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꽤 차가웠다. 신발 앞 코를 정확히 아흔 네 번 바닥에 쳤을 때, 임윤아는 크게 웃으며 이 쪽으로 뛰어 왔다. 양 손에는 커피가 들려있었다. 빠르게 뛰어온 임윤아의 손은 넘친 커피에 잔뜩 적셔져 있었다. 뜨겁지 않냐는 듯 쳐다보자, 괜찮다며 넘어갔었다. 그리고는 하얀 옷소매로 컵주변에 흐른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닦고 쑥 내밀었다. 거의 코와 맞닿을 정도로 다가온 컵을 두 손으로 조심히 받았다. 적당히 식어 마시기 좋을 정도의 온도였다. 컵을 조금 만지다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임윤아의 소매를 닦아주었다. 이미 커피가 물들어 지워지지 않았다. "안 지워질 것 같아요." "괜찮아요. 음……. 근데 유리 씨, 물어볼 게 있어요." "뭔데요?" "나 되게 무뚝뚝한 사람이었다면서요? 매일 늦고 유리 씨 말도 안듣고 담배나 뻑뻑 피워대고." 태연이 또 되도 않는 말을 한 것이 분명하다. 친구를 위한다고 한 말이겠지만, 꽤 불편한 말인 것은 틀림 없다. 아니에요, 윤아 씨 좋은 사람이었어요. 물든 소매를 접어주었다. 이젠 흐릿하게 보이는 커피자국이 조금 괜찮아졌다. 사실 윤아는 기억을 잃었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내 생일에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잃고 난 후, 꽤 무심하고 권태를 느끼던 윤아가 내게 돌아왔다. 그저 '연인' 이라는 명목하에. 누군가가 너네 둘이 사귄다고 윤아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윤아는 날 그저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이젠 염증을 느낀다. 내 모든 것이 새로운 윤아도, 윤아가 아닌 윤아 씨라는 호칭도. "저……. 유리 씨." "네." "나 예전이랑 많이 다른 거 알아요. 나도 날 잘 모르겠어. 그래서 유리 씨에게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기분이 바다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난감하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윤아를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울음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화와 울음이 뒤치락엎치락 한다. 그냥 온 몸에 기운이 빠진다. 예전의 임윤아라면 틱틱 거렸겠지만 한 번 안아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나 유리 씨 엄청 좋아했나봐. 일기장에 유리 씨 밖에 없었어. 좋아했는데, 표현을 못 했나봐." "……." "나 표현 많이 할테니까 다시 유리 씨 좋아하게 만들어 줄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유리 씨는 내게 아주 중요했던 그리고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 비가 조금씩 내렸다. 가라앉은 기분들이 물에 두둥실 떠오르더니 어딘가로 흘러간다. 난,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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