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엄마가 나를 낳은건, 명백한 실수였다.
정치가 아버지, 배우 어머니, 변호사 형
이렇듯 스펙 빵빵한 집안에서 나는,
절대로 세상밖에 드러나서는 안되는 불길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름 난 정치인이었지만 어쩐지 대통령 선거에서 번번히 떨어지던 아버지는 이게 다 내 탓이라고 여겼다.
나같은 불행한 존재가 집안에 빌붙어 살기 때문이라고,
언론에서 입을 모아 칭찬하는 아버지는 나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배우인 어머니에게도 나는 결코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인터넷에 쳐보면, 어머니의 가족란에는 늘
정치인 아버지, 변호사인 형만 기재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 있을 곳은 텅텅 비어 찾을 수 없었다.
우리 형은, 나와 달리 완벽한 우리 형은
어머니가 두번째 임신을 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어릴때부터 영재소리를 듣고 자라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서른 중반의 잘나가는 변호사인 형은,
부모님에게 둘째도 잘나게 태어날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태어난게 나다.
내가 누구길래 이러냐고?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걸음마를 늦게 떼던 나는, 3살 때 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나는 늘, 모든것이 실수 투성이였다.
엄마는 내가 장애인 판정을 받고 나자, 손님이 들끓는 저택같은 집에서 제일 눈에 띄지 않게 나를
가둬두었다.
그곳이 3층 맨쪽 끝방, 다락방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들고 일어났으며, 그곳에서 밥을 먹고 형이 읽던 책을 몰래몰래 읽었다.
화장실이 가고싶거나 간식이 먹고싶으면 한참동안 눈치를 보다가 벽을 세번 두드렸다.
그렇게 세번 두드리면, 가정부 아주머니가 휠체어를 재빠르게 끌고 와서 나를 밖으로 데려가곤 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산책도 했다. 어둑어둑한 밤에만이었지만 -
나는 그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면 누렇게 변해버린 공책에 연필로 나만의 이야기를 적곤 했다.
그러면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내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상실이라거나 서운하다거나 그런 감정을 느껴본적은 없지만
적어도 나를 부끄러워하진 않으니까, 그게 좋았다.
그리고 화장실을 핑계로, 나 혼자 밖에 나왔던 날-
단정한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맨, 순수한 외모의 남자아이를 보았다.
그래, 그게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교복, 안경, 책, 오래 신은 듯 보이는 낡은 운동화까지 나에게는 그의 모든것이 찬란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것을, 그는 무엇이든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은, 불길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준재..."
노란 명찰에 달려있는, 익숙한 교복을 보는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말 없이 웃어보이고는 내게,
"너는 이름이 뭐야?"
이름을 물어보았다.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내 이름을 물어봐주었다.
나는 그 사실이 굉장히 기뻤다.
"나는 타쿠야, 테라다 타쿠야."
오랫동안 방치해 두고 있어 무뎌질대로 무뎌져버린 상처에 간질간질 새 살이 돋아오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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