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장편이 될 것이야. 물론 제목도 아직 안 정했지만. 정식으로 올리기 시작하면, 어려운 용어들은 주석을 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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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클레이 (John Clay) 는 애틀란타에서 열리는 남동부 법무법인 콘소시움의 2017년 8월 13일 오후 첫 신입 변호사 인터뷰를 준비중이었다. 매번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만 주고 받은 오전 인터뷰는 지리멸렬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은 치킨 텐더 기름이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듯 했다. 잠시 저조한 기분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그는 지원서류 더미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 지원자는 동양인. 성적도 우수하고, 수상실적도 발군에, 1학년여름엔 IRS (연방 국세청)와 SEC (주식 거래 위원회) 를 거친 재원이었다. 왜 그가 자신의 로펌에 지원했는지에 대한 의아함이 가득 찰 때쯤, 가는 몸에 앳된 얼굴을 한 전형적인 동양인 한 명이 방에 들어왔다. 짙은 회색 양복과 칼주름이 잡힌 흰 셔츠가 마네킹처럼 가늘고 매끄러운 목을 휘감고 있었다. 피부색은 셔츠와 경쟁이라도 하듯 희었고, 입술 역시 붉은색 넥타이와 누가 더 붉은지 난형난제였다. 굳이 따지자면 변호사보다는 고등학생 역할을 맡은 청춘스타에 가까운 외모였다.
"일단, 간략하게 본인 소개부터 해 보세요."
"박지훈, 1993년생. 하버드 로스쿨 JD 예비 2학년 (Rising 2L) 입니다. 2012년까지는 한국에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로펌은 애틀란타에 있어요. 예상한 질문이겠지만, 지원서에 기재한 성적, 경력, 수상 실적이면 분명 보스턴이나 뉴욕에서도 자리를 골라 가질텐데, 더 협소한 시장으로 오려는 이유가 뭡니까?"
"아주 사적인 이유입니다. 보시다시피, 전 인터뷰를 하러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정도면 이곳에서 일 하고 싶은 제 의지는 매우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귀사가 변호하는 고객들의 면모와 법무 규모를 볼 때, 뉴욕이나 보스턴에 있는 어떤 로펌에 비해서도 크게 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연인?"
"더 이상은 죄송하지만 사적인 문제라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뭐 이리 비밀이 많은지. 아무리 성적을 고려하더라도, 면접 태도가 과하게 당당했다. 하지만, 30년 넘게 변호사 생활을 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한 클레이의 눈에, 지금 마주보이는 청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말 한대로, 조지아주에 일할 동기가 존재하지 않고서야 애틀란타까지 날아와 인터뷰를 볼 이유는 없었다.
그 후, 박지훈과 클레이는 몇몇 전형적인 인터뷰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청년은 군더더기 없이 매번 핵심만 정확히 추린 대답을 해왔다. 소스라치며 감탄할 만큼 기발한 대답은 없었지만, 청년은 매끄럽고 전체적으로 결손이 없는, 이상적인 변호사 그 자체였다. 1주일 후, 애틀란타의 믹슨 테너 & 클레이 (Mixson Tennor & Clay) 는 2018년도 하계 인턴 합격자로, 박지훈을 선정했다.
***
"봉사 변론 시간이 부족해서 말일세."
애버리 믹슨 (Avery Mixson)은 4월 실적보고서가 떠있는 컴퓨터에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말을 기다리던 청년에게 말을 건냈다.
"봉사 변론이라면, 올 가을 겨울도 있는데요?"
"그건 그런데, 4분기엔 아무래도 월스마트와 타우케미컬 집단소송부터 시작해서, 자네를 쓸 일이 좀 많은게 아니라서. 6 7 8월은 푹 쉰다고 생각하고, 법원 가서 무료변론 케이스나 하나 얻어오게."
"따분해 지겠군요."
"따분해?"
"아시잖아요? 전 돈 들어오는만큼 들뜨는거."
"다니엘. 국선 사건도 하기 나름이야. 따분할 것 같으면 큰건 하나 물어서, 로펌 이름 좀 알려 봐. 그럼 간접적으로 돈 버는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사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나야 항상 맞지. 이쯤에서 오늘 할 말 끝났으니 가 보게."
청년은 허리를 접듯 고개를 깊이 조아린 후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한국식 인사는 몇번을 받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과하게 정중하다. 육중한 몸이 출입문을 꽉 채운 순간, 믹슨이 청년을 재차 불러세웠다.
"아 참. 자네말이야. 형사사건으로 물어와. 강력범죄로."
"저흰 형사는 안하잖습니까?"
"그건 그런데, 가끔 일탈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올해 여름 인턴을 한번 시험 해 보고 싶어서. 꽤 재능있는 친구가 굴러왔거든."
"제가 끼고 다녀야 하나요?"
"애 보는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애가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군. 하지만 파트너 지원 하기 전에 인턴들 가르치는걸 한번씩은 해 봐야 한다네. 알다시피 파트너 자리까지 올라가면 직접 일할 때보다, 남들한테 일 줄 때가 많거든."
"뭐 알겠습니다. 누군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그럼 재미가 없잖나. 5월 21일에 직접 확인해."
개인 사무실로 돌아온 다니엘은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동시에 살짝 기쁨의 웃음이 새어나왔다. 믹슨이 직접 파트너 지위를 운운한 것은, 분명 길면 5년 짧으면 3년 안에 파트너 승진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러던 중 갑자기 궁금해졌다. 믹슨은 칭찬에 매우 인색한 노인이었다. 재능있다라는 말은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천재라는 칭찬이나 진배없었다. 어쨌든 직장내에 유능한 후배 변호사를 키우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큰 재판에서 승소하는 것 만큼, 뛰어난 수습변호사를 키우는 일 역시 중요하고 큰 실적이다. 그저 휴식으로 생각하던 여름에 대해 갑자기 의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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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30에 ㅋㅋㅋ 쓰는 사람은 거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