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된 카테고리 드라마/영화/배우
Dvdprime.com 펌
SF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스페이스 오페라부터 하드 SF까지, 이 장르는 넓다. 질문을 던지는 SF도 있고 순수하게 모험만 하는 SF도 있다.
이 영화는 간판은 일단 'SF 액션 스릴러’ 라고 칸에 내걸었다.
그러나 후반부엔 우주선을 떨어뜨리고 외계인이 직접 자기 문명과 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단순 SF액션 스릴러 장르가 아니라 그 이상을 말하고자 하는 SF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 그 값을 치뤄야 한다.
1. SF라 걸었는데, SF가 없다.
내가 질문 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이 영화는 무엇을 묻는가.
외계와의 접촉을 통해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저 높은 문명을 등장시켜 우리 세계의 무엇을 비추는가.
문명의 위계라는 설정으로 어떤 질문을 여는가.
믿음과 신이라는 거대한 단어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컨택트〉는 외계와의 접촉을 통해 언어와 시간의 본질을 묻는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존재를 만든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창조주를 만나면 인간은 무엇을 묻게 되는가, 그 답이 절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우주전쟁〉은 오락 SF에 가깝지만 그 영화마저도 문명의 오만과 취약함을 얘기한다. 우주라는 소재를 빌려온 이상, 최소한 그 소재로 무언가를 비추기는 해야 한다.
그게 이 장르에 발을 들인 값이다.
호프는 그 값을 안 낸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은 크고 무서운 존재로 사냥하고 사냥 당할뿐, 어떤 사유의 입구도 아니다.
우주선은 스케일을 키우는 장치일 뿐, 세계를 넓히지 않는다.
신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대단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은 느낌만 줄 뿐이다.
문명의 위계는 인터뷰에서 한 번 언급되고 화면에선 아무 질문도 열지 않는다.
감독 본인이 "SF라기엔 민망하다"고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한 문장이다. 간판은 SF인데 내용물은 아니라는 걸 만든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이 가벼움과 빈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돌아오는 답은 하나다. 3부작 중 1부라서 그렇다.
참 좋은 핑계다. 하지만 그건 답을 미룬 거지, 질문을 던진 게 아니다. 이야기의 뒷부분은 2편으로 미룰 수 있어도, 무엇을 물을 것인가는 1편에서 이미 정해졌어야 했다. 질문 없이 시작한 이야기는, 몇 부작을 쌓아도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
2. 감독이 영화의 세계관을 극장 밖에서 설명하고 있다.
황후, 황태자, 시녀. 개체 이름의 유래. '몰리'라는 시간 단위. 전부 인터뷰와 GV에서 풀렸다. 영화 안에는 그걸 유추할 근거가 없다.
SF의 재미는 절반이 재구성이다. 화면에 흩어진 정보를 관객이 주워 모아 세계를 세우는 것. 그런데 감독이 그 작업을 극장 밖에서 대신 한다. 티켓값 낸 사람보다 감독 인터뷰 본 사람이 더 많이 알게 되는 영화다.
심지어 '몰리'는 본인이 "'몰라'를 변형했고 나도 뜻은 모른다"고 했다. 설정을 만든 사람이 설정의 의미를 모른다. SF에서 이건 자기 부정이다.
3. 밀도 없이 스케일만 커진다
시골 마을 대소동인 줄 알았는데 후반에 우주선이 떨어지고 갑자기 우주 전쟁이 된다.
규모가 커지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 전환을 지탱할 정보가 앞에 하나도 안 깔려 있는 게 문제다. SF는 스케일이 커질수록 설정 밀도가 받쳐줘야 한다. 밀도 없이 크기만 키우면 웅장해지는 게 아니라 공허해질 뿐이다. 호프의 후반부가 딱 그렇다. 커졌는데 한없이 가볍다.
4. 외계인이 입을 여는 순간 무너진다
침묵할 때 그들은 미지의 존재였다. 말을 시작하는 순간 설명 책임이 생긴다.
그런데 그 긴 대사가 답을 주지 않는다. 저들이 왜 여기 왔는지, 저 높은 문명으로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왜 소통이 저 모양으로 어긋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단순히 세계관을 넓히겠다는 일방적 선언에 가깝다. 관객은 답을 받은 게 아니라 청구서를 받았다.
차라리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면 미지로는 남았을 것이다.
5. 설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성경을 놓는다
두 시간 반 동안 인간을 사냥하던 존재가, 마지막에 히브리서 11장을 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이 대사 하나로 멋진 리뷰어 평론이 몇 편 나왔다.
“신학적 SF의 전복”. “외계가 인간의 경전을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구조”. 감독은 이 영화의 시점을 "신의 시선"이라 불렀다.
멋있다. 그런데 그게 어디에 놓였는지를 보자.
이 영화는 저들이 왜 왔는지를 끝내 말하지 않는다. 설명이 들어가야 할 그 구멍에 성경이 들어간다.
논리로 못 세운 세계를 종교의 상징으로 덮은 거다.
관객은 이해한 게 아니라 압도당한 채로 극장을 나온다. 그리고 그 압도를 깊이로 착각한다.
6. 이건 이번 영화만의 일이 아니다
나홍진의 영화에서 종교 상징이 하는 일은 뻔하다. 공포를 키우고, 신비를 칠하고, 해석의 여지를 판다. 셋 다 잘 팔린다. 회수만 안 된다. 이 감독이 자기 모든 영화에서 반복해 써온 방식이다.
서사에 구멍이 뚫린 자리마다 어김없이 종교적 기호가 놓인다. 십자가, 경전, 제의, 성경. 그것들은 답을 주지 않는다.
심오한 답이 있을 것 같은 인상만 만든다.
7. 이 방식은 혼자 굴러가지 않는다.
기호의 형식으로 미끼가 던져지면 리뷰어와 평론가가 그걸 받는다. 해석이 쏟아지고, 상징이 정리되고, 도표가 그려지고, 완전분석 영상이 올라온다. 영화의 빈칸이 남의 문장으로 채워진다. 감독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는데 설명은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 관객은 그 해설을 읽고 나서야 "아, 그런 영화였구나” 한다.
기가 막힌 장사다.
해석은 평론의 일이고, 좋은 해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다만 구조를 보자는 거다.
던지는 쪽은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색칠하는 쪽이 위험을 대신 진다. 해석이 근사하면 감독의 깊이가 되고, 헛발질이면 그 사람이 미끼를 잘 못 물어분 것이 된다. 이보다 안전한 감독 자리가 어디 있나. 예전에 곡성을 극찬하던 평론가가 공개된 자리에서 감독과 전혀 대화가 안되는 걸 보고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그러니 구분하자.
해석할 것이 실재 하는 것과 해석을 하도록 미끼를 던지는 것은 다르다.
제대로 만든 텍스트는 파고 들수록 구조가 드러난다. 그렇지 않은 텍스트는 파고 들수록 헛발질만 나온다. 해석이 아무리 정교하고 그럴듯해도 그건 해석이지 영화 본질이 아니다.
검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구절을 들어내 보라.
아무것도 영화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 구절을 빼도 달라지지 않는 영화라면, 그건 구조가 아니라 장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10년간 그 장식에 의미를 붙여주느라 꽤 바빴다.
〈마무리>
SF는 모르는 것을 다루는 장르지, 모른 채로 두는 장르가 아니다.
미지는 재료다.
어디까지 알 수 있고 어디부터 알 수 없는지 선을 긋는 게 작가의 일이고, 그 선이 그어질 때 비로소 경외가 생긴다. 선이 없으면 그건 미지가 아니라 그냥 공백이다.
호프는 선을 안 그었다. 다 비워놓고 그걸 깊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공백은 감독이 아니라 평론과 리뷰가 채웠다.
물음표가 많이 남았다고 좋은 SF가 아니다.
이 영화는 물음표를 던지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안 썼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의 피조물인 그 외계인들이 창조주인 감독에게 이렇게 물을 것만 같았다.
“당신은 왜 절 만들었습니까?"
감독은 답할 수 있을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