전혀 관계없는 나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귀여운 커플이었다.







“먼저 갈게.”

“벌써?”







한 입 밖에 먹지 않은 크로켓을 히로오미의 손에 쥐여준 뒤, 로즈메리 화분을 들고 놀이공원을 빠져나왔다. 꿈 때문인지 몸이 많이 피곤했다. 깨어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그리고 깊은 잠의 끝에서 쿠리야마를 만나고 싶었다. 쿠리야마,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너는 어때? 너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나에게는 선명해서, 너를 쉽게 잊을 수 없어. 네가 나오는 꿈을 꿀 때마다, 네가 내 꿈속에서 움직일 때마다, 나는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나도 너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하고 싶었는데, 이건 내 욕심인 걸까. 귀를 찌르는 듯한 경적 소리가 들렸다. 손에서 떨어진 로즈메리 화분이 산산조각 났다. 로즈메리의 향이 진해져 온몸을 감쌌다. 화분 쿠리야마가 소중히 키워달라고 했는데. 소중하게 키우지 않았다고 하면서 불쾌하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쿠리야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쿠리야마, 곧 너를 만나러 갈게. 네가 있는 곳으로 나도 갈 테니까, 기다려 줘.







‘다녀왔어, 쿠리야마.’

‘선배?’

‘로즈메리 화분 산산조각 났어. 미안해.’

‘소중히 키워 달라고 했는데! 불쾌해요, 선배.’







눈부시게 하얀 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그리던 네가 있었다.








*








“선생님. 환자의 상태는 어떤가요?”

“상처도 회복되었고 몸 상태도 정상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환자는 깨어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네?”

“이 환자에게서는 깨어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

“그게 무슨.”

“이 환자의 몸은 여기에 있지만, 영혼은 여기에 없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상태고요.”

“그럼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영혼이 돌아올 때까지요.”







깨어날 수 없는, 깊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는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뭐든 상관없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결국, 가을(秋)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 사랑의 시작

- 본편에 짧게 등장한 ‘오지 모치조’, ‘키타시라카와 타마코’. 두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1-1. 그는 아쉬웠다.







“타마코. 그.”

“응?”

“이번 주 토요일에 데, 데이트! 하지 않을래?”

“데, 데이트?”

“지인에게서 놀이공원 입장권을 얻었는데 같 같이 가고 싶어서.”

“좋아! 그럼 토요일에 보자. 잘 자!”







급하게 말을 끝낸 그녀가 그에게 실 전화기를 던졌다.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실 전화기에 놀란 그가 허둥대며 실 전화기를 받았다. 그녀가 황급히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런 그녀의 창문을 쳐다보는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었는데, 사귀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게 어려웠다. 항상 대화를 끝내는 건 그녀 쪽이었다. 그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도 그녀와 같은 마음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녀와 대화를 짧게 나누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는 손에 들려있는 실 전화기를 내려다 보았다. 실 전화기의 한 쪽에는 ‘모치조’, 또 다른 한 쪽에는 ‘나’라고 쓰여있었다. 이건 그녀가 쓴 것이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면 차라리 친구인 편이 훨씬 좋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실 전화기를 상자에 넣은 그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노트북을 켰다. 그가 바탕 화면에 있는 폴더 중 하나를 눌렀다. 그 폴더 안에는 그가 찍은 그녀의 동영상들이 들어있었다. 그가 찍은 대부분의 영상 속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화면 안에 담는 걸 좋아했다.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보고 싶어질 때마다 폴더 안에 있는 영상을 재생했다. 모치조! 영상 속의 그녀가 이름을 불렀다. 영상을 보던 그가 눈을 감았다. 왠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1-2. 사실 그녀는 쑥스러웠다.








“좋아! 그럼 토요일에 보자. 잘 자!”







그녀도 급하게 말을 끝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쑥스러웠고, 귓가가 붉어져서 대화를 오래 하기가 힘들었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그녀가 침대 위로 쓰러지듯이 엎드렸다. 그녀에게 ‘연인’이라는 건 아직도 어색한 단어였다. ‘연인’이라고 의식하게 되면 대화를 하기 힘들었다. 연애를 처음 해보는 그녀에게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생소했다. 그녀의 동생은 그녀를 보며 답답해 했다. 계속 의식하게 되면 끝이 없을 거라고, 나이 어린 동생에게 듣는 조언은 그녀에게 멍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도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그녀는 다짐했다. 토요일에는 자연스럽게 행동해야겠다고. 옷은 뭘 입고 가면 좋을까.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가 옷장으로 걸어갔다. 데이트에 입을 만한 적당한 옷이 없었다. 그녀는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친구 중 한 명이 그녀의 데이트 코디를 해준다고 했다. 그녀의 다른 친구들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부디, 토요일의 데이트가 성공적이길 바라며, 파이팅! 그녀가 작게 외쳤다.








2. 타마코의 일기








201X년 X월 X일. 날씨는 내 기분만큼 맑음!







오늘은 모치조와 함께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에 갔다! 두근두근 데이트♡ 아침에 미도리랑 칸나, 시오리가 와줘서 코디나 헤어스타일 등 이것저것을 도와주었다. 낯선 모습에 익숙해지지 못 해서 조금 당황했었는데 다들 예쁘다고 해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치조를 만났다! 내 모습을 본 모치조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져 말을 더듬는 바람에 나도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져 버렸다 (/_\) 둥실둥실한 기분으로 아마브릴에 도착했다. 요새 인기를 끌고 있는 파크라고 해서 나중에 꼭 와보고 싶었는데 모치조랑 오게 되어서 기뻤다 (^_^) 맛있다는 크로켓도 먹어보고♡ 다양한 어트랙션들이 있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모치조는 어트랙션을 타다가 무서웠는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었다 T.T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왔는데 아마브릴 앞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있었는지 구급차도 오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0;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운전자가 한 남학생을 차로 들이받았다고 했다. 그 남학생은 머리색이 밝았으며 교복을 입고 로즈메리 화분을 들고 있었다고 우리와 비슷한 나이였다고 하는데 너무너무 슬프다. 그 사람이 무사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모치조와의 데이트는 성공적이었다♡ ‘연인’이라고 크게 의식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었다 (´▽`*) 모치조가 다음에도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다음 데이트도 기대된다♡



hopelessnes (절망)


[우시오이/오이우시] hopelessnes (절망)





감춰둘 내용을 여기에 입력하세요.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네 모습이 눈앞에 자꾸만 아른거린다.

뿌연 안갯속 흐릿하게 보이는 네 모습에 정신이 몽롱해져 쓰러질법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너의 뒤를 따른다.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면 넌 누군가를 따라 더 멀리 걸어가버리는것 같았다. 아무리 걸어도 너를 잡을 수 있는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차가운 냉기 속 넌 나를 몇번이고 돌아봤지만 뿌연 안개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않았다. 그대로 너는 내가 없는 차가운 세상으로. 그리고 난 네가 없는 차가운 세상에 혼자 남아버렸다.



너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애써 웃으며 말해줬다. ' 나는 혼자여도 좋으니 너만은 그러지 않기를 '

네가 혼잔데, 네가 가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혼자가 아닐수가있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대며 연신 너의 이름만 외쳐댔다.



" 우시지마…. "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서 매일같이 눈물로 밤을 지새운지도 어언 3일째, 오늘 나는 우시지마를 이곳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야 한다. 3일 동안 우시지마의 후배들, 선배들,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이 찾아와 눈물을 흘리고 떠났고,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대는 사람 또한 있었다. 우시지마는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였다.

그런 대단한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어야했다. 매번 일이터지고나서 그제서야 후회하는 내 자신을 계속해서 원망했다. 



' 이제 너를 놔줘야하는걸까, 이세상에 니가 없다면 나는 살아갈수나있는걸까 '



매번 무심한듯 뒤에서 나를 챙겨주고 아껴줬던 네가그립다. 내가 추울땐 네가 하고있던 목도리를 나에게 감아주던 너의 따뜻한 손길이 그립고, 너와 함께 앉아 영화를보던 그 시간들이 그립고, 함께 식탁에앉아 아침밥을 먹으며 재미없었던 개그로 날 웃겨주던 너의 목소리가그립다.

널 보낸지 3일, 이정도는 아파해도되는거겠지 앞으로 조금만 더 아파하면 되는거겠지.시간이 지나면 내 기억속에 네가 완전히 잊혀질까봐 두려웠다. 네 생각을 안한다면 조금 괜찮아질까…



네가 날 만나러오는길에 사고가났다는 얘기를듣고 나는 정신이 나가는줄알았다. 병원으로 달려갔고 하얀색시트는 빨간색에 염색되갔으며, 너의 하얗던 살마저 빨간색으로 물들어가는것같았다. 의사와 간호사의 분주한 움직임에도 나는 너에게서 시선을 떼지못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서있었다.

눈을 감고있는 모습이 너무 아련해보여서, 손에 꽉 쥐고있는 목도리가 네 손에서 떨어질까봐 너에게서 시선을 뗄수없었다. 눈에선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고 누워있는 널 보면서 심장이 아릿해져왔다. 급한 수술이 끝나고 넌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옆에 앉아서 너의 손을 잡고만 있었다. 고개를 푹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천천히 뜬 너는 호흡이 가빠진듯 간간히 신음을 내뱉으며 의사 선생님을 부르려는 나의 행동을 제지하면서까지 말했었다.


" 하아-. 하.. 울지...마라...하아...난 괜찮으니까...너는....하아... 울지마.. "


.

.

.



" 궁상맞게 울고나있고, 우시지마가보면 참 좋아하겠다 "



차갑게 내뱉는 말투에 위를 올려다보자 검정색 정장을 입고있는 이와이즈미가 보였다.

나에대해서 유일하게 가장많이알고있는 사람,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주는사람.

이와이즈미는 곧 내 앞에 앉고선 나와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 니가 여기서 이러고있으면. 우시지마가 돌아오기라도하냐. 우시지마 깨끗이 보내줘야지. 뭐하는거야 찌질하게 "



말은 저렇게해도 그 말 속에 담겨져있는 따뜻함은 숨길수없었나보다. 끝까지 내 옆에 남아있어주는 사람

미안해.



" 일어나자. 이제 곧 발인식 시작이야 "

" …응. "


차가운 냉기가 맴돌던 장례식장, 3일 밤낮을 울어대던 장례식장을 한번 뒤돌아 쳐다본뒤에 차마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


발인식을 마치고, 힘겹게 집에 도착했다. 이와이즈미는 오면서 ' 밥먹어라 ',' 씻고자라' 라는 잔소리를 시작했고 대충 알겠다고 답한뒤 침대에 엎어졌다.

또다시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서 책상에 앉았다. 우시지마가 끝까지 들고있던 목도리를 집어들고 냄새를 맡았다. 아직까지 우시지마의 향기가 난다, 내 옆에있는것만같다. 아무리생각해도 우시지마가 이제 이곳에 없다는게 실감이나질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게 이런 느낌이였을까, 드라마를 볼때 매일 ' 역시드라마야 ' 라고 생각하면서 웃어넘겼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야 나는 크게 와닿았다. 손이 부르르 떨려왔고 목도리를 쥔손에 힘이들어갔다. 목도리는 힘없이 구겨졌고 내 눈물에 적셔졌다. 애속한 눈물은 내 마음을 후벼파고있었다.



며칠간 힘이없는채로 부활동에도 가지않았다. 이와이즈미는 나를 이해하는듯 며칠간은 날 가만히 내버려뒀고, 집에와서도 우시지마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매일 울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우시지마의 냄새에 미칠것만같았다. 당장이라도 우시지마를 만나러가고싶었다. 죽고싶었다.난 네가 없는 삶은 살아봤자 무의미하다. 한번만이라도 다시 얼굴을보고 '사랑해' 라고 나지막히말해주고싶다. 매일마다 전화로도, 얼굴을보고도 나눴던 사랑해라는 대화, 일상을 나누는 대화를 하고싶어졌다.



기분전환을 할겸 외투를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닥치는대로 걸었는데 어느새 우시지마의 집앞에 와있었다.

이젠 아무도 살지않을까 라는생각에 초인종을 눌러봤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나왔다.



" 누구세요? "

" …아... "



사람이 나왔는데도 나는 아무말 못하고 그 사람을 뚫어져라쳐다봤다.

문득 우시지마가 아닌 다른사람이 이 곳에 산다고 생각하니 괜히 또다시 코끝이 찡해졌다.



" 저기요, 우리집 초인종 누르신거 그쪽맞죠? "

" …… 집을 잘못찾아왔네요, 죄송합니다 "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고개를 한번 숙여주고 뒤돌아 걸어갔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우시지마와 관련되있는 곳 이였다. 매번 만나서 함께가던 카페도, 만화방도, 음식점도.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여러가지했구나 우리, 이러면 밖에 나오기도 힘들잖아.

피식 실소를 터뜨리곤 집을 향해 걸어가고있는데,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기시작했다. 멈춰서서 핸드폰을 열곤 문자메세지를 확인했다.




[ 집이냐 ]




이와이즈미의 문자였다. 휴대폰을 몇번 터치해서 답장을 보냈다.




[ 아니, 집에가는길 ]

[ 밥먹자 ]




저녁엔 죽어도 나오기 싫어하는 이와이즈미가 먼저 나에게 만나자고 문자를 보낸건, 아마 내가 생각하고있는걸, 느끼고 있는 고통을 알고 있어서겠지, 문득 이와이즈미의 존재에 소중함을 느꼈다. 현재 이와이즈미가 내 곁에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수도 있지않았을까.




[ 역에서 만나자 ]

[ 5분이내로 튀어와라 ]




휴대폰 홀드키를 누르곤 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분가량 걸었을까 벽에 등을기대고 휴대폰을 톡톡대며 서있는 이와이즈미가보였다.

한번 실소를 터뜨리고 이와이즈미의 앞에 멈춰섰다.




" 왔냐 "

" 갑자기 무슨 밥이야 이와쨩 "

" 이와쨩이라고 말할정도보니까 쓰러질정돈아닌가보네 "

" ..아직괜찮은건아니지만 뭐.. "




이와이즈미는 입에 옅게 미소를 띄고선 바닥에있는 돌을 차면서 말했다.




" 너무 울지마라, 그러니까 내말은 기운빼지말라고 "

" ……으응 "

" 저기 들어갈래? "

" 어 "




작게 대답하면서 우리는 근처 음식점에 들어갔다. 익숙한 풍경에 고민했다가 생각났다.

이 곳, 우시지마와 왔던곳. 여기서 많이 투닥댔었지 매번 그녀석이 져주었지만, 한번쯤은 나도 져줄껄 그랬나…. 여기 우동 맛있었지, 국물 튀겨가면서 싸운적도 있는데 어차피 이제 다 추억이되는걸까-




이와이즈미와 나는 서로 음식을 시키곤 의자에앉아 핸드폰을 만지작대고있었다.




" 괜찮은거냐 "




둘사이의 정적을 깬건 다름아닌 이와이즈미의 괜찮냐는 말, 나는 그대로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지한 표정, 거짓으로 대답해도 읽힐것만같은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있었다.




" …뭐, 응. 괜찮아 "




말을 내뱉고나서도 이와이즈미와 눈을 마주치지못했다. 이미 들킨 거짓말이더라도 밀고나갈 생각이였다. 괜찮다고, 괜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하고있자 몰아 붙일거라는 내 생각과는다르게 이와이즈미는 조용히 나를 쳐다보기만했다.




" ..... "




땅바닥을 계속해서 응시하고있어도 이와이즈미가 날 쳐다보는 시선은 계속해서 느껴졌다.

눈알을 이리저리굴려 이와이즈미의 표정을 슬쩍 봤고, 이와이즈미는 측은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있었다.

젠장, 그렇게 쳐다보지마. 안타깝다는듯이.. 그렇게 쳐다보지마..

애속하게도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고였다. 손으로 가리고 닦아봐도 눈물은 계속해서 흘렀다.




" …그거, 괜찮은거 맞는거냐…? "

" ...하하..괜찮..은데....왜 눈물이... "




입으로는 웃고 손을 들어 촉촉한 눈가를 계속해서 닦아냈다. 그렇지만 눈물은 계속계속 내 뺨을타고 흘러내렸고 곧 이와이즈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듣곤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 너가 괜찮아지면 말하려고했는데, 영원히 안괜찮을거같아서 지금 말할게 "

" 우시지마랑 마지막통화한 사람이 나였어 "

" 차에 치일때, 끝까지 나랑 통화했고, 바닥에서 아파서 구르면서까지 나한테 말했어, 자기는 혼자있어도 괜찮지만 넌 혼자라서 울지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끝까지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더라. "




이 상황에서 이런말을 꺼낸 이와이즈미가 야속했다. 그럼에도 이와이즈미에게 화를내진않았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고, 눈에선 눈물만이 계속해서 흘렀다.

우시지마… 넌 왜 가면서까지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버리는거야, 왜 날 이렇게 만들어버리는거냐고…




" 그런데도 니가 이렇게 울고만있으면 "


그럼 어떡해, 그녀석이 이젠 내 옆에없는걸


" 우시지마는 편하게가겠냐 "


나도 편하지않아, 나도 미치겠어.




고개를 푹숙이고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 …그럼 어떡해…? 그녀석의 냄새, 흔적이 다사라져가는데.. 내가 안울고 평소처럼 지내다가 내가 걔를 잊어버리면어떡해… 나한테 잊혀지면 걘 어떡해....다른사람한테 다 잊혀져도!!!!!나한테까지 잊혀져버리면 어떡해.....그녀석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나와... 나도 미치겠어… "




이와이즈미는 깊은 한숨을 쉬고서 나를 계속 쳐다보기만했다. 무슨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입을 굳게 닫은채로 내가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리는것같아보였다. 최대한 눈물을 안 흘리려고 노력해봐도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은 나를 괴롭힌다.




음식이 나오고 뜨거웠던 음식이 식을때까지 나는 눈물을 멈추지않았다. 이와이즈미도 음식엔 손도 대지않은채로

계속해서 나를 응시하다가 의자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나간듯 보였다.

그리고 몇분뒤 이와이즈미는 가게안으로들어와 나에게 말했다.




" …부모님한테 연락왔어. 집에들어가 "

" ……응 "

" 택시타고가 "




택시를 타고가라고 돈을 쥐어주는 이와이즈미의 행동을 말리고 부은 눈을 가라앉힐겸 바람을 쐬면서 가겠다. 라며 걸어가겠다고 하자 이와이즈미는 도착하자마자 문자하라며 문자안오면 집에찾아갈거라며 결코 농담같지않은 협박을 하고선 뒤를돌아갔다.




이와이즈미의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쳐다보고있다가 뒤를 돌아서 길을 걸었다. 곳곳에 밝게켜진 가로등사이로 하루살이들이 보였다. 또 옛날과 같이 하루 살건데 뭘저렇게 마지막까지 빛을 보려하는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많이 도움됐었지, 슬픔에 자살하고싶을때도 매번 이렇게 걸어나와서 하루살이들을 쳐다보면서 매일 생각이바뀌곤했으니까. 하루살이들이 그렇게 바라던 내일이 바로 내가살고있는 오늘일테니, 하지만 이젠 그런건 상관이없지않을까…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 뺨을 스쳐지나갔고, 조금씩 날리는 눈발에 가로등 주위가 더 환히 비추어졌다. 가로등 너머로 보이는 노란색의 둥그런 달이 날 내려다보는 듯 했다.




집에 도착해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뒤 방으로 올라가 책상에 앉아 종이를 폈다.

글씨를 몇자 끄적이고난뒤에 자신의 서랍을 뒤적거리고 뭔갈 손에쥐고선 몇분간 의자에 앉아있다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책상 서랍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손에쥐고선 창문을열고 하늘을 쳐다봤다.

밝게빛나는 별들중에 유난히 반짝거리며 빛나는 별을보고 ' 우시지마 와카토시 ' 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아-. 넌지금 거기에 있구나. 반짝거리는 별을 보며 작게 읊조렸다. 그대로 있어주면 내가 곧 거기로 달려가겠다고.



이와이즈미, 너한텐 많이 미안해. 하지만 내가 없어도 절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해. 많이 미안해



오이카와의 책상위엔 정갈한 글씨체로 몇줄이 적혀져있는 종이가 있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손에 쥐고있던 커터칼의 심을 꺼내서 자신의 왼쪽 손목에 가져다 데었다.

그리고 아파하며 몇번을 칼로 손목을 긁어댔다.



쿵-



그대로 한 사람이 바닥으로 쓰러졌고, 그는 눈을 감았다. 주위는 온통 빨간 피로 물들어가고있었지만 쓰러진 한사람은 입가엔 미소를 머금은채로, 눈엔 눈물이 흐른채로 죽어가고있었다.



잘있어요, 한때 행복했던 내 날이여, 그리고 기다리세요. 내가 이제 곧 당신을 만나러가겠습니다.



[ 미안, 이정도밖에 못한 나라서 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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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기다리게 하고싶지 않았어, 뭐하러 왔냐고 화내도 좋아, 내가 네 옆에 있을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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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청화] 동성애

















' … 하느님 제발 '


- 쿵! 


책장에 잔뜩 꼽아놓던 에로잡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와르륵하고 쏟아진 잡지사이에서 눈에불을켜고 잡지를찾아댔다.


잡지 사이에서 가장 아끼던 잡지를 찾았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잡지책을 펼쳐치고선 휴대폰에찍힌 사진을대서 번갈아보기시작했다.











" … 안돼 ‥"






손이 벌벌떨렸다. 눈을 질끈감고 머릿속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아니야 아니야.이게 아니야.


부정하듯 가슴을 퍽퍽 때렸다. 아프다 …












- 벌컥! 




"얘, 다이키 저녁먹으러 안내려오니?"


" !! … 아,안먹어!!"


"‥? 왜 소리를지르고 그래? … 그래그럼 , 나중에 밥없을수도있어! 그리고 그 에로책좀 치웟! "










알았어!알앗다고오! 빨리 나가,좀!


-쾅. 저녁을 안먹는 내가 이상했는지 자꾸만 기웃거리는 엄마때문에 한참을 식겁했다.


엄마가 나가자 쥐고있던 핸드폰을 다시 열었다. 화면속에는 카가미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작게인상을쓰고선 입을삐죽내밀며 자고있는모습이었다. 그리고 … 나는 잡지속의 벗은여자보다 이 화면속 남자에게 욕정했다.


헛, 하고 헛웃음이나왓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그냥잡은것도아니고 아주 제대로 잡았다.












" 내가,내가 게이라니……!"


-쾅쾅!, 벽에 머리를 부딪혀 봐도,마이쨩 잡지를봐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내평생 17년동안 이성애자라 믿엇건만.









난 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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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게이라고, 아니 뭔가 이상함을 느꼈던건 어느날 카가미와의 1on1 시합이 끝난뒤였다.


윈터컵이 끝난뒤 자주만나 1on1을하던 우리둘이었는데, 겨울이 가고 봄이오는시기여도 땀이 식자 꽤 쌀쌀해 짐을 느꼈다.


그때 작게 '추워 …' 라고 말하는 녀석에게 곧장 내가 입고있던 점퍼를 던져주었었다.


무의식적으로 던져진 점퍼에 그녀석도 나도 깜짝 놀랐다. 어? 내가 이렇게 매너가 좋았던가?










" … … 오우‥?  땡큐! "









카가미의 놀란 눈과 고맙다며 웃는 모습이 내 머릿속의 스위치를 눌렸던 점이었다.


그순간 느껴진 묵직한 느낌에 어딘가 얹혔나 했건만, 마음에 아주 큰 놈이…, 그것도 호랑이가 눌러앉았던 거였다니!


하지만 난 몰랐다 같이 그게 내가처음느꼈던 동성에대한 사랑의 시작이란걸.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음…윈터컵 이후인가? 


하지만 윈터컵에서의 시합뒤 카가미를 정말 존경했지만 그때는 이런감정이아니었다.


그냥 음 ‥ 친구…로서 좋아햇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내가 자각을 한건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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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 카가미!'


전철로10분거리를 급하게 달려 겨우 코트에 도착했다. 헉헉 거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두리번거렸다.


너무 늦어서 집에간건가? 하지만.. 메일이 오진 않았으니깐 ‥.      ―역시 없네. 쳇,기다리지도않냐!


괜한 심술에 버럭버럭 욕을하며 몸을돌려 나가려할때 벤치 뒷쪽에 기대어 앉아있는 카가미가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 여~. 바카가미! 늦어서 미안 "



" … "



" 어이 ‥? 너 설마 내가 좀 늦어서 삐진거냐? 왜 대답이없어 "


   .....물론,내가 1시간넘게 늦긴했지만.




" … "










 …? 뭔가 이상함에 가까이 다가가자 곤히 자고잇는 카가미가 보였다.


'어이~ 자는거냐?', 가로등밑에서 벤치에 기대누워 잠든놈치곤 꽤나 잠자리가 편한지 우물우물거리며 잠꼬대도해댔다.


볼을 꼬집고 늘여봐도 도통 일어나질 않았다.










" 음.. 아오…미네‥ "










-움찔.   ―잠깐?! ㅁ,뭐야? 이녀석 도대체 무슨꿈을 꾸는거야 ?!


'아오미네에… 다이‥키이‥' 


그순간 탁 하고 맥이 풀려버렸다. 녀석에게 처음들어보는 다정한 부름과 처음보는 무방비한 표정이 머릿속에 촘촘히박힌듯한 느낌이들었다.


아닐거야 설마 하곤 머리를 감싸쥐고 시선을 피해봐도 오버랩되는 방금전 상황과 평소의 상황이 파도처럼 나를 휩쓸었다.










' 와 … 이게 뭐야 '









내 평생 처음느껴보는 감정. 이유없이 흐르는 식은땀. 그리고 결정적인건 그뒤의 이유 모를 내 행동.











- 찰칵!




" ..헐 "









그리고 그 사진은 영원히 지울수없었다. 














.

.

.











그뒤로 벌써 보름이 다되어갔다. 1on1 약속도 다 취소하고 학교가 마치면 집으로가 방에만 틀어박혀있었다.


연습을 나가지 않은건 당연지사, 사츠키의 말도 다씹어버렸다.


제발 …이모든게 꿈이기를 하며 매일매일 바보처럼 잠만 자댔다. 혹여나 눈을뜨면 진짜 이 모든게 꿈일까 싶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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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앗- 테츠군! 여기야여기!"



" 안녕하세요 모모이상,오랫만이네요"



" (우물우물) "



" 카가미군 벌써 드시는겁니까 "












연습을 마치고 쿠로코에게 붙들려 마지바에 들렀다. '모모이상이 급하게 불러서요' -라 는 말에 얼떨결에 붙잡혀와버렸다.


늘 그렇듯 쿠로코는 바닐라 쉐이크를 주문하고 난 치즈버거 20개를 주문한뒤 모모이가 있는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모모이는 울먹이며 말을꺼내기 시작했다. 













" 흐에에~ 테츠군!내말좀 들어봐! 글쎄 다이쨩이 보름째 연습도 안나오고 집에만 틀어박혀있어!"



" ? , 주말에는 카가미군과 1on1을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



" ....아, 그러고보니 요즘 만나지를 못했어 "



"무슨일이 생긴걸까 ..? "



"여자한테 차였나보죠"












'그런가 …' 


포테이토감자를 우물거리던 모모이가 '다이쨩에게 여자라니…'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눈이었다.








" 설마 우울증인가?! 다이쨩 왕따당하는거야? "



" 그 성격에 그럴리는 없죠 "



" 어쩌지… 곧 강호교랑 연습시합도있어서 연습나와야하는데…"



" 어이, 그럼 집에 찾아가면되지않냐? "



" 그치만 다이쨩.., 찾아가도 문 안열어주는걸.."



" 그래도 바락바락 우기면 열어줄지도 모르지 "



" 그럼, 카가미군이 다이쨩 집에좀 다녀와줘! 부탁할께! 카가미군도 다이쨩이랑 농구하는거 즐겁잖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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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는 이유로 지금 아오미네의 집앞에 도착했다.


쿠로코는 '모모이상을 데려다주겠습니다.내일뵈요 카가미군'하고 모모이와 쌩 하니 사라졌다.












- 띵동,띵동


   










" … … … 없나?"












-띵동,띵,띵,띵,띵,띵,띵동!!













-벌컥!!





" 야임마! 너 누군데 그렇게 눌러대!, … … 카가미..?"



" 오쓰! 너 살아있었구나"









보름만에 만난 아오미네의 모습은 꽤 수척해진 느낌이었다. 진짜 여자한테 차였나?


아님 우울증이라도 걸렸던지.퀭한게 엄청 힘들어보이는데 이거…









" … 왜 온거냐 "



" 아니 뭐.., 모모이의 부탁도있고. 그리고!! "



" ? "



" 너 말야! 요즘 1on1도 안해주고! 내가 얼마나 니 연락을기다렸는줄 알아?! "













" ‥ … 하?! "











.

.

.

.













그뒤로 하는수없이 근처 농구코트에 가게되었다. 신나는게 보이는 카가미때문에 피식피식 웃음이났다.


정말 중증이네 이거 … 라고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 몇점내기할까? "



" 알아서 정해 바카가미."



" 그럼 간단하게 30점내기! 지는사람이 아이스바쏘는거야 "









어휴, 남의속도 모르고 헤실헤실웃으며 교복마이를 벗어던지는 녀석이 괜시리 얄밉다.


넌모르겠지 내가 너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있는지 


아마 알게된다면 어떤표정을 지을까. 혐오할까 나를? 그런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엄청. 속이 거북하다.











.

.

.












- 철썩! 가볍게 골에 슛이들어갔다. 깔끔하게 3점슛을 성공시킨 녀석은 숨을 고르더니








" 허억 … 헉‥ 야 아오미네 너 무슨생각하냐? 오늘따,라 헉‥ 집중을못하는거야..!"



" .... 시끄러.. 야,그냥 그만하자. 내가졌다. 아이스바 소다맛이지?"



" … "








안봐도 비디오다. 분명 카가미녀석… 엄청뚱한 표정이겠지? ..꽤 귀여울것도 같고..


하지만 정말 오늘은 기분이 별로였다. 녀석에대한 나의 불순한 감정과 죄책감이 뒤엉켜선


공에 집중하지못하고 계속 얼굴만보고있었으니..









" 어이,나 뭐 잘못한거있어? "


" 앙? "


" 너아까전부터 나랑 눈도 안마주치잖아 "


" … 별거아니야"


" 무슨일 있냐 "


" … 그래, 아~주 큰일이지 넌 모르는 엉아들의 세계란다.바카가미 "


" 뭐?! 이 아호미네가! "








알려고 하지마. 내곁에 더이상 접근하지 마


무겁게 짓누르는 감정들이 얽히고 뭉쳐 아주 단단해졌다.


절대 이 감정을 버리지못한다는듯이.


맞아. 난절대 이감정을 버리지못해 .그누구에게도 쏟아내지 못해.










그러면 말이야.


" 야 바카가미."



" 엉? "









한번만 떠보자.



" 넌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









나 지금 엄청 무서워.




" 에? 무슨소리야 그거 "







제발…







" 게이 … 어떻게 생각하냐고 "


" … "


" … 아, 이건 그냥 ‥! "


" ..... 혐오해 "


" 어? "


" 최악이야 정말 "











난 아마 잊지못할꺼 같다.


그날 본 카가미의 정말 혐오스럽단 눈빛으로 날 보던 그 표정을.


그뒤의 말도








" 야 넌 … 아니지? "



" … "



" 아니겠지~ 너 가슴큰 여자 엄~청 좋아하니깐! 그럼 일단, 아이스바나 쏴 "







얼른 가자며 짐을챙기면서 어두운 표정을한 너에게


뒤늦게 애써 웃으며 '당연히 아니지 ' 라고 말하자 안심한 표정을짓는 너에게


어떻게 이말을 전할수있을까.












어떻게 좋아한다고 말할수있을까.







바보와 멍청이


[카게히나] 바보와 멍청이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히나타의 땀 맺힌 이마를 쓸었다.


땀에 엉겨붙어 자꾸만 축축 처지는 주황빛의 앞머리가 눈가에 달라붙어 걸리적 거렸는지, 한번 바람이 분 뒤 히나타의 표정이 개운하다.


청명하고 높은 가을의 하늘과 상냥한 바람의 손길. 히나타는 마치 자신의 두 손에 든 배구공이 세상의 전부라도 되는 것 처럼 말간 웃음을 지으며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연습 중간의 쉬는시간에 잠시 공을 들고 산책을 나온 히나타는 체육관 뒷편의 벤치에 누웠다.


자신의 키에 딱 맞는 듯한 벤치의 길이가 조금 신경쓰이긴 한다만, 뭐 어떤가 싶어 누운채로 공중을 향해 배구공을 올리고 받기를 계속했다.


배구공 하나로도 만족해 하는 히나타에게도, 요즘 고민이란게 생겼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때면 항상 머릿속 한 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는 사나운 눈매를 가진 얼굴,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조금 낮은 목소리.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듯 느껴지는 체온까지.


정말, 왜이러는지 모르겠다고-하며 눈썹을 살짝 찌푸려 주름을 만들때도 저절로 떠오르는 그의 미간 주름.


요즘들어 배구바보 히나타를 줄곧 괴롭히는건, 조용해지면 환영처럼 느껴지는 카게야마였다.



또, 잠깐만 공상을 하면 뭉게뭉게 떠오르는 카게야마.


리시브에 능숙해지고 싶다던가, 스파이크를 좀 더 잘 할수있으면 좋겠다던가 하는 평소의 그 같은 고민이 아니라 그런지 뭔가 더욱 해결책을 찾기 어려웠다.


리시브나 스파이크를 잘 하고 싶다는 고민의 답은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냥, 열심히 연습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카게야마에 대한 고민은? 애초부터 왜 고민하는지, 카게야마에 대한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건가, 고민을 하지 말아야지. 고민을 하지않으려면 어떡하지? 


결국엔 고민을 그만두는 방법을 고민하는 지경까지 이른 히나타의 손이 배구공을 놓쳤다. 공이 콧대로 떨어져 버린 탓에 빠져나올 수 없었던 고민에서 나온 히나타의 표정이 멍했다.



"히나타! 연습 시작했어, 얼른 들어와!"


자신을 찾으러 뒷뜰까지 온 스가와라 선배의 목소리가 정신을 차리게 해 줄 때까지, 아마 계속 멍했던거 같다.






히나타는 스가와라와 함께 체육관에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자신을 반기는 익숙한 냄새와 소리. 


배구공이 바닥에 일정하게 튕겨지는 소리. 배구화와 바닥이 마찰하며 일어나는 마찰음.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은 파스와 각종 약의 냄새까지. 어느하나 익숙하지 않은게 없었다.


물론 그곳의 사람들도 모두가 익숙했다. 늘 마주치는 내 팀, 그 중에서도 매일을 함께 있던 카게야마 였는데, 언제부턴가 둘이서 얘기하는 일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말 뿐만이 아니었다. 가볍게 격려하듯 어깨나 등을 두드리는 손길도, 연습후에 같이 자전거를 끌며 돌아가던 길의 발걸음도. 가끔 다이치 선배가 사주는 만두를 나눠먹던 순간도.


그리고 그것을 망치기 시작한건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뭐야, 왜 멍하게 있어?"


아무렇지 않게 한손에 배구공을 든채 자신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카게야마의 모습에, 히나타는 저도 모르게 한발 뒷걸음질을 치며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미심쩍은 표정으로 히나타를 물끄러미 쳐다본 카게야마가 빨리 와서 리시브 연습이나 하라는 말을 하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다시 네트 앞으로 가는걸 보고서야 히나타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뭐야, 히나타? 카게야마랑 싸우기라도 한거야?"


그런 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스가와라가 히나타에게 슬금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그렇게 보여요?.." 조금은 쳐진듯한 목소리로 대답한 히나타는, 걱정하는 듯한 스가와라를 뒤로한채 코트위로 향했다.



우카이 코치가 던져주는 공을 리시브하는 연습을 하려 서있는 줄의 끝에 후다닥 뛰어 들어간 히나타의 뒤로 줄을 선건, 카게야마였다.


카게야마 특유의 발소리와, 가까이 있으면 맡아지는 땀냄새가 살짝 섞인 섬유 유연제의 냄새로, 히나타는 뒤를 돌아봐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누군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카게야마를 통해 알게됐다.


'신경쓰여, 나 방금 벤치에 누워있다 와서 뒷머리가 이상하게 눌려있을텐데.' 하며 눌린 뒷머리를 손으로 정리 하려던 히나타는, 자신이 한 생각에 자신이 의아했다.


'왜 내가 카게야마가 보는 뒷머리를 신경쓰는거지? 왜 방금 머리를 정리하려 한거야?'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가만히 서있는 히나타의 어깨를 카게야마의 손길이 건드렸다.


"어이, 히나타. 다음 리시브 너라니깐? 정신을 어디다 빼놓은거야?"


순간 놀라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본 히나타를 우카이 코치가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죄.죄송합니다!" 황급히 수비자세를 잡은 히나타에게 우카이 코치의 공이 날아왔다.


평소같으면 살짝 삐끗했더라도 충분히 올려낼 수 있는 공이었다. 공은 손목에 빗맞은채 바닥으로 힘없이 굴러 떨어져 체육관의 저편으로 굴러갔다.


"하,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원래 히나타가 리시브 실수가 잦다는건 알고있었지만, 오늘따라 놓치지 않을수 있는공도, 놓치면 안되는 공의 리시브도 계속해서 실패하는 히나타의 모습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지켜보았다.


카게야마는 히나타가 리시브를 끝내고 뒤돌아서며 입술을 깨무는 것을 쳐다보았다. 작은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것 또한.


다음은 히나타가 가장 자신있어하고, 또 좋아하는 스파이크를 연습하는 타임이었다. 


스가와라와 카게야마가 각각 코트앞에 서서 공을 올려주기 시작했다. 


 평소같지 않게 긴장한 히나타가 카게야마가 올리려는 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둘의 눈이 무심결에 마주쳤다. 


공에 몰려있는 집중력이 순간 흐트러졌다. 카게야마는 금방 시선을 돌려 공을 올렸지만, 이미 집중력을 잃은 히나타는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한채 반사적으로 뛰어나갔다.


배구화가 바닥과 힘껏 마찰되고, 히나타는 평소완 달리 공의 바로 오른편 허공에 헛 손질을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연습시 카게야마가 올려주는 토스만을 꼭 받았던 히나타의 헛손질에 모두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너."


카게야마가 미간을 깊게 찌푸린채 히나타에게 말했다.


"아, 미안. 한번더 부탁할게.."



평소엔 스파이크를 날린게 신기하고 재미있어 늘상 한번더 토스를 올려달라고 말하는 히나타의 격양된 목소리가 아닌, 실패한 스파이크에 후회하며 자책하는 목소리였다.


"너, 지금...!"


카게야마가 그것을 느끼고 한발 히나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히나타는,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었다.


토스를 올리려던 스가와라도, 그것을 치려던 다이치도. 그리고 차례를 기다리던 모든 팀원들이. 우카이 코치마저도 그 광경을 믿을 수 없단 듯 눈길을 두었다.


평소의 히나타가 아니야. 카게야마가 항상 저렇게 눈쌀을 찌푸린채 다가와도, 히나타는 장난스레 도망가기만 했었다. 한번도 고개를 숙인채 뒷걸음질 치는 일은 없었다. 왜 저러는 거지?


걱정스런 눈길이 히나타의 숙인 고개를 쿡쿡 찔러댔다.



"히나타, 잠깐 쉬어라."


우카이 코치의 담담한 말에 히나타가 순간 숙인 고개를 들어 우카이 코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이내 다시 시선을 피하고 힘없이 대답한채 체육관의 벽 쪽으로 향했다.


매니저인 시미즈가 뒤돌아 걸어가는 히나타의 뒤를 따라가 물과 수건을 건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히나타의 풀 죽은 목소리가 주변의 공기를 울렸다. 히나타는 힘없는 손으로 시미즈의 손에서 수건과 물을 챙긴채 벤치에 앉았다.


고개를 숙인채 코트를 쳐다보지 않고선 수건을 머리위에 뒤집어 썼다. 


머리를 식히고 싶어. 그래서 이 감정을 제대로 알고싶어. 난 무엇때문에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거지?


히나타의 혼란스러운 물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멀찍이 카게야마가 그런 히나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카게야마와 멀어지기 싫어.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어색해. 말을 거는것도,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깨를 두드리는 작은 행동조차도 너무 크게 다가와. 한번도,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다고. 도대체 난 왜 이러는 거야...'


그리고, 결국 히나타가 다시 합류하지 않은채 그날의 연습이 끝났다.






"다녀왔습니다-"


조금은 무거운 발소리로 현관에 들어와 신발을 벗는 히나타에게, 여동생 나츠가 달려왔다.


"오빠 왔어?"


"응, 나츠. 엄마는?"


"저녁준비하고 있어! 오빠보고 빨리 씻고오래!"


"어, 빨리갈게."



히나타는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찬물을 틀고, 그대로 머리를 가져다 댔다. 


한참동안 찬 물 아래에서 생각을 정리한 히나타는 나츠와 엄마가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 식탁으로 가 앉았다.


히나타의 옆에 앉아서 조잘조잘 얘기하면서 밥을 먹던 나츠의 말이 멍한 히나타의 귀에 순간 들렸다.


"엄마, 나 요즘 이상한거같아."


오밀조밀한 얼굴로 자신이 요즘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귀여운 어린아이의 투정을 엄마가 조용히 받아주었다.


"음, 나츠가 왜 이상한데?"


"우리 유치원에 몇주전에 호타로라는 남자애가 새로 왔는데 말야, 걔가 계속 신경쓰여."


"어머나, 어떻게 신경쓰이는데?"


나츠는 볼을 붉힌채 얘기를 늘어놓았고, 어느새 히나타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응, 그러니까 말야- 호타로가 근처에 있으면 뭔가 느껴져!"


     [ 히나타는 뒤를 돌아봐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누군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카게야마를 통해 알게됐다. ]


"그리고, 원래 같이 소꿉놀이도 하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놀았는데, 계속 내가 피해서 같이 안하고 있어.."


     [ 그 중에서도 매일을 함께 있던 카게야마 였는데, 언제부턴가 둘이서 얘기하는 일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


"나 원래 노래를 못하는데, 호타로 앞에선 노래하기 무서워, 싫어."


     [ 내가 지금 여기서 토스를 달라고 외치며 나가다가, 혹시나 카게야마가 올려준 토스를 실패할 수도 있어. 그때 실망한 카게야마의 시선을...난 감당할 수 없어. ]


가만히 얘기를 듣던 엄마가 웃음기를 띈 얼굴로 나츠에게 질문했다.


"그럼, 나츠는 니가 왜 그러는거 같아?"


나츠는 배시시 웃으며 안그래도 빨간 볼을 더 빨갛게 붉히며 말했다.


"왜냐면, 나츠는 호타로가 좋아!"


     [ 하지만 카게야마에 대한 고민은? 애초부터 왜 고민하는지, 카게야마에 대한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건가? ]



히나타는 삼켜지지 않는 입속의 밥을 겨우 넘겼다.


"잘 먹었습니다."


반쯤 남은 밥그릇을 엄마가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더 안먹어? 배구하고 와서 배고프잖아, 히나타?"


"응, 오늘은 벤치에 있어서 괜찮아. 나 들어갈게."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히나타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말도안돼, 내가? 카게야마를? 헛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왔다. 


히나타는 무거운 발걸음을 더이상 옮기지 않고 바로 침대위로 몸을 뉘였다. 


처음엔, 단지 천재라고만, 부러운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중학교 처음이자 마지막 시합에서 그 녀석이 속한 팀에 완벽히 패배한 후로, 꼭 뛰어넘겠다고 생각하던, 자신이 마음대로 정한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오게되고, 같은 팀의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히나타는 표정을 찡그렸다.


백보 양보해서 자신이 정말로 카게야마를 좋아한다고 치자. 그럼 뭐? 뭐가 되는거지?


나는 계속 카게야마가 신경쓰여서 토스도 제대로 못 받을거고, 레귤러에서 제외될거고, 결국 대회엔 나갈 수도 없게 될거야.


그렇다고 고백을 하란말이야? 카게야마가 알겠다고 하겠냐구, 더러운 녀석이라고 생각할거야. 나랑 더이상 배구를 하지 않겠다고 할거야.


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 밑이 퀭해진 히나타의 결론은 하나였다.


카게야마를 무시하자. 그럼 더이상 감정이 커지지도 않을거고, 평소처럼 배구를 하게 될거야.


나름대로의 최선책을 생각하며, 히나타는 등교길을 나섰다.







"히나타, 무슨일 있는 걸까? 요즘따라 계속 이상한 거 같아."


걱정이 가득 담긴 스가와라의 목소리에 옆에서 다이치가 사주는 고기만두를 먹고있던 노야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무슨 일 있는걸까?"


큰 덩치와는 다르게 꽤나 세심한 아사히가 말했다.


"그러게, 걱정이네." 그 말을 다이치도 공감하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런 대화를 들으며 걷던 츠키시마가 예의 그 말투로 툭 던지듯 말했다.


"왕이랑 싸운거 아니에요? 그렇게 단순한 꼬맹이는 원래 단순한 일에 쉽게 풀 죽는 법이니까요."


"역시 그런걸까...계속 카게야마를 의식하는 것 같긴 했지만.."


스가와라의 중얼거림에 걸어가던 모두가 슬쩍 뒤를 돌아 자신들을 따라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는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모습을 보았다.


카게야마는 양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입을 꾹 다문채 걷고 있었고, 히나타는 그 옆에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갔다. 물론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로.


둘에게서 저런 어색한 분위기는 본 적이 없다. 만약 츠키시마의 말 대로 둘이 싸운것이라면, 따로 떨어져서 걷거나 둘 중 하나가 먼저 집에 갔을텐데, 아무말 없이 함께 걸어내려오는걸 보면 싸운건 아닌 듯 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계속 히나타랑 카게야마의 상태가 이상하면 앞으로의 시합에도 지장이 될 텐데."


다이치의 말이 맞았다. 현재 카라스노 공격의 주축은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괴짜속공.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없이 믿을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히나타는 자신에게로 올곧게 토스가 올 거라는 믿음을, 카게야마는 자신이 보낸 토스를 반드시 칠 수 있을것이라는 믿음을.


다이치의 걱정어린 말이 무색하게도, 그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다음날의 연습. 배구부가 둘로 팀을 나눠 시합을 시작했다.


카게야마와 스가와라. 두명의 세터로 팀을 나누고, 시합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앞쪽에 나와있는 히나타가, 자신들의 코트쪽으로 넘어오는 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이치의 안정된 리시브로 그 공은 카게야마에게 날아갔고, 그는 누구에게 토스를 올릴지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쓸 수있는 스파이커는 히나타와 아사히. 하지만 아사히에게 지금 이 공을 올리기엔 거리가 멀어 어려울 듯 했다.


모두가 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히나타에게 속공을 쓰자는 듯 쳐다보았고, 히나타는 그 시선을 느끼고 시선을 공에서 카게야마로 돌렸다.


지금, 지금 뛰어나가면 스파이크를 날릴 수 있다- 라는 강한 생각이 히나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손에 묵직하게 들어오는 공의 차가운 감촉. 스파이크를 날린 후의 쾌감. 상대편이 공을 올리려다 실패했을때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통쾌함까지.  



'하지만, 난 못하겠어.'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토스를 달라고 외치며 나가다가, 혹시나 카게야마가 올려준 토스를 실패할 수도 있어. 그때 실망한 카게야마의 시선을...난 감당할 수 없어.'


공이 날아와 한번의 리시브를 통해 세터에게 가는 아주 짧은 몇 초였다.


그 짧은 시간에,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서로를 마주보곤 깨달았다.


'저 토스로 난, 속공을 칠 수 없을거 같다.'


그리고, '저 속공에 필요한 토스를, 난 보낼 수 없을거 같다.'


결론은 하나였다. -서로를 완전히 믿을때 가능해지는 그 속공을, 이제 우리들은 쓸 수 없다.


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똑같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알았다.


히나타는 토스를 외치려던 입을 닫고 뒤로 물러났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올리려던 토스를 뒤의 아사히에게 올리기 위해 공의 위치를 좀 더 높게 잡았다.


서로가 서로의 비겁함과 약함에 굴복하며, 또 자책했다.


그리고 그렇게 후회와 비겁으로 얼룩진 연습시합은, 스가와라 팀의 승리로 끝났다.







"다음주의 연습경기가 정해졌다. 현내 순위 6위. 요즘들어 강세를 보이는 팀이야.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하도록."


우카이 코치의 연습경기가 정해졌다는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


"요즘들어 연습경기가 많이 잡히네요?"


"또 선생님이 여기저기서 무릎이라도 꿇으신거 아닐까?"


"이제 그런짓은 안한다니까, 노야군? 우카이 코치님의 소문을 듣고 먼저 연락해오는 학교들이 많아져서 그래!"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히나타는 침울했다.


'난 노야선배처럼 리시브를 잘 하지도 못하고, 아사히 선배처럼 강한 스파이크로 블록을 뚫지도 못해. 그렇다고 츠키시마처럼 키가 커서 블로커를 할 수 있는것도 아니야.'


그런 히나타를 카게야마가 흘긋 쳐다보았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건 미끼가 되는 것 뿐인데, 그것조차 지금은 불가능해. 난 이제 카게야마의 토스를 믿고 속공을 칠 수 없으니까.'


카게야마가 고민하는 히나타의 표정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쓸데없이 기운이나 빠져가지곤.'



그때 스가와라가 카게야마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히나타랑 무슨 일 있었어? 요 며칠동안 계속 이상해서, 좀 걱정이 되서 말이야."


"저도 궁금합니다. 갑자기 피하기나 하고."


"그렇구나, 너도 모르는건가..."


"만약, 연습경기전까지 계속 히나타가 속공을 쓰지 못하게 되면,, 우카이 코치는 히나타를 주전멤버에서 제외시키겠죠?"


"응, 솔직히 말해서 히나타가 지금 레귤러인 이유는 너와 같이 쓰는 그 속공때문인게 가장 크니까.."


"역시..."


"그런데 무슨말이야? 속공을 쓰지 못하게 되면? 지금 속공까지 쓸 수 없다는 말이야?"


".....제 판단으론, 현재...그런거 같습니다. 저랑 히나타 둘 다요."


"말도 안되는..."


"제가!"


"...?"


"제가, 히나타랑 잘 말해보겠습니다. 아직, 아직 코치에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응, 나도 그럴 생각이였어. 이 상태에서 레귤러가 아니라는 소리까지 들으면, 히나타 정말 슬퍼할 거 같으니까.."


"감사합니다, 선배."


"음, 아니야. 늘 밝았던 애가 풀죽어 있으니까 모두 걱정하고있어, 잘 말해봐."


"네."






연습이 끝나고 나오니 별이 몇군데 박힌 어두운 밤하늘이 히나타를 반겼다.


풀린 신발끈을 매려 뒤돈채로 오른을 계단에 올리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옆으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 카게야마다. 


역시나, 고개를 들지 않고도 누군지 알 수 있다니. 좋아한다는걸 직접적으로 깨닫고 나니까 더 잘 느껴지는게,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한 손에 배구공을 들고 자신을 쳐다보는 카게야마였다.


히나타는 관심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여 마저 신발을 정리하며 말했다.


"뭐야, 왜?"


카게야마는 그런 히나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히나타가 끈을 다 묶을때까지 기다렸다.


조급한 감정이 든 히나타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엉성하게 신발끈을 묶고 황급히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카게야마의 대답을 재촉했다.


카게야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외였다.


"연습, 더 하자."


"..뭐?"


"우리, 아까 못했잖아. 속공."


계속 마음에 걸렸던 문제가 카게야마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못한게 아니야, 일부러 안한거잖아, 우리."


히나타의 까칠한 대답에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연습하자고. 다시 한번."


"..."


히나타는 갈등했다. 지금 이대로 카게야마를 무시하고 집에 가고싶기도 했지만, 남아서 연습을 더 하고 싶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배구에 대한 애정으로, 히나타는 알겠다는 듯 카게야마와 함께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미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진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배구공을 손으로 몇번 돌리며 히나타가 코트 앞에 오는것을 기다렸다.


히나타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카게야마가 하는 행동을 쳐다보며 그 앞에 섰다.


"스파이크 연습하기 전에, 랠리 먼저 하면서 몸 풀자."


"아, 응"



카게야마는 마저 공을 돌리고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곤 거센 스파이크로 히나타 쪽으로 공을 쳐냈다.


히나타는 그 공을 리시브로 받고는 다시 카게야마쪽으로 보냈다.


그렇게 몇번을 반복하던 차였다.


카게야마가 공을 던지며 히나타에게 물었다.


"너, 요즘 왜 상태가 이상하냐?"


히나타가 아슬아슬하게 공을 받으며 대답했다.


"알거 없잖아, 별로 아무렇지도 않다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까보다 더 세게 공을 던졌다.


"말 하고 싶지 않으면 딱히 캐물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경기에 지장을 주진 말라고."


날카로운 카게야마의 지적에 히나타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비밀을 들킨 듯 버럭 화를 내며 맞받아쳤다.


"....니가 그러니까!!"


카게야마가 큰 소리에 놀라며 다시 공을 던지려던 손을 멈췄다.


"...?"


"니가 그러니까- 내가 말 안하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씨근덕 거리는 히나타의 목소리에 카게야마가 당황해 하며 공을 손에 들고  주춤, 한걸음 다가왔다.


"오지마!"


히나타는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눈을 팔로 냅다 가리며 뒷걸음질쳤다.


"가까이 오지마, 말도 걸지마! 쳐다보지도 마!"


히나타의 눈물 섞인 소리에 카게야마는 가만히 서서 히나타를 쳐다보기만 했다.


"연습 끝나고 나 기다리지도 마! 내 걸음 맞추려고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마! 만두도 나눠주지마!"


"....."


"시합 끝나고 물도 챙겨주지마! 츠키시마가 놀릴때 대신 화내주지도 마! 잘 했다고 칭찬도 해주지 마!"


"야, 너...."


"끝까지 들어!! 니가 나한테 지금까지 했던 모든 행동, 이제 다 하지마!"


"......."


"계속, 계속 그러면....기대하게 되잖아?"


카게야마는 이젠 엉엉 우는 소리를 숨기지도 않고 내뱉는 히나타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기대하게 하지 말란 말이야...그냥, 그냥 배구만 같이 하면 되잖아..? 왜, 왜 자꾸 날 기대하게 만드는데? 니가 뭔데!"


히나타는 눈을 가리던 팔을 내리고 똑바로 카게야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니가..니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다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지 마, 이젠 이런걸로 고민하기 싫어!"


얼마나 세게 문질렀는지 눈가가 빨개진 히나타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보고,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쉬고 배구공을 바닥에 놔 두었다. 그리곤 히나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지 말라고 말했잖-"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히나타의 앞에 서서 두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놓고-"


"이제 내가 말할거야."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말에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를 올려다 보았다. 카게야마는 까만 눈으로 히나타를 응시하고 있었다.


"생각해봐, 내가 왜 너한테 가까이 가는걸까?"


"그야..."


"왜 내가 연습끝나고 널 기다리는데? 내가 왜 니 걸음 맞추려고 자전거에서 내려서 걷는데? 왜 만두도 나눠주는데?"


"카, 카게야마..?"


"왜 시합 끝나면 니 물까지 챙겨주냐고? 누가 너 놀릴때 대신 화내주냐고? 왜 잘했다고 칭찬하냐고?"


"...."


"그걸, 넌 몰라서 물어?"


카게야마가 이빨을 꼭 깨물며 신음처럼 흘린 말이었다.


"왜 기대하게 만드냐고? 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냐고?"


"...."


"당연히..."


"....."


"당연히 널, 좋아하니까 그런 거잖아?"


"..뭐?"





믿을 수 없었다.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믿고 싶었다.


히나타의 숨소리에 간간히 기침이 섞여나왔다.


"거짓..말..."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한 행동을, 니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잖아."


"그럴리가 없잖아, 왜냐면..."


"그럴수도 있어, 멍청아. 너도, 알잖아."



아직까지 자신의 두 어깨를 잡고 자신을 쳐다보는 카게야마의 시선을 히나타가 주시했다.


"나도.."


"...."


"나도, 좋아해.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말을 들은 순간 히나타의 어깨를, 등을, 허리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카게야마의 가슴부근에 히나타의 얼굴이 닿였다.


쿵,쿵,쿵,쿵. 빠른 심장소리에 히나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래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의 허리를 감쌌다.


히나타는 나즈막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 바보가, 빨리 좀..말해주지."


"원래 이렇게 말 안하려고 했다고, 멍청아."


카게야마도 얼굴을 붉혔다.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끌어안고 있는 장소위의 가로등이 팟, 하고 켜졌다.


그제서야 둘은 자신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히익!"


"헉!"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땅으로 쳐박을 듯 푹 숙였다.


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의 어색함이 둘의 사이를 가득히 메웠다.



카게야마가 먼저 어색함을 깨고 말했다.


"그,그럼 우리..사귈까?"


히나타도 터질듯한 볼을 두손으로 가득 감싸쥐며 대답했다


"그러던가, 멍청아."



카게야마가 자신의 볼을 감싸쥔채 어떤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히나타를 슥 쳐다보더니, 그 앞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았다.


"아까부터, 되게 거슬렸어. 신발끈."


카게야마는 히나타가 엉성히 급하게 묶는 신발끈을 풀어서 다시 꼼꼼히 묶었다.


히나타는 시선을 내려다보면 바로 보이는 카게야마의 까만 머리카락을 쳐다보았다. 믿기지않아, 라고 중얼거리면서.


"자, 다시 묶었어."


신발끈은, 꼼꼼히 매듭지어져 있었다.


카게야마가 일어서서 히나타의 손목을 탁, 잡았다.


"이제, 집에 갈까."


"...응"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볼을 붉히면서도 손목은 놓지 않은채, 자전거를 세워둔 장소까지 함께 걸어갔다.









다음날, 체육관에서는 뭔지 모를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저 둘, 화해한 걸까요?"


"화해 수준으로는 안 보이는데, 뭐지?"


"그러게, 그래도 되게..."


"응, 즐거워 보이는데?



부원들의 눈에 비친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얼굴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띄운채 토스를 띄우고, 그 공을 치면서. 하나가 성공할 때마다 손벽을 짝-소리나게 마주치고 있었다.



"저거, 이제 히나타 괜찮아 진거 맞지?" 아사히가 그래도 걱정되는 듯 물었다.


"당연히!" 노야가 허리에 한 손을 올리고, 한손으로는 배구공을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츠키시마는 그 옆에서 중얼거렸다. "왕이랑...애완동물인가."


그 말을 들은 스가와라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왕과 애완동물보단,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바보랑 멍청이로 보이는데?"








THE END




[쿠로히나] 볕





이 지역으로 발령난지 어언 6개월이 지났다. 발령났을 당시 쌀쌀하기만했던 날씨는 벌써 탐스러운 열매를 내보이며 푸른 숲을 이루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창 밖에 들려오는 지져귀는 새와 울어대는 곤충들 사이로 환자 리스트를 붙들고 끙끙대는 까만머리의 한 남자가 그곳을 지키고있었다. 



외진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끊이지 않았으며 시골 촌 동네라 제대로 된 도구는 갖춰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이 크지도 않은 병원에 사람이 이리 많아 진것은 아마 석양을 품은 듯이 붉은 머리를 가진 이 소년 때문에 일것이다.



첫만남은 그리 유쾌하지않았다. 한 의사가 체구가 작은 소년을 병원으로 데려왔었다. 보호자는 데리고 왔던 의사 명의로 되있었다. 아들인가? 하는 궁금증에 그 소년을 보았다. 하지만 닮은 구석이란 눈을 뜨고 보아도 없었뿐더러 종이에 소년의 성은 적혀있지 않았다. 계속된 저의 시선이 신경쓰이는지 길들여지지않은 동물마냥 으르렁거리며 저를 경계하는게 그 또래 아이들에게 흔히 보여지는 모습은 아니였다. 보통이면 병원이란 이유로 벌벌 떨며 울어재끼든가 하며 저를 곤란하게 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소년의 경계를 무시하며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가져가 댈 때였다. 말리는 의사와 건내지는 손을 보자 이로 덥썩, 아무 말성임 없이 소년은 저의 손을 물었다. 것도 아주 세게, 피가 날정도로. 유쾌보단 최악의 첫만남이라는게 어울렸을듯한 이야기였다. 



담당의사가 아닌지라 소년에대해서는 잘 아는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모르게 쌓이는 호기심에 몇번이고 안된다는 소년의 담당의사와 바꿔치기하며 소년을 돌봤었다. 물론 소년은 그때마다 이를 숨기지 않으며 으르렁 거리고 저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마저 쩔쩔맬 지경이였다. 언제였을까 소년이 마음을 열기 시작한건. 고된 일 때문에 몸살이 나 몇일간 병원에 일을 못한적이있었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닌 고작 이틀. 그 시간안에 소년이 저를 대하는게 달라졌다. 


"아..파써?"


어눌린 발음은 소년이 저에게 처음 내보인 호의의 말이였다. 물릴것을 알면서도 그때 당시는 그 작은일이 행복하여 소년을 꽉 안았다. 머뭇거리며 손을 어찌둘지 모른채 우왕자왕하던 소년은 곧 저가 한것처럼 등을 어설프게 안았다. '쇼요..가 무...러서..' 조금 울먹이는것도 같은 소년의 어눌린 말에 고개를 저었다. 꼬맹이는 잘못하지않았어. 그 한마디가 소년에겐 큰 여파가 되었는지 어깨죽지가 점점 축축해져왔다. 나는 그저 말없이 소년의 작은 등을 토닥여줄 뿐이였다. 



쇼요와 함께한지 3개월. 처음엔 작은 키와 왜소한 몸짓을 보고 14살이라고 생각한걸 알았더라면 소년은 그때 만났을때처럼 물어대지 않았을까. 담당의사에게 흘러가는 투로들은 17살이란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한참 성장기라 하루하루 쑥쑥 커가는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소년은 성장이 멈춘듯 여전히 그 키에 머물렀다. 소년도 내심 걱정이 되는지 요즘엔 우유를 마셔대며 특유의 어눌인 발음으로 키클꺼라는 굳은 다짐을 했다. '쿠..로보다..크거아..!' 항상 나를 올려다보는게 그리도 분한지 씩씩대며 저를 볼때는 언제나 손에 우유곽이 들려있었다. 그래그래, 무럭무럭 커라? 소년의 부시시한 머리칼을 흐트러놓고 씩 웃자 소년은 버럭 화를 내며 내 팔을 장난스레 물었다. 그것은 처음의 악의넘친 행동이아닌 자신의 김정을 제대로 표현 못하는 쇼요의 애교라는것은 후에 안 사실이였다. 



이른 새벽.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간의침대 위에 누워 배를 짚은채 끙끙대는 소년에 놀라 담당의사가 급히 모든 의사들을 불렀다. 모두라고해도 겨우 4-5명 남짓의 의사들이였다. 초조하게 차트를 넘기던 담당의사는 쇼요가 병원 외의 음식을 먹았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한 의사는 의기소침하게 손을 살짝 들더니 '우유를.. ' 이라고 말하자 담당의사는 이마를 짚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마 그것때문에 쇼요가 장염에 걸린듯 합니다. 쇼요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화학물질이 첨가된 물질등에 약하오니 앞으로는 병원에서 나온 음식외에 먹이지마십시오. 자기 할말만 하곤 획하니 돌아간 담당의사를 나는 멍하니 쳐다볼수밖에없었다.



몇일사이에 수척해진 소년의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었다. 새근새근 잠자는게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곤히 잠이든 소년의 얼굴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닫혀서 보이진않지만 태양을 담은듯이 생기넘치는 노을색의 눈동자, 조금 낮지만 그것 나름대로 귀여운 코, 오밀조밀 저를 부를때마다 사랑스럽게 벌여지는 붉은 입술. 마지막이라도 되는냥 그렇게 나는 소년의 얼굴을 까만 눈동자안에 깊게 담았다.



[그러면 빠른시일 내에 이곳을 떠야겠군요. 네, 물론 잘 알고있습니다. 그럼 쇼요를 데리고 그곳으로 갈터니. 네. 네 알겠습니다.]

달칵. 하는 수화기가 내려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쿠로오는 숨을 내뱉었다. 환자 리스트를 놓고와 다시 진료실에 들어갈때였다. 살짝 열려진 문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했더니 바로 쇼요의 담당의사였다. 누군가와 말하는지 몰라도 쇼요를 어디론가에 데려갈것이라는갓만은 직감으로도 느낄수있었다. 성이없는 아이. 유난히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몸, 다른 또래에 비해 약한 장과 위, 그리고 보호자 명의가 의사의 명의로된 부모없는아이. 생각해보면 쇼요에대한건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했다. 툭히면 옷을 벗고 맨발로 병원을 거닐고. 마치, 짐승마냥 말이다.



새벽2시. 시계바늘의 째각이는 소리가 고요히 울려퍼지는 적막만이 가득한 복도에 뚜벅뚜벅 구두와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빛조차 들어오지않은 복도에서 검은 인영이 소리를 죽이며 걸어간곳은 202호. 쇼요가 입원한 방이였다. 달칵 하는 소리와함께 열어진 문 너머에는 소년이 자는지 불룩하게 튀어나온 이불이 보였다. 검은 인영은 얼른 소년이라 추정하는 것을 이불채로 들어올려 어깨에 매달곤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입을 막은 손을 떼자 소년은 못 뱉은 숨을 내뱉었다. 한참 자는중이였던 소년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않자 쿠로오는 한숨을 쉬며 소년의 귀볼을 씹으며 귓속으로 바람을 불었다. 이상한 촉감에 소름이라도 돋았는지 벌떡일어난 소년은 귀를 잡으며 쿠로오를 삿대질했다. 'ㅋ..쿠로 너..너..' 어버버 거리며 당황하는 소년에게 능글맞게 웃어준 쿠로오는 문너머로 들리는 뚜벅거림에 상황을 이해하지못한 소년을 내리 끌어 침대밑에 함께 숨었다. 이게 무슨짓이냐고 따질려듯 입을 벌리는 소년때문에 입을 막는것은 추가로. 


달칵하는 소리와함께 열린 문 너머엔 쇼요의 담당의사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곤 재빨리 침대에 다가와 베개를 이용해 이불로 둘둘감아 두툼하게 만든 그것을 어깨에 매달곤 서둘러 그곳을 떴다. 한숨을 내뱉으며 쇼요의 입을 막은 손을 떼자 뻘거진 얼굴로 숨을 들이쉬며 눈물맺힌 눈으로 저를 노려보았다.


"이게..무스..지..ㅅ"


검지손으로 쇼요의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란 제스쳐를 보이자 입을 삐쭉이며 투덜거린 쇼요는 그런대로 말을 들었다. 씩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어깨를 움츠린 쇼요는 '그르릉' 짐승이 낼법한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자, 쇼요. 우리 산책갈까?

 


쇼요의 작은 손을 꽉 잡은채 깜깜한 풀숲을 걸었다. 의사가 들고간 그것이 쇼요가 아니라는걸 들키는건 시간 문제였다. 계속하여 병원에 있다간 언제 잡힐지도 모르며 무엇때문에 의사가 쇼요를 이곳에 데려왔는지, 왜 다시 어디론가 보낼려는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쫒기는지 또한 내가 모르는것 투성이였다. 지금 내가 할수있는일은 턱을 타고 내리는 땀을 옷소매로 닦으며 한발,두발 전진해 나가는것 뿐이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늑대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에 흠칫, 멈춰있자 쇼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르켰다. 


"엄..마?"


쇼요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듯이 곧 바로 들리는 늑대의 울음소리에 소요는 소리가 나는 그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따라 뛰어가며 쇼요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쇼요는 연신 '엄마..엄마' 중얼거리며 민첩하게 뛰어가다 신발을 벗어던지며 네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넘어갈지경이 되도록 쇼요를 따라가보았지만 쇼요는 점점 멀어져 점으로 보일시점이였다. 그때였다. 탕, 하는 총성과 퍼덕이며 날라가는 새들, 못 박힌듯이 그 자리에 멈춰있던 점은 흐릿해지며 풀썩이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허겁지겁 쇼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풀위에 누워 얉은 숨을 내뱉는 생명이 다리를 절며 피를 내뿜고 있었다.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머리가 둔해진건지 명색이 의사라는것이 치료는 하지 못할만정 쇼요의 손을 잡곤 더듬더듬 쇼요의 하얀 피부를 어루만졋다. 느릿하게 올라오는 작은 손은 자신의 손보다 큰, 거친 손등 위에 손을 얹곤 파르르 떨리는 입을 열었다.


"아..아파, 쿠로..오"


축축해진 손과 울먹이는 목소리에 쇼요의 몸을 꽉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몇번이고 쇼요의 귓가에 괜찮다는 말을 남겼을까. 풀을 지려밟는 소리와 함께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맞추지 말라고 하지않았습니까.


어두운 수풀사이로 모습을 드러낸건 사냥총을 들고있는 남자와 쇼요의 담당의사였다. 안경을 치켜올리며 쇼요의 다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보자 의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시선을 올려 저를 보자 '역시.' 하는 소리와 함께 제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혹시 쿠로오씨도 안건가요? 쇼요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걸"

"네?"


이마에 닿은 차가운 촉감과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말에 몸이 굳어버렸다.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은 하지않았다. 누가봐도 소년은 평범을 넘어선 행동을 줄곧 보여주었기에.


"쇼요가 사실 늑대에게 키워진 뭐 소의 말하는 늑대소년? 그거라고 해둘까요. 어느날 한 섬에 놀러갔다가 보았는데 말이죠. 정부가 이걸알면 어쩌겠어요. 연구하려 득달같이 달라붙으며 제 연구를 망쳐놓을게 분명한걸. 이것만 있으면 이딴 외진 병원이 아닌 명석높은 큰 병원에서 지낼수있을거에요."


돈에 멀은 눈엔 보이는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 말을 내뱉곤 배를 붙잡으며 시끄럽게 웃어댄 의사는 방아쇠를 쥔 손에 힘을 서서히 주었다. 하지만 쿠로오상은 이쪽 부류는 아니잖아요?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띄운 의사는 이성을 잃은 사람마냥 히죽거리며 제 이마를 툭툭쳤다.


"이제 곧 정부가 이곳으로 들이닥치는건 시간문제일거에요. 그러니 어서 죽어주시죠, 쿠로오씨"


침을 한번 꼴깍이며 겉눈치로 쇼요를 훑어보았다. 땅을 젖신 피와 아까와달리 창백해진 몸에 일단 쇼요를 빨리 치료할것을 요구할려했다. 입을벌리자 의사는 눈에 핏줄을 대빨 세우며 총으로 머리를 가격했다. 흐린한 시야와 따가운 이마에 피라도 난 것같았다. 어지러운 시야에 몸을 휘청거리자 사냥총을 들고있던 남자가 쇼요를 내 품안에서 끄집에 냈다. 안됀다며 손을 뻗자 의사는 발로 손을 즈려밟으며 총구를 다시 이마에 가져댔다. 잘가 쿠로오씨. 히죽거리는 웃음과 총구가 방아쇠를 당길때였다. 의사 몸에 하나,둘 생기는 빨간 점과 다가오는 수많은 발자국소리. 벌벌떨며 총을 떨어트린 의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수근거리는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새하얀 시야에 인상을 찌푸리다 뜨자 하얀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하얀옷을 보자 버릇마냥 눈을 움직여 한 사람을 찾으려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중에 그 한명은 보이지않았다. 


상체를 일으킨 소년에 주위에 있던 의사는 하나, 둘 다가오며 소년의 상태를 살폈다. 소년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들리지않는지 오로지 주위만을 둘러보았다. 급기야 찾는것이 없자 소년은 그 큰 눈에 눈물을 매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쿠로..쿠로는 어디..ㅅ 어?"


어눌린 소년의 발음에 이해를 못하였는지 저희들끼리 수근거리던 의사들 중에 하얀 머리가 덥수룩하게 나있는 늙은 의사가 소년에게 다가왔다.


"너와 함께 있던 남자를 말하는것이니?"


남자? 남자가 뭐야? 내가 찾는건 쿠로야, 머리는 까맣고.. 머리가 이렇게 생겼어..! 손짓 발짓, 모든것을 사용하며 의사에게 자신이 찾는 사람을 설명한 소년은 볼을 타고 흘러넘치는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닦았다. 하..할아버..지 쿠로가..보고싶어.




쇼요의 담당의사는 그날부로 병원에서 모습을 보이지않았다. 아마 정부에게 대들은 벌을 받고있는게 아닐까. 그날 이후 큰 사건은 생기지않았다. 누구씨가 없어서 병원은 고요하며 평화로웠다. 지난 3개월동안 시끄러운 누구씨에게 적응이갔는지 이런 고요함이 지루하기 짝이없었다. 


정부가 쇼요를 데려간지 벌써 한달이 지난 시점이였다. TV에는 늑대소년이라며 쇼요에 대해 언급하는일도 차차 적어졌다. 휴게실에서 흘러가듯이 본 TV에 나온 쇼요가 낯설기 그지없었으며 잘 지내는지 또한 걱정이였다. 쇼요 생각에 한숨을 쉬며 복도를 거뉘자 간호가사 다가와 등짝을 쳤다. 


"의사가 이렇게 함숨셔도 되는거에요? 저 볼일있으니 잠깐만 데스크좀 부탁드려요!"


누가보면 저가 인턴인줄 알겠다? 퉁명스럽게 말하자 간호사는 속이 좁다며 다그치며 재빨리 어딘가로 사라졌다. 데스크 의자에 앉자 좁은 공간을 가득채운 사람들이 한가득 들어왔다. 멍하니 흘러가는 시계를 보고있자 '똑,똑' 데스크를 두드리는 소리에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였다.


"무슨일이세요?"


능글맞게 웃어보이며 물음을 건내었다. 데스크엔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라기보단 소년에 가까운 사람이 서있었다. 소년은 종이를 가르키며 작게 입원..이라고 말하였다. 종이를 건내주자 소년은 고개를 푹 수그리며 한글자,한글자 적어가기 시작했다. 보호자는 없는건가요? 또 물음을 건내오자 소년은 흠칫거리더니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손을 들어올리더니 저를 가리키며 말했다. 


"쿠로오, 보고싶었어..!"


이름:히나타 쇼요, 보호자:쿠로오 테츠로. 한달만에 보는 소년과의 재회였다.




 



피카딜리 서커스


[히지긴] 피카딜리 서커스




이 글은 실제 사건 잭 더 리퍼에서 모티브를 따 왔을 뿐, 실제 인물과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하늘 높이 솟은 탑과 안개 낀 런던 전역.


아침부터 가쁘게 왔다갔다 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빠르게 사람들을 헤치고 걸어간다. 남자가 건너는 성당에선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린다.


소년의 시간이 지나면 과거는 기억되지 않고 미래는 파편으로 인해 혼돈을 가져오리 아아, 제물이여.


남자는 노래를 듣는 자리에 멈춰 한동안 그 모습을 쳐다만 보다가 재빠르게 걸어간다. 커다란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걸음을 멈춘 곳은 다른 곳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주택 앞.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가 벨을 누른 뒤 은밀하게 집 안으로 몸을 감춘다.





술집 안 공기는 척 봐도 뿌옇게 변해 있어서,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였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 널부러진 사람들을 지나 가게의 구석으로 성큼 발을 옮겼다. 담배연기에 미약하게 다른 냄새가 섞여 난다. 술로 떡이 되어 널브러진 이들 중에 눈도 더러 풀려 헤죽 웃는 이들도 보인다. 아마 시중에서 암암리에 유통되는 아편을 폈으리라.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성큼성큼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는 나를 제지하려던 몇 인원이 머리색을 보곤 흠칫 길을 텄다. 중국식 발을 넘긴 뒤 냉장고를 옆으로 밀었다. 온통 붉은색 천지인 술집은 역시 머리가 아프다. 드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냉장고가 옆으로 밀리고 붉은 색의 문이 나타났다. 문고리를 돌린 뒤 문을 열면, 혁명가들의 실체를 보여주듯 말간 속살들이 부끄럼 없이 눈앞을 왔다갔다 거렸다. 겉만 거창한 혁명가들, 속은 썩어문드러진. 그 사이 한 손에 포커를 쥔 채 식 웃어 보이는 남자. 카츠라 코타로. 손에 든 종이 지폐를 대충 놈 앞에 던지듯 내려놨다.


"어어, 이게 웬일인가. 긴토키 아닌가. 그래, 드디어 혁명가들과 함께 할 마음이 생긴 모양이지?""모르는 척 빼지 마, 즈라. 물어 볼 게 있어서 왔으니까."


그제야 놈은 손에 들고 있던 포커를 내려놓고 나를 응시했다. 코트 안주머니를 뒤져 사진 몇 장을 꺼내 놈의 앞에 내려놨다. 놈은 덤덤히 사진을 보더니 입이 찢어져라 웃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사진을 툭툭 쳤다.


"역시, 내 자네가 이 건으로 올 줄 알았지. 잭 더 리퍼. 정말 우리 쪽에서도 골치란 말이야."

"잔 말 말고 대답이나 해. 네 놈 면상 주먹으로 버리기 전에.""기다리게, 안 그래도 의뭉스러운 점들 모아 놓으라고 이야기 해 놓았으니까. 자, 한 잔 하겠나?"

놈은 술잔에 가득 에일을 따라 건넸다. 나는 단숨에 술잔을 비운 뒤 놈을 응시했다. 곧이어 뒤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놈에게 봉투와 사진을 내밀었다.


"놈의 살해 방식에는 일정한 방식이 있어. 첫째, 자궁 말고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아. 그리고 둘째, 주말만을 이용해 사람들을 죽이지. 거기에 증거를 남기지 않아서 우리 쪽도 상당한 골치라고. 이거 원, 두 번째는 우리일 것 같아서 불안하단 말이지."

"즈라, 너는 너무 말이 많다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사실 이 건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물론 며칠 전에 나랑 잠자리를 가졌던 매춘부가 죽었다는 사실은 너무 슬프지만 말이네. 물론 과거에 자네와 내가 만나 활동했던 의리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경시청에서 우리 쪽을 너무 주시하고 있어서 말이네."



즈라가 웃었다. 곧 놈은 상관없다는 표정이 되더니 안에 든 파일들을 내게 넘겼다.


"오늘은 아무것도 받지 않는 건가?"

"대금은 됐고, 골치 아픈 녀석을 처리해 준다니 고마운 입장이거든, 우리는."

놈의 말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골치 아픈 녀석. 그것을 말하는 것은 비단 살인마 잭 하나만을 이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가 있는 듯한. 꾹 눌러 잠재워왔던 야수 본능. 그것이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즈라의 혁명가들이라면 골치 아픈 일 정도야 손쉽게 해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즈라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고, 내게 정보를 던져줌으로써 간접적으로 해치울 생각일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여전히 찝찝한 느낌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즈라, 네놈이 손대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모양이지?"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


성당에서 다시 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시간이 지나면 과거는 기억되지 않고 미래는 파편으로 인해 혼돈을 가져오리, 아아 제물이여. 긴토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카츠라가 문득 웃었다.


"소년의 시간이 지나면 과거는 기억되지 않고 미래는 파편으로 인해 혼돈을 가져오리 아아 창조주여. 우리 어릴 때는 참 많이도 불렀었지. 셋이서 참 즐거웠네만."


혼자서 주절주절 말을 마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던졌던 포커를 다시 들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대답 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건질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놈을 노려보며 가게 문고리를 잡았다.


"정말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는 모양이네, 긴토키."


놈의 끝말은 어쩐지 씁쓸함을 담고 있었다.





웅성대는 인파를 헤치고 사이로 들어갔다. 경찰들이 앞을 막은 채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해 놓은 채였다. 그들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들어가지 못하게 손으로 막았다.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 않을 테다. 주위 사람들이 내 머리색만 보고도 웅성이는 소리가 귀에까지 다 들릴 정도니까.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노려봤다. 난동을 부리라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이 일을 벌인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지카타."


사람이 양반은 못 된다고, 얼마 되지 않아 히지카타가 장갑을 벗으며 걸어나왔다. 뒤의 형사들에게 무어라 지시를 하던 놈은 나를 보더니 입을 얇게 벌리며 웃었다.


"어떠냐, 네 놈. 더 이상 현장을 들락날락 거리지 못 하면 현장을 뒤집어 놓을 일도 없겠지."


그리곤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얼굴에 놈이 입술을 가져왔다. 후. 가볍게 바람을 부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새하얘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이러는 것을 보면 놈도 악질인 것은 틀림없었다.


놈과 나는 현장에서 만나면 고양이와 개처럼 싸우기 바빴다. 으르렁대고 헐뜯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추리한 것에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그게 바로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인정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현장에서 쓰던 장갑을 벗고, 까만 가죽장갑으로 바꾼 놈이 다시 한 번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되게 악취미네요, 히지카타 경위님."

"시끄러, 네 놈. 불만 있으면 너도 여기서 꺼지던지."

"예, 예에. 거기 탐정 형님. 들어와요."

"소고."

"콘도씨 명령이거든요. 자신 있으면 경위님이 경감님 이기시던가요."


히지카타는 아니 꼽다는듯 다 태우지 못한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럼에도 내 얼굴에 연기를 뱉는 것은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곤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열어줘."

"재수없는 건 여전하네, 히지카타군. 나이 먹은 만큼 성숙해 졌으면 하는데 말이야."

"그건 당분 광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입맛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히지카타군 를 이야기 하는 거야.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은 늙은이 공경을 할 줄 모른다니까."


키득, 히지카타가 웃음을 터트렸다. 형사들 사이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려는 사이 따라 들어오려던 몇 인파를 막는지 형사 줄이 한번 출렁였다. 순간 뒤에서 누가 발을 밟아 넘어지려는데 무언가가 배를 잡고 단단하게 일으켜 세웠다. 묘하게 나는 담배냄새. 히지카타다.


"묘하게 재수없네, 히지카타군."


나는 말꼬리를 죽 늘였다. 히지카타는 아무렴 좋다는듯 웃으며 아무렴 말이야, 조심해야지. 하며 귓불을 핥았다.


"저기, 나는 호모는 싫거든."

"뭐라고 했나."


히지카타는 능청스럽게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이리저리 옷깃을 가다듬었다. 현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히지카타는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장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리고 내가 놈을 곁눈질 한 순간. 놈은 뜨거워 보이는 붉은 혀를 내밀어 제 입술을 슥 핥으며 웃어보였다.



현장 안은 정리 되어 시체는 남아 있는 것이 없고, 그나마 있는 것이라곤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물건들뿐이다. 그러나 이 물건들이 제 값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나도, 히지카타도, 콘도도 알고 있다. 당장에만 봐도 침통한 표정의 콘도가 피해자가 앉아 있었을 의자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여섯번째다. 사인은 모두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쇼크사. 보이나? 피해자가 얼마나 괴로워 했을지. 그리고 놈은 유유자적 카드들만 남겨두고 사라졌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나는 말없이 현장을 빙 둘러봤다. 살인마 잭 더 리퍼는 이곳을 단지 죽은 피해자의 시체를 보이게 하기 위한 장소로 밖에 사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의 없어 보이는 가구들. 역시, 핏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핏자국은?"

"전혀. 놈은 아마도 의사 일에 정통한 모양이야. 흔적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어. 옷을 다 벗기고 아랫배를 보는 순간 토기가 치밀더군. 배는 단정하게 꾀어져 있었고 자궁은 역시 없었다."


콘도는 품에 넣어놓았던 사진을 건넸다.


"봐, 손을. 저항하느라고 손톱이 다 부러질 정도야. 그럼에도 얼굴은 평화로워 보이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당히 악취미인 녀석이야. 혹시 해서 손톱이란 손톱은 낱낱이 조사를 해 봤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 치밀하지."

“그런데 이건?”“이건 여성들의 뒷목에 생긴 멍자국이야. 기절을 시킬 때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어.”


콘도는 한숨을 쉬었다. 바깥에서 사람들의 원성소리는 점점 커지는데 본인들의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니 죽을 맛 일 테다. 그는 안타깝다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안타까운 것이다.


"사실 경시청에서 이런 걸 부탁하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야. 그럼에도 네게 부탁하는 이유는 더 이상 국민들의 안전을 방조만 할 수도 없고, 네가 다른 탐정들보다 믿을 만하다는 토시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콘도를 응시했다. 콘도는 끝까지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이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난 그 제멋대로인 경위님이 원하는 대로 할 생각은 없어."

"비단 토시가 추천을 해서만은 아니야. 토시와 네가 부딪히는 동안, 네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이 사건을 피하지는 못 할 거야."

"어째서 그렇게 단정해?"

"토시와 엮이는 일이라면 너도 가만히 있지는 못하니까. 사실 형씨도 경쟁의식 느끼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반박 할 수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품을 더듬었다. 담배, 아. 맞다. 금연을 한 지 조금 됐었다. 그럼에도 사건을 맡게 되면 담배를 찾는 폼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왔다. 히지카타는 옆에서 품을 뒤지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담배 하나를 건네며 히죽 웃었다.


"어라, 이건 또 무슨 호의이실까. 히지카타군."


그를 보며 나도 히죽 웃었다. 히지카타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담배를 제 입에 물었다. 깊게 들이쉬는 소리와 동시에 연기가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상자 안에 놓인 도넛을 한 입 물었다. 탁자 위는 증거들로 너저분했다.


"그거 먹으라는 소리는 없었는데."

나는 먹던 도넛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쭉 빨았다. 히지카타의 시선이 입술, 손가락. 그리고 다시 입술로 향했다.


"멋대로 부려먹으면서 밥도 안 주는건 대체 어느 나라 예의야? 나는 말이야, 히지카타군, 듣고 있어?"


히지카타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담배연기를 쭉 들이킨 히지카타가 내 턱을 세게 움켜쥐곤 제 입술을 퍽 소리 나게 부딪혔다. 눈앞에 보이는 히지카타의 눈꼬리가 장난기 어리게 휘어졌다. 재수 없어. 이맛살을 찌푸리며 놈을 떼어내려는 순간 입 안으로 담배연기가 훅 들어왔다.


"뭐하는 짓일까."

"한 두 번도 아니면서. 처녀처럼 굴기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주 키스하기도 하고, 몸을 만지기도 했다. 그러나 섹스하지는 않았다. 히지카타는 여성을 좋아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 키스를 하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렇게 됐을 뿐이다. 나는 테이블 위의 증거들로 시선을 돌렸다.


"puer, tempus, praeterita, futurum, fragmentum. 이거 다…,"

"라틴어지. 처음부터 소년, 시간, 과거, 미래, 그리고 조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잘 몰라."


히지카타는 담배를 문 채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기들도 꽤 골치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런 일을 부탁한건 비단 흑심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놈의 얼굴을 퍽 때렸다. 맞으면서도 실실 웃던 히지카타가 다시 말했다.



“그 뒤에 나비무늬 보여? 아무래도 놈은 단순히 살인하는 재미에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닌 모양이야. 치밀하고 똑똑하지. 거기다가 의학적 지식 혹은 능력도 가지고 있어.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어. 놈은 자신이 하는 일을 전 세계에 드러나길 원해해. 본인의 표식을 보란 듯이 남기고 다니니까.”



히지카타가 웃었다.


“사실 이번 일을 해결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대개 이런 놈들은 본인의 실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증거 한, 두 개를 남기기 마련인데 놈은 그렇지 않았거든.”

“다츠마와 신스케를 만나봐야겠어.”



넓은광장을 지나 커다란 성당이 눈에 보였다. 거의 다 왔다는 뜻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 불안해 보이는 기색이 없었다. 아. 당 땡긴다.



“무조건 병원에 찾아간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놈이 의사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고.”

“내가 몇 가지로 추려봤어. 뒷목에 생긴 멍과 정교한 수술자국. 그리고 손 발이 묶인 피멍자국.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냐?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간 여성들이 최후에 한 발악이라고 손만 긁어댄게. 분명 놈은 수술에 아주 정통한 자야. 거기다가 저항한 흔적 때문에 생긴 손의 상처를 제외하고 피해자들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어. 그럼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 알고 있는 자의 소행이라는 소리야. 피해자들은 전부 매춘부, 그리고 같은 병원에 다닌 기록이 있지. 처음에는 아는 얼굴의 선생님이 따라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을 거야. 그리고 낯선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함을 느끼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을거다. 범인은 남자고 피해자들은 여자니까. 피해자들이 뒤로 돌아 도망치는 순간 놈은 피해자들의 목 뒤 급소를 노려 쓰러트린 뒤, 자신만의 장소로 옮겨 수술을 시도했을걸. 뒤늦게 깨어난 피해자는 이미 도망치려고 시도해도 손 발이 묶인 상태로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

“깨어나기 전에 해도 상관없는거 아닌가? 사람을 죽이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그래, ‘사람을 죽이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말이지.”

“그렇다면?”

“참 이상하지.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람이 있다. 그 중 보복복수는 가장 시체가 너덜너덜하고 역겹기로 유명해. 놈은 무언가에 보복하고 있는 거야. 놈의 시체는 약물살인, 자살을 제외하고 피해자들이 도망치려 상처를 낸 것만 제외하면 이상할 정도로 깨끗해. 그럼 놈이 원하는 건 뭘까?”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거 아닌가?”

“바로 그거야. 죽은 여성들의 몸에선 어째선지 약물 반응이 나오지 않았어. 아마도 놈은 여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즐겼을 거다. 마취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궁을 적출하는 동안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렇게 하면 여성들의 장기도 무사하지 못했을 텐데.”

“그래서 그저 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나, 의사라고 전부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놈은 오랫동안 수술실에 다닌 경험이 있는 의사일거라고 말해두지. 그렇게 몸을 뒤트는 여성의 몸에서 장기를 절묘하게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야매가 아닌 정석으로.”

“그건…,”

“맞아. 런던 병원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


히지카타가 바깥으로 담배를 훅 뿜었다. 보기 좋게 깐 머리카락이 뭉쳐 차 바깥으로 흔들렸다. 그리곤 창밖으로 담배를 튕겨 던지며 씩 웃었다.



“섹시한데.”


놈의 웃음에 마주 웃었다. 놈이 길가 주변에 차를 세우고 몸을 휙 돌렸다. 놈의 손이 우악스럽게 턱을 잡아당겼다. 나는 놈을 밀친 뒤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 까, 야."





“아, 이런 나 진짜 섰어. 너한테 욕 처음 듣는데. 목소리 죽인다.”



히지카타는 차를 운전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내 욕을 들은 놈은 놀랐다는듯 눈을 크게 뜨더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차가 제자리에 멈췄다. 런던 국립 병원. 잠시만. 놈은 차에서 까만 가죽장갑을 가지고 내렸다. 그리곤 익숙하게 그것을 손에 착용했다.


“그래봤자 폼 하나도 안 나거든, 히지카타군.”


히지카타는 말없이 어깨만 으쓱 거렸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병원 문을 열어젖힌 뒤, 앞에서 집무를 보는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타츠마 선생님이랑 신스케 선생님, 찾으러 왔는데요.”“어머, 웬일이람.”


여자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물었다. 여자의 눈동자는 옅은 갈색이었다.


“예약하시고 오셨나요?”

“아마 긴이라고 말하면 아실 겁니다.”


여자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여자는 누군가와 차분히 통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웃으며 하얀 종이에 메모를 슥 적어 내밀었다.


“아마 오 분쯤 뒤에 이쪽으로 가 계시면 나오실거예요. 타츠마 선생님께선 금방 나온다고 하셨고 신스케 선생님께선 하던 수술마저 하고 나오신다고 하시네요.”


여자는 힐끔거리며 곁눈질로 히지카타를 응시했다. 히지카타는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관심 있어 보이는 듯 한 눈치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인과 하룻밤 지내는 것을 뽐 낼 수 있는 무기로 여겼다. 거기다 히지카타는 동양인들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다. 검은 머리와 머리카락을 신비하게 여기는 서양인들 사이에서 히지카타는 단연 돋보이는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금상첨화일테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히지카타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은 씩 웃었다. 뒤에서 여성의 작은 소리가 들렸다. 오 마이 갓. 여성은 자신에게 웃어 줬다고 생각 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여성은 대충 손을 저었다.


“저기, 손님. 여기서 담배는…,”



놈에게 말을 건네는 간호사와, 놈을 쳐다보다가 히지카타를 지나쳐 걸었다. 히지카타는 여성의 말을 대충 마무리 한 뒤 빠르게 뒤로 따라왔다.


“그 사람들은 누구지?”

히지카타의 목소리에 궁금증이 묻어났다. 아는 사람. 나는 대충 대답한 뒤, 간호사가 말했던 장소로 가 앉았다.


“그렇다면 네가 아는 그 사람들도 살인자 용의에 포함이 되는 거겠지?”

“아니. 내가 아는 한 그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렇군.”


히지카타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담배를 빙빙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츠마가 웃으며 나타났다.


“하하하하! 이게 누구야, 긴토키아니야?”

“그럴 만 하군.”


히지카타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나타난 타츠마는 뒤에 간호사를 대동한 채였다.


“이거 싸인 좀 하고 가시라니까요!”

“아, 그랬지. 잠시만 기다리게!”


타츠마는 가운 주머니에 든 볼펜을 꺼내 아무렇게나 슥 싸인하곤 간호사를 돌려보냈다. 안경 너머 보이는 눈이 장난끼로 가득했다.


“왠 남자? 이런, 긴토키. 저 남자 딱 봐도 위험한 냄새가 풍기는데. 어쩐일로 온 건가?”

“이거.”


주머니를 뒤져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은 사진들과, 부검결과를 꺼냈다. 타츠마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히지카타와 나를 번갈아 응시했다.


“이거 설마…….”

“맞아. 살인마 잭 더 리퍼에 희생된 희생자들이지.”

“어이, 어이. 이런 건 아무한테나 막 보여줘선 안 된다고. 극비라고?”

“나한테 보여주는 건 괜찮고? 애초에 나한테 이걸 보여줄 생각이었으면 이 정도는 각오 했어야지.”

“하하하하! 그래, 이거 되게 정교하구만 그래.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는 거지?”“이 정도로 정교하게 장기를 적출 할 수 있는 사람은 권위 있는 의사들 밖에 없어. 그들 중 주말에 근무를 하지 않았던 자들, 또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자들 위주로 사람들을 추려 줘. 또 하나, 그들 중 네 친한 정신과 의사들을 통해 의사들 중에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람이 있나 확인 해 줘.”

“이런, 긴토키. 그런 사람들은 많다구. 이 넓은 병원에서 그런 사람들을 추려서 한 두명이 나오는 줄 아나? 거기다가 대부분의 의사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도 있고. 정신 치료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권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있어.”

“그럼 이걸 찾으면 되겠군.”

“…?”

“이 병원의 의사들 중에 정신과에 다닌 기록이 전혀 없는 의사를 찾아줘. 

“난 잠시 나갔다 오지.”


히지카타가 담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타츠마를 응시했다.


“그게 아니라면 유난히 튀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되겠지.”



타츠마의 알겠다는 대답과 다짐을 받고 난 뒤, 히지카타가 있을 차로 향했다. 유난히 길고 조용한 복도. 곧 다급히 이쪽으로 뛰어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멀리서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신스케다.


“긴토키.”


놈은 오랜만에 만난 날 보며 씩 웃었다. 어렸을 때 집 안에서 놀다가 상처를 입었다는 놈의 눈 한 쪽은 언제나 붕대로 감겨 보이지 않았지만, 항상 예쁘게 접히는 다른 눈을 보면 한 쪽 눈도 예쁘게 접혀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이런, 벌써 가는 건가?”“그렇지, 뭐. 나도 일이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다음엔 펍에서 내가 술 한번 쏠 테니 꼭 보자구.”

“”쏘는 술이라면 마다하지 않으니까.“



신스케는 웃음을 터트렸다. 놈과 인사를 하고, 걸으려는 순간 붉은 머리에 머리를 땋은 남자가 커다란 짐을 들고 옮기는 것이 보였다. 마치 짐짝처럼 그것을 들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와 신스케의 곁을 지나쳤다.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 남자, 가까이 하지 않는게 좋아.”


붉은 머리의 남자가 무어라 말했다. 순간 서 있는 이 자리에 모두 위화감이 들었다.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나를 지나쳐 걸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그래, 그러지.”

어쩐지 남자에게서 끔찍하게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신스케도 그런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나를 지나쳐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 거기에 든 물건이 뭔 지 좀 볼 수 있을까요?”


거기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기에, 나는 속에서 차는 의문을 품고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차 앞에 기대 서 있던 히지카타는 나를 보고 손으로 담배를 튕겨냈다. 저 정도면 상당한 골초다. 담배값이 비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히지카타는 손에 담배를 놓지 않았다. 담배값이 비싸다는 말은 그냥 한 번 해 보는 말임이 틀림없었다. 적은 나이의 히지카타는, 벌써 경찰의 간부자리 중 하나를 꿰차고 앉아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히지카타의 차에 몸뚱이를 들였다. 



“그래서 더 알아 낸 건?”

“놈이 상당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을 거라는 거.”

“어째서지?”


놈이 옆으로 힐긋 눈알을 굴려 나를 쳐다봤다. 놈이 사 온 사탕을 입에 굴리며 말했다.


“놈의 행동에는 강박증상이 보여. 자궁만 적출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놈은 그 행위를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거야. 그게 무슨 스트레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면 정신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아니, 정신과 기록은 찾아봐도 소용이 없을 거야.”

“좋은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건가?”

“맞아. 정신병은 기록이 남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었는데 그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집안의 큰 수치라고 생각하겠지. 그건 좋은 집안의 부모가 알고 있다면 그 사실을 소거 했을 테고, 모르고 있다면 티가 나지 않게 아는 사람을 통해 은밀하게 알아봤을 거야. 어렸을 때부터 약점은 남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배워왔을테고, 본인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 할 테니까. 놈의 행동에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보여.”

“그렇다면 이 카드들은 나 좀 알아달라는 뜻이겠군.”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이 돼. 나는 완벽하니까 이만한 힌트를 줘도 아무도 찾아 내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 또 하나는 네놈이 말 한대로 한 쪽으로는 나를 알아봐 달라는 애원의 의미 일 수도 있지.”









며칠째 놈과 같이 행동하는 나 자신에게 질려가던 참이었다. 나는 좌석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히지카타는 흐음, 콧소리를 내며 차를 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히지카타는 한 손으로 운전하며 전화를 받았다.


“이 봐, 경찰이 그래도 되는 거야? 죽는다고?”


히지카타는 듣는 둥 마는 둥 통화에 집중했다.


“이번엔 피카딜리 서커스라고? 망할, 이놈의 새끼는 휴가도 없나. 주말이면 좀 쉬어야 할 거 아냐.”


히지카타는 욕을 읊조리며 통화를 끝냈다. 나는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그는 정면을 응시하다가, 문득 떠오른듯 나를 응시했다. 마치 잊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아, 맞다.”

“여자 간호사랑 재미가 아주 좋으셨나보지, 그래? 일보다 재미있는 연애놀이라 이건가? 피해자들한테 미안해서, 원.”

“무슨 야. 이번에도 잭 더 리퍼 그 녀석이 왔다 갔단다. 이번엔 피카딜리 서커스.” 

“고놈의 잭 더 리퍼는 아주 꾸준도 하시구만 그래.”

“네놈이 말한 강박이라면 항상 시간을 일정하게 두고 살인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 테니까.”


놈이 차를 모는 동안, 나는 창 밖을 응시했다. 잭 더 리퍼는 대체 무엇을 말 하고 싶었던 걸까. 그 동안 차는 다리를 달려 사건현장에 멈췄다. 웅성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히지카타와 함께하던 경찰들이 몰려 있었다. 그 사이에 오키타는 사람들을 밀어내며 협박을 하던 참이었다. 놈과 함께 내리는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더니, 히지카타를 보곤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히지카타는 발끈한듯 놈에게 다가가 머리에 꿀밤 한 대를 먹이곤 현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때?”

“탐정형씨, 뭐 똑같죠. 증거는 하나도 없고. 나비 무늬가 그려진 카드가 놓여 있고.”

“콘도가 가지고 있나?”“그건 저한테.”


오키타는 사건 현장을 돌아보더니 기분나쁘게 웃었다. 히지카타를 물 먹인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오키타는 품을 뒤져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이번엔 creator다.


“소년, 시간, 과거, 미래, 조각, 기억, 그리고 창조주.”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그 사이에 히지카타가 곤란한 얼굴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히지카타에게 달려가 카드를 내밀었다.


“히지카타, 카드 어딨어?”“그거라면 콘도씨가.”


나는 놈의 말을 채 듣지 않고 사건현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콘도가 사건 현장을 지휘 하는 것이 보였다. 콘도를 붙잡고 카드를 내밀었다.


“탐정?”“이거 카드 다 줘봐.”

“그건 이미 다 봤잖아?”

“얼른!”


콘도는 급하게 카드들을 꺼냈다. 바닥에 흩어진 글자들이 일렬로 늘어졌다. 소년 시간 과거 미래 조각 기억 창조주.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소년의 시간이 지나면 과거는 기억되지 않고 미래는 파편으로 인해 혼돈을 가져오리 아아, 창조주여. 우리는 어릴 적, 개발이랄 것이 되지 않은 오지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성당에 다닐 적 성당에서 들려 준 노래를 곧이곧대로 따라 불렀다. 이 곳, 런던으로 오게 됐을 때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카드를 들고 밖으로 튕겨나오듯 뛰어갔다. 뒤에서 콘도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즈라의 곤란하다는 말투. 그것이 스쳐지나갔다. 아. 범인은 우리 넷 중 하나였다. 그리고 아마도 범인은,




히지카타는 뒤를 따라 달려왔다. 곧 차에 태워 런던 병원으로 가자는 내 말에 차를 몰았다. 이어 타츠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어, 긴토키 듣고 있냐?”“듣고 있으니까 말 해.”

“그게….”



타츠마는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말 해.”“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단 한명도 없었어.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진료를 받았는데…, 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의사가 있어.”

“뭔데?”

“동성애를 앓고 있고, 혼재성 삽화(우울증, 조증등의 정신질환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정신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가 있어.”

“그게 누군데?”

“신스케.”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말았다.



우리는 영국 중에서도 오지마을에 있는 일본인이나 그 혼혈이 모여 사는 마을에 모여 살았다. 주말이 되면 성당에 놀러갔고, 학교를 다니곤했다. 우리가 점점 커 갈 무렵, 신스케네 집안은 본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땅에서 많은 금덩어리들을 발견하게 됐다. 그들은 더 이상 이런데서 살기 싫다며 마을을 떠났다.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기를 희망했기에 그가 런던으로 가 버린 뒤, 어른이 되어 그가 살고 있을 영국으로 건너왔다.

우리는 수소문해 신스케를 찾았고, 신스케는 다소 수척해진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그는 한 쪽 눈을 잃은 채로 힘없이 웃어보였다.


‘사는 건 어때?’

‘지옥이지. 죽을 맛이야. 이대로 가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어.’


그 때 놈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소름에 돋을 정도로 강렬했으나, 우리는 그저 그것이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때의 놈의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았다.



“신스케.”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리에 고개를 파묻은 내 모습을 히지카타가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병원 앞은 이미 경찰들이 진을 쳐 놓은 듯했다. 놈이 자살을 시도하려한다는 한 형사의 말에 서둘러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미치광이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병원에 있다는 소리에 병원 사람들은 모두 대피해 병원 안의 상황을 기웃거리기 바빴다. 놈이 있다는 수술실로 향했다. 타츠마의 굳은 표정이 보였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수술실 안에선 신스케와 대치하고 있는 여러 형사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 사이를 헤치고 안을 들여다봤다. 깨끗하게 정돈 된 수술실이었으나 알 수 있었다. 포르말린에 담궈진 여성들의 자궁과, 기이할 정도로 찢겨진 수술침대가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주위를 훑어보던 신스케가 나를 알아보곤 입이 찢어져라 미소지었다. 뱀처럼 혀가 밀려나와 입술을 축였다.


“긴토키.”


놈은 말했다.


“나는 말이지, 내가 여자가 아니게 태어나게 한 신을 저주해.”

“타카스키.”

“그년들이 가진 자궁을 내가 가졌더라면 이런 더러운 짓은 하지 않았을거야.”


나는 그가 벌인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스케는 눈을 빛냈다.


“그 더러운 년들을 죽이면서 내 손을 더럽히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긴토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신스케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움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신스케는 눈을 크게 뜨더니 씩 웃었다. 무섭구나? 너, 내가 무섭구나? 그리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크게. 신스케는 곧이어 리볼버 하나를 꺼내 제 머리에 겨눴다.


“타카스키!”


나는 소리질렀다. 그러나 신스케는 무감정히 나를 응시했다. 그리곤 광기어린 눈을 빛내며 입이 귀까지 찢어져라 웃는 것이다. 마치 네게 나는 영원히 기억 될 수밖에 없을 거야. 라고 속삭이듯이. 그리고 놈은 내가 말리기도 전에 제 머리를 쏴버렸다. 유령? 아니,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후둑, 핏물이 방울처럼 얼굴에 번졌다. 형사들은 단숨에 밀고 들어와 신스케의 싸늘한 시체를 확인했다.




신스케는 희대의 싸이코패스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졌다. 귀족에 다가가 보려던 그의 부모님은 결국 신스케의 광기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비렁뱅이 신세가 되었다. 신스케의 마지막은 볼 낯이 서지 않았다. 그저, 타츠마의 말로 장례는 잘 치뤘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부유한 집안을 보고 왔다가, 그의 잔학무도한 이면을 보고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은 카츠라와 자신 뿐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어디론가 도망갔을 거라고. 그렇게 그들은 끝까지 아들을 욕보이며 사라졌다.




런던의 날씨는 비가 올 것처럼 꾸물꾸물했다. 온 몸이 텁텁하기도 했다. 나는 우산을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곧 비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여태껏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친다. 나는 우산을 깊게 눌러썼다. 히지카타를 만나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골목에서 누군가가 앞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우산이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서의. 나는 남자를 불러 세웠다.


“멈춰.”


남자는 우산을 쓴 채로 멈췄다. 나는 그 남자를 응시했다. 나를 스쳐지나가 한 발 정도 더 걸은 남자가 뒤돌았다. 웃는지 무표정일지 모를 남자는 입을 열었다.


“어라?”


남자는 나를 아는 것 같이 보였다.


“나를 모른 체 지나갔으면 섭섭할 뻔했어.”


남자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서, 왜 불러 세웠지?”

“너는 누구야?”

“누굴까. 나는 누굴까? 그냥 지나가던 사람? 너를 알고 있는 사람? 아니면-, 너와 관계된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

“너, 타카스키와 알고 있는 사이였지.”

“아. 그럼 당연하지! 그를 직접적으로 부추긴 것도 나였는걸.”


남자는 우산을 핑그르 돌렸다. 그리고 적막.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타카스키는 여성을 되고 싶어 했어. 남자를 좋아하는 자신이, 남자를 반대하는 집안이 너무 증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겠지. 런던 병원으로 아이를 낙태하러 오는 매춘부들을 보면서, 그 증오의 대상은 매춘부들로 바뀌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춘부를 통해 여신의 형상을 보고 있었던 걸 지도 모르지.”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나는 타카스키 신스케에게 네가 하고 싶은걸 해 보라는 충고밖에 하지 않았어. 정확히 말하자면 나도 어떤 남자에게 부탁받은 거라구.”

“어떤 남자?”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뿐만 아니라 몸뚱이가, 시야가. 나를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내가 아까 말했지?”


남자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입술이 쭉 찢어진게 못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와 관계된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무슨…,”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품을 뒤져 카드를 꺼냈다. 거기엔 나비 뿐 아니라 나비를 사냥하듯 감싸고 돈 연기가 보였다.


“내가 말했잖아. 그 남자,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키들키들, 남자의 웃음소리가 조롱하듯 울렸다. 나는 미끄러지듯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가까이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히지카타 토시로. 타카스키 신스케를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지. 그리고 곧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더 이상 아무도 없는 리전트 스트리트의 한 골목길에선 빗소리만 추적추적 귀에 가득 찼다.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듯 붉은 머리 남자의 멀어져가는 노랫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죄송해요.. 이거 씬 있게 쓰고 싶었는데 이걸 하루 만에 쓴다고 ㅠㅠ.. 씬은 두 편이나 TM느라 급하게 다닥다닥 썼네요. 거기에 알바 크리.. 내용의 끝도 사실은 원하던게 이게 아니었는데.. 혹시 나중에 수정하게 된다면 씬과 함께 ㄱㅈ에 다시 한 번 올릴 생각입니다. 일단 부디 즐감해 주세요.


썸머 카운트


[히지긴] 썸머 카운트


!




"아, 정말 더워 죽겠네."


참다 못해 목까지 잠군 와이셔츠 단추를 풀며 저 먼 허공을 응시했다. 바닥에 눌어붙던 아지랑이들은 헥헥대는 나를 놀리듯 흔들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지갑은 더위 덕분에 나날이 가벼워져만 가는데 이놈의 더위는 언제 물러갈 참인지 정말 자비 없이 등을 때린다. 죽는거 아닐까? 더위 때문에 죽는 거 아닐까? 결국 집을 얼마 남겨두지 못하고 가까이 보이는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안에서 들리는 나른한 목소리. 가게 안은 사람 하나 안 보이게 텅 비었다.


"어서오세요."


손님이 들어오길 바라는 목소리 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대충 땀을 식히고 가게를 빙 둘러봤다. 에어컨이 나오는 것 같기는 한데, 바깥의 날씨가 더 더운지 안의 날씨가 더 더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털털 거리며 돌아가는 고물 선풍기 한 대는 이미 아르바이트생이 차지하고 앉아 고개만 까닥인다. 아르바이트생은 옷으로 도배를 한 상태였다. 저럴 거면 옷을 벗는게 훨씬 나을 텐데.


"저기,"

"아, 예에. 잠시만요."


척 보기에도 탈색한 하얀 머리를 치켜들고 느릿느릿하게 계산대로 다가오는 폼이, 영 주문을 받기 싫은 모양이라 들고 있던 옷가지를 대충 아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아이스티 하나."

"예에, 아이스티 하나 말이죠?"

남자가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끓도록 더워보이는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만, 어디서 봤더라? 그 얼굴이 낯익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하얀 머리와 대조되는 붉은 눈동자. 광대뼈 부근엔 조그만 데일밴드가 붙여져 있다. 우스꽝스러운 딸기모양이다. 남자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퉁명스레 나를 슥 훑어보곤 주방 안으로 소리질렀다.


"아이스티 하나요! 그리구 거 참, 에어컨 좀 빵빵하게 틀면 안 돼요?"

"이놈 시끼가! 장사도 안 되는데 누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겠어? 돈도 날로받아 먹는 놈이."

"아니,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유? 손님이 오셨잖아요! 손님은 왕이다, 그것도 모른대유?"

“됐고, 얼른 들어와서 만들지 못 해?”


나는 그 작태를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내 행동이 본인만 선풍기를 쐬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땀 흘리는 내 낯짝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선풍기 코드를 뺐다.


"여기요."

"아, 예?"

"이것 땜에 쳐다보는 거 아닌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예에, 일단 앉아 계세요. 금방 나올 테니까."


남자는 선풍기를 빼주고서도 뭐가 불만인지 투덜거렸다. 꼬불거리는 흰색? 아니 은색의 머리가 고갯짓에 따라 흔들렸다. 주방으로 들어간 놈은 한참이나 덜그럭 거린 뒤에야 모습을 보였다.


"여기 아이스티요."


남자가 아이스티를 건넸다. 남자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던 탓에 그가 내미는 아이스티를 허공에서 헛손질했다. 남자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난데없는 실수에 온 몸의 열이 얼굴로 몰렸다. 남자가 말했다.


"저기요, 더운 것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건 알겠으니까 아이스티 좀 받아주세요. 팔 빠져요? 진짜 팔 빠져버린다구요?"


남자의 말에 아이스티를 한 손으로 받아들고 서둘러 옷가지를 챙겼다. 힐끔 쳐다본 남자의 가슴팍엔 긴토키, 한자 두 자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정말 닮았다. 그 하얀 머리색과 이름이 무척이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이스티를 쭉 빨아들였다. 특별 할 것 없는 밍밍한 맛이다. 야마자키가 집에 올 때마다 사 오는 아이스티 맛과 비슷하다. 한 번에 빨아들인 후 빈컵 안에 있는 얼음을 와득와득 깨물었다.


밍밍한 맛. 나는 빈 플라스틱 컵을 집어 던졌다.



“밍밍하네.”





아직도 더위가 기승이었다. 더운 카페 안에서 나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올 생각 전혀 없었는데. 괜히 사치고. 계집애들 같고. 그럼에도 나는 마치 여기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드나들고 있었다. 메뉴는 똑같았다. 밍밍하고 맛없는 아이스티. 그리고 만드는 것은 언제나 긴토키, 놈이었다.


“저기, 이제 다른 메뉴 시키면 안 될까요. 정말 귀찮은데.”

“아이스티로.”

“만들어 달라하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뭐 해 네놈! 만들 줄 아는 건 아이스티 밖에 없으면서 다른 메뉴를 말 해 달라고?”


주방에서 꽥꽥대던 할머니가 이윽고 놈의 귀를 붙잡고 주방에 집어넣었다. 놈이 만들 줄 아는 메뉴는 아이스티 단 하나. 그마저도 맛도 없고 놈의 컨디션에 따라 맛이 들쭉날쭉 하는 모양이라, 사람들이 찾지 않는 메뉴 중 하나였다.


“저기, 이런 거 즐겨요? 아무도 안 찾는 걸 왜 혼자 찾는대? 마조히스트? 혹시 M?”


놈이 불평하며 아이스티를 내밀었다. 나는 돈을 낸 뒤 자리에 앉아 놈이 하는 일을 응시했다. 오늘은 또 심각하게 달다. 나는 혀를 빼고 놈과, 주위의 여자들을 응시했다. 여자들은 놈을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곁에 붙어있기를 원했다. 놈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모두 긴토키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들이다. 허옇게 질린 피부와 화장 떡칠한 여자들을 번갈아 응시했다. 암만 봐도 놈이 더 하얗고, 눈부시다. 예쁜것과는 다르다.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쯤 되면 병이지. 암.”




나는 놈이 일하는 가게를 제 집 드나들듯 찾았다. 멀리서부터 내 머리카락이 보이면 놈은 주방 안으로 들어가 맛도 없는 아이스티를 잘도 타왔다. 어느 날 부턴가, 아이스티의 맛이 적당해지는가 싶더니 곧 적당하게 단 맛으로 바뀌었다. 사장 오토세 할멈의 말을 듣자하니 계속 카페에 와 맛 평가를 늘어놓는 내 행동을 자존심 상해하는 것 같았다. 사실 달든 달지 않든 상관없었다. 혀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달콤한 맛과 별개로 아이스티를 다 마시고 나면 남는 혀끝의 단 맛과, 그 단맛으로 남는 가슴의 여운이 기분 좋았을 뿐이다.


"눈 안 좋냐?"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눈을 문질문질 문지르던 놈이 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요새 좀 눈이 안 보이네. 흐릿한게. 잠을 못 자서 그런가."


확실히 놈의 얼굴이 피곤해보였다.


“오늘은 맛 어때, 임마.”


그동안 알아낸 사실은 나는 놈이 나보다 한 살 많다는 것과, 지금은 사정이 있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먹을 만하네."

놈이 힘없이 웃었다. 그러냐? 긴상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데, 짜기도 해라. 그러다가 벌 받는다. 요 녀석아. 그리곤 나른하게 의자위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것이다. 나는 그 얼굴을 가만가만 응시했다. 놈은 완전히 잠든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꼭 병 든 병아리 같기도 하다. 살인적인 더위, 선풍기에서 기분 좋게 부는 바람. 적당히 시원한 에어컨. 멀지 않은 거리에 미약한 숨소리를 내며 잠든 놈의 눈을, 코를, 입술을 쳐다봤다.


순식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나는 놈의 입술에 쪼듯 입술을 부딪혔다. 생경하게 느껴지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입술을 떼어냈다. 부스스한 얼굴의 긴토키가 뭐 해? 하고 물었다. 얼굴로 열이 몰리는 것은 찰나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가지를 챙겨들고 얼굴을 가리는데에 급급했다. 


"잘 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놈은 말했다. 나는 후다닥 가게를 뛰어나왔다. 쿵, 쿵, 쿵. 심장소리가 크게 뛰자 종국에는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괴로워졌다.




* *


"저기요, 히지카타 선배. 그 표정 정말 재수 없거든요. 징그럽거든요, 죽어."


재수 없게 쭉쭉 늘인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눈앞에 하얀색에 가까운 은발머리가 흔들리는 착각에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놈의 눈에는 그게 멍 때리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몇 주 전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소고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소고의 비아냥대는 말투에도 화가 나기는 커녕, 그제 일을 상기하며 다시 그 은발머리를 떠올렸다. 결국 도시락을 내팽겨치고 목도를 집어 들었다. 정신통일, 헤이해진 정신이 문제다.


"뭐, 죽은 첫사랑이라도 생각한대요? 아니면 애인이라도 생겼대요? 정신 빠져 보이는 모양이 꼭 오타에씨를 볼 때 콘도 부장이랑 닮았네요. 히지카타 선배한테 죽은 첫사랑이 있다면 그것도 우웩이지만. 우웩."

"뭐?! 그 정도는 아니지. 안 그러냐 야마자키… 어이, 왜 시선은 피하는데?"


시선을 피한다. 다른 부원들을 돌아봐도 마찬가지. 절망감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싸매쥐고 책상위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 정도로 답이 없을 줄이야.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생각해보면 긴토키도 남자고, 나도 남자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남자와 여자일때 성립되는 법이다. 뭐가 좋다고 같은거 달린 남자를. 재수없게 퉁명스러운 면상, 그리고 할아버지도 그렇게 머리가 하얗진 않을 거다. 그리고 눈동자. 눈동자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젠장."


빌어먹게도 그 눈동자를 생각하면 힘이 쭉 빠졌다. 그 눈동자 안에 비춘 나는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어디하나 여자 같은 구석도 없고, 표정도 퉁명스럽고. 말투도 고, 다정한 맛도 없다. 어째서. 


"히지카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데엔 이유가 없는 법이야."


옆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라 한 걸음 떨어지자 멍청하게도 웃고 있는 콘도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언젠가 오타에씨를 보며 짓던, 제발 그런 웃음은 짓지 않으면 안 되겠냐 타박을 놓았던 웃음이다.


"소고한테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건 다 그 녀석이 추측 한 거라구요!"

"그래? 히지카타는 남들보다 완벽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으니까 뭐 하나 트집잡히지 않으려는 건 알겠는데… 개인이 약한 부분은 약점이 아니란 말이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약점 중에 가장 큰 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인데, 그건 약점이 아니란 말이야. 그건 그냥, 본능적인거야. 당연 한 거라고."






자리에 서서 카페 안을 응시했다. 한 층 더위가 강해진 탓에 카페 안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그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긴토키가 보였다. 많이 움직여 더운지 옷은 훌렁훌렁 벗어 반팔 와이셔츠만 남긴 채다. 그 사이 놈은 손등이며 손가락에 가득 데일밴드를 붙이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며 돈들을 받는 손에, 창백한 얼굴에, 머리에, 그리고 눈동자로 시선이 움직였다. 여자들의 주문을 받으며 해사하게 웃는 표정이 여자와 남자의 갭을 보여주는 것 같다.


쨍그랑! 컵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긴토키가 놀란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옆의 여자들은 더 당황해 괜찮다며 긴토키를 다독였다. 이리저리, 길 잃은 아이마냥 안절부절 못하던 긴토키가 자리에 앉아 괜찮다 웃으며 깨진 유리조각들을 주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 도와주려 했으나 주위의 여자들을 뿌리치는 긴토키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긴토키와 여자들을 번갈아 응시하다 문손잡이를 손에서 놓고 말았다. 여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긴토키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 붉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들켰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 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목도를 쥔 채 달렸다. 카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등 뒤로 카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나와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그 내용까지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자리에 멈춰 서서 한참동안 뒤를 돌아봐야 할 지, 달릴지 고민했다.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목도를 쥔 채,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달렸다. 계속해서 달렸다. 긴토키가 나를 보며 더러운 호모 고 이야기 할 까봐. 화를 낼 까봐. 그게 두려워서 말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야마자키가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티를 내려놓으며 신발을 벗었다. 그 로고가 낯익었다. 긴토키네 카페 표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야마자키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아이스티를 사 가지고 오곤 했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들어 빨대로 아이스티를 빨아들였다. 어쩐지 아이스티 맛이 많이 달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내려놓았다.


"너 자주 여기서 아이스티 사먹냐?"

"아, 그건 아니고. 왜요, 선배님 집에 올 때마다 이거 사왔잖아요. 인상 찌푸리면서도 잘 드시길래 좋아하시는 줄 알고."

“아, 맞다. 그거 말씀하시니까 생각 난 건데 있잖아요, 여기 카페 있죠?”

“엉.”

“그 선배님 집 주위에 있는 카페에서 사 온 건데 갈 때마다 거기 아르바이트 하시는 형님 머리색이랑 눈 색이 너무 특이하더란 말이죠.”

“뭐?”

“이름이 뭐라나, 긴토키였나.”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야마자키의 시선에 괜히 옷을 툭툭 털며 앉았다.


“여튼, 눈색이랑 머리색이 너무 특이해서 뭐지, 하고 찾아봤는데 글쎄 그거더라구요.”

“그게 뭔데.”


음료 안에 마요네즈를 섞는 나를 질렸다는 눈으로 쳐다보던 야마자키가 대단한 사실을 말하는 사람처럼 내 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그러니까, 알비노요.”

"알비노?"

"네, 그 뭐라더라. 색소가 없고 피부가 약해서 조금만 센 햇빛을 쬐면 피부에 화상을 입거나, 각막 화상을 입는다고 하더라고요. 안됐죠. 피부암에 걸리기도 쉽다던데. 오늘 오면서 보니까 형님 안 계시더라고요. 물어보니까 못 나온지 며칠 됐다나."

"못 나온지?"

"에, 네. 그러니까 몸에 좀 심각하게 화상을 입었다던데. 그것 때문에 아르바이트 나올 때면 옷으로 칭칭 싸매고 오는 게 보통인데 저번엔가? 뭘 보더니 옷도 안 걸치고 갑자기 뛰어나가서 화상을 심하게 입었다던데요."


야마자키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머리에서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그 때.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 카페에 섰다. 붐비는 카페 안엔 어디서도 놈의 하얀 머리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오토세 할멈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왔냐?"

"할멈, 긴토키는?"

"병원에 있지 어디에 있어."

"괜찮아? 많이 다치진 않았대?"

"글쎄…, 걱정 되면 한 번 찾아가 보던지."


할멈은 종이에 주소를 슥슥 적어 내밀었다. 무어라 생각 할 겨를도 없이 그것을 든 채 서둘러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은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성큼성큼 뛰어 적혀진 병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고, 조용한 병실. 붕대를 감은 놈은 뒷모습을 보인 채로,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몸에, 머리에 둘러진 붕대. 나는 힘없이 비틀거렸다.


"왔냐. 부모님도 없고, 그나마 있는 거라곤 할머니 한 명 뿐인데 그나마도 가게를 봐야 하니 여기까지 오라고 하기는 뭣하더라. 생각나는 사람이 있긴 한데, 연락처도 사는 곳도 몰라서 결국 즈라 너보고 오라고 하게 됐지, 뭐냐."


놈은 등을 보인 채로 손만 올려 더듬더듬 리모콘을 찾아 tv를 껐다.


"그나마 다행인건 부모가 죽기 직전에 재산은 많이 물려준 거? 알잖냐, 사람 많으면 잠 못 자는거."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놈의 뒷모습만 응시했다. 놈의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보였다.


"그런데, 혼자 있으니까 너무 쓸쓸하더라. 혼자 있는 건 익숙했던 것 같은데도,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히지카타라고 말했나. 히지카타를 예전에 처음 보는데, 목도를 들고 친구들이랑 걸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그 이전엔 까만 세상에 혼자 갇힌다 해도 별로 쓸쓸 할 것 같지 않았는데."

"…."

"한번 말이라도 걸어봤으면 좋겠다. 나도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거든? 그런데 기적처럼 히지카타군이 먼저 말, 걸어주더라. 너무 기뻐서 말이 안 나와. 어차피 오래 못 쓸 건 알고 있었는데. 점점 나빠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


나는 들고 있던 목검을 떨어트렸다. 그 소리에 놀란 긴토키가 즈라, 괜찮냐? 하고 물어왔다.


"이렇게 잃어버리고 나니까, 너무 무섭더라."


 긴토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나는 그 웃음에 웃어줄 수도, 무어라고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놈의 붉은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붕대만 칭칭 감겨 있었다. 아무런 대답도 없는 내가 이상했는지 놈은 연신 즈라? 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이 침침하다며 눈을 비비던 놈의 모습도, 무언가 안 보이는듯 허공을 휘둘러 유리를 깨먹은 놈의 손짓도.


"조금만 더 욕심 내 볼걸. 그래도 마지막으로 본 게 놈 뒷모습이라 다행이지."


놈은 웃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 때문에, 내가. 그 날 그렇게 가지만 않았어도.


"히지카타군 때문이 아니야. 어차피 오래 못 쓸 눈이었어. 언제 실명될지 모르는 눈이었는데 히지카타군이 그걸 좀 더 잘 쓰게 도와 준 거야."


온 몸에 힘이 빠져 나는 놈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악물고 사과 할 생각이었는데. 이건 사과를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무언가 주저앉는 소리에 깜짝 놀란 긴토키가 나를 일으키려 했지만, 허공에 헛손질을 하는 놈의 손이 나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대신 나는 놈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당황한듯 버둥대는 놈의 몸을 꽉 껴안았다.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즈라?"

"미안. 미안하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기어코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이건 내가 우는 게 아니었다. 긴토키가 슬퍼서 울지 못하는 것을 내가 대신 울어주는 거였다.


"히지카타?"

"미안, 나 때문에."


놈은 더듬거리는 손으로 내 눈을 훑었다.


"히지카타군 때문이 아니라고 했잖아. 원래부터 얼마 쓰지 못할 눈이었어. 이 정도로 쓴게 기적이라고 했으니까, 아마 이 정도까지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히지카타군을 만나게 해 주려던 신의 뜻이었을지도."


놈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가끔씩 흔들리는 목소리의 높낮이를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놈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다. 내가 죄책감을 느낄까봐.

나는 긴토키의 눈이 있던 자리를 손으로 쓸었다. 긴토키가 흠칫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코, 입술 선을 덧그렸다. 가만히 그 손길을 받고만 있던 긴토키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더듬더듬 만졌다. 즐거운 듯 입술에 굴곡이 졌다. 나는 조심히 긴토키의 손을 떼어내고 엄지손가락으로 긴토키의 입술을 쓸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술을 겹쳤다.






"긴토키가 고마웠다고 전해 달라더라."


부쩍 날씨가 추워졌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학을 선택하기보다는, 검도를 계속 할 수 있는 집과 가까운 대학을 선택했다. 바깥엔 목도리를 두르고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토세 할멈이 담배를 뿜었다. 나는 지금 놈이 일하던 자리에 서서 놈이 겪던 일상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오토세 할멈이 다이어리 하나를 넘겼다. 반 정도 쓴 다이어리에는, 긴토키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증명해 주듯 아이스티와 물의 비율이 적혀 있었다. 나는 다이어리를 천천히 넘겨 다이어리의 맨 마지막 장을 펼쳤다.

다이어리의 맨 마지막 장에는 뿌듯한 글씨로 아이스티 비율이 적혀있었다.

아이스티 두 스푼, 물 3/2컵, 설탕 한 숟가락.


"이제 퇴근해도 괜찮아."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주방에 들어가 종이에 적혀진대로 아이스티를 탄 뒤, 가게를 나섰다. 그리곤 길을 걸으며 아이스티를 한 입에 들이마셨다.



"밍밍하네."



눈이 시린가 싶더니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그 여름의 웃음


[청흑] 그 여름의 웃음 





'언제부터 였을까요. 너를 좋아한 것이.'



 함께 체육관에 남아서 연습을 할 때, 그때부터 난 너를 좋아한 걸까요? 아님, 처음으로 너와 함께 경기를 뛰었을 때일까요? 어느 쪽이든 난 분명 처음에는 너의 플레이에 반했습니다. 진심으로 농구를 좋아하는 거 같은 그 모습에,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농구를 하는 모습에, 나는 너에게 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언제 반했는지 생각해 보아도 생각 날 리 없죠. 저는 이제 그런 당신을 떠나야 하는 걸까요?

 쿠로코는 자신의 앞에 있는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그 넓은 등을 가진 이는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었고,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넓은 등이 쿠로코에게는 두렵게만 느껴졌다. 문학 시간, 이미 쿠로코의 귀엔 선생님의 수업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좋아합니다."



 그에게는 닿지 않을 조그마한 목소리로 쿠로코는 아오미네에게 고백했다. 그런 자신의 꼴이 웃겨서 쿠로코는 웃었다. 바람이 쿠로코의 고백에 대답하듯 창밖에서 불어왔다. 덕분의 쿠로코의 머리카락도, 앞에 앉아있는 아오미네의 머리카락도 바람결에 흩날렸다. 흩어지는 파란색 머리카락에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린 자신이 우스웠다. 웃었다, 우스웠다, 이 모든 웃음들은 너로 인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너는 모를 테죠. 내가 네 모습을 보며 아무리 웃어도 티끌만큼도 알아주지 않겠죠 너는. 쿠로코는 덧없는 생각이라며 수업이나 듣자는 생각으로 칠판을 보았다.



 '후타바테이 시메이.'



 칠판에는 쿠로코가 익히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가 쓴 작품 중 하나를 읽어 본 적이 있는 쿠로코는 그가 반갑게 느껴졌다. 후타바테이는 번역도 종종 했었는데 거기서 가장 유명한 일화가 'I love you'를 '나 이제 죽어도 좋아요'로 번역한 것이다. 마침 선생님께서도 그 일화에 대해 설명하고 계셨다. 

 연인에게 愛してる(사랑해)나 好き(좋아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흔해 보여서 싫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다라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에 여학생들은 상상에 젖은 듯 보였고 남학생들은 얼굴을 붉혔다. 이도 저도 아니었던 쿠로코는 자신의 앞에 앉은 아오미네는 어떤 반응을 할까 싶어 쳐다보았지만 그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만일 그가 다른 남학생들처럼 얼굴을 붉혔다면 저는 그가 생각하고 있을 상대에게 질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이름도 얼굴도 모를 존재에게 자신은 부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자애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쿠로코는 살 풋 웃었다. 또 한번 그는 자신의 앞에 앉은 바보 같은 이 때문에 웃었다.



*****


 수업이 모두 끝났다. 방과 후에 동아리 활동이 있는 아이들은 동아리로 갈 채비를 하고, 귀가 부인 아이들은 집으로 갈 채비를 하였다. 평소 같으면 바로 체육관으로 향했을 쿠로코였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갔을 무렵, 쿠로코는 자신의 앞에 앉은 아오미네에게 다가갔다.



 "아오미네군."

 "왜, 테츠?"

 "오늘도 연습 안 올 거죠?"

 "......."

 "그럼 함께 집에 가요."

 "테츠?"

 "오늘은 저도 귀가 부가 되고 싶습니다."



 아마 오늘부터는 쭉 귀가 부일 테지만요. 쿠로코는 뒷말을 삼킨 채 아오미네가 집에 갈 준비를 하는 걸 보고 있었다. 저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허둥대며 준비를 하는 것이 꽤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오미네는 연습을 빼먹기 시작했기에 함께 집에 돌아가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 한동안의 공백 때문인지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말조차 걸지 못하고 옆에서 묵묵히 걷고만 있었다. 그 모습이 쿠로코를 어색해하는 듯이 보였다. 어쩌면 그는 쿠로코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제 농구는 그만두는 건가요?"



 쿠로코가 침묵을 깨고 아오미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오미네는 그런 쿠로코를 한 번 쳐다보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로코의 눈빛은 너무나도 올곧았다. 그 올곧은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지금의 저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쿠로코도 아오미네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굳이 아오미네가 답하지 않아도 쿠로코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물어본 이유는 혹시나 하는 희망과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몸이 안 좋아서 쉬려고 했을지도 몰라와 같은 실없는 생각 때문에, 무언의 긍정이라고 했는가, 쿠로코는 그 무언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래도 좋지 않았던 분위기는 한 층 더 무거워졌다. 쿠로코는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띄었던 건 다름 아닌 둘이 함께 자주 갔던 마지바였다.  



 "아오미네군."

 "...."

 "바닐라 쉐이크 사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쿠로코는 마지바로 아오미네를 끌고 갔다. 아오미네도 거부할 의사는 없는지 가만히 쿠로코에 이끌려가주었다.

 쿠로코는 자연스레 카운터로 가 바닐라쉐이크를 시켰다. 아오미네도 함께 주문을 할 줄 알 았던 쿠로코는 그냥 지갑을 꺼내서 돈을 내는 아오미네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가장 커다란 사이즈의 버거를 시켰을 터인데 계산을 마친 그는 더 이상의 용무가 없는지 대충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오미네군은 아무것도 안 먹는 겁니까?"



 주문한 바닐라 쉐이크 L 사이즈를 받은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앉은 자리의 맡은 편에 앉아, 빨대를 뽑고 마셨다. 아오미네는 저런 작은 몸으로 어떻게 제일 큰 사이즈를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쿠로코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게 부담스러웠는지 쿠로코가 아오미네에게 아무것도 안 먹느냐며 질문하였다. 



 "테츠."

 "네?"

 "넌 왜 사줘도 말이많냐."

 "그거야, 아오미네군이 너무 먹고 싶다는 얼굴로 절 쳐다보니까요. 싫으면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부담스럽습니다"  



 자신의 표정이 정말 그랬나 싶어 아오미네는 표정을 고치고는 딴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계속 쿠로코가 신경 쓰여서 눈만 돌려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귀여웠다. 진짜 그렇게 보면 자기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아호(바보)미네군이네요."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곤 쿠로코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아오미네가 뭐가 웃기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개의치 않고 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이없어하던 아오미네도 웃긴지 피식 웃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보며 웃었다.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함께 하교하자라고 말했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다시 쿠로코와 함께 웃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쿠로코도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작은 것에도 함께 웃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하고 아오미네는 생각했다. 분명 그 원인 한 중간에는 저가 있지 않을까, 기분 좋게 웃었던 웃음은 어느새 씁쓸한 웃음이 되어있었다.



 "이제 나가죠."


 

 마치 아오미네의 웃음의 변화를 알아차린 듯이 쿠로코가 남은 바닐라쉐이크를 빨리 마시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신의 파트너는 늘 눈치가 빨랐다. 그래서 고마웠던 적이 많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파트너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그와 함께 웃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게 될 만큼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앞장서서 걷는 쿠로코를 보며 아오미네는 문뜩 그 등이 작다고 느껴졌다. 


 마지바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흐르지 않았다. 



 "여기로 패스해!!"



 작은 공원에서 들로 오는 소리에 둘은 무의식적으로 공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같은 쪽을 보고 있던 서로를 눈치채고는 마주 웃었다. 자연스럽게 둘의 걸음은 공원으로 향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약속이라도 한 듯 농구 코트가 가장 잘 보이는 벤치로 가서 앉았다. 쿠로코는 옆에 앉은 아오미네를 슬쩍 보았다.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것이, 코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합에 꽤나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저기서는 좀 더 뛰어 줘야지."



 아주 중계를 할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에 쿠로코는 그만 웃어버렸다. 아오미네와 있으면 이렇게 자주 웃게 돼버린다. 분명 자신은 자주 웃거나 활발한 성격이 아님에도 아오미네와 있을 때는 웃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바꿔 놓아 버렸다. 그는 자신이 변한 원인이 자기라는 것을 알까,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있을 때, 옆에서 손을 내밀어 주던 것이 저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는 너무 모르는 게 많다고 쿠로코는 생각했다. 


 

 "다행이네요." 



 아오미네가 갑자기 뭐냐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쿠로코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농구가 싫어진 게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테츠."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입으로는 웃고 있으면서 쿠로코는 울고 있었다. 눈가에서 만들어진 작은 물방울은 점점 커져 눈을 지나 볼을 흐르고 턱 밑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너무 가련하고 애처로워 보여서 아오미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서웠어요 네가 다시는 농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할까 봐."



 한 번 시작되자 걷잡을 수 없어졌는지 쿠로코의 눈에서 생긴 눈물은 많은 양이 되어 흘러내렸다. 쿠로코가 눈물을 닦기 위해 눈가를 쓸어보지만 오히려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아오미네는 손도 댈 수 없었다. 저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내밀고 싶어도 저에게 그런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분명 쿠로코를 저렇게 만든 원인에는 제가 있을 것이 뻔하여서, 제 탓인 것만 같아서 아오미네는 지켜 볼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진정된 쿠로코가 입을 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놀라웠다. 자신이 한 일은 상처를 준 것밖에 없을 텐데 감사하다니 너무 과분한 말이었다. 아니 이건 과분을 넘어서 전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아오미네를 탓하고, 욕하고, 때려도 모자랄 판에 쿠로코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의 곧은 눈에는 한치의 원망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의 눈 역시 입처럼 웃고 있었다. 그제야 아오미네는 쿠로코에 얼굴에 손을 갔다 대었다. 아직 선명히 남아있는 눈물 자국을 손으로 쓸어주었다. 쿠로코는 그런 아오미네를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아오미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아오미네군 오늘 어울려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쿠로코는 아오미네의 손을 쥐며 말하였다. 어느덧 해는 지고 공원을 비추고 있는 건 옆에 서 있는 가로등뿐이었다.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눈이 자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전 이제 죽어도 좋아요."

 "그건 너무 오버인거 같은데?"



 쿠로코는 아오미네의 손 을 내려놓았다. 아오미네가 그건 오버아니냐고 장난스럽게 받아쳤지만 쿠로코는 진심이었다. 언젠가 아오미네군이 이 말의 뜻을 알아채는 날이 온다면, 쿠로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오미네는 따라 일어서지는 않고 쿠로코가 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아무런 색을 띄지 않는 허연 피부가, 희미한 빛을 띄는 하늘색 머리카락이, 그가 금방 사라질 것만 같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잠시라도 시선을 돌리면 사라져 있을 거 같았다. 사실 아오미네는 의심스러웠다. 자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던 그 모습이 혹 저가 만들어낸 환영일 것만 같아서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쿠로코가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아오미네도 벤치에서 일어셨다. 내일은 부 활동에 나가볼까, 그럼 테츠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반겨줄까,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아오이네는 집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에는 약간의 기대와 흥겨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농구 코트에도, 허구한날 앉아있던 도서관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라질 것만 같았던 그의 뒷모습은 정말 사라져버려서 더 이상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



 '언제부터 였을까요. 너를 좋아한 것이.'



 아오미네군, 저는 사실 불안했습니다. 농구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 네가, 더 이상 농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할까 봐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 씁쓸한 웃음이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을 말하는 것 같아서 저는 무척 두려웠습니다. 바보는 아오미네군이 아니라 저였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불안하고, 두렵고, 무서웠음에도 저는 당신의 곁에 있고 싶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보며 오늘도 셀 수 없이 웃었습니다. 언제부터 였냐고 물어도 모릅니다. 아오미네군, 너는 늘 날 지지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쿠로코는 생각을 마쳤다. 

 

 



예찬


[쿠로켄] 예찬





 지하철이 멈춰 몸이 흔들리는감각에 눈을떳을땐 켄마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다음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는걸 알고서 켄마를 흔들어 깨웠지만 쉽게 눈을뜨지 않았다. 피곤에 쩔어있는 그 작은 고양이같은 녀석이 안쓰러웠지만 지하철은 야속하게도 계속 다음정거장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켄마, 일어나. 거의다왔어."



 "너무졸려. 죽을거같아."



 "이번엔 또 뭐때문에?"



 "안나와. 아이템."



 "몇시에 잤는데?"



 "3시."








 곧 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을 듣고 흐느적거리는 녀석을 일으켜세우고 모든문이 동시에 열리는 지하철을 보면서 쿠로오는 아 오늘도 아슬아슬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딱히 매일 같이가자고 약속한건 아니였지만 옆집사는데다가, 엄마끼리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어릴때부터 함께해왔다. 켄마가 나이는 한살어리긴하지만 둘은 소꿉친구, 흔히말하는 불알친구였다. 쿠로오는 눈을 반쯤 감고 축처진 어깨로 곧 넘어질듯이 위태롭게 걷는 켄마를 신경쓰면서 걸었다. 숙여져 있던 고개가 갑자기 들리면서







 "나 너무 졸려..."



 "3시에 자니까 그렇지"



 "아 모르겠어 짜증나. 아이템도 결국 안나왔다고.."








밤새도록 게임을해도 아이템이 왜 안나오냐며 억울한 표정을하는 켄마의 얼굴을 보던 쿠로오는 어쩔수없다는 듯이 켄마의 가방을 빼앗듯이 챙겨들고 축처진 켄마의 팔을 붙잡아 이끌면서 말했다.







 "늦겠어."



 "...."



 "눈 뜨고있지?"



 "나 놓고 가면 안되 쿠로"









열아홉의 아침이 그렇게 또 시작됬다. 켄마가 눈을 제대로 뜨지않아서 가끔 헛디뎌 휘청거릴때마다 반사적으로 쿠로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켄마가 꼭잡은 옷긴을 한번 보고는 봄이라 활짝핀 벛꽃을 보며 봄이라서, 꽃잎이 날려서 기분이 좋은것이라고 생각했다. 옷깃을 타고 오는 온기가 저를 기분좋게하는게 봄이라서 그런것이라 생각했다.



















또 게임이냐 켄마. 오늘 부활동이잖아. 라며 말해오는 쿠로오를 켄마는 힐끗 보고는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돌렸다. 종례는 끝난지 오래됬고 교실엔 켄마 혼자 있었다. 항상 시끄럽고 정신없던 쉬는시간의 교실과는 다르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교실안에 머물러있어서 핸드폰에 집중하는 켄마를 바라보던 쿠로오는 저도모르게 순간 입술이 올라가는것을 느끼고 다시 표정을 바꾸었다.그러자 켄마가 하던게임을 갑자기 종료하더니 핸드폰을 던지듯이 책상에 놓고 엎드리곤 웅얼거렸다.







 "쿠로 나 죽을때가 됬나봐."



 "왜"



 "계속 졸려.."







너임신했냐? 우리 임신한 고모 맨날 졸던데.쉬는시간에 남자애들끼리 장난으로 하던 임신드립을 치며 쿠로오는 앞자리 의자를 끌고 엎드린 켄마앞에 장난끼 가득한 표정을 하고 앉았다. 임신했냐는 말이 충격이었던건지 눈을 치켜뜨고는 째려보는 켄마가 무슨소리냐며 짜증난다는 표정이었다. 슬금슬금 웃으면서 놀리듯이 쳐다보는 쿠로오가 못마땅했는지 결국 다시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정수리에 새로자란 까만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싫지않았다. 아무리 째려보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어도 화가나지도 짜증나지도 않았다. 좋았다는 표현이 맞았을지도 몰랐다. 배구부 부원들은 다 쿠로오에게  둘이 사귀는것 아니냐며 놀릴때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켄마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말라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재미있었다. 그저 다 놀리는 말일 뿐인데도 그저 친한 사이인뿐인데도 그게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든 부원들에게 토스를 올려주느라 힘들어 하면 그옆에서 물을 챙겨주고 하기싫다고 투정부릴 때도 넌 절대로 팀을 강하게 만들거라고 말하며 달래는것도 쿠로오에게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했다.












그런데 소꿉친구의 벗은 모습에서 알수없는 묘한감정을 느끼는데 당연한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든건 켄마가 네코마에 입학후 쿠로오의 적극적인 권유로 배구부에 들어 부실에서 옷을 처음 갈아입었을때였다. 아무렇지 않아야하는데 힐끔거리며 켄마의 작은어깨와 얇은 허리선, 어릴때부터 몇번이고 봐왔던 그 하얀 몸을 보고 시선을 떼지못하고 방황하던 눈이 자신의 탈의캐비넷으로 돌아왔을때 쿠로오의 마음이 투둑, 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태어나 처음맞이하는 낯선 감정이 다가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감정이.사랑이고 욕정이라는것을 인정하는게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고민도 부정도 해봤지만 본능은 인정해버려서, 그 하얀 몸을 볼때마다 손이 움직이고 싶어했다.


















수년간 쌓아온관계가 무너질까봐,너를 잃게 될까봐 라는생각보다 만지는 것을 참는게 더 괴로워져 내 감정을 토해내고 너를 만지는게 이기적이라면 첫사랑이라는건 다 이기적인걸까.
















인정해버린 마음은 계속 부풀어 오르기만 했다. 이대로 한계에 이르면 터져버리는게 아닐까 라는 걱정도 들었다. 배구부 연습이 다 끝나고 죽겠다는 표정으로 쿠로오 옆에 털썩 앉더니 무릎에 누워 눈을감은 켄마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쿠로오의 손이 헤메다가 곧 목에 메고 있던 수건을 켄마의 머리위에 놓았다.







 "뭐야.."



 "땀 닦으라고."



 "...."



 "닦아줘?"



 "아아-.. 닦아줘. 힘들어.."








불쑥튀어나온 닦아주겠다는 말은 평소와 같았다. 마음은 같지않았지만. 수건을 집어 평소처럼 닦아주면되는데 왜 손은 이리저리 헤메는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다가 켄마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같은 눈. 네코마라는 이름에 지독하게 어울리는 그 눈이 나를보고있었다. 갑자기 막막함이 밀려와 늪에 빠진것처럼 빨려들어갔다. 이미 시작된 마음은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마주친 고양이의 눈은 다시금 감겨 잠시 낮잠에 빠졌다. 감긴눈은 뜰 생각이없는지 새근새근소리까지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선배 여기보세요!"









찰칵- 하는 소리에 곧이어 사진을 내뱉는 폴라로이드를 들고 웃는 리에프가 인화되어 나오는 사진을 펄럭펄럭 휘둘러대며 다가와 사진을 보여줬다. 켄마가 토스하는모습, 블로킹하려고 뛰는모습 쿠로오와 이누오카, 쉬려고 누워있는 야쿠, 토스올려달라고 소리치는 야마모토, 리시브 연습하는 부원들, 인화된 사진을 모조리 다 펼쳐서 보여주며 쿠로오 선배가 갖고싶은 가져가세요! 사진 많이찍었어요!라며 헤실거리며 웃는 리에프에게 자신의 사진과 켄마의 사진을 골라냈다.









 "어 켄마선배껀-"




 "어, 내가 전해줄께"

 








그래요. 야쿠선배!!선배 진짜 귀엽게 나왔어요! 완전 조그맣게! 라며 소리치며 가는 리에프의 목소리에 누워 자고있던 켄마가 시끄럽다며 이제 집에가서 쉬고싶다고 일어났다. 쿠로오도 일어나면서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는 부실로 갔다. 또다시 탈의한 그의 모습을 보고는 숨막히게 끌어안아 몇번이고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말을 무심결에 말해버릴것같아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씹어 삼켰다. 왜 옷을 갈아입지않냐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는 켄마와 눈이마주치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항상그렇듯 약속하지 않았지만  같이 집에 돌아갔다. 역까지 가는길에 서로에게 한마디도 하지않았다. 지하철안에서도 그저 피곤하다는 핑계로 서로 기대 눈을 감고있을 뿐이었다. 미지근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봄임을 여실히 보여주고있었다.끝까지 아무말도 하지않고 집앞까지 도착해 인사하고 들어가면 오늘하루는 끝나는것이었다.








 "쿠로."



 "어?"



 "무슨일있어?"



 "아니, 왜?"



 "..평소같지않아서..나 쿠로랑 많이 대화하지않아도 표정은 보면 아니까"



 "전혀, 연습때문에 좀 피곤한가봐. 들어가- 켄마."









결국 계속 쳐다보는 켄마를 피해 도망치듯 집에 들어와서는 바로 가방을 열어 유니폼주머니부터 뒤져 사진을 꺼내보았다. 리시브 연습중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본 모습이 찍힌 평범한 사진이었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돈되지 않은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생각들에 쿠로오는 볼펜을 들고 한참동안 사진을 보며 고민했다. 여태껏 하지못했던 말을 사진에 새겼다. 꾸역꾸역 올라와 입밖으로 토해낼뻔한 그 참고 참았던 말을.















「예뻐」
















짧고 간결하지만 모든게 담긴말을.
















 켄마에 대한 감정이 우정이아닌 사랑과 욕정이라는것을 인정한 날 밤 꿈에 켄마가 수십번도 더 나와서 서로를 탐하고 서로를 안았다.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속옷이 젖어있다는것을 알아차릴때마다 깊은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가는듯한 실망과절망이 밀려왔다.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주말에 켄마네 가족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게됬다. 어릴때부터 자주 함께 저녁을 먹곤했는데 클수록 그 횟수가 줄었다며 엄마는 조금 서운해하는 듯한 얼굴로 다시 자주만나자며 저녁상을 차리셨다. 내앞엔 항상 그렇듯 켄마가 앉았는데 그자리가 그렇게 가시방석인것은 10년이 넘도록 처음이었다. 몇수십번도 넘게 이렇게 마주앉아왔는데 내감정이 달라져서, 켄마를 켄마로 보지못해서 그렇게 불편하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들어가는지 알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말한마디 하지않고 묵묵히 밥만 먹고서는 항상 그렇듯 간식을 들고 내방에 왔다. 부모님은 우리가 항상 그래왔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래야한다는듯이 당연하게 간단한 간식을 주며 방에 올라가서 놀으라며 올려보냈다. 켄마는 늘 그렇듯 내 침대에 앉아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당연한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켄마를 좋아하는건 왜 당연한게 아닐까 라는생각이 문득 들었다.




 "쿠로."



 "...어"



 "요즘 무슨일 있어?"



 "없는데."



 "표정. 알수있다고 말했잖아"







게임을 하던 핸드폰을 두고 일어서는 켄마를 눈으로 쫒았다. 그가 가면안되는곳을 향해 보면안되는것을 향해 가고있었다. 켄마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았다. 배구를 할때도 상대를 잘관찰하고 어떻게 공격해나갈것인지 해결책을 곧 잘 내었다. 모두가 인정한 네코마의 세터였다. 사진을 집어드는 켄마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지면서 자신이 읽은 단어가 제가아는 뜻이 맞는지 확인하는듯이 계속 사진만을 쳐다보다 쿠로오에게 시선이 닿았다. 이제 다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너와 나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고. 










"...."




"...."




 "쿠로는 내가 예뻐?" 



 "...."



 "..난 쿠로가 멋지다고 생각해. 네코마의 주장이고.."



 "...켄마, 난.. "



 "예쁘다는 말은 여자애들한테나 하는말이잖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의 세포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것같은 느낌이 들었다.눈가의 근육이 떨리는게 느껴졌다. 입은 어떤말도 뱉어내지 못했다.변명할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켄마는 사진을 들고 내게 다가와 옆의 책상에 사진을 올려놓으며 알수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번도 보지못했던 표정을 남기고서는 뒤돌았다. 이대로 네가 가면 너와 난 끝인걸까.




































덥석잡혀버린 손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뿌리칠려고해도 쿠로오의 손은 점점더 손목을 조여와 점점고통스러워지고 쿠로가 무슨생각으로 잡은건지 알수없었다.맹수에게 목을 물리기 직전의 작은 동물처럼 누가 자신을 먹으려 하는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앞만보고 달려서 살려고 버둥대는 작은 동물처럼  그저 지금뒤를돌아 쿠로를 보면 안될것같다는생각만 들었다. 





 "자고가."



 "...."



 "평소처럼 자고가"







평소처럼이라고 말하지만 평소와 다른 목소리. 낮고 조용히 울리는 그목소리에 소름이 돋아 움직일수없었다. 손을 빼내려 했던 팔에 힘이 빠지고 쿠로오가 일어나 켄마를 안아 자고가 라고 속삭였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 항상 능글거림이 묻어나던 밝은목소리가 아니야. 내가 지금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거야? 쿠로. 뒤돌아 볼수가 없어.






 "켄마, 자고가."



 "...."



 "여기서."






쿠로가 나를 돌려세워 쳐다보는데 머리위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쿠로가 나보다 한참 크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나를 잡은손은 그렇게 뜨거운데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다 못해 시려오는게 너무 생소해서 올려다 보면 지금이라도 그 냉기에 얼어붙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발끝부터 밀려 올라와 목을 조르는것같았다.


























 "하..윽.."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달뜬숨을 뱉어내는 켄마의 얼굴은 쿠로오에게는 쾌락의 끝으로 몰아갔다.하지만 본능이 이끌리는대로 움직이기엔 켄마가 너무 여리고 작아 다치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러운 손길이다. 입구끝에 살짝들어간 쿠로오의 페니스가 더 밀려 들어오자 켄마는 침대 시트를 꽉 말아쥐고는 고통을 표현했다.





 "너무커..!아, 잠깐..잠깐 쿠로!! 쿠로 아파..아"






쿠로오는 손을 뻗어 켄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조금만 참아. 평소 능글거림이 발라져 있던 말투와 달리 단호한 목소리의 쿠로가 낯설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다시한번 놀라 신음소리를 손으로 입을 막아 참아냈다. 갈라지는 목소리의 신음소리가 먹혀들어가자 쿠로오가 손을 잡아 입에서 떼어냈다.쿠로오가 허리를 움직여 제 페니스를 끝까지 밀어넣자 켄마의 고개가 확 젖혀져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낸다. 그모습을 놓치지않고 눈에 담는 쿠로오는 아찔해져왔다. 목덜미를 물어 뜯듯이 이를 박아넣고  하얀허리를 쓸어내린다. 로션으로 축축해진 다리와 침대시트를 보던 쿠로오가 켄마를 다시금 끌어안고 허리를 움지기기 시작했다. 아읏-. 작은 입에서 터지는 신음소리가 귀를 자극해왔다.아직은 뻑뻑한 내벽이 페니스를 조여오고 꽉 다문 구멍은 여간 야한것이 아니었다. 그하얀몸을 보고 처음 욕정을 느꼈을때 이상으로 속에서 끓어오르는 정복심이 쿠로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제밑에 깔려서 신음만 흘리는 가녀린 이 사람이 자기가 항상 그려오던 켄마라는것이 믿기지 않았다.






 "흐,윽,무슨,아앙,말이라도 해..하읏, 쿠로.."






켄마는 자신의 신음소리만 울리는 익숙한 이 방이 너무나도 민망하고 온몸은 터져버릴것같았다. 지금 쿠로오의 얼굴은 굳어져 무서울지경이고 혼란스러움을 감출수가 없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터져 마구 쏟아져 나오는 신음은 더욱 혼란스럽게만 했다. 젖힌 고개를 다시 끌어와 쿠로오를 보았다. 참을수없다는 표정으로 제 몸을 탐하는 이 수컷이 자신을 항상 챙겨주고 다독이던 그 쿠로오가 맞는지, 쿠로오와 자신이 하고있는 이행위가 말도안된다고 생각하자 허리가 들썩여졌다.





 "흐응,앗,아!아!쿠로-,쿠로! 하으,앙!"



 "윽- 켄마,"



 "핫,하으,으..아..아파,아응,쿠로,읏,으.."





쿠로오가 가슴을 살짝 핥고 이를 내어 유두를 긁어내렸다. 독기를 품은 표범처럼 그르릉 거리며 꽉 안아오는 쿠로오에 켄마는 팔을 쿠로오의 목에 둘러 매달렸다. 쿠로오는 딱 자신의 허리에 맞게 벌려진 켄마의 하얀다리가 사랑스러웠다. 켄마의 다리를 들어올려 허벅지 안쪽과 무릎에 키스하고 입술에 키스했다. 혀가 마구잡이로 섞여 버거워하는 켄마가 앓는소리를 냈다.그런 소리는 자꾸만 흥분을 끌어올렸다. 뜨겁고 강렬한것이 속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는통에 켄마는 연신 신음만 터져나왔고 눈을 감아버렸다. 눈 떠. 나 봐. 강압적이고 무서운 목소리에 눈이 뜨여져 순만 마주친 쿠로오는 켄마를 꿰뚫듯이 파고들었다.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무섭도록 엉켜드는 그 시선이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지금 쿠로는 제정신이긴 할까. 이성이라는게 붙어있긴 하는걸까. 정답은 부정쪽에 가깝다는걸 알고있었다. 쿠로오의 거친숨이 코끝에 닿는 느낌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앗!앙!..우읏,흐앙..아,응!"





결합부위에서 찌걱이는 소리와 제 신음소리만이 나뒹구는 방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밑에서는 허여멀건 로션이 질척거리고 끊임없이 치고 들어오는 쿠로오의 것이 제 안을 채우고 씹어 먹어버릴듯한 표정을 더이상 보고싶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기분이 믿을 수 없이 좋았다. 쿠로오에게 매달려 쾌락을 요구하는 흔들리는 자신의 엉덩이가, 쾌락의 끝을 달려가는 자신의 신음소리가 도저히 믿기지않았다. 이런 기분때문에 사람들은 섹스를 하는걸까.소꿉친구가 나를 덮쳤다 그것도 남자가 남자를. 이 말도안되는 상황에서 무언가에 홀린듯이 나는 쿠로오의 입술을 찾았다.

 


진득한 키스가 또다시 이어져 숨이 차오를때쯤 다시 지독한 허리짓이 시작되 질척거리는 허벅지가 부딪혀 외설적이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사정기가 밀려오는 쿠로오가 로션과 쿠퍼액이 질퍽하게 섞여 묻어있는 페니스를 잡아 쓸어내리며 허리짓을 빨리하자 켄마는 고개를 젖히며 신음했다





 "핫!으,응!윽 쿠로 으앙, 나..나...쿠로! 하윽! "





흥분이 끝까지 올라 정점에 도달해 켄마의 머리속은 새하얗게 되고 순간적으로 힘이 잔뜩들어간 젖혀진 목덜미에 쿠로오가 짧게 키스했다. 평소에 알지못했던 쿠로오의 서늘한 기운,이성이 날아간지 오래된 눈, 땀에 젖어 헝클어져 있는 새까만 머리, 불규칙하게 내쉬는 거친 숨이 이 상황과 지독하게도 어울리는것같다는 생각이 들어 쿠로오를 다시 쳐다보자 입술이 거칠게 맞물렸다. 갑작스럽게 포개어지는 입술에 놀라 눈을 감지도 못했다.쿠로오는 나를 꿰뚫듯이 쳐다보면서 키스했다. 이 수컷은 나를 정복하려는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이제 더이상 어쩔수없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평소에 일찍일어나는 습관따위는 없었다. 항상 새벽까지 게임하느라 항상 피곤에 찌들어 겨우겨우 일어나곤 했었는데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의 후들거리는 허리와 허벅지를 겨우겨우 끌고 책상이 있는쪽으로 갔다. 내가 올려놓은 사진. 리에프가 불러서 뒤돌아본 모습이 찍힌 사진. 쿠로오가 예쁘다고 한 사진. 사진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탄식을 내뱉었다. 꿈이 아니였다. 쿠로오는 나를 좋아한다.쿠로오는 나를 좋아해서 나를 챙겨줬다.쿠로오는 나를 좋아해서 나를 안았다.쿠로오는 나를 좋아해서 나와 섹스했다. 아무리생각해도 변하지않았다.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먹먹해져오기시작했다.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옷을 집어입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이후로 쿠로오는 나를 찾아오지않았다. 아침마다 학교에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찾아오던것도, 배구부 활동을 가야한다며 수업이 다 끝나고 데릴러오던것도, 집에 같이 돌아가는것도, 해야할것을 알려주던 문자도, 게임하지 말고 일찍자고 체력을 위해 밥은 꼭 챙겨먹으라던 걱정이 담긴 문자도, 그 어떤연락도 오지않았다. 쿠로오는 모두 중단했다. 나는 그덕분에 매일지각했고 배구부는 몸이아프다고 빠졌으며, 점심도 거의 먹지않았고, 집에갈때는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면서 가고, 매일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차라리 연락이 되지 않는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안에서 게임을 하다가 종료했다. 질렸다. 레벨1부터 키우던 캐릭터가 몇주만에 만렙을 찍은지 오래되서 질려버렸다. 게임을 삭제하는데 주저하지않았다. 그저 게임을 지웠을뿐인데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







그러나 여전히 쿠로는 생각났다. 배신감이나 화 가 아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것으로.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었지만 쿠로가 생각나는건 확실했다.






"....."






계속 째깍이는 초침소리에 한번은 쿠로가 보이고 한번은 쿠로가 사라지는듯하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것같아 신경쓰였다. 초침이 계속 돌아가 시간은 흘러가고있었다.째깍거리는 소리가 계속 신경쓰여 핸드폰을 들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집중해서 하고 있는 게임이 갑자기 팟-꺼지더니 까만 화면만이 남았다. 한번도 말썽없이 잘 사용하고 있던 핸드폰은 게임을 실행하기만 하면 꺼져버렸다. 






"제발 너는..이러지마."







긴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구석으로 던지고 털썩 누웠다.양말을 벗어던지고 몸을 웅크려 누우니 또 생각나는건 쿠로오 였다. 이제 꿈이 아니라는 의심도 들지않았다. 모든것은 편안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나와 쿠로만 어긋나있다. 내가 일상에서 동떨어진 사람처럼 맴도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않고 평화로운데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 버린것처럼 허전했다. 마음 한 켠이 뻥 뚫려서 뚫린자리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누군가가 단번에 뽑아가버린듯했다. 켄마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팔로 눈을 가렸다.깜깜한 상태가 되었다.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것이라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이라고 확신했다. 정말 중요한것이었다면 생각나지 않을리없다고, 그냥 어느순간 떨어져 나가니까 허전함이 느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세를 바꾸어 온몸에 힘을빼고 얼굴을 이불에 묻었다. 고요한 방안에는 시계초침소리만 들렸다.아무것도 변한건 없다고 단정짓고싶었다.

















집에 가는길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같은역에서 내리고 같은방향으로 걸어가야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숨이 막혔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쿠로보다 앞서서 걷고 있었고 최대한 쿠로를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쿠로의 시선이 뒷통수에 닿아서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 켠의 뚫린자리는 언젠가 메꿔질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자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쿠로를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켄마"












쿠로의 부름에 울컥눈물이 올라왔다. 



















"..예뻐."






























사진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던건 쿠로가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것을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였다.




































 내가 쿠로를 좋아하고 있었다는것을 믿을 수 없어서였다.

 



사무치는


[우시오이] 사무치는





축축하다. 오한이 들고 온몸이 무거웠다. 어두컴컴한 주위를 살피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그저 고요할 뿐. 칠흑 같은 어둠에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시커먼 어둠이 마치 나를 삼키는 듯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섭다. 너무 무서워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어.


이 느낌…이 낯설지 않은 느낌. 어디서 느껴봤더라? 분명 최근에, 같은 느낌을 느꼈는데…고개를 아무리 들어 올려다봐도, 까치발을 들어 손을 뻗어봐도,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에, 날 막고 있는 벽이…그래, 그 벽이 분명히….



* * * 


천재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덤벼도 넘지 못하는 그 벽을 모두는 천재라고 칭했다. '천재? 그까짓 것.'하고 생각하던 것도 먼 옛날의 일이었다. 어린 날의 치기였다. 노력만 하면 어떤 누구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어왔던 내가 노력만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라는 게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 거다. 현실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놈에게 무너졌고, 몇 번이고 도전해도 몇 번이고 다시 짓밟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분하지 않은 건 아니어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오기로 이를 악물었다. 언젠간 내가 이 손으로 그 잘난 얼굴을 짓밟아 천재라는 가면을 벗겨 버릴 거라고 말이다. 천재라면 이제 치가 떨렸다.


'쓸 데 없는 짓을.'열심히 노력하고도 또 놈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나를 보고 언젠가 놈이 건넨 한마디였다. 분노로 눈앞이 하얗게 점멸한다는 느낌이 뭔지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네까짓 게 뭘 알아?' 독기와 분노에 찬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입술을 짓씹으며 웃는 얼굴로 능청스럽게 넘겼다. 화를 낸다 해도 더 우스워지기만 할 뿐이었고 난 그를 이길 힘이 없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벌써 고3이었다. 야속한 시간은 붙잡을 세도 없이 훌쩍 지나가버려 이제 곧 현실과 조우해야 할 시간이 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며 모두가 비웃을 때도, 천재를 더 빛나게 해주는 소모품일 뿐이라며 날 깎아내릴 때도, 혹시 이번에야말로 이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했다. 그 비참함이 뭔지 다시 한번 무릎 꿇을 때의 패배감이 뭔지 뼈저릴 만큼 느껴 봤으니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더, 더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결국엔 내가 이기게 될 거라고, 내가 옳았던 거라고 인정받을 날을 기다리며 그렇게 이를 갈았다.


그러나 쉽기만 한건 아니었다. 경이로운 실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과 아직도 해내지 못한 과제로 남아있는 강적들 사이에서 오는 압박감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난 많이 지쳐있었고 그만큼 곪아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단 거다. 실제로 나는 많이 초조했고 그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힘들어도 여유로운 척, 화가 나고 마음이 무너져 내려도 즐거운 척, 무던히도 노력을 했으니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감정의 골이 깊어갈수록 내 마음도 썩어 문드러져 갔으니 말이다. 이기고 싶은 욕망, 그와 반대로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욕구… 그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갈등들. 힘드냐고 묻는다면 물론 힘들었다. 그래 봤자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떻게 포기하고 싶단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난 주장이니까,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그동안에 해왔던 것이 다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린단 걸 아니까, 반드시 해낼 거란 집념과 팀을 승리로 이끌어 가겠다는 의무감으로 끝까지 버텼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죽도록 열심히 했다.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정말 죽을 만큼, 악마가 내게 진짜로 죽을 만큼 열심히 했냐고 물어봤을 때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피 나는 노력을 했다. 그동안의 수많은 부상과 패배를 딛고, 그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하여. 이번에야말로 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나는 다시 도전한 것이다. 


그래, 그랬는데.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이카와."



무심한 듯 낮은 목소리가 날카로운 날이 되어 귀에 꽂혀들었다. 귀가 얼얼했다. 먹먹한 것도 같았다.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지마 와카토시란 이름이 오늘만큼 무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희망은 이미 타 없어지고 절망이라는 재만 남은지 오래였다. 떨구어진 고개를 천천히 들어 떨리는 눈동자로 놈을 마주했다. 놈 뒤에서부터 비쳐오는 밝은 불빛이 유난히도 눈부셨다. 또한 그만큼 내 뒤로 길게 늘어진 검은 그림자는 유난히도 어두웠다. 올려다본 놈은 정말 빌어먹게 거대했다. 거대하고, 또 너무 강해서 오직 노력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겐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다. 견고하고 나 같은 걸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철옹성 같은 그의 모습이 날 절망하게 했다. 시리게도 무표정인 얼굴,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저 눈. 천재의 눈이다. 치가 떨리도록 끔찍한. 그러나 놈은 항상 그렇듯 그런 내 떨리는 눈을 마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려다보지만 할 뿐.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언제나 나를, 그런 눈으로…



"…지마."


"……"


"내려다 보지마."



날, 날 그런 식으로 내려다보지 마! 목구멍에 걸린 말이 차마 나가지 못하고 입안에서 맴돌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니, 어쩌면 피눈물 일지도 몰랐다. 눈이 따끔거리고 눈물이 길을 트며 흘러내리는 볼이 뜨거웠다. 목이 멨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젠 내 눈물이 뜨거운 건지 아니면 내 몸이 뜨거운 건지 분간조차 가질 않았다. 몸에서 천 불이 난다. 분하다, 너무 분했다. 빌어먹게 커다란 놈과, 결국 단 한 번도 그를 이기지 못하는 무능한 내가 증오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보다 내게 재능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저 거대한 벽을 넘어설 수 있었을까. 아니, 벽 너머를 쳐다보기라도 할 수 있었을까. 난 왜 그를 이길 수 없는지, 천재를 넘어설 수 없는 범인의 한계라는 것이 저주스럽고 한탄스러웠다. 난 그저 천재를 빛내주는 소모품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동안의 내 노력과 아무리 힘들어도 놓을 수 없었던 한줄기의 희망, 그리고 꾹꾹 눌러 담아왔던 상처들이 독이 되어 흘러나왔다.



"좋겠어 우시와카짱,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시와카쨩을 빛내주는 소모품들이 몇 개나 있으니까 말이야. 있잖아, 천재라는 건 참 편한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남들이 하는 노력의 반만으로도 손쉽게 그 위에 올라설 수 있잖아. 넌 모르지? 그 짙은 패배감, 절망감, 끓어오르는 분노, 허무함…그리고 자신에 대한 혐오감. 우시와카짱이 그걸 알게 되면 좋을 텐데."



목소리가 떨렸다.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꽉 깨물린 입술에서 비릿한 피맛이 난다. 온통 부정적인 감정만이 가득 차 멍해진 머리로 땅에 떨어져 있는 공을 쳐다보자 지난날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즐거웠던 부 활동, 힘든 만큼 보람찼던 연습들, 첫 승리, 첫 패배, 패배를 딛고 올라섰을 짜릿한 때의 쾌감,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단 걸 깨달았을 때의 무력감. 재밌고 행복하기만 했던 배구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날 괴롭고 아프게 할 수 있게 됐을까. 다시는 이 코트에 지금의 동료들과 설 수 없다는 사실과 이게 내 배구의 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게 사무칠 만큼 다가와서 참을 수 없이 마음이 저려왔다. 난 결국 이 벽을 넘어서지 못했고 또다시 패배한 것이다. 멍하니 풀리는 눈과 비통함에 사무쳐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쓸 데 없는 짓이었을지도 몰라. 아니, 너한테는 쓸 데 없는 짓이었겠지. 아무리 피 나는 노력을 한 들 한낱 범인인 내가 우시와카쨩을 이기는 건 평생 불가능 한 일일 거야. 넌 내 위에 서는 영원한 강자일 테니까. 근데 말이야, 내 노력을, 그동안의 내 시간들까지 쓸 데 없단 말로 일축하진 말아줘."


"……"


"그러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내가, 너무…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그 말을 끝으로 스러지듯 무너져 내렸다. 흐느낌이 꾹 다문 잇새로 숨길 수 없이 세어 나왔다.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마음속은 이미 넝마가 된지 오래였고, 공허함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렇게 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놈의 앞에서 몇 년간의 정념을 다 토해냈다. 


얼마나 울었을까. 너무 울어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게 될 즈음 이와이즈미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날 이끌고 경기장 밖으로 향했다. 언제나 패배자의 퇴장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비식비식 나오는 실소가 가슴께 한구석을 먹먹하게 하는 와중에 흐린 시야 사이로 비의 얼굴이 묘했다. 마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 우스웠다. 수년 동안 날 짓밟고 위에 서서 날 내려다보기만 했던 네가, 이제 와서 동정이라도 할 샘이야? 난 마지막으로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놈에게 지어주었다.



"너 같은 거,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환하게 웃었다.


고등학교의 끝이었다.




[유키린] 봄



곧 봄이 온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영원히 가지 않을 것 같던 겨울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다른 때보다 유난히도 더 추웠던 겨울의 끝에서 발견한 봄을 더욱 갈망한다. 조심스레 손을 뻗는다. 닿는 순간 부서져 버릴까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유키오! 뭐하냐! 안 갈거야?"


밝게 웃으면 눈이 부신다. 나는 저토록 밝게 웃어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이것은 동경, 아니면 사랑. 어느 쪽이 진짜일지. 수많은 고민 끝에 내려진 감정의 결정은 결국 사랑. 이 선택이 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오더라도, 반드시 책임져 보이리라.


"가야지. 가자, 형."


다신 놓지 않을 손을 꼭 붙잡는다.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 간질 거리는 느낌에 퍽 기분 좋게 웃어 보이는 그 모습이 좋다. 저 웃음이 나로 인한 것이고, 또 오롯이 나를 향한다는 것이 기분을 들뜨게 한다. 조금 더 따뜻해진 문 밖으로 발을 내딛으면 햇살이 기분 좋다.


"넌 왜 내가 좋아?"


기분 좋게 웃는 표정으로 여전히 앞만 보고 걸으며, 지나치듯 물어오는 그 질문에 피식. 몇 번을 얘기했지만 몇 번이고 더 묻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마 형도 나와 같이 불안하기 때문은 아닐까. 언제라도 사라져 버릴 것처럼.


"형이라서 좋아. 밝은 모습도, 어린애 같은 면모도, 자기 일 보다 남을 더 챙기는 바보 같은 모습도, 내 형이라는 것도, 악마라는 것도. 모두 포함해서 사랑하고 있어."

"으으-, 나도 네가 너라서 사랑, 해."


손만 잡아도 붉히는 얼굴은 내 고백을 들을 때 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붉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의 사랑고백은 나 역시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굉장히 짧지만 봄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그 고백은 들을 적 마다 가슴에 와 닿아 심장을 때린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아릿하게 아파올 정도로.


"아, 도착했네!"


평소라면 이 쯤에서 풀어진 손에 아쉬움을 느꼈을 테지만 오늘은 예외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 서면 왠지 서글퍼진다.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 토닥여오는 손길이 느껴진다. 이제는 어릴 적처럼 머리가 아닌 등이지만 안정 되는 기분은 어릴 적과 같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영감! 우리 사귀기로 했어! 나중에 결혼할거야!"

"형?! 아버지 무덤 앞에서 무슨 말이야!"

"왜? 맞잖아! 네가 프로포즈 했잖아!"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 순진한 외침에 두 손, 두 발 다 든다. 저런 모습도 전부 좋아해버려서 문제지만. 가끔은 숨기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숨 한 번 쉬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준비해 온 음식을 차린다. 기본적인 제사 음식과 형이 손수 만든 음식들.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을 만드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을 형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영감. 우린 잘 지내고 있으니까. 영감은, 아버지는 거기서 행복해?"


음식을 차리는 동안 아버지의 무덤가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형의 아버지라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아직까진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전엔 어떤 느낌이었지. 둘이 아닌 셋이었을 때는. 겨울이 원래 이렇게까지 추운 계절이었나 싶다. 셋이 둘이 되었다가 억지로 혼자가 되었고, 엇갈리고, 방황하던 두 사람이 만나 다시 둘이 되었다. 둘이 될 수 있었던 인연에 감사하고, 거리낌 없이 둘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준 형에게 감사한다.


"아버지, 저희는 행복해요."


뒤에서 조심스레 형을 안으며 마치 물음에 대답하듯 얘기한다. 끌어 안은 손이 가슴에 닿으면 빠르게 뛰는 형의 심장소리가 그를 통해 내 심장까지 전해진다. 힘들게 손에 넣은 봄을 다시는 놓지 않을 거라고-.


 


라리에이트


[이비라리] 라리에이트





1.

 그녀를 만난 것은 어느 가을의 끝자락 이었다.





2.

 갑작스런 가을비처럼 그 일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마을의 가장 큰 기왓집, 작은 방에서 얌전히 놀던 올해 두 살 난 집안의 늦둥이 막내에게 감기기운이 있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생사를 오갈 정도로 상태가 위급해진 것이다. 밥 짓는 내가 고소하게 퍼져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일 시간에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다. 아들 부잣집의 고명딸인 라리에트가 맨 발로 헐레벌떡 뛰어나가 마을의 의원을 데려왔건만 의원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어미인 메어리골드는 혼절하였고 무뚝뚝한 아비는 침통한 얼굴로 막내의 곁을 지켰다. 밤은 깊어가고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집안 하인들은 어쩌면 더 큰 곧 비보가 될 이 소식을 타지에 있는 도련님들에게 전하려 말을 타고 마을을 나섰다.

 라리에트는 조용히 어린 동생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은 비정상적으로 뜨거워 금방이라도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운 웃음이 가득하던 아이의 얼굴엔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있었다. 라리에트는 아이의 이마에 얹어져 있던 물수건이 미지근해지자 찬 물을 새로 떠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같았으면 식구들의 잠자리를 준비하느냐 하인들이 돌아다녔을 복도는 인기척이 없었다. 집안의 비극을 예견하는 듯 정원엔 스산한 기운만이 맴돌았다. 깨끗한 물을 요구하기 위해 하인들을 부르려던 라리에트는 방 문 안에서 들리는 대화소리에 숨을 죽였다.


 “산신님께서 데려가시려는 거야.”

 “막내 도련님은 아직 어려요.”

 “우리가 신의 뜻을 어찌 아나.”

 “산신님께서도 무심하시지....”

 젊은 여종의 한탄 섞인 울음소리가 살짝 열린 방 문 틈에서 흘러나왔다. 라리에트는 조용히 그 앞을 떠났다.





3.

 그것은 마을의 전설이었다. 예전에 이 마을은 높은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지였다고 한다. 많은 나라가 흥하고 쇄하는 동안에도 이 불모지만큼은 가지려 하지 않았는데 어느 왕조 때 인가 큰 전쟁이 일어나자 패배한 나라의 피난민들이 이 바위산으로 숨어들었다. 더 이상의 추격은 없었지만 풀 한포기 나지 않고 물 한 모금 없는 땅에 사람들은 절망했다. 모두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죽음만을 기다릴 때 한 소녀가 바위산을 맨 손으로 올라가 신에게 간절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바위산 정상에 벼락이 떨어졌다. 먼지구름이 걷히자 그 곳에는 소녀 외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 사람이 한 손을 휘두르자 어두웠던 하늘이 맑게 걷히고 다른 한 손을 휘두르자 바위산에 질 좋은 흙이 생기고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한 발자국 걷자 물이 샘솟아 계곡이 생기고 한 발자국 더 걷자 어디선가 날짐승이 날아들고 들짐승이 뛰어왔고 그 사람이 땅에 입을 맞추자 나무엔 열매가 달렸다. 놀란 소녀가 두 손을 모으고 당신은 누구시냐 물으니 그 사람은 빙긋 웃더니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졌다.  소녀가 산을 내려가 어리둥절한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하니 사람들은 신께 감사하며 그 사람을 산신님이라 부르며 산꼭대기에 신당을 지었다고 한다.





4.

 신께서 아이를 데려가려 한다. 그것은 고리타분한 노인들이나 믿을 법한 얘기였다. 라리에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남동생을 잃을 위기에 처한 라리에트는 자연스레 그 원망을 마을을 지켜준다는 산신님께 돌렸다. 마루에 앉아 발끝을 까닥이던 라리에트는 혼절 했다 깨어난 어미의 울음소리에 비단신을 구겨 신고는 집을 뛰쳐나갔다.

 거센 비가 쏟아지는 산은 어두컴컴하고 위험했다. 워낙 산세가 험한 지형이라 일 년에 두어번 있는 산신님께 제사를 올리는 축제 때 말고는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길은 돌을 치우지 않아 울퉁불퉁 했다. 그 길을 달려 올라가는 라리에트는 어느새 비단신이 벗겨져 뾰족한 돌에 발이 상처가 나는지도 몰랐다. 그저 이를 악 물고 달렸다. 이윽고 신당이 보이고 라리에트는 구르듯 신당의 제단 앞으로 쓰러졌다.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머리가 핑 돌았다. 찬 가을비를 잔뜩 맞은 몸은 서늘하게 얼어 가늘게 떨렸다. 라리에트는 엎드린 채로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신이시여!”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빗소리에 묻혔다.


 “산신이시여! 그 아이는 아직 어립니다! 제 동생은 아직 어립니다!”


 눈물이 비와 섞여 방울방울 떨어졌다. 비통함과 원망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이제 고작 두 살입니다! 아직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지 못 한 갓난아이입니다! 어째서, 어째서 그 아일 데려가려 합니까!”


 잔인하신 분.... 잔인하신 분.... 끅끅 거리며 울음을 삼키던 라리에트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는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한참을 울던 라리에트는 어느 순간 비가 그쳤음을 깨달았다. 아니, 빗소리는 계속 들렸지만 그녀의 몸을 두드리던 빗줄기의 느낌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라리에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 그녀가 있었다.





5.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먹구름이 잔뜩 껴있어 쉴 새 없이 비를 쏟아내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신당이 있는 그 부근만 구름이 맑게 개어져 은은한 달빛이 신당을 밝혔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라리에트는 그 기묘한 광경에는 눈길을 주지 못 했다. 아무도 없던 신단 제단 위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은 구불거려 허리 위까지 내려왔고 금빛 눈은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니라 믿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새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 라리에트는 덜덜 떨며 신음했다.


 “산신님.”


 산신님은 아무 말도 없이 라리에트를 내려다보았다. 라리에트는 어째서인지 울고 싶은 기분이 됬다. 가슴이 답답하고 통곡하고 싶은 기분. 쉼 없이 뛰었을 때보다 더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아파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어째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몰랐지만 라리에트는 애써 그 느낌을 떨쳐내며 고개를 조아렸다.


 “산신님. 제발 제 동생을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제발.”


 단 한 번도 남에게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었다. 명망 높은 ‘킹 다이아몬드’ 가문에서 태어나 오히려 어른들에게 존대를 받고 자랐지 이렇게 엉망인 꼴로 남에게 빈 적은 처음이었다. 그 만큼 간절했다. 다시 복받쳐 오르는 울음에 입술을 깨물던 라리에트는 코끝을 스치는 고아한 향기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산신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멍하니 산신을 올려다보는 라리에트의 뺨에 아름다운 흰 손가락이 닿았다. 라리에트는 산신의 금빛 눈동자가 슬프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산신의 붉은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


 라리에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날 마을의 가장 큰 기왓집 막내아들은 언제 아팠냐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6.

 나는 꿈을 꾼다. 아름다운 흰 꽃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너는 울부짖고 있다.





7.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자 그쳤다. 화창한 날씨에 높은 가을 하늘이 돋보였다. 라리에트는 마루에 앉아 신을 신다가 등 뒤에 매달리는 묵직한 느낌에 빙긋 미소 지었다.


 “누나!”

 “잘 잤어?”


 이제 세 살이 된 막내 동생은 이제 제법 말도 잘 하고 잘 뛰어다녔다. 일 년 전 생사를 오갔던 것이 무색하게 지금은 기운이 넘쳐 하인들은 막내 도련님이 어떤 사고를 칠까 늘 전전긍긍하였다.


 “누나, 산에 가?”

 “응. 점심께 돌아올게.”


 어린 동생은 칭얼거림 없이 누이에게서 떨어졌다. 라리에트는 아이의 머리를 두어번 토닥이고는 집을 나섰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산길이지만 근 일 년 동안 라리에트가 쉴 날 없이 왔다 갔다 한 덕분인지 길은 지나다니기 쉽게 정리되어있었다. 익숙하게 산을 타고 올라간 라리에트는 신당에 도착하자 가져온 보따리를 제단 위에 풀었다.


 “어서와, 라리.”


 어느새 인가 제단 위에 산신님이 앉아있었다. 사실 ‘앉아 있다’ 라는 말은 옳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언제나 땅에 닿지 않고 살짝 떠 있었는데 어느 날 라리에트가 그것에 대해 묻자 산신님은 슬픈 얼굴로 대답을 피했었다.


 “오늘은 감잎차와 찹쌀약과 에요.”

 “어머, 맛있겠네.”


 하얗고 예쁜 손이 약과를 하나 집는다. 라리에트는 조용히 찻잔에 차를 따랐다. 밤새 내렸던 비가 무색하게 바삭하게 마른 낙엽들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리에트가 매일 이 곳에 오게 된지도 어언 일 년이었다. 장대비가 내리던 날 어린 동생을 살려주는 대신 산신님이 내건 조건은 일 년 동안 라리에트가 매일매일 신당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라리에트는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고 산을 내려오자 언제 아팠냐는 듯 동생이 방긋방긋 웃으며 맞이하였다.

 라리에트가 늘 차와 간단한 다과를 가지고 산을 올랐다. 그리고 제단에 앉아 산신님과 함께 다과를 즐기며 대화했다. 어느 날은 라리에트가 어린 시절 이야기나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또 어느 날은 산신님이 각종 기묘한 이야기, 설화 등을 이야기 해준다. 처음에 늘 긴장하고 고개도 제대로 못 들었던 라리에트는 이제 오랜 친구와 이야기 하 듯 편히 웃었다. 어쩌면 산신님의 외모가 라리에트 또래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또래 친구 한 명 없었던 라리에트에게 산신님은 신의 존재보다도 친구로서의 존재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이 오전의 다과회는 언제나 기다리게 하는 것이었다.





8.

 좁은 통로를 달린다. 빛이 없는 좁은 통로를 달린다. 발 밑에 고인 물이 발을 붙잡아 달리기 힘들지만, 그래도 달린다. 그리고 그 끝에...





9.

 비가 쏟아졌다. 마치 그날과 같았다.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음산한 정원. 쥐죽은 듯 조용한 집 안. 아비와 어미는 막내아들이 잠들 때까지 그 옆을 지켰다. 이윽고 아이가 잠이 들자 아비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들어가 자거라. 라리에트.”


 아비의 말에 문에 기대어 수를 놓던 라리에트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요.”


 라리에트가 다시 들고 있는 수틀로 시선을 돌렸다. 곧 인기척이 멀어졌다. 비가 멈출 생각은 없는지 이따금 우르릉 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옆에 두었던 촛불이 순간 불어온 바람에 훅 꺼졌다. 순식간에 껌껌해진 주위에 라리에트가 수틀을 정리했다.


 드르륵.


 “어머, 깼니?”


 문이 열리고 잠들어 있어야 할 어린 남동생이 나왔다. 열린 문 너머로 불편하게 잠든 어미가 보였다. 작은 손으로 눈을 비빈 아이가 웅얼거렸다.


 “무울...”

 “물? 목말라?”


 아이는 답하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서 마루를 내려가 맨 발로 정원을 내려갔다. 아이의 얇은 옷이 빗물에 젖어 들어갔다. 라리에트가 아이를 불렀다.


 “막내야. 이리로...”


 그 순간, 아이가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몰랐다. 눈을 깜빡이는 그 잠깐 사이 사라졌다. 라리에트는 당황하여 맨 발로 정원으로 뛰쳐나왔다.


 “아가? 막내야!”


 차가운 비가 딱 일 년 전처럼 아프게 피부를 두드려왔다. 등골이 선뜩해졌다. 불길한 예감. 라리에트는 달렸다. 산신님이 있는 곳으로.





10.

 사람들은 내가 텅 비어있는 불량품이어서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떠나가요.

  -씨엘 본문中





11.

 검은 하늘 위로 둥글게 구멍이 뚫려있다. 그 사이로 달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제단 위에 그녀가 서있다. 아니, 그녀가 맞는 건가? 라리에트는 그녀의 존재를 의심했다. 텅 빈 저것이 일 년 동안 마음을 나누었던 그 산신님이 맞는 걸까? 


“내 동생, 왜 데려간거에요?”


 목소리가 덜덜 떨려왔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와의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꼭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것 마냥 그녀가 좋았고 편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됬었다. 그녀는 신.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줘도 그녀는 신이었다. 라리에트는 늘 그걸 느꼈다. 곁에 있지만 곁에 없었다. 그녀는 마치 하늘과 같았다. 지평서 끝으로 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리 가도 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내 동생, 왜 아프게 했었던거에요?”


 그것을 깨달은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특별한 단서라던가 행동은 없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막내 동생이 그렇게 아팠던 것은 산신님 때문이구나. 그녀가 막내 동생을 아프게 했구나.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면 내가 신당으로 달려 올 테니까.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그 아이를 데려간걸까? 왜 나에게 다정하게 대한 것일까?


 “늘 생각했어.”


 산신님이 라리에트를 바라봤다. 아니, 그 너머의 무엇인가를 보았다.


 “‘라리’는... ‘라리’는 왜 나만의 ‘라리’가 될 수 없었을까?”


 라리에트는 두 팔을 감싸 안았다. 산신님은 라리에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라리’를 보고 있었다. ‘라리’는 누구지?


 “그래서 너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어.”


 산신님의 머리카락이 하늘거렸다. 그녀가 라리에트에게 다가왔다.


 “바보였네,”


 늘 아름답다고 생각한 흰 손이 라리의 뺨에 닿았다. 따듯한 물이 라리의 뺨에 떨어졌다. 라리에트는 눈을 크게 떴다. 보석 같은 황금색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너는 ‘라리’가 아닌데.”


 맞닿은 살갗으로부터 따듯한 기운이 피어오른다. 얼어붙은 몸에 온기가 퍼져나갔다. 산신님은 빙긋 웃었다.


 “미안해. 그냥 내 심술이었어. 아이는 방으로 돌려보내놨어.”


 온기가 멀어져간다. 라리는 멀어지는 그 손을 붙잡고 싶었지만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신 볼 수 없을 거야. 더 이상 이곳에 오면 안 될 것 같아. 정말로 미안해.”


 어디선가 꽃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작별이야. 라리에트.”





12.

 “나는 늘 꿈을 꿔요.”


 하늘을 바라보던 산신님이 라리에트를 바라봤다. 라리에트는 두 손을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하얀 꽃들이 만개해요.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요. 비명소리가 들려요.”


 산신님의 옷자락 끝부터 점점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산신님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물이 잔뜩 고인 통로를 내달려요.”


 두 뺨이 흠뻑 젖어질 정도로 눈물이 샘솟는다. 붉은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산신님은 애써 울음을 삼켰다.


 “그 끝에 있을꺼라 믿어요.”


 쿵, 천둥소리가 울렸다.


 “이비엔.”


 흡, 하고 젖은 숨을 들이켰다. 산신님은 이미 반쯤 사라진 몸을 크게 굽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던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환히 웃었다.


 “언제나, 거기 있었구나. 라리.”


 빛이 흩어졌다. 환한 웃음도 흩어졌다. 비가 내렸다.





13.

 나는 또 달린다. 좁은 통로를 달린다. 몸이 찢겨나갈 듯 아프다. 하지만, 이 길의 끝에는.





14.

 나의 의지와 함께 살아줘.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씨엘 본문中


몽상가


[카게히나] 몽상가





주석) 몽상: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또는 그 생각.


      몽상가: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즐겨 하는 사람.



 우리 반에는 몽상가가 한 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순진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학교 학생들 모두 그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더러운 자식, 남에게 몸이나 대주는 아이. 그의대한 소문 중에서 절대 좋은 소문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알고있는 그는 배구를 좋아하고 그저 남들보다 말을 독특하게 할 뿐이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절대로 나쁜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조금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는 조금


아름다울 뿐이다.


그는 몽상가다.




1.


"아침에는 너무 춥단 말이야.."

"옷은 단단히 입고 나오라고. 넌 추위도 잘 타는 주제에."


 히나타와는 아침연습에서 부터 얼굴을 마주했다. 작은 키에 엄청난 점프력과 순발력. 그는 배구에서 코트를 위를 날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마 그같이 배구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리라. 아침연습이 끝나는 대로 그는 바로 교실로 향했다. 이상한 행동을하지 않는다. 이상한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대신 말을 걸어주기에는 나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의 소문을 완벽하게 믿지 않는 것은 내게는 아직 어려운 일이었다.


"카게야마. 히나타 이거 두고 갔어. 히나타한테 이거 좀 갖다줘, 괜찮지?"

"네.."


 그의 목도리를 손에 쥐고 체육관을 나오자 바람이 얼굴을 찢듯이 아려왔다. 그의 반으로 향하자 그 반 학생들 모두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저..저기. 히나타 있어?"

"히나타? 아, 너 배구부구나. 히나타 안 왔어. 그리고 걔 아직 교실 올 시간아니야."

"그치? 걔 또 망상같은 거 하러 갔나봐. 진짜 아니야?"

"어..그래. 어디 있는 지 알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그의 반은 쌀쌀맞았다. 다른 반 학생이라고 무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히나타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서 무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가 갈 만한 곳을 내가 알리 만무했다. 학교 전체를 뒤지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가 갈 만한 곳을 점 찍어 봤다. 햇빛을 쬐러 갔을까?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봤지만 옥상문은 잠겨있었다. 체육관 뒤쪽에 가봐야 하나? 나는 아예 수업을 포기하고 히나타를 찾는 것에 몰두했다.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그가 왜 몽상가라 불리는 지 궁금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죽이며 학교를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히나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수업에 들어간걸까? 하고 포기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는 그를 찾았다. 

히나타는 체육관 뒤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겨울이었기에 나무에서 생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쓸쓸함만이 묻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히나타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추워보이지 않았다.

다른 존재를 보는 기분이었다.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공간임을 느꼈다. 다가가면 그 공간이 와창창하고 깨질 것만 같았다. 그를 부셔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궁금했다. 그가 무슨 상상을 하는 지 궁금했다. 나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히나타는 궁금했다. 그라는 존재가 나에게 너무나도 커다랗게 와닿았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히나타의 표정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웃고 있었으나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고 옷이 아닌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은 온통 벌겋게 변해있었다.


"히..히나타. 춥지 않아? 이런 곳에 있으면 감기 걸려."

"카게야마잖아! 무슨 일이야?"

"..스가와라선배가 네가 이걸 놓고 갔다고 했어."

"아..목도리구나. 어쩐지 허전하다고 했어. 고마워, 카게야마!"


 그의 웃음은 겨울바람으로 얼지 않을 만큼 포근해보였다. 


"수업시작했어."

"응. 하지만 따분한 건 싫어. 배구 안할 때면 움직이기 싫어."

"너 대학은 갈 수 있겠냐?"

"대학 안가도 되지.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모두랑 배구하는 게 좋아."


 나는 그의 목소리가 더 듣고싶었기에 그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는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이야. 너무 고리타분해."

"무슨 소리야?"

"너무 같은 일만 하고 있잖아. 다른 일도 해볼 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 만큼 살 수 있는 거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면 좋을텐데."


 히나타는 추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 대해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공부하고 살아야지."

"카게야마도 공부 안하잖아. 카게야마나 배구부에 있는 다른 선배들만큼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

"응.."


 그는 수긍했다는 의미보다는 내 대답을 무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춥잖아. 부실에라도 들어가 있을까?"

"카게야마가 있으니까 별로 춥지도 않은데."

"..."

"카게야마, 나한테 하고싶은 말 있어?"

"아..음..그냥 별로 없는데."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거나 나를 상대한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에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야 넌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람하고 대화할 때 눈도 안 마주치냐?"

"나? 나는 그냥 여러 생각을 하지.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다른 사람들은 고리타분 하다며?"

"고리타분해도 어쩔 수 없지. 나도 사람인데."

"..."

"우리는 고리타분할 수 밖에 없어. 그걸 알고 있어도 고칠 방법이 없는 걸."



 히나타와의 대화는 어쩐지 이어지지 않았고 간결했다. 터무니없는 소리도 아니었고 그때 상황에서는 조금 뜬 구름을 잡는 듯한 대화였다. 하지만 절대 기분나쁜 대화도 아니었고 엄청난 몽상의 세계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났는지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움직이기 싫다던 히나타를 강제로 부실로 끌고 갔다. 부실도 충분히 서늘했지만 강한 칼바람을 그대로 맞고있는 것 보다는 나았다. 히나타의 표정은 심보가 살짝 드러날까 말까 하는 표정이었다.


"요즘 너에대한 소문이 자자해."

"무슨 소문?"

"그냥..네가 이상한 소리를 자주 한다거나. 뜬 구름잡는 얘기를 한다거나.."

"나는 내 생각을 얘기할 뿐인데 주위에서는 그렇게 안 생각하는 것 같아. 그냥 그런거지."

"네가 몽상을 잘 한다고 말이야."

"몽상을 잘한다니까 나 엄청 멋있어 보이네! 나 그렇게 뜬 구름잡는 얘기를 했었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그런거였나?"


 히나타는 어떤 대화를 해도 슬퍼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말은 타협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솔직히 그의 말은 현실성이 부족했다.


"근데 몽상가는 사람을 조금 무시하는 거잖아."

"뭐.."

"기분 나쁘지는 않은데 내 생각들이 모두 몽상이라고 하니 조금은 슬프네. 솔직히 해 보지도 않고 몽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억지잖아!"

"현실적으로 보면 안되는 거지.. 상상으로나 생각하라는 의미 아니겠어?"

"난 솔직히 별을 만나러 갈꺼야 이런 말은 안 하잖아.."


 부실에서 히나타와 대화를 계속하면서 점점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걸 깨달았다.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들자 창문에서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불도 켜지않은 부실에서 남자둘이서 도시락 까먹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카게야마도 내가 이상한 상상을 한다고 생각해?"

"어?"

"너도 나를 몽상가라고 생각하나 하고."

"..이..이상한거 물어보지마. 밥이나 먹어."


 히나타와의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시간은 금방 가버렸다. 히나타는 내 대답이 궁금했는지 도시락을 먹는 동안 계속 내게 물어봤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소리가 들리고 비는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히나타와 나는 거의 대화를 하지않고 빗소리에만 경청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상한 일이 생겼어."

"뭔데."

"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어."

"무슨 소리야?"

"음..그냥 네가 나보고 몽상가얘기를 해줘서 계속 생각했는데 요즘은 계속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거 같아서."


 히나타는 도시락통을 가방에 쑤셔넣으며 말했다. 


"어떨 때 그러는데."

"너랑 터치할 때!"


 히나타가 갑자기 내 손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아프지않았지만 엄청나게 놀랐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추운 나무 밑에 있을 때와 비슷한 눈이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나는 얼른 손을 빼냈다.


"무슨 짓이야!"

"너랑 터치할 때 이상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그래서 한 번 잡아봤어."

"무..무슨 느낌인데?"

"가슴이 막 두근두근 거리는게 정말 기분이 나빠!"

"헐?"


 히나타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정말 기분이 상했다! 나는 녀석의 이마에 꿀밤을 내리치며 승질을 다 부렸다. 히나타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궁시렁댔다.


"하지만 카게야마 난 너랑 있을 때 제일 행복한 거 같아."

"스파이크 칠 수 있어서 그런 거겠지."

"아냐. 이렇게 너랑 대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히나타가 웃으며 얘기했다. 그는 너무 무방비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따위 신경도 쓰지않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너무 솔직한 탓에 사람들은 소문으로 그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는 절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깨끗하고 순진했다. 백지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와 있는 것이 행복하다 말한 순간부터 나는 그를 만지고 싶어졌고 더욱 쓰다듬고 싶어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를 몽상하기 시작했다.






2.


 그를 몽상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운동을 할 때마다 보이는 그의 곡선을 따라 여러 상상을 해봤다. 시합에 집중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고 나 혼자만의 상상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히나타의 신음, 히나타가 느끼는 오르가즘. 그는 남자다. 여자의 육체를 보고 흥분하는 나는 과거로 흘러갔고 오로지 히나타에 의해서만 흥분했다. 

그와 부실에 있었던 일이후로 히나타도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들었다. 히나타와는 부활동이 아닌이상 대화하지도 만나지도 않았다. 그로서는 서운해하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서운해했고 그를 필요로했다.

 나는 그에 대해 더욱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용기가 부족하다. 그 이상에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카게야마, 오늘 선배들은 먼저 집으로 가셨어. 우리가 정리하고 가자."

"어."


 나는 부실 문을 열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히나타는 문앞에 서서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여..열쇠 주고 가. 내가 잠그고 갈게."

"카게야마.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 답답하니까!"


 히나타는 그제서야 속이 시원했는지 숨을 크게 들이셨다.


"무슨 소리야. 할 말 없어."

"진짜야?"

"어."

"난 내가 여기서 너랑 있는게 행복하다고 말한거 신경쓰는 줄 알았어."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정곡을 찔린 듯이 움찔거렸다.


"..."

"진짜야?"

"아냐."

"그럼 뭔데? 계속 이런 식이면 시합이나 연습에도 무리를 준다고."


 히나타는 정색을 하며 내게 말했다. 언제나 하이톤의 목소리만 듣다 낮게 깔린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찔리는 것은 오로지 몽상뿐이었다. 그에대한 환상, 그에대한 성적인 호기심 뿐이었다. 히나타는 가끔 너무 솔직하고 살기를 뿜어댄다.


"나도 너처럼 몽상을 해."

"어?"

"그냥..나도 가끔은 상상의나래를 펼친다고."

"무슨 상관이야?"

"그거 때문에 너랑 말을 잘 못하겠어."


 히나타는 미소를 지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풀썩 주저앉았다.


"나랑 관련된 몽상을 하는구나?"

"..어."

"몽상은 허황된 상상이지만 해보지도 않고 상상만 하는 것도 별로야."

"..."

"새로운 토스? 난 스파이크 칠 수 있어!"


 그는 너무 무방비했다. 내가 그에대한 상상을 하는것도 모르는 채 너무도 순진하게 웃었다. 

나는 얼른 히나타의 목덜미를 잡고 그에 입술을 핥았다. 히나타가 내 어깨를 세게 밀치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런 몽상을 해, 요즘."

"..."

"그냥 자위하고 그럴 때 여자가 아니라 너를 상상하고 해."


 솔직히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과시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히나타에게 말함으로써 그와 멀어지는 것을 원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입이 떨어지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이런 것도 일종의 몽상이야.."

"..."

"아님 말고.."


 히나타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가방끈을 세게 쥐었다. 일어나서 이 공간을 나가야했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카..카게야마는.."

"..."

"내..내가 너랑 있는 게 행복하다는 말을 잘못 이해한거 아니야?"

"..엉?"

"난 카게야마 좋아해."

"..."

"카게야마가 나를 상상하며 자위 처럼 나도 몽상을 했어."

"..."

"그리고 넌 몽정이겠지."


 히나타가 입을 삐죽대며 말했다. 방금 히나타가 날 비웃었다! 나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히나타에게 정곡을 찔린 것이 내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무..무슨 소리야!"

"카게야마, 넌 너무 솔직하지 못해."

"..."

"내가 좋다면 좋다고 말하란 말이야!"


 히나타가 도리어 화를 냈다. 히나타의 표정을 자세히 보니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그는 부끄러워했다. 자신이 한 몽상을, 왠지 모를 죄책감을. 그것은 확실한 대상에 대한 몽상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소문이 좋지 않은 남자였다. 다른 사람에게 몸이나 대주는 나쁜 소문만 존재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소문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의 주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는 소문은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그를 상상하면 상상할 수록 대단하게 느껴졌고 대담하게 느껴졌다. 그는 미숙하고 백지같았지만 그만큼 용기도 커다랬다. 그는 내게는 너무나 커다랗고 작은 존재여서 더욱 알고싶었다.

장난감같으면서도 그 존재의 의미는 내게 너무나도 컸다. 

 나는 천천히 히나타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긴장으로 매우 차가웠다.


"..카게야마?"

"그럼 내가 한 몽상, 그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해보지않으면 모르는 일이야."


 나는 담담하게 대꾸하는 히나타의 얼굴을 보고 서스름없이 입술을 만졌다. 그리고 아까처럼 그의 입술을 핥았다. 상상으로만 했던 것과 실제로 그와 맞닿는 부분들은 너무 뜨거워져서 배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히나타는 눈을 쭉 감고있었다. 붉디붉게 얼굴을 물들고 나를 자극했다. 그는 예민했다. 터치하나하나에 반응했다. 도저히 그가 소문의 남자와 일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너무 서툴렀다.

나는 히나타의 바지안으로 살짝 손을 넣었다.


"차..차가워.."

"응..미안."


 나도 히나타가 조심스러웠다. 다루기 힘든 유리잔을 만지듯 그의 살결을 타고 흘렀다. 나는 그의 흰 목덜미를 살짝 물었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며 내 어깨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었다.

나는 얼른 그의 페니스를 지분거리며 이 상황을 서둘렀다. 그의 신음이 더욱 간결해졌다. 나는 미소가 흘러넘쳐 사라지지 않았다. 상상으로만 그를 지분거리고 상상으로만 박아왔다. 이제 눈앞에 그는 존재했다.

내 눈앞에 몽상가가 있다. 나는 몽상가에게 맞닿는 상상을 하고, 키스하는 상상을 하고, 섹스하는 상상을 했다. 

 나는 몽상가인 그를 동경했다. 하지만 나는 몽상가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몽상했던 그와 섹스를 했다.

나는 몽상가가 될 수 없었다. 대신 현실을 얻었다.






#


엄청난 작붕이고 못 쓰고 엄청 짧고 수위도 끊었지만 간간히 익만에 올릴게 ㅠㅠㅠ 아니면 3회 글합작에서...

미안 고멘네 죄송합니다!ㅠㅠ


무제


스자쿠X를르슈야





*를르슈가 좀 바보로 나옵니다 ㅎㅎ...


원래부터 스자쿠는 행동하는 데에 있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돌아온 집 앞에 웬 사내가 쓰러져 있었을 때도 이상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굳이 필연적인 만남으로 여기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필 제 집 앞에 쓰러져 있었으니 어떻게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직업군인으로서 느끼는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사명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으레 경찰에 먼저 신고할테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스자쿠는 처음 보는 사람을 집안에 들이게 되었다.


어찌저찌 침대에 눕혀 놓긴 했지만 몇 시간동안 미동도 하지 않는 사내 때문에 스자쿠는 그가 빈사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품었다. 일반인이라면 평생 보지 않고 살 수도 있는 광경을 충분히 목격한 탓인지,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못하다던가 하는 걱정이 자연스레 피어올랐던 것이다. 안색이 창백하고 살결이 차가웠기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하품까지 하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그 후의 일이었다. 최대한 상냥한 표정으로 끈질기게 캐물었지만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겨우 두 가지. 를르슈 람페르지라는 이름과, 당분간 스자쿠의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 모종의 사연이 있는 것 같았으나 를르슈는 한 번 구해준 사람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대화를 끝냈다.


를르슈가 정말 빈손으로 쓰러져 있었다는 것은 스자쿠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ㅡ 몸수색은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ㅡ 그가 정말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안감이나 넥타이, 혹은 기껏해야 셔츠 정도에나 쓰는 우단羽緞으로 만들어진 코트부터가 그 증거였다. 언행 또한 범인凡人의 것은 아니었다. 티타임을 빙자한 심문 수사에서 스자쿠의 질문 공세에 휘둘리지 않고, 도리어 스자쿠로부터 신변 보호를 약속받기까지 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은 긍지, 혹은 일종의 특권의식이며, 그로 인해 저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스자쿠는 추측했다. 애초에 뭐든 쉽게 납득해버리는 스자쿠의 성격을 간파하고 던진 노림수임을 그가 알 리가 없었지만. 덧붙이자면 어찌저찌 담판을 짓고 난 뒤의 를르슈는 마치 자신의 집에 있는 것 마냥 뻔뻔하게 신문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ㅡ굉장히 편해 보이시네요.

ㅡ아아, 그런가.


보다못한 스자쿠가 나름대로 눈치를 준답시고 말을 꺼냈으나 를르슈는 글자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 사람이……. 그 전까지 별 말 않고 있던 스자쿠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를르슈가 의식을 잃고 있었던 동안 스자쿠는 밀린 집안일을 하나 둘씩 돌파해가는 중이었다. 그로서도 간만의 귀가였기 때문에 청소며 빨래며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다. 만약 를르슈가 없었다면 이미 다 끝내버리고도 남았을텐데, 이러다간 저녁조차 건너뛰어야 할 판이었다. 


ㅡ를르슈.

ㅡ음?

ㅡ여기 있는 것까진 괜찮은데, 너무 무책임하단 생각은 안 들어요?

ㅡ…….

ㅡ별 다른 걸 바라는 건 아니니까, 장이라도 좀 봐오는게 어때요?


돈은 내가 부담할 테니까. 스자쿠가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부잣집 도련님이라서 비싼 코스 요리 같은 것만 먹을까봐 무의식중에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 스자쿠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를르슈는 왠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돈을 받아들였다. 인스턴트라도 괜찮으니까, 적당히 먹고 싶은 걸로 사오세요. 를르슈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스자쿠가 초콜릿 하나를 집어들었다. 


담담한 척 나왔지만, 사실 를르슈는 를르슈대로 고민이었다. 장을…… 봐오라고? 를르슈가 손에 든 카드를 꽉 쥐었다. 요즘 사람들은 주로 뭘 먹지? 멀지 않은 곳에서 만물상 같아 보이는 곳을 발견했지만 막상 들어가자 무엇을 사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이상한 용기에 찍힌 음식 사진 뿐이었다. 이 안에 음식이 들어 있는 건가? 과자 봉지를 처음 본 를르슈는 포장지를 찔러보다 정신을 차렸다. 제가 먹을 줄 아는 음식은 파는 것 같지 않았다. 직원한테 물어보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를르슈의 눈길이 닿은 것은 갈색의 향연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스자쿠, '초콜릿'을 먹고 있었는데.



 

ㅡ초콜릿?

ㅡ네, 손님. 초콜릿은 저 안쪽 진열대…….

ㅡ다 줘.

ㅡ…….

ㅡ여기 있는 것 전부 다.


망설임과 함께 카드를 내밀자 점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봉지에 초콜릿을 쓸어담았다.






의외로 금방 돌아왔네요. 왠지 아쉬워하는 듯한 어조에도 를르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의 비장한 표정에 스자쿠는 의아해하는 모습이었으나 를르슈에게는 그런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시험을 치는 학생의 느낌으로, 를르슈가 주섬주섬 꺼내든 것은 한 무더기의 초콜릿이었다. 낱개 포장이 되어 있어서 하나씩 까서 먹을 수 있는 것, 바 형태로 되어있는 것, 하트 모양의 상자에 들어있는 것. 를르슈가 초콜릿을 꺼낼 때마다 스자쿠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가격을 다 합하면 얼마나 될까. 월초인데 벌써부터 무리하면……. 그럴 수록 를르슈의 손은 더욱 바빠졌다. 그의 얼굴엔 벌써 그늘이 져 있었다. 스자쿠가 한 마디 하려던 찰나, 를르슈에게서 자신 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ㅡ초콜릿, 좋아하는 것 같아서.



한동안 어리둥절한 상태로 를르슈와 초콜릿을 번갈아 보던 스자쿠가 피식, 하더니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를르슈가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스자쿠가 계속 웃어대는 통에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합격인 걸까? 애매한 기분으로 를르슈가 미소지었다.











ㅡ를르슈, 춤 출 줄 알아요?

ㅡ왈츠 같은 거라면 어느 정도는. 갑자기 왜?


를르슈의 대답에 심각한 표정이었던 스자쿠가 활짝 웃었다. 를르슈, 저의 파트너가 되어주시겠어요?


ㅡ그러니까…… 댄스 파트너? 그런데 왜 그걸 나한테 신청하지?

ㅡ아니, 진짜로 신청하는게 아니라고요. 며칠 뒤에 무도회에 가게 됐는데, 같이 연습해줄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그래서 지금 나보고 여자 역을……. 를르슈가 인상을 찌푸렸다. 를르슈가 스자쿠와 함께 생활하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쯤 지났다. 초콜릿 때문에 달달하지만 배고픈 저녁을 보낸 이후로 스자쿠는 딱히 를르슈를 귀찮게 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를르슈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봐, 뒷처리가 무서워서 그런 것일테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 쪽이 서로에게 편한 것은 분명했으니까. 스자쿠가 집에 없을 때는 집안일을 조금 도와주고, 그가 오면 말동무를 해주는 것이 를르슈의 역할의 전부였다.



그런 스자쿠가 왠일로 자신에게 부탁을 해오는 것이다. 상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스자쿠는 특유의 행동력으로 망설임 없이 오디오를 틀었다. 준비라도 한 듯 경쾌한 왈츠가 흘러나오자 스자쿠가 를르슈의 등에 손을 올렸다. 레이디, 한 곡 추시겠습니까? 를르슈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스자쿠의 팔을 잡았다. 어쨌든 자신은 빌붙어 살고 있는 신세였으니까 무작정 거부하기도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저번의 그 일도 있고…… 다행히 왈츠 스텝엔 남녀간의 차이가 별로 없었지만,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딱 한 번만 추고 물러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자쿠의 손길은 의외로 집요해서, CD 한 장 분량의 왈츠가 끝나고 를르슈가 침대에 발라당 누워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춤은 계속되었다.





막상 무도회 날짜가 다가왔을 땐 폭풍우가 휘몰아쳐 도저히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당일에는 아예 정전까지 되어 버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긴 이런 장마철에 파티라니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모처럼의 문화 생활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던 스자쿠가 입술을 내밀었다. 실망한 스자쿠와는 달리 를르슈 쪽은 날씨 같은 건 상관없다는 듯 책을 읽고 있었다. 촛불의 빛은 얄팍하다 못해 주변을 더 어둡게 만들어버릴 것 같은 느낌인데도 꿋꿋이 독서를 계속하고 있었다.


ㅡ를르슈.

ㅡ…….

ㅡ를르슈. 나 심심한데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 

ㅡ…….

ㅡ저의, 파트너가 되어주시겠습니까?


를르슈가 통 반응이 없자 스자쿠는 아예 정식으로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얼굴에 저절로 배어나오는 장난스러운 기색까지 숨길 수는 없었지만. 스자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를르슈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장단 맞춰주는 것도 이번만이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왈츠가 끝나고 스피커에서 미뉴에트가 흘러나왔다.


ㅡ어이, 이봐. 이거 왈츠가 아니잖아!

ㅡ그건 그렇네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음악을 바꾸려니 분위기가 깨지는데 어쩔까나.


게다가 를르슈, 이것도 잘 추는 것 같은 걸. 스자쿠의 미소에 를르슈가 눈을 내리깔았다. 실제로 어두운 방 안에서도 를르슈는 제법 차분하게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촛불이 일렁였다.  깍지를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런 코멘트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오랜만의 평가에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혼란스러워하다 순간 스텝을 헷갈린 를르슈 때문에 두 사람의 다리가 엉켰다. 두 사람이 동시에 넘어졌다. 오디오 코드를 밟고 넘어졌는지 음악마저 멈추고 말았다. 숨을 쉬기 힘들어진 것은 분명 스자쿠의 체중이 온몸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겠지. 스자쿠라면 금방 일어나서 웃어넘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계속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적막을 가르는 빗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시선을 마주해오자 스자쿠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그런 걸까……. 를르슈가 눈을 감자, 따뜻한 느낌이 입술을 간질였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원래 한참 더 있어여 ^^...!! 하지만 다 쓰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 읽근ㄴ다고 고생하셨읍니다.....


흥분


[도플루피] 흥분





도플라밍고는 연신 두들겨맞고 손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 하는 루피를 가소롭다는듯이 내려다본다. 황금색 화려한 조명 빛이 도플라밍고의 머리로 쏟아지는것이 영롱한듯 예뻤으나 루피는 그 모습마저도 괴기스러운 공포로 보였다. 



"쿨럭-!! 크읍..." 



마르고 텁텁한 기침을 할때마다 뜨뜻한 핏국물들을 토해냈다. 루피는 피와 땀, 먼지로 범벅이되어 땅바닥을 굴렀다.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나가야해. 터진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실었다. 



퍼억! 



두껍고 단단한 다리가 루피의 명치를 가격했다 극심한 고통에 금방이라도 눈이 뒤집혀져 실신을해도 모자랄것같았다. 그러나 기절하면 때리고 기절하면 두들겨패고 차라리 이럴거면 그냥 죽이는게 어떠냐 씨이....ㅂ...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너의 그 고집이 나는 참 마음에 안들어 밀짚모자.." 



"백날 천날 떡이되도록 두들겨봐라 내가 눈하나 깜빡 할거같냐?" 


  


이 순간에도 루피는 혀를 낼름 내밀며 도플라밍고를 약올리고있었다. 도플라밍고는 재미있다는듯 웃으며 루피의 가슴팍에 앉았다. 이게 무슨짓이냐며 말을 이으려는데 단단한 집게손가락이 루피의 말캉거리는 혀를 붙잡았다. 



"으엑!!" 



"고무라는것은 참 재미있어 늘어나고 부풀고 이렇게 짓뭉게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게.. 안그런가?" 



혓바닥안쪽의 뿌리를 손끝으로 간질이자 발작온것처럼 바들바들 떠는 루피의 모습이 도플라밍고의 눈에 들어왔다. 



괴롭히고싶다. 집어넣고싶다 저 입술을 잡아뜯고, 흐르는 피를 음미하며 한번에 씹어먹고싶다. 도플라밍고는 괴로워하는 루피를 무시한채 입 안이 터져 혀 밑쪽에 묻은 피를 싹싹 핥아 먹었다. 루피가 무슨짓이냐고 입을 크게 벌리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않고 그대로 자신의 입술을 밀고들어온다. 말캉하고 비릿한 피냄새, 약간 느끼하면서도 끝 맛은 달달했다. 도플라밍고는 알수없는 흥분감에 고조되어 자꾸만 도망치는 루피의 혀를 자신의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댔다. 



"하읍..으..아...ㅅ" 



"굉장해 애송이녀석 내 ㅅㄱ를 고작 키스만으로 이렇게 만들다니말이야" 

  


도플라밍고는 루피의 손을 자신의 ㅅㄱ에 가져가고는 바지깊숙히 뜨겁고 단단하게 부푼 앞섬을 어루만졌다. 루피는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발악했지만 이미 저항할 힘 조차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봐야지않겠나?" 



"싫....!!" 



바지버클을 능숙하게 풀어제낀 도플라밍고는 툭 튀어나오는 자신의 ㅅㄱ를 루피 눈 앞으로 가져갔다. 루피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해보이는 ㅅㄱ를 보자마자 식은땀을 흘렸다 보자마자 토기가 올라왔다. 



도플라밍고는 루피의 잔뜩 엉켜버린 머리칼을 쥐어잡고 자신의 ㅅㄱ쪽으로 끌어당겼다. 무슨 뜻인지 루피도 바로 이해 할 수 있었다. 루피는 미쳤냐고 물어뜯어버릴거라며 매섭게 몰아부쳤지만 그것은 도플라밍고를 흥분의 최고조로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빨아라 니가 나를 만족시킬수있다면 너와 네 동료들을 풀어줄수..도 있는데?" 



도플라밍고는 잔인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금방이라도 터질듯한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승자 


자기 눈 앞에 긍지높고 버릇없는 애송이를 무너트린다. 도플라밍고는 그 순간순간이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우물-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루피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도플라밍고의 우람한 ㅅㄱ 앞부분을 아이스크림 베어물듯 입술로 물었다. 생각했던것보다 최고였다. 도플라밍고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듯했다. 



"후..좋아 밀짚모자 물고 있지만 말고 그 고양이같은 혀를 좀 더 사용해봐 아 그렇지...음.. " 



츕..쮸웁....후릅... 



당장이라도 냄새나고 뜨겁고 딱딱한 막대기를 고기씹듯 짓이겨 뜯어내고싶었다.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자신을 찾고 있을것이 분명했다. 트랑이는 구출되었을까 평소 하얗던 머릿속이 왜 지금은 두통이 밀려올만큼 복잡한건지 모르겠다. 



"큽...어이 밀짚모자 애송이 펠라치오는 처음인가? 아무래도 교육이 조금 필요할거같군" 



"우으으ㄱ!!" 



느낌은 굉장히 좋았으나 혀로 사탕빨듯 핥짝이고만 있으니 금방 지루해지는게 흠이었다. 루피의 뒷목을 한손으로 감싸쥐고는 능숙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목구멍에 가격되는 도플라밍고의 ㅅㄱ에 루피가 발작하듯 몸을 움츠렸다. 그럴때마다 더욱 더 조여오는듯한 느낌에 도플라밍고는 그래 이거지 하면서 즐겁다는듯 미소지었다. 



"으흡! 극...하으..." 



흐르는 침이 턱과 목을 타고 흘렀다. 켈록켈록 거릴때마다 ㅅㄱ의 머리가 목젖을 괴롭혔다. 긍방이라도 토를 할것만 같았다. 신물이 올라와 도플라밍고의 ㅅㄱ를 더럽혔지만 아랑곳하지않았다. 루피는 아픔,억울함,분노,치욕스러움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거같았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 누구에게도 지지않는다 라는 자긍심이 강한 아이를 자기가 무너트리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후욱...후...니 입안은 불을 달군건처렇 뜨겁고 부드럽군 그치만 니 뒷쪽은 입보다 훨씬 뜨겁고 쫀득하겠지" 

  


루피는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도플라밍고는 기대된다며 오른쪽입술끝을 말아올리며 웃었다. 

  


"고무는 신기하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 



도플라밍고는 쫀쫀한 촉감의 루피 입 안쪽을 공략했다 귀두쪽을 완벽하게 뒤덮어버리는 볼살에 비비적거렸다. 나의 씨앗을 이 여린 살들에 모조리 흩뿌려주고싶었다. 더럽히고싶었다. 너무나 순수하고 깨끗한 이 녀석을 완전히 박살내버리고싶었다.  



"으으!!" 



입안을 비릿하고 끈적거리는 액체로 가득채웠다. 루피는 당장이라도 뱉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분명 사정을 끝냈음에도 도플라밍고는 루피의 입에서 ㅅㄱ를 빼내지 않았다.   


"난 더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 말을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루피는 경련하듯 입술을 떨며 아직 입안에 가득 들어차있는 하얀 액체를 들이삼켰다. 진짜 진짜 구역질이 날 정도로 맛이없었다. 맛이있을리가 없었지만 루피는 정말 화장실에 뛰쳐들어가고 싶었다. 입안에 남은 정액찌꺼기까지 혀로 싹싹 핥아먹은 루피를 도플라밍고가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내려다보았다. 도플라밍고가 혀를 낼름거리며 루피의 목 근처로 고개를 묻었다. 


  


"잘 익은 냄새가 나는군" 


꼭 변태같은 소리만 골라서 하네 루피는 그렇게 생각하며 뒤로 물러났다.  길고 붉은 혀가 루피의 매끈한 피부에 닿았다. 루피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땀으로 인한 짭짤한 맛과 시큼한 향기 코를 휘감는데 도플라밍고는 오히려 그 향에 흥분한듯 더욱 더 혀를 놀렸다. 


  


"하...읍....난 고기가 아니란 말이야!" 


  


루피가 도플라밍고의 얼굴을 밀어냈다. 우두둑- 꽤 심하게 밀어냈던지 뼈가 꺾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루피는 고소하다는듯 웃었다. 


  


"꽤 하는데 밀짚모자" 


도플라밍고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ㅇ..으....으으아아악!!!" 


  


날카로운 치아가 루피의 피부에 박혀들어갔다. 금새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네녀석의 피는 생각한것보다 별로 맛은 없군 도플라밍고는 말 과는 다르게 주륵주륵 흘러나오는 루피의 피를 쥬스마시듯 츕츕 빨아마셨다. 입주변과 치악 새빨갛게 물들고 괴기스럽게 웃는다. 루피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녀석 생각보다 더 무서운 놈이야 본능적으로 느꼈다. 화상을 입은듯 뜨겁게 달아오르는 상처부위에 도플라밍고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혀로 자신의 입술을 싹 싹 닦았다. 


  


"나만 즐기면 쓰나- 밀짚모자 루피 너에게도 천국을 맛보게 해주지." 


  


"필요없어! 홍학자식!" 


  


루피가 힘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닿지않는다고- 후후후' 거대한 도플라밍고의 몸이 루피를 짓눌렀다. 


  


"제길!! 이 자식 절대로 날려버리겠어-!!" 


  


도플라밍고는 가볍게 루피의 바지를 찢어냈다. 바지는 걸레짝처럼 너덜거렸다. 루피는 당황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반 나체가 된 몸만 내려다 보았다. 


"헤 꽤 귀여운 몸을 하고있군 그래" 


도플라밍고가 루피의 엉덩이 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도플라밍고가 징그럽게 웃으며 살짝 벌려진 루피의 다리사이로 자신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낄낄거리며 루피를 조롱하는 도플라밍고는 차가운 공기에 발기한것처럼 빳빳하게 서있는 루피의 유두를 집게손가락으로 꾹꾹 문지른다. 말랑거리는 돌기가 딱딱해지는것을 느끼며 갸르릉거리는 신음소리를 툭툭 내뱉는 입이 원망스러웠다. 


뻣뻣하게 마른 허리를 도플라밍고가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움푹 패어있는 갈비뼈 안쪽을 손톱으로 간질일때마다 미칠것같아 온몸을 비틀었다. 


“하읏..읏..아..ㅇ..“ 


손톱으로 함몰시키기도하고 빙글 원을 그리며 뜨거워진 유두가 그대로 도플라밍고의 입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내가 니 엄마냐..으응... 도플라밍고의 머리를 밀어내려해도 진짜 젖 찾는 애기마냥 꼼짝도안한다. 갈라지는목소리를 내며 달뜬 숨을 쉬는 내 모습을 보며 섹시하다는둥 야해서 미쳐 버릴것 같다는둥 창피한말만 골라서 하는데 진심으로 죽이고싶었다. 



“ㅇ..입에넣고 말하지마..미아...아..ㅅ..“ 



옆구리를 쓰다듬던 도플라밍고가 점점 성장하는 루피의 ㅅㄱ를 잡아쥔다. 입을 떼자마자 투명한실이 가슴팍과 도플라밍고의 입술에 이어지다 힘없이 끊어진다. 



“기대해 천국을 알게 해줄테니까“ 


“ㅁ..뭘...?“ 


몸을 일으킨 도플라밍고가 땀인지 쿠퍼액인지 정액인지 뭔지모를 이물질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ㅅㄱ를 입에 물었다. 


“아아-ㅅ!!“ 


도플라밍고의 입안을 가득채운 ㅅㄱ를 사탕빨듯 쭉쭉 빨아올린다. 혀를 뾰족하게 세워선 귀두안쪽을 눌러대며 움찔거리는 요도에 혀끝을 집어넣는다. 혀를 움직일때마다 입안에서 팍 터져버리는 신음소리가 도플라밍고를 더욱 더 자극시켰고 그럴때마다 도플라밍고는 이를 세우고 단단한 기둥을 긁어내렸다. 


“아-!! 하윽...이빨 쓰지마 아프다고!!죽일셈이냐!!?“ 


억울한건 아프고 괴로운데 자신은 흥분하고 있단것이다. 입에 넣은지 얼마되지도 않았구만 벌써 물을 찔끔찔끔흘리며 금방이라도 사정할것만같았다. 도플라밍고가 본격적으로 펠라를 시작하는데 빨아올릴때마다 입을 꽉 조여온다. 눈이 뒤집힐것만같은 쾌감에 정신을 잃을것만같았다. 


“하아! 으응! ㄴ..놔..쌀..쌀것같단말이야..!“ 


“하나고 만뎌두고 빠라주는거다!“ 


“하윽...!입에 넣고..응...! 말하지말라니까! 날려버릴거야 진짜!!!읏..두들겨패줄거니까!!“ 



그대로 도플라밍고의 입안으로 직격한 허여말건한 정액을 보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죽고싶어!!!!이를 빠드득 갈며 이 치욕스러움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싶었다. 


"으아앗!" 



갑자기 쭉 뻗어져있던 하체가 꺾여진다. 상당히 민망한 자세를 취하고있자 괜히 열이받는다. 젠장! 허릴 비틀며 붙잡힌 다리를 빼내려는데 단단히 붙잡힌 두다리는 공중에 퍼덕이기만할뿐 지훈의 손을 뿌리칠순없었다. 도플라밍고는 입안에서 정액을 내뱉어 자신의 손가락어 묻혔다. 축축히 적셔진 손가락이 곧바로 루피의 엉덩이를 부여잡는다. 바깥공기에 노출된 ㅎㅁ 입구를 톡톡 건들더니 잘게 주름져있는 입구주변을 손가락으로 넓게 펴보며 탱글거리는 살을 꼬집어본다. 




아..ㅅ..! ㅆ..... 




침대시트를 쥐어뜯듯 잡아쥔다. 도플라밍고은는 정액으로 축축히젖은 중지를 가볍게 내벽안에 집어넣는다. 제법 쉽게 들어간 손가락이지만 오돌토돌하고 주름져있는 내벽안을 휘저을때마다 아랫배가 싸늘하고 묵직한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루피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윽! 


간단히 들어갔던 중지와는 달리 갯수를 늘려나가는 검지와 약지는 루피에게 너무 버거웠다. 도플라밍고는 아랑곳않고 끈적거리는 내벽 안을 손끝으로 휘저어가며 도망치려는듯 허리를 빼려는 루피의 어깨를 도플라밍고가 잡아누른다. 이미 한번 물을 뺀 루피의 ㅅㄱ가 쾌감에 힘 입어 다시 반쯤 ㅂㄱ해있었다. 뭐든 좋으니 얼른 이 쾌감 속에서 도망치고싶었다. 이 질퍽 거리는 내벽 안을 더욱 더 부드럽게 훑으며 손가락갯수가 늘어났다. 찌걱거리는 야한 소리가 효과음을 내며 흥분감을 더해주고있었다. 




어이 밀짚모자 힘주지마 그리고 이제부터 다른곳 쳐다보지말라고 


싫어....싫..어.. 




도플라밍고의 잔인할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는 몸에 힘을 전부 빼버릴만큼 자극적이고 야했다. 도플라밍고는 이미 손을 잔뜩 적셔놓았던 자신의 타액과 ㅈㅇ을 ㅅㄱ에 듬뿍 묻히고있었다. 자신이 내뱉은 징그러울정도로 뿌연액채가 이상황의 윤활제로 쓰일줄은 전혀 몰랐겠지. 루피는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잔뜩 ㅂㄱ한 ㅅㄱ를 루피의 ㅎㅁ입구에 맞춘다. 도플라밍고의 시선을 루피에게로 고정한채 눈을 절대 딴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루피는 그런 도플라밍고의 눈을 찌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천천히 도플라밍고는 하체를 움직인다. 자글자글했던 ㅎㅁ주름이 조금씩 넓어지며 입구가 벌어진다. 느긋하게 도플라밍고의 ㅅㄱ를 집어삼키는 루피의 항문 근육이 아프다고 요동을 친다. 루피의 저항에 도플라밍고도 힘든지 미간을 찌푸리며 거친 숨을 내쉰다. 




하윽-!!읏....잠ㄲ...아파.........하악...!.. 

후욱..밀짚모자...후..루피....후으.. 




끊어질듯 마치 ㅅㄱ와 일체화시키듯 끈덕지게 도플라밍고의 ㅅㄱ에 들러붙은 내벽이 억지로 잡아 벌려지는 통증에 머리가 부숴질것같았다. 그 상황에서도 루피와 도플라밍고는 서로에게 눈을 떼지않고 똑바로 쳐다보고있었다. 거칠게 숨을 쉬었다 내뱉다하는 루피를 진정 시키기 위해 도플라밍고는 루피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치고 혀를 쪽쪽 빨아준다. 눈이 빨게져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것 같았지만 눈만은 절대 감지도 시선을 피하지않았다. 도플라밍고는 만족한 얼굴로 몸을 벌벌 떠는 루피에게 작게 속삭이며 허리를 거칠게 안으로 쳐올렸다. 




으-아아아악!! 




고개를 뒤로 꺾으며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도플라밍고의 얼굴을 쳐다본다.드디어 눈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래도 난 도플라밍고를 루피의 눈안에 가두려고 노력했다. 도플라밍고가 허리를 뒤로 뺄때마다 안쪽의 피부가 바깥쪽으로 밀려나온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를 집어넣고 흔드는 기분이었다. 도플라밍고는 자신의 흥분된 목소리를 루피의 귀에 속삭였다. 귓바퀴를 핥고 상처난 목덜미를 사랑스럽게 쓰다듬는다. 




밍....ㅇ......하읏..아...밍고... 




루피는 그의 이름을 불렀고 이름을 부를때마다 도플라밍고는 더욱 더 흥분한듯 허리를 돌린다. ㅎㅁ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미끌거리는 느낌이 꼭 진득한 피 같았다. 도플라밍고는 반쯤 서있는 자신의 ㅅㄱ를 다시금 애무하며 허리를 튕겨올린다. 적셔지는 피로인해 도플라밍고의 허리 운동을 도와주는 윤활제 역할을했지만 나에겐 찢어진 ㅎㅁ입구가 쓸리는 뭣같은 고통이 추가될뿐이었다. 




항...아...악...밍ㄱ...아파...하윽.....잠ㄲ...ㅈ... 




뿌옇게 안개가 껴 더이상 도플라밍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입은 애타게 그를 불렀다. 도플라밍고는 급하게 고통스러워하는 루피 얼굴을 핥으며 허리를 크게 움직였다. 


하윽!! 


아까와는 다른 하이톤의 끈적거리는 신음에 도플라밍고의 눈이 빛났다. 발작일으키듯 몸을 파르르 떠는 자신 조차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수없었다. 그냥 이건 기분이 좋았다는것 그것 하나였다. 




ㅁ..뭐야..방금...하으...ㅅ....다시..다시... 




미쳐버린 입은 멋대로 움직인다. 도플라밍고는 곧바로 다시 탄력있는 엉덩이를 잡아벌리며 치고올라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덮친다. 도플라밍고는 기분좋게 웃으며 속도를 높이며 추삽질을 해온다. 




히! 하읏! 아...ㅅ...응!! 




온 몸이 꼬였다. 스팟을 찌를때마다 루피는 고개를 뒤로 꺾어대며 입에서 터지는 신음을 주체하지못하고 마구 질러댔다. 두손을 도플라밍고 허리에 감싸 손톱으로 마구 할퀴었다. 허공에서 흔들리는 두 다리를 도플라밍고 자신의 어깨에 가볍게 걸친다. 힘겨워하는 내 입술을 달콤하게 쪽 빨아올리고는 씨익 웃는다. 머리가 멍해진다 정신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최대한 이순간을 즐기려고 애썼다. 온몸이 떨려온다. 도플라밍고는 땀 방울을 뚝뚝 흘리며 거칠게 숨을 헐떡이면서도 거칠게 흔드는 허리운동을 쉬려하지않았다. ㅅㄱ를 꽉 조여 달라붙는 내벽안을 더 아직 더 즐기고싶다고 도플라밍고는 생각했다. 



하으! 응..! 제발...읏..! 




루피의 ㅅㄱ에 뜨거운 액체가 뿜어져나오는 동시에 도플라밍고도 자신의 몸 안을 뜨겁게 달군 액체를 뱉어낸다. 도플라밍고는 루피 위에 엎어졌고 풀린 눈으로 루피를 응시했다. 훅-후욱- 더운 숨결이 얼굴 그대로 퍼져나간다. 온 몸이 저릿거렸다. 머리가 아플지경이었다. 





후읏..하아...하... 




아무말도 하지않고 도플라밍고는 루피를 똑바로 쳐다보게끔 한뒤 루피에게 작게 속삭였다. 



"한번더" 


루피가 눈을 크게 뜨고 싫다고 말을 하기도 전에 도플라밍고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도플라밍고는 루피를 안아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으..으아아...!!!" 


루피의 뒷목이 꺾으며 신음을 내질렀다. 그대로 도플라밍고에게 매달리게된 루피가 힘조차 주지못한채 부들부들떨었다. 

둘의 엄청난 체격차와 도플라밍고의 거대한 ㅅㄱ가 루피의 안쪽 깊숙한곳까지 찔러올랐다. 루피는 정신도 못차리고 또 다시 안쪽 스팟을 노련하게 괴롭히는 도플라밍고에 의해 허리가 꺾일듯말듯 휘었다. 


"흐..하아...살려줘....으응....." 


도플라밍고의 얼굴쪽에 위치잡은 루피의 유두를 살짝살짝 꼬집었다. 루피는 감당하기 힘들단듯이 꺽꺽 그대로 매달려서 괴롭다는듯 신음했다. 그대로 도플라밍고의 ㅅㄱ가 루피의 ㅎㅁ에 꽂혀진 상태로 속삭였다. 


"이렇게 멋진 장면을 나만 즐겨야 쓰겠나.." 


도플라밍고는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나갔다. 루피는 거세게 저항했지만 움직일때마다 자꾸 건드려지는 스팟에 어찌할도리가 없었다. 


"뭐, 하앗 뭐하는거야 으읏.." 


"내 국민들어게도 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루피가 화들짝놀라서 고개를 저으며 살려달라고 제발 거기까진 하지말아달라며 빌었다. 


"하하하하하! 내가 꼭 보고싶었던 모습이군 그래 밀짚모자!" 


루피는 눈물을 뚝뚝떨구면서 아무말도못하고 싹싹 빌었다 도플라밍고에게 완전히 매달려서 움직일때마다 흠칫흠칫 떨어대는 루피를 보며 도플라밍고는 흥분감을 감추지않았다 


"가엽게도 이렇게 망가지다니...하지만 완전히 무너지는 너의 모습도 흥미로운데 말야" 


루피의 허리를 퍽퍽 흔들면서 걸어나갔다. 


"ㅈ...제발....." 



루피의 원망과 흥분이 섞여 울것같은 목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렸다. 






/원래는 도플루,코라로우로 쓰려고 마음먹었는데..회사 일 때문에 급하게 어찌어찌 다 쓰다가 수정본과 완본중에 완본을 삭제해버리는 바람에 코라로우 80%와 도플루 절반을 날려먹었어요. 시간이없어서 도플루만 어떻게든 썼는데 문단도 못고치고 띄어쓰기,맞춤법도 틀릴지모르지만 열심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4월의 봄바람



제 2회, 익명만애 글합작 | 인스티즈

제 2회, 익명만애 글합작 | 인스티즈

(ㅊㅊ : 제헬님)

[이나슬레] 4월의 봄바람





“저…, 역시 이상한데요….”

“뭐가.”

“그…, 이 교복….”

“괜찮아, 잘 어울려.”










이나호X슬레인



4월의 봄바람

w. bcong










 처음 입어보는 교복이 영 어색한지 슬레인이 옆에서 자꾸만 제 몸을 더듬거렸다. 이나호를 한 번, 제 교복을 한 번, 서로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슬레인이 폭 한숨을 내쉬었다. 묵묵히 슬레인의 표정을 관찰하던 이나호가 대뜸 슬레인의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당황한 슬레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왜, 왜요?”

“그냥.”



 예쁜데. 슬레인을 빤히 쳐다보던 이나호가 조용히 핸드폰 액정을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이나호의 행동에 놀랐는지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슬레인이 슬쩍 이나호의 핸드폰을 쳐다봤다. 인기척을 눈치챈 이나호가 대뜸 슬레인의 눈앞으로 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화면 가득 보이는 제 얼굴에 부끄러움을 느낀 슬레인이 황급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뭐, 뭐예요! 못 생겼…,”

“봐 봐. 예쁘잖아.”

“잖…, 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얼굴이 붉어진 걸 느낀 슬레인이 황급히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슬레인의 반응에 이나호가 고개 숙여 살풋 웃었다. 슬레인은 모든 적극적으로 대하면 감정 변화가 빠르게 나타난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얼굴 가득 자신의 심리를 표현한다. 그래서 귀여운 건가. 애써 표정을 굳힌 이나호가 슬레인의 손을 잡았다. 당황한 슬레인이 이나호를 바라봤다.



“이대로 걸어가면 지각이야.”

“네?”

“뛸 거니까 조심해. 안 넘어지게.”



 자, 잠시만요! 슬레인의 손을 더욱 꽉 잡은 이나호가 슬레인의 표정을 슬쩍 확인하고는 무작정 학교를 향해 내달렸다. 얼떨결에 달리게 된 슬레인은 피부 가득 느껴져 오는 시원함에 미소 지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던 벚꽃 잎이 살며시 제 머리 위로 앉았다. 좋은 향기였다. 얼마 못 가 숨이 가빠 오는 것을 느낀 슬레인이 이나호의 손을 톡톡 쳤다. 웃으며 뒤를 돌아 보는 이나호의 모습에 슬레인은 또다시 제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저, 조, 조금만 천천히…!”

“힘들어?”

“흐, 네, 네!”

“난 별로.”



 씩 웃은 이나호가 속도를 늦추더니 다시 내달렸다. 속으로 이나호를 마구 욕한 슬레인이 이나호의 뒤통수에 대고 혀를 길게 내뺐다. 힘이 들어 입으로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입안이 바짝 말라감을 느낀 슬레인이 어떻게 해서든 필사적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드디어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학교 건물에 슬레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내달리던 이나호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돌연 등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한 슬레인이 속도를 늦추지 못 하고 그대로 이나호를 향해 달려갔다.



“잡았다.”

“뭐, 뭐하…!”

“그냥 안아보고 싶었어.”



 슬레인의 등을 꽉 끌어안은 이나호가 슬레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갈게. 귓가에 내닿는 숨결에 슬레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나호는 매번 이렇게 저를 괴롭힌다. 자꾸만 이상한 감정이 들게 만들고,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든다. 슬레인이 감았던 한 쪽눈을 떴다. 이나호가 웃으며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인 슬레인이 놀라 이나호의 가슴을 밀어냈다.



“어? 이나호!”

“아. 인코.”

“에? 이 애는 누구야?”

“아, 안녕하세요! 슬레인 트로이어드 입니다.”

“이나호랑 아는 사이?”

“인코. 얘 우리보다 한 살 많아.”

“에? 진짜? 동갑인 줄 알았어요! 진짜 귀엽다―.”



 멀리서 이나호를 발견한 인코가 이쪽을 향해 총총 뛰어왔다. 이나호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든 인코는 곧 슬레인을 발견하곤 손을 맞잡으며 적극적으로 물어왔다. 일본의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당돌하구나…. 되려 긴장한 슬레인이 몸을 더 꼿꼿이 세웠다. 슬레인이 연상인 것을 알게 된 인코는 미안하다며 연신 허리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코는 개구쟁이 마냥 웃으며 슬레인의 양 볼을 잡아당겼다. 귀여워, 귀여워! 손을 붕붕 흔들며 연신 귀엽다는 말을 내뱉은 인코가 문득 든 궁금함에 슬레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야?”

“…네?”

“둘이 전혀 안 어울려!”

“뭐?”

“아니 딱 봐도 넌 칙칙하고, 슬레인 선배는 화사하고!”

“…인코.”

“아, 미안해. 이나호!”



 손뼉을 친 인코가 쏜살같이 학교 안으로 뛰어갔다. 폭풍 같은 만남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슬레인은 멍하니 교문만 쳐다봤다. 이나호는 그런 슬레인의 눈앞으로 제 손을 휘휘 저었다. 두 어번 눈을 깜빡인 슬레인이 손 안 가득 찬 땀을 제 바지에 문질렀다. 긴장한 건 아니었다.


“…무서웠어?”

“…그런가 봐요…….”



 적극적인 인코의 행동에 무서웠나 보다.










***


“이나호! 제대로 설명 좀 해줘.”

“뭐를.”

“아까 그… 선배!”

“슬레인?”

“응, 응! 슬레인 선배.”



 교실문을 열자마자 책상에 앉아있던 인코가 후다닥 제게로 달려왔다. 뒷짐을 지고, 얼굴을 들이밀며 연신 질문을 해대는 인코에 벌써부터 느껴지는 피곤함을 느낀 이나호가 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인코의 큰 목소리에 덩달아 관심을 가진 반 아이들이 한 두 명씩 이나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전학생이야? 전학생인가 봐. 이나호랑 아는 사이 같던 대? 어디서 왔대? 야, 이나호―



“슬레인 트로이어드.”

“이름 예쁘다―.”

“몇 학년이야? 몇 반?”

“몰라.”

“아 뭐야―, 좀 알려줘!”

“싫어.”

“치사해―!”



 슬레인은 나만 볼 거야. 이어폰의 음량을 더 크게 높인 이나호가 제 주위에 몰린 애들을 슥 훑어보더니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순간 매서운 눈빛의 이나호와 마주친 아이들은 괜스레 드는 불안감에 조용히 제 자리로 돌아갔다. 빨리 쉬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 슬레인 보러 가게.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걸린 이나호가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뛰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다.






“안녕하세요! 슬레인 트로이어드 입니다.”

“귀엽다―!”

“편하게 슬레인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슬레인군은 저기 키사키 옆에 가서 앉으렴.”

“네. 감사합니다.”



 낯선 풍경에 절로 긴장이 됐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조리 제게로 향해있었다. 부끄러움에 슬레인은 더욱 발걸음을 빨리 했다. 턱을 괸 채 슬레인을 쳐다보던 키사키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귀여운 왕자님이네. 키사키의 입모양을 확인한 슬레인이 얼굴을 붉인 채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공책 하나를 꺼내든 슬레인이 얼굴 가득 느껴지는 더운 열기에 부채질을 했다. 차라리 이나호씨랑 같은 반을 하는 게 나았으려나…. 공책에 얼굴을 파묻은 슬레인이 책상 위로 엎어졌다. 부끄러워….



“슬레인, 첫 수업부터 자면 안 되지!”

“아, 네, 네!”



 깜짝 놀란 슬레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덕분에 반 애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웃어댔다. 온몸으로 느껴져오는 창피함에 슬레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창피해…. 고개를 푹 숙인 슬레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나호씨… 도와주세요….










***


“어? 이나호! 어디 가!”

“몰라도 돼.”



 잠에서 깬 이나호가 눈을 몇 번 깜빡이곤 시계를 쳐다봤다. 시간을 확인한 이나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쉬는 시간마다 보러 가려고 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서둘러 마이를 챙긴 이나호가 교실을 뛰쳐나갔다. 밥, 같이 먹어 야지. 단숨에 슬레인의 반 앞에 도착한 이나호가 벌컥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 끝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는 슬레인을 발견한 이나호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귀여워. 조용히 슬레인의 앞까지 걸어간 이나호가 책상에 제 턱을 기대고 한참 동안 슬레인을 쳐다봤다.



“슬레인.”

“……….”

“자?”

“………”



 뒷짐을 진 이나호가 허리를 숙여 그대로 슬레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폭신하고 따뜻한 감촉이 좋았다. 제 혀로 이 예쁜 입술을 핥아보고 싶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이나호는 천천히 제 입술을 뗐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고 있네. 바보. 슬레인의 머리칼을 푹 눌러내린 이나호가 의자를 끌어와 슬레인의 옆에 앉았다. 같이 잠이나 잘까. 슬레인의 얼굴과 마주한 채 이나호는 눈을 감았다. 따뜻한 봄바람이 둘 사이에 불어왔다.



‘…바보, 이나호씨.’



 살짝 눈을 뜬 슬레인이 쿵쿵 울리는 제 왼쪽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눈을 곱게 감은 반지르르한 옆얼굴이 너무나도 잘나 슬레인은 또 한 번 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눈을 꾹 감은 슬레인이 머릿속으로 양을 세기 시작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이나호씨 한 명, 이나호씨 두 명…,






“일어났어요?”

“왜 안 깨웠어.”

“에? 그게…, 너무 곤히 자길래….”

“나랑 얘기하기 싫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

“그, 그러니까…,”

“설마 나 자고 있는 거 몰래 본 거야?”

“……네?”

“맞구나.”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이나호가 한 쪽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물었다. 당황한 건지 슬레인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갔다. 삐죽 나온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오물오물거리는 모습이 여간 귀여웠다. 결국 슬레인과 이나호 둘 다 점심을 먹지 못 했다. 슬레인은 이나호를 기다리느라, 이나호는 슬레인을 따라 같이 자다가. 얼마 남지 않은 점심시간에 이나호가 서둘러 슬레인의 손을 잡았다. 순간 몸을 흠칫 떤 슬레인이 동그란 눈으로 이나호를 바라봤다.



“배고프지. 매점이라도 가자.”

“매점….”



 네. 싱긋 웃은 슬레인이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지구의 매점. 궁금했다. 화성에선 고작해야 산소탱크와 생수가 다였다. 이나호가 전에 한 번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지구의 매점에서는 산과 바다도 맛볼 수 있다고. 그 커다란 산과 맑은 바다가 매점에 있기라도 한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슬레인이 서둘러 교실문을 나섰다. 그런 슬레인이 마냥 귀여운 이나호도 슬레인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핑크빛 분위기를 뿜어내는 둘을 보고는 슬레인의 반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좋은 커플이다.”

“커플 이름은 이나슬레가 좋겠다.”

“그림은 내가 그림.”

“글은 내가 쓴다.”



 의외로 좋은 반응이었다.






“…이나호씨?”

“응. 왜.”

“……….”

“왜?”

“아니…, 그게…, 제가 생각했던 매점과는…,”

“달라?”

“…네, …아주 많이…….”



 매점 앞은 많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아이스크림, 과자, 빵. 서로 들고 있는 것도 모두가 달랐다. 얼굴을 억지로 구겨넣으며 아주머니께 열렬히 무언가를 외치는 학생부터, 마치 숭고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전자레인지에 무언가를 돌리며 기도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제가 꿈꾼 푸른 산과, 맑은 바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마치 비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슬레인은 깨달았다. 아, 내가 당했구나.



“…이나호씨.”

“뭐 먹을래.”

“……….”

“빨리 말해. 나 그러다 사람한테 치인다?”

“…저는 어떤 게 맛있는지 모르는걸요…….”

“그러네.”

“이나호씨는 어떤 걸 드실 건가요?”

“음, 나는….”



 유리창으로 매점의 내부를 대충 훑은 이나호가 슬레인의 손을 잡고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저보다 키가 큰 학생들에게 수차례 얼굴을 부딪히는 슬레인의 모습을 본 이나호가 슬레인의 얼굴을 제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리를 휘청거리더니 슬레인이 몸을 바로잡으며 이나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귓가로 쿵쿵대며 빠르게 뛰는 이나호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푹 숙인 슬레인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주머니, 이거랑, 이거 주세요.”

“그래, 그래. 오늘은 좀 늦게 왔네?”

“죄송해요.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괜찮아, 자 여기 거스름돈.”

“감사합니다.”



 허리 숙여 인사 한 이나호가 단숨에 무리를 뚫고 매점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나호의 재빠른 행동에 머리를 잡힌 슬레인은 그만 목이 졸릴뻔했지만. 급하게 숨을 몰아쉰 슬레인이 고개를 들었다. 이나호가 슬레인의 앞으로 두 개의 빵을 내밀었다. 의아한 표정의 슬레인이 이나호를 쳐다봤다. 



“골라.”

“에…, 그러니까….”

“내 생각이지만 너한테는 딸기가 어울려.”



 딸기잼이 가득 든 빵을 슬레인의 입에 물려준 이나호가 싱긋 웃었다. 빵을 한 움큼 물어뜯은 슬레인이 조심스레 맛을 음미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딸기잼이 맛있었다. 슬레인은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름 만족했나 보다. 저도 모르게 입 주변 가득 잼을 묻히고 먹는 슬레인이 정말이지 귀여웠다. 슬레인이 하루에 몇 번이고 귀엽다는 생각을 하지만 매번 또 이렇게 귀여운 행동을 한다. 마이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든 이나호가 곧장 슬레인의 입가를 문질렀다. 멀뚱멀뚱 이나호의 행동을 지켜보던 슬레인이 제 혀를 꺼내 입 주변을 핥았다.



“입에 뭐가 묻었나요?”

‘…위험해.’



 슬레인 몰래 침을 넘긴 이나호가 재빨리 등을 돌렸다. 나 먼저 갈게. 귀가 벌게진 것 같은 느낌에 이나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걸음을 빨리했다. 딸기잼빵에 반한 것인지 슬레인은 이나호가 가고도 한참을 복도에서 빵을 씹어먹었다. 사실 더 큰 의미가 있다면, 이나호가 사준 것이라서 그럴까. 입안 가득 빵을 집어넣고 오물오물 씹어먹던 슬레인이 다 먹고 남은 비닐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가까운 화장실에서 손을 깨끗이 닦은 슬레인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제 교실로 돌아갔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은 점심이었다.






“너 솔직히 말해. 슬레인 선배랑 무슨 관계야?”

“뭐.”

“벌써 소문 다 났거든?”

“……….”

“너네 집에서 같이 산다는 거, 진짜야?”



 난 또 뭐라고. 한심하다는 듯 인코를 쳐다본 이나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나호의 반응에 기대했던 인코의 표정이 축 가라앉았다. 그런 인코의 옆에서 어깨를 두드리던 레예가 이나호를 보며 혀를 찼다. 너, 여자에 대해 모르는구나? 꽤나 이나호를 내려다보는 눈빛이었다.



“그거, 칭찬 아니지?”

“당연하지.”



 폭 한숨을 내쉰 이나호는 또다시 책상 위로 엎드렸다.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탓인지 인코는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이나호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알려줘, 알려줘! 제 귀를 틀어막은 이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슬레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싫었다. 슬레인은 오로지 저 혼자서만 봐야 했고, 저와만 같이 다녀야 했다. 그냥, 그래야 했다. 남들에게 슬레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팍 쳐든 이나호가 제 긴 손가락으로 인코의 이마를 뒤로 밀었다. 인코는 제 이마를 문지르며 두 눈을 번쩍였다. 말해줄 거지?



“같이 살아.”

“세―상에….”

“왜.”

“유키 언니는?”

“허락받았어.”

“세―상에….”



 멍한 모습의 인코에 레예가 손수 벌어진 인코의 입을 닫아줬다. 침을 삼킨 인코가 가만히 두 눈을 깜빡였다. 이나호랑 같은 집이라니…, 불쌍해…! 마음속 깊이 슬레인을 응원한 인코가 소매를 걷어 올려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닦아냈다. 분명 하루 종일 이나호의 장난감 신세가 돼있겠지…. 인코가 고개를 저었다. 불쌍한 사람….



“됐지. 나 잔다.”

“아, 아니 잠깐만! 나 한 가지만 더!”

“……….”

“둘이 뭐야? 친척?”

“아니.”

“그, 그럼?”

“그냥 룸메.”



 인코는 불현듯 제게로 느껴지는 안타까움에 창문 쪽으로 냅다 내달렸다. 박력 넘치게 창문을 열은 인코가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는 힘껏 소리쳤다. 슬레인이 있는 층이 들리도록, 슬레인이 제 목소리를 듣도록. 그를 위해 응원하는 제 목소리가 그에게 닿도록!



“슬레인 선배―, 힘내세요―!”



 이나호와 룸메라니…. 그런 인코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 이나호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인코를 위아래로 훑던 이나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수업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슬레인은 생각은 꼭 해야 하는 거.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슬레인의 웃는 모습에 이나호는 저절로 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 꾸던 꿈 마져 꿔야지. 그렇게 이나호는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불안한 눈동자로 칠판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던 슬레인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공책은 필기로 가득 찾다. 하지만 필기가 가득하면 무얼 하나.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겠는 데. 입술을 꾹 깨문 슬레인이 두 주먹을 곱게 말아 제 양 옆머리에 가져다 댔다. 지구의 공부가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역시 이나호씨네 반으로 갈 걸 그랬어… 귓가로 들려오는 외계 문자에 슬레인이 귀를 꾹 틀어막았다.



“어려워?”

“아, 네, 네?”

“…너, 나한테 반말 써도 돼.”

“아, 아니 그게…, 이건 버릇이라서….”

“네가 편하다면야.”



 먹던 막대사탕을 빼낸 키사키가 대뜸 슬레인에게 물어왔다. 달콤한 멜론 냄새가 났다. 제 뒷머리를 긁적이던 슬레인이 제 공책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거의 공책 전부였지만. 멎쩍게 웃은 슬레인이 키사키의 얼굴을 쳐다봤다. 제 쪽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눈이 마주친 슬레인이 재빨리 눈을 돌렸다. 부담스러운 사람이야….



“이건 이렇게 하고, 이건 이렇게.”

“아―, 우와. 키사키씨는 공부를 잘 하시나 봐요.”

“별로 그렇지도 않은걸.”

“아니에요. 정말 멋져요!”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기분 좋네. 고마워.”

“……….”

“그런데 슬레인. 너 여자친구는 있어?”

“여, 여자친구요?”

“응. 좋아하는 사람이라거나?”

“좋아하는 사람….”



 속으로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던 이름. …이나호. 내가 그의 이름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부른 까닭은 내가 그를 좋아해서 일까? 슬레인은 비장한 모습으로 턱까지 쥐며 눈을 꾹 감은 채 골똘히 생각했다. …설령 내가 이나호씨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나호씨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괜스레 드는 불안감에 슬레인이 저도 모르게 펜 뚜껑을 딸깍 거렸다. 계속되는 소음에 모두의 시선이 슬레인에게로 향했다. 당황한 슬레인이 벌떡 일어나 허리 숙여 사과를 표했다.



“죄, 죄송합니다…!”

“야, 슬레인 너 은근 웃긴다?”

“너 우리 반 개그캐 해라 개그캐!”



 또다시 커지는 반의 웃음소리에 슬레인이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거의 매 수업 시간마다 이러니,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될 게 충분했다. 폭 한숨을 내쉰 슬레인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앉았다. 창피함에 다리가 사정없이 떨려왔다.



“야, 슬레인! 너 볼수록 마음에 든다?”

“귀여워―.”



 저를 두고 수군거리는 반 분위기에 슬레인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음엔 꼭 정상적이게 행동해야지….










***


“학교. 어땠어?”

“음…, 그냥 좀 부끄러워요.”

“부끄러워?”

“그냥…, 그냥 막, 신기한 일이 가득 생겨요.”



 슬레인이 제 팔을 쭉 펴며 동그랗게 원은 그렸다. 슬레인이 정말 저보다 한 살이 많은 걸까? 항상 지켜보지만 슬레인은 저보다도 더 어리게 행동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나 할 것 같은…. 순수하게 웃으며 재잘재잘 말을 붙이는 슬레인을 가만 쳐다 봤다. 마냥 앞을 보며 걸어가던 슬레인이 문득 이나호의 시선을 느끼고 뒤로 돌아섰다. 붉은 노을이 슬레인의 등 뒤에서 비춰왔다. 예뻤다. 슬레인도, 그 붉은 노을도.



“…왜요?”  

“그냥.”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부끄러워?”

“…네, 네? 아, 아니…,”

“슬레인은 귀여워.”

“네?”

“슬레인은 표정을 다 얼굴로 드러내.”

“아아….”



 재빨리 제 두 볼을 감싼 슬레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슬레인의 손을 잡은 이나호가 놀랄 틈도 없이 슬레인을 벽으로 밀쳤다. 세게 부딪힌 탓에 슬레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을 토해냈다. 슬레인의 다리를 억지로 벌린 이나호가 제 다리를 슬레인의 다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곳에 닿아오는 이나호의 다리의 느낌에 슬레인이 얼굴을 붉혔다. 슬레인의 앞머리를 걷어 올린 이나호가 곧 슬레인의 이마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다음에는 코, 볼, 턱. 그리고,



“입술.”



 슬레인의 입술을 가볍게 깨문 이나호가 제 혀로 슬레인의 치열을 천천히 훑었다. 결국 참지 못 하고 입을 벌린 슬레인이 방황하던 손으로 이나호의 옷깃을 세게 끌어당겼다. 덕분에 이나호의 혀가 더 깊숙이 슬레인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혀가 한참을 서로 옭아매며 질척 거리는 소리를 냈다. 슬레인의 혀를 말아올리며 열심히 핥아대던 이나호가 야살스러운 소리를 내며 제 입술을 뗐다. 슬레인이 반쯤 풀린 눈으로 이나호를 쳐다보았다. 붉게 물든 볼과 퉁퉁 불은 입술이 그를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슬레인.”

“으…, 네….”

“너한테 나는 뭐야?”

“그, 그야…, 이나호씨….”

“그게 전부?”

“그, 그러니까….”

“나는 네가 좋은데.”



 그렇게 말하며 씩 웃는 이나호에 슬레인은 제 심장이 빠르게 뛰어가는 것을 느꼈다. 슬레인의 왼쪽 가슴에 제 귀를 가져다 댄 이나호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슬레인을 올려다봤다. 숙였던 허리를 바로 편 이나호가 슬레인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제 품에 안긴 슬레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이나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슬레인 냄새…. 분명 슬레인은 저와 같은 제품의 샤워젤을 쓸 텐데, 어째서 슬레인한테서만 이런 냄새가 나는 건지. 달콤하고, 또 달콤했다.



“저, 저기…,”

“슬레인.”

“네?”

“나랑 게임 하자.”

“게임이요…?”

“내가 질문하면 슬레인은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는 거야.”

“아….”

“만약 ‘네’가 아닌 다른 말을 하면 슬레인이 지는 거고.”

“알겠어요. 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그저 해맑게 웃는 슬레인이 귀여웠다. 진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주기. 어때. 이나호의 말에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인 슬레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나호의 집에서도 종종 내기를 했다. 물론 매번 지는 건 슬레인 쪽이었지만. 그런데 느닷없이 이나호가 이렇게 간단한 내기를 걸어올 줄은 몰랐다. 늘 하는 내기를 보면…



‘슬레인. 나랑 놀자.’

‘에…?’

‘삼겹살 놀이.’

‘삼겹살이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삽결살을 썰면 돼.’

‘저, 정육점에라도 가는 건가요?’

‘아니. 보면 알아.’



‘슬레인. 심심하지.’

‘에…, 네?’

‘나랑 내기하자.’

‘또, 또요…?’

‘이번엔 간단한 거.’

‘뭔데요…?’

‘체스.’

‘…저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걸요….’



‘슬레,’

‘…내기요……?’

‘응.’

‘이번엔 무슨…,’

‘이번엔 유키 누나도 같이 할 거야.’

‘에… 정말요? 이번엔 정상적인 건가요?’

‘언제는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건가?’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오늘 놀이는 고스톱.’

‘…고스톱?’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모두 완패. 지난날의 아픔을 회상하며 슬레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기고 말 거야! 일순간 슬레인의 주위로 불꽃이 튀는 느낌을 받은 이나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올곶은 슬레인의 눈이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은 이나호가 슬레인의 얼굴 앞으로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슬레인이 지지 않는다는 듯 이나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럼 시작한다.”

“…네.”

“오늘 학교생활 재밌었어?”

“네!”

“반 친구들도 좋고?”

“네!”

“우리 집은 마음에 들어?”

“네!”

“그럼 나 좋아해?”

“네!”

“……….”

“…에?”



 황급히 제 입을 가린 슬레인이 놀란 눈으로 이나호를 쳐다봤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끼워 넣고 슬레인을 지켜보던 이나호가 슬레인의 반응을 보며 웃었다. 제 입술을 수차례 때린 슬레인이 멍한 눈으로 이나호의 눈치를 살폈다. 바닥 한 번, 이나호 얼굴 한 번, 전봇대 한 번, 이나호 얼굴 한 번. 저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 하는 모습을 보며 이나호가 속으로 크게 웃었다.



“슬레인.”

“그, 그러니까 그건…!”

“나는 너 좋아해.”

“……….”

“넌?”



 갑작스러운 이나호의 고백에 슬레인의 동그란 눈이 더 크게 떠졌다. 한참을 제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며 말을 얼머무리는 슬레인의 모습에 이나호가 먼저 등을 돌렸다. 당연히 슬레인도 저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그냥 제 섣부른 판단이었던 걸까. 바람에 펄럭이는 이나호의 마이를 슬레인이 재빨리 쥐었다. 놀란 이나호가 뒤를 돌았다. 슬레인의 눈동자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당황한 이나호가 슬레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나 때문이야?”

“……….”

“미안해. 내가…,”

“왜 대답 안 듣고 가요….”

“…그야,”

“저도 이나호씨 좋아한다구요….”

“……….”

“…이나호씨…, 먼저 가길래, 전 또 장난인 줄 알았다구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기어코 끝까지 제 할 말을 한 슬레인이 이나호의 어깨에 제 눈을 꾹 눌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축축하게 젖어가는 제 어깨 죽지를 바라본 이나호가 슬레인의 작은 머리를 꽉 끌어안았다. 진짜, 귀여워서 어쩌지?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슬레인의 얼굴을 억지로 들어 올린 이나호가 그 작은 입술을 한껏 머금었다. 쉴 새 없이 버드키스를 해대는 이나호에 슬레인이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벚꽃잎이 둘 사이를 회오리치며 날아갔다.










***


“다음에는 섹스가 좋겠어.”

“무, 무슨…!”

“내가 검색해봤는데 슬레인은 어떤 체위가 좋아?”

“아, 아니 그러니까…!”

“음, 역시 여성 상위가 예쁘려나.”

“…이나호씨!”

“느끼면서 우는 슬레인, 보고 싶네.”



 슬레인이 얼굴이 붉어진 채 손에 집히는 모든 것을 이나호를 향해 내던졌다. 노트북으로 어떻게든 막아 낸 이나호가 두 눈을 껌뻑이며 슬레인을 바라봤다. 씩씩 거리며 침대 위로 올라간 슬레인이 냉큼 이불을 머리끝가지 뒤집어썼다. 잠시 턱을 괸 채 골똘히 생각하던 이나호가 느닷없이 방을 나갔다. 흘긋 이나호의 동선을 살피던 슬레인이 입을 굳게 다물고 몸을 한껏 웅크렸다. 바보 이나호씨. 생각하는 게 저런 것밖에 없어! 뜨거워진 얼굴을 애써 손부채질을 하며 달랬다. 길게 한숨을 내쉰 슬레인이 멈추지 않는 심장박동에 제 옷을 꽉 움켜쥐었다.



“슬레인.”

“……….”

“안 자는 거 다 알아.”

“……….”

“자나?”

“……….”

“어쩔 수 없네. 이 딸기잼빵 내가 다 먹어야겠다.”

“자, 잠깐…!”



 서둘러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슬레인이 이나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슬레인의 많고 많은 약점 중 하나였다. 그날 이후 하루 삼시 세 끼를 딸기잼빵만 먹은 적이 있을 만큼 딸기잼빵에 제 마음 한편을 빼앗긴 슬레인이 눈동자를 굴리며 딸기잼빵을 찾았다.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나기는 하는 데….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에 슬레인이 문 밖으로 발을 떼었다.



“워!”

“악!!”



 괴물 가면을 쓴 이나호가 대뜸 슬레인의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깜짝 놀란 슬레인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몸 전체로 느껴지는 아픔에 슬레인이 제 엉덩이를 문질렀다. 한껏 이나호를 노려 본 슬레인이 동그랗게 말아 쥔 주먹으로 이나호의 어깨를 마구 때렸다. 가면을 벗어던진 이나호가 배를 잡고는 크게 웃었다. 



“…너무해요…….”

“자.”

“어, 어? 딸기빵!”

“그냥은 못 줘.”

“…네?”

“섹스는 다음에 해줘.”

“또 그 말…!”

“대신 이 빵 이렇게 먹어.”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문 이나호가 슬레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혀로 슬레인의 입안으로 빵을 밀어 넣은 이나호가 씩 웃었다. 눈을 크게 뜬 채 볼을 붉힌 슬레인이 제 입으로 넘어온 빵을 오물오물 씹었다. 평소보다 배로 달고, 배로 맛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슬레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더 주세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이나호가 활짝 웃었다. 슬레인의 양 볼을 죽 잡아당긴 이나호가 슬레인의 조그마한 입술에 제 입술을 도장처럼 찍어댔다. 평생 데리고 살아야겠다. 아무한테도 안 뺏겨. 마음속으로 그리 다짐한 이나호가 슬레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이나호의 허리에 팔을 두른 슬레인이 쿵쿵 거리는 이나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행복해….



“…너네 또 연애질이야?”

“아, 유키 누나.”

“유, 유키씨…!”



 연애질은 문 닫고. 친절하게 방 문을 닫아 준 유키가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우리 나호군 많이 컸네…. 마음속 한 켠으로 자라는 뿌듯함에 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호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의젓하게 큰 것만 같아 마냥 뿌듯했다. 이제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되려나. 한참 동안 방 문을 바라보던 유키가 곧 계단을 내려갔다.



“슬레인.”

“……….”

“또 말해줘.”

“뭐, 뭘요?”

“사랑한다는 말.”

“…그, 그걸 어떻게 해요…….”

“나 싫어해?”

“아니요!”

“그럼 해 줘.”



 눈을 질끈 감은 슬레인이 이나호의 입술에 제 입술을 꾹 눌렀다. 재빠르게 입술을 떼어 낸 슬레인이 이나호의 품에서 멀어진 채 손을 뻗었다. 처음 받아 보는 슬레인의 적극적인 행동에 이나호는 멍하니 슬레인을 쳐다봤다. 미쳤다…, 야하잖아. 제 입술을 몇 번이고 되 만진 이나호가 멍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통통 튀는 메트가 제 마음 같았다. 진정하려고 해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



“조, 좋아해요!”

“……….”

“좋아해요…! 이나호씨!”

“……….”

“…돼, 됐죠?”

“나는 사랑해.”

“…네?”

“사랑해. 슬레인.”



 산뜻한 봄바람이 창가에서 불어왔다. 

매번 이렇게 행복한 날만이 가득하길.










Fin.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 달달했는지 모르겠네요...☆

이나슬레가 행복하다면 그만입니다..

너네 행복해져라...

행..ㅂ....ㄱ....

행보..ㄱ....

행복.....

행복해지라고!!!!!!!!!!!!!!!!!!!!!!!!!!!!!!


참, 제목에 큰 의미는 없어욧....

그냥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3, 4월... 벚꽃 피는 시깃...

봄바람... 이나슬레 마음.. 살랑살랑...


읽어주셔서 감사할따름입니닷...

간단하게 사봄...? .. 사봄...☆



planet


[이나슬레] planet





알드노아제로/ALDNOAH.ZERO

이나슬레 




planet




인류의 발상지라 하는 우주.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멀리서 보면 그저 점하나로 보이는 저 별들은 알고보면 사실 모양과 색깔이 제 각각이다.

뚜렷하게 보이지않아도 제 스스로 암흑속에서 빛을 내는 고귀한 자연의 힘.나는 그 수많은 별들을 동경했다.

어릴적부터 과학자가 꿈이였던 나는 대 여섯 살부터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물리,화학,어려운 생물학적 용어들을 눈으로 훑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암기되는 이 머리는 제 또래아이들과는 다른 뇌구조를 가졌다.

누군가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천재의 우수한 유전자를 부러워하며 살아가겠지만,나는 이 유전자가 신이 내려주신 저주라 생각했다.

제 나이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인간의 삶을 부러워하고,비원칙적인  이곳에서 하루종일 머리를 굴려가며 오로지 인간의 미래를 위해 태어나고 자란 지구를 떠나,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이 광활한 암흑 속.제 유일한 목표는 ‘자살’이다.






planet 01





인간의 윤택한 삶.내가 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버려가며 좁디좁은 삭막한 튜브형으로 된 우주선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걸까.어릴적.흑백으로 된 아주 오래된 영상 속 달 표면을 자유롭게 무중력상태로 날아다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생생히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다.

달에 착륙하는 아폴로 11호.그 영상이 공개되는 순간.어떤이들은 미국이 꾸며낸 자작극이라며 비웃었고,어떤 이들은 인류의 달정복으로 거대한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지금.나는 그 닐암스트롱과 같이 인간이라는 생명체로서 최초로 착륙한 달의 표면에 근접해있다.동체의 앞부분인 조종실에서 숨을 고르고,천천히 달의 표면에 다가갔다.

그때,연료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중력의 난기류에 의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주선 내부가 어두워졌다.그리고 빛과 어둠.강한 중력장에 의해 조종이 불가능해졌다.





이제 끝이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눈을 질끈감았다.요동치는 우주선 내부.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도킹시스템.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구역질.그리고 찾아온 고요한 정적.







난 죽은건가.





아득해진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시야에 보이는 것은.꿈에 그리던 달과 다 망가진 우주선.빠르게 달의 표면으로 착륙하던 우주선은 절반이 반토막나서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조종석 아래에는 우주선의 부품 조각들이 여기저기 제 발밑에 흩어져있었다.실눈을 뜬채로 힘겹게 조종석에서 빠져나왔다.눈가에 상처가 난건지 붉은 피가 뺨을 타고 흘렀다.

크기 약 1737.5㎞,질량은 지구의 약  1/81.구성 물질은 암석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지구의 위성.목표는 실패했다.무전기는 고장나버렸고,우주선은 망가져버렸다.불행중 다행이게도 연료는 절반가량이 남아있었다.

비록 우주선 안은 아니지만,이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혼자 쓸쓸히 죽어가겠군.이왕 죽는거.미련없이 저 세상으로 가는것도 나쁘진않다.산소호흡기가 연결된 얼굴을 보호해주는 우주복을 천천히 벗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숨.숨이.....,말도 안되.제 눈을 의심했다.맨 얼굴이 노출되었지만,몸과 얼굴이 멀쩡했다.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건가.당혹함에 물든 얼굴을 맨손으로 쓸어내렸다.

광활한 달의 표면에 우뚝 선 제 자신이 뇌리에 떠올랐다.이건 후세에도 기록될 사건이라고.코로 숨을 들이키고,천천히 입으로 내뱉었다.침착하자.침착.

발을 내딛는 순간 마다.작은 발자국이 남겨졌다.단단하게 얼어붙은 표면은 매끄럽지도,그렇다고 단단하지도 않았다.한 겨울 눈이 녹아 질척해진 아스팔트의 바닥과 느낌이 비슷했다.

잠깐.숨을 쉴 수 있다면.이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건데.생각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순간,자신을 감싼 고요함 속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뭐지.





“누구.....,”


“아.....,”






제 눈앞에 나타난 생명체는 나와 같은 인간이였다.조금 다른 모습을 한.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 감이 잠히지 않았다.은발의 머리카락.영롱한 초록빛을 띈 눈.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우주복을 입은.

어둠속에 잠식되있던 기이한 야묘같았다.음울함에 빠진 눈.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초리.그애은 화들짝 놀란 얼굴을 감추지 않고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어떻게 이곳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왜소한 체격을 가진 소년은 경직된 얼굴로 제 벌어진 입술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이곳에서 얼마나 있었던걸까.현기증이 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제 앞에 굳은채 선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얼마동안 이곳에 있었던거야?”





내 물음에 그 애는 제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경계가 가득한 눈길을 견주며 대답했다.






“몰라.가늠할 수 없어.”


“.....,”


“너가 속한 소속에서 날 찾으라고 명 받은건가?”


“아니.그냥 떨어졌어.이곳에.”




그럴 리가 없지.소년은 웅얼거리며 시선을 회피 했다.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건가.나는 제 우주복의 팔뚝 부분에 붙은 마크를 떼내어 소년에게 보여줬다.제 25대 기수.마크를 받아든 은발의 소년은 울음을 터트렸다.

깊숙히 숨겨두었던 울분이 눈물이 되어 터져나왔다.






“몇년이 지나가버린거야.”






끔찍했다.시공간이 멈춘채 숨이 붙어있는 채로 혼자 외롭게 쓸쓸히 누군가를 기다렸을 그 시간들이.

난 불과 몇시간만에 이 우주로 날아왔지만,은발머리의 소년은 몇 년의 세월을 홀로 이 적막감과 함께 이 달의 표면에서 있었을지.시간이 멈춘 소년의 나이는 스무살이였다.나와 같은 나이의 또래였다.두 눈의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그는 내게 이름을 물어봤다.





“하크라이트.”


“슬레인이야.”


“슬레인.그게 이름이야?이상한 이름이네.”





내 말이 거슬린 모양인지 녀석은 입술을 이죽거렸다.슬레인은 어린나이에 영재과학기술원에서 자랐다고 했다.어린시절부터 비상한 머리로 세계 학술자들이 혀를 내두를정도로 어려운 과학적이며 실질적인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냈고,10살때는 이미 인간이 배울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 미국의 국가기관인 nasa에 입사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왜 거절했어?”


“난 우주에 관심이 많았거든.어릴떄 꿈은 천문학자였어.수많은 성단과 성운.손에 닿지않는 아득한 시공간.신비로움.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곳.그게 우주라 생각했어.꿈은 이루어졌지.”




막연하다 생각했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끝없이 펼쳐진 살얼음판과 몸을 에워싼 추위.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찾아왔다.외로움.두려움.속수무책으로 나를 파고드는 수많은  감정들.

후회와 막연함.목을 죄는 듯한 갑갑함.그떄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걸 몸소 느끼게 되었다.





하크라이트는 잠시 열에 뜨거워진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감았다.





“왜 그래?어디 아픈거야?”


“아냐.좀 정리가 안되서.”


“여기서 생각할거 없어.눈에 보이는게 다야.그리고 이게 현실이야.”





그애은 천천히 내게서 멀어졌다.그래.이게 현실이다.눈앞에 펼쳐진 이 우주가 한떄 내 꿈이자 전부였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차마 그럴 수 없었다.현실의 벽에서 버려지고 주저앉아버린 천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일테니까.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에 희미하게 슬레인의 얼굴이 보였다.흐릿한 시야속에서 그는 울고 있는것 같았다.




울지마.




라는 말을 끝으로 나는 아득한 시공간 속에서 잠에 빠져버렸다.




planet 02




기다렸다.망가진 무전기를 손에 꼭 쥔채.누군가를 기다렸다.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시간은 상대적이고 아직 인간의 기술이 시간을 변화 시킬 수  있을 만큼의 이동속도를 만들지 못해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일정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는 나를 찾아 이곳으로 오지도,기다리지도 않을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잿빛으로 보이는 달의 표면에 얼굴을 박고 어린애마냥 목놓아 울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망가진 우주선 내부에 들어가 제 물건들을 정리했다.혹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적어둔 유서와 사진들.그리고 비축해둔 식량.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더는 만회할 수 없는 실수를.바래진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의 옆으로 무심한 표정을 띈채 팔짱을 낀 낯익은 얼굴이 눈에 확 들어온다.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못하고 사진을 손에 꼭 쥔채 오열했다.미안하고.이곳으로 너를 남겨두고 떠나서 미안하다고.쉴새없이 말하며.






미국 과학연수원에서 같은 기수로 세미나에 참석하던 남자가 있었다.무심한 얼굴로 턱에 손을 괸채,불성실한 태도로 교수들의 주요인물로 찍힌 그는 늘 책상에 무언가를 끄적였다.나는 문득 제 시선이 그에게로 줄곧 가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오늘도 졸고 있군.이봐.자네 이름이 뭔가.”





책상에 엎어져 잠을 청하던 그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그리곤 입을 쩍하고 벌리며 하품을 했다.




“이나호.”






이름을 알았다.이나호.그는 재빠르게 일어나서 강의실을 나섰다.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감정은 내 모든 것을 뒤바꾸어놓았다.그와 같은 팀에 들어가기 위해 체력을 단련했고,관심도 없는 항공정비과정을 익혔다.그리고 보기좋게 시험에 낙제했다.


시험지를 구기며 열이 오른 얼굴을 식히던 중 누군가 제 어깨를 툭툭-하고 두드렸다.





“누구..”


“너 시험에 낙제했다며?”





아무렇지않게 다가와서 하는말이 고작 그런거라니.미간을 좁힌채 손에 구겨진 시험지를 그 가슴팍에 탁-소리가 나게 던져주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창피했다.보란듯이 시험에 붙어서 그와 같은 동기로서 옆에 있고 싶었다.그 후 내 시험 낙제는 여기저기 소문으로 퍼졌고,난 그 길에 발을 디딜틈도 없이 제 영역에서 묵묵히 내가 해야할일들을 해야했다.


그러던 어느날.내게 기회가 찾아왔다.소리소문도 없이 찾아온 좋은 소식.항공우주 기수대와 프로젝트를 만들어 각각 팀을 만들겠다는 과학소장의 의견에 나는 다른 내색없이 좋다고 응했다.한동안 의기소침해있던 내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활보하자,소장은 의아한 얼굴로 그 프로젝트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들은 떄가 있는 법이야.”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한다면...”


“성공?그 달에 착륙해서 얻는게 뭐가 있는데.”






꽤나 저돌적인 반응에 나는 금세 기가 죽어버렸다.대부분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동기들은 제 의지가 아닌 반 강제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하게 되었다.그 떄문일까.이나호 역시 그 프로젝트에 대해

썩 맘에 내키지않은 눈치였다.그리고 그는 몇 주 동안 세미나에 얼굴을 비추지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어디에 있는걸까.그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갈수 만 있다면.참 좋을텐데. 따위의 잡념에 잠겨 나는 강연하는 교수에게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뇌리을 헤집고 들어오는 그 얼굴이 계속해서 제 집중력을 흐트려놓았다.




어릴적부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는 평생 제 뒤에서 따라다니기 마련이다.이 대책없는 은발머리는.깊게 한숨을 내쉬며 거울에 비친 은발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가뜩이나 곱슬기가 있어서 머리는 파마한것마냥 고불거렸다.


맘에 안들어.제 체형에 딱 맞는 유니폼을 갖춰입고,기숙사문고리를 당겼다.그리고 복도를 향해 나서는 순간.누군가 서성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고개를 돌아보자,그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 서있었다.






“저기....,”


“...,”


“저번 일은 미안하다.괜히 성질내서.”


“아냐.괜찮아.”




무뚝뚝하고 졸음을 참지못하는 그런 얼굴과는 다른 얼굴이였다.관자놀이를 감싸쥔채 그는 제 뒷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붉어진 얼굴을 두손으로 감싼채 또 다시 그에게 멀어지기 위해 발을 움직이려던 찰나,이나호가 제 팔을 움켜잡았다.





“너에 대한 감정은 충분히 알았어.그렇니까 그만 도망가지?”


“뭐?”


“예전부터 너 쭉 나만 쳐다보고 있었잖아.”


“그걸 어떻게...”


“눈에 너만 보였거든.그 머리색깔.예쁘다 생각했어.”





아무렇지 않게 뱉어진 말에 순간.뜨거운 열기가 얼굴로 몰려왔다.화끈해진 얼굴을 푹 숙인채,웃음이 실실나오려는 입을 제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항상 못나보였던.숨기고 감추고 싶었던 이 은발머리가.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하든.모든 일들을 누군가의 곁에서 함께 해나가겠다는 생각은 해본적도 시도 해본적도 없었다.

친구를 만든다거나,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에게 매달 편지를 보낸다거나.막 걸음마를 뗄 시기에 나는 가족의 품을 떠나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내가 증오하고 원망하는 아버지는 평범한 가장이자,가족들에게 솔선모범이 되는 아버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물론 비정상적인 뇌를 지닌 나는 이곳에 쳐박아둔채.




누군가는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않는 일들을 해나가야했다.다른이들의 몫을 묵묵히 해나가면서 내가 얻는건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미치자,

나는 15살이 되던 해에 탈출을 감행했다.물론 물거품이 되어 결국 다시 이곳에 돌아오게 되었지만.




이나호는 명색하고 뛰어난 머리를 지녔다.그 떄문인지 나와 아주 비슷한 점이 많았다.그 역시 자신의 의지에 의해 이곳에 발을 딛게 된것이 아닌,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이 타인과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하는 시간들은 우리에게 필요치않았다.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이나호와 나는 원래부터 알던 사이마냥서로에게 흡수되었다.누군가를 좋아하고,사랑하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운거구나.돌고 돌아 무지의 땅에 정착한 유목민에게 찾아온 선물과도 같았다.

내게 이나호는 그런 존재였다.



늘 그 곁에 있는 시간들이 즐거웠다.세미나 강연이 끝나고,천문학에 관심이 있다는 이나호의 말에 신이 나서 그동안 수집한 은하에 관련된 사진들을 보여주며 그 앞에서 주절주절 떠들었다.

이건 장미성운.그리고 이건 오리온 대성운이야.발광성운이라고 해.




검은 바탕에 여기저기 흩어진 성단.성운의 사진들.이나호는 아무말없이 내가 하는 말들을 귀를 기울여 들어줬다.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다 문뜩 기숙사 옥상에 있는 천문대가 떠올랐다.침대위에 펼쳐둔 사진들을 끌어모으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천문대 한번 올라가볼래?”


“천문대?”


“응.




“좋아.”



이나호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어두운 밤.몰래 기숙사 옥상으로 잠입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단잠에 빠진 경비원 몰래 옥상열쇠를 빼내고 서둘러 옥상을 향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빨리 뛰어!”

“괜찮아.아무도 없는것 같은데.”


“느긋하긴.”





잠궈진 옥상 자물쇠를 열쇠로 열었다.문을 열고 올라간 옥상에 펼쳐진 밤하늘을 보자 꽉 막혀있던 답답함이 뻥- 뚫어졌다.와.이거 봐.돔 형식으로 된 천문대의 안으로 들어가 플라네타리움을 작동했다.

반구형의 천장에 별자리나 행성 등을 투영하여 보는 장치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하늘이지만,반짝거리며 빛나는 수많은 성운들이 심박수를 뛰게 만들었다.그리고 제 옆에 있는 그 존재만으로도 심장이 밖으로 나올것만 같았다.






“예쁘다.그치?”


“.....,”






한참동안 말이 없던 그 시선은 줄곧 나를 향해 있었다.숨이 멎을 것 같았다.들뜬 마음을 주체하지못하고 빛나는 두 눈을.이나호는 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온 얼굴이 꿈만 같아서 한참을 멍하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두 손으로 뺨을 부드럽게 감싸며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목덜미를 움켜쥔 손이 따뜻했다.전이 되는 감각.그리고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첫 입맞춤이였다.내 생애있어서 다시는 없을.





18대 기수대 대부분이 어린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과학연수원에서 자랐다.그들의 대부분은 제 능력에 못 미치는 다른 사람들을 하등시하며 멸시했다.하지만,이나호는 달랐다.남들보다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것은 맞지만,이 천부적인 재능이 독이 될지,약이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뛰어난 천재들은 불운한 태생을 겪고 제 생을 마무리할때까지 비참하게 삶을 살아간다.그리고 이곳에서도 종종 제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졌다.자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 팔목에 심어진 칩에는 각각의 개인 정보가 데이터로 들어있어 모든 생활의 패턴이라든지 감정의 변화를 제 개인이 아닌 타인이 감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말도 안되는 권한을 지닌 고위간부들이 이 과학연수원에 자리를 잡은 뒤로부터 끔찍한 소문들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일이 터져버렸다.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다섯명의 인원 중 한명이 밤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에 모든 기수대의 아이들이

소장에서 불려나가 심문을 받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날은 나와 이나호가 옥상으로 올라간 날이기도 했다.극심한 긴장 탓에 제 애꿎은 손끝을 

입가에 가져가대며 문질렀다.고위 간부들에 의해 방안에 있던 다른 기수들이 차례대로 불려나갔다.그리고 제 차례가 왔다.



“슬레인 트로이어드.”


“네.”




복도를 걸어 가는 동안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마냥 고개를 들어 제대로 정면을 응시 할 수 없었다.

한껏 굳은 얼굴로 취조실 문을 힘껏 열었다.안경을 쓴 백발의 노인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채 두손을 깍지를 끼고 의자에 걸터앉아있었다.

과학연수원의 총 관할자인 소장이였다.




“오랜만이구나.”


“.....,”




자꾸 좋지않은 예감이 느껴졌다.복도를 걸어가던 중.같은 기수 동기인 여자애가 제 동기에게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왜 18대 기수 중에 나만 이 취조실에 불려간걸까.귓가에 속닥이며 의심스런 눈초리를 제게 보낸 여자아이는 빠르게 복도를 지나쳤다.

소장은 연신 기침을 해대며 코끝에 걸쳐진 안경을 벗어 책상위에 놓았다.




“자.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지.”




그는 제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거렸다.하얀 블라인드가 쳐진 방안은 왠지 모를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책상 한가운데에 인화된 한장의 사진을 제게 건냈다.굳은 손가락끝이 수전증이 있는 사람마냥 마구 떨려왔다.

말도 안되.설마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사진 속 두 남자의 모습은.그날 밤.옥상에 있었던 이나호와 제 모습이였다.



누군가 몰래 뒤를 밣은건가.내부에 고발자가 있다니.치가 떨려왔다.어쨰서.왜.하필이면.아랫입술을 굳게 다문채 책상위에 놓여진 사진을 누군가 볼까싶어 재빠르게 바지춤에 집어넣었다.

이건 누군가의 계략이야.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에 놓여진 트랩이라고.떨리는 손끝을 주체할 수 없었다.




“비밀은 보장해줄테니,나와 거래를 하자.”




소장은 한껏 여유있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약아빠진 .떨려오는 손끝에 힘이 들렸다.화가 치밀어올랐다.저 뱀같이 교활한 눈.




“원래는 무인탐사선을 보내려했지만,그보다 더한 자본과 기술력을 투자할거야. ”




그리고.그 프로젝트의 조종석에 앉게 될 사람은 너가 될거다.




감정없는 군상들.잘난 인간의 표상.어릴적부터 보았던 그 얼굴들은 부서진 석조의 작품과 같았다.냉소적인 얼굴 위로 나는 그 어떠한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갈 곳을 잃은 눈이 방황했다.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굳게 다물다,끝내 입을 열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




제 대답에 소장은 흡족해하는 얼굴이였다.그 일이 지나고,프로젝트는 느리게 흘러갔다.그리고 그 프로젝트에 참가.아니,반강제적으로 조종석에 올라타게될 단 한명의 대원이 뽑히게 되었다.





‘제 18대 기수 21회 프로젝트.’



슬레인 트로이어드.





붉은 글씨로 쓰여진 이름은 제 이름이였다.웅성거리는 군상들에게 벗어나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어두운 방안에는 그가 침대 한켠에 앉아 두손을 머리에 모으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제 발치를 내려다보았다.정적을 깨고,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핏발이 선 눈이 나를 바라본다.애써 시선을 돌렸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애는 내게 말했다.





“소장한테 말할거야.내가 가겠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잘 생각해봐.가면 영원히 못돌아올지도 몰라.”


“그런거 감수하고 가는거야.”




던져진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졌다.한없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였다.너를 위해서.모든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점점 더 언성이 높아져갔다.무를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실랑이를 주고 받기 싫었다.




“오늘 밤 말하러갈거야.”


“이나호.”


“네가 없는 이곳에 있는건 무의미해.”





절절한 고백도 아닌.툭 던진 그 말 한마디가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목울대가 뜨거워졌다.고개를 푹 숙인채 울음을 삼켰다.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마구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쳤다.




“내 삶에 너를 끼어들게 하지마.”




울먹이는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그리고 이나호는 아무런 말없이 제 방을 나섰다.






planet 03





우주로 가기위한 교육을 하는 동안 그는 자취를 감춘듯 했다.무작정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만류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앞장서서 걸어나갔다.이 모든일들은 너를 위해서 하는거라고.말해주고 싶었지만,그럴 자신이 없었다.이 모든 사정을 알게 된다면 이나호는 소장의 머리통에 총구를 겨누고,

제 손을 잡고 이 곳을 탈출할 수 도 있을것 같았다.꽤나 좋은 시나리오지만,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면,이나호는 살아서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것이다.

지난 상념과 후회로 얼룩진 나날들이 다시금 제 앞으로 다가왔다.이젠 다시 찾아오지않을거라 생각했던 그림자 진 제 과거가 다시 드리운것이다.

일에만 시달렸다.체력을 단련하고,하루 왠종일 논문과 서류들을 정리하며 각박한 생활을 이어나갔다.오늘 하루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묵직함 사명감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뒤척거렸다.결국 잠을 온전히 이루지못한채,딱딱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쓸모없는 핸드폰을 켜 주요기사들을 훝어보았다.큰 헤드라인으로 떠오른 기사가 눈에 띄였다.극비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언론에 표출된것이다.뇌물을 받아먹고 누군가가 기사를 써준거겠지.잇새를 잘근 씹으며 동이 튼 하늘을 창문 틈으로 바라보았다.




어두워진 얼굴로 복도를 천천히 걸어나갔다.지겹다.손에 들린 검은 장갑을 낀채,조용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복도 끝에 아주 익숙한 낯이 시야에 뚜렷하게 보였다.이나호였다.




“슬레인.”




떠지지않는 눈꺼풀이 퍼뜩하고 떠진건 그 목소리 때문이였다.내색하지않으려 했던 이 덜 여문 감정이 어째서 그 목소리만 들어도 무너져내리는걸까.뒤돌아보지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그저 한 인영일뿐이다.제가 혐오하기 그지없던 그

군상들과 다를게 없다.눈을 질끈 감은채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리고 그 걸음은 제 손을 붙잡은 그에 의해 멈춰졌다.

재빠르게 옆으로 다가온 이나호는 팔목을 낚아채 제 방으로 끌고갔다.강압적이였다.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는 나를 침대에 내동댕이쳤다.화조차 낼 수 없었다.내게 움직이는 행동들은 거칠었지만,그를 몰아세우고 질책할 수 없었다.




“무슨짓이야."




품안에 나를 가둔채.어둠 속에서 이나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켜.”


“피하지마.”




우는듯한 얼굴에 단호한 말투.어울리지 않았다.이나호답지않은 얼굴이였다.턱을 쥔 손이 부드러웠다.머리카락을 헤집고,천천히 입술을 겹쳤다.

따뜻한 온기.열린 입안으로 혀가 들어왔다.질척이는 외설적인 소리와 함께 혀가 서로 부딪혔다.입천장을 훝고 제 허리를 지분대던 손이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묘한 기분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돌기 끝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손가락에 몸이 움찔거렸다.부풀대로 부푼 앞섶을 가리려 다리를 오므렸지만,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허벅지에 의해 저지당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나른해진 시선.눈부시고 벅찬 감정들.




“흐....으...기분이 이상해.”


“이상한게 아니라,좋다고 하는거야.”




턱선을 따라 목선을 훑는 혀.움찔거리는 몸을 단단한 팔로 누른다.



“으,읍....”




벌어진 입을 침투한 혀는 거칠게 움직였다.목구멍까지 뻗어오는 혀에 눈을 찌푸렸다.아랫니에 입술이 짓이겨지고,뜨거운 혀가 볼 안쪽을 후벼댔다.

갑작스런 행위에 몸이 이상신호를 느낀건지 발끝부터 허리까지 찌릿찌릿한 요상한 느낌이 들었다.발끝이 오므라지고,몸 전체가 불로 데인듯 뜨거워졌다.

거친 숨소리.침대 시트를 꾹 잡은 손가락.익숙하지 않아서.처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자극적인 손길에 눈물이 나올것만 같다.




“돌아버릴것 같아.지금.”


“.....,”


“미안한데 나 못 멈춰.싫으면 말해.”





눈을 감은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조금씩 윤곽이 뚜렷해져가는 시야에 제 눈꺼풀을 팔로 가려버렸다.남 앞에서 나체를 드러낸것은 처음이였다.타인도 아닌 이나호지만.얼굴에 쏟아지는 열기를 막을 도리는 없었다.금세 치워진 팔을 잡아든 그는 서둘러 바지버클을 열었다.

허전해진 다리사이에 자리를 잡은 탄탄한 허벅지.맨 허리를 감싼 팔뚝.머리카락을 헤집는 손.둔부를 움켜쥔 손이 빠르게 상하운동을 시작했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신음소리를 막으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참지마.입술 상해.”



생생하게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절로 허리가 들썩거렸다.선단 끝을 문지르는 손길에 얼마못가 하얀 드로즈안이 젖어버렸다.묽은 액을 손가락에 묻히더니

제 뒤를 만지작거렸다.이질감과 함께 찾아오는 고통에 흐느꼈다.



“자...잠깐...”


“풀어줘야 안 아파.”




뻑뻑한 그곳을 들락날락거리는 손가락.요상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흥분을 이기지못해 눈물이 쏟구쳤다.입안을 벌리고 들어온 혀를 비비적댔다.

탁자안에 꺼낸 로션을 손바닥 가득 묻혀 그곳을 적셨다.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세 손가락이 빠져나왔다.숨을 헐떡이며 제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이나호와 시선을 마주했다.올곧은 시선.늘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에 서툰 그 앳된 얼굴.



“빠..빨리..”


“응?”


“빨리..해줘.”




시선이 교차했다.헝클어진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어보였다.넓은 어꺠에 다리가 올려졌다.얌전히 놓인 허벅지를 매만지며

이나호는 깊숙히 은밀한 곳을 향해 허벅지 안쪽을 파고들었다.순식간에 벗겨진 브로즈.그리고 마침내 완벽한 나신이 되었다.숨을 들이마시고 긴장을 풀려하는 찰나.뜨거운 무언가가 제 아래를 빠른 속도로 침범해왔다.

귀두의 끝이 밀어넣어졌다.입술이 벌어지고,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흐,읏.....,”


“나봐.”




벌벌 떨리는 고개를 들어 겨우 이나호를 마주보았다.욕정에 가득 한 눈.왠지 모르게 애달픈 얼굴.뇌리를 강하게 울리는 쾌감에

몸서리를 쳤다.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 죽어있던 성기가 부풀어올랐다.매달리듯 어꺠를 감싸고 열기에 뜨거워진 뺨을 비비적거렸다.

쉴새없이 치고올라오는 흥분을 못이겨 또 다시 파정을 했다.귀두를 타고 비부를 적시는 액.목덜미를 훑는 혀.




“기억,해,오늘 밤,일들,모조리 다.”





아픔과 동시에 찾아온 흥분을 이길 도리는 없었다.마구 내질러지는 신음과 토해내듯 쏟아지는 묽은 액체들.비부에 접합한 성기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들.눈물이 절로 나왔다.벌게진 눈꼬리를 비비니,따뜻한 손이 제 눈가를 쓰다듬었다.




“좋아해,미쳐돌아버릴만큼.”




감정표현이 서툰.늘 제 감정을 숨기고 살아오기 급급했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애가 애처로웠다.가슴을 애는 절절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밖으로 꼭 해야했던 말들을 속으로 삼켜냈다.

누군가를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상기 된 볼을 매만지는 손길.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

아직 덜 자란 앳된 얼굴.모든걸 기억하고 삼켜낸다.성숙치못한 어린 날의 불장난이라 해도.

그 후 3개월 뒤,나는 이나호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건내지 못한채 이곳을 떠나야했다.네게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선로가 있었으므로.





planet 04





궤도를 따라 요동치는 별들.항공선이 굉장한 폭음을 내며 정차했다.제 18대 기수대의 동기들은 모두 일렬로 서서 제 임무의 무사기원을 염원했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제가 찾는 얼굴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감당하기 힘든 좌절감이 마구 몰아쳤다.소장은 악수를 권했다.난 제 본연의 얼굴을 숨기고,

환하게 웃어보였다.어디선가 나를 보고있을 그를 위해.성층권을 떠나 빠르게 올라가는 우주선.그리고 조종석에 앉아 나는 제 뇌리에서 떠나지않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까.

좋아한다는 말로 나는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들뜬 기분에 여기저기 날뛰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그 애가 하는 행동.말투.눈빛

모든것이 제게 스며든것이다.아,사랑이라는 감정은 갑작스레 찾아와 제 온몸을 휘젓고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구나.숨이 점점 가빠졌다.





눈꺼풀 틈으로 확보되지 않은 시야가 흐려졌다.그와 동시에 좌석이 이리저리 요동쳤다




-주 엔진 작동 10초 전.




“10,9,8,7,6.”




“5.”




-메인 엔진 점화.





이나호.



“4,3,2,1.부스터 점화.”






미안해.







번쩍거리는 섬광과 함께 우주선 내부가 잠잠해졌다.엔진 작동 완료.회전 프로그램 시작.1단 발사체 분리 준비를 마치고,우주선은 지상을 떠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2단 발사체 분리 실행.

상공을 떠나,연료에 의해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올랐다.아주 빠른 속도로.드디어 온전한 진공상태의 우주로 들어오게 되었다.

황량한 척박한 토지.푸른빛으로 물든 대 자연.꿈에 그리던 지구.조종석 옆 좌석에 설치된 컴퓨터가 제 위치와 우주선을 향해 다가오는 물질에 대해 

바쁘게 타이핑을 했다.경로를 탐색하자,앞으로 40분만 있으면 달의 궤도에 근접해진다는 데이터가 나왔다.시간은 상대적이다.더 이상 지체하면 안된다.좌현으로 30.서서히 기울어지는 우주선에 의해 지상에서 충분히 훈련을 한 몸이지만,중력을 직접 느낀 몸은 잔득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는 비명,소리도 없이 사라져갔을것이다.제 어둠 속에서 끝이 없는 활주로를 따라서.




-한개의 수신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수신 메시지의 인물은 소장이였다.인류 미래의 구원자라는 그가.비겁하고,나이 든 로밖에 보이지 않는 나는 끌어오르는 화를 

꾹 눌러참고 소장의 말에 귀를 기울렸다.그 말의 대부분은 임무 수행에 관한 내용들이였다.달 표면에 착륙하여,달에 레이저반사판등을 설치하라는것.

그 레이저 반사판으로 지구에서 레이저를 쏘아보내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이 임무가 성공적으로 마친다면,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과연 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떄.도킹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막을 찟는듯한 굉음과 함께 사이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자동 도킹이 불가능하다.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모양이다.다급해진 마음에 해치를 열었지만,에어락이 감압될것이다.

그렇다면,에어락이 폭발하게 된다면.순간.머리속이 새하얀 도화지마냥 백지의 상태가 되어버렸다.빠른 시간내로 도킹시스템을 복구해야한다.그렇지않으면 우주선과 결합된 항공기가 폭발해버릴것이다.

머리를 굴려 분당 회전수를 계산했다.계산 결과에 따르면 67에서 68RPM으로 회전하게 된다.서둘러 회전에 맞춰 역추진을 준비했다.






-도킹 결합이 불가능합니다.




빌어먹을.우현으로 3도 정도 가게 되면.




3 미터로 조정을 하자 평행상태가 되었다.입술을 깨문채,역회전상태에 들어갔다.절망적이다.얼굴을 감싸며 정신을 차리게 되면,다른 세계에 도달해있기를 빌었다.그리고 굉렬하는 조종석에서 나는 일시적인 충격에 의해 까무룩 기절해버렸다.






암흑.고요한 정적.바닥난 연료.그리고 운좋게 숨이 붙어있는 몸.눈꺼풀이 서서히 떠졌다.이곳은 어디지.단단한 달의 표면에 부딪힌 우주선은 반쯤 몸체가 날라갔다.완벽한 실패다.고장난 무전기를 붙들고,조종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떄서야.나는 이상한점을 느낄 수 있었다.제가 서있는 이곳이 달이라는 사실이.




어째서.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거지?제 몸을 더듬거리며,한참을 서성거렸다.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하지만,무전기는 고장나버렸다.말도 안되.두손으로 제 귀를 틀어막았다.환청이 들려왔다.누군가 고막을 뚫고 계속해서 속삭였다.

나는 목청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그렇게 하지않으면 미쳐버릴것 같았다.서둘러 조종석에 놓아둔 총구를 꺼내들었다.총탄이 서너발 장전된 서늘한 총이 제 이마에 겨누어졌다.




빨리.쏴야해.




방아쇠를 당기자,상공으로 총성이 울려퍼졌다.무의미한 짓이다.나는 나를 죽일 수 없어.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었다.

만약.너와 내가 평범하게 태어나.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 입학을 하고.그 평화로운 삶 가운데서 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최악의 상황에 치닫지 않았을까.아니면,애초부터 너와 나는 서로 마주칠 일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세계와 동 떨어진 이곳에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떠오르는 문장들이 허공에서 나뒹굴었다.공허함이 제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그저 누군가 자신과 같은 이가 이곳에 착륙할때까지 혼자 기나긴 

시간들을 감내해야했다.






그리고 끝내,그는 자신과 비슷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기나긴 기다림끝에.세기가 흐르고,태동이 요동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planet 05






기나긴 동면에 잠긴듯 했다.천천히 눈꺼풀을 떴다.제 몸을 덮고 있는 담요를 한구석에 치워놓고,몸을 일으켰다.여긴.아.잠들어있는 동안,굳어있던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조종석을 나섰다.다 떨어졌다 생각했던 연료가 반정도 남아있다.다행이다.여기서 나갈 수 있겠어.안도의 한숨을 쉬며,멍하니 작은 암석에 앉아있는 슬레인에게

다가갔다.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그 애 눈에는 아무것도 비춰지지않았다.아무 감정도 느끼지못하는 조합인간과 같았다.환한 빛가운데에 죽어있는 불빛.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잠긴 목에 의해 목소리가 볼품없었다.




“여길 나가보려는 시도조차 하지않은거야?”




그 애는 놀란 기색조차 없이 대답했다.곱슬거리는 은발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해봤지만,다 소용없었어.연료도 떨어졌고.”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기나긴 시간을 어떻게 인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거지.슬레인은 아주 태연한 얼굴이였다.

큰 동요에도 움직이지 않을 그런 얼굴.그애가 주절주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커다란 해저기지를 떠올렸어.다양한 생물체가 아주 평화롭게 공존하는 기저를.해수를 따라 물이 철퍽거리고,푸른 녹조들이 물의 흐름에 이끌려 흔들리는.

그 말은 몽상가의 말과 같았다.머나먼 미래를 그리던 소년은 제 꿈을 이루기 위해 힘껏 날아올랐다.물론 시작하기도 전에 제동장치가 망가져버렸지만.

제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실패로 돌아간 제 자살은.살고 싶어 발버둥 친 헤프닝으로 일달락되었다.나는 그애가 조근조근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나답지않은 배려심이 넘치는 신사적인 행동이였다.




하지만,그 기지의 지평선은 너무나 넓어서 결국 서로를 잃어버리고,헤매게 된거야.


어려운 말이다.심연에 닿지못해 처절하게 움직이는 몸.처연해진 얼굴.그 애는 그 말을 끝으로 한참동안 말을 잇지못했다.나는 그 애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말을 내뱉기전에

제 할말을 해야했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것 같아.”



굳이 뜸을 들일 말이 아니였다.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었다.연료가 절반정도 떨어진 상태지만,항공역학으로 연료를 아낀다면 충분히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


  


“불가능해.”


“웜홀을 찾으면 가능해.”


“블랙홀을 들어가자는 말이야?”





고차원적인 지름길.블랙홀 내부의 특이점을 찾아 구령의 구를 찾는다면 가능하다.

물론 완벽하게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시공간의 왜곡을 이용해 그들이 우리를 찾을 수 있게 이진법 데이터를 변환시켜 지구로 수신을 송신한다면 어느정도 가능성은 열려있다.


무질서한 시공.산발적으로 쏟아지는 별들.




“죽을 수도 있어.”


“여기서 몇 년을 썩히는것보다는 죽는게 나을지도.”





이곳에서 평생을 숨이 붙어있는채로 살기보단,차라리 블랙홀 내부로 들어가 실패하더라도,어딘지 모를 낯선 은하계를 떠도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애는 제 손끝을 매만지며 뿌연먼지가 엉겨붙은 제 바지춤을 털었다.


뿌연 수증기를 헤치고 의연해진 얼굴로 작동할 수 없는 유인우주선에 다가갔다.손을 봐야할곳이 너무 많았다.




“항공기가 한 대있어.”



도킹을 하는데 실패한 우주선은 단단한 표면에 쓸려 손쓸새도 없이 공중으로 분해되었다고 그는 제 우주선을 살피며 말했다.




“연료를 항공기로 옮기자.”



나서지않을것 같던 그애가 깨끗하게 보존된 항공기로 나를 안내해줬다.유령같은 안개를 비집고 드러난 항공기의 상태는 매우 좋았다.연료를 빼내어 엔진부분을 교체했다.비실거릴줄 알았는데,

거침없이 제 연료를 빼내어 빠른 손놀림으로 교체에 성공했다. 



“자.됬지?”


“응.”


“아.근데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니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그 사람이 이름이 뭐야?”


“이름?”


“응.”


“이나호.카이즈카 이나호.”




이나호라.특이한 이름이네.중얼거리듯 뱉은 말에 슬레인은 발끈했다.저렇게 죽고 못사는 사람을 왜 남겨두고 이곳으로 오게 된걸까.더 이상 묻지않기로 했다.

그에 관한 애기를 꺼낼때마다 그 눈은 계속해서 제 자신을 힐난하면서 왠지 모르게 애달픈 눈을 하고 있어서 나는 의문을 그냥 제 뇌리에 방치해두기로 했다.

어느날.이 상공을 떠나,우주로 가게 되어 살아있을지도 모를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에서 홀로 기다렸을 그애의 무조건적인 사랑을.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들을.





서둘러 조종석으로 발길을 옮겼다.강렬한 태양풍으로 선선한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슬레인은 제 옆 좌석에 앉아 블랙홀의 특이점과 중력에 대해 설명했다.

거대한 구를 찾아 들어가면 원칙적으로 중력에 의해 몸이 부서지고,가루가 되어 분해되겠지만,중력의 힘을 거스른다면 제 4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면,다른 은하계로 빠져나와 시공간을 떠돌아다니겠지만,세기가 흘러 시대가 변화된다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겠지.



고대하던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직접 실행하지 못했던 일을.



“고마워.”


“응?”


“너가 여기로 오지않았더라면,난 혼자 죽어갔을거야.이미 죽어있는 상태와 다름없지만.”



처음으로 웃어보였다.가볍게 던저진 웃음.그 애가 더 이상 침울해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않았다.우리는 알고 있다.만난지 몇시간만에 

서로에게 살가운 연민을 느껴버렸다.너도 나와 같은 길을 걸었겠지.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가야하는.엔진이 제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잠들어있던 컴퓨터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 애에게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넌 좀 행복해질 의무가 있어.”



그 말을 끝으로 항공기는 힘차게 상공을 향해 날아갔다.








planet 05






수십년의 세기가 흘렀다.항상 북적이던 과학연수원은 잠잠해졌다.과학소장의 비리들이 폭로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결국 사임되었고,새로운 인물이 떠올랐다.그는 어릴때부터 이 연수원에서 자랐다고 했다.어린 유년시절부터 쭉 이곳에서 자란 그는 기존에 있던 법도를

뒤바꿔놓았다.그를 한쪽에서 비방하는 세력들이 존재했지만,그는 각종 비리가 만연한 그곳에서 일연한 태도로 일관했다.그리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곳으로 오게된 아이들 중 일부분은 집으로 회귀하기를 원했고,

그들은 제 가정으로 돌아갔다.제 손목에 인식된 칩을 제거하고,모두 정상적인 범위안에서 제 행복을 찾게되었다.


헤쳐진 공기와 바람.눈부시게 빛나는 볕.제 4차원의 문이 열리고 인류는 변화해갔다.제 이기적이고 표독스런 마음을 버리고 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자초하기 시작했다.아주 좋은 변화였다.특이한 머리색깔을 가진 소장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어른스런 말씨를

가진 아주 독특한 남자로 과학연수원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람으로 그 안에서 칭송받고 있다.

그는 모든 시스템들이 원동적으로 움직이게 조작했다.그 덕분에 인간이 해야할 몫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는 커다란 재단에 놓여진 항공기를 분해했다.손대지않고,그대로 보존하려던 마음이 달라졌다.제 고장난 컴퓨터시스템을 복구하고 싶었다.

모든 기록이 남겨져있는 컴퓨터시스템을 복원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서두르지 않았다.



덜 여문 얼굴로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던 소년은 20대 중반이 되었다.인공잔디로 덮힌 운동장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헤픈 웃음소리가 귀를 찌른다.

손에 들린 차게 식은 커피를 한모금 입에 담았다.지구로 안전하게 회귀를 하자,모든 이들이 놀라며 믿기지 않았다.나 역시 스스로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와닿지않았다.

그리고 그의 비보가 들려왔다.듣고 싶지않았던.그의 죽음이.영혼들이 잠든 묘지를 들렸다.주인없는 묘는 오랜 시간을 방치해둔 상태였다.

나는 주저앉아 한참동안을 무덤가를 떠나지않았다.살아있다면,제 나이를 훌쩍 넘긴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있을까.



미어지게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닿지않는 사랑은.그렇게 저물었다.




증폭되는 그리움을 매일매일 카페인으로 달랬다.입맛에 맞지도 않는 쓰디쓴 커피를 마시며,그를 잊기위해 제 머릿속에 떨쳐버리지 못한 부스럼난 기억들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사라지지도 않을 진한 제 회상들을.




-시스템이 복원되었습니다.




복원된 컴퓨터는 제 스스로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모든것이 담겨져있었다.그 공간.시간.시공간을 초월한 그 상공에서.보관된 메세지함을 하나식 열어보았다.

이미 죽은자가 된 옛 소장의 얼굴과 제 동기들의 얼굴들이 디스플레이로 떠올랐다.왠지모를 감정들이 뒤섞여 제 자신을 투영했다.그리고 제가 미처 보지못했던 메시 몇 건 있었다.영상이 아닌 메시지는 문자형식으로 된것들이였다.




“아.”




순간.단말마처럼 탄식이 터져나왔다.모스부호다.이진법으로 데이터를 변환한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화면 위로 일렬로 나열되어있다.




- stay with me.




떨리는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다음 메시지로 화면을 넘겼다.




- i will remember you.




속에서 무언가가 차올랐다.손을 뻗으면 사라져버릴것만 같던 사람.수세기를 거쳐 나를 기다렸을.내가 없는 너의 삶은 어땠니.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어.그토록 원하던 바라던곳을 가게 되었지만.물론 다 너를 위해서였지만.칠흑같은 어둠속.어둠을 헤치고

쏟아져내리는 유성을 눈에 담았다.같은 시간.같은 공간에 너도 제 떨어지는 별들을 보고 있을까.싶어서.무릎을 끌어모은채,그 날을 떠올렸다.제 몸을 휘감는 어스름한 불빛과 서로 맞닿은 따뜻한 시선을.



-영상이 복구되었습니다.



서둘러 정지된 화면을 재생시켰다.영상 속 수척해진 얼굴의 남자는 이나호였다.명도가 뚜렷하지않는 화면이였다.그는 제 시선을 들어 카메라를 응시했다.제가 사랑했던 그 말간눈.작게 호선을 그리던 예쁜 입술.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너에게 답장이 오지않았어...”




그는 작게 숨을 골랐다.





“그건 알아줬으면 좋겠어.몇백년의 세기를 거쳐 이 지구가 사라지고,다른 행성계에 인간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새 삶의 터전을 얻는다해도.난 여기에 남을거야.”




말은 드문드문 끊어졌다.그애는 많은것을 떠올리며 제 입안을 맴도는 단어들을 곱씹어 신중하게 내뱉고 있었다.





“약속할게.나는 너를 기다릴거야.”





그 세기가 흘렀다.그리고 많은것들이 바뀌었어.이나호.나는 그 이후 그 영상을 다시 재생할 수 없었다.눈물이 쏟아져내렸다.사랑하기때문에 너를 포기했다.그 길이 지옥길이라도.맨 살이 쓸리는 올갗으로 된 철로길이라도.

그 어디든.너가 살 수 만있다면.너가 편안해진다면.괜찮다 생각했다.제 속성을 뚫어보는 곧은 시선이 두려웠다.그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무정하게 떠나간 나를 더 이상 만류하지않았다.삭혀두었던 지난 괴로움들이 물 밀듯이 내게 밀려왔다.인적이 드문 묘지를 다시 찾았다.그리고 비석 앞을 서성이는 한 남자가 눈에 띄게 보였다.그는 제 등장에 꽤나 놀란 눈치였다.남자의 손에 들린 검은 우산이 제 쪽으로 기울어졌다.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다.손에 들린 꽃다발이 뭉게지지않도록 품에 안았다.물기를 머듬은 라일락을 비석옆에 조심스레 놓았다.진한 향의 내음새가 빗소리와 함께 요동쳤다.그 애의 모든것을 사랑했다.단념해야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같은 평행세계에서

바라봤을 유성들과 닿지않는 마음들이 비와 함께 쏟아져내렸다.





“너를 위해 살아갈거야.제 삶에 들어온 너를 온전히 받아들일거야.”





나는 그렇게 그 무덤가에 서서 그에게 못다한 늦어버린 제 애틋한 사랑을 전했다.







- end 



미로 (迷路)


[조로산] 미로 (迷路)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던 걸까.


“……아아, 됐어. 더 이상 네 놈이랑 나눌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며칠 동안 나눈 이야기는 늘 이런 식으로 종결되었고, 나는 뒤로 붙을 말들을 삼키며 이 배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는 한다. 운동을 한다는 핑계를 앞세우고 녀석이 달고 사는 담배를 입에 무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나만 알고 있던 그 녀석을 기억하는 수단이었기에.



 미로 (迷路)



 아침부터 웬 난리. 아직 잠이 덜 깨 자꾸만 감겨오는 눈에 힘을 주고 해먹에서 내려온 조로가 소란스러운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루피와 그 뒤를 쫓아다니는 산지. 상황은 전후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단번에 이해가 갔다. 분명 또 선반을 뒤지거나 식량고에 가서 재료들을 하나씩 빼 먹었겠지. 것도 아니면, 열쇠를 찾으려 요리사의 몸을 수색했다던가. 뭐, 전부 그 녀석이 미치고 팔짝 뛸 일들이었지만.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동반하고 난간에 기대어 서있는 조로의 시선 끝에 포기를 한 건지 한숨을 지겹도록 쉬는 산지가 걸려들었다. 아직 반절 정도 남아있는 담배를 아무런 미련 없이 바닥으로 내던지고는 주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짧은 시간이지만 마주친 눈빛이 강렬해 뭔가에 홀린 듯이 피할 생각은 일 초도 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보내오는 시선을 전부 담아두었다. 하지만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 산지는 주방으로 몸을 옮겨갔다. 머리가 매우 복잡했다. 풀릴 점이 있긴 하는지 마음대로 얽혀버린 실타래는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 맞다. 산지가 그러기를 너 일어나면 식당으로 와서 밥 먹으라는데?”

 “……알았다.”

 “근데 요즘에 산지 왜 그렇게 저기압인 줄 알아?”

 “내가 알 리가 있나. 아무튼, 고마워.”


 인사 중에 가장 형식적인 인사를 전하고, 아까 산지가 걸어 들어갔던 그 길 그대로를 밟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그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떠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내 말을 믿어줄까. 메리 호에서 써니호가 될 때까지, 계속 이어져왔던 모험들은 전부 기억이 나면서 왜 단 둘 뿐이었던 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처음부터 꿈만 같았던, 혹은 꿈이 아닐까 했던 그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의해 정말로 꿈이 되어버렸다. 오직 나만 기억하는, 참으로도 한심스러운 꿈.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익숙하게 옮겨진 발걸음은 어느새 주방의 문 앞에 멈춰 있었다. 들어가서 뭐라고 말을 하지. 문고리를 잡은 손이 나조차도 어색하게 느껴진 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었을 거다. 답지 않게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꼴이, 그 녀석이 본다면 당장이라도 배꼽을 잡고 쓰러질 판이었다. 그리고 꼭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모습은 충분히 나답지 못했기에. 제길. 결국 문고리에서 손을 뗀 조로가 대신 이마를 짚고서 몸을 돌렸다. 


 이러니까 나 진짜, 같잖아.


 “어라, 조로. 왜 안 들어가고 거기 서 있어?”

 “들어갈 거다. 잠깐 무슨 생각 좀 하느라.”

 “헤, 정말? 근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거대한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아아, 그런 거 없다. 들어가면 되잖냐?”


 꼭 그러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측량실로 가려던 나미가 황급히 몸을 움직이는 조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여태까지 힘들게 고민하던 게 말끔히 사라지고 나니, 한 편으로는 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어색한 분위기는 좀처럼 지울 수 없는 듯 보였다.  “아아, 이제 일어났냐? 망할 마리모.”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에 혼자만 덩그러니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사과를 하는 게 맞나, 아니 그보다 저번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지금까지 해오던 게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마리모. 네 녀석은 지각했으니, 이거 다 먹을 때까지 여기서 못 나간다.”

 “아아? 그딴 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냐.”

 “그러게 누가 늦게 일어나래? 바-보.”


 본능. 두 글자에 이끌려 입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정말 이렇게 하면 괜찮은 걸까. 아직까지 잡지 못한 갈피는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는 중이었다. 검 세 자루를 옆에 의자에 올려놓고 식탁 위로 턱을 괸 조로가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머리가 복잡했다. 아침에 요리 해 두었던 음식을 데우던 산지가 콧방귀를 끼며, 그런 조로에게 말을 걸었다. “근육 키우기 밖에 모르는 마리모도 고민이라는 게 있었냐.” 보통 대개는 말보다 시비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어떻게 대꾸를 해주면 좋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조로가 픽 웃으며 대답을 했다. “아아, 그런 게 있다면 들어주기라도 할 거냐?” 당연히 보상이 있을만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기에, 뒤에 이어져 나온 말은 상당히 놀라웠다.


 “그래. 들어주는 것 정도는 큰일도 아니니까. 어차피 너랑 나랑, 풀 무언가가 있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피하는 것만 할 거야? 헤어진 연인 사이도 아닌데.”

 “……아아, 그래. 내 고민을 말해주면 되는 거냐?”

 “해봐. 근데, 별거 아니기만 해. 네 놈 날려버릴 거다.”


 두 사람이 겪었던 지독했던 사랑이, 한 사람의 지독한 외 사랑으로 바뀌어 버리다니. 비참했다.


 하하. 죽을 때까지, 심장 같은 게 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설렘이라는 감정에서 뛰는 게 아닌, 악질적인 감정에 의해 미치도록 저릿하고 아파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가, 한 순간 충동적으로 일어났던 불장난이 아니라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서로에게, 아니 난 적어도 녀석에게 건넸던 그 말들이 전부 진심이었단 거니까. 다 데워진 음식을 접시에 담아 내오던 산지가 아예 의자를 빼내어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뭘 말하면 좋을까. 소설의 내용을 빙자한 지금의 너와 나의 이야기? 아니면 여태까지 널 봐왔던 불쌍한 나의 이야기? 열이 가해져 김이 올라오는 접시 속에 담긴 밥을 쳐다보다 숟가락을 들었다. 것도 아니면 전부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아예 턱을 괴고 내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는 녀석은 잠시 뿐이었지만, 그 잠시 동안 내가 알던 녀석이 아니란 사실에 금세 허무해졌다.


 “뭐야. 얘기 할 거 아니었어? 네 녀석, 배가 그렇게 고팠냐?”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생각 중이었다.”

 “네 고민을 얘기하라고, 바보야.”

 “고민?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다. 근데,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가만 보면 네 녀석도 참 특이해. 등받이에 등을 한껏 기댄 산지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습관적으로 입에 물고, 불을 찾는 손이 바빴다. 상대가 누구라도 음식이 앞에 있을 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 고 요리사로서의 조건이라며 그렇게 떠들어대더니. 허, 기가 차서 밥을 먹다 말고 소리를 낸 조로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라이터를 식탁 위로 던졌다. 네놈이 찾는 거. 입 안에 가득 음식이 담겨 있어, 발음은 상당히 어눌했지만 녀석이 못 알아들을 일은 없었으니까. 오, 고맙다. 살다 보니 감사의 인사를 받을 때도 있군. 가장 먼저 할 이야기는 아마도 둘의 이야기가 제일 좋겠지. 열심히 먹고 있던 밥알들을 삼키고, 그제야 입을 연 조로가 고개를 돌려 산지의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역시 자신을 향해 있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며, 누구 하나가 먼저 그만두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내가 책이란 걸 읽었는데 말이야. 현실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라, 너무 신기해서 말이지. 음, 우선 그 책에 나오는 S와 Z는 서로에게 유독 잣대가 심했다. S는 지겹도록 여자를 좋아했으며, Z는 지겹도록 수련에만 메말라 있었지. 둘은 모든 게 상극이었다. 생각하는 방식도, 인정하는 법도, 싸움을 하는 기술도, 친구를 섬기는 수단도. 그리고 사랑을 하는 방법도.”

 “어이, 그거 너랑 나 얘기 아니냐?”


 미쳤군. 절대 아니다. 왜냐면, 이 둘은 서로 사랑을 했거든. 아, 고백은 S가 먼저 하게 됐다. Z는 단 걸 무척이나 싫어하지. 근데 S가 만드는 모든 디저트는 전부 먹었어. S는 주변인들의 성향까지 전부 파악해 그것에 맞춰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Z가 아무런 말도 않기에 단 걸 좋아하나 보다 생각하고 Z에게는 뭐든지 달게 만들어 줬어. 근데 주변인들이 지나가는 말로, Z는 참 신기해. 단 걸 좋아하지도 않는데 꼬박꼬박 다 먹고 말이야. 이런 소리를 한 거지. 그걸 들은 S는 Z의 멱살부터 잡고 따져댔어. 단 거 싫어한다면서 왜 진작 아무 얘기도 없었던 거냐, 덕분에 나만 됐잖아. 항상 남들 해주는 거에 몇 배는 더 신경 써서 네 음식을 만드는데, 나만, 나만. 이랬었지 아마. 아, 울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자존심이 있는 녀석이었거든. 근데 눈치는 더럽게도 없는 Z가 왜 내 거에 신경을 더 쓰는 거지? 하며 따지니까 그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눈치를 채더군. 뭐, 덕분에 고백은 쉬워졌어. 네 놈을 좋아하니까, 다. 망할……녀석아. 참, 무드 없는 말이지.


 누군가의 이야기다, 알아채지 못하도록 부러 직접적인 언급은 전부 뺐는데 혹 눈치라도 챈 건 아닌지. 접시 위에 가득했던 밥들을 전부 먹어 치우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조로가 다시 산지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곤란하다고. “왜, 너도 읽은 적 있냐?” 능청스레 웃고는 의자에 올려놨던 검 세 자루를 손에 쥔 조로가 몸을 일으켰다. 이어질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천천히 해주고 싶었다. 한 번에 해버리면 재미 없으니까. 픽 웃으며 대화를 끊어버리고 서둘러 주방에서 나왔다. 지금의 날씨는 어두운 내 상태와는 달리 너무나도 맑았다. 각자 서로의 여가생활을 즐기러 갔는지 배 위에는 늘 그렇듯, 루피와 우솝, 브룩밖에 없었다. “조로! 너 또 운동하러 갈 거지? 운동만 하지 말고, 위에서 잘 살피란 말이야!” 항상 하는 당부는 질리지도 않는지. 대충 대답을 해주고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에 발을 올렸다.


 기억이 사라졌다. 이 배의 선원들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사실을 혼자만 눈치 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미묘했던 감정의 시작은 끝을 볼 때까지 어떤 누구에게도 일체 이야기를 꺼내지 않도록 그렇게 약속을 했었다.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시작된 한 순간의 불장난 같던 사랑은 바보 같게도 진심이었다. 고백을 시작으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보내다가도 모두가 잠든 밤이면, 그때 둘만의 아침이 시작되고는 했다. 성격에 맞지 않게 연애라는 걸 시작하니, 마음에 없던 말들도 튀어나오면서 제법 남들이 부르는 그 ‘연인’이 되고 난 뒤였다. 전망대 위에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아침의 동이 터오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을 때면, 서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었지. 만난 지 고작 몇 개월 밖에 안 됐는데, 함께한 시간은 너무나 길게 느껴졌고 그랬기에 더 소중히 여겨지게 되었다.


 근데, 지금은. 열심히 운동을 하다가도 금세 허무해져, 심술을 괜한 곳에 부리듯이 무게가 꽤 나가는 역기를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답답했다.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오직 둘 뿐이었고, 심지어 눈치가 빠르다는 여 선원들도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기억을 잃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어서 선원들 그 누구도 내 말이 옳다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난 지금 이 길이 맞는 것인지, 타협점을 논의할 새도 없이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안개에 가려, 결국 같은 곳을 헤매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미로 속의 미아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산지가 즐겨 피우는 담배를 품속에서 꺼낸 조로가 허탈함에 웃음을 짓다, 필터를 입에 물었다.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이 없는 물음을 허공에 뱉어내고 고개를 숙여 좌절을 맛보는 심정은 참으로 처절했다.


 “조로! 몇 번을 불렀는데, 깨어있으면서 대답을……. 어, 너 담배……펴?”

 “깜짝이야. 담배, 그, 심심풀이일 뿐이다. 용건이 뭐냐.”

 “술에다 담배에다가 완전 백수가 따로 없는데. 근데 숨어서 피우다니, 의왼데? 술은 밖에서도 막 마시잖아.”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그래서 용건만 말해라, 용건만.”

 “지금 섬 하나에 정박했어. 여기서는 오래 머물지 않을 거니까 살 거 있냐고 물어보러 왔지. 어때?”


 아니. 난 배에 있는다. 꽤 굳건해 보이는 대답에, 콧방귀를 끼며 사다리를 붙잡은 나미가 한 발을 내딛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절반 정도 내려왔을까. 다급하게 나미의 이름을 부른 조로 덕분에, 꽤나 신경질 적인 눈빛으로 위를 쳐다본 나미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소리쳤다. “왜?” 말끝에 느낌표가 한 오십 개 정도 붙어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이미 필터의 끝부분까지 타오르고 있는 담배를 털어내듯 허공으로 손짓을 한 조로가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명령이야, 부탁이야?”

 “부탁이다. 부탁이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줘.”

 “……신선한데? 좋아. 특별히 돈은 받지 않을게. 그 전에, 너 정신부터 챙겨.”


그녀가 완전히 근처에서 사라질 때까지 쭉 지켜보고 있던 조로가 한숨을 쉬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이미 저 멀리 앞서 나간 루피와 그 뒤를 따르는 여섯 명. 이 넓은 배에 남은 사람은 나 하나뿐 이었다. 어차피 딱히 살 것도 없고, 요리라면 그 녀석이 해주니까. 오랜만에 혼자 여유나 즐겨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미가 붙잡고 내려가던 걸 잡은 조로가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와 잔디에 풀썩 주저 앉아버렸다. 이러고 있으니까, 괜히 생각만 더 나잖아. 나도 참, 부질없네. 목 뒤로 팔짱을 껴 넘기고 하늘을 쳐다보며 누운 조로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이, 조로. 설마 여기서 자는 거야?

 -아……. 네 놈이었냐? 여기 꽤 괜찮다. 근데 넌 왜 나와 있어?

 -방에 네가 없잖아. 궁금해서 너 찾으러 나왔다.

 -솔직하게 말해라, 내가 보고 싶었다고.

 -……진짜 뻔뻔하다 너도.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냐? 나 적응 못해, 망할 마리모야.


 점처럼 보이는 별들이 가득 놓인 밤하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서서히 부는 바람까지 더해서. 감각이 느끼는 감정은 이상하게 기분이 다르기도 했다. 잠옷을 입은 녀석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가운 하나만 입고 자는 나와는 다르게 꽤 섬세하기도 했으니까. 똑같이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녀석이 저 멀리 떠 있는 달을 가리키며 웃었다.


 -해적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아니라……. 좀 더 나은 시대였다면, 너랑 나는 만날 일이 없었겠지?

 -……그렇겠지. 애초에 네 녀석이랑 나랑은 태어난 곳부터 다르잖아.

 -그럼 차라리 이편이 더 괜찮은 건가? 네 놈이랑……싸워도, 웃을 수 있으니까.

 -나보고 뻔뻔하다면서, 정작 네 놈은 더 하잖아. 어찌 되었든 난 지금이 더 좋다. 보이지 않는 미래 따위 생각해 받자지.

 -그럼 다행이네. 아, 맞다. 나 네 이름으로 나미 씨한테 돈 빌렸다.

 -뭐? 죽고 싶냐? 이자만 세 배라고!

 -미안.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얼굴로 그러면 어쩌자는 거냐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린 조로가 산지를 껴안으려고 했을 때 기억의 환상은 작은 희망도 없이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그 분위기를 즐기던 두 사람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때, 꿈에서 깨어난 조로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배의 난간 너머로 한 가득 짐을 가지고 오는 녀석들이 보였다. 때마침, 잘 깨어난 거군. 기지개를 펴며 제일 처음으로 들어오는 루피를 반기던 조로가 그 뒤를 따라오는 산지를 쳐다봤다. 네가 내게 했던 질문을, 다시 내가 네게 한다면 너는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내게 줄까?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표정은 늘 곤란하다. 바로 며칠 전, 스릴러바크에서 있었던 일은 꽤 충격적이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치고, 싸우고의 반복. 특히 후반부에 가서는 매우 필사적이었지, 아마. 누구 하나 고통을 덜 받은 것 없이 모두 죽기 직전이었으니까. 딱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마지막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정신을 잃어버린 것.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멀쩡한 모습의 루피를 보고, 검 세 자루만 남겨둔 채 사라진 녀석을 찾으러 갔을 때는 쳐다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막대한 피의 양도 그러했지만, 놈을 보고 있자면 머릿속이 텅 빈 것같이 공허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었을 때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루피 혼자 받은 그 고통은 우리 여덟 명이 받은 고통보다 두 배, 아니 세 배 정도는 더 깊고 강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혼자 짊어지다니. 보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 놈의 흔적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겠지.


 다음 섬으로 가는 동안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주방에 가서 아침을 준비하고, 다 먹으면 설거지를 하고. 빨래 당번은 정해 놓았지만 별 쓸모가 없어, 남자 일곱 명 분의 빨래를 전부 가져다 욕실로 가지고 올라간다. 항상 가사는 거의 다 내 몫이었으니.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워낙, 더러운 꼴은 못 보고 사는지라. 그렇게 점심때가 되면 다시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돌아오고, 설거지를 하고, 잠깐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디저트를 만든다. 먹는 양이 엄청 많은 만큼, 치워야 할 것들도 그만큼 많았기에 거의 하루 종일 주방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모든 건 다 똑같았다. 내 머리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만 빼고는. 그래, 그런 줄 알았다. 내 몸이 아프니까 머리도 아플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믿어왔다. 그랬는데 조로, 이 놈이 매우 이상해져 있었다. 평소와 같지 않을뿐더러, 내게 하는 말 모든 것들이 전부 어색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할 때면 밖으로 나가려다가도 다시 돌아와 도와줄까? 따위의 생전 하지 않던 말들을 늘어놓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러 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단련 실에 가지 않겠냐고 묻고는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녀석과 나는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었던 게 분명한데 말이지.


 -네 놈. 무슨 속셈이냐, 내가 네 놈의 방에는 왜 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네 놈이야 말로, 날 속이려는 거냐?

 -애초에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까놓고 말해서 너랑 내가 무슨 각별한 사이였었냐?

 -……뭐?

 -그렇잖아. 네 놈이 하는 말들이 전부, 난 낯설다 이 말이다.

 -아아, 너.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기억, 안 나냐고.


 도통,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무슨 기억이냐고 묻고 싶어도, 왠지 들어서는 안 될 말들 같아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내가 먼저 대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면 아무렇지 않겠지, 계속 그렇게 믿어 왔는데 이번에도 내가 틀렸다. 나는 거의 이성에 의지하지 못하고 녀석을 몰래 훔쳐보거나, 모두 모여 있을 때 시비를 이유로 삼아 대화 한 번이라도 더 해보려 용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감정도 생겨나지 않았고 오히려 이편이 더 익숙했다. 난 그저 몸이 움직이는 대로, 그대로만 하면 되는 거다. 그리고 놈이 내게 바라는 그 기억이 서로에게 달콤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기대 따위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만약, 정말로 그 달콤한 일이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이 더 낫다. 


 놈과의 이야기는 어제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더 이상 내 기억과 관련된 이야기는 묻지도, 꺼내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그 동안 날 괴롭혀왔던 불면증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책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떡밥을 던져놓고 뒷이야기는 해주지도 않고. 태평하게 낮잠이나 자고 이제야 일어나다니. 소규모의 섬에서는 과일과 동물들의 고기를 사 왔다. 배로 돌아오는 길 내내 고기 타령을 하던 루피가 이젠 또 디저트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을 보아하니, 슬슬 점심 먹을 때가 된 것 같긴 했다. 얼른 배에 올라 타, 식 재료를 들고 있는 프랑키를 불렀다. 우선 식량고에 있는 것들부터 어떻게 해야지, 안되겠어. 양 손은 물론 어깨에도 쌀자루를 얹고 올라오던 프랑키가 익숙하게 식량고로 걸음을 틀었다. 차례대로 승선하는 선원들을 쳐다보던 조로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산지의 뒤를 따랐다.


 “점심이냐, 디저트냐?”

 “점심이다. 네 놈 또 뭐 하러 따라온 거야?”

 “누가 보면 내가 네 놈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인줄 알겠네.”

 “아, 그건 또 아니라 그 말이냐?”


 알다가도 모를 녀석. 치. 혀를 차고 주방으로 들어간 산지가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을 꺼내어 조리대 위로 올려놓았다. 애당초 놈의 목적이 뭔지, 놈이 내게 왜 이러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처음부터 동료 그게 끝인 거였다. 무슨 사이도 아니고, 같이 싸우고 서로의 목적을 위해 함께 가는 평생지기 동료일 뿐이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그저 친구, 동료 모두가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은 딱 거기 까지다. 근데, 왜 네 놈은 자꾸 그 선을 넘으려고 하는 거냔 말이다.


 “책 이야기 말이다. 그래. 내가 어디까지 했었지?”

 “S인가 뭔가 하는 놈이 Z한테 고백했다고 한 것 까지다.”

 “오- 기억하고 있었냐. 역시. 안 듣는다 하더니.”

 “……내가 듣는 이유는 하나다. 너랑 나랑 풀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아, 잘 알지. 그래. 시작한다.”


 고백을 하고 나서, 사귀자 뭐 이런 달콤한 말은 없이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각자의 할 일이 있고 또 같이 있기에는 평소에 두 사람이 서로 좋은 관계가 아니란 걸 아니까 늘 하던 대로 싸우고, 말다툼도 심하게 하고 그랬다. 그러다 밤에는 이제 둘의 시간이 된 거지. 뭐, 아무래도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까 같이 붙어 있으면서도 말로는 서로 엄청 갈구고 그랬다. 그러다가도 후에는 마주 보면서 웃기 바빴더라지. 간혹 가다가는 눈 맞으면 더한 것도 하기도 했다. 엄청 많이. Z도 S가 자기 혼자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서로 좋아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표현도 많이 하고 그랬다. 평소의 Z다, 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 뭐, S도 딱히 싫어하지는 않았어. 그렇게 그대로, 쭉 함께할 줄 알았지 그 두 사람은.


 탁. 열심히 칼질을 하던, 산지의 손이 멈췄다. 요리의 ‘요’자도 몰랐던 어린 시절 칼에 멋대로 베이고 난 상처들이 흉터가 되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그 위에 다시 상처가 새겨질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바보처럼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멍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산지가 뒤늦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 도마 위가 핏물이 들고 썰고 있던 양상추에도 역시 핏물이 섞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난 소리에 놀라 다가온 조로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산지의 팔목을 잡고는 개수대로 다가갔다. 레버를 잡아 돌리자, 흘러나오는 물에 피로 얼룩진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미친 듯이 몰려오는 쓰라림에 고개를 돌리고 마는 산지였다. 같이 항해를 하면서도 손은 다친 적이 없던 지라, 오히려 조로가 더 놀란 것 같아 보였다.


 “도대체 네 놈이 뭐 때문에 정신을 이렇게 놓고……. 전혀 이상할 부분은 없잖아?”

 “……생각이라는 걸 좀 했다, 나도. 근데 왜 네가 더 난리냐, 망할 놈아.”

 “생전 손 한 번 다치지도 않던 놈이 그래서 놀라서 그런다. 괜찮으면 됐다.”


 이 녀석은 이 정도로, 이렇게 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다정함? 개나 줘 버리라지. 그런데, 지금 이 광경은 실로 놀라울 수밖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산지의 곁으로 지나가던 조로가 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가 싶더니, 결국 밖으로 나가버렸다. 목숨이라던 칼 세 자루도 이곳에 놔두고. 그나저나 아프긴 하네. 오랜만에 다쳐보는 손인지라 굉장히 낯설었다. 손에 상처가 있는 요리사라……. 이거, 이거 큰일인데. 멋이 안 살잖아. 사실 다른 생각을 할 것도 없이, 놈이 말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익숙하게 들렸다. 꼭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겪었던 것 같은 그런 일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현상을 데자부라고 하던가. 정신을 놓고 있다가 문득 도마를 내려다봤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아, 이런. 도마 째로 개수대로 가져와 피로 물든 양상추를 씻기 시작했다. 제발, 원래대로 돌아오라는 마음으로.


 “산지! 산지! 손가락 베였어? 산지! 빨리 봐봐!”

 “……네 놈, 결국 쵸파 부르러 갔던 거였냐? 쵸파. 난 괜찮아.”

 “거짓말! 거짓말! 피가 아직도 나는데! 산지, 바보!”


 정말 별것도 아니었는데. 하는 수 없이, 레버를 잠그고 허리를 구부려 앉은 산지가 쵸파에게 손을 건넸다. 미리 장비를 전부 챙겨온 쵸파가 콧바람을 불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산지는 바보야, 요리사는 손이 생명이라면서 손을 다치기나 하고. 평생 손 같은 거 안 다친다고 약속했던 건 어디 사는 누군지 몰라. 게다가 뭘 했기에 이렇게 뼈가 다 보이냔 말이야, 산지가 경상을 입다니 분명 아직도 스릴러바크의 영향이 있는 건지도 몰라! 다 됐다! 붉은 색의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인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산지가 싱긋 웃으면서 쵸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맙다. 나지막이 소리를 내며 허리를 펴 일어난 산지가 이어서 피가 아직도 스며져 있는 양상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새로 다시 해야 하나. 반포기 상태로 양상추를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담고 냉장고를 열어 새 양상추를 꺼내왔다. 물기가 처음부터 있었던 도마인지라 피는 금세 사라진 후였다.


 “이번에는 정신 차려서 해라, 네 녀석.”

 “네 놈 날 도대체 뭐로 보는 거냐, 정말.”

 “이야기, 계속 하리?”

 “마음대로. 어차피 소설일 뿐인 걸.”

 “과연.”


 말은 저렇게 했지만 처음부터 신경이 쓰이긴 쓰였다. S의 성격은 나와 판박이였고, Z의 성격은 놈과 판박이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Z는 단 걸 싫어한다고 했었지. 조로 그 놈 역시 단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놈이었다. 설사 그게 놈과 나의 이야기라도 해도, 난 그런 기억 따위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겠지 믿지도 않겠지만. 헌데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오고 가슴 한 편이 아려오는 건 참으로 이상했다. 놈의 집요한 시선이 느껴지고 지금 이 곳에는 내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 밖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내가 변한 건지, 놈이 변한 건지. 만약 이걸 묻는다면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해적질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뭐, 우리보다야 훨씬 더 잔인했지만. 그 이야기는 좀 뒤에 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그들이 즐겼었던 데이트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상당히 낯간지러운 건 나도 안다. 그래도, 들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아무튼, 그 놈들은 꽤 수영을 잘했다. 맥주병인 민간인들을 구해주기도 했지. 근데 가끔은 물속에서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옷이 분명 젖는데도, 상관없다는 듯이 서로에게서 사랑을 확인하기 바빴지. 그러다가 다른 선원들이 불러야 웃으면서 올라오고 그랬다. 덕분에 씻는 것도 같이 씻고. 꽤 괜찮았다. 소박했지만 행복했지.


 행복. 그 단어가 나타내는 감정을 잊어버린 지는 꽤 오래 됐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을 제외하면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죽어서도 함께할 이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행복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 감정은 표면적인 감정일 뿐. 내면적인 감정은 아주 조금이랄까. 나미 씨와 로빈 양에게 디저트와 차를 준비해서 줄 때도 그건 한낱 남자의 사명감일 뿐, 달리 감정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행복이라니.


 “멍청한 요리사, 정신 좀 차리라니까?”

 “뭐, 뭐야 네 놈은…….”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네 녀석은 진짜…….”


 놈이 아니었다면 또 다시 베일 뻔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숨을 헐떡이며 다가온 조로가 칼을 들고 있는 산지의 팔을 붙잡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붙잡힌 손을 쳐다보던 산지가 급하게 시선을 아래로 던졌다. 골로 갈 뻔했네. 상황을 확인하고 나니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던 걸 잡은 조로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네 녀석 진짜……. 거의 내치듯이 잡힌 팔을 빼내고 나니, 얼마나 세게 잡았으면 저리기 시작한 것이 아프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거의 다 만든 음식을 둘러보다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놈을 어깨로 밀어버렸다. 방해다, 네 놈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해가 되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절로 담배가 고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때맞춰 주방의 문을 열고 들어온 루피가 소리를 질러왔다.


 “산지! 밥 아직 덜 됐어? 배고파!”

 “거의 다 됐다. 조금만 기다려라, 돼지야.”

 “점심에는 고기 있어? 아침에 빵 먹어서 고기 먹고 싶어!”

 “미안하지만 고기는 없고, 생선은 있다.”

 “에, 그러면 이따가 저녁에는 꼭 고기 줘야 돼!”


 다른 선원들이 모습을 드러내니 어쩔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간 조로가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떨궜다. 분명 충동적으로 해낸 일이었으니 말이다.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오던 쵸파가 다가와서는 상처에 대해서 물었다. “어어,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아.” 순록은 쓸데없이 걱정이 많았기에. 다행이야! 귀여운 웃음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은 모습을 흘긋 쳐다보다, 마지막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고 본격적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프랑키, 차리는 것 좀 도와줘.” 유일하게 밥을 먹지 않는 녀석은 의외로 가사일을 잘 도와주기도 했기 때문에. 접시만 해도 스무 장은 가볍게 넘는 식탁을 바라보다, 루피 녀석이 웬일로 비어있는 제 옆자리를 가리키며 소리쳐 왔다. “산지! 너도 밥 먹어! 이리 와!” 항상 나는 녀석들이 먹고 난 뒤에 조금 배를 채우고는 했다.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해본 적이 언제더라.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아, 됐어. 심부름해야 되니까 너나 먹어라.”

 “나 더 달라고 안 할 자신 있어! 그러니까 같이 먹자!”

 “그럴 리가 있겠냐, 네 놈이. 됐으니까 먹으라고.”

 “너도 가만 보면 되게 고집 세다.”

 “네가 할 말은 아니거든?”


 몇 번의 권유를 거절하고 나니, 루피도 포기한 건지 밥을 먹는 데에 열중을 했다. 다행인 건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멤버들을 둘러보다 시선은 어느새 놈에게로 가 있었다. 솔직히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있겠어.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가도 다른 기척이 나면 곧바로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놈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밥까지 전부 먹은 루피를 끝으로 유독 길었던 것 같은 점심시간이 끝이 났다. 싹 비워진 접시를 보며 흐뭇해하다가도, 막대한 양의 접시의 한숨부터 나왔다. 늘 있는 일이지만 언제나 볼 때 마다 어이가 없긴 했다. 그래도 먹는 사람이 만족해야, 요리사도 기쁜 거 아니겠어. 자, 다 먹었으면 나가라. 내쫓듯이 주방에서 모두를 내보내고 나니 온전히 내 시간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했다. 볼 일이 있어 보이는 놈마저 보내버렸으니, 이제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도 괜찮겠지.


 나는 과연 놈과 무슨 사이였던 걸까.


 -네 녀석이 기억이 안 난다면 더 이상 나도 네게 해줄 말 같은 건 없다.

 -……야. 말해줄 것도 아니면서, 사람 간 보는 거냐?

 -애초에 기억 같은 거 안 난다고 버티는 사람은 너니까.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적어도 잘못은 내게 없다.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난 모든 게 정상인데, 모두가 정상인데 네 놈이 왜 그러고 있냐고 묻고 싶은 거다. 망할 마리모 .

 -……끝까지 네가 정상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오늘 할 얘기는 이걸로 끝내자.


 기억. 도대체 그 기억이 뭐기에. 답답한 건 너만이 아니다, 망할 녀석아. 모든 상황으로 봐서는 백중의 백, 놈이 계속 밀어 붙이는 그 기억이 문제였다. 하긴, 전에 그런 말을 했었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말이지. 그래, 내 머리가 잘못돼서 기억을 잊어버렸다고 쳐보자. 그렇다면 왜 나는 어째서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게없냐, 이 말이다. 도대체 삭제된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가 될 게 있으면 다른 선원들이 눈치를 챘을 수도 있지 않는가.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달라진 말투와 행동 뭐 그런 것들을 지적해줄 수도 있는 것이고. 근데 왜 그걸 눈치 챈 게 조로 놈이냐 이거지. 복잡하다, 복잡해. 막대한 양의 설거지를 끝내고 물기가 가득한 손을 수건으로 닦고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 조로가 있었다.


 “잠깐 시간 좀 내줘. 할 이야기는 아직도 산더미잖아, 그렇지 않아?”

 “……그래. 산더미긴 하지. 대신 조건 걸어도 되냐?”

 “들어보고 타당하다 생각하면 들어주지.”

 “바보야, 너한테는 선택권이 없다는 말이다.”

 

 신경질 적으로 대답을 건넨 후, 놈을 따라 단련 실로 올라갔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운동기구들이 즐비해 있는 이곳은 내겐 주방 같은 곳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쳐다보니 경치가 꽤 좋았다. 여기서 자고 싶을 정도로. 그러고 보니 여기 꽤 따뜻하잖아. 좋은 데를 얻었네. 프랑키가 동료로 합류 되고 나서 처음으로 둘러봤을 때 빼고는 이곳을 와본 적이 없었다. 항상 불침번은 놈이 담당했었으니까. 자세하게 관찰을 하듯이 살펴보고 있는 동안 놈은 운동이라도 할 셈이었는지 역기를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건이라는 게 뭔데.” 입고 있다기 보다는 걸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았던 셔츠를 벗어서 소파에 대충 놓아둔 조로는 확실히 운동을 할 셈이었다. 조건……. 솔직히 홧김에 해본 말이었다. 정말 이렇게 지키려고 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이 말이다.


 “조건이 뭔데, 도대체. 빨리 말해. 나도 얘기 빨리 끝내고 제대로 운동하고, 네 놈도 내려가서 디저트나 만들어야 하잖아.”

 “……아니, 조건……그래, 그건 좀 나중에 말할 테니까 네 놈 먼저 말해라.”

 “그러던지.”


 내가 네게 해줄 그 소설의 이야기는 이게 마지막이다. 내가 그랬지? 그들도 해적이었다고. 우선 단체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침묵 속에 형성 되는 틀을 깨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이쯤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래, S와 Z 역시 그 틀을 깨지 않기 위해 서로만 아는 연애를 시작했다. 근데 그게 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들은 어떤 이상한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마침 식량이 떨어졌던 터라 마을로 들어갔다. 공기는 뿌옇고 냄새는 지독했지. 공기로 위장한 독이 퍼져 있던 거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방독면을 쓰긴 했지만 지옥을 경험하는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성격 더러운 이 섬의 지배자들을 만나 신나게 싸움을 해대었지. 근데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Z가, S를 대신해서 모든 공격을 받아버렸다. 물론 Z를 제외한 모두는 기절한 상태였기에 Z가 뭘 했는지 알 수가 없었지. 그렇게 밤을 새고 가장 먼저 일어난 S는 Z를 보며, 놀라 묻지만 Z는 입을 꾹 다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근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S가 Z와 있었던 그 시간들을 전부 잊어버렸다.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어떻게 사랑을 했는지 전부 잊어버렸다는 거다. Z는 충격에 빠졌다. 믿고 싶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S에게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S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되려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Z는 거짓말이라며, 혼자 체념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대로 둘의 관계는 끝이 났다. Z는 절망 속에서, S를 바라보기만 하는데……미치도록 아프다고 했다. 너무 사랑해서. 그래도 Z는 언제까지나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면, 언젠가 S가 알아주겠지, 하는 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 하지만 끝은 그렇듯이 절망적이었다. Z의 바람을 무참히 밟아버리고 S는 웃으면서 지냈지. 덕분에 Z는 당장에 죽으라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피폐해져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잊고 싶은데,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더군. 참, 대단한 사람이야. 


 비극이지. 아, 재미없었냐? 그렇다면 미안하군. 무거운 역기가 바람을 휘 가르는 소리뿐이 들리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저 듣는 순간까지도 텅 빈 것 같은 머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머리가 공허한 것처럼 가슴도 공허했다. 저릿하거나 바늘로 쑤시는 듯이 아픈 건 없었다. 다만 빈속을 채울 무언가 없다는 게 미치도록 슬퍼왔다. 언제부터 내가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정신을 차려 봤을 때,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렸으니까.


 “루피가 찾는다. 요리사.”

 “……그래……. 너도 뭐 좀……가져다줄까?”

 “아니, 난 됐다. 아,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또 있다. 이건……이것 역시 소설 이야기다.”

 “……디저트 만들고 나면 시간 있으니까 그때마저 해줘.”


 듣고 싶었다. 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듣고 싶었다. 만약 심정의 관한 이야기라면, 놈을 대입해서 읽고 싶었다. 이것 역시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무런 미련 없이 단련 실을 빠져 나온 산지가 루피의 배고프다는 소리를 끝으로 다시 주방으로 몸을 숨겼다. 만약, 그 소설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분명 너와 나의 이야기겠지. 망할 마리모 녀석아. 떨려오는 손으로 냉장고를 여는 모습이 참 많이 안쓰러워 보였다.


 조각 낸 케이크를 접시에 담아 밖으로 가져 나온 산지가 웬일로 무리에 섞여 있는 조로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아직도 운동 중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계단을 마저 내려오던 산지가 순식간에 늘어나 접시를 냅다 가져가는 팔을 보며 한숨을 덤으로 쉬었다. “지금 내려 가잖냐.” 역시 아까 먹었던 양으로는 모자랐는지, 작은 크기도 아닌 조각 케이크를 입 속에 털어놓고 배고프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미안하기도 한 산지였다. 확실히 오늘 정신이 이상하니 양을 신경 쓸 새도 없었지.


 “루피, 이것도 완전히 가져가!”

 “알았어!”


 왼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루피에게 건네주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가지고 나미에게로 다가간 산지가 웃으면서 잔을 받을 것을 권했다. “고마워, 산지 군.” 평소라면 눈에 하트가 막 날아다녔을 산지였지만, 의외로 인사를 받은 산지는 덤덤했다. 예상 밖의 일이라, 지켜보던 우솝이 깜짝 놀라버렸지. 거, 거짓말. 역시 먹고 있던 음료수를 뱉어버린 쵸파를 보면 이번 일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뭐가 잘못 된 건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이어서 프랑키와 같이 있는 로빈에게 다가간 산지가 남은 잔을 건네주며 떨어졌다. “잘 마실게, 요리사 씨.” 늘 똑같은 대답이었어도 이렇게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정신을 놓고 있던 쵸파의 케이크를 뺏어 먹던 루피가 평소와 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라 어딘가 모자란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절대! 잔을 떨군 지도 모르고 열심히 손을 젓던 쵸파가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우솝을 쳐다봤다. 아무런 미동도 없던 조로만 일어나서 방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필터를 있는 힘껏 빨아들이던 산지가 손가락을 튕겨내 담배를 땅으로 떨어뜨리고는 그런 조로의 뒤를 따랐다. “다 먹은 그릇은 주방에 좀 갖다 놔줘.” 잠을 잘 때와 옷을 갈아입을 때를 빼고는 들어가지 않는 곳이었다. 근데 갑자기 저 방에는 무슨 일로.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무마시키려 이상한 이야기 주제를 던진 프랑키 덕분에 조로와 산지에 대한 관심은 대충 꺼지는 듯 보였지만, 그들 나름 아무런 말없이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봤자 나오는 답은 없었지만 말이다.


 낡을 대로 낡은 소파에 몸을 뉘인 조로가 당장이라도 잠에 들 기세로 눈을 감았다. 반대로 산지는 여전히 문에 기대어 새로 담배를 뽑아 들고 피우기 시작했다. 한 없이 무겁고 무거운 이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제 팔을 베게 삼아 머리를 뉘인 조로는 풍겨져 오는 담배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냄새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최대한 피우지 않으려 노력은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평소 담배 냄새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조로여서 나름 신경 쓴다고는 했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 한 번 반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한 적 있었지. 


 -넌 나중에 죽는다면 뭐로 죽을 것 같아?

 -당연히 간암이지.

 -그럼 난 폐암인가…….

 -당연하지.


 문득 그때가 생각나 살짝 입 꼬리를 올려 웃은 조로가 동시에 한숨을 쉬며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어차피, 나만 기억나는 일인 걸. 놈은 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조차 모르는 놈이니까. 요즘은 술보다 담배를 더 많이 찾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한 번 마셔버리면 끝나는 술 보다는 계속해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담배가 더 좋아서지 않을까. 아아, 그럼 나는 간암과 폐암이 동시에 걸려 뒤지는 건가. 웃기지도 않네. 어느새 담배를 다 피우고 조로의 반대편의 다리를 꼬고 앉은 산지가 고개를 뒤로 뉘이며 물었다.


 “그래서 그 소설이란 게 또 무슨 이야기인데? 그나저나 참 신기해. 네 녀석이 책이란 것도 보고 말이야.”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운동을 하지 못했을 때, 읽었던 거다. 그때는 잠도 안 와서 말이지.”

 “그래, 어디 해봐. 이번에도 아까 마저 해줬던 얘기처럼 재미없기만 해봐. 정말 네 녀석 상처를 도지게 해주지.”


 놈이 해준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실제 같아서 더 재미있었지. 근데 저런 말이라도 안 하면 놈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임시방편 차원에서 던진 말이었다. 뭐,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산지는 어서 조로가 입을 열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애초부터 얘기할 생각은 있는 건지, 자는 듯한 숨소리만 감도는 방 안에는 의구심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정말로 얘기하려던 건 맞는지. 도대체 그 얘기가 무슨 얘기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궁금했다. 그렇지만 우선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소설을 빙자한 둘의 이야기 속에는 당연히 지어낸 허구적인 설정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겨눠진 감정은 달라진 게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지쳐버렸다. 소설의 이야기처럼 한없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녀석을 기다린다면 나만 죽어갈 것 같아서. 아직도 밝게 웃는 녀석을 보면 가슴부터 아파오는데, 이대로 정말 끝을 내버린다면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와 나와 다를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 허구의 이야기는 미리 예측했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당장이라도 이 바보 같은 짓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게 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나만 멈추면 고통 받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인데, 정말 그거 밖에 없는데. 사람의 이기심이라는 게 본의 아니게 녀석까지 고통을 주고 있었다. 녀석의 성격이라면 분명 이 이야기를 신경 쓰고 있을 게 분명한데,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 일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알고 싶었다.


 놈의 얼굴이 보였다. 타인의 이야기인데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감정을 느끼고 슬퍼하는 그 얼굴이. 이야기 속의 그 남자는 기다렸다고 했다. 그럼 혹시 놈도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닐까. 괜한 궁금증이 도졌다. 이야기들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우리와 비슷한 점이 꽤 많았다. 며칠 전 스릴러바크에서 있었던 일도 같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했던 그 이야기가 너무 와 닿아서. 절망 속에서. 그 말을 할 때의 표정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온갖 생각을 다해가며 기다리니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은 늘 불안했다. 이제 그만 이 어둠 속에서 깨고 싶은데, 오기로라도 버텨보고 싶었다. 소설 속의 Z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으니까.


 내 얘기……. 뭐, 비슷한 얘기다. 아무 대답도 하지 말고 그냥 들어라, 요리사. 난 내 판단에 확신이 서려있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저 루피가 하라는 대로, 선장의 명령을 실행시키는 것. 그리고 본능을 따라가기 바쁘다. 근데, 이런 내가 해적을 하면서 처음으로 판단에 확신이 섰을 때가 있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바보 같은 놈을 처음 보자마자 말이다. 어쩌면 난 그 놈이 동료가 되었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지. 누군가를 그렇게 관찰하고 분석하듯이 쳐다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뭐든 걸 알고 싶었다. 하지만 놈은 날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며 딴 죽을 걸기 바빴지. 나도 승부욕 그런 게 있어서 곧이곧대로 다 받아 줬다. 가끔은 그렇게 놀려 먹는 재미가 쏠쏠했으니까. 그리고 굳이 관계를 정의 내리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굳이 말해보자면 글쎄. 또 하나 더, 처음으로 들었던 감정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어이! 너희 여기서 뭐해! 작은 바위섬에 도착했는데 우린 내려서 좀 쉴 거야! 너희는?”

 “……루피. 너 아까도 나갔다 오지 않았어? 그리고 바위섬이랑 배 위랑 다를 게 뭔데?”

 “공기가 다르단 말이야! 배는 이제 갑갑해! 어쨌든 그것만 말해, 나올 거야 안 나올 거야?”

 “……이 놈은 자고 있고, 난 뭐 좀 정리해야 한다. 쉬고 들어와라.”

 “그-래! 배 잘 보고 있어!”


 좋아한다는 감정이었다. 상대방이 날 알아 줄 때까지 그 기다림은 나름 즐거웠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놈이 앞에 보이니까 차마 놈을 쳐다볼 수 없었다. 놈도 처음이었지만 나도 처음으로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보다는 고백이 맞으려나. 모든 게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대답은 하지 말라고 했으니 우선 다행이긴 했지만, 이 다음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끝이 나고 나는 내가 사는 주방으로 놈은 놈이 사는 단련 실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런 이야기 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 차라리 잠에라도 들면 다행이었지만, 야속하게도 잠은 더 달아날 뿐 오지는 않았다.


 말해버렸다. 근데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더 이상 허구의 이야기는 생각나지도 않고 굳이 지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반쯤은 눈치 챈 것도 같았기에. 그래도 멋이 없기는 했네. 그 시간 동안 눈 감고 생각해낸 게 고작 고백 따위라니. 참 나답다. 한쪽 눈을 떠, 바로 맞은편에 앉은 녀석을 쳐다보고 있자니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고백이라는 게 이런 건가. 놈이 고백해 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엄청 부끄러웠겠네. 웃음이 나왔다. 오래 뜰 수 없어 자연스레 감긴 눈과 함께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 진짜 뭐하고 있는 거지.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오늘 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끝을 내겠다. 이따가 저녁 먹고 난 뒤에 잠깐 보면 좋겠는데. 어떠냐?”

 “그래, 이왕이면 오늘 한 거 오늘 끝내는 게 낫지. 좋아. 어디에서 볼까?”

 “아무데나. 네가 정해라. 그리고 오늘 하루는 참 긴 것 같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니, 입을 다문 조로가 눈치를 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아까의 숨소리를 대체하고 빠른 시간 안에 문까지 열렸다 닫혀버렸다. 방 안에 홀로 남은 산지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난 어떡하면 좋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는 걸 알지만 위로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든 좋으니까, 대답 좀 해줘. 이번에는 내가 미로 속에 갇힐 차례였나 보다.


 힘겹게 방을 나온 조로는 단련 실로 올라가 급하게 담배를 찾아 들었다. 냄새는 지독했다. 미치도록 지독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안정은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길게 빤 만큼 오래 뿜어져 나오는 연기처럼 지금 머릿속에 가득 져 있는 응어리도 그 만큼 이었다. 처음부터 나만 잊으면 끝이 나는 거였는데, 녀석이 기억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골치 아픈 일만 준 것 같아서 미안하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차라리 이게 더 괜찮다고 생각도 들었다. 대체 나란 놈은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냐, 싶다가도 결국 난 이럴 수밖에 없는 놈이라는 걸로 끝을 맺고 만다. 아까 전 내동댕이 쳐 놨던 역기를 다시 손에 쥐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제발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


 바위섬에서 배로 올라온 루피가 가장 먼저 주방으로 들어갔다. 벌써부터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산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잡아온 큰 물고기를 들어 보이며 자랑을 시작했다. “산지! 봐봐! 물고기 엄청 크지? 산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해. 그래야 해. 스스로를 안정시키던 산지가 고개만 뒤로 돌려 물고기를 들고 크게 웃고 있는 루피를 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오오, 크네. 설마 그거 잡으러 갔던 거였냐? 낚시로 얼마든지 잡을 수 있잖아, 그런 건.” 끓이고 있던 육수를 휘젓던 산지가 허리에 팔을 올리고 결국은 웃어 보였다.


 “손맛이 중요하다고! 항상 네가 그랬잖아! 요리는 손 맛! 나 이거 조로한테 자랑하고 올게!”

 “그래, 어서 나가. 정신 산만하다고.”

 “그나저나 정리 하던 건 다 했어? 너 막 식량고에 못 들어가게 자물쇠 걸어둔 건 아니지?”

 “돈도 없는데 자물쇠는 어디서 나오냐? 그래도 너 먹으면 죽는다.”


 내가 뭐 맨날 먹기만 하는 줄 아냐? 조로! 이렇게 보면 정말 그 나이대의 모습 같은데 또 싸움만 시작했다 하면 사람이 아예 다른 사람이 돼 버리니. 괜히 흐뭇해져 스스로 만족하던 산지가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바로 다른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과 점심 때 너무 부실했으니 저녁때는 만찬이다. 벌써부터 맛있게 먹어줄 동료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가도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한 미로가 생각이나 금세 심각해졌지만 말이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저녁을 먹을 때가 돼 있었다. 밑에서 소리를 지르는 녀석들 때문에 급하게 내려와 주방으로 가니 먼저 먹고 있던 루피가 손을 들어 보인다. 이미 먹고 있다는 건, 반 정도 없어졌다는 얘기인데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은 마치 초기 상태와 같았다. 자리에 앉아 상황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이번에 작정한 듯 접시가 빌 때쯤이면 다시 채워 오는 놈이 있었다. 그런 거였냐. 포크를 들어 음식을 집기도 전에 팔을 늘려 가져가는 루피와 거기에 화를 내는 조로.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싸우지 말란 말이다! 음식 앞에서! 먹을 건 얼마든지 있다고! 그리고 덤으로 오랜만에 보는 놈의 모습이었다. 오늘만 지나면 앞으로도 쭉 이럴 수 있겠지.


 꽤 시끄러웠던 저녁 시간이 끝나고 설거지를 마무리 짓던 산지가 조로와의 약속은 좀 미루고 먼저 식량고로 걸음을 옮겼다. 루피의 말처럼 자물쇠를 걸어놓은 것도 아니어서 더욱 걱정 되었다. 혹시나 이름 모를 누군가 들어와 몰래 먹고 가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배가 고픈 루피나 우솝, 쵸파 녀석이 몰래 고기를 뜯지 않았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늘 수첩 정리가 필요했다. 그럼 조로 녀석이 이야기를 하는 틈을 타 나는 정리를 해야지. 평소와 같은 시간에 정리를 하는 터라 딱히 문제될 것도 없었고 놈만 부르면 끝날 일이었으니 어째 저녁때가 되니까 일이 쑥쑥 잘 풀리네. 앞으로도 이렇게 풀리면 참 좋으련만. 전등을 켜고, 식량을 살피던 산지가 무릎을 접고 앉아 만들어진 다리 책상에 수첩을 올리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없어지거나 사라진 식량 같은 건 없었다. 깔끔하게 정리 된 수첩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산지가 슬슬 저려오는 다리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레시피만 정리하면 끝이었다. 식량고에서 나와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던 산지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조로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텔레파시라도 통한 건지, 부르러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서 좋았다.


 “아아. 너는 네 얘기를 하면 된다. 나는 정리해야 할 게 있어서 말이지.”

 “아까 정리해야 한다는 게 그 수첩이었냐?”

 “아, 어어. 오늘 만든 요리의 제조법을 적어놔야 다음에 또 만들 수 있지.”

 “……좋아. 이번에도 역시 대답하지 말고 들어라.”


 처음에는 그 감정을 인정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었다. 그래. 알라바스타에 있는 내내, 난 내 감정을 알기 바빴으니까 말이다. 사막을 걷는 동안에도, 사막에서 빠져 나오고 난 후에도.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라 할 것 없이 난 정말로 아무도 없는 사막 아래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 곳을 떠나 며칠 간 항해를 하는 동안 그제야 인정을 했다. 내가 그 바보 같은 놈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이다. 근데 때마침 놈이 내게 고백을 해왔다. 난 인정을 했지만 사실 그 이후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인지, 오히려 당황을 했었지. 그러다 둘이 자주 있게 되고. 참 기뻤다. 그냥 기뻤다.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즐거웠고 기쁘고 좋고. 세상에 있는 모든 긍정적인 표현들을 전부 쏟아 부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 소설의 Z처럼 말이지.


 파릇한 종이 위에 서서히 번져지는 잉크를 내려다보던 산지가 굳게 다문 입술을 더욱 꽉 다물었다. “한꺼번에 다 얘기해도 상관없지?” 오래 끌 필요성을 못 느낀 조로가 물었다. 역시 자신도 그건 별로였는지 대답 대신에 열심히 손을 놀리는 산지였다. 막힘없이 써내려 가지는 글씨에 막 입을 열려던 조로가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는 지금 내 심정을 고백하는 거니까,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싶었다. 자신을 억누르는 연습을 하는 조로를 흘깃 쳐다보던 산지가 몰래 한숨을 쉬었다. 결국 그 소설의 이야기는 짐작했던 대로 자신과 조로의 이야기였고, S는 나 Z는 너. 그리고 지금 조로가 하는 이야기는 그 소설 이야기를 뒷받침 하는 자신의 이야기였다. 의자를 짚고 있던 손을 올려 이마를 짚은 산지가 입을 다무는 것 대신 얇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미로 같은 건 없어지는 걸까, 아니면 놈은 빠져나가는데 나는 아직도 헤매는 걸까. 


 스릴러바크에서 있었던 일들. 넌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이야기를 전해 들었겠지. 솔직히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싸움을 진행하면서 루피가 받았을 고통은 내가 가만히 서서 받은 것보다 훨씬 더 지독했겠지. 그걸 생각한다면 나정도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웠지. 근데 그걸 이긴 게 뭐인지 아냐? 바로 그 바보 같은 놈이 기억을 하지 못했을 때다. 밤이면 배의 한 가운데에 누워 별을 보면서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던 것도, 내 공간에서 망을 보면서 춥다고 서로를 껴안았던 것도, 좁은 해먹에 두 사람이 눕겠다며 무음 속의 다툼을 했던 것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을 때, 죽을 것 같았다. 정말 둘이 좋아라 했던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나 혼자 죽어라 좋아했던 건 아닌지. 분간도 안 갔고, 아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아니 아무렇지 않은 놈을 보면서 난 사라져만 갔다. 나만 잊어버리면 끝이었는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 그래서 놈의 기억을 깨워주려고 쇼를 벌이고 있었던 거다. 난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했거든.


 순식간이었다. 조로가 글씨를 쓰던 산지의 팔목을 단단히 붙잡고 키스를 한 게. 펜촉에 잔뜩 묻어있던 잉크가 식탁 위로 떨어지고 몸의 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정갈하게 적혀있던 글씨 사이에 점을 찍어대었다. 연인들이 하는 달콤한 키스가 아닌, 전투적인 키스. 곧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마지막 인사 차 전하는 키스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놀라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산지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조로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 강하다는 놈이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아예 잡혀버린 손을 빼내고 얼굴을 감싼 산지가 살짝 웃으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말을 했다. “울지 마.”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이 흐르는 부분을 꾹 눌렀다. 갈 곳을 잃어버린 두 손은 똑같이 산지의 얼굴을 감쌌다. 잠깐 숨을 돌릴 셈으로 맞닿은 입술을 떼어 냈을 때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웃기 바빴다.


 “고작 그런 걸로 울면, 너 남자 맞아? 그때 미호크한테 당한 이후로 울지도 않겠다면서.”

 “……네 놈과 함께 있었던, 그 시간들이, 나는, 소중했다.”

 “이제야 알아서 미안하네. 솔직히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어. 근데, 그거 하나는 알겠다. 네 놈이 우는 걸 보니까 나도 가슴이 아파.”

 “……그러는 네 놈은, 왜 우냐.”

 “내가……울어?”

 “하하, 너나 나나 같은 건 참 한결 같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다가도 이 순간을 잊어버릴까, 더욱 서로를 찾기 바빴다. 다시 맞부딪쳐온 입 속의 혀가 얽히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키스였다. 짠 맛이 느껴졌지만 그마저도 웃음으로 쉽게 넘길 수 있었던 순간 의자가 뒤로 넘어갈 것 같아, 반사적으로 팔을 잡아당긴 조로가 그 상태로 품에 안겨오는 산지를 꽉 끌어안았다. 닿아오는 어깨에 얼굴을 묻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세게 끌어안고는 웅얼거렸다. “가지마…….” 참으로도 아이 같은 모습에 결국 눈물을 닦고 웃고 만 산지가 그런 조로의 등을 토닥거리며 대답했다.


 “출구도 없는 미로에 넌 먼저 들어가서 힘들었지? 근데 네가 이제 나오려고 하니까, 내가 들어가 버렸어. 넌 점점 빛을 향해 멀어져 가는 것 같은데, 나만 아직도 제자리 인 거야. 왜 그런 줄 알아? 난 진실을 알아버리는 게 무서워서 그랬던 거야. 근데 네가 사라지니까, 난 불안해 지더라. 그래서 열심히 널 따라서 나오려 노력했어. 그래서 그 노력의 끝이 뭔 줄 알아?”

 “……뭔데.”

 “빛이 보였어. 미로의 빛이 있다는 건, 출구가 있다는 거잖아. 난 미로를 탈출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지금 이렇게, 널 만났어.”

 “다행이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할 항해는 길고, 시간은 많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난 네가 그 전의 우리 둘을 잊고, 새로 시작하는 우리 둘을 지켜봐 주면 좋을 것 같아.”

 “……나쁘지 않네.”


 이번에는 좀 더 달콤하게. 어깨에 묻어두고 있던 고개를 들어 입술을 찾아 든 조로가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혀를 진득하게 빨아 올렸다. “질문하나 해도 돼?” 입을 맞추고 있는 상태라 대답하기가 어려웠지만 웃는 것으로 대신한 산지가 조로의 목에 팔을 둘러왔다. “넌 해적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아니라……좀 더 나은 시대에 태어나면 좋을 것 같아?” 뒤늦게 팔을 풀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급하게 뜯어내던 조로가 잠시 입술을 떼고 대답을 기다렸다. 뭐, 그 동안에도 탄탄한 가슴을 주무르는 손은 매우 바빴지만.


 “네 놈이랑 싸워도 웃을 수 있는, 지금이 난 더 좋다.”

 “……과연.”


 이미 수첩은 펜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고, 식탁 위로 누운 산지를 내려다보던 조로가 몸을 숙여 목에 입을 진하게 맞춰왔다. 동시에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며 긴장을 풀어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 아! 툭 튀어나온 쇄골을 깨물던 조로가 바지의 버클을 풀고 더 은밀한 곳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여유롭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나 오래 고민하던 게 한 순간에 깨져버린 것이 허무하긴 했지만, 지금 같이 있다는 그 사실이 매우 행복해서 허무하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결국 끝이 보이지 않았던 미로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이 다시는 그 미로 속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EPILOGUE



 야야, 너 이번에 나온 게임 씨디 샀어? 한 여름 날의 꿈은 상상 그 이상으로 거대했다. “넌 무슨 잠을 학교에서 자냐? 너 집에서 이상한 거 하느라 잠 안 자지?” 벌써 끝날 시간이 다 된 건지, 가방을 챙기는 산지를 쳐다보던 조로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보충 끝났냐? 공부 하러 와서는 하나도 듣지도 않고, 왜 따라 왔냐고 물어보면 너 따라 왔다고 대답하는 조로가 짜증이 나 일부러 더 틱틱 대며 말하긴 하는데 이 놈은 들은 체도 안 하기 때문에 골치만 아프다.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이곳에서 땀을 흘리는 조로를 보며 가방에서 수건을 꺼낸 산지가 손에 힘을 주고 조로의 얼굴로 수건을 던졌다. 아! 정통으로 맞은 건지, 조로는 맞은 부분을 손으로 문지르기 바빴다.


 “너 일부러 그랬지, ”

 “수업은 하나도 안 듣고 잠만 더럽게 쳐 자는 네 놈이 뭐가 예쁘다고 내가 열심히 공들여서 쓴 노트를 보여주냐 이 말이야. 쌤도 너 포기했더만. 3반에 잠만 쳐 자는 마리모가 하나 있다고요? 내가 그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야. 너네 집 언제 비어?”

 “아,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짜증나게. 오늘도 빈다고, 왜, 뭐 하려고?”

 “……나 밥 좀 해줘. 네가 해주는 밥 맛있단 말이야.”

 “뭐, 내, 내가 하는 밥이 어느 음식점 못지않지만……. 싫어, 내가 너한테 왜 해줘? 네가 내 남편도 아니고.”

 “그까짓 거 하면 되지. 남편.”

 “뭐?”

 “자기야~ 나 오늘 피곤하니까 밥 좀 차려주면 안 돼?”

 “아, 개 더러워.”


 언젠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네가 원피스에 나오는 그 해적들이었다면 넌 지금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옛날 그 시대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 일들이 현실로는 모든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고 해적들에 대한 기록은 아직까지도 남아 만화로 재탄생 된 후였다. “나라면 세계 제일의 대검호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봐봐, 얘 이름도 조로잖아.” 반 친구들이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경우는 허다했다. 너희가 무슨 원피스 주인공이냐? 야, 조로. 너 삼도류 한 번 해봐. 산지, 너 발에서 불 나와? 등등의 미친 소리가 다수였지만. 대충 이런 소리는 가볍게 넘기고 만다. 그래도 하나 문제되는 게 있다면, 조로 놈이 문제겠지만.


 “내가 너한테 밥 해주면, 나한테 되돌아오는 건 없잖아? 불공평 하지.”

 “있잖아……. 사랑해 줄게.”

 “제발, 인간적으로 이러지는 말자.”

 “사랑해.”


 종례를 마치고, 누구보다 빠르게 산지의 팔목을 잡고 학교를 나온 조로가 하복을 아예 벗으며 산지에게 건네주었다. 검은 반팔이 더 덥다니까, 말도 안 들어. 딱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농구 코트에 어느새 섞여 들어 공을 차지하고 있는 조로를 보니 괜히 흐뭇해지는 산지였다. 부모님의 오랜 출장으로 비어있는 집은 거의 혼자 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나가는 애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뭐, 그런 산지의 앞에 나타난 게 비슷한 처지의 있는 조로였지만. 겉으로는 싫다, 싫다 하면서도 외로움을 공유할 친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기에 서로에게 서로는 딱 의지할 수 있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던 건 확실했다.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산지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만 봐도 이제 누구인지는 알 정도였으니까. 익숙하게 가방을 돌려주고, 제 가방에서 물병을 꺼낸 산지가 툭 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너희 부모님은 언제 오시는데.”

 “알게 뭐야. 야, 나 너네 집에서 자고 갈래. 나 속옷 챙겨옴.”

 “내가 침대.”

 “같이 자.”

 “싫어, 너 땀 나잖아.”

 “에어컨 틀어놓고 자면 되지. 그리고 너 내가 안 안아주면 잠 못 자잖아.”

 “날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

 “아오, 죽인다.”

 “넌 나 절대 못 죽여.”


 한 여름 날,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정말 실재했던 일이라면 그들은 지금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고 이해하며 아주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미로 (迷路) 완. 


약속


[창궁] 약속 (+스포주의)






마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소멸할 정도로.









[창궁] 약속

Lancer X Archer









성배가 오염된 것이 드러나 성배 전쟁이 중단된 지 한 달. 보통 성배 전쟁이 길어도 2주 안에 끝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긴 날짜다. 성배의 오염이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마스터와 서번트의 전투행위는 금지되었고 마스터들은 성배를 정화하거나 아니면 해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서번트들은 각자의 마스터와 문제없이 지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패스에서는 틀림없이 마력이 공급되고 있었지만, 그 양은 어제와 비교했을 때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줄어있었다. 이게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계속 이렇게 줄어든다면 현계할 수 있는 날짜는 최대가 일주일―단독 행동 B로 인한 이틀까지 포함해서―그 이후에는 틀림없이 소멸하겠지. 성배 전쟁 중단이라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일단, 린에게 가서 알려야 했다.



"린,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아처, 무슨 일이야?"


"마력이 공급되는 양이 적어졌는데 혹시 패스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그럴 리가! 그랬다면 내가 눈치를 못 챌 리가 없을 텐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황급히 보석으로 마술을 행사하던 린은 패스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며 혹시 성배의 오염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면 다른 진영에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 테니 알아보고 오겠다며 나에게 집을 맡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가능한 마력을 쓰지 않고 있으라는 말도 함께 남기고. 본래라면 나도 따라가야 했겠지만 절대로 따라오지 말고 집에서 쉬고 있으라며 으름장을 놓는 린에게는 거역할 수가 없었다. 하아―한숨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 것인지, 징조가 나타난 적도 없으니 짐작이 가는 일도 없는데………아니, 사실은 짐작 가는 일이 하나 있긴 했다. 



       ―아라야_세계_가 부르는 것.



사실상 성배를 해체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만큼 성배 전쟁이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볼 수 있는 데다가 현계 해있던 기간이 너무 길었다. 아라야가 움직인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마 내 예상대로라면 이상이 나타난 것은 나 하나일 것이다. 다른 서번트들은 가이아의 영역 안에 있으니. 사라진다는 것에 딱히 미련을 두는 것은 아니다. 린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잘해나갈 수 있을테고, 에미야 시로를 죽이는 것도 못하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나. 그렇다면 이제 영체화를 하고 있어야―


벌컥―

린이 벌써 돌아온 건가? 아니, 아니다 이 기운은……랜서인가.


"오랜만이다 아처!!"


"방금 그 행동은 가택 무단침입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냐."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저택이 보여서 말이지, 네 얼굴 보러 들렸다만."


"그걸 묻는 게 아니다. 결계가 쳐져 있었을텐데…"


"없었어. 린이 깜빡하고 잊은 것 같은데."


"린……"


정말이지 그렇게 중요한 걸 잊다니, 돌아오면 주의를 시켜야 하나…


"아처, 아까 린을 만났는데 말이지."


"…"


"왜 네가 같이 없었던거냐?"


"별일 아니다."


당혹스러웠다. 설마 린과 랜서가 만났을 줄이야. 왜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던 거지.


"흐음…"


아처 녀석, 말로는 별일 아니라면서 표정을 영 아니란 말이지. 제 딴에는 잘 숨긴다고 한 것 같은데 나한텐 다 드러난다고. 그렇게까지 꼭꼭 숨기려고 하면 이쪽은 더 파헤치고 싶단 말이지. 


"애인인 나한테도 못 말해준다는 거냐? 이거 섭섭한 데."


아, 이건 좀 자극했나 검에 맞을지도 모르겠―


"무…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정말로 별일 아니었다니까!!!"


"…"


"…"


"아처."


랜서의 붉은 눈이 조금 가늘게 떠졌다. 뭔가 알아차린 건가? 아니, 딱히 그럴만한 일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뭐지, 뭐였지. 뭔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너 왜 마력을 쓰려고 하지 않는 거냐. 아까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그렇고 방금 말에 대한 것도 그렇고 말이다. 평소라면 검을 먼저 날렸을 텐데."


"그건…"


"설마 마력을 쓰면 안되는 거냐?"


"……그래, 그렇게 됐다."


"무슨 일이야."


결국, 다 말하고 말았다. 마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부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해결 방법은?"


"없다. 아라야가 간섭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럼 이대로 사라질 생각이야?!!"


"그렇다만."


정말이지, 제 몸 소중한 줄 모르는 녀석 같으니. 이쪽은 속이 터질 것 같다만. 이 녀석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아, 그래


"좋아, 그렇다면 말이지. 기다리고 있어라. 네가 데리러 갈 테니."


"잠깐, 그게 무슨 말…누구를 말이냐."


"너 말이다. 너 『영령 에미야』 너말고 누가 있다고 그러는 거냐."


"…본체로 돌아가면 나는 네가 아는 【아처】가 아니게 된다. 게다가 가이아와 아라야는 엄연히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할 리가 없을 것이고―"


나는 네가 그럴만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라는 뒷말은 내뱉기 전에 삼켰지만 랜서는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랜서가 입을 열었다.


"아처,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데리러 갈 거다. 기억이 없어도 좋아, 그렇다고 네가 내 【아처】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니까. 영역이 달라서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넘어가면 돼. 그리고 자기 비하는 그만둬."


말을 하다가 말았다지만 아처가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는 잘 알 수 있었다. 사귀기 전에도 그랬고 사귀는 도중에도 자주 자기 비하를 계속했던 녀석이니.


"넌 어떤데. 내가 데리러 가는 게 그렇게 싫은 거냐? 네 마음을 말해봐. 가치가 없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말고."


"…"


"…기다리고 있지. 쿠훌린"


"아아, 그래. 에미야"



중독


[쿠로켄] 중독





※ 원작의 내용이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신경쓰지 않으신다면 봐주세요.










으응.. 하, ㅈ, 잠깐..하윽,





색스러운 신음과 듣기 살이 맞부딪히는 민망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담배 연기 때문에 살짝 흐려진 방안에서 숏컷도 아니고 단발도 아닌 어중간한 머리를 한 남자가 그와 대비되는 꽤나 다부진 남성에게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린다. 몸에 힘이 없고 눈이 흐릿한 것이 인형 같기도 하나 분명 그 입에선 달뜬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Ken, You're free, I'll let you go.





남자가 뱉은 말에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소년의 눈이 잠시 반짝거렸다가 이내 빛을 잃는다. 





Iron, What's the catch?





살짝 비아냥거리듯이 묻자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을 챙겨입는다. 





나 그녀랑 다음 주에 결혼해.





헛웃음이 난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아득한 때부터 이 남자에게 안겼다. 검던 머리는 자기 취향에 맞춰 노랗게 염색시켰고 옷도 향수도 사소한 습관들 까지도 모두 그의 취향대로 만들어 놨으면서, 이제 와서 자기 인생에 방해되니까 꺼져달라는 거 아닌가. 이상하게 허망해졌다. 초점을 잃은 눈앞에 빨간 불이 어른거린다. 태연하게 담뱃불을 붙이는 그의 손과 입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었다.





Bye, Kenma.





마지막이라는 걸까, 꽤나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로 여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기억이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켄마의 곁에는 이 남자밖에 없었다. 인생에서의 유일한 사람.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는 정말로 떠난 뒤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 배어있는 그의 담배 향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견딜 수 없는 허전함. 그 담배 향조차도 그리움이라는 명목으로 잡고 싶었다. 달칵. 서랍을 열자 그가 상자째 사놓은 그의 담배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갈 거면 이런 것도 다 가져가 버리란 말이야. 담배에 불을 붙이자 눈앞에 빨간 불이 아른거렸다.




쿨럭-




태어나서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는 담배를 입에 물자 목이 칼칼하고 눈이 매웠다. 이런 걸 대체 왜 피우는 거야. 담배를 피운다기보다는 태워버린 켄마는 그래도 집안에 가득해진 담배 향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다시 그의 향기가 채워진 것 같아서, 그가 내일이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끼니도 거르고 며칠이나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켄마는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그는 정말로 자신을 취급한 것인지 통장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들어있었다. 이제까지의 값이라는 것처럼. 진짜 네. 순간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다시 스르륵 가라앉았다. 이런 취급을 당해도 그가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는 정말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준 돈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만한 것들을 사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처음 보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제집에 떡하니 들어와 있었다. 어이없고 황당한 사태에 켄마가 누구냐는 질문도 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자 검은 머리의 남자가 쿠로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와 정말 닮은 얼굴에 정말 닮은 목소리, 체격, 분위기. 순간 켄마는 그가 다시 날 찾아온 게 아닐까 하고 착각할 뻔했다. 그와 쿠로오라는 남자는 머리카락 색을 제외하고는 너무 닮아있어서 켄마는 그를 보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Iron을 알아?





친척이 아닐까 해서 질문을 던지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어떻게 들어왔어? 날 알아? 집을 잘못 찾은 거 아니야? 물어보고 싶은 말이 속에서 빙빙 돌았다. 그러나 그 질문들을 다 생략하고 켄마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어쨌든 그만 나가줘. 라는 딱딱한 말뿐이었다. 사실은 그가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를 대신해서 내 옆에 있어줘 같은 말을 하고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켄마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만한 성격이 되지 못했고,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런말을 할 만큼 배우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흐음,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켄마.





이름을 알려준 적도 없는데 자연스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켄마가 홱 돌아보자 그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다음에 또 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켄마는 정말 그가 돌아온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그가 돌아와 준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며칠 새 익숙해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자 눈앞에 빨간 불이 다시 아른거린다. 그든 쿠로오든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켄마는 담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켄마, 일어났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자 다정한 말소리가 들렸다. 아이언? 순간 벌떡 일어난 켄마는 곧 그 소리가 일본어였다는 것을 깨닫고 표정을 굳힌다. 아, 쿠로오구나. 어쩌면 저렇게 남의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오는건지. 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자 쿠로오는 꽤 기분 좋은 얼굴로 접시를 내민다. 내가 만들었어, 아침. 노란 계란에 싸여있는 오므라이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게 남자치고는 잘 만든 것 같아 보였다. 너 좀 이상해, 어떻게 들어왔어? 켄마가 오므라이스를 받아들며 말하자 쿠로오가 슬쩍 웃는다. 현관 앞 화분 밑바닥에 붙어있던데 열쇠? 쿠로오의 대답에 켄마가 중얼거린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알았지.



그 열쇠는 아이언이 열쇠를 자주 잃어버리는 켄마를 위해 비상키라며 붙여두고 간 열쇠였다. 너 진짜 이상한 남자야. 켄마가 불퉁하게 말하며 오므라이스를 입에 집어넣었다. 거의 일주일만에 물을 제외하고 처음 먹는 음식.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지만, 뱃 속에 음식이 채워지는 포만감이 기분 좋았다. 한 접시를 다 비우고 자연스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가 피우던 담배 향은 켄마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눈앞에 희뿌연 연기가 흩어지는 모양새도 이제는 퍽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후- 연기를 뱉어내자 쿠로오가 인상을 찌푸린다.





켄마, 담배는 몸에 안 좋아. 





엄청 골초같이 생겨서는 몸에 안 좋다고 잔소리는. 켄마는 탁자에 아무렇게나 담뱃불을 껐다. 신경 쓰지 마. 얼마나 봤다고 친근하게 구는 태도가 그와 닮아서 자꾸 그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마냥 허물없이 다가오는 쿠로오가 불편하고 거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일도 와줬으면 했다. 이 열쇠 내가 가질게.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열쇠를 가지겠다는 쿠로오에 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쿠로오라는 남자는 어디서 온 것이며, 어떻게 날 아는 것이며, 왜 이리 다정하게 대해주는 걸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켄마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언제까지 있을 거야.


아, 그럼 오늘은 이만 갈게. 내일 봐. 





지금 가란 말은 아니었는데 쿠로오는 냉큼 일어나서 가버렸다. 뭐하러 온 거야. 쿠로오가 나간 문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환기를 안 시킨 탓인지, 청소를 안 한 탓인지 담배냄새와 함께 약간의 악취가 나는 것 같았다. 청소나 할까 하고 일으켰던 몸을 켄마는 다시 침대에 뉘었다. 이 정도는 담배냄새로 없앨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뻗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로 뿌옇게 된 시야에서 붉은빛이 어른댄다.



쿠로오는 매일 찾아왔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왔다가 내일 또 올게, 내일 또 봐, 같은 말을 남기고 갔다. 이 남자가 굉장히 무례하다는 것도 알고,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집에 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켄마는 어쩐지 쿠로오를 내칠 수 없었다. 그와 너무 닮은 외모 때문인지, 밉지 않게 능글맞은 그의 성격 때문인지 켄마는 오히려 그를 편안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미쳐서 만들어낸 그의 환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환상이라기에 쿠로오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고 처음 몸을 섞을 때의 체온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뜨거웠다.








쿠로, 하지 마. 쳐다보잖아.




신경 쓰지마, 뭐 어때. 쿠로오를 안지 한 달 정도 지나서 켄마가 알게 된 것이지만 쿠로오는 생각보다 대담하고 남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 둘이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동인지 알면서도 쿠로오는 켄마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고 쑥덕대는 것 이 켄마는 꽤 신경 쓰였다. 둘이서 만나서 하는 것은 딱히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공원에 앉아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 그와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것들.





오늘은 갈게, 켄마 내일 또 봐.





쿠로오의 내일 또 보자는 말은 켄마를 편안하게 했다. 또 와줄거라는 확신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응. 쿠로. 작게 대답하자 쿠로오의 큰 손이 켄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쿠로, 쿠로. 쿠로오가 멀어지는 동안 켄마는 쿠로오를 몇 번이나 불러보았다. 이제는 쿠로오를 꽤 친근하게 부를 수 있게 된 것에 켄마는 기분이 좋았다.



집에 들어오자 점점 심해지던 악취가 한층 심해져 있었다. 쿠로오와 있을 땐 느끼지 못하는 데 항상 혼자 있을 때면 악취가 코끝을 찌를 만큼 강하게 느껴졌다. 이 냄새의 근원지가 어딘지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어 켄마는 악취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담배. 담배를 피우면 악취가 조금은 사그라 들었다. 매캐하고 텁텁하면서도 약간 시원한 담배 향은 악취로 깨질 것 같은 머리도 맑게 해 주었고, 집 안에서 진동하는 냄새를 조금은 없애주었다. 쿠로, 빨리 와. 타들어 가는 담배의 끝이 빨갛게 빛났다.








쿠로오를 알게된지 약 두 달이 지날 무렵 켄마는 더이상 그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문득 그걸 깨달았을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느꼈을때 켄마는 편안해졌다. 점점 쿠로오와 만나는 시간이 기대되고, 함께있는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점점 짙어지는 악취 때문인지 몸이 피곤해서 그런건지 쿠로오가 켄마의 집에 오는 시간을 제외하면 켄마는 거의 잠만 잤다. 쿠로, 나 요즘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아. 음, 그래? 원래 애들은 많이 자. 애취급하는 쿠로오를 힐끗 쳐다보자 쿠로오가 머리를 흩뜨려 놓는다. 밥 먹자-. 켄마의 머리에 무겁지 않게 무게를 실어 누른 쿠로오는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쿠로!





부엌으로 향하는 쿠로오를 보고 있던 켄마는 깜짝 놀라 쿠로오에게 달려갔다. 그가 지나간 길에 이어진 붉은 피들이 끔찍할 만큼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쿠로! 어디 다친 거야? 쿠로오를 돌려세우자 티셔츠의 가슴께 부분이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답지 않게 큰소리를 내는 켄마를 쿠로오는 꽤나 당황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켄마? 나 멀쩡해. 분명히 쿠로오가 지나간 자리에 떨어져 있던 피들은 자취를 감추고 매끈한 방바닥만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너 방금 여기가, 분명히 켄마가 쿠로오의 티셔츠를 들어 올리자 단단한 그의 가슴팍만 멀쩡하게 켄마를 맞이했다. 뭐야, 침대에서 기다려. 밥 해줄게. 켄마는 자신이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얌전히 돌아왔다. 머리 아프니까, 담배나 피워야겠다.








쿠로, 쿠로, 쿠로, 쿠로.



켄마는 점점 쿠로오가 없는 시간이 뼈가 시리도록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쿠로오는 여전히 소리 없이 나타났다가 또 온다는 말을 남기고 가고는 했다. 어떻게 켄마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아는건지 이상하게 켄마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즈음 나타나 다정하게 켄마를 불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 없이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켄마, 커피 마실래? 이번에도, 켄마가 외로움에 덜덜 손이 떨릴 때 즈음 쿠로오는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집안이 화사해졌다. 언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지 다리 사이로 담뱃재가 툭 떨어진다. 








머리까지 울리게 만드는 악취와 자꾸 어디선가 나오는 벌레들은 켄마의 신경을 긁어댔다. 그리고 이제는 못 견디게 심해진 악취는 마치 살아있는 것 마냥 거뭇거뭇하게 눈앞에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 악취가 살에 달라붙는 것 같기도 하다. 으- 싫어. 악취를 조금이나마 없애기 위해 켄마는 다시 담배를 들었다. 손이 덜덜 떨린다. 쿠로가 보고 싶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막 입에 가져다 대자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켄마, 내가 담배 그만 피우라고 했지.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악취가 말끔하게 사라진 것 같았다. 켄마는 다가가 쿠로오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꼭 껴안았다. 왜 이제 와.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왔다. 손끝부터 서서히 오그라드는 느낌이 켄마를 미치게 했다. 으, 쿠로, 잠깐, 윽. 켄마가 쿠로오의 어깨를 잡고 애원하자 쿠로오가 살짝 웃는다. 순간 그 모습이 아이언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켄마는 쿠로오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쿠로, 쿠로는 쿠로지? 눈을 맞추며 켄마가 묻자 쿠로오가 켄마의 손을 떼어내고 한번에 치고 들어온다. 하윽, 너무 빨라.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빠르게 쳐올리자 켄마가 눈을 꼭 감았다. 켄마, 정말로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쿠로오가 속삭이던 말을 아마 켄마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옷 입혀줄게 켄마. 쿠로오가 자상하게 옷을 입혀준다. 그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켄마는 잠에 들것만 같아서 눈에 힘을 줬다. 켄마, 졸리면 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긋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담배 피울래? 언제는 몸에 안 좋다고 피우지 말라더니 손수 불까지 붙여서 입에 가져다준다. 익숙한 빨간 빛이 담배 끝부터 타들어 간다. 쿠로오의 무릎을 베고 누워 담배를 물고 눈을 감자니 정말 잠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깨워줘 쿠로.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켄마가 눈을 감는다. 응, 잘자 켄마. 쿠로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눈앞의 빨간 빛이 서서히 점멸되는것을 느끼면서 쿠로는 잠들었다.














"최근 미국 LA에서 일본인과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시체가 두 구 발견되었습니다. 한 남성은 A 씨 (18세)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와 액체 형태의 LSD, 대마초 등의 마약과 환각제로 보아 약물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옷장에서는 다른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나 부패가 심각하여 육안으로 신원을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A 씨보다 약 5달 정도 먼저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입과 손이 심하게 훼손되고 가슴 부근에 칼이 꽂혀있는 것으로 보아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전면적으로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A 씨는 약 3달 정도 시체와 함께 지낸 것으로 추정되며 이웃 주민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A씨는 종종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처럼 "





네게 닿다


[황흑] 네게 닿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따스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또한 아직 일어나지 않은 키세의 콧잔등을 간질였다. 짹짹 옅게 울어대며 귀를 괴롭히는 새들과, 시끄럽게 울어대는 알람시계들이 아침을 알렸다. 온전히 말짱한 정신은 아니었지만, 그 소리들을 듣지 못할 정도로 잠에 잠겨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키세는 더욱더 이불을 말아올려 몸을 파묻을 뿐,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때가 되었다고 곧바로 일어날 만큼 그는 성실하지 못 했다. 더욱이 평소에 자신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하던 일정도 없는 날이었다. 하기야 이제 와서는 그건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휴가 차 한가한 나날이 계속되기를 엿새 정도 지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가한 아침을 만끽하며 키세는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러고는 반쯤 떠진 눈을 다시 감으려고 했다. 그래, '그 목소리'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목소리에 키세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키세 군."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목소리다. 어딘가 무감정하고, 수분기 없이 건조하면서도 또 알게 모르게 젖은 목소리. 이제는 지겨워진 소리. 키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마치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등을 진채로 눈만 끔뻑끔뻑. 길게 늘어진 속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자신의 앞에 있는 벽만을 바라볼 뿐,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짖는 목소리에는 일절 응답하지 않았다. 



"키세 군."


"으앗."



감지 않고 있던 키세의 눈에 하늘색의 무언가가 담겨졌다.  자신의 이름이 주문이라도 된 냥 끊임없이 키세 군. 하고는 불러대다가, 대답이 없으니 이렇게 얼굴을 들이민다. 나는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제 그만 아는척 하지 마라. 그런 속셈으로 대답조차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건만, 갑작스레 나타난 얼굴에 화들짝 놀라고 만다. 이래서야 난 너가 보인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자신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키세는 한숨을 푹 쉬고는 '그'를 마주 보았다. 눈이 마주쳤음에도 피하긴 커녕 자신을 관통할 듯 바라보는 눈빛에 식은땀을 조금 흘렸다. 



"키세 군."


"왜 자꾸 부름까."



자신의 부름에 답이 돌아오자 경직된 '그'의 표정이 한 껏 풀어지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 대답이 퉁명스럽기 짝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걸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면서도 키세는 알길이 없었다. 어째서 자신을 이리도 귀찮게 하고, 또 이렇게 안도하는지에 대해서. 그 때, 또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보이나요?"



또다. 이틀 동안 불쑥불쑥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신출귀몰하고는 늘 상 묻던 질문.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였다. 이젠 정말 답을 구하고 싶어서 묻는 것인지, 심심해서 묻는 것인지 구별도 안될 지경이다. 눈을 마주친 것을 보면 모르는 걸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똑같은 말을 반복 하는 것도, 그 말을 할 때마다 울것처럼 불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말이다. 정말 바보같고, 어리석다. 말도, 질문도 많다. 그래, 사람도 아니면서. 


'유령'인 주제에.




*


유령이 나타난건 이틀 전이었다. 키세는 그 날도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시간을 한가하게 흘려 보내고 있었다. 쇼파에 등을 기대고는 그저 멍하니 티비 리모콘 버튼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때, 멍하게 흐려진 초점 사이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키세는 놀란 나머지 우습게도 비명을 지르며 경악했다. 낯선 이에게 삿대질을 하고는 누구냐며, 무단침입 아니냐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놀란 마음에 난리법석을 피워댔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펄쩍 뛰어대는 심장을 가라앉히고는 다시금 그 당사자를 바라본 키세는, 자신이 얼마나 창피한 짓을 했는지 뒤늦게야 깨달았다. 


최근 재본 적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쟀을 때가 189cm로, 자신은 거의 190cm을 임박하는 키였다. 그냥 큰 키도 아니고 웬만큼 크다 하는 성인 남성을 훨씬 웃도는 정도였다. 그런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어떤가? 조그마한 덩치며 희멀건 피부며 뭐 하나 자신이 두려워 할 요소가 없었다.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는 민망한 마음에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키세가 말했다.



'누군데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오는검까?'


'제가 보이나요?'


'하? 뭐라는거야. 누구냐니까여.'



자신의 물음에는 답하지도 않고 동문서답만 내놓는 남자였다. 남자는 키세가 뭐라고 구시렁거리든, 불평하든 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특유의 무표정으로 다시금 되물었다. '제가 보이나요?'라고. 키세는 그의 말에 '보이니까 보고 있겠죠.'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단지 그뿐일 터인데, 그는 그 대답을 듣고는 울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불쾌'보다는 '기쁨'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그 후에 키세는 그에게 몇번이고 신원을 물으며 나가기를 청했지만, 남자는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나가지 못한다.' 고 말할 뿐이었다. 키세는 그런 그의 반응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또 짜증이 나기도 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자신의 힘과 신장으로 이 작은 남자를 내쫓는 것은 일도 아닐 터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시도는 실현되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만져지지 않습니다. 유령이니까요.'



놀라운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하니 던져놓는 남자에, 놀라는 건 키세만의 몫이었다. 분명 자신은 남자의 어깨를 잡으려 했건만, 손은 닿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남자의 형상만을 휘저었다. 경악에 물든 눈동자가 남자를 향했다. 유령이라니.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태연하게 잘도 지껄인다. 유령이라고 자신을 칭한다 한들, 평생토록 믿은 적 없는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키세는 그를 만지려는 시도를 몇 번 더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눈앞에 불쑥 나타난 이 남자는 정말 '유령'이라는 사실을.


남자가 정말로 유령이라는 것을 자각하자 처음엔 키세도 공포감에 젖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 귀찮게 해대는 통에 그를 무서워할 겨를은 없었다. 유령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혈색이 도는 듯한 그의 외관도 큰 이유였다. 


그렇게 키세는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유령이라는 존재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에 놀라는 것은 손쓸 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이틀 동안 시달린 결과물로, 키세는 그를 모른 척하려 했지만 이미 이렇게 그의 페이스에 휩쓸린 상태다.




얼마 지나지 않은 한심한 기억에 키세는 다시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런 키세의 마음도 모른채 유령은 표정 없이 그저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키세는 여전히 자신의 침대에 앉아있는 그를 힐긋 보더니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미미했지만 발목이 약간 아려왔다. 역시나 아직은 몸이 조금 불편했다. 


큰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키세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을 뿐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평생 있을 천운을 다 썼다고 해도 좋을 만큼 기적적이었다. 그랬기에 그토록 빠른 시간내에 회복하고 퇴원 할 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의 근육이 조금 놀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키세는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고는,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주방으로 걸어갔다. 역시나, 그런 그의 옆에는 유령이 자리했다.



"물이라도 마시고 싶은검까?"


"물은 마실 수 없습니다."


"근데 왜 자꾸 따라오는 검까."



물을 마시는 자신을 뚫을 듯이 쳐다보는 유령이 부담스러웠던 키세가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 유령은 물도 못 마시면서 왜 따라왔냐라는 키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키세 또한 그다지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에 별 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유령을 두어번 훑어보다가, 줄곧 생각해오던 것을 말로 내놓았다. 앞의 짧은 대화와는 일절 관계 없는 말이라지만, 그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말하고 싶었다는게 중요했을 뿐이었다.



"몇 번을 봐도 사람같아."


"사람이니까요."


"유령이잖아요."


"생사를 따지자면 전 죽었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입니다. 또 유령일 뿐이에요."



유령이지만 사람입니다. 그의 대답에 키세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러니까, 일단 죽었어도 사람으로 죽었으니 사람이라는 뜻인가? 하면서 고민하다가, 곧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는 왜 어렵게 말하냐며 그를 흘깃 째려보았다. 그런데 키세가 바라본 유령의 표정이 이상했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뻐보이는 얼굴. 키세는 자신이 한 말 어디에서 기뻐하는 건지 또 다시 고민하다가, 역시나 이해하기를 관두고는 그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좋슴까?"


"키세 군이 이렇게 먼저 말을 거는건 흔치 않으니까요. 무의미한 대화였지만."


"별게 다 그런 점이 사람같다는 검다."


"그러니까 사람이라고 했잖습니까."



윽, 이제 이 얘기는 그만둬여. 끊나지 않을 언쟁을 예감하며 그렇게 짧게 불평하고는, 긴 다리를 휘적휘적 옮기며 거실로 향하는 키세였다. 키세가 쇼파에 앉자 유령은 자신도 따라서 쇼파에 앉았다. 제 집인양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에 키세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유령에, 잠시 민망해진 키세는 괜시리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뻗치지 않네요."


"뭐, 전 직모니까요. 그 사람과는 달리."


"그 사람?"


"아."



방금 내가 뭐라고 한거지? 키세는 자신이 내뱉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한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 사람이라니, 대체 뭐가? 왜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도 입에서 튀어나왔던 건지. 아오미넷치? 미도리맛치? 아니야. 누구를 말하는 거였지?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릿거리는 흐릿한 형상에 키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알아내기 위해 기억의 파편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떠올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두통만 일 뿐이었다. 머리까지 아파옴에도, 도저히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기억 나지 않는다면 굳이 떠올리려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별거 아닌 기억이겠죠."



별거 아닌 기억. 그렇게 말해오는 유령의 눈은 어딘가 잠겨있었다. 키세는 그런 그를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렇게 생각하려 하는데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쓸데없으리 만치 사소한 기억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자신이 기억하려 애썼던 '그 사람'은 살면서 스쳐 지나갔을 그저 한 사람일 뿐이겠지.



"뭐, 어쩌면 아직 기억하지 못 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기억이요."


"네에. 교통사고를 당했거든요. 다친 덴 별로 없지만, 후유증인가 뭔가로 잠시 전부 까먹었었슴다. 정말 잠시였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한 채 눈을 뜬 곳은 병실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여기가 어디고 이게 무엇이고 저게 무엇인지. 잠시 동안 세상천지를 모르는 바보마냥 아무것도 몰랐었던 키세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키세는 원래의 그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여기가 어디고 이게 무엇이고 저게 무엇인지도 물론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모르는 것이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깨달았지만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의사 선생님은 교통사고가 원인이라 말했고, 자신은 교통사고를 당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라 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지만 쇼크를 받은 상태여서 충분히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이다. 


원래의 기억은 되찾았지만 사고 자체에 대한 기억은 되찾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뇌가 본능적으로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거라고 했다. 충격으로 사고 당시 기억만 잊게되는 환자는 적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뭐 그렇게 돼서 기억은 다 되찾았지만, 그래도- 라는 거죠. 혹시 모르니까."



일단 웬만한 사람들은 다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한 두 번 본, 잊어도 좋을 사람은 기억하고 있지 어떨진 제가 어떻게 알겠슴까? 능청스러운 키세의 말에 유령은 아무 말없이 파란 눈을 내리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잊어도 좋을 사람, 인 거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듯도 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교통사고를 당했다면서, 눈에 띄게 다친 곳이 없어서."


"아, 그건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여. 제 몸 어디 하나 잘못됐으면,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슴까? 안그래여?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슴다. 들어보니까 화물트럭이 무식하게 들이받았다고 하던데. 전 이렇게 멀쩡하잖슴까? 외모도 잘났고 능력도 잘났는데 운까지 완벽하니 다른 사람들한텐 좀 미안한감도 있지만여."


"짜증나요."


"넘햇! 방금 저 유령한테 무시당한 검까?"



키세의 말에 유령은 부정하진 않는다는 듯,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상처받았다고 울상 짓는 키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꾸가 없는 유령을 바라보며 키세는 또다시 말문을 텄다. 키세 자신도 오늘따라 말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우울해 보이는 낯빛의 유령을 보며, 말을 걸고 싶은 것을 스스로 막을 수 없었다. 실컷 그를 무시하고 모른척하려 한 키세에게는 이상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누군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은 지독히 싫어하면서, 역으로 자신이 그러는 것에는 특별한 당위성도 필요 없어했다. 그건 키세가 성격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근데 다들 너무한거있죠. 아무리 제가 멀쩡해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어떻게 다들 연락하나 안할 수가 있음까?"


"그러네요."


"너무 심심해서 전화도 해봤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안 받더라구여. 이거 단체로 짜고 저 왕따시키는 거 아님까?!"



툭하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구박받는 키세라지만, 그래도 이 대우는 너무했다. 자기는 충격으로 잠시라지만 기억도 잃었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친인들에게 [갑자기 눈떠보니 병원! 이게 웬일? 교통사고 당했대여ㅠㅅㅠ 근데 사고당시 기억상실! 암것도 기억안나여!! 그래도 다행히 사지는 무사옼케임다!☆] 라고 보냈을 땐, 점 하나라도 찍어서 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나 정말로 왕따아냐?라는 생각까지 들어 우울했던 키세였다. 



"뭐, 나중에 아카싯치한테 전화가 왔긴 했지만요. 그때가 사고당하고 하루? 이틀? 쯤 지나고 였을 때 일검다. 바쁘니까 연락 못한다고 말이죠. 죽어가는 목소리로. 뭐 아카싯치 바쁜 게 하루 이틀도 아니라지만 좀 놀랐슴다. 정말 힘이 없어서. "


"시간이 지나면 연락이 올 겁니다."


"그렇겠죠? 근데 제가 정말 쓸쓸하긴 했나봄다. 유령한테 한탄이나 하고. 이게 다 먼저 사고 얘기를 꺼냈기 때문임다!"


 

신나서 얘기한 건 키세 군입니다. 단호한 유령의 말에 반박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던 키세가 저도 알고 있슴다! 하며 시무룩하게 구시렁댔다. 


그렇게 키세가 할 말을 다하고 더 이상 대화가 이어가지 않자, 정적만이 그 둘을 감싸 돌았다. 지금 시간이면 티비도 별로 재밌는 게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키세는 가만히 쇼파에 앉은 채 자신의 옆에 바르게 앉아있는 유령을 관찰했다. 


역시 아무리 봐도 죽은 유령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피부는 희었지만 창백하지 않았고, 두 눈은 살아있는 것 처럼 생기가 돋았다. 왠지 지금이라면- 저 유령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역시 안되네."


"유령이니까요."



하지만 키세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령에게 닿지 않았다. 어쩐지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며 키세는 머리를 긁적였다. 유령은 그런 키세의 얼굴을 한 번, 그리고 자신을 만지려 했던 손을 한 번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쉽게 내비치지 않았지만 말이다.



"뭔가 만질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안되네요."


"그렇겠죠."


"당신 몰골이 너무 멀쩡해서 그런 검다. 대체 어떻게 죽었길래 그렇게 깨끗함까?"

 


유령은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묻는 키세는 순간 아차 했다. 아, 이런 거 묻는 건 역시 상처인가? 하며 후회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말을 내뱉고 난 뒤였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유령은 키세의 말을 듣고도 별로 슬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괴로워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딱 봐도 자신보다 어리거나 또래 정도로 보이는 유령이었다. 분명 어린 나이에 죽은 것이 분명하므로 죽음에 대해 억울해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령은 자신의 말에도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한 키세였다. 키세가 자신을 바라보자, 유령은 그에게 시선을 둔 채 침묵하고는 입을 열었다. 키세가 답을 구하기를 포기하고 멍하니 있을 만치 긴 침묵을 깨고 말이다.



"깨끗하게 죽어서 이런 모습인건 아니예요. 따지자면 처참한 몰골로 죽었죠. 다만 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령이라 그런겁니다."


"그게 상관있는 검까?"


"네. 유령은 이승에 오래 남아있으면 있을수록 유령의 몸체가 시신에 가까운 형태로 돌아가죠. 그러기 전에 돌아갈겁니다."


"그럼 떠난다는 말이네요. 기뻐해야 되는 검까?"


"그러고 싶으시면 그러면 됩니다. 저도 키세 군이 절 귀찮아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까요."



딱히 숨기거나 했던건 아니지만 당사자 입에서 대놓고 그런 말이 나오니 조금은 민망한 키세였다. 키세는 어색함에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서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죽음'이라는 건, 유령이라는 존재에겐 민감할 소재일지도 몰랐지만 역시 방금 전의 그 초연한 태도는 거슬렸다. 



"어떻게 죽은검까? 어려 보이는데. 뭐, 말하기 어려운 거면 말 안 해도 상관없지만여."


"그리 거창한 얘기는 아닐 텐데요. 그래도?"



유령의 물음에 키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 대해 말해준다는 얘기겠지만, 자신의 죽음에 거창하고말고를 따지는 유령은 역시 특이했다. 또 여전히 무표정. 저 유령은 살아있을 적에도 저렇게 무표정뿐이었을 것 같다고 키세는 생각했다. 아마 저 얼굴은 근육이 굳어버려 웃지 못하는 건 아닐까. 키세가 그렇게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령이 두 푸른 눈을 키세와 마주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어 얘기를 시작했다.



"정말 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됐죠. 그뿐인 이야기예요."


"아까 이승에 오래 있으면 시체와 가까워진다고 말했죠. 근데 당신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건,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단 말임까?"


"네. 얼마 되지 않았어요."



유령이 말하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시간의 개념을 키세는 가늠할 수 없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왜 죽음에 저렇게도 태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인지 키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보면 죽은 지 십 년 묵은 유령인 줄 알겠다. 보통 유령들이 악귀가 되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죽음에 한을 품었기 때문이라던데, 저런 유령만 있으면 사람들이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죽었는데도 슬프지 않슴까? 제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죽었더라면 전 너무 억울했을 것 같슴다. 너무 화나서 사람들을 해코지했을지도 몰라여."


"키세 군은 그러지 않았을겁니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사람들 곁을 배회하는 거면 몰라도 말이죠."


"뭐예여! 저에 대해 뭘 안다고."



키세의 말에 유령은 무표정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미소를 지었다. 활짝 핀 그런 함박웃음은 아니었다. 입가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도 힘든 그런 미세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키세는 그것을 알아채고 표정을 굳혔다. 뭐야, 웃을 수 있는 거였네. 키세는 그 미미한 미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유령 또한 그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입 근육을 갈무리하고는 다시 원래의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런 그를 보며 약간 아쉬움이 드는 것 같기도 한 키세였지만, 그렇게 드는 아쉬움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 했다.



"저도 죽은 것에 슬퍼하지 않는 건 아니예요. 하지만 그 슬픔보다 기쁨이 더 크니까 슬퍼할 수 없는 겁니다."


"죽었는데, 뭐가 기쁜검까?"



자기가 죽은 슬픔보다 더 클 수 있는 기쁨이란 대체 뭘까? 키세는 정말로 궁금했다. 그랬기에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키세의 물음에 유령은 조금 난감하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다가, 자신을 뚫을 듯이 바라보는 키세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제 죽음으로 인해서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었다면, 감히 슬퍼할 수 있을까요."



유령의 말에 키세는 무언가에 홀린 듯 빠르게 되물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켰나요?"


"네. 그것도 꽤 만족할 만한 상태로요. 솔직히 많이 걱정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아까보다 조금 더 밝게 웃는 유령은, 정말로 기뻐보였다. 키세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걸까? 자신이 죽음에 애도하기보다도 자신이 지킨 이의 상태를 걱정하는 사랑이.



"그 사람도 당신이 소중했다면 많이 슬퍼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걸 걱정했지만, 괜찮은 것 같네요."



유령이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괜찮은 작자가 정말로 목숨을 바칠만한 존재인가? 키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찌 됐든 자신을 위해 죽어버린 사람인데.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던 이 유령 대신에 자신이 배는 더 슬퍼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애인이나 그쯤 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는 괜찮은 작자는 아니었다. 키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불만을 토하고 있었기에, 말투를 생각할 틈도 없이 키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입 밖을 벗어나 유령에게 전해졌다.



"제가 생각하기엔 별로 괜찮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벌써부터 괜찮다잖아여! 아니, 매일매일 술에 찌들어 울며 밤을 지새워도 모자를 판에."


"제가 그걸 바라지 않았으니까요. 저에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뭐, 당사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키세는 그렇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역시 표정엔 불만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참 저 유령도 답답하다. 아마 생전에도 분명 착해빠져서 사기나 당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며 속으로 확신을 내린 후에 유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는데, 왜 계속 이 세상에 머무는 검까?"


"그건 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아직 떠나기엔 아쉽기 때문에. 더 보고 싶으니까요."



아니 그런데 대체 왜 우리집에? 그 말에 반박할 말들이 키세의 머릿속을 빗발쳤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고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유령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둘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눴던 그날 이후로, 사흘 정도가 지난 아침이었다. 어제와 그저께, 그동안의 생활은 처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유령이 먼저 나타나 늘 그랬던 것처럼 '제가 보이나요?'라고 물으며 키세의 앞에 나타났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다. 조금 달라진 것은 키세의 반응이었다. 아직은 어색함이 조금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전처럼 무시하며 없는 존재인냥 행동하진 않았던 것이다. 유령이 나타나면 짧았지만 말을 건넸고, 반대로 가끔 유령이 말을 걸면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뭐가 그를 변하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대화 이후로 조금은 변한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마 유령의 사정을 듣고 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키세는 속으로 생각했다.


유령은 변함이 없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신출귀몰했고, 또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벌써 몇 번이고 경험했기에 그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은 몸으로 직접 알고 있는 사실이 건만, 키세는 그렇게 느낄 때마다 그를 만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햇빛이 유령을 비추어 그의 피부가 빛날 때도, 갑자기 나타난 그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껴질 때도. 늘 만지기 위해 손을 뻗었고, 또 평소와 같이 그 손은 닿지 못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그때마다 키세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만져지지 않는 검까?' 그리 말하며 아쉬워하면, 유령 또한 이렇게 말했다. '유령이니까 만져지지 않습니다.'


키세는 침대에 몸을 뉜 채 지난날을 가볍게 회상했다. 어제 있었던 일의 기억을 되살리며 떠올리는 것은 그의 일상과도 같은 행동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늘 하던 것을 마치고 침대로부터 몸을 일으켰다. 이제 곧 유령이 나타날 타이밍이었다. 키세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어디에도 유령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좀 늦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가벼운 목욕을 마치고 나왔음에도 유령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출석 도장 찍듯이 꼬박꼬박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유령이 오늘은 나타나지 않으니 이상할 만도 했다. 그래도 또 오겠지. 그렇게 확신을 가지는 키세였다.


하지만 그 후로 유령은 더 이상 키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여보세요? 아오미넷치? 웬일임까? 계속 전화도 안 받더니!"



반가움과 기쁨으로 범벅된 키세의 말에도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키세가 그에게 무언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 목소리가 아오미네가 말했다.



["사고에 대한 기억이 없다며."]


"앗. 역시 문자 봐놓고도 답장 안 한검까? 네, 맞아여.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슴다. 그래도 다친 덴 없으니 상관없지만여."



아오미네가 걱정할까 염려되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은 키세였다. 하지만 자신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뭔가 기분이 안 좋은가.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키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아오미넷치. 저 엄청 신기한 일을 겪었슴다. 무려 유령이 제 앞에 나타났어요. 여보세요? 듣고 있는거죠? 진짜니까 끊지마여!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은 지 열흘 정도 지났지만요. 유령이 매일 제 앞에 나타나서 저에게 말을 걸었슴다. 대화도 했구요. 젊고 사연있는 유령이었어요."


["유령?"]


"네에. 신기하죠? 저도 처음에 놀라 자빠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처음에 살아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사람 같은 유령이었어요. 아참 사람 맞댔지."



키세는 자신의 앞에 홀연히 나타나서 아무 말없이 홀연히 떠나버린 유령을 떠올렸다. 신기한 유령이었다. 하늘같은 머리칼도, 바다 같은 눈동자도. 그를 떠올리며 키세는 아오미네가 대답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너무 귀찮아서 짜증 났지만, 계속 말하고 그러다 보니 정이 들었었나 봐요. 갑자기 그 유령이 사라졌을 땐, 정말 어이가 없더라니까여? 좀 섭섭하기도 했고. 그 유령, 사정도 참 기구했어요. 자기 애인을 구하다가 죽어버렸다고 했는데."


["뭐?"]


"아오미넷치도 신기하죠? 그치만 전 더 신기했슴다. 정말 살아있는 것 같고 그래서 만져보고 싶었지만 역시 안되는건 안되더라구여. 저 돈거 아님다. 진짜 본거 맞아요!"



하늘색 머리칼에 눈도 파래서 솔직히 좀 예쁘긴 했어요. 아오미넷치, 다시 말하는데 진짜예여. 유령의 외향을 떠올리며 그대로 말로 전하고는, 다시 한번 급하게 진실이라며 아오미네에게 다급하게 소리치는 키세였다. 아오미네는 키세의 말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다. 오직 침묵. 키세는 아오미넷치, 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봐! 하며 요란법석을 떨어대며 변명하려 했지만, 그것보다 아오미네의 외침이 더 빨랐다.



["다시 한번 말해봐. 어떻게 생겼다고?!"]


"으앗, 깜짝아 왜 소리를 지르는."


["입 다물고 말해!!"]


"네네. 그러니까, 하늘색 머리칼에 눈이 파랬어요. 키는 작았구요. 아, 피부는 진짜 하앴어요. 딱히 눈에 띄는 다른 점은 아, 무표정한 게 트레이드 마크랄까."



키세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던 유령을 떠올리며 킥킥 웃었다. 처음 웃었을 땐 진짜 놀랬더랬지. 그렇게 키세가 혼자만의 추억에 즐거워하고 있을 적에, 아오미네가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건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키세 너 정말 생각 안 나는 거냐?"]


"뭐가 말임까? 그보다 아오미넷치, 울어여?"


["정말 기억 안 나냐고 잊은 거냐 묻잖아."]


"그러니까 대체 뭐가요!"



[테츠. 쿠로코 테츠야. 정말 생각 안 나냔 말이다.] 



*




6년이 지났다. 키세가 모든 걸 알게 된 후 고통과 광기의 허덕임에 빠지고 나서의 시간의 경과다. 쿠로코 테츠야, 그를 기억하게 된 키세는 죄책감에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가는 시체처럼 축축 늘어지며 살았갔다. 송장인지 사람인지 도무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그는 죽어갔다. 아오미네의 통화로 쿠로코 테츠야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의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건, 그다지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의 이름이 그저 열쇠였을 뿐이다. 죄책감과 돌아버릴 만큼의 충격으로 꼭꼭 잠가놓았던 그의 기억들을 열 열쇠 말이다. 유령의 죽음을 물었어도 이름을 묻지 않았던 것은, 키세 본인의 어딘가에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후로 5년 동안 키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퍼붓다시피 했으며, 쿠로코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울어댔다. 망가진 키세를 돌보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친인들이 찾아와 그를 돌봤다. 5년 중 2년 동안은 요양을 하며 키세의 회복에 힘썼다. 그리고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나자, 키세는 친인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원래의 그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바보 같고, 가벼운 그로 돌아왔다. 키세는 일정에 치이며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고, 누구도 그것에 나무라지 않았지만 그것이 슬픔을 생각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랬기에 모두들 걱정하면서도 한 발자국씩 물러나 그를 바라보았다.


이젠 가을이었다. 키세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몰아치는 번화가를 걸었다. 쌀쌀한 날씨에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키세를 덮쳤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갈무리하면서도 키세는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셀 수조차 없이 빽빽하게 모여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잘만 걸어가던 키세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제 옆을 감싸는 인파가, 마치 멈춘 배경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귀를 울리는 소음마저 그에겐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수많은 인파 중에 정확히 한 곳만을 향했다.



"제가 보이나요?"



천천히 걸어나가 키세의 앞에 다다른 남자가 물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근육이 굳어버려 웃지 못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그가 키세를 마주했다. 하늘같은 머리칼과 바다같은 눈동자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키세의 눈동자가 크게 떠진 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오랫동안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이 굳어있던 키세가 겨우겨우 손을 들었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손은 떨리고 있었다. 키세는 자신의 앞에 있을 리 없는, 더는 자신이 볼 수 없는 상대에게로 손을 가져다댔다.



"만져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떨리는 키세의 손이 그의 앞에 선 남자의 얼굴에 닿았다. 생생히 느껴지는 온기는 허공을 휘젓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유령이었던 남자는 그를 보며 웃었다. 환하디 환한 웃음이었다. 유령은 자신의 볼을 떨리는 손으로 애처롭게 쓰다듬는 키세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 또한 물론- 닿았다. 



"유령이 아니니까요."




-Fin-



사춘기


[히지오키] 사춘기





어서오세요. 히지카타는 시끄럽게울리는 게임기를 급하게 종료시켰다. 

익숙하게 요금을 건넨남자가 히지카타에게 넌지시 밥은먹었니 하고 물어왔다. 

히지카타는 목욕 요금을 받고 설컥거리며 열리는 열쇠서랍을 뒤적였다.

그럼요 아까 아부지랑 먹었어요. 아부지 안에 계셔요 얼른 들어가보세요. 

옷장열쇠를 건내어주고 수건 넉장을 나와 같은교복을 입고있는 그애의 팔위에 얹어주었다. 


 


나와 그애의아빠가 대화를 나누는동안 그애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애는 목욕바구니를 건내받고 먼저 탕으로 들어갔다. 그애의 아빠는 나에게 뭐라고 뭐라고 더 말씀하시더니 용돈이라면서 만원짜리한장을 쥐어주셨다. 



세월이 변하면서 목욕탕을 찾는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었고, 

얼마전 동네에 큰 목욕탕이 생기고나서부터는 히지카타의 낡고작은 목욕탕은 세월속에 묻혀지고 있다. 목욕합니다 라고 쓰여진 입간판에는 진득한 때와 먼지만 끼여갔고

카운터 옆에서 구두를 닦던 베트남 아저씨는 젊은 아가씨와 눈이맞아 훌쩍 장가를 가버렸다. 

이제 습한 물내를 풍기는 목욕탕에는 히지카타와 히지카타의 아버지 그리고 가끔 나에게 가끔 용돈을 주시는 그애의 아버지 그리고 나와 같은교복을 입은 그 애 뿐이었다. 


 


오래 오래전부터 그 애는 나보다 작은것 같았다. 어깨도 나보다 좁았고 발도 나보다 작았다. 


아버지를 도와 욕탕청소를 하면서 슬쩍 본 그애의 고추역시 나보다 작았다. 


어릴때부터 그 애는 늘 나보다 덜 자란것 같았다. 


하지만  올곧은 큰 눈망울의 눈썹을 찡그리며 그애 아버지의등을 밀어주는 그애는 나보다 훨씬 커보였다. 


 


 

난 아버지를 도와 욕탕청소를 할때는 늘 벌거벗어야했다. 


'물에는 옷입고 들어가는거 아니다. 빤스도 벗어라 이놈아'


나는 탕을닦을때 내 음경이 덜렁거리는게 너무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애가 있는날에는 더더욱 내 알몸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난 알고있다. 그애가 날 은근 지켜보고있다는것을. 그것도 아주아주 큰 눈으로 말이다. 


 

 


언젠가 부터인지 나는 그 애가 올것같은날에는 그애가 앉는 자리를 더 꼼꼼하게 닦았다. 


뭇 남자들의 수염이 덕지덕지 박혀있는 비누도 버리고 새비누를 가져다놓기도했다. 


그애와 그애의 아빠는 이삼주에한번씩 목욕탕에 꼭 왔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애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애의 운동화가 열번째 운동화로 바뀌던 날을 기억한다. 처음 내가 본 그애의 운동화는 파란색의 조그만한 캐릭터 운동화였다. 그다음은 조금 더 큰 검정색 운동화였고 그다음은 그 전과 비슷한 디자인의 색만 다른 운동화였다. 그 애는 그런 무채색의 신발들을 좋아했다. 그애의 신발 사이즈가 점점 그 애의 아버지와 비슷해져갈때쯤 나는 그애의 고추에 털이난것을 봤다. 나는 그날 첫 몽정을 했다. 그애의 열번째 운동화는 흰색 스니커즈였다. 



 


그애는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렸다. 

주섬주섬 채우는 교복위 명찰에는 초록색으로 오키타 소고라는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그애는 내 옆반이다. 우리는 아는척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뭔가모르게 부끄러운기분이들기때문이다. 서로 알몸을 마주한 사이이기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 애를 향한 나의 두근거림이 옳은것인지의 대한 의심을 하고 또했기 때문일까. 그 애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애를 향한 두근거림을 온몸으로 감당해야하는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물론 그애는 나와 다른이유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오늘 그애는 회색 나이키운동화를 신고왔다. 그애의 아버지의것보다 훨씬 큰 사이즈였다. 


 

습한공기가 훅 차고올랐다. 그애가 돌아가고난 후였다.

나는 오늘도 그 애 꿈을 꾸었다. 우린 다 낡아가는 목욕탕 속  뿌연 습기 속에 단 둘 이었다.


월하


[스가히나] 월하





봄처녀의 행차는 아직 한 달 남짓,

개나리꽃이 피려 하는 초록색 꽃망울엔 달빛이 비춰지고 있다.


그 달빛이 비추는 또 다른 곳

회색 머리칼, 고개를 들어야 마주 볼 수 있는 눈동자

소년이 나에게 손을 뻗어 닿을 듯, 말 듯

새벽바람이 우릴 간지럽히다 그 사이를 스쳐간다.


"또 만나"


발 옆에 작은 잎사귀들이 떨어져 있다.

하나하나 주워 모아 소년의 손위에 글자를 쓰니

한자 한자 완성되는


'또 올게'








하늘이 깨어날 시간, 보랏빛으로 물든다.

소년이 보이는 강가 다리 밑, 큰 바위에 걸터앉아 발끝을 쳐다보다 천천히 내 발끝보다 멀리, 더 멀리 그림자가 지고 그 소년이 다리 위를 지나가면 뒷모습이 보일 때 손을 흔들어준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면 다시 그림자는 내 발끝까지 닿아 결국 사라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지평선부터 빠르게 다홍 색으로 물들어가면,

익숙한 향기가 불어온다 내 머리 위를 지나 이번엔 반대편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면 그제야 난 소년을 따라 걸음을 뗀다. 한 발짝 한 발짝 소년의 발자국을 따라 풀꽃이 핀 곳에 자릴 잡고 꽃을 쓰다듬으며 어서 빨리 달이 뜨길 기다린다. 드디어 소년이 창가에 고개를 내밀고, 오늘따라 둥그런 달이 그 얼굴을 비춰줄때. 창가에 살포시 나도 고개를 들이민다


'하아-'


하고 창문에 입김을 불어 김서리가 끼면 손가락으로 적어본다


'코우시'


소년은 깜짝 놀라 벌컥 창문을 열고는 토끼눈으로 창밖을 살핀다.

그런 모습에 웃다가 소년의 손을 잡곤 방 안으로 발을 들여 창문을 닫아준다. 바로 앞에 보이는 탁자 앞 의자를 빼 앉고는 가만히 소년을 바라보니 소년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스가와라"


그리곤 살포시 내미는 연필과 종이. 난 연필을 쥐곤 종이를 끌어당겼다.


'히나타'


쓱쓱 적어내리는 소리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더니


"히나타 쇼요?"


소년의 목소리로 불려진 이름에 기분이 좋아져 방긋 웃으며 다시 적어 내린다


'스가와라 코우시.'


다시 눈을 굴리다가 끝마치며 찍은 점을 보곤 눈을 접어 웃어준다


"응, 맞아. 쇼요"


포근하다. 모든 느낌을 익숙한 듯 더 파고들고 싶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년의 숨소리와 아무것도 쓰지 않고 내 손에 쥐어진 연필의 모습


그리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다. 소년의 말소리와 함께


"해가 비추는 곳"


그저 내 손에 들려있기만 하는 연필


"엄청 잘 어울려"


해맑은 웃음으로 내가 앉아있는 쪽을 보며 웃는다. 예쁘다


"쇼요는 햇님을 좋아해?"


좋아한다. 정말 많이


'응 한 번쯤은 꼭 마주 보고 싶어 특히 여름햇님'


"여름 햇살은 너무 눈이 부셔서 마주 보지 못할 거야 쇼요"


'달님은 마주 볼 수 있는걸?'


"달님은 햇님이 거울을 보고 있는 햇님이니까 우리도 볼 수 있는 거야"


'햇님도 마주 볼 수 있어. 봄햇님은 항상 눈을 감고 있어서 마주 볼 수 없는 거 뿐이야'


그렇게 줄곧 서서 얘기를 나누던 소년도 의자를 빼서 앉는다.


"쇼요는 햇님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랑 같이 여름햇님을 보러 가지 않을래?"



소년과 맞은 첫 번째 봄.

 그 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봄꽃들이 제일 기다는 것, 겨울이 지나가며 피워낸 나무 위 하얀 눈꽃에 색을 입혀 다시 피워내는 것, 그 꽃들을 어서 만나길 기다리면서 쓰다듬어 주는 것. 하지만 꽃들이 좀 더 느리게 준비해줬으면 한다.


단순히 봄을 오래 느끼려는 것은 아니다.


'코우시, 나는 여름, 가을, 겨울의 그림자는 본 적이 없는 걸.'


어째서 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보는 봄처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쯤 나는 그 뒤를 쫓아 여름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봄꽃이 피는 시기는 봄. 여름부턴 우리들의 긴 밤일뿐이다.


소년이 다시 빙글 웃는다.


"쇼요. 계절에 그림자는 없어"


'여름, 가을, 겨울의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걸'


"있지, 쇼요. 여름, 가을, 겨울은 얼굴도 그림자도 없어. 단지 햇님이 한 발짝 두 발짝씩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거뿐이야"


소년은 내 손에서 연필을 가져가 내 글씨가 채워진 종이 뒷면에 꽉 차게 햇님을 그려선 창밖에 보이는 달을 햇님그림으로 가려버린다


"그러니까 쇼요, 지금은 봄이니까 햇님이 한 발짝씩 우리한테 걸어오고 있는 거야. 여름에는 코앞까지 가까워질걸? 이젠 별로 안 남았어"


방긋방긋 웃는 소년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어버린다.

햇님이 우리들의 코앞까지 가까워질 때. 그때도 소년은 이렇게 웃어줄 거라 상상해본다.

아마 세상 어떤 봄꽃들보다 예쁘게 웃어줄 것이라고.


"그러면 쇼요. 머지않아 내가 널 볼 수 있을까?"


계속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버렸다

그리곤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나와버렸다. 소년은 씁쓸한 표정으로 내가 나간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창문 쪽으로 다가오더니 입을 연다.


"기다릴게"


기다린다는 말에 대한 대답은 할 수가 없다. 창문을 닫고는 아까 쓰다듬던 풀꽃을 찾아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소년의 방 창가를 바라보다가 주변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린다.





소년도 햇님도 잠든 4월의 시작점,

정성스럽게 쓰다듬던 초록색 꽃망울들이 하나씩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희망을 닮은 개나리들은 벌써 노란 비단길을 만들고 있고, 수줍게 짝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진달래들은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내가 쫓아갈 봄처녀도 꽃단장 중인가, 오늘은 살포시 하얀 치마 끝자락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이 지나다니는 다리 위를 지나 거리를 걸으며 간절히 더 간절히 소원을 빈다


달님, 햇님에게 꼭 전해주세요

햇님이 한 발짝 더 가까이 와 봄처녀가 저 멀리 뒷모습을 보여줄 때 아주 잠시만 눈을 감아주세요, 꽃들이 잠드는 때를 좀 만더 늦춰주세요.


여름햇님 아래의 코우시를 볼 수 있도록. 코우시가 내 눈을 마주볼 수 있게, 먼저 내 손을 잡아줄 수 있게. 내 목소리로 코우시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난 천천히 다른 봄처녀들의 꽃단장을 도왔다. 어서 하얀 볼에 새색시 같은 분홍빛 물을 들게하려

그리고 아침이 오면 그늘 아래서 햇살을 즐기다가 잠이 들 때도 있고, 재잘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봄 꽃놀이 철이 오면 몇몇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해준다고 들었다.


저렇게 색깔 고운 꽃들이 피어나는 봄날 아침에는 그 전날 밤에 소년의 모습을 한 요괴가 꽃망울 쓰다듬어 주어 피어나는 거라고.

그러면 아이들은 어른들께 묻는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면 그 요괴는 어떻게 되는 거냐며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사라져버린다고


이런 얘기를 코우시도 들었을까 그 요괴가 나라는 걸 알아줄까.



그렇게 사람들은 짧은 봄을 즐기면서 햇님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하루하루 봄 처녀들의 볼에 발그레한 생기가 물들어간다. 

그럴수록 코우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창문을 닫고 달님을 바라보며, 가끔은 나무 아래로 걸어와 아직 하얀 치맛자락을 내놓고만 있는 어린 봄처녀를 나대신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한참 동안 치맛자락을 쓰다듬던 코우시가 손을 떼곤 입김을 분다. 아직 봄이라도 추운가 조용히 내려가 코우시의 손을 감싸줬다.


"쇼요?"


변함없는 목소리


"언제 온 거야? 왜 창문을 두드리지 않았어?"


대답은 하지 못한다. 대신 개나리꽃들 앞으로 데려와 손을 펴 노란 꽃잎으로 한자 한자 글을 써준다.


'저 어린 봄처녀는 나중에 제일 나중에 피우러 와줄게. 기다려줘 코우시'


그대로 손을 덮어주곤 이번엔 내가 등을 보여줬다. 코우시는 내 등이 보이지 않을 거니까


"좋아해, 쇼요"


나도 같아, 코우시


그렇게 전하고 싶은 말이 쌓일 때마다 봄처녀들은 저 아랫마을부터 하나씩 만개하기 시작한다.

수줍은 볼을 드러내며 하얀 그 얼굴을 아낌없이 과시한다.

그 자태를 보기 위해 사람들도 모여들며 앞으로 있을 봄처녀의 행차를 축하해 준다.

봄의 마지막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건 누가 뭐래도 봄처녀들의 치마자락이니까



이젠 드문드문 보이던 초록색 꽃망울들도 자신의 색을 과시하며, 온 세상이 향기로 덮어가면 

점점 아랫마을에선 햇님이 다가왔다면서 설레발을 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이다. 아직 조금만 더 아직 꽃단장을 못한 봄처녀가 남아있다

다른 처녀들은 한창 하하 호호거리며 행차를 시작했을 때이다.


그리고 아직 나무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봄처녀를 향해 서둘러 올라간다.

변함없이 날 기다리고 있는 코우시를 위해 

그리고 그 뒤를 어김없이 햇님이 따라오고 있다.


4월의 끝, 5월의 시작이 될 따듯한 밤

분명히 코우시도 달빛을 기다릴 것이다


오늘밤도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창문을 닫아놓고는 달을 바라보고 있다


조심스레 달빛이 환하게 비춰주는 나무 위로 올라가 아직 어린 처녀의 하얀 볼을 따스히 감싸주며 쓰다듬어준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 달라고, 어서 코우시가 너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어린 처녀는 발그레하게 볼을 붉혀간다

어서 그 얼굴을 달빛 아래 환히 비추게 감싸고 또 감싸다 드디어 햇님이 다리 건너까지 왔을 때

어린 봄처녀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분명 코우시도 오늘 밤 이 어린처녀를 보러 나올 것이다 그렇게 나무에 기대 밤이 오길 기다린다


다리 끝 햇님의 발이 머뭇거린다. 달님이 내 소원을 햇님에게 비춰준 것일까

어째선지 밤낮 쉬지 않고 나에게 걸어왔던 햇님이 멈춰 섰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거울을 높게 쳐들어 온세상을 비춰준다


그 빛을 받은 어린처녀는 다른 봄처녀들을 따라 서서히 행차를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어린처녀는 조금씩 발을 뗀다

그 모습에 나도 코우시의 방 창가 쪽으로 발을 옮겼다


오랜만에 두드리는 창문에 탁자에 앉아 멍하니 있던 코우시도 깜짝 놀라 뒤로 돌아 다가온다


난 입김을 불어 창문에 김서리가 끼며 손가락 끝으로 글을 쓴다


'코우시'


하나 쓸때마다 지워지는 글자에 열심히 입김을 불며 이어간다.

코우시가 잘 봐주길 바라면서


'다리끝에 햇님이 와있어, 여름햇님이야. 코우시 네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여름햇님'


코우시가 창문으로 손을 뻗는다


'코우시, 봄처녀들은 이제 저 아래로 행차를 시작할 거야'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버렸다


'나랑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


코우시가 방문을 열곤 뛰쳐나간다

코우시의 방 창문을 열고는 아까까지 코우시가 보고 있던 종이를 향해 다가갔다 잔뜩 고인 눈물이 결국엔 왈칵 쏟아져 버렸다

코우시도 애타게 날 기다려준 것일까.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왔다 코우시를 위한 선물도 마침내 준비했다

그렇게 익숙하게 연필을 들고 종이 위에 선을 그었다


연필로 그은 선을 연필로 살포시 가려주고 코우시가 기다리는 나무 밑으로 향했다


아직 초록색 꽃망울들이 만연했을 때 항상 봐왔던 그 등이 너무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한참을 바라보다

코우시가 넋을 잃은 나무 위로 올라가 앉아 봄처녀들을 코우시에게 보내준다


드디어 시작된 봄처녀들의 마지막 행차

기다렸다는 듯 다리끝에 거울을 높게 든 여름햇님도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봄처녀들이 뒷모습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코우시를 지나쳐간다


"쇼요"


작은 목소리. 하지만 들을 수 있다

지나쳐 가는 처녀들 보다도 내가 더 가까이 있으니까

그저 코우시 코앞에 서서 가만히 행차하는 봄처녀들을 잡아세워 내 손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벚꽃 좋아해?'


보고싶었던 미소


"많이 좋아해"


'나도 많이 좋아해'


"응. 정말 진심으로..진심으로 좋아해!"


울먹인다.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닦을지도 모르는 체 햇님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점점 더 마음이 급해진다


'코우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봄만 되면 하는 이야기가 있어, 예쁜 꽃들을 피워주는 요괴 이야기. 항상 밤에 꽃들을 쓰다듬어 주다가 해가 뜨길 기다리며 꽃들을 피워내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요괴는 여름햇님이 와버리면 사라져버린데'


내 손을 쓸어내곤 다시 떨어지는 벚꽃으로 글씨를 써 내려간다


'코우시 우리가 기다리던 여름햇님이 벌써 다리 앞까지 와있어'


코우시 코앞에 서서 글씨를 써 내려가던 내 손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쇼요도 그 이야기를 들어봤구나? 그럼 쇼요, 그 요괴가 왜 햇님아래에선 꽃을 안 쓰다듬는지 알아?"


어두웠던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간다. 햇님의 따사한 온기가 점점 머리 위로 내린 쬔다


"여름햇님은 그 요괴를 참 좋아한대, 그래서 자신이 그 요괴를 비추면 다른 사람이 볼까봐 일부러 그늘에 꼭꼭 숨겨놓는데, 그래서 안비추는 데가 없는 여름에는 햇님이 요괴를 데려가 버려서 그 요괸 사라져버리는 거래 "


코우시의 얼굴이 점점 햇살로 물들어간다. 그리고 턱 아래엔 조그마한 소년의 그림자가 비춰진다


"그런데 그 햇님이 나에겐 그 요괴를 보여주고 싶었나 봐"


코우시가 내 볼을 감싸 쥐곤 눈물로 범벅되어있을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히나타 쇼요"


조금 턱을 들어야 볼 수 있는 코우시의 눈동자.

햇살이 비추니 더더욱 눈부시게 웃어 보인다


"정말로 잘 어울려 쇼요"


웃는 얼굴과는 대조되는 볼을 타고 내려와 턱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나도 손을 올려 코우시의 볼을 감싸 쥔다


"코우시.."


코우시의 눈이 커졌다가 다시 크게 휘어지며 웃어준다


"스가와라 코우시"


따스한 바람이 감도는 우리 손끝에 서로의 손이 맞닿아 꽉 잡는다

서로의 얼굴이 눈동자에 비치게 더 오래, 좀 더 이 햇살을 만끽할 수 있게


여름의 풀이 자라는 들판

그 위에 난 있지 못한다 봄 처녀들의 행차는 저 멀리. 햇님은 머리 위에서 더 찬란하게 빛난다

코우시에게 비친 내 그림자도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바랄건 없다. 소원은 모두 이뤘다


"잘가, 쇼요"


어쩌면 지금은 흐릿한 나를 꼭 안고선 인사를 건넨다


"또 만나 기다릴게"


눈물이 마르지 않는 코우시의 얼굴을 감싸며 다가가 입을 맞춰 대답을 전한다


'꼭올게..다시 올게, 제일 먼저 만나러 올게 코우시.'


그렇게 다시 어두워진 밤을 거닐며 봄처녀들의 뒷모습을 쫓아갔다.

여름햇님에게 또 한번 감사하며 계속, 계속 봄처녀들을 쫓았다


꿈에서 만나 코우시


나가모노가타리


[카게히나]나가모노가타리





깊이 잠이 들면 꾸는 꿈이 있었어요. 깨고 나면 꿈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지만 단지 밝은 색을 가진 형상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죠.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지는 몰랐지만 그 꿈을 꾸고 나면 슬퍼졌어요. 어쩌면 그 꿈에 대한 기억이 내게 결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그 꿈을 꾸는 주기가 짧아졌고, 이 지역의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더 자주 그 꿈을 꾸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난 그 꿈을 꽤나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부모님께 말씀드려 상담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어느 날 학교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책상으로 늘어지자 선생님은 수업이 지루하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어요. 학교 후문 쪽의 산길로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신사에 관한 이야기였죠. 까마귀 신이 머물렀던 신사로 저희 학교의 이름도 그 신사에서 가져온 거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그 신사의 이름은 와루타미 신사로, 옛날에는 와루타미 신사를 둘러싸고 이 산 위에 마을이 있었단다. 까마귀 신이 신사를 버리고 떠났다는 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신사의 노여움을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아무도 오지 않는, 버려진 신사가 되었지만 매일같이 신사 주변을 돌보던 아이가 하나 있었어.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가 신사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신사의 노여움을 키우고 있다고 여겼지. 아이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물대에 놓이게 됐단다. 홀로 마을에서 살아가던 아이가 제물이 되는 것을 말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 대신 제물대에 아이가 올려지고 며칠 후 까마귀 신이 신사로 돌아와 제물로 바쳐진 아이의 혼을 데려갔다-는 이야기만 떠돌 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 신은 또다시 신사를 버리고 떠났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 뒤 까마귀 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냐는 한 아이의 물음에 선생님은 대답하셨어요. 신은 신사로 돌아오게 되는 법이라고. 이야기를 들은 반 아이들은 두 번이나 신사를 버리고 떠난 까마귀 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 이야기에는 모름지기 숨겨진 사연이 있는 법인데 말이죠. 까마귀 신을 감싸고자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는 까마귀 신도, 신사도, 아이도 누구도 탓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신사를 버리고 떠난 까마귀 신도, 신에게 버려진 신사도, 신사를 돌보던 아이도 전부.




와루타미 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날 밤 까마귀 신이, 신사가, 아이가 머릿속에서 형체를 띄우고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제물대 위의 아이를 껴안더니 이윽고 아이의 혼을 데리고 신사 안으로 들어가는 까마귀 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재생됐을 때, 저는 꿈을 꾸고 깨어났을 때와 똑같이 슬퍼졌다는 걸 알았어요.




신사. 와루타미 신사로 가면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알게 되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그러면 깊이 잠들어도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게 되겠죠. 밤이 깊어 어둑한 산길을 올라가는데 걸음마다 감정이 흘러넘쳤어요. 두려움도 기대감도 걸을 때마다 넘쳐버려서 신사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 감정도 온전치 못하고 이리저리 뒤섞인 채였죠. 그런 것치고는 꽤나 차분했던 것 같아요.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신사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해 그런지 칙칙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신사에서 오래되고 낡은 냄새가 났지만 그것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걸 알았어요. 신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제가 했던 생각은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거였어요.




순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사에 들어서자 보였던 것은 항상 꿈속에 나왔던 형상, 밝은 색을 가진 형상이었거든요. 놀랐지만 꿈은 아니었어요. 꿈이었다면 그 밝은 색이 확실하게 주황빛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겠죠. 그 밝은 주황색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꼈어요. 색을 둘러싸면서 온전치 못 했던 내 감정들이 완성되어가는 걸 느꼈어요. 내게 결여되어 있던 것을 찾은 것만 같았어요.


계속 기다려왔어요, 이곳에서.


목소리가 들렸어요. 목소리의 주인은 주황색 형상이었죠. 카게야마 상을 찾아주세요. 그 말과 함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공간이 바뀌어가는 걸 느꼈어요. 내가 모르고 있는 나를 찾기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 거였죠.




"카게야마 상 돌아오셨네요! 마을 사람들 모두 카게야마 상이 신사를 버렸다고 했지만 저는 믿지 않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까지 내가 있던 곳과 같은 장소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다른 와루타미 신사 안이었어요. 저 이외의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저는 본능적으로 그 두 사람이 까마귀 신과 제물로 바쳐진 아이라는 걸 알았어요.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 속에 있는 거였죠. 그 안에서 무엇보다 놀랐던 건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는지가 아닌 까마귀 신과 제 이름이 같다는 사실이었어요. 저는 그저 가만히 서서 그들을 지켜보았죠.


"쇼요."

"저는 카게야마 상이 신사로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어요."

"잠시 다녀와야 될 곳이 있어서 다녀온 것뿐이지 신사를 버린 게 아니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쇼요라 불리는 아이의 몸이 지나치게 투명하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나 이내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리며 알아차릴 수 있었죠. 제물대에 올려진 아이의 혼을 까마귀 신이 신사로 데리고 온 직후라는걸요. 그 이야기는 실제였었던 거예요.


"카게야마 상 왠지 슬퍼 보여요. 울지 마세요."

"울지 않아."

"하지만."


아이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내뱉지 않은 채 입을 꾹 닫았어요. 또다시 공간이 바뀌기 시작하는 걸 느꼈어요. 이윽고 목소리가 들렸죠. 아직 찾지 못하신 건가요.




이번에도 신사 안이였어요. 더는 무엇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이 머릿속에 무언가가 자리한 채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도 저는 그저 두 사람을 지켜볼 뿐이었죠.


"쇼요. 네 혼이 이승에 남아있다는 건 이곳에서의 미련이 있다는 거겠지. 그 미련을 이뤄서 혼이 제자리로 돌아가야지 후생을 기약할 수 있어."

"이대로 카게야마 상과 지내면 안 되는 건가요?"

"혼뿐이라면 시간은 단지 괴로움만을 남겨. 너는 나를 처음으로 알아봐 준 사람이야. 네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미련이란 거 모르겠어요."

"천천히 생각해보면 될 거야."


아이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게 보였고 까마귀 신이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아이의 눈에 매달려있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게 보였어요.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고 마치 내가 까마귀 신인 것처럼,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게 마치 나인 것만 같이 손에 아이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내가 까마귀 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이번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채 공간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울렁거리는 배경을 보면서 나는 눈을 감았어요.




눈을 뜨자 보이는 배경은 산속이었어요. 아마 신사 근처의 숲일 거라 생각하면서 걷기 시작했어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걸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풀 밭에 누워 잠들어있는 아이의 옆에 앉아 아이를 바라보는 까마귀 신의 얼굴이 부드러웠어요.


"카게야마 상…."


아이가 깨어난 건가 했지만 그것은 아닌 듯 아이는 잠시 뒤척이다 다시 색색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까마귀 신은 아마도 몰래 훔쳐보고 있던 모양이었는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안심한 듯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그런 까마귀 신의 모습에서 나는 감정이 터지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나는 모든 걸 알아차렸어요. 또다시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공간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신사의 뒤편인 듯 숲이 우거진 모습을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이 보였어요. 까마귀 신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정말이지 따뜻했어요.


"사랑해. 쇼요."


갑자기 들려온 말에 아이는 깜짝 놀라 하면서 까마귀 신을 바라봤어요. 까마귀 신의 얼굴은 덤덤해 보였지만 그 속에서 사랑을 읽을 수 있었어요. 아이의 얼굴에서 점차 놀람이 사그라들고 아이는 이내 웃어 보였어요. 그 웃음이 너무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어요.


"… 카게야마상 드디어 알았어요."

"쇼요?"

"미련 같은 거 천천히 생각해낼 필요 없었어요. 항상 바라왔던 거였어요."

"… …."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기를."

"…쇼요."

"카게야마 상 저도 사랑해요."


아이의 몸이 사라져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그건 까마귀 신도 마찬가지였죠. 분명 우리 둘 다 얼굴이 엉망이었을 거예요.




아이가 완벽히 사라졌을 때 공간이 바뀌었어요. 신사 안이였죠. 다시 돌아온 거였어요. 어둑한 신사 안에서 누군가의 존재가 선명하게 보였어요.


카게야마 상.


히나타 쇼요. 까마귀 신과 함께 지내던 아이. 꿈속에 나오던 형상도 내 눈앞에 보이는 존재도 그 아이였어요. 나는 까마귀 신과 마찬가지로 바로 옆에서 사라져가는 쇼요를 보고 있었어요. 사라져가는 쇼요를 보는 건 두 번째였죠. 내가 까마귀 신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쇼요는 이번 생에서 저보다 먼저 태어나 저와 같은 학교를 다녔었다고 했어요. 그러다 와루타미 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끓어오르는 호기심에 신사를 찾아갔던 거래요. 그 이야기를 쇼요에게 해준 건 저와 같은 선생님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사에 남겨져있던 제 기억들을 보고 나서 제가 까마귀 신이었을 적 저와 신사에서 지냈던 시간들을 찾게 된 쇼요는 그 기억들을 지켜서 저한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어요. 분명 저도 신사에 이끌려서 찾아오게 될 거라고. 이승에 미련이 남으면 혼이 떠나지 못하고 남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쇼요는 언제 올지 모르는,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나를 기다리기 위해 혼을 남기는 걸 선택한 거예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까지.




"카게야마 상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우리는 분명 또 만나게 될 거예요."

"…맞아. 우린 분명 또다시 만나게 될 거야."

"다음에는 카게야마 상이 먼저 저를 찾아주세요."




사실 쇼요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어요. 쇼요는 이 신사에서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왔지만 그것은 발견하지 못 한 거 같았어요. 까마귀 신이었을 때의 제 마지막 기억이 신사 깊숙한 곳에 남아있었다는걸요.




"나 소원을 빌었어."

"네가 소원이라니 웃기는 말이네."

"쇼요는 곧 환생 할거야. 이번생을 기점으로 앞으로 수많은 삶을 반복할 쇼요를 나는 바라볼 수밖에 없겠지. 나도 쇼요와 함께 하고 싶어. 그래서 인간이 되고 싶다고 빌었어."

"한심해."

"이 신사에 머물던 까마귀 신은 없어질 거야. 내 기억을 남겨두고 갈 테니 그걸 지켜줘."

"신이 인간이 되면 주어지는 삶은 열 번뿐이야. 알고 있는 거지."

"…괜찮아."


고양이 신과의 대화였어요. 아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였을 거예요. 역시 이번이 몇 번째 삶이냐고 물을 줄 알았어요. 저는 알 수 없어요. 정말로요. 까마귀 신이었을 때의 기억을 찾은 것뿐이니까요. 이미 어떤 생에서 쇼요와 만났을 수도 사랑했을 수도 있는 거예요. 물론 직감적으로 느낄 수는 있었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걸요. 왜 쇼요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묻지 않네요. 당신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나는 울고 싶어지는 걸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표연


[후타모니] 표연





하이큐 



후타쿠치 켄지 x 모니와 카나메 


표연(飇緣, 폭풍 표, 인연 연)



*시작하기 전에 한 번만 읽어주세요.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 중 하나이다. 

여름에 휘몰아치는 폭풍을 관장하였으나, 난폭한 행동으로 인해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가 동굴에 한 때 은신하여 세상이 어두워지는 소동이 발생하자 그 책임을 물어 지상 세계로 추방되었다.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와 달의 신인 쓰쿠요미와는 형제자매 관계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있다. 












아카아시는 난폭한 폭풍의 신이 머무르는 곳의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얼마전에 근신 처분을 받았던 스사노오가 또 자신의 아버지인 이자나기와 하계의 산 하나를 통채로 날려버릴 정도로 심한 싸움을 하였다. 덕분에 자신이 모시는 아마테라스만 중간에서 둘을 중재한다고 죽어나가는 꼴이였다. 

아카아시는 문을 살짝 열고는 술냄새를 잔뜩 풍기는 남자의 배를 발로 툭툭 건들였다.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는 허리를 일으켰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눈을 살짝 떴다. 


아카아시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스사노오, 아마테라스께서 당신을 초대하셨습니다. 


스사노오는 뒷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 때문에 동굴로 도망가서 바들바들 떨었던 전적까지 있던 누이동생이  자신를 초대하였다니 무엇인가 기분이 이상했다. 뭐야, 다케미카즈치. 아마테라스가 벌써 화를 풀었다냐. 


다케미카즈치라고 칭해진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내 스사노오에게 내밀었다. 아카아시라고 불러 달라고 몇 번씩이나 말씀드렸습니다. 


후타쿠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자리에 다시 벌러덩 누우며 아카아시의 말을 기분 나쁘게 흉내내며 말했다. 


내 앞에서 칼 함부러 들지 말라고 몇 번씩이나 말했는데 말이야.  


아카아시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쉬며 칼 내렸다. 하여튼 야치가 당신을 만나고싶어 합니다. 좋은 말로 할 때 알아서 오시길 바랍니다. 


스사노오는 아카아시의 말에 알았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저렇게 냉정한 놈이 겨우 누이의 한마디에 벌벌 떤다는 것이 스사노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름 군신인데, 체면 상하게 아마테라스의 말에는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아카아시라는 이름도 아마테라스가 선물해준 이름이다. 두번째 이름이라는 것은 정말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이미 한개의 이름이 있는데, 어째서 사랑의 표식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이름을 선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다른 관계를 의심해볼 수 밖에 없었다. 스사노오는 짖궂게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거 놀려먹기 진짜 좋겠는데. 스사노오는 아카아시에게 나가라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방 한구석에 던져진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기 시작했다. 


스사노오는 자신의 누이가 머무르는 곳의 문을 세게 열었다. 자신의 예상과 같이 누이는 오늘도 가녀려 보이는 얼굴을 하고는 아카아시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간간히 얼굴에 붉은기가 보이는게 역시 아카아시와 그녀는 일방 통행이 아니라 쌍방향이라는 것을 느꼈다. 


스사노오는 자신의 발소리를 죽이고는 웃고 있는 자신의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카아시는 스사노오의 팔이 야치에게 닿기전에 그의 손목을 잡았다. 스사노오는 혀를 차며 재미없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하여튼, 고지식한 놈. 오라버니가 누이에게 장난도 못치냐. 

야치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스사노오가 다가와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화들짝 놀라 뒤로 몸을 내뺐다. 

야치는 이내 서랍 속에 넣어둔 술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오늘은 오라버니랑 화끈하게 술이라도 마시면서 속내를 털어놓을까 싶어서 불렀습니다. 어제 아주 좋은 벚꽃주가 들어왔거든요. 


스사노오는 얼굴에 화색을 띄며 급하게 의자 위에 앉았다. 네 신도가 보낸거?


야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술병의 마개를 열었다. 여기 서 있는 아카아시가 구해다줬답니다. 며칠 전에 혼자 향만 한번 맞아봤는데 오라버니가 좋아하실 것 같아서 남겨두었습니다. 


스사노오는 야치에게 어서 술을 따르라는 듯이 술잔을 그녀의 앞에 가져갔다. 

야치는 스사노오의 손을 밀어내고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왜 또 아버지와 싸웠어요. 


스사노오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며칠전의 불쾌했던 기억에 대하여 떠올렸다. 스사노오는 야치의 손끝을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자식이 자꾸 어머니한테 받은 새 이름에 대해서 자랑을 하니까. 


야치는 아려오는 뒷목을 잡고 한숨을 푹 쉬었다. 겨우 그런것 때문에 하계의 산 하나를 날려먹었어요? 스사노오도 그게 부러우면 빨리 정인을 만들어서 이름을 선물 받으시면 될 거 아닙니까. 


스사노오는 말 없이 야치가 들고 있던 술병을 빼앗아서는 자신의 술잔에 따랐다. 연분홍빛 벚꽃주가 술잔에 가득 들어찼다. 스사노오는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말을 돌리려는 듯이 야치의 뒤에 서 있는 아카아시를 힐끗 보고는 야치에게 물었다.  


그래서 둘이 혼례식은 언제 올린다고?


야치의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붉어졌다. 야치는 자신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스사노오에게 술을 한 번 더 따랐다. 몰라요. 오라버니 자꾸 그렇게 말돌리면 저 화낼 거에요. 


스사노오는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야치가 건낸 술을 받아마셨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유달리 야치가 자신에게 술을 자주 건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였으나, 달콤한 벚꽃주는 입에 착착감기는게 내미는 술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급하게 마셔서 그런지 취기가 평소보다 조금더 빨리 올라왔다. 스사노오는 어지러운 머리에 손을 대고는 그대로 머리를 차가운 탁자 위에 올렸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야치의 목소라가 점점 멀어져갔다. 스사노오는 흐릿해져오는 시야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카아시는 술에 취해 탁자에 머리를 박은 스사노오의 볼을 손바닥으로 짝 소리나게 내려치고는 야치에게 말했다. 완전 쓰러졌네요. 독한 술이 효과가 좋기는 한가 봅니다. 


아카아시는 스사노오의 팔을 자신의 등 뒤에 두르고는 그를 업었다.야치는 숨을 내쉬며 긴장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매번 오라버니의 짖궂은 장난에 넘어가기만 했지 이렇게 자신이 먼저 오리버니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처음이였다. 야치는 발걸음을 죽이고는 아카아시의 앞에서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야치의 집 앞에 있는 하계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그리고 한치의 고민도 없이 땅을 향하여 스사노오를 던졌다. 그리고는 묵직한 허리를 손으로 통통 두들기고는 허리를 쭉 폈다. 

야치는 저 아래로 떨어지는 스사노오를 보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카아시는 걱정이 가득해보이는 야치의 얼굴을 보고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가 이내 그녀에게 말했다. 


야치,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마세요. 돌아온다 하더라도 설마 당신을 죽이기야하겠습니까. 


야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아카아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카아시, 지금이라도 그를 다시 데려오는 것이 맞을까요?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며 야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어린 아이가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다. 어쩌면 그래서 안좋은 소문이 돌고 있음에도 계속 옆에서 멤도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카아시는 딱히 그런 것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히토카, 그는 잠시 내버려두도록 하죠. 


그것은 아카아시가 눈치가 빠른 스사노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화풀이였다. 




  




코가네가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려는 모니와의 목소리도 저 먼 곳에서 들려왔고, 근처에서는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코가네가와는 몸을 한껏 숙이고는 풀숲사이를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갔다. 물론 많이 혼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유없이 상에 앉아있는 것이 싫었다. 코가네가와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공간으로 천천히 기어갔다. 코가네가와는 풀숲 사이에 고개를 쭉 빼고는 풀무더기 사이에 나있는 조그마한 공간에 팔을 짚었다. 코가네가와는 계속 숙여져있던 허리를 주먹으로 통통 두들겼다. 코가네가와는 풀숲 사이로 머리를 내뺐다. 하지만 무엇인가 딱딱한 것에 머리를 부딪힌 코가네가와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코가네가와는 자신의 머리에 부딪힌 것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람? 


분명히 나뭇잎 사이에 파묻혀있기는 하지만 사람 같았다. 코가네가와는 그 사람을 가리고 있는 나뭇잎을 떼어내고는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았다. 


코가네가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땅에 떨어져 있는 나무 막대기를 발견하고는 눈을 깜빡였다. 코가네가와는 나뭇가지를 주워들고는 남자의 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술냄새를 풍기는 남자의 머리를 콕콕 찔렀다. 남자는 자신의 단잠을 방해하는 작은 움직임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는 눈을 떴다. 남자는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아이의 옷깃을 잡고는 들어올려 풀밭 위에 내려두었다.


남자는 기지개를 쭉 켜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익숙한 풍경이 아니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풀무더기 바깥으로 고개를 내뺐다. 아이는 커다란 남자의 키에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땅을 짚었다. 남자는 잠이 덜 깬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흠칫 놀랐다. 남자는 자신의 양쪽 볼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술이 덜 깬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분명히 발 밑에 있어야 할 새하얀 구름들이 어째서 자신의 시선 위에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을 되짚었다. 생전 자신을 피하기만 하던 소심한 누이가 자신의 집으로 남자를 초대하였었다.원래 애주가 이기는 하였지만 오랜만에 기뻐보이는 여동생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에 주위에서 권하던 독한 술들은 곧이 곧대로 받아마셨었다. 그리고 거하게 취하였다가, 잠에 빠져들었었다. 조금씩 떠오르는 것은 비틀비틀 걸어가던 자신을 누군가가 뒤에서 밀었다는 것이였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여동생에게 거하게 한 방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향하여 소리쳤다.


아마테라스! 야치 히토카! 


남자는 짜증난다는 듯이 옆에 보이는 나무를 발로 한 번 걷어차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남자는 뒷머리를 손으로 긁으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코가네가와를 내려다보았다. 넌 뭐냐. 

코가네가와는 그런 남자의 특이한 옷이 신기하다는 듯이 남자의 오른쪽 다리에 매달리고는 꺄르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저의 궁 뒤에 딸려있는 작은 숲인데 당신이야 말로 누구싶니까? 


남자는 코가네가와를 다리에서 떼어내고는 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코가네가와의 이마를 툭툭 치며 물었다. 너의 궁이라면 너는 이곳에서 꽤 높은 사람이냐?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다른 곳에서 오신 분 입니까? 


남자는 앓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으로 치자. 그럼 여기는 어떤 신의 수호를 받는 곳이냐?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시무룩한 얼굴로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를 바라보았다. 


신의 수호라니요. 가당키나 합니까. 저희 다테를 수호해주시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다. 너무 척박한 땅이기도 하고 산 중에 있어서 이 나라의 존재 유무를 아는 사람조차 타국의 왕족들 밖에 없습니다. 


남자는 아려오는 뒷목을 잡고는 눈을 감았다. 아마테라스에게 거하게 뒷통수를 맞았다. 잡아던져도 어떻게 이런 장소를 골라서 던질 수 있는지. 과연 꼬맹이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이곳에서는 어떤 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방문을 한적이 없었는지 잠시 스쳐지나간 기운조차 묻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한숨을 쉬며 소년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너는 누구라고? 


다테의 여섯 번째 아들, 코가네가와 칸지 입니다. 당신이야 말로 누구싶니까? 


남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쓰쿠요미노미코토와 형제인 스사노오노미코토다.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스사노오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였는데, 분명히 모니와가 말해줬던 것 같았다. 코가네가와는 남자를 빤히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자신을 스사노오노미코토라 칭한 남자는 코가네가와의 멍해보이는 눈을 맞추고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 몰라?


코가네가와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분명히 모니와가 전에 말해줬던 것 같은데. 혹시 타국의 유명하신 분 이신가요? 


남자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여섯 번째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교육을 받았을텐데, 자신을 모른다니 충격적인 말이였다. 신의 수호가 없는 국가라서 신앙에 대한 반감 정도야 예상하고 있었지만 존재 자체도 모른다, 적당히 이곳에 붙어있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 야치 를 잡아 족칠 계획이 시작부터 틀어졌다. 



모니와는 한숨을 내쉬며 치렁치렁한 옷자락을 잡고는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모니와는 작은 창고의 문을 거칠게 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없어.

모니와는 눈을 감고 있는 아오네를 보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평소 말로는 공부도 하기 싫다, 전부다 귀찮다, 놀고만 싶다, 라고 칭얼대는 주군이였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행동으로 반항을 하는 경우는 처음인지라 어떻게 대처 하여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직 어리니까 분명히 궁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였을텐데, 어떤 기묘한 곳에 숨었는지 반나절을 찾아헤매도 주군의 밝은 금발은 털 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모니와는 급기야 자신이 주군의 반항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였다며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그 밝던 아이가 뚱해보이기는 하였는데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다니 제 1보좌관으로써 실격인 것이 분명했다. 



낯선 목소리를 들은 아오네는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돌려오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모니와는 가만히 앉아만 있던 아오네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아오네의 옆에 따라 붙었다. 아오네, 목소리가 들린거야? 

아오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궁의 뒷편에 있는 숲으로 달려갔다. 

모니와는 어디선가 코가네가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과 아오네가 충성을 맹세한 어린 왕자님이 사라진 줄 알았다. 


아오네는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는 고개를 풀무더기 안으로 쏙 밀어넣었다. 풀무더기 안에서는 놀란 코가네가와의 비명과 평소에 근처에서 들어보지 못하였던 낯선이의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아오네는 무표정한 얼굴로 코가네가와의 다리를 잡고 들어올려 자신의 등 뒤에 업고는 손가락을 들어 남자를 가르켰다. 술냄새를 잔뜩 풍기는 남자는 코가네가와가 풀숲 속에서 끌어내지자 자신도 풀무더기의 밖으로 나와서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꽤나 큰 사람이였다. 그리고 옅은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코가네가와는 아오네의 등 위에서 버둥거리며 아오네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아오네! 아파!


모니와는 코가네가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고는 경계의 날을 잔뜩 세우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런 곳에서 저의 주군과 함께 계십니까. 

남자는 고작 14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년의 당돌한 목소리에 옆머리를 쓸어넘기고는 실 없이 웃었다. 남자는 어린 소년에게 경계를 받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웃겨 배를 잡고는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웃었다. 스사노오가 하계에서 이런 꼴이나 당하고 있다니, 이자나미나 쓰쿠요미가 알면 많이 웃겠어.


모니와는 귓가에서 들려오는 대단한 이름들에 아오네의 허리에 달려있는 긴 장검을 뽑아들고는 남자의 목 끝에 겨누었다. 감히 하계의 존재가 어째서 신의 존함을 마음대로 입에 올리느냐. 나의 주군을 해하려는 자라면 이 자리에서 처단하겠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살기를 내뿜으며 소년의 허리 언저리에 매달려있는 단검을 뽑아서 소년의 눈 앞에 가져갔다. 남자는 칼이 눈 앞에 들어와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소년의 눈을 보고는 문득 소년의 눈아래에 비치는 강직함이 나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다가 어느 누구도 해칠 의사가 없다는 듯이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들어 바닥에 던졌다. 남자는 양손을 들어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는 듯이 흔들고는 말했다. 내가 내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고 여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째서 문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의 주군인가 뭔가 하는 꼬맹이한테는 관심도 없고 헤칠 생각도 없다. 


모니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남자를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주군이 낯선이와 함께 있다는 생각에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였지만 확실히 이곳의 사람 답지 않게 키가 많이 컸다. 복식도 근처의 것이라고 믿기는 어려울 정도로 기묘했다. 이자나미가 어머니이고 쓰쿠요미가 동생이다. 모니와의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간 이름은 하나였다. 


스사노오노미코토? 


남자는 모니와의 말에 기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곳을 수호해주는 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주술사나 신기를 가진이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이제 조금은 말이 트였다는 생각에 남자는 팔을 벌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의 신 스사노오노미코토다. 


모니와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이 스사노오라고 주장하는 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경계의 날을 잔뜩 세우고는 말했다. 증거도 없는 당신의 말을 제가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오른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잔잔하던 산들바람이 순식간에 뺨을 거칠게 때리는 돌풍으로 바뀌었다. 

모니와는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에 눈을 살짝 가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진짜 스사노오가 아니더라도 꽤나 신력이 강한 주술사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을 잘만 이용한다면, 가능성이 없어보이던 일을 성사시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모니와는 그의 목에 겨누고 있던 검을 살짝 내렸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사쿠나미의 앞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던 카마사키는 갑자기 일어난 사쿠나미 때문에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강아지풀을 떨어트렸다. 사쿠나미는 자신의 몸을 감고 있는 길다란 이불을 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맨발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카마사키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사쿠나미에 멍하니 달려가는 그의 뒷통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사쿠나미를 바쁘게 쫒아갔다. 사쿠나미! 어디가!


사쿠나미는 숲에서 풍겨오는 새로운 기운이 매우 이질적이지만 결코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드디어 이 산 속의 나라도 수호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주술 따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신이라는 존재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면 분명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럼 분명 자신이 선택한 아이가 왕위를 향하여 조금 더 가까워질 것 이다. 


사쿠나미는 남자의 앞에 서 있는 모니와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모니와에게 소리쳤다. 모니와씨! 어서 그 분을 잡으세요!


모니와는 헐레벌떡 달려온 사쿠나미와 카마사키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낯선이라서 조금 추긍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사쿠나미는 치렁치렁한 옷자락을 뒤로 넘기고는 남자의 앞에서 고개를 천천히 조아렸다. 위대하신 스사노오께서 이런 외진 곳까지 어쩐 일로 행차하셨나이까.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남자는 사쿠나미를 위 아래로 흩어보며 내던지듯이 물었다. 

주술사? 


모니와는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사쿠나미와 남자를 번갈아 보고는 눈을 사쿠나미에게 고정시켰다. 사쿠나미는 모니와의 팔을 잡고는 칼을 내렸다. 


사쿠나미는 고개를 한 번 더 조아리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사쿠나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사쿠나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실은 아마테라스한테 쫒겨난건데, 여기서 어떻게 좀 지낼 수 있게 해줄 수 없겠어? 


사쿠나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스사노오께서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수호해주실 생각으로 오신 것이 아닌 겁니까? 


남자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모니와와 코가네가와를 가르켰다.


 너가 만약 신이라고 치자, 그러면 이런 나라 수호 해주고 싶겠냐? 저 작은 놈은 여섯 번째기는 해도 왕자인 것 같은데 내 이름도 몰라. 그리고 저 작은 놈의 졸개 같이 보이는 녀석은 칼을 들이밀었다고. 대충 분위기를 보니까, 이곳은 너 같은 주술사에게 대우가 좋을 것 같지는 않아. 


사쿠나미는  부정할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남자는 그런 사쿠나미를 보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얼마전부터 구설수에 오르던 과학 이라는 것이 이곳에서는 더 우대 받겠지. 주술사, 너는 어쩌자고 이런 곳은 선택한거냐. 


사쿠나미는 고개를 들어올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과학이 발달되어있기는 하였지만,저는 당신이 작은 놈이라고 표현한 이를 지키기 위하여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지 결코, 이곳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이렇게 주술사를 홀대하는 땅에 있고 싶지 않아요. 만약 저 아이가 왕위에 오른다면 반드시 이곳을 떠날 것 입니다. 



남자는 웃기다는 듯이 배를 젖히며 웃었다. 너, 재밌는 놈이구나. 신계의 권력다툼에 관심을 가져야 될 주술사가 하계의 왕놀음 따위 때문에 선택하지도 않은 나라에 머물고 있다니. 


남자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는 모니와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거기 그 검은 머리, 조금 전의 실수는 용서해줄테니 내가 잠시 머물 곳을 마련해라. 저 주술사가 어떻게 하는가 궁금해서라도 여기 좀 더 있어야겠다. 


모니와는 갑작스러운 그의 지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숙였다.


제 무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스사노오는 변한 모니와의 태도에 약간 당황한듯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와는 얼마전에 비워두었던 별당을 떠올려내고는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열쇠를 꺼내들었다.

모니와는 그에게 다시 한 번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에게 말했다. 

식솔들에게 청소를 명해둘테니, 잠시 저의 주군의 처소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사쿠나미는 스사노오를 경외감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 스사노오, 여기로 오세요. 


코가네가와를 업고 있던 아오네는 사쿠나미의 뒤를 따랐다. 

아오네는 코가네가와의 궁에 다다라서야 그를 땅에 내려주었다. 코가네가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자신의 방 안쪽으로 총총거리며 걸어갔다. 스사노오는 코가네가와의 방 안을 둘러보고는 방 안쪽 벽에 기대어 앉았다. 독한 술을 받아마시다가 와서 그런지 속이 쓰려왔다. 코가네가와는 스사노오의 다리 위에 앉아 그에게 물었다. 스사노오는 대단하신 분입니까? 


사쿠나미는 코가네가와의 볼을 잡아당기며 그를 나무랐다. 대체 모니와의 수업 시간에는 뭘 듣는거야. 코가네가와는 아프다는 듯이 작게 신음을 하며 사쿠나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사쿠나미의 옷을 가르켰다. 코우스케, 추워보여. 


사쿠나미는 그제야 자신이 새하얀 속옷만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코가네가와의 이불 속으로 기어갔다. 아침부터 숲속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니 나른하니 눈이 슬슬감겼다. 사쿠나미는 웅얼거리며 코가네가와에게 말했다. 코가네, 나 여기서 좀 잘게.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사노오의 다리 위에서 굴렀다. 코가네가와 또한 많이 뛰어다녀서 많이 피곤한 것인지 

스사노오는 화들짝 놀라 코가네가와를 들어올렸으나 코가네가와는 어느새 잠에 빠져들어있었다. 스사노오는 한숨을 쉬고는 어색한 자세로 코가네가와가 깨지않게 품에 안았다. 주술사고 왕족이고 하나 같이 이상한 곳이였다. 보통의 국가에서는 주술사나 저런 어린 왕족을 이렇게 자유롭게 두지 않을 터였다. 스사노오는 이곳에 오기전에 코가네가와와 잠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분명히 아이는 자신을 여섯 번째라고 칭하였다. 어쩌면 왕위 다툼에서 밀려난 힘이 없는 놈일 수도 있었다. 


모니와는 별당에서 코가네가와의 궁까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모니와는 열려져 있는 코가네가와의 궁 안에서 펼쳐진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코가네가와는 태평하게 스사노오의 품에 안겨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사쿠나미는 그 잠시 사이에 스사노오를 내팽겨 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코가네가와의 도로롱거리는 숨소리에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스사노오도 새로웠다. 모니와는 방 안에 들어서서는 스사노오를 끌어안고 있는 코가네가와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펴고는 사쿠나미의 품에 안겨주었다. 새하얀 이불을 탈탈 털어낸 모니와는 코가네가와의 상을 들어 스사노오의 앞에 두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모니와는 코가네가와가 쓰던 붓을 들어올리고는 새로운 종이를 폈다. 그리고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무례에 대한 사죄로, 스사노오께 하계의 새로운 이름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남자는 흥미롭다는 듯이 붓을 잡고 있는 작은 소년의 앞에서 턱을 괴고는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모니와는 긍적적인 남자의 반응에 눈을 살짝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열어둔 창에서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남자는 정갈하고 작은 소년의 손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소년의 향인지 봄의 꽃 내음인지 모를 기분 좋은 향에 눈을 감고는 코 끝에 감각을 집중하였다. 


소년은 갑자기 나타난 스사노오라는 길일지 흉일지 모르는 존재에 대하여 몇 번 이고 곱씹었다. 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좋겠지. 버려진 줄 알았던 뒷방의 왕자 앞에 신비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스사노오가 어떤 이로든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왕자에게 신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내려준 것은 분명하다. 

모니와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올리고는 붓 끝으로 글자를 써내려갔다.  


'二口 賢治'


모니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붓을 상 위에 올려두었다. 모니와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종이를 양손으로 들어올려 소리내어 읽었다. 


후타쿠치 켄지. 


모니와는 눈을 감고 있는 후타쿠치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후타쿠치의 얼굴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모니와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생각에 잠겨있던 후타쿠치는 갑자기 눈 위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숨결에 눈을 번쩍 떴다. 눈 앞에서 보이는 것은 고양이 같이 작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였다. 후타쿠치는 바닥 위에 손을 짚고는 허리를 뒤로 뺐다. 후타쿠치는 소년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소년의 손에서 빼어내고는 소리내어 읽었다. 


후타쿠치 켄지.


어질 현, 다스릴 치 라 뜻 정말 좋구나. 이름은 좋은데, 왜 하필 성이 후타쿠치냐. 입이 두 개 라고?


모니와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말이 꽤나 많아보이니까요. 일부러 그런 겁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는 맥이 빠진다는 듯이 웃었다. 어린 녀석이 사람을 놀리냐.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눈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이름을 빌미로 주군을 위하여 당신을 최대한 이용할 것 입니다. 


후타쿠치는 소년의 당돌한 말에 살짝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기꺼이 이용당해주도록 하지. 


후타쿠치는 문득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풍겨오는 봄내음이 바깥의 바람에게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귀여운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내밀고 있는 소년에게서 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소년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모니와는 자신을 바라보는 다정한 눈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자신에게 그렇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였으나 모니와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뛴다는 것은 느꼈다. 신화집이나 역사서에 쓰여져 있는 스사노오는 항상 난폭하거나, 그 성정이 잔인하다고 쓰여져 있었다. 모니와는 실 없이 웃거나, 자신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후타쿠치를 보고는 그런 기록들은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




나무 위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후타쿠치는 한숨을 쉬었다.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저 위에서는 자신을 불러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이곳에서의 생활이 나쁜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잘못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근신처분을 한 것은 이번 기회가 처음이였다. 어쩌면 아카아시가 야치의 옆에 붙어서 바람을 불어넣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겁의 시간을 살아갈 자신에게 10년은 나름 신선한 경험들이였다. 인간의

아이가 얼마나 빨리 자라나는지 지켜보았고 하계의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악독한 사람으로 묘사하는지도 알았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멀리서 익숙한 향기가 풍겨왔다. 후타쿠치는 눈을 깜빡이고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후타쿠치는 나무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멀리서 모니와가 아오네와 무엇인가 이야기하면서 무거운 책들을 옮기는 듯 해보였다. 모니와는 아오네의 옆에 서 있으니, 평소보다 유달리 작아보였다. 후타쿠치는 가끔씩 그 작은 몸에서 풍기는 강인함에 놀라고는 했다. 분명히 생긴걸로 보나 직책으로보나 어느 귀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방에서 공부만 하면서 자라났을 것 같은데 실제의 모니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신인 사사야나 카마사키와 검술 대련을 벌여도 호각을 다투었고, 무거운 물건들도 번쩍번쩍 잘 들어올렸다. 후타쿠치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후타쿠치의 방에 들어갈 장롱을 지금보다 더 작았던 그 몸으로 번쩍 들어올렸을 때 후타쿠치는 모니와를 심하게 혼냈었다. 후타쿠치는 언제부터 자신이 모니와에게 반해 있었는지 떠올리지를 못했다.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던 일이라고 느껴졌다. 


후타쿠치는 어느새 다가온 모니와를 보고는 그의 옆에서 보조 맞추어 걸었다. 아오네는 후타쿠치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들었다. 모니와는 그런 아오네를 보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후타쿠치에게 말했다. 


갑자기 나타나는 그것 좀 그만하면 안되겠습니까?


후타쿠치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 그나저나 모니와, 아까 너가 걸어오는 걸 보면서 느낀 건데 코가네가와가랑 아오네는 나랑 만난이후 꽤나 많이 자랐는데 말이야. 너는 거의 변한 것 같지 않다? 


모니와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후타쿠치를 노려보았다. 그야, 아오네군은 대대로 검술을 배워왔던 집안이고, 코가네가와군은 성장기니까요.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어깨 위에 팔을 두르고는 옆에 서 있는 아오네를 보며 실없이 웃었다. 뭐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커지는 건 상상도 못하겠다. 

모니와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져있는 팔을 떼어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책 중에 한 권을 들어 후타쿠치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지금 놀리는 겁니까?


후타쿠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니와의 삐죽삐죽한 머리를 헝크렸다. 놀린다기 보다는 예뻐하는거지. 


딱히 예쁨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시간이 나신다면 저에게 이렇게 추파를 던지실게 아니라 코가네의 저 엉성한 자세를 고쳐주시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후타쿠치는 혀를 한번 차고는 활을 들고 있는 코가네가와의 안쪽 다리를 발로 차며 말했다. 다리는 조금 더 벌리고, 팔도 틀어졌다. 


코가네가와는 후타쿠치에게 맞고도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은지 바보같이 웃었다. 


사쿠나미는 그런 코가네가와를 보고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고소하다는 듯이 코가네가와에게 혓바닥을 살짝 내밀었다. 그러게 내가 틀렸다고 했지. 

사쿠나미는 천천히 걸어오는 모니와를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모니와씨! 


모니와는 자신을 부르는 어린 목소리에 코가네가와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손을 흔들고 있는 사쿠나미를 발견하였다. 

모니와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아오네에게 넘기고는 사쿠나미의 옆에 살짝 앉았다. 그리고는 후타쿠치에게 말했다. 이래서 사쿠나미가 제일 좋지 말입니다. 제일 애교스러워요. 


후타쿠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그야 주술사는 14살부터 성장이 멈추니까 외관이 어린애잖아. 시작점이 다르지. 혹시 몰라 사쿠나미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을지. 


모니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후타쿠치에게 물었다. 

후타쿠치는 몰랐습니까? 제가 사쿠나미의 성인식 때 참가해서 그 자리에 있었는데. 순진한 사쿠나미는 순전히 저의 말솜씨에 넘어왔을 뿐이죠. 


후타쿠치는 사쿠나미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히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뭐야, 주술사 너 코가네가와 때문에 여기에 왔다하지 않았냐. 


사쿠나미는 짖궂게 웃으며 후타쿠치의 팔을 살짝 때렸다. 그야, 스사노오는 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당장 저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셨을 것이니까요. 


후타쿠치는 사쿠나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때 기분 나쁘다고 사쿠나미를 데리고 떠나버렸으면 분명히 이렇게 즐거운 일들은 모두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 하계를 통채로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후타쿠치는 사쿠나미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모니와는 한숨을 푹 쉬며 잠에 빠져있는 후타쿠치의 몸을 흔들었다. 후타쿠치나 코가네가와, 사쿠나미는 어찌나 아침잠이 많은지 매일마다 그 셋을 깨우는 모니와는 고역을 겪고 있었다. 그 중에 최고의 난이도는 단연 후타쿠치였다. 코가네가와는 자신이 짐짓 엄한 투로 말하면 금새 일어나서 얼굴을 씻었고, 사쿠나미는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터라 이불에게서 떼어내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눈을 떴다. 하지만 후타쿠치는 달랐다. 자신이 엄한 말투로 타일러도 능글맞게 웃으며 모니와를 이불 속으로 끌어당기고는 했고, 그렇다고 이불을 떼어내도 자신을 이불 대용으로 쓰겠다며 달라붙었다.    


모니와는 한숨을 쉬면서 후타쿠치의 몸을 흔들었다. 후타쿠치, 일어나세요. 오늘은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셔야 되는 날 입니다. 


후타쿠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새하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인간의 행사 따위는 전혀 관심 없어. 나한테는 아침잠이 더 중요하다. 


후타쿠치는 금새 달아나버린 잠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색색 쉬었다. 매일 아침 모니와의 목소리를 들으면 밀려오던 잠도 전부다 달아나곤 했다. 하지만 금방 일어나는 것은 싫었다. 모니와가 자신을 깨울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좋았고 이 기회로 손을 만지거나 복실복실한 머리칼에 코를 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모니와는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는 작게 입을 열었다. 이불 옆에 앉아 말했다. 

켄지. 자꾸 그러면 저 화낼 거에요. 


후타쿠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이불을 살짝 내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후타쿠치는 붉은 귀를 하고는 당황한 투로 모니와에게 말했다. 하, 한 번 더. 


모니와는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작게 웅얼거렸다. 켄지. 



후타쿠치는 왕의 옆에 앉아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성인식이 이루어지는 날이라도 자신의 한가로운 아침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했다. 후타쿠치는 속에서 차오르는 욕을 꾹꾹 눌러담으며 한쪽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모니와에게 손짓했다. 오늘 아침의 일은 후타쿠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였다. 모니와는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이래로 단 한 번도 켄지라고 부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순순히 불러줄 것을 알았다면 진작에 왕에게 가서 큰 행사를 많이 만들라고 들들 볶았을 것인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하여 한탄했다. 모니와가 불러주던 켄지라는 이름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잔뜩 부끄러워하던 표정을 떠올리자 언짢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주술사에게 선택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인 만큼 주술사라는 꼬맹이와 여섯 번째 왕자의 성인식은 실로 신기한 일이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놀라워하던 것은 아마도 이곳을 수호하는 것 같다는 미친 신인 스사노오 였다. 여지껏 그 어떤 신도 이렇게 척박하고 산 중에 있는 다테를 수호해줄 생각이 없었다고 했는데, 어느 날 나타난 신의 영향인지 왠지 모르고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왕의 옆에 서있던 한 악사는 거대한 나팔을 불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쿠나미는 자신에게 쏠리기 시작하는 시선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왕의 옆에서 내려와 코가네가와의 앞에 섰다. 코가네가와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쿠나미에 자신도 마음을 고고는 고개를 들었다. 


사쿠나미는 몸을 살짝 숙였다. 사쿠나미의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얇은 망사가 흔들렸다. 

코가네가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필을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사쿠나미에게 내밀었다.  


사쿠나미는 코가네가와의 손에서 붓을 들어올리고는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옆에 있던 빨간 물감을 묻혀 코가네가와의 이마에 한자를 써내려갔다. 사쿠나미는 세필을 작은 접시 위에 올려두고는 그곳에 있는 작은 칼을 들어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코가네가와는 사쿠나미의 행위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쿠나미에 고개를 숙였다. 사쿠나미는 코가네가와의 얼굴을 잡고는 그의 이마 위에 있는 한자의 근처를 검지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펴 코가네가와의 이마를 문질렀다. 붉은 피와 검은 먹이 섞여 들어갔다.  


사쿠나미는 코가네가와의 이마에서 손을 떼어내고는 허리를 숙여 코가네가와의 콧잔등에 입을 맞추며 그에게 말했다. 성년이 된 후에는 왕자님이 원하는 일들을 모두 이루시길. 


코가네가와는 얼굴이 붉어졌다. 사쿠나미는 다시 허리를 일으키고는 정신이 반쯤 빠져있는 코가네가와에게 눈치를 주었다.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쿠나미에게 절을 올렸다. 코가네가와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현왕에게도 절을 올리고 스사노오에게도 절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는 술잔을 들고는 천천히 마셨다. 



사쿠나미는 코가네가와의 절을 받은 후에 걸음을 옮겨 후타쿠치의 옆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후타쿠치는 살짝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 돌아온 사쿠나미에게 물었다. 


마지막 그건 왜 했냐. 딱히 상관 없는 행동이였는데. 


사쿠나미는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사쿠나미는 자신의 검지 손가락에 새하얀 천을 감고는 말했다. 


코가네의 성년을 축하하는 제 선물이랄까요.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이런 의식을 구경하는게 다들 처음이니까, 살짝 끼웠어요. 


후타쿠치는 뚱한 눈으로 코가네가와를 내려다보며 자세를 고쳤다. 너 생각보다 영악하네. 


사쿠나미는 어깨를 들썩이며 후타쿠치의 말을 받아쳤다. 그러는 스사노오는 정말 요령이 없으시네요. 


후타쿠치는 사쿠나미의 말을 듣고는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사쿠나미의 머리를 주먹으로 살짝 내리쳤다. 그 정도 쯤은 나도 알고 있다. 



*







모니와는 누군가가 자신의 볼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살짝 떴다. 모니와는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코가네가와와 쏙 닮은 밝은 금발을 한 여성에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내뺐다. 그리고는 벽에 걸려있는 칼을 빼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후타쿠치는 그녀의 옷깃의 뒷부분을 잡고는 끌어당겼다. 애 자는데. 괜히 깨웠잖아. 


모니와는 한숨을 내쉬며 칼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모니와는 후타쿠치와 그녀를 번갈아 보다가 속에서 올라오는 미심쩍은 단어를 내뱉었다. 혹시, 쓰쿠요미님이세요? 


그녀는 모니와의 말에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스사노오가 아끼다 마지 못해 싸고 도는 인간이라길래. 그저 호기심에 잠시 내려온 것이였는데. 생각보다 좋은 관찰안을 가지고 있었다. 


쓰쿠요미는 환하게 웃으며 다리를 들어 후타쿠치를 발로찼다. 후타쿠치는 그녀의 기척을 알아차리고는 몸을 틀어서 발길질을 피했다. 쓰쿠요미는 바닥 위에 발을 올리고는 중심을 잡아서 일어났다. 

오라버니랑 좀 닮았나보네? 


후타쿠치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도대체 어디가? 


쓰쿠요미는 후타쿠치를 기필고 한대 치고 말겠다는 기세로 주먹을 들어 후타쿠치의 배로 가져갔다. 후타쿠치는 그녀의 주먹을 피하고는 다시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뛰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후타쿠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찡그렸다. 요즘은 사고를 친적도 없는데 귀찮게 이런 애물단지는 왜 내려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모니와가 만나보고 싶었으면 아마테라스가 직접 오면 될 것인데 항상 귀찮은 일을 많이 만드는  쓰쿠요미를 보냈다는 것이 짜증났다. 차라리 아카아시나 이나리 정도였다면 그냥 인사나 한 번 하고 돌려보낼 터였는데 쓰쿠요미는 이렇게 내려온 이상 어떻게든 모니와에게 수작질을 걸 것이였다. 


모니와는 투닥거리는 둘을 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둘 다 눈매라던가 많이 닮아 있네요. 후타쿠치가 여자가 된다면 꼭 저럴 것 같아. 


쓰쿠요미는 행동을 잠시 멈추고는 모니와에게 물었다. 후타쿠치? 


쓰쿠요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모니와에게 재차 물었다. 오라버나한테 후타쿠치 라고 한 거 맞지? 


모니와는 고개 갸우뚱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쓰쿠요미는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천하의 스사노오가 새로운 이름이라니 정말 야치의 말을 듣고 이곳에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쓰쿠요미는 숨을 헐떡이며 모니와에게 잠시만 자리를 피해달라는 말을 했다. 모니와는 그런 쓰쿠요미에게 다시 한 번 목례를 하고는 문을 열고 나왔다. 


쓰쿠요미는 방에서 나간 모니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많이 변했어. 



후타쿠치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쓰쿠요미, 그게 무슨 뜻이냐. 


쓰쿠요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말 그대로야. 스사노오, 당신 많이 변했어. 



쓰쿠요미는 자리에 앉아 쓰쿠요미는 고개를 들어올리며 웃었다. 야치에게는 스사노오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고 전할게. 아 근처에 이나리도 머물고 있다지? 거기도 다녀가야겠다. 


후타쿠치는 기분이 나쁘다는듯이 손을 뻗어서 쓰쿠요미의 목의 급소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쓰쿠요미는 이 상황이 웃기다는 듯이 꺄르르 웃었다. 사랑하는 오라버니, 당신이 아끼다 마지못해 사랑하는 저 인간은 꽤나 고지식한 것 같은데. 자신의 주군의 궁에서 살육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 


쓰쿠요미는 자신의 목에 있는 손가락을 떼어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에게는 이제 지켜야할 것이 생겼으니까. 최소한의 선은 지켜줘. 나한테는 아직 지켜야할게 없거든. 


후타쿠치는 쓰쿠요미의 말에 도저히 반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까닭을 듣고나니 마냥 기분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결코 듣기 싫은 어감은 아니였다. 오히려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쓰쿠요미보다 조금 더 우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사노오는 그제야 자신의 이곳으로 던져버린 아마테라스를 이해했다. 아마테라스는 그곳에 분명히 지킬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자신을 볼 때마다 그것들을 빼앗길까, 불안해하고 초초해 했을 것이다. 

후타구치는 배를 잡고는 소리내어 웃었다. 머지 않아 돌아갈 수 있겠네. 


쓰쿠요미는 방문을 거칠게 열고는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니와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모니와는 쓰쿠요미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방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쓰쿠요미는 모니와를 위 아래로 흩어보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방석 앞에 앉아보라고 말했다.  

모니와는 방석 위에 조심스럽게 앉아서는 쓰쿠요미와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분명 이유 없이 저를 부르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쓰쿠요미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모니와의 앞에서 턱을 괴었다. 역시 영특해. 예의도 바르고. 


모니와는 쓰쿠요미의 칭찬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감사를 표하였다. 쓰쿠요미야 말로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신 것 같습니다. 저 사람과 남매라는게 믿기지 않아요. 


쓰쿠요미는 꺄르르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모니와의 턱선을 한번 쓸어내렸다. 후타쿠치는 쓰쿠요미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는 괜히 수작부리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쓰쿠요미는 붉어진 후타쿠치의 얼굴을 보고는 깔깔거리며 모니와에게 말했다. 


자, 모니와 너는 우리 오라버니의 사정을 다 알고 있을테니까. 난 네 이야기가 듣고 싶어. 


모니와는 흠칫 놀라며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다가 쓰쿠요미에게 물었다.

 

쓰쿠요미,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것인가요? 


모니와는 가느다란 한 숨을 내쉬고는 앞에 놓여져 있는 차를 한번 마셨다. 벽에 기대어 서 있던 후타쿠치는 불안하다는 듯이 손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리고는 검지손가락으로 허벅지를 꾹 눌렀다. 모니와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후타쿠치를 올려다보았다. 후타쿠치, 같이 듣고 싶으면 들어요. 


쓰쿠요미는 불안해 하는 후타쿠치를 보며 그를 비웃었다. 아주 난폭하고 잔혹한 성정을 지니고 있던 스사노오를 이정도까지 길들인 인간이라니 실로 대단했다. 힘으로 모든 것을 내리누르며 상대의 위에 군림하던 스사노오는 이미 모습을 감춘지 오래인 것 같았다. 모니와는 쓰쿠요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입을 열었다. 


저는 단단한 성벽의 바깥에 작게 딸려있는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후타쿠치와 쓰쿠요미는 흠칫 놀라며 말 없이 모니와를 바라보았다. 모니와는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둘 다 표정이 그게 뭡니까. 별로 그렇게 슬픈 이야기는 아닌데. 


쓰쿠요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와의 눈에 집중하였다. 

모니와는 쓰쿠요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저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히 다정하신 분이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모니와는 목이 탄다는 듯이 상 위에 올려져 있던 찻잔을 들어 한모금 들이키고는 찻잔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어머니가 저를 출산하는 것을 도왔다던 노파는 죽어버린 어머니를 보고 놀랐기 때문인지 어린 저를 죽음의 기운이 가득 차있는 그 방에서 데리고 나와서는 한 처마 아래에 저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어가던 저를 살려주었던 것은 처마 끝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였습니다. 그 물방울로 목숨를 연명해가던 저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빈민촌의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빈민촌의 길에서 자라났습니다. 성벽 안의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기도 하고, 그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뒤지기도 하며 부모가 없는 여러아이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요. 저는 제 나이가 양손으로 세어지지 않을 만큼 자라났고 어느새 저는 빈민가 아이들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성 있게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낼 수 있고, 더 많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지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 날은 언제나와 같이 평화롭던 어느날 이였습니다. 갑자기 빈민가와 일반인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를 가르던 커다란 벽에 딱 하나 있는 문이 열린 것 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인지라 다들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단정한 사람들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문을 빠져나와서는 빈민가에서 풍기는 악취에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하지만 이내에 그들은 어떤 두루마리를 펴들고는 기묘한 장치 같은 것을 입에 대고는 말하기 시작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14살에서 17살 사이의 아이들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군요. 저는 제가 몇 살인지 기억을 할 수 없었지만 무엇에 이끌렸을까요.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온 아이들 앞에 서서 한명씩 한명씩 얼굴을 씻겼어요. 

어느새 차례가 되자 그들은 제 얼굴을 씻기고는 어떤 그림과 저를 비교하더군요. 그리고 제 손을 잡고는 빈민가의 모두들에게 해산하라는 말을 남기고 저를 끌고 성벽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혼례를 올리기 이전에 현왕과 밀애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저를 임신해버리시자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성급히 아버지에게 시집을 보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현왕의 사랑을 질투하셨는지, 반란은 도모하고 있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를 원하지 않으셨는지 그 사실을 현왕께 알렸고, 발각 된 후 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시고 어머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빈민가로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쓰쿠요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모니와에게 물었다. 


너의 어머니께서 반란을 알렸는데? 왜 도망을 가? 


모니와는 어째서 그런 사실들을 묻느냐는 듯이 당연하게 대답했다. 이곳의 법도로는 그런 것이 당연한 것 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자는 그 혈족과 식솔들까지도 모두 죽입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당연히 죽임을 당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현왕께서 은혜를 베풀어 어머니가 달아나신 것을 눈 감아주신 셈이죠. 


그리고 현왕께서는 저를 정식으로 왕위 후보에 올리려고 하였으나 저는 거절 하였습니다. 그렇게 큰 자리는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는 그렇게 피를 튀기는 것들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현왕께서는 저의 형제들, 지금은 저보다 높으신 분들이시니 높여야겠죠. 왕의 직계 아들들에게 저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저를 거두어들일 의사가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빈민가 출신에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기 전에 탄생했다는 그 꼬리표들 때문이였을까요. 모두들 자신들이 왕위에 가까워지는 것에 제가 해를 끼칠 것 같다고 느꼈는지 서로 눈치만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아주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이곳에 적응을 했는데 저를 찾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얼굴에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그 사실 하나로 저는 무너질 뻔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겨우 몇 마디를 할 수 있었던 코가네가와가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와서 제 옷자락을 꽉 잡았어요. 

그렇게 저는 코가네가와에게 선택 받았고 지금은 아직도 그의 보좌관으로 남아있습니다. 


 


쓰쿠요미는 생각보다 험난하게 살아온 스사노오의 정인에 눈시얼을 붉혔다. 쓰쿠요미는 눈꼬리를 훔치고는 모니와의 양손을 잡았다. 뭐야, 우리 오라버니 신부감으로는 아까운 사람이잖아. 성품도 착하고 똑똑하고. 


후타쿠치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는 쓰쿠요미에게 손을 내저었다. 신부감이라니, 무슨! 


쓰쿠요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 

설마 오라버니 혼자 짝사랑? 천하의 스사노오가?  

후타쿠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쓰쿠요미를 일으켜세우고는 문 밖으로 밀어냈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나가라. 


모니와는 조금 전까지 후타쿠치가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보고는 붉어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



사쿠나미는 빨개진 얼굴로 잔기침을 몇 번 하였다. 

모니와는 콜록거리는 사쿠나미는 보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쿠나미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생각보다 열이 많이 나는 것이 그냥 내버려둘 감기는 아닌 것 같았다. 모니와는 책을 덮고는 코가네가와와 사쿠나미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모니와는 책상 옆의 서랍을 뒤적거리다가 환약을 몇 알 꺼내서 사쿠나미에게 내밀었다. 사쿠나미는 얼른 돌아가서 이것을 3알 먹고 잠이라도 푹 자도록 하세요. 


사쿠나미는 빨개진 얼굴로 모니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코가네가와는 기운이 없는 사쿠나미를 보고는 몸을 숙였다. 



모니와는 투닥거리며 걸어가는 둘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고는 기지개를 쭉켰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모니와는 창가에 기대었다.  아직은 여름인지라 약간은 더운 기운이 풍겨왔다. 모니와는 한참 동안이나 바깥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고개를 돌려 쌓아두었던 책으로 눈길을 옮겼다. 얼마전에 왕의 허가로 아오바죠사이에 다녀왔다던 사사야가 구해다주었던 바깥 세상의 책이였다. 모니와는 그 중에 가장 위에 있는 책을 집어들고는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바깥의 신비한 문물들은 모니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모니와는 몇 번 깜빡이고는 이내 집중하여 책을 읽어내려갔다. 


나무 아래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후타쿠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 코가네가와와 사쿠나미를 보고는 코가네가와에게 소리쳤다. 


칸지! 오늘 수업은 벌써 끝난거냐? 


코가네가와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것이 후타쿠치인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소리쳤다. 


사쿠나미가 몸이 좀 안좋은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후타쿠치는 코가네가와의 말을 듣고는 모니와의 처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니와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들떴다.

후타쿠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모니와의 처소로 걸음을 빨리했다. 후타쿠치는 오늘도 활짝 열려 있는 창문쪽으로 걸어갔다. 역시나 자신의 예상과 같이 모니와는 창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후타쿠치는 턱을 괴고는 모니와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르지 못하게 뻗어있는 머리가 옅은 바람에 날렸다. 식솔들이 점심식사를 하러간 시간이여서 그런지 주위는 평소와 같지 않게 조용했다. 사각사각, 모니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작은 풀들이 바람에 흔들려 서로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초록색이 잘 어울리는 어깨가, 살짝 찢어진 눈매가, 고양이처럼 작은 눈동자가 싱그러웠다. 후타쿠치는 서책에 집중을 하고 있는 모니와를 바라보며 예전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평화를 느꼈다. 모니와의 고른 숨소리가 유독 귓가에서 크게 들려왔다. 후타쿠치는 눈을 살짝 감고는 유하게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집중했다. 지금이라면 왠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모니와가 용서해줄 것만 같았다. 


후타쿠치는 눈을 살짝 뜨고는 모니와의 턱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모니와의 입술 위에 입술을 붙였다. 모니와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떨어트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가슴이 쿵쿵 뛰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그 어떤 책에도  나와있지 않았고, 배운 기억도 없었다.  

모니와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스르르 감기는 후타쿠치의 눈을 보고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얼굴에서 열이 올랐지만 모니와는 그것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



사쿠나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코가네가와와 자신이 공부를 하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시름시름 앓는는 탓에 모니와가 오전의 수업을 빼주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늦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고 편안하게 일어났다. 모니와가 주었던 약이 효과가 좋았던 것인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이 아주 편해졌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손이 사쿠나미의 입을 틀어막고 풀숲 사이로 끌어당겼다. 시라토리자와 놈들인가, 사쿠나미의 머리 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사쿠나미는 여차하면 자신을 끌어당긴 이의 손바닥을 깨물어버릴 생각을 하고는 눈을 떴다. 사쿠나미는 자신을 끌어당긴 것이 코가네가와 인 것을 확인하고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사쿠나미는 코가네가와의 등을 손바닥으로 살짝 때리고는 말했다. 놀랬잖아. 

코가네가와는 사쿠나미의 입술 위에 검지손가락을 가져가고는 창가쪽으로 눈짓을 하였다. 사쿠나미는 코가네가와의 눈이 향한 곳을 바라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이유없이 부끄러웠지만 두 명 다 같은 성별을 가지고 있음에도 꽤나 보기 좋았다. 살랑살랑 날리는 후타쿠치의 머리칼도 수줍은 얼굴을 하고는 눈을 살짝 감는 모니와의 모습이 새로웠다. 매일 사고뭉치인 코가네가와를 쫒아다닌다고 바빠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였다. 사쿠나미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는 코가네가와에게 등에 기대었다. 코가네가와는 사쿠나미의 손을 들어올리고는 사쿠나미의 손바닥을 폈다. 그리고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우리도 할래? 

사쿠나미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는 코가네가와의 발을 세게 밟았다. 



코가네가와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후타쿠치와 서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모니와를 힐끗거렸다.  코가네가와는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내려두고는 손으로 턱을 괴었다. 사쿠나미는 점심 식사 후의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였는지 고개를 흔들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코가네가와는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모니와의 말을 끊어냈다. 모니와. 

모니와는 고개를 들어올리고는 코가네가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주군이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수상했다. 평소에 짖궂은 말을 생각없이 툭툭 내뱉는지라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코가네가와는 모니와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모니와는 후타쿠치를 좋아해? 


모니와는 흠칫 놀라며 코가네가와의 호기심에 가득찬 눈을 한 번 보고는 책으로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반쯤 가렸다. 모니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주군의 짖궂은 질문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졸고 있던 사쿠나미의 고개가 코가네가와의 쪽으로 기울었다. 코가네가와는 자신의 어깨에 겨우 닿는 사쿠나미의 머리 끝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사쿠나미의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옆으로 살짝 걷어주었다. 모니와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책을 내렸다. 

그러는 주군이야 말로 사쿠나미를 좋아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몰랐어? 내가 만약 왕위에 오른다면 궁중 주술사가 아니라 내 첩실로 들일거야. 


모니와는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코가네가와의 이마를 주먹으로 살짝 치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만약 사쿠나미가 싫다고 하면? 


코가네가와는 일순 얼굴을 굳히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일 없어. 만약에 그런 일이 있더라면 강제로라도 옆에 묶어둘거야. 


모니와는 코가네가와의 섬칫한 표정에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었다. 자, 오늘은 이정도까지만 하고 아직 어린 당신의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요. 


코가네가와도 모니와를 뒤 따라 빠르게 서책을 덮었다. 어째서 내가 어리다고 생각하는거야.


모니와는 웃음을 터트리며 팔로 바닥을 짚었다. 당신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저한테는 마냥 어린아이 같기만 하겠죠. 부모같은 마음이랄까요. 그리고 당신의 그 태도, 그건 정말 이해 할 수 없어요.


보내주어야 할 때를 알아차리는 것 또한 아름다운 사랑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코가네가와는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는 모니와에게 재차 물었다.


만약에 그 사람 또한 가고 싶지 않다하더라도? 


모니와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살짝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아직은 어리고 귀여운 왕자님이였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 않겠습니까. 


코가네가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무리 모니와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맞는 말이고,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피를 본 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사랑에 대한 그의 지론 만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사랑하는데 보내주어야하고 기다려야하는 것인가. 자신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묶어둘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높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코가네가와는 상 위에 책을 올려두고는 조심스럽게 사쿠나미의 머리를 떼어냈다. 그리고 사쿠나미를 자신의 등 뒤에 업고는 모니와에게 말했다. 모니와는 가끔씩 정말 유해질 때가 있어. 





*




이불 속에서 몸을 몇 번이고 뒤척이던 모니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마루에 살짝 앉았다. 며칠전부터 기분이 묘한게 밤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때문에 실수한 일들도 늘었고 어깨도 뻐근했다. 모니와는 어깨 위에 옷을 하나 걸치고는 마루 위에 앉았다. 

차가운 밤바람 때문에 그나마 조금 오던 잠도 다 달아나는 것 같았다. 오늘 밤도 편안하게 잠을 자기에는 글렀다 싶은 모니와는 눈 앞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달이 평소보다 유달리 커보였다. 모니와는 눈을 살짝 감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누군가가 모니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는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모니와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 후타쿠치.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옆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모니와가 이렇게 밤 중에 깨어있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모니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후타쿠치는 기뻤다. 후타쿠치는 긴 정적 속에서 입을 열었다. 


왜, 이 시간까지 이러고 있었어. 


모니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후타쿠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 며칠 전부터 밤이 되면 기분이 이상해서 잠에 들 수가 없습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모니와는 당황한듯한 얼굴로 후타쿠치를 나무랐다. 후타쿠치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귀를 막았다. 

모니와는 이내 포기했다는 듯이 후타쿠치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산중이기는 해서, 하늘에는 귀하다는 설탕 가루를 뿌린 것 마냥 별들이 가득했다. 모니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분명히 며칠전부터 생겨버린 묘한 벽을 깨기 위하여 후타쿠치는 이렇게 다가오는 터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후타쿠치는 저 멀리에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의 옆에 서 있었다. 모니와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집요한 사람이였다. 




모니와. 걱정하지마, 아무 일 없을거야. 


모니와는 눈을 살짝 뜨고는 후타쿠치를 내려다보았다. 그날 따라 달이 유난히 밝아 후타쿠치의 얼굴이 눈에 전부다 들어왔다. 후타쿠치의 눈에는 반짝거리는 별가루들이 비쳤다. 이상하게 가슴 언저리가 간질거려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후타쿠치는 팔을 뻗어 모니와의 볼 위에 손을 올리고는 한참동안이나 모니와를 바라보았다.후타쿠치는 허리를 살짝 들어올리고는 모니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좋아해. 


모니와는 얼굴을 붉혔다. 후타쿠치의 숨결이 닿았던 귓가가 화끈거렸다.  어쩐지 굳게 다짐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았다.   


*


모니와는 차분한 목소리로 서책에 적혀 있는 말들을 읽어내렸다. 사쿠나미는 언제나와 같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코가네가와는 요즘 들어서 철이 좀 든 것인지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

모니와는 흐뭇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며 책장을 한장 넘겼다. 


누군가가 문을 세게 두드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가네가와님! 


모니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에 손님이 올리는 없었고, 궁 안에서 코가네가와는 딱히 달가운 존재가 아니였다. 더군다나 현왕이 아무리 요즘 들어 코가네가와에게 관심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스사노오를 찾아낸 이유 때문이지 왕위에 올리고 싶다거나 무엇인가를 조언해주기 위한 부름이 아니였다. 코가네가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니와의 뒤에서 고개를 내뺐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현왕을 모시는 신하가 다급한 얼굴로 숨을 내쉬며 코가네가와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왕께서 위독하시다고 합니다. 


코가네가와는 그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방을 나섰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는 안되는 것이였다. 자신은 예전보다 훨씬 더 똑똑해졌고 아직 보여주지 못한 재능이 많았다. 

코가네가와는 그를 쫒아 달리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선택 받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자각 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는 선택 받고 싶다는 그런 열망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모니와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너무 이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칸지가 제대로 현왕의 눈에 들어갈 수 있을텐데. 유년시절부터 남 다른 촉은 유난히 좋은 편이였으니 며칠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던 것이 필시 이것 때문이였을 것이다. 



코가네가와는 그를 따라 뛰며 그에게 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가네가와에게 말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는 어느새 도착한 왕의 처소 앞에 급하게 멈춰서서 코가네가와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서 왕의 마지막을 배웅해주시고 오세요. 



*




코가네가와는 망연자실하게 돌아가신 선왕의 침실의 문을 닫았다. 형제들 모두 어딘가가 허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코가네가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추태를 다른 형제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코가네가와는 한참동안이나 걸어가다가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사쿠나미는 밖을 나갈 때면 언제나 올려야하는 새하얀 천을 머리에 올리고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벽 한구석에 기대어져 있던 우산을 들고는 밖으로 나섰다. 자신이 며칠 전에 꿈에서 보았던 것 처럼 코가네가와는 필시 울고 있으리라. 

사쿠나미는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는 마루에 서서 우산을 펼쳤다. 

사쿠나미는 천천히 코가네가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코가네가와의 콧등에 떨어졌다. 그 물방울이 소나기의 탄이라도 된 듯이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코가네가와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그곳에 대하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마치 자신의 눈물을 가려주고자 내리는 비 같았다. 


사쿠나미는 멀리서 보이는 코가네가와의 밝은 금발에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역시 몸이 상하는 것은 모르고 망연자실하게 울고 있었다. 


사쿠나미는 까치발을 들고는 코가네가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웠다. 코가네가와는 자신의 머리 위에 씌어진 우산을 보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쿠나미가 언제나와 같이 자신에게 믿음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코가네가와는 사쿠나미를 끌어안았다. 우산이 사쿠나미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울음 소리가 빗소리에 천천히 묻혀갔다, 사쿠나미는 천천히 굴러가는 우산을 응시하다가 눈 앞을 가리고 있던 흰 천을 들어올렸다. 사쿠나미는 시선을 돌려 서럽게 울고 있는 코가네가와의 눈 아래를 검지손가락으로 훔쳤다. 


온 힘을 다해 막아도 결국은 일어나버리는 일들이 안타까웠다. 

사쿠나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코가네가와에게 말했다. 


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주술사야. 


코가네가와는 붉어진 눈을 팔로 문지르고는 사쿠나미를 내려다보았다. 사쿠나미는 굳은 눈으로 코가네가와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 주위에는 너를 꽤나 예뻐하는 아주 높은 사람이 있어. 



*


모니와, 미안해. 

코가네가와는 자리에 앉아 모니와를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미안해, 전부다 내가 모자라서 그래. 어릴 때부터 모니와는 나만 믿고 있었을텐데, 이렇게 빨리 죽게해서 미안해. 


모니와는 코가네가와의 등허리를 천천히 두드리며 그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저는 겨우 죽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당신을 섬겨왔던 것이 아닙니다. 


코가네가와는 모니와의 품에서 한참 동안 울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모두를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성정이 잔혹한 셋째 형은 분명히 곱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였다. 이렇게 빨리 자신이 겨우 얻어낸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았다.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살짝 들어서 모니와에게 물었다. 모니와, 내가 만약 이 상황을 바꾼다고 다짐한다면 넌 나를 도와줄거야? 


모니와는 표정을 굳히고는 코가네가와를 떼어냈다. 모니와는 코가네가와의 얼굴을 보고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끔씩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거나 무서운 말들을 툭툭 내뱉을 때나 나오는 코가네가와의 숨겨진 얼굴이였다. 이러다가 무슨 큰 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식으로 왕이 된 당신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코가네가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니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나 자신을 곁에 있어주었고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모니와는 자신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살리고 싶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역시 먼 곳으로 보내두는 것이 맞는 일이였다. 


사쿠나미가 카라스노의 주술사에게 초대를 받았어. 


코가네가와는 잠시 한 숨을 내뱉고는 환하게 웃으며 모니와에게 말했다. 


사쿠나미를 잘 부탁해. 너 한 명 쯤은 사쿠나미를 호위한다는 핑계로 잠시 나갈 수 있을거야. 그 사이에 우리는 모두 죽어있겠지만 너는 며칠이라도 더 살아줘. 



*





후타쿠치는 예상외로 차분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니와를 보며 문가에 기대었다. 모니와는 시선을 책에서 떼어내지 않으며 후타쿠치에게 말했다. 


이제 칸지가 다툼에서 밀려났으니, 저도 머지 않아 숙청 당하겠지요. 


후타쿠치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스사노오가 뒤에서 버티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니와는 책을 내려놓고는 단호하게 후타쿠치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이미 하계에 속한 이가 아닌데, 이곳의 일에 관여하시려는 것 입니까?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 입니다. 한 없이 오랫동안 살아갈 당신에게는 저와 코가네가와군은 잠시 스치는 인연일 뿐, 사사로운 일에 연연하시지 마시지요.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말을 듣고는 모니와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모니와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후타쿠치의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하여 올려다보았다. 후타쿠치의 눈동자가 냉정을 잃은 듯이 파르르 떨렸다. 올곧다. 눈 아래에서 일렁이는 그 강직함이 너무나 짜증이 났다. 

자신의 가치를 계속하여 깍아내리는 모니와를 후타쿠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후타쿠치는 주먹을 꽉 쥐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애원해줬으면 했다. 울면서 그렇게 애원한다면 분명히 코가네가와도 아오네도 코가네가와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어깨를 세게 쥐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좋아해. 

모니와는 후타쿠치를 올려다보며 그의 볼 위에 한쪽 손을 올렸다. 후타쿠치는 그 손 위에 손을 겹치고는 모니와에게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야 너는 나에게 마음을 줄까. 


모니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숨을 내쉬었다. 답은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자꾸 물어보면 곤란해요. 말이라는 것이 한 번 내뱉으면 얼마나 무거운 무게를 가지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모니와의 귀를 자신의 가슴팍에 붙였다. 그렇다면 내가 특별히 네 몫까지 말해주도록 하지. 


모니와는 서글프게 웃었다. 모니와는 바보같은 후타쿠치의 고집에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어째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립니까. 


후타쿠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너를 두고 떠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





후타쿠치는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을 할 것이라는 것 쯤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코가네가와가 생각보다 마음을 굳히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한 후타쿠치는 문을 열었다. 


코가네가와는 후타쿠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코가네가와는 스사노오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앉았다.

코가네가와는 스사노오의 발끝에 고개를 조아리며 짐짓 진지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것은 칸지가 후타쿠치에게 하는 부탁이 아니라. 이 나라의 여섯 번째 왕자 코가네가와 칸지로써 폭풍의 신 스사노오노미코토에게 올리는 간청 입니다. 


후타쿠치는 한쪽 다리를 굽혀 코가네가와와 눈을 맞추고는 말을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왕으로 만들어주세요. 


후타쿠치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코가네가와를 내려다보았다. 


방법은 많아, 하지만 꽤나 피를 볼텐데.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굳은 눈으로 후타쿠치의 눈을 바라보았다. 상관 없어요. 저는 제 사람들을 지키고 싶을 뿐 입니다.


후타쿠치는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까딱였다. 계획은 있겠지? 


코가네가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가지런히 앉았다. 그리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본 결과, 선대 왕이 다음대 왕을 지목하고 즉위식과 나머지 일족들의 숙청은 일주일 이내에 이루어집니다. 


일단 선왕이 돌아가시고 삼일 동안은 형제들 모두 함께 장례를 치릅니다. 다시 이틀 위에는 새로운 왕의 즉위식이 거행됩니다. 그리고 6일째 날은 혈족들에게 새로운 왕이 베푸는 마지막 자비라며 하루의 시간을 줍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일어날 반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장이 될 수 있는 형제들은 모두 각자의 처소에서만 머무를 수 있게 합니다. 


저희는 이 하루를 모든 것을 뒤집을 기회로 사용할 예정 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사쿠나미가 제 식솔이였다하더라도 그에게 해를 입히지는 못할 것 입니다. 궁중 주술사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니까요. 그리고 사쿠나미는 며칠 전 카라스노의 주술사에게 그곳을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모니와는 잠시 사쿠나미의 옆으로 안전하게 빼돌릴 겁니다. 그 사이에 저희는 셋째 형을 죽입니다. 



만약 저희가 실패하더라도 사쿠나미와 모니와는 같이 도망갈 수 있습니다. 카라스노에 계속 머물러도 되고 근처의 아오바죠사이나 시라토리자와에도 망명을 요청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모니와가 카라스노에서 사쿠나미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희는  당신은 이 계획이 실패하더라도 그냥 모니와를 찾아서 다른 땅으로 떠나면 되는 것 입니다. 


후타쿠치는 자신의 턱 끝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쪽이든 모니와는 안전하다.그렇다면 이쪽에 힘을 보태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 왕이 된 인물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 감히 유년시절의 모니와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는 이였다. 자신은 감히 손대기에도 어려운 그런 존재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 만으로 이미 칸지를 제외한 일가는 후타쿠치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코가네가와는 생각에 잠겨있는 후타쿠치에게 고개를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한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스사노오께서는 아직 정해진 신관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사쿠나미를 당신의 신관으로 삼아주세요.


후타쿠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코가네가와를 내려다보았다. 감히 인간인 주제에 주술사와 자신의 계약을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주제 넘는 행동이였지만 좁아터진 머리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친우를 지킬 방법을 생각해냈을 코가네가와가 대견하게 여겨진 후타쿠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사쿠나미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후타쿠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후타쿠치는 자신의 손바닥을 단검으로 베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접시 위에 피를 쭉 짜냈다. 붉은 피가 솟구쳤다. 

후타쿠치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쿠나미를 힐끗 보았다. 


사쿠나미는 자신의 걱정거리 쯤은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저마저 다른 신님께 가버리면 후타쿠치는 몇 십년 뒤에 혼자 외로워할 거니까. 지금 당신 곁에 남는 길을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쿠나미는 손에 들고 있던 새하얀 천을 후타쿠치에게 내밀었다. 후타쿠치는 천을 받아들고는 작게 신음하며 자신의 손바닥을 칭칭 감았다. 하얀 천에서는 그와 대조되는 빨간 피가 묻어나왔다. 후타쿠치는 자신의 피가 한가득 담겨 있는 접시를 사쿠나미에게 내밀고는 재차 물었다. 난 다른 신처럼 한 곳에서 머무를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너에게 다정한 말을 건내주지도 못한다. 그래도 너는 나를 선택할거냐. 


사쿠나미는 접시를 받아들고는 후타쿠치에게 한 번 더 고개를 조아렸다. 제가 당신이 아니면 또 어떤 다른 신님께 속내를 다 터놓겠어요. 제가 선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사쿠나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접시를 들어서 입에 가져갔다. 사쿠나미는 혀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피의 향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천천히 삼켰다.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히 이 땅으로 올때까지만 해도 신님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대체 어떻게 얽혀버린 인연인지 주술사치고는 선구안이 꽤나 밝았던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사쿠나미의 입가에서 피가 한방울 흘러내렸다. 사쿠나미는 어느새 비어버린 접시를 바닥에 내려두고는 입가에 흘러내린 핏방울을 손끝으로 닦았다. 

후타쿠치는 접시 바닥에 조금 베어있는 자신의 피를 검지 손가락의 끝에 묻히고는 사쿠나미의 이마 위에 한자를 써내려갔다. 


설마 자신이 신관을 만들게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신관이라는 것은 걸거치고 귀찮은 잔소리나 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해왔고 신관 따위는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 했었는데 후타쿠치는 자신의 다짐을 이렇게 쉽게 깨어버릴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쿠나미처럼 같이 속내를 터놓을 존재라면 신관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쿠나미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후타쿠치에게 물었다. 저도 이제 며칠 뒤면 후타쿠치처럼 폭풍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건가요? 


후타쿠치는 자신의 손바닥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큼은 아니여도 나라 하나를 날려버릴 폭풍 정도는 끌어모을 수 있을거다. 이마에는 내 낙인도 생기겠지. 


사나운 스사노오의 신관이라니 저한테 아무도 말 못걸면 어쩌죠. 


후타쿠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바닥의 천을 더 단단하게 묶었다. 아니, 내가 신관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오히려 다들 호기심을 가질 걸. 


후타쿠치는 지켜야할 것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에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지켜야 할 것인 늘어났지만 그 기분은 결코 나쁜 기분이 아니였다.



*



모니와는 자신의 방문 앞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를 보고는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이내 자리에서 허리를 일으켜 등잔에다가 촛불을 붙였다. 모니와는 촛불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후타쿠치의 눈이 모니와의 시선과 얽혔다. 후타쿠치의 동공이 흔들렸다. 모니와의 눈동자가 후타쿠치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를 방 안으로 밀어넣고는 방문을 세게 닫았다. 그리고 벽 한 쪽으로 모니와를 밀쳤다. 


나는 지금부터 너를 강제로 범할거야.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등에 있는 옷의 매듭을 잡아당겼다. 


후타쿠치는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모니와의 옷을 끌어내리고는 모니와의 어깨 위에 입술을 붙였다. 역시 예전부터 풍겨왔던 꽃내음은 모니와의 살내음이였다. 후타쿠치는 그 여린 살을 살짝 깨물었다. 모니와는 눈을 감고는 후타쿠치의 등을 끌어안았다. 맨살에 닿는 벽이 차가웠지만 후타쿠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이상하게 뜨거웠다. 그가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것 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죽기 전에 잠시 마음을 주는 것 쯤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타쿠치는 물어뜯을 기세로 모니와의 입술을 탐하였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모니와의 입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얽혀들어간 혀는 전기가 통하는 것마냥 찌릿찌릿했다. 코 끝에 가득차오르는 살내음은 감격스러울 지경이였다.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옷자락을 움켜쥐고는 눈을 꽉 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왔다.  생소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다 이상했다. 모니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타쿠치는 눈을 살짝 떴다. 모니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후타쿠치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후타쿠치는 자신을 한껏 자책했다. 아무리 내일 중요한 거사를 남기고 있었도, 모니와는 내일 사쿠나미와 함께 먼 길을 오를 예정이였다. 


모니와는 옷을 추스르며 붉어진 얼굴로 후타쿠치를 올려다보았다. 

후타쿠치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다. 내일 일찍 카라스노로 출발한다지. 얼른 자.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옷자락을 잡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이 아니면 기회는 없습니다. 


후타쿠치는 한참 동안이나 모니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문을 닫고는 일렁이는 촛불을 후 불었다. 그리고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다리 사이에 앉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살짝 찢어진 눈 끝에 후타쿠치는 입을 맞추고는 모니와의 옷 안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둥근 어깨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모니와는 눈을 질끈 감고는 자신을 어루에 만지는 손길에 천천히 익숙해져갔다.




*




이곳이 노야씨가 선택한 카라스노군요. 풍요의 여신의 축복을 받은 곳 답게 아주 좋은 기운이 흐르고 있어요. 


스가와라는 사쿠나미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웃으며 말했다


스사노오의 선택을 받은 곳 만하겠습니까. 


그리고 스가와라는 모니와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신관님을 모시고 오신다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스가와라 코우시 입니다. 앞으로 여기 계시는 동안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모니와는 회색빛 머리를 가진 사내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사쿠나미는 싱글벙글 웃으며 눈 앞을 가리고 있는 하얀 면을 걷어내고는 스가와라에게 말했다.  


사쿠나미는 손을 가로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말도 마세요, 그가 얼마나 고압적인 인물인데요.  


스가와라는 사쿠나미의 농담에 웃음을 터트리며 안쪽으로 손짓 하였다. 자, 일단 왕과 이나리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먼저겠죠?

여기로 따라오세요. 






후타쿠치는 자신을 가로막는 한 대신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배를 잡았다. 꼴에 왕이라고 괜찮은 신하도 있구나. 후타쿠치는 칼 끝을 대신의 턱 밑에 가져가고는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저런 인간에게 너 같은 이가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지? 


그는 후타쿠치의 눈빛이 웃기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목을 내밀었다. 그의 목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를 선택한 덕분에 저는 이렇게 살아남았지 않습니까. 


후타쿠치는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그리고 그 선택 때문에 너는 곧 죽겠지. 


후타쿠치는 칼을 들어 사내의 배를 관통시켰다. 

손에 진득한 피가 묻어났다. 기분이 나빠졌다. 이렇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존재를 죽여본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였다. 가슴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후타쿠치는 그의 배에서 칼을 빼내고는 숨을 몇 번 몰아쉬었다.  후타쿠치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그를 보고는 문득 태어나서 처음 죽여보았던 멧돼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버지인 이자나기가 했던 말이 귓가에서 웅얼거렸다. 


너는, 앞으로 폭풍과 혼란을 관장하게 될 거니까. 조금은 잔인해도 괜찮아. 


후타쿠치는 머리 속에서 무엇인가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야치가 자신을 꾹꾹 눌렀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코가네가와의 형이자 선왕의 선택을 받은 새로운 왕은 온몸에 피를 칠갑을 하고 미친듯이 웃고 있는 후타쿠치를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몸을 떨었다. 


새로운 왕은 후타쿠치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공포에 잠겨 울부짖었다. 스사노오! 이렇게 하계의 일에 많이 관여한다면 하늘에 계신 이자나기께서 노하실 겁니다! 

후타쿠치는 허리를 숙여 겁에 질려있는 왕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칸지와 닮았어. 

왕은 후타쿠치의 그 한마디에 희망을 얻었다는 듯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 저는 칸지의 형제 입니다. 제가 죽는다면 그가 많이 슬퍼하겠지요. 

후타쿠치는 인상을 험악하게 찡그렸다. 더러웠다, 형제와 그의 친우들을 숙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이가 겨우 그 자신의 그 한 목숨을 위하여 바들바들 떨고 있는 꼴이라니, 인간은 한결같지 못하다.  

눈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너 뭔가 잘못 알고 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화가난 이유는 코가네가와 때문이 아니야.  


후타쿠치는 길다란 장검을 들어올려 눈 앞에 보이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을 베었다. 살과 살이 둔탁하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초록빛을 띄고 있는 옷 위에 잔뜩 튀었다. 후타쿠치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제 볼에 튄 끈적끈적한 피를 손등으로 훔쳐내렸다.  후타쿠치는 처참하게 늘어져있는 시체를 보고는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다. 역한 냄새가 밀려올라왔다. 후타쿠치는 검을 수직으로 들어올리고는 시체를 몇 번 이고 찔렀다. 이유 모를 쾌감이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지금 너를 죽인 내 이름은 스사노오가 아니다. 


후타쿠치는 검으로 잠시동안 왕이였던 인간의 머리를 베어내고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았다. 붉은 피가 머리에서 흘러내려 후타쿠치의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다. 

후타쿠치는 몸에서 떨어져나온 머리를 번쩍 들어올리고는 왕좌의 위에서 소리쳤다.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이름으로 명한다! 다음 왕은 다테의 여섯 번째 아들 코가네가와 칸지 이다. 그리고 대가로 스사노오는 앞으로 영원히 이곳의 안녕을 수호할 것이다! 


후타쿠치는 오른쪽에 걸어두었던 깨끗한 새 검을 뽑아들고는 그곳에 서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네놈들은 이 자리에서 사라졌으면 한다. 




모니와와 사쿠나미는 스가와라를 따라 길다란 복도를 걸었다. 초록빛이 가득한 다테와는 다르게 이곳은 주황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오랫동안 은은한 주황빛을 감상할 틈도 없이 스가와라는 도착 했다는 듯이 커다란 문 앞에 멈춰섰다. 


스가와라는 모니와와 사쿠나미를 보고 싱긋 미소를 짓고는 커다란 문을 세게 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스사노오의 신관님과 그의 보좌 입니다. 


사람들은 스사노오라는 그 이름 하나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쿠나미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천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황빛의 왕국의 정점에 군림하는 왕과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인 이나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이나리께 스사노오의 신관이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이나리는 사쿠나미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아래쪽에 앉아있던 왕은 꽤나 인상이 험해보였다. 그는 사쿠나미는 내려다보며 말했다. 니시노야씨가 당신의 칭찬을 그렇게 하더군요. 


사쿠나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내저었다.그냥 하시는 말씀이겠죠. 저야 말로 당신의 대단한 통치에 몇 번이고 카라스노를 눈 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카게야마는 날카로운 눈으로 사쿠나미를 노려보고는 다시 예의를 갖추어 입을 열었다. 당신 또한 니시노야씨와 이곳으로 왔으면 참 좋았을 것 같습니다. 


사쿠나미는 그의 말 아래에 박혀있는 칼날을 알아차리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제가 이곳으로 왔다면 스사노오의 선택을 받지 못했겠지요. 만약 그랬다면 저의 이용가치가 지금 처럼 높았을까요? 


카게야마는 사쿠나미의 말에 혀를 한 번 차고는 이내 모니와에게 시선을 돌렸다. 


요즘의 그곳의 왕께서는 주술사에게 선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학이라는 것에 매달리는가요? 


모니와는 고개를 한 번 숙이며 속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눌러담았다.


예, 그렇습니다. 혹시 아나요 그 과학 이라는 것으로 하늘도 날 수 있게 될지. 


모니와는 카게야마를 올려다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카라스노의 왕께 제가 개인적으로 협박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협박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술사와 둘이서 혈혈단신으로 타국으로 온 사신이 협박을 운운했다. 실로 웃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자세를 고치고는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모니와를 내려다보았다. 모니와는 카게야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 한 번 들어보지. 


모니와는 고개를 들어올리고는 올곧은 눈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테의 6번째 왕자인 코가네가와 칸지와 그의 식솔들의 망명을 요청합니다.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모니와의 옆에 서있던 사쿠나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모니와의 옷자락을 손으로 쥐었다. 모니와씨. 

모니와는 카게야마를 올려다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카라스노의 왕께서는 스사노오가 다테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다는 듯이 모니와를 내려다보았다. 모니와는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가슴팍 아래에 묶어져있는 끈을 풀어냈다. 모니와는 자신의 오른쪽 어깨 위에 걸쳐져 있는 옷을 끌어내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사쿠나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성급한 후타쿠치가 일을 그르쳤다. 그렇게 어제 빨리 잠자리에 드시라고 재촉을 했는데. 설마 잠자리가 이런 잠자리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가늘게 뜨고는 모니와에게 다가갔다. 모니와는 카게야마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니와의 뒷편에 서있던 타나카는 칼을 뽑아들고는 모니와의 목 뒤에서 겨누었다. 사쿠나미는 눈 앞에 있는 하얀 면사포를 걷어내고는 타나카의 쪽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사쿠나미의 이마에 세겨져있는 각인이 옅은 빛을 냈다. 그리고 칼을 들고 있는 타나카의 팔이 인위적인 힘에 의하여 떨려왔다. 


스사노오를 모시는 신관으로써 이나리의 아래에 있는 그대에게 명합니다. 스사노오의 정인에게 손끝하나라도 상처가 난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사쿠나미는 왕의 뒤에서 고고하게 서있던 시미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미즈는 뚱한 표정으로 사쿠나미를 내려다보며 눈 앞을 가리던 천을 들어올렸다. 확실히 오라버니한테는 아까워. 


사쿠나미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이나리께서는 그가 얼마나 성급한 인물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앞뒤 사정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곳을 지도 속에서 지워버리겠지요.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는 모니와에게 다가가 그의 낙인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았다. 

카게야마는 모니와의 각인 위에 길다란 손가락을 살짝 올렸다. 그리고는 타나카에게 손짓을 하였다. 타나카는 미간을 찌푸리며 칼을 내렸다. 모니와는 올곧은 눈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관이 아닌 자에게 어떨 때 신의 낙인이 생기는지 왕께서는 아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이나리께 한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시미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한번 깜빡였다. 


이나리께서 알고 계시다싶이 다테는 주술보다는 과학에 의존하여 발전해온 나라 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훨씬 발전도 더디고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다테가 산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왕은 자신의 자식들 중에 가장 왕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지목합니다.  지목당한 인물이 왕위에 오른 다음에는, 


모니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단상 위에 있는 시미즈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형제와 그를 따르던 식속들을 모두 숙청합니다. 그리고 형제의 피로 쌓아올려진 단단한 왕좌 위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렇게 왕이 된 이는 형제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라도 폭정을 펼치지 못합니다.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진짜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따르죠. 


모니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가 모시고 있는 주군은 선왕의 선택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구걸하고자 저를 담보로 협박 하는 것 입니다. 


카게야마는 시미즈를 올려다보다보며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시미즈를 모니와를 한번 내려다보고는 뚱한 목소릴로 입을 열었다. 굳이 여기로 도망칠 필요 없어.


모니와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미즈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마저 스사노오를 그렇게 낮게 보는 것입니까! 


시미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니와에게 말했다.오라버니 성질이라면 내가 더 잘 알아. 네 주군은 이미 왕좌 위에 올라서 있는데, 어째서 너는 이곳으로 온거지?


모니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쿠나미는 큰 일이 났다는 듯이 자리에서 입술을 세게 꺠물었다. 모니와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어딘가 어색하던 카마사키의 태도와 성밖의 대장간에서 새로운 검을 마련하던 아오네의 행동을 신경써서 살펴보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사쿠나미는 모니와의 옷자락을 잡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모니와는 사쿠나미의 손목을 잡고는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알고 있었어? 


사쿠나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결코 이런 방법으로 칸지를 왕위에 오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반란이라는 것 때문에 유년시전을 통채로 잃어버린 자신은 또 이런 비극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왕의 결정에도 불복하지 않았고, 후타쿠치의 물음에도 화를 내었었는데. 


현기증이 났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가장 먼저든 생각은 이나리의 말처럼 카라스노에서 있을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아니 후타쿠치가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야했다. 




*








모니와는 불길이 치솟는 궁의 안쪽을 보고는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얼룩 덜룩한 붉은 자국들이 가득했고,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끔찍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였다. 모니와는 밀려오는 토기에  입을 틀어막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광경 따위 절대 보고싶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마지막인 일곱번째가 머물고 있는 궁의 문을 발로 찼다. 이미 소식을 듣고 어디론가 도망을 간 것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앞머리를 쓸어넘기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빨리 일을 끝내야 모니와가 돌아오기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인데.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하나같이 죄다 자신을 귀찮게 했다. 후타쿠치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후타쿠치는 눈을 다시 뜨고는 주위를 살폈다. 안쪽에서는 급하게 달아난 티가 역력한데, 이상하게 커다란 장롱하나만 전혀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후타쿠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장롱의 문을 열었다. 칸지보다도 훨씬 어려보이는 아이가 장롱 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후타쿠치를 독기서린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후타쿠치는 아이의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칼끝을 아이의 목 아래에 대었다. 아이는 한참동안이나 후타쿠치를 노려보다가 악에 받힌 목소리를 후타쿠치를 향해 소리쳤다. 


 스사노오, 당신을 절대 용서받지 못할겁니다!


아이는 여린 손으로 자신의 목 끝에 걸쳐져 있는 칼을 치워내고는 후타쿠치를 지나쳐 달려갔다. 아이는 피가 떨어지는 손을 잡고는 코가네가와의 궁으로 달렸다. 

후타쿠치는 가소롭다는 듯이 천천히 걸어서 아이의 뒤를 쫒았다. 후타쿠치가 지나가는 길의 잔디는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그는 숨을 옅게 내뱉었다. 몸이 나른한게 피곤했다. 얼른 이 기분나쁜 피들을 씻어내고 모니와를 끌어안고 싶었다. 


아이는 평소 모니와가 머무르던 곳의 앞에 서서 품속에 숨겨두었던 화약을 꺼냈다. 그리고 후타쿠치가 보란듯이 그 궁을 향하여 던졌다.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커다란 불길이 치솟았다. 

아이는 자리에서 미친듯이 웃었다. 아이는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는 숨을 몇 번 몰아쉬었다. 절대 혼자로 죽을 수는 없었다. 만약 이자리에서 사라지더라도 스사노오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앗라. 영악한 아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상이였다. 


후타쿠치는 커다란 폭발음에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아직 어린 놈이라 제일 고통없이 죽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건만, 건방진 자식이 저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감히.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어린 자신에게는 이미 왕이 될 기회따위는 돌아오지 않을것이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후타쿠치는 아이의 위에 올라타서 칼로 아이의 배를 몇 번이고 찔렀다. 아이는 피를 토해내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후타쿠치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칸지 따위를 선택한 것 입니까. 



후타쿠치는 아이의 목을 세게 쥐고는 광기에 찬 눈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연모하는 사람의 주군이 칸지였을 뿐이다. 


아이는 손을 뻗어 후타쿠치의 얼굴을 때렸지만 후타쿠치는 더욱더 매섭게 아이의 목을 졸랐다. 여린 아이의 목에 새파란 멍자국과 후타쿠치의 손에 묻어있던 피가 얼룩졌다. 아이는 몇 번 버둥거리다가 이내 눈을 꽉 감았다. 아이의 힘없는 손이 땅에 떨어졌다. 후타쿠치는 매서운 눈으로 죽은 아이의 시체를 몇번이고 찔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타오르는 궁을 허망하게 올려다보았다.

불길이 치솟았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매서운 불길이 더욱더 붉어보였다. 그것은 피였다. 이미 정해진 일을 번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연인을 위하여 자신이 베어버린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내리는 벌이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꺼버릴 수도 있지만 후타쿠치는 불타고 있는 작은 보금자리 앞에 서서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어쩌면 폭풍을 관장하는 자신이 이 땅을 밟은 순간부터 예정되어있던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후타쿠치는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니와를 보고는 손에 힘을 풀었다. 후타쿠치의 손에서 무수히 많은 살인을 저지른 검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땅 위에 떨어졌다. 모니와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은 듯이 흔들렸다. 후타쿠치는 피가 잔뜩 묻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고는 모니와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타쿠치는 빠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오랜만에 피를 보아서 이성을 잃어서 그런 것인지 모니와에게 미움을 받을거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가슴이 과하게 뛰었다. 

분명히 도망갈거라는 후타쿠치의 예상과는 다르게 모니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충격을 받아서 그럴 것이다. 이런식으로 무수한 살육을 저질러 왔던 이가 여지껏 자신의 옆에 서 가증스럽게 웃고 있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할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아무리 모니와가 강인해도 이런 정신적인 충격이라면 누구라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마음을 내준이가 자신을 미워한다면 어쩌면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이렇게까지 미치자 후타쿠치는 자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차라리 아무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차지 할 수 있게 노력할 수 있지만 미움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후타쿠치의 머리 끝에서 핏방울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코가네가와의 작은 궁에 딸려 있는 항상 꽃내음을 풍기고 있던 작은 방은 화염에 휩싸인체 활활 타올랐다. 작은 꿈이 그 작은 보금자리와 함께 타들어갔다. 




후타쿠치의 눈이 언제나 올곧고 강직하던 모니와의 시선과 얽혔다. 


모니와는 자리에 한참 동안이나 서서 후타쿠치의 떨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사랑받고 싶어하던 가련한 신의 옷에서는 핏물이 가득 흘러내렸고 보기 좋던 갈색빛 머리카락은 제 색을 감춘지 오래인듯 하였다. 피를 보고 흥분해버린 그 신의 눈동자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인지 자신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모니와는 자리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니와는 평소에는 한 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신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는 안도했다. 이상했다, 원래라면 자신 하나 때문에 이렇게 무수한 살육을 저지른 이가 징그러우면 징그러웠지, 반가울리는 없었는데  자신을 위해서 돌아와준 스사노오, 아니 후타쿠치가 다시 이곳에 돌아와줘서 기뻤다. 

모니와는 자리에 서서 후타쿠치를 향하여 팔을 벌렸다. 

후타쿠치는 떨리는 눈으로 모니와를 내려다보았다. 후타쿠치는 눈가에 눈물을 메달고는 모니와를 거세게 끌어안았다. 


모니와는 옷소매를 손으로 움켜쥐고는 후타쿠치의 뺨에 흥건하게 묻어있는 피를 닦아내렸다. 당신이 괘씸해요.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평소와 다름 없었다. 후타쿠치는 밀려오는 안도감에 모니와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모니와의 어깨에 묻었다.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피에 젖어 끈적끈적한 후타쿠치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났지만 상관없었다. 흐드러지는 꽃내음과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들었다.  


후타쿠치의 눈꼬리에 방울방울 매달려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화났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 미워하지마. 


모니와는 자신의 품에 있는 마냥 어린아이같은 서투른 신의 투정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화내고 싶지만, 저도 제가 당신 몰래 숨겼던 일이 있으니까. 용서해줄게요.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단칸방의 앞에서 후타쿠치는 한참동안이나 모니와를 끌어안고 죄책감을 토해냈다. 



*



야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아카아시에게 말했다. 


아카아시, 지금 스사노오가 엄청난 일을 벌였어요. 어쩌죠, 역시 당장 불러들여야겠죠. 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나 많은 사람을. 

저기 저렇게 둘게 아니라, 당장 불러들여야겠어요. 






온나라를 들썩이게 한 커다란 사건 이후로 정리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테의 커다란 벽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실 왕이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그들에게 왕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다테라는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 왕이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반란의 씨앗을 저지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법도에 따르고 자신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새로운 이에게 열광했다. 어쩌면 벽 안에만 갑갑하게 갇혀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은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였다. 



후타쿠치는 이불 위에 누워서는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빠졌다. 후타쿠치는 그제야 자신이 이 하계에 머물렀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작고 여리던 어린아이는 마음을 먹고 남의 자리를 빼앗을 정도로 잔혹해졌고, 한낱 주술사의 일족에 불과 했던 어린 아이는 한 신을 모시는 신관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계속해서 연심을 품어왔던 아이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강인해져 있었다. 며칠간 충격에 빠져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모니와는 자리를 금방 털고 일어났다.  모니와는 후타쿠치, 코가네가와, 사쿠나미를 비롯해 아오네, 카마사키, 사사야 까지 자신에게 이런 중대사를 숨겼던 식속들을 모두 혼냈다. 그리고는 새로운 왕을 위하여 질서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니와는 생각보다 강한 존재였다. 후타쿠치는 얕게 숨을 내쉬었다. 머리 속이 복잡했다. 



스사노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신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거에요. 


스사노오는 대뜸 자신의 머리 속에 울려퍼지는 야치의 목소히에 

허탈하게 웃으며 팔로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 역시 이렇게 바로 호출이 올 정도면 큰 잘 못을 한것이 맞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니와가 무사히 다가오던 장면이 계속해서 되풀이 되었다.

후타쿠치는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리며 야치에게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테라스, 아니 히토카. 나도 새로운 이름이 생겼어. 


야치는 후타쿠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름이 중요할 때 입니까! 어, 이름?

오라버니께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는 말입니까?


어, 내가 정말 아끼는 아이가 선물했던 이름이야. 내일부터는 이 이름으로 불러줘. 


야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그 이름을 제가 물어도 괜찮을까요?


후타쿠치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켄지, 후타쿠치 켄지. 


정말 좋은 이름이네요. 정성스럽게 지은 것 같아요. 


후타쿠치는 자신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야치에게 말했다. 


그렇지? 머지 않아 돌아가면 우리 아마테라스랑 스사노오가 아니라 야치 히토카랑 후타쿠치 켄지로 이야기 하자. 너랑 이야기 하고 싶은게 많아. 


야치는 환하게 웃으며 후타쿠치에게 화답했다. 


오라버니, 아카아시와 함께 기다리고 있을게요. 천천히 돌아오세요. 


후타쿠치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다. 야치에게 말은 해뒀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마음이 통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는 싫었다. 하지만 야치와도 해야할 이야기가 많았다. 용서를 빌어야 할 일도 있었고 축하해주어야 할 일도 있었고, 벌을 받아야할 일도 많았다. 




후타쿠치는 모니와가 정사를 보는 본궁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산 중에 위치한 곳 답게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같이 빛났다. 매일 같이 작은 별궁에 갇혀있던 코가네가와는 자신들의 식솔들을 데리고 본궁으로 들어가버렸다. 왕으로써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였으나 후타쿠치는 그것에 이유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모니와고 아오네고 모두 다 분주해져서 자신과 전처럼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어찌보면 그 일에 제일 기여를 한 자신이 찬밥신세를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지만 어쨌든 모두다 살아났으니 그걸로 괜찮다고 후타쿠치는 생각했다. 


후타쿠치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커다란 본궁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후타쿠치는 활짝 열려 있는 모니와의 방의 창문을 보고는 그곳에 다가가 턱을 괴었다. 꼭 처음 입을 맞추었을 때가 떠올랐다. 


모니와는 쌓여있던 서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인지 후타쿠치가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후타쿠치는 작은 세필로 글자를 써내려가는 모니와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가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바쁘게 움직이던 모니와의 손이 멈췄다. 모니와는 고개를 들어 후타쿠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후타쿠치는 모니와에게 손을 내밀고는 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를 배웅해주지 않을래? 


모니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후타쿠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갑작스러웠다. 언젠가는 떠나가야할 이라는 것은 이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도 언제든 해두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손을 깍지껴서 잡고는 실없이 웃었다. 

늦가을의 시린 바람과 대조되게 하늘은 정말 맑았다. 나무에서는 낙엽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손을 잠시 놓고는 책상을 돌아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후타쿠치에게 다가갔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손을 다시 잡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처음 시작했던 곳에서 끝내자. 


그리고 후타쿠치는 자신이 처음 떨어졌던 곳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따뜻한 손을 꽉 잡았다.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는 말이 목구멍 끝가지 차올랐다. 



후타쿠치는 한참 동안이나 걸음을 옮기 다가 한 자리에 멈춰거 모니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입을 열었다.


정해져 있던 것을 너무 많이 바꿔버렸으니까, 아마 네가 죽기 전까지는 다시 이곳에 돌아오지 못하겠지. 어쩌면 죽은 후에도 한참동안은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니와는 담담한 표정으로 후타쿠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앞에 서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너에게 저주를 하나 걸고 싶다. 평생, 아니 네가 죽은 후에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속박이야. 


모니와의 눈꼬리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왼쪽 가슴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 손바닥에서는 옅은 색의 빛이 조금씩 세어나왔다. 모니와는 서글픈 마음을 추스르며 물기에 촉촉히 젖은 눈으로 후타쿠치를 올려다보았다. 


내 이 눈에 너의 연심을 받아가지.네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더라도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할거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작은 단검을 뽑아들고는 자신의 엄지손가락 위를 살짝 베었다. 후타쿠치는 그 엄지손가락으로 모니와의 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으로 훔쳤다. 후타쿠치의 손에서 세어나오는 붉은 피가 모니와의 눈 아래에 얼룩졌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모니와의 손을 부드럽게 들어올리고는 손등 위에 입술을 붙였다. 


모니와는 후타쿠치가 잡고 있지 않은 손을 들어올려 눈가를 문질렀다. 모니와가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그 연심, 당신에게 기꺼이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에게 어떤 것을 해주시겠습니까. 


후타쿠치는 단검을 들어올리고는 모니와의 손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의 엄지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왼쪽 눈 아래를  흩었다. 


내 첫 번째 이름, 스사노오(須佐之)를 너에게 바칠게.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나는 네가 몇 번이고 내 곁에서 멀어지더라도 변함없이 후타쿠치 켄지로 살아갈거야. 


모니와는 허리를 숙여 후타쿠치의 이마에 입술을 살짝 붙였다 떼어냈다. 


달이 참 아름답네요. 


후타쿠치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니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반대손으로 모니와의 눈을 덮었다. 

후타쿠치는 고개를 모니와의 어깨에 묻고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죽어도 좋아.  



모니와는 양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후타쿠치의 손목을 잡았다. 거센 바람이 모니와의 볼을 때리기 시작했다. 길다란 옷자락이 펄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니와가 다시 눈을 가늘게 떴을 때는 이미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이는 사라지고 난 후 였다.

폭풍처럼 나타난 사람은 지울 수 없는 큰 자국을 남기고는 산들 바람을 타고 떠나갔다. 






*












사쿠나미는 이곳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사 앞에서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사쿠나미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는 문을 열었다. 

사쿠나미는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는 신사 안쪽에 앉아 있는 이를 확인했다. 거의 매일 꿈속에서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였다. 사쿠나미는 한참 동안이나 후타쿠치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조금은 변한 것 같았다. 요 근래에 천계에서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싸움도 하지 않고 술도 멀리하게 되었다고 소문이 퍼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름을 한낱 인간에게 주어버렸다는 소문 또한 파다하게 퍼졌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있는 사실이지만 사정도 모르는 타인들이 그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떠드는 것은 아주 기분이 나쁜 일이였다. 


후타쿠치는 비어 있는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는 사쿠나미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얼마만이지. 


오랜만입니다. 스사노오, 그 동안 몸은 건강하셨는지요?


후타쿠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사쿠나미에게 다가오라며 손짓을 했다. 너까지 그렇게 정없이 스사노오라고 부르냐. 이미 내 신관은 너 인데.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쿠나미는 앞에 깔려있는 방석에 힘없이 앉으며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후타쿠치, 모니와씨가 다음 달에 권세가의 아가씨랑 혼례식을 올린데요. 


후타쿠치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과자를 집던 손을 살짝 멈추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그것을 들어올려 입에 넣었다. 


왕의 유능한 제 1 보좌관이니 당연한 일이지. 마침 나이도 결혼적령기고. 


사쿠나미는 과자가 올려져있는 책상을 쾅 소리나게 내려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후타쿠치! 모니와씨가 스사노오 당신의 낙인을 달고 다른 여자랑 혼례를 올린다니까요! 나도 반대하고 코가네도 모니와씨가 바라지 않는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이건 당신의 신관인 나로써는 도저히 괴씸하고 분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8년마다 이곳에 올 수 있는 당신을 무리해서 소환한 것 입니다! 


후타쿠치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태연하게 술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소환해준 건 참 고맙네. 정 그러면 지금 데려와. 낙인은 지워주도록하지. 


사쿠나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후타쿠치를 말 없이 노려보았다. 후타쿠치는 그런 사쿠나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후타쿠치를 바라보던 사쿠나미는 이내 눈가에 물방울을 메달고는 악에 받혀 소리쳤다. 제가 그런 걸 바란답니까! 당신이 코가네한테 뭐라고 말씀하세요! 아니면 저한테라도 반대의 말씀을 하시란 말입니다, 당장이라도 가서 그걸 말리게요! 


사쿠나미는 억울하다는 듯이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당신이나 모니와씨는 욕심을 낼 줄 모르는 것 입니까. 어째서! 


후타쿠치는 한숨을 쉬고는 눈을 가리며 울고 있는 사쿠나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편하게 해주겠다고 신관으로 뽑은 주제에 마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사쿠나미는 후타쿠치를 노려보며 훌쩍거렸다. 제가 바라는 건 사과 같은게 아닙니다. 애초에 신관이라는 것은 자신이 모시는 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게 마땅한 의무 입니다. 그러니까 얼른 뭐라고 말씀해주세요. 


사쿠나미는 밀려오는 서러움에 작은 상에 엎드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를 많이, 아주 많이 그리워한다. 모니와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후타쿠치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 가끔씩 창밖을 보고 앉아 우수에 가득찬 눈빛으로 가늘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다. 그런데 후타쿠치는 모니와에게 자신이 가끔이나마 하계로 내려올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라고 한다. 모니와는 공식적인 일이라도 스사노오나 후타쿠치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의사 따위는 섞이지 않은 혼례까지 올리려고 한다. 분명히 자신의 속에서 후타쿠치의 안타까움과 분함이 느껴지는데, 어째서. 


후타쿠치는 사쿠나미의 어깨를 토닥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외롭게 늙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례도 올리고 자식도 만들고 나는 떠올릴 겨를도 없이 행복해지는게. 내 바램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서럽게 울지마라. 명색에 스사노오의 신관인데 너무 위엄 없어보이지 않냐. 


그리고 그 아이가 죽기 직전에 잠시나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주기만 해도 나는 그걸로 앞으로 몇 천년이고, 몇 만년이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쿠나미는 후타쿠치의 옅은 미소를 보고는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바보, 당신은 정말 바보에요. 


후타쿠치는 소리내어 웃으며 사쿠나미의 이마에 주먹을 콩 소리나게 부딪혔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사의 뒷문을 활짝 열었다. 후타쿠치는 구름이 몇조각 섞여있지 않은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살짝 웃었다. 후타쿠치는 뒤를 살짝 돌아 울고 있는 사쿠나미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나 없는 동안 좀 수고해라. 다시 갈게. 


아, 그리고 이건 명령인데. 그 아이가 혼례를 올릴 때 너는 꼭 참석해서 나 대신 내 이름을 걸고 앞길을 축복해줘. 



사쿠나미는 미련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와는 작은 뜰을 천천히 배회했다. 혼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물론 동의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아주 많이 그리웠다. 하지만 그의 신관이라는 사쿠나미 또한 소식을 듣고 있지 못한다고 하니 이제는 진짜 보내주어야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하늘이 유독 맑은 것 같았다. 모니와는 그가 떠난 이후 처음으로 사당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닿을지 닿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에게 자신의 혼례를 직접 알리고 싶었다. 모니와는 한숨을 쉬며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작은 사당에 자리에 잠시 멈춰섰다. 

모니와는 사당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아,그립다. 굳센 바람같은 사람이 그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떠올려도 한 없이 그립기만 하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저 위쪽에서 자신의 눈물을 거두어들이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와는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신사의 뒷문의 거칠게 열렸다. 모니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신사의 뒷문을 감히 함부러 여는 이라니 그렇게 겁도 없는 사람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모니와는 문득 자신의 볼에 살짝 바람이 닿는 것을 느꼈다. 

모니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익숙하다. 분명히 익숙하다. 그가 떠나기전에 불었던 바람이 분명하다. 그리고 사당의 뒷문에서 계속해서 그리워했던 꿈에서나마도 볼 수 없었던 이가 걸어나왔다. 모니와는 무엇인가에 홀린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목구멍에는 무엇인가 걸린 것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안돼, 가지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만. 목구멍에서 다급한 단어들이 웅얼거렸다. 

모니와는 그제야 잠시 서있었던 자신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모니와는 무엇인가 홀린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감기는 옷자락이 거슬렸다.


모니와는 천천히 눈에 담기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모니와는 팔을 들어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는 자신의 눈을 문질렀다. 

목에서는 쇠를 긁는 것과 같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후타쿠치. 



후타쿠치는 절대 잊어본 적이 없었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후타쿠치는 자신을 향하여 달려오는 모니와를 보고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칼이 조금 더 길어졌다. 얼마 후에 혼례를 올린다더니 전보다는 조금 더 남자다워진 것이 티가 났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후타쿠치는 그제야 흝어지기 시작하는 자신을 보고는 서글프게 웃었다. 이번에도 만나지 못하겠구나. 


후타쿠치의 손이 모니와에게 닿기 전에 사르르 흩어졌다. 



아아,


그제야 제대로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목소리에 모니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타쿠치, 후타쿠치, 후타쿠치. 


모니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울음을 참았다.


모니와의 목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사쿠나미는 모니와의 앞에 앉아 그를 끌어안았다. 







후타쿠치는 작은 대문의 앞에 서서 숨을 몇 번 몰아쉬었다. 실로 오랜만에 밟는 하계의 땅이였다. 그다지 큰 일로 내려온 것은 아니였다. 사쿠나미가 모니와에게 죽음의 기운을 느꼈다. 그 뿐이였다. 물론 영겁의 시간을 살아갈 후타쿠치에게는 잠시의 이별일 뿐이였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였다. 딱히 슬프거나 눈물이 솟구치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모니와' 라고 적혀 있는 명패가 붙어있는 대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문 안쪽에 있던 사쿠나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는 서글픈 표정으로 후타쿠치를 맞이했다. 후타쿠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대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타쿠치는 양쪽 방문을 활짝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모니와는 누군가가 걸어들어오는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살짝 열었다. 모니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몸이 많이 망가졌으니 꼭 헛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후타쿠치는 모니와를 한참동안이나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쭈글쭈글 못생겨졌어.


모니와는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으며 후타쿠치와 눈을 맞추고는 대답했다. 


저는 시간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그나저나 당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요.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옆에 소리가 나지 않게 앉고는 모니와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야 나는 시간 따위가 지배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니까. 


후타쿠치는 모니와를 천천히 관찰했다. 위쪽에서 항상 내려다보고 있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은 그 날 이후 처음이였다. 보기좋던 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렸다. 인간치고는 노화가 아주 느린 편이였던 모니와도 시간의 지배를 이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눈가에는 보기좋게 주름이 져 있었고 키는 조금 줄어들었는지 더 작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모니와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금새 사랑스러워졌다. 후타쿠치는 이불 속에 숨겨져 있는 앙상한 모니와의 손을 잡고는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저는 당신이 축복해준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시간을 보내왔나요?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앞머리를 쓸어넘겨주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지루했다. 너는 무슨 인생을 그렇게 단조롭게 사냐. 


모니와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를 보니 꼭 자신의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몸이 좋지 않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 같기도 하였다. 모니와는 기침을 몇 번하고는 후타쿠치를 올려다보며 그에게 물었다. 



전부터 궁금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새하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대답했다. 


무엇이든지. 


모니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저를 계속해서 연모하셨나요?


후타쿠치는 아직도 자신의 낙인이 남아있는 모니와의 어깨 위에 손바닥을 살짝 올리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나는 너를 계속해서 사랑해왔다. 네가 울고 있을 때도, 웃고 있을 때도 항상 지켜보고 있었어. 


모니와는 환하게 웃었다. 참 한결같은 사람이여서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그를 배신한 자신을 다시 찾아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라서 정말 기뻤다. 


그렇습니까.


모니와는 잠시동안 숨을 몰아쉬고는 후타쿠치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모니와는 머리 속에서 하나, 둘씩 스쳐지나가는 기억에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꼭 잠들기 직전같이 몸도 마음도 아주 편안했다. 마지막이라도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갔다. 이상하게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 만은 아주 가벼웠다.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이마 위에 입을 살짝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뒤를 돌아 잠 들어있는 모니와의 모습을 한 번 보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 문 한쪽에서 모니와의 어릴 적을 꼭 닮은 한 소년이 눈물을 짓고 있었다. 후타쿠치는 소년의 머리를 헝크려트렸다. 소년은 붉어진 눈가를 소매로 문지르고는 후타쿠치와 사쿠나미를 향하여 허리를 숙였다. 


스사노오, 신관님, 정말 감사합니다. 


후타쿠치는 소년의 강직한 눈이 모니와와 겹쳐보인다는 것을 느끼고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닮았네. 


사쿠나미는 까치발을 들어 자신보다 위에 있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로, 너무 낙심하지 말고 장례를 잘부탁해. 나는 이제부터 이분을 따라 가야할 것 같아. 


히로라고 칭해진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후타쿠치와 사쿠나미에게 절을 올렸다. 


사쿠나미는 히로의 앞에 잠시 앉아서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젠가 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길 바랄게. 


사쿠나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후타쿠치의 뒤를 쫒아갔다. 이제야 저도 신관 노릇 좀 하겠네요. 


아주 오랜시간 동안 녀석이 나를 기다려주었으니, 이제 내 차례지. 그 동안 심심할테니까 네가 옆에 좀 붙어 있어야겠다. 


후타쿠치는 기지개를 쭉 켜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어떤 기다림이 될지 벌써부터 설레여왔다. 우선은 자신의 사당으로 데려가 사쿠나미와 제대로 된 의식을 치뤄야겠고, 야치에게 인사도 시켜야했다. 오랜만에 이곳에 내려온 김에 카라스노에 머무르는 이나리를 만나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모니와가 어떻게 다시 태어날지 계속해서 지켜보아야했다. 



후타쿠치는 자리에 잠시 멈춰 서서 시리도록 청명한 가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있는데,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렸다. 


후타쿠치는 시큰거리는 눈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마이즈]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마다 요시로 X 이즈미 코우스케

(=오오후리)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마다. 나 다음 권.”


“응, 여기.”



막 다 읽은 만화책을 옆에 두고 하마다 곁에 있는 만화책에 손을 뻗었다. 손이 닿지 않아 하마다를 툭툭 치자 하마다가 슥 하고 건네주었다. 책을 받자마자 표지를 열고 읽으려고 자세를 잡았다.



“이즈미.”


“왜.”


“주인공 고교가 3-5로 져. 중견수가 에러나서.”



뒷이야기를 마저 말 하는 하마다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자 하마다는 실실 웃는다. 옆에 있던 베개로 하마다를 가격하자 뭐가 좋은지 끊임없이 웃는다.


연애는 2년. 결혼은 1년 차가 된 우리는 아직도 친구 사이 같은 신혼을 보내고 있다. 밖에 나가 노는 게 좋았던 것도 연애 한 달 정도 했을 쯤. 둘 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지 신혼이지만 집에서만 뒹굴면서 보내고 있다. 오늘도 하마다가 빌려온 야구 만화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즈미. 근데 그거 알아?”


“몰라. 알고 싶지 않아.”



내 말에 하마다는 몸을 움직여 내 허리를 껴안는다. 그런 하마다가 기분 나쁘지 않아 머리에 손을 얹고는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내 행동에 하마다는 가만히 있다가 내 손을 잡아왔다.



“오늘 우리 결혼 1주년.”


“어?”


“까먹고 있었지?”



하마다의 말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잊고 있었으니까. 아무 말 없이 하마다의 눈치만 보고 있더니 하마다가 괜찮다며 토닥여줬다.



“우리가 원래 챙기던 것도 아니고. 덤덤히 지나가는 게 우리 같고 좋지 않아?”


“그렇긴 한데.”


“우리는 처음부터 그랬잖아.”



◀◀◀



함박눈이 내리던 날. 눈이 많이 온다며 신난 하마다는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똑같은 점퍼에 색깔만 다른 목도리와 귀마개. 그리고 내 손에 끼워주는 벙어리장갑까지. 모든 준비를 다 끝낸 하마다가 힘차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한기에 목도리에 고개를 좀 더 파묻었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하마다는 점퍼 모자까지 꼼꼼하게 씌어준다. 하마다를 올려다보니 날 보며 배시시 웃고는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뗀다.



“가자!”



내 손을 잡고는 새하얀 눈이 있는 곳으로 간다. 뽀득뽀득 소리가 나는 눈 소리가 좋아 오랜만에 하마다가 원하는 대로 놀아줄까라고 생각을 했다. 



“이즈미. 안 추워?”



나란히 앉아 눈뭉치를 굴렸다. 큰 눈사람이 만들고 싶다던 하마다의 바람이었다.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어느 정도 커진 눈덩이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하마다는 얼마나 됐나 싶어서 두리번거려 찾아보니 엄청나게 커진 눈덩이를 보고 질 수 없어 열심히 굴렸다.



“이제 올릴까?”


“그러자.”



내 대답에 하마다는 끙차 거리며 굴린 눈덩이를 올린다. 겉모양은 금방 눈사람이 되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뭇가지와 작은 돌멩이들을 주웠다. 눈사람에게 표정과 팔을 만드는 게 즐거워 괜히 웃게 되었다.



“이즈미.”


“왜. 우리 눈사람 좀 잘 만들었다. 이따가 사진 찍자.”


“결혼할까.”





“근데 이즈미 반응이 너무 귀여웠어.”


“내가 뭘.”


“얼굴은 새빨개져서 고개 끄덕이는데 얼마나 귀여웠는지 알아?”


“알고 싶지 않아.”



그 기억이 떠올라 다시 부끄러워지는 기분에 하마다를 등지고 누웠다. 하마다는 웃으면서 따라 붙었다.



“아. 이즈미.”


“왜?”


“내가 정신 없어서 그런데 우리 웨딩촬영 때는 어떻게 보냈더라.”


“음. 나도 가물가물한데.”


“그럼 오랜만에 웨딩앨범이나 볼까.”


“근데 우리는 웨딩앨범이라기 보다는 그냥 놀면서 찍은 사진들이잖아.”


“뭐 어때!”


“하긴.”



앨범을 찾으러 간 하마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



“하나, 둘, 셋! 하면 점프하는 거야.”


“그건 타이밍이 안 맞는다니까.”


“괜찮아. 뛰어!”



내 말에 타지마는 뭐가 괜찮은 지 뛰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싫은 척 내색을 하지만 이미 다들 맞잡은 손이며 상기 된 표정까지. 이 녀석들 장단에 맞춰줄까 하며 옆에 있던 하나이 손을 잡았다.



“넌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어?”


“저기로 가.”



하나이가 날 밀치는 곳을 쳐다보니 이쪽으로 오라며 방방 뛰는 하마다가 보인다. 터덜터덜 걸어가니 내 손을 세게 잡아오면서 타지마를 보라고 말 한다.



“너가 애야?”


“재밌잖아.”



재밌지는 않지만 신나 보이는 하마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와 알겠다고 말 했다.



“찍는다!”



여전히 우렁찬 타지마의 목소리와,



“잠시만!”


“어떻게 서야 돼?”


“어차피 너가 주인공 아니잖아.”


“빨리 서.”



들떠 보이는 부원들 목소리,



“이즈미 뛰는 거야!”



가장 신난 하마다의 목소리까지.


사랑스러운 녀석들이 확실하다.



“사진 이상하게 나왔어.”


“나는 잘 나왔다.”


“타지마. 사진도 못 찍어?”


“이제 내 독사진 찍어줘!”





“이즈미. 이 날 기분 되게 좋았나봐.”


“왜?”


“이것 봐. 얼굴이 풀려 있잖아.”



하마다의 말에 앨범에 있는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게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아니, 뭐. 음.”



옆에서 헤실헤실 웃으며 쳐다보는 하마다가 부담스러워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즈미.”


“왜, 왜.”


“여기 봐.”



하마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심각해진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다시 돌리려고 하자 하마다가 양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다.



“뭐 해.”


“뽀뽀.”



말이 끝나자마자 내 입술에 뽀뽀를 하는 하마다 덕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런 내 반응을 보며 웃는 하마다가 얄미워 머리에 꿀밤을 놓았더니 금세 시무룩해진다.





결혼생활 반년. 날씨가 너무나도 따뜻해서 일어나기 싫은 날이었다. 분명히 커튼도 치고 잤을 텐데 어째서 햇빛이 들어오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즈미. 오늘 빨래해야 돼. 일어나.”


“졸려.”


“빨리.”


“아, 싫다. 하마다가 다 했으면 좋겠다.”



이불 속에 파묻혀 중얼거리자 이불을 걷어내는 하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보니 허리에 손을 턱 올린 채 비장하게 서 있는 하마다가 보인다. 그 모습이 웃겨 풉 하고 웃었더니 웃지 말라며 난리를 피운다.



“얼른 씻고 와. 빨래 할 준비 다 되어 있어.”



의욕적인 하마다 때문에 억지로 일어났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그러나.


하마다가 이끌고 간 곳은 집 옥상이었다. 널브러진 대야 안에 들어있는 이불들. 하마다를 쳐다보자 뭐가 그렇게 신난 지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지를 않는다. 대야를 내 발 앞까지 질질 끌고 와서는 ‘자!’ 라며 좋아한다.



“여기 들어가라고?”


“원 투 쓰리 포 버블버블.”



내 말은 무시한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발을 벗고는 들어간다. 하마다를 따라 신발을 벗고 들어오니 너무 차갑지도 않은 물에 안도가 되었다.



“이제 의욕적으로 밟으면 돼.”


“너무 옛날 방식 아니야?”


“신혼이니까 이런 거 한 번쯤은 하는 게 어때?”


“뭐. 좋은 것 같기도.”



내 어깨에 손을 올린 하마다는 첨벙첨벙 열심히 이불을 밟는다. 질 수 없어서 하마다의 팔을 잡고 열심히 콩콩거렸다.



“이즈미, 잘 하네.”


“그럼 내가 이걸 못 할까봐?”


“하니까 재밌지?”


“아니.”



괜히 툴툴거리자 하마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난 이즈미랑 하면 다 재미있는데.”



시무룩한 채 말을 내뱉는 하마다가 웃기면서도 귀여워 막 웃었더니 더욱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하마다 놀리는 건 그만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랑 하면 다 좋고 재밌어.”


“진짜?”


“진짜지.”


“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줘.”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하마다가 신난 표정으로 내 귀 쪽으로 몸을 숙인다.



“빨래 좀 다 해 줘!”


“뭐?”



내 귀에 말 하고는 도망가는 하마다를 쫓아갔지만 언제 옥상 문을 잡은 건지 문이 열리지도 않는다.



“너 문 열면 죽는다.”


“알았어! 빨리 해!”





“집 안 가!”



곤란해 하는 사카에구치가 보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면 있을 하마다가 더 보기 싫었다.



“무슨 일인데?”


“몰라. 말 하기도 싫어.”



억지 부리는 내 모습에 사카에구치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뚱한 모습으로 누워만 있으니 사카에구치가 앞치마를 하고 나온다.



“저녁 안 먹었지? 뭐 먹을래?”


“아무거나.”



내 말에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사카에구치는 금세 요리를 만들어왔고 직접 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더 기분이 떨어졌다. 조금밖에 먹지 못하니 사카에구치가 눈치를 보다가 ‘그만 먹을래?’라고 물어온다. 열심히 요리 해 준 사카에구치가 미안해서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만 먹고 싶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하기에 바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파에 누웠다.



“이불 줄까?”


“아니야. 미안해. 여기서 조금만 자고 갈게.”


“괜찮아. 좀 자고 일어나 이즈미.”



사카에구치가 가져다 준 이불을 얼굴 끝까지 뒤집어쓰고는 하마다를 원망하며 잠에 들었다. 나쁜 자식.


날 일으키는 느낌에 살짝 눈을 떠 확인하니 하마다가 보였다. 눈 뜬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마다는 이불에 감싸져 있는 날을 안아들고는 사카에구치에게 인사를 한다.



“미안. 데리고 갈게.”


“무슨 일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얼른 화해 해. 이즈미 밥도 잘 못 먹었어.”


“고마워.”



사카에구치 말에 하마다는 멋쩍게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고개를 살짝 돌려 사카에구치를 보니 나에게도 잘 가라는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 


차 안에 나를 눕히듯 앉혀둔 하마다는 차를 출발했다.



“이즈미.”


“…….”


“오늘 내가 미안해.”


“…….”


“화 풀어. 그리고 가출은 하지 말고.”



하마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보고 있던 하마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도 사랑싸움이 마무리 됐다.





“이즈미. 우리 싸운 날 기억 해?”


“언제?”


“그, 있잖아.”


“너무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내 말에 하마다는 ‘그건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갑자기 뭐가 생각이 났는지 ‘아!’ 하고 말을 내뱉는다.



“싸워서 이즈미가 사카에구치네로 가출 한 날.”


“아, 그 날?”


“왜 싸웠지?”


“글세.”



둘 다 기억이 안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래도 생각은 안 났다. 뭐, 별 거 아니겠지.



◀◀



“이즈미. 앞으로 요리 하지 마.”


“뭐?”



하마다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먹고 죽을 만큼은 아니던데. 그렇게 이상한가 싶어서 맛을 봤는데 먹을 만했다.



“괜찮은데?”


“안 괜찮아.”


“…….”


“이상해.”



너무나도 단호한 하마다의 말에 할 말을 잃어 침묵했다. 하마다는 내 모습에 앞치마를 달라며 손을 뻗었다. 괜히 기분 상한 나는 앞치마를 주섬주섬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네 밥 안 먹어!”



이번엔 하마다가 멍하니 날 쳐다봤다. 아랑곳하지 않고 하마다를 지나쳐 밖으로 나섰다. 오늘 가출. 집에 안 들어가.





“이즈미. 오늘도 되게 별 일 없이 보냈다.”


“그러게.”


“그럼 뜨거운 밤을 보내볼까.”



하마다는 말을 끝내자마자 이즈미의 위로 올라탔다. 아무 말도 안 한 채 그저 놀란 눈만 크게 뜨고 있던 이즈미가 하마다를 밀치려고 했지만 하마다는 웃으면서 이즈미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할 뿐이었다.



“괜찮아?”


“안 괜찮다고 하면 안 할 거야?”


“그건 아니고.”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이즈미의 눈 위와 볼에 입맞춤을 했다. 이즈미는 눈을 찡긋거리며 하마다의 입맞춤을 받아주고 있었다.



“이즈미.”


“응.”



이즈미는 생각했다. 오늘 창가에 들어오는 달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고.”



달빛에 비추는 하마다는 황홀했다고.



“앞으로도 너일 거야.”



잘 자


[긴히지] 잘 자

(*브금은 첨부가 불가능한 파일형식이래ㅠㅠ)








나가자. 긴상 너무너무 심심한데.

뭐?




































 너가 밖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하루 종일 나가서 돌아 다니다가 돌아오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나는 안 된다고 몇번을 말했다. 그러자 같이 말리는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않는 너는 자기가 귀찮은 거냐 물으며 우는 시늉을 한다. 같이 나간게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며 나를 쳐다본다. 그 막무가내인 모양새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허락한 거라며 내 손을 잡아 이끄는 너를 쳐다봤다. 나는 허락한 적도 없는데. 처음엔 절대 안된다고 힘을주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그리고 완강한 너에 포기하고 동조하는 듯 하자 내 손을 강하게 잡았던 네 손의 힘이 서서히 빠졌다. 손에 땀이 차 슬쩍 빼내려고 하자 도망가려는 거냐며 다시 단단히 부여잡는다. 그럼에도 금방이라도 뿌리칠 수 있을 정도의 힘이지만,  뿌리치기에는 너의 손이 따뜻하다. 네 손을 잡은 내 손도 따뜻할까.




 팔을 크게 벌리며 나를 데리고 나가려는 너를 막는 해결사 꼬맹이를 아주 쉽게 제치고 저벅저벅 걸어간다. 부탁이니 제발 조금만 돌아다니고 적어도 다섯시 까지는 꼭 들어오라고 소리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함께 이렇게 밖으로 나온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감회가 새롭다. 나오자고 잡아끈건 넌데, 오히려 내가 더 기분이 묘하다. 마치 사귀고 난 후 처음 만났던 그 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슬쩍슬쩍 몰래 너를 눈에 담아보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티날 정도로 고개를 확 돌려버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여자애도 아니고 창피하기만 하지만, 뭐 너는 어짜피 기억도 못하겠지.

딱히 계획하고 나온건 아닌지라 그냥 먼저 눈에 보인 영화관에 갔다. 그냥 상영시간표 가장 위에있는 영화를 예매한 후 팝콘은 두 개를 샀다. 마요네즈가 뿌려진 팝콘은 도저히 못 먹겠다는 너니까.  남들은 돈 버렸다며 영화표를 버리는 쓰레기통에 너와 나는 눈물 젖은 휴지를 한 뭉텅이 버렸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앉아 방금 봤던 영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다가 배고프다는 너에 밥을 먹기로 했다. 곤도씨에게 추천받은 맛있기로 소문 난 집이었지만 나와 너는 뿌려진 마요네즈와 팥 때문인지 별다르게 맛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나가는 문 앞에 놓여진 거울을 들여다 보니 서로 맞추기라도 한듯 입가에 살짝 묻어있는 마요네즈와 팥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웃긴지 너가 웃는다. 닦아주려는지 너가 내 얼굴로 손을 뻗길래 그냥 내가 닦아버렸다. 그냥. 





























진짜 오랜만이구만.

뭐가.

이렇게 같이 나온거. 제대로 된 데이트잖냐. 요즘 너도 나도 같이 만날 여건이 안되었으니까.

그런가.

내 억지였긴 했지만 그래도 좋지? 행복하지?

..뭐.

아까부터 대답이 그게 뭐냐! 긴상처럼 말 좀 길게 해주면 안되는거야? 말투도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웃으면서 좀!

어.

...진짜 마요네즈가 불쌍하다. 너한테 먹히는 마요네즈가 불쌍하다.

뭐?





























아니아니, 마요네즈 부럽다고. 아, 부러워! 전혀 부럽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하는 너가 웃겨 웃음이 나왔다. 너는 앞장서고 있어서 못 본 것 같지만, 음, 너는 가끔 나에게 제발 좀 웃어달라, 웃어달라 말하곤 한다. 그런데, 너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가끔 나도 놀랄정도로 편한 웃음을 짓고있는 나를 보고 괜히 어색해 몰래 입 주변을 만져보기도 했다는걸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 나를 눈치채지 못하는 건 네 잘못이지.

슬슬 다시 허기가 돌 때 즈음, 전봇대에 붙어있는 축제에 관련된 전단을 봤다. 날짜를 보니 오늘이 마지막 날인듯한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제가 열리는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오랜만에 둘이 나온날에 마침 대대적인 행사가 열린다니 우린 정말 천생연분이야! 라며 너가 능청스레 웃는다. 아니, 너는 아마 오늘이 축제 날인걸 알고 있었겠지. 요즘 하는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떼우니까 말이다.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는 와중에 종종 찾아온 여러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축제 사실을 알게 된 것일 것이다, 저건.




 축제의 마지막 날인지 더욱 사람이 많고 시끄럽다. 즐거워 하는 너의 모습에 나도 희미하게나마 웃음이 나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어떤 얼굴로 웃고 있을까. 입은 웃고있지만, 아마 울것 같은 그런 표정일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면 진짜 멍청한 표정이겠지.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아 손을 들어 입술을 매만졌다. 

 많은 인파속에서도 너는 내 손을 놓지 않는다. 맞닿은 두 손에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이 엉겨붙는 것 같긴했지만 이순간만큼은 개의치 않았다.

오늘따라 유독 발걸음이 느리다. 너가 느린건지, 내가 느린건지.





 축제에서의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잘만 나를 끌고 돌아다닌다 싶던 너는 금방 다리가 아프다며 힘들다고 했다. 시간 가는 것도 알지 못하며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전쟁터를 활보했을 몇년 전의 너라고는 전혀 상상 할 수 없을 말이다. 너에게 나이가 그래봤자 얼마나 많다고 그걸 못 참느냐고 면박을 줬다. 이젠 몸이 예전같지가 않다며 이래뵈도 내가 너보다 한살은 많다고 또 말을 늘어놓는 너.

한 살 차이라는게 엄청 크다. 나도 네 나이였으면 이 에도를 백바퀴는 거뜬히 돌 수 있다.

그 건강한 몸 유지하려면 운동좀 자주해라, 아니, 너는 직업이 거의 운동이니까 상관없으려나,

마요네즈만 계속 먹지 좀 마라, 보통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는데, 네 몸 상태에 아무 이상없는거 확실하냐.

그 마요네즈 섭취량으로 어떻게 그런 몸을 유지할 수 있는거냐,

아, 내가 뚱뚱한 사람 싫어할까봐 나 몰래 맨날 다이어트 하는 거구나. 온갖 웃기지도 않은 말들을 한다.

혼자 웃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고, 혼자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뭐라 말하던 너가 순간 말을 멈추더니 알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정말 나 좋아하는구나?




























웃음기 가득한 얼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대체 자신의 말의 어느 점에서 저런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는건지. 씨익 웃어보이는 너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너 지금 표정, 굉장히 부자연스러운거 알까.

물론 나도 지금 똑같은 얼굴이겠지만. 이쯤되면 말을 돌리는게 최선이다.


























지금 시간 꽤 된 것 같은데. 이제 가야 될 것 같다. 안경도 적어도 다섯시까지는 꼭 돌아오라고 그랬고. 너 힘들다며.

그렇다면 다섯시야 진작에 넘었을걸. 한 몇 시간 전부터 내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 같은거 계속 무시하고 있었다고.
































놀라서 시간을 보니 정말 다섯시는 진작에 지나버렸다. 하늘도 어두워져 버린것을 이제야 깨달은 나는 터무니 없게 늦어버린 시간에 또 다시 헛웃음이 터뜨렸다. 시간약속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빠져있는건가, 난. 시계에서 시선을 너로 옮긴다. 눈이 마주쳤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 간혹 한복판에 멈춰서있는 우리들을 이상하게 보는 눈빛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서서히 맞잡은 손의 열기로 녹아들어간다. 지금 나는 표정을 짓고 있나. 부자연스럽다 못해 우스꽝 스러운 표정일까. 너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건가. 울 것 같은 얼굴? 아니면 웃고있는건가. 보고있음에도 가늠하기 힘든 표정인 너의 입술이 열린다. 마치 느린 화면처럼 천천히 열린다. 무슨 말을 할까.



































오늘 축제 하이라이트는 불꽃놀이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람들 말하는거 들어보니 곧 시작하는 것 같은데. 이왕 늦은거 끝까지 보다 늦자고. 물론 신파치에게 잔소리를 한바가지 들을테지만.







































 그것도 찾아온 손님들한테서 들은거냐? 말하려다가 천천히 입술을 닫았다. 너의 시선이 나에게서 서서히 걷혀져 간다. 더 늦기 전에 이제 그만하고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내 손에 다시 힘을 주고 잡아 이끄는 너에게 모든 집중이 쏠려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어디서 열리는지는 아는건지 인파들 사이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새하얀 곱슬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무슨 생각을 한걸까.

무슨 생각을 했어야만 했을까.

아까보다 발걸음이 더 느려진 것 같다. 너가 느린건지, 내가 느린건지.




넓은 축제 공간에서 분포되어있던 사람들이 한 행사를 보겠다고 모여드니 확실히 사람이 많아져 복잡하다. 이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한듯한 너는 당황한 눈치다. 너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렇게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손을 들어 닦아주었다. 그 느낌에 나를 쳐다보는 너의 눈에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함축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띄는 눈빛에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해 줄 수 없었다. 숨이 막힌다.
































불꽃놀이, 잘 안보여도 되니까. 그냥 사람 별로 없는 곳에 있고싶어. 그리로 가자.

































아까 너의 눈빛에 대한 대답처럼, 알아주기를 바라는 듯한 나의 말에 너가 살짝 미소지은 것도 같다. 역시나 어색한. 이번엔 내가 너의 손을 이끈다. 맞닿은 두손이 아까보다도 더 따뜻하다.






확실히 큰 축제이긴 한듯, 사람이 없는 곳을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계속 힘들다고 하던 너가 정말 진심으로 괴로워 보여서, 급한대로 최대한 가까운 곳에 대충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아까보다 인파도 훨씬 없고, 걱정했던 것보다 불꽃놀이도 썩 잘 보일 것 같은 장소다. 잘 찾은 것 같다. 같은 생각인 건지 너도 잔디밭위에 풀썩 앉으며 기분좋은듯 숨을 깊이 들이쉰다. 내가 앉으려고 하자 너는 너의 겉옷을 벗어 네가 앉은 바로 옆자리에 슬쩍 깔아놓았다. 하지만 나는 옷이 깔린곳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깔려있는 겉옷을 들어 몇 번 흔들어 먼지를 털어내어 너의 어깨에 다시 얹어 놓았다. 애인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냐며 말을 다발로 쏟아낼 것 같기에 그냥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동안 말이없다. 할말이 끊겨서 온 침묵이라기에는, 서로 약속하고 아무 말도 안하는 것처럼. 곁눈질로 훔쳐본 너는 밤 하늘만 올려다본다. 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별이 적다. 이제 곧 불꽃놀이가 시작 될 것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기대된다는 듯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약간 더 커진다. 문득 이러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다. 무슨 말을 할까. 너와 나는 지금껏 함께있을 때 어떤 말을 했었나. 요즘 따라 돈이 더 부족해진 것 같다는 너의 투정. 애교는 못 피워줄 망정 환하게 웃어나 주라며 툴툴거렸던 너의 말들. 내가 한번 웃어줬더니 자기는 비웃어 달라고 말한적은 없다며 흥분했었지. 아니, 하다 못해 좋아한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안되는거냐며 너무하다는 듯했던 너의 말투. 지금 너가 알고있는, 너와 대화 할 때 나의 모습은, 너와 함께할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어쩔 수 없다는 그런 표정을 짓고있을까. 하지만 나와 대화할 때 항상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너를 볼 때면 내가 이미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아는 것 같은, 내 감정을 다 꿰뚫어 본 것만 같은 그 미소에 뭔가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상하지만, 묘하지만, 그 표정이 좋아 나는 사람들이 종종 영혼 없다고 말하는 네 눈을 줄곧, 지금 생각해보면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던것 같다. 너는 부끄러우니까 답지않게 물끄러미 쳐다보지 좀 말라고도 했었지. 내가 너에게 받고 있는 그 감정들을, 내가 너에게 주고 있는 그 감정들을 그런식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따뜻한 기분이었다.






























히지카타야.






























침묵을 먼저 깬건 너.
































어? 지금 내 말 무시하는거야?

듣고있어. 왜.

여러가지로 생각해보던 중에, 그, 갑자기 문득 생각난 건데 말이야.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표정. 그런 표정은 또 흔히 볼 수 없는 표정인지라 재촉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음, 생각해보니까. 너는 나한테 좋아한다는 말 해준적이 없지 아마?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야! 우리가 사귄게 몇년째라고 생각하는 거냐 넌! 사랑이 식은거야? 아니, 애초에 좋아한다고 말할정도의 감정이 아니었던 거야? 슬픈데?

시끄러워! 마음에도 없는 사람이랑 이렇게 오래 얼굴 맞대고 있겠냐!

아아! 나 진짜 죽기 전에 우리 히지카타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들으면 진짜 진짜로 행복할텐데!!

그럼 죽기 직전에 해주지. 아주 귓가에 속삭여주마.

어, 너 지금 영원을 약속한거지? 죽기 전에 옆에 있어주겠다는 거지? 긴상이랑 할아버지 될 때 까지, 긴상이 흰머리 될 때 까지 함께 해주겠다는 거지?

망할 파마머리야, 목소리좀 낮춰! 그리고 진작에 너는 흰 천연마파잖아!

아, 그렇다면 긴상이 검은 머리 될 때까지..







































아, 정말. 함께 있으면 유치해지기만한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몸부림쳐봐도 결국 정신차리고 보면 너의 페이스에 휘말려 있다. 



































어,

뭐 또.

방금 웃었다.





































 힘이 살짝 들어간것도 같은 입가에 금방 힘을 풀어버렸다. 이번엔 본건가.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너가 어딘가 웃기다. 나는 꽤, 좋은 표정 많이 하고 있었을 텐데. 알게 모르게.


































어 왜! 계속 좀 웃어봐!

손가락질 하지마!

아니아니아니 방금 웃었다고! 어이없다는 듯한 헛웃음 말고, 내가 알콩달콩한 연애 좀 하자고 할때마다 짓는 그런 살의있는 웃음 말고!

닥쳐!



































평소대로였다면, 내 반응에 더 재밌다며 크게 반응했을 너인데 이쯤에서 그만 두는 듯하다. 

이젠 오래 놀리지도 못하겠다, 아, 계속 웃어주지, 아, 하면서 꿍얼거리는 너를 봤다가,

곧, 다시 찾아온 침묵. 그러나 이번에는 하늘을 보지 않는다. 너를 쳐다본다. 너도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지금은 부끄러우니 쳐다보지 말라는 그런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냥 마주쳐다봐온다. 이 눈빛은 처음보는 눈빛이다. 네 눈빛, 내가 받아들인 이 의미가 맞는걸까. 아니면 아닌 걸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너는 줄곧, 눈빛으로 모든 말을 해오곤 했다.






방송이 한 차례 더 나오고, 불꽃놀이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가 행해진다. 10부터 하나하나 내려가는 숫자에, 나도 답지않게 기대에 찬 가슴이 두근거린다. 너가 슬쩍 내 가까이로 자리를 옮기는 듯 하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피어오른다.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파란빛의 아름다운 불꽃이 밤하늘에 수놓아진다. 그에 너가 저 색깔 네 눈동자 색깔이라며 예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섞여 함께 불꽃놀이를 장식한다. 그 환호성 사이를 가로질러 너의 말소리는, 너의 숨소리는 내 귀에 여과 없이 전달된다. 이번에는 불꽃들이 어우러져 모양을 만든다. 그 광경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잔디를 짚은 내 손 위로 너가 은근히 너의 손을 겹쳐 올린다. 너를 슬쩍 바라보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불꽃놀이 보러왔으면 불꽃을 보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너무 두근거려서 아프다.

아파, 너무 두근거리는데, 아파.

아파서,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고 싶지 않아.





오히려 눈빛으로 많은 말을 하는 건 내쪽이었나. 너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진 것 같았다. 그러다 금방 본연의 것을 되찾은 너의 얼굴은 저거나 보라며 내 얼굴을 잡아 하늘로 돌린다. 

아름다운 불꽃놀이들은, 지금도 계속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그 모양이, 그리울 때마다 항상 꺼내보고 싶을 그 모양이, 이제는 정말 잊지못할 추억이 될 그 모양들이 절대 잊혀지지 않도록.

그렇게 나는, 애써 뜨거워지는 것 같은 눈가에 힘을 주며 눈에, 마음속에 꼼꼼히 노란 불꽃을, 신기한 모양의 불꽃을, 너의 눈 색깔인 그 모든 불꽃들을 담았다.

흐려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 불꽃들을,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꽃들을, 그리고 너를 눌러 담았다.

너의 그 모든 모양들이 절대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할 것 같았던 불꽃놀이가 끝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밝았던, 화려했던 하늘이 무서울만큼 어둡고, 고요하다. 아직 조금밖에 담지 못했는데, 다 기억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은 정말 좋았다며, 오길 잘했다며 들뜬 걸음으로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한명, 두명 자리를 떠나며 굳은 듯 가만히 있는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 보기도 했지만. 우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해결사 꼬맹이가 말한 다섯시는 이미 지나치게 많이 지났을 지금 이 시각.

적당한 바람, 아무도 없는 한적함,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너.


























해결사.




























하지만 너도 곧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음?

























너도 저 불꽃놀이처럼 나를 쑤셔놓은 주제에 금방 사라져 버릴 거잖아.































나 못하겠어.

음?

너 오늘 일부러 여기 온거지. 그래서 움직이면 안되는 몸으로, 힘도 잘 안들어가는 몸으로 억지로 나온거지.

...히지카타.

아니, 병원에서 지내는 환자 손에 끌려나온 내 잘못도 크지. 그런데.., 그런데,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고 한건 너 잖아.

히지카타.

자기 몸을 그렇게 잘 알면, 잘 지켰어야지.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이러지 않기로 너와 약속했는데. 이러면 너가 정말 상처받을 텐데. 결국은 끝에 모두 깨져버리고 말았다. 잡고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아니, 끈이 끊어져버렸다.

점점 일그러지는, 점점 괴로운 얼굴이 되어가는 너의 눈빛이 그대로 돌아와서 나를 찌른다. 아까보다도 더 아픈 것 같아서 싫다.

































언제 난건지 이젠 기억도 잘 안날 정도로 오래 된 그 전쟁에서 상처입은게 왜 이제와서 영향을 끼치는거야? 너는 왜 그 때 피하지 못한건데?

히지카타, 제발.

나 진짜로 못하겠어. 진짜. 어떻게 그래. 너도, 너도 부자연스러웠는데, 다 티났는데, 너도 가끔 슬픈 눈빛하고 있었던 주제에 내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가 있겠어.
































진짜 어떻게 그래.




























'히지카타.'

'...너.'

'부탁이야, 부탁이니까. 우리 평소처럼 지내자. 평소같이 하자. 내 수발 들어줄 필요도, 간병인 침대에서 같이 자 줄 필요도 없어. 그냥 내가 집을 병원으로 옮겼다고 생각하자.

나는 평소와 같은거야. 그 어디도 아프지 않고, 신파치랑 카구라는 귀찮다고 드러눕는 나 대신 해결사 일을 하러 간거야. 너도 평소처럼 우리집에 놀러온거야. 우린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어.'

'너 지금,'

'내 간병을 와주는 그 모든 사람들이, 일상이야기를 해주고 실없는 이야기로 나를 찾지만 결국 그 눈빛에는 다 보여. 안타까움이, 슬픔이, 동정이 다 보여. 웃으면서 뒤돌아서서는

 울고 있어. 진짜로 미칠 것 같아, 히지카타. 내가 지켜줘야할 사람들이, 모두 다 때문에 울어. 나 때문에 슬퍼하고 있어. 답지않게 앓아눕냐며 빨리 일어나라고 웃었던 카구라도 신파치도

저번 밤에 내 손을 잡고 울고 있었어.'



그리고 넌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게 이상한것같아. 지금 내가 뭔지 모르겠고,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납득할 수도 없어. 사람을 그동안 어떤 얼굴로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투로 대했는지도 다 까먹을 것 같아.

그런데, 너까지, 너마저 그러면, 진짜, 안 될 것 같아. 뭐가 안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정말, 싫어, 정말로, 히지카타.'


























그 말을 하면서 너는 처음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 느낌없는 눈동자임에도 올곧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던 너의 그런 표정이아닌, 정말 처음보는 그런 표정.

나한테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던 그 표정이, 너무, 


































너가 아픈데, 너가 죽는다는데 어떻게 내가 아무렇지 않은척 할 수 있겠냐고!

히지카타,

너, 이제 조금만 걸어도 힘들잖아! 식은 땀을 흘리는데, 그러면서 웃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겠어.



































이제 그만해야 하는데, 그만 멈춰야 하는데. 제발, 지금 힘든건 내가 아니라 넌데. 지금 소리지르고 미칠 것 같은 사람은 넌데, 꼴 사납게 나는 왜.

너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할 수록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어, 긴토키. 웃으면서도 아프다는 눈빛하는 주제에, 나를 보면서 맨날 미안하다는 그런 눈빛 지었던 주제에,

그러면서도 따뜻한 눈빛으로 봐줬던, 주제에.




































미안해.

그런 눈빛 하지마. 그딴 소리 하지마. 너가 언제 그런 눈빛 짓는 놈이었어? 뭘 그런걸로 이렇게까지 화 내냐고, 능청맞게 웃어야 하잖아. 화 풀으라고 안아주면서 막무가내로 뱉어내고 행동하는게 너 잖아. 왜 너답지 않아? 그게 뭐가 아무렇지 않은거야!

내가, 미안해.

...눈치까지 밥말아 먹었냐. 평소처럼 하라고. 안아달란 소리잖아.



































놀란 듯한 너의 표정. 대체 내가 무슨 정신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거짓말이 아니야.

더 이상 숨기고 싶지도 않아. 나는 평소의 너가 좋아. 그러니까 멀뚱히 있지말고 빨리 안아달란 말이야.

천천히 너가 내게로 손을 뻗는다. 쉽게 깨지는 아끼는 물건을 대하듯이, 더 한 짓도 많이 한 주제에 마치 처음 서로를 안아보는 풋풋한 연인처럼.

조심스레 얹어지듯이 내 등과 허리에 놓인 너의 팔이, 떨리는 것도 같아서 가슴이 시리다.






































안 깨져. 이게 안은거야? 더 꽉 힘좀 줘봐. 그 정도 힘은 있으면서.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말 부서질 정도로 나를 끌어안는 너가, 내 목에 얼굴을 묻는 너가, 지금까지의 꾸며낸 가면이 모두 무너져 버린 너가, 눈물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면. 

나도 팔을 들어 너를 꽉 안았다. 날아가 버리지 못하게, 사라져버리지 못하도록.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정도로 강한 그 압박감이 너무 슬픔에도 너무 기뻐서, 이 알 수 없는 말도 안되는 감정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대체 너가 뭐가 미안한데. 뭣때문에 미안하다는 표정 짓고 있었던건데. 미안한건 나잖아. 너 일부러 더 나 미안하라고 그런 말 한거지.






























아무 말이 없는 너의 그 뒷통수로 손을 옮겨 강하게 끌어안았다.






























너가 죽을리가 없지. 그래, 분명히 의사도 희박하지만 살 가능성은 있다고 말 했었잖아. 그 작은 희망을 믿어야지 왜 우리 둘다 지레 겁을 먹고 쓸데없이 준비를 한 걸까.
































나를 안은 너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간다. 아픈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한텐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예상하기로는 네 기억속의 나는 무표정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있겠지. 그런데, 나 너랑 있는거 즐거워. 즐거우니까 몇년을 넘게 너랑 같이 있는 거잖아. 지금까지도, 오늘도 몇번이고 웃었다고, 못보는건 너잖아.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거잖아. 계속 즐거울 거잖아. 오늘 같이 불시에 계획없이 뛰쳐나와서 같이 또 밥도 먹고 영화도 볼 거 잖아.내년 불꽃놀이도 보러 오고, 백년만년 백수짓 하면서 해결사 꼬맹이들 결혼하는 것도 다 보자. 어, 뭐야. 너 설마 울어? 앞으로의 일들이 울정도로 기대되는 거냐? 거 참. 너 정말 나 좋아하는구나?

사랑해.





























그냥 생각나는데로, 무작정 뱉어지던 내 말이, 멈췄다.































너 말이 맞아. 고릴라가 앞으로 오타에한테 몇번을 더 차일지도 세 볼거고, 대체 신파치랑 결혼하겠다는 여자가 누군지도 볼꺼고, 카구라가 결혼한다고 그러면 세세한 것 하나하나 다 확인할 거다. 그리고 너랑 내년 불꽃놀이도, 그 다음 해도, 또 그 다음에도 함께 볼거야. 우리 그냥 애도 입양해 버리자. 딱 두명만 입양해서 한명은 스트레이트, 한명은 억지로라도 파마시켜버리자. 아, 그냥 너 경찰 때려치고 우리집 들어와서 살아. 내가 카구라 다시마 초절임 몰래 양 줄여서 그 돈으로 너 먹여살릴게. 우리 같이 살자. 내가 검은머리 될 때까지.



































저 고백같지도 않은 고백이, 저 터무니 없는 말들이 왜 이렇게,




































 

진짜로 니가 좋아, 니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행복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절대 안 죽을거야.
































이 남자가 하는 말은 믿을게 못 되는데. 거짓말만 치고 뭐든 자기 좋은대로만 해버리는 사람인데,

































사랑해, 진짜야. 이건 진짜야.

증명해봐.






























입을 맞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숨 쉴 틈도 없이 서로를 더듬고, 혀를 섞고, 눈을 감고, 기대어서,

시간의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한채로. 잠시 숨을 쉬기위해 서로의 입술이 떨어진 찰나, 앉아있던 너를 밀쳐 넘어뜨린 후 다시 너의 입술을 찾아서 무작정 입술을 들이댔다.

나는 너의 얼굴을 부여잡고, 너는 나의 머리를 부여잡고, 너의 손이 나의 머리카락을 헤집고, 그 헤집던 손이 나의 볼을 쓰다듬고.




너의 병이, 키스로 감염되는 병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잠시 입술을 떼어내고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려다보인 네 얼굴은 아까 진짜 울었던 건지 약간 발개져 있었지만 웃고있었다. 처음보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어색한 웃음이 아닌, 부자연스러운 웃음이 아닌, 슬픈 웃음이 아닌.

정말 너는 말 그대로 웃고있었다. 행복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상반되게 웃음이 나온다. 내 마음을 억누르듯, 내 이상한 마음의 감정들을 대변하듯, 눈물이 아닌 웃음이 나온다.































히지카타, 이렇게 웃으니까 예쁘잖아.





























이번에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아니,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냥 이 이름모를 감정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좋아서.

숨기고 싶지도 않아서. 이리저리 따지고 재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서. 우리는 왜 답지 않게 그렇게 신경을 썼던 걸까, 정말로.

왜 답지 않게, 남겨진 희망도 무시하고 아픔을 피하려 발버둥치며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한 걸까.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를 그 시간들에.







우린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설령, 설령 너가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남들은 미쳤다고 생각하고, 남들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사랑한다.

맨날 빈둥거리고 어쩔 때는 차가운듯 보이지만 결국 너는 너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한다.

나를 정말 사랑하고, 나를 아껴주는 것이 눈에 다 보인다. 말로도, 눈빛으로도 너는 나에게 사랑과 안심과 행복을 준다.





이쯤 되면 너를 사랑하지 않는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불꽃놀이가 끝나고 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완벽히 사라져버린 시간 개념은 너와 내가 정말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느낌을 준다.

서로를 만지고 느끼고. 평소에도 하던 일이었지만 오늘따라 더 뜨겁고, 오늘따라 더 생생했던 그런.

우린 지금 서로의 곁에 있고 함께했던 추억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 올리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연애하게 되었을 때의 느낌, 서로에게 서운했었던 유치한 감정들, 차마 자존심 때문에 전하지 못했던 낯간지러운 말들. 그리고 또 앞으로 같이 하고 싶은 그 모든 일들.

하나하나, 사소한 것 부터 대단한 것 까지, 마치 연애 초기의 풋풋한 연인들처럼.


그러다가 올려다 본 하늘. 너의 머리 색과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하늘의 색.

그렇게 홀린 듯 다시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너가, 천천히 말을 꺼낸다.

































오늘 따라 별이 유독 적은 것 않아?

어.

아깐 그렇게 화려했는데 말이야, 지금은 은은하니 별 몇개만 떠 있으니 뭔가 묘하다. 좋았는데.

그러네. 보기 좋았는데.

그래도 나는 지금 이 하늘이 더 좋아.

너, 이런 조용하고 은은한걸 좋아했었나?

좋았다며, 질투나.

































중간에 쳐다보니까 저거나 보라면서 친히 고개까지 돌려준건 너잖냐.































나도 지금 하늘이 더 좋아.

왜?

배경이 어두울 수록 너가 더 잘 보이잖아. 머리 하얗고.





























대답없는 너를 쳐다보니, 전혀 표정관리가 안 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 너가 그러니까, 괜히 내가 더 창피해지잖아.



































...헐, 너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감동인데?

그리고 머리 속도 하얗지





































감동 다 날아갔다며 툴툴거리는 너였지만, 여전히 너의 입가에 머물고 있는 미소.

또 다시 정적이 찾아오고, 스리슬쩍 내 어깨 위로 놓이는 너의 머리에 무겁다며 어깨를 털어냈지만 남자가 이 정도는 짊어질 줄 알아야 한다며 다시 머리를 대는 너.




































무겁다니까, 그렇게 목 꺾여서는 불편하지도 않냐?

목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우리 히지카타의 어깨는 긴상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걸?






























아아, 그러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의미없는 대화들이 오가길 몇번.









































히지카타.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아닌가. 빨리 이 시간이 지나야 너가 더 일찍 쾌유될 수 있겠지.









































왜.

그 날, 내가 너한테 고백 했던 날 있잖아.

응.

그 날이 없었다면, 내가 너한테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많이 달라졌을까.

..너, 지금 뭐 후회하고 있기라도 한거냐?

음.. 아니라 그러면 거짓말이지. 아니, 물론 나는 좋지만, 너가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으니까. 고백 받고 꽤 당황한 것 같았고, 사귀면서도 너는 네 위치때문에 이리저리 신경도 많이 쓰고. 최근동안도, 음, 힘들었잖아, 너.

..왜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데?

아니, 너가 날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음, 너도 평범하게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지 않았으려나 싶어서, 뭐.




































너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날, 정말 우스꽝스러웠지. 한 밤중에 나오라고 부르기에 왜 이러는가 싶어 밖으로 나갔더니 도대체 누구의 의견이었던건지 어울리지도 않게 장미를 한다발을 들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아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다가가 묻자, 너는 장미를 내게 던지듯이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카구라가 힘이 약해질 때 까지, 신파치가 안경을 벗을 때까지, 너가 마요네즈를 싫어하게 될 때까지만, 나랑 사귀자.'









 


그 소릴 듣고 너무 놀라서 바로 뒤 돌아 뛰어가 버렸었다. 너가 당황한 듯이 나를 뒤에서 크게 불렀었지만, 나는 차마 너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너가 건냈던 장미처럼 붉었을 걸, 내 얼굴.

































너가 고백 안 했어도, 지금 하나도 안 달라졌을걸.

왜?

내가 했을 테니까.





























어깨에서 느껴지던 너의 작은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췄다. 그에 나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너는, 아마도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던 모양이지만. 전혀 아니라는 것. 너랑 만나는 것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는 건 물론 거짓말이겠지만 난 그 모든 괴로움을 견딜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다른 부수적인 괴로움에 힘들어 할 때, 어깨를 빌려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준 너 덕분에 나는 더욱 행복했다.






































히지카타, 나 지금 정말 행복해. 진짜 행복해서 눈물 날 것 같아.

...울었잖아. 또 울게?

그래도 눈물이 나오는 걸 어떡하라고. 행복한데. 근데 그러고보니 넌 어떻게 눈물 한 방울 안 흘릴수가 있냐. 매정하게.

그럼 너는 지금 내가 울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아니, 역시 그건 싫다. 중얼거리는 너의 말에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건지, 아려오는 건지 차마 구분하지 못하겠다.



































아, 근데 왜 이렇게 졸릴까.

너는 밖에 나와서 까지 잠이 오냐. 자지 마.

오늘 너무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돌아다녀서 그래. 너도 아마 지금 내 어깨에 기대면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걸?

그럼 일어나던가.

말했잖아, 일어나기에는 네 어깨가 너무 편하다니까?






































졸리다면서도 내 손을 잡아오는 너의 손. 이 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을 얻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이손으로 인해 죽었지.

그래도, 이게 네 손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나에겐 그저 따뜻한 손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네 잠이 달아나기라도 하라는 듯 네 손을 꽉 마주잡았다.

그렇게 서로 손을 꽉 부여잡은 채로 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갑자기 너가 입을 연다.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마치 즐거운 놀이를 하듯이.




































아아, 히지카타, 들리십니까?

뭐냐 그건 또.

들리면 대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들리십니까?

..예, 들립니다.

그럼 질문 들어가겠습니다. 히지카타씨는 제가 좋습니까?

...몰라서 묻는것도 아닌듯 하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우와, 너무합니다. 저는 히지카타씨가 아주아주 좋은데 말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짧게 웃는 너.
































다행이네요. 그럼 한 개 더 묻겠습니다. 히지카타씨는 행복 할 겁니까?

네. 그쪽이랑 같이.

좋네요, 그거 고백으로 봐도 됩니까?

제가 마요네즈 싫다고 할 때까지 함께 있자고 한건 그쪽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하하, 기억하시네요. 지금 기분 아주 좋습니다.

그럼 저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뭡니까?

당신은 정말 행복합니까?

그러는 당신은 행복합니까?

..저는 행복합니다만.

그러면 저도 행복합니다.

































입만, 살아서, 그렇게,


































정말로 행복합니다. 나는 당신이랑 있을 때면 정말 행복합니다.

저도, 행복합니다.

에, 그럼 신센구미보다도 제가 더 좋겠네요?

..그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상처 받아버렸어요. 어쩌실 겁니까.

상처받은 사람이 그렇게 웃고 있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내가 행복해서 너가 행복해한다면, 나는 억지로라도 행복 할 것이다.








































지금 몇십니까?


































뜬끔없이 시간을 묻는 너에 슬쩍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봤다. 11시 58분. 벌써 날이 바뀌려고 하는 시간.







































11시 58분입니다. 왭니까?

몇분만 더 있으면 날이 바뀌네요. 다행이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만.

...히지카타씨, 행복할 거라고 했죠?

네. 그랬습니다만.

행복해지고 싶으면, 마요네즈 좀 적당히 먹고, 자기 몸 관리도 좀 잘하고. 그리고 담배 좀 끊으세요. 그거 진짜 몸에 안 좋다는 말입니다. 일도 적당히 하세요. 아무리 일이 좋아도 너무 지나치면 그건 그거대로

병 된다는 말입니다. 가끔은 영화도 보러다니고, 동료들과 둘러앉아 수다도 떨어보고, 정말 힘든 일 있으면 참지 말고 울어도 보고.









































너의 말이 느려진 것도 같다.









































그리고, 어리고 예쁜 여자 만나서 엄마아빠 닮은 예쁜 애기 낳아서 잘 기르고, 좋은 아빠가 되어서 행복하세요.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행복할 겁니다.

지금, 그렇게 졸리십니까?

그리고 가끔은, 가끔은,  제 생각도 해 주세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너가 왜 지금 이런 소리를 하는건지.









































당신은 행복할 겁니다. 분명히, 분명히.

...너 내가 그런 말 하는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아 진짜 잠온다. 저 졸립니다, 자고 싶어요.

...자지 마. 사랑하는 사람 옆에 두고 잠이 오냐.

사랑하는 사랑 옆이어서 잠이 더 잘 오는데 말이죠.








































맞잡은 두 손에서 네 손의 힘이 살짝 빠진다. 그러고 나는 그 빠진 힘만큼 더 꽉 너의 손을 붙잡았다.




































음, 지금쯤이면 12시 넘었겠죠? 어제가 지나가서 다행입니다.

긴토키, 너 아까부터 계속 왜 그런 이상한,






































졸리면 도 하는 건가, 너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졸리다는 너에 마냥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히지카타.




































줄곧 힘이 빠져있던 너의 손이 별안간 다시 내 손을 강하게 쥔다. 날 부르는 너의 목소리에 너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서로를 부여잡은 두 손에서 차마 시선을 옮길 수가 없었다,

너를, 너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같이, 그래서 같이 행복해지기로 했잖아.

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그러니까 꼭 행복해야해, 꼭.

그래, 너랑 같이 행복할거야, 꼭.

아, 그리고 고백할게 있는데. 나 사실 너 웃는거 슬쩍 몇 번 봤어. 물론 제대로 본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어쨌든, 뭔가 부끄러워서 말은 안했는데. 너가 웃을때면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뭔가 이상했어.

그래도 너가 계속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음,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 웃을게. 많이 웃을거야.

..아, 이젠 한계야. 잠이 쏟아진다.

긴토키, 자지 말라니까.

히지카타.





































너의 말이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건 처음이었다.









































생일축하해. 일찍이 말하려고 했지만, 날이 겹치면 안 되니까. 비록 하루가 지나긴 했지만, 축하해, 행복해. 음, 또, 사랑해.

....나도 사랑해,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자지 마.























































귓가에 속삭여진 목소리에 미소지은 듯한 너는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울지마, 라고 내가 너에게 사랑하다고 말한 것 처럼 귓가에 속삭여준 너.

손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어깨가 살짝 더 무거워 진 것도 같다.








































자지 말라니까 기어코 자는구나, 진짜.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그냥 눈물이 난다. 너는 그냥 자는 것일 뿐인데, 조금 있다가 내가 깨우면 진짜 자버려서 미안하다며, 그 땐 너무 졸려서 어쩔수가 없었다며

나를 안아 줄 너인데, 그런 너인데, 눈물이 난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난다.

너가 기대고 있는 내 어깨가 흔들린다. 내가 흘리는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씩 맞잡은, 아니, 내가 꽉 잡고 있는 너와 나의 손 위로 흘러내린다.

내 어깨에 닿은 너의 온기가, 이미 힘이 빠져버린 너의 손이 너무도 따뜻해서, 정말로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단지 그것뿐이다. 우리가 함께 할 미래가 행복해서, 눈물이 날 뿐이다.

너를 끌어 안았다. 혹시 잠든 너가 깰까봐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빨리, 일어나. 일어나면 사랑한다고 한번 더 말해줄게.













































5월 6일이 된지 채 몇 분도 안 지난 지금.

칠흑 같은 밤하늘의 별 하나가 반짝였다.

불꽃놀이처럼 아름답고 짧았던 나의 사랑, 나의 연인.






































잘자, 긴토키.







나의 작은 바램


[카네키X하이세] 나의 작은 바램





하얗고 아름답던 눈꽃송이가 서글프게 내려오는 내 가슴 속의 눈물이 되어버리던 그 날, 나는 도망 가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버티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몸서리치던 나는 비겁하게도 

점점 멎어가는 숨소리에 그려진 나의 희미했던 모든 기억들을 잠재우려고 했었다. 잊혀져갔다. 모든 것들이….



어둡고 깊이 빠져있는 정신이 수면 위로 점차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감겨 있던 나의 눈은 떠져버렸다. 

더 자고 싶었는데 깨어나기 싫었는데 이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에서 깨버렸다.

온통 세상이 하얗다. 하얗다 못해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세한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곳에...

아무것도 만질 수도 보이지도 않는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내 자신. 



" 여기가 어디지 …. "


살짝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대고서 몸을 일으켜 앉아 낯선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얀 배경 속에 갇혀 있는 나 자신, 


"누구 없어요?.. 대체 여기는 어디인거죠?. 아무도 없어요? "

 

"사사키 하이세"


" …어, 누.. 누구세요.?"



어디선가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가 속삭이듯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사사키 하이세,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나의 시간은 모든 것이 멈춰있었다.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은 듯,그저 스쳐 지나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 역시 존재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싶었다. 이런 내가 나에게 준 것은 고작 

이 이름 하나뿐이다. 사사키 하이세….




" 사사키 하이세..."

" 누, 누구신데 자꾸 저를 부르시는 거죠..? 여기가 대체 어디인거죠?"



이윽고,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에 검게 드리우는 그림자 하나가 한 쪽 발을 절뚝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진 검은 그림자가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였다. 조금 두려워지는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

그의 모습이 완전히 보여지기를 기다릴 뿐이였다.



" 저에게 대답해주세요.. 당신은 누구세요..? 나를 아시나요? 어서 저에게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세요.....

  보고싶어요....."


" … …."



나의 목소리에 반응없이 계속 그는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절뚝거리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그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닿을 듯 닿지 않은 그의 모습 …. 


"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런 이상한 데에 혼자 있게 하지 말아줘 "


" 사사키 하이세 "


러를 뿐. 길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가 된 것 마냥 나는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다가 곧이어 나의 뺨을 흘러타며 내려오는 물기를 느꼈다.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리자, 털썩 주저앉아 소리내어 울음을 토해냈다. 왜 나는 울고 있는 것일까...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이렇게 홀로 덩그러니 있는 공간이 무서워서? 외로워서? 그냥 나는 울고 싶어졌다. 그의 모습을 보기 원해서 우는 것도 아니였다. 아무것도 의미 없는 나에게 있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였으니까, 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나. 

흐느끼며 소리내어 울고 있을 뿐이였다.

이 때, 누군가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누군가가 나의 눈가를 만져주는 손길을 느꼈다.



" 혹시 다,당신인가요? 저의 이름을 부르던..."


" 사사키 하이세 "


" 왜.. 보이지 않으시는 거죠..? 저에게 모습을 보여주시면…."


" ……."


그에게서 흐느끼고 있는 것을 날 어루만지는 손이 작게 떨려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이길래 여기에 있는 것인지, 왜 내 이름만 부르고 있는 것인지,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의 떨려오는 손을 보이지 않는 그 손을 잡아보고 싶어지는 마음에 느껴지는 그의 손을 더듬거렸다.


" 이렇게...변해버렸구나, 하이세.."


"  …어? 방금 뭐라고 말한거죠?"


" 잘 지내고 있었니? "


" 네?? "



조용하고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 잘 지내고 있었냐는 안부인사를 그가 해줬다. 단지 인기척만으로 느낄 수 있는 그에게서 날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 잘 있었니라고 물어오는 그의 말에 텅 비어있던 내 가슴이 시려오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한 인사일 뿐인데 왜 이러는 것일까 ….



" ㅈ,저를 알고 있나요? "


" 보고싶었어, 많이 …."


" 대체 누구신거죠...? 


" 기다리고 있어.. 너가 날 봐주기를, 난 지금 너의 앞에 있어"


"  … 당신은 제가 보이시나요? 난 보이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다고 어떠한 것도…."



이 때, 불안해하는 나를 그는 나의 머리를 작은 고양이 마냥 쓰다듬으며 서러움을 담은 말을 건내왔다. 



" 널 줄곧 지켜보고 있었어. 너가 날 바라봐 주지 않은 것 뿐이야..엉망이 되어버린 나를 보려고 하지 않은 것 뿐이야, 너는."


" 엉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보고싶어 하이세? 나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


" 진짜 모습...? "


" 너가 잊고 있던 모든 것들을 보여줄까, 하이세 …."



이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진짜 모습이라니.. 아예 보이지도 않고 있으면서...왜 내가 봐주지 않았다니.. 난 눈을 뜨고 계속 이 사람이 있는 곳을..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찾고 있는데....무슨 말인거야.. 

잊고 있던...이라..... 그래, 나는 기억이 없다. 잊어버렸다. 잊고 싶었다. 나를, 그리고 나의 모든 것들을,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렇게  싫었던 과거의 모든 것들. 하지만 내가 기억이 없다는 것을 이 사람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


" 알고 싶어? "


" 네, 알고 싶어요…."



이 말이 끝나자 갑작스럽게 그의 그림자와 인기척이 사라졌다. 제대로 된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그가 가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이 곳에 있고 오로지 그림자로 그를 만났고 그는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에 대해서 알고 싶었지만….

허무하다. 나에게는 이미 잊혀진 존재들..... 과거의 나를 알고 있다고 해도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이런 애매한 기분은 나쁘니까 싫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함 속에 몸을 떨고 있는 나는 점차 의식이 흐려져갔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년 후….



오랫동안 잃어버린 정신이 돌아오기 까지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감은 눈을 떠 흐릿한 초점을 차차 맞춰나갔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물씬 드는 어느 작은 방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몸을 조금 힘겹게 일으켜 앉은 후 몇분동안 어리둥절하게 있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은...."



이 때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사키 하이세 "


" …어라? 누구 있어요? "



날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 서둘러 방문을 열어보니 한 소년이 서 있었다. 난 그 소년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리며 울부짖었다. 소년에게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럴 수 밖에 없었다.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도 경악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였기 때문에.. 온 몸이 피투성이로 가득했으며 한 쪽 동공이 망가져 있었고 왼쪽 다리는 서 있기도 힘들어 보였으며 머리에서도 큰 상처가 나 있는 채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몸서리치게 부들부들 떨며 그저 주저 앉아 울기만 할 뿐이였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사사키 하이세…."


" 아......? "



그 소년의 눈에서도 핏물과 같이 눈물을 흘러내리면서 날 보며 이름을 불러주었다. 상처투성이인 소년이 나를 보면서 울고 있었다. 



" 기다리고 있었어 하이세. 알려주고 싶었어 "


"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너가 알고 싶다고 말했잖아. 나에 대해서 "


" 제가 언제 그런 …. "


" 나를 버릴 생각이야? 나에게서 또다시 도망칠거야? "


" 버리다니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당신은 누구시길래..."



소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알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다니.. 날 기다렸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하염없이 울다가 일어나서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 위해 다가섰다. 영양가 전혀 없어보이는 부시시한 새하얀 머리와 손톱과 발톱은 검은 핏덩이가 고여 섞어져서 굳어져 있었고 손목과 발목은 어딘가에 묶여 있었던 흔적으로 살갗이 다 벗겨져 속살의 혈관이 다 튀어나와서 붉으스러운 색을 띄고 있었다. 소년의 귀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다못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 저, 저기, 무슨 일 있,었나요? "


" 글쎄…."


" 우선 병원을 가시는 게,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시는 데 "


" 나는 그런 것으로 회복 되지 않아..너도 알고 있잖아 "


" 네? 무엇을 … "


" ……"



무언가 말을 하려던 소년이 멈칫하다가 피 묻은 손으로 내 옷소매를 잡으며 내 몸 위로 푹 쓰러진 소년의 등에 손을 얹고서

 


" 괜,괜찮아요? 많이 아파보이시는데 정말 병원을 가셔야 "


" 그런 거 소용 없어. 인간과는 다르니까, 하이세."


" …뭐가 다르다는 거죠? 게다가 당신이 누군지 난 알지도 못하는데 어째서 여기에 계시는 건가요?"


" 카네키 켄…."


" 카,카네..키 켄? "


" 네 기억 속에서 잊혀진 존재 "


" …무슨 말을 하는건지"



카네키 켄이라.. 그런데 이 소년... 낯선 느낌이 아닌.. 목소리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어디서 본...익숙한 느낌이 왜 드는 걸까..

내 가슴 품에 힘 없이 기대어 있는 이 소년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이런 꼴을 하고 나타난 것일까. 말 없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천천히 상처투로 가득한 소년의 얼굴을 아프지 않게 어루만지며 그에게 속삭였다.


" 어쩌다 이렇게 심한 꼴을 당하셨나요 "


" 너야말로 너무 변해버려서 놀랐잖아, 잘 지내고 있었어..? "


" ...네?? 누가 이 말을 해줬던 것 같은데....."



피 범벅인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퍼보이는 웃음을 애써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이 소년. 그의 망가진 눈망울에서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내 눈물샘을 자극해왔다.



" 하이세, 보고 싶었어. 너가 비록 날 버렸지만 …."


" 내가...버려..? "


" 화내지 않아, 그만큼 너도 힘들었을 테니까... 도망치고 싶어한 네 심정 모르지 않아."


" 카네키 …. "



적잖게 당황스러워 안절부절하며 지끈 거리는 머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떨고 있는 나를 조용히 끌어 안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해주는 소년의 행동에 어린아이가 된 마냥 소년에게 안겨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내뱉은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데도 날 찾아와줘서, 기다려줘서 미안해. "


" 나 역시 미안해 하이세,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


" 아니야!!. 내가 위로해줘야 하는데 너에게 위로 받고 있다니...정말로 미안해. 

  노력해볼게. 너의 존재를 다시 내 가슴 속에서 회상 할 수 있도록.. 너를 기억해볼게. 내 머리가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소년에 대해 기억해내려다 더욱 심해지는 두통에 제 머리를 부여잡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지만 나는 엉망진창인 이 소년 앞에서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보다 더 아픈 몸을 이끌고 나에게 와준 고마운 이 아이에게, 나만을 위해 이 아이에 대한 추억을 모두 지워버린 죄, 이 아이를 쓸쓸하게 혼자 두고 오랜시간을 기다리게 한 이 죄가 내 가슴을 쥐어왔다. 차마 이 아이 앞에서 아프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짓을 해버리는 것이기에...이런 나에게 쓰레기보다 못한 나를 보며 위로를 해준다니...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이 소년이야말로 위로가 누구보다 필요할 텐데..... 



" 사사키 하이세, 나는 괜찮아.. 억지로 기억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무리하지말아줘 "


"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괜찮은건데!!! "


" 내가 널 만나러 온 이유는 날 기억해달라는 게 아니야. 기다려 온 이유도 그런 게 아니야..."


"  … …, 카네키.. "


" 오히려 나를 잊어준 너에게 고마워 "


" 고,고맙다고? "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서글픈 눈망울을 하고서는 나를 보는 이 소년. 



" 나처럼 말고 정말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야. 날 잊어줘서, 지난 날의 아픔들, 고통들, 슬픔들을 잊고..

  카네키 켄이라는 이름이 아닌 사사키 하이세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조금이라도 전 보다 

  평범하게.. 좋아하는 책도 마음껏 읽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도망쳐줘서 …,

  조금이라도 숨 쉴 수 있게 해줘서 … 정말로 고마워."



"   …  … "



" 앞으로는 만날 일 없을거야.. 하이세.."



" 카네키.. 모르겠어.. 너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고, 왜 그렇게 외로워 보이는 눈을 하고서는 나에게 고마워하는지.."



소년의 말에 나는 따뜻한 눈물이 흐르고 또 흐르다 식어버렸다. 소년의 모습에서도 조금씩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치 바람에 날린 모래같이 곧 사라질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 하이세..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꼭 우리 둘 모두가 행복해지자 "


" 왜 다음이라고 말을 하는거야 …. "




내 예상이 맞았던 걸까, 소년의 모습이, 이 아이의 온기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날 만지고 있던 소년의 손길이 닿을 수 없게 되버리자,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가..가버리는 거야? 또다시 그때처럼, 1년 전의 그곳에서 사라졌던 것 처럼......"


"  …, 조금 쉬러 갈게 "



가버렸다. 그렇게 소년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어딘가로. 

카네키, 카네키...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더 이상 그 소년의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또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소년의 말은 외로워 혼자 떨고 있는 나의 가슴에 새겨졌다.



" 행복해달라는 그 말, 어렵지만 그렇게 살아볼게. 노력할테니까, 

  다음 세상에서는 너도 꼭 행복해줘."

  

  미안해. "








< 완전 이상하게 되버린 망작이에요. 고통받는 카네키라는 인물을....

그냥 위로해주고 싶어서 부족하지만 써봤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구..

정말로 카네키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니까 이 마음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저체온


[리에쿠로] 저체온(低體溫)






"이제부터 거짓말을 할 거야."





 귓가로 달큰하게 퍼지는 목소리는 발톱을 감춘 맹수를 닮았다.





"사랑해, 리에프."





그렇기에 감추지 않고, 그러기에 잔인하다.





"사랑해."





 차라리 나만 비참해지는 사랑이었더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텐데. 턱끝까지 차오른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첨벙거리지만 나는 오늘도 환히 웃음짓는다. 저도, 사랑해요. 라는 대답이 언제부터 비참함이 되어버렸을까. 애처롭게 끌어안은 살결이 너무나도 차서, 그날은 조금 더 울것 같은 기분이었다.









*****









 첫사랑의 맛은 수수꽃다리 꽃잎의 맛이라고 하던가, 향기는 달콤하지만 정작 그 맛은 쓰디 쓴. 그래서인지 그는 유독 라일락과 어울렸다. 그만큼 달콤하지만 사랑하기엔 쓴 남자였다. 그렇게 단순 동경인줄 알았던 맘이 어느순간 사랑이란 이름으로 변질되면서는 관찰력이 생겼다. 그가 내뱉는 말, 단어, 숨소리 그리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매순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사랑은 집착으로 얼룩해져있었다. 그의 손길이 타인에게 닿을때, 그의 웃음이 타인에게 향할때, 그의 눈길이 내게로 오지 않을때.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했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거슬렸고,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내 자신이 서러워져갔다.





"네코마의 에이스는 저 하이바 리에프가 될겁니다."

"… 건방지긴, 리시브 연습이나 해."





 그래서 관심을 끌려고 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그저그랬다. 리시브나 블로킹을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에이스가 될거라는 얼토당토않는 말을 내뱉는 건방진 후배. … 후배. 그의 눈에 비친 나는 고작 후배일 뿐이었다. 같은 운동 동아리에 든, 겁없는 후배. 그런 점에서부터 나는 이미 낙오자였다. 그의 사랑을 꿈꾸지도 못할, 낙오자. 나의 위치를 깨닫자 마음 속 부터 검은 불길이 치올랐다. 그 불길은 제압할 틈도 없이 커다랗게 자라나버려 어느새 나의 온몸을 휘감아버렸다. 





"나는 어째서 쿠로상의 눈에 들 수 없는거예요?"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이대로 그를 보내기엔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가 학교를 떠나버리고 난 후엔 단순 후배로 남을 내 미래가 나를 너무나도 아프게 만든다. 그 날은 비가 쏟아져내렸다. 어두운 하늘 어디서부터 떨어지는지 모를 빗방울은 내 온 몸을 적셨다. 눈 앞이 빗물로 젖어 그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나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 표정이 흐릿한 영상으로 보였다.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뜨자, 내 손은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두 번 눈을 감았다 뜨자, 그는 발버둥치고 있었다. 세 번 눈을 감았다 뜨자, 그가 벽으로 밀쳐져있었다. 네 번 눈을 감았다 뜨자, 나는 그를 안아올린채로 어두운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두 팔로 느껴지는 무게는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괴물이라도 된마냥 전혀 힘겹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은 불이꺼진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와동시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귓가로 시끄럽게 울리는 심장소리는 내 것이었다. 이것이 잘못 된 것임을 알지만 미묘한 안심감이 나를 찾아왔다. 네 사랑은 추잡해, 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비에 젖은 온 몸은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웠다. 그럼에도 자꾸만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아, 사랑하는 쿠로상. 부디…





"이런 식의 호의는 고맙지가 않네."

"먹어요, 쿠로상."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져."

"… 미안해요, 그래도 먹어요."





 나를 이해해주세요.









*****









 켄마 선배가 쿠로상을 찾고 있다고 했다. 쿠로상이 실종된지는 아직 한달도 체 지나지 않았는데 웬 오지랖일까, 싶었다. 사실 처음부터 조금 거슬렸던 선배였다. 조용하고, 게임기만 붙잡고 있고. 그럼에도 항상 쿠로상의 옆에는 그가 있었다. 둘은 소꿉친구라고, 야쿠 선배가 스치듯 말해줬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소꿉친구, 짜증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먼저 단 둘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했을때는 솔직히 놀랐다. 정말 무얼 알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생각. 날카로운 눈빛이 내게 닿는 것이 부담스러워 내 몫의 음료만 홀짝였다. 불편한 상대와 마주하는 것은 생각이상으로 힘든 일이라는걸 느꼈다. 침묵이 유지되고만 있자,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켄마 선배였다. 평소에도 단답정도 밖에 하지 않는 선배와 대화를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쿠로를 마지막으로 본게 어디야?"

"마지막이요? 흠… 역시 체육관이려나. 연습 끝나고나서는 못봤어요."





 이건 거짓말이다.





"… 역시 그렇구나."

"쿠로상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단서조차 없는거예요?"

"응. 경찰들도 가출쯤으로 생각해서 도와주지 않아."

"이런… 선배, 힘드시겠네요."





 솔직히 조금 미안하지만, 켄마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에 크게 웃어버릴 뻔했다. 아아 안되겠지. 저 선배의 눈은 기분나쁘게 예리하니까. 웃어버리면 들켜버릴거야. 아직 쿠로상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는걸. 애써 표정을 추스리지만 기분이 좋아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을 가리기위해 마른세수를 하며 일부러 한숨을 내뱉었다. 어떡하지, 이 바보같은 선배를. 너무 고마워서,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쿠로상을 찾을 수 있게되면 좋겠네요."





 음료 값은 내가 계산했다. 쿠로상을 찾는걸 돕지 못하는게 죄송해서라는 변명을 짖껄였지만, 사실은 일종의 보답이었다. 계속 그렇게 헛다리만 짚어달라는 의미도 조금 포함되어있었다. 켄마 선배와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쿠로상 생각을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쿠로상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켄마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얼굴을 할까, 슬퍼한다면 기분이 조금 나쁠 것 같지만 그래도 그의 감정변화를 볼 수만 있다면 그걸로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은 혼자있고 싶어, 들어오지 마."

"제가 오늘 누구랑 얘기하고 왔는지 알아요?"

"… 나가, 리에프."

"켄마선배랑 느긋하게 담소 좀 나눴어요."





 줄곧 표정변화가 없던 그의 얼굴에 당황감이 서렸다.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으니 멀리 가지도 못가는 몸으로 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는 모습이 묘하게 야했다. 





"켄마 선배가 쿠로상을 찾고 있더라구요."

"… …."

"그래서 찾을 수 있게되면 좋겠네요, 라고 하고오는 길이예요."

"그녀석은 뭐하러 날 찾고있데, 바보같이…."





 울고 싶은데도 애써 참아내는 것같은 표정으로 중얼이는 쿠로상은 얄밉게도 예뻤다.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싹트게 한 사람, 처음으로 내게 질투와 집착이라는 걸 알려준 사람, 그러면서도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는 사람. 비참하게도 나는 그런 그를 사랑했다. 팔을 뻗어 어깨를 벗은 어깨를 끌어안자 원치않아하는 반응이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날, 사랑해줘요. 그가 듣지 않으려는 내 고백은 처절한만큼 간절하다.





"키스… 할게요."





 입술을 마주대고, 야속하게도 길을 터주지 않으려는 그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 혀를 섞었다. 끝까지 응해주지않는 혀가 미워 뿌리부터 핥아올리며 치아를 훑었다. 밋밋한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입천장을 훑자 반응하는 그의 솔직한 몸이 좋았다. 배구로 다져진 단단한 몸매는 마치 마약같았다. 중독 될 것만 같은 이 느낌이, 자꾸만 내 뇌세포를 정지시켜버린다.





"쿠로상은 무자비해요."

"… 닥,쳐."

"쿠로상의 모든것이 나를 미치게 해."





 사랑해주세요, 사랑해주세요. 제발 나를 사랑해주세요.





"평생, 나때문에 네가 미치더라도."

"… 제발 나를."

"너를 사랑하지 않아."

"나를 사랑해주세요."





 그의 안에 파정했다. 그러면서 무심결에 잡았던 그의 손가락이 그의 입에서 나온 말 만큼이나 차가워, 정신없이 그 위로 입술을 부딫혔다. 온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 차가운 손가락은 내 마음을 찢었다. 나는 어느순간부터 그 손을 부여잡은채로 울었다. 너무 아프잖아요, 쿠로상. 너무 아파요. 어떻게하면 당신의 체온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나요. 어떻게하면 당신의 손 끝의 냉기를 녹일 수 있을까요.





"항상 곁에있고 싶었어요, 그 시선이 내게 닿아있길 바랬어요."

"리에프…!"

"저는 단지 그랬을 뿐이예요, 쿠로상."

"… …."

"왜 저를 이해해주지 않는거예요, 왜, 왜, 왜!"





 한 번 눈을 감았다 뜨자, 쿠로상이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다. 두 번 눈을 감았다 뜨자, 쿠로상이 나의 두 손을 감싸쥐고 있었다. 세 번 눈을 감았다 뜨자, 쿠로상은 희미한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 눈을 감았다 뜨자, 쿠로상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방 안에서는 희미하게 라일락 향초의 향이 났다. 늘어진 그의 몸을 품으로 안으며 눈을 감았다. 오늘은 푹 자고 싶은 어린아이같은 기분이 들었다. 









*****








 눈을 떴다. 시계바늘은 오후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품 안에는 그가 변함없이 안겨있었다. 흐뭇함에 그의 머리칼을 정돈해주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오늘따라 오래 자네요, 쿠로상?



제목을정할수가없네여러분섹시농염한마츠하나파세요


[마츠하나] 제목을정할수가없네여러분섹시농염한마츠하나파세요





박경 -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With 조현아 Of 어반자카파) 기반



장마가 시작됐다. 그 때문에 제법 요란하게 내리는 비는 꽤 큰소리를 냈고 결국 그 빗소리에 마츠카와는 잠에서 깼다. 마츠카와의 움직임에 하나마키는 잠깐 뒤척이는 듯싶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마츠카와는 그런 하나마키의 머리를 한번 쓸어주고는 침대 밖으로 나왔다. 벽에 걸린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열한시였다. 커튼이 쳐있는데다가 먹구름까지 낀 탓에 오전인지 오후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둘은 어제 밤을 함께 보냈으니까. 커튼을 걷어내도 딱히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아서 커튼은 놔뒀다. 빗소리만 더 크게 들려 시끄러울 것이다. 마츠카와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했다.



마츠카와..



마츠카와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는 잠에서 막 깼다는 걸 알려주듯 평소보다 낮았다. 마츠카와는 그 목소리가 묘하게 더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마츠카와가 말없이 뒤를 돌아봤을 때 하나마키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다 뜨지 못해 가늘게 뜬 눈으로 마츠카와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양 팔을 벌린 채 마츠카와를 향해 눈웃음 지었고 마츠카와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자연스럽게 하나마키를 안았다. 학교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 아마 하나마키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건 전교에서 마츠카와 밖에 모를 것이다. 물론 알아서도 안되지만. 오이카와나 이와이즈미는 알까? 잠시 생각해봤으나 저들이 하나마키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는 않으니, 라며 금세 생각을 접었다. 마츠카와에게 안긴 하나마키는 옷가지들과 어제의 흔적으로 인해 지저분한 주위를 보고는 어떡하냐며 걱정했으나 그의 말투는 딱히 걱정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말투였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더럽든 말든 상관없잖아.



마츠카와의 말에 하나마키는 웃으며 몸을 더 일으키곤 마츠카와에게 안겨왔다. 넌 날 너무 잘 알아. 체격이 비슷한데도 약간 헐렁한 마츠카와의 티셔츠만 입고 자신의 흔적이 가득한 곧게 뻗은 다리를 훤히 내놓은 하나마키의 모습은 마츠카와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나는 자신의 향기가 마츠카와를 더욱 흥분시켰다. 전날 늦은 오후부터 새벽까지 이어진 행위에 지칠 법도 하지만 마츠카와는 참을 수 없었다. 하나마키의 등을 몇 번 쓸어내리던 마츠카와의 손은 아래로 향했고 하나마키의 드로즈를 살짝 벗겨내 그 사이를 훑었다. 하나마키는 간지럽다며 마츠카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마츠카와는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마키의 앞에 갖다 댔다.



어제만큼만 자극적 이어봐.

더 자극해주면 좋고.



그 말에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손가락 끝을 이로 살짝 깨물더니 그대로 자신의 입안에 넣었다. 마츠카와가 손가락으로 하나마키의 혓바닥을 살짝 눌러주자 하나마키는 그것에 반응하고 혀로 마츠카와의 손가락을 핥아내리기도 하고 소리 나도록 빨아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눈을 피하기는커녕 똑바로 쳐다봤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빨아대는 하나마키의 모습은 상당히 선정적이었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뒤통수를 끌어안고 하나마키의 귓바퀴를 핥았다. 미치도록 예쁘다. 마츠카와는 분홍빛의 머리칼을 몇 번 만져주다 하나마키의 입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빼내고 바로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행위에도 하나마키는 놀란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바로 적응해선 마츠카와의 치열을 훑어내렸다. 이에 질세라 마츠카와는 더 진하게 입을 맞춰왔고 하나마키의 팔이 마츠카와의 목을 감았다. 둘의 혀가 서로 얽히며 농도 짙은 키스가 오고 가는 와중에 갑자기 하나마키가 입술을 뗐다.



왜?

티. 벗겨줘.

넌 진짜..



결국 키스를 나누다 말고 마츠카와는 하나마키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겨주어야 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맞추려고 하는데 하나마키의 손이 마츠카와의 양 볼을 잡아 이를 또다시 제지했다.



또 왜.

여기, 해줘. 흔적은 남겨줘야지.



네 거라고 확실히 못 박아둘래. 그러고는 마츠카와의 얼굴을 자신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하나마키의 도발적인 행동에 마츠카와는 실소를 터트렸다. 넌 정말 날 못 참게 해. 어제의 행위로 인해 이미 울긋불긋한 피부에 뭘 더 남겨줘야 하는 걸까. 마츠카와는 잠시 고민하는듯싶더니 자신의 얼굴을 잡고 있던 하나마키의 양손을 낚아채 하나마키를 침대로 완전히 눕혔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드디어 당황한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하나마키의 모습에 마츠카와는 묘한 승리감을 느끼며 하나마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흔적, 남겨줄게.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아, 그런데 거기도 이미 잔뜩 일 텐데?



그제야 마츠카와의 행동을 이해한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말에 대꾸를 하는가 싶더니 제 스스로 자신의 속옷을 완전히 벗었다. 그에 마츠카와도 제 속옷을 탈의하고 하나마키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는 것을 시작으로 붉게 달아오른 하나마키의 몸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며 손가락으로 뒤를 넓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자신의 것이 들어갔다 나온 곳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손가락 하나도 강하게 조여왔다. 낮은 신음을 흘리는 하나마키를 보다 마츠카와는 손가락을 빼내고는 협탁 위에 놓여있던 콘돔을 뜯어 씌운 뒤 바로 그 은밀한 곳에 제 것을 밀어 넣었다. 고통에 찬 신음이 쾌락으로 가득 찬 신음으로 바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나마키의 다리가 자연스럽게 마츠카와의 허리를 감았고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가슴 부근을 애무하면서 허리를 움직였다. 저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하나마키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진짜, 예뻐. 마츠카와가 서서히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자 하나마키의 허리가 색스럽게 휘며 교성이 터져 나왔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교성을 좋아했다. 평상시엔 들을 수 없는, 흉내도 내지 못할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본능적인 이 소리를. 절정에 다다르기 전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것을 가볍게 쥐어흔들며 사정을 유도했다.



진, 진짜, 하읏, 좋아해.



쾌락에 못 이겨 결국 하나마키가 먼저 사정하고 뒤이어 마츠카와도 하나마키의 안에 사정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을 더 서로를 탐했는지 모른다. 지칠 대로 지쳐 침대에 널브러진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하나마키는 마츠카와를 꼭 끌어안고 어깨에 입술을 갖다 댔다.



니가 너무 좋아.

응, 나도.

난 진심이야.

나도.




뿌링클먹고싶다


은혼 긴히지 ><





맞춤법 수정하지 말아주세요 저 한국말 잘 써요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오키타 워더 













긴토키가 눈을 떳따,

"으으...-_- 여긴.....,.. 어디지?! 앗...! 당신은...! 누구세요!(⊙o⊙)?"



긴토끼가 놀라서 눈을 토끼처럼 똥그랗게 ㅇ0ㅇ 떳다. 하지만 아무도 몰라따 ~T_T~

그러자 긴토키 앞의 깜장 머리 사내가 이러케 말햇다.



"이러나셧군요... 용.사.여.(--?) 제 이름은 히지카타. 마요성의 공주랍니다.,,(∩_∩)"



'았... 엄청나게 귀엽잔아!'<어이! 히지카타는 내 깔.이.라.구?

"마요성의 공주가 여긴 나한테 무슨 용건이 있길래 왓찌?> 밀린 집세는 이미 다 냇다구!??(으쓲)"



"도움! 사실 제가 북쪾산의 짱 썐 짱짱 썐 투명드래곤한테 잡혀가써요 살려주세용 ~(&ㅠ&)~"




공주는 그 말을 남기고 갑작이 사라져버렷다.




"ㅇ0ㅇ... 짱 썐 투명드레곤...? 후... 내 심장이 또 날뛰기 시작햇군 ^-^... 이런이런 하여간 강한 상대를 만나면 두근거리는 이 감정을 숨길 수 없다니까? 크킄.

이 긴토키님이 출동을 해줘야겠군Y(^_^)Y 투명드래곤? 넌.내.거.야. 후후..."





긴토키는 걸엇다. 계속 걸엇다. 계속꼐속 걸엇다. 엄청 마니 걸엇다. 열심히 걸엇다.


북쪽산에 거의 도착했을무렵 누군가가 긴토키에게 말을 걸엇다.





"긴토키!"



"나니? 앗 너는... 즈라?(▽)여기서 만나다니 반갑군 너도 내 동료가 되는게 어떄 크크"



"으으으... 와타시는.... 즈라가 아니다!!!!!!"



"즈라...? ㅇ0ㅇ"



긴토키는 놀라서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도 몰랏다.





"으으... 내 소중이에 잠들어잇는 흑염룡이... 흑염룡이 꺠어나려고해...! 으으... 응아가가아아아아가앙아오키타워더어어어커ㅓ어ㅓㅇ더ㅓ거엉!!!!!!!!!"





그럿타, 사실 즈라는 즈라가 아니고 짱 썐 투명드래곤이여따. 즈라는 즈라라는 말을 듣고 너무 화난 나머지 즈라의 모습이 아닌 즈라와 확실히 다른 즈라보다 훨씬 썐 투명드레곤의 모습으로 각성해따.

투명드래곤은 빡쳐따. 내가 즈라 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더 빡쳣다. 즈라즈라즈라즈ㅏ를자르ㅏ즈자즈잘즈ㅏ릊라ㅡ자즈즈라 헤헤 즈라 빡쳐랑



즈라는 빡쳣다. 즈라가 울부짓엇다.




"쿠와옹오아오앙아아앙아ㅏ아아앙앙아아앙아아!!!!!!! 아앙ㄱ아앙아아앙오키타엉덩이고코카코코아오강아앙아ㅏㅇ!!!!!!!

만지고싶다아앙아갸ㅑㅇ아ㅏㅇ아ㅏ아아아아아아ㅏㅇ!!!!! 크아아아앙아아ㅏㅇ앙오앙오키타워더어아어어ㅏ가아ㅏㅇ!!!!!!"




투명드래곤은 짱 썌다. 썌다. 짱짱 썌다. 치킨을 보고 달려드는 쓰니보다 썌다. 여고의 점심시간보다 썌다.



긴토키는 그만 투명드레곤의 강려크한 울부짓음에 주거버렷다. 근데 여기서 주그면 안되니까 내가 다시 살렷다.



긴토키도 빡쳣다. 왕코딱지를 열심히 파다가 잘못 건드려서 더 깊숙히 넣어버렸을 떄보다 더더더 빡쳣다.

긴토키도 울부짓엇다.




"크아아앙아아ㅏ아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오키타귀깨물고싶다아아아ㅏㅇ아아아아아아!!!!!!!!!! 아앙악가앙앙오키타랑뽀뽀하고싶다다앙갸양야강약야ㅏ가아!!!!!!!"






긴토키도 짱 썌졋다. 겁나 썌졌다. 그래서 투명드레곤이 주것다.




"으으... 와타시는... 즈라가... 아...니...다.......... ㅇ<-<"


"훗 투명드레곤도 별 거 아니구만??)/ 여기 섹스라고 써도 됨? 아 히지카타랑 섹스하고 싶다;"



저 말은 명언이 되면서 훗날 어떤 여자와 케냐 노동자가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잇도록 도와줫다고한다. 우우! 너네 나라로 돌아가!


어쩃든 투명드레곤을 주기자 히지카타가 나왓다.





"긴토키님!!!!!!!!!!"




둘은 만나서 1807283789247014920382190479312087491204732597230시간동안 키쮸를 햇다.

그리고 1902873904823958235908329489230478490723928시간동안 섹수도 햇다.

긴토키는 정력 킹이다.

긴토키와 히지카타는 아기를 1279824390483290483958390479014274932824094명 낳앗다.


긴토키와 히지카타 너머로 흐뭇하게 바라보는 케냐 노동자가 잇엇다.



끝><


雨天 (비가 내리는 날)


[스가카게] 雨天(비가 내리는 날)





그 날은 어느 날보다 비가 많이 내려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그런 날이였다.



'졸업식에 비가 온다니 조금 우울하네-.'


라고 담담하게 말한 스가선배는 우리들을 보고



'뭐야.너희들이 우리보다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어떡해.'라고 말하곤 장난스레 웃었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 잦아지겠지 한 비는 소나기에서 작달비로 바뀌어 어째 운동장에서는 졸업식을 못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비가 오는 관계로 졸업식은 체육관에서 진행되어야만 했다.따갑다 싶을정도로 내려치는 비는 그칠줄을 모르고 한없이 쏟아졌다.

졸업식의 순서는 생각보다 간단했다.중간 중간에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있었고,우는 3학년들이 더러 보였다.


식 중간에는 동아리 부장선배들이 앞에 나와 졸업 소감과 아랫학년에게 잘부탁한다며 당부의 말을 하는 순서도 있었는데,

다이치 선배가 마이크 앞에 서서 말을 할 때,우리들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많은 시합을 할 것이고,더욱 더 발전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간다고 해서 너희가 울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한 다이치 선배는 한번 숨을 몰아 쉬더니.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너희들이 더 시합이 할 수있다는게 부럽다.하지만 우리의 무대는 여기가 끝이니,너희를 믿고 떠나겠다. 잘부탁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겪었던 시합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목구멍에서 쏟아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타나카선배와 노야선배가 크게 울자, 다이치선배는 내려오자마자 우리에게 평소처럼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네 시끄러워!!!!!!! 졸업하는 정도로 오열하지 말라고."


꽤나 다이치선배다운 말이라서 타나카선배와 노야선배는 울던것을 점차 그치면서 평소처럼 열혈하게 말했다.




"그치만 졸업인걸요.저희가 어떻게 얘네들을 이끌어가냐고요!!"


타나카선배가 그렇게 말하자, 스가선배는 웃으면서 "타나카가 고생이 아니라 엔노시타가 고생이겠지."


그 말을 들은 니시노야 선배와 타나카 선배는 묘하게 웃으면서 엔노시타선배에게 달려들어서 등을 세게 두드려주셨다.



"차기주장, 힘내라고!!"


물론 엔노시타 선배 표정은 상당히 안좋았지만,그래도 중압감에 시달리거나 하실것같진 않았다.





졸업식이 거의 끝나가자,마지막으로 교가를 부르는 순간에는 3학년선배들마저도 눈물을 흘리셨다.




졸업식이 끝나고. 우리는 마지막에 체육관에서 대화를 하고 돌아갈 예정이였다.하지만 생각보다 비는 식전보다 더 거세져서 선배들이나 우리들이나 일단 돌아가는 수밖에 없나.하고 생각했다.

결국 다이치 선배가 먼저



"역시 오늘은 좀 그러려나.졸업한 우리가 학교 체육관에 나중에 다시 오는건 좀 뭐하지만 그래도 비가 많이오니까 말이야.모두 해산!"



그렇게 말한 선배는 울고 나서 코가 시큰거리는지 한번 손으로 비비고는 뒤돌아서 가방을 매고 나갈 채비를 하셨다.물론 다른 부원들마저도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분위기였다.스가선배는 조금 달라보였지만, 말이다.





"카게야마!!안 챙기고 뭐해!"


히나타 녀석이 등을 치는 순간, 스가선배에게 있던 시선을 그제야 떼고서 나도 나갈 채비를 할 수 있었다.고개를 돌리기 전까지 스가선배는 계속 체육관 창문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것같았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나가고,우리 부원들도 하나씩 점차 나가기 시작할때쯤 스가선배는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카게야마, 조금 남아줄래.선배로써 해줄 얘기가 있어"


아까까지 선배의 표정과는 다르게 이 말을 할때당시 스가 선배의 목소리는 조금 밝았던것같다.




"카게야마 안 가는거야?"


히나타는 나를 조금 재촉하다가 남아서 할게 있다고 하니까 계속 물어보다가 결국 제 풀에 지쳐 먼저 가버렸다.사람들이 다 빠지고 나니,정말 선배와 나만 남았다.몇분동안 선배는 아무말없이 그저 내쪽을 보기만 했다.





"선배.하실 얘기가..뭡니까?"




조용하다보니 말투가 전쟁에 나갈 사람처럼 비장하게 들린다.말투를 듣고 선배는 풋 하고 살짝 웃더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얘기하기 조금 창피하단 말이지.듣다가 조금 싫은 얘기라도 가지 말고 그대로 들어줬으면 해."




"카게야마, 나는 니가 오기전에는 주전세터였어. 니가 들어오고 나서는 벤치로 갔지만 나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않아.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했을뿐.

그리고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았을때,넌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잖아.'이번에는 제가 스타팅 멤버로 나가게 되었지만,다음엔 확실하게 레귤러를 따내겠습니다.'라고"


"...스가와라상"



"나 그 말을 듣자마자 나같은건 신경도 안쓸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도 나만의 장점이 있다는걸.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걸.깨달았어. 헛수고같은게 아니였다는걸. 너의 말은 나에게 작은 원동력이 되었어.

남들이 코트위의 왕이다.뭐다해도. 내가 벤치에 있는 동안 니가 내 말을 귀담아 들어서 웃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나,사실은 한점 한점 얻을때마다 무척 기쁘게 웃고 모습을 봐와서 난 배구를 포기하거나 하지않고 열심히 할 수 있었어.



말을 마친 선배는 숨을 몰아 쉬더니, 교복에서 두번째 단추를 뜯더니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나에게 있어 큰 존재가 되어준 카게야마한테 주는 선물."



선물이라기에는 조금 초라하지만 말이야.라고 말을 덧붙힌 선배는 왠지 쑥스러운 듯 얼굴을 긁적였다.



"고마워, 카게야마.넌 나에게 있어 심장부근에 아주 가까이 있었어.그렇게 힘을 줘서 고마워."


단추를 쥔 손이 힘이 들어간다.아까전에 졸업식에서 모두가 울때도 눈물이 이렇게까지 흘리거나 하지 않았는데,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울지마. 카게야마 내 고백이 그렇게 싫었어?이런거 나 다이치한테도 의논한 적없다고."



그렇게 말해오는 선배의 표정에는 미안함과 뭔가 아직도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괜찮습니다.저는 그냥. 너무 벅차서.그랬을 뿐입니다."


교복 소매로 눈물을 닦고 겨우 목소리를 내 말하니,선배는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곤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벅차다는 건 그래도 역겹다거나 도망치고 싶다거나 그런건 아니니까 이걸로 만족해야하나.."



작게 혼잣말을 한 스가선배는 가방을 챙기더니 내 등을 두드리며 이제 갈까 하고 밝은듯 말을 했다.


'이걸로 괜찮은걸까.'



가방을 주워들고 나서 조금씩 거리차이가 나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자,나는 의문이 차올랐다. 나도 뭔가 스가선배에게 답을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체육관 문을 여니 작달비는 조금 세기를 바꾸어 소나기로 변해있었다.



"..카게야마 혹시 우산 같이 쓰지않을래? 아침에 심하게 왔더니 우산이 조금 망가져서 말이야."



스가선배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빤히바라보다가 가방에 우산을 쑤셔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역시 대답은 해줘야 한다.




"..선배, 저는 선배가 부러웠습니다.저는 멤버들간의 신뢰나, 남의 컨디션을 생각해주고 그런거에는 아직도 조금 어색한데, 선배는 그런 저에게 항상 충고해줘서 나도 저렇게 남들과 신뢰하는 세터가 되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부러움이 평범한 점프서브와 점프 플로터 서브가 다르듯. 다르다는걸 알았습니다."


내 말을 들은 선배는 기쁜 기색을 감출수 없는 듯 한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한마디했다.



"듣고 있어, 조금 부끄러우니까 나 보지말고 얘기해줄래?"


그렇게 말하는 선배에 담담하게 말해온 내가 신기해져 나도 조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돌려서 말하는건 조금 어색하니까.전 컨트롤을 익혀서 말하겠습니다. 졸업식에 교복 두번째단추를 주는건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는거니까.저도 선배한테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곤 난 뒤 나도 선배처럼 교복 두번째 단추를 뜯어서 손에 쥐어 드렸다.




"..저도 좋아해요.선배."



말을 마치자, 선배는 한 손으로는 단추를 꽉쥐고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더 멋있게 고백하면 어쩌자는 거야.카게야마는"





"그래도 먼저 좋아한 쪽은 나니까 봐줄게."


라고 말한 선배는 나를 끌어당기더니 이마를 맞대고선 쑥스러운듯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비가 내려서 땅에서 나는 냄새가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은 날이구나.하고 생각되는 그런 날이였다.






제 2회, 익명만애 글합작 | 인스티즈


[커플링 미표기] 연





#엄청난 캐붕 

#몰입을 위해 조선이지만 모두 일본이름을 썼어요 단 서로를 부를땐 한국이름 

#카가미-화신 아오미네-청봉 쿠로코-흑자 



백옥같은 새하얀 피부. 그와 대조되는 타는듯한 붉은머리와 눈동자. 아, 입술도 참으로 붉구나. 그게 첫인상이였다. 



"더이상의 시비는 필요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시비가 아니다" 

"......" 

"지난번 왜군의 침입때 포로로 잡은 아이인데, 너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여 말동무나 하라고 데려왔다" 

"...아버지" 

"똑똑하고 총명한 아이니 잘 대해 주거라" 


한참의 말씨름 끝에 받아들이는것 말곤 방법이 없다는걸 알게된 아오미네는 한숨을 쉬며 큰 사랑을 나왔다. 어쩜저리 고집이 세신지 알턱이 없다. 지난번에 주신 시비까지 합하면 5명이 넘어간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아버지는 들은체도 안하셨다. 아오미네는 사랑마당에 서있는 덩치큰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반항적인 눈매가 관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날 고국으로 보내주시오" 

"...내가 어찌할수없구나" 


노비로 들어왔는데도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자고로 사내라면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저리 강인하게 살아야하는 법. 하지만 그게 자기 아랫사람이 된다면 용납할수없는 청봉이 냉소를 지었다. 이름이 무어냐. 아오미네의 물음에 사내는 툭던지듯 말했다. 


"카가미 타이가" 

"흠..." 

"......" 

"기본 예절부터 다시 배워야 하겠구나" 

"하-" 


입매에 은은한 미소를 띄고 말하는 아오미네의 모습에 카가미가 혀를 찼다. 일본 무사가문의 자제라 타국의 노비가 된상황만 해도 자결해버리고 싶은데 저런 성격의 주인이라니. 카가미는 당장 죽어버리고픈 마음을 억누르며 다가오는 주인을 응시했다. 자신과 영다른 푸른 눈과 푸른 머리였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그를 훨씬 강인해 보이게 만들었다. 뭐가 어찌됐든 카가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시종을 들어야한다는것 자체가 너무 끔찍했다. 돌아가고싶다 익숙한 풍경과 벚꽃이 가득한 고국으로. 



아침 5시. 아침이라기도 뭣한 시간에 카가미는 연신 하품을 하며 아오미네의 뒤를 따랐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아침공기라 싸늘한 기운이 얇은 삼베옷을 통해 카가미의 몸을 훑었다. 반면에 아오미네는 고운 비단 옷을 입고 그위에 두루마기까지 걸쳐 여유로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가다가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에게 두어마디 건네고 힘내라며 꺼슬한 손을 잡고 격려하는 아오미네를 멀거니 바라보며 카가미는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얼굴은 콧대높은 양반집 자제 얼굴인데 생각보다 농민의 삶에 잘 스며드는 모습이 보통양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신아" 

"카가미 타이가오" 

"윗사람에겐 겸양어를 쓰라하지 않았느냐" 

"......카가미 타이가입니다" 

"하하 말도 잘듣는구나" 


뭐가 유쾌한지 산길을 걷던 아오미네가 길을 멈추고 웃는다. 비웃는것같은 행동에 카가미가 기분이 상해 아무말 없이 서있자 청봉이 말했다. 


"심기가 나쁜가보구나" 

"...그렇습니다" 

"하하하 연구대상이구나" 

"뭣때문에 그리 웃으십니까" 

"네 하는행동이 애교가 넘치지 않느냐" 

"....혹시 사내를 좋아하십니까" 

"하하하하-" 


또 저런 웃음. 솔직히 소리나 웃는얼굴이 나쁘진 않아 싫진않지만 왠지 비웃는듯 해서 카가미는 부루퉁한 얼굴로 먼저 산길을 걸었다. 예절을 더 가르쳐야 겠구나. 금새 따라온 아오미네가 예의 그 말을 읊으며 카가미와 보폭을 맞췄다. 엄한 목소리에 화났나 싶어 힐끔거리는 카가미는 부드럽게 휘어진 눈꼬리에 아무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옆태도 잘생겼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화신아" 

"카가미..하...예" 

"난 이 광경을 제일 사랑한다" 

"......." 

"작은 고을이지만 모두가 부지런하고 따스한 이곳이 모두 담긴 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 

"정말로 이곳을 지키고 싶다" 

"......." 

"내 만약 누군가가 이곳을 건드리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이곳을 지킬것이다 이 고을내의 그 누구라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아버지는 과거를 보라하시는데 나는 정치엔 뜻이 없구나 그저 여기서 학문에 정진하며 이곳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내 소박한 소망이다" 

"......" 


천천히 하늘위로 올라가는 해가 청봉의 돌아보는 얼굴의 뒤로 펼쳐진다. 진지한 푸른 눈동자가 마치 고백을 하는듯해서 카가미는 순간 움찔했다. 아오미네의 선이 굵은 손이 다가와 카가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계집한테 하는 행동을 자신에게 하고 있는데 어째선지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춥지 않느냐. 걸친 푸른 두루마기를 카가미에게 건넨 아오미네가 다시 마을을 보며 말했다. 


"그 안에 네가 속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어찌하여 내 마음은 이리도 떨리는가. 



행랑은 확실히 후지구나. 카가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도 서민을 생각하는 양반가문이라 노비가 지낼 방인데도 갖출건 다 갖추고 햇빛도 잘들지만 지난번에 어쩌다 아오미네를 따라 작은사랑에 들어간적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행랑은 정말 작고 소박했다. 하지만 더듬어보면 아오미네의 방엔 책만 가득했던것도 같다. 평소엔 5시에 일어나라고 카가미를 깨우는 아오미네인데 왠일로 6시까지 건들지 않았다. 


"카가미" 

"작은 도련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응- 카가미는?" 

"저도 푹 쉬었습니다" 

"흑자야 화신이라 불러야지" 

"하지만 카가미가 진짜 자신의 이름이잖아요" 

"맞구나......작은사랑으로 오렴" 


동그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또박또박 말하는 폼이 귀엽다. 카가미는 특유의 맑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며 쿠로코의 등을 두드렸다. 마치 자신의 아이인냥 품에 안전하게 안고 자신을 보는게 꼭 부인같아 아오미네는 얼굴을 굳히며 자리를 피했다. 언제부턴지 아오미네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 카가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흑자를 땅에 놓았다. 아침공부를 해야 하기때문에 작은사랑으로 가던 쿠로코가 카가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카가미, 아침공부 끝나고 나랑 놀아요" 

"네 어서끝내고 오십시오" 


"넌 참 좋겠구나" 

"......" 


뒤를 돌아보니 한 시비가 비꼬는듯한 얼굴로 삐딱히 서있었다. 옥련이라고 했었나 그런 이름이였다. 


"큰 도련님도 이상도하시지 덩치크고 멍청하고 심지어 왜놈이기까지 한 노비를 왜 저리 아끼실까" 

"......." 

"거기에 좋아서 꼬리 흔드는걸 보니 참 가소롭다 네가 이러는것도 언젠간 끝-꺄악!!!!!" 


왜놈주제에. 왜. 조선보다 발달이 더딘것도, 약탈을 일삼는 해적이 많다는것도 인정하지만. 자신의 조국을 눈앞에서 모욕하는데 가만히 있을 카가미가 아니였다. 멍청하게 서있으면 무사 가문의 수치였다. 그래서 옥련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가미는 옥련의 뺨에 주먹을 내질렀다. 


'쿠당-' 


"뭣들 하느냐!!!..." 

"도련님...!..흑..흡-" 

"화신아.."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고왔다. 하지만 성질이 추악하니 뭣도 보이지가 않는구나. 카가미는 싸늘한 눈동자로 옥련을 노려본후 아오미네에게 말했다. 잘못이 없다라. 이미 잔뜩 부어오른 왼볼을 쥐고 흐느끼는 시비를 무시하기엔 아오미네는 너무 곧았다. 아오미네는 차가운 얼굴로 카가미를 한번 훑은후, 옥련에게 다가가 품에 안으며 토닥여주었다. 비참했다. 이런 대우가 이런 삶이. 그나마 위로가 되어주었던건 아오미네였는데 저런 계집의 싸구려 거짓행위에 넘어가 뻘뻘대다니. 모욕당했다는 분노와 알수없는 질투로 점철된 감정이 카가미을 휘감았다. 노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지만, 카가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산으로 향했다. 난 노비가 아니다 무사가문의 유망주였고 받들어지는 입장이였지 누군가를 받드는 입장이 아니였다. 


그런 자신이 타국의 남자에게 허리를 굽히고 그의 노비에게 모욕을 당했다. 이대로 바다로 몸을 던져 수영하여 고국으로 가고만 싶다. 카가미는 마을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내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면 아니 된다. 하지만 이미 흐르는건 어찌할수가 없었다. 고국에도 저 노을이 펼쳐질터. 투명한 눈물이 흘러 카가미의 옷을 적신다. 


"뭐하는 것이냐" 

"......" 

"우는게냐" 

"...아닙니다" 

"우는게 어린아이 같구나" 

"울지 안았사ㅇ..." 


다가온 아오미네의 온기는 너무 포근하고 따스했다. 풀어헤쳐진 카가미의 긴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그 느낌에 카가미는 더욱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 히무로까지. 모두가 너무 보고싶어서 속이 쓰렸다. 게다가 방금 전 옥련에게 따스하게 웃어준 아오미네의 모습까지 오버랩돼서 슬픔이 배가 된다. 


"항상 생각했지만 고운 적색이다. 마치 불꽃같이 타오르는구나" 

"흡...예.." 

"울지 말아라 예쁜얼굴 망가진다" 

"흐..그런소리..히끅- 하지마십시요" 

"실로 예쁘다 참 고와.." 


부드럽게 볼을 매만지는 손. 카가미는 눈물때문에 흐릿해진 시야로 아오미네를 바라봤다. 눈을 마주쳐 오는게 가슴을 떨리게한다. 


"어서 가자 흑자가 널 기다린다" 

"예" 


금새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카가미. 아오미네는 햇빛이 부서지는듯한 웃음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앞장서 하산했다.



왜 이리도 맑으냐 왜 이리도 깨끗해 내가 만지기도 아까울 정도로. 


"작은 도련님 이리오세요" 

"카가미, 형님이 절 때렸어요" 

"하하하- 도련님이 작은 도련님이 귀여워서 그러신거에요" 

"말도안돼요" 

"작은 도련님 산책갈까요?" 

"네" 


쿠로코의 조막만한 흰손을 꼭 쥐고 솟을대문을 나서는 뒷모습이 꼭 다정한 어미와 아들의 모습으로 보이는건 왜일까. 아오미네는 알수없는 마음에 한숨을 쉬며 마루에 앉았다. 노란 온기를 지닌 햇빛이 아오미네의 몸에 내려앉아 감쌌다. 눈을 감고 있으려니 눈앞에서 카가미의 잔상이 맴돈다. 붉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 거기에 새빨간 입술까지. 입술을 생각하니 괜히 천하다고 생각된 아오미네가 놀라며 눈을 떴다. 자신이 왜 사내의 입술에 이리도 성욕을 느끼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저 어릴때 아이들과 호기심에 보았던 화첩에 있는 그런 상스러운 행동들을 카가미에게 하나하나 해보고싶다는 강한 욕망만 멤돌뿐이였다. 


"내 자신이 끔찍하구나" 


이런 속내를 알면 모두가 얼마나 손가락질 할까. 더군다가 카가미가 지을 표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쓰리고 쓰려 참을수가 없었다. 남색을 즐긴다는건 주위에서도 몇번들었고 지난번에 수헌정에서 선비들과 풍류를 즐겼을때 어떤자가 데려와 자랑스레 보여주기까지 했으나 그들은 모두 여인같이 곱고 몸도 유선형이였다. 물론 카가미가 곱지 않다는건 아니지만 거인취급을 받는 자신과 신장이 같을정도로 크고 건장하단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였다. 


"혼자 뭘그리 청승떨고 있느냐" 

"-아버지" 

"혹시 연모하는 여인이 생겼느냐" 

"..!!! 하..하 아직 없습니다" 

"허허허- 아까부터 봐왔는데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고 하늘을 보며 연신 한숨을 쉬는것이 아무리봐도 그 이유뿐인데 이래도 발뺌하겠다는 것이냐" 


자신의 옆에앉아 집요하게 묻는 아버지가 이리 얄미웠던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있기야 하지만 '여인'이 아니고 더군다가 일본인이다. 아버지께 진실대로 고했다간 충격에 쓰러지실지도 모른다. 아오미네는 평소의 차가운 얼굴로 표정을 정돈하며 극구 부정했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 알수가 없다" 

"...그런것 같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대에게 마음을 주는 순간, 세상은 너무도 잔혹하고 도망치고싶게 느껴지지" 

"......." 


마치 자기보고 하는말 같아 아오미네는 아버지도 저와 같은 상황이 있었던건지 생각했다. 아버지같이 원칙을 중시하는 성격에 사내를 연모하진 않았을터. 천한 신분의 여인이라는 예상밖엔 가지 않았다. 


"넌 그런 상황을 잘 헤쳐 나가길 바란다" 

".......예" 

"날씨가 덥구나 난 들어갈테니 너도 어서 가서 쉬거라" 

"예 편히 쉬십시오" 


아버지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어느새 붉은 노을이 지고 있구나. 구름사이로 내리는 해가 경외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지만, 주황빛의 햇살이 집안 곳곳으로 파고들어와 그 또한 장관이였다. 


"도련님" 

"어..?..아, 잘 다녀왔느냐" 

"예 흑자는 피곤해 하길래 먼저 재웠습니다" 

"그래 잘했구나 가서 쉬거라" 

"예...그러나 도련님" 

"음?" 

"그...어...음......." 

"하하하하 어서 말해보아라" 

"저..그 어찌 요즘엔 절 찾으시지 않으십니까" 


당장 일어나서 카가미를 껴안고 그 입술에 입맞춤을 퍼붓고 싶은 게걸스러운 생각은 철저히 이성으로 억누르고 아오미네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부끄러워하는 자태가 기생이 왜 한동안 안왔느냐며 애교부리는 모습과 꼭 닮아 마음이 동한다. 카가미는 머리색만큼이나 붉게 달아오른 볼을 한채 고개를 숙이고 애꿋은 흙만 발로 파댔다. 화신아. 예. 따라오거라. 자신의 방으로 카가미를 이끈 아오미네가 바닥에 앉으며 자신의 앞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리와보거라" 

"??...." 

"이제 내가 무슨 짓을하던, 화를 내지 말아라" 

"예..?" 

"다 네가 물어본것이니 내 친절히 답해주겠다" 

"아...예" 


추악한 마음을 이리 순진한 아이에게 내보이는구나. 한심하기 짝이없어 아오미네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눈감아 보거라" 

"하?.....!!!!!" 


알수없는 태도의 아오미네에 순순히 눈을 감을 카가미는 자신의 입술에 살포시 포개지는 부드러운 살덩이에 놀라 눈을 떴다. 아오미네의 푸른눈과 눈이 마주친 카가미는 뭔가에 홀리듯 몸에 힘을 빼고 입맞춤에 협력했다. 강한 정복욕을 비추는 짙은 눈동자에 카가미는 안정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왜 안정감을 느끼는 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뜨거운 숨결이 섞이고 자신의 입속으로 파고드는 아오미네의 혀를 카가미는 오히려 휘감으며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생각외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반은 놀라고 반은 흥분된 아오미네가 카가미의 삼베옷 속으로 손을 넣어 허리를 만졌다. 


"으응...." 


낮게 그르렁 대는 신음소리. 완벽한 사내의 신음인데도 아오미네는 더 흥분되었다. 카가미는 저도 모르게 아오미네의 목에 팔을 둘렀다. 입맞춤하던 입술이 목을타고 내려간다. 가볍게 입맞춤하던 아오미네가 카가미의 쇄골 끝쯤에 진한 자국을 만들었다. 이 아이는 이제 내것이다. 상대쪽도 무언의 동의를 했으니 더 이상 거칠게 없었다. 사실 아직도 걸림돌은 수없이 많았지만 아오미네는 그런거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하아..." 

"화신아..." 

"..으읏- 도련..님.." 

"후..왜 그러느냐" 

"이름...진짜이름을 불러주십시요" 


눈을 내리깔아 긴 속눈썹이 부각된다. 아오미네는 유혹적인 카가미의 모습을 음미하며 카가미의 유두를 지분댔다. 진짜 이름이라. 여기서도 애교를 부린다는 생각에 기쁘게 웃은 아오미네가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카가미" 


그건 카가미의 길지않은 삶에서, 가장 끈적하고 다정했던 이름이였다. 


흰 피부위로 햇살이 쏟아져 밝은 문양을 만든다. 아오미네는 바닥에 퍼진 카가미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햇빛이 강한지 뒤척이는 카가미의 몸 구석구석에 붉은 자국이 비친다. 내꺼구나 내 것.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아오미네는 카가미를 품에 끌어당겨 안고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깜빡거리며 눈을 뜨는것도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오미네를 멍하니 쳐다보다 어제 일이 생각나 금새 부끄러워진 카가미였다. 어젠 아오미네의 방에서 달큰한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면서도 애가타서 조르고 또 졸랐다. 언젠간 끝날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가 너무도 고팠다. 


"도련님- 도련님..?" 

"어인 일이냐" 

"도련님 이방인이 왔습니다" 

"...누구더냐" 

"카가미라는 최근에 온 노비를 찾고있습니다" 


카가미와 아오미네 둘다, 놀라지 않았다. 



여름의 바다는 마냥 푸르고 아름다웠다. 어부들과 상인들의 건강한 소리와 갈매기들의 활기찬 울음소리. 아오미네는 자신과 닮은색을 품은 바다를 사랑했고, 동경했다. 물론 지금은 예외. 


".....몸 조심히 가거라" 

"...고마웠소" 

"하하-..." 

"........" 


그새 말투가 바뀐 카가미에 아오미네가 시원하게 웃었다. 뒤에서 히무로가 눈을 번뜩이며 둘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둘다 어느말도, 어느행동도 못한체 그저 뚫어져라 쳐다볼뿐. 카가미는 우울해 보이는 쿠로코를 껴안아 두어번 쓰다듬은 후에 방긋 웃어보였다. 


"..다시는 못보나요..?" 

"아마...그러니까 잘지내" 

"...네" 


눈물이 날것만 같은걸 겨우 참고 카가미는 웃는 얼굴로 배에 올랐다. 올라서 보니 아오미네와 쿠로코의 모습이 벌써 아닌것같다. 조선에서 얼마지내지도 않았는데 이리도 정이 많이 들었구나. 


"마지막으로 할말하렴 출발한다" 

"...도련...아니..아오미네" 

"...아오미네가 무엇인가?" 

"당신 이름이오 우리나라말로" 

"아오미네..." 


이름을 되내이는 아오미네. 이토록 사랑스러운데 저자와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카가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출항을 알리고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둘의 모습을 카가미는 멀거니 바라봤다. 


"화신아-" 

"......." 

"다음생..다음생에!!" 

"......." 

"--!!!!" 


그다음 말은 파도소리덕에 흩어졌지만 카가미는 알것같았다. 다음생에 꼭 연을 맺어요.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것도 모른체 카가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후로 일본에 갈때까지, 카가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바다만 응시했다. 푸르고 강인한 그를 생각하며. 한없이 


한없이. 


 


"야! 내가 양말 뒤집어 놓지말라고 했지" 

"어쩌라고" 

"끼가..나가 죽어라 그냥!!!" 

"아아악- 아파!" 

"아프라고 때린거다 까만아" 

"뭐?? 이 돼지새끼가" 


20XX년, 일본 도쿄의 한 오피스텔에서 투닥 거리는 고교생 둘. 덩치도 큰것들이 주먹을 휘두르니 위험에 보인다. 한참 거실을 어지럽히며 뒹굴던 둘이 어느순간 뚝하고 멈춘다. 


"이 씹....!!!" 

"아..? 뭐야, 유혹하냐" 

"뭐??미친..꺼져" 

"싫어-" 

"아 진짜...너 싫다.." 

"거짓말 하네" 


위에 올라탄 소년이 웃으며 아래의 소년에게 키스를 하는걸보니 그냥 친구는 아닌 모양. 툴툴대면서도 받아주던 아래 소년이 부드럽게 상대의 목에 팔을 감았다. 소년은 항상 이 자세를 할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립고 서글픈 그러면서도 뜨거운 감정. 


"왜 이렇게 적극적이냐 카가미 타이가" 

"싫으면 꺼지던가" 

"아니 겁나 좋아" 

"하여간..." 


카가미 타이가라고 불린 붉은 소년은 소년의 짙푸른 머리칼에 손을 섞었다. 


"아오미네" 

"엉?" 

"사랑해" 


열심히 카가미의 바지를 벗기던 아오미네가 충견처럼 고개를 들어 반응한다. 카가미는 실소를 흘리며 달콤하게 말했다. 사랑해. 아오미네는 좀처럼 보이지않는 섹시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도" 



달님


[우시카게] 달님





"달님, 소원을 들어주세요."



 영롱한 달빛이 소년의 머리위로 쏟아져내렸다. 



"."



 소년의 입술이 달빛을 향해 속삭였다. 그리고 마침내 꾹 감았던 두 눈을 뜬 소년은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차가운 바람에 볼이 한껏 발게져있다는 것을 알기나하는지, 소년은 허연 입김을 내뱉으면서 한동안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생일 축하해, 토비오."



 그날은 12월 22일, 소년의 생일 날 밤이었다.





*****





 요 며칠 새, 은근한 두통을 느끼던 우시지마가 결국 감기로 쓰러졌다. 그동안 단 한번도 감기를 심하게 앓아본 적이 없었을 뿐만아니라, 건강 관리 또한 철저하게 해왔던 탓에 그를 포함한 그의 지인까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우시지마는 어떤 이유건간에 감기에 걸렸으며, 그것이 꽤나 심해져 감독의 명령하에 연습에서 빠지게되었다. 빨리 나으라는 동료들의 문자를 대충 확인한 우시지마는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최대한 빨리 나아야할텐데, 라고 생각한 것을 마지막으로 우시지마는 깊은 잠에 빠졌다.



"아저씨, 일어났어요?"

"… 여기는,"

"옆에 갈아입을만한 옷을 뒀는데 맞으실진 모르겠네요."

"어디지…?"



 그리고 눈을뜨자 모르는 장소였습니다, 라고. 우시지마는 지금 제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무엇인지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은 감기로 인해 쉬고 있었으며,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어째서 눈을 떠보니 낯선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뿐만이아니라 잠들기 전까지 우시지마를 괴롭히던 두통마저도 햇살에 눈 녹아버리듯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지금 제 앞에 정좌로 앉아 덤덤히 차를 마시고있는 인물이 꽤나 익숙하다는 점이 그에게는 가장 당황스러웠다. 



"여기가 어디긴요, 저희 집인데요."

"… 너 누구야."

"카게야마 토비오요."

"… 키타가와 제 1중의 코트위의 제왕?"

"그게 뭔데요, 아 주먹밥 드실래요?"



 확실히 우시지마가 기억하고 있는 카게야마 토비오는 키타가와 제 1중의 독제자 세터였다. 그렇게만 알고있고, 저와도 접점이 없던 소년이 왜 저의 앞에 있는걸까. 우시지마는 이 얼척없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하기 다름없었다. 자신이 정말로 너무 아파서 이런 꿈을 꾸는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웃긴것은 우시지마가 이렇게 고민하고있는 와중에도 저자신을 카게야마 토비오라고 소개한 소년은 주먹밥을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다는 점이었다. 한 손엔 주먹밥, 다른 한손엔 찻잔을 쥐고 복스럽게 우걱우걱 주먹밥을 먹는 카게야마의 모습을 보며 우시지마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꿈이라면 이런 개꿈은 없을거다,라고 생각한 우시지마가 카게야마의 앞에 놓인 주먹밥 하나를 집어갔다. 별로 배가 고프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열성적으로 먹는 카게야마의 모습이 꽤나 볼만해 먹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의외로 뜨끈한 주먹밥을 손에 쥐고 한입 베어물은 우시지마가 입 안으로 퍼지는 고소한 맛에 살짝 미소지었다. 카게야마는 어느새 주먹밥 하나를 다 먹어치우고 다른 하나를 집어 올린 상태였다. 



"천천히 먹어라, 돼지될라."

"성장기거든요!"

"그래, 꼬마 돼지야."

"진짜, 이 아저씨가?"



 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 우시지마가 툴툴거리면서도 우걱우걱 열심히 주먹밥을 먹는 카게야마를 바라보면서 미소지었다. 항상 바쁜 연습과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자긍감으로 전전하며 살던 탓에 잊었던 웃음이. 꼬맹이 하나가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시지마에게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배구의 천재라는 타이틀을 얻게되면서 항상 승리만을 바라봤었는데 이런 소소한 광경을 바라보게되니 새삼 기분이 새로워졌다. 우시지마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평화였다. 



"돼지야, 여긴 너 혼자사는거냐."

"돼지가 아니라 카게야마 토비오라니까요?"

"그래, 토비오."

"…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곤 쭉 혼자 살았어요. 마을은 가끔 내려가고."



 카게야마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볼가에 밥풀을 붙인채로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을 말하는 것처럼보여서 우시지마는 괜히 물은건가, 하고 생각하며 목을 긁적였다. 



"그래도 달님이 제 소원을 들어줘서 아저씨가 와줬으니까 괜찮아요."

"… 달님?"

"아저씨, 밖에 눈 내렸는데 같이 나가놀아요."

"무슨… 이제 삼월인데 눈이 내려."

"아니예요! 어제가 제 생일이었으니까 오늘은 12월 23일 이예요!"



 카게야마의 말에 우시지마가 제 옆에 놓여있던 옷으로 갈아입던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고보니 뭔가가 살짝 이상했다. 우시지마는 제가 갈아입다 만 옷을 바라보았다. 현대에는 보기드문 그야말로 옛날 옷이었다. 



"… 너 지금이 무슨 시대인지는 알고있어?"

"어… 전에 마을에 내려갔을때, 무슨 막부가 생겼다고 듣기는 했었는데. 잘은 몰라요."



 막부라니. 우시지마는 급히 자신의 볼을 강하게 꼬집었다. 피부 감각으로 느껴지는 이 고통은 분명 현실의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건가? 우시지마는 꽤나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과거에 있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와닿지가 못했다. 카게야마는 옷을 갈아입다말고 굳어있는 우시지마의 등을 손가락 끝으로 쿡쿡찌를 뿐이었다. 아저씨, 안가요? 나 심심한데. 카게야마의 불음에 겨우 정신을 되찾은 우시지마가 마저 옷을 꿰입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저 이 독특한 꼬마녀석이 잘못 알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싶었다. 우시지마는 잔뜩 신이난 카게야마를 따라 걸었다.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은 정말로 말도 안되지만,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어쩐지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시간은 꽤나 빠르게 지나갔다. 가득히 쌓여있던 눈들이 어느새 따듯한 햇살의 기운에 녹아사라지고, 싸늘했던 바람마저도 기운이 약해졌다. 매일 일과는 단조로웠다. 우시지마는 늦은 밤이되면 제 방에서 자다가도 베개를 들고 찾아오는 카게야마와 함께 잠을 잤다. 그러다 아침이되면 우시지마는 아침 조깅했고, 카게야마는 집에 남아 간단한 아침식사를 만들었다. 대게로 주먹밥 뿐이었지만 우시지마는 그 서툰 솜씨를 퍽 맘에들어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말을 꺼내는 것은 카게야마였고, 들어주는 것은 우시지마였다. 그밖에도 때때로는 술래잡기를 하거나 산책을 다녔다. 그러다보니 우시지마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잊고있었다. 제가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 아. 미안, 내가 치울게."

"… 아저씨 방금 손,"

"뒤로 물러나 있어. 다칠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우시지마는 보았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이 유령인마냥 투명해졌었다는 것을. 그탓에 카게야마가 건넸던 물병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우시지마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유리조각을 치웠다. 카게야마는 말없이 우시지마의 말을 따라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라졌던거 맞죠. 손."

"… 아니야, 실수로 놓친거야."

"맞잖아요, 사라졌던거."

"토비오. 아니라고 했잖아."

"거짓말쟁이."



 깨진 유리조각들을 안전하게 모아서 버린 우시지마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투명해졌던 손을 쥐었다 펴보는 손길에서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우시지마는 벽에 기대어 마른세수를 했다. 이곳의 시간으로는 벌써 삼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러버린 참이었다. 그것을 깨닫자 우시지마는 순간적으로 불안해졌다. 우시지마는 시라토리자와의 주장이었고, 에이스 윙스파이커였다. 모두에게 주목받는 천재였고, 그만큼 짊어지고 가야할 부담감이 많았다. 그동안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 잊어버렸던 사실이었다.



"울고싶은건 내쪽이다, 토비오…."



 이곳에서의 모든것은 우시지마에겐 새로웠다. 그렇기에 막상 놓아야할때가 되자 마음이 무거웠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카게야마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디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우시지마가 생각한 것에 맞게 카게야마는 현관문 앞에서 쭈그려 앉은채로 끌어안은 다리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낮은 숨을 뱉으며 카게야마의 옆에 수그리고 앉았다. 차가움이 많이 사라진 바람결이 머리칼을 흐트렸다. 



"아저씨."

"응, 그래 토비오."

"안가면 안되요?"

"… 미안하다."



 카게야마가 울었다. 우시지마는 말없이 등 뒤로 손을 얹어 다독여주었다. 



"다시, 다시 만날 수 있는거예요?"

"… 물론, 조금 먼 미래에."

"내가 아저씨를 잊어버리면 어떡해요?"

"안심하고 잊어버려. 내가 기억하고 있을테니까."



 우시지마가 카게야마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주면서 웃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내가 꼭 기억할게, 토비오."

"… 아저씨, 저 사실 다른 사람한테 생일 축하를 받은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너무 기뻤어요."

"그랬구나."

"아저씨가 옆에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카게야마가 팔을 벌려 우시지마를 안았다. 저 멀리서 부터 하늘이 붉어진다 싶더니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자신을 껴안은 카게야마의 등 뒤로 자신의 팔을 올려 놓으면서 카게야마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 …."

"내 이름."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옅게 어둠이 깔린 하늘 밑으로 눈물로 촉촉해진 눈동자가 서로 마주했다. 우시지마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울지마세요."

"너부터."

"… 오늘은 아저씨랑 같이 잘래."

"언제는 안그런척하긴."



 그날은 평소보다 해가 빨리 지는 듯 했다. 카게야마와 우시지마는 마주보고 누웠다. 바깥으로는 풀벌레가 우는 소리만이 잔잔히 울려퍼졌다. 



"… 고마워요."

"나도, 고마워."



 영롱한 달빛이 스며들듯 방 안을 비추고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





"우시지마, 몸은 괜찮나?"

"네. 나았습니다, 감독님."

"참, 이번 신입중에 또 굉장한 놈이 들어왔는데."

"누굽니까?"

"키타가와 제 1중의 천재세터."



 체육관 바닥을 울리는 배구공의 소리, 우시지마는 숨을 들이마시며 잠자던 감각을 깨웠다. 그는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다. 더이상 풀벌레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는 그 숲 속이 아니었다. 우시지마에 걱정과는 다르게 현실의 시간은 별로 지나있지 않았다. 한 나흘 정도. 그가 눈을 떴을때는 그는 그의 방 안에 누워있었다. 식은땀에 푹젖은 몸은 무겁기는 커녕 가볍기만 했다. 머릿속도 훨씬 맑아진 기분이었다. 우시지마는 그곳에서 치유를 받았던 것이었다. 쉴 틈없이 배구공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던 우시지마도 서서히 몸을 풀었다. 언제 아팠었냐는 것마냥 몸이 개운했다. 



"안녕하십니까! 키타가와 제 1중 출신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너 볼에 밥풀 묻었다."

"네? 아… 밥풀."

"천천히 먹어라, 돼지 될라."

"성, 성장기입니다!"



 그리고 기분 또한 평소보다 훨씬 개운했다.


고아원


[이나슬레] 고아원





헤븐즌 폴로 인해 유키는 가족을 잃었다. 혈육이라곤 자신의 동생인 이나호뿐이였다. 그렇게 한순간에 고아가 되버린 유키와 이나호는 보호시설인 홈으로 보내졌다. 보호시설로 보내지고 나서 얼마안있어 이나호는 보호시설 아이들의 표적이 되버렸다.


이나호는 그날도 미친듯이 맞았다. 순수한 아이들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집요했고 교활했다. 그런 악의적인 장난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건 유키뿐이다. 이나호가 맞고 들어 온 날이면 유키가 더 화를 낸다. 


“나오야, 누가 이랬어! 말 좀 해봐 응?”

“ . 상관안써도 돼,누나. ”


유키에 타박에 상관쓰지말라는 이나호 때문에 유키는 더 화를 낸다. 동생을 계속 붙잡고 물어보지만 끝까지 누가 때렸는지는 말하지않는다. 동생이 입을 끝까지 열지 않자 유키도 포기한지 얼른 씻으러 가라고한다. 유키는 이나호 손등에 보이는 상처를 보며 울분을 삼킨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보호시설의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매주 보호시설에 자원봉사하러 오는 여자와 여자의 손을 꼭 잡고있는 남자아이였다. 보호시설에 있던 선생님 한분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담소를 좀 나누던가 싶더니 여자는 외투를 벗으며 앞치마를 두르고 익숙하게 보호시설의 주방으로 가 음식만드는걸 도와준다. 여자가 가자 보호시설에 있던 아이들은 여자 옆에 있던 어린 남자애에게 관심이 쏠린다. 특이한 머리색과 눈색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만 아이들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 어린남자아이는 신기한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혼자 앉아있던 이나호에게 다가가 그 옆에 앉는다. 이나호 옆에 앉은게 뜻밖인지 아이들이 술렁거리다 싶다가 금방 흥미를 잃는다.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어린남자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든다. 금새 아이들은 새로운 존재를 잊는다.


“안녕? 너 이름이 뭐야? 난 슬레인이야.”


이나호는 말을 걸어오는 어린남자애가 의외였는지 놀란 표정을 하면 슬레인을 바라봤다.


“왜,놀라. 내가 귀신이라도 되는거야? 그렇게까지 놀랄거까지야.”


이나호의 놀란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한다. 그러고는 이나호의 이름이 뭐냐고 계속 물어본다.


“나는 이나호. 카이즈카 이나호야.”

“이나호..이나호 이름 예쁘다. 아,맞다. 나는 트로이어드! 슬레인 트로이어드야.”


그게 첫만남이였다.


“이나호, 나는 왜 형이라고 안불러줘?”

“ 싫어. 슬레인은 형이 아니야.”

“왜,왜 나는 이나호보다 1살이나 더 많은데? 게다가 키도 더 크고!”

“ . 그래도 슬레인은 형 아니야.”

“아, 뭐가 아닌데에 나는 7살이고 이제 8살 되는데! 이나호 치사해!”


계속된 슬레인의 말에 이나호는 귀를 막는다. 귀를 막은 이나호를 본 슬레인은 삐진듯 입을 내민다. 이나호는 입이 저 멀리까지 나와있는 슬레인을 보며 ‘풋-’ 하고 웃어버린다. 이나호에게 삐져있던 슬레인은 얼굴이 빨개질도록 웃음을 꾹 참지만 결국 웃음보가 터져버린다. 그렇게 눈을 마주보고 한참을 웃다가 슬레인을 부르는소리에 웃음소리가 멈췄다. 


“슬레인, 이제 가자.”


슬레인이 가야되는걸 안 이나호는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슬레인도 그걸 아는지 곤란해한다. 평소에 어른스러운척 다 하지만 슬레인이 갈때면 어린애가 되버린다. 하지만 일주일에 1번 3시간 어린 이나호에게는 턱없이 짧고 부족한시간이였다.



“선생님, 선생님도 보셨잖아요. 아이들이 이나호 때리는거!”

“유키도 참. 애들이잖아 저런애들이 무슨 이나호를 때려 때리긴 그냥 장난치는거지. 원래 남자애들이 다 그렇잖아.”

“아, 진짜 선생님!”

“유키야,그만. 이제 그만 말하고 나가봐. 고등학생이라 할것도 많잖아.”


어른은 아이들일에 대해 관대하다. 아이들이라는 단어 하나에 신뢰하고 믿는다. 그들의 눈에는 아이들은 그저 순수하고 착하기만한 뿐이니깐. 

유키와 보건선생님의 실랑이중에 한아이가 급하게 보건실로 달려온다.


“선생님! 빨리 나와보세요! 빨리요! 나오가!”


아이는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빨리,빨리만 반복했다. 다급한 아이를 보니 불안해진 유키가 보건선생님을 모시고 아이가 가리치는 곳으로 갔다.


“나오야 무슨일이ㅇ..!”


유키는 눈앞에 일어난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나호를 항상 괴롭히던 아이들은 잔디에 기절한듯 누워있었다. 아이들이 누워있는 곳에는 피로 얼룩져있었다. 간간히 피로 뭉쳐져있는 잔디도 심심치않게 있었다. 그나마 기절하지 않은 애들마저 뼈가 부러져 거동조차 힘들어보였다.


“이게 무슨...! 이게 어떻게 된거야?!” 

“ㄴ,나오가. 나오가 이랬어요! 구덩이를 파서 애들 다 넣어 놓고 돌맹이로 막!”

“그래서 나오는? 이나호 어딨어!”


다친아이들을 보며 화난듯 보건선생님이 이나호를 찾는다. 하지만 이나호는 어딜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충격받은 유키와 흥분한 보건선생님은 황급히 다친 아이들을 옮겼다.


“이나호가 애들을 구덩이에 파서 돌을 던졌다잖아. 이게 아이가 할 일이야? 유키야, 나오는 정말 .”

“선생님,저 아이들 먼저 우리 나오 괴롭힌거 알잖아요!”

“유키야, 그래도 이건 그냥 넘어가기 힘든거 알지?”

“ .알겠요 선생님. 저희 그냥 나갈게요.”

“유키야?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너희 나가라는게 아니ㄹ . ”

“아니요. 그냥 원래 나갈려고 했는데 아까 일 때문에 확실해진거 뿐이에요. 그럼 전 나갈 볼게요. 아이들 돌봐주셔야줘.”


유키는보건선생님에게 일방적인 통보를하고 보건실을 나왔다. 현관문 앞에서 가만히 서서 이나호가 있을곳을 생각해본다. 놀이터! 유키의머리를 스친 이나호가 가장 있을법한 곳. 유키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놀이터로 뛰어나갔다. 

 

“나오야! 이나ㅎ .”

조그만한 모래사장에 애꿎은 모래만 파고 있던 이나호를 발견하고 다가가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자리에 멈춰서서 이나호를 가만히 바라본다.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있던 이나호의 어깨가 점점 들썩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깨가 들썩거리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무릎을 끌어 모아 얼굴을 파묻어 조용히 울기 시작한다.그렇게 유키와 이나호의 고아원에서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었다.


2014년 11월 24일 일본.


“머스탱22 공격개시”


오렌지색 기체가  빠르게 움직면서 상대방을 제압하고있었다. 


‘콰앙-’


이나호 뒤에서 큰 폭팔음이 들렸다. 


“이나호! 괜찮아?”


적이 쏜 탄환을 인코가 막아주며 통신으로 이나호에 안부를 묻는다. 


“머스탱 22 이상없음. 인코 고마워.”


이나호는 통신으로 인코에게 고마움울 표했다. 


“그나저나 이나호 아까 공격  타르시스맞지?” 

“아마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격한적은 없는데. 탑승자가 누구- 슬레인 트로이어?”

“이나호! 뒤에서 공격온다. 빨리 피해!”

“ .”

“이나호, 내말 듣고 있어? 피하라고!”

“아,응.”


슬레인 트로이어드. 단 한사람의 이름으로 이나호의 정신을 흔들기는 충분했다. 이나호는 슬레인의 이름을 듣자마자 머리가 엉켜버린듯 어지러웠다. 혼란스러워하던 이나호에게 인코 몇번이고 말을 걸자 겨우 정신을 차린 이나호지만 여전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렸지만 계속 혼란스러워했던 이나호에게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 이나호는 명령에 애써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후퇴하기시작했다.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이나호는 듀캘리온 갑판위에서 가만히 별을 보고 있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긴장했다. 하지만 긴장했던 이나호는 상대방이 유키인걸알고 금새 긴장감을 풀었다.


“나오야, 무슨일 있었어? 표정이 어둡네”

“아니야”

“그나저나 나오야.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고아원때 너 괴롭히던 아이들한테 복수한 이유말-”

“오랜만에 다시 보고싶네.”

“응? 누구?”

“슬레- 아니야.”

“그래서 그때 왜 그랬어?”

“그때라 . 근데 유키 누나 내일 회의 있지 않아? 가서 안자?”

“으아아- 맞다 맞다. 이나호 나 갈게!”


유키는 이나호에 대답을 기다렸지만 결국 흐지부지하게 애기가 끝나버렸다. 유키가 가자 나지막하게 ‘슬레인때문이였을려나’하고 이나호는 눈을 감으며 갑판위에 누워다.


“머스탱 부대 출격하라!”

“라져”

“라져”


회색에 칙칙한 기체들사이에 유난히 눈의 띄는 이나호가 타고있는 오렌지색 기체. 총소리만 들리는 전쟁통에서 상대방을 향해 총을 겨눈다.


‘타앙-‘


오늘도 어김없이 이나호 뒤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다른 적들과의 총소리와는 사뭇 다른다. 이나호는 뒤에서 자신을 쏜 타르시스를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총을 내리고 가만히 타르시스를 응시하였다. 자신을 쏘지않는다는걸 눈치챈 슬레인은 이상함을 느꼈다. 


“왜,안쏘는거지? ”


슬레인도 가만히 오렌지색기체를 응시했다. 그렇게 둘은 가만히 서서 상대방을 쳐다보다가 이나호가 먼저 뒤돌아서 다른 상대방을 찾기 시작했다. 슬레인은 이내 오렌색 기체의 뒷모습을 보다 찝찝한 기운을 애써 지웠다.


그렇게 화성간에 전쟁이 계속 되었다. 전쟁통 속에서 이나호는 노골적으로 슬레인이 타고있는 타르시스를 피해다녔다.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피할뿐. 절대 타르시스를 공격하지않았다.그럴때마다 슬레인은 오렌색 기체를 더욱더 공격했다. 하지만 이나호는 차마 슬레인을 향해 총을 겨눌수는 없었다.



겉으론 팽팽한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한걸 안 지구연합은 회의를 거쳐 아세일럼공주가 자츠바움 백작의 양륙정에 들어가 알드노아 제로를 정지시키기로 하였다. 



“머스탱 22 하강완료. 바로 작전을 실행하겠다.”

“머스탱 11 하강 완료. 작전을 실행하겠습니다!”

“프린세스 1, 하강 완료. 아세일럼공주도 괜찮습니다.”

“그럼 다들 무운을 빈다”


양륙정 입구주변에 하강한 머스탱부태들이 양륙정에 공격을 막으며 프린세스 1를 엄호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츠바움백작이 타고 있는데 디오스쿠리아의 사격으로 머스탱부대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유키 누나, 먼저가. 여기는 내가 맡을게. 작전을 계속 실행해.”

“이나호 무리야. 이길수가 없잖아!”

“이길필요는 없어 발목만 붙잡으면 되니깐. 빨리가!”


이나호를 나두고 유키와 인코은 작전을 계속 실행한다. 


“호오- 그딴 고철로 이 디오스쿠리아를 막을수 있다고 생각 하나. 이거 꽤 자존심 상하군.”


이나호는 자츠바움백작에 말을 무시하며 디오스쿠리아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하지먼 디오스쿠리아가 빨랐다. 머스탱 22를 잡고 양륙정 외벽에 사정없이 내리 꽂았다. 


 ‘콰앙-’


머스탱 22가 던져지면서 생긴 구멍에 디오스쿠리아가 저벅저벅 들어왔다. 자츠바움 백작이 비웃듯 머스탱 22를 한번 더 들어 올렸다. 그순간 이나호가 배리어의 틈을 발견하고는 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디오스쿠리아가 예상외의 공격을 받아서인지 자츠바움백작이 분노했다. 그렇게 분노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이나호에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순간 이나호는 다시한번 배리어에 틈을 공략했다. 이번공격은 디오쿠리어스가 무너지게 하기 충분했다. 무너지는 디오쿠리어스에 다가가며 총을 겨누었지만 갑자기 나타난 타르시스가 이나호를 향해 공격했다. 갑자기 공격 받은 머스탱 22는 그 자리에서 시스템이 멈췄다. 디오쿠리어스도 만만치않게 손상을 입었는지 시스템이 멈췄다. 슬레인은 타르시스에서 내려 자츠바움 백작에게 다가갔다.


“자츠바움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슬레인이 자츠바움백작를 걱정하며 그를 꺼냈다. 그때 이나호도 같이 머스탱 22에서 나왔다. 그순간을 놓치지않은 슬레인은 머스탱에서 나오는 이나호를 쐈다. 저 멀리 있던 인코가 이나호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나호라는 이름을 들은 슬레인은 손을 떨며 총을 떨어트린 이나호에게 다가갔다. 아니야 아닐꺼야만 반복하던 슬레인은 이나호의 얼굴을 확인하는 이나호에게 미친듯이 달려가 이나호를 감싸안았다. 피범벅이 되버린 이나호은 힘들게 눈을 떠 슬레인에게 피가 튀어버려 지져분해진  예전에 슬레인이 자신의 모습 그린 그림을 건내며 인사했다.


“진짜 슬레인이네. 이건 너무 많이 더러워 졌지? 미안. 그래도 마지막이깐 봐줘. 형 오랜만이였-.”


슬레인 말하기도 전에 숨이 끊어진 이나호를 보며 슬레인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이나호!!! 정신차려봐!!!! ㄴ,나 안반가워? 왜 대답이 없어”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 슬레인은 이나호의 시신을 안고 미친듯이 울었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날, 슬레인과 이나호가 기다린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였다.


double


[시즈이자]double





저기...시즈쨩...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만약에 우리가 친했다면 어땠을까?


시즈쨩, 나는 있지...

몇 년 동안 수많은 인간들을 관찰해왔어. 

그중에는 삶이 지쳐 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 인간들도 있고, 비일상을 꿈꾸며 커다란 조직을 만드는 학생도 있는가 하면 괴물이랑 사랑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의사도 있어. 


나는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런 것을 관찰하는게 매우 재밌어. 인간을 관찰하게 되면 그만큼 재밌는 정보들도 내게 들어와.

나는 인간이 좋아.

하지만 그들은 날 좋아해주지 않아. 

물론 나도 그들이 왜 날 좋아하지 않는지 이유 정도는 알아. 난 정말 비겁할 정도로 일을 꾸미고 다니니까.

제발 인간도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이런 내가 만약 어떤 특정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어떨까? 

내가 시즈짱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아마 시즈짱은 “벼룩 자식, 대체 무슨 속셈이냐!!앙?!”하고 소리 지르겠지? 나는 진심을 담아서 하는 말이야. 

이때까지 인간이란 존재를 사랑해왔던 내가 어떤 특정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이케부쿠로와 신주쿠가 하루 밤 사이에 뒤바뀌는 그런 상황인걸까? 

어쩌면 나는 엄청나게 사랑받고 싶어 해서 인간을 관찰해왔는지 몰라.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걸까?





고요한 집에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 때문에 오리하라 이자야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워있는 상태로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을 집어든 이자야는 조금 뜸을 들이며 전화를 받는다. 


“네, 오리하라 이자야입니다.”


전화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만큼 그에 맞는 예의를 갖추는 것도 정보상의 일이다. 이 사람에게는 잘못보이면 정말 으스스한 폐공장 같은 곳에서 죽을지도 모르니까. 이자야는 상대방과 통화를 끝내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인지 몽롱한 눈으로 자신의 집을 훑어본다. 보아하니 아직 나미에는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이자야는 솔직히 오늘은 어떤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을 좋아하는 만큼 인간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그였지만 오늘은 내키지 않았다. 아마 어제의 꿈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하...시즈짱...ㄱ,그만..흐읏... 



헤이와지마 시즈오에게 자신이 깔려 이상한 짓을 하는 꿈. 평소 그와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에 오리하라 이자야에게 있어서 그런 꿈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꿈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할 당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꿈이라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면 되지만 오리하라 이자야는 그 꿈이 매우 신경 쓰였다. 요즘따라 좀 예민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질 때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와쿠스회의 시키씨하고 볼일을 끝낸 이자야는 되도록이면 오늘은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오늘은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좀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아까 시키씨하고 이야기할 때 기침도 몇 번 했고... 


‘나 혹시 감기 걸린건가?’ 


생각해보니 그저께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자신을 던져 분수대에 처박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이자야는 몇 년 만에 찾아온 감기에 당장이라도 앓아눕고 싶었다.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자-야-군~이케부쿠로에 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던가?앙?!” 


뒤를 돌아보니 벌써부터 편의점 쓰레기통을 들고 있는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보였다. 



‘오늘만큼은 상대하고 싶지 않은 상대였는데 이렇게 만날 줄 이야. 정말 시즈쨩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다 찾아낸다니까.’ 



“미안, 시즈쨩. 오늘은 상대할 기분이 아냐. 다음에 만나자구~” 


“벼룩 자식, 놓칠까보냐!” 


시즈오의 손에 들려있던 편의점 쓰레기통이 어느새 공중에 떠서 이자야 쪽으로 날라오고 있었다. 이자야는 피할려고 했지만 무거운 발걸음 때문에 그대로 편의점 쓰레기통에 맞고 길거리에 쓰러졌다. 



*



‘어라? 벼룩자식 죽은건가? 왜 안 일어나는 거지?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건가?’ 


몇 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는 이자야와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수군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이자야의 반응이 없자 걱정이 되기 시작한 시즈오는 조용히 이자야 곁으로 걸어갔다. 


‘벼룩자식에게 던진 편의점 쓰레기통은 옆에 덩그러니 있고 그걸 맞은 벼룩은 반응이 없다, 라 정말 죽은건가? 이 녀석이 그렇게 쉽게 죽을 녀석이었나?’ 


이자야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숨은 쉬고 있다.

아주 가파르게.

정말 죽을 것 같이. 





내가 다치거나 죽는다면 나를 걱정해 줄 인간은 몇이나 될까? 

아마 아무도 없겠지? 심지어 여동생들도 내가 죽든 말든 신경 안쓸거야. 부모님은.... 뭐 몇 년째 해외에 나가서 살고 있는데 내 소식을 전해 듣기는 할까나. 


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 외롭다고.... 


제발 날 사랑해줘. 누구든 좋으니까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 나는 당신들을 사랑해주잖아, 그러니까 당신들도 나를 사랑해달라고. 내가 주는 사랑만큼 나에게도 그 만큼의 사랑을 달라고... 누구든 좋으니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줘. 



-



무거운 눈꺼풀을 살며시 뜨고 오리하라 이자야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자신의 집, 자신의 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어떻게 옮겨졌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아마 정신을 잃은 것이겠지. 그나저나 대체 자신을 여기에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구일까. 그러니까 이케부쿠로에서 헤이와지마 시즈오하고 만나서... 쓰레기통에 맞고... 그대로 쓰러졌나보다. 그렇다면 자신을 집에 데려온 사람은 시즈오인 것일까. 


이자야는 몸을 뒤척이다가 그제야 자신의 이마 위에 올려져 있는 물수건을 발견했다. 

혹시 시즈오가 해준 것 일까. 



‘시즈쨩은 은근 츤데레라니까. 매일 싸워도 이렇게 챙겨 주는거 보면.’ 



“ㅎ... 흐윽...“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이 이자야의 뺨을 타고 흐른다. 뭐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가슴이 아플 뿐. 


누군가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마음 속 한구석에서 계속 비명을 지른다. 훌쩍거리며 울기도 한다. 외롭다고 울부짖는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사랑해달라고 징징거린다. 눈물이 번진 얼굴로 애달프게 매달린다. 


아, 아마 그건 자신이다. 오리하라 이자야 자신. 



[이제 그만 잠들어, 이자야]



다른 곳에서 들리는 이형의 목소리. 이자야는 다시 눈을 감는다.



*



“벼룩 자식 갑자기 쓰러져서 신라 놈까지 부르게 되고. 정말 하나같이 모든게 다 짜증나는 녀석이라니까.“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자신의 초등학교, 고등학교 동창인 키시타니 신라를 불러 오리하라 이자야를 치료하게 하였다. 끝까지 치료비를 요구해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고 돌아가게 하였다. 처음으로 들어와 본 이자야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평수가 굉장히 넓었다. 아마 쓸데없는 짓을 하고 돈을 벌어 산 거겠지, 라 생각한 시즈오는 이자야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자신이 싫어해도 살인은 하지 말자는 다짐이 있었기에 시즈오는 다행히도 살인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오리하라 이자야는 아직 자고 있었다. 신라 말로는 원래 감기 기운이 있었고 과한 스트레스 때문에 앓아 누운 것이라고 했다. 시즈오는 자고 있는 이자야를 보다가 문득 어떠한 것을 깨달았다. 


벼룩 자식이 울었다.


오리하라 이자야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미 흘러내려서 번진 자국도 있었다. 무슨 악몽이라도 꾸는 것일까. 자고 있는 오리하라 이자야의 표정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시즈오가 소매 끝으로 살짝 닦아준다. 그러니 조금 편안해진 표정을 짓는 이자야다.



-



나는 인간이 싫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는 오리하라 이자야가 싫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면서도 인간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가 싫다.

자고 있을 때는 오리하라 이자야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매일같이 이상한 소리를 는 그가 한심하다. 

보고 있기도 듣고 있기에도 짜증난다.

사랑해달라고 울부짖는 목소리가 듣기 싫다. 

내가 이 녀석을 대신 할 거다.



그리고 오리하라 이자야는 잠들었다.



-



그가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저물고 세상은 어두워져 있었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그의 이마에는 물수건이 여전히 올려져 있었다. 그는 이마에 올려져 있던 물수건을 쥐어 옆에 내려놓았다. 정말 오랜만에 눈을 떴다. 더 이상 사랑한다고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오리하라 이자야의 방을 나갔다.


“벼룩 자식, 깼냐?“


오리하라 이자야랑 늘 싸우던 녀석이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솔직히 사람하고는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은 그였지만 헤이와지마 시즈오란 녀석에게는 조금 흥미가 있었다. 최근에 오리하라 이자야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신은 누구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걸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었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헤이와지마 시즈오에게 흥미가 생긴 것 일지도 모른다. 조금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어이, 벼룩 자식. 거기서 또 뭘 멍하니 서 있어.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거냐?“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헤이와지마 시즈오에게 다가갔다. 점점 당황해하는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표정이 그를 흥분하게 만든다. 평소 오리하라 이자야가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부르는 명칭을 떠올렸다. 


“저기 시즈쨩, 나 간호 해준 거야? 이거 너무 기쁜걸?“

 

그는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어깨에 두 팔을 감고 귓가에 속삭였다. 귀가 빨개진 헤이와지마 시즈오란 녀석이 은근 귀엽다. 이케부쿠로의 최강 전설이라는 불리는 괴물이 귀가 빨개질 때도 있다니... 


“이-자-야-군~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시즈쨩-, 내가 무슨 맨날 벼룩 짓만 하고 다니는 줄 알아? 가끔은 나도 아무 생각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구. 그러니까 시즈쨩도 싫어하는 폭력 쓰지 말고 나랑 함께 재밌게 놀자구.“


“아앙?“


“어째서 시즈쨩은 집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거야? 좀 벗으라구.“

 

그는 헤이와지마 시즈오에게 짧은 키스를 했다.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대로 그를 소파에 눕히고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ㅇ..읏..시ㅈ...쨩...하아...앗“


하얗고 마른 그의 몸을 가르고 들어온 물건이 더 부풀어 오르더니 퍽퍽 소리를 내며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하얀 몸에 새겨진 붉은 자국은 그를 한층 더 야해 보이게 하였다. 이미 시간은 12시를 넘어 다음 날짜로 바뀐 상태이다. 3번째 사정을 끝낸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 거의 기절할 것 같은 상태인 그는 가파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헤이와지마 시즈오란 녀석과의 섹스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야릇하고 기분이 좋았다.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자신의 얼굴로 다가오기에 그는 좀 더 야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자신의 귀에 속삭였다.



“어이, 벼룩 자식 어딨어?“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겉모습은 오리하라 이자야와 판박인데 아니, 속만 바꼈을 뿐인데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그에게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다시 귀에 속삭였다. 


“벼룩 자식을 울린게 만약 너라면 지금 당장 너를 죽인다. 그 벼룩 자식이 운 건 처음이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벼룩 자식을 데려와.“


그리고 그는 몸을 잘게 떨더니 눈을 감는다. 



-



<역시 시즈쨩은 단세포라도 눈치는 빠른 것 같다니까? 내 모습을 빌려서 시즈쨩이랑 잔 소감은 어때? 재밌어? 너는 인간을 싫어하니까, 그러니까 괴물 같은 헤이와지마 시즈오에게 호감이 간거지? 하지만 시즈쨩은 너란 존재보다는 벼룩 존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너는 내가 아플 때나 울고 있을 때면 잠에서 깨어나잖아? 중학교 때 이후로 아파본 적은 처음이니까 이때가 딱이다!하면서 잠에서 깨어난 거지? 인간을 싫어하는 녀석이 깨어나서 무슨 짓을 하고 싶었던 걸까? 정말 헤이와지마 시즈오란 녀석과 자고 싶어서 깬걸까? 


너는 그냥 인간을 사랑하는 오리하라 이자야가 싫어서 약 올려 줄려고 깨어난 거지? 우리는 같은 모습인데도 너는 왜 인간을 싫어할까? 나는 인간이 좋아. 그들은 날 사랑해주지 않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 나가있던 부모님 덕분에 10살이나 차이나는 동생들을 돌봐야했지. 아마 인간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사랑을 못 받고 자란 내가 애정결핍 때문에 이런 짓을 해왔는지도 몰라.


아, 내가 인간을 사랑하면 인간들도 나를 사랑해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부터 나는 인간들을 관찰해오기 시작했어.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고. 내가 아마 이런 말을 했었지? 나는 누구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걸까-라고. 답은 나온 것 같아.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 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해.  



그럼 문제-!



너는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대답을 하지 않으면 평생 못 깨어나요~>



[....]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잘자. 팔면육비(八面六臂)>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오리하라 이자야는 내가 아니라구. 연기에 속는 너 또한 내가 아니야. 나 정말 배우라도 해야 될까. 내가 한 말의 99%는 진심이었어. 정말 이번에는 시즈쨩이 알아채지 못했었더라면 팔면육비에게 지배당했겠지. 역시 시즈쨩이라니까... 내가 운 건 어떻게 알고 크크크크. 하지만 처음 운거는 아니라고 시즈쨩. 내가 주는 사랑만큼 시즈쨩도... 하하하하하하하 


그럼 이제 시즈쨩을 만나러 가볼까- 





--



여기서 나오는 팔면육비(八面六譬)는 이자야의 파생캐릭터입니다.

성격은 인간을 좋아하는 이자야와는 정반대인 캐릭터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ㅊㅋㅋㄴ ㄹㄹㅌ, 도용문제로 삭제합니다. 쓰니닝은 댓글로 피드백 부탁해요.)


일기일회


[황흑] 일기일회





키세 료타 X 쿠로코 테츠야




**




"쿠로콧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걸어간다. 굳이 뒤돌아 확인하지 않아도 자신을 저렇게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기에 그리고 곧 자신을 따라와 묻겠지, 왜 뒤돌아보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발소리는 쿠로코 한 명뿐. 예상했던 전개가 아니었는지 당황한 쿠로코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을 땐 자신이 알고 있는 키세가 아닌 좀 더 성숙해 보이는 키세가 서 있었다.



"…키세군?"


"네, 맞아요. 아…. 근데 쿠로콧치가 지금 알고 있는 키세랑은 좀 다르려나? 있죠, 나…. 미래에서 왔다면 믿어줄래?"



쿠로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고, 키세는 쿠로코를 바라보며 찡그리지 말라며 웃었다.

일단은 같이 걸었다. 쿠로코는 걸으면서 키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지금껏 쿠로코가 알고 있는 키세랑은 많이 달랐다.

위화감이 든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어 그런 건가? 머리도 차분하고 늘 하고 있던 귀걸이 외 장신구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요 며칠간 살이 빠진 것인지 한층 더 날렵한 인상을 주었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는…. 아니 미래에서 왔다면 이미 어른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시야에 들어온 건 왼손 약지에 끼워져있는 은색의 실반지. …누구랑 맞춘 걸까?



"신경 쓰여요?"


"..."


"고개 돌리지 말구. 이 반지, 쿠로콧치랑 맞췄던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 알았지?"


"…걱정 같은 거 안 했습니다. 미래에서도 제가 키세군이랑 같이 있는다니 한숨만 나오네요."


"응? 너무해요 쿠로콧치! 그 부분은 좋아해야 할 부분이라구요!"



순간 발끈해 소리치는 키세를 바라보던 쿠로코는 답지 않게 웃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안심했다. 미래에서 왔다던 그는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아직은 어리숙해 보이는 키세와는 확연히 달랐기에 무언가 불편했다. 하지만…



"키세군, 하나도 안 변했네요."


"…그건 쿠로콧치도 마찬가지라구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걷던 중 쿠로코가 자신의 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아 잠시 다른 곳에 들렀다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둘은 근처 마지바에 들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수트를 입은 어른인 잘생긴 남자와 존재감이 흐릿해 언뜻 보면 수트를 입은 남자 혼자 이야기하는 것처럼 만들게 하는 학생. 그런 두 사람이 다정히 대화를 하는 모습은 썩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 충분한 조합이었다.

두 사람이 하는 대화는 별거 없었다 그것도 키세가 말하는 게 대부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은 어디며 무엇을 하고 사는지, 키세 제외 기적의 세대들이나 지인들의 안부 등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 그래도 쿠로코는 이번만큼은 읽던 책을 덮고 키세의 말에 집중했다.


시간은 정처 없이 흘렀고, 하늘은 어느샌가 어둑해져 있었다. 어느 정도 대화가 수그러든 후 둘은 마지바를 나와 쿠로코의 집 방향으로 곧장 걸어나갔다.


집으로 가는 길. 쿠로코는 언제나처럼 그다지 말이 없었지만 마지바에선 그렇게 말만 곧 잘하던 키세도 그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터…. TV나 영화에서나 보던 타임슬립을 실제로 겪거나 보았으니 이제 곧 미래의 키세는 현재의 쿠로코의 앞에서 사라지겠지, TV나 영화에서 보았던 그대로.

그렇게 서로 자신만의 생각에 가득 차 대화 없이 걷다 보니 도착한 쿠로코의 집 문 앞. 쿠로코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미래의 키세에게 정이라도 들었는지 집으로 들어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놨다를 반복하다 이내 뒤를 돌아 키세에게 말을 건다.



"키세군, 키세군은 언제 다시 돌아가나요?"


"글쎄요…. 아마 오늘 밤은 못 넘길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저랑 같은 나이의 키세군은 앞으로도 볼 수 있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미래에서 온 키세군은 앞으로 언제 볼지, 아니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키세군이 돌아갈 때까지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키세는 쿠로코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쿠로코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당겨 품에 안았다. 쿠로코는 괜찮다며 그를 다독였고, 그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연신 고맙다며 말해왔다.


키세를 어느 정도 진정시킨 후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 쿠로코는 간식거리를 가져오겠다며 잠시 방을 나갔고, 키세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의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침대, 책상, 옷장, 좌식 테이블뿐인 단출하기 그지없는 방. 고등학생인 현재의 키세에겐 앞으로 자주 들를 수 있는, 그리고 현재 쿠로코가 살고 있는 방. 그러나 미래의 키세에겐 이제는 추억이 된,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미래의 쿠로코가 살고 있지 않은, 과거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린 방.


이 방….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겠죠?

너는 후에 너와 내가 같은 방에서 살았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일까. 언제나처럼 예상했다는 식으로 '키세군은 바보라서 제가 옆에 있어야 하니까요'라고 말해주려나?


키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쿠로코가 간식거리를 가져왔고, 두 사람은 좌식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대화를 시작하려 했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놀랍게도 쿠로코.



"키세군, 대답해주세요. …왜 키세군은 미래에서의 제 이야기는 알려주시지 않나요?"


"…아, 깜빡했네요. 음…. 아, 그러니까 쿠로콧치가 바라던 유치원 선생님은 되지 못했지만, 대신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음, 그래서 늘 쿠로콧치는 학생들 이야기만 해서 가끔은 보지도 못한 학생들에게 질투도 났다니까요? 또 그리고…"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저는… 미래에서도 키세군 옆에 있나요? 대답해주세요."



키세는 순간 입을 다물었고 눈을 내리깔아 맞잡은 서로의 손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고 쿠로코는 그를 쳐다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키세가 다시 시선을 올려 쿠로코와 눈을 마주 보며 그의 질문에 대답하려 닫혔던 입을 떼는 순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때가 된 듯 키세의 몸이 점점 투명해져 갔다.

쿠로코는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나 키세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아 헛손질만 해댔고, 키세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쿠로코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고 이내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연하죠."




**




한 사람이 살기에는 조금 큰 듯한, 방금 과거에서 돌아온 키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 곳곳에는 무언가를 정리하는 듯 거실 군데군데 박스가 놓여 있다.

다소 스산한 분위기, 하지만 전에는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살았던 흔적이 있어 보이는 침실에는 지금 키세 혼자 덩그러니 침대에 누워있다.



"당연하죠…라니, 결국 쿠로콧치한테 거짓말해버렸네."



의미 모를 말을 하는 키세, 그는 왼팔을 들어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응시하다 이내 눈을 감고 팔을 눈 위에 얹는다. 그리고 찬찬히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




키세는 학생 시절부터 했던 모델 일을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나갔다. 물론 대학은 합격했지만, 모델 일 말고도 이런저런 연예 쪽 일이 들어오기 시작해 일과 학업을 병행할 자신이 없었기에, 또 공부할 머리도 아니었기에 대학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곧 자퇴했고, 그에 반해 쿠로코는 평범하게 고등학교 졸업 후 자취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분명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인연이었지만 서로 너무 바빠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 그의 소식은 직접 본인에게 연락을 하는 것보다 TV나 다른 각종 매체에서 찾아보는 것이 더 빠른, 그런 애매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만남 없이 한 달이 지났고, 오랜만의 그의 소식을 접했다. 내용은 유명 여자 모델과의 열애 소식…. 쿠로코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을 받았으며, 오랜만에 온 키세의 전화나 문자도 받지 않고 그대로 전원을 꺼버렸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혀 그렇게도 읽고 싶어 했던 책이 눈에 읽히지 않았다.

그러다 깜빡 잠이라도 들었던 것이었는지 깨어보니 창밖은 벌써 밤이었다. 지금은 전화 안 오겠지 하고 휴대폰 전원을 켠 후 메시지 내용을 살펴보니 '기다리고 있을게요, 문자 보면 나와줘.' 시간은 16시 34분. 3시간 전에 온 문자였다.

설마 지금까지 있을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 몸은 다급한지 급히 방을 나가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눈에 들어온 신발 한 켤레. 다급해 미처 보지 못했던 소파를 보니 그토록 자신을 실망시켰던 그가 옆으로 돌아누워 팔을 벤 체 자고 있었다.

맞다…. 이 사람은 이 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 허탈한 감정과 짜증이 몰려와 그를 흔들어 깨웠다. 키세는 쿠로코의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 황급히 소파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다.


 

"죄송해요, 쿠로콧치. 남의 집 함부로 들어오는 거 아닌데, 알고 있는데, 밖이 너무 추워서…. 계속 전화나 문자 해도 안 받고 전원 꺼져있다고 해서. 두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도 안 나와서 결국 집으로 들어왔는데 왠지 쿠로콧치 자고 있는 것 같아서 쿠로콧치가 있는 방은 못 들어가겠고, 그래서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봐요…."


"용건이 뭔데요."


"저…. 그게…."



웬일로 키세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쿠로코의 눈치를 살피고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우물쭈물하다 이내 결심이 섰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무언가를 꺼낸 후 큰 소리로 쿠로코에게 소리쳤다.



"쿠로콧치! 저랑 같이 살아주세요!!!"


"……네?"



키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쿠로코가 예상했던 헤어지자는 말이 아닌 반지를 내밀며 자신과 같이 살아달라는, 절반 프로포즈의 가까운 말이었다. 키세는 쿠로코를 소파에 앉힌 후 자신도 옆에 앉아 그 여성과의 일을 털어놓았다.


그 여성과 스캔들이 난 일은 이러했다. 키세가 먼저 여성에게 다가간 것은 맞지만, 마음이 있던 것이 아니라 쿠로코와 같이 살 집을 알아보려 여성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키세는 집값이라던가 그런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그쪽으로 인맥이 있는 그녀와 이런저런 상의를 하다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찍히고 만 것.

말을 끝으로 절대 그 여자한테는 관심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말해왔다.

오해는 풀렸지만 쿠로코는 괜히 심술이나 싫다고 거절했고, 키세는 안된다고, 꼭 와야 한다며 집은 이미 다 구해놨으니 몸만 와도 된다면서 쿠로코의 옷을 부여잡으면서 설득인지 생떼인지 모를 부탁을 해왔다.

그의 귀여운 생떼에 쿠로코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키세군, 하나도 안 변했네요…. 어른이 이렇게 생떼 쓰다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이렇게까지 고집 안 부립니다."


"그러니까 쿠로콧치가 허락만 해주면 다시는 생떼 안 부릴게요, 그리고 애초에 쿠로콧치 이외의 사람한테는 이런 거 안 해. 이건 쿠로콧치 한정!"


"그건 그거대로 짜증 나는데요."



그렇게 그 여성과의 스캔들 사건은 키세의 프로포즈로 일단락되었다.


후에 쿠로코는 키세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동안 살았던 자취방을 정리해 그가 마련해준 집으로 들어가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맞지 않는 구석도 있었지만 서로 나름의 방법으로 잘 해결해 나갔고, 몇 해가 지나 함께 사는 것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쿠로코에게 일이 생긴 건….


쿠로코는 대학을 졸업해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고 키세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 즈음. 키세는 며칠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에다, 쿠로코에게서도 연락 한 통 없어 서운해하고 있을 때. 반가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잠시 병원에 들려줄 수 있겠느냐고.


키세가 급히 달려와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쿠로코였다. 

쿠로코가 병실 침대에 앉아 이리 오라며 손짓하자 키세는 급히 그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말을 뱉었다. 자신은 이제 얼마 살지 못한다고…. 앞으로도 키세군과 같이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며, 미안하다고.


키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흘렸고, 쿠로코는 키세를 바라보며 울지 말라며,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어 주었다.

키세는 모든 스케줄을 정리한 후 쿠로코의 옆에 있어주었다. 시간이 지나 그가 눈을 감을 때는 그의 손을 붙잡은 채 한동안 놓지 못했다. 순식간이었다. 미처 서로의 마음도 다 전하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한 채 쿠로코는 키세의 곁에서 사라졌다.


사적인 일에는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었던 검은 정장은 입고 반지를 제외한 모든 장신구를 뺀 채 그를 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장례식에는 그의 많은 지인이 조문, 요절한 그를 애도했고, 키세는 쿠로코의 부모님과 함께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장례식의 마지막, 화장을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나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실감이 났는지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다 이내 오열하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를 보낸 후 누구와도 연락, 마주치고 싶지 않아 곧장 집으로 온 키세는 추억이 된 자신과 쿠로코의 집을 둘러보려다 안 되겠는지 거실 소파에 누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 싸우지 말걸. 하며 이제는 소용없는 후회를 하면서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갈 때까지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지만, 생각이 돌고 돌아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보고 싶어."



쿠로코가 보고 싶다….는 생각뿐.

눈을 감고 머리카락을 쥐어 잡으며 옆으로 돌아누워 빌었다. 몇 시간만이라도 다시 한 번만 그를 만나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해달라고,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빌고 빌다 이내 지쳤는지 눈을 감는다.




**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자신이 누워 있었던 소파가 아닌 낯익은 공원이었다. 분명 집에서 잠들었을 터인데? 처음 겪어보는 일에 이게 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고 때려도 소용없었고, 입고 있는 옷도 장례가 끝나고 미처 갈아입지 못했던 검은색의 정장 그대로였다.

가만히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곳은 분명 자신이 쿠로코와 자주 데이트를 하던 장소, 하지만 자신이 알던 분위기가 아니었고 장식물들도 하나같이 묘하게 새것 같아 보였다.

일단은 공원에서 벗어나 걸으며 생각했다. 설마 자신은 지금 과거로 온 것인가…? 어째서 과거로 온 것일까 등 혼란스러워하며 이곳저곳 정처 없이 걸어가던 그때.


저 앞에, 자신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어떤 학생의 뒷모습을 보았고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분명 자신의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저 사람은 자신이 몇 시간 전 떠나보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고 싶어 했던, 자신이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의 뒷모습.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번이 정말 너를 눈에 담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키세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찡그린 채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아낸다. 심호흡해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저 앞에서 걸어가는, 자기 연인의 이름을 크게 불러본다.




**




일기일회[一期一會] : 평생에 단 한번 뿐인 소중한 만남.


밀회


[하크슬레] 밀회





정처없이 밖을 떠돌다가 단지 내에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사람들도 제법 없고 조용하니 좋았다. 선선한 바람도 부는 게 여기서는 뭘 해도 집중이 잘 될 것 같았다. 


[하크라이트X슬레인]


책을 읽을 만한 곳이 필요했다. 집은 정말 조용해서 싫었다.  책 넘기는 소리나 발자국 소리 같은 게 전혀 나지 않으니까. 마음에 드는 책이 있기도 했고 해서 도서관을 찾은 거다.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엊그제 눈에 찍어둔 책의 이름을 곱씹었다. 분명 이 부근의 책이었는데... 아, 찾았다. 주로 보는 건 소설책이었다. 몰두하고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니 할 일이 없을 때는 몇 번이고 소설책을 읽었다. 덕분에 감성이 예민해진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되도록이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라서 추리, 연애, 판타지 등 웬만한 소설은 제법 잘 읽는다. 문제는... 아주 가끔 좀 이상한 책을 고르곤 하지만.


*


"으응, 윽. 아, 아으."


위에서 언급한 이상한 책은 이거다. 단지 내의 도서관은 이 부근에서는 최고로 컸다. 큰 만큼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 즉, 야한 책이다. 물론 야한 책이면 괜찮다. 뭐 신분증 보여 주고 빌려가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이 도서관에는 여고생들과 여대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온다. 이쯤 되면 다들 눈치 좀 채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다. 즉 여긴 BL. 즉 보이즈러브를 취급하는 도서관이다. 근데 왜 문제냐면... 내가 게이라서다. 그래서 항상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이용한다. BL 코너에 가서 엊그제 읽었던 책의 뒷부분을 읽고 넣어두고 다음날 또 읽고. 사실 대출을 할 수도 있지만 남자가 보이즈러브 책을 빌려간다는 게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읽고는 화장실로 뛰쳐간다. 망상이라는 게 무서운 거니까... 그 씬의 내용을 상상하며 몇 번이고 서 있는 걸 달랜다. 창피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기적 어기적 집에 가는 건 죽기보다 싫으니. 이 짓을 2년 정도 넘게 하다 보니까 슬슬 질리긴 한다. 무엇보다 책의 싱크가 맞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내가 그 책의 텀이 된들 탑은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요샌 생각보다 많이 서진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짐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며칠 쌓이니까 또 몸이 근질근질하다. 또 읽던 책을 넣어두곤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게 바로 핸드폰이었다. 랜덤채팅을 이용하면 괜찮지 않을까. 왜 요새는 게이 전용 어플도 많잖아. 응, 그거 이용하자. 어플이 설치가 될 때까지 화장실 문을 잠궜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바지를 내렸다. 오늘도 역시 활기차게 인사를 하는 놈이 보였다. 어플 설치가 완료되자 본인 성향 설정을 하고는 말 그대로 방금 전 봤던 소설의 텀이 되었다. 닉네임도 그 이름으로 설정하고는 상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이름 예쁘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네? 아, 저... 그 화장실에서.'

'아아, 자위 중이시구나.'

'신음소리. 듣고 싶다.'

'에?'

'듣고 싶어요. 어차피 한 번 대화하고 끝낼 사이면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010-xxxx-xxxx'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전화번호를 알려 줬다. 머지 않아 전화가 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잡았다.


"여,,,여보세요."

"이야, 목소리도 귀엽네요. 지금 벗었어요?"

"아, 네!"

"새하얗다. 따먹고 싶게. 팔꿈치에 딸기우유라도 발랐어요?"

"으윽..."


비록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말하는 어투에 몸이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이 사람 말하는 거 되게 수준급이야. 


"아아, 허벅지에 손 대 봐요."

"으흑. 했... 했어요."

"그리고 다리 벌려서 팔로 안아요. 구멍 활짝 보이게."

"차... 창피해."

"그러다가 화장실 안으로 누구 들어오면 큰일이겠죠?"


키득키득. 재밌는지 핸드폰 너머에선 웃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의 찬 공기 때문에 활짝 벌어진 둔부가 차갑다. 


"뒤로 가 본 적 없죠."

"하아, 네. 없어요."

"가게 해 줄게요."


진짜로 뒤로 가 본 적 없는데... 게이라고 한들 사실 에로스보다는 플라토닉 위주로 연애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삽입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러니 안으로 뭔가를 넣는다는 게 이상할 수밖에.


"츄웁, 츱."


별안간 뭔가를 빠는 소리를 낸다.


"당신 구멍, 달아요."

"으... 으응!"


창피하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몸이 반응한다. 마치 정말로 밑이 핥아지고 있는 것마냥 간질간질함이 밑에서부터 스물스물 기어올라온다. 


"손가락 입에 넣고 굴려요."

"츠읍, 츕, 쫍."

"아, 야하다. 당장 넣고 싶어. 이제 빼고 엉덩이 사이에 갖다 대요. 그리곤 아직 넣지 말고 그대로 문질러요."


시키는대로 하는데 입에서 자꾸 야한 신음이 튀어나온다. 솔직하게 말하면 무서운데 기분이 좋다. 한참을 문지르니 안에 넣고 싶어졌다.


"아으, 윽, 으윽. 안에, 하아, 안에... 넣고 싶어요."

"별 수 없죠 뭐. 넣어요. 넣고 휘휘 저어 봐요. "

"아, 아파. 히익!"

"거 봐. 다른 손으로 유두 잡고 만져 봐요."

"으응, 응. 하아, 아...아!"


이 남자는 대체 뭔데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 게다가 상대를 어떻게 다루는지까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 시키는대로 얌전히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아픈 건 아프다. 뒤로 가게 해 준다면서 순 아픔 투성이다. 손가락을 빼고 싶어서 슬슬 손을 움직이려는데 그 순간 손가락 빼려고 하지 않았냐고 빼지 말랜다. 귀신인가 봐. 어디서 보고 있는 거 아니야? 일순간 화장실에 cctv가 달려 있나 의심했다. 진짜 그랬으면 이건 신고감이고. 넣은 손가락을 살살 굽히고 움직여 보라고 한다. 아프지만 꾸욱 꾹 느낄 만한 곳을 찾아서 눌렀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손가락을 한 마디 더 밀어넣자 일순간 히익! 하며 몸에 전율이 일었다.


"찾았네요. 거기, 기분 좋죠?"

"으응, 아! 기분, 흐윽, 좋아요! 아아!"

"손가락은 좋겠네요. 밀유 씨 안으로 들어가고."

"아아, 아응. 시호 혀엉! 히익!"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그래... 말 그대로 그 소설의 탑 이름이었다. 정말로 뒤로 가 버렸다. 창피하다. 하얗게 묻은 액체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왜 도서관 화장실에서 이 짓을 하고 있냐며 현자타임이 온 거다. 인사를 하고 끊으려고 다른 손으로 폰을 집어들었는데 이 남자 쿡쿡 웃는다.


"펑크 드렁크 러브."

"네?"

"저도 좋아해요. 그 책."

"..."


아, 망했다. 그러니까 내가 요새 보는 책의 이름이 바로 저거다. 거기 탑 이름이 박시호고 텀 이름이 이밀유라는 거다. 누가 봐도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 작품이 BL계에서 유명한 작품도 아닌데... 오, 주여. 그러고 보니까 계속 내뱉었던 말들이 다 저 책의 탑의 대사였다. 딸기우유라든가, 달다라든가... 그래서 더 몸이 반응했던 건가.


"이밀유 씨, 본명이 뭐예요?"

"왜... 왜요! 그런 건 당신이 먼저 말해야죠."

"하크라이트. 하크라고 불러도 돼요."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한다. 이상한 사람이야. 어쨌든 다시 끊으려는데 또 말을 막는다.


"박시호한테 박히고 싶지 않아요? 슬레인 씨."

"...! 어, 어떻게 제 이름을...!"

"그 정도는 가볍게 알 수 있는걸요. 당신 항상 BL 책 보면 화장실로 달려가잖아."


이 사람 누구야. 내 스토커야?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온다. 도망가야 돼. 아니 근데 어디서 또 날 보고 있을지 모르잖아!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2년동안 꾸준히 오는 고객인데 모를 리가 있냐고 대답했다. 사실 꾸준히 오긴 했다. 와서 보는 건 BL책에 정작 빌려가는 건 로맨스 한 권, 추리 한 권. 이런 식으로 장르를 바꿔가며 빌렸지만. 아니, 그럼 지금 이 사람... 카운터? 키운터에서 통화라니 말도 안 돼. 분명 다른 데에 있을 거다. 어쩌면 지금 화장실 문 앞에 있을지도 모르고!!!!!!! 


"문 열게요. 저 마스터키 갖고 있거든요."


끼익-


어...엄마! 살려주세요!


*


"으응, 응. 시호 형. 아윽. 좋아해요."

"하아, 저도요. 좋아합니다. 밀유 씨."




제 2회, 익명만애 글합작 | 인스티즈


♥ 좋은 글 써주신 닝들도, 읽어주시는 닝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글이 누락된 분, 혹은 커플링을 잘못 표기했다거나 브금이나 파일에 오류가 있으신 분은 댓글 남겨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단순 오타나 띄어쓰기 실수, 필터링으로 인한 수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많을것 같아서...☞☜)

+) 본인표출 방지를 위해 닉네임은 모두 지웠습니다ㅠㅠ


첫 총대라 많이 미숙했을텐데 좋은글 많이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게재 순서는 랜덤입니다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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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34
허러ㅓ렇럴 히지오키가 있을 줄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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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35
와 진짜ㅠㅠㅠㅠㅠ금손닝들ㄷㄷㄷㄷ 대박이다bbb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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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36
아진짜 꿀잼이야!!!!!!!!!!!!!!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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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37
하 대박 진ㄴㄴ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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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38
아진짜많닼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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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39
익만닝들 최고시다.....대박이다다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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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0
진짜...대박....말이안나옴.....주최닝도 참여닝도 대박이다ㅠ ㅜㅠㅜㅠ 너네 그동안 어떻게살았니ㅠㅜㅠㅜㅠ
이런 황금덩어리들ㅠㅜㅠㅜㅠ황금이 황금을 연성하는 기적을 보았다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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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2
저거 뿌링클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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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3
ㅠㅠㅠㅠㅠ금손들수고많았어요 총대닝도 수고했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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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4
금손닝들ㅠㅠㅠㅠㅠㅠㅠ진짜 대박이야bb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금손닝들이랑 총대닝 수고했어!!!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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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5
뿌링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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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6
아 뿌링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얼마나 약을 한거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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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7
캬아... 짱이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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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8
오키카구ㅠ 다들 짱이야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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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49
아창피해ㅋㅋㅋㅋㅋㅋㅋㅋ하나하나 다 읽었다ㅠㅠㅠㅠㅠㅠ 내 글 저기 왜꼈니.. 진짜 닝블-나=금손..ㅎ 정말 잘읽었다 다들 수고했고 총대닝ㅠㅠ 특히 수고 많았어 고마워!❤️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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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0
닝블들아....고맙고 사랑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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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2
♥나도 빨ㄹ리 후기 남겨야지 빨리 읽을꺼야 빠리빨릴ㄹㄹㄹ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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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3
글쓴닝들 총대닝들 다들 수고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들 금손ㅠㅠㅠㅠㅠㅠㅠㅠ다 사랑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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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4
닝들 글쓰느라 너무너무 수고많았고 재미있게읽을게 고마워!!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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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5
뿌링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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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6
닝들아 고마워! 하나하나 소중하게 읽었다!
사랑한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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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7
금손들 쓰느라 수고했어요ㅠㅠㅠ 몇개읽다 감동을 주체하지못하고 댓글을 씁니다ㅠㅠㅠ 고마워!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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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8
닝들 모두 수고했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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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59
와 진짜 수고했다ㅠㅠㅠㅠㅠㅠ정말 진짜 고마워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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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0
선댓!!!!!!!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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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1
금손님들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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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2
미쳤다ㅠㅜㅜㅜㅜㅜ

와ㅜㅜㅜㅜ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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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3
응어어어ㅓ어 달님 카게야마 "." 으로 된 대사 " ." 이렇게 빈공간인데 메모장은 그게 적용이 안됐나봐요 아아앙어으어으어어ㅡ!!!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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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5
ㅅㄷ!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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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5
ㅛ얏호 재밓닼ㅋㅌ튜ㅠㅠㅠ큐콬ㅋㅋ잘봤어요ㅠㅠㅠㅠㅠ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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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6
뿌링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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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8
와 닝들 야한것도 겁나 잘쓰네 요호호호호!!!!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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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69
닝들 수고했어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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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0
선댓!! 1회든 2회든 내가 제일 못쓴거같애...☆ 다들 금손이다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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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1
ㅋㅋㅋㅋㅋㅋ글들 다 좋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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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2
선댓ㅜㅜㅜㅜㅜㅜ아 너무좋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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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3
ㅅㄷ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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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0
헐 많이 읽엇는 데도 짱 많이 남았당 행복...♥ 닝들 너무 수고 했고 고마워ㅠㅜㅠㅜㅠㅠㅠㅠ 글들 다 짱 좋다ㅠㅜㅠㅠㅜㅠㅠㅠㅠㅠㅜㅠㅠㅠ 분위기 내 취인거 짱 많♥♥ㅠㅜㅠㅠㅜㅜ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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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4
ㅠㅠㅠㅠㅠㅠㅠ진짜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대바규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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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6
헐 겁나 많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금손닝들이 익만에 이렇게 많다니!!!!!!(기쁨)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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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7
ㅠㅠㅠ다들 글쓰니라 수고많아서 하나같이 다 금손들뿐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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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8
닝들 내가 사랑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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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79
아......미치겠어여ㅠㅠ재밌어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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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1
대박금손들....퓨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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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2
나 지금 읽으려고 들어왔다...기다려라...내가 댓글남긴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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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8
제 2회 익만 글합작 소감문 上편 (위에서부터 33개의 작품)
http://www.instiz.net/name?no=9901297&page=1&category=3&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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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2
제 2회 익만 글합작 소감문 下편 (위에서부터 34번째 작품부터)
http://www.instiz.net/bbs/list.php?id=name&no=9906796&page=1&category=3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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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3
꺄ㅑㅑㅑ하나하나 읽어야징 그리고 커플링 없는거 청화야ㅠㅠㅠ미안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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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4
야뿌링클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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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5
[긴히지] rain drop - 와 브금이랑 글이랑 진짜 어울리고.. 문체도 너무 예쁘고 너무 아련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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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카구] 순간 - 철컹철컹ㅋㅋㅋ긴카구 좋지...ㅜㅜ 어른행세하는 카구라도 귀엽고 알콩달콩하다ㅜㅜ
[긴히지] 귀화(鬼話) - 알콩달콩했는데!! 이놈자식이!ㅜㅜ 마지막 긴토키가 말한게 너무 아련하고 슬프다..
[오이이와] 우연을 가장한 - 헉 소름..반전.. 오이카와쨩 들어가서 뭐할거야..?
[엘월] 달의 몰락 - 헐 너무 좋다.. 너 진짜 좋다.. 엘월은 사랑이라고 배웠습니다만 끝은 항상.. 넘 아련하고 슬프고ㅜㅜㅜㅜㅜ짱!! 사후에서나마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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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6
[오키카구] 夢緣(몽연) - 오키카구 짱좋아ㅜㅜ그것도 극장판ver이라니 은혜롭다...
[마나오노] 날개 - 짧고 굵다.. 너로 인해 내가 겁페를 봐야할 이유가 생겼어..
[미사와] 여름, 그리고 봄 - 청춘게이...♥ 넘 좋다 ㅜㅜㅜ 다이에이도 꼭꼭 볼거야ㅜㅜ
[미유사와] 후회 - 안타까운데 왜 좋은거야..? 씬 부분 짧았는데 ㄹㅇ없는게 서는거같은 느낌ㅋㅋㅋㅋ ㅜㅜ짱좋음
[백카네키x흑카네키] 世界(세계) - 카네키가 대입돼서 너무 슬프고 찌통온다..
[아키히토x미라이] 백일몽(白日夢) - 글만 봐도 알콩달콩하고 너무 잘어울린다 ㅜㅜ 경계의 저편이랑 타마코 마켓은 안봤는데 봐야될 것 같다!!!^^
[우시오이/오이우시] hopelessnes (절망) - 와.. 눈물난다.. 오이카와도 너무 안타깝고 나중에알게될 이와이즈미도 안타깝도..아..
[청화] 동성애 - 으앙, 카가밋치! 왜그랫어!!ㅜㅜ 아오미네가 얼마나 심쿵이었을까...ㅠㅠㅠㅠㅠ
[카게히나] 바보와 멍청이 - 앗 달달해 ㅜㅜ 조마조마 하면서 봤지만 알콩달콩!
[쿠로히나] 볕 - 둘이 만나서 다행이다ㅜㅜ 늑대소년인 히나타 진짜 귀엽다..♥
[히지긴] 파카딜리 서커스 - 헐 분위기 대박이다..ㅜ 스토리도 짱짱이고..문체도 좋아..
[히지긴] 썸머 카운트 - 제목은 상쾌한데 왜땜시 아련하죠..?ㅠㅠ 아이스티 뭔데 심금을 울려ㅜㅜㅜㅜㅜ
[청흑] 그 여름의 웃음 - 헐 짱좋다.. 와..너 짱이야ㅜㅜ 원작이 떠오르면서 몰입도 잘되고..굿...
[쿠로켄] 예찬 - 씬도 ㅇㅅㅁ하니 짱좋고 서로를 짝사랑했던 둘이 떠오르니 흐뭇하기도 하고 좋다ㅜㅜ
[우시오이] 사무치는 - 범재의 슬픔인가ㅜㅜ 사무친다.. 마지막에 오이카와가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말했을지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
[유키린] 봄 - 청엑이다!! 이 컾 좋아ㅜㅜ 둘 다 알콩달콩하고 풋풋하니 귀엽다 ㅋㅋㅋㅋ 달달해ㅜㅜ
[이비라리] 라리에이트 - 씨엘이지?ㅜㅜ 이비엔이랑 라리에트.. 글 분위기가 되게 적막한데 그게 너무 슬프다.. 씨엘 다시 재탕해야겠다..
[카게히나] 몽상가 - 몽상가 히나타와 현실을 얻은 카게히나!! 독특하면서도 재밌고 ㅜㅜㅜ좋다ㅜㅜ
[스자쿠x를르슈야] 무제 - 보면서 애니가 떠올라서 슬프기도 하고 달달하고 귀여워서 웃음도 나왔다!!ㅠㅠㅠ 좋아좋아
[도플루피] 흥분 - 이 격한씬.. 내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도플이 나쁜놈스러운게 좋다 ㅋㅋㅋㅇㅅㅁ..
[이나슬레] 4월의 봄바람 - 하 달달해ㅜㅜ 슬레인 이나호 모에해.. 이나슬레 너무 조아아ㅜㅜ 교복 이슬..ㅜㅜ 너네 제발 행복해라 이렇게.. ㅜ
[이나슬레] planet - 와 진짜 슬퍼.. 눈물샘 자극 ㅜㅜㅜ 와..ㅜㅜ ㅜㅜ 인터스텔라 배경이 떠오르면서 너무 먹먹하고..좋다..
[조로산] 미로(迷路) - 캐릭터성 진짜 잘 살린 것 같아.. 진짜 원작에서 얘네가 말하는게 상상되고 그랬어. 문체도 너무 좋고 결말도 좋다!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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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7
[창궁] 약속 - 창궁! 페스나는 보질 않았기 때문에 생소햇지만.. 와 이건 봐야겠는걸?^^ 그리고 파야겠는걸? 담담히 서로를 말하는게 오히려 더 와닿고.. ㅜㅜ 아련하다
[쿠로켄] 중독 - 헐 소름돋았어.. 반전.. 브금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소름돋고 오싹하다..
[히지오키] 사춘기 - 묘사가 적나라한게 사춘기라는 주제를 더 잘 표현한것같고 완전 좋다!ㅜㅜ
[스가히나] 월하 - 글 자체가 되게 따뜻하다.. 브금도 너무 좋고!! ㅜㅜㅜㅜ
[카게히나] 나가모노가타리 - 와.. 까마귀신 카게야마도, 아이인 히나타도ㅜㅜㅜ 둘다 너무 너무 좋다.. 글도 너무 좋아.. 어딘가 아련하면서 따땃하고..
[후타모니] 표연 - 와 세계관도 좋고 글도 좋고 용량도 좋다...♥ 후타모니 ㅜㅜ 영업당할것같아..
[하마이즈] 시시콜콜한 이야기 - 일상적 달달함 너무 좋다... 둘 대화도 그렇고 추억도 그렇고 너무 달달해ㅜㅜ
[긴히지] 잘 자 - 흡.....흡... 둘의 대화가 슬프면서 알콩달콩해서...난.......자지마 긴쨩 ㅜㅜ
[카네키x하이세] 나의 작은 바램 - 진짜 행복해라 카네키..^^ 둘다 행복해야돼...ㅜㅜㅜㅜㅜ 흡 도쿄구울을 다시 봐야겠따 진짜..
[리에쿠로] 저체온 - 광기넘치는 리에프랑 거부하는 쿠로오 ㅜㅜ 피폐한데도 너무 좋다.. 소름돋고..
[마츠하나] 제목을정할수가없어여러분섹시농염한마츠하나파세요 - 섹시하다 글이 ㅋㅋ어째서 글이 색기가 넘치죠..? 짧지만 굵다
[긴히지] 뿌링클먹고싶다 - 오.. 내가 처음 투명드래곤을 봤을 때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 같아서 과거를 회상할 수 있었어^^ 멋진 문체다! 나도 뿌링클먹고싶다ㅎㅎ
[스가카게] 雨天 (비가 내리는 날) - 뭔가 진짜 3학년 졸업 떠올라서 슬펐어ㅜㅜ 잔잔한데 그러면서 아련하고 ㅜㅜ해피하다ㅜㅜ
[커플링 미표기] 연 - 고전물이랑 어울리는 브금! 문체도 그렇고!! 숙숙 읽혀서 흡입하듯이 읽었다ㅜㅜㅜ결말 완전 좋아!!
[우시카게] 달님 - 헐 뭔가 눈물나... 결말 짱좋아.. ㅜㅜㅜㅜ 행복해서 좋다ㅜㅜㅜ
[이나슬레] 고아원 - 으아 우ㅜㅜㅜ슬프다ㅜㅜ계속 기억하고 차마 공격하지 못한 이나호도, 뒤늦게 알아버린 슬레인도 둘다 너무 슬퍼..ㅜㅜ
[시즈이자] double - 사랑이고픈 이자야도, 이자야가 아님을 알아챈 시즈야도! 뭐라뭐라해도역시 둘은... 사귀는게 옳습니다.
[츠키카네] Lo-li-ta - 와 글이 섹시해 ㅋㅋㅋㅋ엄청 섹시해.. 광기 넘치고 피폐한데 너무 섹시해.. 롤리타..
[황흑] 일기일회 - 헐 너무 좋아. 너무 아련해 너무 슬퍼ㅜㅜ 야 너 이렇게 잘쓰면 같은 황흑을 쓴 사람으로서..내가..뭐가되니!! ㅜㅜㅜ넘슬퍼ㅜㅜㅜ 이씽 눈물나..
[하크슬레] 밀회 - 학 너무 좋아 ㅇㅅㅁ..ㅋㅋㅋㅋ 왤케 섹시하니 너네 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ㅎㅎㅎ좋다좋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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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9
헐 겁나 댓글정성쩐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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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1
와 너닝 겁나 천사야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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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3
엌ㅋㅋㅋㅋㅋㅋ대박 하나하나 다 읽고있었구나... 좀 시간 걸려서 끝내면 모를까 네시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ㅠㅠㅠㅠ맘씨 예쁘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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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4
미.. 미카엘?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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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5
이 분 뭐져? 이 분이 쓴 댓글 너무 눈부셔서 못보겠어여 대박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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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7
헐 진짜 천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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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8
와 대박이다.. 짱짱!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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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9
너닝 진짜 천사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닝 황흑 글이 나보다 더 짱짱인데 왜 이렇게 겸손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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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0
와 천사닝....고맙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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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1
천사닝 고마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언급 하나도 없어서 울뻔했는데 너닝 댓글때문에 울었다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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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2
천사닝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퓨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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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3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마워!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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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6
천사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고마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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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7
너닝뭐야...♥사랑스럽긴......내핥을바다라..♥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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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8
천사 ㅠㅠ ❤️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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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4
ㅇ하 너닝 사랑햐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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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7
와~천사가 나타낫다!!!난 글쓴닝은 아니지만 진짜 너닝 착하다~~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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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1
천사닝..너무고마워 진짜ㅠㅠ너닝덕분에처음언급되봄..ㅎ.ㅎ..고마워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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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9
진짜 천사다ㅠㅠㅠㅠㅠㅠㅠㅠ 언급 진짜 고마워 천사닝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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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4
ㄷ..대천사가 나타났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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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5
천사세요!?!?!??나한테 그런말을 해주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감도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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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4
와ㅠㅠ천사다천사ㅠㅠㅠㅠㅠㅠㅠㅠ감동이야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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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7
.....♡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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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6
진짜 천사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고마워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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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88
..............................................ㄷ...대천사가...나타났다...........가브리엘이 나타났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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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6
너닝 천사입니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워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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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0
헉...쩐당 ㅎㅎㅎㅎㅎ히히히히히잘썻당!!!!!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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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192
흐아 이제 집와서 지금 확인했다. 글 합작 참여한 닝들 총대닝 다들 고생했어요 ㅠㅠ 내 똥글 읽어준 닝들 사랑....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들 글 너무 잘썼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익만에 금손이 이렇게 많다니 행복하다..ㅠㅠ 다음 합작도 기대 된다..ㅎ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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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4
와 진짜 대박이다..ㅠㅠ 진찌 수고들 짱 많았오..ㅠㅠ 덕분에 좋은 글들 많이 보고 간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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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5
시간 날때마다 들어와야겠다ㅜㅠㅠㅠㅠㅠ글 고마워!!!금손들...♥ 슼슼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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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09
금손분드류ㅠㅠㅠ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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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1
뿌링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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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2
우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산조로조로사뉴ㅠㅠㅠㅠㅠㅠ 진짜 저런 발상은 생각해본적도 없는데 그 영화본다는 작품도 대박이고ㅠㅠㅠㅠ 특히 기억잃어버리는 작 에서 폐암과 간암이라니 진짴ㅋㅋㅋㅋㅋㅋㅋ 글도 참 좋고 다른분들 글도 참..좋네요 하.....ㅠㅠㅠ제바ㄹ 지우지 마세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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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5
일단슼슼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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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6
닝들 모두 수고했어 나중에 천천히 읽어야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행복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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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8
마나오노 사랑해요;(침착)
진짜 이말 말곤 표현할 방법이 없엉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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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19
날개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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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0
앙아옹오오아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 짱 잘썼다 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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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2
앞퓨ㅠㅠㅠㅜㅜ 금소뉴ㅠㅠㅜㅜㅜㅜㅠㅜ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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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3
와아 닝들 대박ㅠㅠㅠㅠ글 진짜 하나하나 대박이야ㅠㅠㅠ너무 좋아서 울겄다ㅠㅠ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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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4
와 대박!!!대박!!!!와!!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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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5
와진짜 엘라이토 진심 개쩐다ㅠㅠㅠㅠㅠㅠ필력에 소름돋았어 보는 ㄴ내내 심ㅇ쿵당함 ㅠㅠㅠㅠㅠ
다른 닝들도 진짜 잘써ㅠㅠㅠㅠ비교된다 ㅠㅠㅠㅠㅠ오늘은 여기서 하륫밤을 새야겟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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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6
진짜...와....미쳤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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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7
와...대박 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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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28
ㅠㅠㅠㅠㅠㅠㅠㅠ전부다대박이다ㅠㅠㅜㅜㅜㅜ전부금손이야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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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0
뿌링클 까지 읽었닼ㅋㅋㅋㅋㅋㅋㅋ 너뭌ㅋㅋㅋㅋㅋㅋ 필력들 다 좋곸ㅋㅋㅋㅋ 내가 좋아하는 커플링도 많아서 좋닼ㅋㅋㅋㅋ 시간 날 때마다 와서 봐야지 추천 누르고 감!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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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1
우와.......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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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2
쩐다는 말 밖에 안나온다...ㄷㄷ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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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3
선댓!!!!!!짱짜아짱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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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6
뿌링클ㅋㅋㅋㅌㅊ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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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7
코..코가사쿠가 있다니
숨이 안쉬어진다
빨리 감상하고 와야지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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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39
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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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0
합작 독후감 남겼는데 새벽이라서 지금 자고 있는 합작닝들이 못볼꺼 같아서 여기에 링크달아여 ㅠㅠ
http://www.instiz.net/name?no=9902025&page=1&category=3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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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1
닝들 수고했어!!!!!!!!다음 것도 기대할게!!!!!!멋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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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2
모두들 수고했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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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3
와ㅜ여기 금손 집합소임?ㅜㅜ 진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심심할때마다 재탕해야지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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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5
선댓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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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6
하하하하하하하 쩐다 대박... 소오룸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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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8
다들 수고했어! 다 금손이구 재미있게 잘봤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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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49
헐 대박이야...............넘좋아....................사랑해닝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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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0
워...뿌링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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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1
허억..허억..허억허억...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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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3
누가!!!!!! 마츠하나파냐!!!!!!! 나만 파는줄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진짜 좋아 미쳤어ㅠㅠㅠㅠㅠ 마츠하나평생행쇼ㅛ 마츠하나 글쓰니 나랑 사귀자ㅏㅏ!!!!!!!! 으아ㅏ아아ㅏ아아ㅏㅏ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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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4
헐진찌대박이다ㅠㅠㅠㅠㅠㅠㅠ 사스가 익만 금손닝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다들수고했어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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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5
엘월 미쳤어...진짜 다시 흥했음 좋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들 글 왜케 잘 써 죄다 영업 당한 느낌; 여기저기 다 치였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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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7
대박이다... 슼해놓고 또 읽어야지 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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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8
와...글을 저렇게 누르면 나오게 어떻게하는거지? 엄청 깔끔하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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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59
대애박...bbb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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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61
대박이다... 슼해놓고 또 읽어야지 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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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62
어혀르르흘허헝 ㅠㅠㅠㅠㅠㅠ 쿠로 다 너무 슬퍼요ㅠㅠㅠㅠㅠ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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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63
후 나 너무 늦게온듯 빨리 읽어서 후기 남겨야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 퍼감!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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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64
헐 대박... 나 왜때문에 지금 봤담.. 근데 저기 저 전체 브금 ㅜ먼지 알려줄수있을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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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265
헉 근데 넘 좋다. .ㅠㅠㅠㅠ 짱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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