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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2016/2/09) 게시물이에요

게시된 카테고리 방탄소년단

ㄱ 우리 둘이, 살아남자. (소설체톡) | 인스티즈

그 조그마하던 아이가 이렇게 클 정도로 전쟁은 계속 되었다. 한 발자국만 내딛어도 동료의 시체가, 적군의 시체가 발에 채였다. 그럼에도 그 시체를 밟고서라도 나아가야만 했다. 내 옆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정국아, 네가 몇 살 이였지?"

"그것도 잊었어요? 스물하나잖아요. 스물한 살."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너와 내 나이가 4살 차이니까 그럼 난 스물 다섯이겠네. 전쟁은 그런 것이였다. 자신의 나이조차, 사랑하는 이의 나이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무뎌진다. 그 무딤이 지금의 나를 만든거겠지. 손끝으로 총구를 쓸었다. 너에게 해야하는 질문이 입가에 멤돌았다. 그 대답에 따라 이 총구가 널 향할 수도 있었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최대한 덤덤하게 말을 시작했다.

"있잖아, 정국아. 전쟁이 곧 끝날거야. 적군의 승리로."

"...형?"

"난 살고 싶고, 너도 살리고 싶어."

네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 커다란 눈을 더 크게 치뜨고 있겠지. 그 눈을 마주한다면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애써 외면했다. 눈을 돌려도 네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이미 죽을만큼 구른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은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전정국은 살리고 싶다.

"오늘 밤에 탈영하자."

우리 둘이, 살아남자.

 

*

소설체톡, 배경은 6.25정도로 전쟁고아였던 정국이를 태형이가 데려와서 키웠어요. 굳이 정국이가 아니여도 돼요.

태형이는 어린 나이부터 전쟁에 참여했지만 얼마전에 적군에게서 이적을 하는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자신만만한 적군의 수장은 숨겨둔 무언가가 있다는 듯 너를 살리고 싶으면 정보를 들고 자신의 아래로 들어오라고 제안했고, 나는 고민중이에요. 나 혼자라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끊겠지만 나에게는 네가 있으니까. 널 지키고 싶으니까.

 

 

대표 사진
탄소1
"형."

작게 떨리는 내 목소리가 여과없이 드러났다. 저와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총을 만져대던 형이 내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정적. 밖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한참을 입에서 굴리고 굴린 듯 고민서린 형의 말이 생생했다. 형, 방금 무슨 말을...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을 들어 총을 꽉 부여잡고 있는 형의 손을 잡았다. 눈 앞으로는 아주 어렸을 적에 보았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파슬파슬 바람에 맞춰 춤을 추던 언덕의 풀들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저는 형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산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혹여나 형을 놓칠까봐 잡은 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형이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 탈영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뜻을 품고 있는지 감히 나는 느낄수도 없었다.

"형의 뜻이 굳이 그렇다면... 그러면."

눈물이 차는듯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눈을 질끈 감았다. 가다듬지 않고 뱉어내는 내 목소리가 볼품없이 흩어졌다. 갖은 생각이 머리속을 뱅뱅 맴돌고 잔뜩 혼란스럽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형이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형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형이 원하는대로 할 의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분명히 형에게 짐이 될 거야. 버리고 가요. 좋은 곳으로.

짓이긴 입술에서 기어이 피가 흘렀다.

/정국 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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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탄소
"나는 형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형이 원하는대로 할 의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분명히 형에게 짐이 될 거야. 버리고 가요. 좋은 곳으로.
네 마지막 말이 심장에 다가와 꽂혔다. 짐이라니, 지금까지 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것일까. 덤덤한 말투와는 다르게 네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평소라면 한달음에 달려가 닦아줬겠지만, 네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내가 지금 너에게 다가갈 자격이나 있을까. 제 손으로 거둔 아이의 숨겨진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했던 내가 감히.

"...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널 위해 살았던 적이 없어."

목소리 끝이 잘게 떨려왔지만 표정만큼은 태연을 가장했다. 눈물인지 저 하늘의 별이 비친건지 빛나던 네 눈이 나를 향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너에게 손을 뻗어 눈가를 매만졌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열감이 지금 네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해 가슴 한켠이 아렸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도, 다친 널 업고 뛸 때도 널 위한건 아니였어."

"......"

"나를 위해서였지."

전쟁을 하면서 가장 먼저 버려야했던 것. 그리고, 내가 절대 버리지 못했던 것. 인간성. 난 인간으로서 널 동정했고, 인간으로서 널 거두었다. 그로 인해 너를 업은 내 어깨가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었다.
그렇게 지켜왔던 나의 인간성이, 내 사랑이 이렇게 눈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팠다. 네가 없다면 이 세상 어느 곳도 좋은곳이 될 수 없었다. 저 혼자 나름대로 확답을 내리고서는 천천히 너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피는 그보다 더 붉은 네 입술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대로 입술을 맞대었다. 네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제서야 비로소 확인 받았다.

"이번에도, 날 위해서 같이 가자."

내 마지막 남은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기를. 처음으로 간절함이라는 것이 네 눈물에서 피어올랐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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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3
"이번에도, 날 위해서 같이 가자."

같이 가자는 네 말에 피가 터져나옴을 느낌에도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니까 나는, 어른스러운 척. 담담한 척. 두고 가라는 말을 뱉었지만 무의식 중에 다시 한 번 버림을 받는다는 생각이 그리도 무서웠었던 것이다. 짐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형이 다시 한 번 나를 거두어준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울컥 튀어나오는 내가 미치도록 이기적이었다. 흐으... 질끈 감은 두 눈에서 기어이 울음이 튀어나왔다. 꾹꾹 눌러삼킨 감정의 폭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지라 입 속에서 끓어나오는 울음소리를 차마 막을 수 없었다. 눈물이 가득차 흐린 시야에도 억지로 눈을 떠 형의 얼굴을 보았다.

"형, 형..."

거리를 가득 채운 시체더미들. 비가 몰려오려는 탓인지 어둑어둑 먹구름이 하늘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을 때 선물처럼 내려왔던 그때의 형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혼자야? 그럼, 형이랑 같이 갈래?' 그 나긋나긋한 음성은 기억 한 켠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때의 눈빛. 흐린 시야에도 가득찬 형의 눈빛과 변함이 없었다. 잔뜩 불안한 마음을 끌어안고 있어도 그 눈빛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 게 말이다, 참으로도 신기 했었는데.

"총 잡을 줄 몰라요. 저는, 제 몸 하나 못 지켜서 지금 이 상황에도 형에게 짐을 잔뜩 덜어놓는 그런 사람인데..."

이기적인 제 마음 속에서 아까와는 상반 된 생각이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살았으면 좋겠다. 형이. 그리고 살아있는 형의 옆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짧아서 미안해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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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탄소
제 말에 터져나오는 네 울음소리가 애처로웠다. 그 와중에도 눈을 홉떠 자신을 바라보는 네가 사랑스러워 떨리는 속눈썹을 감겨주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제 품 속에서 형이라는 단어가 닳도록 부르던 너를 부드럽게 다독여주고 네 손을 찾아 붙잡았다. 이제, 이 손을 놓을 일이 없기를.

"총 잡을 줄 모르면 어때. 대신 내 손이나 잡아주면 되지."

발개진 눈가로 놀란 듯 저를 올려다보는 네가 문득 토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하얀 피부와 붉어진 눈 마저도 연약함을 가득 머금은 아름다움이였다. 이 앳된 아이를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 너로인해 힘이 나는 것 같아 한껏 어깨를 펴고 널 일으켜 세웠다.

"해가 뜨기 전에 이 곳을 벗어나자. 형이 봐둔 길이 있어."

이렇게 되면 군수물자를 옮길 때 뒷길을 봐둔 것이 잘 되었구나 싶었다. 조금이라도 네가 안전했으면 하니까. 거추장스러운 장총을 내려놓고 품속 깊이 가지고 있던 나이프를 너에게 내밀었다.

"무슨 일 있으면 이걸로 네 몸 지켜. 넌 내가 데려온 아이니까 다치지 말고."

너에게 나이프를 넘겨주면서 다시한번 다짐했다. 네가 이걸 쓸 일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무슨일이 있어도, 지키겠다고.

"숙소로 돌아가서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올거야. 형 잘 따라올 수 있지?"

내가 죽더라도, 너만큼은.

/ 괜찮아요, 나도 짧은걸요. 글이 예뻐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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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5
너른 품으로 꽉 껴안아주는 형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듬직했다. 형의 손길을 잔뜩 탄 것만 같은 나이프를 조심스럽게 건네받으니 참으로도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형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서리게 하는 칼과, 총을 어렸을 적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잡아왔다는 생각. 섬뜩한 그 곳에서 과연 형은 무슨 생각으로. 끊임없이 차오르는 형의 감정들에 다시 엉엉 울어버릴 거 같아서 껴안은 손에 힘을 줘 형을 더 깊이 끌어안았다.

"절대, 절대 안 다쳐요."

나를 위해 이리도 아등바등 살아왔을,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형을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나약함은 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손에 약하게 쥔 나이프에 괜시리 힘이 들어갔다. 나 때문에 형이 위험에 닥치는 일은 절대 만들지 않을 것이다. 혹여나 형을 위해서 이 칼이 향하는 곳이 내가 될지라도 형이라면, 기꺼이.

"숙소로 돌아가서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올거야. 형 잘 따라올 수 있지?"

형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 작은 끄덕거림이 앞으로 어떤 일을 초래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확실한 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어느새 긴장감마저 맴돌기 시작했다.

"형, 형. 잠시만요."

나에게서 시선을 떼 문을 열려는 형을 다급히 붙잡았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잔뜩 들었다. 의문의 낯빛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형의 옷을 부여잡고 다급히 입을 맞췄다. 괜찮은 척 하지만 잔뜩 긴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형은 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걱정마요. 형, 걱정하지 마. 이런 의미를 잔뜩 내포한 채 맞댄 입술을 천천히 떼어내었다. 들쑥날쑥, 달달달 작게 떨리던 형의 눈빛이 퍽 차분히 가라앉아있었다.

"긴장하지 마요. 나도 안하는 긴장을."

밝게 웃는 내 미소를 보고 형은 픽 웃고 찬 내 손을 꽉 부여잡았다. 한껏 풀려서 느슨해진 공기가 우리 둘을 싸고 돌았다.

"가자."

문이 열렸다.

/탄소에 비해 제 필력이 많이 형편 없는 것 같아 부끄러워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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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탄소
5에게
나름대로 다부지게 나이프를 쥔 네 손이 어색했다. 그저 책이나, 필기구가 어울릴 것 같은 단정한 손인데. 그 작은 쇳조각의 무게가 너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퍽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자신이 한 약속에는 책임을 지는 아이니 잘 따라오겠다는 네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네가 힘들어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내가 도와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였다. 그 때는,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 가능할 줄 알았다.

"형, 형. 잠시만요."

다급하게 절 붙잡는 네 손길에 돌아보았을 때 네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긴장하지 마요. 나도 안 하는 긴장을."

그대로 맞닿았다. 아까 제가 했던 키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였다. 스치듯 전해진 온기에 놀라울 정도로 안정되었으니까. 그제야 네가 눈에 들어왔다. 이 어리고 작은 아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마주잡은 손바닥에서 알 수 있었다. 이 상태라면 정말 전쟁에서 승리하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였다.

"...토끼 닮았다고 한 거 취소. 완전 여우네."

"네?"

제 말을 듣지 못했는지 되 물어오는 너에 검지손가락을 네 입술에 대었다. 밖으로 나왔으니 조용히 하라는 뜻이였지만 넌 여전히 불만인 듯 그 붉은 입술을 오물댔다. 그 사랑스러움에 다시 네 입술에 입맞추려다 들리는 인기척에 급하게 널 수풀 속으로 밀어넣었다.

"형..!"

"나오라고 할 때까지 거기 있어."

너에게 작게 속삭이고는 뒤를 도는 순간 시커먼 인형이 불쑥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네가 숨을때 꺾인 가지들을 몸으로 가렸다.

"김태형이냐? 예서 뭐하는 거야."

"그냥, 잠이 안 와서."

"적당히 돌다 들어가라. 그러다 내일 뒈질라고."

나잇대가 엇비슷해서 나름 친하게 지내는 동기였다. 까슬한 말투에도 나름의 걱정이 베여있었기에 거짓말을 하기에 힘이 부쳤다.

"너도, 임마. 일찍 자라."

내일 보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어떻게 되려나. 착잡함이 보이지 않을 밤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수풀 속으로 들어가 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줬다. 안 추워? 가벼운 질문에도 웃으며 대답해주는 네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미소였다.

"조금 서두르자."

조급합이 차올라 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뜨기 전에 진영을 벗어나려면 시간이 빠듯했기에 둘러멘 가방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너와 어깨를 맞대고 걸었다.

/ 아니예요. 내가 너무 못써서 이런 실력으로 톡을 열어서 미안해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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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2
네 살 차이라는 게 뭐 그리 큰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밥 좀 더 먹고 클 때 나보다 키가 좀 더 컸다는 게 드문드문 기억나는 정도. 그래봤자 이미 내가 그 4년 차이를 끌어당겨 꾸역꾸역 커서 이제 눈높이였다. 그 눈높이를 맞췄는데도 너의 눈동자는 나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나보다 눈이 좀 더 커서 그런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죽음과 살생, 슬픔과 고통, 또는 그 이상의 어느 것을 보고 있었다.

내가 꽃이 피었다는 것에 즐거워 할 무렵에 너는 봄이 와 꽃이 피어도, 이 세상에 생명이 움틀 공간이 없다는 것에 가슴 아파했더랬지. 그렇게 차츰 차츰 커나가면서 나는 너와 키차이를 좁혀가도 도저히 생각의 깊이를 좁혀나갈 수는 없었다. 지금도.

지금도, 도저히.

탈영이라는 말이 네 입에서 나왔을 때, 결코 장난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온 맘으로 알아 온 당신은.

"...탈영이요?"

형은 뭘 생각하는 걸까. 대체 김태형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나보다 훨씬 높고 푸른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지만, 탈영이라니. 너의 결정에 쉽게 반박하지 못하는 나지만, 지금은 달랐다. 탈영. 다시 말해 조국을 버리겠다는 거다.

"아니."

머리를 가로저었다. 본능적인 거부였다. 그 거부에는 점점 내가 덧입혀졌다. 아니. 더 세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머리가 뽑혀져 나갈 것 같아. 아냐. 그거 아니에요, 형. 그거 아니야. 아니라고요.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정국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무슨 소리야. 형, 형."
"....정국아."
"아니라고, 김태형! 그, 그거 아니야. 아니, 저...적군이 승리할 거라는 건 누구한테 들었는데? 맞아. 형 밤에 돌아다녔어. 뭔데요. 누구 만난건데!"

바르고 어딘가 어른스러운, 크고 넓은 시야를 갖고 있는 김태형이 더 이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전쟁이 망가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그에게 너무 큰 짐이었나. 내가 그를 이렇게 내몰았나. 눈물이 터졌다. 그의 손을 붙잡았다.

"...나도 살리고 형도 살고 싶다고요?"
"..."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
"근데, 그건 욕되게 하는 거 잖아. 형...힘들고 슬픈 거 맞아요. 근데, 우리 그러지는 말자. 내가 미안해요 형. 형 내가 미안해."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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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탄소
너의 울음소리가 점칠되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리도 슬프게 우는지, 이리도 애처롭게 미안하다 사과하는지 멍해진 머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네 손을 감싸 잡아왔다. 저보다 크기는 작아도 이제는 나름 듬직해져 두터워진 손이 잡혔다. 그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둡고 어둡던 밤에 넌 이미 나를 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네 그 까만 눈동자가 어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너와 마주쳤음에도 등을 돌렸던 것이였을 수도 있었다. 4살이나 차이난다며 그동안 네 앞에 있는 척 해왔던 과거들이 바스라졌다.

"정국아, 나 봐."

"......"

아무말 없이 눈물만 흘려대는 널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였구나. 언제나 웃고 있던 너이기에, 자신의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던 너이기에 그런 줄도 몰랐었다. 저를 따라 방아쇠를 당기고, 적군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던 너였지만 이렇게 무너져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스물하나라는 작은 나이가 성큼 다가왔다.

"네가 미안할게 뭐가 있어. 미안해야하는 건 형이지."

내가 널 헤아리지 못했구나. 이렇게 여린 아이에게 지독한 현실을 던져준 전쟁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전쟁 속으로 끌고 들어온 나 자신은 더했다. 내가 아니였다면 저 아랫지방에서 맑게 자라고 있을 너였는데.

"탈영을 하기 싫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대신, 적군에게 포위되어 있다면 바로 투항해. 그러면 목숨은 살려줄거야."

침착해야 했다. 넌 바르고 곧은 아이니까 자신의 속내를 알게 된다면 필사적으로 말릴게 뻔했으니. 덤덤함을 가장한 위태로움이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널 이곳에 두고, 적진으로 향할 예정이였다. 수장을 만난다면 그 밑으로 들어가 충성을 약속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너 만큼은 지킬 수 있을 것이였다. 애초에 너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을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비어있었던 총을 챙겨들었다.

"형, 갈게. 정국아, 꼭 살아. 살아서 다시 만나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자들이 손으로 발목을 잡고있는 것 마냥 무거운 걸음이였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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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4
"...형, 형 어디가요."

형이 처음으로 내 손을 놓으려 하고 있었다. 울음으로 목이 막혀서 금방이라도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형, 진짜 어디가요. 침묵이 내리누르는 이 텐트 속에서 너 만이 군복 주머니에 무언가를 가득, 그리고 부산스럽게 챙겨 넣고서 그 곳을 나섰다. 정국아 살아서 만나자.

그 말의 뜻이 스며들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무슨 말을 하는거지? 저 사람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여길 나간거지. 아득한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날 밝히던 횃불이 사라져 버렸다. 공포심에 눈물이 멎는다. 따라 심장도 멎는다. 손발이 떨렸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너는 정말로 훌쩍 떠나는 건가 보다. 그리고 대게 그런 추측은 진짜였다. 헛투로 무언가를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김태형이 그렇게 허술하고 멍청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장난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보 새끼라면 좋겠다. 진심으로, 정말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풀리는 다리로 온힘을 다해 기어가 네 발목을 끌어 안았다. 차디 찬 진흙이 온 몸에 엉겼다.

"형, 허윽, 흑.... 왜 나 두고 갈 것 처럼 그래애. 어디가, 어디가요...어디가요. 김태형...흑, 흐윽...흐, 흐으으..."
"놔."
"나...나랑 쪼금만 더 얘기해요. 왜 그러는 건데요. 왜 그러는 건..."

눈 앞에 총구가 들이대졌다. 너에 대한 공포심은 이제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야에 들어찬 총구, 그 위에 마주한 너의 넓고 푸르다고 생각했던 눈동자.

아니, 살의가 들어 찬 눈동자. 텐트를 나선 그 순간부터 난 이제 김태형의 적이 되었나보다. 생명줄 부여잡듯 쥐던 네 바짓자락에 힘이 풀렸다.

"...진짜 쏠 거야?"

힘없는 목소리로 네게 물었다. 붉어진 눈가가 보였다.

"...나 죽일 거에요?"
"응. 나 막으면 너 죽일거다."
"형이 없으면 내가 사는 게 의미 있을까요."
"징징 대지마, 전정국."
"나는 형이랑 전쟁통에서 살아남아서 아스케키 장사나 하면서 사는 게 꿈인데."
"..."
"형이 배탈날 때 까지 먹여준다며. 거짓말 이에요?"

이마에 차갑게 닿아있던 총구가 힘있게 머리를 다시 들이 받았다. 총구만큼 차가운데, 위태로운 목소리가 칠흑같이 까만 허공에 내려 앉았다.

"...살아서 보자, 정국아."

총구가 이마에서 떼어졌다. 다 헤진 군화가 진흙 위에 자국을 남기며 한 걸음씩 멀어졌다. 그 옴폭 패인 발자국에 그믐달의 빛이 고였다. 시리고 어둑한 그 달빛은 적진으로 향하는, 그 누구보다 충성을 다했던 아군의 뒷모습을 비췄다.

거짓말이냐 묻는 내 물음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10년 전
대표 사진
글쓴탄소
수십, 수백의 망령들보다 네 손이 더 무거웠다.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네가 아니라 마치 수천근의 쇳덩어리같이 느껴졌다.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어서 결국 뒤를 돌아 너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동시에 엉망이 되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네가 보였다. 바닥 찬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눈길 한번 스쳤다고 다시 차오르는 네 생각을 억누르고 널 내려다 보았다. 비워진 총은 가벼웠지만, 네 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거웠고, 갑갑했다.

"...나 죽일 거에요?"

내가 널 죽일 수 있을리가.

"응. 나 막으면 너 죽일거다."

"형이 없으면 내가 사는 게 의미 있을까요."

네가 없으면 내가 사는 이유도 없어.

"징징 대지마, 전정국."

"나는 형이랑 전쟁통에서 살아남아서 아스케키 장사나 하면서 사는 게 꿈인데."

"......"

"형이 배탈날 때 까지 먹여준다며. 거짓말 이에요?"

너에게 하는 거짓말은 참 쉽다. 그냥, 생각의 반대만 내뱉으면 되니까. 그와는 다르게 점점 가라앉는 네 표정을 지켜보는 것은 어려웠다. 보고 있으면 내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살아서 보자, 정국아."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하니 네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리도 닳도록 불렀던 이름인데 왜 이제와서는 더 부르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조금 더 자주 불러볼걸. 정말 네 이름이 닳아서 내 잇새와 겹쳐지도록 불러볼걸. 내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말들을 밀어넣고 등을 돌렸다. 지금 네가 보고 있을 내 뒷모습이 궁금해졌다. 아군을 져버린, 긍지를 짓밟은 군인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초라할 것이였다.

*
그 날 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찾아간 전직에서 마주한 것은 조국의 참모였다. 그리도 자신있게 말하던 적군의 배후에는 그렇게 믿어왔던 아군이 깃들어 있었다. 가슴은 분노했으나, 입은 얼어붙었다. 자신도 배신자의 입장으로서 그에게 무어라 말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새로운 진영에 발을 들일 수밖에. 이렇게 해서 널 살릴 수만 있다면, 더 비참해질수도 있었고, 더한 치욕을 견뎌낼 수 있었다. '전정국' 너만 있다면.
밤새 참모였던 그와 작전을 짰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전의 약점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난 네가 있을 곳으로의 병력을 최소한으로 돌렸다. 다행이 적군과 아군의 경계에 있는 그는 내 말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나는 너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배치되었다. 그 아수라장 사이에서 널 본다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나 조차도 모르기에.
그렇게 날이 밝았다. 해가 떠오르고, 모두가 총을 들었다. 부디 네가 무사하기를, 처음으로 신께 기도했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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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6
배고픈 밤이었다. 평소처럼 피 비린내가 가득한 낮을 보내고 온 우리가 서로 붙어 누워 서로의 온기로 위로를 받던 날이었다. 지금보다는 내가 더 어렸고, 지금보다 김태형이 더 해맑게 웃을 줄 아는 밤이었다.

'...너무 배고파.'
'배고파? 짭짤한 거 좋아해, 정국이?'
'네? 네네네. 먹는 거 나 다 좋아하잖아요, 형아.'
'그러면, 자, 집게 손가락을 펴 봐. 이렇게. 응, 그렇지 그렇지. 잘하네 우리 정국이. 자 그 상태로 입에다가 쏙.'
'...입에다가 쏙?'
'그리고 쪽쪽.'
'...쪽쪽?'
'짭짤하지?!'
'아 뭐에요!'

바보같이 손가락을 빨라는 말라는 말에 따라하는 나나, 어린 동생을 상대로 그런 장난을 치는 그나. 정말 바보같지만 이상하리만치 웃겨서 서로 부여잡고 한참을 웃었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던 너였고, 그 말에 나는 네가 사비를 털어 사준 아이스케키라고 대답했고. 정국아, 그러면...우리 여기서 둘이 같이 살아나가서 나중에 아이스케키 장사하자. 형이 배탈날 때 까지 먹여줄게. 그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는 내게 꿈을 가지게 했다. 그 꿈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가져 본 꿈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고 제일 대단한 꿈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어둠 속에 스민듯 사라진 이 순간에 가장 달콤한 꿈이기도 했다.

"...전정국! 전정국 일어나, 시팔 빨갱이 새끼들 습격이야!"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서, 총탄이 날아다니는 이 현실에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항상 네가 지키던 자리에는 네가 없다. 대신에 소대장이 나의 멱살을 잡고 날 일으키고 있었다. 잠에, 그리고 꿈에 취한 시야에 내 머리보다 훨씬 큰 군모가 엎어졌고 무방비한 손에는 총이 들려졌다.

"김태형 어딨어! 김태형!"

소대장의 말에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반쯤은 거짓이었고 반쯤은 진실이었다. 정말...모르겠습니다. 진짜 어디...어디로 간 건지. 뭐하러...뭐하러. 눈물이 차오른다. 가슴에 구멍이 나 검은 피를 토해낸다. 철썩, 하는 파열음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미친 새끼, 질질 짜지마! 정신차리고, 임마 빨리 여기서 나가서 전방 지켜, 여기 먹히면 우리 다 끝이야! 이 개 새끼들은 다 어떻게 안 건지, 시팔! 억센 고함에 겨우 짐을 챙겨 밖으로 향하려다 입술을 물었다. 적군이 우리의 막사를 파악했다니.

...형의 짓인가. 그런 거야?

동이 틀 무렵인데도 하늘이 까맸다. 온갖 수류탄과 총탄들이 날아든다. 낯선 군복과 눈에 익은 군복이 살점과 피로 뒤섞인다. 탕! 탕! 정국아 태형이 어딨냐! 탕! 탕! 몰라요, 시.발! 탕! 탕!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니라고. 널 믿고 싶은데.

"씨이발!"

왜, 왜 분노가 치미는지. 살아는 있어? 설마 밀고한 게 너일까. 탕! 탕! 총의 파열음에 같은 소대원들의 절규가 들린다. 규석이가 죽었어. 뭐라고요? 규석이가? 그와 친한 친우가 전방으로 다가와 건네는 말에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돌아봤다. 김태형과 쌍으로 용맹한 병사였다. 그의 절친한 친우이자 나와도 친목이 있었던 경태가 말이 없다. 그에 김씨 아저씨가 그를 툭툭 친다.

"경태 니 뭔 생각하노! 빨갱이들 안 쏴 죽일기가!"

그가 갑자기 수류탄을 꺼내든다. 하나 두개 세개. 자꾸만 달려드는 적군을 쳐다보며 양손에 하나씩, 입에 하나를 물었다.

"...경, 경태야. 안 돼. 너 뭐하냐."

그가 수류탄 핀을 빼고 쌓아놓은 안전벽을 넘어 달려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적군과 함께 그의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경태야. 아아. 아아아...

탕! 탕! 탕!

"간나 새끼들. 뭘 그렇게 보고만 있어."

경태의 죽음에 넋을 놓은 우리의 뒤에서 약 세 발의 총이 쏘아졌고, 나 이외의 전방을 지키던 소대원의 숨이 그 총탄에 멎었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낯선 군복의 북한군이 동그랗게 포위를 하고 있었다. 동료들의 죽음에 이를 악다문 새로 눈물이 쏟아졌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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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7
6에게
죽는건가, 이렇게. 너를 만나서 죽빵이라도 꽂아야 하는데. 그러다 투항하라는 너의 말이 생각난다.

천천히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위로 올린다. 너를 만나야했다. 시.발. 무슨 일이 있어도.

"...항복합니다."
-
엄청 기네요. 허허. 미안해요. 부담 갖지 말구요... 너탄 근데 진짜 잘 써요.8ㅅ8...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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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탄소
7에게
전투가 끝나자마자 무장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본부로 달려왔다. 전방에서 투항한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투중에 죽었다고 발표되었지만, 그 죽은 이들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름표를 가지고 있을리가 없는 이들이니까. 그렇게 정식 군인도 아닌 사람들이 전방에 나설 정도로 이번 전쟁은 처절했다.

"대장! 포로들은...!"

북한군의 진영 한 가운데, 가장 큰 막사를 박차고 들어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은 그 중앙에 무릎이 꿇린채 포박되어진 너의 모습이였다. 처음에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였다. 내 말을 들어주었구나. 투항을 했구나.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죽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안도했다. 나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인간이였다. 그 다음에 보인 것은 여기저기 긁히고, 지저분해진 네 얼굴이였다. 마치 그 때의 긴박함을 대변해주기라도 하는 것 같아 천천히 다가가 너에게 손을 뻗었다.

"...정국아?"

네가 고개를 돌려 나의 손길을 피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자신을 향한 마음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저를 거부할 줄은 몰랐다. 손끝이 떨려왔다.

"이 자식이 자네가 주워온 그 간나새끼인가?"

거친 손길이 네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그 손의 주인이 소대장이라는 것도 잊고 네 앞을 막아서며 그를 밀쳐냈다. 기가 차다는 그의 얼굴이 보였지만 전정국이 내 눈앞에 있는 순간만큼은 너의 안위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마세요. 건들이지 마시라구요."

"허, 이 개 새끼가!"

너에게로 향하던 주먹은 이제 나에게로 향했다. 짜악-! 손바닥과 볼이 마찰해서 생긴 소리라고 하기에는 꽤나 큰 소리가 막사 안에 가득 찼다. 머리가 울리고 터진 입안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제가 넘어가면 다시 너에게 손을 뻗을 소대장을 알기에.

"기껏, 생각해서, 거두어 줬더니. 이런 식으로 값는구만!"

한 음절을 발음할 때마다 제 볼을 내려치는 손길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악스러운 발길질이 이어졌다. 배를 밟히고, 얼굴을 밟혔다. 그제야 소대장이 남한에서 건너온 참모를 못마땅해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냥, 남한을 싫어하는 거잖아. 저 새끼는.
아득하게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도 저를 놀란듯 쳐다보는 네가 보였다. 아, 정국이가 걱정하겠구나. 널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피가 맺힌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이렇게 쳐 맞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살아남으라고 했던 게 아닌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다른 사람들에게 널 봐달라는 부탁을 할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너에게 손을 뻗었다. 그것마저 걷어차이고 나니까 더 이상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끌고 가. 가서 어디 골방에다 가두어 놓던지. 반동분자 새끼."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정국이를 지켜줘야 되는데. 정국이랑 같이 아스케키 장사 하기로 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아득해진 머릿속에 거칠어진 소대장의 말을 끝으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아니예요. 탄이가 더 잘 쓰는데... 위에서도 말했는데 이런 실력으로 톡 열어서 미안해요 8ㅁ8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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