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 타쿠야와의 긴 연애였다. 나는 헤어진 남자의 뒷모습을 힐끗, 뒤돌아보면서, 다시는 이 남자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위안이 형?"
비 사이를 파고든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삼년만이었지만, 똑똑히 알아들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의 타쿠야는 요즘 유행하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 자기가 유행시킨, 바로 그 가방을. 나는 그 가방을 멍 하니 내려 보다가 느릿하게 타쿠야. 하고 입을 열었다. 시꺼먼 선글라스를 쓴 그는 그 속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할만큼 담담했다.
"오랜만이다."
"그러게요."
함께 하던 방송이 끝난 이후로, 타쿠야는 말 그대로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게 벌써 삼년 째. 나는 이 남자처럼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오롯한 장위안의 눈을 하고, 날 그렇게 만든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와인이라도 한잔 할까요? 빗소리에 주룩주룩, 그 목소리가 잠겨 갔다.
"그래."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렇게 마주 앉았다. 어색할 줄만 알았는데 꼭 그런 것 만은 아니야. 여전히 부드러운 성격의 타쿠야는, 삼년 전의 여느 때처럼 애교 섞인 장난을 걸며 부드럽게 와인을 넘겼다. 와인바 안의 조용한 재즈음악 사이로 빗소리가 스며든다. 화기애애- 라는 말은 안어울릴지 몰라도, 나와 타쿠야는 정말 괜찮았다. 끝이 그렇게 최악이었는데. 그래도 와인은 맛있었다.
"그래서 하나가…"
"형은 잘 지내나 보네요."
이런 얘기가 뜬금 없을 만큼 말이다. 타쿠야는 몰래 여친 욕을 터놓는 나를 보면서 패액, 웃음을 터뜨렸다. 난 심각했는데. 진짜다. 자꾸 하나가 타쿠야가 멋있다고 말하는 통에, 나는 쟤가 얼마나 나쁜놈인지 말하고 싶은걸 꾹 참아야만 했다.
"뭐, 그냥 똑같지. 너는?"
"저도 뭐… 바쁜 건 똑같아요."
"응, 티비 틀면 많이 보이더라. 인기도 더 많아졌고."
타쿠야는 쉽게 인정한 내가 의외였는지 다시 한번 피실 웃음을 흘렸다. 내가 어렸을 적 함께했던 타쿠야의 위치나 인기 같은건,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모자라 더 상승세였다. 겉으로 보기에도 외모 같은 것부터 그닥 달라진 게 없긴 하지만, 타쿠야는 이제 내게 아이돌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됐네요."
딱히 오랜만에 만난 티를 내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런 조용한 얘기를 하게 됐다. 진심인 얘기들이 오갔는데도 분위기는 여전히 가벼워서 마음에 들었지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냐며 묻는 하나의 문자를 덮고, 턱을 괸 채 내 옆에 앉은 타쿠야를 쳐다보았다. 한 모금 남은 와인을 다 마시자 취기가 올라오는 것도 같았다. 술이 약한건 내가 아니라 타쿠야였는데.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렴 상관은 없다.
삼년만에 만난 타쿠야는, 주량이 세졌는지 히히 웃으며 내게 달라붙지도 않고 말짱한 검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잘 지낸건 내가 아니라 그 쪽이면서.
"나 취한 것 같아."
"응."
"……."
"형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거시기 까도 돼?"
"아, 그건 빼고."
그래서 나는, 껄껄 웃음을 터뜨리고 차가운 바 위에 얼굴을 붙였다. 시원하다. 꼭 타쿠야를 떠났을 때의 기분 같다. 오묘하고, 그러면서도 슬프고 또 후련한. 타쿠야가 한쪽으로 흐트러진 내 앞머리를 쓸어준다. 다정한 사람. 남자는 이런 것 까지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것이 없었다.
"나쁜 자식아."
"네."
아마 내가 타쿠야에 대한 루머를 퍼뜨려서 그를 몰락시키면, 타쿠야는 지구 끝까지 날 찾아와서 괴롭힐게 분명했다. 그 때도 비슷했다. 기자가 타쿠야에게 찾아와 우리가 서로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키스하고 있었던 사진을 내밀었을 때, 타쿠야는,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내게 말을 했다.
「형, 우리 헤어져요.」
「…….」
「형 때문에 내 앞길을 막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타쿠야를 딱 한대 때렸다. 내가 지금 때리고 싶은 곳을 말이다. 타쿠야는 소리를 지르며 고자라도 될 듯이 굴었으면서 세달 뒤에 어느 여자 아이돌이랑 스캔들을 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타쿠야의 못됨을 너무 잘 보여주는 예시다. 날 마지막까지 떨어뜨려 놓으려는 심보가 빤했으니까.
"우리 키스하자."
그런 의 말을 듣고 방송을 관둔 나는 더 이긴 하지만.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타쿠야는 내 고개를 들어올리고 입을 맞췄다. 형 키스 많이 늘었네요. 타쿠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 내 혀를 살짝 깨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내가 한 생각은, 다음 날 아침에 타쿠야의 게이설이 뜨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
와인바를 나와 나는 타쿠야와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꼭 예전같다. 나와 타쿠야는 낮에 함께 돌아다니기엔 스케줄도 안맞고 조금 껄끄러워서, 항상 이렇게 늦은 밤거리를 같이 걸었다. 가끔은 자전거도 타고, 서로 집에도 데려다 주고.
우리는 그 순간 좀 연인같았다.
누가봐도 다정한 게이커플. 내가 생각해도 소름돋는 그런 칭호는, 솔직히 말하면 누가 말해도 딱 부정하지 못할 정도였다.
"클럽 갈래요?"
"이러고?"
"나 잘 아는 데 있어."
그래서 우리는 클럽에 들어갔다. 그냥 술만 한모금 마시고 내가 타쿠야의 뺨을 때린 뒤 헤어질 줄 알았는데, 벌써 새벽이 깊었다. 나는 그제서야 하나의 문자에 미안, 오랜만에 타쿠야 만나서. 그렇게 답장을 하곤 그를 따라 나섰다.
우리가 클럽에 가서 한건 별로 없었다. 춤도 재미없게 둘이서만 췄다.
"어디서 부비부비야."
"싫어요?"
"아니, 나 이런거 완전 좋아."
클럽은 어찌나 캄캄한지 시력이 썩 좋지 못한 내가 눈 앞 사람이 아니면 잘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나는 칵테일을 주문하는 타쿠야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여직 멍한 상태였다. 아직 취기가 안가셨나 하기엔 와인이 도수가 높은 술도 아닌데. 이 남자에게,
"저기요."
취한게,
"나랑 바람필래요?"
분명하다.
"…안 본 사이에 많이 뻔뻔해졌네."
나는 타쿠야가 내민 칵테일을 내려다보고는 팩 웃었다. 내게 작업을 거는 남자의 오렌지빛이 서서히 내려오고, 조금만. 그렇게 대답한 것은 아마 취기 때문만은 아니라며 그렇게 생각했다. 타쿠야는 아까보다 대담하게 키스를 하더니 나를 클럽 위 계단으로 이끌었다. 아, 정말로 내일이면 타쿠야의 게이설이 뜰 것만 같았다.
룸 안으로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는 모든게 일사천리였다. 우리는 옷을 벗고,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서로의 휴대폰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웠다. 뱃 속이 간질간질했다. 옛날에 타쿠야랑 사귈 땐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내가 깔린다는 사실이 진짜 마음에 안들었는데 또 미치게 아픈데다가 타쿠야가 욕 나오게 잘 박아서 느끼는 내가 짜증이 났다.
"형, 하나도 안괜찮구나."
"티나?"
"네."
타쿠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볼을 핥았다. 울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반대로 되어버렸나 보다. 축축한 눈가가 따가웠다.
"흐으…."
우리는 그 날 잤다. 서로의 몸에 키스마크는 남기지 않은 채로. 여자친구가 있는 것에 대한 배려였다.
***
그날 밤, 타쿠야는 내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나 사실 형, 그 거리에서 항상 기다렸어요. 왜? 라고 물었을 때, 타쿠야는 내가 예상했던 대답을 했다.
"헤어지자고 했을 때, 형이 알았다고 하면서도 무지 슬픈 얼굴이었잖아."
맞다. 난 타쿠야와 헤어질 때, 정말로 슬펐다.
***
눈을 떴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뒤가 욱신거리고, 아직까지도 날아가지 못한 적나라한 어젯밤의 냄새가 아침 햇살을 가렸다. AM 7:00.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타쿠야의 반질반질한 얼굴은, 내게 상처를 줬다기엔 지나치게 순진해 보였다. 이런 얼굴을 좋아했다. 나를 실망 시켰을지언정 충분히 사랑했던 얼굴을.
"…형."
어젯밤 맞대었던 입술이 퉁퉁 불어있는 것이 내 꼴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뻔했다. 하나한테 뭐라고 하지. 침대 위에서 일어나 어기적 어기적, 씻기 위해 일어나는데 여직 눈을 뜨지 못한 타쿠야가 나를 부른다. 뒤를 돌기 위해 움직인 고개가 뻐근하다. 나체의 남자와 나는,
"가지마요…."
삼년 전 헤어진 사이다.
나는 다시 침대로 걸어가 그 곳에 걸터 앉았다. 지난 날의 그가 그랬듯이 천천히 남자의 앞머리를 쓸어주고, 나는 동그란 코에 입을 맞췄다. 집에 가자. 그 말에 타쿠야가 어째서 슬픈 표정을 지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타쿠야는 일어나서, 옷을 주워입고, 일찍 일어난 나보다 먼저 욕실로 향했다.
데려다 줄게요, 라는 말과 함께. 나는 타쿠야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전등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랑같은 건 연애할 때 다 줘버렸어야 옳았다.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남아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형."
"……."
"자요?"
그래서 미련조차 씻어내지 못하게 만드는지…….
***
비가 깨끗하게 개인 아침, 타쿠야는 어제 나를 만났던 그 거리에 데려다 두고 손을 흔들었다. 잘가. 꽉 안으면서 말하면 누가 우는거 모를 줄 알았어?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우는 타쿠야의 등을 그저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형."
"응."
"우리 다시 만날까요?"
"아니."
"왜?"
타쿠야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다. 나에게도 있다. 그런데도 타쿠야는 그런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내가 거절한 이유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야. 나는 끌어안은 타쿠야를 놓고 싶지 않아 질까봐 약간 두려움에 떨면서, 그에게 말했다.
"돌아가도 똑같을 거니까."
그제서야 타쿠야는 내게서 떨어졌다. 충혈된 눈이 빨갛다. 나는 축축한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가 떼고, 타쿠야의 다음 할 말을 기다렸다. 말이 없는 우리, 축축한 비의 냄새와 개고 있는 투명한 하늘.
"그럼…"
"……."
"비가 오는 날에 외로우면 내게로 와."
"……."
"그런 얼굴 말고."
우리는 이 날 두번째로 헤어졌다.
"타쿠야."
"네."
"먼저 들어갈게."
느슨하게 웃는 얼굴, 나는 내가 뒤돌아서면 그가 왈칵 다시 울음을 터뜨릴까봐 끝끝내 뒤를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발코니 위에 서 내려다본 거리엔, 여전히 타쿠야가 울고 있었다. 나는 나를 올려다보지 않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였기에 완벽한 연애였다.
그렇지만 나는 뒤를 돌아서, 다시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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