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아침은 어제보다 훨씬 더 쌀쌀해진 겨울바람과 함께 시작됐다. 눈뜨자마자 해야 하는 일은 날씨체크, 그리고 위안형- 하고 저장된 채팅방에 들어간다.
[ 잘잤어요? 오늘 많이 추워요. 내가 준 목도리 꼭 하고와요 ]
말풍선 옆에 둥둥 떠있던 1은 금방 사라지지만, 답장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미 채팅방은 내가 일방적으로 보냈던 수많은 말풍선으로 가득차있다. 그대로 미련없이 홀드버튼을 누르고 침대위로 핸드폰을 던져버리려던 찰나, 기적이 일어났다.
[ ㄹ0 ]
오 주여, 오늘은 재수가좋으려나 봅니다. 심장이 저만치 아래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빠르게 쿵쿵대기 시작한다. 눈을 몇번이고 감았다 떠도, 다시 확인해봐도 너한테 온게 틀림없다. 그대로 멈춰서서 얼마나 오랫동안 핸드폰 액정만 내려다봤는지 모른다.
내용은 중요치 않다. 네가 처음으로 해준 답장이니까, 그 자체만으로 나에겐 너무 벅차다. 리을은 뭐고 영은 또 뭔가! 알게뭐야, 네가 나만을 위해 창조해낸 문장이란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이 간지러워서 발가락은 꼼질꼼질, 입가에는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빨리 가서 안아버려야지.
***
사실 우리집은 학교 코앞이지만, 난 빙빙 돌아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중이다. 너는 버스를 타고 오니까, 그 뿐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버스가 빨리왔는지 벌써 저만치에 버스에서 내리는 네가 보인다. 추운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어제 내렸던 눈에 꽝꽝 얼어버린 오르막길을 종종대며 올라온다. 목도리도 했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워서 가만히 너를 지켜본다.
그리 길지도 않은 길을 바닥만 보며 조심조심 올라온 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어떠한 리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꽈당 넘어져버린다.
괜찮아요 위안형? 아프겠다...너의 손을 잡아 일으켜 축축히 젖은 바짓단을 털어내는데, 너는 말 없이 새빨개진 얼굴을 목도리에 포옥 파묻고 있을 뿐이다.
너를 꼭 안는다. 내 품 안에서 말없이 꼼지락대다가 이내 나지막하게, 뭐해애- 하며 밀어내는. 그마저도 예뻐보인다. 너의 옆에 나란히 서서 발을 맞춰 걷는다. 자꾸 웃음이 나온다.
" 왜 자꾸 웃어, 내가 넘어지니까 웃겨? "
" 아뇨, 그냥. 오늘 기분 좋잖아요. "
" 난 넘어져서 기분 안좋아. "
" 답장해줬잖아요. "
내 기분좋은 대답소리에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너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거 잘못 눌러서 보내진거야. 매정하게도 대꾸한다.
그래도 좋아요, 내가 준거 하고 와서. 내 마지막 말에 너는 아무 표정도 대답도 없이 나를 앞질러간다. 너는 내가 귀찮은가보다. 조금 서운해진다.
날씨가 많이 추워서 그런가, 너는 귀까지 빨개진다. 다음엔 귀마개도 사줘야겠다.
***
수업시간은 지루하고도 무의미하다. 더군다나 체육 특기생인 나한테는 더더욱 무의미하다. 오늘같이 훈련이 없는 몇 안되는 날엔 따뜻한 교실에 엎어져 잠이나 자는건데, 너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잠도 쉽사리 안온다. 참 중증이지. 새 책이나 다름없는 교과서 귀퉁이에 네 이름을 써본다. 장위안. 이름은 예쁜데 글씨가 삐뚤삐뚤, 안예쁘다. 맘에 안들어. 다시 써본다. 오랜만에 잡은 펜으로 고작 적고있는게 장위안, 세글자 뿐이라니. 네가 봤으면 우스울 광경이다.
펜을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본다. 매서운 바람에 잎이 다 떨어져버린 앙상한 나무들과, 꽁꽁 얼어붙은 바닥. 그 차가움과는 대조적으로 동네 곳곳이 어떠한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시선을 조금 더 멀리 옮기니,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라고 써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아, 크리스마스! 교실 벽면 한쪽에 걸려있는 달력을 바라본다. 빨간 글씨로 25 하고 써있는데,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걸 지금 알아챘다.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보내는거랬는데- 그럼 난 너랑 보내고 싶다.
혼자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보다, 괜시리 부끄러워진 기분에 네 이름이 가득한 교과서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는다.
***
" 타쿠야. "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쉬는시간, 같은반 놈들의 갖은 소음에도 아랑곳않고 내내 잠들어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조그마한 소리에 반응한다. 여전히 책상에 고개를 묻은 채 반쯤 눈을 뜬다. 초점이 맞지않아 흐릿한 시야로 네가 가까이 보인다. 몽롱하다.
" 너, 집에 안가? "
" ...에? "
아, 바보같이 대답해버렸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몸을 일으켜 똑바로 너를 본다. 텅빈교실. 너는 내 앞자리에 앉아 동그란 얼굴로 오도카니 바라본다. 집에 안가냐구- 재차 물어오는 너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고, 정말. 바보처럼 눈만 꿈뻑꿈뻑 거렸을 뿐이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너는, 한참 자고 일어난 내 얼굴이 우스웠는지, 아님 내가 정말 바보같았는지, 작게 웃어보인다. 그 뒤에 집에가자- 덧붙이며 먼저 교실을 나서는데, 그 뒷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본 후에야 나도 가방을 챙겨 뒤따라 나올 수 있었다.
아침에 네가 올라오던 그 길을, 함께 내려간다. 오늘은 정말 요상한 날이다. 내가 아무리 추근대도 무심하기 그지없던 네가, 먼저 손을 잡아왔다. 나 미끄러지면 네가 잡아줘야 돼- 얼굴은 여전히 목도리에 숨긴 채. 너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다.
" 매일 잡아줄게요. "
" 그래. "
" 위안형, 크리스마스, "
바람이 차다. 마음까지 간지럽다. 너의 점퍼를 끝까지 잠가주며 말할셈이였다. 크리스마스 같이보내요- 그런데,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였나보다.
" 타쿠야, 그날 나랑 같이 있어줄래? "
이런글 밖에 못쓰는 내가 싯타...
쓰다보니 의도와 엇나감ㅎㅎ...
브금은 눈사탕 i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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