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이만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야. 보여줄게’ 하는 마음으로 집필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웃음)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작품 아닌가.
= 그렇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부지런히 글을 쓰지 않으면 계약을 다 털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을 써야 할까. 사실 TV드라마를 하면서 시청률을 받아 보는 일이 그간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OTT에서 작품을 하게 된 거다. 칼을 갈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나는 욕심껏 무언가를 잘해내서 계속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던 작가다. 한번 잘하면 그다음 것을 더 잘해내야 하는 상황에 많이 지쳐 있었다. 어차피 이제 망한 것 같은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욕심 없이 써보고 싶었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플랫폼이라 오히려 부담을 버릴 수 있었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가려고 의식하다 보면 오히려 대본이 밋밋해진다. 〈더 글로리>는 사회적 이슈도 있었고 여러모로 운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게 봐준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가 매번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다. 재미와 의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단연 드라마는 재미가 먼저다. 우리가 드라마 얘기를 할 때 “그 드라마 재미있지 않냐?”고 하지 “그 드라마 정말 의미 있지 않냐?”고는 안 하지 않나. 후배들에게도 “드라마는 문학이 아니라 수학이다. 섬세하게 계산해서 써야 한다”고 늘 얘기한다.
- 전세계에 동시 공개되고 몰아보기가 가능한 OTT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TV드라마 대본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었나.
= 없었다. 처음에는 넷플릭스에서 19금으로 찍을 수 있으니 더 높은 수위에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나눴는데 어쨌든 한국 시청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넷플릭스여도 한국 시청자가 가장 많이 봐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다시 작업했다. 다만 몰아보기가 가능하다 보니 모험적인 캐스팅을 할 수 있었다. 원래 각인되어 있지 않은 배우라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연배우들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었다. 하도영 역의 정성일씨가 그중 하나다. 그리고 직접 경험해보니 나와 넷플릭스가 잘 맞는다. 주 2회씩 방송되던 드라마는 짧게는 두달, 길게는 세달 동안 매주 평가를 받으며 작가가 소환되어야 한다. 20년 동안 그런 부담을 짊어지다 보니 많이 지쳤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한번에 비판이든 찬양이든 관심이 집중됐다가 다른 신작이 공개되면 소강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힐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시청률과 매주 평가 받는게 부담스럽고 금방 잊혀지는게 좋대 제작비,ppl이 문제가 아님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4078
ㄴ23년12월인터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