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이 경훈을 처음 만난건 그날 롤 경기에서 였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하얀얼굴에 깔끔하게 세운 갈색 머리칼, 과잠인듯 보이는 야구점퍼와 다리 라인이 드러나는 까만 스키니가 현민의 확 눈에 들어와 꽂혔다. 예쁘다. 어떻게 저렇게 예쁘지? 얄쌍한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이리저리 쥐어보며 제 옆에 있던 동기들과 대화 중에 웃는 모습조차 너무 예뻤다. 라고 현민이 생각했다. 현민은 오늘 지면 욕이란 욕은 바가지로 먹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불과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같은 과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포스텍을 조져버리자고 다짐했던 포부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현민은 저런 예쁜이가 포항공대를 다닌다면 당장 자퇴하고 다시 수능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현민은 갑자기 18살의 오현민이 아주 미웠다. 왜 카이스트에 원서를 넣은거지? 완전히 다른길로 새어버린 잡념은 자괴감이 되어 현민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야, 오현민!" "어어, 어?" 뭔생각을 그렇게 해! 약간은 짜증이 난듯한 표정의 경헌이 현민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강타없이 정글 돌거냐? 턱으로 현민의 스펠창을 가리킨 경헌은 한껏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어제 새벽 5시쯤 카포전의 다짐이 담긴 문자를 현민에게 17통 정도 보냈던 전적으로 보아 저번년도에 경헌의 탓으로 져버린 경기에 대한 복수를 오늘에서야 할 예정인듯 보였다. 현민은 여전히 반 정도 멍한 상태로 상대팀의 챔피언들을 훑었다. 다들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닉네임 탓에 건너편 예쁜이가 어떤 캐릭터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아직 시작하기 전 까지는 5분 정도 남은 탓에, 현민은 경헌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귀 가까이에 대고 얘기했다. 제 맞은편에 갈색머리 몇픽인지 알아요? 경헌은 고개를 들어 현민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힐끗 보고서는 3픽 같은데. 하며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근데 왜?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경헌에게 현민이 나지막하게 답했다. 귀엽게 생겨서요. 경헌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현민은 그러거나 말거나 마우스 커서로 경훈의 닉네임 근처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열운압? 무언가의 줄임말인것 같은데 도통 알수가 없었다. 현민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에 익숙한 해설자의 목소리가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현민은 일말의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다. 어느새 제게 투시력이 생긴듯, 분명히 건너편에 앉아있는 경훈임에도 불구하고 경훈의 얼굴이 제 모니터에 아른거렸다. 결국 봇 듀오에게 리쉬를 받던 현민의 챔피언은 처량한 비명소리와 함께 처형당했다.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있던 경헌이 현민을 홱 쳐다봤다. 오흔믄 뜩브르 흐르그 흣을튼드.. 낮게 으르렁 대는 경헌이 섬뜩해 현민은 마우스를 고쳐잡고 고개를 몇번 휘저었다. 일단 목숨이 두려우니 게임에서 이기고, 저 예쁜이의 번호를 따야겠다고 현민은 결심했다. - "아핳하하!! 별것도 아닌 것들이군!!" 술에 취한 경헌이 입에서 나오는대로 중이병스러운 멘트를 잔뜩 기 시작했다. 후..답이없군.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낀 현민은 경헌을 바람을 쐬고 온다는 핑계로 동아리 후배들에게 내팽개쳐 버리고선 동아리실을 뛰쳐나왔다. 경헌의 하드캐리로 게임이 이긴것은 사실이지만 술주정 까지는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아까는 이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저가 나서서 포항공대의 승리를 도왔어야 했나 했다. 혹여 경훈의 마음을 상하게 한것은 아닐까 걱정 된 것이다. 도망치듯 나온 터라 금세 꽤 멀리까지 걸어온 현민은 후배들에게 미안해 얼른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이성과 달리 솔직하지 못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터덜터덜 동아리실과 더 떨어져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현민의 눈에 저 멀리서 투닥거리고 있는 사람의 형체들이 들어왔다. 포스텍 과잠인데, 아직도 안갔나.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음성이 들리는 쪽으로 가니 아까 경기때 보았던 다른 학생들 몇과 그 사이에 울먹거리는 표정을 한 경훈이 떡하니 서있었다. 미친. 현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까 그 예쁜이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현민은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 거리던 핸드폰을 꼭 쥐었다. 다시 오지않을 기회였다. 저의 계획은 분명 경기가 끝나고 자연스레 수고했다는 인삿말과 함께 번호를 따려했던 것이지만 포항공대의 완패로 게임이 끝나버리자 경훈을 포함한 다수가 관전하던 동기들에게 연행되어가듯 끌려가 그 후 다른경기 관중석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사나이 한번 뽑은 칼은 무라도 썰어야하지 않겠는가. 현민은 굳은 결심끝에 포스텍 무리들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들끼리 투닥대느라 현민이 오는지 마는지도 관심이 없던 와중이었으나, 뒤에서 현민을 크게 부르는 목소리에 사방의 이목이 현민에게로 집중되었다. "오현민이!!!!" 감히 형을 버리구 도망을가!!! 믿고싶지 않았지만 선명한 경헌의 음성이었다. 저를 찾아나서 급히 나왔는지 신발은 양쪽이 짝짝이였고 양 어깨에는 동아리 후배들을 한명씩 끼고있었다. 경헌의 주정을 참다 못한 동기들이 그의 뺨을 몇번 내리친듯 경헌의 왼쪽 뺨이 유독 부어올라 있었다. 졸'라 징하다... 현민은 핸드폰을 쥐고있던 손아귀 힘을 약간 늘어뜨렸다. "아까 상대팀 정글아니예요?" "어어, 그러네 미니미니였던가… 닉네임이 하도 유치해서 기억난다." 오늘의 패배는 누구의 탓인가를 주제로 열띈 토론을 벌이던 종훈와 경훈 그리고 그 외 무리들이 경헌의 부르짖음 탓에 현민을 쳐다보았다. 게임할땐 몰랐는데, 귀엽게 생기지 않았냐? 하는 경훈을 종훈이 조금 째려보며 답했다. 형 쟤한테 8킬 따였어요. 하하, 그랬던가. 현민을 바라보던 경훈이 운동화 끝으로 바닥을 긁어대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는 종훈이 너는 14데스였지 않니? 웃는 낯으로 불꽃을 튀기는 그들때문에 애꿎은 주변 사람들만 둘의 눈치를 살피었다. 그러는 새에 경헌은 어느새 현민의 코앞까지 와 왜 자기를 떠났냐는 둥 오늘의 승리가 누구탓인지 아냐는 둥 본격적으로 주접을 떨기 시작했다. 현민이 반발짝 물러나며 형 저 지금 엄청나게 중대한 일을 하려던 참이라구요. 했지만 경헌은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바깥의 찬 공기에 술이 약간 깬 경헌은 현민이 말한 중대한 일이 무엇인지 내심 궁금해 현민의 곁눈질을 살폈다. 현민의 눈이 가르키는 곳을 따라가니 아까 게임을 했던 포스텍 팀 멤버들이 보였다. 경헌은 저가 쿼드라 킬을 했을때 상대팀 원딜 표정이 볼만 했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렸다. "저기요," 경헌이 딴생각을 할 동안 현민이 금세 경훈에게 다가가 말을 건 것은 찰나였다. 에, 저요? 멍청한 얼굴로 반문한 경훈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켰다. 네, 그쪽이요. 입꼬리를 말아올려가며 다짜고짜 핸드폰을 들이미는 현민은 꽤나 저돌적이었다. "아까 경기할때부터 맘에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줄 수 있어요?" "예?? 경훈이 형이요??" 동문서답은 종훈이 했다.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종훈의 말을 현민은 가볍게 무시하고 경훈을 바라보며 웃어댔다. 찍어줘요. 남자에게 번호를 따는 상황치고는 너무 뻔뻔한현민의 태도에 종훈은 헛웃음을 쳤다. 형, 포항공대 자존심에 카이스트 한테 번호를 줄건 아니죠? 정말 의아하다는 듯 경훈의 어깨를 살짝 잡은 종훈이 손아귀에 힘을 실어 눌렀다. 아! 인상을 찡그리며 아파하는 경훈에게 주변 친구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경훈아 오늘의 패배는 전적으로 네탓에게 있는데 연애까지 하시겠다?" "우우!! 포스텍의 수치다!" "포카리 스웨트지 카포리 스웨트가 아니다!!" 종국에는 모든 친구들이 합세해 현민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우물쭈물하던 경훈은 아, 그게… 라는 싱거운 말밖엔 내뱉을 수 없었고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경헌과 현민의 후배들은 포항공대의 도발적인 멘트들을 듣고는 뒤에서 같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이 오현민!!!! 포항공대남의 번호를 따다니 자퇴해라!!" "오현민 학우는 오늘의 승리가 한점 부끄럽지도 않는가!!" "포스텍은 포항의 자랑이지만 카이스트는 세계의 자랑이다!!" 현민과 경훈은 어이라는 것이 뇌에서 사라져버렸다. 경훈은 친구들과의 우애를 택해 현민를 뿌리치기에는 현민이 너무나도 자신의 취향에 적합했기 때문에 매몰차게 돌아설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애절한 눈빛까지 보내오는 현민에게 당장이라도 제 번호 11자리를 마구 찍어주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카포전에서 이긴 경기가 2경기 밖에 없는 마당에 곤두서있는 동기들의 심정을 건드리고 싶지는 더욱 더 않았다. 경훈이 전봇대마냥 멍하니 서있자 종훈이 경훈의 팔을 끌어당기며 현민에게 다음 경기때 두고보라는 쌍팔년도 시절 애니메이션 악당들의 멘트를 지껄여댔다. 멍한 것은 현민도 마찬가지였다. 21년만에 마주한 내 완벽한이상형을 이렇게 떠나보내다니… 현민은 자신의 과잠에 떡하니 박혀있는 K를 떼어버리고픈 충동이 부글부글 일었다.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경훈이 다시 아른거리는 듯 했다. 그자식들 잘 꺼져주었다며 세상엔 다른 멋진 남자들이 많고, 그 멋진 남자가 포항공대에 다닐리는 없다며 경헌이 현민의 어깨를 도닥였다. 현민은 눈물이 날 듯 했다. - 아아, 가지말아요, 아, 아아…! "우왁!!!!!"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이불을 박차고 기상한 현민이 식은땀에 절어 가파른 숨을 골라쉬었다. 미친, 꿈을 꿔도… 이불을 꼭 그러쥔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내리던 현민이 아직 어두컴컴한 제 자취방을 보고선 자신이 잠든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깨어났음을 직감했다. 꿈에 경훈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저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자 경훈은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대론 안된다. 그 예쁜이는 나의 운명공동체인게 분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견우와 직녀가 어쩔 수 없는 상황탓에 이별했지만 서로를 절실히 사랑했음에 분명해 아름다운 사랑이 더욱 빛을 발한 것이 아닌가? (라고 현민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행동은 정당한거야. 현민은 자신이 오미오라도 된 양 핸드폰을 켜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나쁜 기를 받는다며 포항공대는 검색도 하지말라 당부했던 동기들의 말이 사뭇 떠올랐다. 그랬기에 현민의 행동은 카이스트로써의 금기사항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민은 사랑을 우선으로 택했다. 타자를 치는 손에는 거침이 없었다.
과연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 2편 계속 - 는 똥손이라...여기까지밖에ㅠㅠㅜㅜ .소재 얻어서 쓴건데 이렇게밖에 못써서 넘 미안햐가ㅜㅜㅜㅜㅜㅜㅜㅜㅜ 삘받으면 뒷부분도 쪄와보도록 노력할겟...우럭.. 글구 저 페북 캡쳐는 포토샵으로 주작한거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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