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부인 정순왕후 송씨
지아비인 단종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빨리 단명한 왕
아버지인 여산 송씨 송현수는 세조의 절친이었으나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 끝까지 단종 복위 운동
이후 관노가 되고 왕후의 아버지이자 국구(왕의 장인)이었던
송현수를 세조는 교형에 처함(보통 사약을 내려서 조용히 죽님)
이후 단종도 영월에서 죽음(당시 단종 17세,정순왕후 18세)
매일 같이 동망봉에 올라 단종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고
불교에 귀의한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를 양자로 삼았으나
양자마저 본인보다 빨리 앞세움
중종치세까지 살았으며 한명회가 부관참시 된 것까지 본 살아
남는게 세조 일가에게 향하는 조용한 복수였던 여인
사후 복위 되며 능호 생각할 ‘사‘ (지아비 단종을 생각하다)를 받으며 사릉이라 불림
사릉 주변의 소나무는 모두 영월방향으로 자람
1999년 두 사람 사후 500년 가까이 되던해
사릉에 있던 소나무 한그루를 영월 장릉(단종 무덤)에 옮겨 심으며 두사람은 만남.
쓰다가 울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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