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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 보고 짧게 쓰는 국민 글.

그러니까 그게 세달전부터였나. 내 책이 출간되고 얼마되지 않았던 그 날부터 나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메일을 보내오던 녀석이 있었다. 내용은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항상 '문하생으로 받아주세요' 로 끝나는 메일들이였다. 처음 한 두번은 상냥하게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나는 아직 문하생을 받을 생각이 없으니 미안하게됐다, 는 식으로 답장을 보냈었지만 그 이후에도 녀석은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메일을 보내왔다. 그리고 마흔번째 메일을 받았던 날, 나는 나의 책의 마지막장 끄트머리에 내 메일주소를 적어놨던 일을 미친듯이 후회했다. 나보다 훨씬 잘나고 대단한 작가는 세상에 널리고 깔렸는데 왜 하필 나여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알수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문학계에 정착하게된지 얼마 안된 신인 작가인데, 그런 내가 도대체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선생님, 부탁하신 자료 책상 위에 올려뒀어요."
"응. 고마워, 진짜 고마운데. 전정국아."
"네?"
"제발 그 선생님이란 호칭 좀 그만둬. 나 너랑 고작 다섯살 차이나거든."
"다섯살 차이여도 선생님은 선생님이죠."
그리고 세달이 지난 지금의 난, 결국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고집이 강한 그 아이를 '문하생' 이라 부르는것에 찬성하게 됐다. 반강제적이였지만 어쨌든 녀석이 나와 만난건 한달전부터였다. 고집스럽게 보냈던 마지막 메일에 내가 '알았어.' 라는 답장을 보낸 바로 다음날 이 녀석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나와 같이 문학인이셨던 할아버지께서 유일하게 물려주신 이 기품좋은 한옥 주택에 발을 들인것이다. 녀석은 자신의 이름이 정국이라고 말했고, 꽤 무뚝뚝한 인상이였지만 그럼에도 근사하게 웃으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마주하게됐을때 정국의 얼굴을 보고 난 그자리에서 주저앉을뻔했다. 문하생 좀 시켜달라고 하루종일 징징거려서 날 힘들게하던 대딩이 사실은 지금 당장 연예인을 한다해도 이상할것 없어 보이는 미소년인것은 내 예상범주 한참 외의 일이였으므로.
"오늘 저녁 뭐야?"
"된장찌개 먹고싶다면서요."
"진짜 해줄거야? 대박이다 너."
"대박이면 내가 쓴것 좀 읽어주세요, 매번 미루지만 말고.
'네,네. 알겠습니다.' 삐죽거리며 말하자 정국은 살풋 웃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저렇게 잘생긴 놈이 뭣하러 책을 쓰고싶다고 나한테까지 찾아와서 내 뒤치닥거리를 해주고 있는지 매번 얼굴을 볼때마다 의구심이 들었다. 다른걸로도 분명 떼돈을 벌 수 있을텐데. 몇일 전쯤에 정국에게 '너 연예인 해볼 생각 없어?' 하고 물었다가 진지하게 한시간동안 혼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주제에 왜 나를 혼내키는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석의 딱딱하고 고지식한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생각이 여간 깊은게 아니구나, 하는 느낌은 들었다. 이런 말 하면 분명 또 화내겠지만. 나쁜 표현이 아니라, 그 때의 정국은 정말 애늙은이 같았다.
"부모님이 걱정은 안하셔? 너 집도 여기서 한참 걸리잖아."
"어린 애도 아니고, 괜찮아요."
"스무살이면 어린 애지 뭐."
"어린 애는 선생님이고요."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으려다 말고 흘겨보면 모르는척 어깨를 으쓱거린다. 매번 이런식이라 이젠 어이없단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정말 날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내 생각에 정국은 내가 글을 쓰고 있을때는 완벽히 선생님 취급을 해주지만, 그 외엔 언제나 나를 어린애라고 생각하는듯 싶다. 저번에 실수인지 고의인지 잠에 취해서 대낮까지 일어나지 못하던 내게 꽤 화가 난 정국이가 '박지민. 안 일어나?' 하고 살벌한 목소리로 불렀을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정국은 우리 집에서 삼시세끼를 만들고, 하루에 한번 꼬박꼬박 이 넓은 집을 청소하기도 하고, 내가 부탁하는 자료를 찾아 정리해준다던가 필요할때면 나와 같이 자료 조사를 나가주기도 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말은 쉽지 솔직히 이 일을 매번 척척 해내는 정국이 신기할 따름이다. 처음엔 몇일 이러다 힘들어서 도망가겠지, 하고 줬던 일들인데 힘든기색 하나 없이 다음엔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왔을때 역시 젊음이 좋은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서 곱씹어보니 그건 아마 젊어서가 아니라, 전정국이라서 가능한거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국아,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물어보세요."
"너 왜 내 문하생 하는거야?"
"그거라면 메일 40통에 구구절절 다 적어놨잖아요. 다시 읽어보세요."
"에이, 그건 좀 아니다.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잖아."
설거지를 마친 정국은 내 앞으로 커피를 내밀며 맞은편 좌식의자에 앉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곳은 한옥 주택가의 변두리 부분이였는데, 이 마을의 가장 좋은점은 언제나 조용하다는 점이다. 상가나 가게들은 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낮이고 밤이고 나나 정국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 집 안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정국은 이 곳에 오고 일주일째 되던 날, 나에게 '여긴 조용해서 좋아요.' 라고 말했었다. 그 말을 하는 정국의 표정이 진심으로 상쾌하단 얼굴이여서 그만 푸스스 웃고 말았었지 아마.
"저 정말로 선생님 책 좋아해요."
"알아. 너가 입이 닳도록 말했잖아."
"진짜에요."
"그래애, 안다니까. 고마워요 고마워."
"진짜로, 좋아해요."
그만 좀 말하라고 짜증을 낼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정국의 표정이 평소보다도 한층 진지해서 결국 아무말도 못한채 입을 앙다물어야했다. 가끔 정국은 저런 얼굴을 한다. 평소에도 무뚝뚝한편이라 웃는 모습을 참 보기가 힘든데 가끔씩은 정말 저렇게 진지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하는 것이다.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싶어도, 차마 그 얼굴에 대고 그런 말을 할 자신은 없었다. 아마 저런 눈길로 내가 아닌 주위 다른 여자들을 쳐다봤더라면, 지금쯤 저녀석 연애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괜시리 정국이 내준 머그잔만 만지작거려본다. 언제쯤 그만 쳐다보려나.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생각해내려 정국이 얼마 전 보내왔던 문서 파일을 기억해냈다. 쓰고있는 소설의 첫부분 같았는데, 꽤 재밌었지 그거. 문체도 독특하고 내용도 신선하고. 조금만 더 다듬어서 완결 지으면 출간해도 평균 이상의 성적은 낼것 같은 이야기였다. 뭐라고 조언을 해줘야 할지 정리가 안되서 아직 안읽어봤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쯤에서 '너가 쓴거 재밌더라. 계속 써 봐.' 하고 말하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분명 좋아할텐데.
"그, 정국ㅇ.."
"선생님 책도 좋고."
"응?"
"선생님도 좋아요."
머릿속으로 곰곰히 해야할 말을 정리하곤 입을 여는 순간 정국의 입도 함께 열렸다. 항상 이런식으로 타이밍이 안맞는다니까, 투덜거리며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내용이 좀 이상하다. 참 오해할만한 말을 저렇게 덤덤한 얼굴로 말하는걸 보니 학창시절에 여자 여럿 울렸을게 안봐도 비디오다. 분명 내가 쓴 책이 좋다=그 책을 써준 나도 좋다. 이런식의 말인것같은데, 글 쓴 다는 놈이 이렇게나 언어 전달력이 흐려서야 쓰겠나싶다. 칭찬 해주는거는 나중으로 미뤄야지.
"그래애, 정말 고맙다. 나까지 좋아해줄만큼 내 책을 좋아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됐지?"
"그거 말고"
"뭐가 말고야 인마."
"뭐 그것도 아예 틀리진 않네요."
"도대체 뭔 소리야 얘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남아있던 커피를 몽땅 마셔버렸다. 솔직히 아직 조금 뜨거웠는데 덤덤한척하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기침을 꾹꾹 삼키다 결국엔 사레에 들렸다. 정국이 눈길로 졸졸 쫓는 느낌에 민망한 기분이 들어 급하게 휴지를 찾는척 이것저것 뒤집어보니 보다못한 정국이 주방에서 물을 갖고와 건넨다. 분명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을것이다. 고얀놈. 그렇게 생각하며 급하게 물을 마시곤 정국을 쳐다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환하다 못해 싱그러운 느낌이 드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저렇게 쳐다보는건 반칙이다.
"진짜 좋아해요. 선생님."
"알겠어. 알았으니까 그만 말 해 너. 한번만 더 말하면 쫓아낼거야."
"좋아해요."
"이씨"
삼개월동안 봐온 결과. 전정국은 확실히 수려한 외모에 성실하고 자신이 하려하는 일에 믿음이 있으며 누가 봐도 훌륭한 스무살 청년이였지만, 유독 나에겐 짓궂고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요즘엔 종종 나에게 이런식의 이상한 기분을 들게 한다. 고얀 놈.
그러고보니 정국이가 쓰고 있는 소설, 연애 얘기였지. 분명 주인공은 작가랑...
어떻게 끝내야될지 몰라 애매하게 씁니더. 좋은 소재 생각해내준 탄이 있는 방향으로 절할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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