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 읽을 수 있죠? 점자로 쓴거니까"
흐려진 초점에 나와 루한의 시선은 맞물리지 못하고 이내 틀어져 버렸겠지, 너를 볼 수 있을 때 마음 껏 봐둘 걸 그랬나보다
오랜 생각으로 점자판을 꼭 쥐고 있으니 루한의 손이 내 어깨위에 내리앉았다, 읽어봐요하는 그 목소리에 점자판 위로 내려 앉은 손 끝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가 나 다 라 마 바 사 단순한 한글의 배열, 아 자 차 카 타 파 하..두세줄쯤 읽어내려왔을까 어느 한줄을 읽어내는 손길이 뚝 멈춰 머뭇거렸다.
가 나 다 라 마 바 사 랑 해 요, 민 석..그 상태로 가만히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루한은 이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지금 내 표정조차 어떻게 된지 모르는데..
혹시 지금 내 표정이 이상해 루한이 기분이 상했을까 걱정된다, 이 사람이 없으면 난 정말 외톨이가 되버리는데.
"계속, 읽어줘요"
가지말아요, 민석
나 여기 있잖아요
다시 나한테서 도망가지 말아요 나 같은건 부족하다
라는 생각은 버려요 민석의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라는걸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모른척해요 나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해요 민석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됐다는거 알아요, 지금 힘든 시간인것도 알고요
자신만의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요. 서둘러 오라는게 아니라
차근 차근 천천히 오면 되는거에요 민석, 나는 언제나처럼 민석이 좋아하는 달콤한
카페 라떼 한잔을 들고서 당신에게 다가갈게요 민석이 두려워 하는게 뭔지 알아요
타인의 시선, 자신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무시하는 그 시선들을 내가 받을까봐 걱정하는것도요 당신에게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 한줄기의 옅은 빛으로 변해버렸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하늘아래 우리 발이 맞닿은 이곳인걸요
하지만, 그렇지만 이런 소리 말아요, 나 이제 내가 마음가는대로 하고싶어
점자판에는 분명 늘 루한이 내게 주던 한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단순 한글이 아니였다는 것을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 나는 겁을 냈었구나. 잡아보려 하지도 않고 미리 놓으려고 했구나. 나는 이렇게 겁쟁이처럼 굴었는데 어째서 루한 너는 이래
미안한 이 마음 어떡하라고, 너를 외면하려 했던 그 모진 눈빛들 어떡하라고. 사랑한다는 구절을 읽자마자 머뭇거리며 다음 편지를 읽을 생각을 못하던 나는
이 못난 나는 이렇게 너에게 또 못난 모습만 보인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잖아요, 여기 내가 있고 거기에 민석 당신이 있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