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갑생 교수, 美문서관리청서 222쪽 발굴… 동북아역사재단 기증
1948년 6월 독도폭격연습때
한국어민 수십여명 사망·실종
미군 기밀 조사보고서 작성해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 근거
샌프란시스코 조약보다 앞서
1948년 6월 독도폭격연습때
한국어민 수십여명 사망·실종
미군 기밀 조사보고서 작성해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 근거
샌프란시스코 조약보다 앞서
![[정보/소식] [속보] "독도, 한국 땅 확실”… 1948년 美보고서 찾았다 | 인스티즈](https://cdn.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26/07/07/12/85854d450a97fef38006a656ff994fa4.jpg)
“리앙쿠르암(독도)이 한국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확립됐음에도 불구하고….”
1948년 독도폭격사건 직후 미군 당국이 작성한 기밀 조사보고서에 독도가 ‘한국의 일부(a part of Korea)’로 명확히 확립돼 있었다는 기록이 처음 확인됐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들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해 온 상황에서, 그보다 앞선 시기 미국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확립된 인식을 기록한 문서가 나온 것이다.
1948년 독도폭격사건 직후 미군 당국이 작성한 기밀 조사보고서에 독도가 ‘한국의 일부(a part of Korea)’로 명확히 확립돼 있었다는 기록이 처음 확인됐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들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해 온 상황에서, 그보다 앞선 시기 미국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확립된 인식을 기록한 문서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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