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임모씨는 최근 8세 아들의 질문을 받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들은 한 레몬 탄산주 이름을 언급하며 “술은 맛있어?” “취하면 어떻게 돼?”라고 물었다. ‘초통령(초등학생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걸그룹 멤버가 본인이 광고하는 술을 들고 유튜브 ‘술방(술 마시는 방송)’에 출연한 게 화근이었다. 임씨는 “걸그룹 멤버 이름만 유튜브에 쳐도 술방이 맨 위에 뜬다”라며 “아이들이 유튜브 등에서 술에 무방비하게 노출돼있다”고 말했다. 우후죽순 아이돌 술방에 학부모 가슴 철렁 최근 유명 연예인이 유튜브 술방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아동·청소년 모방 음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술방이나 ‘술터뷰(술+인터뷰)’가 유튜브 대세 콘텐트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최근 한 달 새 블랙핑크 지수, 아이브 안유진, 세븐틴, 수지 등 다수의 인기 아이돌이 유튜브 술방에 출연했다. 이들이 나온 동영상 조회 수는 2일 기준 적게는 350만 회에서 많게는 1530만 회에 이른다. 유튜브에서는 연령 제한 없이 음주 관련 콘텐트에 접근할 수 있는데, ‘취중 진담’처럼 술을 긍정적 매개로 풀어가는 방송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이런(술 취한) 모습 자주 보여 달라” “술 주사가 귀여우니 환장하겠다”와 같은 댓글이 달린다. 숏폼(짧은 형식의 동영상) 추세에 따라 술방을 짧게 재편집한 것도 인기를 얻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관련 법이 전무한 탓에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이 유튜브엔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자율 규제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유튜브가 제재를 비껴가는 사이 청소년 음주율은 올라가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질병관리청의 ‘2022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음주율은 2021년 10.7%에서 지난해 13.0%로 2.3%포인트 올랐다. 전문가들은 음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가볍지 않지만, 음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관대하다는 점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미국 등 선진국은 청소년에게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 술 광고에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진솔한 이야기를 술과 함께 나누는 낡은 콘셉트도 이제는 사라질 때”라며 “술이 담배처럼 해롭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야 하고, 해롭기 때문에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상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렸을 때 술에 노출되고 긍정적인 기억이 있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 중독 등 문제가 생기는 건 명확한 사실”이라며 “한국에서는 이런 논의조차 없기 때문에 인기 연예인이 술 광고를 하는 등 미디어 음주 장면이 바뀌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음주 폐해 예방 사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정부 사업이 모니터링에서만 그치고 있기 때문에 비정부기구(NGO)나 시민단체가 사업에 참여한다면 고발이 이어지고 관련자 책임성을 묻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여론을 환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https://news.nate.com/view/20230503n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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