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방학 ;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을 때가 있어
2015.08.22.토
오랜만에 만난 너는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휠체어 너머로 힐끗 보이는 어깨죽지가 말라있었다.
그와중에 예쁘게 웃어보이는 너는 여전히 너였다. 네가 좋아하는 병원 옥상에서 도시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는데 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건강한 여자였다면 우리는 이미 결혼했을까?
아이까지 낳았을지도 몰라. 웃으며 얘기하는 네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고 있는 동안에 앙상한 손가락이 바들거리며 내 팔뚝을 쥐었는데 그 촉각이 일기를 적는 지금까지 선명하다. 네 앞에서 울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급히 입술을 떼었는데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서 입술을 악물고 하늘만 쳐다보았다.
살랑이는 선선한 바람이 네 이마를 지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스쳐지나가는 모습조차 눈에서 뗄 수 없었다.
너는 나를 왜 좋아해?
동그란 눈망울이 나를 향했을 때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 얇은 살가죽의 피부를 어루 만지며 너니까 라는 세 글자를 남긴 채로 또 다시 입을 맞추었다. 비록 눈물을 흘렸지만 닦지도 않았을 뿐더러 피하지도 않았다. 너는 눈물을 닦아내어주느라 바빴고 나는 조금이나마 더 너를 느끼기 위해 애썼다.
2015.08.24.월
이틀 뒤 낼 예정이었던 휴가는 조금 앞당겨졌다. 그저 눈을 감은 채 헉헉거리는 거센 숨소리를 내뱉는 너를 내려다 보는 것도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됐는데, 사실 나에게는 푸른 잔디밭에서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던 네가 조금 더 눈에 익었다. 피부와 구분되지 않는 병원복은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았다. 두손으로 너의 손을 잡고 신에게 기도했다. 아주 조금의 시간만 더 달라고. 만남보다 헤어짐이 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 빌었다. 물론 너는 눈을 감은 상태였다.
2015.08.25.화
3개월만에 너는 또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입가로 새어나오는 흰 거품을 바라보던 내 심장은 거의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였다. 주치의에게 너를 넘기고 홀로 남은 나는 화장실에서 토악질을 했다. 너를 향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를 향한 구역질이었다. 너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나를 향한 경멸이었다.
2015.08.28.금
수요일 아침부터 네 증세는 더더욱 악화되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즉 오늘부터 갑자기 상태가 좋아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를 바라보는 맑은 연두빛의 눈동자는 청아하고 투명했으며 지독하게 순수했다. 우리 옥상가자. 지옥같던 삼일을 너는 알기나 아는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보챘다. 초가을 날씨였지만 두툼하게 외투를 챙긴 후에야 너는 구름을 마주할 수 있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난간쪽으로 가자 너는 매우 느린 속도로 천천히 일어서기를 하고 있었다. 파들거리는 다리를 무시한 채 기어코 일어선 너는 뒤를 돌아 나를 향해 웃었다. 두 팔을 벌린 그의 눈에 담긴 하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2015.09.01.화
어제부터 네가 또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는 이야기만 듣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억지로라도 네 의식을 깨우려했다. 분명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너는 존재할테니까.
2015.09.02.수
바람은 결국 너를 데려가고 말았다. 너는 구름을 타고 갔는지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그렇게 눈을 감았다.
2015.09.03.목
네 짐을 정리하다 서랍 아래에서 찾은 흰 종이에는 서툰 글씨로 끄적인 글이 쓰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고 한참이나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를 부여잡고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알베르토에게
안녕 알베르토, 나 다니엘이야. 편지 적으려니까 쑥쓰럽네.
요즘 날씨가 정말 좋아. 창밖으로 보는 하늘도 예쁘지만 너랑 같이 보는 하늘은 더 예뻐. 그래서 매일 보고 싶은데 내 몸은 하늘이 싫나봐.
사실 너랑 주치의가 하는 얘기를 들어버렸지뭐야. 내 몸 상태가 어쩌고, 두 달이 어쩌고. 거짓말도 잘 해. 내 몸은 내가 잘 아는데, 아마 9월에 보는 하늘이 마지막일 거 같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음, 정말 미안하다는 소리밖에 못해주겠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게 내가 너를 생각하는 전부인 걸.
나 사실 요리도 되게 잘 하는데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 나 팬케이크도 진짜 잘 하고 파스타도 잘 하는데. 그리고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해.
음, 놀러가는 건 더더욱 좋아하지. 우리 집 침대 옆 수랍장 마지막 칸에 앨범 있을거야. 거기 나 여행다니던 사진 있는데 혹시 나 생각나면 봐도 좋아.
너니까 허락할게 :) 아, 그 사이에 우리 둘이 간 여행 사진 있을지도 모르겠다. 확인해보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나 보러 오면 나한테도 한 장 주면 좋을 거 같아.
그리고 강아지랑 노는 것도 좋아하고 단 음식도 엄청 좋아해. 몰랐지? 계속 못 먹고 못 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너니까 질투하지는 마
사실 이거 적으면서 머리가 너무 아파서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너 내가 떠나도 울지마. 아니 음 한 이틀 정도는 울어줬으면 좋겠어. 진짜 눈물 한 방울 안 빼면 서운할 거 같아.
매일 밤마다 네가 우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잖아 바보야. 한 달 뒤면 난 계속 네 곁에 있을건데 그럼 더더욱 시끄럽겠다.
그러니까 우리 좀 조용히 삽시다 알베트로씨. :)
하고 싶은 말 되게 많았는데 생각이 안 나네.
분명히 이거 읽으면서 질질 울겠지 뭐. 그냥 단지 내가 먼저 간 거 뿐인데 왜 우나 몰라. 네가 아프냐, 내가 아프지. 울어도 내가 울어.
그래도 아프면서 제일 좋았던 점이 뭔지 알아? 네가 병원에 오면 1분도 안 떨어지고 내 옆에 있다는 거야.
내가 너 정말 많이 좋아하나봐. 음, 창피하지만 사랑한다고 얘기해도 될까.
고마워. 사랑을 알려줘서. 네가 나한테 준 게 사랑이라는 걸 알게 해줘서.
네 덕분에 난 숨 쉴 수 있었어. 사랑해.
Ps. 다음 생에는 꼭 예쁘고 건강한 여자로 태어나서 너 닮은 아이 하나 나 닮은 아이 하나 놓고 살테니까 이번 생은 다른 여자한테 양보할게. 그러니까 나 신경쓰지말고 꼭 결혼해야 해. 떠난 뒤에도 걸림돌 되기는 싫다:-/
2015.08.01.토
세상에서 알베르토를 제일 사랑하는 다니엘이]
엉망인 글솜씨에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수차례 읽어버린 편지를 가슴에 품었다.
지나치게 눈부신 너를 하늘은 시샘했고 결국 너를 데려가 버렸다고 스스로 결론을 지어버렸다.
너는 나의 세상이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고 따뜻한 그런 세상이었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나를 휘감았다.
세상이 나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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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ㄴㅇ;ㅣ라ㅓㄴㄹ 제목 뭐로하지 하다 결국 엄청 성의 없이 지었,,,, 만약 댓글로 예쁜 제목을 지어주신다면 바로 바꾸겠습니다 ㅇ허ㅣㅏ;ㅎ 나의 세상, 나의 바람 이라는 제목으로 올리려다 뭔가 와닿는 게 없어서 이것저것 바꾸다 빡쳐서 바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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