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 좋아해요.
몽롱하게 잔을 채우던 손이 삐끗하면서 테이블 위로는 지독한 알코올이 강을 이룬다. 에이 아까워- 테이블 한쪽 구석에 놓여진 티슈를 신경질적으로 몇 장 뽑아내어 테이블을 박박 문지른다. 금세 손까지 흥건해지는 느낌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다시 티슈를 뽑아내어, 축축해진 손에 말아쥔다. 나는 술에 약하다. 속 쓰린데...어지러운 몸을 반쯤 테이블에 기대며 너를 바라본다. 흔들림없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꽤나 진지하다. 근데 너어, 뭐라고 했지? 손안에 꼬깃꼬깃해진 티슈를 사부작거리며 느릿하게 되물었다.
...그때 네가 뭐라고 대답했던것 같은데, 그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혹여 무슨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한참 어린 놈 앞에서 그럴 순 없는 것이다. 후폭풍이 두려워 누운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한참동안 눈만 꿈뻑꿈뻑거리던 참이였다. 때마침 요란스럽게도 울려대는 벨소리에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집어들어 발신자를 확인하곤, 큼큼- 목을 몇 번 가다듬는다.
- 어, 타쿠야.
- 잘 들어갔어요?
- 그래, 고마워.
- 저 그 쪽으로 가는중인데, 밥 안먹었죠? 빨리 갈테니까 먹지말고 기다려요.
- ......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끊어진다. 너 참 제멋대로구나.
***
냄새에 예민하다. 씻지도 못하고 쓰러졌던, 밤새 내 몸 가득 배어있었을 냄새가 싫어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참이였다. 전화가 온다. 타이밍도 기가막힌 놈.
- 문 열어줘요.
- 뭐?
- 문이요, 열어주세요.
핸드폰을 귀에서 살짝 떼곤 현관 가까이로 다가가 걸쇠까지 걸어 잠근다. 내가 왜 열어줘야 하는데? 전화도 일방적으로 끊어놓고선, 제멋대로 찾아와서 심지어 집안에 들여달란다. 참 버릇없는 놈. 이건 내 오기가 아니라 형으로서, 어른으로서 버릇없는 너를 충고해주려는거다.
- 타쿠야, 앞으론 이렇게 멋대로 찾아오면...
- 안 열어 줄거에요?
안 열어 줄거에요? 하고 물어오는 목소리가 그 대사와는 어울리잖게 여유롭다. 그래, 짧게 대답했다. 한참동안이나 대답이 없는 너는, 아마 나를 어떻게 구슬려 이 문을 열어낼까 고민하는 중이겠지. 니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 열어주지 않을거야. 나는 다짐한다.
- 위안형, 어제랑 많이 다른데요? 섭섭하게.
- ...기다려, 문 열어줄게.
나는 다짐을 무른다. 지난 날의 실수 앞에서는 누구나 약해지는 법이다. 행여 어젯밤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실수를, 니가 복도에서 쩌렁쩌렁 발설해버릴세라. 꽁꽁 걸어잠갔던 현관문을 여는 손이 다급하다. 문이 열리자 너는 망설임도 없이 성큼 들어선다. 너의 등 뒤로 문이 닫히고, 나는 멍하니 너를 마주본다. 뭐가 그리 기분좋은지, 아님 내가 무슨 약점이라도 잡혀서 그게 그리 우스운건지, 넌 아무말없이 헤실헤실 웃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니 모습은 한마디로, 짜증난다.
- 내가 어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너 지금 좀 재수없다.
- 무슨 말을 했던건 아니고,
중간에 뚝 끊겨버린 너의 뒷말이 궁금해서, 다시 고개를 들어 너의 얼굴을 바라본다. 한손으로 내 뒷머리를 감싸 제 품으로 당기더니 그대로 쪼옥- 길게 입을 맞추곤 다시 헤실대며 말을 잇는다.
- 했잖아요 뽀뽀. 이왕 해줄거면 키스로 해주지. 네 품안에 안겨있는 나는 사실, 당장 너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인데. 하긴, 그럴 수 있었다면 진즉에 망할놈의 뽀뽀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사실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왜요, 어린놈한테 당하니까 기분나빠요? 내가 아무리 애써도 너와 나의 관계에서 나이는 우위를 가려내는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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