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의 설렘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를 담보한다.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2025년이 남긴 숙제들이 있다. 지난해 연예계는 여느 해처럼 성과와 퇴보가 동시에 드러났다. K팝은 4대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들이 해외투어로 매출을 견인하며 외적 성장을 이어갔지만, 내부는 분열된 뉴진스로 흔들렸다. 드라마, 영화 제작 업계는 글로벌 OTT 기업에 주도권을 잃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붕괴된 주권
지난해 연예계에 던져진 숙제를 포괄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2024년 발발한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의 전쟁은 2025년 본격화 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올해 그 결말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 전에,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전쟁은 ‘누군가의 그릇된 주권 의식’과 ‘누군가의 그릇된 주권 행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뉴진스 사태’의 이면을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후에야 K팝의 미래를 논의, 도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갖고 싶은 느낌’. 뉴진스가 완성될 무렵, 민희진 전 대표가 친한 무속인에게 보낸 문자다. 개인의 일시적 감성 표현일까. 글쎄. 그의 그릇된 주권, 주인 의식이 숨길 수 없을 지경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민희진 전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K-팝 아티스트를 두고 벌어진 거물들의 소유권 다툼이다. 문제는 소유권을 다툴 필요가 없는 싸움이었다는 점이다. 민희진 전 대표는 그릇된 주권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모자라, 그릇된 방식으로 주권을 행사했다. 그는 왜 어도어 대표직 시절 한 멤버의 친인척을 대동해 제3의 투자자와 만남을 가졌을까. 핵심인 '템퍼링' 의혹에 늘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는 그다
딸 다니엘은 수백 억 원 상당의 소송 위기에 처했고 민지의 미래는 불투명한데, 엄마 민희진 전 대표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쏠려있다. 뉴진스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던 시기, 투자설이 돌던 그는 실제로 지난해 말 새 소속사 오케이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제작을 계획 중인 신예 그룹을 홍보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가장 큰 관심사는 승소만 하면 256억 원을 손에 쥘 수 있는 하이브와의 풋옵션 소송이다.
민희진 전 대표는 하이브가 레이블 경영을 감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프로듀싱과 경영을 통일해야 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결국에는 자신이 어도어의 주요 역할을 다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그가 어도어 재직 시절 벌인 일을 살펴보면 터무니 없다. 전 남자친구 김 씨가 재직 중인 레이블 바나(BANA)에 뉴진스의 일감을 몰아줬고, 2022년에는 뉴진스 멤버들 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급했다. 이사회 동의도 없이 계약서까지 고쳐가며 김 씨의 개인 연봉을 올려줬다. 심지어 256억 원 풋옵션 비용을 나눠 갖자는 알콩달콩한 미래를 약속하기도 했다.
‘삼양라면 소속 연구원이 불닭 스프 원료를 개발했다고 해도, 불닭이 연구원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뉴진스 사태’를 다룬 보도에서 가장 재밌게 본 댓글이다. 민희진 전 대표가 감정을 기반으로 한 '팬덤'이라는 집단과, 가십의 관점으로 해당 사태를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음을 꿰뚫어 봤다.
![[정보/소식] 2026 병오년, '민희진'·'케데헌' 숙제로 출발…K-컬처가 붉은 말처럼 천리 뛰려면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26/01/02/11/669fc0ac36f7afd55c74161be9a4067d.jpg)
연예 산업 내 지적재산권(IP)은 다른 산업과 달리 독특한 특수성 지닌다. 살아 숨쉬는 생물, 사람이 상품이 된다. 그만큼 변수가 크지만 IP의 본질적 개념과 가치는 변할 수 없고, 훼손되어서도 안된다. 수백 억 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뉴진스는 상품이고, 고도화된 지적재산권에 투자를 감행한 건 어도어지, 민희진 전 대표가 아니다. 어도어와 멤버들은 적절한 협의를 거쳐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법적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지기 전이라면 계약은 일방적으로 파기될 수 없다.
멤버들은 어도어에 민희진 프로듀서를 대표직으로 복귀시키라고 요구했고, 거부할 경우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뉴진스는 어도어에 어떠한 경영 권리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소속 아티스트가 회사의 경영을 간섭했다는 월권 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다. 자신들이 권리가 어디까지 보장되는지 몰랐거나, 지나치게 오만했다. 글로벌 팬덤을 보유하게 된 K-팝 아티스트의 권력이 투자, 제작사인 기획사의 권력을 압박, 견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보장, 수용해야 할 것인지도 '뉴진스 사태'가 던진 숙제 중 하나다.
'뉴진스 사태'는 여러 면에서 피프티피프티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평범한 거위를 데려다 황금을 낳을 수 있도록 투자한 기획사와 거위가 황금을 낳을 수 있도록 조력한 프로듀서가 다투게 된 모양새가 닮았다. 그 이면에는 '앞으로는 황금을 나누지 않고 내가 다 갖고 싶다’는 거위 부모의 욕심이 개입돼 있고, 지금 보다 더 화려하고 고급스런 둥지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제 3자의 눈 먼 투자가 개입돼 있다. BAP의 주변이, 피프티피프티의 주변이 그랬다.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마지막이 그랬다.
속으론 자신의 이권만 고려하면서 겉으론 거위를 생각하는 척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에 노출된 거위는, 줏대도 잃고 초심도 잃는다. 자신이 진짜 요구하고 지켜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몰라 혼란에 빠진다. 더 잔인한 사실은 그렇게 소모되는 사이 거위는 더 이상 황금알을 낳지 못하는, 평범한 거위가 된다는 것이다. ‘너는 더 소중한 대접을 받아야 해’ ,’네가 낳는 황금이 얼마나 비싼 건지 알아?’라며 치켜세웠던 이들이 정작 자신의 배를 갈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 제작 업계의 주권 문제를 짚어보자. 이들의 주권은 심각한 수준으로 붕괴되고 있다. 기자는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외적 성공에 취해 잠시 ‘국뽕’에 젖었다가, 국내 제작 업계 종사자들이 이 작품의 성공을 바라보는 속내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놀랐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케데헌'으로 약 10억 달러(한화 1조 3900억 원)의 수익을 창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오징어 게임’ 성공 만큼 기쁜 일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케데헌'은 과연 K-콘텐츠일까. 명백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갓 쓴 까치도 나오고, 한국 호랑이도 나오고, K팝 아이돌 그룹도 나오고, 세계인들이 한국어로 노래도 하는데 ‘우리 것’이 아니다. 케데헌’ 안에 한국의 지분은 없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드라마도 K팝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장면을 목격한 한국인들은 큰 성취감을 느꼈다. 한국인 감독과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가 글로벌 성공을 거둔 첫 사례였기에 ‘오징어 게임’이 창출할 천문학적 수익이 한국에 적게 배분되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한국 제작자들이 지닌 창작의 힘을 세계 시장이 인정하게 됐음을 기뻐했다. 그 동력으로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또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케데헌’이 흐름을 바꿨다. 넷플릭스가 한국 제작사, 한국 스태프를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힘으로 한국의 문화를 차용한 작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된 것이다. 비단 애니메이션에 국한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글로벌 OTT 기업에 주권을 내 준 한국 제작 시장은 그 이용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실제로 한국 제작진과 스태프는 글로벌 OTT 기업의 하청업자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가 투자하는 오리지널 작품의 제작사로 참여해도 핵심 기술은 공유되지 않는다. 글로벌 OTT 기업과의 협업이 국내 제작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체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민희진'과 ‘케데헌’은 시장의 주권이 붕괴될 때 입을 수 있는 타격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글로벌 산업이 된 K팝 시장에서 제2의 뉴진스와 민희진은 언제든지 다시 출연할 수 있다. 업계가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의 법적 결말에 주목하는 이유는 투자자의 심리 위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뉴진스의 손을 들어줬다면, 투자 자본은 급격히 줄거나 회수됐을 것이다.
'케데헌'도 마찬가지다. 주권을 내주는 순간,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걸 경고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오픈런 등과 같은 일시적 내수 시장 효과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목표에 두고 주권 되찾기부터 힘써야 한다.
글로벌 콘텐츠 경계가 사라진 한류 4.0시대가 시작됐다. 병오년, K-컬처가 매일 천리를 뛰기 위해서는 '민희진'과 ‘케데헌’이 시사하는 것들에 대한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권을 잃은 상품과 콘텐츠는 훼손될 수 밖에 없다.
https://v.daum.net/v/20260101141549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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