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안, 첫키스
뻔뻔하다, 이 단어는 타쿠야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 선배, 밥 같이 먹으러 갈래요?
- 아니.
- 그럼 오늘 학교 끝나고 시간 있어요?
- 아니.
- 어, 그럼 내일 시합 보러 올거죠?
- 아니.
- 선배, 저 싫어하죠?
- 아니.
내 마지막 대답을 들으며 타쿠야는 만족스러운듯 웃었다. 뭐라구요 선배? 나는 그제서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타쿠야에게 주먹을 들이밀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박으려고 했는데, 내 손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쿠야의 머리카락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 모습이 웃긴지 타쿠야는 또 미소를 짓는다. 낯간지러울만큼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고서. 누가보면 우리 둘이 연인사이인 줄 알 만큼 낯간지럽다. 타쿠야의 눈빛에 지기 싫어서, 그 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얼굴이 여름의 태양 마냥 뜨거워지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이렇게 나는 항상 타쿠야에게 진다. 말장난도, 눈싸움도.
- 선배, 제발 내일 시합보러 와요.
- 싫다고 몇번을 말해.
- 누가보면 몇 백년 된 나무인줄 알겠어. 몇 번을 찍었는 지 넘어가지도 않아.
- 야, 존댓말.
타쿠야는 내 대답이 맘에 안드는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예예, 선배님.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괜시리 울컥한다. 또 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타쿠야의 헤실헤실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듯, 화가 녹아내린다. 타쿠야는 이런 나를 너무 잘 알고있다.
- 그럼, 선배. 소원 하나만 들어줘요.
- 뭐.
- 나 내일 시합 이기면 뽀뽀,
뭐? 이자식이 미쳤어! 아주 나를 놀릴 작정을 했는지, 능글맞은 목소리로 뽀뽀를 해달라고 말하는 타쿠야의 정강이를 세게 찼다. 운동 하는 애가, 그것도 축구하면 다리는 튼튼할텐데 나 보라고 괜히 엄살을 부린다. 그래도 이번 일은 참을 수 없었다. 한 두번 놀리는 거 받아줬더니 이미 내 머리 위까지 기어올라온 것 같다. 씩씩거리고 있는 내가 신경쓰였는지 화났냐며 조심스레 물어오는데, 그 모습도 여간 뻔뻔한 게 아니다. 당연히 화났지! 죽고싶어? 나는 복도가 떠나가라 빽뺵소리를 지르며 타쿠야의 등판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어쩌면 이러다가 내일 시합 못 나가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물론 악의가 담긴 것은 절대 아니다. 왠지 모르게 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내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마도.
-
- 선배! 응원 열심히 해요!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왜 타쿠야 경기를 보러왔는지. 게다가 내가 왜 저녀석을 응원, 뭐 딱히 응원이랄 것도 없이 얼굴만 비추러 온거지만. 그래, 나는 말 그대로 궁금해서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재수없게도 딱 걸리고 말았다. 저 멀리서 선배! 하고 해맑게 뛰어오는 타쿠야한테. 망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손에 들려있는 이온음료 한 캔을 꽉 쥐었다.
-
- 역시 타쿠야가 다 했네. 역시 에이스는 에이스다.
- 다 같이 한거지, 뭘.
경기를 보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타쿠야가 팀의 에이스였다는 것. 그도 그럴것이 경기를 보는데 타쿠야 밖에 보이지 않았다. 타쿠야의 골이 골망을 시원하게 갈랐을 때도, 응원하는 여자아이들을 보며 멋쩍게 웃음지을 때도, 나를 바라보며 크게 손을 흔들었을 때도. 경기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은 모두 타쿠야 주위로 몰려들었다. 응원하던 아이들도 모두 내려와 타쿠야, 타쿠야 하면서 타쿠야의 이름을 연호했다. 마음같아선 나도 뛰어가서 잘했다며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지만, 내 발은 뭐가 그리 무거운 지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때까지 항상 지켜왔던 선배로서의 자존심, 뭐 그런 시시한 것 때문이었다.
- 선배, 저 봤어요? 완전 멋있었죠?
혼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본 건지, 타쿠야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내게 뛰어왔다. 멋있었다, 최고였다.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고놈의 자존심이 뭔지,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갑자기 불쑥 다가오는 타쿠야에 깜짝 놀란 나는 뒤로 몸을 뺐다.
- 아, 땀냄새 나죠. 미안해요.
아니 그런게 아닌데. 사실 오늘따라 멋져보였던, 아니 멋있는 타쿠야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 앞으로 다가오자 깜짝놀랐을 뿐이다. 타쿠야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타쿠야의 고민하는 표정은 저런 모습이구나. 항상 내게 서슴치않게 말을 내뱉던 타쿠야에게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귀여워 웃음이 새어나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리가 없었다. 보나마나 뻔하다.
- 선배?
까치발을 들어 타쿠야의 양 볼을 움켜쥐었다. 너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멀리서 바라보던 너도 크다고 생각했지만 키를 맞추려고 하니 너의 큰 키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가까이서 보는 너의 얼굴도 올려다보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다. 예전같았으면 나보다 큰 너의 키에 발끈했을테지만, 지금은 그게 먼저가 아니다. 항상 터져나올 것만 같았던 내 마음을 누가 엿보기 전에 너에게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너가 들으면 콧방귀를 칠 나의 그 얄랑한 자존심을 무너뜨린 것은 결국 너가 아니라 나였다.
쪽, 하는 민망한 소리와 함께 타쿠야의 입술과 나의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졌다. 타쿠야는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먼저 다가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의 너는 내가 숨겨왔던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만큼 멋있었다, 그게 오늘 나의 모든 행동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잡고있는 타쿠야의 볼이 점점 뜨거워진다, 불에 데인 것 마냥. 타쿠야는 허리를 숙여 내 볼을 감싸쥐었다. 민망하리만큼 부드럽고, 간지러웠다. 바람이. 그리고 내 입술에 닿는 타쿠야는 내가 잡았던 타쿠야의 볼 처럼 뜨거웠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이 끈적한 키스도, 길거리의 평범한 연인들이 하는 그런 입맞춤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여름날의 짧은 입맞춤은 서로를 향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충분할 만큼 뜨거웠다.
똥글이지만 잘 봐줘서 고마웡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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