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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안.
그는 남부럽지 않은 좋은 집에서 교육을 받으며 부모님께 효를 다하여 살아가는 사랑스런 소년이었다.
부모는 그를 늘 사랑했으나 치마폭에 넣고만 키우지 않았고 아이가 잘못했을때 무조건 장위안의 편을 들며 그를 썩히지 않았으며
그가 세상을 경험하길 바라며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듯 남을 존중할 줄 알라 가르쳤다.
부모는 그에게 늘 관직이 낮은자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 가르쳤고 심지어 어렸을 때 장옥안이 아이같은 마음으로 하인과 싸웠을 때도 옥안의 잘잘못을 가려줄줄 알았다.
하인들을 하찮게 대하는 법이 없었고, 그런 하인들은 온 맘을 다하여 옥안의 부모들을 존경했다.
그의 아버지는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관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겸손한 모습으로 상인들을 대했다.
이렇게 자라난 소년 장옥안은 무릇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을 존중하며 부모에겐 효를 다하고 나라에겐 충을 다하며
제 나이 동무들보다 어른스러웠으나 그것을 뽐내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는 나라에 충을 다하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지조를 지키는 어머니를 존경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의 침공이 시작됐다.
일본군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조롱하고 살육했고, 아녀자들을 욕보였으며, 남자들은 그들의 마루타가 되었다.
"아버지.. 조선은 어떻게 되는 것 입니까. 우린 안전한 것 입니까"
"....."
"아버지 궁에 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아버지는 살아 생전 나라만을 위하여 충을 다하였습니다. 그것이 지금 곱게 보일리가 없지 않습니까"
"옥안아... 그 것은 불충이다. 내가 너를 그리 가르쳤더냐. 나라가 이리 온전치 못하고 전하의 생사가 그놈들 손에 달려있는 이 난국에 니 어찌 내 안전만 챙기겠느냐.
난 가야한다. 죽어서라도 전하를 지켜야한다"
위안은 순간 감정이 격해지며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버지! 안됩니다! 제가 이리 아버지의 뜻에 반대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임금을 지키는 것 만이 아버지의 도리입니까? 저를.. 그리고 어머니를...!"
"그 입 다물어라! 내 너에게 이리 화내본적 있느냐! 너의 아비가 충을 지키겠다는 것을 어찌 말린단 말이냐! 그것이야말로 자식된 자의 도리라 말할수 있느냐?"
"하오나 아버지.. 아버지만 보시며 살아온 어머니를 생각해보십시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어찌합니까.."
방문이 드르륵거리고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옥안의 어머니가 입을 떼었다.
"옥안아, 그만하거라."
"하오나 어머니..!"
"자식된 자로써 아비가 충을 지키겠다는 것을 말리는것도 불효니라. 나 역시도 아버지가 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 한다"
말을 맺는 옥안의 어머니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지만 표정은 결연해보였기에 옥안은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곧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옥안아, 내 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너의 아비이자 이나라 임금님의 신하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잘 지켜주길 바란다."
아버지는 집문을 넘어 궁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길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장위안의 아버지는 일본에 대항하고 임금을 지키려던 충신으로써 의리와 절개로 나라를 지키려다 억울한 역모의 누명을 쓰고 대역죄인의 죄목으로 죽게되었다.
집안의 대들보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을 삼키기도 전에 집안은 일본군과 일본군의 개가된 조선인들로 쑥대밭이 되었고
그동안 은혜를 입었던 하인들은 마님과 도련님만이라도 무사히 도망가시라며 지름길을 터주고 농기구 또는 맨몸으로 버텼다.
"헉...헉... 어머니 이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쉬셔야할 듯 합니다."
옥안의 어머니는 더이상 한발자국도 더 띄지 못할듯 숨을 몰아쉬었고 힘든건 옥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머니를 지켜야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였다.
다행히 무사히 그들을 피해 무사히 도망하였지만 당장 잘 곳도 먹을것도 없었다. 옥안은 그동안 친분이 있었던 집 혹은 옥안의 집에 자주 아부를 했던 집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쿵쿵쿵"
"이보시오! 이보시오!"
"누구신데 이 밤중에 이리 문을.."
나라 정황이 정황인지라 예전처럼 웃으며 문을 여는 하인들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만 살짝 내밀며 누구인지 확인할 뿐이었다.
"나를 아시지요? 저는 그 장판서대감집 아들 장옥안입니다. 본적이 있으시지요?"
각 집의 하인들은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듯 옥안의 얼굴만 보면 말을 더듬으며 모른다고 문을 닫길 바빴다.
다들 제살기 바빠 그 나이든 어머니와 어린 청년을 모른척했다.
결국 산 안에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며 모자는 풀뿌리로 연명했다.
옥안은 어머니하나 챙기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과 한순간에 현실을 위하여 돌아섰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로 뒤덮여
하루하루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악몽을 꾸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옥안을 잡아주던건 그래도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단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유일한 마음의 위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댈곳 하나 없이 산에서 산으로 거처를 옮기던 옥안과 어머니는 금세 살기위한 사람들의 밀고로 인해 위치를 들키고 말았다.
"어머니.. 일본군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어서 도망가셔야합니다!! 일어나셔야해요!!"
풀뿌리로 간간히 연명을 했던 것이 소년인 장위안에겐 괜찮았다하여도 나이든 어머니에겐 아니었다.
"옥안아.. 할말이 있다. 이리 좀 와보겠니?
"어머니!! 그 말씀은 나중에 하세요! 지금 땅이 울리는걸 보아하니 일본군이 오고있습니다! 일어나셔야해요!"
잠시 옥안의 집쪽을 쳐다보던 옥안의 어머니가 다시 옥안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옥안아.. 에미는 여기에 남겠다."
"말씀하지 마세요! 일어날 힘이 없으시다면 제가 업겠습니다! 그런 말씀하실 시간에 차라리 업히세요!"
"아니야 옥안아.. 화내지말고 에미말을 들어다오. 너가 사는것은 너의 아버지와 나의 희망이다. 너가 나를 업고가다 힘이 없어 일본군에게 우리 둘다 잡히면
그 것이 과연 나에게 행복이 되겠느냐. 효라는 것은 때로는 너가 부모를 위하여 하고싶은 것을 하는것이 아니라 부모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걸 하게 놔두는것이란다"
"그렇지만 제가 어찌 어머니를 두고 가겠습니까... 아버지께서도 어머니를 지키라하셨습니다!!!"
오열하는 옥안의 눈에서 흐른 눈물은 때가묻은 볼을 타고 더이상 눈물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탁한 색이 되어 떨어졌다.
"옥안아 그리 소리지르면 들키지 않겠느냐.. 생각해 보아라. 아버지께서 너와 내가 둘다 죽길 바라시겠느냐 아니면 너라도 살아서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드리고
충을 다하여 나라를 지키길 원하시겠느냐. 너도 잘 알고있지 않느냐"
"하지만.. 하 허끅...허어어... 어머니!!! 어머니이 흐억"
눈물이 멈추지 않아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의 옥안의 눈물을 쓸어 닦아준 후 어머니는 옥안의 얼굴을 감싸안았다.
"우리 아들은 잘 할것이야. 내가 잘 알고있어."
옥안의 얼굴을 놓아준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잘 알고있기도 하지만 저 위에서 늘 보고 있을 것 이야. 아버지가 가르친 모든것 잘 지켜가며 살아가나 보고있을테니 슬퍼하지 말거라"
그 웃음을 끝으로 옥안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열하고 소리지르는 것 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소리를 내서 어머니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순 없었다.
옥안은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어머니 아버지의 목숨값으로 벌어 연명한 인생. 귀하게 써야했으나 머리속은 하나만의 증오로 사로잡혔다.
일본인을 혐오하고 증오하며 옥안은 뛰고 또 뛰고 또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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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몇십년이 지났고,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앳되기만 하던 얼굴은 아직 아이티를 다 벗진 못해도 남자의 것을 하고있었고, 조그맣던 손은 넘어진 사람의 손을 감싸 일으킬 수 있는 손이 되었으며,
가녀렸던 팔은 여전히 여렸지만 다른이를 끌어안을 수 있을만큼 단단해졌고, 여리기만 했던 마음은 다른사람을 품을만큼 커져있었다.
그 사이 조선은 많이 바뀌었다. 고종의 단발령에 의해 상투가 잘리게 되었지만 계속 상투를 틀며 갓을 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성들은 오랑캐의 풍속을 따를 수는 없다며 단발령을 거두기를 바라며 상소를 올렸지만 그것도 이내 전국적으로 실시된 단발령에 의해 묵살되었다.
정부는 한복을 버리고 양복을 입기를 실시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한복을 입곤 했다.
한복을 입길 고집한 이들중 옥안이 있었다.
몇십년이 지난 옥안은 여전히 이를갈며 일본인들을 혐오하며 자신의 두 조그마한 손으로 어머니의 목을 조르는 악몽을 꾸며 살고있었다.
다만 변한 것은 그는 혐오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 똑똑한 머리로 어린독립투사 모임을 만들어서 젊은 대항군을 조직하여 살고 있었다.
옥안의 시위대는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나이 드신 어른들도 독립에 참여하며 먹고 살 수 있도록,
시위대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거나 동네에 필요한 공사를 하는 직업들을 창출해냈다. 직분의 귀천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교육받을 수 있게 글도 가르쳤다.
무력만이 다가 아니고 배워야 산다는 옥안의 개혁방식이었다. 힘만으로는 결국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일본정부를 이길 수 없다며, 모두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뿐만 아니라
더 큰 수준의 머리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똑똑해져야 한다는 그의 방침이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일본인에 대항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 중 바른자들을 직급으로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며 단원으로 세우고
특유의 명철한 머리로 인하여 존경받다보니 자연스레 대항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한편 옥안의 가까이서 옥안을 조사하는 일본인이 있었다. 헌데 유별난 것은 그는 옥안에게 또는 한국인에게 악의가 있어서 옥안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였다.
한국인에게 악의가 없는 일본인이라.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었다. 하지만 본인만은 진지했다.
테라다 타쿠야.
그는 부유한 일본의 가정집에서 태어나 세상을 넓게 보라는 부모의 말에 따라 이곳저곳 유학을 다녔던 보기 드문 일본 청년이었다.
당시 무역이나 사업을 목적으로 타국을 방문하는 일본인은 있었어도 순수한 유학을 목적으로 타국을 다니던 일본인은 드물었기에
생각도, 존재 자체도 보기드문 일본인이었다.
그렇게 미국에서 유학하던 타쿠야는 부정하고 싶은 속보를 들었다. 자신의 모국이 한국을 침략하고 정복하고 있다고. 그리고 무차별 학살이 이어진다는 얘기까지.
보기드문 깨어있는 청년이었던 타쿠야는 일본이 자신의 모국이지만 잘못된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침 미국을 더 속속들이 알아가기 위해 하고있던 기자라는 직업이 그 부정한 현실을 널리 알리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어리고 이상적인 생각과 열정만이 가득했던 타쿠야는 일본 국민들이 실은 조국에서 이리 부당한 일을 하고있다는것을 안다면 마음을 돌려줄 것이라 생각했다.
국민들의 양심과 힘으로 무엇인가 변화할꺼라고 꿈꿨다.
그 길로 타쿠야는 이상을 안고 배를 타고 건너건너 조선땅을 밟았다.
직접 본 조선땅의 현실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고 처절했다.
하루하루 진실을 위한다며 자료수집을 하는 타쿠야의 마음은 무거웠다. 아렸다. 이사람들의 고통을 아픔을 과연 내가 이 사진기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애시당초 나는 너무 큰 것을 담으려 했던것이 아닐까. 이것을 내가 다 담아서 보여줄 수 있을까.
좋은곳에서 좋은것만 봐왔던 타쿠야는 조금씩 슬픔과 좌절, 이상만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현실이 무엇인지도 배워가기 시작했다.
조선국민의 고통만을 아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일본군의 만행과 부조리, 그 자체를 퍼트리는 것도 중요하다 여겼다.
유학을 다녀온 쓸만한 일본인이라는 것을 내세워 조금씩 일본군과 알아가기 시작했고 타쿠야의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일본군의 만행은 더욱 참담했고 현실은 훨씬 비정했다.
일본군은 조선인을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 생물 취급도 하지 않는 듯 했다.
게다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조선인들은 서로를 뜯어먹고 살아가기 바빴다. 조선인 서로가 생존을 위하여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버린것이다.
그중엔 살기위하여 옳지못한 일본군의 편이 되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타쿠야는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진실을 알리자는 명분으로 조선땅을 밟았고, 진실을 무사히 널리 알리기 위해선 자신의 안전도 보장되어야했다.
그렇기에 조선인과 크게 연루되지 않으려 했고, 제 3자의 입장으로 그들의 모습과 시간을 담아냈다.
하지만, 눈앞에서 고통받는 그리고 죽어가는 조선인들을 모른체하는 것이 맞는가?
총살을 당하는것이야 자신에게 막을 힘이 없기에 어쩔수 없다하면, 혹여나 연루될까 겁이나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밥덩어리 하나 주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는 자신은 생명을 함부로 아는 추악한 일본군들과 다를게 뭐란말인가?
그가 혐오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서운 현실과 자신이 다를게 뭐란말인가?
어려웠다. 진실을 널리 알려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지금 작은 결과밖에 내지 못하더라도 당장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것이 맞는 것 인지.
나는 양심에 떳떳하게 살아가는가. 과연 나는 진실을 알리고 싶은것인가 아니면 겁쟁이인 것인가.
그런 타쿠야의 빛잃은 마음을 잡아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장옥안이었다.
옥안은 늘 중요한 시위에서는 늘 모습을 비췄기에 그 현장을 담는 타쿠야는 옥안을 심심치 않게 보게되었다.
그리고 곧 옥안이 조선에서 둘째로 큰 시위대의 대장격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며 타쿠야는 옥안에게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적어도 타쿠야가 본 옥안은 다친 동료를 무시하고 돌아가는 적이 없었으며, 늘 어렵고 약한자를 돕기위해 스스로 덜 먹고 덜 입으며 희생하고 있었다.
너무나 급속도로 타쿠야에게 밀려온 더럽고도 추악한 현실에서 장옥안은 유일하게 빛나는 이상이었다.
이 자기 먹고살기 바쁜 전쟁통에서도 옥안의 눈은 늘 빛났고, 남의 아픔을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은 따뜻한 온기를 내뿜었다.
그렇다고 어줍잖은 동정으로 휘둘려 약해지는 법도 없었고 그는 언제나 굳건하고 강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아니, 남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렇게 타쿠야는 멀리서만 봐도 휘둘리고 약해지는 자신과는 달리, 그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견고한 장옥안을 조금씩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의 시위였다. 여느때나 다름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풀리지 않은 심정을 안고 사진을 찍으러 간 타쿠야는
여린 몸으로 한 손으론 쓰러져가는 동지들을 어깨에 걸치고 한손으론 제 몸만한 조선의 국기를 하늘을 향해 뻗으며
넘어질둣 위태롭게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딛고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옥안을 보았다.
타쿠야는 자신도 모르게 한국말로 읊조렸다.
"아.. 저것이 조선의 아름답다는 단어구나.
저게 아름다움이구나."
자신도 모른체 타쿠야는 사진기로 손을 가져가 옥안의 사진을 찍고있었다.
그를 지키겠다고 뛰쳐들어간다면 조국에서 진실을 알리겠다던 자신의 명분은 끝이난다. 잠깐 주저하던 사이 옥안이 피를 흘리며 땅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타쿠야는 더이상은 주저할 수가 없었다. 더이상은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그 폭력의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었다.
다행히도 군인들이 아직도 시위대를 진압하는 중이기에 혼잡한 틈을 타 타쿠야는 옥안을 들쳐업고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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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안은 전신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려 했는데 신음소리만 나왔다.옥안은 생각했다. '이곳은...?'
옥안이 눈을 뜬 곳은 자기집도 아니고 시위하는 장소도 또는 독립투사의 거처도 아니었다.
어눌한 한국말과 옆에 놓인 일본어 책들을 보고 옥안은 그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옥안은 순간적으로 도망치려했으나 몸을 움직일때 느낀 극심한 고통에 다시 쓰러졌다.
타쿠야는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함부로 움직이면 안돼요."
그 말을 듣고 옥안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그의 몸의 상처는 약이 발라져있었고 피가 물든 하얀천으로 단단히 감싸져있었다.
자신의 저고리와 단고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자신에게는 너무 기장도 품도 큰,
어떻게 보아도 저 키가 제보다 몇십촌은 커보이는 일본인의 하의만을 입고있다는 것을 깨닫고 수치심에 옷을 찾으려 하였으나 보이지 않았다.
옥안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을 뱉었다.
“일본놈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어떤 꿍꿍이로 조선사람을 치료한건가? 날 죽지 않을만큼 치료한 후 윗놈들에게 넘겨서 정보를 캐내려는건가?"
타쿠야는 조금 씁쓸하고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옥안을 살려봤자 타쿠야는 그에게 그저 “일본놈”일 뿐이었다.
그는 죽처럼 생긴 음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본음식이라 입맞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이럴줄 알았으면 한국음식을 배워놓을껄 그랬어요.”
타쿠야는 옥안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타쿠야는 자신이 있어 옥안의 심신이 더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며 방을 나갔다.
타쿠야는 옥안이 걱정되었다. 자신이 나간다면 팔을 올릴 수나 있을까. 저 음식을 넘길 수나 있을까. 아니 먹기위해 몸을 일으킬 수는 있을까.
하지만 타쿠야가 옥안을 동경하는 마음은 일방적이었고, 그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도 걱정하는 마음도 일방적일 뿐이었다.
타쿠야가 걱정하고 바란다하여도 그 걱정, 옥안은 받고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방적인 감정을 가진 이에겐 넘을 수 있는 선은 이 정도. 딱 이 정도 라는 것을 알기에 타쿠야는 집을 나섰다.
한편 옥안은 타쿠야가 내민 일본음식을 손에도 대지 않으며 머리를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차분히 생각하려 했으나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엔 도통 이성적이지 않은 일들 뿐이었다.
왜 그는 나갔는가. 내가 도망하면 어찌하려고.
옥안의 마음에는 “선한” 일본인 따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 그에게 일본인은 존재 자체가 악이였다.
그렇기에 왜 살려줬는가에는 의문따위도 들지 않았다. 나를 살려야 이용할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살려뒀겠지.
이 것에 대해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기에 고민하지도 않았다. 다만 옥안이 궁금했던 것은 왜 그가 옥안을 방에 혼자두고 나갔나였다.
문을 걸어잠그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혹 저가 도망하면 어쩌려고 저를 혼자 두고 나갔을까.
생각을 멈추고 일단 일어나려하는데 순간 온몸에 격한 통증이 느껴졌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소리를 지르는 듯 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옥안은 다시 침대로 쓰러졌다. 온몸을 부러질듯 맞았으니 조금의 움직임도 허용이 되지 않는것은 당연했다.
아 어짜피 내가 나가지 못할것을 아니 두고나간 것이구나.
이 일본인의 집에 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혐오스러웠다. 숨을 쉬고싶지 않았다. 일본인의 공기로 가득찬 곳의 공기를 들여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말을 듣지않는 자신의 몸뚱아리가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의 몸상태를 알면서도 그저 나가야한다 그 생각만이 옥안의 머리속을 채웠다.
그 집의 곳곳에서는 죽어간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죽어간 동료들의 피가 흥건히 넘치는 듯 했다.
해가 지며 어둑어둑해질즈음 타쿠야는 자료수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여니 옥안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타쿠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옥안의 몸을 감싸안아 상체를 일으켰다. 더이상 의식이 있어보이지 않는 옥안은 그저 고통스러운 얼굴로 신음을 뱉을 뿐이었다.
옥안은 타쿠야가 집을 나간후 어떻게든 탈출하려 몸을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일어서서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으니 억지로 몸을 굴려 떨굴 때 옥안의 몸의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다시 벌어졌다.
고통이 뼈를 찌르는 듯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대로 기어 방을 나가려했으나 문지방이 꽤 높았다.
문지방을 그대로 긁으며 지나가자 온몸의 상처들이 다시 터지며 울부짖었다.
반쯤 남은 의식을 잡고 억지로 마루까지 기어나와 봤지만, 극심한 고통에 결국 옥안은 의식을 잃고 만 것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것은 오히려 타쿠야였다.
옥안의 상처는 애당초 응급조취만으로 아물 상처들이 아니었지만, 독립투사로 얼굴을 알린 옥안을 일본인인 저가 함부로 병원에 데려갈 수는 없는것이었다.
하지만 늘 방관하며 기자로써 사진을 찍어왔던 저가, 믿고 옥안을 부탁할 만큼 알고있는 조선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옥안의 몸을 감쌌던 붕대를 다시 푸르고 몸을 씻기며 다시 치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몸으로 참기힘든 고통으로 혹사당한 옥안의 몸은 고열로 펄펄 끓고 있었다.
옥안의 터진 상처들을 봤을때 타쿠야는 순간 두려워졌다. 혹여나 이러다 옥안이 죽을까 두려웠다.
타쿠야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자라는 변명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걸 지켜봐와 나름 죽음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죽음은 무엇이 그리 특별하기에, 아니 이사람의 무엇이 그리 나에게 특별하기에 이렇게 겁을 주는것일까 생각했다.
그저 직접적으로 연이 닿았으니 타쿠야의 마음이 약해진 것 뿐일까.
타쿠야는 이 불안한 감정의 이유를 알고있으나 인정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옥안을 동경했었고, 옥안의 빛을 통해 힘든 고민들을 견뎌온 것은 맞지만, 타쿠야는 자신의 동경이 그저 순수한 동경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알 것 같았다.
이것은 동경. 동경이 맞지만 연정에 좀더 가까웠다.
그렇게 옥안의 상처를 씻기고 소독하고 다시 약을 바른후 붕대를 감았다.
몇날 몇일동안 고열이 내려가지 않았고, 그동안 타쿠야는 옥안의 곁에서 떠난적이 없었다.
물에 적신 천을 갈아주고 소독제로 그의 몸을 식히며 타쿠야는 자신이 옥안의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것에 대한 묘한 쾌감도 느꼈다.
나와는 관계없던 내가 동경하던 그 멀어보이기만 하던 이와 자신의 관계를 잇는 줄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불순한 생각도 옥안의 잠꼬대 같은 비명에 늘 사라지곤 했다.
옥안은 열이 오르면 끙끙 앓다가 단말의 비명을 지르곤했다. 그는 늘 어머니 라고 외쳤다. 그가 외치는 어머니는 자신이 어머니를 부를때와는 사뭇 달랐다.
자신이 행복하게 부르던 어머니와는 달랐다. 고열에 시달리면 악몽을 꾸는듯이 비명과 어머니를 섞어 외치며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때론 눈물도 흘렸다.
어머니 어머니!! 안됩니다!!! 어머니이이!! 으아아악!!! 어머니!!! 하고 고함을 지르며 눈을 떴다가 다시 기절하듯 쓰러지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타쿠야는 옥안의 어머니의 생사여부도, 혹은 돌아가셨다면 그 연고도 알지 못하지만. 왠지 알것만 같았다.
알고싶지 않아서 애써 생각하려 하지 않았지만 알것 같았다. 일본인의 만행이리라. 상상하지 못하게 아픈 죽음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저 빛나는 사람을 이리도 위태롭게 보이게 하며 잠자리까지 찾아와 괴롭히는 것이리라.
그리 잠꼬대를 할때마다 옥안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손은 공중에 힘없이 휘적휘적 젓다가 이내 타쿠야가 손을 내주면 그것을 힘겹게, 으스러지게
마치 이번에는 놓치 않겠다는듯 잡고는 다시 쓰러지곤 했다.
며칠 후 옥안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타쿠야가 집을 비울때마다 타쿠야는 더 심해진 상처를 안고 앓는 소리를 내며 거실에 쓰러져있는 옥안을 발견해야했다.
그것이 반복된지 열댓째에 결국 타쿠야는 지쳤다.
“그렇게 이곳을 떠나고싶습니까?”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허공을 쳐다보고 침대에 쓰러지듯 앉아있는 옥안에게 날카로운 말투로 타쿠야는 내뱉었다.
“지금 나에게 시체썩는 냄새가 나는 곳을 떠나고 싶냐고 물었는가?”
분개에 찼지만 언성은 높이지 않은 옥안의 목소리는 차라리 소리를 지르며 더러운 욕을 하는 자의 목소리보다 더 깊은 분노를 담고있었다.
그 질문을 이해하기 힘들었기에 타쿠야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옥안을 쳐다보았다. 그만큼 더럽다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비유한 것인지.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저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은 고통을 경험해보지 않고 곱게자란 타쿠야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나라에 대한 증오를 개개인에게 심다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경험한 타쿠야에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옥안은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않겠나? 이곳에서 숨을 쉴때마다 시체썩는 냄새가 난다. 내 어머니의 시체 내 아버지의 시체. 당신들에게 총을 맞아 또는 짓밟혀 또는 실험대위에 차갑게 죽어간
내 동무들의 시체썩는 내가 내 코를 찌른다. 역겨워서 숨을 쉴수가 없다. 당신의 얼굴에서 그들의 피가 보인다.”
타쿠야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일본에 대한 증오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것은 아니었다. 조선에서 본 일본인의 만행은 이보다 더한 증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래도 저를 살린 사람에게서 동무의 피가 보인다 말한것은 이내 타쿠야의 심기를 건드렸다.
“좋아요 장옥안씨. 나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가지고 더는 입씨름 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이 없습니까? 당신은 자신만 생각합니까?”
심기가 거슬린듯한 날이선 타쿠야의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옥안은 지금 자신의 앞에 선 일본인이 무슨말을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을 미워하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것일까.
자신은 지금 나를 살려놨는데 일반화하여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논리인가. 그런 생각을 멈추기도 전에 타쿠야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지금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 피해라는것을 모릅니까? 그리 생각이 없습니까? 당신만 다친것이 아닙니다.
시위대에 많은 사람이 다쳤고 분명 자기 하나 돌보기도 바쁜 상황일텐데 당신처럼 거동도 하지못하는 사람이 시위대에 가면 그들이 할 일만 늘리는 것이란 것을 왜 모릅니까?
게다가 당신은 시위대의 대장입니다. 그곳의 영웅인데 당신같은 사람이 그렇게 몸도 회복하지 못하고 거동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돌아가면
다 낫지 못한 사람들도 당신을 치료하기위해 스스로는 돌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당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모든 동료들은 자신의 상처를 덜 돌보고 당신을 돌보길 바랄것을 정녕 모르는 것입니까?”
옥안은 할말을 잃었다. 그렇게 생각해본적,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적이 없었다. 자신은 확실히 그곳의 영웅같은 존재였다.
그저 대장이라고 하기엔 모두 옥안에게 의지했고 모두 그를 마치 절대 넘어지지 않을 기댈수 있는 벽처럼 생각하며 그에게 의존했다.
오히려 옥안은 자신의 생사여부가 그들을 힘들게 할것이라 생각했지 그 후의 동료들의 상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했다.
일본인에게 일침을 당하자 치욕스러웠다. 그렇지만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타쿠야는 옥안이 아무 반론도 제기하지 않자 마지막 말을 뱉었다.
“당신이 건강해야 그 독립운동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돌아가서 시위대를 추스릴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 드세요. 조국을 위해서 건강을 되찾으세요.”
타쿠야가 그릇을 내려놨지만 옥안의 머릿속은 그저 더러운 일본인의 입에 조국을 위하여 라는 말이 담겨진것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있을 뿐이었다.
옥안이 음식에 독이있는줄 의심하고 먹지 않는것처럼 오해한 타쿠야는 먼저 먹어보였다.
“자 독도 없습니다.”
옥안은 머뭇거렸다. 타쿠야의 말은 틀린말은 없었다. 힘겨운 결정끝에 수저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애당초 수저를 향해 팔을 들수도 수저를 잡을 힘도 손에 없었다.
타쿠야는 숟가락을 집어 죽을 뜬 후 옥안의 입에 넣었다.
“당신은 지금 내가 싫겠지만 대를 위해서 소를 버리십시오. 지금의 혐오를 참는다면 당신은 건강해져 돌아갈 수 있습니다.”
조국의 원수가 먹여주는 음식을 먹는건 굴욕적이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으나 간의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는 구천처럼 저도 그러리라 옥안은 맹세했다.
그리 밥을 먹이는 몇날 몇일은 늘 침묵의 시간이었고 옥안은 타쿠야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듯, 그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듯 그를 쳐다본적이 없었다.
타쿠야는 끝내 입을 열었다.
“나는 일본에서 났지만 세계를 돌며 유학을 했습니다. 서양 동양을 누비며 이곳 저곳을 다녀보니 내 나라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버리게 되더군요.
그렇지만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합니다.”
옥안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타쿠야는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가 잘못하는 것을 알길 바라며 기자의 신분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사랑하는것과 옳고 그름을 아는것은 다르지요.
우리나라가 당신의 나라에 하는 행동이 나는 치욕스럽습니다. 일본인으로써 멈추길 바라고 그름을 알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의 현실을 담아 우리나라에 알리려고 합니다. 진실을 알면 국민들이 부끄러워하며 들고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현실은 어둡다해도 훗날을 기약할 것이라면 진실이 알려지는게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아프다하여도 훗날까지 이 진실을 모두가 잊지 않는다면
변화가 일어나리라 믿으며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겁쟁이란 말을 돌려하는군”
타쿠야는 인상을 쓰며 옥안을 쳐다보았다. 옥안은 타쿠야를 보지도 않으며 말했다.
“결국 현재에 무언갈 하긴 두렵기에 미래를 기약한다는 변명하에 몸을 사리는 겁쟁이군. 당신의 나라가 잘못됐다는 것을 진심으로 가슴아파한다면 그 한몸 바쳐 막아야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미래에 많은 사람이 알게된다 해도 지금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꽃은 지게 되있다. 나중에 꽃이 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동경하던 이에게 그 고결한 이에게 정곡을 찔린 기분에 타쿠야의 마음은 불편했다. 자신도 고심하던 문제를 지적받았기에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자네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왔다는것도 믿을수도 없지. 이리 말해놓고 그 조사한 정보들을 다 값비싸게 팔아넘길 일본놈일지 내가 어찌 알겠나.”
이미 거북하던 타쿠야의 속은 오래 참지 못했다.
“당신들과 내가 뭐가 그리 다르기에 그렇게 이야기 합니까? 고작 일본인이고 조선인이기에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까? 만약 도둑놈 조선인이 이런말을 했다면 믿겠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생명의 은인인데도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로 나의 말은 믿지 못하는 말이 됩니까?”
격조된 억양으로 숨을 고르는 타쿠야에게 옥안이 내뱉었다.
“살려달라 한적 없다. 살려주길 바란적도 없다. 일본인에게 목숨을 구걸할 바에야 죽었을 것이다.”
타쿠야는 자신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과 꿈을 걸고 살렸는데도 저런 말밖에 하지 못하는 옥안이 야속해 죽을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그렇게 처음 길게 말을 섞은지 이주가 넘어가는 날 옥안은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실은 타쿠야가 먹여주지 않아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했다.
타쿠야가 집을 비운사이 처음으로 침대에서 바닥으로 발을 디뎌 보았다. 다리에 힘을 줬지만 쓰러지지 않고는 멀리 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대로는 빨리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기에 재활을 할 구실로 벽을 짚고 타쿠야의 집을 거닐었다.
옥안은 알지못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타쿠야의 집이 편해져있었다. 예전에는 타쿠야의 집에 그 어느것도 보고싶지 않아 눈을 감고있었지만 지금은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타쿠야의 방에는 조선역사, 조선말 부터 시작하여 온 이방의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이것 저것을 바라보다 다른 방 문에 다다렀을 때 옥안은 직감적으로 이곳이 굉장히 중요한 곳임을 느꼈다.
서적을 보관해 놓은 방도 옥안이 누워있던 방도 문을 열어놓았으나 그곳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여기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수 있었다.
옥안은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잘하면 시위대에 중요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리라.
그 방문을 열자 창문도 없는 그 어두운 방은 고통받는 조선사람들과 고문하는 일본인들의 사진으로 가득차 있었다.
순간 옥안은 이자가 확실히 이중간첩질을하며 조선인의 환심을 산뒤 그 정보를 일본놈들에게 팔아넘기는 것이 맞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가만히 사진들을 보니 간첩으로써 일본군에게 팔아넘길만한 사진은 없어보였다.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웠던 옥안은 곧 그래, 간사한 일본놈이 이렇게 잘 보이는 곳에 중요한 정보들을 숨겨놨을리 없다며 합리화했다.
남이보기엔 답답하리 만큼 타쿠야의 존재를 부정하듯 보이겠지만 옥안에겐 어쩔수 없는 결정이었다.
옥안에게 타쿠야는 착한이여선 안됐다. 그는 믿을만한 사람이여선 안됐다. 좋은 일본인이란 존재해선 안됐다. 적어도 옥안에겐 그러했다.
그렇지만 그곳에 있던 사진들은 조선군의 기지나 시위대의 거처 사진이라던가 중요한 정보가 될만한 사진은 없고 오히려 고통받고 시위하고 고문당하는 조선인들.
죽어가는 처절한 우리네 현실을 담은 사진들 뿐이었다.
옥안은 당혹스러웠다. 정말 그가 했던 말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했던말들이 미안해서 당혹스러웠던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했던 말들이 사실이라고 믿고싶지 않기에 옥안은 당혹스러웠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다른 사진들과는 달리 엄청난 크기의 사진이 검은 천으로 덮여있었다.
옥안은 직감적으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진이라는 것을 느꼈다.
옥안이 조심스레 검은 천을 떨구자 보인 사진은 며칠전 죽어가던 자신을 타쿠야가 살렸던 그 시위때 시위하고 있던 자신의 사진이었다.
옥안은 당황했다. 정말 당혹스러워 손에 땀이나려했다. 이 사람이 만약 시위대의 대장 사진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런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옥안은 사진이 딱히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이미 조선에 두번째로 큰 청년 시위대의 대장으로써 얼굴이 잘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자는 옥안을 이미 알고있었다는 얘기였다. 생각해보니 옥안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적도 없었는데 그 자는 옥안의 이름을 불렀었다.
그렇다해도 옥안은 자신의 사진이 가장 크게 소중히 천으로 싸여져 있는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진에서 보이는 자신은 정말 강해보였다. 마치 그 사진을 찍은이가 어떤 감정으로 자기를 보며 찍었는지 고스란히 느껴질만큼 자신은 강하고 담대해 보였다.
자신의 눈동자에서 빛이 나는 듯 했다. 옥안은 자신을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적 없기에 이 사진에 담긴 자신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 사진에 담긴 옥안은, 옥안이 아는 옥안보단, 이 사진을 찍은이가 생각하는 옥안임이 절실히 느껴졌다.
이해할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옥안은 다시 검은천으로 그 사진을 덮고 침대로 돌아왔다.
만감이 교차하며 알수없는 감정들과 기분들이 들었다. 타쿠야가 집에 돌아와도 대답도 하지않고 눈을 감고 자는척하였다.
어째서일까.. 옥안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 사진의 이유, 그 사진의 크기, 그 사진에서 느껴졌던 찍은이의 감정. 그 어떤 것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옥안은 자신이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문을 잠그지 않을까 싶어 그저 침대에 누워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제의 일로 인해 느낀 감정들은 아직도 그의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채 남아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보기도 껄끄러웠던 옥안은 그저 눈을 감고 아직 일어나지 못한척을 하였다.
타쿠야는 아침을 가지고 옥안이 있는 방에 들어왔다가 아직 잠들어있는 옥안을 보며 걱정스럽게 혼잣말을 했다.
“외상은 다 아물어가는데 아직도 걷지 못하면 내상인건가.. 그렇게 심각하다면 병원을 데려가야할텐데…
그렇지만 내가 독립투사인 이사람을 데리고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한숨을 길게 쉰 타쿠야는 이내 죽을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집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옥안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눈을 떴다.
방금 그의 목소리는 진정 걱정하는 자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에 연민이 묻어났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듯 했다.
이내 옥안은 눈을 꼭 감았다. 정신차려야 했다. 넘어가선 안되었다. 저렇게 옥안의 벽을 허물고 언제 뒷통수를 칠지 모르는 그는 비열한 일본인이었다.
타쿠야는 옥안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옥안을 감쌌던 하얀천을 몇개 더 사서 일찍 집에 돌아왔다.
일단 붕대부터 갈겠다며 타쿠안은 옥안을 끌어안아 일으키고 몸을 겹쳐 헌 천을 풀고 새천을 매었다.
조용한 정적이 깔린 둘사이엔 숨소리만이 들렸다. 쌔액쌔액. 서로의 숨소리가 들렸다. 열린 창문에 커텐이 날렸지만 오늘따라 참 조용했다.
타쿠야의 몸이 옥안의 몸을 스치는 소리와, 타쿠야의 손이 옥안의 가슴께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옥안의 몸에서 하얀천이 스르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옥안은 자신의 심장소리만 들렸다. 유난히 크게 빨리뛰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옥안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이게 아닌데 어떤 이유로 이러는지 알수가 없었다.
다 큰 남정네가 다른 남정네 앞에서 헐벗고 앉아있는것이 쑥스러워였을까 아니면 건장한 남성 둘이 몸을 부딫힐 듯 말듯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것이 당혹스러운것일까.
아니다. 자신도 수많은 동무들의 붕대를 갈아왔고 그것은 심장을 빨리 뛰게할 그 어떤 이유도 되지 못했다.
당황하고 있는 옥안을 향해 타쿠야가 잔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얼른 나아 다시 시위대에 전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다신 이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스면 좋겠습니다.
아니.. 독립투사에게 위험하지 않은 일을 하라는 것은 억지겠지요. 그렇다면 그저 천운이 따라서 라는 이유로도 좋으니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이었다. 타쿠야가 말할때 옥안이 타쿠야를 쳐다본 것은. 옥안 본인도 모르게 쳐다보고있었다.
타쿠야는 정말 부드러운 눈으로 옥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옥안은 순간 생각했다. 내가 그를 보지 않았던 그동안 그는 항상 이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만 같았다.
한편 타쿠야는 그 말을 마친 후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리 저리 선을 넘는 행동을 했을 때 옥안의 반응에 상처받았기에 다시는 선을 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상처받는것보다, 옥안이 상처를 받는것만 같아 더이상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려했다.
그렇지만 방금의 발언. 또 선을 넘은 것이 아니었을까. 둘사이에선 침묵만이 오갔다. 타쿠야는 자신의 발언이 또 선을 넘은것이 맞다고 느꼈다.
잠시 후 옥안이 혼자있고 싶다고 했고 타쿠야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에서 나갔다.
타쿠야가 나가자 옥안은 잠시 무안했다. 생각해보니 주인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요구한 것과 같았다. 무례했다.
이내 옥안은 일본인인데 무례가 무슨 말이냐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옥안은 점점 타쿠야를 다른 일본인들처럼 보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여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이러다 넘어가면 끝이기에 옥안은 초조했다.
일본에 돌아가 진실을 알리고싶다던 타쿠야의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을 할때도 그리 진심어린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했을까.
정말 타쿠야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었다. 사진도 그의 행동도 말도 그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뒷받침 하는 듯 했다.
옥안은 자신이 자꾸만 경계를 푸는것이 느껴졌다.
이리 자신을 오래 살려둔걸 보아하니 죽이는 것이 목적은 아닐테니 어짜피 자신을 이용한다면 목적은 정보거나 자신을 안에서부터 무너트리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일본인을 믿게한뒤 정보를 캐내거나 아니면 배신을 하여 일본인을 믿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안에서 부터 무너지게 하려는 것이리라.
옥안은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닷새 후 아침 옥안에게 아침을 먹이던 타쿠야가 힘겹게 입을 떼며 그간의 침묵을 깼다.
“내가 당신을 살려줬으니 당신은 원치 않는다 해도 나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옥안의 표정은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이제는 내가 넘어가지 않으니 은혜를 들먹여 정보를 캐내려나보다' 하고 승리의 웃음을 지었다.
옥안은 그래 내가 좀 흔들렸지만 결국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음에 이어진 타쿠야의 말은 옥안을 더 당혹스럽게 했다.
“옥안씨 당신이 아픈게 나아서 이 집을 나간 후에도 자주.. 아니 가끔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만나 이야기하며 얼굴을 보고싶습니다.”
옥안은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이런 고문방식은 듣도보도 못했다. 그렇지만 정말 효과적이었기에 이렇게까지 수고스럽게 자신을 속이려는 일본인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바라는게 정보라면 말을 해라! 내게 신뢰를 산 후 날 배신해 나를 속에서부터 무너트리려는 것 이라면 소용없을것이다!
나는 너같은 더러운 놈에게 줄 마음의 자리는 일말도 없다! 이미 내 마음은 너같은 놈들을 향한 증오로 가득차 있기에 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옥안은 마음속으론 이미 자신이 넘어가고 있음을 알기에 오히려 감정조절을 할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기가차 마치 자신이 한 말을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처음으로 큰 목소리로 소리치는 옥안을 보고 타쿠야는 놀랐다. 그가 절제된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일은 늘 있었지만 이리도 감정을 터트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이내 화가난 타쿠야도 소리쳤다.
“내가 당신을 살렸습니다! 먹이고 재우고 치료했어요! 이리 잘해주는데 당신을 무너트릴꺼라면 진작에 무너트렸을텐데!
이렇게까지 하는데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날 의심해야합니까? 날 사람으로 봐줄순 없는겁니까? 당신과 나 사이에 뭐가 그리 다르길래 날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잠깐의 정적후 진정된듯한 목소리의 옥안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아시오?”
타쿠야의 들어본적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고 옥안이 시조를 읊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시를 마친 후 옥안이 물었다.
“이 시가 당신에겐 어떤 시로 느껴지시오”
질문의 저의를 알수없기에 잠시의 고민후 타쿠야는 대답했다.
“조선에서도 연정을 주제로 이리 적나라하고 끈적하게 그린 시가 있다니 문학계의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신 돌아오지 않는 님에 대한 슬픔, 그렇지만 영원한것은 없기에 슬퍼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저자의 모순된 감정이 느껴집니다.”
타쿠야의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옥안이 말했다.
“그래서 우린 다릅니다.”
“…네?”
타쿠야는 당황스러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이 정말 설사 조선인을 해치지 않으려는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일본인입니다.
우리네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일본인 아니 타국인에겐, 이것은 그저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시일 뿐입니다.
하지만 조선인에겐 이것은 조국을 뺏긴 아픔을 그린 시입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조국과 정의를 애통하게 부르짖는 시입니다.
일본인은 이 시를 아무리 그렇게 보려해도 그리 보이지 않을 것이고
조선인은 이 시를 아무리 다르게 읽으려해도 조국을 잃은 자의 한을 담은 시로 이해할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조국과 임금을 일본인에게서 지켜내려다 역모의 모함을 쓰고 사형당해 돌아가셨고
그 슬픔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날 살리고 대신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나 하나 살자고 어머니를 내 손으로 죽였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평생 지고가야하는 짐이 되는지,
왜 내가 일본에 대한 절대적인 혐오를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섣부른 일반화를 그저 사실로 믿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살아가는지.
당신은 평생 모를 것 입니다.”
그 비유가 너무나도 적절하게 타쿠야에 마음을 파고들었다. 무슨말인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
옥안이 처음으로 높임말을 쓰며 타쿠야에게 말했지만, 처음으로 경멸하지 않는 말투로 존중하듯 이야기 했지만
오히려 정중히 둘 사이의 정확한 벽을 보여줬다는 그 사실이 더 타쿠야의 마음을 처절히 찢었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타쿠야가 힘겹게 말했다.
“내가 .. 미..안합니다. 선을.. 또 넘어 죄송합니다.”
그날 밤 옥안은 잠이 들수 없었다. 그저 타쿠야의 말을 무시하면 되었을 것을 자신이 너무했던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인이었다. 그 사실은 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옥안은 곧 아- 하며 짧게 소리를 내뱉었다. 자신 스스로에게 기가차 낸 소리였다.
“어머니 .. 제가 일본사람을 좋은사람이라 하려 하다니.. 저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견딜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들의 목적이 저를 속부터 무너트리려는 것이라면 성공하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이사람 만큼은 예외였음 좋겠습니다.”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옥안은 이내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 감정을 보이는 순간 자신은 끝이다 생각하며 더 담담하게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해야겠다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지 사흘이 넘게 집안에선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타쿠야는 옥안이 있는 방에 들어와 조용히 식사만을 챙겨주고 집을 나섰다.
옥안은 드디어 자신의 마음의 혼란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확인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아침먹은 밥그릇 옆에 쪽지가 놓여져 있었다.
옥안은 그 쪽지가 타쿠야가 쓴 쪽지임을 알았기에 쉽사리 열지 못했다. 마침내 열은 그 쪽지에선 타쿠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옥안씨.
며칠전 제가 주제넘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이 몇일간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래도 욕심이 납니다.
당신은 이해할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특별한 이이고 싶습니다.
예외인 존재이고 싶습니다.
더 노력할 것 입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것입니다.
날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해도 이해합니다.
다만 도망가지만 마십시오.
제가 노력할 수 있게라도 그곳에 계셔 주십시오.
그 편지를 읽은 옥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유를 알수 없는 눈물이 날것 같았다.
옥안은 이런 진심이 느껴지는 부딫힘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전심을 다해 온몸으로 부딫혀오는 진심에 옥안 자신이 넘어진것만 같았다.
이 정도는 내가 받아줄 수 있을까..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이것이 거짓이라면…
상상만으로 옥안은 끔찍했다. 이리 누군가에게 마음을 줘본적이 없기에 한번 불이 지펴진 감정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조금씩 조금씩 그를 좀먹어가던 타쿠야를 향한 감정과 인정이 마치 불이라도 붙인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그리 돌아가신 이후로 복수만을 꿈꾸며 앞만 보며 달려온 그에게
함께 옆에서 달리며 그가 쓰러질 것 같을때 지탱해주는 이는 많았지만 이렇게 정면에서 자신에게 부딫혀 온 이는 없었다.
그렇게 커져버린 마음이기에 이제. 만약 이제와서 배신을 당한다면 자신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도망만은 말아달라 하였으나 도망만이 자신이 살 길인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가장 잔인한 짓을 하고있는것을 옥안 자신도 알았지만 이대로는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신념이 흔들릴 것 같았다.
이미 타쿠야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이라고 조금의 여지를 두는 옥안은 흔들릴 대로 흔들려 있었다.
옥안이 이리 흔들리고 무너진다면 지금도 가족의 죽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증오를 품고 기다리는 시위대는 누굴 의지하겠는가.
저만 믿고 따라오는 저가 먹여살리며 교육시키는 사람들은 누굴 다시 따르고 의지하겠는가.
그 순간 눈물이 한방울 뚝 편지에 떨어졌고 그 순간 옥안은 자신의 눈물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길로 편지를 떨구고 위태롭게 넘어질듯 비틀대며 뛰었다. 방안의 물건 몇개를 넘어트린 것 같지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옥안 혼자의 생명이라면 이 놀음에 당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 옥안은 이미 혼자만의 생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은 마음으로 옥안을 기다리고 있는 남들을 위해 옥안은 도망쳐야했다.
이곳은 옥안에게 다른 의미의 지옥이었다.
집에 돌아온 타쿠야는 혼잡하게 물건이 떨어져있는 것을 보았다.
“옥안씨!!!!!!!!!”
순간 불안한 기운이 타쿠야를 덮었고 타쿠야는 덜덜 떨며 옥안의 이름을 외치며 방문을 열었다.
어지러진 집과 사라진 장옥안. 순간 납치를 당한건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타쿠야는 자신이 옥안을 데리고 있는것을 언제 들켰는지 생각하려 했다.
순간 눈물이 날것만 같이 뜨거운것이 밀려왔다. 자신이 옥안을 위험에 빠트렸다.
타쿠야는 진정하자며 눈물이 날것만 같은 자신의 눈을 꾹꾹 누르며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주웠다.
집이 어지러운 것 치고는 부셔진 곳도 없었고, 떨어진 물건들을 보아하니 살짝 치고 지나간 정도의 충격인듯 했다. 저항의 흔적도 혈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은 타쿠야는 옥안의 몸이 나은것을 알고있었다. 옥안은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이상 잘 때도 일으킬때도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 옥안의 몸은 움직이기 충분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옥안이 저항을 바랬다면 충분이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타쿠야는 납치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운 편지를 다시 열어보니 젖어서 글씨가 번진 자국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문 밖에 신발도 없었다. 일본군이 납치를 해가며 신발까지 챙겨갔다고 볼 순 없었다.
정황을 보아하니 옥안이 스스로 나간 듯 했다. 납치보다는 다행스러운 결과였으나 그래도 가슴이 쓰린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몸이 나아도 옥안이 집을 나가지않기에 혹여나 타쿠야 자신과 오래있고 싶은것은 아닐까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었는데 이대로 잊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가기엔 난 너무 세상을 모르고, 나는 그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고 그의 상처는 너무 크구나.
내가 다 안아주기엔 그는 너무 굳세고 나는 너무 연약하구나.”
시위대로 돌아간 옥안은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지나가는 사람마저 자꾸 타쿠야로 보였고, 잠시만 몸을 혹사시키지 않거나 다른 생각으로 자신을 바삐 만들지 않으면 타쿠야 생각이 났다.
하지만 옥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 전 누워있을 때에 타쿠야 생각으로 계속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가까이서 붕대를 감아주던 그의 눈, 코, 입, 그리고 턱가의 점까지 생각났다.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던 표정도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옥안은 그의 이름도 몰랐다. 이젠 그가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 이상 옥안에게 그는 정말로 찾지못하는 끝난 인연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하지말아달라 간청했던 행동을 했는데 그가 자신을 다시 찾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까지 미치자 옥안은 두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자신은 그가 자신을 찾기라도 바랬던 것일까. 자신은 정말 미쳐가는 것일까.
옥안은 일본인에게 이리 흔들리는 자신이 시위대를 이끌 자격이 없다 느꼈다. 매일 죄책감과 그리움에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예전에 옥안의 악몽들은 옥안 자신이 어머니의 목을 직접 조르는 꿈이거나,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도 살기위해 걸어가는 꿈이었다.
시체들은 늘 자신을 보며 살려달라 손을 뻗어 살려고 달리는 자신의 발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앞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쫓아가야한다며 뿌리치려 바닥을 보면, 자신을 잡던 동료들의 시체는 어느새 어머니 아버지의 시체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늘 옥안을 원망하며 너는 그때 우리와 함께 죽어야했다며 우리의 목숨값으로 사는 인생은 행복하느냐 물었다.
하지만 옥안은 이젠 매일같이 타쿠야와 함께하는 꿈을 꿨다. 그것도 아주 행복한.
이것은 옥안에게 새로운 악몽이었다.
타쿠야는 옥안이 떠난 뒤로 계속 정보수집을 하며 일부러 옥안과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신이 억지로 선을 넘으며 다가갔던 일들이 자신에게도 옥안에게도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뼈져리게 배웠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제는 자신의 행동이 옥안에게 상처였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상처를 받았었다면 좋겠다고 타쿠야는 생각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옥안은 표정하나 변치않고 가던길을 갈성 싶었다. 옥안이 자신을 보고 표정이라도 찌푸려주길 바랬다.
아니다. 타쿠야는 옥안이 아무렇지 않았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옥안에게 자신의 존재가 지나가던 혐오스러운 일본인인게 나았다.
옥안은 모든것을 선두에서 견디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임과 동시에, 너무 많은 상처를 안고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것을 타쿠야는 알게되었다.
타쿠야 자신까지 상처가 되어 옥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타쿠야는 그 시각 일본군의 정보기지에서 자신이 아는 정보를 그들의 정보와 교환하고 있었다.
물론 타쿠야가 전달하는 정보들은 이미 일본군이 알거나 일본군이 조선을 침공하고 시위대를 진압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정보들 뿐이었다.
일본군도 이 사실이 의아스럽지만 섣부른 판단은 하지않고 자기들도 타쿠야가 안다하여도 혹은 조선인이 안다하여도 일본군의 전력에 해를 미치지 않는 정보들만 전해주었다.
별 성과없이 기지를 나오려는 타쿠야의 귀에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렸다.
일본군들에게 옥안의 시위대의 거처가 발각됐다는 이야기였다. 관심이 없는듯 지나치는 척 하며 최대한 걸음을 늦추었다. 한 자라도 더 들어야했다.
그들은 일본군이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다음날 새벽에 선수를 쳐 준비되지 않은 옥안의 시위대를 말살하려는 작전을 전달하고 있었다.
지금은 꽤나 늦은 저녁이었기에 타쿠야는 한시빨리 옥안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달려나올수도 없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듯 했으나, 들키면 자신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옥안을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평정을 유지했다.
기지를 나와도 자신의 집에 도착할 때 까지는 일본군들이 자신을 멀찍이 뒤따라오며 감시하는 것을 알기에 타쿠야는 아무렇지 않은척 평소처럼 집으로 먼저 향했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타쿠야의 몸은 물먹은 솜마냥 무거웠고 심정은 토할것만 같았다.
집에 도착하여 창문으로 일본인들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후 타쿠야는 뒷문으로 나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기지에서 자신의 집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자신의 집부터 옥안의 시위대의 거처까지도 꽤 시간이 걸릴 듯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타쿠야는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타쿠야는 원래는 시위대의 거처를 알지는 못했다. 시위대의 거처를 찍거나 캐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타쿠야가 패기가 넘치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청년이어도 기자의 직업상 자신의 목적이 들켰을 때는 정보에 따라 많은이가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타쿠야의 목적이 들켜 타쿠야가 모은 정보들이 다 일본군에게 넘어간다 쳤을 때,
만약 타쿠야가 조선인들의 현실과 고통받고 고문받는 것들만 찍었다면 그저 일본군들이 그 사진들을 태워버리면 조선인들에게 아무 피해가 가지 않겠지만,
만약 타쿠야가 시위대의 슬픈 현실을 담겠다며 회의하는 모습이나 거처를 찍었다면 일본군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어 그것이 조선인들에게 독이 될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타쿠야가 옥안의 거처로 거침없이 뛰어갈 수 있는 이유는 아까 일본군들이 거처가 어디있는지 설명하는걸 듣게 되었고
자료조사때문에 주변에 지리를 익히고 있는 타쿠야에겐 그곳이 어딘지 짐작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타쿠야는 심장이 터질것 같았고 처음 느껴보는 정도의 절박함에 위액이 역류해 구토할 것 같았다.
제발.. 제발 무사해주세요! 이젠 도망가도 좋습니다. 무사해만 주세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으로 젖어있는 타쿠야가 도착한 거처의 문은 잠겨있었다. 마음이 급박한 타쿠야는 이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주변에 일본군이 있을지도 모르고, 안에 시위대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타쿠야는 그저 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옥안의 이름을 외쳤다.
갑자기 긴급히 문이 열리며 안에서 건장한 청년들이 뛰쳐나와 타쿠야의 뒷목을 농기구로 쳐서 기절시킨 일은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년들이 타쿠야를 끌고 거처로 들어가 다시 문을 잠궜다.
아주 잠시 기절한것 뿐이었던 타쿠야는 금세 눈을 떴다. 흐릿한 눈으로 보니 눈앞에는 옥안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서있었다.
옥안이 물었다.
“이곳은 어찌알고 찾아왔나. 원래 거처를 알고있었던게 맞았나보군”
“옥안씨!”
옥안의 말을 듣지 못한듯 옥안의 이름을 부르는 타쿠야의 명치를 한 청년이 무릎으로 가격했다. 타쿠야는 일본어로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대장이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일본인”
옥안이 손을 들어 그를 멈춘뒤 일단 들어보자 이야기했다.
“대장! 이런 일본인의 말을 무엇하러 듣습니까!”
“기다려보십시오. 제가 아는사람입니다. 할말이 무엇입니까”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타쿠야는 말을 쏟아냈다.
“제가 오늘 일본군의 기지에서 내일 새벽동이 트기전에 이 거처를 공격해 모두를 몰살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들은 이 거처의 위치를 알고있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망치셔야 합니다 옥안씨!”
타쿠야는 그 뒤로도 정신이 없는 듯 횡설수설했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고 그의 몸과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타쿠야의 말이 끝나자 옥안의 안색이 새햐얗게 변했고 그곳은 청년들의 말로 소란스러워졌다.
그 말들은 이 일본인의 말이 진짜인지 어찌 믿냐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도망가려 나가보니 잡히는것 아니냐는 불신으로 가득찼다.
“조용히 하십시오”
그 말을 한 옥안의 목소리는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옥안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을…
당신을 예외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타쿠야는 놀라서 옥안을 올려다 보았다. 옥안의 표정은 진지해보였고 타쿠야는 옥안이 자신의 말을 기억해줌에 기뻤다.
타쿠야가 예외이길 바란다고 편지에 썼기에 옥안이 그 말을 인용한다는것은 자신을 진심으로 신뢰해도 되냐는 뜻으로 전해졌다.
타쿠야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대답했다.
“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옥안은 모두에게 선포했다.
“당장 모두 짐싸세요.”
청년들이 웅성대며 옥안에게 어째서 이자를 신뢰하냐며 과연 이자를 신뢰해도 되는것이냐 물었다.
옥안은 표정하나 변하지않고 거짓말을 했다.
“이자는 내가 일본군에 심어놓은 사람입니다. 일본인이면서 나를 그동안 도와오며 우리의 전력에 보탬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도 몰라야 더 깊게 일본군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알려주지 않아 야속하다는 불평도 없이 바로 납득하는 청년들을 보며 타쿠야는 옥안이 이곳에서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상징하는지 다시한번 느꼈다.
옥안의 시위대는 조선에서 둘째로 큰 청년 시위대였기에 다른 임시의 거처가 여러 곳에 준비되어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느껴 불안했던 타쿠야의 염려와는 달리 옥안의 지휘아래 청년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여 짐을 옮기고 대피하고 있었다.
타쿠야는 옥안의 흔들리지 않는 강함에, 위기에도 굳건한 모습에 다시한번 반할 것만 같았다.
옥안이 직접 지휘하는 모습은 타쿠야가 상상했던 옥안보다 훨씬 눈부시게 빛나고있기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태성이와 주환이네 조는 모두가 떠날때 이곳에 폭약을 설치하고 일본군이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최대한 많은 일본군이 왔을때 터트리고 도망쳐라. 알겠나?”
어찌보면 희생을 요구하는 일인데도 그 임무를 맡은 청년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옥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하던일을 마저했다.
타쿠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희생의 요구도 순종도 너무 당연해보였다.
자신이 이 곳에서 이질적인 존재라는것을 다시한번 걸고 넘어지는 듯 했다.
그곳에 모인 모두 시위대에 자원해 들어올 때 부터 죽음을 예상하고 들어온 듯, 아니 한순간 한순간이 목숨을 버릴 순간이 될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 듯 행동했다.
타쿠야는 옥안에게 가서 잠시만 나가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물었다.
옥안은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모두에게 자신은 이 사람에게 더 들어야하는 정보가 있으니 모두 그곳에 가서 재정비를 하고있으라 이야기하고 타쿠야와 함께 거처를 나왔다.
둘은 가까운 다방에 갔다. 그곳의 겉은 다방이었지만 옥안을 본 여자가 인도한 방으로 들어가니 독립투사들이 의견을 주고받기위해 만든듯 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탈출구가 준비되어 있었고 안쪽의 복도는 모르는 자는 금세 길을 잃을듯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타쿠야는 다시한번 조선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죽음을 항시 생각하며 대비하고 결연하게 또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사는지 느꼈다.
그들에게 죽음은 삶과 너무 밀접해보였다.
둘이 앉았고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옥안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타쿠야는 어딘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옥안에게서 저런 말을 들을줄은 꿈에서 생각치 못했다.
“….네?”
“당신이 오늘 한 행동이 또다시 내 생명하나 살리는 일이었다면 난 아마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나 하나만이 아니고 수많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구했기에 난 고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구한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의 전략이 들켰을때 살해당해야했던 우리를 도운 수많은 일반인들
그리고 물자가 차단되었을 때 굶어죽을 수많은 주민들, 그리고 우리 시위대가 없으면 지키지못할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 동료들의 목숨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타쿠야는 자신이 살짝 부끄러워 지려했다. 자신이 심장을 토할것처럼 침과 땀을 떨어트리며 쉬지않고 달려왔을때 생각한 것은 오롯이 옥안뿐이었다.
시위대나 조선인 그 다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옥안에게 감사한 사람이 된 것에 의미를 두고싶었다. 그러나 이내 옥안의 말은 타쿠야를 아프게 하려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예외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을 쓴것은 당신만 아는 ‘당신을 진심으로 그 순간 신뢰해도 되냐’는 함축적 의미가 있음을 알기에 썼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말이 나에게 어떤 무게인지 알고 일부러 나의 감정을 이용했다는 말입니까?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옥안은 당황하고 살짝 부끄러웠다. 타쿠야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동시에 또 자신이 이용한 것은 일본인이니 죄책감이 들 필요가 없다고 합리화 하려 했다.
하지만 타쿠야는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벌써 당신에게 예외가 되길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상처와 증오의 뿌리는 내가 당신을 두번 살린다 해도 뒤엎을수 없는 깊이임을 이해했습니다.
그렇지만 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입니다.
실은 당신을 상처주고 내가 상처입고 싶지 않아 당신을 벗어나보려 했지만 오늘 당신의 생사가 걸렸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성적으로 굴 수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걱정되어 구토할 것 같은 역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당신들은 그 기분을 매일 느끼고 살아왔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걱정해도 할수있는게 없는 무력함에 좌절하고, 또 그렇게 걱정해봤자 사라지는 소중한 것들에 더 큰 역한 감정을 느끼며 지내왔겠지요.
그래서 나는 조금 기뻤습니다. 당신을 좀 더 이해한 기분이었고 당신에게 한발 더 다가간 기분이었습니다.
당신말이 맞아요. 나는 어쩌면.. 당신을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나는 계속 다가갈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다행입니다 옥안씨. 당신이 무사해서 난 지금 그저 기쁩니다.”
옥안은 자신의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방의 불빛이 붉고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직설적인 타쿠야의 표현에 옥안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옥안의 침묵이 익숙한 타쿠야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요. 제 이름은 타..”
들려오려는 일본인의 이름에 옥안이 인상을 쓰며 타쿠야의 말을 잘랐다.
“난 당신의 이름을 듣고싶지도 알고싶지도 않습니다. 안다해도 일본인의 이름을 부를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내 입에 더러운 일본어를 담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름을 아는, 적이 아닌 일본인따위도 만들고싶지 않습니다.”
말이 끝나자 마자 옥안은 아차 싶었다. 옥안의 말은 자신이 타쿠야를 이젠 적이 아니라고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앞의 공격적인 말들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알아들은 타쿠야의 귀에 어른거리는 말은 “적이 아닌” 이었다.
조금은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거리가 좁혀졌다는 생각에 타쿠야의 마음엔 물밀듯 밀려오는 감격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겉으로 기뻐하면 옥안이 당황하며 다시는 그렇게 말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타쿠야는 아무일 없는척 떨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럼 제게 조선 이름을 지어주세요.”
옥안이 책상을 탁 소리가 나게 짚으며 일어나며 말했다.
“한글의 가치를 떨어트려 일본인에게 주고싶지 않습니다.”
뒤돌아서는 옥안의 손목을 타쿠야가 힘을주어 잡았다. 옥안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타쿠야의 손을 뿌리쳤다.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타쿠야의 마음이 무색해져 버렸다. 타쿠야의 들떴던 마음이 조금 침체되는듯 했다. 자신이 어찌해도 타쿠야는 옥안에겐 그저 혐오스러운 일본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더 당황한 것은 옥안이었다. 심장소리가 제 귀에 들릴만큼 심장이 크게 뛰는 듯 했다.
타쿠야가 옥안의 손목을 잡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옥안의 손목을 감쌌고 그 열기가 팔을 타고 올라가 머리까지 오는듯 해 옥안은 질겁하고 타쿠야의 손을 뿌리친 것이다.
그 열기와 그 감정이 가슴과 머리께까지 전달될 것 같아 겁을 먹고 쳐낸 것이다.
“나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두번을 살려줘고, 이젠 미움받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는데도 이름하나 얻지 못합니까?”
내용은 투정같았지만 말하는 타쿠야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일본인은 내게 사람이 아닙니다.”
옥안은 자신의 말이 정말 도리에 어긋나고, 자신의 행동이 사람에게 할 짓이 아닌것을 알았다.
실은 타쿠야를 만난 이후 주변을 눈여겨 보니, 자신의 주변에 주민들을 돕는 일본인들도 한둘 발견했고 타쿠야도 그런 사람임을 마음으로는 이미 알고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가 위치인만큼, 또 자신의 삶에 있었던 수많은 일본인들을 경험한 만큼 옥안은 타쿠야를 믿으면 안됐다.
다른이들은 믿어도 자신은 그럴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옥안은 자신이 시위대와 주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에, 자신이 무너지면 모든것이 무너지는 것을 알았다.
자신만큼은 빈틈이 있으면 안된다. 만약 타쿠야가 옥안이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라면 어떻게 되는것인가. 순식간에 모든게 무너질 것이 뻔했다.
가려하는 옥안을 잡으며 타쿠야가 알겠으니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테니 잠시만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옥안은 주저하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예전엔 그를 받아들이는 양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를 밀어내는 양에 한계가 생겼다. 좋지 않은 일이었다.
“저는 조선의 선함이 좋습니다. 조선의 연약함 속에 나오는 강함이 좋고, 조선의 정이 좋습니다.”
“정. 참 좋은 단어이지요” 옥안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타쿠야는 처음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으로써가 아닌, 혐오와 불신이 없는 대화를 한 기분이었다. 타쿠야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옥안은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순수한 일본인이 조선의 무엇을 사랑하는지까지 들어버리면 정말 어쩔 수 없게 되버릴 것만 같았다.
“조선의 색인 하얀색이 좋습니다. 티없이 맑고 굳은 의지의, 강한 당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저는, 조선의 당신이 좋습니다.”
“….네?”
듣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옥안은 자신도 모르게 얼이 빠진채 대답을 하고 말았다.
타쿠야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조선의 장옥안이 좋습니다.”
옥안 순간 마음이 나락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길로 문을 열고 다방을 뛰쳐나왔다.
옥안은 자신이 그에게 연정을 품고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거부할 수가 없을 정도란 걸 깨달았다. 아니, 이미 거부해도 소용이 없단걸 깨달았다.
옥안은 자신이 늪에 빠진 사람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늪에 빠진지는 오래지만, 언제 늪위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너무 서서히 빠져서 이렇게까지 깊이 빠진줄 모르는 사람.
사랑에 빠지면 설레이고 날아갈 것 같다 들었다. 배가 간지럽고 그 사람 생각하면 행복하다 들었다.
하지만 옥안은 사랑에 빠진 저가 불행해만 보였다.
늪에 천천히 빠지는 것도 모르다, 방금 타쿠야의 그 말로 자신이 더이상 늪에서 올라오지도 못하게 팔까지, 아니 숨쉬지도 못하게 머리까지 이미 빠졌다는걸 깨달았다.
옥안은 냄비에 물과 함께 넣고 천천히 온도를 올리면 뜨거워지는 것을 모른채 익어가다 그냥 죽고마는 개구리마냥, 이미 죽어버린 후 자신이 죽었다는 걸 깨달은 기분이었다.
옥안은 이젠 나올수도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을수도 없게 죽어버렸다.
옥안은 그냥 헤어나올수 없는 구덩이로, 나락으로 떨어져 바닥을 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어째서 일본인을 사랑하나.’ 옥안은 스스로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선한사람이라 하여도 옥안이 어찌. 부모의 원수를. 친구들을 살해한 자를. 그들의 고통과 희생을 잊고 일본인을 사랑한단 말인가.
이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마저도 저 사람만큼은 다른사람으로 보면 안되냐며 고뇌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옥안은 부들부들 떨며 팔로 자신을 감쌌다. 그러나 손으로 잡은 자신의 팔은 마치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니, 옥안의 입장에선 자기손으로 제 어미를 죽인 이후로 단 한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동료가 죽어가고 자신을 자식처럼 여기던 동네 어른들이 죽어가도 눈물을 아꼈다. 하지만 옥안은 그 후의 첫 눈물을 타쿠야의 편지를 읽으며 흘렸다.
사람의 죽음에도 동포의 죽음에도 아끼던 눈물을 일본인에게 그것도 연정을 느껴 써버렸다. 그때 옥안은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눈물이 멈추지않고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고, 눈을 두 손으로 눌러보아도, 눈물이 비집고 흘러내렸다.
옥안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저 그자리에서 눈물만 흘리며 이젠 다 포기하고 싶다 생각했다.
골목 구석에 서서 숨죽을 죽인채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때처럼 소리내지 못하고 울었다. 눈이 아프고 두개골이 울릴 때 까지 울었다.
지금 옥안이 타쿠야에게 품은 연정이 어머니를 잃었을 때처럼 자기를 슬프게한단 말인가.
옥안은 어머니가 죽은 그날 처럼 다시 갈곳을 잃었다.
며칠 후 옥안의 시위대에 정보를 캐내는 일을 맡고 있는 지환이 온몸에 피를 흘리며 절뚝대며 거처에 돌아왔다.
그에게 물을 먹이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일본군쪽에서 타쿠야의 정체와 목적을 알아챘다는 이야기를 했다.
타쿠야가 일본군에게 가져오는 정보는 늘 쓸데가 없었고, 일본군이 사람을 붙여 타쿠야가 집에가는 길을 미행해봐도 조선인을 괴롭히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조선인을 직접적으로 때리려 자신의 몸을 쓰는게 더러워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기에 일본군은 지켜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인 것 치고 한국인 비하하는 말을 한적도, 조선인들에 연루된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직접 자신의 몸을 움직여 조선인을 더럽히지 않는 일본인들도 조선인에 대해 말을 할때는 특유의 경멸과 천박하다는 눈빛을 갖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타쿠야는 그것이 없었다.
거짓말하지 못하고 양심에 찔려 조선인을 함부로 말하지 못한 타쿠야의 정직함과 순수함이 오히려 그에게 독이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거리에서 사진을 찍던 타쿠야 앞에서 일본군은 일부러 어린 여자아이를 폭행했다. 일본군들은 떨리는 타쿠야의 손과 눈빛, 그리고 입술을 놓치지 않았다.
일본군들이 그 아이를 대로변에서 강간하겠다며 옷을 벗기려는 찰나 그 아이의 할머니가 멀리서 눈물을 흘리며 뛰어와 그 어린아이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할머니를 떼내자며 일본군들이 할머니를 짓밟고 침을 뱉기 시작했고 타쿠야는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몸으로 감싸 보호해 버린 것이다.
그길로 타쿠야는 일본군 고문실로 끌려갔고 온갖 추궁과 고문을 당했다.
하지만 타쿠야는 조선에 대해 그 어떤 정보도 입을 열지 않으며 모른다고 일관했고, 자신의 목적에 대해서도 뻔뻔하게 둘러댔다.
아니 타쿠야는 실제로 중요한 조선에 정보에 대해선 잘 알지못했다.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은 타쿠야가 혹여나 훗날 자신이 고문을 당할 일이 생겼을 때, 두려움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것을 걱정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결국 타쿠야의 입을 열지못했다 느낀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타쿠야의 목적을 불게하려는 속셈으로 조선에 제일가는 정보통인 지환을 잡은 것이다.
지환과 타쿠야는 함께 고문을 받았으나 둘다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함께 방에 가두어졌다. 방 안에서 둘이 혹여나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라도 하면 밖에서 엿들으려는 일본군의 잔꾀였다.
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일본군 기지의 지리와 특성, 그리고 시간표들을 외워버린 타쿠야의 덕에 둘은 간신히 도망쳤다.
지환은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타쿠야가 자신을 먼저 도망가라고 보냈다고 말했다. 자신은 더 길을 잘 알기에 늦게가도 도망칠 방법이 있으니 괜찮다며 지환부터 보낸다는 것이다.
“실은 옥안형이 처음에 믿을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며 그의 말 한마디에 거처를 옮기고 도망쳐야한다고 결정했을 때 나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그 덕에 살게 된걸 확인한 후에도 나는 그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꺼림직했고요. 하지만.. 난 오늘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어요.
그는 오히려 일본인임이기에 이런 위험을 안고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 생사의 길에서도 조선인을 살리기위해 자신이 위험을 떠안았어요.
형…. 나는 내가 모르는건 있고 배울것은 많아도, 아는것에 한해서는 내가 틀릴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세상은 내가 모르는 일로 가득차있네요.”
옥안 덜덜떨면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곳에 모인 청년들은 옥안이 혹여나 타쿠야가 다시 잡혀갔다면 고문끝에 지쳐 정보가 새어나갈까 두려워하는건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원들은 옥안의 두려워하는 모습이 처음이었다. 그 어떤자의 죽음에도 의연했던 옥안이기에, 누군가의 죽음으로 옥안이 두려워 할꺼라고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환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 왜이렇게 걱정해요. 형이 더 잘알꺼 아니예요 그사람 그런사람 아니란거.”
옥안은 자기가 왜이리 두려워하고 떨고있는지 자기도 몰랐다. 아니 실은 부정하고 싶은 것 뿐이지 정확히 알고있었다.
옥안만 아니었다면 타쿠야는 제 3자로 방관하다 안전히 살 수 있었던 사람인데, 옥안으로 인해 연류되었기 때문이었다.
옥안이 아니었다면 양심에 찔린다해도 안전하게는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옥안을 구하느라 두번,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익숙해져 다른 조선인마저 구하려다 위험하게 된것이다.
옥안은 자신이 그 사람을 이런 위험한길로 빠트린 것 같았다. 타쿠야의 집에서 비아냥 거리며 그를 겁쟁이라고 불렀던 자신이 생각났다.
자신이 타쿠야를 후에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면서, 아니 그가 얼마나 순수한이 인지도 모르던 상태에서 그를 겁쟁이라며 자극했던 자신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를 위험에 빠트렸단 죄책감보다 옥안의 마음을 더 옥죄여 오는 것은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타쿠야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일본인은 다 죽어도 마땅하다며 일본인의 죽음에는 오해도 변명도 이유도 슬픔도 없다고 주장하던, 아니 조선인의 죽음에도 태연하려던 자신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었다.
옥안은 낮게 읊조렸다.
“내가 죄없는 사람을….”
그리고 옥안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늘 일본인의 존재 자체가 죄라고 주장하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물밀듯 꾸역꾸역 들어오는 생각들에 옥안은 파르르르 떨다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시위대에는 그저 타쿠야의 집에 들키면 안되는 정보가 많은데 혹시모르니 처분하겠다며 옥안은 거처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옥안이 숨도 쉬지 못할정도로 헉헉대며 타쿠야의 집으로 뛰쳐가는도중 절뚝거리며 피칠갑을 하고 돌담에 기대어 있는 타쿠야를 보았다.
장옥안과 눈이 마주친 타쿠야는 힘겹게 눈을 뜨며 옥안에게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옥안씨가 생색낸다 생각할까 보여주고싶지 않았는데. 동료들의 죽음과 부상으로 걱정하는거에 모자라 저까지 걱정하게 하다니. 죄송합니다.”
“난 당신을 걱정해서 온게 아닙니다! 혹여나 당신이 갖고있는 정보중에 우리에게 해가되는 정보가 발각될까 걱정되어 집을 뒤지러 온것입니다.”
당황하여 원치않는 말을 쏟아내던 옥안은 말을 멈추고 타쿠야의 몸을 그제서야 제대로 보았다. 온몸이 피투성이에 벌어진 상처에선 진물이 새어나왔다.
눈시울이 붉어졌고 온갖생각이 스쳐지나가다 옥안은 이내 울분을 터트리며 소리질렀다.
“난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착한사람이 아니야! 난 동료의 죽음에도 눈물도 흘리지않고 그것을 기회로 이용하며 살아가는 잔인한 사람이란 말이다!
대를 위하여 항상 소를 희생하며 그것을 정당화 하며 살아가! 조국을 위한다고 얘기하지만 주변인의 죽음은 당연시 여겨! 슬퍼할 틈도 내겐 허락되지 않아!
나의 흔들림은 곧 전체의 흔들림이기에 난 늘 의연하다! 살기위해 뻔뻔하게 어머니를 죽인 난… 난!!!”
숨기고 억압하며 눌러왔던 감정들이, 새어나올때마다 다시 꾸역꾸역 쑤셔넣고 잠그려했던 그 감정들이 폭발해
옥안도 모르게 옥안이 평소에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 자책하던 것들을 쏟아냈다.
무너지는 옥안은 처음봤기에 타쿠야는 당황했지만 곧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어쩌죠, 난 이미 봐버렸어요. 자기 먹을것을 줄이며 동네주민에게 먹을걸 나눠주는 당신을.
시위중 다쳐버려서 솔직히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더이상 쓸모없는 동료를 버리지 못하고 들쳐업고 힘들게 한걸음을 디딛는 당신을.
혐오하던 일본인의 생명마저 걱정이 되어 눈에 눈물을 담고 한달음에 달려나온 당신을.”
옥안이 붉어진 눈으로 뭐라 말하려던 찰나 타쿠야가 말을 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당신은.
힘을 합쳐 일본군에 대항해도 모자랄 상황에 살기위해 서로를 해치지못해 안달인 조선에서
당신 주변에는 모두가 싸움이 없고 마치 전쟁이 없는 곳 같았습니다. 일본군의 만행은 계속됐지만, 적어도 당신 주변인들의 마음에는 서로를 향한 전쟁은 없었습니다.
시위대 청년들은 당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보호했고, 마을사람들은 당신만 보면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물정을 몰라 순진할수밖에 없었고, 현실에 부딫히자 선함을 잃어버리고 연약하게 흔들렸던 나와는 달리
모진 풍파를 겪고도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당신은..
적어도 나에게 .. 옥안씨 당신은 선한사람입니다”
옥안은 이제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두들 그에게 기대기만했다. 그들에게 옥안이 강한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옥안을 마치 지치지 않는 사람처럼 봤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처럼 동경하며 그를 추켜세웠다.
옥안의 한마디가 많은 이의 생사를 결정하는 그 곳에서, 자신의 생사를 옥안에게 맡기고 순종하는 그곳에서 매일 누구를 죽여하야는 옥안의 결정에 불만없이 따르는 그곳에서.
옥안은 때론 숨이 막혔다.
하지만 타쿠야는 옥안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옥안을 강하고 선하다 말했다.
타쿠야에겐 옥안의 무너지지 않음만이 옥안의 강한점이 아니였던 것이다. 옥안을 막강하게 신뢰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옥안을 옳게 봤다.
시위대의 영웅 장옥안이 아닌 사람 장옥안을 봐준 사람은 타쿠야가 처음이었다. 그러고도 강하고 선하다 말해준 사람은 타쿠야가 처음이었다.
옥안은 눈물날 것 같은 눈을 누르며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다 말하고 타쿠야를 부축해 타쿠야 집에 들어갔다. 타쿠야를 도와 중요한 사진을 다 정리해 짐가방에 넣었다.
사진을 정리하던 중 옥안은 자기사진이 들어있는 큰 액자를 보고 민망한 기분이들어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자 갑자기 타쿠야가 그 사진을 가르키며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띄며 옥안에게 물었다.
“이 천 안에 어떤 사진이 들어있는지 아십니까?”
옥안은 필요 이상으로 경직하고 놀랐다. 타쿠야가 옥안이 그 사진을 봤다는 것을 알고 물어보는 것인지 모르고 물어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순수한 타쿠야의 표정을 보니 모르고 물어보는 듯 해 옥안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타쿠야가 그 사진을 애정하는 연인을 보듯 애뜻하게 바라보며 한 이야기는 옥안을 멍하게했다.
“아름다움이 들어있습니다.”
“….네?”
“저 안에는 세상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좋은것만 보고 좋은것만 들은 제가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담겨있습니다.
조선의 아름답다는 단어는 어여쁘다나 절세미인이다 와는 다른 단어라고 하기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뜻을 담은 단어라 하였는데 나는 살면서 그런것을 본 적이 없어 그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저에게 아 저것이 아름다움이구나 라고 느끼게 한 것이 있었고 저는 그것을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일본에 돌아가 진실을 알리게 되고 나중에 사진들을 모아 사진전을 열게된다면 저 사진은 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것이고 사람들은 저 사진을 앞에서서 말하겠지요.
아 아름답다.
참으로 아름답다.”
옥안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옥안이 다른 생각을 할 찰나도 없이 타쿠야가 웃으며 말했다.
“짐을 더 빨리 싸야겠군요. 처리할 일이 있어 오늘 당장 떠나진 못하지만 이 집은 들켰으니 일단은 오늘은 아는 분 집에 묵어야 할 듯 합니다.
내일 새벽에 아는 서양친구의 배를 타고 조용히 떠날 예정인데 그전에 한번만이라도 절 만나주시겠습니까?”
한참의 침묵 뒤 옥안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왜 나오지 못하는지, 무엇이 미안한지 그 어떤 설명도 없는 미안하다는 말에 타쿠야는 슬프게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옥안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몸에 열은 떨어질 줄 몰랐고 빨리뛰는 심장은 늦출 줄을 몰랐다. 머리속엔 그저 아름답다는 말과 아름답다고 얘기하던 타쿠야의 표정만 맴돌았다.
옥안은 아녀자도 아니고 하물며 선이 고운 남정네도 아니었다. 몸은 못먹어 여리여리하다 하여도 얼굴은 말하자면 남자답게 생긴 기개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고운 것은 옥안보다 타쿠야의 얼굴이 더 가까웠다.
그런데 어찌 자신을 아름답다 하였을까. 옥안은 알것만 같았지만 인정하면 아니 될것만 같았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그 사진을 애인보듯 보던 타쿠야의 표정만 생각났다.
옥안은 이내 받아들였다. 자신만 연정을 품은게 아니고 그도 자신에게 연정을 품었구나. 그저 관심이라기엔 많이 큰것 같았는데. 연정이 맞았구나.
그러자 옥안은 내일이면 타쿠야가 떠난 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일이면 타쿠야를 정말 평생 보지 못할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옥안은 실감은 않지만 마음은 먹먹했다. 옥안의 인생에 평생 보지 못하게 된자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그 슬픔을 알지만 이번은 그 감정을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옥안의 인생에 평생보지 못하게 되는 이별은 죽음밖에 없었다. 옥안은 그것도 아닌데 슬퍼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그래도. 옥안은 죽었다는 그 사실의 슬픔과 평생 보지 못하게 된다는것의 슬픔이 어찌 다른지 너무도 뼈저리게 아는 사람이었다. 옥안은 갑자기 일어나 양초를 켰다.
아는이의 집에 누워있던 타쿠야는 그저 슬펐다. 내일이면 옥안씨를 다신 보지 못하는구나. 내 평생 처음 느껴본 이 연정.
타쿠야는 자신이 다시 누군가를 이런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사랑은 또 하겠지만 누군가를 옥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 같은 마음으로 이리 타들어가듯 사랑할 사람이 생길까.
그 사람을 내 목표로 삼고, 동경하고 되고싶어하며 동시에 사랑할 사람이 생길까…
아니 자신이 옥안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약했다.
청년이지만 마냥 어리지많은 않은 나이에 곱고 잘생긴 얼굴의 타쿠야는 연애를 경험하지 못한 소년도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 나름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경험도 해보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것은 그것과는 조금. 아니 너무 다른 감정이었다.
사랑이란 설명으로는 담을 수 없는 깊은 무엇인가가 있었다.
세상에 옥안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 같았다.
타쿠야는 조선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현실을 떠올렸다. 타쿠야의 가슴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타쿠야는 왠지 자신이 도망치는 기분이 들었다.
옥안과 나머지 조선인들은 이리 고문당하고 고통당하고 주변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죽어나가도 도망갈 곳이 없기에 계속 견디고 있는데
타쿠야 자신은 그 조금의 고문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기분이 들었다.
진실을 밝혀야하기에, 정보가 압수당하면 안되기에 라고 되내어 보지만 타쿠야는 뭔가 변명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것보다 저가 결국 옥안에게 조금도 특별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끝이 없는 물에 잠긴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조금의 상처도 아물지 못하고 구멍도 채워주지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한 채 가야하는구나.
타쿠야는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새벽에 일어난 타쿠야는 일찍이 일처리를 끝내고 다시 집에 다시와 짐을 챙긴뒤 선박장으로 나섰다.
집의 문을 열었는데 집 앞에 옥안이 서있었다.
타쿠야는 정말 당황스럽지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옥안을 그대로 안고싶었다.
옥안이 나와준것도 좋았지만 그저 얼굴을 한번 더 볼 수 있는 기쁨에 그를 꼭 안고싶었다.
하지만 안으면 옥안이 어찌할지 알기에 타쿠야는 용기내어 옥안의 한쪽 손만 꼬옥 잡았다.
옥안 당황했지만 타쿠야가 쓴웃음을 지으며 행여나 옥안이 손을 놓을까 다급히 말했다.
“저 이제 다신 옥안씨 보지 못합니다. 조금만 용서해주세요.”
옥안은 당황한 얼굴로 타쿠야와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선박장은 일본군의 감시가 심하기에 같이 갈 수가 없습니다.”
“네 알고있어요. 괜찮아요. 지금 얼굴 본 것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 이걸 받으십시오.”
옥안이 잡히지 않은손으로 내민 것은 언젠가 타쿠야가 옥안을 떠올리게 한다 했던 하얀색 천이 뭔가를 납작한 것을 싸고있는 형태였다.
“안전할때 여십시오.”
타쿠야는 이 것이 무엇인지도 자신을 향한건지도 그 무엇도 알지 못해 뭐라 말해야할지 몰랐다.
늘 옥안이 침묵했는데 타쿠야가 당황해 침묵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옥안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눈을 꼭 감고 옮기려는 찰나 타쿠야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 옥안씨”
옥안이 가려던 발길을 멈추고 타쿠야를 향해 섰다.
“제가 비겁하다 생각치는 않으십니까.
옥안씨가 그때 말하셨듯 저는 겁쟁이가 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렇게 도망갑니다. 당신이 견딘 그 어떤것도 견디지 못하고 이대로 도망갑니다.”
옥안이 한참을 땅만 보다 타쿠야와 눈을 맞추며 처음보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실을 전해주십시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그때 그 왕이 어떤 죄를 지었고 그 신하는 얼마나 억울했는지는.. 진실을 결국 밝힌 사람에 의해 역사에 기록되어 후손만이 압니다.
저도 대역죄으로 몰려 돌아가신 아버지가 있기에 압니다.
진실을 전하는 자가 없다면 후손도 왜곡된 진실을 배우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아팠는지 나라를 지키려 애썼는지 아무도 모를 것 입니다.
지금 저희가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후에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올바른 지식으로 잘못된 것 들을 고쳐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일본에게 침략당해도, 억울하게 죽어나가도 후손이 알아주고 그 다음 후손이 알아주어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들은 헛되게 사라지지 않을 것 입니다.
제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죽음도 그리고 저의 죽음도.”
옥안이 스스로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타쿠야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것들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억울한 역사를 모른채 당연히 일본의 속국으로 살겠지만 그 다음사람이 알고 그 다음사람이 알고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지금의 우리가 진다해도, 지금의 나는 죽는다해도, 우리는 지지 않는것이 되고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그들의 기억속에 살겠지요.
각자의 역할이 다른 것 뿐입니다. 직접적으로 몸을 부딫히며 싸우는 것이 내 역할이라면
그것을 넘어 후손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이 당신의 역할일 뿐입니다.
조선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냥 얼핏 들으면 동방의 나라라는 뜻이지만, 동쪽은 해가 뜨는 곳입니다.
조선은 아침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터 조선엔 아침이 오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턴 조선은 빛을 잃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내 대에서 조선에 아침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대가 후대에게 아침을 가져오라 전해주십시오.
나는 당신이 겁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서 진실을 전해주세요.”
타쿠야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타쿠야 스스로조차도 자신이 떠나는 이유가 확실히 진실을 위하여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옥안이 저렇게 자신이 떠나는 이유를 확고하게 믿고 이야기해주니 부끄러웠다.
타쿠야 눈물을 참고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
옥안은 발걸음을 급히 옮겨서 다음 시위장소로 갔다. 그런데 무언가 잘못된 듯 보였다.
평소보던 일개 일본군들이 아니고 옥안의 기억이 맞다면 중요한 간부급의 일본 대장들이 하나의 시위를 막으려 왔다고는 보기 힘든 숫자의 군대를 이끌고 서있었다.
일본군 한명이 나와 어눌한 조선말로 소리쳤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그 것 하나만 들어준다면 우리는 안전을 보장한다! 너희가 스스로 장옥안만 내놓는다면 우리는 너희를 건드리지 않고 돌아가겠다!”
실은 시위대 정원이 오랫동안 시위를 해왔기에 옥안하나가 없어진다고 능력적으로 무너지진 않을터다.
하지만 옥안이 워낙 정신적으로 그들의 지주역할을 하다보니 옥안이 없으면 시위대가 제 역할을 못한다기 보단 다들 정신적으로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옥안이 늘 희생하며 사는 선한사람이라는것을 익히 들어서 아는 일본인의 책략이었다.
일본군은 옥안정도로 바르고 희생적인 사람이라면 주변인이 말리면 말릴수록 알아서 나오리라 생각했다.
역시나 일본군의 예상대로 시위대 청년들은 안된다며 저것은 분명 속임수이니 속지말라며 말렸다.
일본 간부들은 얼굴에 비릿한 웃음을 띄었다. 자기들의 생각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은 장옥안은 그들이 생각한것보다 더 큰 그릇이라는 사실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옥안이 말했다.
“나가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순식간에 간부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실 일본군이 목표한 것은 장옥안 그 하나만 없애는것이 아니었다.
옥안이 워낙 정신적 지주기에 마을사람이 되었던 시위대 청년들이 되었던 그를 넘겨주지는 않을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내분이 일어나 그를 넘기자는 의견이 나와 희생적인 옥안이 동의해 옥안을 넘긴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내부부터 붕괴되어 신뢰를 깰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옥안이 스스로 나온다 하여도 나머지 시위단들은 옥안하나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에 더 무너질것임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계획과 예상을 깨고 옥안이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이해할수 없어 조급한 마음에 간부들은 조선말이 되는 일본군을 시켜 인신공격을 시작했다
“장옥안 너만 스스로 나오면 다 살수 있는데! 이렇게 이기적이라니! 너희 시위대는 너희 전체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 목숨하나 못바치는 놈을 따른단 말이냐?”
이때 옥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나가지 않는 첫째 이유는 내가 너희들의 말을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취했을 때 내 동료들을 무사히 보낼 이유가 없지 않나?
아마 나를 취한 후 내 앞에서 약속을 어기며 저들을 말살하며 희열을 느끼려는 속셈이겠지! 둘째. 너희가 이것을 통해 하려는 일이 뻔히 보인다!
너희들의 머리로 나온 계획이 이정도 수준밖에 안되는것은 당연한것 아니냐? 나는 스스로 이 곳에서의 나의 중요성을 안다! 내가 없어지면 결국 이곳도 죽는것을 안다!”
일본군이 통역해 옥안의 말을 간부에게 일본어로 전하자 간부들은 울그락 풀그락 해진 얼굴로 일본인군에게 무차별로 폭력을 명령했다.
긴 혈투끝에 시위대 전원이 잡혔고 일본군은 옥안의 머리채를 잡고 우악스럽게 혼자 앉혔다.
그리고 나머지 시위단 모두에게 총을 겨눠 옥안이 그들의 얼굴을 볼수있게 옥안과 마주보고 일렬로 무릎을 꿇게했다.
통역하는 일본군이 전했다.
“이제부터 장옥안 너에게 너희 시위대의 계획과 테라다 타쿠야에 대해 질문을 할텐데 대답을 거부할 때 마다 너의 눈앞에서 한명씩 쏴 죽이겠다.”
간부중 하나가 비웃음을 얼굴에 띄고 일본어로 이정도면 장옥안이 미쳐서 말하게 될것이라 했다.
그러나 옥안을 포함한 시위대 전원의 표정은 너무 결연했다. 심지어 안돼요 대장! 저들의 꾐에 빠져 저희의 목숨을 정보와 맞바꾸지 마세요! 라는 신파극도 없었다.
일본군들이 당황하기 시작할 때 옥안이 얻어맞은 부은입으로 힘겹게 이야기했다.
“간부..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너희가 원하는 정보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일본군 하나가 묻는말에 대답이나 하라며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피가섞인 기침이 나왔고 옥안의 입안에는 그것보다 많은 양의 피가 맴돌았다. 그러나 이내 옥안은 그것을 뱉어내며 말했다.
“정보라는것은 허공에 떠다니는 무존재같기에 우리가 그 무게를 모르고 사람의 생명과 바꾸기엔 터무니 없이 작아보인다 생각하며 겁을내며 이야기할줄 알았나?
당신들이 원하는 그 첫번째 정보는 우리의 모두를 합친 목숨보다 무겁다. 왜냐하면 그 정보가 담고있는것은 나라의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위대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의 목숨을 버렸고, 단 한번도 목숨걸기를 아까워한 적이 없다.
동료가 옆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첫번째가 아니고, 언제나 동료의 목숨보다 더 무게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잊으려 할때마다 서로 상기시키며 고통을 씹었다.
우리에겐 이제 준비된것이 되버린 죽음이란 협박이 통할것 같으냐?
한낯 몇십명의 목숨을 나라의 존망과 맞바꿔 팔순없다. 다 죽여라”
그렇게 말하는 옥안의 눈빛은 마치 흡사 매의 것과 같았다.
“천한놈들! 우리가 장난치는줄 아는게지? 장난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줘라! 한명을 쏴죽여라!”
알아들을 수 없는 분노의 찬 간부의 일본어가 끝나기 무섭게 기웅의 앞에선 일본인이 기웅의 이마를 쏴 죽였다.
그의 몸이 두번째 시위단원의 몸위로 떨어졌지만 시위단원은 미동도 없었다. 동료의 시체가 자신의 위에 떨어졌지만 그의 눈엔 두려움이란 없어보였다.
옥안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원하는 두번째 정보의 무게를 너희는 과연 알긴 하는가? 두번째 정보는 첫번째 정보보다 더 무겁다! 첫번째는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고 두번째에는 진실이 달려있다!”
일본군이 해석을 마치자 간부들과 일본군들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한 간부가 진실? 하며 코웃음 치자 옥안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 진실! 세계가 진실을 알게되는 그 것 말이다!
우리가 지금 죽는다 해도 다음세대의 조선인 뿐 아니라 일본인,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사람들이 너희가 얼마나 더럽고 인간의 질에도 못미치는지 알게되는 그 진실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죽어도 그 다음 세대의 혼에 살아 숨쉬며 싸우는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실이 있는이상 하늘은 너희에게서 눈을 돌릴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목숨보다 지금 당장 우리 나라의 목숨보다 무겁다!”
옥안의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그 짧은 총성 안에 몇십명이 더 장옥안의 눈앞에서 죽어갔다.
옆단원의 피가 튀어도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는 단원들과 옥안의 모습은 기개를 넘어서 공포스럽기 까지 했다.
일본군이 간부의 말을 옥안에게 전했다.
“너는 총명해서 조선의 내노라하는 시위대를 이끄는 줄 알았더니 멍청한 놈이었군. 테라다 타쿠야 그 놈을 그리 믿나? 덜떨어진 놈이라 감정하나 못숨기고 우리에게 들킨놈이다!
과연 그가 살아남아 정말 진실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전에 우리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짜피 죽을것이다.”
일본군들이 소리내어 비웃는 동안 옥안이 처음으로 조소가 아닌 본인의 슬퍼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 그 사람은… 특별하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일본군이 더 크게 비웃기 시작해도 옥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람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답지 못한 너희보다 훨씬 월등하다.
생각없이 정부에 휩쓸려 살생을 놀이로 생각하고 희열을 느끼는 너희는 저급한 동물만도 못하지만 그는 자국의 실수를 인정하고, 부끄러워할줄 알며, 약자를 보듬을 줄 알았다.
무식하여 생각없이 권력에 세뇌당해 휘둘리는 누구와는 달리 옳고 그름을 스스로 구별할 줄 알았다.
자국의 부끄러움을 깨우치고 진실 하나를 알리러 불필요한 위험에 뛰어든 그는. 어리고 이상만을 좇을지는 모르나 내가 본 일본인중 유일한 사람이었다.”
옥안이 말을 마치자 간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냐며 남은 단원들을 말살했다.
총성이 멈추자 일본인의 조소만이 들리는 그 곳에서 이마에 구멍이나 고꾸라져있는 수십명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옥안은 홀로 살아남아 있었다.
시체를 욕보이며 이미 쓰러져있는 시체들에 총으로 구멍을 내 벌집처럼 만들어도 옥안의 표정은 결연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져보이는 듯 했다.
조선말이 어눌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간부가 직접 총을 들고와 옥안의 입안에 총구를 들이대며 옥안 귀에 읊조렸다.
“이래도 너는 표정이 변하지 않나보자. 이래도 끝까지 천하고 저급한 놈이 고귀한 척 하나보자.”
노한 표정의 간부가 앞에 서있는 이 와중에 머리속으로 옥안은 생각했다.
그 사람 이름이 테라다 타쿠야 였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에 총을 담고 정면으로 간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동물이 인간의 언어인 한글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말아라.”
마치 빛을 뿜는듯한 옥안의 눈에 놀란 간부는 급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옥안의 시신이 땅으로 곤두박질 쳤고, 한 일본 간부가 말했다.
“낙화했다.”
옆에 있는 다른 간부가 물었다.
“네?”
“꽃이 스러졌다. 가자.”
타쿠야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옥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옥안은 타쿠야에게 대나무같은 사람이었다. 곧고 강하며 하늘높이 쭉 뻗어있어 어디서 봐도 눈에 띄는 그런 특이하고 특별하게 생긴 나무.
가지도 많고 풀잎도 많은 나무처럼 쉬어갈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멀리서도 모두가 그의 존재를 강함을 보고 기대러 올 수 있게 굳건하고 높게 세워진 대나무.
왠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도 않으며 그자리에서 강한모습을 보여주며 그 존재만으로 힘을 주고 위로를 주는 사람.
하지만 너무 강하고 곧기에 큰 태풍에는 부러질 것 같은 사람. 단단한 만큼 속이 텅 비어있는 사람.
타쿠야는 그 텅 빈 속을 채워주지 못함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자신의 부족함이 화가났다. 눈물이 날것같고 옥안이 걱정이 되었다.
며칠후 미국의 벗의 집에 도착한 타쿠야는 옥안이 건냈던 하얀 천포대기를 펴보았다.
옥안이 안전한 곳에서 읽길 바랬기에 안전하다 느낄 때 열어보고 싶었다. 또한 조용히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보고 싶었다.
적어도 조선을 멀리 떠나 돌이킬 수 없을 거리에서 열고 싶었다. 섣불리 열었다가 다시 뱃머리를 돌려 조선으로 돌아가자고 할까봐 열어보지 못했다.
조심스레 연 그 안에는 종이 한장이 들어있었다. 벌써부터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타구야가 그 종이를 마치 부서지는 낙엽마냥 조심스레 열자 알수있었다. 그 소중히 천으로 싼 물건은 편지였다.
눈물로 흐릿한 눈을 깜빡이며 첫줄을 읽었다.
도 연씨께.
타쿠야는 당황스러웠다. 도…연? 들어본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설마 옥안이 편지를 전해달라는 목적으로 준건가 싶어 마음이 가라앉았다.
자신에게 줬다고 기대해 눈물 흘렸던 자신의 마음이 초라했다. 하지만 곧 이 이름도 처음들어보는 이를 어찌 찾나 고민이 들었다.
예의에 어긋나지만 편지를 읽어보면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또한 자신에게 준 것이 없는만큼 타쿠야는 옥안의 흔적이라도 읽고싶었다.
道緣 씨께.
緣 이것이 무슨 연 자 인지 아시겠지요.
당신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원치 않았지만 어쩔수 없는 것도 인연이라면, 당신은 나의 인연이었습니다.
난 옛부터 서로가 원하여 다가가고 처음부터 함께하는 그런 것이 인연인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니, 도망치려하고 벗어나려해도. 다시 그 사람 앞에 가있는 것도 인연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당신과는 이런 이야기를 한적은 없지요.
당신도 나의 삶을, 나의 고통을 알기에 헤아려 주리라 믿습니다.
내가 당신을 믿는다는건,
내 살아온 삶을, 그리고 일본인들로 인한 내 소중한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배반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실은 이 편지를 쓰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인연이었기에, 내 연이었기에,
다른사람은 그 사실을 다 모르고 나마저도 부정해도
당신만은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는걸 알아주길 바래 글을 적습니다.
당신은 내게 갈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당신은 마치 갈대처럼 부드럽게 그 누구에게도 유하게.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던 나에게도 유했습니다.
당신을 잘 모를때는 당신은 갈대처럼
줏대없이 의견없이 그저 흐름대로 흔들리는 이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보다도 강하더군요.
빳빳하여 바람을 늘 거스르기에 언젠가는 부서질 나와는 달리
당신은 그 바람을 타며 부러지지 않는 부드러운 강함을 가진 이었습니다.
한때는 당신이 조선인이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적어도 조선인이라면 내가 당신을 덜 아프게 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아픔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나도 당신에게 함부로 상처입히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상처가 될 날이 두려워
내가 먼저 상처주었던 나는 아직 멀었습니다.
늘 모두의 위에서 모두가 나에게 기대며 나의 한마디가 모든것을 좌지우지하는것이 큰 부담이었던것과 동시에
내가 마치 모든 것을 깨우친 성인이 된 기분을 들게 했지요.
당신을 만나고 나이가 그리고 대장됨이 성인을 뜻하는것이 아니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이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정말 인연처럼 만나게 된다면
다시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약속합니다.
이번에 당신을 부정하고 도망간 만큼
그때는 모든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겠습니다.
나의 남은 생과 남은 길을 그대와 함께 걷겠습니다.
거부하지 못하고 도망가지 못한 초라한 인연이지만
비참하게 눈물마저 잊고 살아간 불행한 내 삶에
나를 위해 사는법을 잊어 남만을 위해 나를 다 써버리며 살아가던 나의 삶에
취한 듯 짧았지만,
나의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이었습니다.
내 생에 당신을 만난 날처럼 아름다운 날이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더 많지만 당신은 아실꺼라 믿습니다.
먼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이번엔 다신 놓지 않겠습니다.
이 생에 못한 사랑, 이 생에 못한 인연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내가 혹 또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놓으려 한다면..
나를 놓지말아요.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알고싶지 않다했지만 알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을테니.
당신은 나에게 나의 연으로 기억되겠지요.
당신의 한국이름입니다 도연.
나에게 있어서 당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불필요한것 없이 필요한 단어만 담은.
길 도, 인연 연.
도씨 성에 외자 이름 연.
나의 길에 연이 되어준 그대.
그런 당신의 이름.
연.
- 장옥안.
——————————————————————————
- 40년 후 -
광화문 거리에 일본인 작가의 사진전이 열렸다.
사진전은 예술에 관심이 있는자가 아니고는 잘 방문하지 않지만 이 작가의 특이한 점들이 많은 한국인들의 발을 이끌었다.
첫번째 그는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도연 이라는 자신의 한국이름을 고집하는 사람이었고
두번째 그의 사진전의 제목은 일제강점기: 아름다움 이었다.
열리기 전까지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일제강점기와 아름다움을 함께 붙였으니 분명 한국의 역사를 조롱하려는 것이다, 한글 이름도 다 수법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한장의 사진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을 알게된 후에는 궁금한 마음으로 그 사진전에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의 사진전도 특이했는데 그의 사진전을 들어가는 문을 열면 바로 앞에 늘 같은 글귀를 긴 액자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곳에는 그렇게 써있다.
옥안씨
몇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진실을 알립니다.
몇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당신의 빛에 걸맞는 당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말한것 처럼
당신은 죽지않아 내안에 그리고 당신들의 후손들 안에 살아숨쉽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천에 싸인 사진은
훗날 모두가 멈춰서 아름답다 라고 말할 것이라고.
나는 그 사진으로 그대가 그리 원하던
평화를 일궈내고 있습니다.
나의 연.
조선에 아침이 왔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이제 편히 웃으며 피는 날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도연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며 수군대곤했다 자신들이 아는 그 청년 독립투사 장옥안이 맞는지.
그 일본인 작가는 수많은 기자들이 이 질문을 해도 그저 웃기만 했다.
가장 중앙에 걸려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받은 사진작품은 다른 사진들과는 다른 압도적인 크기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사진이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점은 그 사진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 때문이었다.
사진전 안에 전시된 다른 사진들은 어떤것은 잔혹하리만큼 처절하고, 어떤것들은 정말 볼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시체들을 담고있는 사진들이었다.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흔적들 뿐이었다.
정말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역사와 진실을 잘 담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서러움의 한이 느껴질 정도의 사진들 속에서
그 사진만이 빛이 났다.
사진이 빛이 난다는 표현은 우습지만 정말 그말 이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 사진속에는 피로 뒤덮인 간신히 의식만을 잡고있는듯한 동료를 등에 메고
가녀린 다리로 힘겹게 한걸음을 딛으며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악을지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청년 독립투사 장옥안이 맞았다.
그 사진은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처절하지 않고 고통스럽기보단 강했다.
그의 모습은 위태롭지만 굳세고 강했다.
다른사진들이 연약해 당하고 아프기만했던 우리네를 담았다면
그 사진은 아름다움이 뿜어져나왔다.
그래. 그 사진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장옥안에게서 빛이 났다.
어째서인지 모르나 사람들은 그 사진앞에서는 숨을 멈췄다.
마치 기도라도 하듯 경건해졌다. 그리고 홀린듯 이야기했다.
“아름답다…”
눈덮인 광화문 거리를 혼자 걷는 이가 있었다. 그는 이 사진전의 작가 도연이었다.
나이가 들어 주름이 잡힌 노인이지만 그에겐 특유의 여유로움과 기품이 있었다.
광화문 앞에 멈춰서 그가 입을 열었다.
“옥안씨.
사실 당신과의 추억이 가장 많은 곳에서 진실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조선이 많이 변했습니다.
당신과 나와의 추억이 가득한 곳들은 예전것을 알아볼수 없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변하지 않은 당신이 줄곧 시위하던 광화문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옥안씨.
보고있길 바랍니다.
당신이 일구고 간것을 내가 하나도 헛되지 않게 수확합니다.
당신이 말한것들이 맞았습니다. 지금 조선은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고, 나라안에서 진실을 추억하며 잊지 않으려 합니다.
당신이 준 편지는 잘 읽었습니다. 읽는동안 숨도 쉴수 없었습니다.
장옥안 세 글자로 편지가 끝나는 순간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떨어졌습니다. 꺽꺽대며 한참을 추하게 울었었지요.
행여나 당신이 보낸 편지가, 당신의 마지막 흔적이 번질까 편지를 손에 꼭 쥐고 눈물이 닿지 않게 흐느꼈습니다.
아니 오열했지요.
실은 슬펐는지 기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날 거부하기만 했다고 느꼈던 당신이 날 연이라 불러준것이 기뻤는지
아니면 진작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못하고 더 많이 해주지 못한것이 슬펐는지.
하지만 단 한가지가 기뻐 숨을 쉴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당신의 빈공간을 채워준것이.
공허하고 위태로운 마음에 자리를 잡은것이.
그 편지를 읽고 당신은 이제 잘 지낼수 있겠지 싶었지만 왜 그리도 급하게 가셨는지요.
다시 볼날을 꿈꾸는 내가 있었는데.
그치만 원망치는 않습니다. 그런 당신을 나는 사랑했습니다.
난 이제 주름이 진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을 추억하고 잊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당신이 날 사랑했다고만 했으면 쉽게 잊을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연이라는 그 말이 너무 강해서
당신이 내게 준 이름이 너무 깊어서
나는 다른사람을 한번도 마음에 들여본 적이 없습니다.
그 단어가 당신과 나를 너무 단단히 묶어서.
사랑이라는 가벼운 감정을 설명하는 단어가 아닌듯 해서.
나는 다른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를 당신의 연이라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다음 생에 만나게 된다면
나를 놓치 않겠다 약속하셨지요
다음생에 만나게 된다면
나와 함께 평생을 걸어간다 하셨지요?
그 약속 다음생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번처럼 당신도 나를 알아보는데 오래걸린다해도
이번 생처럼 알아볼때까지 포기치 않겠습니다.
나의 연이여.
—————————————
오디션에 합격해 출연하게 된 비정상회담의 방송을 마치고 출연멤버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시간 중국대표로 나온 장위안은 방송내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의 대표로 왔다는 그 남자만 보면 자꾸만 가슴 언저리가 쑤셔왔다. 그렇다고 첫눈에 사랑에 빠질만큼 위안은 어린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자를 상대로 그것도 탐탁치 않은 일본인을 상대로 그런 아련하고 가슴저린 기분을 느낀다는것은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혼자 고민에 빠져있는 그를 누가 불렀다. 고개를 올려보니 자신을 고민하게 했던 그 일본 대표였다.
“여전히 일본인은 싫어하시네요 옥안씨”
부드러운 웃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본대표를 보며 위안은 의아했다. 자신의 한국이름을 아는것도, 여전히라 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당황하고 있는 위안의 손을 꼭 잡으며 마치 위안이 아는듯한 부드러운 웃음으로 그가 말했다.
“내가 먼저 알아봤어요.
이번 생에는 놓치지 않아요.
나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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