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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여전히 숨을 죄어오는 더위가 몸을 불려 덮쳐왔고 눈을 뜨면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 눈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괜찮아." 그럼에도 그는 초연하게 웃어보였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그러니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아무 말도 없이, 가장 또렷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잘 지내." 여름이 지나가고 공기가 서늘해져도 크게 데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잘 지낼게" 그래도 괜찮아. 너였으니까.
먹구름이 꽤 짙게 몰려오더니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순간 걸음을 멈춰 선 소년은 멍한 눈으로 쓰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흘깃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쏟아지는 비를 맨 몸으로 온전히 맞고 있었다.
'좋아해' 몸에 닿는 빗방울의 개수마다 그 다정한 언어의 온도가 식어내리길 기대했다.
'좋아해' 몸에 닿는 빗방울의 개수마다 그 잔인한 글자의 발음이 무뎌져가길 기대했다.
'좋아해' 몸에 닿는 빗방울의 개수마다 그 꿈 같은 말을 끝으로 홀연히 사라진 누군가가 씻겨내려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너를 꼭 닮은 지독한 열병만 남을 터였다. 그걸 깨닫는 순간, 소년은 주저앉고 숨이 멎을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