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어도어가 뉴진스 멤버 다니엘의 전속계약을 해지했다. 또 일련의 분쟁 상황을 초래하고 뉴진스 멤버 이탈과 복귀 지연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면서 다니엘 측과 민희진 전 대표에게 400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뉴진스 멤버들이 하이브가 분쟁 상황을 일으켰다고 지적하며 전속계약 해지를 주장할 때 어도어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모순적이다.
뉴진스 멤버들이 주장한 전속계약 해지 요건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축출은 매니지먼트 의무 위반이라는 점, 뉴진스 멤버 연습생 시절 영상 등 유출에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점, 하이브 직원의 폄훼 발언과 콘텐츠 모방 등 뉴진스의 브랜드 고유성 훼손, 다른 계열사 직원의 괴롭힘 등이다.
개별 사항을 좀 더 살피면 뉴진스 멤버들은 하이브의 민희진 대표 해임 시도를 부당하며 매니지먼트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 사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쏘스뮤직 연습생 시절 영상이 무단 유출돼 초상과 음성권이 침해된 것은 계약 위반이자 인권침해 사유라고 했다. 하이브 직원의 폄훼 발언은 하이브 PR 담당자가 일본과 여타 지역의 성과(앨범 102만 장)에 대해서 “생각보다 못하다. 일본에서는 잘 안됐다”라고 발언한 내용이다. 아울러 하이브 내부 보고서에 나온 ‘뉴 버리고 새판짜기’라는 표현도 지적했다. 콘텐츠 모방 등 뉴진스 브랜드 고유성 훼손은 아일릿을 전체적으로 뉴진스와 비슷하게 구현했고 심지어 뉴진스를 아일릿으로 대체하려고까지 했다는 주장이다. 다른 계열 회사 직원의 괴롭힘은 빌리프랩 소속 아일릿의 매니저가 뉴진스를 두고 “무시하고 지나가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1심 재판부는 뉴진스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전속계약 당시 민희진 전 대표가 뉴진스 매니지먼트 업무를 맡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뉴진스가 민 전 대표에게 높은 신뢰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민 전 대표의 지위가 전속계약상 중대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민 전 대표에 대한 신뢰 관계를 기초로 뉴진스가 어도어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뉴진스 멤버들이 왜 민희진 대표에게 높은 신뢰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견 청취와 분석은 빠졌다. 특히 K팝 레이블의 특수성이 감안되지 않았다. 또 민희진 대표는 일반적인 프로듀서와는 가치가 다르다. 더구나 레이블의 수장이 전사적으로 그룹을 뒷받침하는 것과 일개 사내이사가 프로듀싱하는 것은 차원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심 재판부는 “민 전 대표는 어도어를 하이브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소송전과 여론전을 준비했고,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뉴진스 부모들을 내세워 하이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면서 어도어를 인수할 투자자를 알아봤다”며 “하이브가 민 전 대표를 부당하게 감사한 후 해임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판단은 하이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또 경영적 판단을 아티스트가 수용해야 한다고 본 것은 오히려 양자가 대등한 계약 관계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1심 재판부는 “뉴 버리고 새로 판 짜면 될 일이라는 레포트도 전후 맥락을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고, 하이브가 거액을 투자해 성공시킨 뉴진스를 버리고 다른 여성 아이돌을 지원하려는 의도라고 납득하긴 힘들다”라고 표현했다. 보통 기획사들은 타 기획사 그룹을 경쟁상대로 삼아 차별화하기보다는 그들 사이의 트렌드를 흡수 통합하는 형태로 상품성을 높인다. 그런 연장선에서 아일릿과 뉴진스의 비슷한 스타일이 이해될 수 있다. 하이브가 거액을 투자한 뉴진스를 버린다는 의미는 없앤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비중을 줄여나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재판부는 “여성 아이돌 콘셉트는 상표권 등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뉴진스는 기존 여성 아이돌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스타일을 구현했다. 여성 아이돌 그룹이 주로 걸 크러시나 발랄큐트한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뉴진스는 이러한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 10대 소녀다운, 이른바 또래가 좋아하는 걸그룹 아이돌 스타일의 정체성을 구현했다. 그러한 구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 민희진 대표였기에 뉴진스와 민희진 전 대표 사이에 신뢰성이 구축되었다.
하니를 무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민 전 대표가 상황을 재구성한 측면이 있고, CCTV를 보면 뉴진스 멤버를 무시했다는 아일릿 멤버들이 팜하니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기도 한다”라고 했다. 민 대표가 상황을 재구성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아일릿이 인사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매니저의 지시 명령 행위가 있었느냐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1심 재판부는 “전속계약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의 계약 의무 불이행 외관을 만들어 분쟁을 심화시킨 다음 계약을 해지한다면, 위약금 규정을 피해 아무런 부담 없이 계약에서 벗어나는 결과가 발생한다”라고 했다. 정당한 문제제기를, 인위적으로 외관을 만들어 계약 해지의 사유로 삼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애초 분쟁이 심화된 원인은 하이브가 민희진 대표를 강제 퇴진시킨 데에 있었다. 그 과정이 합리적이고 법리적인 수순에 따랐다면 최소한 뉴진스의 전속계약 분쟁은 없었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신뢰 파탄 기준도 너무 좁게 해석한 듯하다. 이를 좀 더 살피기 위해서는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의 본질을 봐야 한다.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의 개념은 독점적인 권리 행사에 관한 것으로 소속사나 매니지먼트 업무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예인은 소속사나 그 매니저를 통해서만 활동을 하며 독자적으로 또는 제3자를 매개로 활동을 하지 않는 의무 이행이 계약의 중심이다.
이 계약은 연예 활동 관련 사무 처리를 위탁하는 이른바 민법상 위임 계약의 성격을 지녔다. 다른 위임 계약과 다른 점은 고도의 신뢰 관계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9년 9월 10일 이와 관련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른바 송소희 전속계약판결에서 “갑이 신뢰관계 훼손 등을 이유로 전속계약을 해지한 사안에서 계약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가 깨어지면 갑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전속계약은 민법상 위임 계약과는 달리 그 존속과 관련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결부되어 있으므로 연예인인 갑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위 전속계약이 기본적으로 위임계약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흔히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만 계약 관계를 파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과 달랐다.
아울러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어졌는데도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예인에게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연예인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되므로, 계약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가 깨어지면 연예인인 갑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했다. 아티스트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 강제가 인격권을 침해하는 점을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 것이다.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인정하는 인격권은 명예권(신용), 초상권(음성권), 성명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건강권(신체와 정신) 등이다. 연예인 전속계약에는 강한 이해관계가 있는데, 더 이상 소속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면 이를 강제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탈하는 아티스트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인격권 침해가 신뢰관계에 파탄을 일으킨다는 대법원 판례는 일반적으로 수익 정산 문제로 전속계약유지 여부를 판단하는 인식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숙소, 연습실 제공 등과 함께 1인당 52억 원가량의 정산금을 받았기 때문에 계약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판결은 너무 물적 토대에 치우친 인식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니엘만 전속계약을 해지한 것은 오히려 신뢰 관계를 깰 수 있다. 하이브 어도어 측은 법정에서 뉴진스 멤버들이 복귀하면 전폭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진술했다. 멤버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사태의 책임을 특정인에게 묻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이는 기망행위라고 할 수 있다. 기망행위는 널리 거래관계에서 지켜야 할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로,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대법원 2005도1991 판결).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다니엘은 복귀를 통보하지 않았을 것이며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더구나 연예 전속계약 같은 위임계약은 상대가 미성년자일 경우 다른 계약 당사자가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K팝은 근원적으로 팬이 중심이다. 팬으로 인해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얻고 활동 기반을 유지하거나 지속할 수 있다. 특정 멤버 한 명을 배제하고 가혹하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과연 팬들이 원할까.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면 향후 활동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이브 소속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는 ‘방탄 보라해’라는 말을 만들었다. 무지개의 마지막 색인 보라색처럼 끝까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방탄의 ‘보라해’처럼 하이브가 뉴진스 멤버를 모두 보듬어야 진정한 글로벌 K팝 경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https://www.bizhankook.com/bk/article/3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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