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오너와 친해, 좋은 투자기회” 속인 사기범 징역
| 4년…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제치고 화장품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오른 에이피알은 2014년 이주광 창업자와 김병훈 현 대표가 공동창업했다. 이주광 창업자는 2019년 회사를 떠나 최근에는 반려동물 돌봄 스타트업 ‘비엠스마일’에 투자하며 새로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준수 씨는 아이돌그룹 동방신기 전 멤버이자 그룹 ‘JYJ’ 출신이다. 현재 뮤지컬 배우이자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매니지먼트 회사 ‘팜트리아일랜드’를 설립해 대표직을 맡고 있다.
#“25억 투자하면 34억 돌려줄게”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4형사부(재판장 이정희)는 지난 8월 2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위조사문서행사,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4년,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준수 씨의 비서 B 씨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이주광 창업자를 포함해 총 4명. 투자 사기 피해 금액은 94억 원에 달한다. 다만 김준수 씨의 경우 B 씨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투자금을 모두 돌려받아 판결문에 피해자로 명시되진 않았다.
징역 4년을 선고받은 A 씨는 2019년 5월 김준수 씨 소유의 서울 송파구 롯데시그니엘 레지던스를 임차하는 과정에서 김 씨의 비서인 B 씨를 만났다. 이후 B 씨의 알선으로 2021년 3월엔 김준수 씨를, 같은 해 5월엔 이주광 창업자를 소개 받았다. A 씨는 자신을 영국의 유명 출판사 아시아태평양 총괄이자 고가의 아파트를 차명으로 소유한 재력가이자 사업가로 속였다.
2021년 3월 A 씨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의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며 “저렴한 가격으로 매수해 수익을 얻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김준수 씨는 A 씨에게 24억 9660만 원을 투자하고 3개월 뒤인 2021년 6월까지 이자 9억 원을 포함해 총 34억 원을 돌려받기로 했다.
2021년 8월 27일엔 서울 강남구의 한 커피숍에서 이주광 창업자를 만나 “투자금이 일시적으로 묶여 있어서 돈이 필요한데 20억 원을 빌려주면 한 달 후 원금과 이자를 합쳐 변제하겠다”고 속여 20억 원을 교부받았다.
또, 같은 해 11월 이주광 창업자에게 위조된 사문서를 보여주면서 “H 그룹 오너 일가의 정 회장님과 친분이 있어 좋은 투자 기회를 얻었다”며 “그 사업의 지분에 투자하면 수익금을 주겠다”고 속여 총 64억 4000만 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A 씨는 실제로 스톡옵션 투자를 하거나 부동산 개발 투자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로 인한 수익금도 없었다. 그는 새로운 투자자들로부터 차용금이나 투자금을 받아 종전 투자자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이른바 폰지사기 형식으로 수익금을 지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준수 씨와 이주광 창업자에게 투자 원금과 이자를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
이외에도 A 씨의 지인 등 2명이 각각 5억 6000만 원, 1명이 3937만 원의 사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A 씨가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자신의 사업능력과 재력에 관해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약 96억 원의 거액을 편취하고 위조한 사문서를 행사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경제적 피해가 막대함에도 그 피해가 상당 부분 회복되지 않은 점 △A 씨가 피해자들에게 용서받지 못한 점 △피해자들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유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선고 형량은 비교적 높지 않았다. A 씨가 이미 또 다른 법원에서 사기죄 등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된 바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A 씨에 대해 “범행의 경위와 내용 및 수법, 피해금액에 비추어 그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도 “각 죄는 판결이 확정된 기재 범죄와 경합범 관계에 있어 형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김준수는 비서 도움으로 투자금 모두 회수
이와 달리 A 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준수 씨의 비서 B 씨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앞서 검찰은 B 씨가 이주광 등 투자자들과 A 씨의 만남을 주선하고 이 과정에서 H 그룹 오너 일가를 알지 못하면서도 ‘나도 정 아무개 회장을 직접 만나서 믿고 개발사업에 투자했다’는 취지로 피해자들을 기망했다며 B 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B 씨는 A 씨와 김준수 씨, 그리고 이주광 창업자와의 만남을 주선한 연결고리였다. 그는 김 씨의 비서로 일하며 김 씨의 롯데시그니엘 임차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A 씨를 알게 됐다.
B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김준수 씨에 대한 변제였다. B 씨는 약속한 2021년 6월이 지나도 돈이 들어오지 않자 김 씨로부터 변제압박을 받게 됐다. 이에 B 씨는 A 씨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김준수에게 세금 문제가 생긴다”거나 “김준수의 돈을 일부라도 줄 수 있는지” 등 변제 가능성을 재차 물었다.
그래도 돈이 지급되지 않자 그는 2021년 8월과 11월 A 씨에게 이주광 창업자와 또 다른 투자자들에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주선했다. 또 A 씨를 대신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 A 씨가 김준수 씨에게 투자금을 갚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실제로 A 씨는 이주광 창업자에게 빌린 20억 원의 일부를 김 씨와 B 씨에게 지급했다. 이에 따라 김준수 씨는 2021년 9월 투자원금을 모두 회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B 씨는 2021년 11월 자신에게 A 씨와 H 그룹 오너 일가의 관계를 물어본 피해자에게 ‘나도 정 회장을 만나 커피를 마셨고 믿고 투자했다’는 취지로 직접 회장을 만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B 씨는 오너 일가를 전혀 알지 못하고 만난 사실도 없었다”며 “B 씨가 피해자를 속여 A 씨에게 64억 4000만 원을 투자하게 했다”고 봤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주광 창업자는 A 씨에게 투자를 하기 전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투자에 관한 사항을 확인했다. 다만 B 씨가 오너 일가에 대해 언급한 시점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즉, B 씨의 오너 일가 언급과 이주광 창업자의 투자 결정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B 씨가 A 씨에게 투자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는 사실, 부동산 개발 투자가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음에도 A 씨로 하여금 재물을 취득하게 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상당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론 B 씨에게 피해자들의 돈을 편취할 의도나 A 씨로 하여금 돈을 취득하게 할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B 씨 역시 A 씨에게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금액이 적지 않다는 점도 무죄 선고의 근거가 됐다.
피해자의 배상명령신청은 각하됐다. 이주광 창업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해금액 64억 4000만 원을 지급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배상신청인이 수사기관에서 ‘64억 4000만 원 중 약 8억~9억 원을 회수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에 비추어 배상책임 범위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 배상명령을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이주광 창업자와 김준수 씨 소속사 측에 11월 9일부터 사실 확인과 1심 판결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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