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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23


할머니의 작은할아버지 (1886~1976)

할머니 어머니의 외삼촌,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복남동생으로 그당시 남색(게이)을 즐겨 집안에서 제명당했다고 함. 이후 일제강점기때 일본 고위직의 남첩이 되서 당시 악질친일파로 이름을 날림.

결혼은 안했지만 첩이 여럿이였다는데 자식을 한명도 얻지 못했음. 경기도 안성시 일대에 상당한 토지재산을 축적했고 아이러니하게 해방, 6.25때에도 숙청당하지 않고 잘드시고 잘사셨다고 함.

노년에 치매가 왔는데 자식이 없으니 조카손자들이 재산을 가지고 거하게 다퉜고 그 와중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니 푸대접 아닌 푸대접을 받으며 서러운 말년을 보내다가 나이 아흔에 세상을 떠남.



할머니의 고모할머니 (1888~1984)

할머니 어머니의 고모,구한말 대한제국 황실의 궁녀로 순종황제의 최측근이였으나 일본에 붙어서 황제의 미움을 샀고 순종황제 3년상이 끝나자마자 순종황후 윤씨에 의해 궁궐에서 강제로 쫒겨나셨다고 했음.

이후 축적한 재산을 가지고 경기도 여주시로 낙향해서 주막집을 운영했는데 장사가 잘된 덕분에 1930년대에 99칸 기와집을 여주시내에 짓고 호화롭게 사셨다고 함. 6.25때 인민군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위기를 넘긴 이후에도 잘사셨다고 들었음.

80대 후반에 후계자같은 조카손녀에게 식당을 물려주고 남은 인생 조용히 요양하며 사시다가 96세 되시던 해에 주무시던 중 노환으로 작고하셨음.



할머니의 작은할아버지 (1890~1974)

할머니 아버지의 삼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복남동생, 부인이랑 자녀없이 이른 나이에 사별하게 되었고 재혼하지 않고 돌아가실때까지 혼자 사셨음.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어부로 사시며 고기장사로 먹고 사셨다고 함.

슬하에 자녀가 없었지만 매사에 늘 성실하게 사셨기에 배도 여러척 가지고 있었고 1960년대 자택이 기와집에 집에 전축, TV가 있을정도로 지역유지급 부자였음.

이분도 자녀가 없어서 노년에 돌아가시고 조카, 조카손자들끼리 유산을 두고 서로 심하게 다퉜다고 함.



할머니의 이모할머니 (1892~1981)

할머니 아버지의 이모, 할머니의 할머니의 이복여동생으로 본처 소생이 아니였기에 집안에서 잘나가던 부자의 첩으로 일찌감치 결혼시킴. 하지만 남편이 친일파한테 찍혀서 숙청당한 후 이분은 그 친일파의 소실로 다시 재혼했다고 함. 그러나 자식이 없었음.

이후 충남 논산시에 많은 토지재산을 받게 되었는데 몰래 어려운 이웃, 독립운동가들을 돕고 살아서 해방 후 남편이랑 본처 자식들이 조선사람들한테 맞아 죽었을때 혼자 살아남았다고 했음. 

그뒤에도 논산시에 사시면서 농사를 짓고 토지를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돈을 벌면서 여생을 보내셨다고 함. 돌아가시면서 재산을 본인이 다니던 절에 기부했고 화장 후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룸.



할아버지의 외작은할아버지 (1897~1981)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이복남동생, 1910년대 고등학교를 졸업 후 일본에 유학을 갔는데 악질친일파가 되서 집안에서도 제명당했다고 함. 일본 순사, 친일권력자들한테 붙어서 남의 재산을 강탈해 그 재산을 다시 팔아 돈을 챙겼다고 들었음.

충북 충주시에서 사셨는데 해방 후 원한을 크게 사서 한번 그 지역 주민들한테 크게 두들겨맞았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실때까지 고생하심. 천벌인지 결혼을 3번 했지만 3번 다 사별했고 끝내 자식을 얻지 못함.

말년에 얼굴이 붓고 살이 썩는 병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음. 친척들도 젊었을때 나라 팔아먹더니 천벌 받았다고 흉을 봤고 많은 재산들도 저 재산 상속받으면 천벌받는다고 해서 국가에 다 상속권자인 친척들이 기부해버렸다고 들었음. 



할아버지의 이모할머니 (1898 ~ 1983)

할아버지 친할머니의 이복여동생, 제주도에서 유명한 무당으로 일명 만신으로 불릴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무당이였다고 함. 당시 제주도는 4.3사태, 6.25 등으로 이념갈등 때문에 육지사람들도 방문하는걸 꺼려했는데 유력정치인, 경제인들이 이분한테 점을 보기 위해 자주 찾아왔다고 함.

80대 중반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가 죽을 시기를 알고 그날 한복까지 차려입고 신당에서 절을 한뒤 앉아서 가부좌 자세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음.

강신무였기에 아이를 낳으면 신기가 대물림 될까봐 일부러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돌아가실때까지 독신으로 살다가 작고하심.



할아버지의 작은할아버지 (1899~1987)

친할아버지의 작은할아버지(고조할아버지의 이복동생)로 일제강점기 때 베이징, 상하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기에 가정을 제때 꾸리지 못한걸로 암.

해방 이후 전남 장흥군에 정착해서 축산업(소)을 하면서 사셨음. 당시 소를 수백마리 키울정도로 축산업이 잘됐고 장흥군 읍내에 꽤 큰 규모의 한옥집에서 살 정도로 지역 내 부자로 유명했다고 함.

돌아가시기전에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노년에 목사랑 갈등이 커져서 재산을 별세 전 친척들한테 다 나눠주고 교회에는 아예 재산을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들었음. 




할아버지의 고모할머니 (1900~1988)

친할아버지 어머니의 고모,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이복여동생, 17살에 결혼했지만 돌림병으로 일찍 사별하고 경남 통영시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과부로 돌아가실때까지 개가하지 않고 혼자 사셨다고 함.

통영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해서 근처 수산시장에 파는 시장 노점상을 하시면서 80대까지 장사를 했다고 들었음. 노년에는 오랜 흡연 때문에 폐도 좋지 않았고 결핵을 앓았지만 형제, 조카들한테 신세지기 싫어서 끝까지 혼자 사셨음.

돌아가시기전 친정 형제들 집을 순서대로 방문한뒤 본인이 70년 넘께 살던 자택으로 돌아오신 뒤 본인 남편 기일날 주무시다가 돌아가시게 됨. 시신은 시댁 조카들이 방문해서 발견했고 장례 치른 뒤 남편이랑 합장을 함.



외할머니의 이모할머니 (1905~2003)

외할머니 친할머니의 이복언니, 결혼을 군산남자랑 해서 군산할머니라고 집안에서 불림. 14살에 결혼했는데 19살때 남편이 죽어서 자녀도 없이 평생 혼자 사셨음. 그뒤 산파일을 배워서 70대까지 산파로 남의 집 산모들 출산할때 도와주고 돈을 받으며 먹고 사셨다고 함.

자식이 없어서 형제자매의 자녀, 손자녀들을 대신 키워주기도 했고 심지어 몇년씩 타지에 정착해서 친척 자식들을 대신 키워주기도 했음. 

노년에도 군산에서 사셨는데 옛날 사람이다 보니 결혼한 지역에서 평생 살아야 된다라는 생각 때문에 고향으로 올라오라는 친척들의 권유에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함. 98세에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장례 때 대신 키운 조카, 그 자녀들이 상주를 섰음. 



외할머니의 작은할아버지 (1912~2007)

외할머니 친할아버지의 이복남동생,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게 되어 결혼을 못했다고 들었음. 한의학을 배운 후 한의사로 활동했는데 서울 강북지역에서 명의로 소문 난 한의사였다고 함.

6.25때 인민군에 의해 부르주아로 몰려 숙청을 당할뻔하기도 했지만 환자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고 80대 후반까지 서울 강북지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며 어려운 환자들도 돕고 사셨음.

은퇴한 이후에도 서울에서 노년을 보내시다가 95세에 노환으로 주무시던 중 편안하게 작고하심.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활동하다 돌아가셔서 다들 호상이라고 했다고 함.




할아버지의 이모 (1914~1997)

할아버지 어머니의 이복언니, 17살때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일본 고위장교의 첩이 되어 조선으로 귀국했고 충남 공주 지역에 토지를 하사받아 그 지역에 정착해서 부농으로 사셨다고 들었음.

해방 이전에 남편이던 고위장교가 죽었고 친일행위자임에도 텃세를 부리거나 하지 않아서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음. 남편이 준 재산 덕분에 평생 경제활동 해본적도 없이 사셨음.

10대 중반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흡연을 해서 호흡기가 좋지 않았고 돌아가시기 3년전부터 폐질환을 앓다가 돌아가심. 돌아가시기전에 본인의 재산이 부정 축재한 재산이라 사회에 다 환원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함.




할아버지의 외삼촌 (1929~2010)

할아버지 어머니의 이복남동생.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가서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중 원폭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실때까지 고생하셨음. 결혼을 했지만 6.25때 배우자가 폭격으로 사망하고 그뒤 재혼없이 혼자 사셨다고 함.

전남 순천시에서 쌀농사를 짓고 평범한 농부로 사셨다고 하며 친척들과 그렇게 많은 교류도 없이 그저 적당한 경제력, 형편으로 혼자 사셨다고 들었음.

80대 초반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이분도 10대 어린 나이부터 돌아가실때까지 계속 흡연을 했기 때문에 돌아가시기전에 폐가 좋지 않아 많이 고생했음.




외할아버지의 고모할머니 (1915~2003)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의 이복여동생, 결혼을 2번이나 했지만 둘 다 사별했고 자녀를 한명도 낳지 못하여 반강제로 시집에서도 쫒겨나게 됨. 이후 대구광역시에 정착해서 자수공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포목상까지 경영할정도로 사업이 잘됐다고 함.

특히 대구의 섬유산업이 피크를 찍은 1960~70년대에 엄청난 부를 일궜다고 하며 서울, 부산에도 부동산 건물을 여러채 보유한 부동산부자가 되셨다고 했음.

재산이 많았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였고 조카, 형제들도 전혀 믿지 않아 친척들간에 교류는 많지 않은 인생을 사셨음. 80대 후반에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돌아가실때 별다른 유언이 없어 별세 후 남은 형제자매들이 상속재산을 분할해서 나눠가짐.



외할아버지의 작은할아버지 (1918~2002)

외할아버지 친할머니의 이복남동생,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귀국 중 사고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결혼을 못하고 독신주의자로 혼자 사셨음.

대전광역시에서 목재소를 경영했는데 목수로 나중에 작은 건설회사까지 경영할정도로 사업이 잘되셨다고 함. 군부정권때 줄을 잘 선 덕분에 그 당시 아파트 건설산업에도 사업량을 할당받았다고 들었음.

IMF가 오기 이전에 사업을 정리한 덕분에 노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대전 지역 내에서 지역 유지로 영향력도 누리면서 노년을 보내시다가 뇌졸증에 걸리신 뒤 점점 쇠약해지시더니 84세에 주무시던 중 돌아가셨음.




외할머니의 이모할머니 (1919 ~ 2008)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이복여동생, 광주광역시 지역에서 옷가게를 수십년 넘께 운영했다고 들었음. 자발적인 의사로 결혼을 안했는데 실제론 일제강점기때 친일인사의 첩이였다는 말이 있긴 있었음. 그래서 이복형제들이랑 사이도 좋지 않았다고 함.

노년에도 늘 쪽진머리에 한복을 입고 다녔는데 2층짜리 저택에 가정부, 운전기사까지 집에 두고 살정도로 부유했고 본인 소유 부동산건물들을 관리하는게 주 일과였다고 들었음.

80대 후반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뒤 재산의 절반만 친척들에게 상속하고 나머지 절반은 국가에 기부하고 돌아가셨음. 근데 그 기부한 토지가 지금 세종특별시라 조카들이 받은 재산에 비해 훨씬 값어치가 커졌다고 함.



외할머니의 작은할아버지 (1926 ~ 2012)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이복남동생, 젊었을때 강제징용으로 2차대전에 동원되셨다가 상이군인이 되는 바람에 돌아가실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음.

강원도 강릉시에서 양식장을 경영했는데 양식장이 엄청 잘됐고 같은 고교 동창들중 훗날 5공화국때 최고 권력자가 된 동창들도 있어서 양식사업이 매우 잘됐다고 함.

참고로 동성애자였고 친구였던 5공 최고 권력자도 결혼해서 자녀가 있었음에도 가끔 이분을 만나서 만남을 즐기기도 했다고 들었음. 당시 이웃 아주머니가 이걸 소문냈다가 중정에 끌려가서 반맞아 죽을뻔했다고 함.

80대 후반에 심장기능 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하셔서 한달정도 누워계시다가 노환으로 자연사하셨음.



친할아버지의 삼촌 (1930~2024)

증조할아버지의 이복남동생. 6.25 참전용사로 지뢰를 잘못 밟아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장애를 입게 되심. 경기도 포천시에서 돼지농사(양돈업)을 하면서 결혼하지 않은 독신으로 삼.

반공의식이 투철해서 참전용사 단체에서도 높은 자리까지 갔고 같은 부대 동료들중 독재정권때 장군까지 간 사람들도 있어서 그 사람들 빽으로 내부정보로 부동산투자까지 해가지고 재산도 큰 규모로 축적함.

하지만 노년에 쇠약해진 후 조카들, 조카손자들한테 뒷통수 맞고 재산이 꽤 큰 규모로 강탈당해서 소송까지 갈정도로 시끄러운 말년을 보냈음. 노년에 쇠약해지셔서 요양원에서 요양 중 주무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심.



친할아버지의 이모 (1930~)

증조할머니의 이복여동생, 6.25때 간호장교로 참전했고 중령으로 예편함. 경기도 이천시에서 사셨고 군인의 특성상 결혼하기에도 좋은 환경도 아니였기 때문에 혼기를 놓치게 되어 그대로 90대까지 미혼으로 남았다고 들었음.

군인연금이 다달이 200만원 넘께 나와서 그 돈이랑 노인일자리일을 하면서 평범한 할머니로 이천에서 살고 있음. 가끔 근처 농장의 재배알바도 다니는걸로 암.

이분도 6.25 참전용사라 정치적 성향이 극 right인 분이고 너무 보수적이다 못해 조선시대에서 타임워프한 성향탓에 젊은 친척들이랑 사이가 좋지는 않음.



할머니의 이모 (1930~)

친할머니의 이모, 전남 나주시의 부농집안 외아들에게 시집갔는데 6.25때 남편이 징병되서 전사했고 시아버지는 빨치산으로 몰려 학살, 시어머니는 뒷산에 목을 매고 가셔버림.

그뒤 혼자 남겨지셨는데 재혼하지 않고 나주시 시내에서 뛰어난 요리실력으로 밥집을 운영하며 현재까지 혼자 살고 계심. 식당은 80대 초반까지 운영하다가 폐업하신걸로 알고 있음.

현재 나이가 90대 중반인데 아직도 텃밭을 가꾸고 가끔 술도 드실정도로 건강하게 살고 계신걸로 암. 



외할아버지의 고모 (1934~)

외할아버지의 이복고모, 혼외자였기에 집안에서도 정식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여 회의감 때문에 스스로 결혼하지 않고 그 시대에 비혼을 선택하셨음. 미용업을 배워서 미용사 일을 하며 경북 구미시에 정착하셔서 현재까지 살고 있음.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는 했지만 두번 다 유부남한테 속아서 크게 고생하신탓에 남자한테 질려서 스스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아예 다짐하고 살았다고 함.

70대에 미용업에서 은퇴한 후 평범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고 가끔 근처 대구에 놀러도 다니시면서 살고 있음. 90대 초반임에도 꽤 정정하셔서 친척들 만나러 장거리도 가끔 이동하심.




외할아버지의 이모 (1936~)

외할아버지의 이복이모, 젊은 시절부터 유흥업에 종사했고 경주시에서 술집을 운영했다고 들었음. 지금은 워낙 고령이라 아예 물장사를 안하고 은퇴해서 혼자 살고 있는걸로 암.

결혼만 안했지 대구지역 준재벌 회장의 사실혼관계 배우자로 그 회장님 노년에 병간호도 도맡아 할정도로 관계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함. 회장님 사후 그 집안과 연결고리도 아예 끊기게 됨.

현재에도 경주시에서 살고 있고 평범한 전원주택에서 그냥 평범한 할머니로 살고 있음. 노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친척.지인들과 만남을 줄이고 혼자 지내고 있음.



외할머니의 삼촌 (1937~2024)

외할머니 아버지의 이복남동생, 결혼을 했지만 일찍 사별해서 재혼하지 않은 분으로 충남 당진시 정미소에서 일하다가 화력발전소에 입사하셔서 정년퇴직 한걸로 암.

은퇴 후에도 당진시에서 쭉 돌아가실때까지 사셨는데 자녀도 없고 친척들이랑도 먼 지역에서 사시다가 치매가 발병하면서 부양문제로 친척들간 갈등이 생기기도 했음.

순한 치매라 그래도 자택에 요양보호사가 매일 방문하는 형식으로 지내셨는데 결국 돌아가시기전에 근처 지역에 있는 고급 요양시설에 입소해서 1년 정도 지내시다가 노환으로 돌아가신걸로 암.



이모증조할머니 (1938~)

외할머니의 이복이모,  경기도 평택시에서 살고 계시는데 젊은 시절 은행원이였고 당시 드물게 50대까지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미혼 여성 고위직(골드미스)으로 사회적인 대우를 누리며 사셨다고 함.

본인 의사로 결혼을 안하신분으로 은행원 시절 모은 재산을 잘 투자해서 백화점에서 자주 쇼핑해도 생계에 무리가 없을정도로 여유롭게 살고 있는걸로 알고 있음.

본인 말에 따르면 아예 연애를 해본적이 없었고 젊었을때부터 남자보다 돈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들은적이 있음.



외할머니의 고모 (1938~)

외할머니의 이복고모, 전북 익산시에서 살고 있고 행정직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던걸로 암. 당시 본인이 혼외딸이였기에 결혼에 대한 거부감, 가부장제가 심했던 당시 남자들의 의식이랑 맞지 않아 비혼으로 나이가 드셨다고 함.

본인이 결혼을 안한걸 후회한적은 없다고 했고 공무원연금도 나오고 딱히 돈이 많이 소비되는 취미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서 생계에 어려움 없이 본인 소유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심.

상당히 지적인 분으로 취미생활이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기, 시사 뉴스 시청하기 이런쪽으로 알고 있음. 더 나이가 들어서 혼자 살기 힘들어지면 요양시설에 입소할 계획도 가지고 있음.




외할머니의 이복외삼촌 (1937~2023)

외할머니 어머니의 이복남동생, 어릴때 지뢰사고로 장애인이 되서 결혼을 안하고 돌아가실때까지 독신으로 살다가 돌아가셨음. 강원도 춘천시에서 공업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걸로 암.

퇴임 후에도 연줄로 수도권 내 어디 중소기업 감사로 일하면서 70대까지 일을 했던걸로 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장애가 있는 홀몸 노인임에도 빈곤문제가 없었댔음.

돌아가시기 1년전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셨는데 돌아가시기전까지 큰 고통 없이 지내시다가 강원대병원에 입원한지 3주정도 지났을때 돌아가셨음. 




외큰할아버지 (1939~)

외할아버지의 이복형, 젊은 시절부터 용접공으로 일하시다가 경남 김해시 어디 기업 임원까지 올라가실정도로 사회적으로 성공하셨다고 함. 결혼을 하셨지만 배우자랑 암으로 사별 후 재혼하지 않고 현재까지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고 들었음.

몇년전에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뒤 노인요양시설에서 지내고 계시고 있는걸로 알고 있고 형제자매, 조카들이 계속 방문하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음.

젊었을때 술담배를 즐겼다는데 그 영향으로 뇌졸증이 온것으로 보임. 친척모임때마다 늘 취하면 주사가 있던걸로 기억함.



큰할아버지 (1939~2024)

할아버지의 이복형, 경북 경주시에서 사셨던 분으로 농업직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음. 증조할아버지 두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로 집안에서는 서장남 취급을 받음.

공부를 잘했지만 사정상 대학을 가지 못했고 대신 공무원쪽으로 진로를 바꾼걸로 암. 결혼을 했지만 일찍 사별해서 재혼을 하지 않았기에 자녀가 없었음.

노년에 결핵 때문에 꽤 오래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원인은 50년 넘께 피운 흡연이 1차적인 원인이였던것으로 보임. 



고모할머니 (1939~2025)

할아버지의 이복누나, 큰할아버지와 쌍둥이였던 분으로 경기도 파주시에서 살다가 돌아가셨음. 간호조무사로 50대 후반까지 일하다가 은퇴했던걸로 어른들한테 이야기를 들었음.

본인의 신분 컴플렉스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고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생모, 동복형제들을 부양하기도 했던걸로 암. 은퇴 후에는 연금, 소일을 하면서 노년을 보내심.

올해 11월에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기독교 신자셨는데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다가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음. 돌아가신뒤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뤘다고 함.



친할머니의 이복남동생 (1942~)

친할머니의 이복남동생, 강원도 원주시에서 살고 계시며사회복지쪽 공무원으로 정년 가까이 역임하고 은퇴한걸로 알고 있음. 결혼을 한번도 안한 미혼으로 듣기론 동성애 때문에 결혼을 안했다고 함.

공무원 시절에도 투자로 재산을 꽤 많이 모아서 재산이 nn억대 이상인데 형제자매들이랑 사이가 좋지 않아 거의 베푸는거 없이 마이웨이로 살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음.

주위에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모든 재산을 다 기부하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며 동복형제자매들도 많이 믿지 않는다고 함.



당고모할머니 (1944~)

친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살고 계심. 젊었을때 버스안내양으로 20년 넘께 일하다가 안내양 직업이 사라진 뒤 매표소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정년퇴임을 하셨음.

그뒤 남양주시 시골에서 농사짓고 조용히 살고 계신걸로 암. 이분도 혼외자 컴플렉스 때문에 아예 결혼을 안하고 혼자 생활하셨다고 하며 대신 애완동물을 꽤 많이 키우신다고 함.

글 쓰는 재능이 뛰어나서 지역사회 노인복지센터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을 한적도 있다고 하고 활발한 성향이 있어 자주 다른분들과 어울린다고 함.



당고모할아버지 (1944~2025)

친할아버지의 사촌남동생, 경기도 양주시에서 사시다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음. 젊었을때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며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했음.

자녀가 없었지만 친척들과 자주 교류하며 지냈고 안정적으로 살다가 돌아가실때에도 경제적인 어려움, 도움없이 본인이 다 대비해놓고 아프시다가 돌아가심.

특이한건 처가쪽 친척들과 더 자주 교류하셨다고 하며 돌아가실 당시에도 처가쪽 조카들한테 장례절차를 다 맡겼다고 함.



외당숙할아버지 (1944~)

외할머니의 사촌오빠, 경상남도 사천시에 살고 있고 회계쪽 공무원으로 고위직으로 일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하셨다고 함.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의 잦은 유산. 부부갈등으로 이혼했고 그뒤 재혼을 따로 하지 않았음. 

현재에도 사천시에서 살고 계시는데 사실혼관계 여자친구가 있지만 재산문제로 재혼을 하지 않았음. 현장직으로 일하면서 재산을 꽤 큰 규모로 모아놨다고 함.

자녀가 없어서 본인이 더 나이가 든 후 아팠을때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면서 나이 드시고 있다고 들었음.




외이모할머니 (1945~)

친할머니의 이복여동생,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살고 계시며 유치원 교사로 일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하신걸로 알고 있음. 태어나서 현재까지 한번도 결혼을 한적이 없는 미혼이심.

남의 자식은 잘 돌볼수 있지만 내 자식은 잘 못키울꺼 같아서 그냥 비혼으로 사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현재 나이 여든이 넘어서도 미혼으로 살고 있음.

가끔 지하철, KTX로 수도권에 놀러다니는 삶을 살고 있고 교사로 일하면서 재산도 혼자 넉넉하게 지낼정도로 모아두셔서 그럭저럭 잘 지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음.



사촌할아버지 (1946~)

친할머니의 사촌남동생, 경남 진주시에 살고 있고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법원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고 전쟁 참여 중 고엽제 후유증으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현재까지 혼자 살고 있음.

성격이 대단해서 오히려 동복 형제자매들이 결혼 안해서 다행이라고 말할정도로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어른들한테 이야기를 들었음.

80세 고령임에도 활발하게 살고 있고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모임 같은곳도 자주 방문한다고 함. 



당고모할머니 (1948~)

친할머니의 사촌여동생, 충북 청주시에 살고 있고 도서관 사서공무원 일하다가 정년퇴임을 하셨음. 한번도 결혼한적이 없는 비혼이였다고 함.

본인 의사로 아예 결혼을 안한분으로 알고 있고 곧 여든인데 혼자 생활하고 있음. 결혼 직전까지 간적이 있지만 남자가 중혼인걸 숨겨서 파혼을 한적이 있음.

현재 공무원 연금으로도 혼자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가끔 해외여행도 다니시면서 안정적으로 살고 계신다고 함.



외당고모할머니 (1952~)

외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으로 경기도 용인시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음. 아예 미혼으로 1970년대에 대학까지 진학해서 졸업 후 교사가 되었고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걸로 암.

정년퇴직 이후에도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걸로 알고 어린이집에서 이야기 보조교사일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들었음.

용인시 시골지역에 전원주택을 짓고 식물도 키우며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함. 교장으로 정년퇴임한터라 한달에 교원연금만 300만원 넘께 받는걸로 알고 있음.



외당고모할머니 (1952~)

외할아버지의 사촌여동생. 젊은 시절 여공으로 일하다가 세탁기술을 배워서 세탁사로 60대까지 세탁소를 경영했던것으로 알려짐. 아예 결혼을 한번도 한적이 없는걸로 암.

현재 세종시에서 살고 있고 세탁사에서는 아예 은퇴했지만 보육원. 지역 내 보호시설에서 세탁 관련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할수 있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계신걸로 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군복무 중 사망하면서 그뒤로 계속 미혼으로 살고 계신걸로 암.




외당숙할아버지 (1958~)

외할머니의 사촌남동생, 경기도 광주시에서 살고 있고 직업군인(대령)으로 예편했음. 배우자와 사이에 자녀없이 사별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독신으로 살고 있음.

대령으로 은퇴한터라 군인연금도 꽤 큰액수로 나와 생활에는 문제가 없는걸로 알고 있고 은퇴 후 중소 방산업체 임원으로 현재 일하고 있다고 들었음. 



외당고모할머니 (1961~)

외할머니의 사촌여동생.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살고 있고 지금까지 한번도 결혼을 해본적이 없는 미혼이심. 젊은 시절부터 보험회사 영업직으로 4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고 들었음.

젊었을때부터 금융권 남자들이 룸 다니고 유흥쪽을 즐기는걸 보고 본인은 더이상 남자를 못믿겠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미혼으로 살고 있음.

미혼으로 산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며 현재까지 현역 보험회사 영업직으로 활동중임.



당숙 (1963~)

아버지의 사촌형. 사범대를 졸업 후 임용을 보고 교사로 근무하시다가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하셨음. 경기도 용인시에서 살고 계시고 본인 의사로 결혼하지 않은 비혼주의자로 알고 있음.

결혼하지 않은 대신 학생들을 친자녀로 챙기면서 독신으로 사셨다고 하며 결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한번도 해본적이 아예 없다고 들었음.

정년퇴직 후 여행도 다니지만 근처 아동복지센터에서 봉사활동도 하시면서 지낸다고 함.



당숙 (1964~)

아버지의 사촌형. 대기업 사무직으로 입사해서 임원까지 달고 은퇴하셨음. 인천에서 살고 계신걸로 알고 있고 아예 결혼을 한번도 한적이 없는 미혼이심.

듣기론 일이 너무 바빠 연애조차 할 시간이 없어서 그대로 나이가 들었다고 함. 은퇴 후에야 인생에 여유를 되찾아서 해외여행을 비교적 자주 다닌다고 들었음.

본인 성격이 자기중심적이라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어도 좋은 아빠는 되지 못했을것이라고 생각하셔서 미혼으로 산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함.



당고모 (1966~)

아버지의 사촌누나. 공공기관 부장급으로 근무중임. 경기도 고양시에서 살고 있고 이분도 한번도 결혼을 해본적이 없는 미혼인걸로 암. 여자가 직장생활, 커리어를 위해 계속 근무하기 위해 결혼을 포기했다고 했음.

본인 성격이 매우 야망있는 성격이라 결혼을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한적이 없다고 말한적이 있음. 곧 정년을 앞두고 있는데 정년 후에는 자영업을 생각하고 계심.

본인 말로는 남자한테 맞춰 줄 성격도 안되고 남한테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함.




고모 (1968~)

현재 미국 LA의 빅테크기업에서 일하고 있음. 젊었을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근 40년째 미국에서 살고 계심. 결혼을 아예 안한 미혼으로 유학생 때 인종차별로 아예 미국남자들한테 정이 떨어졌다고 했음.

또 직장생활을 시작한뒤로는 일이 너무 바빠서 남자를 만날 시간이 없었고 결국 환갑 가까운 나이까지 솔로로 생활하게 되었다고 말함.

아예 미국 영주권도 가지고 계신분인지라 미국에서 돌아가실때까지 사실것으로 예상됨.



당숙 (1969~)

아빠의 사촌남동생, 미국 뉴욕주에서 살고 있고 기술대기업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걸로 암. 아시안계 직원들중 상당한 능력자로 연봉이 x million 단위인데 결혼을 안하고 비혼으로 연애만 하시면서 살고 있다고 들었음.

20대에 미국으로 유학가서 현지에 취업했고 영주권까지 취득했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 없이 계속 미국에서 생활할꺼라고 말함.

사실혼관계인 연인이 있지만 결혼, 2세를 낳을 생각은 아예 없다고 들었음.



외사촌삼촌 (1970~)

엄마의 사촌오빠, 전남 광양시에서 살고 있고 광양의 철강기업 현장직으로 근무중인걸로 암. 결혼을 아예 한적이 없는 비혼주의자로 혼자 생활하는게 좋아서 현재까지 미혼으로 살고 있다고 했음.

자기관리를 엄청 잘해서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고 유흥도 많이 즐김에도 아예 늙지를 않아서 친척들도 신기해한다고 들었음. 본인은 아예 결혼 생각 없이 지금처럼 살것이라고 말함.



당숙 (1974~)

아빠의 사촌남동생, 미국 워싱턴주 연방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음. 어릴때 유학을 가서 한국어를 많이 서툴게 한다고 함.

아예 결혼경험이 없는 미혼으로 여자친구가 있지만 동거만 하고 있고 결혼생각이 아예 없다고 들었음. 영주권도 취득한 상황이라 한국으로 다시 리턴할 생각도 없는것으로 확인됨.



외삼촌 (1975~)

경북 경산시에서 살고 있고 대학교 교직원이심. 비혼은 아니지만 혼기를 놓쳐서 현재까지 혼자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음. 꾸미는걸 좋아하고 세심한 성향이 있는분이라 결혼이랑 어울리지 않는거 같기도 함.

혼자 살고 계신데 자기관리도 철저하고 재산 투자도 잘하셔서 친척들이 딱히 걱정을 안해도 혼자 잘 생활하는 분이심. 지금처럼 사시다가 은퇴하고 나면 낙향해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함.



외당숙 (1976~)

엄마의 사촌남동생. 경북 포항시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며 살고 계심. 결혼할 시기를 놓쳐서 지금까지 혼자 생활하고 계신다고 들었음. 그런데 지금은 결혼생각이 아예 없다고 함.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살고 있고 여자친구가 있다는데 둘 다 굳이 결혼에 집착할 나이가 아니라 지금처럼 연애만 하면서 살꺼라고 들었음.



외당이모 (1982~)

엄마의 사촌여동생, 경기도 김포시에서 살고 있고 학원강사라고 들었음. 비혼주의자로 혼자 생활하는게 좋아서 40대에도 미혼으로 생활하고 계신다고 함. 

가정사 문제(부모님 중 한분이 일찍 별세하고 재혼)도 원인인지라 앞으로도 계속 혼자 생활할꺼라고 말함.



사촌오빠 (1985~)

큰고모네 큰아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의료기기회사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현지 취업 후 현재까지 미국에서 10년 넘께 생활중. 영주권 취득까지 마친터라 계속 미국에서 생활할꺼라고 했음.


사촌오빠 (1987~)

큰아빠네 둘째아들, 미국 시카고에 있는 화학회사 연구직. 국내 대학 화공과에서 박사까지 하고 미국에 취업한 케이스로 미국남자랑 동거중. 큰아빠랑 사이가 그닥이라 아예 고국을 떠날 생각으로 미국취업까지 했고 한국에 다시 올생각이 없음.


사촌오빠 (1987~)

둘째고모네 큰아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큰병원 간호사, 한국에서 간호사 자격증 따고 미국에 취업했는데 일이 바빠서 결혼생각이 없고 동양인 인종차별로 아예 비혼주의자로 성향이 바뀌었다고 들었음.


사촌오빠 (1989~)

둘째큰아빠네 둘째아들.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무역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는 중, 조기 유학을 가서 미국에 취업한 분으로 군대도 편법으로 안감. 한국을 많이 싫어하고 여자친구도 있는데 성격도 이상해서 큰아빠네랑 사이도 그닥이라고 들었음.


사촌언니 (1990~)

셋째고모네 막내딸,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카페 점장으로 일한다고 들었음. 본인 이름으로 된 카페를 창업하는게 꿈이라 일부러 커피업계쪽 회사에 취업을 선택했다고 들었음. 비혼주의자로 자기는 사업가가 꿈이라 결혼 안할꺼라고 들었음.



사촌언니 (1996~)

셋째큰아빠네 딸, 미국 댈러스에 있는 대기업에 사무직으로 취업해서 근무중. 미국에서 영주권까지 취득 후 아예 눌러앉을꺼라는데 사귀는 남자친구는 동거만 하자는 입장이라고 함. 이분도 비혼주의자



사촌오빠 (1997~)

넷째고모네 아들, 미국 리버사이드에서 살고 있고 화학회사 연구원으로 취업해서 일하고 있음. 이분도 한국으로 리턴할 생각 없이 계속 미국인으로 살겠다는 입장인것으로 확인됨. 



외사촌언니 (1998~)

큰외삼촌네 딸, 전북 전주시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공기업이라 안정적인 연봉을 받으며 생활중. 결혼생각이 아예 없는걸로 암. 자긴 누굴 책임질 성향이 아니라고 했음.



언니 (1999~)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복지관에 근무중인 사회복지사, 민원인들한테 너무 질려서 비혼이 편하다고 비혼주의자가 되버림. 남자친구 없고 혼자 생활하는게 편해서 연애도 거부하는 성향임.



외사촌언니 (1999~)

큰이모네 딸, 직업 경찰로 천안에서 살고 있음. 비혼주의자로 혼자 생활하는게 편함. 경찰일을 하면서 남자한테 아예 질려버렸다고 들었음.


외사촌오빠 (1999~)

둘째외삼촌네 아들, 경기도 성남에서 살고 있고 언론사에 재직 중. 일도 많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 어렵게 취업했는데 삶의 질이 최악이라 그냥 비혼으로 살겠다고 함.


외사촌언니 (2000~)

둘째이모네 딸, 경기도 화성시에서 식당 매니저로 일하고 있음. 여기도 사업하는게 꿈이라 남자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것보다 자기 꿈이 중요해서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음.



외사촌오빠 (2001~)

셋째외삼촌네 아들, 경남 창원시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음. 몸이 안좋아서 군면제 판정 받을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비혼으로 살 계획.



외사촌오빠 (2001~)

셋째이모네 아들, 울산에 있는 병원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음. 대학 졸업학년에 칼취업이 운좋게 되었으나 본인은 결혼생각 없이 혼자 생활하는게 편해서 비혼으로 살겠다고 함.



외사촌언니 (2002~)

넷째외삼촌네 딸, 부산에 있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음. 비혼주의자. 결혼 절대 안한다고 함.



대략 이정도임. 젊은 친척들은 아예 결혼 안하겠다는 비혼들이 진짜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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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인1
와 길다 이걸 어떻게 다 기억해?
난 할머니할아버지 이름도 잘모르고 몇년생인지도 모르고 형제관계도 모르는데 소설같다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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